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상간녀를 기다리는 중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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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와 나는 처음엔 같이 기다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동의 입구 바로 옆에 정자로 이어지는 돌계단이 있었는데, 거기 맨 위로 올라갔다. 우리는 계속 아래위로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며 서로가 보이는지 안 보이는지, 어떤 자세로 앉아 있어야 안 보이는지 확인했다. 어느덧 저녁 6시가 넘었다. 날은 깜깜했고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다. 언니는 나에게 우리 둘이 떨어져 있을 것을 제안했다. 저번 글에서 말한 대로 나는 1층에서 두 년놈이 현관으로 들어가는 것을 동영상으로 찍기로 했고, 언니는 남편이 주차를 하고 사라짐과 동시에 차 문을 열고 블랙박스 메모리를 들고 우리 차로 뛰는 것으로 했다.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되었다. 나는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아파트 라인 안으로 들어가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센서등이 켜질까봐 움직이지도 않았다. 이게 바로 현대판 망부석이구나. 보통의 사람들은 핸드폰을 보느라 내가 있다는 것을 몰랐지만 몇몇 사람들은 나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웬 미친 여자가 가을에 패딩을 입고 계단에 앉아 있으니 나였어도 기절했을 것이다.

 언니와 나는 서로의 핸드폰 배터리를 아끼면서 중요한 대화만 나눴다. 그러다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없어서(지금 생각해도 너무 죄송하다) 우리 집인 7층으로 올라갔고, 7.5층에서 그들을 다시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바로 찍고 튈 생각이었다.

 점점 체력은 고갈되어 갔고 어느덧 시간은 밤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문득 얘네가 오늘 안에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2시까지만 기다려보기로 했다.

초긴장 상태의 기다림... 패딩주머니에 있는 과도를 하도 만지작만지작 거려서 감아놨던 휴지는 이미 너덜거렸고, 내 마음이 차가워질수록 그 칼은 따듯해졌다. 더 이상 내 주머니에 있는 칼이 무섭지 않았고 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칼날의 끝이 나를 향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다. 그냥 한없이 외롭고 서러웠다.


 또 다른 복병이 있었다. 바로 '화장실'. 긴장도 긴장이고 원래 화장실을 자주 가는 나는 중간중간 자꾸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그럴 때마다 언니에게 카톡으로 보고를 했다.


나 : 나 화장실 갔다 올게.

언니 : 야 이 씨. 그만 좀 왔다 갔다 거려!!

나 : 아니 근데 급한 걸 어떡해.

언니 : 그러면 불을 켜지 말고 들어가. 네가 불을 켜면 혹시 걔네가 바깥에서 집 한번 봤다가 불 켜져 있으면 눈치챌 거 아니야 이 멍청아(동생이 지금 세상 불쌍한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이 상황에서도 언니는 나에게 욕을 한다. 혈육이다).

나 : 아, 그러네. 알겠어 오키(근데 보통 욕을 먹으면 정신을 차린다).


이렇게 나는 내 집 화장실에 들어가면서 거실 불도 못 켜는 여자가 되었다. 깜깜한 밤에 혼자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집으로 들어가서 화장실에 들어갔다 나오는 찰나, 중요한 전화가 왔다. 그 작은 진동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죄지은 게 아닌데.. 일단 기운이 너무 없으니 좀 앉자. 전화를 받은 상태로 깜깜한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전화를 끊고 나오려는데 침대 머리맡에 아까 보지 못했던 뭔가가 보였다.

'이게 뭐지?'

플래시로 비춰보았다. 아주 작은 무언가가 작게 접혀서 색이 화려한 비닐(?)에 들어있었다. 펴보자!


..?!?!?!?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건 바로 작은 부적이었다.


여러분은 혹시 깜깜한 밤에 혼자 집에서 플래시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부적을 본 적이 있는지.. 난 참으로 궁금하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부적이라는 것을 처음 봤는데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보았다. 그리고 그 부적 맨 끝에 이렇게 적혀있었다. 'O베개'. ‘O’은 내 성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시모가 전달해 준 이혼을 사주하는 부적이었고, 내 베갯속에 넣어놓으라고 했단다. 진짜 염병도 가지가지로 떤다. 일단 부적의 정체를 몰랐기에 사진만 찍어두고 다시 내려놓고 도망치듯이 아니고 진짜 도망 나왔다. 방울소리가 들리는 거 같았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귀신의 집’이었달까.


