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회) 잔인하고 처절했던 나의 세계여행 3년 2개월 78개국 창업 방랑기!! 인생을 바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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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좋아하세요?
-아시아의상인
여행은 목적이 있어도 목적이 없어도 된다. 여행은 여행이니까. 하지만 나처럼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여행을 해야 할까?
이탈리아로 여행을 간 괴테처럼, 동방견문록을 남긴 마르코 폴로처럼, 열하일기를 남기고 실학을 강조했던 박지원처럼, 프랑스 남부의 아를로 가서 수백의 작품을 남긴 빈센트 반 고흐처럼, 음악 여행을 떠난 모차르트처럼, 성냥팔이 소녀를 쓴 지독한 여행광 안데르센처럼, 비글호를 타고 수집한 식물표본으로 종의 기원을 발표한 찰스 다인처럼, 모터사이클을 타고 남미 일주를 하며 마주한 사회 불평등에 분노한 체 게바라처럼, 도보여행을 즐기는 불확정성의 원리 하이젠베르크처럼, 인도 여행으로 아시아 문화에 영향을 받은 스티브 잡스처럼, 투자계의 인디아나 존스라 불리는 짐 로저스처럼, 나도 인생을 바꾸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나의 세계 일주 3년 2개월은 이렇게 끝을 낸다. 오디세우스의 여정과도 같았던 긴 여행은 나에게 무엇을 남겨 주었을까? 그리고 나는 여행지에 무엇을 남겨 놓았을까? 여전히 여행 중인 것 같은 내 삶은 언제쯤 안착될까? 언제까지 이름 모를 행성에 불시착해버린 지구인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달콤했던 기억의 끈을 매듭지을 때가 되었다.
3년 2개월 78개국? 집어치우라고 해!! 몇 년을 하고 몇 개국을 가고 얼마를 썼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보고 느꼈는지가 중요한 것!! 내가 찍힌 사진보다 내가 찍은 사진, 내가 본 세상을 보여줄게!!
-아시아의상인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테니 얼마를 썼고 어디를 갔는지는 구체적으로 적지 않을 것이다. 단 한 장의 사진과 그때의 단편적인 감정으로 나의 여행, 나의 불꽃, 나의 사랑을 적는다.
((01중국)) 중국은 내게 많은 즐거움을 주었다. 중국에는 유명한 도매시장 3곳이 있다. 생활용품은 이우, 패션 제품은 광주, 전자제품은 선전이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의 성지인 선전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우에 갔을 때 내 마음을 훔친 물건이 있었다. 결국 3,000개나 한국으로 수입을 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완판!!의 기적을 일궈냈던 돈의 짠맛을 느끼게 해준 곳이다.
((02대만)) 한때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이 불렸던 대만은 중국과 일본의 문화과 섞여 있다. 마치 일본에 중국인이 살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대만 친구와 스린 야시장에서 노상을 했는데 지금도 오징어 구이 냄새가 코끝에 아른거린다. 넘쳐나는 인파를 헤쳐야 하는 것은 옵션이 아닌 필수다. 식도락의 천국 대만에서의 여행은 늘 먹거리를 입에 달고 다녔다.
((03일본)) 일본은 매력적인 곳이다. "제펜"이라는 단어만으로도 품질을 보증한다. 하지만 나처럼 사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예전만 못하다. 여전히 일본에서 제품을 들여와 판매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폐광처럼 진입장벽은 높지 않으나 더 이상 캐도 캐도 나오지 않는 힘만 빠지는 곳이다. 잘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예전만 못하다. 오사카에서 영어로 무가지 잡지로 광고 사업을 하는 외국인을 만났었다. 일본은 외국인 여행자가 많기에 가능한 사업이다. 현재 그는 외국인을 위한 일본 사업에 관한 비즈니스 커뮤니티도 운영 중이다.
((04홍콩)) 세계의 브랜드는 홍콩을 사랑한다. 다양한 국적의 인종이 집약된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신제품의 반응을 살피기에는 홍콩만 한 곳도 없다. 그렇다 보니 홍콩은 광고판 자체다. 아슬하게 도로 위를 넘어온 간판, 차에 전면 도배된 광고, 휘황찬란한 파사드!! 인간의 진화가 그레이 에일리언이라면 도시의 진화는 홍콩일지도 모른다. 새벽이 되면 전기 타들어가는 소리가 도시에 깔린다. 모두가 잠들어도 광고판은 24시간 잠을 자지 않는다.
((05마카오)) 카지노에 의한 카지노를 위한 나라 마카오는 머니 게임의 끝판왕이다. 카지노에 가면 돈을 먹는 기계들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고 세계적인 공연들이 곳곳에서 펼쳐진다. 아이들을 위한 유락시설은 시간을 잡아먹고 세계적인 쇼핑 브랜드는 엄마들의 지갑을 잡아먹는다. 5성급 호텔에서의 융슝한 대접은 돈의 향연을 맛보게 한다. 더 하우스 오브 댄싱 워터쇼는 전율을 느끼게 해주었다. 세계적인 공연은 마카오에 갈 이유를 하나 더 만들어 준다.
((06필리핀)) 필리핀은 밤 문화로 유명하다. 내게도 필리핀에서 밤 문화는 특별했다. 마닐라에는 대표적 도매시장 두 곳이 있다. 디비소리아와 바클라란이다. 위험한 곳은 가지 말아야 하거든 삐딱한 심보는 나를 그곳으로 향하게 했다. 온갖 제품이 섞여 있는 디비소리아에 밤이 찾아오면 커다란 트럭들이 몰려든다. 마치 어미 새 마냥 양 날개를 열고 있으면 웃통을 벗은 사내들이 농산물을 내린다. 뜨거운 태양은 지면을 넘었지만 여전히 뜨거운 뚝배기 그릇처럼 달궈져 있다. 아랑곳하지 않고 웃통을 벗은 사내들은 가장의 무게를 어깨에 들춰 메고 있다.
((07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도매시장 타나아방을 구경하고 거리로 나왔다. 걷는 걸 좋아해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자전거를 거꾸로 세워두고 페달을 돌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서 보니 원석을 갈아 보석으로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그 행렬을 따라 걷다 보니 아주 커다란 보석 시장이 나왔다. 보석은 크기 품질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작은 원석을 사서 펜던트를 만들고 크롬도금을 해도 10,000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 가격이 놀라운 곳이다. 78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가장 큰 보석시장이었다.
((08싱가포르)) 싱가포르는 작은 어촌마을에서 세계적인 나라가 되었다. 정부 주도하의 개방경제와 엘리트 관료가 주도하는 고도의 행정이 지금의 싱가포르를 만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잘하는 것이 있는데 MICE 산업이다. 이런한 노력에 북미 정상회담장이 되기도 했다. 지하철을 타고 종점까지 가는데 노인들과 나 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도 나처럼 경마장에 가는 것일까? 그들의 뒤를 따라가다 보니 클란지 경마장이 나왔다. 90%는 노인들이다. 이들은 비둘기 모이 대신 말밥을 주고 계신다. 정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 것일까? 트랙을 달리는 경주마들의 근육은 찢어질 듯이 탄탄하다. 동물원에도 보던 그런 말들과는 차원이 다른 말들이다.
((09말레이시아))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나 브루나이를 제외하면 말레이시아는 동남아 국가에서 도시화가 빠른 나라다. 이슬람 문화권이지만 개방적이고 현대적인 소비문화로 중동의 관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할랄 시장을 겨냥한 다국적기업들이 말레이시아로 진출하기도 한다. 말레이시아에도 도매시장이 잘 형성되어 있다. 쿠알라룸푸르의 도매시장과 클랑의 도매시장에 가보았는데 이슬람 디자인과 적절히 섞어 현대적인 디자인 제품도 제법 보였다. 하마터면 나도 살뻔했다. 시장은 늘 나를 유혹한다.
((10베트남)) 베트남은 내게 있어 애증의 나라다. 컵빙수 사업을 목전에 두고 접어야 했기 때문이다. 도로 위를 가득 메운 오토바이 행렬은 그야말로 베트남의 대표적 문화다. 비 오는 날 건든 개미집 같은 풍경의 베트남을 볼 때면 내 심장도 덩달아 뛴다. 베트남은 하노이부터 호찌민까지 곳곳의 도시를 여행했다. 어느 한 곳 매력적이지 않았던 곳이 없다. 도매시장을 돌며 길거리에서 먹던 쌀국수는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11캄보디아)) 캄보디아의 문화유산 앙코르와트를 보기 위해 여행자들은 시엠레아프로 모여든다. 모두가 코끼리 바지를 사 입고 위대하고 감탄스러운 유적지를 여행한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그 이면에는 짙은 어둠이 있다. NGO 관련 단체가 약 5,000개가 캄보디아에 있을 정도로 캄보디아의 경제는 그렇게 살만하지 못한 편이다. 프놈펜의 도매시장에 가 보면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프놈펜에는 다양한 중고제품 시장이 존재한다. 소비성이 높은 상당수의 제품들을 중고로 팔고 중고로 사서 사용한다. 의류부터 오토바이, 자전거, 자동차 등등의 중고제품 시장은 곳곳에 존재한다.
((12태국))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 있는 태국은 세계적인 관광지다. 태국의 제품은 품질과 디자인이 뛰어나다. 함께 여행했던 베트남 친구도 태국의 의류와 파우치를 한 보따리 사서 베트남에 팔기도 했다. 그 친구에게 방콕의 빠뚜남, 삼팽시장, 보배시장 등등을 안내하며 해외에서 제품을 사입하고 물류비를 확인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아름다운 자연과 바다 그리고 향락이 제공되는 밤 문화는 태국으로 여행자를 부른다. 파타야에서는 여행자들의 꽁무니를 쫓으며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아슬하게 걸쳐 입은 여성들은 여행자를 유혹하고 여행자들은 제품을 고르듯 성을 산다. 달갑지 않은 모습이다.
((13라오스)) 라오스를 두고 기회의 땅이라는 수식어는 후한 칭찬으로 보인다. 라오스에 도착하고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일장기를 단 버스였다. 일장기는 라오스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공공시설 같은 곳에도 간혹 보인다. 일본 제품이어서 붙어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정부개발원조 사업을 통해 일본이 지원한 것이다. 이렇게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자체를 브랜딩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해당국의 일본 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크지 않다. 비엔티엔의 어느 건물 지하에 갔을 때에 노인들에게 의료 기기를 다단계처럼 팔고 있는 한국 기업의 모습을 보았을 때 혀끝을 차고 말았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하지도 않는 제품을 파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보는 내가 부끄러웠다.
((14인도)) 지옥의 맛을 선사하는 인도는 다시 가고 싶지 않지만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은 24시간 클랙슨을 울려 된다.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새 동행이 따라붙는다. 본인의 즐거움은 여행자를 돕는 것이라며 이상한 곳으로 안내를 하기도 한다. 뒤돌아서면 같은 방법의 사기를 치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빈혈이 올 것 같은 인도 여행은 다시 가고 싶지 않다. 찬란한 문화 유적의 아름다움을 보고 나면 다시 오게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어찌나 해맑은지 나까지도 맑게 만들어 준다.
((15아랍에미리트)) 메마른 사막의 나라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 도착했다. 뜨거운 뚜껑을 열고 냄비 속에 몸을 담그는 느낌이다. 아!! 덥다. 밤이 되어도 열기는 식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백화점 내부에는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하다. 두바이를 움직이는 건 석유를 판 돈이고 돈을 좇는 건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거리의 상점에도 병원에도 어디에도 외국인 노동자의 모습은 쉽게 눈에 띈다. 두바이에 있는 인구의 81%가 외국인 노동자라고 한다. 거대한 모스크도 구경하고 사막투어도 했지만 두바이는 살만한 곳이 못 된다.
((16요르단)) 요르단은 특이하게도 한국의 중고차가 많다. 중고차 시장의 60%나 된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간혹 한글이 적힌 차들이 보이기도 한다. 수도 암만은 은은한 황토색이다. 다운타운에 알 후세인 모스크가 있는데 그 인근에는 도매시장들이 있다. 골목을 헤매다 어느 노인이 불러 구두 상점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약 60년 동안 구두를 만드는 장인들이다. 차를 한잔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구두를 만들어 9명의 자녀를 키웠다고 한다. 이들이 만드는 구두는 2만 원 전후로 소매상점으로 실려나간다. 스위스에서는 헨드메이드 구두가 약 20만 원 전후에 팔리는 것을 보았을 때 요르단의 구두 장인들이 다시 떠올랐다. 이처럼 나라마다 가치에 대한 존중은 다르다.
((17이스라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 문화의 도시라면 텔아비브는 스타트업의 도시다. 글로벌 노마드와 힙스터들은 텔아비브로 몰려든다. 하루는 구글 캠퍼스에서 스타트업 마케팅 교육을 들었다. 힙스터 느낌이 물씬 나는 할머니가 내게 다가온다. 나는 눈을 피했지만 말을 걸어온다. 결국 20분간 영어 듣기 평가로 영혼은 광탈당했지만 힙한 IT 인재들과의 교류는 내게 신선한 경험이었다. 강의 방식도 신선했다. 일방적이라기보다 대화가 많았던 강의다.
