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신(풍수, 사주, 신점)으로 기업, 나라 망친 사례들: 수문제, 한보그룹, 라스푸틴, 명성황후와 고종 / 사주쟁이, 관상가 도움을 받은 사례들: 삼성 이병철, 대만 장제스 등 / 한편, 현대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신비들: 대만 용산사, 중국 베이징 라마불교 사찰 용허궁, 일본 도쿄 치요다구 타이라노 마사카도 무덤에 훼손을 가하려고 해도 어떤 불가사의한 힘 때문에 빈번히 저지된 현상, 박정희 광화문 현판 교체 후 벌어진 액운들, 1917년 파티마의 기적, 프리드리히 대왕이 죽자 시계가 멈춘 현상 (칼 융도 놀라움을 표함), 영화감독 김기영 감독이 화재로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아들에게 쓴 기묘한 유언장, 고우영이 사망한 날에 후배 이정문의 집에 걸어둔 고우영의 액자 그림이 떨어진 현상, 민영환의 자결 1년 후 그의 자결했던 방에 대나무가 돋아난 현상, 아로가 곤 사토시 죽음 몇일 전에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꿈을 꾼 것, 하이킥 배우 서민정의 미래를 모두 정확히 맞춘 무속인 등 - 과학과 신비 사이에 균형을 취해야 - 신비주의를 맹목적으로 믿으면 저능아고, 무조건적으로 비판해도 저능아다 2

 

미신(풍수, 사주, 신점)으로 기업, 나라 망친 사례들: 수문제, 한보그룹, 라스푸틴, 명성황후와 고종 / 사주쟁이, 관상가 도움을 받은 사례들: 삼성 이병철, 대만 장제스 등 / 한편, 현대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신비들: 대만 용산사, 중국 베이징 라마불교 사찰 용허궁, 일본 도쿄 치요다구 타이라노 마사카도 무덤에 훼손을 가하려고 해도 어떤 불가사의한 힘 때문에 빈번히 저지된 현상, 박정희 광화문 현판 교체 후 벌어진 액운들, 1917년 파티마의 기적, 프리드리히 대왕이 죽자 시계가 멈춘 현상 (칼 융도 놀라움을 표함), 영화감독 김기영 감독이 화재로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아들에게 쓴 기묘한 유언장, 고우영이 사망한 날에 후배 이정문의 집에 걸어둔 고우영의 액자 그림이 떨어진 현상, 민영환의 자결 1년 후 그의 자결했던 방에 대나무가 돋아난 현상, 아로가 곤 사토시 죽음 몇일 전에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꿈을 꾼 것, 하이킥 배우 서민정의 미래를 모두 정확히 맞춘 무속인 등 - 과학과 신비 사이에 균형을 취해야 - 신비주의를 맹목적으로 믿으면 저능아고, 무조건적으로 비판해도 저능아다 2

 

 

