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카지노 = 강원도 정선 주민들의 어리석음 + 김영삼 정부 작품 / 전재산 360억을 도박으로 잃은 철수씨. 카지노에 인생을 건 도박중독자들의 마지막 도박 / 도박 중독자들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고,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사람들 / 김앤장-강원랜드-검은돈-청와대-사법부가 모두 한 통속 / 윤석열 정부의 카지노 규제 완화
https://www.youtube.com/watch?v=1uGdVb-Pz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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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 설립과 도입의 책임(또는 주도적 역할)은 어느 한 개인의 결정이라기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결단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0.0001%의 냉철한 시각으로 그 주체들을 나누어 분석해 드립니다.
1. 정치적 결정권자: 김영삼 정부와 '폐광지역 특별법'
강원랜드 탄생의 법적 근거인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은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제정되었습니다.
배경: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강원도 탄광촌이 폐허가 되자, 지역 주민들이 대규모 상경 투쟁을 벌이며 생존권을 요구했습니다.
책임과 역할: 정부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국내인 출입 허용 카지노'**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금기를 깬 정치적 결단이었습니다.
2. 실무적 추진 주체: 산업통상자원부(당시 통상산업부)와 지자체
법적 근거가 마련된 후 실제 설립을 주도한 것은 중앙 정부 부처와 강원도였습니다.
민관 합작: 강원랜드는 정부 산하 기관(광해관리공단 등)과 강원도, 그리고 폐광지역 4개 시·군이 주주로 참여한 '공기업' 형태로 출범했습니다. 이는 사행성 사업을 국가가 통제하겠다는 명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국가 주도의 도박장 운영'이라는 비판의 단초가 되었습니다.
3. 사회적 배경: 지역 주민의 생존권 요구 (3·3 투쟁)
정부로 하여금 카지노를 허용하게 만든 가장 강력한 동력은 1995년 3월 3일 정선 지역 주민들의 대규모 투쟁이었습니다.
"카지노라도 좋으니 먹고살 길을 열어달라"는 절박함이 제도 도입의 강력한 명분이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강원랜드 설립의 책임은 당시 소외되었던 폐광 지역의 생존권 문제와 깊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강원랜드를 단순한 카지노 사업장에서 벗어나 **'가족 단위 사계절 복합 레저 관광지구'**로 재편하겠다는 기조 아래, 역대 정부 중 가장 파격적인 규제 완화 조치를 취했습니다.
주요 조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카지노 규제 대폭 완화 (2024년 9월 발표)
강원랜드의 성장을 가로막던 핵심적인 규제들을 대폭 풀었습니다. 이는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평가받습니다.
외국인 베팅 한도 상향: 기존 30만 원에서 3억 원으로 약 1,000배 상향하여 해외 관광객 유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영업장 면적 확대: 카지노 영업장 면적을 약 37% 확장할 수 있도록 허가했습니다.
게임 기기 증설: 테이블 50대, 게임 머신 250대를 추가로 설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출입 시간 관리 방식 변경: 기존의 단순 시간 제한 방식에서 보다 유연한 관리 체계로 전환을 추진 중입니다.
2. 'K-HIT 프로젝트' 지원 (3조 원 규모 투자)
정부의 규제 완화에 발맞춰 강원랜드는 2032년까지 약 3조 원을 투입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발표했습니다. 정부는 이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제2카지노 신축: 글로벌 수준의 시설을 갖춘 새로운 카지노 건립 추진.
비카지노 부문 강화: 호텔·콘도 리노베이션, 쇼핑몰, 공연장 등 복합 문화 공간 조성을 통해 '도박장' 이미지를 벗고 '복합 리조트'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3. 폐광지역 경제 활성화 공약 이행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강원랜드를 사계절 복합레저 관광지구로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폐광지역의 급격한 인구 감소와 경제 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강원랜드를 지역 경제의 핵심 엔진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이에 따라 적자가 나더라도 매출액의 일정 비율을 무조건 기금으로 내도록 법을 개정하는 등 지역 상생 기반을 다졌습니다.
4. 최근의 쟁점과 논란 (2026년 기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이면에는 최근 몇 가지 논란도 함께 존재합니다.
