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시치헤이의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과 "공기의 연구" - 일본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책들; 집단의 '공기'를 추종하고, '물'처럼 유동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일본인들;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다르게) 일본에서 기독교가 자생할 수 없었던 이유는 신토와 천황제의 존재 때문은 아니었을까 - 외국문화를 받아들이되,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인들 (교회에서의 결혼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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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누락 누락 누락 누락투성이……
이것이 바로 일본 제국 육군의 실체였다


이 책은 일본문화론의 대가로 알려진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육군의 하급장교로서 참전했던 경험을 기록한 것이다. 1942년 징병되어 태평양 전쟁에 참여, 패전 후 필리핀 수용소에 억류되었다가 1947년에 본국에 돌아온 그는 제국주의적 야욕을 불태우던 자신의 나라가 가진 뿌리 깊은 콤플렉스를 지적하며 일본 특유의 조직론과 사고방식을 그의 전쟁 경험의 흐름에 따라 분석해나간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거친 뒤 일본이 벌인 가장 어리석은 전쟁으로 평가되는 태평양 전쟁 당시, 제국 육군은 ‘사고 정지’ ‘기백 연기’ ‘사물 명령’ 등의 단어로 정리될 수 있을 만큼 기이하고 부조리한 조직적 패착을 드러내며 자멸의 길로 들어선다. 대학생 신분에서 갑자기 장교로 차출된 저자는 제 스스로도 몰인간적인 행위들을 저지르긴 했으나, 이미 전장에서부터 일본 제국 육군에 거리감을 두고 하나하나 관찰해나가기 시작한다. 저자는 이를테면 ‘공기’라는 단어를 통해 일본인들이 무언의 중지가 가리키는 ‘분위기’에 휩쓸려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등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 책은 전쟁포로기 체험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오오카 쇼헤이의 『포로기』, 고마쓰 신이치의 『포로일기』 등과 같이 전쟁에 참여했던 이가 써내려간 귀중한 체험 기록으로서 전쟁국가 일본의 패착을 잘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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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대의를 섬기는 사상’
2. 모든 것이 누락, 누락 또 누락……
3. 아무도 모르는 대미 전투법
4. 지옥 같은 수송선 생활
5. 돌멩이 세례와 꽃 세례
6. 현지 정보에 무지한 제국 육군
7. 죽음의 행진에 대하여
8. 죽음을 자초한 일본군
9. 첫째, 군인은 숫자를 우선할 것
10. 사물 명령·기백이라는 명목의 연기
11. ‘그냥 종이일 뿐, 돈이 아니다Only paper ·Not money’
12. 참모의 거짓 시나리오에 따른 연기, 그리고 그 흔적들
13. 마지막 전투에 남는 분함
14. 죽음의 후렴구
15. 조직과 자살
16. still live, 아직 살아 있다
17. 패전의 순간에 전쟁을 책임지기 위한 또 하나의 방편, 속세를 등진 각하들
18. 언어와 질서와 폭력
19. 통수권·전쟁 비용·실력자
20. 조직의 명예와 신의
후기

저자 소개 (1명)

저 : 야마모토 시치헤이 (Shichihei Yamamoto,やまもと しちへい,山本 七平)
1921년 도쿄 도 출생. 1942년 아오야마학원고등상업학부 졸업. 2차 세계대전 당시 야포부대 소위로 마닐라 전투에 참가했다가 필리핀의 포로가 되었고, 1947년 풀려나 귀국한다. 그 후 야마모토 서점을 설립하여 성서학과 관련된 서적 출판에 종사한다. 1970년, 이자야 벤다산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한 『일본인과 유대인』이 30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된다. 또한 ‘일본인론’을 출간하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일본 문화와 사회를 분석하는 독자적인 논고는 ‘야마모토학’이라 불리기도 한다. 평론가이자 야마모토 서점 점주로, 1991년 타계했다.
저서에는 『내 안의 일본군(私の中の日本軍)』, 『공기의 연구(‘空?’の?究)』(이상 文芸春秋), 『일본은 어째서 패배했는가(日本はなぜ敗れるのか)』(角川書店), 『제왕학(帝王?)』(日本??新聞社), 『일본인이란 무엇인가(日本人とは何か)』, 『쇼와천황 연구(昭和天皇の?究)』(이상 祥?社), 『어째서 일본인은 바뀌지 않는가(なぜ日本人は?われないのか)』, 『일본인은 무엇이 부족한가(日本人には何が欠けているのか)』, 『일본교는 일본을 구원할 것인가(日本?は日本を救えるか)』(이상 さくら?) 등이 있다.
역자 : 최용우
게이오대학 문학부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뒤 고려대학교 중일어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삼성 인사팀에서 3년간 근무하면서 해외 인력 관련 업무를 담당했으며 이후 연세대 지역학 박사과정에 진학했고, 현재는 전문 번역가의 길로 들어서 번역활동에 열중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도쿄가 멸망하는 날』 『오무라 사토시 이야기』(근간)이 있다.  
 
 
 

책 속으로

일본군은 한마디로 ‘이도 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였다. 이는 얼마 안 되는 재산에 집착하여 모든 것을 잃게 된 초라한 남자와 닮았다. 애매모호함은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고 스스로에게도 큰 상처를 입힐 뿐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 결국 애매모호한 자에게는 전쟁을 치를 능력이 없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우리에게는 ‘전쟁 체험’이나 ‘점령 통치 체험’이 없었으며 이민족 공존사회, 혼혈사회에 대해서도 무지했고 지금도 역시 모른다. --- p.108

그는 각오를 했다기보다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사고를 정지시킨 듯했다. ‘사고 정지’, 결국 이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제국 육군의 하급 간부와 병사들에게 항상 존재했던 변함없는 마지막 종착역이었다. --- p.126

평화가 찾아온다면 이런 수목 밑의 그늘진 강가는 물소의 휴식처가 될 것이다. 모든 것은 다 지난 일이었으며, 분지는 고대古代의 정적을 되찾은 듯했다. 형용할 수 없는 깊은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뇌리에 남아 있는 단어는 없었고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눈앞의 영원불변할 것 같은 분지를 바라보면서 지금의 공허함을 느끼며 언제까지나 앉아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것은 무의식중에 끊임없이 갈망해온 안식이었다. 그리고 나는 수용소에서, 다른 많은 사람도 공허함 속에서 느껴지는 안식에 영원히 머물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때 그곳에 평생 앉아 있고 싶었어”라고 말이다. --- p.246

한마디로, 인간의 질서란 말의 질서, 말에 의한 질서다. 육군과 해군 구분 없이 모든 일본군의 가장 큰 특징이자 사람들이 그다지 지적하지 않는 특징으로 ‘말을 빼앗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일본군이 동포에게 저지른 죄악 중 가장 무거운 것으로, 모든 악의 근원이었다고 생각한다.
--- p.351
 

출판사 리뷰

누락 누락 누락 누락투성이……
이것이 바로 일본 제국 육군의 실체였다


“야마모토는 박학다식하고 비범한 인물이다. 아주 미미한 지식만으로도 본질을 바로 꿰뚫어볼 수 있다.”_고무로 나오키·경제학자 겸 법학자

“18년 동안 야마모토의 저서 서른두 권을 읽으면서 그 내용의 핵심을 추려서 야마모토학의 요점을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_다니자와 에이이치·문예평론가 겸 서지학자

“일본 육군의 기괴하기 짝이 없는 조직의 실태에 대해 당시 필리핀에서 야포연대본부 소위로 있었던 저자가 이를 철저히 분석하고 추궁해낸 역작!”_『분게이슌주』

“현대 일본적 조직의 뒤틀린 모습과 일본인 특유의 사고법을 꿰뚫어본 야마모토류 일본론의 실마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_기노쿠니야 서점

“구일본군에 관한 내용을 담은 수많은 책 가운데 이 책만큼 본질을 잘 통찰해낸 것은 없다.”_노구치 유키오·히토쓰바시 대학 명예교수

모든 것이 누락, 누락 또 누락……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4월의 어느 날, 졸업이 앞당겨진다는 발표와 함께 6월에 징병검사를 받고 그로부터 6개월 후에는 전장에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징병검사라는 군대와의 첫 대면에서 그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른바 ‘돗쓰쿠’, 일종의 제재적 행위다. 특수한 상황 하에 ‘특정 역할이 주어진 위치’에 서는 순간 그 사람의 태도가 돌변하는 현상, 지극히 일본인다운 현상과 마주하게 된다. 이전에 주인공의 집에 방문해 물건을 팔기 위해 굽신굽신하며 상점 주문을 받으러 다니던 배달원을 신체검사장에서 맞닥뜨렸는데, 이제 징병과 관련한 일을 맡게 된 그는 시치헤이에게 “어이, 거기. 멍청히 서 있지 말고 빨리 빨리 접수부터 하란 말야!” 하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 광경을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지만, 사실 그 배달원은 대상이 손님이든 군대든 언제나 ‘대의를 섬기는 사상’에 충실했으며, 사대주의적 국가의 군대에 적절한 ‘모범적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군은 틀림없이 무언가에 쫓기는 듯했고, 전국의 진상은 알 수 없었지만 수뇌부가 허둥대고 있다는 사실은 감지할 수 있었다. 결국 잊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만다. “오늘부터 교육 변경이다. 대미 전투를 주체로 한다. 이것을 ‘A호 교육’(미국을 적국으로 상정한 군사 교육)이라 한다.” 이에 저자는 놀라움과 의문의 해소, 분노가 뒤섞인 기묘한 감정적 응어리가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누락투성이 중에서도 최대의 누락이었던 것이다! ‘A호 교육’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 받아온 교육은 일관되게 대소비에트전이었으며 상정한 전장 역시 언제나 북만주와 시베리아 벌판이었지 동남아 지역의 정글은 아니었다. 교관들도 미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고, 전장에 나간 육군은 현지의 기본적인 경제력 및 특수성 등 정보에 무지했다. 그리고 지옥 같은 수송선을 타고 마닐라에 상륙한 날, 필리핀의 군사 요지와 현지 사정을 기록한 ‘간부 필독’ 서류 등을 건네받고 충격에 사로잡혀 망연자실한다. 동아시아 해방을 위해 피를 흘리고 있어야 할 일본제국 육군이 실은 원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 시점에서 정확한 기술을 한 고마쓰 신이치의 『포로일기』의 인용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바보새끼’ ‘도둑놈’ ‘이놈’ ‘이 자식’ ‘살인자’ ‘너 같은 건 죽어버려’. 증오에 찬 표정으로 악을 쓰며 목을 긋는 흉내를 내고, 돌과 부러진 나무토막들이 날아온다. 새총을 쏘기도 한다. 옆 사람은 머리에 돌을 맞고 피가 났다.’
일본군은 한마디로 ‘이도 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상태였다. 애매모호함은 상대에게 큰 상처를 주고 스스로에게도 큰 상처를 입힐 뿐 아무것도 얻는 게 없다. 결국 애매모호한 자에게는 전쟁을 치를 능력이 없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일본군에게는 ‘전쟁 체험’이나 ‘점령 통치 체험’이 없었으며 이민족 공존사회, 혼혈사회에 대해서도 무지했고 지금도 역시 모른다고.

