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만화, 전 13권] / 인생을 걸고 하는 도박에 대한 한 변호사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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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그보다 더 전
어릴적에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정말 많이 읽었습니다.
아파트 동사무소 2층에 마을문고라는게 있었는데
초등학교때부터, 어머니는 데려가서 거기서 책을 빌려주곤했습니다.
대여료는 권당 200원에서 300원.
당시는 포스기도 없었기때문에
책을 빌려가면, 자원봉사자인 동네 아주머니들이 수기로 적었습니다.
그리고 동전통에 돈을 받았지요.
어린이용 책은 그 마을문고에 있는 것을 거의 다 읽었고
초등학교 고학년때는 태백산맥과 아리랑을 읽었습니다.
무슨소린지 몰랐습니다.
내용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 안나고,
빨치산, 염상구, 염상진, 벌교 만 기억납니다.
그들이 뭐했는지도 모르겠고 염상구가 동생인거만.
이문열의 삼국지는 당연히 읽었습니다.
6학년때부터 읽기시작해서 10권 전집을 10번은 넘게 읽었습니다.
나오는 장수,
네임드 장수가 아니라 무력과 지력이 70대인 장수들의
이름, 자(字)를 전부 다 외웠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인가,
처음 무협/판타지를 접했습니다.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처음 읽은 무협지는 건곤일척, 처음 읽은 판타지는 바람의마도사입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책을 달고살다가,
고3때는 독서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대학교가서도 독서를 거의 끊었지요.
대망(大望)
중학교 1학년정도 되었던 시절,
대망을 읽었습니다.
어머니가 읽으라고 해서 읽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질릴만한 스케일과 내용이었습니다.
대망이 누구의 이야긴지도 몰랐고,
읽는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두 가지.
끊임없이 변하는 주인공이었습니다.
이게 도쿠가와이에야스의 내용이라고 지금은 알려있지만,
초반부에는 도쿠가와이에야스는 거의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다 노부나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그 다음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래서 누구 하나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주인공이 바뀌었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주인공의 이름이 너무 자주 바뀝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만 해도,
우리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알고있습니다만
기노시타 도키치로를 거쳐 하시바 히데요시가되고
그 다음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됩니다.
이놈의 이름이,
한권이 지날때마다 바뀌어있습니다.
소설 대망은, 책 맨 첫페이지에 주요 등장인물을 쫙 설명해놓습니다만
그럼 뭐합니까. 동일인물의 이름이 매 한권마다 계속바뀌는데.
당시에는 일본어 지식도 없었고,
일본 전국시대 역사에 대한 상식도 없었기에
흐름을 따라가기가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어릴적에 말랑하고 순백의 뇌에 기노시타 도키치로라는 이름을
박아넣었으니 기억이 나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름 변천사는
엊그제 새로 읽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마쓰다이라 뭐였고 이름도 이에야스가 아니었는데
성인이 되고나서야 저 이름을 쓰지요.
성인이 되고, 플레이스테이션에서 진삼국무쌍을 하다가
전국무쌍으로 넘어가고나서
사나다 유키무라니, 아케치 미쓰히데니, 혼노지의 변 이니
세키가하라 전투니, 동군이니 서군이니 이런 것들을 알게되었고
오다 노부나가 - 도요토미 히데요시 -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진다는 것도 알게되었고
새가 울지 않으면 오다 노부나가는 새를 죽이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새를 울게 달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때까지 기다린다는,
이런 인물설명들도 알게되었고,
그 다음에서야 이 전국시대 이야기를 좀 따라가면서 읽을 수 있었습니다.
소설 대망을 읽는데 힘들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그 장대한 설명과 묘사 입니다.
톨스토이를 세계적 작가의 대하 장편소설에 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꼭 있습니다.
몇페이지에 걸쳐 경치설명 및 가계도가 나오는데
그게 너무나 혼란스럽다고.
사진으로 보면 슥 보고 넘어갈것을
글로 표현을 하고 있는데 문제는 작가의 필력이 너무 대단해서
그걸 한땀한땀 붓으로 그리듯이 글로 묘사를 하고있으니
읽는사람 입장에선 그걸 따라가다 지치는겁니다.