미신과 비과학(환관, 명리, 무당 등)으로 망조가 든 삼국 역사

국가암흑기의 주역 및 인물구체적인 망조 사례
중국 후한십상시 (환관)영제 시절 10명의 환관이 정치를 좌지우지하며 관직을 돈으로 팔고(매관매직) 정적을 학살함. 이에 분노한 농민들이 **황건적의 난(태평도라는 종교 세력)**을 일으키며 삼국지의 서막을 열고 멸망함.
중국 당나라고력사, 이보국 (환관)당현종 말기 고력사를 시작으로 환관들이 군사권(신책군)까지 장악함. 말기에는 환관들이 황제를 마음대로 세우고 시해하는 지경에 이르러 국력이 완전히 파탄 남.
중국 명나라위충현 (환관)천계제 시절 환관 위충현이 비밀경찰(동창)을 동원해 공포정치를 펼침. 전국에 자신을 기리는 사당을 짓게 하고 국가 재정을 탕진하여, 후금(청)의 침략을 막지 못하고 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됨.
한국 신라혜공왕 시절 미신 팽창신라 말기 정치가 불안해지자 사찰과 미신, 도참사상에 지나치게 의지함. 왕실의 권위가 떨어지고 지방 호족들이 궐기하며 후삼국 분열로 이어짐.
한국 고려신돈 (승려) / 묘청인종 때 승려 묘청이 음양지리설(풍수지리)을 내세워 서경으로 수도를 옮겨야 나라가 흥한다고 주장하며 반란을 일으켜 나라를 뒤흔듦. 공민왕 대에는 승려 신돈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정치가 파탄 남.
한국 조선진령군 (무당)구한말 고종과 명성황후 시절,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의 피신과 귀환을 예언해 신임을 얻은 무당 박씨에게 **'진령군'**이라는 군호까지 내림. 이 무당이 궁궐에 상주하며 인사권을 휘두르고 굿판으로 국가 재정을 탕진해 나라의 망조를 앞당김.
일본 헤이안음양사 (온묘지)후지와라 가문이 권력을 잡던 시절, 천재지변과 전염병이 원령의 저주라 믿어 국가의 대소사를 음양사의 점괘와 점성술에만 의존함. 정작 민생과 군사 정치를 외면하다가 무사 계급(가마쿠라 막부)에게 권력을 빼앗김.

 

여기에는 수문제의 철저한 미신(풍수/학)적 계산이 들어있었습니다.

隨(갈 수) 자에 들어있는 책받침($$)은 '쉬지 않고 시험 삼아 돌아다니다', '달아나다', '움직이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수문제는 **"나라 이름에 쏘다니고 달아나는 글자가 들어가면 왕조가 오래가지 못하고 금방 망할 것"**이라 찝찝해하여, 일부러 책받침 변을 떼어버린 '隋' 자를 새로 만들어 국호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수나라는 2대 만에 멸망하며 중국 역사상 가장 단명한 왕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한보사태

 

라스푸틴

 

명성황후 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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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베이의 용산사는 1738년 처음 건립되었다가 오랜 세월 전쟁과 다양한 천재지변으로 소실된 부분들을 1957년에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탄생되었습니다. 사당의 주된 신인 관세음보살상은 세계 2차 대전이 발발했을 때 폭탄이 투하되었지만 전혀 소실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어서 유명.

 
베이징에 있는 라마불교 사찰 용허궁 이야기
청나라 건륭제 때 지어진 사찰인데 여기에 있는 대형 미륵보살과
이를 파괴하려는 세명의 홍위병 이야기.
첫번째 홍위병이 난간 위에 올라가 도끼로 미륵보살을 지탱하는 쇠사슬을
찍으려 했는데 도끼를 놓쳐 쇠사슬을 찍지 못하고 자기 다리를 절단했습니다.

두번쨰 홍위병도 도끼를 들고 찍으려 했는데 몸의 중심을 못 잡고
난간으로 땅에 떨어져 사망.

세번째 홍위병은 겁에 질려 그 자리에 주저 앉음.

이후 감히 미륵보살을 건드리려는 이가 없었습니다.

미륵보살과 용허궁은 이런 사연으로 무사히 보전됐습니다.

 

 

1. 마사카도 목 무덤 저주 괴담의 구체적 사건과 진실

도쿄 오테마치의 '마사카도 목 무덤(정문총, 将門塚)' 저주 괴담은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일본 정부와 대기업을 벌벌 떨게 한 구체적인 현대사 사건들입니다.

① 1923년 관동대지진과 재무성 관료들의 의문의 죽음

관동대지진으로 목 무덤 주변이 불타자,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은 그 자리에 임시 청사를 지으려고 무덤을 파헤치고 정토를 했습니다. 그런데 공사 직후부터 대장성 장관을 비롯해 관료, 공사 관계자 등 약 2년 동안 14명이 의문의 급사나 사고사를 당했습니다. 재무성 내에 발을 다치는 부상자가 속출하자, 결국 겁을 먹은 정부는 임시 청사를 철거하고 대장성 장관이 직접 제사를 지내며 무덤을 복원했습니다.

