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한국의 수준은 지금의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수준이었고, 납치와 인신매매가 빈번했다; 정치쇼라 해도 노태우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것은 참 잘한 것 / 박항서와 박완규의 납치썰
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218207
베트남 축구 영웅 박항서 감독이 납치당할 뻔한 일화를 공개했다. ⓒSBS
때는 바야흐로 2018년. 박항서 감독은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베트남이 U-23 아시안컵에서 베트남이 준우승을 거두자, 자축과 휴식을 겸해 아내 최씨와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났다.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왔을 땐 밤 10시였다. 공항 주변에 택시는 없었다.
"저 앞으로 하얀 택시 한 대가 보였다. '택시 히어!' 외치더라. '날 알아봤구나' 싶었다." 박항서 감독이 지난 26일 방송된 SBS '신발 벗고 돌싱포맨'에 출연해 말했다.
심상치 않은 택시였다. 수상한 힙합 음악이 흘렀고, 기사는 자꾸만 그의 지갑을 흘끔거렸다. "한국 돈 만원을 건네더니 베트남 돈과 바꾸자고 하더라. 안 한다고 했다. '얘가 날 모르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 박항서는 말했다. '베트남 축구 영웅'의 얼굴을 알아봤더라면 수상쩍은 행각을 벌일 리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감독님 지금 납치된 거야요. ⓒSBS
"항상 다니는 길이라 잘 아는데, 갑자기 우측 산길로 빠지더라. '어딜 가냐'고 물으니 '오피스 간다'"고 했다. 차는 으슥한 공터에 가서 섰다. "아내에게 '침착해라'고 했다" 박항서 감독은 끌려왔음을 실감했다.
이후 기사가 차에서 내리더니 A4 용지를 가져와 그에게 사인을 요구했다. 박항서 감독은 "얘가 날 모르는구나" 확신했다. "사인을 거부하고 일단 차에서 내리니 10명 정도가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더라." 납치 공범이 분명하지만, 여기서 박항서 감독은 희망(?)을 봤다. "얘는 날 모르지만 이 10명 중 1명은 알 수 있다"는 기대가 싹텄다.
화색. ⓒSBS
이어 "차에서 내리니까 날 딱 쳐다보더니 '오 미스터 박! 박항서!' 하더라. '아, 얘들이 날 아는구나' 안심했다"고 하자, 패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저 사람 왜 데려왔어? 박항서야 빨리 보내~'라고 했다. 아내와 나보고 차에 타라더니 가라더라. 황당했지만 지금은 추억이다."
출처 : 허프포스트코리아(https://www.huffingtonpost.kr)
https://www.chosun.com/national/national_general/2024/07/21/VM7WF5YDMBFM5NRGAV2LXFNUTU/
가수 박완규(51)가 과거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당했던 사연을 털어놔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0일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 출연한 박완규는 “89년도였다. 당시 대한민국에 말도 안되는 게 유행이었다. 인신매매였다”며 “그때는 TV를 틀면 인신매매를 당했다는 내용이 많이 나왔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으로 아침 등교 중이던 박완규는 ‘차 좀 밀어 달라”는 누군가의 부탁에 은색 승합차를 손으로 밀어줬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뒤로 흉기가 들어온 것이었다. 박완규는 “’소리 지르면 죽인다’는 인신매매범의 협박과 함께 차에 탑승했다. 몸무게가 45kg이었다”며 “납치를 당한 곳은 경기도 평택시로, 과거엔 송탄시로 불리던 곳”이었다고 말했다.
박완규는 “차량에는 이미 여학생 두 명이 잠들어 있었다”며 “인신매매범은 내게 자양강장제를 마시라고 권유했다”고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박완규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몸에 계속 상처를 내면서 참았고, 이후 나중에 병원에서 혈액 검사하니 수면제 성분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는 “결국 대전까지 끌려갔다. 대전 터미널 근처 어느 골목에서 인신매매범들이 밥을 먹으려고 주차했다. 그때 잠든 척하고 있다가 도망을 나와 택시를 바로 탔다”고 했다.