((18이집트)) 이집트의 비르키쉬 낙타시장에 가면 1,000마리의 낙타가 뛰어다닌다. 가히 환상적이다. 그리고 카이로의 칸엘칼리리 전통시장은 아라비안나이트가 심어준 판타지를 채워준다. 이집트의 찬란했던 고대 문명의 유적들은 거대해서 그 모습을 볼 때면 경이롭다는 생각 마저든다. 다합의 블루홀은 블랙홀이다. 단기 여행자를 장기 여행자로 만들어버린다. 이렇듯 이집트는 매력이 넘친다. 칸엘칼릴리 시장 인근에는 거대한 도매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시장 사람들은 나를 어찌나 반기던지 그들과 찍은 사진은 수십 장이 된다.
((19그리스)) 신들의 도시에도 어둠이 내렸다. 해양 국가인 그리스는 해운업과 관광업이 외화 획득의 주요 원천이다. 지금은 빚에 허덕이다 보니 빛을 보지 못하고 있지만 한때는 빛나던 도시였다. 아크로폴리스에 올라보니 아네테에는 높은 건물이 별로 없다. 유적지를 볼 수 있게 건물에 높이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도시는 이러한 배려에서 출발했나 보다. 빌딩 숲을 이루는 서울이 아름답지 않은 이유는 배려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어찌 되었든 아테네의 건물들도 하얀색이 많지만 하얀 마을은 뭐니 뭐니 해도 산토리니다. 신기하게 산토리니의 바람은 바다 냄새가 나지 않는다.
((20터키)) 터키는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의 종착지였다.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데 그랜드 바자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오사카의 쿠로몬시장이 현대화로 살아남았다면 그랜드 바자르는 전통의 모습을 유지하며 살아남았다. 덕분에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라는 자부심이 관광산업을 활성화시켰다. 찬란했던 시기를 지나 제조 후진국이었던 터키는 청년 인구를 기반으로 현재는 유럽의 공장으로 불린다. 그랜드 바자르 시장 인근에는 도매시장들이 형성되어 있다. 속옷 가게에 들어가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제품 품질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중국 제품과는 등급이 다르다며 자랑을 하기도 한다.
((21불가리아)) 불가리아가 낙농업이 발달했을 것이라는 유추는 요구르트로 할 수 있다. 실제로도 불가리아 사람들은 요구르트로 다양한 요리를 한다. 현지인 집에 머물 때 아침으로 전통 요리를 해준 적이 있다. 계란을 뜨거운 물에 깨서 반숙으로 만든 뒤 그릇에 담아 요구르트와 섞어 먹는다. 불가리아의 전통 수란 요리 피나규리슈테다. 맛과 식감이 생소 입안에서 반갑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하루는 트램과 버스를 타고 시외로 나갔는데 해바라기 마을을 만났다. 끝없이 펼쳐진 해바라기 밭은 분명 장관이었을 텐데 내가 갔을 때에는 밑동만 남은 시기였다.
((22루마니아)) 우리에게 루마니아는 드라큘라로 유명하다. 붕어 없는 붕어빵처럼 실체 없는 드라큘라 성으로 향했다. 브라쇼브에서 외곽으로 한참을 빠져나가야 한다. 드라큘라 성으로 불리는 브란성에는 제법 여행자의 발길이 닿는다. 잘은 모르겠지만 한국처럼 귀신이 많은 나라도 드물 것이다. 내 다리 내놔 귀신부터, 처녀귀신, 달걀귀신, 총각귀신, 무턱 귀신, 아기장수 귀신, 삼신할미 귀신 등등등 이름도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세계적으로 공포 산업은 거대하다. 좀비 영화도 공포에서 출발한다. 한국의 수많은 귀신들도 언젠가 마블 군단보다 더 많은 캐릭터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 근면 성실의 아이콘 내 다리 내놔 귀신은 한 발로 24시간 뛸 수도 있다.
((23헝가리))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야경은 여행자들에게 정평이 나 있는 곳이다. 도시를 걷다 보니 우연히 독특한 문양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들어가 보니 대표적 전통 재래시장 센트럴 마켓 홀이란다. 시장 안에는 주렁주렁 고추가 매달려 있다. 어느 나라를 가든 대표적 작물이 있다. 헝가리는 유럽의 중요 고추 재배 지역이라고 한다. 많이 보이는 것들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에 많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시장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라고 입에 달고 다닌다. 시장에 가면 그 나라의 생활수준부터 대표적인 상품까지 손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24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는 중부 유럽의 중심 국가로 예술과 학문이 고도로 발달한 나라다. 그래서 오스트리아는 수많은 철학자, 수학자, 작곡가, 화가가 살았었다. 학부시절 내내 나를 괴롭혔던 에르빈 슈뢰딩거 선생도 이곳에 살았다. 쇤부른 궁전은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예술의 진원지답게 최고 수준의 공연도 매일 밤 볼 수 있다. 나와 같은 배낭여행자들은 2시간 대기해서 4 달라 스탠딩 공연을 보기도 하는데 서서 본다고 감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예술에 조금만 더 정보다 많았다면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여행은 더욱 즐거웠을 것이다.
((25슬로바키아)) 슬로바키아는 체코와 분리되면서 반 토막이 났다. 화려한 건물도 없고 체코보다 경제적으로 좋지 못하지만 아름다운 다뉴브강을 품고 있으니 그것으로 됐다. 옛 건물에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의 조용한 나라다. 도심에 있는 스타트업 인큐베이터에 방문해 보았는데 그곳마저도 조용하다. 백화점에 갔는데도 그곳마저도 조용하다. 슬로바키아는 조용한 나라다.
((26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땅을 갖고 있다. 비옥한 흑토와 풍부한 노동력 덕분에 농업강국이기도 하다. 그런데 먹을 것이 많다고 잘 사는 것은 아닌가 보다. 여전히 사회주의 시절의 흔적이 곳곳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푸틴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화장지에 푸틴 얼굴을 인쇄해서 쓰기도 한다. 페체르시카야 수도원의 종탑에 오르면 드네르프강이 한눈에 보인다. 지하철을 타고 LISOVA 역에 가면 커다란 도소매시장이 나온다. 한쪽 구석에서는 아프리카에서 올라온 흑인들이 몰려 있는데 그들은 사진 찍히는 걸 꽤나 싫어한다. 하마터면 그들에게 봉변을 당할 뻔했다.
((27러시아))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는 크렘린궁, 레닌 묘, 제로 포인트, 성 바실리 성당 등등 볼거리가 넘쳐난다. 젊음의 거리 아르바트 쪽으로 옮기면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지 말라는 푸시킨 박물관도 있다. 그런데 내 기억에 각인된 곳은 지하철 역사다. 농담 섞어 이퀄라이징을 하며 들어가야 할 정도로 깊은 곳에 위치해있다. 우크라이나도 꽤나 깊었는데 러시아는 더 깊어 보인다. 놀라운 것은 지하철 역사가 마치 박물관 같다는 것이다. 각각의 역마다 각기 다른 디자인으로 되어 있어 역을 구경하는 재미가 좋았던 곳이다. 알고 보니 지하철역 투어도 있다고 한다. 그럴만하다.
((28핀란드)) 한때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했던 노키아의 몰락 뒤 수많은 신생 스타트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핀란드의 헬싱키에 도착했다. 헬싱키에는 디자인 디스트릭트가 있을 정도로 핀란드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도 높다. 북유럽 디자인은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일상의 철학을 담아낸다고 하니 무지한 내가 알기에는 수준이 너무 높다. 암석을 쪼아내 만든 암석 교회가 그런 의미라는데 모르긴 몰라도 멋지다. 하루는 헬싱키에서 배를 타고 인근의 수오멜린나 섬으로 갔다. 밤에 목 없는 기사가 말을 달리는 슬리피 할로우가 나오는 스산한 마을처럼 묘한 정적이 흐른다. 핀란드는 화려하지 않아 좋다. 멋을 내지 않지만 멋진 곳이다.
((29에스토니아)) 발트 3국에 속하는 작은 거인 에스토니아는 전자정부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작은 나라들이 살아가는 방법은 돈을 끌어오거나 사람을 끌어와야 하는데 에스토니아는 후자를 선택했다. 에스토니아의 E 레지던스 프로그램은 국적에 상관없이 신분증을 발급해준다. 신분증으로는 사업을 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유럽을 대상으로 사업을 영위하려는 기업들에게는 인기가 높다. 칼바람을 맞으며 탈린의 올드타운을 걸었는데 중세 시대를 걷는듯한 인상을 줄 정도로 예전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작지만 참 매력적이다.
((30스웨덴)) 스웨덴도 복지가 유명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반 사회주의형 국가로 월급의 50% 정도를 떼야 하기에 점점 국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그만큼 크다. 유르고덴섬에 갈 때 딸랑 배 한 척이 있는 박물관에 줄이 길게 늘어져있었다. 원래의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긴 줄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줄을 서게 되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뱃머리가 보인다. 아!! 멋진 배다!! 이런 배라면 해적의 삶이라도 상관없을듯하다. 바사호 박물관의 기획자가 누구인지 실로 존경스럽다. 달랑 놓인 배 한 척은 거대한 조각과도 같았다. 각 높이에서 제공하는 볼거리는 다음 층이 기대되게 만들었다. 동시에 거북선이 떠올랐다. 이순신 하면 한국인 누구나 좋아하는 성웅 아닌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철갑선으로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의미도 있으니 기획만 하면 될 것 같다.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31덴마크)) 행복지수가 높은 덴마크는 복지, 교육, 노동이 좋기로 소문난 나라다. 대기업에 월급루팡이 있듯 덴마크에도 복지 루팡이 존재한다. 매스컴을 여러 번 타기도 했는데 그는 크리스티아니아 자유 마을에 살고 있다. 그곳은 자유로운 사람들이 모여 형성된 공동체로 독립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빛과 그림자는 늘 공존한다.
((32영국)) 영국은 금융 중심의 서비스 산업이 잘 발달되어 있지만 막강한 문화상품 수출대국이기도 하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알래드보통의 인생 학교에 참석해 보았다. 주제는 "사랑과 섹스"다.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는 강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섹스" "섹스" "섹스"라는 단어는 내 귀를 쭈뼛거리게 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섹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무슨 말을 한지는 모르겠지만 즐기라는 것 같았다. 그래 좀 즐기자.
((33노르웨이)) 차를 달리는 내내 아름답지 않은 곳은 오직 차 속뿐이었다. 차 밖으로 펼쳐지는 자연 풍경은 그야말로 멋지고 멋지고 멋지다. 밤이 깊어 산 아래 차를 세워놓고 잠을 청했다. 산세 바람은 귀신 소리를 내며 불고 있다. 세-세- 푸른 새벽에 깨어 창밖을 내다보는데 "여기는 내가 알던 지구가 아니다" 감탄사가 연신 쏟아졌다. 그제서야 내가 어디에서 잠에 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검게 솟은 커다란 산들은 마치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 이곳이 지구란 말인가.
((34벨기에)) 오줌싸개 동상은 여러 번 도난을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고 한다. 그럴 것이 가방에 쏙 들어갈 만큼 작다. 요 작은 동상을 보려고 여행자들은 콩나물처럼 빼곡히 골목을 채우고 있다. 오줌싸개 동상 근처의 와플 가게는 오줌싸개 동상으로 마케팅 혈전을 펼치고 있다. 근처의 초콜릿 상점은 오줌싸개 동상처럼 초콜릿을 형틀에 찍어서 팔고 있다. 아주 작은 동상 하나가 불러온 경제적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한국에는 무엇이 있을까?
((35네덜란드)) 네덜란드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 섹스? 마약? 풍차? 튤립?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게는 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영원한 사랑을 고하며 꽃을 선물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꽃은 한철만 사랑하는, 금방 시들어 버리는 존재가 아닌가. 사랑의 감정도 꽃처럼 금방 시들긴 하지만 순간의 감정을 표현하기엔 꽃의 아름다움만 한 것도 없다. 유럽 최대 꽃 도매시장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 있다. 알스미어 화훼 경매장에 가면 계속 꽃향기가 따라다닌다. 꽃 도매시장에 가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암스테르담의 싱겔 운하를 따라 블로에멘마크트 꽃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36독일)) 베를린은 소문난 예술의 도시다. 예술은 멋과 맛을 내는 조미료다. 베를린에서 도시의 멋을 내는 조미료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갤러리 아닌 듯 갤러리인 갤러리, 벽면을 채운 그라피티, 곳곳에 세워진 버디 베어, 심지어 신호등까지도 도시의 맛을 내놓았다. 베를린 일부 지역의 신호등 아이콘은 다르다. 신호등은 색으로 신호를 인지시켜 준다. 그 안에 있는 아이콘을 변경한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혼란을 야기하지는 않는다. 베를린의 신호등 아이콘의 이름은 암펠만이다. 동독에서 사용하던 신호등이 분단의 상징을 더해 다시 신호등이 된 것이다.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기도 하는 암펠만은 맛을 내는 도시의 콘텐츠가 되었다.