책, 이야기가 내러티브가 있어야되는데
내용은 없고 경치설명만 수페이지에 걸쳐서 하고있으니.
이런 어려움이 있는데 소설 대망은 또
20권인가 30권인가 그렇습니다.
권수도 모릅니다.
다 읽었는지도 기억이 안납니다. 아마 중간에 포기했겠지요.
만화 대망 : 도쿠가와 이에야스
한 해 한 해,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가는데
그래도 뭐라도 했다는걸 남기고 싶은데
이 어렵고 두껍고 지치는 책을 다 읽어낸다면
그건 2021년에 내가 한 것으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목표로 대망을 읽고자 했습니다.
20여년이 지난 다음에 세운 목표이지요.
도서관에 갔는데,
여러가지 버전이 있어서 처음에는 헷갈렸습니다.
도쿠가와이에야스도 그걸 소재로 책을 쓴 것도 워낙많아서
고르기 어려웠습니다.
소설 대망은 대여가 되지않고 그대로 남아있었고,
만화책이 있더군요?
웬 만화.
망설였습니다.
나는 원대한 꿈을 안고 소설 완독을 하러왔는데
만화를 집어들어도 되는 것인가?
소설로 20권이 넘는 분량인데 만화는 대체 몇권일까?
그런데 소설은 아무도 빌려가지 않아서 깨-끗 한데
만화는 정말 너덜너덜 했고
빌리기도 어려웠습니다 (결국 1권은 항상 대출중이라 못읽음)
하지만 타협을 했습니다.
만화를 빌리기로.
왜냐?
일단 읽기 쉬울 것 같잖아요.
아무리 권수가 많아도 만화는 읽기 쉽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엄청나게 빌려가는 것도,
매력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놀라웠던 점.
그림체가 닮았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그림체예요.
아니.
이거랑 묘하게 닮았습니다?
60권짜리 삼국지의 그림체.
그래서 검색을 해봤더니,
대망이라는 소설을 지은 원작자는 야마오카 소하치,
그리고 이 만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그림을 그린 사람은
저 60권짜리 만화 전략삼국지의 그림을 그린
요코야마 미쓰테루 입니다.
이럴수가. 이사람이 이것도?
집어들고 왔습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미친듯이 빨려들어갔습니다.
이 만화책의 대단한 점
책 뒤편에는 대충 이런 말이 써있습니다.
5만자에 달하는 원본은 방대한 분량인데
이를 바쁜 현대인이 읽기는 너무 어렵다.
또한 글로만 표현되어있는
당시의 건물, 사람들의 복식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림으로 그리면 이런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풍경과 복식 등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또 방대한 분량을 압축하면서
원작의 말하고자하는 바를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압축을 하다보면 내용이 빠지게 되는데
그러면서도 원작의 중요 줄거리를 살리고
무엇보다 원작이 말하고자 하는 사상을 살려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그 목적을 어느정도 달성한 것 같습니다.
일단 일본 전국시대의 사람들의 생김새와 행동거지를
그림으로 표현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고
이는 글로 써있는 것을 상상하면서 읽는 것보다
확실하게 이해를 쉽게 했습니다.
또한 수십권의 소설책을 13권의 만화책에 압축하는 것은,
풍경묘사 같은 것이야 그림으로 그려내면 훨씬 내용이 줄어들겠지만
인물의 심리나 줄거리등은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닐것인데
중간중간 내용을 건너뛰는 듯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큰 무리는 없이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내용이 빠진다고해도 때로는 빠른 전개가 중요할 수 있고
내용이 빠진다고해도 바쁜 사람들은 긴 소설을 감내하며 읽기보다는
빨리빨리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내용을 압축하다보니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포커스를 두고
주변 인물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의 관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설명하는데 필요한 정도로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주변 인물이나 시대상 설명이 많이 날아간 것 같은데
대신 줄거리가 사방으로 발산하지 않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딱 집중되어 진행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만 시대배경설명, 관습설명 등이 많이 사라져
기본적으로 일본의 문화에 대해서 어느정도 이해가 있는 사람이 읽는 것이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듯 합니다.
