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땀을 쥐게 하는 흥미진진한 글 - “더 있다간 생체실험으로 죽겠구나” 사선 넘어온 북한군[주성하의 북에서 온 이웃]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676357
북한군 병사의 탈출기 〈1〉
그는 여단 병원에서 도망쳤다. 더 있으면 시체로 나와야 할 것 같았다. 누가 봐도 뼈밖에 안 남은 몰골의 강민국은 9년 넘게 군에서 복무해 이제 제대까지 1년도 채 남지 않은 고참 병사였다. 하지만 남은 1년을 버틸 수 없었다.
하루에 3시간밖에 자지 못하고 쉬는 날도 없이 공사판에서 버티던 강 씨는, 열흘 전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실려 왔다. 하지만 병원에서 딱히 해주는 것은 없었다.
엊그제 군의관이 들어왔다. 링거라도 맞아야 한다고 했다. 술병, 맥주병 상관없이 끓는 물에 넣었다가 꺼내면 링거 병이 된다. 강 씨에게 온 병은 마침 투명한 병이었는데, 주사액을 본 강 씨는 경악했다. 병 안에 숱한 부유물들이 둥둥 떠다녔다. 저 이물질들이 혈관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싫습니다. 놓지 마세요.” 저항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는 강제로 링거를 맞았다. 그날 저녁부터 고열이 심하게 나기 시작했다.
다음날 군의관이 다시 들어왔다. 또 링거를 들고 왔다. 그리곤 “오늘은 좀 더 정제를 잘해서 이물질이 거의 없어. 이거라도 맞지 않으면 넌 죽어”라고 말해주었다. 전날 링거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또 맞았다.
“내가 여기에 있다간 생체실험 대상이 돼서 죽겠구나.”
강 씨는 2년 전에도 다리에 종기가 생겨 군단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한 달 동안 병원에서 33명의 군인이 죽어 나갔다. 모기에게 물렸다가 부어서 죽은 병사, 자창을 치료 못 해 팅팅 부어 죽은 병사 등등 병명은 각자 달랐지만, 원인은 하나뿐이었다. 항생제가 없기 때문이다.
집에 전화해서 항생제를 살 돈을 전달받은 병사는 장마당에서 항생제를 구입해 맞을 수 있었다. 그때 강 씨도 집에서 보내준 돈으로 항생제를 사서 나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집이 갑자기 가난해져서 돈을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2년 전 숱한 군인들이 병원에서 죽는 것을 본 트라우마가 머릿속에 그대로 있는 상황에서, 이번엔 자신이 죽을 차례가 온 것이다. 병원에서 놔주는 링거가 뭔 진 몰라도, 별 효과가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살려면 도망쳐야 했다. 집에 가봐야 치료할 능력도 되지 않고, 또 탈영병이라고 처벌받을 것이 뻔했다.
“그래. 이판사판. 남조선밖엔 갈 곳이 없구나. 가다 죽으나, 있다가 죽으나 뭔 차이가 있겠는가.”
그때는 몰랐다. 삼엄한 감시의 눈을 피해 5m 높이의 장벽, 고압선 3개가 포함된 7개의 철조망, 교묘하게 숨겨진 감지선 하나를 넘고, 그리고 또 지뢰밭을 통과해야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2024년 8월, 그는 자유를 향해 떠났다.
● 고성으로 가는 길
군사분계선으로 가려니 일단 강원도 고성까지 가야 했다. 병원에서 제일 가까운 친척 집에 찾아가 북한 돈 3만 원을 빌렸다. 쌀 3~4㎏을 살 수 있는 액수였다.
길에서 남쪽으로 가는 화물자동차를 탔다. 북한엔 돈을 받고 사람을 태워주는 버스 역할을 하는 ‘써비차’들이 있다. 고성까지 2만 원을 내라고 했다. 군인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차를 타도 끝이 아니었다. 고성은 최전방 지역이라 특별 통행증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화물차에 오른 강 씨는 주변을 관찰했다. 허름한 군복을 입은 대위가 보였다.
군복 꼴을 보니 가난한 병종의 군관임이 틀림없었다. 이런 사람은 적은 뇌물에도 넘어간다. 강 씨는 대위에게 다가가 차고 있던 전자시계를 내밀며 “고성에 일 보러 가는데 여행증이 없으니 도와 달라”고 했다. 그 시계 구입가는 북한 돈 2만 원. 쌀 3~4㎏ 정도 살 수 있는 액수다. 군관이 시계를 훑어보더니 머리를 끄덕였다.
