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청교도 사회의 위선과 마녀사냥을 비판했던 너새니얼 호손

 

1. 개요[편집]

19세기 미국의 소설가. 대표작으로는 '주홍 글자'가 있다.

2. 생애[편집]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호손의 아버지가 그가 7살일 때 병으로 사망한 후 그는 외삼촌에게 맡겨졌고 보든 칼리지에 입학했다. 그리고 보든 칼리지에서 후에 미국의 제14대 대통령이 되는 프랭클린 피어스와 친구가 된다.

1825년에 대학교를 졸업한 후 호손은 어머니 집에서 살며 문학 활동을 했다. 1828년에 익명으로 첫 작품인 '팬쇼'를 출판했지만 자신은 이 작품을 부끄럽게 여겼는지 출판본들을 모두 회수해서 폐기했다.

1842년 자신보다 5-6살 어린 소피아 피바디와 결혼했다. 당대 시각으로 보면 둘다 상당히 늦은 나이에 한 결혼이었다. 가정이 생긴 호손은 펜을 내려놓고 세무서 직원으로 일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와중에 호손은 세무서에서 해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내는 그동안 가정을 위해 힘썼으니 이 기회에 쓰고 싶어하던 글을 써보라며 호손을 격려했다. 감동받은 호손은 작품 활동에 매진하여 1850년 엄격한 청교도 사회의 모습과 17세기 미국 청교도들의 위선을 묘사한 '주홍 글자'를 발표했다.

당시 청교도들은 주민들을 마녀로 몰아가 고문하거나 처형하곤 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건인 세일럼 마녀 재판의 판사였던 존 호손(John Hathorne)이 바로 호손의 고조부였다. 호손의 원래 성 또한 Hathorne이었지만, 선을 긋고 싶어서 w를 추가하여 Hawthorne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조상이 탄압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죄의식을 느낀 호손은 이러한 배경을 '주홍 글자', '일곱 박공의 집' 등 자신의 작품에 투영시켜 청교도 정신의 위선적이고 편협한 면모를 비판했다. '일곱 박공의 집'에서 판사인 핀천은 자신이 갖고 싶어하던 땅의 소유주를 마녀 재판에 회부시켜 화형 선고를 내리고 자신이 땅을 차지하지만 핀천이 급사하고 그의 가문은 저주를 받아 몰락한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기독교 사회에 대한 회의감이 돋보인다. 호손의 작품들은 청교도 사회를 비판하고,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그린다. 더 나아가 인간의 죄를 탐구하였다.

문학적으로 보면, 호손은 미국 주류 청교도 사회에서 벗어난 글을 쓰는 것의 시초 격 되는 인물이다.

모더니즘과 페미니스트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 소설의 주홍 글자는 지금도 페미니즘에 의거한 해석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1853년 대통령으로 당선된 친구 피어스에 의해 영국 리버풀의 영사로 임명되어 영국에서 1857년까지 영사직을 맡았다. 영사직을 그만둔 후 호손은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견문을 쌓았다. 그러다 1860년에 귀국하여 이탈리아 여행을 바탕으로 쓴 '대리석 목양신'을 마지막으로 발표하고 여생을 보내다가 1864년에 병으로 사망했다. 사망 당시 그는 절친인 프랭클린 피어스와 함께 요양 목적으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호손은 안타깝게도 여행을 하던 중 여행지에서 사망하게 되었고, 절친한 친구를 잃고 크게 상심한 피어스는 결국 술에 절어 살다가 5년 뒤인 1869년에 쓸쓸히 생을 마쳤다.

3.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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