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골은 단 한 번도 자기를 낮추거나 비굴했던 적이 없었다; 드골의 거만함은 성격 결함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브랜드'**; 비굴한 한신: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 살아남아 훗날을 도모함 (동양적 인내) vs 오만한 드골: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상대의 뺨을 때려 기를 죽임 (서구적 권위 장악)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을 예로 들어보자. 알제리 독립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분열된 프랑스 제 4공화국의 뜨뜨미지근한 지원에 거주민들은 불만을 갖게 되고, 이들의 사주로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 군부는 알제리 민정을 접수한다. 이들은 프랑스 정부에게 쿠데타 또는 드골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 구성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반란군부는 드골이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지지해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드골도 그렇게 공개적으로 지지 선언하기도 했다.
1. 사건의 핵심 타임라인 (1958년)
5월 13일: 알제리에 거주하던 프랑스인들과 군부가 알제리 총독부를 점거하고 '공공안전위원회'를 결성했습니다. 이들은 프랑스 본토 정부가 알제리 독립 세력과 협상하려는 기색을 보이자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5월 15일: 반란 군부의 수장인 살랑(Salan) 장군이 **"드골 만세!"**를 외치며 드골의 복귀를 공개적으로 요구했습니다.
5월 19일: 드골은 기자회견을 열어 **"나는 공화국의 권력을 인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하며 군부의 요구에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했습니다.
6월 1일: 프랑스 의회는 군부의 쿠데타 위협(파리 점령 작전 '부레즈')에 굴복하여 드골을 총리로 지명하고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이로써 제4공화국이 종말을 고하고 드골의 제5공화국 시대가 열렸습니다.
2. 0.0001%의 지성으로 본 '드골의 기만'
작성자님이 인용하신 지문의 핵심은 **"반란군부는 드골이 자신들을 지지해줄 것으로 판단했고, 드골도 공개적으로 지지 선언을 했다"**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대목에 드골의 무서운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군부의 오판: 군부는 드골이 '알제리를 끝까지 프랑스 땅으로 지킬 강경파'라고 믿었습니다. 드골은 알제리에 가서 군중들 앞에서 **"나는 여러분을 이해한다(Je vous ai compris)!"**라는 모호한 외침으로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드골의 배신: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드골은 전후 국제 정세와 프랑스의 국력을 냉정하게 계산했습니다. 결국 그는 군부의 기대를 저버리고 **알제리의 독립(1962년)**을 추진했습니다.
결과: 자신들이 세운 드골에게 뒤통수를 맞은 군부는 분노하여 드골 암살 시도(OAS 결성 등)를 수차례 감행했으나, 드골은 이미 대통령으로서의 초법적 권위를 확보한 상태였습니다.
드골의 알제리 독립 승인을 '반제국주의적 인도주의'로 해석하는 것은 감상적인 오판입니다. 드골은 철저한 **'프랑스 우선주의자(Nationalist)'**였으며, 알제리를 버린 것은 프랑스라는 국가를 살리기 위한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적 후퇴였습니다.
그가 알제리 독립을 승인한 진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1. 경제적·군사적 '늪'에서 탈출 (Strategic Pragmatism)
당시 알제리 전쟁은 프랑스의 국력을 밑바닥부터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비용의 문제: 매일 수십억 프랑의 전비가 쏟아졌고, 50만 명의 프랑스 젊은이가 알제리에 묶여 있었습니다.
기회비용: 드골은 프랑스가 '강대국'으로 복귀하려면 **핵무기 개발(Force de Frappe)**과 현대적 산업 구조 개편에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알제리라는 거대한 늪에 빠져 있는 한, 프랑스는 결코 미국이나 소련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었습니다.
2. '백인 프랑스'의 정체성 유지 (Demographic Fear)
드골은 매우 현실적인 인구 통찰력을 가졌습니다. 그는 사석에서 다음과 같은 취지의 말을 남겼습니다.