단속초소가 나타났다. 여행증 검열을 하려 적재함에 오른 군인에게 군관은 자신의 공무 여권을 보여주며 강 씨는 자기가 데리고 가는 부대원이라고 소개했다. 북한에서 군관들이 스폰서 역할을 할 대원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은 너무 일상적인 일이다.
초소 군인은 별 시비를 걸지 않고 지나갔다. 이들도 뇌물 받는 데선 프로들이라, 사람을 보자마자 견적을 낸다. 돈이 나올만한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야지, 가난한 군관을 건드려봐야 뇌물도 없고, 입만 아프다는 것을 안다.
무사히 고성에 도착한 강 씨는 장마당부터 찾아갔다. 이제부터 한국까지 가려면 먹을 것이 있어야 했다. 수중에 남은 1만 원으로 북한에서 만든 과자 1㎏과 담배 두 갑을 살 수 있었다. 인근 뒷산에 올라갔다. 밤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에겐 고성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저기 보이는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남조선이란 정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로로는 갈 수가 없으니, 도로가 보이는 산비탈을 타고 내려갈 생각이었다.
날이 너무 더워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금방 갈증이 찾아왔다. 하지만 생사가 결정되는 출발선에 서고 보니 육체적 고통 정도는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 “탈영병 잡으러 갑니다.”
2024년 8월 17일 밤. 어두워지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로가 보이는 산비탈을 따라 걸으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걸어보니 너무 힘들었다.
금강산은 사실상 돌산이다. 어둠 속에서 바위를 넘고 또 넘으며 가다 보니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이렇게 가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그는 도로 옆으로 뻗은 철길로 내려왔다. 아직 분계선까진 많이 남아있으니, 여기엔 경비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쯤 걸어갔을 때 갑자기 앞에 무장을 한 군인이 전짓불을 켜며 불쑥 나타났다. 그는 부소대장급인 상사 견장을 단 강 씨를 보더니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위기의 순간이 되니 거짓말이 술술 나왔다.
“어, 나 저기 저 동네에 있는 모 부대 부소대장인데, 저기 앞에 민경 초소에 탈영병 잡으러 가. 우리 소대원의 친구가 민경 초소에 있는데, 거기 놀러 간다고 하고 나타나지 않았어. 낼 판정 받아야 하는데, 너무 급해서 새벽에 지휘관들이 찾으려 나설 수밖에 없어.”
새벽에 탈영병을 잡으러 간다는 말은 설득력이 전혀 없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번엔 군인이 “배낭 좀 봅시다”라고 했다. 배낭 안의 손전등을 봤다면, 새벽에 손전등도 켜지 않고 가는 그를 의심이라도 할 법하지만 이 군인은 처음부터 과자 봉투와 담배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담배 한 갑을 꺼내 주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전짓불 때문인지 저기서 한 명이 또 다가왔다. 남은 담배 한 갑을 보더니 또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이때 또 한 명이 나타났다. 이번엔 순찰을 도는 중대장이었다. 강 씨는 배낭을 발로 차 옆으로 밀어놓았다. 손전지가 발견되면 재미없을 것 같았다.
중대장이 또 누구냐 물어서 강 씨는 아까 했던 거짓말을 다시 되풀이했다. 갑자기 담배를 받은 군인이 나서서 열심히 강 씨 편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담배를 받았다는 것을 말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중대장이 “어떻게 생긴 병사냐”고 물어서 학교 다닐 때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열심히 설명했다.
중대장이 그의 설명을 들으며 자주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의 의미를 강 씨는 안다. 북한군 부대들엔 워낙 탈영병들이 많아서, 지휘관들에겐 탈영병을 잡으러 다니는 일이 중요한 임무였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찾아다녀야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던지 중대장은 갑자기 강 씨를 동정하기 시작했다.
중대 본부로 끌려갈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중대장은 “아무리 급해도 여긴 밤에 돌아다니면 안 되는 곳”이라며 돌아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인상착의를 잘 들었으니 혹시 그 탈영병이 여기로 지나가면 잡아서 보내주겠다”라고도 했다. 천운이었다. 강 씨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돌아서서 왔던 길로 다시 걸었다.
그들이 안 보이게 되자 그는 이번엔 도로를 건너 반대쪽으로 갔다. 밤에 보니 도로 좌측은 논이어서 거기로 에돌아가면 될 듯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거기는 논이 아니라 갈대숲이었고, 깊은 수렁이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쯤 갔을까. 갑자기 몸이 쑥 빠지더니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허우적거릴수록 그의 몸은 점점 더 수렁에 들어가 어느새 목까지 잠겼다.