((37체코)) 천문시계 종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수백 명이 그 앞을 빼곡히 채워 고객을 들어 시계만을 바라보고 있다. 매시간 정각마다 나오는 12사도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시계 안의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다. 댕- 하면서 종소리가 울리고 12사도가 한 명씩 작은 창으로 지나간다. 사람들은 연신 셔터를 누른다. 나는 그 순간 카메라를 내리고 12사도를 보았다. 직접 보니 별거 없다. 카메라 렌즈로 보았다면 더 멋져 보였을까?
((38리히텐슈타인)) 알프스산맥 한복판의 산악국가로 재산은닉과 돈 세탁으로 유명한 금융업이 핵심 산업인 아주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 이곳에 리히텐슈타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곳!! 이런 곳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건물을 보고 마른 비스킷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사람이 없다. 신기한 건 리히텐슈타인은 우표를 팔아 제법 많은 돈을 번다고 한다. 작은 나라지만 살아가는 방법이 제법 지능적인 나라다.
((39스위스)) 스위스 청년들의 대학 진학률은 25%인 반면 75%는 직업훈련을 통해 사회로 진출하고 있다. 이러한 진로 선택의 길이 장인 정신의 명맥을 이어오는 근원이지 아닐까? 반대로 75%가 대학을 진학했더라면 숙련된 장인들의 기술이 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롤렉스를 만드는 것도 오메가를 만드는 것도 시계 명장의 손에서 통해서다. 취리히에는 공방도 많지만 소방호수를 업사이클링 한 프라이탁이라는 브랜드도 유명하다. 컨테이너를 높게 쌓아서 아슬아슬해 보이는 매장 앞에는 오픈이 되기도 전부터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나도 그 줄에 서서 프라이탁의 기업 이념이 담긴 열쇠고리를 하나 샀다.
((40이탈리아)) 유럽에서 독일 다음으로 제조업이 강한 국가는 이탈리아다. 명품은 동네 공방에서 나온다. 공방을 우습게 보지 마라. 명품이 공장에서 나왔다는 소리를 들어 본적 없을 것이다. 진정한 명품은 장신의 손끝에서 인고의 힘을 다해 탄생한다. 이탈리아의 장인 기업은 약 140만 개며 약 290만 명이 종사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손끝에서 구찌, 프라다, 불가리, 돌체앤가바나, 페라리 등등이 태어난다. 그래서 그런지 밀라노의 패션거리에 가면 상품들의 모습이 어찌나 당당하게 보이던지 아우라가 넘친다.
((41바티칸)) 로마는 로마를 바티칸은 교황을 판다. 이탈리아 로마의 기념품들은 로마 역사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바티칸은 교황 관련 제품들이 주를 이룬다.
((42프랑스)) 생텍쥐페리의 고향 리옹을 지나 파리에 도착했다. 에펠탑도 루브르도 아닌 벼룩시장을 먼저 찾았다. 프랑스에는 유명한 3대 벼룩시장이 있다. 규모 순로 생투앙 벼룩시장, 몽트뢰유 벼룩시장, 방부 역 근처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이다. 프랑스는 유럽의 대표적 이민 수용 국가다. 그래서 그런지 벼룩시장에서 이민자의 모습이 많이 보였다. 본토인들에 비해 실업률도 높고 고 학년일수록 격차는 더 높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 않다. 그래도 살아 있는 것이 기회는 아닐까?
((43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는 인구 50만의 작은 나라지만 제법 매력적인 나라다. 그렇다고 오래 머물라는 말은 아니다. 도심으로 나가면 작은 상권이지만 구멍가게부터 명품숍까지 있으니 없는 건 없다. 작은 상권에 명품까지 있는 것이 신기했다. 상권은 어떻게 형성될까? 우선 주거 단지가 생기면 구멍가게와 같은 식료품점이 생겼을 터다. 리드 점포 뒤를 따라 음식점이 생긴다. 먹고살 만하면 멋 내고 입는 것에 관심이 간다. 패션의류 상점들이 나타나면서 상권의 상점들은 창업과 폐업을 반복하며 경쟁력이 있는 상점들만 살아남는다. 흐름은 이런데 자본력과 브랜드의 된 제품이 들어가 버티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 요즘 상권의 생태계다.
((44스페인)) 스페인의 인간 탑 쌓기 축제인 카스텔을 보면서 협동심을 느꼈다. 길을 걷는데 장승보다 굳게 땅에 다리를 묻고 있는 비둘기를 보았다. 다가가도 눈만 끔뻑일 뿐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쪽 다리를 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길 위에 서 있는 외발이 비둘기다. 장철 감독의 1967년 작 외팔이가 떠오른다. 외팔이 검객이 된 방강은 더 이상 양손의 협동을 바랄 수는 없지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 후로 방강에게 자비는 그저 사치에 불과했다. 그래도 인간 탑 쌓기를 보면서 협동심의 놀라운 결과물을 보았다.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고 버팀목이 되고 징검다리가 되어 탑이 되어갔다. 그것이 협동심이었다.
((45포르투갈)) 도심으로 걸으면서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타일(아줄레주)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한 빨간 속옷을 겉에 입은 슈퍼맨처럼 화려한 타일이 건물 외벽에 붙어 있어 인상적이다. 색 바랜 타일들이 건물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다. 포르토의 동 루이스 다리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간다. 온몸 구석구석을 지나 휘- 지나 목덜미를 간지럽힌다. 바람이 참 맛있는 곳이다.
((46모로코)) 모로코 페스의 메디나에는 9,000여 개의 미로 같은 골목이 있다. 누구나 할 거 없이 길을 잃는 곳이다. 마라케시 메디나 골목을 보고 코흐의 눈송이가 떠올랐는데 페스 메디나야말로 진정한 무한의 길이로 확장하는 코흐의 눈송이다. 미로에 갇힌 것처럼 하루 종일 같은 자리를 빙빙 돌기도 한다. 빙빙 돌아 하늘을 올려다보면 쏟아지는 모로코의 햇볕은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모로코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47지브롤터)) 코리를 삼킨 보아뱀 형상을 하고 있는 땅끝, 스페인과 영국이 니땅이네 내땅이네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지브롤터는 스페인의 끝자락에 있다. 군사 전략 요충지답게 지브롤터 인근으로는 영국 함대들이 둥둥 떠 있다. 섬 아닌 섬 지브롤터를 맘먹고걸었더니 2시간이면 한 바퀴를 돈다. 영국 영토이다 보니 도시는 작은 영국을 옮겨 놓은 한 느낌이다. 비행기 이착륙이 있을 때면 도로를 차단하는데 그 도로를 지나면 본격적인 지브롤터 여행이 시작된다.
((48남아프리카공화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시내로 향하는 길 드넓은 들판 대신 판자촌이 보였다. 끝을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찬 판자촌 거리에는 사람이 없다. 바람에 날리는 빨래만이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확인시켜준다. 아마 지금은 어디에선가 노동을 하거나 거리에 있을 듯하다. 개미와 베짱이는 같이 살 수는 없는 것일까? 케이프타운의 다운타운에서 노동자의 상당수는 흑인이다. 백인들은 쇼핑을 하거나 커피를 마신다. 쓰레기를 줍는 흑인, 해변 청소를 하는 흑인, 테이블을 정리하는 흑인. 그들의 기분은 어떨까? 혹여라도 희망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체념한 듯 살아가는 것일까? 이런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해변에서는 백인들의 물놀이가 한창이다. 이들의 거리는 불과 50미터도 되지 않는다.
((49호주)) 호주는 워홀러들의 개미지옥이다. 높은 인건비를 쫓아 매년 수만 명의 사람들이 호주를 찾는다. 그들은 고된 노동을 하며 꿈을 키워간다. 일부는 호스텔에서 동거를 하기도 하는가 하면 구체적 목표를 갖고 온 친구들은 잠을 쪼개가며 꿈을 찾아간다. 삐걱거리는 2층 침대에서 일어나 뒷마당에서 마리화나 한 대를 피워고 새벽에 나가는 친구들을 보면서 위태로운 그들의 삶이 안쓰러워 보였다. 한 번은 훌륭하게 워홀을 끝내고 자동차 여행 중인 만기 워홀러를 만났다. 덜컹거리는 차를 몰고 있지만 그의 창창한 앞날이 그려졌다. 꿈과 목표가 있지 않다면 호주는 워홀러의 무덤이 될 것이다.
((50뉴질랜드)) 다행히 탈 조선 현상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이탈 욕구는 존재한다. 뉴질랜드는 오래전부터 이민 가기 좋은 나라로 손 꼽히는 곳이다. 웰링턴부터 오클랜드까지 여행을 해보니 자연도 참 아름다운 나라다. 나는 주로 뉴스를 보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나라의 실제를 마주한다. 뉴질랜드에 사는 교민들을 만나 보았다. N잡러로 살고 계신 그분은 페인트공도 하고 계시는데 페인트칠을 해도 그렇게 행복하다고 하신다. 어느 직업이든 존중받고 도로에서 자동차 경적을 들리지 않는다며 연신 뉴질랜드의 장점을 이야기해주신다. 그런데 왜? 나는 그분의 모습을 보고 뉴질랜드로 이민 가고 싶지 않은 것일까? 진짜 행복하신 것인지 의심이 가서였을까? 푸석해 보이는 그분의 피부 때문이었을까?
((51칠레)) 한 놈만 팬다.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무데뽀는 한 놈만 주구장창 패서 양아치들의 이를 바들바들 떨게 만든다. 코카콜라도 다양한 시도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한 놈만으로 음료 업계를 평정했다. 늘 펩시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코카콜라의 아성에 도전하지만 이미 세상 아이들의 입맛은 코카콜라에 길들여져 쉽게 자리를 내줄 것 같지 않다. 칠레의 남단 푼타아레나스에는 신라면 하나만을 파는 식당이 있다. 코로나 6병을 사들고가 한참 동안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6개월 동안은 정말 힘드셨다고 한다. 라면 한 봉지 팔기가 그렇게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를 더 버티고 이틀을 더 버티다 보니 단골이 한 명씩 늘어가며 지금의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다. 그 잔인하고 지독한 시간이 지나도 국내 창업의 경우 신규 대비 폐업률은 늘 70%를 웃돈다.
((52아르헨티나)) "걱정하지 마 우리는 곧 죽을 거야" 공학도로서의 관점으로 우주 자연은 원자라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기본입자의 우연한 결합과 해체의 과정 속에 있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들도 언젠가는 결합력을 잃고 해체의 과정으로 접어 들것이다. 그러한 나를 산자들은 죽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고 슬퍼할 것은 아니다. 죽음이라는 사건이 없다면 존재의 정체성을 완성할 수는 없다. 이렇듯 인간존재의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사건이 있는데, 죽음이다. 그래서 죽음은 삶과 상반된 것이 아니라 삶의 연장선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인간을 포함한 존재자들은 죽음의 가능성을 향해 시간 위를 달리고 있다. 부에노스아레스의 레골레타 공동묘지를 걸었다.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 - 살아있던 - 자들이 있는 곳이다. 혹시나 그들이 나의 현 존재를 시기해 오면 어쩌나 긴장감이 돌았다.
((53우루과이)) 길들여진다는 것은 슬픈 것이다. 바닷속을 헤엄치며 물고기 사냥에 나섰어야 할 물개 녀석들이 비둘기 마냥 사람들이 던져 준 고기를 주어먹고 있다. 우루과이의 푼타델에스테에는 작은 부두가 있다. 작은 배들이 들랑대며 그날 잡은 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지나가는 새들도 기웃거리고 물개들도 기웃거린다. 나는 그들 사이를 기웃거린다.
((54브라질)) 브라질 상파울루에는 3대 도매시장이 있다. 전자제품과 액세서리가 많은 3월 25일 시장, 아랍 상권이라 불리는 패션의류 및 부자재 브라스 시장 그리고 패션의류 봉헤찌로 시장은 한인들이 운영하는 의류상가가 밀집되어 있다. 봉헤찌로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베자네다 시장과 꼭 닮아 있다. 아베자네다는 초기 유태인들의 시작으로 한인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였고 현재는 볼리비아 상인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브라질은 점차 중국 상인들이 늘어나는 추세로 보인다. 미국 LA의 자바시장에 가면 한국 상인들이 동대문시장 같은 의류 도매상가를 형성하고 있다. 어느 나라를 가든 끈질긴 생명력으로 뿌리를 내리는 사람들, 그들은 상인이다.
