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발상으로 시대를 바꾼 정주영 - 푸른 잔디를 구하라는 미군 측 요구에 UN묘지에서 새파랗게 자라는 푸른 보리를 심은 일화, 서산 간척지 사업에서 방조제로 급류를 막기 어렵자 폐유조선을 활용해 '정주영 공법'을 개발한 일화, 그리고 비싼 콘트리트댐 대신 값싼 자갈과 모래로 춘천댐을 만든 일화; 폭락한 주식 중 주가수익 지표와 주가 현금흐름 지표, 주가순자산비율, 주가배당비율 4가지가 합리적인 상황에 놓인 튼튼한 회사에 투자해 대박난 데이비드 드레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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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사회에서 IT 기술을 사용하는 현대사회까지
과거에 상상할 수 없던 것들이 눈앞에 현실로 나타나기까지 인류는 엄청난 발전을 이륙했습니다. 사회와 과학이 이렇게 발전하기에는 많은 사람의 노력과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남들이 당연시하는 것을 의심하고, 다르게 보았습니다. 뉴턴은 자유 낙하하는 사과를 보고, 의문을 가지고 다르게 생각했고, 결국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리게 됩니다. 갈릴레오는 수평선 너머로 배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경제에서도 의심하고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애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을 통해 이기심에 대한 편견을 깼고, 케인즈는 저축의 역설을 통해 고정관념을 깨뜨렸습니다. 탈레스가 오늘날 과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것은 그의 생각이 옳았기 때문이 아니라, 기존상식을 거부한 그의 도전정신 때문입니다.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의심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통해 시대를 이끌었던 역발상 도전자들! 오늘은 역발상으로 사업의 난관을 헤쳐갔던 사람과, 역발상으로 투자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현대그룹 왕회장 정주영]