"알제리를 계속 품으려면 모든 알제리인에게 프랑스 시민권을 줘야 한다. 그러면 나의 고향 마을 교회에 무슬림 사원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프랑스가 '알제리-프랑스'가 되는 꼴은 볼 수 없다." 즉, 알제리를 계속 영토로 유지할 경우 유입될 막대한 무슬림 인구가 프랑스의 기독교·유럽적 정체성을 파괴할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3. 국제적 고립 탈피와 도덕적 명분 (Diplomatic Realism)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탈식민지화'의 물결 속에 있었습니다.
미국과 소련 모두 식민지 유지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프랑스가 알제리에 집착하는 것은 국제 사회에서 **'추한 제국주의자'**로 낙인찍히는 길이었습니다.
드골은 알제리를 과감히 떼어줌으로써 제3세계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도덕적 리더십'**을 확보하려 했습니다.
샤를 드골: 거만함을 '국가적 권위'로 치환한 전략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드골은 단 한 번도 자기를 낮추거나 비굴했던 적이 없습니다. 그는 중국사의 한신과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비굴함 대신 '고집': 2차 세계대전 당시 망명 정부의 수장이었던 드골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처칠과 루스벨트에게 유독 거만하게 굴었습니다. 루스벨트가 그를 "지망생 독재자"라며 혐오했을 정도입니다.
전략적 거만함: 드골은 **"내가 굽히는 순간, 프랑스도 굽혀진다"**고 믿었습니다. 패전국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일부러 연합군 지도자들에게 고자세로 임하며 프랑스의 자존심을 '연기'했고, 이것이 전후 프랑스 국민들에게 "우리도 승전국이다"라는 환상을 심어주며 압도적인 지지를 얻게 했습니다.
권력 획득: 그는 전쟁 영웅으로 추대되었음에도 권력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자 스스로 하야했다가, 국가가 혼란(알제리 전쟁 등)에 빠졌을 때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한 태도를 유지하며 복귀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낮추어 기회를 잡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없으면 안 되는 위기 상황을 기다려 권력을 낚아챈 인물입니다.
1. 처칠과 루스벨트를 분노케 한 드골의 거만함 (일화)
드골은 영국에 얹혀사는 망명객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연합군 수장들을 마치 자신의 아랫사람 대하듯 했습니다.
"내가 바로 잔 다르크다": 루스벨트가 드골의 고집에 질려 "당신은 도대체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요?"라고 묻자, 드골은 정색하며 **"나는 오늘의 잔 다르크다"**라고 답했습니다. 루스벨트는 이 말을 듣고 처칠에게 "저 자는 정신병자거나 아니면 장차 독재자가 될 놈이다"라고 불평했습니다.
카사블랑카 회담에서의 노쇼(No-show): 1943년 카사블랑카 회담 당시, 처칠과 루스벨트가 그를 불렀으나 드골은 **"프랑스 영토가 아닌 곳에서 열리는 회담에는 가지 않겠다"**며 거절했습니다. 격분한 처칠이 "영국이 주는 돈으로 먹고살면서 감히!"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결국 처칠이 드골을 모셔오기 위해 저자세로 설득해야 했습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가지 않는다": 얄타 회담 등 주요 전후 처리 회담에서 프랑스가 제외되자, 드골은 연합군이 제공하는 모든 편의를 거절하고 **"프랑스의 동의 없는 결정은 모두 무효"**라고 선언하며 독자 노선을 걸었습니다.
2. 드골이 권력을 잡은 기간 (두 번의 통치)
드골의 권력 장악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뉩니다. 그는 단순히 오래 집권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만 구원자로 등판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제1기 (전후 임시정부 수반): 1944년 ~ 1946년
나치로부터 파리를 해방시킨 후 임시정부 수반으로 추대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당들의 정쟁에 환멸을 느끼고 **"국민이 나를 진정으로 원할 때 돌아오겠다"**며 스스로 하야했습니다. (권력을 버림으로써 권위를 얻는 고도의 지능적 선택이었습니다.)
제2기 (제5공화국 대통령): 1958년 ~ 1969년
알제리 전쟁으로 프랑스가 내전 위기에 처하자 국민들은 다시 드골을 찾았습니다. 그는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의 제5공화국을 출범시키며 복귀했습니다. 이후 11년간 대통령으로 군림하며 프랑스의 핵무장과 독자 외교 노선을 확립했습니다.