실제로 존재하지만 숫자로는 없다

본토에서는 ‘현지에서 지급한다’ ‘현지에서 조달한다’는 공수표를 남발했으나 막상 현지에 와서는 그 대부분이 이행되지 못했다. 현지에 가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전장에 나와 작은 끄나풀 같은 희망을 가지고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온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필리핀에는 말이 없다’는 것뿐이었다. 비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말이 없어 스스로 쳇다리 끝을 끌어안은 상태로 포차를 끌고 온 육군은 비로소 현지 사정을 알고는 자기 의지로 사고를 정지시켜버린다. ‘사고 정지’, 결국 이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제국 육군의 하급 간부와 병사들에게 항상 존재했던 마지막 종착역이었다.
일본 육군에게는 기본적으로 ‘숫자만 맞으면 그걸로 됐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내실은 전혀 따지지 않는 형식주의, 바로 ‘고무줄 숫자’라는 사항이 있었다. 숫자가 맞지 않으면 처벌이고 숫자만 맞으면 이하 불문이라는 식이었기 때문에 ‘숫자를 맞추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했다. 일본군은 미군에게 패한 것이 아니었다. 자전하는 ‘조직’ 위에 군림했던 ‘불가능한 명령과 이에 대한 고무줄 숫자 보고’로 구성된 허구의 세계를 ‘사실’로 여겼기 때문에 현실에서 미군에 의한 타격을 받고서 허구의 세계가 산산조각 나자 항복한 것이었다.
또한 제국육군은 일종의 허구세계로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그 세계를 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이상한 연출력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이런 연출력을 가능케 하는 것은 연기력의 기초가 되는 것으로 ‘기백’이라는 기묘한 것이다. 분명 전투에서는 ‘그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력과 ‘강한 척하는 연기’에 불과한 히스테릭한 ‘기백 과시’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이처럼 준비되지 않은 일본제국의 육군은 허구의 세계에서 기백 연기를 하고, 고무줄 숫자 보고를 하며 스스로 잠식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곳에 평생 앉아 있고 싶었어”

필리핀에 있던 육군은 8월 15일을 알지 못했다. 8월 27일에 항복 명령이 내려오자 분초는 해산했다. 그는 눈앞의 영원불변할 것 같은 분지를 바라보면서 밀려오는 공허함에 언제까지나 앉아 있고 싶은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무의식중에 끊임없이 갈망해온 안식이었으며 수용소에 있던 다른 많은 사람도 그와 같이 말했다. “나는 그때 그곳에 평생 앉아 있고 싶었어”라고.
전쟁의 끝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자결이란 이름의 확실한 타살’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책임한 명령으로 인해 고난 끝에 자살을 강요받아 죽기도 하고, 이러한 상황을 예견함으로써, 굴욕적인 죽음을 피하고자 미리 자살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저자는 할힌골 전투에서의 병사들에 대한 자살 강요를 세세히 기억해낸다. 명예는 조직의 것일까 혹은 개인의 것일까? 제국 육군에는 그런 문제의식조차 없었고, ‘조직의 명예’ 외의 다른 명예는 존재하지 않았다. 살아서 포로로서 수치를 당하기보다 개인의 명예를 찾으라는 명목 아래 자결하게 하고는 자결한 이들을 ‘명예의 전사’라고 칭하는 것은 얼핏 ‘개인의 명예’를 위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포로 없음’이라는 보고를 위해 조직의 명예를 절대시한 나머지 개인을 말살시켰던 데에 불과했다. 이것이 제국 육군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전하는 ‘조직의 명예’라는 사고방식이 일본을 파멸로 몰고 갔다.
저자는 ‘해방자’인 일본군이 어째서 그 이전의 식민지 종주국보다 더 미움을 받았던 것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 이유는 동물적 공격성만 존재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조직을 형성하여 어떤 질서를 확립할지에 관한 계획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이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분명 전쟁은 끝났고, 제국 육군은 파멸했다. 그럼에도 저자는 말한다. 적어도 당시의 상식에서는 파산 뒤에 청산이 있어야 했다고. 제3자도 방관자도 아니었고 일본제국 육군의 소위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요구가 있다면 적어도 ‘청산인’에게는 모든 것을 보고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믿기지 않는 이야기지만, 그러한 요구에 응해야 했던 상황은 전혀 없었고 이것으로 인해 야마모토는 주눅 들어 있어야 했다고 말한다.
“푸른 하늘을 한 번 더 보고 죽고 싶다.”
전투를 위해 10여 일을 동굴 속에 있다가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위와 같은 말을 통해, 누구에게나 전쟁은 참혹하다는 것을 숙연히 전한다.
 
 
 
우리 인생의 패망을 막아줄 교범을 읽다
평점10점 | s**********k | 2018-05-09 | 신고

   20세기 우리나라의 가장 큰 이데올로기는 일본이었다. 경술국치와 뒤이은 6·25 사변으로 그야말로 폐허가 된 우리의 국토 옆에는 각종 시장을 휩쓸며 호황 가도를 달리고 있던 일본이 있었다. 어느 누구도 재기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던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우리는 '잘 사는 이웃 나라' 일본을 그 본보기로 삼아야 했다. 일본의 기술력을 따라잡기 위해서 그들의 기술을 배워야 했고, 배우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훔쳐서라도 가지고 와야만 했다. 그 결과 삼성은 소니를, 현대는 도요타를 따라잡으며 오늘날 우리나라는 당당히 경제대국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한편, 화려한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저출산과 고령화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 현상도 뒤따라 그 실체가 천천히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으며 더 이상 일본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과거 우리가 일본을 벤치마킹했던 것처럼 중국이 우리의 것들을 빠르게 흡수하며 무서운 속도로 쫓아오고 있는 현 상황 속에서 짧지 않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던 찰나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저자는 태평양 전쟁이 발발한 1940년대 초, 대학교를 졸업한 후 군에 입대하여 수년간 일본 제국군의 장교로 복무하면서 사관생도 시절부터 동남아 전선에서의 전투, 그리고 전쟁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의 생활까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제국 군대가 패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냉소적이고 비판적으로 기술하였다. 참전 당사자의 시각에서 군 내부의 상황과 전장에서의 팽팽한 긴장감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는 점 또한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고 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한민국 현대사의 이데올로기의 한 축이 일본이었고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많은 시스템이 일본으로부터 차용되었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의 해법을 원인 제공자인 일본에서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페이지를 몇 장 넘기기도 전에 당시의 일본 육군 조직 내에서 저자가 느낀 문제의식과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 내 조직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 한계가 유사하다 못해 정확히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포로수용소에서 본토로 송환되는 인양선에서 만났다는 한 제대군인과의 대화는 자못 흥미롭다.

 

 

   학교 졸업 후 바로 입대하여 전쟁터와 수용소에서의 경험이 전부였던 나는, 곧 돌아갈 '전후 일본 사회의 실정'이 매우 궁금했다. 제대군인 출신의 그는 지금 후생성 국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이미 2년 남짓한 사회 경험을 한 '선배'였다. 그에게도 군대와 전쟁터밖에 모르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매우 좋은 인생 선배였고, 그의 설명은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는 우선 육군 말단 조직의 실정을 주의 깊게 하나씩 짚어가며 간략히 말했다. "그야 뭐. 군, 사단, 연대라 해도 이들은 퍼져나가는 신경계 같은 존재이고 실제로 움직이는 단위는 제1선의 중대였죠. 소위 말하는 수족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 이를 장악했던 것은 준위, 상사였고...(중략) 장교는 이들을 어떻게 자유자재로 움직일지 고민하는 거구요. 이를 위해 전술을 배우고 교육 훈련을 실시합니다. 그러나 이런 조직 자체가 당면한 적 또는 전쟁터에 적합한지 여부는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어요."

 

 

   이른바 '자전'하는 조직을 어떻게 움직일 지에 대한 고민은 할지라도, 누구 하나 자전하는 조직의 내실이 과연 목적에 상응할 만큼 합리적인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은 것이었다. 명확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공전'하며 앞으로 전진해 나가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 변화를 귀찮아하고 혁신을 외치면서도 기존의 틀을 고수하며 '자전'하는 것에 중심을 두는 우리 조직 내부의 태도와 같았다. 장기 말을 어떻게 움직일 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도 근본적으로 말의 질을 바꾸고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서 변화에 대처할 생각은 상상도 못 하였다는 저자의 말은 윗선의 '고지식함'을 꾸짖은 것일까, 아랫선의 '침묵'을 겨냥한 것일까.

 

 

   뒤이어 기술되는 '누락', '사물 명령' 그리고 '기백'과 같은 단어들은 일본군이 미군에게 패퇴한 군부 조직 내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꼽힌 단어들이다. 기본적으로 '누락'이라는 현상은 '숫자 검사'를 대하는 군의 태도에서 시작됐다. 일반적인 재고 정리(장부상의 숫자와 실제 물품의 숫자가 일치하는지 여부를 조사)와 유사한 이른바 '숫자 검사'의 문제점은 검사 그 자체보다는 검사내용과 의미 부여에 있었다. 숫자만 맞으면 된다는 태도를 취하면서 내실은 전혀 따지지 않는 형식주의, 이것이 고무줄 숫자의 근간이 되었다. 일본군 사전에 '분실했습니다'란 말을 없었다. 분실하면 숫자를 맞춰서(훔쳐) 와야 했고 숫자 검사 명령이 하달되면 '숫자가 맞습니다'라고 보고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다시 말해 숫자로 대표되는 전쟁 물자의 속성에 대한 조사나 전략적인 탐구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어떤 명령에도 상부에서 받고싶어 하는 보고를 올리기만 하면 그걸로 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이것이 일본 육군 내에서 위아래로 망라하며 철저히 잠식해 들어간 고무줄 숫자였다.

 

 

   "형식화된 군대에서는 '실질보다는 숫자, 숫자만 맞으면 다른 건 다 괜찮다'라는 사상이 위아래 할 것 없이 철저히 깔려 있다. 고무줄 숫자로 만들어진 비행장은 한번 내린 비로 인해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될지라도 참모본부의 도면에는 그럴듯한 비행장으로 그려졌다...(중략) 필리핀에 가면 무기가 있다는 말에 빈손으로 일본을 출발했지만 도착해보니 총 한 자루 없는 게 현실이다. 어쩔 수 없이 죽창을 든 군대가 되었다. 일본의 최고 작전조차 이런 식으로 숫자 중심이었던 것이다."

 

 

   이와 유사한 일들이 오늘날 우리 조직 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나는 이것을 부서 간 장벽이라는 단열재로 인한 '온도 차이'라고 정의해 본다. 현장에서 고객으로부터 전달되는 날것 그대로의 뜨거운 표현이 내부 중앙 조직으로 전달이 될 때 다소 민감하거나 상사의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하는 부분 등은 순화되어 모호하고 미적지근한 형태로 보고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중요한 의사 결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부분임에도 조직의 '자전'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왕왕 행해지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일본군이 패망하게 된 원인 중에 하나임에도 말이다.

 

 

   그 진위 여부를 가리기 힘든 '고무줄 숫자' 보고만을 그 원인으로 볼 수는 없겠으나 보고에 기반하여 하달되는 명령의 절차에 대해 당시 군부 내에서는 '그 명령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마지막 순간까지 항상 의심받아 왔다는 견해가 있었다.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용어이나 당시 천황의 군대 내에서 만연했던 '사물 명령'과 관련이 있다. '사물 명령'이란 보급품 지급처럼 점진적으로 위에서 말단까지 내려오는 명령이 아닌 또 다른 형태의 '명령'으로, 다시 말해 명령권자가 아닌 상관 개인이 명령권을 사유화 한 뒤 이를 근거로 자의적으로 내리는 명령이라는 의미이다. 좀 더 구체적인 형태로는 정식 명령권자는 전혀 모르는 일인데도 당당히 명령이란 명목으로, 때로는 구두로 때로는 정식 문서로 하달되는 경우이다. 전후 전범 문제 처리에 있어서, 형식적으로는 명령이 당당히 발령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명령은 내린 적이 없다"라고 증언해서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해 살아남은 비열한 지휘관'으로 몰린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진보 중령은 정식 문서가 와도 소위 제 육감을 발휘하여 '누군가가 멋대로 만든 명령(사물 명령)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힌트는 바탄 전투가 끝났을 때 난데없이 포로를 죽이라던 '군 명령', 즉 '사물 명령'에서 얻었다. 오늘날에는 이 사물 명령 발령자가 최고 통수부 파견 참모인 쓰지 마사노부 중령이었다는 점이 밝혀졌다...(중략) 따라서 나 같은 사람들은 쓰지 마사노부가 전후 화려하게 복귀하는 모습에 형용할 수 없는 의아함과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배후에는 무언가 일본군이나 전후 사람들 모두가 지닌 약점이 있는 게 틀림없다...

 

 

   업무 하달은 있었지만 하달된 업무 수행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의 사후 책임자는 없거나 엉뚱한 사람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비단 일본군 내 문제만이 아니었다는 점에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하고 칠 수밖에 없었다. 의사 결정과 지시 하달이라는 권한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것임이 망각된 채 무분별한 권한의 남용과 양도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항상 아랫사람들이었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용케 화를 피할 수 있었으나 대부분은 그러지 못한 채 '굴림'을 당했다. 이것은 개인의 도덕성에 따른 문제이므로 조직 차원의 해법은 없다는 속 편한 결론의 이면에 무분별한 '사물 명령'의 수혜자가 비웃고 있는 듯하다.