예를들면,
일본에서는 뭐만 하면 할복을 하는 문화가 있었고
특히 이 시대는 그것이 만연하여 책을 읽는동안
진짜 수십명이 할복을 합니다.
이 할복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아야 이해가 쉽습니다.
일본의 무사는 2개의 칼을 가지고 다닙니다.
하나는 긴 장도, 하나는 그보다는 짧은, 그러나 단도는 아닌 길이입니다.
긴 장도는 상대방과 싸울때 쓰고
짧은 칼은 싸움을 하기에는 부적절한, 자살용, 그러니까 할복용입니다.
할복은 셋푸쿠라고 읽는데,
명예로운 죽음으로 여겨집니다.
그럼 그냥 목이나 가슴을 찌르고 죽으면 되지 왜 배를 가르느냐,
그것은 본인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어 보이는 행위로
본인의 결백과 명예를 드러내 보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할복이라는게, 우리생각에는 그냥 하면되는 것 같지만
사람은 배를 가른다고 쉽게 죽지 않습니다.
일단 배를 가른다는게, 자기 배에 칼을 찔러넣어서 옆으로 째야하는데
그걸 자기손으로 한다는건 엄청난 고통때문에 거의 불가능하죠.
배에 칼침을 맞는 순간 복근에 힘이 빡 들어가면서 칼을 근육이 잡는데
남도 아니고 내가 내 손으로 그 복근의 힘을 이기고
배를 가르는게 말이안되잖아요.
또 배에 칼침을 내 손으로 놓고 그 상태로 과다출혈로 죽을때까지 버티는건
정말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그래서 할복을 할때는 뒤에서 목을 쳐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할복하는사람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함입니다.
배에 칼을 찔러넣으면 그 다음에 바로 목을 쳐서
바로 죽을수 있게 해주는 것이지요.
이걸 가이샤쿠 라고 부릅니다.
책에는 가이샤쿠하겠습니다, 가이샤쿠 하라 라는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것을 모르고있으면 이게 뭐지 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좀 나오더군요.
일본은 우리와 달리 오래전부터 봉건제 사회였고,
그 잔재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지방균형발전이 잘되어있다는 이야기들이 종종 나오는데
그건 일본의 정치색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봉건제때문입니다.
천황이나 쇼군은 중앙에 있지만 지방 영주들의 권한이 크고
개별적으로 발전하고 사람들도 자기 지역에 대한 소속감이 강했기때문에
지역발전이 자연스레 될 수 밖에 없지요.
일본 국회의원이 지역구를 자녀에게 물려주는 행위는
이 봉건제의 잔재와, 일본이 민주주의를 스스로 쟁취하지않고
전후 미국에 의해 민주주의를 부여받았기 때문이 큽니다.
이 봉건제 주군-영주의 관계,
다이묘라든지, 하타모토라든지, 후다이라든지
하는 것들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책 내용속에 나오는 미카와 사람이니, 오사카 사람이니
이런 기질에 대한 설명도 이해가 쉽고
책 내용 전반을 관통하는 주군-가신 문화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소설에서는 그런 내용을 배경설명을 쭉하는데
만화는 그런 설명은 과감히 생략하고 이야기를 진전시켜 나갑니다.
이 책 13권을 읽는데는 일주일이 약간 덜 걸렸습니다.
만화책이지만 얇은 편이 아니라서
한권을 읽는데 약 1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느낀 점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여러가지가 보였습니다.
첫째로, 일본의 전국시대, 난세의 참혹함이 보였습니다.
봉건시대 영주가 난립하면서 일본은 약 100여년의 전국시대를 겪습니다.
중국의 삼국지의 시대, 진나라 이전의 춘추전국시대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영웅담을 위주로 삼국지와 초한지를 읽어서 몰랐지만
이 책에서는 난세의 혼란스러운 비극의 실상을 잘 보여줍니다.
땡글땡글 귀여운 그림체로 그려내고 있지만
12~13세밖에 안된 소년들이 당연스럽게 칼을 차고 전쟁에 나가고
칼을 휘두르고 죽임당하고 할복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서로 자녀와 인척을 인질로 보내고
수틀리면 그런 어린 아이들도 죽임당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죽는 어린 아이들도 그것을 자기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의연함.
