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부자이야기(1)- 롯본기개발의 신화 모리 미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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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시나 그 도시 나름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랜드마크가 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빌딩, 시애틀의 스페이스니들, 서울의 롯데빌딩 등.
시애틀에 가면 반드시 가보아야할 명소는 스페이스니들이다. 스페이스 니들은 우주선 모양을 본 뜬 건물이다. 전망대 아래층에는 회전식당이 있어 연인들이 여기서 식사를 하면 맺어질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15년전 와이프와 여기서 커피한잔 했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 빌딩은 들어가기전에 모든 관람객을 대상으로 일단 사진을 찍어준다(사진을 찾든 말든). 나중에 나갈때 관람객중 사진이 마음에 들면 돈을내고 찾아가면된다.(엄청난 마케팅수법이다!)
일본 동경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라면 롯본기 복합센터 개발을 주도한 모리 미노루회장의 모리 빌딩이 유명하다. 모리미노루(1934~2012)는 도쿄 미나토구 등 일등지역에 잇달아 고층빌딩을 짓는 소위 부동산 디벨로퍼였다. 모리 미노루가 창업한 모리 회사는 도쿄중심부에만 110여개의 빌딩을 소유하고, 그 자산액도 엔화로 1조 3천억엔(한화 약 13조원)을 넘어선지 오래다. 모리회사가 매년 임대로 얻는 영업이익만 2조원이상이라고 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부동산 재벌로 소위 일본판 '트럼프'로 불리는 모리 미노루는 과연 어떻게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던 것일까?
그가 일본인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것은 비단 돈때문만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서 돈버는 기술이 아닌 도시를 재창조하려는 능력을 배우려고 했다.
그는 임원회의에서 "과연 무언이 돈이 될까?"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토의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한다. 그대신 "수요를 부르고 경쟁력있는 도심을 재창조하려면 때로는 회사가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가지고 회사를 경영해왔다고 한다. 또한 "미지의 영역에 대한 도전이야말로 모리빌딩이 존재하는 이유"라며 생의 대부분을 도전의 연속속에서 살아왔다고 한다.
원래 모리는 젊은시절 학자가 본업이었으며, 부동산은 부업이었다. 모리는 경제학자로 갖추고있는 식견을 활용해 모리빌딩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자산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어릴적 모리의 아버지는 쌀가게로 사업을 시작해 니시신바시를 중심으로 소규모 주택임대업을 했었다고한다. 자산가로 불릴 정도는 아니었고 평범한 집주인이었다. 게다가 남의 일을 잘돌봐주는 인정많은 사람이었다. 세들어 사는 사람의 아들이 학비가 없어 공부를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주저없이 도와주었고 반대로 낭비가 심하면 잔소리를 마다하지 않아 셋집사람들이 거북해했을 정도였다고한다. 모리의 아버지는 그야말로 지역공동체의 얼굴로서 주택임대업을 한 것이다. 모리도 이런 아버지를 본받으려 자랐으며, 서민적인 공동체에서 살았던 이러한 경험이 훗날 모리의 큰 정신적 자산이 된다.
경제학자였던 모리는 태평양전쟁 전후 고도성장과 도시집중현상이 일어날 것을 예견하였다. 나중에 아버지에게서 얼마안되는 토지를 물려받은후 전통적인 주택임대업에서 탈피해 도라노무일대에 잇달아 오피스빌딩을 건설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빌딩경영이 본업이 되었고 학자로서의 삶을 그만두고 사업체를 법인화시킨 것이 현재의 모리빌딩이다.
젊은 시절 모리는 학자출신답게 철저하게 논리를 추구하고 계획적으로 일을 해나갔다. 빌딩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큰돈이 필요한데 영세주택업자일뿐이었던 모리에게는 그만큼의 큰돈이 없었다. 그는 머리를 쥐어짠 끝에 큰돈에 단숨에 손에 넣는다.
전후 일본에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활용하여 일종의 투기를 한 것이다. 당시 일본정부는 태평양전쟁이란 무모한 전쟁을 수행하기위해 국가예산의 280배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을 전비로 소비하고 있었다. 당연히 일본 경제는 곤두박질치고있었다. 게다가 전쟁자금 모두를 일본의 은행에서 조달했기에 전쟁이 끝나자 일본국내 경제는 준하이퍼인플레이션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이 강렬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예금을 갖고있던 자산가는 거의 빈털터리가 될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치를 잃지않는 것은 외화나 금, 산업용재료, 그리고 토지 등이다.
모리는 자신의 경제지식을 바탕으로 이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산업용재료의 값이 치솟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레이온직물 공거래에 참여해서 레이온직물을 대량으로 사들였다. 모리가 공거래에 참여하자마자 일본정부의 예금봉쇄정책이 실시되더니 곧 레이온시세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모리의 재산은 단숨에 수십배로 늘었고 그는 이 자금을 밑천으로 신바시일대에 근대적인 빌딩을 짓기 시작했다.
모리는 경제학자답게 일본에 조만간 빌딩 건설붐이 일어날 것을 치밀하게 예측하고있었다. 고도성장으로 기업활동이 활발해지고 오피스빌딩의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난다는 나름대로의 명확한 시나리오를 갖고있었다. 그리고 모리의 예측은 정확히 적중했고 천문학적인 자산가로 변신했다.