 

 

   이 수혜자들은 항상 나름의 권력을 계속해서 유지해 왔는데, 저자는 이런 사람들이 항상 유지해온 '권력'의 수수께끼에 대한 적절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일종의 허구 세계로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그 세계를 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이상한 연출력이 그 답이라는 것이다. 이 연출력의 기본이 되는 것으로 '기백'이라는 묘한 단어가 등장한다. 이 단어는 당시 육군들 사이에서는 어떤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기준이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기백'이란 무엇일까. 일본어 사전 고지엔의 정의에 따르면 '그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강한 정신력'이다. 그러나 실제 이 '기백' 역시 유형화된 속이 텅 빈 표현 형식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아무런 의욕이 없는 병사라도, 전신에 긴장감을 주면서 정맥이 드러날 만큼 큰 소리로 말하고, 절도 있고 똑 부러진 동작으로 연기하듯이 과장된 군인 제스처를 하면 그것을 '기백'이 있다는 증거로 여겼다...(중략) 내심 다른 무엇을 생각하건 뒤에서 혀를 내밀건 간에 '연기·연출'만 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모든 게 통하는 사회였다...

 

 

   분명,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그 어떤 것에도 굴복하지 않고 맞서는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연출로 만들어진 모습에 불과한 '기백 과시'는 전혀 관계가 없다. '연출된 기백'은 과장된 확신과 제스처, 무모하고 무의미한 '사물 명령'과 이에 대한 반론을 사전 봉쇄하기 위해 끝없이 욕설과 비방을 계속하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정신력(기백)이란 이러한 기백 과시자의 압박을 태연하게 무시하고 욕설과 비방에도 눈길도 주지 않으며 몇 번이고 도전해서 완벽을 향해가는 노력이라고 보는 견해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정신이 가장 부족한 '기백 과시자'들이 멋대로 날뛰며 모든 방면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데 저자는 이들을 '암 덩어리'라고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나와 같이 직장 내 일반 실무자들은 오히려 이런 현상을 쉽게 알아챌 수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팀장 이상 임원진의 경우 이미 노이로제에 걸린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실태를 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신들린 언변으로 초인적인 능력을 뽐내며 호언장담을 하는 유형의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하면서 자신의 전문 분야에 상세히 개입시키는 방식으로 쉽게 빠지게 된다. 우리 조직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익숙한 현상이지만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바로잡기엔 쉽지 않은 이 씁쓸한 상황이 또 다른 일본군 패망의 원인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1945년 본토에 원자폭탄이 투하되며 반사적으로 선언된 일본의 패망은 사실 전쟁을 준비할 때부터 이미 예견된 상태였다고 봐야 함이 옳을 것 같다. 일본군의 대미 전투 교범은 모두 반세기 전인 러일전쟁 당시의 교육과정을 그대로 가져다 쓰던 수준이었고 승마술, 말 조련법 등이 대부분이었던 이 교범은 정글 속에서 펼쳐지는 전투를 대비하기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전투 경험자들로부터 전해 들은 미군의 신출귀몰한 전술과 전략에 탄복하면서도 ‘기백’이라고 불리는 정신 무장 외에는 대응 솔루션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아시아’를 서방 세계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자기기만적인 슬로건 아래 작전이 전개되었음에도 점령지를 통치하기 위한 전문적인 정보지식이 전무했다. ‘숫자’뿐인 보고서에는 필리핀 등지의 동남아 국가들을 삼모작으로 일 년에 세 번의 쌀 수확이 가능한 식량이 풍부한 ‘농업 국가’로 기록했다. 전선에 배치된, 또는 배치될 전 군에게 하달된 ‘식량은 현지에서 조달하라’는 명령은 ‘숫자’ 보고서에 근거한 ‘형식’에 불과한 것일 뿐이었다. 실제로 당시 필리핀은 전 세계의 마(麻) 생산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농산 국가’ 였으며 일 년에 약 300만 섬의 쌀을 수입해 조달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전쟁으로 수출입이 통제되었을 것이 분명했을 필리핀 전투에서의 미군 기록에 따르면 ‘아사(餓死)에 의한 일본군 전멸’이라고 보고된 내용이 심심찮게 보이는 것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몰랐다’ 보다도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는데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던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에게 저자는 ‘그들은 미국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일갈한다.

 

 

   우리에게는 이 방식이 옳다는 믿음을 줄만한 철학이나 전통은 물론이고 각자 마음속에서부터 절대화할 이데올로기조차 없었다. 스스로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믿게 하기란 불가능하며 상대방의 사회 체계를 완전히 파악한 다음 약점을 파고들 수 있어야만 이런 방법도 가능하다. ‘자전’하는 자신들의 군 조직에도 개입 못하는 일본인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강력하고 날카로운 문체로 일본군이라는 거대 조직을 진단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을 해석하며 혹시 일본군이라는 이름을 빌려 ‘기백’과 ‘사물 명령’의 껍데기가 지배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을 저자는 비판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일었다. 책을 읽으며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의 일면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이유와 그것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자유’, ‘행복’, ‘정의’와 같은 관념들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여 인생의 ‘기둥 철학’을 세우고 나만의 신념을 굳건히 하지 못했다. 주위를 둘러보았을 때 정해진 답을 골라내기만 하면 되는 ‘오지선다’ 교육 시스템과 승자가 독식하는 과열된 사회 경쟁 시스템의 틀 속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많은 이들도 이런 점에서는 나와 비슷할 것이다. 압축적으로 빠르게 전개된 경제 발전 속에서 개인과 단체의 사유(思惟) 과정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 사이 우리 사회도 일부 연출된 ‘기백’을 과시하는 일부 ‘쓰지 마사노부 중령’들에 의해 ‘자전’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의와 불합리의 맹공에 눈 뜬 봉사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나약한 자아에 대한 반성과 이 맹종의 ‘자전’으로부터 벗어나고픈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종이책 구매 어느 하급 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
평점10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a*****e | 2021-04-12 | 신고

어느 하급 장교가 바라본 일본 제국의 육군

(야마모토 시치헤이, 글항아리)

저자는 야마모토 시치헤이. “일본인이란 무엇인가“, ”일본 자본주의 정신“ 등 비판적으로 일본에 관한 책을 쓴 작가이자 평론가이다. 태평양전쟁의 패색이 짙어가던 시기에 대학 졸업후, 포병 소위로 필리핀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포로로 잡혀 1947년에 석방되었는데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읽는 내내 심히 편치않았는데,

군.직장.정치 등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진 악습의 뿌리가 일본군이라는 새삼스럽지 않은 사실과, 이 폐습이 우리 내부에 자리잡게된 것은 당시 이 일그러진 문화의 혜택을 보던 자들이 해방후에도 우리 사회 상층부에서 그 악습.폐습을 통해 지속적으로 혜택과 권력을 누렸기 때문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1. 일본군부는, (대)학생은 지식인으로서 비판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군인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고 징집을 꺼렸다.

전쟁이 확대되고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한계에 이르자 비로소 학생들을 강제동원했다.

2. 일반적인 활동으로 군조직을 지탱하는 이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무학력의 늙은 소위들이었다.

경험많고 우수한 부사관 중에서 장교를 뽑아 활용하지 않고 왜 엘리트 중심의 또 다른 장교를 뽑는지 갓 임관한 대졸 20대 포병 소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들 - 특히 사관학교, 육군 대학 출신 - 은 엘리트, 특권 의식과 안하무인에 쩔어있었다. 한 고급장교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당연한 듯 바지 앞단추를 부관에게 채우게했다는 등의 예가 나오는데

직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엉덩이 한쪽을 들어 방바닥이 울릴 정도로 방귀를 뀜으로써 자신의 지위를 각인시켰던 경성제대 후신 출신의 모 대기업 사장님이 떠오른다. 그 역시 보스를 따라했을 것이다.

3. 일본군에게는 전진=승리, 후퇴=패배였다.

미군은 상황이 불리하면 거리낌 없이 후퇴를 했는데 일본군은 이를 자신들의 승리라 착각했다. 후퇴는 패배이므로, 무조건의 전진을 위해 불리한 상황에서도 말도 안되는 정신력과 희생을 강요했다. 미군은 일본군의 이런 정신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다.

4. 실제가 있건 없건 숫자만 맞추면 된다.

구타가 횡행함을 누구나 알고 있는 상황에서도 맞은 사람 손들어보라하고 아무도 손드는 사람이 없으면 “없음”으로 보고하고 모든게 잘되어 끝난다. 군수품도 폐품이든 고장났든 또는 훔쳐왔든 숫자가 맞으면 그걸로 정리된다.

그런 현실을 문제 삼으면 오히려 그것이 더 큰 문제가 된다. 우리 군대있을 때 익숙한 상황 아닌가?

5. 직책에도 없는 실력자, 기백(허풍)을 갖춘 영향력자들이 공식적인 지휘 체계를 무시하고 명령권을 사유화 하거나, 명령권자를 사칭하였다.

이를 “사물명령” 이라고 하는데, 문제 발생시 이들은 드러나지 않았으며, 드러나더라도 공식적인 지휘라인이 아니므로 아무런 책임을 지지않았고 전쟁이 끝나도 전범으로 처벌받지 않았다. 미군은 지휘권자가 권한과 책임을 갖고 있는게 당연하므로 일본군의 이런 체계를 이해할 수 없었고 전쟁범죄자를 오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은 전후에 승승장구했다. 비선이나 막후가 실권을 쥐고 있으면 조직은 무력화된다. 우리 정치에서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6. 내부에서는 파벌투쟁, 반목, 학력차별이 피터지더라도 외부에 절대 이를 노출하지 않고 밖으로는 오히려 “동료칭찬“으로 돌변하는데 이는 조직이 우선이라는 논리때문이였다. 많이 익숙한 말 아닌가?

하지만 내부와 외부는 상대적이지 않는가. 망할 수밖에 없다.

7. 극에 달한 피로와 영양실조는 일본군이든 피정복민이든 인간으로 하여금 철저하게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서 친모조차 아이의 죽음에 무감각해지게 만든다.

개체보존이 문제가 되면 종족보존은 당연히 뒤로 밀린다. 저소득층에서 아동학대의 대부분이 발생한다는 사실은 그러면 안된다는 당위 이전에 인정해야하는 현실이다.

8. 자살과 타살은 구별하기 어렵다.

조직의 이름과 명예를 위해 할복을 강요받는 경우도 많았다. 엄마는 자식에게 살아돌아오라고 하지않고 “엄마가 불쌍하면 절대로 도망쳐서는 안된다”라고 말하는데 소위 “世間”, 주변의 따가운 눈총 때문이다.

그리보면 대부분의 자살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을 살해하게 만드는 극악무도한 타살이다. 개인적인 강요는 그 개인만 피하거나 해결하면 되지만 다수.사회적인 강요는 피할 방법이 없잖은가. 더군다나 가해자(들)는 노출되는 법이 없다.

9. 제국군인은 말을 빼앗겼다.

누가 빼앗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생각과 판단을 빼앗겼다는 뜻으로 모든 악의 근원이 된다. 결국 남은 것은 동물적 공격성에 기반한 폭력적 질서와 내용없는 슬로건 뿐이다.

10. 제국군인의 책임감은 자신의 판단을 불허하고 조직의 권위.명령에 “맹종”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반성은 맹종하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앞으로 맹종하겠음을 맹세하는 것이다.

11. 미군은 적이지만 롬멜같은 독일군 등은 칭송하였으나 일본군은 군대로서 존중하지 않았다.

일본군에는 자기평가능력.독창성.창의력 등의 인식능력과 자발적인 책임감을 가진 진짜 군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월감과, 권위의식에서 부하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희생을 강요했던 일본장군들은 포로수용소에서 반성없이 하이쿠나 읇으면서 동료 장군들의 감정 따위나 상하게하지 않을까 더 신경을 썼다.

12. 제국육군은 계급사회가 아니라 연차 질서(우리식으로 말하면 “짬밥“)으로 움직이는 조직이었는데 최종적으로 이런 질서는 인맥적 결합과 폭력으로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13. “요령”은 허구의 명령에 대한 허구의 실행을 말한다.

14. 당시 일본은 입법.사법.행정에 “통수”가 따로 있는 4부 체제였다.

통수는 군 통수를 말하고 통수권자는 천황이었다. 메이지유신 당시에 확립된 체제로서 당시에는 행정부의 거대 권력화를 방지하기 위하여 후쿠자와 유키치같은 선각자들도 찬성한 진보적인 방식이였으나 이는 나중에 컨트롤 불가능한 거악으로 군이 커지는 토대가 되고 말았다.

저자는 한 시대의 가장 진보적인 사고방식은 다음 시대에 감당하기 어려운 족쇄가 된다고 말한다. 명언이다.

