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발스 스파 방문 - 그리고 그 사이 있었던 많은 일들
발스Vals는 스위스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시골마을로 교통이 다소 불편하다. 내가 이곳에 가려고 했던 유일한 이유는 발스에 소재한 7132 호텔의 유명한 스파 때문인데 (왜 이름이 7132인지는 모르겠다), 유현준 교수가 90년대 이후 지어진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하도 극찬을 하길래 가본 것이다. 이 호텔에 미슐랭 스타를 받은 레스토랑도 있고, 피터 줌터, 구마 겐고, 안도 다다오 등 유명 건축가들이 설계한 방들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건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의 유일한 목적은 스파 체험이었다.
발스가 얼마냐 시골인지 관광대국으로서 교통편이 잘 갖추어진 스위스임에도 불구하고 인터라켄에서 발스로 가는 교통편은 환승을 여러 차례 거쳐야했다. 게다가 내가 갔을 때는 (시계의 나라답게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한 스위스답지 않게) 열차시간이 지연되어 IIlanz라고 하는 버스정류장에서 다음 버스를 타기 위해 2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 때 하필 구매했던 유럽행 esim이 끊겨서 버스정류장에서 어떻게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는 와중에 어떤 젊은 백인 여자애가 내게 다가와서 "영어? 스위스어? 어떤 언어를 하세요?"하고 물어보길래, 나는 "영어"라고 말했고, 그녀는 자기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내게 길을 물었다. 피차 곤란한 처지였던 나는 잘 모르겠다고 웃으면서 나 또한 이번이 첫 방문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 왼쪽에 서 있던 안경을 쓴, 키가 큰 백인 남성에게 다가가 물었다.
나 역시 그 남자에게 다음 버스가 몇시에 오는지 물었고 시간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여기서 꼼짝없이 2시간을 기다릴거야?"하고 내가 물었더니 그 남성은 "여기는 볼 것이 아무 것도 없어. 기다릴거야."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 마을은 볼 게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같은 곳이었다. 문을 연 가게조차 별로 없었는데 나는 외국인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어떤 허름한 피자 가게에 들어갔다. 호텔 식당에서는 한번 식사를 하면 30~50만원을 각오해야할 것 같아서 여기서 포장하고 가는 것이 더 경제적인 이득일 것 같았다. (실제로 이 식당에서는 5만원 밖에 (?) 안나왔다.)
그런데 대뜸 오른쪽 테이블에 앉은 중동계 남자 두명이 나에게 "니하오!"라고 말을 했다. 유럽여행 중 처음 들어본 "니하오"였는데, 정작 백인들로부터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을 이민자들에게 들은 셈이다. 나는 대뜸 "니하오라고 말하지마, 멍청한 놈들아!" 하고 일갈했다.
그들의 당혹스런 표정을 보아하니 일부러 그런 표현을 쓴게 아니라 그저 반가움의 표시로 인사를 한 것인데, '니하오'가 인종차별적인 표현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악의라기보다는 그저 무지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가르쳐줄테니 잘 들어. 모든 아시아인들이 중국인은 아니야. 니하오는 아프리카 사람에게 니그로라고 말하는 것과 동급의 인종차별적인 단어야. 그런 말 들으면 아시아인들이 매우 싫어해. 쓰지마." 라고 말했다. "커뮤니케이션에 오해가 있었던 것 맞지?"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해서 그냥 알았다고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카운터에 가서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해서 포장했다. 카운터의 친절한 직원에게 이탈리아에서 았냐고 물어봤더니, 어느 나라인지 모를 나라의 이름을 말했는데 자신은 이탈리아어를 할줄 안다고 말했다.
식당에서 와이파이를 연결한 뒤, 버스를 타고 가는대신 Uber를 타고 호텔에 갈까, 생각을 해서 알아보았더니 약 15만원 정도 비용이 드는 것 같았다. 나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플렉스를 할 생각으로 Uber 앱에서 기사를 찾았지만, 워낙 시골마을이라 그런지 우버도, 택시도 잡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정류장에서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영문판을 읽으면서 적당히 시간을 때웠다.
