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와 잇세이와 미디어 선정주의: 일본이 전과자들에게 유난히 가혹한 곳이라고 하면서 일본 사회가 가혹하다는 피해자 코스프레로 '배부른 투정'을 했는데, 인육 먹은 살인범이 쓴 책이 히트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존중을 받고 생고기 먹는 방송의 진행자가 되고 AV 배우도 할 수 있는 나라가 '가혹한' 나라라면 가혹하지 않은 나라는 대체 어느 수준이란 말인가
사가와 잇세이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을 묘사한 자서전을 출판했는데 이게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1992년엔 일본의 방송인과 AV 제작자들이 그를 데려다 천박한 영상물을 찍어 팔기도 했다. 음침한 지하에서 여자들이 자발적으로 마약에 취하고 변태적인 성행위를 하는 클럽에서 시체를 훼손하며 난교를 한다는 줄거리이다. 또한 백인 AV 배우들이랑 하는 AMWF AV를 찍기도 했다. 이후 일본에서 여러 식당에 관한 리뷰를 잡지에 쓰는 저널리스트 활동도 했는데, 방송에서는 이런 점을 눈여겨 봤던지 그를 요리 방송에 초대해 생고기를 맛보며 평가를 하는 프로를 진행하기도 했다.[19]
이외에도 여성의 나체가 주된 그림들을 그려 돈을 벌었고 2000년대 이후엔 자신의 살인 및 식인 체험담을 여러 매체로 지겹도록 우려먹고도 모자랐는지 직접 <만화 사가와 씨>(まんが サガワさん)이라는 만화를 그려 팔아먹기까지 했다. 혐오주의[20]
사실 식인 살인사건은 세계 곳곳에서 터지지만 그런 살인마들은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처벌을 받는 게 보통이고 살인범이 회고록이나 기타 그런 걸 낸다 해도 판매수익은 죄다 피해자 유족에게 가게 하는 법안이 만들어지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식인 살인마가 오래 수감되지도 않고 사회에 복귀해서 쓴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TV에 나오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듯 웃으면서 떠들어 대고 광고에도 나오면서 스타처럼 취급받는 경우는 전세계를 뒤져봐도 없어서 더더욱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검경(檢警)에서 정신질환으로 오인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책임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프랑스 정부가 일본 측에 관련 정보 제공을 거부한 진짜 이유는 장염을 뇌염으로 오진하여 정신이상자로 분류한 의사의 실수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처벌을 면했으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반성하며 속죄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평생을 살아야 마땅할 터인데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며 오히려 고인드립까지 했으니 욕을 먹은 것이다.
한국이었다면 식인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고 먹은 경험을 자랑스럽게 쓴 자서전을 내려는 출판시는 없을 것이고 방송사에서도 절대 출연 시키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인육 범죄자가 방송에 출연하여 인기를 누린다는 것은 학폭 미투에서 지목된 연예인들의 퇴출 사례를 봐도 불가능하다. 직장조차 구하기 힘들 텐데, 실제 지존파의 가족들이 다들 이사 가고 사형집행 후 사체 인수도 거부하여 국가에서 장례를 치렀을 정도로 연좌제격인 차별을 두려워하며 연을 끊었지만 일본은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라 표현의 자유라며 방송에 출연하고 책도 내며 범인이 목에 힘주고 다녔기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물론 당시에는 일본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저지른 자국 국적의 범죄자에 대한 인식이 21세기에 비해 매우 관대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는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안 쓰며 잘 나갔으나 그의 죄 없는 가족들은 얼굴을 못들고 다닐 정도로 차별당했으며 그의 부모는 사가와를 잘못 키웠다고 자책하고 부끄러워 했다고 한다.