“이대로 죽는구나” 싶은 절망 속에서도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보려고 열심히 손을 휘저었다. 연꽃인지, 갈대인지 모를 뿌리가 손에 잡혔다. 하나를 잡고 끌어당기니 뽑혔다. 이번엔 여러 대를 손으로 모아 조심조심 끌어당겼다. 더 이상 몸이 빠지지 않았다. 뿌리가 뽑히면 그도 죽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조금씩 끌어당기기를 한 시간 넘게 반복한 끝에 겨우 몸을 뽑아낼 수 있었다. 수렁에서 나온 그는 다시 도로를 건너 산으로 올라갔다.
온몸이 젖어 기진맥진한 그는 산에 올라가 돌 틈에 몸을 숨기고 쓰러졌다. 어차피 곧 날이 밝을 것이니 여기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밤에 또 움직일 계획이었다. 배낭을 꺼내보니 과자가 죽이 돼 먹을 수 없게 됐다. 이제 식량마저 떨어진 것이다.
● 또다시 마주친 잠복초소
2024년 8월 18일. 동해에서 해가 떠올랐다. 이제 따뜻한 햇살에 옷과 몸을 말리고 잠을 자면 됐다. 해가 떠오른 지 30분쯤 지나 잠이 들까 했는데 갑자기 말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그가 숨은 바위틈 바로 30m 위에 북한군 잠복초소가 있었다. 두 명의 군인이 잠복 초소에서 나오더니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들은 잠복초소에 있는 이불을 꺼내고, 겉옷을 벗어 햇볕에 말리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삐쭉 섰다. 밤에 그가 조금만 더 올라갔다면, 올라오다가 소리만 냈다면, 여기가 아닌 저기에 자리를 잡았다면…. 그가 그 돌 틈에서 주저앉은 것은 천운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1분 1초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잠을 자다가 소리를 낼까 봐 그날 낮엔 하루 종일 쥐 죽은 듯이 돌 틈에 박혀 있었다.
그렇게 낮 동안 잠을 자지 못하고 지내다가 다시 밤이 되자 산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낮에 산 아래를 보니 남쪽으로 연결된 도로가 보였다. 도로는 관리가 되지 않은지 꽤 오래돼, 양옆으로 풀이 키 높이로 무성했다. 도로에 바짝 붙어 풀을 헤치며 가기 시작했다. 밤이지만, 둥근달이 떠서 사방이 잘 보였다.
500m쯤 갔을 때, 갑자기 앞에 시꺼먼 물체가 나타나 깜짝 놀랐다. 야간 잠복을 나와 잠을 자는 군인이었다. 9시도 채 되지 않았지만, 낮에 농사니 뭐니 고역을 치르며 기진맥진해 야간 근무에 나오자마자 곯아떨어진 것이 뻔했다. 잠을 자던 군인도 인기척을 듣고 벌떡 일어났다. 여기서 주저하면 끝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견장을 보니 입대한 지 3년쯤 돼 보이는 군인이었다. 20m쯤 떨어져 자는 병사가 한 명 더 보였다. 9년의 ‘짬밥’이 본능적으로 나왔다.
“야, 어느 부대야.” 초저녁에 갑자기 웬 상사가 나타나 호통 치니 상대가 움츠러들었다.
“누구십니까.” “나 저 앞에 민경 초소 부소대장이야.”
호통을 치면서 상대의 복장을 보니 상의는 얼룩무늬 군복을 입었지만, 모자와 하의는 낡은 누런 군복을 입었다. 이건 복장 위반 사항이다. 게다가 무기도 없다. 근무에 나와 잘 때 누가 훔쳐 갈까 봐 총을 근처에 숨겨두는 병사들이 많다. 상대가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강 씨는 몰아붙였다.
“너 근무에 나와 이리 자는 거 분대장이 알아? 그리고 복장이 이게 뭐야? 총은 또 어디 가고. 너희 부대 이거 안 되겠네. 조국은 널 믿고 있는데, 넌 여기서 잠이 와?”
풀이 죽은 병사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부소대장 동지, 여긴 밤에 못 갑니다. 돌아가십시오.”
강 씨는 병사를 한 번 더 째려보고 뒤로 돌아 걸었다. 떨어져 자고 있던 한 명은 그때까지 일어나지 않고 계속 잠을 자고 있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얼마쯤 돌아오다가 다시 산에 올랐다.