15. 제국의 군에게 일반국민(일본인)은 보호가 아니라 정복과 군림의 대상이었다.

언제든 목숨을 요구하고 무시하고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확인하는 피지배자일 뿐이었다. 그래서 맥아더의 점령정책은 성공적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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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58366876
책소개
일본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연구한 ‘일본인론’의 교과서

이 책은 일본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일본인론, 일본 사회문화론’의 교과서다. ‘지금 공기로는 어쩔 수 없다.’ 일본 사회의 이성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인 ‘공기’란 무엇인가? 정치·경제·사회·군사·문화 심지어 이불 속까지 파고들고 있는 강력하고 절대적인 공기의 지배·구속력이 일본을 조종하고 있다. 이 책의 독창적인 일본인론을 통해 ‘허구 속에서 진실을 찾는 일본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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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옮긴이의 말

‘공기’의 연구
‘물=통상성’의 연구
일본적 근본주의에 관하여

후기
해설
주석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58366876> 
 
 
 
 
저 : 야마모토 시치헤이 (Shichihei Yamamoto,やまもと しちへい,山本 七平)
1921년 도쿄 도 출생. 1942년 아오야마학원고등상업학부 졸업. 2차 세계대전 당시 야포부대 소위로 마닐라 전투에 참가했다가 필리핀의 포로가 되었고, 1947년 풀려나 귀국한다. 그 후 야마모토 서점을 설립하여 성서학과 관련된 서적 출판에 종사한다. 1970년, 이자야 벤다산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한 『일본인과 유대인』이 300만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된다. 또한 ‘일본인론’을 출간하여 사회에 큰 영향을 끼...
미국·중동·동남아·아프리카·일본 등지에서 근무하고 있는 외교관이자 영화 팬이다. 두 번에 걸쳐 도합 5년 반 동안 뉴욕에서 근무했다. 이 책은 그가 보고 느꼈던 뉴욕의 구석구석을 소개한 《영화, 뉴욕을 찍다》의 후속 편이다. 지은 책으로 《맛으로 본 일본》, 《재즈, 그 넓고 깊은 바다》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의 《회복된 세계A World Restored》와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의 《‘공기’의 연구‘空氣’の硏究》가 있다. 
 
 
 

책 속으로

공기와 물로 끊임없이 심적 전환을 이룸으로써 항상 새로운 심리적 질서에 들어가는 일본적 인간 체제Basileia tou Anthrop의 표본을 찾고자 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
--- p.5

이웃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가장 선명한 거울이다. 한국의 ‘분위기’와 일본의 ‘공기’를 비교하는 작업은 양국에서 발휘되는 무형의 집단적 압력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고, 멀리 떨어진 나라들과 비교할 때에 비해 훨씬 더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두 나라에 공히. 그런 점에서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공기의 연구》가 우리나라의 독자들에게 던지는 것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일 것이다.
--- p.11

감정이입은 모든 민족에 나타나지만, 임재감적 파악이 성립하려면 감정이입을 절대화하여 그것을 감정이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따라서 그 전제가 되는 것은 감정이입의 일상화, 무의식화 내지 생활화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 세계, 즉 일본적 세계여야만 하는 것이다.
--- p.50

나는 이것이 결국 애니미즘 사회의 전통적인 행동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일본인이 매 시점에 있어서 ‘순수한 인간’으로 평하는 사람들이란 결국 이런 민족적 전통에 순수하게 충실한 인간이라는 의미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세계의 파국적인 위험은 민족 전체를 지배하는 ‘공기’가 무너져 다른 ‘공기’로 변하지 않고, 순수한 인간에 의해 유지되어 반영구적으로 고정되고 영속적으로 제도화될 때 찾아올 것이다. 그것은 파시즘보다 엄격한 ‘전체공기구속주의全?空?拘束主義’가 될 것이다.
--- p.89

〈‘공기’의 연구〉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결정을 내리는 것은 ‘공기’이고 공기가 조성되는 원리는 대상을 임재감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임재감적 파악의 원리는 대상에 일방적으로 감정을 이입함으로써 자신을 대상과 일체화하고, 대상에 대한 분석을 거부하는 심적 태도다. 그러므로 대상에 대한 분석으로는 임재감적 파악을 벗어날 수 없다.
--- p.190

말할 필요도 없이, 당시의 모든 일본인은 덴노가 단지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굳이 발설하지 않는 것이 정의롭고 신실한 것이고 발설하면 정의롭지도 신실하지도 않게 되어버린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요컨대 그것을 발설하는 사람은 비국민, 즉 ‘일본인이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이다.
--- p.195

외부의 펀디를 보지 않는 전통이 스스로의 ‘펀디’를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 것이리라. 그리고 이것이 서너 번 전환을 거듭하게 되면 언젠가는 스스로 그 힘을 잃고 ‘생각과 삶이 괴리되지 않는’ (평온한 상태라기보다는) 일종의 정체 상태에 접어들고 쇄국적 사회가 재현되지 않을까. 이런 방향성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이것이 실현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스스로의 ‘펀디’를 다시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 p.261

결국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없애버린’ 것이 일단은 사라진 것처럼 보여도 그 실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 투명한 물로 변해 우리를 구속하고 있다. 어떻게 그 주술적 속박을 풀고 거기에서 벗어날 것인가? 그것을 새롭게 파악하는 것, 그것만이 거기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사람은 무언가를 파악했을 때 지금까지 자기를 구속하던 것을 거꾸로 구속할 수 있고, 다른 위치로 이미 한 걸음 나아간다. 사람은 ‘공기’를 진정으로 파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공기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다.
--- p.284
 
 

출판사 리뷰

일본을 알고 싶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일본인론’의 교과서
― 1977년 출간되어 지금도 사랑받는 일본인 및 일본 사회문화론의 고전

국내 저자가 쓴 최고의 일본인론이라 불리는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일본인의 문화적 유전인자를 ‘집약’과 ‘축소’라는 키워드로 설명한 책이다. 일본론을 연구한 세계적인 고전이라 불리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은 일본인의 양면성을 ‘손에는 아름다운 국화, 허리에는 차가운 칼을 찬 일본인’으로 규정한 책이다. 전자는 역사의 질곡을 함께해 온 가깝고도 먼 나라인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있고, 후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 국무부의 의뢰로 적국인 일본인의 국민성을 일본 답사도 없이 논문과 문헌만으로 조사했기에 두 책 모두 명성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한계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론의 대가인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1977년에 집필한 이 책 『공기의 연구』는 일본 지식인 스스로가 들여다본 일본인론이자 일본 사회문화론으로서, 4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일본론의 교과서로 읽히고 있는 명저다. 저자는 일본인들이 무형의 분위기에 집단적으로 지배당하는 일본 특유의 이유를 ‘공기’와 ‘물’이라는 수사적 표현으로 설명했다. 말하자면, 일본 사회와 조직은 논리적 이론이나 합리적 근거가 아닌 ‘공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 일상용어로 자주 등장하는 ‘KY(구키 요메나이, 즉 공기를 못 읽는다)=눈치가 없다’라고 할 때의 ‘공기’를 최초로 명명한 사람이 바로 저자다.

일본 사회의 이성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힘은 무엇인가?
― 물을 끼얹어도 효과가 없을 정도로 강한 ‘공기’의 힘이 일본을 구속한다

저자는 일본인이 종종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비난은 있지만, 당시 회의 공기로는……”, “당시 회의장의 공기로 말하자면……”, “그 무렵 사회 전반의 공기를 모르면서 비판하면……”, “그 자리의 공기도 모르면서 잘난 체하지 마라”, “그 자리의 공기는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달랐다” 등등 온갖 경우에 뭔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사람이 아니라 공기’라고 말한다. 저자는 공기의 구속력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뤄진 국가적, 군사적 차원의 이슈들을 대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함 야마토의 출격의 결정에 관여한 전문가들이 모두 무모하고 승산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반대하지 못했던 모습이 ‘공기’의 지배의 전형적인 사례로 제시되고 있는데, 천황을 앞세운 공기가 정치·경제·사회·군사·문화 심지어 이불 속까지 파고들고 있음을 책 전반에 걸쳐 증명하고 있다.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일본론인 ‘공기론’은 일본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모든 곳에서 분위기와 흐름 속에서 의사가 결정되고 집행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굳이 일본을 공기론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공기에 대한 일본인만이 가진 예민하고도 신속한 반응과 적응 때문이고, 무엇보다도 강력하고 절대적인 공기의 지배·구속력 때문이다. 즉 일본인의 의사 결정은 뭔지 모를 ‘공기’에 지배당하고 있는데, 사람이 진짜 공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일본인들은 ‘공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공기’는 일본 사회에서의 대화와 논의에서는 누구나 그렇다고 느끼거나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것, 나아가 부정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것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굴레다. 때때로 그런 ‘공기’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견해도 나오기는 하지만, 저자가 이른바 ‘물을 끼얹는다’고 표현한 그와 같은 발언은 알맞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 오히려 그 자리의 ‘공기’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는 경우가 많고, 모두 그러한 규탄이 두려워 그 자리의 공기에 속박되어 버리는 것이다.
저자가 정의한 일본인은 ‘상황을 임재감적으로 파악하여 역으로 상황에 지배됨으로써 움직이고,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런 상황이 닥쳐오리라는 것을 논리적?체계적으로 논증하더라도 그 때문에 움직이지는 않지만, 순간적으로 상황에 대응할 줄 안다는 점에서는 천재적’이다. 마오쩌둥의 ‘대약진’이나 오일 쇼크로 인한 세제 소동 등을 예로 들면서 일본인은 ‘공기’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동안 논리적 설득으로도 심적 태도를 바꾸지 않고, 말을 통한 과학적 논증이 무력하게 됨도 지적했다.

독창적인 일본인론으로 본 ‘허구 속에서 진실을 찾는 사회’
― 3편의 소논문으로 구성, 192개 역자 주석의 풍부한 해설이 이해를 돕는다

모두를 휘두르는 이 ‘아무도 보지 못하는 힘’인 ‘공기’는 시시한 일상 회화는 말할 것도 없고, 나라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대목에서, 혹은 국가의 진로에 관한 여론의 형성 과정을 지배하면서 냉정하고 객관적 논의와 적확한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금의 시대에도 이러한 공기가 일본인의 이성을 망가뜨리고 합리적 정책 결정을 방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공기가 지배하는 사고를 피하지 못하고 그것에 속박된 채 의사결정을 하면 누구나 회피하고 싶은 전쟁에 모두가 찬성하고 돌입했던 우를 다시 범하게 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피하려면 무엇보다 앞서 ‘공기’를 가시화하여 그 존재를 인식하고 그 성질을 객관적, 비판적으로 밝히는 ‘찬물을 끼얹는’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공기’의 연구]에서는 임재감적 파악, 공기의 조성 등을 여러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물=통상성’의 연구]에서는 공기의 지배에 저항하는 ‘물을 끼얹는다’라는 방법, 즉 통상성과, 공기와 물의 관계를 보완하는 일본적 상황 논리와 상황 윤리에 관해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일본적 근본주의에 관하여]에서는 ‘현인신과 진화론이 공존하는 일본 사회의 모순’을 일본적 근본주의로 설명한다.
더불어 한국어판인 이 책에는 옮긴이의 주석이 192개나 달려 있다. 저자가 자신만의 개념을 만들어 보통의 어휘에 그 독특한 의미를 덮어씌우면서 거기에 대한 설명은 인색한 대목이 등장하고, 일본인이 아니면 잘 알 수 없는 인물·사건 등이 등장하는데, 옮긴이가 일일이 자료를 조사하고 자문을 받아 한국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충실한 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종이책 공기의 연구 - 임재감적 파악으로 공기의 실체를 파악하라
평점10점 | d********o | 2018-03-31 | 신고

이 책 <공기의 연구>는 평소 일본인들 그 특유의 집단성이랄까, 그 단체성에 대해 궁금해 하던 차에 보게 된 책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이 일본을 엿볼 때 무엇이 저렇게나 개인을 억압하고 집단을 더 중요하시고 내세우게 만드는 것일까 궁금했었는데 이 책의 저자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이렇게 일본인들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공기”라고 비유적으로 설명하면서 “공기의 연구”라는 장에서 이 공기의 실체가 무엇인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 지 등을 밝혀 나가고 있었다.