해외에선 당연히 아주 신나게 깠고[21] 일본에서도 "어째서 그가 처벌받지 않는가"와 그의 유명세에 기대 돈을 벌려는 방송가에 비난이 빗발쳤다. 식인 살인마가 백주대낮에 당당하게 길을 걸어다닌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일본 국민들이 늘어났고, 인터넷이 발달한 21세기에는 더더욱 불안해하는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이외에도 여성의 나체가 주된 그림들을 그려 돈을 벌었고 2000년대 이후엔 자신의 살인 및 식인 체험담을 여러 매체로 지겹도록 우려먹고도 모자랐는지 직접 <만화 사가와 씨>(まんが サガワさん)이라는 만화를 그려 팔아먹기까지 했다. 혐오주의[20]
사실 식인 살인사건은 세계 곳곳에서 터지지만 그런 살인마들은 사형이나 무기징역 같은 처벌을 받는 게 보통이고 살인범이 회고록이나 기타 그런 걸 낸다 해도 판매수익은 죄다 피해자 유족에게 가게 하는 법안이 만들어지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식인 살인마가 오래 수감되지도 않고 사회에 복귀해서 쓴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TV에 나오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듯 웃으면서 떠들어 대고 광고에도 나오면서 스타처럼 취급받는 경우는 전세계를 뒤져봐도 없어서 더더욱 악명을 떨치게 되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검경(檢警)에서 정신질환으로 오인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책임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프랑스 정부가 일본 측에 관련 정보 제공을 거부한 진짜 이유는 장염을 뇌염으로 오진하여 정신이상자로 분류한 의사의 실수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처벌을 면했으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반성하며 속죄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평생을 살아야 마땅할 터인데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며 오히려 고인드립까지 했으니 욕을 먹은 것이다.
한국이었다면 식인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고 먹은 경험을 자랑스럽게 쓴 자서전을 내려는 출판시는 없을 것이고 방송사에서도 절대 출연 시키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인육 범죄자가 방송에 출연하여 인기를 누린다는 것은 학폭 미투에서 지목된 연예인들의 퇴출 사례를 봐도 불가능하다. 직장조차 구하기 힘들 텐데, 실제 지존파의 가족들이 다들 이사 가고 사형집행 후 사체 인수도 거부하여 국가에서 장례를 치렀을 정도로 연좌제격인 차별을 두려워하며 연을 끊었지만 일본은 개인주의가 강한 나라라 표현의 자유라며 방송에 출연하고 책도 내며 범인이 목에 힘주고 다녔기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물론 당시에는 일본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저지른 자국 국적의 범죄자에 대한 인식이 21세기에 비해 매우 관대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겠지만 말이다. 그는 주변의 시선을 전혀 신경 안 쓰며 잘 나갔으나 그의 죄 없는 가족들은 얼굴을 못들고 다닐 정도로 차별당했으며 그의 부모는 사가와를 잘못 키웠다고 자책하고 부끄러워 했다고 한다.
해외에선 당연히 아주 신나게 깠고[21] 일본에서도 "어째서 그가 처벌받지 않는가"와 그의 유명세에 기대 돈을 벌려는 방송가에 비난이 빗발쳤다. 식인 살인마가 백주대낮에 당당하게 길을 걸어다닌다는 사실에 경악하는 일본 국민들이 늘어났고, 인터넷이 발달한 21세기에는 더더욱 불안해하는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그의 책이 베스트 셀러에 오르고 많은 정신나간 러브콜들을 받던 1986년부터 2000년까지는 꽤나 이름을 날리면서 벌이도 꽤 짭짤했던 모양이지만 2000년 이후에는 돈도 벌고 명성을 유지할 목적으로 쓴 원고는 그 어떤 출판사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냥 자극적인 범죄 썰을 팔아서 떡상했던 인물인지라 소재가 식상해져서 출판사에서 안 받아준 것이지 갑자기 출판사가 정의롭고 양심적으로 변해서 거부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여러 출판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원고를 출간해 달라고 요청 했지만 결국 실패의 쓴맛을 보고 글쓰기 및 그림을 그만두고 구직 활동에 나섰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흉악범인 그를 고용하려고 하는 기업은 어떤 곳도 없었다. 궂은 일을 하는 단기 아르바이트조차 구하지도 못했다. 프랑스어 학원에 강사로 취직하려고 했을 땐 학원 원장이 자기 정체를 숨기지 않고 떳떳하게 본명을 밝히면서 면접을 보러 온 그의 당당함에 흥미를 느껴서 고용하려고 했지만 학원의 모든 관계자와 선생들이 들고 일어나 반대하여 출근도 못 해 보고 빛의 속도로 잘렸다.