故 정주영 회장은 현대그룹의 창업자이자 근면함과 성실함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유명합니다. 정주영 회장은 설문조사에서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뽑힌 바 있고, 대학생들이 닮고 싶은 인물로도 뽑혔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일화는 매우 많지만, 그중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바꿨던 그의 역발상 일화를 알아보겠습니다. 겨울에 푸른 잔디를 구해라 1952년 12월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 6·25 전쟁의 설움이 얼마 끝나지도 않은 때, 아이젠하워 전 미국대통령이 부산 유엔군 묘지를 방문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묘지를 푸른 잔디로 꾸며달라'고 요구했습니다. 12월에 잔디를 구할 길이 없었던 정주영 회장은 '풀만 파랗게 나 있으면 되느냐'고 반문한 뒤, 보리밭에서 새파랗게 자라는 보리를 수십 트럭 옮겨 심어 묘지를 녹색 바다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미군은 감쪽같이 한겨울에 푸른빛으로 변한 UN군 묘지를 보고 감탄에 빠졌고, 정 회장의 역발상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이후 미군 공사는 현대건설의 주 무대가 됐습니다. 부정을 긍정으로 만든 역발상 1976년 한국은 오일쇼크를 중동특수로 180도 전환하는 신화를 쓰게 됩니다.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9억 4천만 불 규모의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공사를 수주하게 됩니다. 그때 당시, 정주영 회장을 보는 시선은 걱정과 우려가 섞여 있었습니다. 여기서 정주영 회장의 역발상을 볼 수 있는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습니다. 현대건설 내부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물었습니다. 중동에 가서 더운데 어떻게 일합니까? "한국은 건설하려면 비가 와서 맨날 못하는데 비 안 와서 얼마나 좋으냐" "건설하려면 모래하고 자갈하고 시멘트가 있어야 하는데 거기 가면 모래, 자갈은 많지 않느냐 시멘트만 우리나라에서 가져가면 되지 않느냐" 중동에는 물이 없지 않습니까? "바닷물 많지 않느냐 그것을 담수로 만들면 되지" 그리고, 그곳은 매우 덥습니다. "그럼 밤에 하면 되지" 이러한 당당하고 거침없는 답변은 정주영 회장의 다른 사람 생각하고 남들과는 다르게 생각하려 했던 역발상을 보여주는 자세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공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건설업에서 가장 우선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재의 운송입니다. 주베일 공사에서는 공사 계약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물자를 제때에 투입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공사 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철 구조물 전부를 울산에서 제작해 해상으로 운반하기로 합니다. 그것도 뗏목 같은 바지선에 엄청난 무게에 달하는 구조물을 올리고, 터그보트로 끌고 온다는 것은 상식 밖의 얘기였습니다. 현대건설 임원들은 놀라며 즉각적으로 반대했습니다. 울산에서 주베일까지는 1만 2000km에 달하는 긴 거리였고, 제대로 된 배도 태풍을 만나면 전복되는 판인데 콘크리트나 철강으로 된 무거운 자재를 실은 바지선은 더욱더 위험도가 컸습니다. 운항 노선 또한, 세계 최대 태풍권인 필리핀 해양을 지나 동남아 해상, 몬순 기후(열대 계절풍)의 인도양을 거쳐 걸프만까지 운항노선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자기 뜻을 관철해 해상 수송 작전을 밀고 나갔고, 마땅한 대안이 없었던 임원진들도 결국 정주영 회장의 뜻에 따르기로 합니다. 이 해상 수송 작전은, 두 번의 가벼운 사고 이외에는 큰 사고 없이 19번의 운송을 모두 마쳤습니다. 육상이 아닌 해상을 이용하여, 철 구조물을 안정적으로 옮긴 이러한 역발상을 통해 공사를 안정적으로 마칠 수 있었고,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이면서 현대의 급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이 공사로 인해, 현대건설은 이어서도 쟁쟁한 공사 수주를 받을 수 있었고 우리나라 수출 100억 불 시대에 기여하는 큰 공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정주영 공법의 탄생 1979년 시작한 서산 간척지 사업은 굴곡 많은 서해안 바다를 메워 옥토를 만들겠다는 국토개발 프로젝트였습니다. 간척지 사업은 방조제를 쌓아 바닷물을 가두고 그 물을 빼서 육지로 만드는 사업입니다. 방조제를 만들어 물을 막는 것을 물막이 공사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 방조제를 거의 다 만들어 갈 때쯤에 생겼습니다. 방조제의 길이는 6400미터였는데, 그중 마지막 남은 270미터를 쌓을 수가 없었습니다. 방조제가 좁아지자, 그 사이로 매우 빠른 급류가 흘렀는데, 그 틈으로 모래와 큰 돌을 계속 부어도 거센 물살이 모두 휩쓸어가 버렸습니다. 학계와 해외 건설사에서도 모두 불가능하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이때 정주영 회장의 역발상이 빛을 발합니다. 현대가 해체해서 고철로 팔기 위해 사들여 온 거대한 유조선으로 방조제의 틈을 막고 완성하는 건 어떨까? 정주영 회장은 주변의 우려와 상관없이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유조선을 방조제 틈 가까이 끌고 가 가라앉히자, 거센 유속을 줄어들었습니다. 그렇게 애를 먹이던 물막이 공사가 불과 이틀 만에 끝이 났고, 현대건설은 이 유조선 공법으로, 공사기간을 9개월로 단출하고 공사비도 290억 원 절감했습니다. 탄탄한 이론들에 비해 다소 허술하고 황당해 보였던, 이 유조선 공법은 '정주영 공법'이라고 불리며 해외 유명 언론지에 소개되었고, 몇몇 외국 방조제 회사들이 이 공법에 대해 문의를 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검증해볼 생각은 않고, 책 속에서만 답을 찾고 권위에만 의존한다면 창의력은 죽고 만다. 창의력이 없으면 획기적인 변화도 없어.'