((55파라과이)) 파라과이 아순시온의 문화센터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다. 속이 보이는 짧은 반바지를 입은 여성이 다가와 담배 한 대를 달라고 한다. 담배가 없다고 하니 주위를 어슬렁거리더니 사라진다. 여성이 사라진 곳을 보니 판자촌이다. 동네 꼬마는 슈퍼맨 옷을 입고 판잣집 사이를 뛰어다닌다. 고여있는 물은 썩어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저 아이가 자라면 내가 살아갈 지구를 책임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프리카에 빨간 염소를 보내고 있다. 그곳에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많은 아이들이 있다.
((56볼리비아)) 우유니 기차역 옆에 방을 잡았다. 불을 끄고 누웠는데 기차 경적 소리가 들린다. 영하로 내려간 밤바람은 창문을 두드린다. 어젯밤의 칼바람은 자취를 감추고 아침부터 쨍하게 햇볕이 쏟아진다. 목요일인데 거리에는 장이 섰다. 멋쟁이 할머니들이 물건을 팔고 있다. 볼리비아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의 모습은 영국 신사를 닮았다. 옷은 남루할지라도 모자만큼은 먼지를 털고 멋들어지게 머리 위에 얹어놓는다. 멋쟁이- 할매 나가신다 길을 길을 비켜라!!
((57페루)) 일행이 먼저 일어나 어깨를 툭툭 쳤다. 긴장하며 잔 탓인지 리볼버 해머보다 빠르게 노리쇠를 당기듯 허리를 튕겨 세웠다. 옷을 주섬주섬 입고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산길로 향했다. 산속으로 한 명 두 명 모습을 감췄다. 어둠 속에서 앞사람의 자취만을 쫓아 오르다 보니 어느덧 어둠이 걷혔다. 우루밤바 계곡으로 물이 흐르듯 등골에도 이미 땀이 흐리고 있다.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했을 때에는 몸에서 운무가 피어올랐다. 마추픽추, 페루의 자존심이랄만하다.
((58에콰도르)) 줄리의 집에서 낮잠을 자고 키토의 올드타운을 여행했다. 세계 10대 문화유산 도시답게 오랜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다. 안데스산맥을 뒤로 400 년 전 스페인 식민지 시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키토의 매력이다. 5시가 넘어가자 비가 오기 시작한다. 집으로 돌아갔더니 여전히 줄리는 돌아오지 않았다. 커피를 내려 마시는데 천장으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너무 좋다. 줄리의 집은 불투명 창문이 많아 낮에는 집안 구석구석까지 환하다. 내리는 비는 집을 악기처럼 연주한다. 저녁에는 줄리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줬다. 그녀는 음반까지 낸 인디가수다.
((59콜롬비아)) "어쩌면 이곳에 다시 올지도 모르겠다" 콜롬비아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고 다시 메데진으로 돌아왔다. 메데진 도심의 불빛이 아름답게 보이는 슬럼가 산토도밍고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살았다. 험악한 갱들이 설칠 것 같지만 막상 살아보니 의외로 동네는 조용했다. 광장에 앉아 있으면 내게 다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나는 알아들을 리가 없다.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늘 내게 안부를 물어 오고 내 안전을 걱정해준다. 그렇게 정들었던 그곳을 떠나는 새벽, 뭉클한 마음에 꽤나 힘이 들었다. 그곳을 떠났지만 여전히 나는 그곳이 그립다.
((60베네수엘라)) 남미의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는 경제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부패한 관료의 잘못된 정책들이 오랜 기간 만들어온 결과인 것이다. 거기에 국민들의 이기심도 한몫 더했다. 정부만을 비판할 수도 없어 보인다. 베네수엘라에서는 양극단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부자 가정 집에는 먹을 것이 충분했고 모자란 것이 없었다. 집에 쌓아놓은 돈을 달러로 환전해주기도 했다. 한편 일반 가정 집에는 휴지가 없었고 물도 단수가 되어 졸졸 세어 나오는 수돗물을 모아 세수를 했어야만 했다. 경찰이 해야 할 일은 사건 해결이 아닌 사고예방이 우선일 것이다. 소방서가 해야 할 일은 화재진압이 아닌 화재예방이 우선일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61쿠바))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분명한 건 상상 속 쿠바의 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자본의 맛을 본 국민들은 여행자 물가를 점차 높여가고 거리에는 올드 카 대신 전기 오토바이가 달린다. 노인들은 필터담배를 피우고 시가를 피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자들이다. 쿠바에서는 헤밍웨이처럼 글도 쓰고 술도 마셔볼 생각이었는데 이런 생각의 출발이 사달을 내고야 말았다. 클럽 마스터와 나는 시가를 한 대 피우고 럼을 스트레이트로 넘긴 후 올드 카에 올랐다. 태양이 어찌나 뜨거운지 우리는 쌍쌍바처럼 녹아 흘러내렸다. 클럽마스터를 보내고 부부 해적단을 만났다. 그들은 세계의 슈퍼를 털고 다니는 세계여행자다. 그들과 해적의 술이라 불리는 럼을 객기에 스트레이트로 마셨더니 다다음날이 되어서야 제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래!! 쿠바 여행에서 럼이 빠진다면 낭만이 없는 것이다.
((62멕시코)) 한 달 넘게 멕시코를 여행했는데 매일매일 감탄에 탄복을 더한다. 가는 곳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갖고 있으니 좋아하지 아니할 수 없지 않은가. 테킬라의 고장 과달라하라에서 과나후아토에 왔다. 산속 터널을 지나 높다란 담장 사이를 지나다 보니 과나후아토의 센트로에 도착했다. PIPILA 전망대로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았다. 마치 산속에 숨어 있는 요새처럼 신비스러운 매력을 갖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에 산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행운이다.
((63벨리즈)) 벨리즈를 여행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키코커 섬과 산 페드로 섬에 간다. 여유가 더 있다면 블루홀로 갈 것이다. 아름다운 바다도 좋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였다. "최대한 빨리 여기를 벗어나자" 찜통처럼 더운 도시는 숨쉬기도 버거웠다. 놀라운 것은 밤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오후 5시를 기점으로 대부분의 상가들은 문을 닫는다. 해가 떨어져서 뭐 좀 사 먹을까 하고 나갔더니 개 한 마리도 없이 거리가 한산하다. 그래도 아름다운 바다를 갖고 있으니 다행이다.
((64과테말라)) 과테말라의 산 페드로에서 여행을 잠시 멈추었다. 아티틀란 호수를 끼고 있는 마을 3곳을 돌아 보았다. 파나하첼, 산티아고, 산 페드로다. 파나하첼이 가장 크고 번화했지만 내가 머문 곳은 산 페드로다. 산 페드로의 5천 원짜리 숙소에서는 큰 창으로 아티틀란 호수와 화산이 보인다. 저녁에 노을이라도 지고 있으면 잠들었던 감성이 불꽃 터지는 그런 곳이다. 산봉우리에 구름이 걸치기라도 하면 마치 내가 신선이 된 것 같기도 하고 과거 시험을 보러 가다 두메산골 조용한 마을에 눌러 앉은 선비 같기도 하다. 베란다에 앉아 호수를 보며 커피를 마시면 그렇게 마음이 평온할 수 없다. 하마터면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할뻔했다.
((65온두라스)) "쉬운 건 나도 그리고 너도 쉽잖아"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양하다. 늘 쉬운 쪽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사서 고생하는 사람도 있다. 창업도 마찬가지다. 쉬운 창업도 있고 어려운 창업도 있다. 진입 장벽이 낮은 사업은 차별화를 강화해서 경쟁력을 높이고 진입 장벽이 높은 사업은 기본적인 아이템으로도 충분한 경우가 있다. 진입 장벽 자체가 차별화이기 때문에 굳이 아이템을 차별화하지 않아도 된다. 이!! 머나먼 온두라스에서 봉제업을 하시는 한인 분들이 계신다. 과테말라는 그나마 한인이 많기라도 하지만 온두라스는 중미에서도 위험하다고 소문난 곳이다. 80년대에 넘어와서 어쩌다 보니 현지인과 결혼해 온두라스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의 운명이란 게 모르는 일이라고 하신다.
((66니카라과)) 중미에서 가장 큰 호수는 니카라과에 있다. 코스타리카로 가는 길, 어차피 일정이 없다 보니 끌리는 대로 움직이다 보니 오모테페라는 섬에 가게 되었다. 남미에서 가장 큰 호수 티티카카는 물이 참 맑았는데 니카라과 호수는 뿌연 흙탕물이다. 금방 도착할 거리 같았지만 1시간 동안 배는 통통거리며 느긋하게 섬으로 다가갔다. 오토바이를 빌려 섬을 돌았다. 어둠이 서서히 내리는 섬마을의 모습이 얼마나 평화롭게 보이던지 시규어로스의 잃어버린 뱃사람이 들려오는듯하다. 이런 곳을 일컬어 지상낙원이라고 하나보다. 가지 않았다면 후회했을 곳이다.
((67코스타리카)) 알몸으로 폭포에서 수영을 해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허벅지에 불이 나게 바위산을 탔다. 정글처럼 우거진 산속을 지나니 경사진 돌산을 올랐다. 뒤를 돌아보니 까마득하게 멀리서 따라오는 다른 여행자들이 보인다. 산에 오르면 나올 것 같은 폭포는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는다. 다시 정글로 들어서자 폭포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발걸음은 빨라졌다. 이미 땀은 온몸을 덮었다. 눈앞에 펼쳐진 폭포를 향해 옷을 벗어던지며 달려들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쾌락을 만끽했다. "아!! 그래 이것이 여행이다!!" 10분 정도 자유를 만끽하고 나와 옷을 입기 시작하자 뒤따라 오던 여행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도 곧 내가 맛보았던 쾌락을 누릴 것이다.
((68엘살바도르)) 나라마다 시차가 존재한다. 나라 마다의 발전 속도는 다르다. 산살바도르 공항에서 138번 버스를 타면 센트로로 간다. 놀랍게도 이 작은 버스에서는 두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버스 운전기사와 티켓을 판매하고 안내하는 기사 보조다. 잠시 후 달리는 버스로 도붓장수가 올라탄다. 생필품을 파는 사람, 약을 파는 사람, 과자를 파는 사람 등등 움직이는 편의점이 따로 없다. 그들도 이렇게 물건 파는 게 쉽지만은 않을 텐데 한편의 CF를 보여주듯 짧게 강하게 제품 설명을 한다. 그리고는 뒷문으로 나가 다음 버스에 다시 올라탄다.
((69캐나다)) 단풍이 아름다운 단풍국 캐나다는 다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다. 100년 전 철도를 깔러 왔던 중국인들의 일부는 밴쿠버에 남아 차이나타운을 형성했는데 다운타운에 위치해 있다. 중국 간판, 중국 상점, 중국 식당 그들만의 문화를 보존하며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어느 나라든지 중국인이 살고 있지 않은 나라는 없다. 캐나다에서 중국인은 노동자에서 주요 소비자가 되었다. 도로 위를 보면 고급 승용차를 끌고 다니는 중국인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부동산 광고가 중국어로 붙어있다면 말 다 한 것이다. 중국인이 부러운 것 중 하나는 "연대"다. 이들은 어디를 가든 똘똘 뭉쳐서 세계 곳곳에 작은 중국을 만든다. 세계 곳곳의 이런 지역을 연결하면 거대한 물류 지도가 되기도 한다. 중국의 제품이 세계 곳곳에 깔릴 수 있도록 기여한 바가 크다.
((70미국)) 라스베이거스는 멋진 곳이다. 단, 돈이 있다면 말이다. 40도를 넘는 도시는 낮에는 잠을 자둬야 한다. 그리고 주로 쇼핑을 한다. 해가 사라진 밤이 되면 비로소 라스베이거스의 심장은 뛰기 시작한다. 카지노들은 경쟁하듯 화려한 불빛을 쏟아낸다. 돈을 삼키는 슬롯머신은 멈출 줄 모르고 빙글빙글 눈알을 뒤집는다. 세계적인 공연은 매일 밤 열린다. 술과 도박 그리고 미녀가 있는 라스베이거스는 여행자들의 주머니를 위태롭게 만든다. 다행인 것인지 단 한 명의 미녀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71파나마)) 파나마에서는 즐거움을 찾지 않는다면 즐겁지 않다. 비교적 여행할 곳이 많지는 않다. 그렇지만 중남미 지역에서 파나마의 신타 코스테라처럼 세련된 해안도 없을 것이다. 반듯하게 솟아 있는 빌딩 숲은 해안을 바라보고 있다. 파나마에 살고 계신 교민을 찾아갔다. 아주 오래전 최규하 대통령 시절 파나마로 이민을 왔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파나마가 한국보다 훨씬 잘 살았기에 망설임이 없었다고 한다. 한국이 지금처럼 잘 살게 될 것이라고는 그 시절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단기간에 삶이 풍요로워진 나라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파나마 이민을 꿈꾼다.