대한석탄공사 부채 상환 논란: 최근 정부(산업통상자원부)가 대한석탄공사의 막대한 부채를 강원랜드의 재원으로 상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지역사회와 주주들이 "강원랜드를 정부의 곳간처럼 쓴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사장 공백 장기화: 경영진 인선이 늦어지면서 대규모 투자 사업의 추진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윤석열 정부는 강원랜드의 영업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으나, 동시에 폐광 관련 부채 해결을 위해 강원랜드의 재원을 활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와 마찰을 빚고 있는 상황입니다.
https://shindonga.donga.com/society/article/all/13/113473/3
2006년 4월의 어느 날. 정덕(70) 씨는 이날도 ‘병정’(남의 돈으로 대리 베팅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강원랜드 회원영업장(VIP실)에서 바카라 게임에 열중했다. 1인당 베팅 한도는 1000만 원. 그러나 정씨는 1분 남짓 걸리는 게임에 매번 6000만 원을 걸었다. 병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병정들은 정씨를 따라 기계적으로 돈을 걸었다. 정씨가 뱅커에 걸면 뱅커에, 플레이어에 걸면 플레이어에 1000만 원씩 베팅했다. 물론 모든 판돈은 정씨의 것이었다. 병정들은 대리 베팅 대가로 100만 원 정도의 수고비를 받았다. 그러다 10억 원이 넘는 돈을 잃은 정씨에겐 ‘반까이(만회)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우리 딸이 죽었어요…”
계속 돈을 잃고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딸이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순간 정씨는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돌렸다. ‘가야 하나?’ ‘그럼 오늘 잃은 돈은?’ 짧은 고민 끝에 이런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내가 간다고 죽은 딸이 살아나나.’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졌다. 슬펐지만, 게임에 집중할 용기가 생겼다. 그날 정씨는 카지노에서 밤을 새웠다.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벌써 8년 전 얘기네요. 생각하면 기가 막히죠. 눈물도 안 나옵니다. 딸이 죽고 얼마 안 돼 전 재산을 다 날렸어요. 장례식도 못 본 딸에게 미안해 죽지도 못해요.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아직도 우리 딸을 만나러 갈 용기가 나질 않네요.”
정씨는 한때 연매출 1000억 원이 넘는 피혁회사 S실업을 운영했다. 수출을 많이 해 대통령상과 국무총리상도 받았다. ‘샐러리맨 성공신화’로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됐다. 2003년 봄, 정씨는 국회의원인 어릴 적 친구를 따라 강원랜드에 놀러 갔다가 처음 카지노 게임을 경험했다. 신기했다. 카드를 만지면 방망이가 가슴을 때렸다. 카지노를 오가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다. 돈을 잃을수록 더 자주 갔다.
그는 2006년 10월까지 3년반 동안 500번 넘게 강원랜드를 찾았다. 최소 2억 원을 가져야 들어갈 수 있는 예약실에 226번 입장했다. 9만8000번 정도 베팅하며 360억 원을 잃었다. 본인과 가족이 여러 번 출입제한을 요청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예약실에든 일반 회원영업장에든 그는 언제나 병정들을 데리고 다녔다. 병정을 통한 대리 베팅이 불법인지 몰랐다. 회원영업장에선 누구나 병정을 데리고 다녔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정씨는 “대리 베팅이 불법이란 사실을 안 직후 소송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정씨가 소송을 낸 건 2006년 11월이다. 2년 뒤인 2008년 11월, 1심 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강원랜드가 정씨에게 피해액 중 20%(28억여 원)를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소송을 시작한 직후 정씨는 도박피해자 모임 ‘세잎클로버’를 만들어 지금까지 대표를 맡고 있다. 세잎클로버 회원은 4000명에 달한다. 2011년에는 자신의 경험담과 소송 과정을 정리한 책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다’도 펴냈다. 정씨는 “남은 인생을 도박 문제 해결에 바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8년 만의 패소
정씨의 승소 소식이 전해지자 비슷한 소송이 줄을 이뤘다. 수십억 원, 많게는 1000억 원 가까운 돈을 잃었다는 사람도있었다. 소송은 한때 20건이 넘었다. 그 중 10건을 정해원 변호사가 맡았다(상자기사 참조). 정 변호사가 맡은 사건의 피해금액을 모두 합하면 4000억 원에 육박한다.