병원에서 떠날 때부터 강 씨는 하늘을 향해 수없이 기도했다. 종교가 뭔지 전혀 모르지만, 절망적인 상황이 되니 하늘을 보며 “살려 달라. 무사히 남조선에 가게 해 달라”는 기도가 계속 나왔다. 어쩌면 그 기도가 통했을까. 밤에 두 번 단속됐는데 모두 빠져나오는 기적이 일어났다. 산에 올라가니 드디어 멀리 분계선의 철책 불빛이 보였다. 여기서 하루 더 머물며 정찰해야 하겠다고 판단했다.
● 장벽과 고압 철조망
2024년 8월 19일. 몸을 숨기고 산 아래 도로를 감시했다. 하루 종일 도로로 차 한 대가 지나갔을 뿐 조용했다. 멀리 해변에서 시작돼 산을 타고 구불구불 올라간 콘크리트 장벽이 보였다.
장벽을 어떻게 넘을지 생각해 봤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장벽이 있다고 돌아갈 순 없었다. 어차피 앞을 막아서는 것은 다 넘어가리라 결심하고 떠난 몸이 아닌가.
어둠이 깔리자, 그는 낮에 봐뒀던 코스를 타고 다시 움직였다. 한참을 가니 드디어 장벽이 나타났다. 막상 앞에 가보니 높이가 5m는 돼 보였다. 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공사 잔해들이 주변에 널려있었다. 도무지 넘을 방법이 없어 장벽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참 내려갔는데, 장벽 아래에 물이 빠지도록 만든 배수구가 보였다. 배수구에 들어가 보니 쇠살창이 설치돼 있었다. 혹시나 해서 시도했는데, 머리가 살창 사이로 들어갔다. 머리가 들어가면 몸도 빠질 수 있을 것이다.
한참을 낑낑거리며 드디어 쇠살창을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가 당시 몸에 뼈만 남아 45㎏도 채 되지 않는 상태가 가능한 일이었다. 조금만 살이 쪄도 불가능했을 일이다. 다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배수구를 지나 장벽의 반대쪽에 도착하니 두 사람 정도 나란히 걸을 정도 너비의 순찰로가 나오고, 순찰로 옆에 고압 철조망이 두 개 있었다. 1만 볼트의 전기가 흐른다고 해서 악명이 자자한 ‘만선’ 철조망이었다. 북에서 분계선에 전기철조망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군인은 없는지라, 강 씨도 떠날 때 이미 각오했던 일이다.
주변에서 나뭇가지를 찾아 철조망에 대봤더니, 전압이 어찌나 센지 마른 나뭇가지를 통해서도 손바닥에 찌릿하고 전기가 흘렀다. 땅에서 맨 아래 전기선까지 높이는 10㎝ 정도였다.
군에서 배운 대로 강 씨는 나뭇가지 두 개를 이용해 전기선을 20㎝ 정도 들어 올린 뒤, 그 아래 땅을 파고 조심스럽게 통과했다. 1.5m 앞에 있는 두 번째 철조망도 같은 방법으로 통과했다.
철조망 사이엔 모래를 깔아놓은 ‘흔적선’이 있었다. 발각되면 안 되기 때문에 첫 번째 철조망을 통과한 뒤 구멍을 메우고, 지나온 흔적도 손으로 잘 다듬어 놓고, 두 번째 철조망 구멍도 또 메웠다.
전기철조망 두 개를 통과한 뒤 마지막 철책 지역까지 향해 냅다 달렸다. 전기철조망과 민경이 관리하는 최후의 철책까지 거리는 4㎞ 정도 떨어져 있다.
마지막 철책은 전등들이 켜져 있어 불빛을 보며 가면 됐다. 하지만 중간 지역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이라 그의 키를 넘는 나무와 풀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동남아 열대 우림과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전등이 보이지 않아서 한참 가다가 나무가 나타나면 타고 올라가 방향을 재확인했다. 나무에 올라가 확인하는 것을 열 번쯤 반복하니 드디어 철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풀을 헤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은 목이 마른 것이었다. 8월의 고온 속에서 하루 넘게 물을 먹지 못했다. 가끔 물웅덩이도 나타났다. 하지만 물이 휘발유가 덮인 것처럼 번들번들했다. 침을 뱉어봤더니 퍼지지 않았다. 그런 물은 썩은 물이라 마실 수 없었다.
