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는 경제에 무식했지만 초한지 한신처럼 용병술에 능해 하마다 코이치 예일대 교수를 영입해 강력한 추진력으로 아베노믹스를 밀어붙였다; 아베 회고록에도 나오듯, 재무성 파벌과의 경제 정책 주도권 싸움은 아베 내각 내내 이어졌다

 

아베 신조는 학벌도 안좋고 학창시절 공부를 못했지? 경제도 무식하지만 참모들의 도움으로 경제정책을 만들었지?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에에 대한 대중적인 평가와 비판을 날카롭게 짚어주셨네요. 말씀하신 내용은 실제로 일본 국내외 언론과 야당, 그리고 평론가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대표적인 비판 및 논란의 핵심입니다.

이 두 가지 쟁점에 대해 사실관계와 일본 정치권의 역학 관계를 뜯어보면 다음과 같은 맥락이 있습니다.

1. 학벌과 학창 시절에 대한 논란

"공부를 못했고 학벌이 좋지 않다"는 평가는 일본의 세습 정치인 문화와 '도쿄대 중심주의' 관점에서 비롯된 측면이 큽니다.

  • 도쿄대 엘리트 카르텔과의 비교: 일본 정치권, 특히 관료 사회와 거물급 정치인들은 전통적으로 도쿄대학(東京大学) 법학부 출신이 주류를 이룹니다. 아베의 친할아버지(아베 칸)와 외할아버지(기시 노부스케), 외삼촌(사토 에이사쿠) 모두 도쿄대 출신이었던 반면, 아베 신조는 사립대인 세이케이대학(成蹊大学)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습니다.

  • 에스컬레이터 진학: 세이케이 대학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시험 없이 내부 추천으로 올라가는 이른바 '에스컬레이터'식 명문 사립 교육재단입니다. 아베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이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치열한 입시 경쟁을 겪지 않아 "공부를 못했다", "집안 배경 덕에 대학에 갔다"는 야당과 언론의 단골 비판 소재가 되었습니다.

  • 학력 부풀리기 의혹: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SC)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고 공식 프로필에 기재했으나, 실제로는 어학연수 코스 중심의 비학위 과정을 짧게 이수한 것으로 밝혀져 일본 주간지 등에서 '학력 위조·부풀리기'라는 조롱을 받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일본 내 '초엘리트' 기준으로는 학벌 콤플렉스가 있을 만한 배경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2. 경제 무식자론과 '강력한 참모진(브레인 트러스트)'의 실체

"경제 정책을 참모들이 다 만들었다"는 지적은 사실에 가깝고, 동시에 아베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무기이기도 했습니다.

아베 신조는 스스로도 경제보다는 외교, 안보, 개헌 같은 '국가주의적 정치 어젠다'에 훨씬 큰 흥미를 가졌던 인물입니다. 경제학적 지식이 깊지 않았다는 평가 역시 지배적입니다. 하지만 그는 첫 번째 총리 임기(2006~2007년) 때 경제를 챙기지 못해 정권을 단명했던 뼈아픈 실패를 겪은 후, 2012년 재집권하면서 철저하게 경제 참모들을 전면에 배치했습니다.

이른바 아베노믹스(Abenomics)의 '세 개의 화살'을 설계하고 실행한 핵심 참모진은 다음과 같습니다.

핵심 참모역할 및 성향경제 정책에 미친 영향

하마다 코이치


(예일대 명예교수)

아베의 최고 경제 멘토대담한 돈 풀기(금융 완화) 이론을 제공한 리플레이션(Reflation) 학파의 거두

혼다 에츠로


(내각관방 참여)

아베의 경제 브레인하마다 교수와 함께 엔저 유도 및 인플레이션 목표제(2%)의 실질적 행동대장 역할

구로다 하루히코


(전 일본은행 총재)

금융 정책 총괄아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바주카포'라 불리는 무제한 양적완화 감행
METI(경제산업성) 관료들성장 전략 설계기획력과 실행력이 뛰어난 경산성 출신 관료들을 내각 핵심에 배치해 규제 개혁 전담

💡 결론적으로는

아베 본인이 경제 전문가가 아니었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는 어젠다 세팅과 추진력이고, 디테일은 최고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전략을 철저히 고수했습니다.