거기다 인터넷이 발달한 21세기에는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처럼 흉악한 범죄를 일으켜도 처벌 하나 받지 않는 것도 모자라 뻔뻔하게 굴면서 살아 있는 사카키바라 사건의 가해자,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가해자들과 같은 살인마들이 현재도 무사히 생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도 높게 비난하며 살인범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들을 자주 접할 수 있을 정도라서 앞으로도 이렇다 할 회사에 취업은커녕 아르바이트조차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애초에 상술한 것처럼 그가 유명 연예인마냥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유명인사로서 어그로를 끌기까지 했기 때문에 평범한 범죄자들마냥 조용히 잊혀져서 평범하게 돈을 벌면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돈이 많은 부모 곁에서 호강하던 시절과 달리 어머니는 자살해 버렸고[22] 아버지는 사업이 몰락해서 2005년에 향년 90세로 폐인이 된 상태에서 뇌경색으로 죽었다.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나머지 가족 및 친척들은 그가 장례식에 오지 못하게 그냥 막아 버렸다. 일본에서는 아무리 명예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더라도 사람이 모자라다거나 사고를 자주 쳤다는 이유로 가족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막는 일은 없지만, 절도나 폭력 같은 단순 잡범도, 중대한 피해를 입힌 과실범도 아닌 극악무도한 흉악범이었던 그의 전력을 생각하면 이해가 충분히 가는 부분이다.
그가 아버지와 각별한 사이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버지의 사망 직후 아버지가 채무자들에게 빚을 모두 갚느라 집과 재산을 모두 처분해야만 했고 서민 공공 아파트로 강제로 이사하면서 직장도 없이 근근이 살아갔다. 악의 고백을 한국어로 번역한 수리(예명)라는 사람이 2000년대 중순에 일본으로 가서 이 작자를 만났는데 그럭저럭 평범한 서민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2009년엔 미국 & 캐나다의 언론사인 바이스에서 그의 이후 인생에 대해 인터뷰[23]를 했는데 '최소한 교도소에선 옷, 밥, 잘 곳을 주지만, 살인자로 낙인찍혀서 사회에 내던져지는 건 정말 가혹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나마 인터뷰 당시엔 자신의 글을 게재할 잡지사가 한 두 군데 정도는 있었던 모양이라 반성은커녕 그럭저럭 살아가며 추억을 되새김질했던 것 같다. 이후 같은 언론사에서 2011년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방송했는데 거기 버젓이 나와서 잘난 듯이 인터뷰한 것을 보면 살인 및 식인에 대해 일절 죄책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정도면 정말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추정된다. 참고로 다큐에서 공개된 집 내부를 보면 방 한쪽에 여자 사진을 도배해 놨는데 대부분이 우에토 아야의 사진이며 그녀의 사진을 보며 정말 맘에 든다고 몇 번이고 말한다. 물론 그게 무슨 의도로 마음에 든다는 뜻인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소원은 서양 여자에게 잡아먹히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몰락을 혹독한 사회적 처벌이라고 하기엔 정작 사회적 처벌을 받았어야 할 당시에는 잘나갔다는 점에서 모순이 있다. 일본이 전과자들에게 유난히 가혹한 곳이라고 하면서 일본 사회가 가혹하다는 피해자 코스프레로 '배부른 투정'을 했는데, 인육 먹은 살인범이 쓴 책이 히트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존중을 받고 생고기 먹는 방송의 진행자가 되고 AV 배우도 할 수 있는 나라가 '가혹한' 나라라면 가혹하지 않은 나라는 대체 어느 수준이란 말인가. 진짜 전과자에게 가혹한 나라라면 인터뷰를 실어 주는 언론조차 없어야 하며 인터뷰를 시도하는 언론조차 퇴출될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범죄 경험을 책으로 팔고 방송 출연료로 부를 쌓았다. 사실 그때 벌어들인 돈만 잘 관리했다면 노후 걱정은 없었을 텐데 흥청망청 쓰다가 궁핍해진 것을 사회적 처벌로 그리됐다고 하기엔 잘 나가던 시절에 너무 돈을 많이 벌었다.