짧은 리뷰 가운데 이를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일본인들을 구속하고 조종하는 이 ‘공기’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저자는 임재감적 파악(p.40)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는 사물을 단순히 사물 그 자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무엇인가 깃들어 있다고 즉 임재해 있다고 파악하는 관념을 말한다. 사물이나 대상이나 어떤 일들에 대해 임재감적 판단에 의해 절대화 해버리면 인간은 거꾸로 그 대상에 지배되어 대상을 다룰 자유를 잃게 되고(p.79)  이렇게 형성된 ‘공기’가 일본인들 의식의 전반에 흐르면서 일본인들의 행동과 판단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일본이 기본적으로 애니미즘 세계, 물신론적 혹은 다신론적 세계이기 떄문에 절대화할 대상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p.88) 이 공기가 바뀌는 일들이 쉽게 일어날 수 있으며 공기가 바뀌는 일이 벌어지고 나면 그에 순응하는 일본인들은 하루 아침에 생각과 행동이 바뀐다는 것이다. 이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그리 하면 소인이다”는 말로 탁월하게 묘사했다고 하는데 (p.80) 이는 결국 일본인들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이 ‘공기’라는 것이 일본인들을 이중 기준에 근거해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보통 때는 논리적인 판단 기준을 따르지만 진정한 결단의 기초로 삼는 것은 ‘공기’적 판단 기준이라는 것이데 문제는 그 두 가지 기준이 확연히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p.31). 그렇기에 외부에서 볼 때 일본인들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이 공기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개개인인을 억합하는 이 ‘공기’의 실체에 접근하기 어렵고, 이 ‘공기’바 바뀌게 될 때 하루 아침에 변하는 일본인들의 행동에 의야애 한다는 것이다. 


공기의 연구 다음 장은 “물=통상성”의 연구인데 일본에서의 이 물의 역활은 조성되고 있는 공기를 일상으로, 통상성으로 돌이키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저자는 사람들을 일상으로 돌이키는 이 ‘물’이라는 개념이 ‘공기’보다 더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결국 이 물은 용해 소화 요소와도 같은 작용을 해 어떤 대상에 껍질만 남긴 채 그 알맹이는 전혀 다른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었다. 예를 들어 일본은 불교 국가인데 일본의 정토종은 불교가 아니고 일본은 유교의 영향을 받았지만 과거제도는 도입하지 않았으며 일본 공산당의 민주연합정부 방안을 읽은  자민당의 하시모토 전 간사장이 ‘이것이 과연 공산당인가’하는 물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이어 상황윤리와 1명의 우두머리와 평등한 다수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 ‘공기’와 ‘물’을 통해 일본에 대해 단편 이해를 할 수는 있었지만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일 뿐, 한번 더 책을 꼼꼼히 읽어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yes or no가 확실한 서구적 관념에 비해 ‘아니요’라고 말했지만 그 ‘아니요’가 사실은 그 ‘아니요’가 아닌 ‘아니요’가 되는(이는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만) 일본의 그 공기의 힘의 실체에 접근해 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책은 공기와 물의 연구에 대해 ‘일본의 근본주의’에 대한 장도 있는데 이 부분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역자가 서두에 언급했던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인』과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과 같은 책들도 읽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하지만, 이 책을 통해 일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발자국을 일보 앞으로 내딛는 시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문화충전 200% 카페의 도서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책을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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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공기의 연구
평점10점 | k******g | 2018-03-31 | 신고

 

이 책을 읽어가면서 현재 일본이 정치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일본의 아베가 장기 집권 체제를 굳혀가던 중에 터진 이번 모리토모 학원 국유지 헐값 불하’ 사건은 박근혜를 몰락시킨 한국판 최순실 사태를 뛰어넘는 파괴력 있는 초대형 사건으로 보입니다게다가 정부부처가 문서를 위조한 것이 밝혀지고 실무 담당자가 자살하고 아베와 가장 가까운 실세 장관인 아소 다로가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아소 다로는 사임하지 않고 오히려 TPP 같은 큰 뉴스를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고 모리토모 사건만 보도한다면 언론을 오히려 비난하고 있습니다한편으로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지만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아직 집단 분노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검찰도 공문서 위조를 정부부처가 시인하고 자살자도 생겼음에도 수사에 들어가지 않고 있습니다아베와 내각은 언론을 비난하며 북한이나 미국의 무역공세 등의 국제문제로 국민들의 관심을 돌리려하고 또 돌파구를 찾으려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우리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아무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누가보기에도 꼬리짜르기에 나서는데도 되려 문제되는 정치인들은 기세등등하고 국민들의 표면적인 반발은 유아무야상태인 것이 말이죠.

 

이 책은 그러한 이웃나라의 이해불가에 대한 상당한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바로 이 책의 제목이자 주제이기도 한 공기입니다우리말로 그나마 비슷한 단어를 찾자면 분위기정도가 될 것입니다한마디로 다중을 휘어잡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체불명의 강압적 힘이고 또 2017년 일본의 유행어로 선정되기도 한 손타쿠’ 즉 상대의 심중을 헤아리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리지 않았지만 스스로 알아서 그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 같은 보이지 않는 강제력이나 압력을 의미할 것입니다.

 

저자는 공기와 물이라는 수사적 표현을 프네우마와 사회적 소화효소의 작용에 대한 설며으로 연결하고 철저히 일본 사회를 분석해 냅니다이러한 분석은 이 책이 1977년 즉 지금으로부터 40년도 전에 출간된 책이라는 것을 잊게 만듭니다그리고 지금의 일본에도 그대로 적용이 가능하다고 느껴집니다.

 

일본은 과거에서부터 한국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혐한론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고일본 언론을 보아도 어떻게든 부정적인 뉴스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합니다그런데 미국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은 아주 자제하는 모습이 눈에 뜁니다이러한 일본의 '공기'에 대해서 이미 수십 년 전에 철저하게 분석한 책이 있었다니 놀랍습니다일본의 '공기'가 타 선진국들과 달리 왜 저렇게 독특하게 형성이 되는지 알고 싶으신 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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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공기의 연구 리뷰
평점10점 | YES마니아 : 로얄 s********7 | 2024-07-24 | 신고

일본어에 있는, 공기를 읽는다는 표현에서 궁금증이 생겨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한국어의 분위와 비슷한 개념이라 생각했고 그런 부분도 있지만 뭐라 말로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일본론의 교과서적인 책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건 비단 일본만의 상황은 아니라서 여러모로 생각할 지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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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공기의 연구
평점10점 | d**********r | 2024-07-01 | 신고
야모마토 시치헤이, 일본문화론의 대가인 작가다. 그가 쓴 책들을 4권 읽었고 이번이 다섯권 째이다. 처음 읽었던 책이 '기다림의 칼', 그 다음이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이고, '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제왕학'순이다. 정치와 역사문제, 리더십 관련 책들이다.

이번에 읽은 '공기의 연구'는 장르를 분류하기가 곤란하다. 

우리에게는 '분위기'라는 표현이 일본에서는 '공기'라고 표현된다. 사람들은 어떤 과오를 저지르거나 문제가 되는 상황에 처했을때 '아 그때 분위기 상 어쩔 수 없었어.'라고 변명하곤 한다. 일본에서는 '그때 공기는 그랬어'라고 한다고 한다. 
저자는 책에서 일본 내에 만연한 책임회피 분위기, 즉 공기의 실체에 대해 파악하고 그 폐해를 지적한다. 특히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전범들이 '그 때의 공기'라는 것을 핑계로 전범 재판에서 대부분 무죄를 선고받거나 가벼운 처벌을 받은 것에 대해 지적한다. 저자는 일본인이지만 그러한 공기라는 것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우리나라에도 공기와 유사한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어쩔 수 없이 휩쓸릴 수 밖에 없는 분위기. 회사에서도 그러한 분위기가 있다.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분위기(공기)에 휩싸여 아무 말 못하거나 어쩔 수 없이 동조하는 그런 경우를 대부분 사람들이 경험했을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공기의 실체를 파악하고 이를 대상화 시킴으로써 과감히 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때로 우리는 대다수가 잘못된 선택을 하거나 어쩔수 없다는 핑계로 광기를 일으킬때 과감히 아니라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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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칠평 (야마모토 시치헤이, 1921년 ( 다이쇼 10년) 12월 18일 - 1991년 ( 1991 년) 12월 10일 ) , 일본평론가 . 야마모토 서점점 주. 평론가 로서, 주로 태평양 전쟁 후의 보수계

야마모토 칠평
(야마모토 시치헤이)
부인유우사 『부인노우』 제55권 제5호(1961)보다 야마모토 칠평과 가족.
펜네임 이사야 벤다산
탄생 1921년 12월 18일 도쿄
에바라군 산겐자야 (현재의 도쿄도 세타 가야구 산겐자야)
사망 1991년 12월 10일 (69세몰) 도쿄도 치요다구
4 번초
묘지 고다이라 영원
직업 야마모토 서점 점주 , 평론가
언어 일본어
국적 일본의 국기 일본
최종 학력 아오야마 학원 전문 부 고등 상업 학부
활동기간 1970년 -1991
장르 출판사 사장, 평론가
대표작 「공기」의 연구」(1975) 「현인신의
창작자들
」(1983)
주요 수상 경력 분예 춘추독자상 (1973)
기쿠치 히로시상 (1981)
와카야마현 문화상(1989)
데뷔작 일본인과 유대인』(1970)※이사야・벤다산 명의
배우자 야마모토 레이코
어린이 야마모토 료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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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연보

수상 경력

이사야 벤다산과의 관계

야마모토에 의한 설명

당초 '일본인과 유태인'의 저자가 아닌가 하는 것에 대해 야마모토는 “저는 저작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작권법 에 근거한 저자의 개념에 있어서는 저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한편, “나는 “일본인과 유태인”에 있어서 에디터인 것도 , 어떤 의미에서 작곡가 인 것도, 부정한 적은 없다” .

나중에 1987년 PHP 연구소 주최 연구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야마모토 서점을 시작했을 무렵 제국 호텔 의 로비를 원고의 교정 작업에 자주 사용하고 있었는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매니아라는 것이 계기로, 존 조셉 롤러와 그 친구 미 왈샤 호렌스키와 친해졌다. 기독교가 일본에 보급되지 않는 것은 왜인가라는 문제 의식 아래, 3명이 여러 가지 자료를 들고 논의하고 있는 사이에, 정리된 내용을 책으로 한 것이 『일본인과 유태인』이다 벤더선명으로의 저작 에 대해서는, 롤러의 이일 후는 호렌스키와 야마모토의 합작 이다 . 랜드 대학교수로, 1972년의 대택 장일 논픽션상 시상식 에는 다산의 대리로서 참석했다 . 4 ] .

야마모토 사후 취급

이나가키 타케시 는, 상기 연구회에서의 설명 및 부인의 야마모토 레이코의 증언을 바탕으로 「분노를 억제하는 자」(PHP 연구소, 1997년) 「제9장 벤다산과 그 시대」에 덧붙여 『일본인과 유태인』은, 2명의 유태인(롤러와 호렌스키)과의 대화를 참고로 하고 있지만, 구성도 문장도 야마모토의 것과 결론 붙이고 있다.

마찬가지로 『야마모토 칠평 도서관』 편집부도 도서관 13 및 14( 분예춘추 , 1997년 )의 안쪽의 초출 일람의 겨드랑이에, 벤다산명의 여러 작품은 거의 야마모토의 저작, 혹은 야마모토를 중심으로 하는 복수의 외국인과의 공동 작업이라고 생각된다고 하는 코멘트를 붙이고 있다.

2004년「일본인과 유태인」이 카도카와 one 테마 21시리즈( 카도카와 서점, 2004년)부터 야마모토 칠평명으로 출판되거나 벤다산명으로 연재된 「벤다산씨의 일본 역사」(「제군!」문예춘추 1973년 1월 이후 강 22회 게재)가 야마모토 저 『야마모토 칠평의 일본의 역사』(비즈니스사, 2005년)로서 단행본화되기도 하는 등, 야마모토의 사후 10년 이상 경과하고 나서는 벤더 선명의 저작이 사실상 야마모토의 것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칠평 건 어쨌든 싸움』( 베스트셀러스 , 1994년 )에서는 아들인 료키의 붓으로, 벤다산은 당신이라고 하는 어머니의 질문에 대해 「뭐, 그런 일이야」라고 대답했다고 기록되어 있다(34페이지).

가족

  • 아내·야마모토 레이코 - 저서에 일가로 쓴 '야마모토가의 예수전' 등이 있다.
  • 아이·야마모토 료키 - 1960년 도쿄 출생. 1983년 도쿄 신학대학 졸업 후 미국 칼라마주 대학 유학.