이번 막차는 놓치면 끝이기 때문에 나는 버스정류장에서 어떤 친절한 스위스 버스기사에게 431버스가 이 정류장에서 오는게 맞냐고 재차 확인을 받은 뒤 계속 기다렸다.
그렇게 발스로 가는 막차인 431번 버스가 왔는데, 놀랍게도 버스라기 보다는 봉고차같이 작은 규모의 차였다. 초록 색깔의 차였고, 431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앞서 물어봤던 그 친절한 스위스 버스기사가 나를 발견하고는 이 차에 타라고 알려주었다.
431 버스 기사는 승객들이 어디로 가는지 전부 다 알고 있는 것 같았고, 중간중간의 다른 정류장에 멈춰서지도 않았다. 어두운 밤, 발스로 가는 길 밖의 풍경은 온통 산이었다.
나는 와이파이도 안 터지고, 조금 불안해져서 내 오른쪽에 앉은 안경을 쓴 스위스 아이에게 이곳이 발스로 가는 길이 맞고, 봉고차가 발스에 멈춰설 것인지 물어봤다. 그 아이는 그렇다고 말했고, 발스에 도착하자 내게 이곳이라며 알려주었다. 친절한 아이였다.
발스에 도착하자 미리 약속되어있던 7132 호텔 직원이 나와서 나의 캐리어를 호텔 차에 태워
약 3분 거리에 있는 호텔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는 체코 출신인데 스위스 발스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아마 일 때문에 여기서 살아가는 것 같았다. (이런 시골마을에서 젊은 남성이 산다면 끔찍한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5성급 호텔이라도 말이다.)
나는 프라하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그는 캐나다에 한번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친절한 녀석이었다.
나는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방에 머물렀는데,
빛을 조절하는 장치가 다양했던 것 빼고는 일본풍 미니멀리스트 스타일의 평범한 방이었다.
밤 10:30~11:30분 무렵에 7132 호텔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고, 피터 줌터가 설계한 발스 스파에 수영복을 입고 입장했는데, 처음에는 미로같은 구조에 정신이 없었다.
확실히 처음 볼 때는 다양한 컨셉의 동굴과 빛에 반사된 형형색색의 물들을 보면서 신선함을 느꼈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나니 좀 식상해졌다. 과연 유현준이 극찬하고, 감동할만큼 훌륭한 건축물인지는 글쎄... 내가 유현준보다 미적 감각이 더 엄격한 이유도 있겠지만...
실내수영장과 연결된 야외수영장에서는 독일 영화가 영어 자막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다음 날 정오에도 한번 더 스파를 방문했는데 (낮의 빛과 밤의 빛이 어떻게 다른 효과를 만들어내는지 꼭 비교해보고자 했다), 이 때부터는 구조가 완전히 익숙해져서 낯선 느낌은 없었다. 적당히 20~30분 정도 있다가 나왔다.
버스를 타고 돌아가기 전에 어제 못 본 호텔과 그 주변의 마을도 한번 둘러봤는데,
스위스 알프스 지대에 있을법한 전형적인 작은 마을이었다.
돌아가는 버스정류장에서 미국 출신으로 보이는 백인 중년 여성과 만났는데,
나에게 먼저 말을 붙였다.
그녀는 일본 영주권이 있고 도쿄도의 다카오시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이 여성이 다른 여행객과도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다른 장소에서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여러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친근하게 말을 거는 스타일임을 알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도 내내 폐쇄되어있는 나와는 다르게,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행자였다.
우리는 버스 안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 내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방에서 머무른 반면, 그녀는 구마 겐고가 설계한 방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구마 겐고가 그녀가 사는 다카오시 근처의 다카오산과 관련된 무슨 설계를 한 것 때문에 그가 설계한 방에서 머무르고 싶었다고 했다.
- 그녀는 다카오산이 세계에서 가장 00한 산이라고 했는데 뭐라고 했는지 잘 못 알아들었다. 나중에 글을 쓰며 검색해보니 세계에서 가장 등산객이 많은 산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다카오산에 곰이 출몰하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 그녀는 내가 학생이냐고 물었다. 나는 사업가라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지났다고 덧붙였다. 그녀는 내가 대학을 졸업한지 꽤 지났으니 25살 정도로 보인다고 유추했는데 내가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하자 다소 놀라워하는 것 같았다. 나는 동양인은 원래 좀 어려보인다고 말했다.