이어 “택시 기사님에게 평택(송탄)까지 가달라고 하니, 처음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 기사님도 ‘뭐야’라고 했지만, 제 상태가 이상한 걸 알고 출발했다”며 “가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후 휴게소에 들러서 기사님이 경찰에 신고를 해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관할 경찰서가 평택 경찰서였는데, 나중에 4인조 범인 대질까지 했다. 이후 인신매매범들이 잡혔다고 해서 갔는데 그 4인조가 아니었다”면서 “당시 인신매매가 너무 유행이었다. 왜소한 남자들을 많이 잡아서 멸치잡이 배로 노예처럼 팔아넘기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박완규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3년간 부활의 5대 보컬로 활동하다 탈퇴했다. 이후 2019년 부활의 10대 보컬 김동명의 후임으로 재영입됐다.
필리핀 관광객 연쇄 표적납치 살인사건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의 주범 최세용[1], 김종석, 김성곤은 사건 이전인 2007년 7월 9일에 이미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의 한 환전소에서 직원(임○연, 당시 만 25세)을 살해하고 1억 원을 갈취한 후 해당 혐의로 이미 지명수배되었다.[2] 이후 김종석과 최세용, 김성곤 일당은 필리핀으로 도주했고 이들은 그 곳에서도 똑같은 악행을 저질렀다.
이들의 현상수배전단. 범죄혐의가 2중으로 게재되어 있다.
이들은 앞서 말레이시아에서 한 사람을 먼저 납치했는데 그가 김원빈이었다. 이들은 김원빈이 돈이 될 거 같은 놈이라고 판단하고 납치하여 마구 구타하면서 금품갈취를 시도했으나 생긴 것과는 다르게 금품을 갈취할 건덕지가 없다고 판단하자 김원빈[3]을 범행에 가담시켰으며 현지에서 알게 된 김원근[4]도 이들의 범죄에 합류했다.[5] 그리고 필리핀에서 홍석동(1981~2011)을 납치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이 여성도 아닌 남성을 대상으로 삼았음에도 피해자들이 무기력하게 납치된 이유는 바로 '총'인데 필리핀은 총기가 허용되는 나라인지라 이들은 그것을 제대로 활용했다. 실제로 딴지일보와 인터뷰했던 납치 피해자는 덩치도 크고 완력엔 자신 있던 사람이었는데 일당들은 먼저 친근하게 접근하니 형이었던 피해자가 헤드락을 걸면서 장난까지 쳤다고 한다. 그렇게 친해진 동생인 줄 알았는데 좁은 차 안에서 총을 꺼내드니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아 장난치는 줄 알았는데 상황을 깨닫고 순순히 명령에 복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8]
딴지일보와 인터뷰했던 피해자와 '그것이 알고싶다'에 출연했던 생존 피해자들을 보면 이들이 그냥 다짜고짜 인질을 살해하는 수법은 아니었다. 딱히 살인을 즐기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살인을 꺼리지도 않는다는 것은 안양 환전소 살인사건에서 드러났다. 딴지일보와 인터뷰한 피해자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나중에는 같이 범행하자는 제의까지 받았을 정도로 비위를 맞췄고 본인도 수배 중인지라 풀어줘도 별 상관없겠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알에 나온 생존 피해자들도 충실하게 지시를 따랐으며 평범한 소시민들이었다. 하지만 실종자들을 보면 소령 출신과 공무원 출신인데 이들의 인맥을 고려하면 자칫 풀어줬을 시 자신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으며 소령 정도라면 순순히 복종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이들의 비위를 거스르거나 탈출 시도를 한다든지 했다면 환전소 여직원을 참살한 이들에게 자비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비슷하게 살인마 정두영도 강도질할 때 명령에 복종하면 살려뒀으나 도망치거나 반항하려는 기미가 보이면 폭발하여 경찰이 원한범죄로 의심할 정도로 잔혹하게 살해했다.
최세용에겐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특정인의 전과여부를 전화 한 통화로 조회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딴지일보와 인터뷰한 피해자도 수배 중이었는데 처음에는 안 믿다가 전화 한 통화로 조회했다고 하며 노트북으로 피해자의 금융정보를 손쉽게 알아내 신용 불량자라는 거짓말도 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흥신소에 돈을 주고 여자친구 주소를 알아내 스토킹 살인했던 사건이 있었는데 부패 공무원이 개인정보를 팔아넘겼던 걸로 밝혀졌으니 최세용도 누군가와 내통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납치한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신상까지 따서 조사하는 용의주도한 이들의 성격상 풀어줘서 안 될 것 같은 인물이라면 풀어주지 않았을 것이다. 홍석동은 여동생이 항공사 직원이라 필리핀 티켓이 싸게 나온 걸 여동생이 줬다가 나 때문에 죽었다고 자책했을 정도였으니 항공사와 연관된 피해자라면 자칫 풀어줬을 시 업계에 공론화되거나 위조여권으로 돌아다니는 이들에게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윤철완을 납치한 후 홍석동을 납치했으며 홍석동의 부모에게 돈이 떨어질 때마다 돈을 보내라고 요구했다.
