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현상, 좋았던 옛날 편향, 어른제국의 역습, 중경삼림의 시간의 공간화

 

1. 개요[편집]

과거에 맡았던 특정한 냄새에 자극받아 기억하는 일.

2. 상세[편집]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유래하였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마르셀은 홍차에 적신 과자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참고로 어떤 공간마다 고유의 냄새가 존재하는데 이는 건축물을 이루는 페인트, 녹슨 쇠, 곰팡이, 습기, 눅눅하고 가라앉은 공기 등 여러 가지 요인이나 물체에 의해서 형성된다. 보통 이런 공간적 냄새는 익숙해지기에 당시에는 특별히 냄새가 느껴진다고 인식하진 못하지만 시간에 따라 냄새가 변하거나 다른 곳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그 냄새를 더 이상 맡지 않게 되었을 때 그 특유의 냄새를 맡게 되면 그 시절의 추억이 선명해진다. 물론 공간적 냄새는 시간에 따라 변하거나 사라져 버릴 수도 있기에 영원히 소장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운 점.

참고로 이렇게 여러가지 환경이나 요인에 의해 인위적으로 발생하는 공간적 냄새는 그것을 소장하거나 구현하는 게 매우 힘들다. 가령 꽃 냄새로 인해 추억이 저장되었다면 그 꽃향기는 언제든지 구현 가능하지만 상술한 공간적 냄새는 시간에 따라 변하고 그 냄새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인들을 계산하지 않는 한 저장도 구현도 매우 어렵다. 온도, 습도, 주변 날씨와 같은 환경적 요인은 물론이요, 그 냄새를 맡았을 당시 맡은 사람의 감정, 강렬한 심장박동이나 비염, 감기기운 등으로 인한 후각 장애 요소 등, 따져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물론 어쩌다 비슷한 요인이 충족돼서 우연히 비슷한 냄새가 일시적으로 느껴졌을 때도 있다.

시각이나 청각에 비해 냄새는 장기기억 된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이 있다면 시각이나 청각은 기억되면 그걸 머릿속에 떠올리는 게 쉬운 것에 비해 후각은 그 냄새를 다시 맡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또한 시각이나 청각은 사진, 녹음으로 저장이라도 가능하지만 냄새는 저장이 불가능하다는 단점도 존재하고 공간적 냄새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다시 맡을 수도 없게 된다. 따라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추억의 냄새가 있더라도 지금은 이미 맡을 수가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간적 냄새를 완전히 분석하는 게 완전히 불가능한 건 아니다. 2016년 영국 런던대학의 세실이라 벰비브레(Cecilia Bembibre)는 온갖 과학적 장비들을 동원하여 특정 공간의 냄새의 요인을 모두 밝혀내고 그것을 저장하는 연구를 하기도 하였다.#

이 설정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 바로 어른제국의 역습이다. 어른들에게 그들이 어렸을 때인 20세기의 냄새를 구현해 퍼트려서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 살게 만드는 내용.

꼭 기억을 저장하는게 공간적 냄새일 필요는 없고 좀 더 구현이 쉬운 특징적인 냄새인 경우가 더 흔하다. 가령 꽃 향기라든가, 병원에서 쓰이는 소독약이라든가, 양초 냄새 등등. 이런 특징적인 냄새를 통해 각인된 기억은 나중에 구현하기가 쉽다.

또한 이 점을 이용해 의도적으로 앰플에 담긴 냄새를 맡음으로써 추억을 저장하고, 나중에 그 앰플과 동일한 냄새를 다시 맡는 식으로 기억을 회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후술된 '관련 상품' 참조.

3. 과학적 분석[편집]

이 현상은 2001년 필라델피아에 있는 미국 모넬화학감각센터의 헤르츠(Rachel Herz) 박사팀에 의해 입증되었다.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사진과 특정 냄새를 함께 제시한 뒤, 나중에는 사진을 빼고 냄새만 맡게 하였다. 그 결과 냄새를 맡게 했을 때가 사진을 보았을 때보다 과거의 느낌을 훨씬 더 잘 기억해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바탕으로 과거의 어떤 사건과 관련된 기억들이 뇌의 지각중추에 흩어져 있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이는 흩어져 있는 감각신호 가운데 어느 하나만 건드리면 기억과 관련된 감각신호들이 일제히 호응해 전체 기억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냄새와 기억의 상관 관계는 이후 2009년 이스라엘 와이즈만연구소의 야라 예슈런(Yeshurun) 박사에 의해서도 입증되었다.##