((72트리니다드토바고)) 생소한 나라에 오다 보니 전기뱀장어를 만난 해파리처럼 찌릿찌릿하다. 갈 곳이 많지는 않았지만 의미 있는 만남이 있었다. 이런 나라에 과연 한인이 살까 싶지만 무려 40년 전에 와서 정착하신 분도 계시다. 70년대 이곳에서 한국 어선들이 고기를 잡아 일본과 미국에 수출을 했다고 한다. 그때 와서 어쩌다 보니 정착하게 되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제주도 2배만 한 이 섬나라가 한국보다 잘 살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어선에서 통역을 하다 지금은 한국의 태권도를 알리고 계신다. 태. 권. 도. 악!!
((73그레나다)) 지금까지 여행했던 모든 나라를 통틀어 세인트조지스에서 내려다본 해안 마을만큼 예쁜 곳은 없었다. 하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른 청정마을 같은 곳이다. 그레나다에는 볼 거리가 하나 더 있다. 제이슨 티케리스 테일러의 수중 조각 공원이다. 멕시코 칸쿤의 수중 조각 공원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가장 처음 수중 조각 공원을 조성한 곳은 다름 아닌 그레나다다. 조각 공원 사이를 헤엄칠 때면 마치 살아 움직일 것만 같다. 어쩌면 내가 안 보는 사이 그것들은 조금씩 움직일지도 모른다.
((74바베이도스)) 카리브 섬나라에서 외국인 여행자가 가장 많은 나라다. 그 이유는 해변에 가면 쉽게 알 수 있다. 넓은 백사장과 높지 않은 파도는 당장이라도 바다로 뛰어들게 만든다. 브라운즈 해변 앞에는 난파선도 있어 여행자들은 그곳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기도 한다. 서쪽의 카리브해와는 다르게 동쪽의 북대서양 해는 상당히 매섭게 몰아친다. 그 침식작용으로 바위에는 목이 생겼다. 북쪽에는 그 두 바다가 부딪치면서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 낸다.
((75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채토벨에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곳에 무엇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다. 그냥 다운타운에서 버스를 타고 무작정 북쪽 방향으로 향했던 것이다.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곳이 채토벨에어였다. 자신을 뮤지션이라고 소개한 현지인이 이삭줍기를 하듯 해변에서 허리를 숙여 무언가를 주워 담는다. 그 손이 너무 빨라 무엇을 잡는지 궁금했다. 가까이 가서 통을 들여다보니 바퀴벌레처럼 생긴 것들이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며 플라스틱 병을 타고 오른다. 갯강구라는 녀석이다. 저녁에 낚시할 미끼를 잡는 중이라고 한다. 신기하게 이 나라에는 집집마다 닭을 키우고 있다.
((76세인트루시아)) 세인트 루시아도 다른 동 카리브해 섬나라 국가들과 유사하게 농업과 관광이 산업의 중심을 이룬다. 다운타운에는 늘 크루즈가 정박해 있을 정도로 인기 있는 여행지다. 여행자들은 크루즈에서 내려 작은 투어 배를 타고 쌍둥이 화산 봉우리 피톤즈를 보러 간다. 나는 그들의 동선과는 다르게 마을버스를 타고 다니며 세인트 루시아를 한 바퀴 돌았다. 하루면 돌 정도로 작은 섬나라지만 노벨상 수상자가 두 명씩이나 있는 나라다.
((77마르티니크)) 마르티니크는 인근의 섬나라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사회 기반 시설이 잘되어 있다. 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멀긴 하지만 프랑스 해외 영토라고 나름 도시에 질서가 잡혀있다. 밴처럼 생긴 버스를 타고 르 다이멍이라는 마을로 갔다. 더 멀리 가고 싶었지만 버스로 갈 수 있는 가장 먼 지역이었다. CAP110은 노예제도 폐지를 기념하여 만든 동상이다. 현재 카리브해 섬나라에는 흑인들이 살고 있다. 대항해시대 유럽이 세계의 영토를 점령하던 시기 현지인을 죽이고 사탕수수 농장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그들을 데려왔기 때문이다. 대항해시대는 재앙의 시작이었다.
((78도미니카연방)) 배를 타고 도미니카 연방의 로조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뭔가 어수선한 느낌이 들었다. 최근 지나간 태풍의 흔적이라고 한다. 집 앞에 전봇대가 넘어져 있고 전선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침수된 차들은 방치되어 있다.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마을 사람끼리 복구했어도 될 것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왜? 이들은 폐허처럼 보이는 마을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일까? 그리고 특이하게 도미니카 연방에서는 단 한 번도 신호등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차들은 사고 없이 쌩쌩 달린다. 카리브해에 있는 나라 중에서 가장 조용하고 할 것 없는 나라였다.
((79앤티가바부다)) 다운타운 세인트존스 항구에 크루즈가 5대 정박해 있다. 성수기에는 6대씩 들어온다고 한다. 크루즈가 많다는 것은 여행할 곳이 많다는 의미다. 자연스럽게 물가도 높아진다. 앤티가 바부다에는 높은 산이 없고 해수욕을 즐기기 좋은 백사장 해변이 많다. 다운타운은 현대적이지는 않지만 인근 나라에 비하면 제법 상업 지구가 잘 형성되어 있다. 조용한 해변에서는 옷을 벗고 태닝을 즐기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셜리 전망대에 올라 갤리온 해변을 내려다보았다.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이래서 많은 크루즈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는가 보다.
((80세인트키츠네비스)) 살인적인 물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곳이다. 텅 빈 숙소도 65달러를 내야만 했던 곳이다. 그렇다고 조식이 포함된 것도 아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도착하자 그랜드 카니발이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섬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축제가 한창이다. 이렇게 야해도 되는 건지 눈 둘 곳을 쉽게 찾을 수 없는 축제였다. 카니발 행렬 앞에는 트럭으로 술을 공급해주고 있다. 그야말로 광란의 축제다. 아무래도 이 시기에 아이가 많이 생길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든다. 세인트키츠네비스는 국적 장사로도 유명한 곳이다. 설탕산업이 붕괴되면서 선택한 방법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만 주면 시민권이 나오는 나라다.
((81푸에르토리코)) 푸에르토 리코는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고 싶어 하는 미국 자치령이다. 올드 산후안의 땅끝에 도착하니 넓은 공원 끝에 모로 포대가 있다. 공원에는 시민들과 여행자들이 뒤 섞여 여유를 즐긴다. 성벽을 보고 올드타운으로 향했다. 광장에서 온몸에 하얀 칠을 하고 있는 거리의 예술가를 보았다. 하얀 칠을 다 하더니 석상과 나란히 서서 석상인 척 가만히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저것이 끝인가? 광장은 평상시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아이들이 뛰어놀고, 그때였다. 석상인 척 가만히 있던 그가 멋진 연극 대사를 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소리의 방향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작은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단단한 목소리는 사람들의 귀를 파고들었다. 인간 석상을 향해 한 명 두 명 모여들었다. 지금까지 보았던 거리의 공연 중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장 많은 돈이 쌓인 공연이었다. 그럴만했다.
((82도미니카공화국)) 하토 마요르 델 레이라는 작은 마을로 가는 길 이궤이에 잠시 들렸다. 독특한 교회가 있다고 했는데 현지인 여행자들이 제법 몰려들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하토 마요르 델 레이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린 것은 작은 오두막집이었다. 대문을 들어가면 3채의 작은 오두막집이 모여 있는데 화장실과 욕실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이다. 화장실에 가려고 나왔는데 밤하늘의 별들이 아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유난히 맑고 밝게 보였다. 앞집은 아주 작은 오두막에 애들까지 4명이 함께 사는 듯 보였다. 불도 잘 켜지지 않는 마당에 나와서 노는 아이들의 눈은 밤하늘의 별 만큼이나 빛났다.
((83아이티)) 아이티의 첫 느낌은 축제를 하지도 않았는데 축제가 끝난듯한 느낌이었다. 도로 위에서 태워지는 쓰레기, 걸쭉해진 수로, 완성되지 않은 집 등등 도시는 혼란스러웠다. 서반구 최빈국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는 아이티는 기후변화에도 시달리고 있다. 태풍, 지진, 가뭄, 홍수 등등으로 진정될 날이 없다. 수면 위로 나무가 서서히 죽어가는 기묘한 풍경이 펼쳐졌다. 급히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나무는 야자나무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기는 하나 기후변화로 호수의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생긴 문제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환경은 빠르게 파괴되어가고 삶의 질은 점차 악화되고 있다. 거죽만 남아 유빙 위에 매달려 있는 북극곰의 모습은 우리의 미래다.
((84자메이카)) 레게의 심장, 레게의 시작 킹스턴에 왔으니 밥 말리 박물관은 필수다. 자메이카에서 밥 말리는 우상이고 신이다. 자메이카 어디에서 든 밥 말리를 연상하게 하는 이미지를 볼 수 있다. 거리의 벽화, 거리의 음악 모든 것이 밥 말리와 이어진다. 주구장창 마리화나를 피워대며 레게 음악을 만든 밥 말리의 뒤를 잇기라도 한 듯 자메이카로 오는 상당수의 여행자들은 드럭 투어를 한다. 레게 클럽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며 레게 음악에 취한다. 레게 음악을 즐겨듣지는 않았지만 가사를 살펴보니 시대정신을 담은 가사가 가슴 뜨겁게 느껴진다. 이들이 부른 노래는 진짜다. 뜨거운 사랑을 받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85알래스카)) 알래스카에서 50일정도 머물면서 마지막 여행을 정리했다. 지나온 3년간의 창업여행 그리고 닥처올 인생여행!! 3년을 넘기며 여행을 하다 보니 이제는 들어가야 할 때가 됐다고 느껴졌다. 원하는 만큼 놀았고 원하는 만큼 쉬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려니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한국에서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
웃지만 울었던 아팠지만 행복했던 나의 여행은 그렇게 기억 속에 담겨 있다. 모든 이야기를 담고 싶었지만 <<세계 창업 방랑기>>,에 단 19개 나라의 이야기만을 담았다. 중국에서 잠자리비행기 3,000대를 수입한 이야기, 인도에서 인도 상인과 러그를 거래한 이야기, 브라질의 유명한 신발 하바이아나스와 멜리사를 해외 직구했던 이야기, 콜롬비아의 슬럼가에서 메데인 갱스터 민박을 운영했던 이야기, 베트남에서 컵빙수를 팔려다 눈물 쏟은 이야기 등등 창업에 관점을 두고 세계 일주를 하며 경험했던 이야기를 담아냈다.
https://m.blog.naver.com/80percentage/221011840132
<<나는 때론 사상가처럼 생각하고 혁명가처럼 행동한다. 중력을 쪼개 거슬러 올라가는 한 마리 새의 날개 짓처럼 세상에 순응하고 싶지 않았다. 남들 보다 한발 앞서 나와 보이는 건 헛발에 미끄러져 딛게 된 왼발의 실수였다.>>
- 해외창업을 하겠노라며 거대한 포부를 안고 시작한 세계일주가 어느 덧 800일이 되었다. 워홀을 한 것 도 아닌데 여행 800일차는 너무 길다. 2년 넘게 여행을 했으니 나 같은 한량도 없을 것이고 이제는 히피들마저도 나를 부러워한다. 지갑은 텅텅 비었으나 긴 여행이 나에게 알려준 행복해 지는 법이 있다.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면 된다.
2년, 나는 그저 시간에 몸을 실었을 뿐 내가 한건 아무것도 없다. 순풍을 만난 돛단배처럼 유유히 흘렀을 뿐이다. 길을 잘 못 들어도 차를 놓쳐도 심지어 길을 잃어도 나에게는 걱정이 되질 못했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늘 한 결 같이 흐른다는 것이 야속할 뿐이다. 그렇게 그리고 시간이 남기고 간 자리에는 그리움만 남았다.
거창하게 말하고 싶지만 거창 할 거 없는 세계일주 800일을 정리 보았다. 몇 개의 나라와 몇 개의 도시를 지나 왔는지도 중요하지만 800일을 자축하기 위한 자랑위주와 속마음을 적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적고 보니 재미없는 다큐가 되었다. 긴 여행의 경험을 허풍 떠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 도 없다.
Q. 안녕하세요, 인터뷰를 진행 하게 된 멸치선생입니다. 그 동안 아시아의 상인 블로그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부분이 많던데요. 차차 인터뷰를 하며 블로그에 담지 못한 이야기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A. 반갑습니다. 아시아의 상인입니다. 여행을 하다 보니 어느덧 2년이 넘어가고 있네요. 지금은 창업여행이라는 주제로 세계일주를 하고 있고요 여행 이전에는 해외마케팅회사에서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업무를 담당 했었습니다. 궁금하실지 모르겠지만 불혹이 가까운 나이구요.