당시 평균수명은 35세,
인간의 일생은 50까지라고 묘사되고 있습니다.
의술이 발전하지 못해서 그럴수도 있겠습니다만
전쟁때문에 빨리 죽으니 그럴 가능성이 컸습니다.
지금이야 30이 되어도 애인지 어른인지 구별이 안가고
12살~13살은, 그냥 귀여운 애일 뿐입니다.
아무리 조숙해서 몸은 성징을 나타내고
힘들게 학원뺑뺑이를 돌지라도 말이지요.
저 시대의 12살은 어른으로 결혼도 하고 15세면 자녀도 낳고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적응하는 동물인가,
저 시대의 사람들은 어찌 저리 어른스러운가.
저런 어른스러움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태평양전쟁당시 카미카제 특공대도 마지막에는
천황 만세가 아니라 어머니를 외치며 돌격했다는데
이 전국시대의 무사들도 의연함을 표방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지 않았을까.
애초에 저런 난세에 태어난 것은 얼마나 불행한가.
잔혹함에 대하여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내용 자체를 읽다보면 문란한 성관념, 생명경시풍조를 보게 되는데
이런 것을 일본의 저급한 관습이자 문화 라고 치부하기보다는
난세가 만들어낸 괴물같은 슬픈 풍습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장 죽고사는 문제,
우리 가족과 가문, 내 부하들의 일족이 전부다 멸망할 수 있는 상황에
윤리와 도덕 같은 것은 부차적으로 밀릴 수 밖에 없겠지요.
그렇게 100년을 살아온 시대.
100년이 지금이야 3대지만 15세면 애를 낳고
30전에 죽는게 다반사인 시대에서는 5~6세대가 될 것이고
그렇다면 사회 전반의 모습이 바뀌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요.
두번째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생을 통해서
위에서 말한 난세의 변화를 보았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난세에 힘없는 지방 영주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는 이혼당하고 자기맘대로 할 수 있는것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고
본인은 어릴적부터 남의 세력에 인질로 잡혀가며
성년이 될때까지 떠돌게됩니다.
초반부에는 정말 사람을 쉽게 죽이고
죽임당하는 사람도 자기 목숨을 경시하는 것 같고
죽고 죽이는 장면이 밥먹는 장면보다 자주나옵니다.
그래서 약 5권까지 볼때는,
누가 죽고 죽더라도 아 그런가보다 하고 봅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서 세력이 커지고 안정화가 되면
직접 전쟁을 하거나 죽기보다는
계략과 정치를 이용해서 머리아픈 싸움을 하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옵니다.
그러다보니 누가 죽는 에피소드를 보면
초반부보다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죽음이 흔치않으니 죽음에 둔감해졌다가 다시 민감해지고,
아마 후반부가 되면 한 인물이 오래 등장하니까 친밀도가 높아져서
그 사람이 죽거나 망하게 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번째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자가 주제의식을 가지고 그려낸 인물이겠습니다만.
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바로
난세를 끝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고자하는
싸움없는 세상을 만들고자하는 노력
입니다.
도쿠가와이에야스는 누군가의 가신,
주군을 모시는 경우가 없이 끝까지 살아남고 전국을 통일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입니다.
그 강대한 오다 노부나가 밑에서도 주군관계는 아니었고
희대의 영웅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와도 주종관계는 아님에도불구하고
살아남았습니다.
그의 일생은 본인이 전국을 통일하여 패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싸움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세력을 불리고 강해지고 전국을 통일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젊을때는 싸움을 하지만,
노년으로 갈수록 싸움 없이 설득과 이해로 전국을 통일하고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다 노부나가처럼 강력한 전술과 패도로
상대방을 쳐부수고 세력을 불려나가는 모습보다는
도쿠가와는 영웅담을 과시할 수 있는 위대한 전투가
그리 많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싸움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그의 고뇌.
그것이 후반부로 갈수록 더 많이 그려집니다.
저 시대의 사람들의 인식을 잘 보여주는 대사가 여러번 나옵니다.
인생 50까지. 어차피 태어나면 사람은 당연히 죽게 되어있는 것.