[역발상 투자자, 데이비드 드레먼]

미국의 주식시장에서 역발상 투자로 가장 널리 알려진 사람은 데이비드 드레먼 입니다. 역발상 투자란 한마디로, 많은 사람이 투자를 꺼릴 때 과감하게 투자하고, 모든 사람이 투자하려고 몰려들 때 오히려 서서히 빠져나오는 투자를 말합니다. 즉, 대중에 역행하여 주식시장을 이기는 투자 전략을 말합니다. 데이비드 드레먼은 투자심리를 공부하고, 주식시장이 투자자들의 심리상태에 따라 매우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파악했습니다. 특히, 사람들이 좋은 뉴스보다 나쁜 뉴스에 과민반응한다는 점을 알고 악재로 주가가 바닥을 치고 있는 기업들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악재가 있는 주식을 사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그를 극단적인 역발상투자자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가 무턱대고 악재로 인해 주가가 떨어지고 있는 주식을 잡은 것은 아닙니다. 주가수익 지표와 주가 현금흐름 지표, 주가순자산비율, 주가배당비율 4가지가 합리적인 상황에 놓인 튼튼한 회사에만 투자한 것입니다. 그의 투자 방식이 성과를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혹자들은 수익이 잘 나지 않자, 드레먼의 투자방식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짧으면 2년, 길게는 8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기업의 가치와 주가가 시장에서 재평가를 받아 주가가 상승했고, 인내와 고집을 가지고 끝끝내 역발상 투자를 했던 데이비드 드레먼의 펀드는 1988년부터 ~ 1998년까지 10년 동안 동일 유형의 펀드 225개 중 최고의 펀드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는 분석가들(Analyst)의 장밋빛 전망도 믿지 않았습니다. '실적쇼크' 자체가 특별한 악재가 발생했기 때문이 아니라 분석가들이 제시한 예측치보다 낮게 나온 것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기업들이 양호한 실적을 보였다 하더라도, 그것을 분석한 애널리스트들의 기대감이 보다 높을 때, 상대적으로 실적쇼크로 나타내질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는 "실적전망으로 말한다면 향후 5년 후 실적을 정확히 예측하기보다 로또복권에 1등으로 당첨될 호가율이 10배 더 높다"고 분석가들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분석가가 제시한 리포트는 읽되 추천의견은 차라리 불태워 버리라고 말합니다. 본인의 추천종목에서 악재가 튀어나올 가능성을 제로라고 확신하는 낙관론에 사로잡히기는 전문가나 아마추어나 똑같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분석가들의 지나친 낙관론과 투자자들의 과신이 결합한 상황에서 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을 때를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데이비드 드레먼은 “군중심리에 휩싸이면 잃을 수밖에 없다. 시장 관심 밖에 있는 외로운 주식을 노려라.” 라고 말했습니다. 잘 오르는 주식,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기업들보단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인기가 없는 주식들을 잘 지켜보면 분명 알짜배기 주식이 나타날 것입니다. 다음은 데이비드 드레먼이 언급한 투자원칙입니다. 역발상 투자자 데이비드 드레먼의 10대 투자원칙 1. 최악의 상황이야말로 최고의 수익을 얻는 절호의 기회 2. 역발상 투자는 효과적인 만큼 고독감과 외로움이 필연 3. 전문가들의 의견과 보고서에 늘 의문을 가질 것 4. 회사 분석보고서는 읽되 추천의견은 받아들이지 말 것 5. 인플레이션과 세금을 감안한 세후 수익률로 판단할 것 6. 시장관심 밖에 있으면서 20% 이상 저평가된 종목이 매수후보 7. 정기소득 원한다면 배당수익률 상위 20%로 종목 압축 8. 시가총액 크면서 최근 이익증가세가 꾸준한 게 유망 9. 최고 2년 이상 보유하며 저평가 여부 확인 후 재조정 10. 숫자 말고는 경영진의 경영능력이 최우선, 투자기준 밖에 있는 외로운 주식을 노려라.”