● 5중 철조망과 지뢰밭
그가 도착한 마지막 철책 지역은 약 1m 간격으로 철조망이 다섯 겹 설치돼 있었다. 전등도 많이 달아서 주변이 환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약 5m 높이의 감시탑이 있었는데, 거기에 군인이 올라가 아래를 감시했다.
강 씨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감시탑으로 기어갔다. 감시탑 바로 아래엔 그늘이 져 있었다. 밝은 불빛을 보는 군인은 발아래 어두운 지역을 잘 보지 못할 것이라 타산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격언에 목숨을 맡겨 보기로 한 것이다.
감시탑 위의 군인은 한국 노래를 흥얼흥얼 부르고 있었다. 강 씨도 그 노래를 안다.
“친구여. 꿈속에서 만날까~” 노랫소리가 높아지면 강 씨도 슬금슬금 움직였다.
드디어 첫 번째 철조망에 도착했다. 여기 철조망은 전기철조망보다 더 빡빡했다. 땅과 마지막 선의 높이는 불과 5㎝ 정도였다. 나무꼬챙이를 받쳐 놓고 손에 피가 나도록 땅을 팠다. 통과했다. 지나온 땅은 손으로 흔적이 남지 않게 다시 고르게 했다. 두 번째 철조망도 같은 방법으로 통과했다.
“괜스레 힘든 날, 겁 없이 전화해.” 두서없이 흘러나오던 노랫소리가 뚝 끊긴다. 강 씨도 숨을 죽이고 엎드려 있었다. 이번엔 중얼중얼~. 그러다가 콧노래. 다시 한국 노래….
세 번째 철조망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번 철조망은 땅을 팔 수가 없었다. 땅이 있어야 할 곳에 유리와 못을 잔뜩 박은 콘크리트 블록들이 깔려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위기를 헤치고 왔지만, 이번은 도무지 통과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돌아갈 수도 없었다. 철조망 중간에 갇힌 강 씨는 “여기서 죽는구나”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또 앞으로 기다릴 삶을 떠올려도, 그때보다 더 절망스러운 일은 없을 듯하다. 그는 미친 듯이 땅을 팠다. 블록이 얼마나 깊은지는 몰라도 그래도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쳐야 했다.
기적은 포기하지 않는 자에게 일어나는 법이다. 블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블록은 통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5㎝·40㎝·50㎝ 되는 블록을 땅에 박은 것이었다.
조심스럽게 블록을 겨우 빼냈는데, 교묘한 복병이 숨겨져 있었다. 블록 바로 앞에 땅 위 5㎝ 높이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실선이 설치돼 있었다. 자칫 발견하지 못했을 수 있었지만 천만다행으로 그의 눈에 보였다.
블록을 뽑은 구멍으로 빠져나가면 실선을 건드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선이 전기선인지도 알 수 없어 뚫어지게 관찰하니 알루미늄선이 아니라 철선이었다. 그러면 전기선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걸 건드리면 감시탑에 신호가 전달될 것이 뻔했다.
철선을 넘어 네 번째 철조망에 도착했다. 이 철조망엔 전기가 흐르고 있었다. 앞서 고압 철조망을 두 개나 넘은 경험이 있기에, 이것도 나뭇가지로 들어 올리고 땅을 파서 넘었다.
다섯 번째 철조망은 2.5m의 가시철조망이었는데, 위에 원형 철조망이 타래로 감겨 있었다.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위로 기어 통과하려고 철조망을 쥐고 힘을 주는 순간 삑~하는 소리가 났다. 철조망을 고정한 기둥과 쇠줄이 마찰하면서 나는 소리였다.
다행히 힘을 많이 주지 않았던 데다, 한국 노래에 심취한 병사의 취향 덕분에 발각되지 않았다. 그나마 제일 구멍이 큰 틈을 찾아 몸을 밀어 넣었다. 장벽의 쇠살창도 여윈 몸 덕분에 넘었는데, 이것도 머리만 들어가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성공했다. 대신 철조망의 가시에 군복과 살이 수없이 뜯겼다.
마침내 그는 보초병의 발밑에서 다섯 개의 철조망을 모두 벗어났다. 아직도 한국 노래를 흥얼거리는 보초병을 향해 속으로 외쳤다.
“그래, 너는 여기서 한국 노래나 불러라. 난 한국에 간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9번의 ‘데스게임’을 넘어온 그에게 남은 마지막 미션은 지뢰밭 통과였다.
(23일 공개될 2부에서 이어집니다.)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