사상

일본사회· 일본문화 · 일본인 의 행동양식을 ' 공기 ', '실체어, 공체어'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분석했다.

야마모토는 『현인신의 창작자들』의 뒤를 이어, 「사람의 마음이 붙은 이래, 내심에서도, 또 외면적으로도, 항상 『현인신』을 의식해, 이와 대결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찬일 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친족에게 대역사건 으로 처형된 오이시 세이 노스케 가지고 있었다 . ] .

특히, 일본인의 과거의 교양이었던 중국 고전에 관한 논고에는 독특한 것이 있어, 「논어를 읽는 방법」 「「손자」를 읽는 방법」 「제왕학―「정관정요」를 읽는 방법」 등, 다수의 논고가 있다. , 이러한 한적에 대한 연구는, 우치무라 감삼 등, 전전의 기독교도가 「기독교인이라면 묘자를 읽어야 한다」 라고 주장하고 있었던 것, 야마모토의 아버지가 우치무라의 잡지를 읽고 있었던 것에 기인하고 있다고 한다 [ 특히 '손자'를 읽는 방법'에는 구 일본군의 장교 시절에 느낀 '너무 비논리적인 정신력 만능주의를 위해 구 일본군이 졌다'는 고찰에서 정신론폐한 ' 손자 '를 다시 잡으려는 자세를 볼 수 있다고 한다 [ 6 ] .

그 야마모토가 가장 힘을 쓰고 집필한 작품이 '현인신의 창작자들'과 ' 홍사준 중장의 처형'이다.

『현인 신의 창작자들』은 어떻게 존황사상이 태어났는지를 탐구 작품 이다 . 학자 주현수를 기점으로 하고, 야마자키 암사이 , 아사미 사사이 , 아즈미 세이야마 , 구리야마 잠성 , 미야케 관야 등의 논의를 쫓으면서, 존황 사상이 형성되어 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그 존황사상이,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아카 사건 둘러싼 당시 의 언론 상황을 추적하는 것으로 포기한 것이었다. .

'홍사준 중장의 처형'은 조선인 이면서 대 일본 제국 육군에서 중장까지 승진한 홍사준을 취급한 작품 이다 . , 매우 복잡한 삶 방식 강요 받은 인물 이었다 . .

학술적 성과

야마모토학은 사회학 의 중심이론인 「구조-기능분석」 에 한없이 가깝다 는 전문의 사회학자 로부터의 지적 있다 .

야마모토는 시종일관하여 재야의 평론가로 보냈지만, 재야의 기간이 길었던 고무로 나오키 으로부터 평가되어, 아카데미즘 에서도 자주 다루어졌다 .자본주의사회주의 의 어느 이 뛰어나다는 것이 아직 진지 하게 논의되고 있던 시대이다 . 연해체공산권 제국의 개혁을 거치면, 현재는 자본주의인가 사회주의인가라는 경제 체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그 나라에 자본주의의 정신이 있는지, 있다고 하면 어떤 특징을 가진 정신인가라는 것이 중요하고, 그 특징에 따라서 그 나라의 경제의 강점과 약점이 태어난다는 것이 이해되어 온 것 같다 . 8 ] .

『현인신의 창작자들』은 일본의 정치 사상사, 천황제 연구에서 다른 대표적인 연구, 예를 들어 마루야마 마사토일본 정치사상사 연구』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 후지타성 3『천황제 국가의 지배 원리』 등에 필적하는 연구라는 평가도 되고 있다 [ 9 ] .

에피소드

  • 「임시 교육 심의회」의 위원의 회의가 끝난 후의 인터뷰에서, 「물론 제한은 있다고 생각합니다.나라가 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 제목에 대해서는, 「폭력으로는 교육은 할 수 없네요, 성경에도~라는 이야기가 있어, 폭력으로는 교육은 할 수 없네요」라고 대답하고 있었다.또 가정내 폭력에 대해서는, 질식 난의, 일거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즉, 금수와 같다, 라고 하는 것이군요」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 외국인 을 상대로 한 강연회에서 일본 가정에서 여성의 지위가 낮은 것은 왜냐는 질문에 답해 “그럼 여러분의 나라에서 정주는 자신의 월급을 모두 아내에게 건네주는 나라가 얼마나 있는가”라고 반론했다.
  • 코무로 나오키 와의 친교는 길고, 코무로가 연구에 몰두해 쓰러져 입원했을 때, 야마모토는 코무로의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코무로가 ' 소련 제국의 붕괴 '(광문사, 1980년)를 집필하기 위한 도움을 했다. 의 우연이 겹쳤다고는 해도, 결과적으로 코무로를 논단에 등장시킨 그 공적은 크다고 생각된다.또 야마모토와 코무로에는, 두 사람의 장시간에 걸친 토론에 의해 성립한 「일본교의 사회학」이라고 하는 책이 있다.
  • 시마 료타로는, 『8명과의 대화』(분예춘추, 초판 1993년 3월)에 수록된, 야마모토와의 대담으로 「정의라는 것이 최초로, 정의의 기분이 있고, 그것을 사회 과학으로 한 것이 이데 오 로기 다. 나는 마음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평가

  • “고바야시 히데오 대담집 역사에 대해서”(분예춘추 1972년) [ 요점 페이지 번호 ] 에서, 고바야시 히데오 가 가와카미 테츠타로 , 오늘 출해와 의 대담으로 '일본인과 유태인'을 접하고, '벤다산이라는 사람이 '어로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를 소개하고, ' 프랑스 교육에서의 템(작문)의 중대성이라는 것은 매우 일본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이전 파리에 , 모리 유쇼군이 자꾸 말하고 있었다. 테 임의 문제에는, 수학의 정리까지 있다고 하는 것을 그는 말하고 있었다.
  • 『내 안의 일본군』[ 요 페이지 번호 ] 에 있어서 , 자신의 군대 경험으로부터, 일본도는 2~3명 자르면 사용물이 되지 않게 된다고 주장했다. 의 문학적 표현이라고 한다.또, 전지라고 하는 열악한 상황하에서 날마다 혹사되어, 만족에 손질도 할 수 없어 자연과 나마크라가 되어 버린 칼에 한정한 이야기이며, 본래의 일본도의 성능에 대해 오해를 초래하는 것이라고 하는 비판이 있다 10 ] 또한, 이 책에서의 『전후 일본도』의 인용은, 자설에 편리한 부분만을 인용한 부정확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 11 ] 또, 야마모토는 혼다 카츠이치 와의 백인 베기 경쟁 에 있어서의 논의에 있어서, 이사야·벤다산 의 명의로, 지론인 「일본도는 2~3명 베면 사용물이 되지 않게 된다」라고 하는 논리를 중심으로 혼다를 비판했다.
  • 아사미 세이 오는 '니세 유대인과 일본인'에서 '일본인과 유대인 ' 번역 오류 지적 했다 . ] ) 야마모토 어학력 비판 했다 . 또 아사미에 의하면 「일본인과 유태인」에 의해, 일반적으로 유포되고 있던 「유태인은 전원 일치는 무효」라고 하는 이야기도, 실은 완전한 거짓말 혹은 실수이며, 「이런 무지한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말하든, 현대 의자 라엘국의 법원이나 국회에서 전원 일치가 무효로 되는 것은 아니고, 또 세계 각지의 유대인이, 다양한 집회로부터 가족 회의까지, 모든 생활 장면에서 전원 일치를 하고 있는 사실이 사라져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15 ] 라고 비판했다 [ 16 ] . 또 “ 뉴욕 의 노 유대인 부부 의 고급 호텔 생활”이라는 에피소드 [ 17 ] 도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이야기로, “이 이야기는 전부, 하나 남지 않고, 전혀 거짓말” [ 18 ] ] 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 책이 ''픽션'이 아니라 '평론''인 이상, '해석의 차이는 따로 해 평론의 대상은 실재해야 한다'에도 불구하고 '본서는 제작화 위에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본서의 가치 제로 커녕 마이너스 ' [ 19 ]
  • 또 아사미는 『일본인과 유대인』 및 야마모토의 성경에 관한 저서를 다루고, 야마모토는 자신도 잘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 쓰고, 수습이 붙지 않게 된다고 정해져 「『독자에게는 저희로부터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하는 식으로 써」[ 21 ] , 잘 모르는 것은 독자의 머리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속임수의 테크닉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12 ] [ 22 ] .
  • 아사미는 그 밖에도 어떤 호스텔 의 주인이 유대인을 '냄새로 냄새 나눴다'는 이야기 [ 23 ] 와 '관동대 지진으로 조선인이 학살 된 것은 체취 가 다르다고 말한 노부인 ' 등도 야마모토가 쭉 올린 제작 이야기라고 4 아사미는 이 외에도 수많은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 야마모토는 한때 다나카 카쿠에이가 유죄가 된 록히드 사건 으로 코찬이 미국 의회 의 공청회에서 선서했는지 여부에 대해 "기독교인은 맹세하지 않는다. 」라고 단절하고 당시의 선서문을 번역한 종교학자 사에키 마코토 의 번역문을 비판해, 양자로 격렬한 논쟁이 되었다. [ 요점 페이지 번호 ] 에 자세히.
  • 야마모토를 극찬하는 평전을 쓴 이나가키 타케 는 '분노를 억제하는 사람 평전 야마모토 칠평 '에서 이상적인 비판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라고 해서, 혼다와 야마모토의 공저의 형태가 되어 있는 한권만 들고 있다). 야마모토 칠평을 우익 · 보수 반동 의 권화와 뱀파고시, 특히 같은 기독교인 프로테스탄트 좌파 야마모토에 악의적으로 가득한 공격을 계속한 것도 당연하다. "(전 406페이지)"라고 명명하지 않고 개신교인 아사미를 의식한 비난을 하는 것에 머물며 "악의적으로 가득한 공격"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코무로 나오키 는, 「논리의 방법」(토요 경제 신보사, 2003년) [ 요점 번호 ] 에서 마루야마 마사오 의 성과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마루야마 교수의 위대한 점은 지식이 그리 적어도 대발견을 한 곳입니다. 놀라운 대발 보기를 하고 있습니다.사물의 본질을 간파하는 능력이 굉장 하다 . 전문가라고 칭하는 사람이 『성경』의 읽는 방법이 잘못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사람의 위대한 것은 그런 곳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일본사는 조금밖에 하지 않는데도 사키몬의 학, 야마자키 암사이 의 학 이야말로 메이지 ​​유신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 매운 입의 서평으로 알려진 타니자와 에이이치는, 「쇼와 45년부터 62년까지, 아시카가 18년간에 있어서의 야마모토 칠평의 저작 32권으로부터, 그 급소를 끌어내, 야마모토학의 대근을 독자에게 바라보아 주셨으면 몰래 바랐다」라고 쓰여진 저작이 있어, 예를 들면 「「공기」의 연구」 「공기」라고 하는 것은 조금 코멘트를 붙이기 어렵지만, 말해지면 일단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최초로 꺼낸 착안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 25 ] .
  • 야마모토는 저서 「공상 기행」[ 요점 페이지 번호 ] 에서 가짜 포모사인의 조르주 살마나자르 썼다고 하는 가짜 대만지’ 소개했다 . 18년간 포교를 하고 극동 정세를 알고 있던 예수회 의 파운트네 신부의 진정한 대결에서 살마나자르는 종횡무진의 판사로 승리를 얻었다 . 하고, 파운트네 신부도 그 음모의 한 막대를 가다듬고 있다고 하는 등의 궤변을 반복하고 있지만, 야마모토는 이 때의 사르마나자르의 궤변의 논법을 분석해, 「대상 그 자체를 언제라도 되돌릴 수 있도록, 이것을 이중 사본으로 해 두는 것." '관련이 있는지 모르는 형태라도 좋고...' 등으로 세세하게 분석해 '이상의 원칙을 지키면 지금도 누구라도 살마나자르가 될 수 있고, 현이 되고 있다'라고 기술 하고 있다 . 26 ] .
  • 스스로를 외국인 이라고 칭해, 발언에 무게를 늘리는 행위는 양 덴만 ( 사이토 쥬 이치 )이나 폴·보네 ( 후지시마 타이스케 ) 등도 가고 있었다고 한다 [ 요출전 ] 또한 『 못생긴 한국인』의 저자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 아닌가 하면 당시 공연의 비밀이었던 이사야 벤다산 의 사례가 한국 측에서 제시되어 [ 27 ] , 일본의 출판계의 체질이 비판되었다.『추악한 한국인』은 한국인 협력자는 있지만,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것에도 잘못이 있어, 대부분의 내용은 카세 히데아키가 쓴 것으로 되어 있다 .