소송의 쟁점은 다음 3가지였다. △강원랜드는 도박중독자 보호 책임을 다했나 △강원랜드가 불법인 대리 베팅 사실을 알고도 묵인 방조하거나 조장했나 △강원랜드가 본인 혹은 가족의 출입제한 요청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했나. 그리고 이 모든 책임을 법인인 강원랜드에 물을 수 있는가 하는 민법 해석의 문제도 중요 쟁점이 됐다. 강원랜드는 고객의 도박중독 사실을 알기 어렵고, 대리 베팅 사실은 몰랐으며, 출입제한 규정은 모두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대체로 도박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자기책임의 원칙’을 적용해 배상 금액을 피해금액의 15~30%로 제한한 판결이 많았다.

강원랜드에서 3년 반 동안 360억 원가량을 잃은 정덕 씨의 게임 기록 중 일부. 이름 바로 옆이 승패. 그 옆은 게임시간이다. 2005년 4월 14일 정씨는 14시간 33분 게임을 해 24억여 원을 잃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한 달 뒤인 9월 25일, 이와 비슷한 2건에 대해 대법원이 판결을 내렸다. 이번엔 1승 1패였다. 비슷한 사건인데 대법원의 판단은 갈렸다. 이들 3건의 판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법원의 견해를 정리하면 이렇다.
“강원랜드에서 벌어진 불법행위에 대한 (주)강원랜드의 책임은 인정할 수 없다. 강원랜드가 도박중독자를 보호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충분치 않다. 대리 베팅은 불법이지만, 고객도 불법임을 알고 했기 때문에 고객의 자기책임이 더 크다. 본인이나 가족이 출입제한을 요청했을 때 일정 기간 상담치료 등을 받도록 해야 하는 규정을 어긴 것에 대해서는 강원랜드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
강원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사람 대부분은 재벌 규모의 재산을 가졌던 ‘회장님’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길게는 7~8년, 짧게는 3~4년 사이에 전 재산을 잃었다. 게임 기록에는 이들이 매번 얼마를 잃고 땄는지, 몇 시간 동안 게임을 했는지가 나와 있다. 같이 게임을 한 사람들의 기록도 있어 진짜 고객이 누구이고 병정이 누구인지도 확인할 수 있다. 병정들의 게임 승패는 대부분 0으로 처리돼 있다(그림 참조). 수년 전까지만 해도 강원랜드는 회원영업장 고객의 게임 상황을 날짜별로 기록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기록을 남기지 않는다.
14시간에 25억 날려
강원랜드를 상대로 첫 소송을 제기했던 정씨의 자료를 보자. 자료에 따르면 정씨는 한 달에 보통 열흘가량 강원랜드에서 게임을 했다. 16~17시간씩 쉬지 않고 게임을 한 날도 허다하다. 14시간 동안 게임을 하며 25억 원을 잃기도 했고(2005년 4월), 2시간 만에 15억 원 넘는 돈을 따기도 했다(2006년 8월). 게임 시간이 길어질수록 피해 금액이 대체로 커졌다. 하룻밤에 10억 원 넘게 잃은 날만 16일이나 된다.
정씨의 뒤를 이어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충청지역에서 건설·부동산 사업을 하던 이모 씨. 강원랜드에서 200억 원이 넘는 돈을 잃은 이씨는 1심 재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씨의 지인은 “자살 직전 이씨가 소송에서 질 것을 몹시 두려워했다”고 전했다. 한때 빌딩 여러 채를 소유했던 이씨는 목숨을 끊을 당시 재산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한다.