- 돈을 물 쓰듯 써본 베네수엘라
Q. 하셨던 일이 세계여행과 관계가 있어 보이네요. 지금까지 몇 개국을 여행 하셨고 얼마의 경비를 지출 하셨는지부터 이야기를 풀어 가면 좋겠네요.
A. 네, 전 직장과 연관성이 전혀 없진 않죠. 회사 업무를 하며 세계 여러 나라의 시장정보를 듣다 보니 세계 일주를 보다 쉽게 시작한건 아닐까 생각도 들기도 하구요.
여행 800일이 된 기점으로 말씀드릴게요. 정확히 66개국 176개 도시를 여행 했습니다. 방문 도시는 숙박이나 하루정도 여행한 도시만을 포함 시켰습니다. 반나절 갔던 곳까지 포함 시키면 아마 200개 도시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여행 국가를 열거해 보면 중국, 대만, 일본, 홍콩, 마카오,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 인도,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 그리스, 터키, 불가리아, 루마니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핀란드, 에스토니아,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체코, 리히텐슈타인, 스위스, 이탈리아, 바티칸시티, 프랑스, 룩셈부르크,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지브롤터, 남아프리카공화국, 호주, 뉴질랜드,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 파라과이,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쿠바, 멕시코, 벨리즈,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입니다.
여행 경비는 800일 동안 약 6,000만 원 정도 쓴 듯해요. 계산해 본 것이 아니기에 정확하진 않아요. 통장을 확인해 보니 대충 이정도 되는 것 같아요. 주로 2년이 넘는 장기여행자들은 워홀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워홀 없이 여행만 했기 때문에 여행 경비를 많이 쓴 것 같아요.
Q. 6,000만원이라면 꽤 많은 돈이네요. 그 많은 여행경비는 어떻게 만드셨고 해외에서 한국 돈을 어떻게 환전해서 쓰시는지 궁금하네요.
A.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저가 호스텔을 이용했는데도 이렇게나 많이 썼나 하면서 저도 놀랍니다. 2년 넘게 여행하면서 택시를 이용한건 한 두 번 밖에 안 될 정도로 경비를 아꼈거든요.
현지에서 환전 방법은 우선 달러를 현금으로 20만 원 정도 갖고 다니면서 비상시 환전해서 사용하고요. 대부분은 해외 ATM에서 인출해 쓰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사용가능한 체크카드가 있거든요. 하나은행과 시티은행에서 카드를 만들어서 3개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분실 사고를 대비해 신용카드도 2개 더 있습니다.
많은 여행자들은 환율이 좋은 은행이나 환전상에서 환전을 하는데요. 저는 그런 정보를 찾고 위치를 찾아다니는 것이 오히려 기회비용을 잃는다는 생각에 주로 동선에 있는 은행에서 출금을 했습니다. 그리고 환율을 따져보면 몇 백만 원 환전 할 것 아니면 얼마 차이가 아니더라고요.
여행경비는 그 동안 일하면서 모아둔 돈과 전세자금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생이 중간 중간에 통장으로 돈을 넣어 주면서 혹시 모를 납치나 강도에 대비합니다.
Q. 2년이 넘는 긴 여행을 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쓰고 계신데요, 큰 결심이 있지 않고서는 쉽게 할 수 없는 행동처럼 생각되거든요. 장기여행을 결심하신 동기가 궁금하네요.
A. 저에게 동기는 오직 군대 동기밖에 없다는 것부터 말씀드리고 싶네요. 하하!! 필승!! 원래의 계획은 1년 6개월 정도에 최대 4천 만 원 정도의 예산을 생각 했었어요. 그런데 여행을 하다 보니 내 인생에서 일이년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다시는 오지 못 할 수도 있는 곳들을 돌아 보다 보니 늦어지고 있네요.
제가 유럽 대륙을 6개월 조금 넘게 돌아다닌 것 같거든요. 그게 조금 아쉽게 느껴지더라고요. 유럽은 생각처럼 매력적이지는 못해요. 여행지라고 나온 곳들은 대부분 성당들이고요. 차라리 중앙아시아나 중앙아프리카를 갔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아쉬움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세계일주가 끝나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두 지역을 가보고 싶어요.
여행 동기를 물어 보셨는데 어떨 결에 한 게 아닌가 싶어요. 세계 일주를 하겠다는 생각은 제 평생의 기억 속에는 없었거든요. 직장생활도 즐거웠고요. 그러던 어느 날 불현 듯 긴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여행을 하자!!도 아닌 여행을 해 볼까?였어요. 그게 2014년 11월쯤으로 기억되네요. 주변 친구들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갖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에 겁을 먹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회사에 말씀을 드리고 2월말에 퇴사를 했어요.
그렇게 일주일을 바쁘게 준비해서 2015년 03월07일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적지 않은 나이에 떠나는 긴 여행이기에 마냥 여행을 즐길 수만은 없어 나름의 목표를 정했죠. 그게 해외창업이었어요. 어찌 보면 목표라기보다 변명이었던 것 같아요. 세계 일주를 가고 싶은데 늦은 나이에 적당한 변명거리를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솔직히 그 당시 삶이 만족스러운 편이었는데 왜 세계 일주를 떠나게 된 것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네요. 마치 흑백 사진을 보듯 빛바랜 기억처럼 선명하지가 않네요.
하지만 지금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해외창업의 기회를 발견하고 원하는 나라에서 직접 창업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어떠한 관점으로 창업여행을 하면서 해외창업의 기회를 발견했는지 해외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요. 그래서 요즘 창업여행이라는 주제로 책을 쓰고 있는데 생각처럼 쉽지는 않네요.
- 창업여행이 시작 된 곳 동대문
Q. 변명이든 목표든 해외창업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여행을 하셨잖아요. 해외창업을 하겠다는 목표로 창업여행을 하시는 중이라면 남들과는 다른 여행이 될 것 같은데요. 해외창업을 위해 특별히 하시는 일이 있을까요. 그리고 창업여행에 대해서 설명 좀 부탁드릴게요.
A. 정확하지는 않지만 창업여행이라는 단어는 90년대 후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여행이 해외여행을 통해 해외창업의 기회를 발견하고자 노력하는 여행이거든요. 그래서 해외여행과 해외창업을 표현해줄 단어를 찾다보니 창업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여봤어요.
한국은 수출주도형 전략으로 경제 성장을 하면서 수출 진흥에 대한 정보는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해외창업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더라고요. 어디부터 출발해야 하는지 어디에서 정보를 얻어야 하는지 정보 찾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창업여행을 통해 해외창업을 할 수 있는 사례를 만들어 보고 싶더라고요. 저도 해외창업의 목표를 이루고 누군가 해외창업을 꿈꾸는 사람에게 별자리가 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창업여행과 일반여행은 관점의 차이라고 봐요. 일반여행을 하면서 사업적 관점을 갖고 있다면 그것이 창업여행이라고 생각해요. 여행을 하면서 늘 사업적 관점으로 질문을 만들어 내면 되요. 저 식당은 왜 잘 될까? 저 사람들은 왜 그것을 살까? 잘 되는 저 식당의 킬러 메뉴는 무엇일까? 직원은 몇 명이고 위치는 어디에 있는가? 저 메뉴가 한국에서도 잘 될까? 아니면 제3국으로의 진출은 어떠한가? 등등 이런 식의 질문을 쏟아내면 그 것이 창업여행이라고 봐요.
그리고 현지에서 창업하고 계신 선배들을 찾아가서 정보를 얻는 것도 중요해요. 실질적으로 사업을 하고 계시기에 그분들이 해주시는 말들은 중요한 부분 많아요. 코트라도 꾸준히 방문하고 있지만 무역 진흥이 주요 업무이고 해외창업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정보를 구하기 어렵더라고요.
- 윤식당처럼 해외창업을
Q. 혹시 윤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셨나요? 해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데요. 그 프로그램 덕분에 요즘 해외창업 이라는 아이템이 뜨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윤식당처럼 해외에서 식당을 하고 싶다고 어떻게 창업을 할 수 있을까요.
A. 여행 초반에는 방송국에서 연락이 많이 왔었거든요. 그 당시 내가 이 분야 전문가도 아니고 하여 방송이든 인터뷰든 고사했었거든요. 그 후로 좀 뜸하다 최근에 다시 해외창업이라는 주제로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 하더라 구요. 그래서 알게 되었고 윤식당이라는 프로그램을 몇 편 보았습니다. 로맨틱 드라마처럼 아름답게 만들어 졌더라고요. 낮에 잠깐 영업하고 숙소로 돌아와서 전개 되는 내용만 보면 너무 즐겁잖아요. 그런데 창업을 해 본 사람들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전혀 공감하지 못 했을거에요. 고객 응대부터 지적 할 부분은 많지만 다큐가 아닌 예능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잘 만들어진 프로그램 같더라고요.
해외창업은 나라마다 외국인투자 규제가 달라 설명이 쉽지만은 않네요. 제가 많은 나라들을 구체적으로 아는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아는 부분 내에서 최대한 답변을 드려 볼게요. 제 주관적 경험과 그 동안 수집한 정보에 의한 것이니까 참고용으로 이해하시면 좋을 듯해요.
해외 투자 진출의 형태도 개인 사업자와 법인 사업자로 나눌 수 있습니다. 두 개 다 가능한 나라도 있고요. 윤식당이 있는 인도네시아의 경우에는 외국인 투자는 법인 사업자만 가능해요. 그런데 외국인 100%가 아닌 내국인과 합작하여 외국인 투자 법인을 설립해야 사업이 가능합니다. 법인 설립 최소 자본금은 약 600만원 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윤식당 프로그램에서는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인도네시아는 무슬림 국가에요. 무슬림 국가는 식당영업 규제가 좀 더 까다로운 편이죠. 관광지가 아닌 내륙으로 들어가면 무슬림 국가라는 느낌을 쉽게 접 할 수 있는데 관광지는 외국인이 많다 보니 무슬림 국가인지도 모를 수 있겠더라고요.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면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에요. 무슬림 국가는 주류세도 높고 현지인들 대상이라면 할랄 인증을 받아야 영업력이 높이 지니까요. 이슬람 국가에서는 주류도 쉽게 살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넘겨짚어 보면 윤식당이 있었던 곳은 관광특별구역처럼 뭔가 규제가 좀 더 풀려 있는 지역처럼 보이더라고요. 이 부분은 확실 하지 않고 그저 제 의견입니다.
그리고 윤식당처럼 식당에서 외국인을 저렇게 많이 고용할 수 도 없습니다. 외국인 고용도 꽤 까다로운 편이거든요. 일반적으로 대졸에 해당 분야 경험이 있는 경우나 현지에서 찾기 힘든 인력의 경우나 가능하죠. 또 중요한건 체류비자입니다. 주재원이나 투자 진출을 하였을 경우 체류 비자가 나오거든요. 윤식당의 경우에는 일시적인 이벤트성이라 현지 정부에 협조를 얻은 게 아닌가 싶네요. 여행자 비자로 일하는 건 불법이거든요.
일반적으로 외국인에 대한 투자 규제 때문에 현지인 이름으로 사업 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외국인 명의로 할 때에도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명의만 빌리거나 명의를 빌리고 직원으로 참여 시키거나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본인 명의가 아니다 보니 큰 위험이 따르기에 항상 조심하셔야 합니다. 돈 앞에서는 사랑도 우정도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외국인과 결혼하여 창업한 경우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것만큼 안전한 방법도 없지만 외국인과의 결혼이 쉽지만은 않으니까요.
다른 사람 명의가 아닌 정식으로 투자 진출을 할 경우에는 현지인과 지분을 나누어서 투자 진출을 해야 하는 국가도 있고요, 외국인 100% 지분으로 진출 가능한 국가도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기본 투자 자본금이 25,000유로면 사업성에 따라 사업을 허가 해주기도 합니다. 최근 뜨고 있는 베트남의 경우 2015년부터 식당 창업을 외국인 지분 100%까지 개방하였기에 진출이 보다 수월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업자등록은 가능 하지만 체류비자가 나오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규모 있는 법인투자 진출을 하는 이유가 체류의 문제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외에도 한인창업자들을 찾아다니며 다양한 사례를 들었지만 제가 이곳에 언급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네요.
나라마다 규제가 다르기에 우선 사업하고 싶은 나라를 정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한인 창업자를 찾아가서 정보를 얻고 변호사를 찾아가서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외국인 투자 규제 가이드라인도 실제에서는 다르게 적용 될 때가 있거든요. 가장 좋은 방법은 외국인과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참고로 한인민박의 경우에는 대부분이 불법적으로 운영 되고 있습니다. 블로그나 카페로 한인 고객만을 받으며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이렇게 하면 현지 국가에서 알아채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도 콜롬비아에서 5개월 동안 게스트 하우스를 불법적으로 운영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 슬럼가를 여행하는 베이스캠프 메데진 갱스터 민박 모습
Q. 잠깐 들었는데 해외창업이 너무 어렵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네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우선 나라를 정하고 접근해 가는 것이 첫 발이겠습니다. 해외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행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해외 민박, 소호 무역, 해외 직구를 했던 경험에 대한 이야기 좀 해 주시겠어요.