② 1940년 번개 낙뢰 사건

1940년, 하필 마사카도 서거 1000주년이 되던 해에 목 무덤 바로 옆 대장성 청사에 번개가 떨어져 대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대장성 관청이 전소되고 주변 건물들이 불타자, 당시 오장관(금융감독 최고책임자)은 마사카도의 원혼 때문이라 확신하고, 사죄하는 의미로 거대한 '고령비(古霊碑)'를 세웠습니다.

③ 1945년 미군 사령부(GHQ)의 크레인 전복 사고

2차 대전 패전 후 도쿄를 점령한 미군은 이곳에 미군 주차장을 만들려고 불도저와 크레인을 동원해 땅을 밀어버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공사 첫날, 불도저가 갑자기 뒤집히며 미군 운전사가 즉사했고, 크레인 차량도 원인 불명으로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미군은 기독교 국가라 미신을 안 믿었지만, 주변 일본인들의 간곡한 만류와 연이은 사고에 결국 공사를 취소하고 땅을 돌려주었습니다.

④ 2020년 말~2021년 전면 리모델링

놀랍게도 최근인 2021년에도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있었습니다. 이때 주변 대기업(미쓰이 물산 등)들은 혹시라도 부정적인 일이 생길까 봐 극도로 조심하며 공사를 진행했고, 마사카도의 영정을 임시로 인근 신사로 '안전하게 이사' 시킨 뒤 공사를 마쳤습니다. 인근 직장인들은 지금도 이 무덤을 등지고 앉지 않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⑤ 그 자리를 파보면 실제로 뭔가가 나올까?

1923년 대장성 임시 청사를 지을 때, 실제로 땅을 심도 깊게 파 내려간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고고학적 조사 결과, 지하에서 석실(돌방) 같은 구조가 발견되었으나 내부는 이미 과거에 도굴당했거나 비어 있었고 마사카도의 유골이나 목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이곳은 기원전이나 5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고대 무덤(고분)의 흔적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0세기의 인물인 마사카도가 죽은 후, 에도 시대 사람들이 전설을 믿고 그 고분 유적을 '마사카도의 목 무덤'이라 부르며 신성시한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다시 파도 유골이 나올 확률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쓴 친필 한글 현관일 때 40년간 한번도 금이 안가고 멀쩡했던 광화문 현판을 2005년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이 박정희가 싫다며 떼어내고 일본에서 구해온 한자현판 사진을 디지털로 복제하고서 '쌍무모본'(글씨의 윤곽을 가는 선으로 본뜬 뒤 남은 공간을 색칠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달았다. 그 이후 여러 차례 현판에 금이 갔는데, 특히 광(光)자에 금이 가서 나라에 액운이 낀 것인지 광화문이 광우병에서부터 현재 촛불 좀비까지 귀신들이 발광하는 장소로 바꾸게 되었다. (2008년에는 숭례문에서 불이 나기도 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쓴 친필 한글 현관일 때 40년간 한번도 금이 안가고 멀쩡했던 광화문 현판을 2005년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이 박정희가 싫다며 떼어내고 일본에서 구해온 한자현판 사진을 디지털로 복제하고서 '쌍무모본'(글씨의 윤곽을 가는 선으로 본뜬 뒤 남은 공간을 색칠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달았다. 그 이후 여러 차례 현판에 금이 갔는데, 특히 광(光)자에 금이 가서 나라에 액운이 낀 것인지 광화문이 광우병에서부터 현재 촛불 좀비까지 귀신들이 발광하는 장소로 바꾸게 되었다. (2008년에는 숭례문에서 불이 나기도 했다.)

 

 

7만 포르투갈의 파티마에 모인 '하늘에서 갈가리 찢기면서 1917년 명의 순례자 ... --> 이걸 집단최면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만은 목격자가 있었는데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1917년 10월 13일, 포르투갈 파티마에 모인 7만여 명의 군중이 목격한 '태양의 기적(Miracle of the Sun)'은 말씀하신 대로 역사상 가장 기묘하고 미스터리한 대규모 목격 사건 중 하나입니다.