정리하자면 그의 몰락은 그가 늙은 시점에 와서야 뒤늦게 사회적 처벌이 작동했다기보다는 내세울 게 '인육 먹은 썰' 밖에 없는 사람이 나이만 먹고 썰도 재미가 없어져서 안 팔려 몰락한 것에 가깝다. 그가 젊은 시절엔 대학 나온 것만으로도 내세울 게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일본도 고학력 사회가 되고 일본인 기준으로 그닥 특별히 좋은 대학 출신도 아닌 데다[24] 특별한 사회 경험도 없고 키도 150이 안 되고 얼굴도 못생기고 아무 능력도 없고 인육 먹은 썰밖에 없는 노인은 어느 나라를 가도 젊은 시절에 돈을 벌어 놓지 않았다면 말년이 힘들 것이다.
한편 사가와 잇세이가 왜 빈털털이가 되었는지는 동생의 증언을 보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한데, 동생의 증언에 의하면 기본적인 사회성조차 결여된 사람인 듯 하다. 동생인 사가와 준은 첼로를 연주하는 취미가 있었고 집안에 100만 엔이 넘는 고가의 첼로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사가와 잇세이가 훔쳐다 팔았다고 하며, 부모님에게도 계속 손을 벌린건 물론, 집안의 미술품들을 훔쳐다 팔거나 심지어는 아버지 지갑에서 돈을 훔쳐 쓰기까지 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 짓을 돈벌이가 끊긴 50대에 들어서도 저질렀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정도였으니 젊었을 땐 미래에 대한 생각 없이 얼마나 방탕하게 살았을 지는 뻔한 일이다.
거기다 인터넷이 발달한 21세기에는 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그처럼 흉악한 범죄를 일으켜도 처벌 하나 받지 않는 것도 모자라 뻔뻔하게 굴면서 살아 있는 사카키바라 사건의 가해자,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가해자들과 같은 살인마들이 현재도 무사히 생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도 높게 비난하며 살인범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들을 자주 접할 수 있을 정도라서 앞으로도 이렇다 할 회사에 취업은커녕 아르바이트조차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애초에 상술한 것처럼 그가 유명 연예인마냥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유명인사로서 어그로를 끌기까지 했기 때문에 평범한 범죄자들마냥 조용히 잊혀져서 평범하게 돈을 벌면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돈이 많은 부모 곁에서 호강하던 시절과 달리 어머니는 자살해 버렸고[22] 아버지는 사업이 몰락해서 2005년에 향년 90세로 폐인이 된 상태에서 뇌경색으로 죽었다.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나머지 가족 및 친척들은 그가 장례식에 오지 못하게 그냥 막아 버렸다. 일본에서는 아무리 명예를 중시하는 문화가 있더라도 사람이 모자라다거나 사고를 자주 쳤다는 이유로 가족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막는 일은 없지만, 절도나 폭력 같은 단순 잡범도, 중대한 피해를 입힌 과실범도 아닌 극악무도한 흉악범이었던 그의 전력을 생각하면 이해가 충분히 가는 부분이다.