- 그녀에게 일본에서 영어를 가르치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다양한 사업들을 한다고 했고, 내가 곧 타이베이를 방문할 것이라고 하니, 자신은 가본적은 없지만 그녀의 비즈니스 파트너와 함께 타이베이에서 커피 사업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커피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것 같았다. 나는 왠지 부동산에 대한 사업일줄 알았는데, 커피에 대한 사업을 구상한다고 해서 다소 신선하게 느껴졌다. 똑같이 도쿄에 적을 두고 있고, 사업을 한다고 하니 반가움이 있었다.
- 그녀는 파리에서도 몇년 살았고, 도쿄에서 18년을 살았다고 한다. 일본인 남편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고 한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일본인 남편과 결혼했던 올리비아 핫세가 떠올랐다) 나는 일본에서는 백인은 영원한 이방인일 뿐이며, 많은 외국인들이 일본에서 고립감을 느낀다고 말했는데 당신은 어떠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신은 그렇지 않으며 언제나 일본인들로부터 환대를 받았고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북유럽에서 여행을 해봤지만, 백인들이 주류인 사회에서 동양인이 주류가 되기는 힘들 것 같고, 어떤 숨은 벽 (hidden barrier) 같은 것이 있으며, 이는 일본에서 백인이 일본인이 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하고 말했다. 그녀는 "네가 그렇게 느낀거야?"하고 물었다. 나는 내가 그렇게 느낀다기보다는 이것은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그렇다고 말했다.
- 그녀는 일본어로 내게 말을 걸려고 여러번 시도했고 나는 무슨 말인지 전부 알아들었으나 내 일본어가 부족한 관계로 영어로만 이야기했다.
- 그녀는 스위스에서 발스 스파만 방문하고 프랑스 어딘가로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스위스 여행의 유일한 목적이 발스 스파였던 것 같았다.
- 그녀가 일본에서 환대만 받았다고 하니 나는 일본 경찰을 예로 들어 그들이 얼마나 반말을 밥먹듯이 사용하고, 무례하고 짜증나는지를 이야기했다. 나는 일본 경찰이 만약 그녀에게 "코코니 스왓테"라고 타메구치를 쓰면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녀 역시 일본 경찰의 무례함에 공감을 했고, 불쾌한 경험을 공유했다. 그녀는 미국 경찰과 다른 일본 경찰의 위압적인 태도 (점차 목소리를 높여가며 상대를 위협하는 공포수법)를 지적했다. 그녀가 폭력적인 미국경찰들의 바디캠 영상들을 본 적이 없는 건가 고개가 갸우뚱했지만 넘어갔다.
- 나는 카를로스 곤 사건을 예로 들며, 21일간 외국인에 대한 불법 구류가 가능하고 변호사 접견이 불가능한 일본의 사법 시스템을 비판했다. (다시 찾아보니 경찰 구류 2일+검찰 구류 21일, 합계 23일이 가능하다 - 다만, 여기에도 허점이 있는데, 카를로스 곤 사건처럼 검찰이 핑계를 대서 갖다붙히면 무기한 잡아넣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관세 정책에 대해서는 도널드 트럼프의 일본에 대한 압박이 먹혔으니, 미국이 일본의 사법 시스템을 바꾸도록 푸쉬하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그녀는 그건 트럼프와 관계가 없다고 말하며 "칸케나이데스"라고 말했다. 나도 "칸케나이"라고 맞장구쳤다.
- 그녀가 곧 싱가포르를 방문할 것이라고 하자 나는 그곳에 가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가 어땠냐고 묻자, 나는 별로였다고 말했다. 싱가포르가 매우 권위주의적인 국가라서 공항 직원들이 명령조로 말하는 것이 불쾌했다는 내 경험담을 공유했다. 그녀는 프랑스 공항에서 받은 불쾌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나는 여담으로 프랑스는 개인주의 문화에 기반해있고, 모든 프랑스인은 에고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 두명 때문에 그 국가에 대한 이미지 전체가 망쳐질 수 있다는데 공감대를 나눴다.- 그녀는 싱가포르, 홍콩, 마카오, 한국 등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는 가본적이 없었고,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유럽, 미국 위주로 여행을 했던 것 같았다.