당시 현장에는 독실한 신자뿐만 아니라 기적을 비웃으러 왔던 반(反)종교 성향의 언론인, 과학자, 무신론자들도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동시에 태양이 회전하고 색이 변하며 땅으로 떨어지는 듯한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단순한 '집단 최면'이나 '정신 승리'로 치부하기엔 목격자가 너무 많고 방대하죠. 그렇다면 현대 과학과 회의주의 학자들은 이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크게 3가지 관점으로 나뉩니다.


1. 대기과학적 현상 (성층권의 먼지와 얼음 결정)

과학자들이 가장 유력하게 제시하는 가설은 '특이한 대기 현상'입니다.

  • 환일(Sun Dog) 또는 대기 왜곡: 당시 파티마에는 아침부터 장대비가 쏟아져 대기 중에 수증기와 얼음 결정이 가득했습니다. 비가 그치면서 구름 사이로 태양이 드러날 때, 대기 중의 얼음 결정이나 성층권의 미세 먼지(예: 화산재 등)가 렌즈 역할을 하여 태양이 왜곡되어 보이거나 여러 색으로 굴절되어 보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실제 사례: 1925년 벨기에 등 다른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태양이 춤추는 듯한 대기 굴절 현상이 보고된 적이 있습니다.

2. 안구 및 시각 피로 현상 (망막 착시)

인간의 신체적 한계로 설명하는 심리학 및 의학적 관점입니다.

  • 망막의 과부하: 당시 사람들은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장시간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인간의 눈은 태양을 단 몇 초만 바라보아도 망막의 시세포가 일시적으로 손상되거나 마비됩니다.

  • 사후 잔상 효과: 빛을 지속적으로 보면 눈앞에 보라색, 노란색 등의 '잔상'이 남고, 초점을 맞추기 어려워 태양이 움직이거나 춤추는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7만 명이 동시에 태양을 정면으로 장시간 응시했다는 행위 자체가 착시를 유발하는 완벽한 조건이었다는 해석입니다.

3. 집단 대중 심리 (사회적 전염)

단순한 '최면'이라기보다는, 극도의 기대감이 만들어낸 '지각의 전염(Contagion of Perception)'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 기대의 시각화: 사람들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10월 13일에 엄청난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극도로 긴장하고 기대한 상태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 대기 현상이나 착시로 인해 "태양을 봐! 움직인다!"라고 소리치자, 주변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동조되어 평범한 대기 변화를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장 연구에 따르면 7만 명 모두가 '똑같은' 대형을 본 것은 아니며, 누군가는 색만 보았고 누군가는 움직임을 보았다고 증언이 조금씩 갈립니다.


🧐 그럼에도 남는 미스터리

위의 과학적 설명들이 제법 그럴듯하지만,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1. 마른 옷과 땅: 기적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장대비가 내려 군중의 옷과 땅이 진흙탕처럼 축축하게 젖어 있었는데, 태양의 기적이 일어난 단 10분 만에 땅과 옷이 완전히 말라 버렸습니다. 대기 현상이나 눈의 착시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입니다.

  2. 반대파들의 증언: 종교를 사기라고 비판하기 위해 취재를 왔던 일간지 《오 세클루(O Século)》의 편집장 아벨리노 드 알메이다 같은 이들도 똑같이 현상을 목격하고 기사를 썼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 사건은 "특이한 대기 현상이 마침 예언된 날짜와 시간에 기막히게 맞아떨어졌고, 군중의 심리가 이를 기적으로 완성했다"는 과학적 분석과, "인간의 과학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개입이었다"는 신앙적 해석이 오늘날까지 팽팽하게 대립하는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 에디슨 사후에 시계가 멈추었다는 이야기는 사실?

두 인물의 사후에 시계가 멈추었다는 이야기는 모두 유명한 역사적 일화입니다.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하나는 '인위적으로 멈춘 것'에 가깝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기묘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각각의 진실이 무엇인지 나누어 설명해 드릴게요.


