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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일탈' 아니라 '현상'…올해 대선서 패해도 4년 후 또 나올 것; “트럼프는 역사상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할 때 등장해 그 시대의 가식을 벗겨 내는 인물일 수 있다. 본인이 그것을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냥 우연일 수도 있다.” -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https://www.chosun.com/politics/diplomacy-defense/2024/06/07/QLEAWLGG3RF4TBWQNLJLCFKDMM/

트럼프는 '일탈' 아니라 '현상'…올해 대선서 패해도 4년 후 또 나올 것

['트럼프의 귀환' 출간 조병제 전 국립외교 원장 인터뷰]

트럼프, 美주도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종언의 상징
美 구조적 변화, "지금 미국은 우리가 알던 나라 아니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말고 '이분법적 세계관' 벗어나야"


트럼프의 귀환. 조병제 저

“트럼프는 역사상 한 시대가 종언을 고할 때 등장해 그 시대의 가식을 벗겨 내는 인물일 수 있다. 본인이 그것을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냥 우연일 수도 있다.” -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이 최근 ‘트럼프의 귀환-위기인가, 기회인가’를 출간하면서 표지에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의 이런 분석을 새겨 놓았다.

조 전 원장은 트럼프 현상이 ‘우연’이 아니라 미국의 주도한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바뀌는 징후일 수 있다는데 무게를 둔다. 트럼프 현상의 배경을 이해하고 이에 대응하는 방안을 우리가 고민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 전 원장은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후 1981년 외무고시 15회로 입부, 워싱턴 DC와 모스크바 등에서 근무하고, 북미국장·한미방위비 분담협상 대표· 외교부 대변인·주말레이시아 대사를 역임했다.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책과 관련한 출간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트럼프라는 인물을 통해 미국 정치·사회의 변화를 포착하려고 했다. 트럼프는 4년 전의 대선에서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주장한다. 터무니없는 일 같은데, 미국 국민 절반이 이 말을 믿는다. 트럼프는 올 2024년 대선에서 또 공화당 후보가 되었다. 4건의 형사 소송에 휘말려 있으면서도 모든 것이 정치적 음모라고 반박한다. 당선되면 바이든에게 보복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아는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자유와 인권이 보호되며, 민주적 절차가 지켜지는 나라다. 이런 모습의 미국이 2차 대전 이래의 ‘팍스 아메리카나’ 속에서 국제사회에도 전파되었다. 그러므로 지금 미국에서 진행되는 변화는 ‘세계사적 사건’이다. 특히 정부 수립부터 미국의 절대적 영향을 받아온 한국에는 대변혁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조 전 원장을 지난 2일 만나 책과 관련한 얘기를 2시간 반가량 나눴다. 다음은 이날 인터뷰를 주축으로 그의 책과 포럼 발표(5월 21일 북한대학원대학교 주최)를 참고해 작성한 것이다.

'트럼프의 귀환-위기인가, 기회인가'를 펴낸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미국사회의 거대한 구조적 변화

- 지금 미국의 변화는 일시적인 ‘일탈’이 아니라 지속되는 ‘현상’이라고 분석한 게 눈에 띈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누가 승자가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선에서 진다고 해도 지금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의 고립주의 현상, ‘아메리카 퍼스트’ 현상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바닥으로 들어가 보면 트럼프 지지자들이 꽤 많이 있다. 트럼프는 리일리티 TV 쇼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를 통해 알려졌는데, 그는 일반 대중을 갖고 노는 능력이 뛰어나다. 트럼프에 공감하는 이들이 거대한 세력화 돼 있다.”

- 트럼프가 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 아니라는 것인가.

“미국의 바탕이 달라지고 있다. 바이든이 이긴다고 해도 이런 현상이 없어지는 것 아니다. 4년 뒤에 똑같은 현상을 겪을 수 있다. 또 지금의 바이든 나이가 되는 트럼프가 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 나오는 것은 제한이 없다. "

- 트럼프에 대한 반발도 크지 않나.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미국 중서부는 빨간색(공화당)의 나라, 미국 동서부 연안은 파란색(민주당) 나라가 됐다. 주목할 것은 최근의 공화당은 노동자의 당이 되고, 민주당은 실리콘 밸리와 부자들의 당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레드 넥(뒷 목이 빨개질 정도로 육체노동을 하는 계층)’이 많은 중서부를 모두 휩쓸었다. 흑인들의 트럼프 지지도 상승세다.”

- 히스패닉의 트럼프를 지지율도 오르고 있다고 했는데.