A. 해외창업이 어려운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언어부터 걸리니까요. 하지만 해외창업은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경쟁력도 높은 편입니다. 아주 단편적인 예로 한류가 있는 나라에서 한식당이 있다고 가정해 봅니다. 각자의 영업 수준은 비슷한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 현지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이 있다면 어느 쪽이 경쟁력이 있을까요.
네, 여행을 하면서 몇 가지 실험적인 경제적 활동을 해보았습니다. 실질적 해외 창업에 앞서 직접적으로 경험해보고 싶었거든요. (1) 그래서 중국에 갔을 때에는 잠자리 고무동력기 3,000기를 구매해서 한국으로 보냈거든요. 흔히 소호무역이라고 하죠. 무역은 생각보다 쉽거든요. 법정에서 변호인에게 변호를 의뢰하잖아요. 그 것처럼 무역도 대행사에 의뢰 하면 됩니다. 약 5% 내외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 데요. 당연히 전문가에게 줘야 하는 합당한 금액입니다. 그 후 물량이 늘어나면 직원을 구하거나 수수료 협상을 하면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아직 제 방에는 2,000기가 안 되는 잠자리 고무동력기가 재고로 쌓여 있습니다. 함께 팔기로 했던 파트너가 팔다가 포기 했거든요. 제가 한국에 있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겠지만 현재는 블로그에 판매글을 올려놓은 상태입니다.
(2) 그리고 브라질에 갔을 때 블로그 친구와 함께 해외 직구를 했었습니다. 그 친구가 직구 쪽은 전문가였기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면서 진행했거든요. 덕분에 성공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입금된 돈의 20%정도를 환불 해줘야 할 정도로 제품이 없어서 못 팔았을 정도네요. 이벤트 제품들의 경우 말도 안 되게 저렴했거든요. 만약 제가 주도 하였더라면 그런 제품을 사재기해서 팔았을 텐데 블로그 친구의 사업 방식은 선주문 받은 제품만 구매하는 방식으로 직구를 운영하더라고요. 그 친구의 의견에 따라서 운영한 결과 제고 없이 브라질에서 직구를 성공적으로 끝 낼 수 있었어요. 저는 브라질만 했지만 직구 쪽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해외직구를 하며 여행을 하면 경비는 나오겠더라고요.
(3) 콜롬비아에서는 게스트 하우스(한인 민박)을 실험적으로 운영해 보았어요.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지역인 엘 포블라도 (EL POBLADO)에서 할 수도 있었는데 심심 할 것 같더라고요. 그림이 뻔하잖아요. 그래서 콜롬비아 메데진의 최대 슬럼가로 들어갔어요. 그 곳에서 슬럼가를 여행하는 베이스 캠프!! 메데진 갱스터 한인 민박이라는 이름으로 4개월간 운영을 했었어요. 지역적 특색이 주는 긴장감 때문에 많은 고객들이 오지는 않았어요.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적게 오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한 달에 약 15일 정도만 고객을 받으면서 약간은 폐쇄적으로 운영을 했어요. 가끔은 저도 쉬고 싶고 책도 쓰고 싶은데 고객들이 항상 있으니까 좀 바쁜 게 아니더라고요. 세탁기가 없어 이불 빨래를 손으로 했거든요.
어찌되었든, 갱스터 한인 민박을 운영하기 전에 궁금했거든요. 내가 과연 이런 곳으로 고객을 유입 할 수 있을까. 과연 나라는 상품은 기호성이 있는 것인가. 그래서 엘 포블라도 (EL POBLADO)가 아닌 산토 도밍고 (SANTO DOMINGO)에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했던 거거든요. 결과는 만족스러웠어요. 사업계획서 상의 상권분석이나 마케팅 이론에 근거한 사업이 아닌 실험적 도전이었거든요.
그런데 만약 실제 사업으로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 한다면 당연히 엘 포블라도로에서 할 것 같아요. 엘 포블라도로 가되 슬럼가에서의 경험을 접목해서 사업의 매력도를 높일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실험적인 경험들이 인생(사업)에 있어서 소중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세계일주와 세계여행은 이제 일반적인 보편화된 경험이 되었어요. 더 이상 특별하지 않거든요. 해외여행이 힘든 시기였다면 여행의 경험이 큰 자산이 될 수 있지만 이제는 너도 나도 다니고 있잖아요. 이런 현실 속에서 본인의 경쟁력을 높이려면 새로운 때론 똘아이 같은 도전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똘아이처럼 살라는 것이 아닌 때론 똘아이처럼 경험해보라는 것이에요.
그런 의미로 보면 슬럼가에 가서 빈 건물을 빌려 모든 인테리어를 직접 하고 고객을 유도해 슬럼가로 오게 했던 경험과 슬럼가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 데킬라를 마셨던 경험은 저에게 소중한 추억이자 경험이 된 것 같아요. 참고로 위에 언급한 세 가지 이야기는 중국, 브라질, 갱스터 민박 블로그 카테고리에 들어가면 볼 수 있어요.
Q. 창업여행이라는 주제를 거신 것도 결국에는 이런 모든 경험들을 통해 해외창업을 하고 싶으신 거잖아요. 국내창업도 힘든데 왜 해외창업을 하고 싶으신 건가요.
A. 저는 제가 역마살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결과적으로는 역마살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 한곳에서 게으르게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에요. 이번 여행이 끝나면 한 곳에 머물며 누에고치처럼 몇날 며칠을 잠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네요. 창업여행이라는 주제로 여행을 하다 보니 일처럼 여행을 하고 있어요. 남들처럼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 하는 편이구요. 그런데 제가 이렇게 일처럼 여행을 하는 이유는 말씀하신 것처럼 해외창업을 하기 위해서 에요.
처음에는 뻔하게 살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에서 출발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해외창업의 방법을 알려주는 하나의 사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더 짙어요.
한국은 피터드러커도 인정한 기업가 정신이 활발한 국가였거든요. 그런데 4차 산업으로 넘어 오면서 한국은 전반적 산업에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어요.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이 갖고 있는 유교적 수직적 관계 때문이라고 봐요. 저는 이런 문화가 나쁘다고 보진 않아요. 우리 고유의 문화이고 한국인이 갖고 있는 예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한국에 군대 문화가 있는 한 쉽게 변하기는 어렵다고 봐요. 다만, 이제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수용과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수직적인 구조에서 창의성이 나오기는 어렵거든요. 도제교육에서 나오는 기술이전의 시대는 분명 지났거든요. 그래서 요즘 많은 기업들에서 기업 문화를 실험적으로 바꾸고 있잖아요. 쉽진 않겠지만 변화 하는 중이라고 봐요. 분명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고요. 혹시 모르겠네요. 빠르게 변화 할지도, 한다면 하는 게 한국인의 저력이잖아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일 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해외취업도 있고 해외창업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새로운 문화와 섞이다 보면 한국인의 한다면 한다는 특성과 결합 되 시너지가 나올 것 같거든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한국은 자원이 없잖아요. 예전에는 수출 주도형 전략으로 2차 산업이 국가 경제 근간이었는데 요즘엔 배울 만큼 배웠는데도 일 할 곳이 부족한 게 현실이고요. 그래서 해외취업을 목표로 잡은 취업 준비생도 많다고 들었거든요.
보다 어렵긴 하지만 해외창업도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제가 알려주고 싶어요. 이왕 창업 할 것이라면 해외에서 도전 해보고, 퇴직 후 프랜차이즈 카페를 할 것이라면 해외에서 해보자는 것이거든요. 국내든 해외든 똑같이 어렵거든요. 그리고 무기력했던 삶을 제2의 인생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계기도 되고요. 오히려 한국보다 초기비용이 적게 드는 나라도 있어요. 변호사와 같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안전하게 해외창업을 할 수 있고요.
해외창업에 앞서, 문제는 어떻게 나라를 정하고 어떻게 아이템을 정하고 창업을 시작하는지 가이드라인이 되는 정보가 충분치 않거든요. 그런 가이드북을 제가 만들어 보고 싶어요. 한 해 동안 해외여행을 하는 한국인이 2,000만 명이 넘었거든요. 분명 이중에는 해외창업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을 거 에요. 제가 했던 방식이 모범답안은 아니지만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면 해외창업을 희망 하는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춰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도 실제로 해외창업을 하고 싶고요. 그래서 해외창업을 하려고 하는 이유는 두 가지에요. 저도 하고 싶고 진입 장벽도 낮추고 싶어요.
- 다시 가고 싶은 콜롬비아의 산안드레스 섬
Q. 해외창업 이야기를 계속 들었더니 어지럽네요. 기분 전환 할 겸 여행 이야기를 해보고 싶네요. 66개국 176개 도시를 여행 하셨다니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많을 것 같은데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나요.
A. 모든 곳이 특별 했던 것 같아요. 볼 것이 없었어도 볼 것이 많았어도 모든 곳이 특별해요. 그 것이 여행인 것 같기도 하고요. 좀 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곳은 몇 곳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다기 보다 다시 가고 싶은 곳이에요. 그런데 남들과 공감 되는지는 모르겠네요.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는 스위스, 노르웨이, 콜롬비아의 산안드레스 섬입니다. 제가 겨울 스포츠는 한 번도 해 본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스위스 융프라우에 도착했을 때, 이런 곳에서 스키를 타지 않는 것은 스위스 여행을 한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북이 눈 덮인 산이 그렇게 장엄하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보드 장비를 빌리고 산 정상에 올라 반나절 독학한 실력으로 산 능선을 타고 내려왔어요. 낙엽처럼 내려오면서 수십 번 넘어 졌지만 언젠간 스키를 배워서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노르웨이에서는 오로라를 본 건 아니지만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차를 렌트해서 한적한 국도를 따라 오슬로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데 눈으로 수북이 덮인 마을들이 너무 평온해 보였어요. 밤이 깊어 화물차들 사이에 차를 정차해 놓고 자고 일어났는데 지금까지 보았던 지구의 모습이 아니었어요. 탄식이 튀어 나올 정도로 그 광경이 너무 생소하고 아름다웠어요. 검은 산에 쌓여 있는 새 하얀 눈이 공포스럽기도 하면서 아름답게 보였거든요. 이런 곳에서 한 달 정도 머물면서 도끼로 장작을 패며 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콜롬비아의 산안드레스 섬입니다. 지금껏 아름답다는 많은 바다를 가본 것 같아요. 동남아시아의 바다도 꽤 아름답거든요. 그런데 그 중 산안드레스 섬에서 본 카리브 해가 가장 아름다웠어요. 에메랄드 빛 바다색이 가짜처럼 보일 정도로 형용하기 어렵게 아름답거든요. 그리고 화보처럼 멋진 남미 여성들이 카리브 해의 해변에 서 있는 상상을 해보세요.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시 가서 미녀들 사이에서 스노클링을 원 없이 즐겨보고 싶네요.
- 비포 선라이즈 같았던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Q. 여담으로 듣고 싶은데요. 2년이라는 여행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닌데 여행을 하며 간혹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까. 실제로 비포 선라이즈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지도 궁금하네요.
A. 솔직히 말해, 저를 포함한 많은 여행자들은 아마도 한편으로 여행 중 로맨스를 꿈꿀 것입니다. 여행과 사랑, 말만으로도 낭만적이지 않나요. 장기여행을 하며 한곳에 오랫동안 머무는 여행자들이 있는데 상당수는 좋아하는 이성을 만난 경우입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가 그렇더라고요. 아쉽게도 저에게는 좋아하는 이성이 생겨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문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로맨스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2년 이라는 시간은 무척 길고 외로운 시간이거든요.
영어 실력이 짧다 보니까 에둘러 말하기보단 서둘러 말하는 편입니다. 의사표현을 확실하게 전달하려다 보면 에둘러 말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물어 보신 질문에 답변을 서둘러 말하자면 네 입니다.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여행을 끝마치고 해외창업을 해야 한다는 일념이 감정을 이기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알고 싶은 사람이 생기더라도 계속 지역을 이동하며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인연이라면 다시 만나겠죠.
- 늘 찾아오는 고뇌의 순간들
Q.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는 여쭙지 않겠습니다만, 불혹이 다가오는 나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분명 즐겁기도 하실 테고 걱정도 있으실 텐데, 실질적인 속내를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여행을 후회 하신 적 있으신가요.
A. 허풍과 내 자랑은 저의 또 다른 즐거움이거든요. 24시간 필리버스터를 할 정도로 수많은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니까 여행이 너무 즐거운 건 사실이죠. 말도 안 되는 수많은 경험들도 있고요.