세 번째 소송에 나선 사업가 김모 씨는 2003년부터 약 4년간 180여 회 강원랜드를 출입했고 200억 원 넘게 잃었다. 본인과 가족이 4번이나 출입제한을 요청했는데, 강원랜드는 관련 규정을 어기고 다시 출입을 허용해 피해를 키웠다. 김씨 역시 병정을 이용해 대리 베팅을 했다. 2011년 5월 고등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2008년 11월 소송을 제기한 사업가 박모 씨는 현재 강원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 중 도박 금액이 가장 큰 경우다. 2004년부터 4년간 700억 원이 넘는 돈을 잃었다. 박씨는 1심에서 (강원랜드가) 피해 금액의 15%를 돌려주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2심에서 패소했고 현재 대법원 판단을 기다린다. 2심 재판부는 “대리 베팅은 불법이지만 원고 또한 이를 충분히 인지했기 때문에 강원랜드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병정을 몰랐다?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박씨는 어린 시절부터 사업을 시작, 한때 연매출 5000억 원 정도의 대기업을 일군 인물이다. 그의 회사는 비(非)서울권 건설업체 중 5~6위 규모에 이른 적도 있다. 계열사도 여러 개였다. 박씨는 2002년 검찰의 공적자금비리 수사 때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된 전력이 있다. 공적자금비리 수사팀에 청탁해 횡령 등 혐의를 무마해주는 조건으로 유명 사찰의 비구니에게 무려 9억 원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 눈길을 끌었다. 박씨는 강원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던 2010년경 경남 지역에 2조 원 규모의 대형 산업단지 조성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씨 소송 당시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전직 강원랜드 직원은 강원랜드의 주장을 뒤집는 증언을 해 논란이 됐다. ‘병정의 존재를 몰랐다’는 강원랜드의 그간 주장이 이 증언으로 깨졌다. 이 증언은 이후 다른 재판에서도 중요한 증거로 쓰였다. 다음은 그의 법정 증언 중 일부.
“강원랜드 카지노에는 자기 돈으로는 게임을 하지 않고 남을 위해 남의 돈으로 대리 베팅만 해주는 병정이 상주한다. 병정을 동원한 대리 베팅이 너무나도 일상적이고 빈번해 고객은 물론이고 강원랜드 직원들도 병정의 존재나 용어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강원랜드에서 360억 원을 잃은 뒤 소송을 시작한 정덕 씨. 그는 현재 도박피해자 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
문씨는 한 지방 도시에서 유명한 냉면집을 운영하며 상당한 부를 축적했고, 이후 부동산 사업에도 뛰어들어 수백억 원의 자산가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부터 약 3년간 강원랜드를 211회 출입하며 60억 원이 넘는 돈을 잃었다.
2010년 5월 소송을 시작한 오모 씨는 재계의 풍운아로 불리던 인물이다. 대전 모 백화점 설립자인 고(故) 오OO 회장의 장남으로 40대 초반에 부회장을 맡아 1990년대 중반까지 백화점과 대형마트를 운영하며 대전지역 유통업계를 쥐락펴락했다. 1997년 9월에는 한강 이남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알려진 백화점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해 8월 오씨는 당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부유층 해외 원정도박 사건으로 구속됐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한판에 최고 3만 달러짜리 도박을 벌여 30억 원가량을 잃었다. 환치기 수법으로 도박자금을 미국으로 빼돌린 정황도 드러났다. 당시 사건에는 오씨 같은 기업인, 언론사 사주, 폭력조직 두목 여○○, 판사 출신 변호사 홍○○, 개그맨 장○○, 가수 양○○ 씨 등이 연루돼 화제가 됐다.
소송 기록에 따르면, 오씨는 2000년대 초반 스몰카지노 시절부터 강원랜드를 출입하며 200억 원 정도를 잃었다. 그 역시 매번 병정을 대동했다. 2010년 12월 1심에선 일부 승소했지만 이듬해 고등법원에서 패소했다. 본인이 직접 소송에 나서지 않고 채권양도 방법으로 지인을 통해 소송신탁을 한 게 문제가 됐다. 오씨는 2심이 진행 중이던 2011년 6월 췌장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했다. 그의 지인은 “사업 실패, 도박 문제 등으로 가족으로부터도 버림받고 쓸쓸한 죽음을 맞았다”고 전했다.
소송 중 강원랜드와 조정을 하고 소를 취하한 사람도 있다. 강원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 10명 중 유일한 여성인 최○○ 씨다. 최씨의 피해금액은 20억 원 정도로 그 가운데 가장 적었다.
