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관 교수, ‘한글, 불편한 진실’로 창제 의도 의문 제기 / 부민고소법을 폐지한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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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 교수, ‘한글, 불편한 진실’로 창제 의도 의문 제기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교육 기관·교재 대량 배포한 흔적 없어…쉽게 익힐 노력과는 ‘거리’
‘지배층의 논리 주입 수단’ 여지…신격화 아닌 반대쪽 시선도 필요”

“기자님은 한국말 몰라서 상사에게 할 말 못하고 사나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배 이셔도 마참내 제 뜨들 시러펴디 몯할 노미 하니라…”라는 ‘어제서문’ 언해(한글 번역본)의 문구와 관련해 강명관 부산대 명예교수(68)가 대뜸 던진 말이다. ‘어제서문’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의도를 밝힌 문장이다.

강 교수는 원문과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이 문구는 ‘백성들이 당시 관부(관청)나 고을 수령에 대해 원통하고 억울한 바(니르고져 홀배)가 있으나 글을 몰라 항변하지(제 뜨들 시러펴디) 못한다’라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억울함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이유가 단지 ‘글을 몰라서’였겠느냐”며 “‘수령을 상대로 송사를 했다가 경을 칠까봐’이지 않았겠냐”고 했다.

그가 최근 펴낸 <한글, 불편한 진실>(푸른역사)엔 이런 문제의식이 담겼다. 부산대에서 한문학을 가르친 그는 역사적 위인의 허상을 고발하거나 노비 등 민초 입장에서 역사를 재발견하는 저작을 이어왔다. 이번에 그가 시비를 건 대상은 이순신 장군과 더불어 한국의 2대 위인으로 꼽히는 세종대왕과 그의 최대 발명품으로 언급되는 한글, 이 두 ‘성역’이었다. “세종대왕의 위대함이나, 한글의 우수성에 시비를 거는 건 아닙니다. 다만 신격화가 아닌 그대로의 모습을 보기 위해선 반대쪽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선 그는 ‘어제서문’이 나오기 직전 세종대왕이 ‘부민고소법’을 폐지한 사실을 언급한다. “부민고소법은 지역민이 고을 수령의 잘못을 중앙정부에 바로 일러바칠 수 있게 한 제도였어요. 고소인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걸 명문화한 일종의 ‘공익신고자 보호법’이기도 했죠. 그래서 이 법은 당시 기득권층엔 눈엣가시였어요. 그들의 성화에 결국 세종은 이 법을 폐지했고, 아예 고소를 금지하는 법을 새로 만들었어요. 그 직후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게 글을 만들어주겠다’고 한 셈이죠.”

‘어제서문’의 마지막 문구, 즉 ‘모든 이가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일용) 편하게 하려고 할 따름’이라는 부분에도 딴지를 걸었다. “글자는 만들었지만 쉽게 익힐 수 있게 한 노력의 흔적은 찾기 어렵다”고 했다. “한글 교육 기관이나 교사, 한글 서식 등을 마련해주거나 배포했다는 기록은 없다”며 “‘한글 사용 설명서’인 ‘해례본’도 대량 제작하거나 배포된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고 했다.

“당시 조선 인구의 절반은 노비와 농민이었어요. 주인이 시킨 일 하랴, 신공(노비가 주인에게 바치던 공물)이나 세금을 내고도 먹을 걸 남기려고 온종일 농사까지 지으랴… 이들이 한가롭게 글을 읽거나 쓸 시간이 있었을까요? 당시 붓, 먹, 종이나 특히 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물건들이었어요.”

그래서 정작 한글을 ‘일용’한 건 백성이 아닌 지배 계층이었다고 했다. 한글 표기를 통해 한문의 발음을 배운 양반가의 어린 자녀, 외국어의 발음을 한글로 익힌 외교관, 한문은 배우지 못했어도 한글(언문) 덕에 서신을 주고받던 양반가 아낙 등이 표음문자인 한글의 편리성에 경탄했음을 엿볼 수 있는 기록이 존재한다고 했다.

물론 백성을 대상으로 한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다만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는 ‘어제서문’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세종은 당시 형법이었던 ‘대명률’ 중 중한 처벌 조항을 한글로 바꿔 백성에게 알리라고 명했어요. ‘어리석은 백성이 법을 몰라 중죄를 저지를까봐 걱정된다’는 이유였죠. 이는 동시에 ‘가혹한 형벌에 공포심을 갖게 해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도 생각합니다.”

세종이 한글 창제 과정에서 ‘<삼강행실도> 같은 책을 한글로 번역해 백성들이 보도록 하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삼강행실도>는 아내가 남편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신하가 왕에게 지켜야 할 도리를 각각 110편에 걸쳐 기술한 책이에요.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따라 죽는 것’ ‘부모가 아프면 자식이 손가락을 잘라 공양하는 것’ 등을 미덕으로 제시하죠. 가부장 질서 등 위계에 따른 복종을 백성들에게 내재화하는 것, 그게 ‘훈민’의 실체 중 하나라고 봐요.”

그래서 그는 훈민정음, 즉 ‘백성을 가르치는 올바른 소리’라는 뜻은 ‘지배층의 논리를 피지배층에게 주입하는 데 효과적인 소리’라고 볼 여지도 있다고 했다.

강 교수는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기자님도 회사의 위계에 순응하잖아요. 국민은 지배 체제에 순응하죠. 다 ‘교육’의 결과 아닌가요? 지배 논리를 피지배자에게 내재화하는 ‘의무교육’ 과정의 효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역사가 ‘신화’로 둔갑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했다. “사실 서로 아무 상관 없는 기자님과 저를 ‘우리’로 묶으려면 공유할 게 필요해요. 바로 ‘역사’와 ‘말’이죠. 5000년간의 동일한 기억을 공유하고 같은 말과 글을 쓰는 ‘민족’이 되는 겁니다. 그 역사는 자랑스럽고 영광스러워야 해요. 부끄러운 역사는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거든요.”

그러나 그건 ‘불편한 진실’에 눈을 감게 만든다고도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단결할 필요가 있고, 그 결과 한국이 선진국이 될 수 있었다’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선진국의 결실이 내게는 돌아오지 않는 부조리함을 ‘괜찮아. 나라가 잘살면 됐지. 나라가 곧 나니까’라며 느끼지 못하게 하는 세뇌 작용도 일으킨다고 생각해요.”

그는 “세종은 훌륭한 왕이었다”고 했다. “뛰어난 두뇌, 집현전 학자들조차 혀를 내두르던 박식함, 진정성과 열정 등은 조선의 다른 왕들에 비해 압도적이었다”고 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지배층의 편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백성을 수탈해서 굴러가는 사회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사람의 한계였다”는 것이다.

“이런 불편한 진실도 볼 필요가 있어요. 지배를 위해 주입하는 ‘영웅 서사’가 아니라 반면교사의 ‘전범’이 되는 진짜 역사가 필요해요. 그래야 글자도 중요하지만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는 사회 구조와 조직 분위기도 중요하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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