“2015년 6월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하면서 멕시코 불법이민자들을 강간범이라고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강경한 이민정책을 구사하고 있는데, 미국 내에 이미 정착한 히스패닉은 국경을 안정시키고 일자리를 보호해주는 트럼프의 정책이 더 반가울 수 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새로 유입되는 이민자들과 경쟁 관계에 놓여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 “트럼프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지 마라”고 강조한다.

“트럼프가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 것을 복기해 보자. 그러면 미국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옳은 게 많이 있다. 지금의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이 아니다.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많이 줄어들었다. 지금 미국의 GDP가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5%인데, 중국이 18% 다. 절대 강국이 아니다. 국가의 목표와 수단 측면에서 살펴보자. 세계 여러 곳의 문제에 대한 개입 축소는 미국의 목표를 낮추는 것이다. 중동,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관여해왔는데 미국이 얻은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많은 미국인이 생각한다. 트럼프는 이런 것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해외 나가서 돈 쓰는 것 없애자고 한다. 트럼프의 제조업 재건, 국내산업의 강화는 미국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늘리자는 것이다. 제조업 능력을 제고 하고, 공급망을 강화하자고 한다. 국가의 목표와 수단 측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하는 게 트럼프 현상의 한 측면이다.”

- 트럼프 현상이 세계사적으로도 의의가 있나.

“그동안 세계는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하에 유지됐다. 키신저의 분석도 있지만, 그의 등장은 이게 올 만큼 온 것을 뜻한다.”

- 미국 내부에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사상이 잠복하고 있었다고 했다.

“20세기에 트럼프와 같은 생각을 가진 정치인들이 있었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27대 미 대통령 윌리엄 태프트의 장남인 로버트 태프트 상원의원도 주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고립주의자였고, 중상주의 정책을 주장했다. 강력한 군대가 있고, 대서양과 태평양에 둘러싸여 있는 미국은 국내문제에만 신경 쓰면 되지, 바다 건너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관여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2차 대전 이후 유엔가입, 브레턴우즈 협정, NATO 결성에 반대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세 번 나갔는데, 공화당 주류에서 이때 2차 대전의 영웅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를 내세워서 그의 백악관 진출을 막았다.”

<YONHAP PHOTO-1863> 트럼프 유세장에 모인 지지자들 (피닉스 AFP=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드림시티 교회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행사장에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등장하자 지지자들이 각종 팻말을 들고 환영하고 있다. 트럼프가 공식 행사에 참석한 것은 유죄 평결 후 처음이다. 2024.06.07 passion@yna.co.kr/2024-06-07 08:43:29/ <저작권자 ⓒ 1980-202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태프트의 뒤를 잇는 미국 정치인은 누구인가.

" 공화당의 이런 사조가 40년간 잠복 후 1992년, 1996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한 팻 뷰캐넌을 통해서 다시 나타난다. (뷰캐넌은 1992년 공화당 경선에서 23% 득표하고, 1996년에는 밥 돌 후보에 이어서 2위를 한다). 뷰캐넌은 레이건과 부시가 이끈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국제개입주의에 반대했다. 소수인종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을 강력히 비판했다. 역차별받는다고 느끼는 백인들의 박탈감을 2008년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러닝메이트였던 사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도 대변했다. 페일린은 2009년 재정 축소와 작은 정부를 주창하면서 등장한 티 파티(Tea Party)운동의 핵심이었다. 트럼프의 정치는 뷰캐넌과 페일린의 뒤를 이으며 자유주의 질서의 피해자와 패배자들로부터 출발한다.”

◇트럼프 견제할 정치인이 안보인다

- 트럼프 1기 때는 트럼프를 견제할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는데, 만약 2기가 출범하면 어떤가

" 트럼프는 1기 때는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허버트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국장 ,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이 제 역할을 했다.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한미 FTA를 폐기하려는 서한을 발견하고, 이를 몰래 갖고 나와 없애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은 2018년 중간선거 이후 모두 쫓겨났다.”

- 미 의회 상황은 어떤가.

“트럼프 1기 때는 공화당의 주류가 그를 견제했다. 2021년 1월 의사당 난입 사건 때 탄핵에 찬성한 공화당 하원의원 10명 중 4명이 은퇴했고, 4명은 2022년 예비선거에서 탈락했으며 이제 2명만 남아 있다. 상원 의원 중에는 7명이 찬성했는데 3명은 은퇴했고, 가장 강력하게 탄핵을 주장했던 미트 롬니 의원은 올해 말 은퇴한다.”

- 트럼프는 공화당도 장악하지 않았나.

“트럼프의 둘째 며느리인 라라 트럼프는 TV 프로듀서 출신으로 트럼프의 차남 에릭과 2014년 결혼, 2016년 대선 때부터 선거를 도와왔다. 그가 지난 3월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공동의장에 선출됐다. RNC 의장은 공화당의 대선 자금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라라는 ‘내가 RNC 의장으로 선출되면 대선 기간에 돈을 아끼지 않고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해왔다.