모리가 개발한 롯본기 힐스는 일본의 부동산개발업체인 모리개발이 만든 건물이다. 원래는 동경의 낙후된 지역이었으나 모리 회장이 근 17년 동안 주민들을 설득해 동의를 받아 개발한 35만평 규모의 거대 수직도시다. 롯폰기 힐스는 구상부터 완공까지 17년이 걸렸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가장 큰 규모의 민간 재개발인 이 사업은 1986년 도쿄도가 롯폰기 6초메(丁目) 지역을 재개발 유도지구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일본 최대의 부동산 개발 회사인 모리개발의 모리회장이 사업을 주도하겠다고 나섰다. 모리는 사업비용(약 2천 9백억엔)과 설계․시공을 모두 책임지기로 하고 주민들과 재개발조합을 만드는 논의에 들어갔다.
그러나 시작부터 조합 결성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지역 주민 4백여가구 중에 90% 이상이 반대했고, 이들을 설득해 재개발 조합을 출범시킨 것은 12년이나 지난 1998년이었다. 모리는 성급하게 사업을 추진하며 주민들에게 땅을 팔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지 않고 아파트 입주와 일정한 토지 지분을 보장해 재개발 이익을 공유키로 했다.
2000년에 공사를 시작한 뒤에도 일본내에서는 여기저기서 무모한 도박이란 비난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일본의 부동산 경기가 나락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에서, 엄청난 사업비를 회수하기 위해 임대료를 주변보다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특히 사무 공간이 외국계 기업들에 인기가 높아 골드먼 삭스와 리먼 브러더스, 야후 재팬이 들어온 것이다.
54층짜리 모리타워와 21층 특급 호텔, 최고 43층의 고급 맨션을 주축으로 TV 방송국과 야외 스튜디오, 영화관, 120개 점포의 고급 쇼핑몰, 젊은이의 광장인 ‘할리우드 뷰티 플라자’가 자리 잡았다. 아트센터와 전망대를 비롯하여 미술관, 회원제 도서관 등 문화공간도 많아 그 자체가 하나의 도시를 구축하였다.
롯본기는 아카사카(赤坂)․아오야마(靑山)와 함께 도쿄 도심의 트라이앵글을 이루는 지역이다. 외국인과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유흥가로도 유명하다. 롯본기 힐스의 대지 넓이는 3만4천평, 건축 연면적은 22만평이다. 54층 오피스 빌딩인 모리 타워와 21층 특급 호텔 그랜드 하얏트 도쿄, 최고 43층의 고급 아파트 4개 동(8백40가구)이 주축이다.
그들 사이에 아사히TV 방송국과 야외 스튜디오, 아홉개의 대형 스크린을 갖춘 영화관, 1백20개 점포의 고급 쇼핑몰, 젊은이의 광장인 할리우드 뷰티 플라자가 자리 잡았다.
작은 연못이 있는 17세기 일본풍 정원도 꾸몄으며, 7만여 그루의 나무가 단지 전체를 초록으로 감싸고 있다. 단지에는 시민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이 많다.
모리타워 꼭대기(49∼54층)의 아트센터가 그런 곳이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감상하는 미술관, 회원제 도서관, 도쿄 타워 전망대보다 높은 해발 2백50m의 전망대, 그리고 각종 사교 모임을 위한 클럽 등이 있다. 모두 새벽까지 문을 열고 도서관은 24시간 운영한다. 하루 평균 10만∼15만명의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필자가 주목한 부동산은 모리타워의 '아카데미힐즈'다. 롯본기힐스내 정점에 잇는 모리 타워의 최상층인 49층에 자리잡은 '아카데미힐즈'는 라이브러리형 카페다. 49층에 있으니 동경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조망이 압도적이다.
모리타워의 최상층에 위치한 '아카데미 힐즈'역시 모리회장의 철학대로 사람의 중요성을 간과하지않는다.
롯본기라는 지역, 높은 곳이라는 위치, 쾌적한 공간구성을 더 의미있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지식과 정보는 사람들로부터 나오고 사람들이 서로 교류할때 힘이 커진다.
지식과 정보는 사람들로부터 나오고 사람들이 서로 교류할때 힘이 커진다. 그래서 직장인들을 위한 '아카데미 힐즈 스쿨'을 운영한 것이다.
대기업 사장, 베스트셀러 저자, 스타마케터 등의 강연을 기획하거나 매월 도움이 될만한 책을 선별하여 추천하기도 한다. 얼굴을 마주하는 강연이건 활자로 생각을 전달하는 책이건 사람과의 교류를 통해 지성의 완성을 추구하는 것이 모리회장이 설파한 '수직도시론'의 궁극적인 목표인 것이다.
'힐즈아카데미'의 사업 모델은 크게 3가지다. 1)책을 보는 1200평 규모의 라이브러리 공간 2)회의할 수 있는 공간 3)소호사무실처럼 소규모 사업을 할 수 있는 비지니스 공간.
이 3가지가 결합된 복합라이프센터다.
회의공간은 단순히 강의실 대관만 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가지 세미나가 있어 입주자들이 재교육받을 있는 프로그램이 많이 있다. 비즈니스를 하면서도 틈틈히 책을 보면서 개인적 소양을 증대시키고 나아가 각종 재능교육까지 받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좋은 인생 재교육센터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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