 어느덧 밤 11시. 너무너무 춥고 배도 고팠던 우리는 작전을 바꿨다. 일단 차로 돌아가자. 차에 탄 우리는 아파트 정문이 보이는 관리사무소 앞에 차를 대고 시동을 껐다. 워낙 남의 차량번호를 습관적으로 외우고 다니는 남편의 특성을 알아서 우리 차를 단번에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다. 경비 아저씨가 여러 번 지나갈 때마다 우리는 최대한 몸을 뒤로 젖혀서 순찰을 피했다. 몸에 진이 다 빠졌다. 기진맥진은 이럴 때 쓰는 말이구나. 우리는 점심식사 이후로 먹은 것이라고는 청심원 한 병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안 먹겠다고 하니 우리 집 성보라가 “먹어!!!! 먹어야 기운이 날 거 아니야!!!!! 그래야 저 xx들 잡을 거 아니야!!! 먹어! 먹으라고!!!!!!”

뭐라고 더 소리를 지르는 거 같았는데 여기까지만 듣고 얼른 내린 나는 편의점에 가서 삼각김밥과 물을 사 왔다. 이게 어디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게 그냥 입이라는 곳으로 욱여넣었다.


 밤 12시. 우리가 기약한 시간이 되었다. 이대로 포기할 것인가? 그때 나에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자!'

전화를 해서 내가 사정이 있어 내일 새벽 일찍 집에 들러 짐을 챙겨갈 거라고 말할 예정이었다. 그럼 집안을 그 꼴로 만들어놓고 나간 년놈들은 지금 어디에 있더라도 돌아와서 집을 정리할 수밖에 없을 노릇이었다. 이 생각을 지금 하다니..! 언니는 내가 오랜만에 생각이라는 걸 했다며 매우 기특해했다. 마치 패트와 매트처럼.

아이폰은 전화녹음이 되지 않는 관계로(녹음이 습관이 되었다) 녹음 어플을 받아 시험 삼아 언니에게 전화를 해봤다.


나 : 아, 아, 이거 녹음 잘 되나? 텍스트 전환 잘 ㄷ

언니 : 야야야야야! 저 차 아니야?????????????


딩동댕. 거짓말처럼 우리 눈앞에 남편의 차가 아파트에 들어서고 있었다. 오전 12시 10분. 이제부터는 1분 1초가 급하다. 마음이 급한 나는 일단 차에서 내려서 죽을힘을 다해 우리 동 앞으로 뛰었고(여전한 헛구역질.. 꾸엑) 언니는 그 차를 거리를 두며 따라가서 지하주차장 쪽으로 갔다.


뛰면서 "오 주님.. 제발요 제발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뭐가 제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내 입에서 저런 말이 나왔다. 신앙심은 깊다. 네가 먼저 부적을 썼으니 이건 이제 종교의 전쟁이었다. 숨이 턱끝까지 차다 못해 폐가 입 밖으로 튀어나올 거 같았지만 일단 나는 다시 그 돌계단 위로 올라가서 거의 돌바닥에 누워있었다. 등이 차가웠다. 다시 하얀 피가 차갑게 파도를 치고 있었다.


이제 남편이 차에서 내리면 된다. 과연 상간녀와 같이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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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익숙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나는 몸을 최대한 눕히고 남편이랑 상간녀가 현관으로 들어오길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은 너무 조용하고 풀벌레 우는 소리만 찌르르 찌르르했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내 심장 소리가 밖으로 들릴 것처럼.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거 같은데 아직 주차장에서 올라오지 않고, 남편 차를 뒤쫓았던 언니에게서도 연락이 없다.

'무슨 일이지?' 걱정이 들 무렵, 언니가 카톡을 했다


언니 : 야! 저 xx 지금 내렸어. 여기 지하 3층이고 이 씨.. 이 xx 혼자 왔어. 나 지금 안 들키려고 차들 사이로 기어 다니는 중이야.


욕을 안 하신다던 분이.. 참고로 우리 언니는 굉장히 재능이 많고 능력 있는.. 음... 평소에는 교양이 넘치는 커리어 우먼이다. 근데 오늘은 입만 열면 욕이다. 나도 안다. 언니도 죽을힘을 다해 버티고 있었다.