1. 토마스 에디슨 (Thomas Edison) — 진실: 인위적인 기념

1931년 10월 18일, 발명왕 에디슨이 사망한 직후 그의 대저택 서재에 있던 거대한 시계가 에디슨의 사망 시간(오전 3시 24분) 직후인 3시 27분에 멈춰 섰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습니다.

  • 실제 내막: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저절로 멈춘 것이 아니라, 에디슨을 기리기 위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시계를 멈춰 세운 것입니다.

  • 누가 멈추었나?: 에디슨의 주치의였던 휴버트 하워(Hubert Howe) 박사, 혹은 그의 아내인 미나 에디슨이 에디슨이 숨을 거둔 직후 그 시간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태엽 시계의 작동을 중단시켰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현재 에디슨 박물관(글렌몬트 저택)에 소장된 이 시계는 지금도 에디슨이 세상을 떠난 그 시간에 맞춰져 있습니다.


2. 프리드리히 대왕 (Friedrich der Große) — 진실: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1786년 8월 17일 새벽, 프로이센의 전성기를 이끈 프리드리히 대왕이 포츠담의 산수시 궁전에서 서거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침실에 있던 프랑스제 괘종시계가 왕이 숨을 거둔 정확한 시간인 새벽 2시 20분에 멈추었다는 일화입니다.

  • 실제 내막: 에디슨의 경우와 달리, 이 시계는 아무도 손대지 않았는데 저절로 멈춘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우연인가, 기적인가?: 회의주의자들은 "시계 태엽이 마침 기가 막힌 타이밍에 다 풀려서 멈춘 우연"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당시 궁전의 하인들과 주치의는 왕의 임종 순간에 시계 태엽이 멈추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고 증언하여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조카이자 후계자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이 현상을 신비롭게 여겨, 그 시계를 다시는 가동하지 말고 그 시간에 고정해 두라고 명령했습니다.


💡 왜 이런 이야기가 유독 많을까?

과거 서양(특히 18~19세기)에는 "사람이 죽으면 집안의 시계를 멈추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풍습이 있었습니다.

  1. 실용적 이유: 사망 진단서에 기록할 정확한 임종 시간을 박제해 두기 위해서였습니다.

  2. 미신적 이유: 시계를 멈추지 않으면 죽은 사람의 영혼이 시계 속에 갇히거나, 집에 있는 다른 살아있는 사람의 시간(생명)까지 앗아간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동요 <할아버지의 낡은 시계 (My Grandfather's Clock)>의 가사("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시계가 멈추었네")도 바로 이 오랜 전통과 미신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에디슨은 이 전통에 따라 주변 사람이 시계를 멈춘 것이고, 프리드리히 대왕은 실제로 기묘한 타이밍에 시계가 멈춘 미스터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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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mu.wiki/w/%EB%AF%BC%EC%98%81%ED%99%98
민영화의 자결 1년 후인 1906년, 그의 자택, 자결했던 방의 마룻바닥에서 대나무가 돋아났다. 실내에서 대나무가 자라는 것이 무척 드문 일이라 사람들은 이를 그의 피가 대나무가 된 혈죽(血竹)이라고 일컬었는데, 일제는 이것을 조작으로 의심하고 조사 후 뽑아버렸으나 그의 부인이 뽑힌 혈죽을 수습해서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흠좀무한 건 대나무 잎의 개수가 45개로 순국 당시의 나이와 정확히 일치했다는 점이다. 이 이야기는 KBS 스펀지 209회에서도 소개되었다.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48화 방송분에도 등장했다.
 

 

 

 

제시해주신 이야기는 "도로시 이디(Dorothy Eady)라는 인물이 존재했고, 그녀가 실제로 이런 주장을 하며 이집트 고고학계에 기여했다"는 점에서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로 '전생에 이집트 여사제였고 파라오와 교감했다'는 초자연적 현상 자체는 과학적·역사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미스터리입니다.

이 흥미로운 인물과 이야기에 대해 사실과 허구를 명확히 정리해 드릴게요.


