백제가 왜에게 '인질'을 보냈다는 삼국사기 기록의 의미

 
일각에선 백제가 왜에게 '인질'을 보냈다는 식의 표현이 있는 삼국사기의 기록에 근거하여 '인질을 보낼 정도면 칠지도도 솔직히 바친 거라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칠지도와 직지가 왜로 건너간 것은 서로 시대적 간극이 길어서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 즉, 백제 전성기 때 보낸 칠지도와 고구려에 밀려 국운이 기운 시절의 백제를 비교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일뿐더러, 백제가 보냈다는 인질의 정체에 대해서도 실상은 속까지 파고 들어가봐야 한다. 정작 당사국들인 백제삼서의 기록[22]과 일본 쪽의 기록('내조하였다.')들 중에서는 그 어디에도 인질을 보냈다고 하진 않는다.

즉, 일본서기에도, 또 일본서기에서 인용했다는 백제의 기록에도 '인질'이라는 표현은 없고, 정작 한참 후대인 고려 시대에 쓰인 삼국사기에만 이런 표현이 나올 뿐이다. 문제가 되는 삼국사기조차도 해당 구절을 살펴보면 결호(結好)라고 하여 상하 관계에 따른 인신 공납이 아닌 단순히 우호 관계를 맺기 위해 일종의 외교관으로서 파견되었음을 알 수 있고, 인질(質)의 의미도 상하 관계와 무관함을 밝히는 견해를 나행주를 위시한 학자들이 제시하여 설득력을 얻었다.

가령 덴쇼 14년(1586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어머니인 오만도코로를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인질로 보냈지만 당시 히데요시가 이에야스에게 굴복을 선언한 것이 아니듯, 전근대의 인질은 지금처럼 단순한 볼모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외교관 또는 보증의 증표 같은 여러 의미들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이었다. 실제로 일본 측은 외교관으로서 일본을 방문했었던 김춘추도 인질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에 그 당시 인질이란 단순히 볼모가 아닌 외교관, 다시 말하면 외교의 수단으로 물건이 아닌 사람을 보내는 것을 인질이라고 칭했음을 알 수 있다.

아니면 실제로는 백제에서 일본에 영향력을 행사하러 건너온 백제 왕족이, 이후 백제가 멸망하고 난 이후 일본서기가 쓰여지는 과정에서 근초고왕의 행적이 진구황후의 행적으로 둔갑되었듯 인질로 온 것인마냥 조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가령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학자들 사이에서 정설로 통하는, 일본서기 구절 중 백제가 왜에게 무엇을 바쳤다, 조공했다는 등의 말이 사실은 전해주었다, 하사했다는 말이었다는 것처럼 일본서기에는 얼핏 보아도 과장과 조작이 수두룩하다. 다시 말하면 일본서기 저술 시점에 이미 망국이 되고 없는 백제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일부는 백제 사서를 인용해 사실로 적어놓고, 다른 일부는 백제와 왜가 교류했던 사실만 뽑아 입장을 완전히 바꿔 백제가 상국이 아닌 왜가 상국인 것처럼 곡필을 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일본서기 본문을 보면 왜에서 백제의 왕을 마치 황제인 마냥 일개 제후나 신하처럼 다루는 모습이 수도 없이 나오는데, 막상 백제가 멸망하고 나서 왜왕이 그제서야 왕이 아닌 천황(황제)이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왜가 백제와의 외교에서 어느정도 백제의 눈치를 보았다는 대표적인 증거이다.정말로 왜가 백제보다 우위에 있었다면 백제가 멀쩡히 존속했을 때 천황 칭호를 이미 쓰고도 남았을 것이다. 천황가의 신성성을 강조하는 고사기 뿐만 아니라 그 천황가에 대한 맹목적인 숭조와 국수주의로 점철된 일본서기에서도 당시 왜국이 백제와 교류할 당시 황제 칭호를 썼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23] 다만 일본(왜)은 당시 백제과 멀쩡히 존재했던 7세기 초부터 이미 수나라에 보낸 국서에 스스로 해뜨는 곳의 천자라고 칭하는등 바다건너에 있다는 섬나라라는 이점을 이용해서 어느정도 독자적인 천하관을 형성하기는 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