이후 김원근, 김원빈과 김성곤이 잇따라 검거되었으나 김성곤은 검거되자마자 탈옥했다. 그런데 이들이 현지에서 휴대전화 판매사업을 하던 윤○○씨를 납치해 금품을 뜯어내던 중 예상치 못한 저항에 격투를 벌였고 김종석이 오발사고를 내 김성곤이 총상을 입었으며 김성곤은 치료를 위해 병원에 들렸다가 또 다시 체포되었다. 김원빈은 한국으로 압송된 뒤 살인 혐의는 인정되지 않고 납치만 인정되어 징역 10년을 선고받았으며 김성곤은 필리핀 당국에 의해 마닐라가 아닌 세부로 호송되는 등 뭉그적거리면서 한국 압송이 지연되었다.
그리고 2012년 6월 19일 김종석이 먼저 홍석동의 가족에게 접근하여 최후통첩을 했다.
- 1. 500만 원을 주면 홍석동을 찾아주겠다.
- 2. 언론(딴지일보)에 내 정보를 유출시키면 재미없다.
그리고 최세용과 김종석은 제3국으로 도주했다.
- 살인범 일당, 최세용, 김종석, 김성곤으로 확인. 여기에 '뚱'이라 불리는 김원빈과 현지 교민인 김원근 합류, 필리핀에서 지속적으로 한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납치 행각.
- 2011년 11월 초, 김종석이 홍석동 가족과 윤철완 가족 측에 전화해 금품 요구. 홍석동이 죽었다고 주장하면서 유골이라도 찾아가기 위해선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
-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숨어있던 김원근, 여권수사로 체포돼 국내로 압송하여 징역 8년 선고.
- 홍석동이 납치된 지 2달 조금 지난 2011년 11월 30일, 최세용 일당, 필리핀 마닐라 시내 환전소 침입, 권총강도.
- 2011년 12월 14일, 필리핀 마닐라 마카티 내 PC방에서 현지 경찰에 의해 김성곤, 김원빈 체포.
- 김원빈과 함께 유치장에 수감된 김성곤, 12월 26일 경 탈옥.
- 2011년 12월 31일, 김원빈이 부모의 설득으로 귀국하던 중(본인 주장) 공항경찰대에 체포.
- 김성곤 총격전을 벌이다가 총상. 이후 재체포.
- 김종석은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중 자살.
- 총책임자급인 최세용이 체포.
- 김종석과 최세용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인터넷을 하면서 특히 한국의 여러 사이트를 접속해왔다. 더욱이 딴지일보는 매일 접속하며 자신들을 수배하는 상황을 모니터링했고 인터넷 사이트에서 범행대상을 물색하기도 했다.
- 딴지일보의 기사에는 홍석동의 아버지가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납치사건 7번기사 댓글 참고.
- 또 다른 납치 피해자 백명주에 의하면 최세용에게 '김종석이 군바리(윤철완)를 살해해서 너를 풀어줄 수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윤철완은 살해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 안양 환전소 여직원 살인사건은 당초에 알려진 3명이 범인이 아니라 총 5명이며 전○건이라는 사람과 최세용의 친동생 최○포가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대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받았다.
- 환전소 살인사건에서 살인을 한 것은 자기 과시용이라고 보고 있다. 그냥 살해한 것이 아니라 목의 2/3 가량을 피해자의 뒤에서 잔인하게 그은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마치 처형식을 한 것과 같이 말이다. 최세용과 김성곤은 이 사건에 가담한 것은 인정했지만 피해자를 살해한 건 김종석의 독단이었다고 주장했다.[10]
-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한국에서 해외로 납치실종된 것으로 보이는 피해자도 있으며 연관된 모든 범인들은 전부 자기들과는 상관없음으로 일관했고 사건은 꼬이고 또 꼬였다. 게다가 그 범인의 부인도 똑같이 연극을 했다.