제 또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으니 너무 즐겁지 않겠습니까. 남들 회사 갈 때 쉬는 기분, 시험기간에 PC방 가는 기분을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습니까. 보통 제 주변 친구들은 가사와 업무에 지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불혹을 앞둔 제 친구들의 일반적인 삶이죠. 솔직히 하루하루 허송세월 보내는 것이 너무 즐겁습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라는 걱정이 들기도 하지만 즐거운 건 사실입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 너무 즐겁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여행이 끝나면 현실로 돌아가야 하잖아요. 여행을 하는 지금도 현실이긴 하지만 이것이 제가 살아가야 할 삶은 아니잖아요. 여행이잖아요. 잠깐 삶에서 벗어난 여름 방학 같은 시간 말이죠. 여행이 즐거운 건 사실이지만 때론 사뭇 진지함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서른다섯이 넘은 불혹이 멀지 않은 나이가 주는 중압감이 있거든요. 도저히 간과하기 힘든 부분이죠. 시간은 계속 흘러가니까요. 그리고 여행을 통해 인생을 변화시키기엔 너무 힘든 일이니까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할까. 솔직히 걱정 됩니다. 먹고 살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하니까요. 이런 걱정이 때론 여행을 후회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후회라기 보다 걱정하게 만듭니다. 누구나 바라는 것이 평범한 삶이잖아요. 그런데 서른이 넘어 2년이 넘는 여행을 한다는 것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는 선택이거든요.
“닥치고 세계여행을 떠나자“라는 말은 겁 없는 20대 초반에게 해당되는 말인 듯해요. 이삼년이라는 여행이 끝나도 여전히 이십대 초반이니까 겁날게 없거든요. 그런데 20대 후반부터는 목표 의식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해외 취업, 해외 이민, 해외 창업 등등 이런 식의 구체적인 목표 말입니다. 아니면 물려받을 돈이 있다면 그 것만큼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 것이 없다고 봅니다. 취직할 나이에 서른이 넘은 나이에 장기여행을 한다는 것은 여행을 통해 분명히 인생의 전환점을 찾아야 하는 시점이거든요. 앞서 말씀 드렸듯이 더 이상 세계여행은 경쟁력이 되질 못하거든요. 저는 다행이 빚은 없지만 가끔은 여행을 시작한 것이 잘 못 된 선택은 아니었을까 걱정이 됩니다. 걱정도 되지만 인생의 불 꽃 같은 시간이잖아요. 그래서 즐겁게 여행하고 있습니다. 다시없을 여행이니까요.
- 단일 메뉴를 승부수를 띄운 땅 끝 마을 라면 집
Q. 그럼 이제 다시 해외창업 이야기로 돌아가 볼게요, 해외에서 사업하고 계신 분들은 어떠한 경로를 통해 만났고 주로 무엇을 하고 계시던가요? 그리고 기억에 남을만한 독특한 사업을 하고 계신분이 계실까요.
A. 해외에서 사업을 하고 계신 분들을 만나 뵙기란 쉽지는 않았어요. 주로 구글 검색을 통해 메일을 보냈어요. 95%는 회신이 오지 않았고 4%정도는 일정 등의 이유로 미팅에 응해주시지 않았고요 나머지 1%만이 미팅으로 이어졌어요. 간혹 한인을 만나게 되면 소개해달라고 부탁하기 도 했고요.
식당이 가장 많았어요. 그리고 무역도 많았고요. 비중은 식당과 무역이 많지만, 그 외 눈 에 보이는 사업들은 다 하고 계신다고 보면 되요. 그 중 기억에 남을만한 분은 사금 사업을 하시는 분이었어요. 현재는 사금 채굴 사업을 크게 하시다가 그 나라의 정부와 소송중이어서 잠시 멈춘 상태고요. 새로운 사업들을 구상하고 계신데 사금 채굴 사업을 하셔서 그런지 사업의 규모가 꽤 크더라고요.
아, 그리고 칠레의 땅 끝 마을 푼타아레나스에서 신 라면을 파시던 분도 생각나요. 코로나 6병을 사들고 가서 맥주를 마시며 푼타아레나스에 정착하게 된 이야기부터 라면을 팔게 된 이야기 까지 들었거든요. 오직 신라면만 팔고 계세요.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오직 단일 메뉴만 팔고 계신데 현지인들이 땀을 흘리며 먹는 모습이 신기하게 보이더라고요. 현지인들에게 맛을 보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고 해요.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니까 한 명 오던 것이 두 명 오고 그리고 세 명이 오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 도시정벌을 꿈꾸며 내려다 본 콜롬비아의 메데진
Q. 그리고 해외창업이 목적이시니까 혹시 창업을 하고 싶은 국가는 정해지셨나요. 정해졌다면 어떠한 이유로 나라를 선택 했는지 이유 좀 부탁드릴게요.
A. 네, 여행을 하며 몇 곳 정해 두었습니다. (1) 아시아권에서는 베트남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네요. 그래서 함께 하기로 한 파트너와 추진을 하다가 중간에 잘 못 되어가는 부분이 있어 잠시 접게 되었거든요. 베트남의 호치민에 도착해서 시내로 들어가면서 계속 탄성이 쏟아 졌거든요. 여기다!! 여기다!! 베트남은 주요 교통이 오토바이잖아요. 오토바이 탄 사람들을 보니까 소비력이 높은 연령층이더라고요. 이렇게 젊은 인구가 많은 나라라면 한국 보다 많을 기회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최근 베트남이 너무 떠서 괜히 삐딱한 심보가 생겨 다른 나라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관심은 있고요.
그래서 각종 지표를 확인 해 봤죠, 경제 성장성이 좋게 전망되더라고요. 해외의 공장들도 베트남으로 이전한다는 것도 좋은 뉴스였고요. 일자리가 창출 된다는 것은 내수 시장의 소비력이 증가한다는 의미거든요. 그리고 한국과의 거리도 비교적 멀지 않아 한국과 연계해서 다양한 사업을 할 수 있겠더라고요.
(2) 그리고 이집트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이집트에는 찬란했던 고대 역사가 있잖아요. 세계 유일의 관광 상품을 갖고 있는데 치안불안으로 관광산업이 잠시 주춤하고 있더라고요. 이런 시국임에도 여행자들이 제법 있더라고요. 그래서 게스트 하우스를 생각했었어요. 그리고 이집트의 모 대학에는 한국어 학과가 있을 정도로 한국어에 대한 수요가 있습니다. 한류도 있고요. 무슬림 국가다 보니까 할랄 산업에 대한 사업 연계성도 있고요.
이집트 바로 위에 있는 유럽대륙에서는 아쉽게도 크게 관심이 갔던 곳은 없지만 그래도 한 곳 꼽아 보라면 스페인의 바로셀로나가 어떨까 생각해요. 구체적 설명은 힘들 것 같고요. 느낌이 그랬어요. 골목골목 사이 작은 광장에 모여 있는 상권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유럽국가 중에서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느꼈고요. 물론 자본이 많다면 독일 같은 서부로 가면 좋겠지만 동부유럽이나 스페인이 어떨까 생각했어요.
(3) 최근 지나온 곳 중에는 콜롬비아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콜롬비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해 보았고요. 창업을 하고 싶은 국가를 고를 때는 처음에는 느낌에 의존하고 있어요. 개인적 편차가 있겠지만, 느낌이 편안하게 와 닿는 나라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각종 지표를 확인해 봐요. 인구수, 인구밴드, 도시화율, 빅맥 지수, 최저 임금, GDP, 1인당 GDP, 범죄율, 도시 경쟁력 등등을 살펴보죠. 그러다 보면 창업 초기 비용과 체류 비용의 윤곽이 드러나요. 그래서 지금 내 상황에서 창업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거죠.
그리고 최근에 고려 요소에 포함된 것이 있는데요. 날씨에요. 베트남의 호치민에서도 한 달 정도 있었거든요. 솔직히 너무 더워서 혼났습니다. 그리고 이집트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콜롬비아의 날씨는 한국인이 살기 좋은 날씨더라고요.
- 시장을 보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Q. 현재 창업여행이라는 책을 쓰고 계신다고 했잖아요. 그 책의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리고 책의 내용일 것 같아 함께 드리는 질문인데요. 해외창업을 희망하는 일반인들은 어떻게 여행을 해야 하는지도 부탁드립니다.
A. 솔직히 책을 쓰고 있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상황입니다. 콜롬비아에서 5개월 머물면서 책을 썼거든요. 그것을 콜롬비아 떠나기 며 칠전에 다 엎고 새로 쓰고 있어요. 전체적인 컨셉은 제가 해외창업을 하기 위해 해외여행을 하면서 창업의 기회를 발견하는 내용이에요. 해외창업을 하기 위해 어떤 관점으로 여행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에요. 각 나라 별 제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도 포함되어 있고요.
해외창업은 국내창업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다행이 요즘엔 휴가 때 해외여행을 많이 하잖아요. 그렇기에 휴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해요. 업종이 정해져 있다면 여행 중 동종업계를 방문하면서 상권 분석부터 모든 비용을 산출 하면서 나름대로 분석을 해봐야 해요. 그리고 숙소에서 번화한 지역과 주요 주거지 오피스 거리 등등을 확인 하면서 그 지역의 골목 투어를 해보시면 좋아요.
아이템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번화하고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가서 주로 어떤 업종이 많이 있는지 확인하다 보면 틈새시장도 보이고 벤치마킹 할 아이디어도 얻게 되거든요. 그리고 재래시장이나 도매시장에 가면 좋아요. 백화점도 좋고요. 시장은 그 나라의 경제 수준을 확인 할 수 있는 바로미터거든요. 당연히 눈에 많이 보이는 제품들이 많이 팔리는 제품들이고 형성된 가격이 구매가격 저항선을 의미하겠죠. 그들이 몸에 걸치고 있는 것들 손에 들린 제품들을 눈여겨보면 흐름이 보이거든요.
에어비앤비나 카우치서핑을 통해 현지인과 생활해 보면서 그들 삶의 동선을 관찰하는 것도 중요해요. 행동 패턴으로 소비 패턴을 확인 할 수 있거든요. 평일에는 주로 무엇을 하는지 주말에는 주로 무엇을 하는지를 알게 되면 무엇을 사는지 예측이 가능하잖아요. 이런 관점으로 휴가 때마다 창업여행을 반복하다 보면 해보고 싶은 업종과 장소의 윤곽이 들어 날거에요.
직장도 돈도 없는 경우에는 워홀로 나가서 시드머니를 준비해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요. 우프나 워크어웨이같은 교환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세계여행을 하며 정착하는 사례가 있어요.
- 굳이 이유가 없어도 되는 것이 여행 (피츠로이)
Q. 여행만 2년 넘게 하신 거잖아요. 장기여행자 선배로써 장기여행을 꿈꾸는 후배 여행자들에게 당부나 조언해 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A. 초기엔 나 잘났다 떠들고 다녔는데요. 여행은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저처럼 목적이 있는 사람도 있고 그냥 큰 목적 없이 유유히 여행 하는 사람도 있거든요. 누가 뭐라고 해도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여행하시면 될 듯해요. 저 같은 경우에는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사회에서 규정하는 정체성을 쉽게 벗지 못했어요. 그렇다 보니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면서 조금은 타이트한 여행을 한 것 같아요. 이 부분이 조금은 아쉽기도 해요. 때론 옷고름을 풀어 헤치고 놀았어야 하는데 늘 정신을 온전히 지키는데 신경 썼거든요.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장기여행은 1년 6개월은 넘기지 않았으면 해요. 물체를 양쪽에서 잡아당기면 언젠가 끊어지게 되어 있잖아요. 그걸 탄성 파괴라 부르는데 삶도 그런 것 같아요. 탄성파괴에 저항 하는 힘, 파괴 응력은 개인 편차가 있겠지만 저의 경우엔 1년 6개월이었던 것 같아요. 모든 물질들은 적당한 거리로 결합력을 유지하며 형태를 보존하거든요. 특히 사회적 동물이라 불리는 인간은 사회적 결속력 안에서 보다 안정된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행은 길면 길수록 고립감이 커지거든요.
이전에 일했던 감각이 1년 6개월 기점을 전후로 사라지는 것 같거든요. 오랜 시간 구름처럼 붕 떠 있는 생활을 하다보니까 현실감각도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새로운 문화를 보는 것을 넘어 직접 참여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한다면 후회 없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여행하는 동안만큼은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세요.
- 수영장 딸린 게스트 하우스 창업
Q. 여행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만감이 교차하실 텐데요. 마지막 질문으로. 여행이 끝나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고 어떠한 모습이 되길 바라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 매일 끝난다 끝난다 하면서도 아직도 하고 있는 게 여행이네요. 그런데 정말 거의 끝나가고 있어요. 여행이 끝나는 시점에는 읽힐 수 있는 창업여행 책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 책으로 해외창업에 대한 강의를 해보고 싶어요. 여행 이전에도 비슷한 일을 했었지만 지금은 좀 더 구체적으로 현실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내년 초에는 다시 해외로 나와 수영장 딸린 게스트 하우스를 창업하고 싶어요. 이미 생각해 놓은 지역이 있거든요. 또, 작은 레스토랑도 구상 해 놓은 게 있거든요. 조금 더 미래에는 이러한 경험적 지식과 이론적 지식으로 해외창업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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