-올해 상하원 선거 전망은

“공화당이 꽤 선전할 것으로 전망한다. 현재는 하원은 공화당,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인데, 공화당이 모두 휩쓸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과시욕 많은 트럼프, 김정은과 회담 재개할 것

- 트럼프가 당선되면 김정은과 만날 가능성은.

“크다고 봐야 한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도 대외적인 문제에서 해결할만한 게 없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둘 다 쉽게 해결할 수 없다. 더욱이 대만 문제에서도 성과 낼 수 없다. 그런데 한반도에서 평화를 가지고 논의하는 것은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평양 순안공항에 내려서 트럼프와 악수하는 것은 트럼프의 과시욕을 충족시키기에 좋은 소재다. 2019년 12월 밥 우드워드가 트럼프를 인터뷰했을 때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질문하자 트럼프의 첫 답변이 ‘카메라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자기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역사상 가장 많은 카메라를 보았다고 했다. 트럼프는 자신의 과시욕을 충족시키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 북한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9년 2월 27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회담을 하는 모습이 북한 노동신문에 실렸다. /뉴스1

-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이 다시 열리면 주요 의제는.

“하노이 회담 당시 협상 테이블에 나온 것이 제재해제와 비핵화 일정이었다. 이것은 흥정도 못한 채 헤어졌다. 트럼프와 김정인이 다시 만나 모든 것을 까 놓고 논의한다면, 김정은이 올리려고 하는 것이 제재 해제와 주한미군일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한반도 평화 문제를 궁극적으로 논의할 때 주한미군 문제가 반드시 나와야 한다. 북핵, 평화협정, 경제지원, 양국 수도에 대사관 설치… 이런 것들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는 비핵화를 전제로 한반도 현상 변경에 열린 자세를 보였다. 참모들은 준비 없는 정상회담에 반대했지만, 트럼프는 선뜻 응했다. 트럼프는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 긍정적이었다. 트럼프는 한미연합훈련을 ‘값비싸고 도발적인 전쟁 게임’이라고 했다. 이 발언은 한미 외교안보전문가와 군부로부터 비난을 받았지만, 트럼프 지지층에게는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의제로서 호소력이 있다.”

- 트럼프 정권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감축 협상을 할 가능성은.

" 트럼프 캠프와 가까운 엘브리지 콜비 전 미 국방부 전략·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가 최근 언급한 것이 사실상 미북 군축협상이다. 트럼프측의 속내는 핵탄두를 실어서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ICBM만 해결하면 된다는 것 아닌가. 심지어 바이든 행정부의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보좌관도 지난 3월 ‘북한과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interim steps)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는 바이든 백악관의 고위 관계자인데, ‘전 세계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한 것도 주목해 봐야 한다.”

- 미국은 북한의 ‘살라미 전술(이슈를 잘게 썰어서 상대하는 것을 의미)’에 속았다며 ‘같은 말을 두번 사지 않는다’고 해왔다. 북핵 실험, 미사일 발사 중단 등의 ‘동결’에 보상하는 형태의 협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 왔는데 같은 말을 또 사야 하나.

“뻔히 북한의 속셈이 보이는데도 또 해 봐야 한다. 그게 외교다. 어떻든 북핵 발전 속도는 줄여 놓아야 하지 않나. 우리는 한꺼번에 북핵 무력화를 이루려고 하는데, 지난 30년간 안 됐던 게 한번에 가능한가.”

-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군 카드를 북핵 문제와 연결시킬 가능성이 우려된다.

“주한미군 문제는 트럼프가 1기 때 이미 여러 번 언급했다.단순히 방위비 분담금을 더 받아내려는 협상 카드가 아니라, 왜 2만8500명의 군대를 한국에 주둔시켜야 하느냐는 근본적 질문을 제기했다.”

- 미중 전략경쟁이 심각한데, 주한미군 철수가 가능할까.

“가능할 수 있다. 트럼프가 남다른 점은 예측이 어렵고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데 있다. 트럼프는 1기 행정부 내내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였지만, 시진핑과는 늘 ‘좋은 관계’라고 했다. 트럼프의 의식에는 ‘민주주의 vs 권위주의’라는 이분법이 없다.”

- 방위비 분담 대사로 미국과 협상한 경험도 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올해 내에 한미 방위비 분담협상을 끝내려는 분위기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방위비 분담협상에 합의했다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트럼프가 당선되면 다시 협의하자고 할 것이다. 트럼프는 지난 4월에도 TIME 인터뷰에서 한국을 부자 나라라고 하면서 기존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냈다.”

