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인, 한 정치인의 신념이 빛을 발한, 후다이의 기적

 

3. 후다이의 기적[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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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 직후의 후다이 수문(출처)

마을과 해안까지의 거리가 1.7 km밖에 안 됐지만 마을로 들어오는 강 하구에 위치한 후다이 수문(普代水門)이 쓰나미를 거의 막아 주었기 때문에 피해가 없다시피 했다. 이 수문은 1984년에 당시 촌장 와무라 고토쿠(和村幸得) 주도 아래 완공되었다.
와무라 고토쿠
和村 幸得 / Kōtoku Wam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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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사망
1997년 10월 18일 (향년 88세)
학력
모리오카 중학교 (졸업)
게이오대 (중퇴)
직업
바로 이 사람이다. 1909년 2월 21일생. 출처 모리오카 중학교 졸업, 게이오대 중퇴.

와무라 촌장은 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어느정도 안정화 된 뒤 1947년에 당선되어 1987년까지 40년을 재임한 10선의 촌장이었다. 재임 막바지, 마을에서는 쓰나미 피해를 두 번[2] 입은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후다이가와(普代川) 하구에 수문을 세우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촌장은 당시 논의되던 10m로는 부족하다며, 14미터짜리 쓰나미는 있었으니까 15.5m로 건설하자고 주장했다.

촌장이 재임하던 1967년에 5837만 엔을 들여 같은 높이로 건설된 오타나베 방조제(太田名部 防潮堤)도 '언제 올지 모르는 쓰나미 때문에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했다.'고 욕을 먹는 마당에, 똑같은 높이에 폭 두배짜리를 또 짓겠다는 촌장의 의견에 마을 사람들은 '차라리 마을을 옮기는 게 더 싸게 먹히겠다.'고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나 와무라 촌장은 "쓰나미에 두 번이나 당했지만 세 번 당할 수는 없다." 하며 공사를 강행했고, 결국 35억 6천만 엔(약 158억 원)[3]을 들여 수문을 완공했다.

그는 1987년 4월 30일 퇴임했는데, 퇴임식에서
村民のためと確信をもって始めた仕事は反対があっても説得をしてやり遂げてください。最後には理解してもらえる。これが私の置き土産です。

촌민들을 위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반대가 있어도 설득해서 이뤄주십시오. 마지막에는 이해해 줄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남기고 가는 선물입니다.
라고 말했다. 물론 퇴임 후에도 예산낭비라는 욕만 먹다가 1997년에 88세로 별세했다.

그러나 14년 뒤, 그의 고집이 정말로 마을과 주민들의 목숨을 구했다.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나고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자마자 원격 조정으로 수문을 닫았고, 도중에 정전되자 마을 소방대원들이 직접 수동으로 수문을 닫아 방비에 들어갔는데, 인명피해는 수문 바깥에 어선 보러 갔다가 실종된 단 1명뿐이었고, 가옥 피해는 전무했다. 이를 두고 일본 언론에서는 후다이의 기적(普代の奇跡)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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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이 메이지 산리쿠 지진의 쓰나미 피해 영역, 푸른색이 도호쿠 대지진의 쓰나미 피해 영역이다. 가운데 위쪽에 붉은 선으로 표시된 것이 후다이 수문. 사실 그 높이로 수문을 만들었는데도 쓰나미의 최고 높이는 23.6m로 수문보다 8.1m나 높아서 침수를 완전히 막는 데는 실패했으나, 수문을 넘어온 물의 양이 많지 않아서 끝내 마을까지는 닿지 않았다. 따라서 수문 안쪽의 재산 피해는 거의 없었다.

추가로, 지도 오른편의 붉은 선도 같은 촌장이 지은 오타나베 방조제인데, 이쪽은 심지어 쓰나미를 완벽히 막아냈다. 15.5미터로 같은 높이인데도 이렇게 차이가 난 이유는, 오타나베 쪽은 항구라서 방파제가 겹겹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방파제에 막혀 쓰나미 높이가 낮아지면서 방파제에 다다를 때는 수위가 11.8m 정도였기 때문이다. 반면 후다이는 강 하구에 설치된 수문이라 수문 바깥은 뻥 뚫려 있었기 때문에 쓰나미가 그대로 직격한 것이다.

재산 피해는 수문 바로 아래에 있는 다리가 파손된 것, 마을에 있던 어선 600척 대부분이 파손되어 40척 정도만 남을 정도였지만 인명은 돈으로 따질 수 없다. 만약 원래 예정대로 10m 높이로 수문을 건설했다면 수문을 넘어온 쓰나미 탓에 사상자는 최소한 수백 명에 재산피해도 훨씬 거대했을 터이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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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경험한 마을 사람들이 와무라 고토쿠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 오른쪽 뒤로 수문이 보인다.

이 문서가 작성되기 전에 이 내용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2023년 현재도 15.5미터는 도호쿠 지역에서 제일 높은 방조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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