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원과 SK, 검새/판새들의 환상의 비리 파티

 

2. 상세[편집]

이 사건은 2010년 11월 28일 MBC 시사매거진 2580의 '믿기지 않는 구타사건 - 방망이 한 방에 100만원' 편에서 최철원 M&M 대표가 화물연대 소속 탱크로리 운전기사 유홍준을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로 10여 차례 구타한 사실을 방송하면서 알려졌다. 최철원은 범SK가 최종건 창업주의 동생 최종관의 유일한 아들[1]로 밝혀졌다.

유홍준이 다니던 회사가 M&M 사에 흡수합병되면서 유홍준만 고용 승계에서 제외된 것을 항의하며 SK 본사 앞에서 1인 차량 시위를 했던 것 때문에 구타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M&M 사는 인수합병 과정에서 운수 노동자들에게 화물연대 탈퇴와 이후 가입 금지를 고용 승계 조건으로 명시한 계약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고 2580은 보도했지만 화물연대 울산지부 탱크로리 지부장이었던 유홍준은 이를 거부했다.

폭행은 10월 18일 서울특별시 용산구에 있는 회사 사무실에서 일어났다. 회사가 유홍준의 탱크로리를 사겠다고 해 계약차 찾아간 길이었다. 1년 이상 벌이를 할 수 없어 생계가 막막한 유홍준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회사를 찾아가자 최철원은 유홍준에게 "엎드려라, 한 번에 100만원이다."며 야구 방망이로 유홍준을 내려쳤다. 유홍준이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폭행은 계속되었다. 7~8명의 회사 간부들이 현장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유홍준은 말했으며 10번 친 다음 유홍준이 안 당하려고 몸부림을 치자 최철원은 "지금부터 한 번에 300만원이다."라며 세 번 더 했다고 한다. 유홍준은 야구 방망이로 13번 구타당했으며 최철원은 그를 일으켜 세워 뺨을 후려쳤고 두루마리 휴지를 그의 입안에 물린 다음 얼굴을 가격했다. 폭행이 끝나자 유홍준에게 서류 2장을 작성토록 했으며 자세한 내용을 읽을 수 없도록 방해까지 했다. 이후 탱크로리 차량 가격 5000만 원, '매 값' 2000만 원을 줬는데 5000만 원은 통장으로 입금했고 2000만 원은 현장에서 수표로 줬다. 유홍준은 그 돈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이후 임원들은 유홍준이 사과를 요구하며 전화하자 "인마", "정신나간 놈" 등의 욕설을 했으며 회사의 한 간부는 "유씨가 돈을 더 받기 위해 자기가 맞은 부분이 있어요. 파이트 머니(보수)라고 할까요? 쉽게 말해서."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서 "사실은 2000만 원어치도 안 맞았어요. 제가 볼 때는."이라는 발언까지 했다.

여담으로 유홍준은 폭행 사건이 벌어지기 10일 전 회사가 자신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장을 받았는데 손해배상 액수는 폭행 후 유홍준이 받은 금액과 같다고 한다.

29일 오후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유홍준은 최철원을 고소하기로 했고 다음 아고라에서는 최철원의 처벌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이 진행됐다. 10,000명 서명을 목표로 한 해당 서명은 그해 11월 29일 15시 기준으로 약 16,000명이 참여했다.

화물연대 측도 격분해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파업을 포함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11월 30일 오전 이 사건에 대한 항의로 네티즌들 사이에서 SK그룹 제품 불매운동, 네이트온 탈퇴 운동 등이 시작되었다.

30일 오후 M&M 측이 유홍준을 향해 사실왜곡을 이유로 법적 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관련 기사

그런데 이후 보도에 따르면 최철원의 폭력은 이게 처음이 아니었으며 이미 2006년에 층간소음에 대해 항의하려는 이웃을 야구방망이를 들고 협박하기도 하고 후에 지각했다는 이유로 임직원을 구타한 것도 모자라 사냥개를 끌고 와 여직원들에게 위협을 가했다는 과거의 상습적인 폭력적 행적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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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원 전 M&M 대표가 2010년 12월 2일 서울지방경찰청에 출두했다.

2010년 12월 4일 LA타임스가 이 사건을 보도하면서 '한국 자본가의 타락한 한 표본'이라고 했다.

결국 2010년 12월 7일에 경찰이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맷값' 2000만 원을 회사 돈으로 썼다는 의혹도 있어 횡령 혐의까지 추가될 수도 있다고 한다. 피해자가 당시 받은 수표를 그대로 보관하고 있어서 추적도 쉽다고 한다.