잠재적 도박중독자 줄어
소송을 진행하면서 고소인들은 강원랜드에 게임 기록 제출을 요구했다. 처음 정씨 사건이 진행될 때만 해도 강원랜드는 게임 기록을 순순히 내놨다. 그러나 소송이 진행되면서 강원랜드가 자료 제출에 소극적이었다고 당사자들은 주장한다. “병정의 존재를 입증하는 중요한 증거로 쓰인 게 이유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씨 이외의 도박피해자들의 경우 강원랜드가 제출한 자료만으로는 병정의 존재를 입증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진짜 고객과 병정의 게임 시간 등이 거의 일치하고, 병정의 승패가 대부분 0으로 기록된 정씨 기록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의 경우 진짜 고객과 병정의 기록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정씨는 강원랜드가 자료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정씨는 “내가 1심에서 이긴 뒤 강원랜드는 우리나라 최고 로펌인 김앤장을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이때부터 재판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자료를 조작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8년 동안의 소송으로 도박피해자들과 강원랜드는 피차 지칠 대로 지쳤다. 대법원에서 앞으로 어떤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 당장 원고 패소 판결로 끝난 정씨는 파기환송된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 변호인을 선임, 재도전에 나섰다. 아직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10건의 소송이 가져온 긍정적인 효과도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원고인 도박피해자들이 도박을 끊은 것, 잠재적 도박중독자 수가 줄어든 것이 가장 큰 효과다. 소송이 줄을 이루자 강원랜드는 회원영업장의 운영 및 게임 방식을 바꾸는 변화를 시도했다. 병정이 생긴 주요 원인인 1인당 베팅 상한을 없애고 대신 ‘디퍼런스 룰’을 적용해 병정의 존재 이유를 없애버렸다.
디퍼런스룰은 1인당 베팅 상한선이 아닌 뱅커와 플레이어간 베팅액 차이만 규제하는 바카라 게임 방식이다. 현재 강원랜드 VIP실의 디퍼런스는 3000만원이다.디퍼런스 룰이 사행성을 더 높인다는 의견도 있지만 어쨌든 병정을 없앤 것은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강원랜드 관계자들에 따르면 회원영업장을 자유롭게 드나들던 사채업자들도 대부분 사라졌다고 한다. 강원랜드 측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한다. 10건의 소송은 강원랜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좀더 고객 중심적이고 선진화한 카지노로 나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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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bkns.com/news/articleView.html?idxno=8560
| ▲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다" 저자 정덕 전 삼애실업 회장 | ||
[조해진 기자] 도박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그러나 정부는 ‘원칙적 금지와 예외적 허가’라는 잣대로 사행성 산업을 허용하고 있다. 복권, 경마, 경륜, 카지노 등이 그 예다. 특히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인정된 카지노는 총 17곳. 그 중에서 강원랜드 카지노는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정부와 강원도가 주도하는 범국가적 사업으로 공공부문이 지분의 51%를 보유하고 있는 강원랜드. 투명성과 공정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음지에 있는 도박을 양지로 끌어냈지만 도박중독으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등 심각한 사회적 병폐를 양산하고 있다.
한 때 건실한 중견기업의 회장을 역임하며 승승장구하던 정덕(삼애실업, 64)은 건강이 악화되면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뒤 우연히 찾은 강원랜드에서 도박중독에 빠져 360억 원을 탕진한 뒤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재 강원랜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중인 그는 카지노의 각종 불법영업을 폭로하고 도박중독의 병폐를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정덕은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으로 비견 되는 강원랜드와의 법정다툼 끝에 1심에서 일부 승소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승소의 기쁨도 잠시 뿐 시간이 지나면서 재판이 점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그는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과거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강원랜드의 불법영업 실상과 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불공정한 실태를 책을 통해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은 지난 10월 22일 정덕을 만나 도박에 대한 그의 생각과 강원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하게된 이유 등에 대해 들어봤다.
우연한 계기로 접하게 된 카지노...‘꽁지’와 ‘병정’권하는 강원랜드
“삼애실업을 이끌 때는 성실히 일에 매진했다. 건강상의 문제로 경영일선에서 은퇴하고 난 뒤 매입한 건물을 관리하다보니 여유가 생겼다. 친구나 지인들과 골프를 치로 다니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날 잘 아는 국회의원이 노인을 위한 바자회를 연다며 기부를 부탁해서 500만원을 기부했다. (의원이) 기부를 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며 답례 차원에서 초대를 받았다. 강원랜드에서 숙식을 하게 된 것이 카지노를 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정덕은 2003년 4월 13일 강원랜드에서 난생처음 카지노라는 곳을 방문한 후 2006년 10월까지 3년 반 동안 360억 원 가량을 강원랜드의 5층 회원용 영업장에서 잃었다. 도박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적은 금액으로 베팅을 하고 바카라와 같은 게임은 그저 구경만 했다고. 그러던 어느 날 돈을 모두 잃고 나자 강원랜드 판촉과 직원이 ‘꽁지(도박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를 소개시켜주며 돈을 빌리도록 했다. 결국 꽁지에게서 빌린 돈 마저 모두 잃게되자 다음에는 일명 ‘병정’이라는 룰이 있다며 소개해줬다. 이들을 대동하면 테이블 당 베팅한도를 늘릴 수 있다는 꾀임에 넘어간 정덕은 하룻밤 사이에 수억 원을 날리기도 했다고 한다.