워낙 붙임성이 좋은 여성이라 반가움 반, 불편함 반 정도로 대화가 쉴새 없이 이어졌다. 나야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니, 영어를 익혀둔 것의 쓸모도 실감했다.
북유럽과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의사소통에 불편한 때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일본여행보다는 확실한 메리트였다.
대화를 하면서 내가 두가지 사소한 영어 단어 선택 실수를 했음을 눈치챘다.
- 일본의 사법 시스템을 이야기하며, 주디셜 judicial이라고 발음해야하는 것을 주디컬 judical이라고 발음했다. (주디컬은 존재하지 않는 단어)
- 싱가포르의 시스템을 이야기하며 권위주의적authoritarian 국가라는 것을, 권위적authoritative 국가라고 잘못 말했다. 전자가 권위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한다면, 후자는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등 어감이 전혀 다르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개방적인 사람답게 보였는데, 선뜻 라인을 교환하자고 하기에 알려주었다.
나는 사실 낯선 사람과 친근하게 대화하고 연락처를 주고받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서 상당한 혼란을 느꼈다.
심지어 그녀는 내가 일본의 kissaten culture를 경험해본적이 없고, 스타벅스 커피는 즐긴다고 하자, 그건 진짜 커피가 아니라면서 나중에 가을이 되면 kissaten culture을 경험할 수 있는 카페에 초대를 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스위스 발스 온천에서 우연히 일본 도쿄에 사는, 그것도 사업을 하는 중년 여성을 만난 것에 대해 기이한 느낌을 받았다.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혹시 뭔가 '운명의 길라잡기' 역할을 하는 사람인가? 하는 망상도 몇초간 해보았다 (이를테면 칼 융이 귀부인들의 후원으로 재단을 설립했던 것이나, 차이코프스키가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의 막대한 후원으로 생계걱정 없이 음악활동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내 하찮은 생각임을 깨닫고 금방 그만두었지만...
그런데 다음 환승역에서 헤어지고, 라인에서 커피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당신의 커피에 대한 열정을 공유할 수 없어 유감이고, 나는 커피에 사실 관심이 없다고 말했더니 그 이후 대화가 끊어졌다 ^^.
내가 어떤 분야에 열정을 갖고 있지만, 상대는 열정을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해조차 못해준다면 대화는 금방 끝장날 것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어느 누구와도 친구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이 여성과 특별히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기 보다는, 그 어떤 타인과도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는 느낌에 더 가깝다.
왜 그런지는 좀 더 복잡한 심리적 분석이 필요하겠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귀찮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누군가 내게 불쾌하게 접근하면 때려주고 싶지만,
친근하게 접근해도 불편하다.
나는 까다롭다.
친구를 원하지 않는다.
그냥 다 귀찮다.
적당한 선에서 관계를 다 끊어버리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내가 결핍감, 고독, 외로움 같은 것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는 평균적인 사람들보다도 더 진정성있는 관계, 뜨거운 관계를 추구한다.
그런데 그 관계의 형태가 1:1의 친밀한 관계라기보다는, 대중 집단의 존경을 받고 그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데서 오는 관계, 즉 "상사로서의 권위", "전문가로서의 권위"라는 형태의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일반인들과는 애초에 다르게 생겨먹은 인간이라,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 일반인들과의 친우 관계에는 전혀 흥미가 없지만, 나는 애인의 존재는 누구보다도 꼭 필요하다.
나는 인간관계의 결핍감을 애인 한명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서 채우려는 조금 병적인 심리구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세계에 (1) 나의 외모와 성격의 이상형에 부합하고, (2) 상대도 나를 좋아하며, 또한 (3) 나의 그러한 욕구를 이해하고 채워줄만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여튼간에 내 인생에 별로 중요한 일화도 아니고 사소해보일 수 이야기들의 연속이었지만,
기록을 안해두면 전부 잊어버리기 때문에
기록해봤다.
유현준 발스스파 관련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AYEQW6wfnYE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M6zEpNaPc5Q&pp=ygUNI-yngOuLiO2MjO2BrA%3D%3D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JzmVfSvKd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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