이러한 역발상으로 시대를 바꾼
정주영 회장과 투자자 데이비드 드레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그들은 자신의 말이 맞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습니다. 불투명한 미래 속에서, 자기 생각과 철학을 고집하고 쭉 밀고 간 결과 세계에서 유례없는 효과적인 성공을 맛보고, 새로운 혁신을 불러왔습니다. 두 번째, 그들은 전문가의 말을 무조건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주베일 공사 시작에 앞서, 임원진들과 전문가들로부터 격렬한 저항과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불가능하다. 성공할 수 없다. 객관적인 자료와 현실을 들고 왔음에도, 정주영 회장은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주베일 공사를 성공적으로 끝낼 수 있었습니다. 드레먼 또한, 전문가의 말을 결코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촉망받고 권위자였던 전문가들의 말은 크게 빗나가고, 다양한 실험 속에서 그들은 오히려 일반인보다 낮은 확률로 실험결과와 미래를 예측했습니다. 드레먼은 전문가들과는 다르게 상승하고, 발전하는 기업보다는 시장에서 소외당하고, 전문가들이 외면하는 기업에 관심을 두고 투자한 결과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많은 전문가와 분석가들이 오히려 시장수익률보다 낮은 수익률을 기록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 번째, 그들은 끈기와 인내심이 강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6.25 직후 고령교 다리 공사에서 120배가 하이퍼 인플레이션과 낙후된 시설과 사투하며, 가족의 전 재산을 다 팔고, 사채업자에게 엄청난 돈을 대출해 2년 동안 겨우 다리공사를 끝냈습니다. 그는 이러한 끈기와 노력 덕분에 추후 공사와 수주를 따낼 수 있었으며, 현대건설의 신화를 쓸 수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드레먼은 초기 펀드 수익률이 다른 투자사의 수익률에 못 미처 투자자들의 원성을 샀지만 이후, 기업의 가치가 내재가치에 다가가며 폭발적인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드레먼은 자신의 저서 역발상투자자에서 "인내를 가지고 보유하라. 매년 투자 효과가 나타날 수 없다. 하지만 일단 주가에 탄력이 붙으면 소형주는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달성하는 경우가 많다" "원칙 26 : 우리가 선택하는 전략이 시장에서 즉시 성공하리라 기대하지 말라. 효과가 나타나려면 그에 합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투자는 짧으면 2년 길게는 8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믿음을 놓지 않았고, 1990년 폭락한 은행주를 사서 톡톡히 재미를 봤고, 1993년 제약주 폭락 때 일리 릴리도 대박을 냈습니다. 정주영 회장과 투자자 데이비드 드레먼 이들은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권위와 상식에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우려와 원성과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과 행동을 고수했습니다. 자신이 믿고 확고한 신념을 지니는 것을 밀고 나갔을 때의 그것이 성공하리라는 것을 미리 알기라도 했듯이 말이죠. 여러분들도 이러한 역발상을 통해 시대를 바꾼 도전자들처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주위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도전하고 역발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단언컨대, 성공과 실패에 상관없이 여러분 인생에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https://www.hellodd.com/news/articleView.html?idxno=92124

 

 

1973년 10월 준공···용수공급, 홍수조절, 수력발전 기여
콘크리트댐 건설 계획이었지만, 정주영 회장 '사력댐' 설득
당시 철근·시멘트 없어 흙·모래·자갈로 댐 건설···"낭비는 죄악"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21일로 타계 20주기를 맞았습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한국 산업화의 주역입니다. 해방 이후 격동의 시간을 겪으면서도 중공업, 조선, 건설, 자동차 신화를 썼습니다. '현대'라는 기업을 통해 전후 국가를 바로 세우는 데 일조했습니다. 경부고속도로가 그랬고 부산항을 비롯한 항만들, 수많은 교량들, 원자력 발전소가 그랬습니다. 