그가 아버지와 각별한 사이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버지의 사망 직후 아버지가 채무자들에게 빚을 모두 갚느라 집과 재산을 모두 처분해야만 했고 서민 공공 아파트로 강제로 이사하면서 직장도 없이 근근이 살아갔다. 악의 고백을 한국어로 번역한 수리(예명)라는 사람이 2000년대 중순에 일본으로 가서 이 작자를 만났는데 그럭저럭 평범한 서민 아파트에서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2009년엔 미국 & 캐나다의 언론사인 바이스에서 그의 이후 인생에 대해 인터뷰[23]를 했는데 '최소한 교도소에선 옷, 밥, 잘 곳을 주지만, 살인자로 낙인찍혀서 사회에 내던져지는 건 정말 가혹한 처벌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나마 인터뷰 당시엔 자신의 글을 게재할 잡지사가 한 두 군데 정도는 있었던 모양이라 반성은커녕 그럭저럭 살아가며 추억을 되새김질했던 것 같다. 이후 같은 언론사에서 2011년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방송했는데 거기 버젓이 나와서 잘난 듯이 인터뷰한 것을 보면 살인 및 식인에 대해 일절 죄책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정도면 정말로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아닐까 추정된다. 참고로 다큐에서 공개된 집 내부를 보면 방 한쪽에 여자 사진을 도배해 놨는데 대부분이 우에토 아야의 사진이며 그녀의 사진을 보며 정말 맘에 든다고 몇 번이고 말한다. 물론 그게 무슨 의도로 마음에 든다는 뜻인지는 본인만 알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소원은 서양 여자에게 잡아먹히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몰락을 혹독한 사회적 처벌이라고 하기엔 정작 사회적 처벌을 받았어야 할 당시에는 잘나갔다는 점에서 모순이 있다. 일본이 전과자들에게 유난히 가혹한 곳이라고 하면서 일본 사회가 가혹하다는 피해자 코스프레로 '배부른 투정'을 했는데, 인육 먹은 살인범이 쓴 책이 히트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존중을 받고 생고기 먹는 방송의 진행자가 되고 AV 배우도 할 수 있는 나라가 '가혹한' 나라라면 가혹하지 않은 나라는 대체 어느 수준이란 말인가. 진짜 전과자에게 가혹한 나라라면 인터뷰를 실어 주는 언론조차 없어야 하며 인터뷰를 시도하는 언론조차 퇴출될 것이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범죄 경험을 책으로 팔고 방송 출연료로 부를 쌓았다. 사실 그때 벌어들인 돈만 잘 관리했다면 노후 걱정은 없었을 텐데 흥청망청 쓰다가 궁핍해진 것을 사회적 처벌로 그리됐다고 하기엔 잘 나가던 시절에 너무 돈을 많이 벌었다.
정리하자면 그의 몰락은 그가 늙은 시점에 와서야 뒤늦게 사회적 처벌이 작동했다기보다는 내세울 게 '인육 먹은 썰' 밖에 없는 사람이 나이만 먹고 썰도 재미가 없어져서 안 팔려 몰락한 것에 가깝다. 그가 젊은 시절엔 대학 나온 것만으로도 내세울 게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일본도 고학력 사회가 되고 일본인 기준으로 그닥 특별히 좋은 대학 출신도 아닌 데다[24] 특별한 사회 경험도 없고 키도 150이 안 되고 얼굴도 못생기고 아무 능력도 없고 인육 먹은 썰밖에 없는 노인은 어느 나라를 가도 젊은 시절에 돈을 벌어 놓지 않았다면 말년이 힘들 것이다.
한편 사가와 잇세이가 왜 빈털털이가 되었는지는 동생의 증언을 보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한데, 동생의 증언에 의하면 기본적인 사회성조차 결여된 사람인 듯 하다. 동생인 사가와 준은 첼로를 연주하는 취미가 있었고 집안에 100만 엔이 넘는 고가의 첼로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사가와 잇세이가 훔쳐다 팔았다고 하며, 부모님에게도 계속 손을 벌린건 물론, 집안의 미술품들을 훔쳐다 팔거나 심지어는 아버지 지갑에서 돈을 훔쳐 쓰기까지 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런 짓을 돈벌이가 끊긴 50대에 들어서도 저질렀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이정도였으니 젊었을 땐 미래에 대한 생각 없이 얼마나 방탕하게 살았을 지는 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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