- 이유는 모르지만 범인들은 최세용을 겁내고 있으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복할 것이라고 한다.[11]
- 현재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범죄인 인도조약인데 그 나라에서 형기를 마쳤거나 일정기간의 형기를 마친 다음에 범죄인 인도를 할 수 있어서 인도요청을 한다고 해도 그게 경찰, 검찰, 법무부, 외교부, 또 그 나라 외교부, 법무부, 검찰, 경찰로만 가는데 걸리는 기간만 수 개월이 된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와 인터뷰한 해외 도피사범을 추적했던 일을 하였던 한 관계자는 범죄자들이 이러한 점을 악용하여 그 나라 현지법을 어겨 교도소 체류 직행 기간을 늘려 한국으로의 송환을 어렵게 만든다고 얘기했다. 김종석이 검거됐을 때 김종석의 아내 마델은 김종석이 자신의 친구를 강간한 걸로 고소장을 제출하였는데 그 이유는 경찰을 매수하여 탈옥시키도록 교도소를 지키고 있는 간수를 조종하여 탈옥이 쉽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 그것이 알고싶다 측에서 필리핀 검찰에 연락해 봤으나 언제 한국으로 갈 지 모름이라고 답변해 왔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에게 적극적으로 보여준다면 보내 줄 수 있다고 한다.
- 범인들은 서로에게 죄를 떠넘겼는데[12] 그들에게 증거를 받지 못하면 자기 발로 대한민국으로 걸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 이들에게 납치되었다가 몸값을 치르고 풀려났던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최세용은 피해자들의 신용카드 및 금융 관련 신상정보를 즉석에서 노트북으로 손쉽게 알아냈다고 한다.
최세용 Choi Se-yong |
왼쪽은 현상수배전단에서의 최세용, 오른쪽은 태국 검문소에서 찍힌 사진. |
그러나 최세용은 홍석동의 행방을 전혀 모른다며 버텼는데 홍석동이 필리핀에서 납치될 때 자신은 납치는 커녕 필리핀에는 있지도 않았으며 혼자만 태국에 건너가있는 상태라고 주장하면서 버텼고 홍석동의 어머니가 직접 태국에 찾아갔을때도 자살한 김종석의 단독 범행이라며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였으며 히죽히죽 웃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은 돈만 뺏었지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고 하였다. 이로서 홍석동의 행방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2013년 5월 11일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밝혀진 새로운 사실에 따르면 위의 모든 말이 거짓이며 그의 부인도 연극을 하고 있다고 한다.
최세용이 태국 치앙라이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2013년 5월 2일 차경택 총경에게 영어로 쓴 편지.[13] 최세용은 아내와의 서신 교환이 절실하다고 강조하며 한국어로 편지를 쓰지 못하게 한 교도소 측에 항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범인 최세용이 태국에서 추방되어 한국에 송환된다고 한다. 법무부 보도자료 태국에서 형을 다 마쳐야만 송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지만 한국 외교부의 노력이 있었는지 임시송환이라는 형식으로 송환이 성사되었다. 즉, 한국으로 보내서 한국에서 수사와 기소 및 형을 확정지으면 태국으로 돌려보내서 태국법의 형기를 채운 뒤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법의 형기를 채운다는 식이다. 물론 실제 확정 판결이 어찌 날 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살인죄가 인정되는 순간 이 자가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될 것은 불문가지라는 이야기다. 다만 이 종자가 자신의 혐의를 완강히 부인한 만큼 필리핀에 있는 김성곤의 조기송환도 추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필리핀측도 한국 정부와의 협상여하에 따라서는 송환에 동의할 것으로 보이는지라 아직 장담할 수는 없으나 희망이 조금씩 엿보인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한국 송환이 이루어지기 전 남색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에 낡은 슬리퍼 차림이었던 그는 “이런 행색으로 한국에 들어가려니 부끄럽습니다. 옷 한 벌만 사주세요.”라고 말했지만 "그냥 들어가. '금의환향’하는 거 아니야"라며 거절당했다.
한국으로 송환된 최세용.