국가 발전의 중요한 역할만큼 회자되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춘천 소양강댐입니다. 지역에 숨겨진 이야기였던 터라 알려지지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발전 전략은 수도권, 중앙, 집중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소양강댐은 수도권에 중추적 역할을 했습니다. 수도권에 생활, 농·공업 용수 공급뿐만 아니라 홍수 조절, 전력 생산에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춘천 소양강댐에는 정주영 회장의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대덕넷이 지역 현장을 찾아 그 시대정신을 읽어보았습니다. 3월 22일은 또 세계 물의 날이어서 의미를 더합니다. <편집자 주>

소양강댐은 1967년 4월 15일 착공에 들어갔다. 당시 3대 국책사업이 경부고속도로(1970년), 소양강댐(1973년), 서울 지하철 1호선(1974년)이었다. 소양강댐이 국가 개발에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강유역종합개발계획에 따라 홍수조절, 용수공급, 수력발전을 위한 다목적댐으로 1973년 10월 15일 준공됐다. 6년 6개월 만에 만들어진 성과다. 이듬해 8월부터 운영한 소양강댐은 그간 국가 발전에 물꼬를 텄다. 

지난 11일 춘천시 소양강댐을 찾았다. 댐 높이만 123m, 길이는 530m였다. 강기호 소양강댐 지사장은 "소양강댐은 계획 홍수위 기준으로 물 29억t을 저장할 수 있다"며 "서울 면적 4.5m를 덮을 수 있는 물의 양"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소양강댐은 당시 국가 명운을 걸고 한 사업"이라며 "공사비 270억원은 현재 환산 가치로 6000억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 소양강댐에 깃든 '정주영 정신'

"나는 나라가 가난하건 부자이건 간에 국민 세금을 투입하는 국가의 시설물 건설은 가장 적은 돈으로 가장 효율적인 시설이 되도록 설계되고 시공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더 낮은 금액으로 더 효율적인 공사를 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기어이 국가 예산을 낭비하는 공사를 해야 하는가.

정부 공사든 민간 공사든 되도록 공사 금액을 늘리는 연구만 하는 업자들이 꽤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건설'은 더 싸고 신속한 공사를 위한 대안 제시를 꽤 자주 내놓아서 정부나 건설업계의 심기를 많이 건드렸다. 

나는 어떤 정부든 결국 국가의 이익을 위한 일에는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신념으로 줄기차게 대안 제도를 정착시키고자 노력했다. 이 노력은 결국 1977년 정부가 대안 입찰 방식을 채택하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다. 우리의 대안으로 시행됐던 공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1967년도 소양강댐 공사이다." <이 땅에 태어나서 中 (정주영 著)>
 
정주영 회장의 '이 땅에 태어나서' 책 표지, 출판사는 솔. [사진=김인한 기자]
정주영 회장의 '이 땅에 태어나서' 책 표지, 출판사는 솔. [사진=김인한 기자]
소양강댐이 만들어지던 시기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한창이었다. 국가 인프라 확충이 이뤄지던 시기였고 이를 주도하는 관(官)의 힘은 컸다. 건설업자가 정부 발주 공사에 대안을 내놓는 분위기는 전례가 없었다. 소양강댐은 당초 콘크리트댐으로 만들어질 계획이었으나, 정주영 회장의 제안으로 '사력(沙礫)댐'으로 건설됐다. 

소양강댐은 대일 청구권 자금이 일부 투입되는 공사로 일본공영이라는 회사가 설계에서 기술, 용역까지 맡았다. 일본공영은 댐에 관해선 세계적 기업이었고, 소양강댐을 콘크리트댐으로 건설한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정주영 회장은 당시 국내엔 제철소가 없어 철근을 수입하고 있었고, 시멘트도 부족해 콘크리트댐은 국가 형편에 감당할 수 없다고 봤다. 또 이를 산간벽지까지 운반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때 소양강댐 지천에 널린 흙, 자갈, 모래로 사력댐을 건설해야 한다고 정부에 제안한 것이다. 정 회장은 그의 저서에서 소양강댐을 '모욕 받으면서 시작한 공사'라고 표현했다.

"설계 변경을 하느라고 담당자들은 온 세계의 댐 자료는 다 모았다. 자료를 모아보니 2차 세계대전 이후 1백m가 넘는 댐은 대개 사력댐으로 만드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했다. 나는 건설부에 우리가 소양강 다목적댐 건설에 대안으로 내놓을 것이 있다고 전하고 곧 들어가서 사력댐 대안을 제시했다. 그때까지 일개 건설업자가 정부 발주 공사에 대안이라는 것을 내놓은 전례가 없었다. 고분고분, 그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것이 정부에 약한 건설업자의 기본자세였다. 