저서

일본론

  • 「존망의 조건 일본 문화의 전통과 변용」다이아몬드 사, 1975년 이후 코단샤 학술 문고
  • 『비교문화론의 시도』 도야마현 교육위원회, 1975년 이후 코단샤 학술문고
  • 「공기」의 연구문예 춘추
  • 『수용과 배제의 궤적』주부의 친구 , 1978년
  • 『일본인의 인생관』 코단샤 학술 문고, 1978년
  • 「일본 자본주의의 정신 왜, 열심히 일하는 것인가」분사 카파북스 , 1979년 이후 문고, PHP문고 , 비즈니스사
  • 『근면의 철학 일본인을 움직이는 원리』PHP 연구소 , 1979년 이후 문고
  • 『일본인적 발상과 정치문화』 일본서적, 1979년
  • 「당연히의 연구」다이아몬드
  • 『일본적 혁명의 철학 일본인을 움직이는 원리』PHP 연구소, 1982년 이후 문고
  • 현인신의 창작자들문예춘추 , 1983년, 치쿠마 문고(상하) 2007년
  • 『1990년의 일본』 후쿠 무 서점 , 1983, 「1990년대의 일본」PHP 문고 1987
  • 「위기의 일본인 일본인의 원상과 미래」카도카와 서점 , 1986, 나카가타가와 원 테마 21
  • 「일본형 리더의 조건」고단샤 1987 이후 문고
  • 일본인이란 무엇인가. 신화의 세계에서 근대까지 그 행동 원리를 찾는다』PHP 연구소
  • 「일본인의 토지 신화」 일본 경제 신문사 1990
  • 『일본인과 미국인』PHP 연구소 1993/증보판・쇼덴샤 2005
  • 『 일본 왜 패 하는가 ?
  • 『일본인과 조직』 카도카와 원 테마 21, 2007
  • '왜 일본은 변하지 않는가 일본형 민주주의의 구조' 사쿠라사, 2011
  • 「일본인에게는 무엇이 부족한가 타다보다 높은 것은 없다」 사쿠라사, 2012
  • '일본은 왜 외교로 지는지 미·일중 노한의 국경과 해경' 사쿠라사, 2014
  • '전쟁책임과 야스쿠니문제 누가 무엇을 언제 결정했는가' 사쿠라사, 2014
  • 『전쟁 책임은 어디에 누구인가? 쇼와 천황・헌법・군부』사쿠라사, 2016

자신의 군대 경험을 중심으로 말한 것

  • 어떤 이상체험자의 편견』 문예 춘추, 1974년 이후 문고
  • 『내 안의 일본군』 문예춘추, 1975년 이후 문고, 신판문고
  • 『하하급 장교가 본 제국 육군』 아사히 신문사 , 1976년 이후 문춘 문고

평판

  • 홍사 순 중장의 처형』 문예춘추, 1986/치쿠마 문고(상하) 2007
  • 고바야시 히데오 의 유의」신시오샤, 1986, 후 PHP 문고, 신시오 문고, 분춘 학예 라이브러리
  • 「근대의 창조 시부자 와 에이 이치 의 사상과 행동」PHP 연구소, 1987/쇼덴샤, 2009
  • 『난세의 제왕
  • 와 천황의 연구
  • 『에도시대의 선각자들 근대에의 유산·산업지식인의 계보』 PHP연구소 1990
  • “도쿠가와 이에야스 프레지던트 , 1992/치쿠마 문고(상하), 2010
  • 다나카 각영 의 시대』쇼덴샤 , 2016
  • 이케다 다이사쿠 와 일본인의 종교심』 사쿠라사, 2017

중국 고전에 관한 것

  • 『논어를 읽는 방법 지금 살아야 할 이 인간 지의 보고』 쇼덴샤논북, 1981년, 이후 신판
  • '제왕학 - ' 정관정요 '를 읽는 방법' 일본 경제신문사, 1983년 이후 문춘문고, 닛케이 비즈니스인 문고
  • 『참모학-「손자」를 읽는 방법』일본경제신문사, 1986년 이후 문고
  • '지도력 - '송명신 언행록'을 읽는 방법'일본 경제 신문사, 1986년 이후 문고
  • “현대의 처세 질식 시대의 나네 코단샤 1986년

칼럼·시사평론

  • 「무소속의 시간 새로운 시점을 낳는 것의 견해・사고방식」
  • 「상식」의 연구 「일본 경제 신문사
  • “시평 “일본인”” 요미우리 신문사 , 1981년
  • 『파벌 왜 그렇게 되는 것인가』 남상사 1985년, 뒤 「파벌」의 연구
  • 『「어시세」의 연구』 문예춘추 1986년
  • ''상식'의 비상식'일본 경제 신문사, 1986년 이후 분춘 문고
  • 「상식」의 함정 일본 경제 신문사, 1989년 이후 분춘 문고

성경·기독교 관련

  • 『일본인과 성경 대담집』TBS 브리타니카 , 1977
  • 『성경의 상식』 코단샤, 1980 이후 문고, 코단샤 +α문고 , 문춘학예 라이브러리
  • 「성경의 여행」시라카와 의원 사진 문예 춘추, 1981 이후 문고
  • “구약의 풍경” 젠요지 야스유키 사진 코단샤 1982
  • 『갈릴라의 길』 요시요지 야스유키 사진 코단샤 1984
  • 「야마모토 칠평의 구약 성서 이야기」삼성당 , 1984 이후 도쿠마 문고, 비즈니스사(상하)
  • 『십자가에의 길』 요시요지 야스유키 사진 코단샤 1984
  • 『인간으로 본 붓다 그리스도
  • 『역사의 도시 예루살렘』 요시요지 야스유키 사진 코단샤 1984
  • '비즈니스맨을 위한 마샬' 코단샤 1988
  • 「금기의 성서학」신시오샤 1992 이후 문고
  • 「야마모토가의 예수전」야마모토 레이코, 야마모토 료키 공저
  • 「야마모토 칠평과 가는 성경 여행」야마모토 료키 편 야마모토 서점 1997

기타

  • 『현대의 초극』 다이아몬드사, 1977년
  • 『공상기행』 코단샤, 1981년
  • 「인간 집단에 있어서의 인망의 연구 2명 이상의 부하를 가지는 사람을 위해서」
  • 『하나의 교훈·유대의 흥망』 코단샤 1987년
  • 「경영인간학 「자본주의의 정신」의 선구자들」일본경제신문사 1988
  • 「쇼와 도쿄 모노가타리」전 2권 요미우리 신문사 1990, 나중에 닛케이 비즈니스인 문고
  • '조용한 얇은 목소리' PHP 연구소, 1992년
  • 『인생에 대해』PHP 연구소, 1994년 이후 문고
  • 『종교에 대해서』 PHP 연구소, 1995년
  • 『지도자의 제왕학 역사에 배우는 현상 타파의 사상』PHP 연구소 1996년
  • 「종교로부터의 부름」야마모토 서점 2000년
  • 「야마모토 칠평의 일본의 역사」비즈니스사, 2005년, 신판 2015년
  • 『「지혜」의 발견』사쿠라사, 2014년
  • 『정신과 세간과 허위 혼미의 시대에 알아 두고 싶은 책』사쿠라사

작품집

  • 「야마모토 칠평 라이브러리」전 16권 문예 춘추, 1997년
  • 「야마모토 칠평 전 대화」전 8권 학습 연구사 , 1984-1985년

이사야 벤다산의 저작

  • 일본인과 유태인』 야마모토 서점, 1970년 후지카타가와 문고, 노치 카도카와 원 테마
  • 『일본교에 대해 어떤 유대인에게 편지』 문예춘추, 1972년 이후 문고
  • 「일본의 상인」문예춘추, 1975년 이후 문고
  • 『일본교도 그 개조와 현대 지식인』 카도카와 서점, 1976년 이후 문고, 카도카와 원 테마
  • 『일본인과 중국인 왜 그 나라와 제대로 교제할 수 없는가』 쇼덴샤
  • 『중학생에서도 알 수 있는 아랍사 교과서 일본인을 위한 중동 세계 입문』상전사 2007년.
  • “일본교는 일본을 구할 수 있을까 유대교·기독교와 일본인의 정신 구조” 사쿠라사 2013년

공편 저

  • 일본인 원자력
  • 『이슬람의 발상 아랍산유국의 홍네를 아는 책 』 대화:가세영명덕간서점 1979, 쇼덴샤 신서 2015
  • 『 일본인 과 『일본병』에 대해
  • 일본교의 사회학」코무로 나오키 대담 코단샤 1981 , 비즈니스사 2016
  • 『일본인의 사회병리』 오가타키 계고 대담 코단샤 1982 이후 문고
  • 『천황 폐하의 경제학-일본의 번영을 지지하는 신성장치』벤 아미 실로니와 공저 (감역)
  • “나츠히코·칠평의 18번 만들기 나는 인생의 아르바이트” 야마모토 나츠히코 대담 산케이 출판, 1983 이후 중공 문고, 산케이 신문 출판
  • 「의지악은 죽지 않는다」야마모토 나츠히코 대담, 코단샤, 1984년 이후 중공 문고 , 왁
  • 「색 즉시공」의 연구반 와카 심경읽는 방법
  • 『근대 일본의 허상과 실상』 오 하마 테츠야 대담 동성사 1984
  • 『기원 2000년 그 때 일본은』야나기 쿠니오 공편 코단샤 1984
  • 『오역되는 일본―왜 세계에서 제외자로 될 것인가』
  • 「천년기의 발상 밀레니엄으로부터의 경고-애국심이 일본을 잃는다」
  •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을 살린다" 호시노 선일 대화 칸키 출판 1989
  • 「아버지와 아들의 왕복 서간 도쿄-뉴욕」야마모토 료키 일본 경제 신문사 1991
  • “한자 문화를 생각한다” 나카니시 진공편 저 대수 관 서점 1991
  • '민족이란 무엇인가' 무라마츠 고 , 와타나베 승 이치 대담덕서점 1992. 회상 평전도 수록

번역

  • 인간의 역사 미하일 이린 이와사키 서점 1954
  • 문명의 역사 이린 이와사키 서점 1954
  • 르네상스 일린 이와사키 서점 1955
  • 몸의 과학 머리에서 다리까지 A. 노비코프 야마모토 서점
  • 생물 생태 NJ 베릴 야마모토 서점 1956
  • 역사로서의 성경 웰넬 켈러 야마모토 서점 1958
  • 성경생들 F. 케뇽 야마모토 서점 1959
  • 개요 성경 고고학 G. 어니스트 라이트 야마모토 서점 1964
  • 구약 성서의 사람들 F. 제임스 야마모토 서점 1967-1968.
  • 성경 고고학 갈라 콘펠트 코단샤 1981
  • 성경을 이렇게 읽는다(구약・신약) 맨플레이트・발텔 오가와 마이치 공역
  • 일본인에 대한 경종 러셀 브래든 다이아몬드 사 1983
  • 권력 해부 "조건부"의 논리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 일본 경제 신문사 1984
  • 아틸라 왕이 가르치는 궁극의 리더십 웨스 로버츠 다이아몬드 1990