입니다.
그런데 도쿠가와는 70중반까지 살았습니다.
하지만 평화를 위한 길은 참으로 쉽지 않은 것이,
전국시대를 거쳐온
잔혹한 세상을 살아온 노인들은 싸움없는 세상을 만들고자하는데
전국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젊은이들은 오히려 싸움을 원합니다.
6.25를 겪은 사람들은 공산당이라면 치를 떠는데,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는 오히려 공산당과 친하게 지내려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수 있겠습니다.
긴 분량의 소설을 13권의 만화로 줄이다보니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먼저 오다 노부나가라는 일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빠졌습니다.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내에서는 거의 무신(武神)급의 장수이지요.
워낙에 중요한 인물이니 그래도 상당한 분량이 들어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혼노지의 변이 너무 짧게 휙 지나가버립니다.
하긴 혼노지의 변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너무나 큰 미스터리로 남아있지요
삼국지에서 전국을 통일할 기세이던 조조가
어느날 갑자기 수하 심복 장수에게
배반당해서 살해당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국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던 오다가
고작 500명의 수하를 데리고 있던 찰나
자기 수하의 군대에게 살해당하다니.
아케치 미쓰히데는 대체 왜 배반한 것인지.
그래서 일본에서는 이를 두고 많은 컨텐츠가 나오곤 하지요.
이 커다란 이벤트가 순식간에 휙 지나갑니다.
또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성장기가 그려지지 않습니다.
소설책에서는 꽤 나오는데,
여기서는 아무래도 도쿠가와에게 집중하다보니
농민의 아들(우리로 치면 향 소 부곡민의 아들)인 도요토미가
어떻게 패자로 성장하는지 그 과정이 많이 빠져있습니다.
또한 다케다 신겐 등 오다와 어깨를 나란히하던 영웅들에 대한 설명도
비교적 가볍게 지나갑니다.
많은 분량을 요약하자면 어쩔 수 없었겠지요.
인내
위에서 이야기했지만
울지 않는 새를 두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때까지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의 일생, 그를 잘 표현하는 말은 바로 인내 라고 합니다.
어릴적 인질생활을 견디고,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세력이 강대할때는
그들을 거스르지 않으며
그러나 가신은 되지 않는 위험한 줄타기를 하며
수십년을 인내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세상이 왔음에도
마음대로 하지 않고 꾹꾹 눌러참으며 인내하는 모습이 많습니다.
남들보다 긴 인생을 살면서
평화로운 세상이라는 위업을 달성했지만
그 과정에는 정말 수많은 인내가 있었습니다.
남들보다 긴 인생을 살며 볼꼴 못볼꼴 다 보았습니다.
오다 노부나가가 시켜
자기 장남을 할복시키는 행위.
영조가 사도세자를 굶겨죽인 것 외에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그것과는 다른 것이,
이건 남이 나에게 네 자식을 죽여라 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인 것이지요.
이것은 그 어떤 초인이라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참고, 또 참습니다.
그리고 때를 기다립니다.
때가 왔음에도 결코 마음대로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인내는 너무도 대단해서
이 책을 읽고도 저런 인내를 배울 엄두조차 낼 수 없습니다.
저런 엄청난 인내보다는 책 뒷편 아래부분에 써있는
그의 유훈이 훨씬 더 와닿습니다.
이 유훈은 정말, 두고두고 외워둘만한 말로
제 머릿속에 박혔습니다.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서두르면 안된다.
무엇하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면
굳이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 그 어느 분야에도 다 적용이 가능한 말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목표로 삼았던 소설책 완독은 아니지만
이 만화책 13권 완독도 충분히 즐거웠고
이 만화를 그린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대단함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고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명대사로 삼을 만한 것도 참 많은 책이었습니다.
마지막은 오다 노부나가가 즐겨 부르던 노래로 마무리.
꽤나 유명한 명언으로 회자되는 듯 합니다.
책에서도 부채를 들고 부르는 장면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인생 50년
저승에 비하면 꿈과 같은 것.
한번 태어나 죽지않는 자 누가있으랴
https://www.youtube.com/watch?v=b-6BR8h6s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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