“카지노에 미숙한 사람들은 그 곳에서 지시하는 게임의 룰을 따른다. 만일 고객이 정한 룰을 벗어나면 직원들이 이를 지적하곤 했다. 나는 그들이 설명하는 룰에 따라 게임을 진행했다. 강원랜드는 국가가 예외적으로 인정한 합법적인 카지노였고 건물 외벽에 ‘국정감사 환영, 감사원 감사를 환영합니다’ 등 국정 감사도 매년 받는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기에 그들이 설명하는 ‘병정’의 룰도 당연히 합법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직원이 설명해준 룰은 테이블 당 베팅 한도가 혼자 참여하면 1,000만 원이지만 병정을 세우면 6,000만 원까지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정덕이 베팅 룰을 의아하게 여겨 왜 혼자 돈을 걸어도 되는데 이렇게 하느냐고 물으니 “문화관광부의 지침에 있다”고 직원이 말했다고 한다. 이에 정덕은 다른 사람들처럼 병정을 세우고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도박중독자로 지낸 3년 반... 360억을 잃고 불법이란 사실을 깨닫다
점점 그는 지속적으로 VIP 룸을 드나들면서 거액의 금액을 베팅했다. 돈을 잃고 나면 본전 생각에 다시 강원랜드를 찾았다.
“잃고 나도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 생각이 문제다. 돈이 나올 구멍이 있으면 여러 가지를 팔아서라도 다시 도박장을 찾았다.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에게도 분명히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사회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강원랜드는 도박중독예방센터를 운영하면서 표면적으로는 도박중독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 카지노를 찾으면 평범한 국민들도 도박에 중독되도록 상황을 유도한다.”
정덕은 큰 딸이 미국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도 ‘내가 간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나’라는 생각을 하며 장례식 대신 도박장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그 때를 회상하며 “정말 미쳐있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큰 딸을 잃는 슬픔에도 불구하고 그는 도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결국 정덕은 3년 반 동안 재산 360억 원 가량을 강원랜드의 5층 VIP룸에서 탕진했다. 당시 소유했던 반포동 9층 빌딩을 매각하고 양도소득세 납부를 위해 유보해두었던 돈까지 도박으로 날린 뒤에는 자살 기도도 했었다고 털어놨다. 아들의 119 신고로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고.
2006년 10월 중순 경에는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아내가 소유한 토지까지 사채업자에게 넘겨주어야 할 상황에까지 몰렸던 정덕은 등기를 의뢰하고자 정모 변호사를 찾았다. 이 때 정 변호사로부터 '대리베팅 게임운영 방식은 불법이다'라고 이야기를 듣고 그제서야 정덕은 강원랜드에서 해온 카지노의 룰이 불법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덕은 강원랜드의 5층 VIP룸에서 병정을 세우고 대리베팅을 하는 것이 공개적으로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 때까지 병정을 세우는 룰이 불법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회사를 이끄는 동안 맞이한 IMF 때도 모 방송 프로그램 MBC 성공시대에서 투명한 경영의 모범 사례로 방송에 나갔고 회사를 경영하는 동안 노조와도 별 문제없이 건실하게 생활했다고 자부해왔다. 그런데 강원랜드가 불법영업을 종용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강원랜드의 실체를 낱낱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강원랜드를 찾았다. 4층 일반 영업장에 들어가 ‘대리베팅을 철저히 단속하고 걸리면 베팅을 취소시키고 퇴장과 함께 출입정지를 시키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다. 그 후 정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강원랜드 쪽에 내용증명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묵묵부답이었고 이후 정덕은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 과정은 정덕을 더욱 분노하게 했다고 토로했다.