2011년 1월 13일 검찰은 최철원에게 징역 3년 및 야구방망이 몰수형(...)을 구형했다.기사 원래 판결에서 범행도구를 몰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웃겨서 화제가 되었다.

판사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검찰에 2000만 원이 합의금이라고 주장한 사실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추정된다...만 항소심 재판부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선고하였다.

결국 옥살이를 하지 않게 되었다. 야구방망이로 사람을 구타해놓고도 옥살이를 하지 않는 것에 시민들은 분노했다. 게다가 실형을 주지 않는 이유는 피해자와 합의했고 이미 충분한 사회적 지탄을 받았기 때문에라고 했다.

기사가 나온 후 "이것은 와전된 소문으로 실제로 판사가 한 말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으로서 충분한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는 말이란 요지의 기사가 떴으나 서울경제 이수민 기자는 이 기사를 반박하며 최초 판결문에 관한 기사는 오보가 아니라는 트윗을 했다. 현장에 들어간 기자들 4명이 공통적으로 들었고 확인 후에 작성한 기사라고 했다. 판결문이 달라진 것은 판결문이 이틀 후에 공개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링크 삭제 사실 최초에 판사가 한 발언이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은 이상 사실관계를 밝히기는 매우 곤란하므로 어느 쪽의 주장이 옳은지보다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기 전에는 뭐라고 평하기 애매하다.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 비록 국민들의 정서상 충분한 처벌은 아닐지 몰라도 법리상 크게 문제가 있는 판결은 아니다. 최철원에게 적용된 혐의는 폭력행위처벌법 상의 집단 흉기 등 상해죄로, 사실관계가 인정된 이상 합의가 없었다면 벌금형도 없고 유기징역 3년 이상을 받는 중죄이나 피해자와 합의를 본 덕분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었다. 다만 이 '합의를 했으니까'라는 것도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것이며 최철원의 '재벌 2세'라는 입장을 생각했을 때 합의를 받아냈다는 것은 피해자 유홍준이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결국 최철원의 폭력 행위에 대해 굴복한 셈이 된다. 표면적인 합의 사실에만 주목하고 사건의 실제 권력 관계나 그에 따른 피해는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안일한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한술 더 떠서 검찰은 폭행의 피해자 유홍준에 대해서도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하여 논란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 유씨를 기소한 것은 당시 서울중앙지검 형사 4부의 박철 부장검사로, 후술하겠지만 이 사람은 검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건 이후 가해자 측이었던 SK에 입사해 요직을 거쳐 출세길을 달렸다.

3. 사건 담당 검사 박철의 이후 행적[편집]

피해자 유홍준을 업무방해라는 명분으로 불구속 기소하여 비판을 받은 부장검사 박철은 사건 처리 직후 사표를 내고 미국으로 갔다가 돌아와 SK케미칼 법무실장(상무) 겸 SK가스 윤리법무담당으로 선임되었다.기사 2016년에는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 윤리경영부문장 겸 SK가스 윤리경영부문장(부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SK그룹에서 출세가도를 달렸는데 누가 보아도 사건 처리에 대한 대가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정황이라 크게 논란이 되었다.


그러나 2019년 3월 14일 한국을 뒤흔들었던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당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SK케미칼의 부사장으로서 증거인멸 및 은닉의 우려가 인정되어 구속되었다.#

2019년 4월 해당 사건의 재판이 시작되었다. 1, 2

2022년 4월 결심 공판에서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 # 그러나 1심에서 3년이 줄어든 징역 2년으로 형이 확정되자 이에 불복해 항소했고 2심이 진행중이다.|#

4. 대한체육회의 최철원 인준 거부[편집]

워낙 사회 전체적으로 크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사건인지라 사건 이후에도 최철원의 평판과 행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2021년 2월, 배구계 학교폭력 사건이 터지고 체육계의 만연한 폭력 행위에 대한 지탄이 커지자 대한체육회대한아이스하키협회의 회장으로 당선된 최철원의 인준을 거부하였는데 사유는 사회적 물의로 위의 폭행 사건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배구계 학교폭력 등의 사건으로 인해 사회 전반적으로 폭력에 대한 거부감과 경계 의식이 커진 세태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2] 최철원은 선거에서 압도적인 득표를 얻었지만 그동안 대한체육회가 인준을 미적거렸던 모습을 보면 이 사태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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