혼자 돌아오다니.. 이때까지의 기다림이 물거품이 되나 싶었지만 그래도 우리에게는 블랙박스가 있다. 얼른 언니에게 메모리카드를 빼오라고 했다. 여기서부터 진짜 다시 생각해도 아찔한 상황이 생긴다.

언니와 나의 생각은 이러했다.

남편이 1층 현관에서 집까지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어림잡아 1분 이내였다. 우리 집은 7층이었으므로.. 만약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내가 와서 집을 들쑤셔놓고 갔고 본인의 차키를 탈취했음을.


그럼 바로 우리를 저지하기 위해,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살리기 위해 필사의 질주로 우리를 쫓아내려 올 것이다. 아마 엘리베이터를 타지도 않고 성큼성큼 뛰어내려오겠지? 그리고 지하주차장으로 달려 내려올 것이다. 그럼 우리는 계단을 이용하면 안 된다.

 언니에게 메모리카드를 챙겨서 차가 들어오는 곳으로 거꾸로 올라오라고 했다. 마주치면 누구 하나는 죽는다.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남편은 경호학과- 육군3사관학교 경력에 키는 180cm가 넘었다. 건장하고 힘이 센 남성이다. 태권도, 유도 등등 각종 무술에도 능했다. 빌어먹을 내 이상형이 지금 날 죽일 수도 있다.

 

 남편은 남자 중에서도 힘이 센 편이었고, 나는 여자 중에서도 마르고 힘이 약한 편이었다. 참고로 나의 주력은 고등학교 때 마지막으로 확인한 게 50m 11초였다. 우사인 볼트가 걷는 게 내가 목숨 걸고 뛰는 것보다 빠르다. 그리고 이미 언니와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심적으로 더더욱) 정말 힘이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았다.


드디어 내가 앉아있었던, 아니 거의 누워있었던 돌계단 밑으로 남편이 보인다.

하이 오랜만!

그 새벽에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무슨 해외직구 판매자와 연락을 하는 거 같았는데 새벽시간이라는 게 문득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멍청한 남편은 전화를 하느라 내가 살금살금 돌계단을 내려가면서 자기를 찍고 있는 걸 전혀 몰랐다. 상간녀도 없는데 내가 왜 찍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군인, 아 그래 전직군인인데 바람을 피우는 자에게 *사주경계는 필수다 이 멍청한 놈아. 이제 남편은 공동현관문을 열었고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진짜 1분 안에 뛰어 내려오겠지. 언니는 블랙박스 메모리는 찾았을까? 나는 심장이라는 기관이 목에도 붙어있을 수 있는 걸 그날 알았다.


*사주경계 : 사방을 두루 경계하는 일.


근데 갑자기 오지 말아야 할 전화가 왔다.


언니였다.

블랙박스 메모리카드가 안 빠진다고 했다.

!?!?!!!!!!!!!... 오. 마이. 갓. 와 씨… 우린 죽었다 이제.

일단 말로는 어떻게 빼야 하는지 설명을 하면서 몸은 자동으로 지하주차장으로 미친 듯이 달려가고 있었다. 어디로 내려갔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어쨌든 언니를 만나고 정말 다행히 내가 얼른 메모리카드를 단숨에 뺐다. 이제는 정말 마주칠 수도 있다. 언니와 나는 최대한 조용하고 빠르게 자동차가 내려오는 길로 뛰어 올라갔다. 나의 바람은 내가 정말 빨리 뛰어서 얼른 1층에 있는 우리 차로 들어가서 문을 잠그는 것이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다. 마치 돌덩이를 다리에 묶은 채로 물속에서 뛰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너무 숨이 차고 토할 거 같았다. 또 한 번의 헛구역질. 나는 그때 여기가 내 인생의 마지막일 거라고 생각했다. 내 고향에서는 못 죽는구나... 이제는 잡히든가 말든가 그냥 포기하고 싶었다. 사실 마음속으로 여기에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고(그만큼 마음의 병이 심했다), 지금 세 사람이 마주친다면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흉기를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말리든 뭘 하든 간에 최소 한 명은 죽을 거 같았다. 그럼 그 희생자는 나여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막 들었다. 그 와중에 언니는 계속 나보고 빨리 오라고 했다. 나도 누구보다 그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근데 그녀도 뭐 거의 걷고 있었다. 이 xx는 왜 집에 일찍 일찍 안 들어와서 지하 3층에 차를 세우고 난리인가.