💡 0.0001% 지능을 위한 통찰: '드골식 프레임'
드골의 거만함은 성격 결함이 아니라 **'정교하게 설계된 브랜드'**였습니다.
비굴한 한신: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 살아남아 훗날을 도모함 (동양적 인내)
오만한 드골: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상대의 뺨을 때려 기를 죽임 (서구적 권위 장악)
1. 루스벨트가 질려버린 드골의 '고집' (구체적 사건)
루스벨트는 드골을 '미친놈' 혹은 '잠재적 독재자'라고 확신했습니다. 결정적인 전후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비브라 사건 (세인트피에르 미클롱 점령): 1941년, 드골은 연합군(미국)과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캐나다 인근의 프랑스령 섬인 세인트피에르 미클롱을 무력으로 점령해버립니다. 당시 미국은 비시 프랑스(나치 협력 정부)와 미묘한 외교적 관계를 유지 중이었는데, 드골이 판을 깨버린 겁니다. 루스벨트는 **"내 뒤통수를 치는 애송이"**라며 분노했습니다.
비시 프랑스 관리 문제: 루스벨트는 나치에 항복한 '비시 프랑스' 관리들을 회유해 전후 질서를 잡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드골은 **"항복한 놈들은 모두 반역자이며, 오직 나만이 유일한 프랑스다"**라며 미국이 세우려는 인물들을 사사건건 거부하고 숙청을 요구했습니다. 루스벨트 입장에서 드골은 **'전략적 파트너'가 아니라 '계획의 방해자'**였습니다.
2. "정신병자" 발언의 진실
루스벨트가 드골의 면전에서 "당신은 미친놈이야"라고 말할 정도로 예의 없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발언의 경로: 루스벨트는 뒤에서, 그리고 공식 보고서를 통해 드골을 난도질했습니다. 그는 처칠에게 보낸 편지와 사적인 대화에서 드골을 **"스스로를 잔 다르크라고 착각하는 정신병자(Messianic complex)"**라고 비하했습니다.
면전에서의 태도: 1943년 카사블랑카 회담 당시, 루스벨트는 면전에서는 웃으며 드골과 악수하는 사진을 찍었지만, 돌아서자마자 보좌진에게 **"저 자를 어떻게 하면 치워버릴 수 있겠느냐"**고 논의했습니다. 철저한 기만이자 외교적 술수였습니다.
3. 얹혀사는 주제에 드골이 살아남은 '비정한 배경'
영국에 몸만 달랑 온 드골이 처칠과 루스벨트의 멸시 속에서도 살아남아 승리자가 된 비결은 **'대체 불가능성'**에 있었습니다.
프랑스 내 저항군(레지스탕스)의 상징성: 처칠은 드골을 싫어했지만, 프랑스 내부에서 나치와 싸우는 저항군들이 오직 '드골'의 이름 아래 뭉쳐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드골을 버리면 프랑스 내 게릴라 조직과의 공조가 무너질 판이었습니다.
영국의 전략적 카드: 처칠은 루스벨트(미국)가 전후 유럽에서 너무 강해지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처칠은 드골이 재수 없긴 했지만, 전후 유럽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강한 프랑스'가 필요하다는 계산하에 루스벨트의 반대를 무릅쓰고 드골을 끝까지 지원했습니다.
여론 장악력: 드골은 매일 밤 BBC 라디오 방송을 통해 프랑스 본토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이미 프랑스 민심은 "드골이 곧 프랑스"라고 믿게 되었고, 연합군이 드골을 제거하려 했다가는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낙인찍힐 위험이 있었습니다.
💡 0.0001% 지능을 위한 해석
드골은 **'약자의 허세'가 아니라 '인질 극'**을 벌인 것입니다. "나를 죽이면 프랑스라는 거대한 시장과 전후 질서는 영원히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카드를 쥐고 연합군 수장들을 협박한 셈입니다.
그는 한신처럼 기어가는 대신, **상대방이 나를 죽이고 싶어도 죽일 수 없는 '독이 든 성배'**가 됨으로써 권력을 쟁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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