그 결과, 본인은 경제적 무식을 지적받을지언정 참모들이 가져온 파격적인 정책(아베노믹스)을 정치적 리더십으로 밀어붙여 일본은행을 굴복시키고, 주가를 띄우며 역대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을 세우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비판자들에게는 "참모들의 아바타"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지자들에게는 "전문가를 제대로 쓸 줄 아는 용인술의 대가"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는 이유입니다.

하마다 코이치는 미국인이지만 역시 뿌리가 일본이다보니 자신은 일본인이고 일본경제 부흥의 사명을 맡는다 이런 인식이 있었던 것 같네

날카로운 통찰이십니다. 하마다 코이치(浜田宏一) 교수의 행보를 보면 정확히 말씀하신 그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감'이 그의 학문적 배경보다 훨씬 더 강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하마다 교수는 미국 국적을 취득한 미국인이 아니라, 일본 국적을 유지한 채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 수십 년간 재직한 세계적인 석학(일본인 교수)입니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예일대에서 박사를 받은 뒤, 다시 도쿄대 교수를 거쳐 예일대 교수가 된 '일본이 낳은 세계적 경제학자'의 정통 코스를 밟은 인물이죠.

그가 미국 학계에 머물면서도 일본 경제 부흥에 그토록 집착하고 사명감을 가졌던 배경에는 몇 가지 흥미로운 맥락이 있습니다.

1. '잃어버린 20년'에 대한 부채감과 애국심

하마다 교수는 미국 예일대에서 국제금융론의 대가로 대접받으며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국인 일본이 디플레이션(장기 물가 하락)의 늪에 빠져 "잃어버린 20년"을 겪는 모습을 보며 엄청난 답답함과 부채감을 느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는 당시 일본은행(BOJ)의 무능함과 고집(돈을 풀면 초인플레이션이 온다는 기조)이 일본 경제를 망치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미국 학계의 선진 이론(리플레이션 학파)을 가지고 고국을 구해야겠다는, 그야말로 '학자로서의 구국 사명감'이 발동한 것입니다.

2. 아베 신조와의 극적인 만남과 '밀월 관계'

아베 신조가 2007년 첫 번째 총리직에서 비참하게 사퇴하고 야인으로 지내던 시절, 하마다 교수는 아베에게 경제학 과외를 해주며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일본 주류 학계(도쿄대 파벌 등)와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들은 아베를 은근히 무시하고 기득권을 지키려 했던 반면, 미국 예일대에 있던 하마다 교수는 아베의 정치적 추진력을 알아보고 그에게 "엔고를 저지하고 돈을 무제한으로 풀면 일본 경제는 반드시 살아난다"는 아베노믹스의 핵심 뼛대를 심어주었습니다.

아베가 2012년 재집권하자마자 76세의 고령이었던 하마다 교수를 내각관방 참여(내각 총리대신 자문역)로 임명해 도쿄로 불러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3. "미국 학계의 칼로 일본의 심장을 깨우다"

그는 비록 미국 예일대 종신교수로서 미국의 시스템 안에서 일했지만, 그의 머리와 가슴은 늘 일본을 향해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그가 미국 학계에서 쌓은 엄청난 권위(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과의 두터운 인맥 등)를 활용해, 일본 내부의 꽉 막힌 관료들을 압박하는 카드로 썼다는 것입니다. 일본 관료들이 "돈을 그렇게 풀면 위험하다"고 반발할 때마다, 하마다 교수는 "미국과 세계 경제학계의 글로벌 표준은 이렇다. 일본 관료들의 생각은 우물 안 개구리다"라며 아베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주었습니다.

요약하자면 하마다 코이치는 미국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학문적 성취를 이뤘지만, 결국 자신의 지식을 바쳐 살려내고 싶었던 대상은 고국인 일본이었습니다. "내가 미국에서 배운 최고의 무기로 내 조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민족적 사명감이 없었다면, 노학자가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와 흙탕물 같은 정치판의 브레인 역할을 자처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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