그런데 세계 굴지의 댐 건설 회사 일본공영의 설계안에 일개 청부업자가 대안이라니, 더구나 수자원개발공사에서 기본 계획 심사가 끝나고 건설부 승인까지 난, 이미 확정된 공사 설계였다. 당연히 관의 권위를 무시했다는 반감으로 관이 펄펄 뛰었고, 세계 굴지라는 자부심이 정면 도전을 당한 일본공영도 가만있지 않았다. 삿대질에다, 주제도 모르고 죽으려고 용쓰느냐 등의 모욕에다, 아무튼 그때 나는 일개 청부업자가 주제 파악을 못 해서 당할 수 있는 일은 다 당했고, 먹을 수 있는 욕은 다 먹었다."

◆ 갖은 수모 겪었지만···결국 사력댐으로

정주영 회장은 그의 저서에 일본공영과 건설부, 수자원개발공사(現 K-water), 현대건설 4자 연석회의에서도 기술자들이 기를 못 폈다고 썼다. 정주영 회장이 건설비를 줄일 수 있다는 설득에도 "당신 어디서 댐 공부를 했냐" "무식한 소리 하지도 마라" "그게 어디서 배운 소리냐" "어떤 사람이 당신 선생이냐"는 수모를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건설부 장관 보고를 받았던 박정희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해 과정을 재검증했다. 결과적으로 콘크리트 설계보다 건설비용이 30% 줄어들고, 소양강댐 인근 암반이 약해 콘크리트댐보다 사력댐이 낫다는 결과가 나왔다. 소양강댐이 지천에 널린 흙, 모래, 자갈로 댐을 만들게 된 배경이다. 그 이후로 정부는 1977년부터 건설업체들이 대안을 내놓은 입찰 방식을 채택하도록 제도를 만들었다. 정 회장은 그의 저서에 이런 소신을 밝혔다. 

"정부가 '현대'를 껄끄러워하는데도 끊임없이 연구하고 모색한 예산 절감 대안을 제시해서 국가에 보탬을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듭된 정치적인 격변 속에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도 결국은 국가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현대'로 인정받으며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나는 어떤 정부든 결국 국가의 이익을 위한 일에는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신념으로 줄기차게 대안 제도를 제도로서 정착시키고자 노력했다."

◆ "낭비는 생각 없는 이들이 저지르는 죄악"

정주영 회장은 사업을 일군 초창기에는 '돈 벌어 밥이나 실컷 먹고 살자'는 현실적인 소망이 전부였다고 한다. 나, 가족들, 직원들만 챙기면서 살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일이 커지면서 생각의 테두리도 점점 커졌다고 기록했다. 그는 국가 예산이든 시간이든 낭비를 싫어했다. 그런 의지로 한국 산업화의 주역이 된 것이다. 

"누구의 것이든, 개인 것이든, 나라 것이든, 시간이든, 돈이든, 어쨌든 낭비는 생각 없는 이들이 저지르는 일종의 죄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국졸이 내 학력의 전부이고, 나는 문장가도 아니며,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될만한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도 아니다. 또 평생 일만 쫓아다니느라 바빠서 사람들에게 가슴 깊이 새겨질 어떤 고귀한 철학을 터득하지도 못했다.

우리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라고 두 생애, 세 생애 동안 이룬 일들이 아니다. 한 생애에 그만한 일들을 해놓고 떠난 것이다. 개인의 소질이나 능력, 환경, 우수성의 차이로 물론 누구나 다 한 생애에 그만한 일들을 해낼 수는 없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을 적당히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산다면, 누구나 나름의 분야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두면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소양강댐 정보. 클릭하시면 확대가 가능합니다. [사진=K-water 소양강댐지사 제공]
소양강댐 정보. 클릭하시면 확대가 가능합니다. [사진=K-water 소양강댐지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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