10월 25일 경찰은 최세용을 검찰에 송치했다. 최세용이 홍석동씨의 생사여부와 행방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지는 않았지만 관련된 진술이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필리핀 현장조사 결과 김원빈 말대로 홍씨와 또 한 명의 피해자(정년퇴직공무원 김씨)가 암매장 된 것을 확인했으나 암매장 장소 위에 민가가 세워져서 시신 발굴에는 필리핀 정부의 허가와 수천만 원의 보상비가 필요하다고 하며 이 사안을 필리핀 정부와 중재해야 할 대한민국 외교부는 이번에도 미적거렸다.#
2014년 마침내 홍석동 및 또 다른 피해자인 김용열(실종 당시 50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 민가는 홍씨 시신 발굴 전까지만 해도 원 주인이 멀쩡히 살고 있었는데 협조 아래 바닥을 뚫었고 그 자리에서 시신[14]이 발견되었다 한다. 그러나 시신이 이미 백골이 된 상태였기 때문에 홍씨가 살해된 것인지, 사망한 것인지 밝히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어차피 증거가 애매하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정하기 때문에 최세용과 김성곤도 이 점을 강조하며 어떻게든 형량을 줄이려 들 것이다. 홍씨 등 납치 피해자를 살해한 걸로 판결이 나면 이들은 사형은 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15] 사형수 딱지를 다는 건 물론이고 평생 교도소 밖을 나갈 수도 없음 역시 명백한 반면 납치는 했으나 살해 의도가 없었던 상황에서 갑자기 사망한 걸로 판결나면 어지간해서는 30년 이하의 유기징역을 선고하므로 늙어서나마 사회로 복귀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세용은 별도로 안양 환전소 여직원 살인사건에 대한 강도치사죄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받은 상황이었으며 이후 항소심에서 현지에서 벌어진 2건의 강도살인과 수십건의 납치 등을 모두 병합하여 무기징역이 선고되었고 대법원 상고심에서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김성곤도 환전소 여직원을 살해하고 2건의 강도살인 및 수십건의 납치강도에 연루된 혐의가 모두 인정돼 대법원 상고심에서 마찬가지로 무기징역이 최종 확정되었다.
안양 환전소 여직원 살인사건 당시 운전책인 최세용의 동생 최○포와 파수꾼인 전○건은 2심에서 무죄로 판결되었고 이는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 2013고합96, 서울고등법원 2013노3826, 대법원 2016도3751)
김원근과 김원빈도 마찬가지로 1심에서 선고된 각 징역 20년, 12년이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되었다. 다만 이들이 태국과 필리핀 현지에서 살해했다고 자백한 안세립, 강XX에 대한 부분은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으며 윤철완 소령, 송XX 등 2명의 실종자에 대한 수사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럴만도 한 게 대한민국보다 넓은 필리핀에서 실종자를 찾는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며 찾았다고 해도 그건 몇 년 뒤의 이야기다.
재판 이후 최세용에 대해서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친서 전달 등으로 태국 법무부와 긴밀히 협력해 태국은 한국 내 실효적인 형집행과 추가범죄 수사·재판을 위해 사면·감형의 방식으로 태국 형집행을 종료하고 한국에 최종인도 양국 법무부의 긴밀한 협력 끝에 임시인도가 최종인도로 바뀌었다.보도자료
2018년 12월 26일 수원지방검찰청 안산지청 형사2부(윤원상 부장검사)는 최세용의 또 다른 시신 없는 살인 혐의에 대해 강도살인 및 국외이송유인 등의 혐의로 최씨와 전모씨를 기소했다. #
2019년 8월 23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최세용과 전모씨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하였다.(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18고합298) # 2020년 2월 20일에는 2심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각각 징역 12년이 선고되었다.(수원고등법원 2019노389) # 이 판결은 2020년 5월 28일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대법원 2020도3930)
이 사건은 지존파 사건, 석촌동 연쇄살인 사건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가장 중하고 악한 사건으로 분류되며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 등과 더불어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이 사건을 심도 있게 취재하여 2011년 9월 24일, 2013년 1월 19일, 2013년 5월 11일, 2015년 6월 6일에 네 번 방송했다. 첫번째 방송편에서는 윤철완을, 두번째 방송편에서는 홍석동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으며 세번째 방송편에서는 경찰 수사 중에 나타난 일당의 또 다른 조력자와 그동안 방송에 알려지지 않은 실종자를 다뤘고 네번재 방영분에서는 이들 조직의 탄생과 미쳐 밝혀내지 못한 피해자들, 그리고 현지인과의 커넥션을 다루었다.