1. 어디까지가 진짜 사실인가요? (Fact)

  • 실존 인물: 도로시 이디(1904~1981)는 실존 인물이 맞습니다. 3세 때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의사로부터 사망 판정을 받았다가 기적적으로 깨어난 후, 이집트 유물 사진을 보며 "이곳이 내 고향"이라고 눈물을 흘리는 등 이상 증세를 보인 것도 유명한 일화입니다.

  • 아비도스 이주와 '옴 세티': 그녀는 성인이 된 후 실제로 이집트로 이주했고, 세티 1세의 신전이 있는 고대 도시 '아비도스'에 평생 머물렀습니다. 아들이 태어나자 이집트 관습에 따라 '세티의 어머니'라는 뜻의 '옴 세티(Omm Sety)'로 이름을 바꾸고 현지인들과 동화되어 살았습니다.

  • 뛰어난 고고학적 기여: 그녀는 단순한 돌팔이나 사기꾼이 아니었습니다. 이집트 고고학청(Department of Antiquities)의 최초 여성 고용인으로서 탁월한 고대 이집트어(상형문자) 번역 능력을 보여주었고, 유물 복원과 기록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실제로 고고학자들은 그녀의 해박한 지식과 직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 책의 존재: 말씀하신 조나단 콧(Jonathan Cott)이 쓴 책 『The Search for Omm Sety』(1987) 역시 실제로 출간된 유명한 평전입니다.


2. 이야기 중 바로잡아야 할 부분 (Correction)

  • 세티 1세의 빙의?: 이야기 중 "세티 1세가 그녀에게 빙의되었다"기보다는, 그녀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전생에 아비도스 신전의 여사제(Bentreshyt)였고, 세티 1세와 비밀 연인 관계였다"고 합니다. 즉, 파라오가 몸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전생의 기억으로 파라오의 영혼과 소통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네페르티티 무덤의 행방: 옴 세티는 네페르티티의 무덤이 왕가의 계곡(KV62, 투탕카멘의 무덤 근처)에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고, 세티 1세가 "그곳은 찾기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최근까지도 투탕카멘 무덤 뒤편의 비밀 공간에 네페르티티가 묻혀있을 것이라는 가설(레이더 탐사 등)이 제기되어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다만, 2026년 현재까지도 네페르티티의 무덤이 완벽하게 발굴되거나 확정되지는 않았습니다.


3. 학계의 시선: 천재 학자 vs 환상가

당대와 후대의 고고학자들은 그녀를 매우 입체적인 인물로 평가합니다.

"그녀의 환상이나 전생 주장을 믿지는 않지만, 고대 이집트 신전의 구조나 유물의 위치를 귀신같이 맞히는 그녀의 '직관'과 '해박한 지식'만큼은 의심할 여지 없이 대단했다." — 동료 고고학자들의 대체적인 평가

그녀가 신전의 정원 위치나 지하 통로를 정확히 짚어낸 것에 대해, 회의론자들은 그녀가 방대한 문헌 연구와 뛰어난 관찰력을 바탕으로 추론한 것을 무의식적으로 '전생의 기억'이라 믿었을 가능성(기억착오, Cryptomnesia)을 제기합니다.

요약하자면, 도로시 이디라는 여성이 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놀라운 지식과 직관을 가졌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정말 '파라오 영혼과의 교감' 때문이었는지는 영원한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이정문은 오래 전, 선배 고우영이 그려준 관우 그림을 액자에 담아 내 화실 벽에 걸어뒀는데 고우영이 사망한 날에 그 액자가 갑자기 떨어졌다. 30년이 넘도록 한번도 떨어지지 않던 그 액자가 떨어진 날이 공교롭게도 그 날에 떨어져서 '어? 이상하다... 혹시 선배에게 뭔 일이 있나?' 불안해했고 그리고 얼마 안가 사망한 소식을 듣고 그 액자를 안으며 "선배님 가시는 걸 알린 건가요!"라고 엉엉 울었다고 회고했다.

 

곤 사토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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