참고문헌

평전·회상

각주

  1. 「전략 PR」
  2. 이와이 히로시 “작가의 임종·묘비사전”(도쿄도 출판, 1997년) 345페이지
  3. 야마모토 칠평 「벤다산씨와 야마모토 칠평씨」 「실업의 일본」1977년 10/1(1899호) 49-50페이지
  4. 야마모토 칠평 「일출판인의 인생론」 「Voice 특별 증간 야마모토 칠평 추도 기념호
  5. ^ 「논어를 읽는 방법」의 시작 부분의 문장에서
  6. ^ 문고판 『「손자」의 읽는 방법』(닛케이 비즈니스인 문고) 소수의 모리야 준에 의한 해설.모리야에 따르면, 이 서적의 손자의 해석은, 전군인으로서 동남아시아에서 몇번이나 사선을 빠져나간 야마모토의 체험이 여실하게 반영된 것으로서 전쟁을 체험하고 있지 않다.
  7. 『일본교의 사회학』(코단샤) 참조
  8. 문고판 「근면의 철학」(PHP 문고) 속의 해설, 코무로 나오키 「일본 자본주의 붕괴의 논리」(광문사) 등 참조
  9. ^ 코무로 나오키 는, 「미시마 유키오가 부활한다」(매일 커뮤니케이션즈) 중에서, 「전후에 있어서의 천황제 연구의 매우 뛰어난 것으로, 우리는, 마루야마 마오 교수와 그의 문하생에 의한 것, 야마모토 칠평씨에 의한 것을 가지고 있다.」라고 써 여기에서 그의 문하생이란 후지타성 3, 야마모토 시치히라씨에 의한 것이란, 「현인신의 창작자들」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 된다 .
  10. ^ 秦郁彦「소위 「백인 베리」사건의 허와 열매(2)」 「정경연구」 2006년 2월 [ 요페이지 번호 ]
  11. ^ 진이 히코 "소위 "백인 베리"사건의 허와 열매 (2)""정경 연구"2006 년 2 월 P96-P97
  12. ^ a b 「すばらしき正訳『蒼ざめた馬』」『에세 유태인과 일본인』 아사히 문고판(아사히 신문사, 1986년), pp.93-106 .
  13. 『에세 유대인과 일본인』 아사히 문고판 p.68.
  14. 「야마모토 칠평식 영문화(고)역의 방법」 「니세 유대인과 일본인」 아사히 문고판 pp.265-283.
  15. 『에세 유대인과 일본인』 아사히 문고판 p.73.
  16. 「전원 일치는 유효」 「니세 유대인과 일본인」 아사히 문고판 pp.63-74.
  17. ^ 영어판(리차드 게이지 번역)의 『일본인과 유태인』에서는 완전히 이 에피소드는 컷 되고 있다 .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개소가 다수에 걸쳐 설명 없이 잘라지거나 마음대로 재기록되고 있어 이 부분의 컷도 그 일례라고 지적하고 있다(『에세 유대인과 일본인』 아사히 문고판 p.22).
  18. 『에세 유대인과 일본인』 아사히 문고판 p.16.
  19. 『에세 유대인과 일본인』 아사히 문고판 p.23.
  20. ^ 「실재하지 않는 『유대인』의 이야기」 『에세 유대인과 일본인』 아사히 문고판 pp.16-28.
  21. 『에세 유대인과 일본인』 아사히 문고판 p.103.
  22. 「성경의 비상식─또는 야마모토 칠평식 『성경의 상식』」 「게다가 유대인과 일본인」 아사히 문고판 pp.239-264.
  23. ^ 아사미는, 이 기술도 영역책으로부터는 컷 되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만약 컷 ​​없이 영역되어 있으면, 이 부분만으로도 재판이 되어, 사실 조사가 행해졌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에세 유대인과 일본인』아사히 문고판 p.119-120).
  24. 「무리도 없는, 『시노비요루 일본인에의 박해』」 「나세 유대인과 일본인」 아사히 문고판 pp.115-123.
  25. 『야마모토 칠평의 토모에』 PHP 연구소, 1992년 [ 요점 페이지 번호 ]
  26. ^하라다 실 「톤데모 위사의 세계」악공사 [ 요점 번호 ]
  27. ^잡지 SAPIO[ 요점 페이지 번호 ]

관련 항목

외부 링크

 

https://ja-m-wikipedia-org.translate.goog/wiki/%E3%82%A4%E3%82%B6%E3%83%A4%E3%83%BB%E3%83%99%E3%83%B3%E3%83%80%E3%82%B5%E3%83%B3?_x_tr_sl=ja&_x_tr_tl=ko&_x_tr_hl=ko&_x_tr_pto=sc&_x_tr_hist=true

 

이사야 벤다산( Isaiah Ben-Dasan , 공칭 1918년생 ) [ 1 ] [ 2 ] ) 야마모토평의 필명 .

고베시 주 오구 야마모토도리 에서 태어난 유태인 이라고 하는 설정.동서가 오 야치 장일 논픽션상을 수상해 단행본·문고본의 합계로 300만부를 넘는 대 베스트셀러가 되었기 때문에, 그 정체를 둘러싸고 미디어로 화제가 되었다.

정체

현재는, 벤다산의 정체는, 「일본인과 유태인」의 출판원이었던 야마모토 서점의 점주로 벤다산 명의의 작품일본어 번역자라고 칭해 온 야마모토 칠평인 것은 틀림 없다고 된다 . 필명의 유래는 「막상, 편출 씨」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근강하지만 [ 4 ] , 실제로는 확실하지 않다.

야마모토 칠평 「일본 자본주의의 정신」(1979년, 광문 사)에 게재되고 있는 우시오 치로 추천문 중에, 「언제였는지, 주간지 등에서, 이사야・벤다산은 야마모토씨의 펜네임에 틀림없다, 라고 소란을 당한 적이 있었지만, 야마모토 씨에게 물으면, 저것은 히브리어 로, '땅에 숨어있는 사람으로, 아무도 찾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라고 예의 부드러운 미소를 띄웠다"라는 글을 볼 수 있다.

후보

야마모토 서점판 「일본인과 유태인」의 초판 책에도 얼굴 사진이 없었기 때문에, 몇명의 인물이 정체의 후보로서 들 수 있고, 책을 출판한 야마모토 서점의 점주로 「역자」라고 되어 있던 야마모토 칠평과, 미국인의 조셉 롤라, 유태인의 미샤·호렌스키의 공동 펜.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은 유대인이나 그 문화에 정통한 자가 관련되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현재는, 사실상 야마모토의 저작이라고 여겨지 는 경우가 많다.

해롤드 R. 아이작스 의한 비판

  • 만약 '이사야 벤다산'씨가 실제로 유대인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그는 같은 세대의 동료 유태인과의 접촉에서 놀라울 정도로 차단되어 온 유대인이다.
  • '벤다산'씨가 좀 더 현대에 가까운 유대인의 경험에 접하는 경우에는 그 유대인은 가끔 현실감이 없는 느낌으로 우리를 붙잡아 버린다. 다야인 학살에 대한 언급은 이상하게도 동물 및 동물의 도살에 관한 장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게다가 유대인이 썼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불쾌한 문장 중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B.J. 슈락터에 의한 비판

  • 저자의 근시안적인 학자인 방법은 그가 진정한 일본인에 틀림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원저에 있던 현대 유대인에 관한 몇 가지 언급 중 대부분은 사실의 점에서 틀리고 있어 그 때문에 번역판 쪽에서는 설명도 없이 삭제되었다.

2004년 5월 발행의 카도카와 one 테마 21판 「일본인과 유태인」은 야마모토의 단독 명의로 간행되어 해설에도 「이사야는 야마모토의 펜네임」이라는 취지가 명기되어 있다 .

야마모토 칠평의 발언

당초 '일본인과 유대인'의 저자가 아닌가 하는 것에 대해 야마모토는 “저는 저작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작권법에 근거한 저자의 개념에 있어서는 저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한편, “나는 “일본인과 유태인”에 있어서 에디터인 것도 , 어떤 의미에서 컴포저인 것도 부정한 적은 없다 말했다 .

나중에, 1987년 PHP 연구소 주최의 연구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6 ]

  • 야마모토 서점을 시작했을 무렵에 제국 호텔 의 로비를 원고의 교정 작업에 자주 사용하고 있었다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의 매니아 라는 것이 계기로 존 조셉 롤러와 그 친구 민샤 호렌스키와 친해졌다.
  • 기독교가 일본에 보급되지 않는 것은 왜인가라는 문제 의식 아래 3명이 여러 자료를 들고 논의하고 있는 사이에 정리된 내용을 책으로 한 것이 '일본인과 유태인'이다.
  • 벤다산 이름의 저작에 대해서는 롤러의 이일 후에는 호렌스키와 야마모토의 합작이다.
  • 롤러는 재일미군의 해외대학교육을 위해 일본을 방문했던 미국의 메릴랜드대학 의 교수로, 1972년 대택 장일논픽션상 시상식에는 벤다산 대리로 참석했다.
  • 호렌스키는 특허관계의 일을 하고 있는 비엔나 출생의 유태인, 아내는 일본인.

또, 「『일본인과 유대인』은 아는 유대인으로부터 힌트를 받아 자신이 썼다」라고 야마모토로부터 직접 들었다는 증언 [ 7 ] 도 있다.

논쟁

혼다 카츠이치와 이른바 백인 베기 논쟁 실시 했다. 이 논쟁 후에 일반적으로 퍼지는데, 이 이론을 유태인으로부터 일부러 "힌트를 받았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일본도는 2~3명 참으면 사용물이 되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는 이 논쟁 후에 일반적으로 꽤 퍼져 버렸지만, 도검 전문가나 무술 전문가들로부터는 비판도 받고 있다 [ 8 ] .

비판

'일본인과 유대인'에 대한 비판으로 아사미 정웅 '니세 유대인 일본인' 있다 . ] 의 '일본인과 유대인'에서는 완전히 이 에피소드가 컷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라는 이야기도 실은 완전한 거짓말 혹은 실수라고 한다 .

사회적 영향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나서, 「일본인과 ○○인」이라고 하는 제목의 비교형 일본인론이 일시 유행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인이 외국인을 치고 쓴 책( 폴·보네「이상한 나라 일본」시리즈, W·C·후라 나간 '치하야 후루 안쪽의 길' '놀라운 일본 야구' 등)도 많이 나오게 되었고, 마침내 '진짜 외국인'이 쓴 일본 쪽 저작 저자가, 실은 일본인이 아닐까 감행되는 사태까지 생기고 있다. 일본인이 외국인의 이름을 속이는 수법은 이사야 벤다산 이전에는 주간 신조 에서 장기 연재되어 있던 양 덴만 의 예도 있다.

문체모방을 자랑으로 하는 시미즈 요시노부 대표작 중 하나인 ‘소바 토키시멘’은 ‘일본인과 유대인’의 패러디이다 [ 10 ] .

또, 한국인이 썼다고 하는 촉촉한 「추운 한국인」의 저자( 박태사 )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의 가세 영명 이 아닌가라고 말했을 때에도, 한국측으로부터 이사야・벤다산의 사례가 제시되어(잡지 「SAPIO '), 일본의 출판계의 체질이 비판된 <『추악한 한국인』은 한국인 협력자는 있지만,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것에도 잘못이 있어, 대부분의 내용은 카세 영명이 쓴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요출전 ] .

저작

  • 『일본인과 유태인』
  • 『일본인과 중국인』 첫출 『문예 춘추』, 1972년 12월호 - 1974년 4월호
    • 『일본인과 유태인』 문예춘추 <야마모토 칠평 라이브러리 13>에도 수록 (1997년)
  • 『일본교도』 카도카와 서점, 1976년
  • 『일본의 상인』 분예춘추, 1975년
    • 이상은 『일본교도』 문예춘추 <야마모토 칠평 라이브러리 14>에도 수록 (1997년, ISBN 4163647406 )
  • 『일본교에 대해서』 문예춘추, 1972년

각주

  1. 『일본인과 유태인』야마모토 서점판, 안쪽의 저자 약력(1971년 8월 15일 발행의 29판을 참조했다).
  2. ^ 『일본교에 대해서』 문예춘추( 분춘문고 ), 1975년의 커버 접어보다(1975년 11월 30일 발행의 제2쇄를 참조했다).
  3. 「야마모토 칠평 라이브러리 14 일본교도」( ISBN 4163647406 ) 와타나베 승이치의 해설
  4. 엔도 주작 '구우타라 인간학' 코단샤 , 1976년 ISBN 4061126245 , ISBN 4061313320
  5. 야마모토 칠평 「벤다산씨와 야마모토 칠평씨」 「실업의 일본」1899호, 1977년 10월 1일, 49-50쪽.
  6. 야마모토 칠평 「일출판인의 인생론」 「Voice」특별 증간 야마모토 칠평 추도 기념호, PHP 연구소, 1992년 3월, 28-30쪽.
  7. ^ 야마모토 레이코 「야마모토 칠평과 이스라엘」 「월간 미루토스 」 No.41, 주식회사 밀토스 , 1998년, 11쪽 .
  8. 『육군 토야마류에서 검증하는 일본도 진검 베기』( 가로수 서방 , 2006년) 참조
  9. 일본어로 출판된 『일본인과 유태인』을 영어로 번역하여 출판한 것으로, 「야마모토에 의해 일본어로 번역되기 전」의 영문이 아니다.
  10. ↑ 이마타 코노부 ( 2021 년 9 월 10 일). “ 수도·나고야”도 있을 수 있었다? 작가가 생각 그린 역사와 미래 ”.아사히 신문 디지털 . 2023년 6월 18일에 확인함.

참고문헌

관련 항목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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