2015년 6월 네 번째 방송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범죄자 일당들은 처음에는 금고털이 등 금품을 주로 털었던 털이범들이었고 교도소에서 서로 만남을 가지게 되면서 한탕 크게 벌리기 위해 영어 공부나 심리학, 법학 같은 것을 독학한후 멤버들이 출소한 후 각자 만나서 범죄 종자돈을 마련하기 위한 원정범죄를 저질렀는데 처음에는 한국의 도난문화재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의 한 불교 사찰을 털려다[17] 미수에 그쳤고 다시 일본 원정범죄를 저질렀는데 재일 한국인 자산가 할머니를 털어서 엄청난 돈을 확보했으며 그 돈으로 첫 원정범죄 실패로 인한 손실을 메꾸고 위의 안양 금고 사건으로 충분한 자금을 확보한 뒤 본격적으로 외국에 터잡고 연쇄범죄를 하는 것을 착수하기로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출소한 후 해외로 간 '먹튀' 출소 범죄자를 등치는 걸로 계획했지만 어느새 한국인 여행객을 연쇄납치하는 것으로 목적이 변질되었고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방송에서 추가적으로 밝혀진 시신이 발견된 피해자는 김용열(50세)이라는 갓 정년퇴직한 공무원과 시신을 찾지 못한 재미교포 강XX씨[18]가 있었으며 윤철완 피해자 가족도 추가 인터뷰를 하였다.
범죄 과정에서 김종석은 현지인 아내(마델 부하이)와 결혼했으며 마델도 범죄 공모 혐의가 짙었다. 한 번은 한국 경찰에서 마델이 살던 은신처를 수색했는데 은신처에는 피해자에게서 뺏은 짐이 가득한 슈트케이스 등이 있으나 마델은 함구했다. 나중에 다시 본격적으로 수색하려고 할때 이미 마델은 은신처 안에 있는 물건들을 홀랑 싸들고 도망간 지 오래였다. 이후 마델의 생사에 대해서는 확인된 것이 전혀 없다.[19] 그래도 혹시나 해서 빈집을 헐고 땅을 팠지만 해당 은신처에서 시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며 납치 과정에서 현지인 범죄자를 일시적으로 고용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들의 범행을 도와준 필리핀 범죄자와의 인터뷰도 짧게나마 있다.
그리고 이들의 추가적인 은신처를 확인하기 위해 피해자들이 기억하는 은신처의 모습을 취재하였는데 그 중 결정적인 힌트가 하나 나왔다. 바로 마닐라에서 3~40분 거리에 있는 서민형 소규모 주택단지[20]이며 범인들이 설렁탕을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해서 가져왔다는 것이다. 취재진은 이를 근거로 마닐라섬 말라떼 지역의 유일한 설렁탕집을 찾아낸 뒤 그 가게 종업원들이 최세용과 김성곤을 자주 봤다는 것을 확인하으며 여기에 더해 그들이 근처 까비떼 지역에 은신처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까지 밝혀냈지만 목격자가 있어야 압수수색 및 발굴조사 영장을 발급해 주는 필리핀 현지법 때문에 더 이상의 수사를 진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다만 일종의 후일담 형식으로 필리핀을 배경으로 하지 않고 일당들이 한국으로 귀국한 상황을 줄거리로 하며 필리핀에서 수사망이 좁혀오자 일당들은 한국과 터키로 피신한다. 한국으로 온 일당들은 필리핀에서 피해자들을 협박할 때 찍어두었던 영상을 이용해 돈을 뜯어내려고 하고 터키로 숨어든 일당은 터키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을 납치하여 가족들에게 돈을 요구하며 납치 피해자의 어머니가 찾아오자 자살한 일당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는 모른 척하거나 일당들끼리도 범죄로 마련한 돈을 독차지하기 위해 서로 살해하는 등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준다.
방송에서는 이 사건의 발단이 된 안양 환전소 직원 살인사건을 포함해 설명하였고 피해자인 홍 씨의 모친이 직접 출연하여 인터뷰를 하였으며[22] 아직까지도 생사를 알 수 없는 윤철완 소령의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건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시즌 최초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 것으로 끝냈다. 때문에 엔딩 후 스태프롤에서 "잊지 말아야 할 끝나지 않은 이야기"란 글귀가 나왔다.
동남아시아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죽이고 나서도 가족에게 연락해서 시체값을 받아내려고 한 점, 범인들 중 한 명은 죽고 다른 한 명은 잡힌 점 등 여러 부분에서 이 사건을 모티브로 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극 중 국내 사채 조직의 보스의 아들이 피해자로 나오는 점이나 범인들을 잡기 위해 그 조직에서 사람을 보내는 것, 그리고 피해자를 주택 마당에 암매장 한 점 등은 이 사건보다는 그 이전에 벌어졌던 한국 카지노 대부 중 한 명이었던 정낙진 전 워커힐 카지노 사장의 아들 피살 사건##에서 설정을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작중 메인 빌런인 강해상이 최세용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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