 체력은 국력이다. 난 그날을 겪으며 깨달은 게 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사는 게 아니라 체력이 있어야 살아남는다.‘

운동을 하시라. 세상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 스펙터클한 추격전이 이루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정말 정말 다행히도 우리가 지하 3층에서 올라오는 동안에 남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너무 무서웠다. 연애할 때부터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화가 난 남편을 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원래 싸우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이 사람이 흥분했을 때를 모르기 때문에... 원래 보이지 않는 공포가 더 우리를 무섭게 한다. 계속 뒤에서 나를 덮칠 것 같았고 나는 다시 칼을 꽉 쥔 채로 거의 기어가서 차에 탔다. 블랙박스 메모리를 유혈사태 없이 가져왔다는 기쁨과 안도의 환호성을 거의 몸을 반쯤 접은 채로(너무 힘들어서) 질렀다. 패트와 매트가 한 건 해냈다. 이제 집에 좀 가자. 제발.

 

블랙박스를 안 지웠어야 할 텐데. 오늘은 안 지웠겠지? 내가 없을 줄 알았을 테니까. 긴장이 풀리니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언니에게 만약 걔가 차를 지상에 세웠으면 어땠을까?라고 묻자 운전을 하던 언니는 은은하게 돌아있는 눈으로 전방을 주시하며 조용히 얘기했다.

“차로 쳐버려서 트렁크에 넣어야지. “

응?!?!? 음… 그냥 조용히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이제 새벽 한 시가 넘었다. 집에 가는 중에 카톡이 온다.

남편이었다.


지독한 회피형 인간과의 대화.


남편 : 집에 왔었네?

나 : 어

남편 : 말이라도 하고 오지

나 : 내가 왜? 내 집인데?

남편 : 그래 그건 그렇다.

나 : 난 남의 집인 줄 알았어. 모르는 옷들이 잔뜩 있길래.

남편 : 짐은 다 챙긴 거야? 칫솔은 왜 가져갔어? 칼도 없네?

나 : 아니 내 칫솔꽂이에 이상한 칫솔이 있어서 버렸고, 칼은 쓸 데가 있었어. 왜 뭐 불만 있어?

남편 : 아니. 그냥 물어본 거야. 칼 가져갈 거면 세트 다 가져가지.


대화의 끝이었다. 이런 회피형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집에 돌아오고 나는 얼른 메모리카드를 샅샅이 뒤져 상간녀의 얼굴과 집을 알아냈다. 놀라울 정도로 남편과 닮았다. 상간녀가. 아니 정확히는 시모와 닮았다.  

그리고 매일같이 아침에 상간녀를 모시러 가서 출근하는 남편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장 유의미한 것은 이것들이 근무 시간에 맘대로 차를 끌고 나와 쇼핑을 하러 간 것이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 위병소를 지나서 사무실 건물 앞에다 차를 주차하고 시간차를 두고 내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다시 부대를 빠져나온다. 그리고 갑자기 어느 쇼핑몰의 지하주차장. 두 년놈이 내려서 다정하게 걸어간다. 오호 무단이탈 저장!


아쉽게도 음성 녹음은 되어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 쓸만한 정보들을 얻고 나는 그날 거의 새벽 다섯 시가 넘어 눈이라는 것을 그냥 감아버렸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숨 막히는 내용을 정리해 보면, 난 아직도 상간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모른다. 지겨우신 거 안다. 자잘한 증거는 있지만 결정적 증거가 없기에 소송을 걸 수 없다. 또 한 번 날려야 한다. 뻥카.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남편에게서 메모리카드와 차키를 언제 줄 거냐는 카톡이 와 있었다. 이제 알았나 보다. 진짜 내가 내 남편을 너무 똑똑하게 봤다. 나의 전날의 필사의 탈주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너의 알 바가 아니라고 메모리카드 하나 새로 사라고 했다. 차키는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그리고 날렸다 마지막 뻥카.


"그 여자애한테 전해. 내가 부대로 출발하기 전에 지금 당장 나한테 전화하라고."


말해놓고 설마 30살이 넘은 상간녀가 바보가 아닌 이상 나한테 전화를 할까 싶었다. 이번 뻥카는 망했다는 느낌이

들던 바로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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