◇트럼프 다시 당선되면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로 돌입

조 원장은 책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트럼프를) 방위비 분담금을 다섯 배나 올려달라는 이상한 사람으로만 보지 않으면 트럼프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중략) 트럼프는 MAGA 의제를 진전시킨다는 전제하에 한반도 현상 변경에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 이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 구조를 구축하는 길로 연결될 수 있다면 우리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평화협정과 평화체제, 북한 핵과 남한 핵, 북미관계와 북일관계 개선, 동북아 경제협력 등 지난 수십 년 동안 논의해온 모든 의제를 올려놓고 통 큰 거래를 한번 보자. 한국은 힘 닿는 데까지 트럼프가 바라는 미국의 제조업 재건에 힘을 보태줄 수 있고, 그 같은 미래 첨단산업에서 미국의 과감한 협력을 확보할 수도 있다. 트럼프의 귀환을 기회로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달렸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 스스로 이분법적 세계관과 흑백논리를 버리는 것이다.”

- 트럼프 현상이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 구조를 구축하는 길로 연결될 수 있다면 우리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했는데, 이는 논쟁을 촉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트럼프 집권을 북한과의 대화 복원 기회로 봐야 하나.

" 나는 현재 상황을 현실주의 입장에서 보고 있다. 특정한 이념이나 색깔에 기초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트럼프의 귀환이 북한과의 회담 재개를 의미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국가 정책에서 수단과 목표의 균형을 어떻게 달성할지를 따져봐야 한다.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하면, 결코 그 목표에 다가갈 수 없다.”

- 우리가 트럼프를 견제해야 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은.

“우리 혼자 그렇게 할 수 있겠나. 그 같은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중국, 일본, 러시아,EU와도 통해야 한다. 우리가 그런 역할을 못하면 어떻게 한반도의 주역이 되겠나. 시야를 넓혀서 글로벌 중추국가가 되려면 전방위 외교를 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나라와도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 트럼프는 현상이 지속성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우리는 그동안 미국이 깔아 놓은 자유주의적 국제질서를 한치도 벗어난 적이 없다. 미국의 보호 아래 자유시장경제를 성실하게 일궈서 오늘의 괜찮은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우리는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혜택을 받았다. 또 미국의 대규모 증원군이 오는 것을 전제로 ‘작전계획’를 만들었다. 자유주의, 시장경제, 공공재로 간주한 미 군사력에 의한 안보로 살아왔다. 그렇게 살다 보니 이런 게 얼마나 중요한지, 또 우리가 얼마나 의지하고, 중독돼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시했던 것이 그렇지 않은 시대가 트럼프 시대다. 한국은 오는 11월 5일 미국 선거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는 순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시대로 들어간다. 우리는 세계를 두 개로 나눠서 본다.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너무나 당연시해 온 것이 바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흑백논리로,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을 바꿔야 한다. 한미동맹은 굳건하게 유지해야 하나 모든 것을 한미동맹에 걸고 있어서는 안 된다.”

- 트럼프를 다루면서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를 다시 평가하게 됐다고 했는데.

“아베가 인도·태평양 정책을 미국이 받아들이게 한 것은 대단하다. 그럼으로써 미국을 일본에 더 가깝게 붙들 수 있었다. 아베는 자신이 인도와 호주를 끌어들여서 쿼드를 만들게 했다. 자신이 원하는 진지를 만든 것은 전략가 아베의 면모가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아베가 이렇게 트럼프를 다루는 방식을 참고할 수 있어야 한다. 아베가 트럼프를 이렇게 잘 다뤘다는 것이 부럽다. 아베는 현직 일본 총리이면서도 그가 당선되자마자 발 빠르게 골프채 들고 찾아갔다. 그리고 골프장에서 나동그라지면서도 그를 붙잡으려 했다. 이런 점은 배울 만하다. "

-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은

“트럼프 집권 후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이는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질서가 바뀌는 것이다. 우리의 전략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므로 핵 무장도 필요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는 길을 가야 한다. 대한민국에 어떤 운명이 닥칠 지, 이에 대한 논의가 시급하다.”

조선일보 한나라당 취재반장, 외교안보팀장과 워싱턴·도쿄 특파원, 국제부장,논설위원을 역임했습니다. TV조선에서 정치부장 겸 '이하원의 시사Q', '뉴스 9 (메인뉴스)' 앵커로 활동했습니다. 저서 <레이와 시대 일본탐험><사무라이와 양키의 퀀텀점프> <시진핑과 오바마> <세계를 알려면 워싱턴을 읽어라> <조용한 열정, 반기문(공저)> <남북한과 미국, 변화하는 3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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