1심에서 일부 승소했지만... 향후 재판 결과 주시
정덕의 1심 재판 과정은 별 문제가 없었다. 1심 판결을 내렸던 A 판사는 ‘이런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첫 사례가 될 것’이라며 해외에서의 판례를 직접 조사해가며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1심에서 비록 정덕의 책임이 80%라는 판결이 선고됐지만 강원랜드의 불법영업에 대해 대한민국 법원 최초로 인정했다는 점에 그는 큰 의미를 부여했다. 당시 사회적인 파장도 꽤 컸다고 한다. 하지만 정덕은 강원랜드의 책임이 20%뿐이라는 것은 너무 적은 비율이라고 생각해 항소를 했다.
그가 강원랜드를 상대로 1심에서 일부 승소를 하고 나자 강원랜드 퇴직 직원들 및 내부 직원들이 증거자료를 보내주겠다고 연락이 왔고 정덕은 이들을 통해 강원랜드에서 직원을 교육시킬 때 사용하는 ‘카지노 간부교육 매뉴얼’이란 책자와 ‘일별·개인별 게임기록지’가 있다는 결정적인 증언(녹취)을 확보했다.
정덕은 증거자료를 이미 받은 상태였지만 변호사를 통해 ‘문서제출명령’을 신청해 CCTV 및 정씨의 게임기록지를 요청했다. 그러나 강원랜드 측은 자료가 없다며 제출을 거부했다고 한다.
| ▲ 강원랜드의 카지노 운영 매뉴얼 책자. 안에는 고객평가 현황을 기록하는 기록지 서식 등이 포함돼 있다. | ||
1심에서 일부 패소한 강원랜드는 2심에서는 법정대리인을 국내 굴지의 법무법인으로 바꾸는 등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강원랜드는 정덕이 잃은 금액을 200억 원대로 깎아내리고 오히려 정덕이 “강원랜드를 속여가며 대리베팅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정씨가 공개를 요청한 CCTV와 게임 기록 문서 제출 요구에는 강원랜드가 응하지 않다가 오랜 시일이 지나 조작된 자료를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강원랜드의 뻔뻔한 태도와 증거 조작 의혹 외에도 정덕을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재판장들의 태도였다고 정덕은 주장했다. 2심에서 처음 재판장을 맡았던 A 판사는 “문서가 있어도 다 사용하는 건 아니다”며 강원랜드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고.
이후 B 판사로 재판장이 바뀌었지만 그 역시 “없다는데?”와 “모르겠다”라는 말만을 반복하며 강원랜드 측에 유리하도록 편파적으로 판정을 진행했다. 또한 재판장에서 이 판사가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너무 힘드니 5분 휴정한 뒤 다시 재판하겠다”, “그동안 자료를 읽어보지 않아 진행에 문제가 있다”와 같이 판사로써 무책임한 말들도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는 것이 정씨의 설명이다.
그는 B 판사의 이야기를 하면서 분노가 끌어오르는 듯한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정씨와 내부고발자가 증거를 제출하겠다는 의사도 거부했던 B 판사는 1심에서 판결이 난 20%의 강원랜드 책임을 15%로 줄여줬다. 오히려 강원랜드의 편을 들어준 셈이라는 게 정덕의 주장이다.
정덕은 “강원랜드와 김앤장의 말에 동조해 말도 안되는 재판을 했다. 이런 사람은 하루라도 법정에 있어서는 안된다. 또 다시 피눈물을 흘리는 약자들이 발생할 것”이라고 분개했다.
이어 “내부고발자나 정확한 정보가 없으면 재판 진행 자체가 힘들다. 외국과 같은 경우는 원고들이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 필수이지만 우리나라는 약자인 피고가 증거를 제출해야 한다"며 "그러나 강원랜드와 같은 거대 조직과의 소송에서는 모든 자료를 원고가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고가 입증하기가 어렵다. 얼마나 불합리적인 방침인가”라며 강자들에게 유리한 재판 현실을 꼬집었다.
현재 강원랜드에 소송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들은 정덕을 포함해 10명 내외다. 이들의 손해액을 합치면 약 3,000억 이상. 그러나 강원랜드는 이의 절반도 안 되는 1,300억 원 가량을 제시하고 있다. 정덕은 기록되지 않은 금액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강원랜드의 주요 임원들은 대부분 청와대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정덕은 돈을 잃고 재판을 진행하면서 “사회적 강자의 위치에 있었을 당시에는 모든 것들이 잘 풀렸기 때문에 약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면서 "그러나 도박으로 돈을 잃고 약자의 입장이 돼보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강자들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인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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