특정 사물, 상황, 대상에 대하여 가장 첫번째로 느낀 냄새가 뇌에 각인되며, 나중에 그 냄새를 맡으면 그 대상에 대한 느낌이나 그 상황에서 느낀 감정등을 선명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혹은 냄새를 통해서 기억나지 않았던 추억을 되찾을 수도 있다. 시각이나 청각을 통한 기억은 주로 단기기억이라면 후각을 통한 기억은 장기기억 인데다가 추억이 주는 감정적 느낌을 다른 감각에 비해 훨씬 더 잘 전달한다.

또한 냄새를 통한 기억은 유전된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볼때 어떤 열매나 약초같은게 위험한지를 판별하기 위해 후각을 통한 기억이 발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 시각, 청각과의 비교[편집]

냄새를 통한 기억이 '그 기억을 경험할때 느꼈던 감정, 감성'을 시,청각 보다 더 잘 전달하긴 해도 '정확한 기억'들, 예컨대 어떤 상황이었는가, 무슨 일이 있었는가 등을 기억하는데는 시청각보다 비효과적이다. 브라운대학교의 레이철 헤르츠(Rachel Herz)교수가 진행한 실험이 이를 보여주었다.기사 참조 이 기사를 보면 알겠지만 프루스트 현상은 실제 그 시절 느꼈던 감성을 그대로 깨워주는게 아닌, 단순히 프루스트 현상이 일어났을때 그 냄새를 통해 감성이 덧씌워져 일으켜지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5. 관련 상품[편집]

프루스트 현상을 이용해 기억을 저장하는 냄새 키트도 존재한다. 톨라스와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슈퍼센스 랩이 함께 제작한 냄새 기억 키트(Smell Memory Kit) 라는 것으로 냄새 스냅샷(smell snapshots)이라고 표현한다. 사용하는 방법은 간단한데 키트에는 서로 냄새가 다른 여러가지 앰플들이 존재하며, 기억해두고 싶은 어떤 상황(결혼식, 여행 등)에서 한 앰플을 열어 냄새를 맡는 것으로 그 기억과 냄새를 같이 연결시켜 머릿속에 저장한다. 시간이 흐른 후 그 추억의 기억과 감정을 다시 떠올리고 싶다면 그 앰플과 동일한 냄새를 다시 맡으면 된다. 상술했듯 시각, 청각적 기억보다 후각적 기억이 훨씬 더 그 시절의 감정을 잘 전달해준다.

또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회사 JWT Singapore는 국제적인 향기 회사 Givaudan과 연합하여 "Smell a Memory"라는 향수 키트를 만들기도 하였는데 치매 환자들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한 것을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또한 실제로 '냄새를 저장하는 기술'도 개발되기도 했다. 냄새를 저장하는 방식은 Scentography 이라고 불리는데# 2006년 한국의 동경대학교에서 개발을 시도하기도 하였으며# 2013년 영국 디자이너 에이미 래드클리프(Amy Radcliffe)는 향후 제조에 쓰는 특수 기술을 기반으로 냄새 카메라 '매들린(Madeleine)'를 개발하였는데 냄새를 구성하는 입자를 합성수지에 기록하는 형식이며, 원할 때 마다 합성수지를 꺼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다만 이는 자그마한 특정 물체나 사물의 냄새만 가능하며 공간적 냄새까지 담아낼 수는 없다. 공간적 냄새를 저장하는건 상술했던 세실이라 벰비브레가 사용한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6. 창작물에서[편집]

  • 픽사의 영화 라따뚜이에 나오는 음식 평론가 안톤 이고레미가 만든 라따뚜이를 한 입 먹은 뒤 어릴적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라따뚜이를 떠올리고 허겁지겁 먹던 반응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1]
  • 삼봉이발소에서 관련 내용이 짤막하게 언급된다.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원작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라벤더 향기로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에 대해 얼핏 회상하는 내용이 존재한다.
  • 투 더 문에서 지그문트 연구소 박사들은 다람쥐 시체 냄새로 조니의 기억을 되살린다. 조니는 리버와의 결혼 날 토끼 시체 냄새를 맡았었다.
  • 흡혈귀의 연애방법 레이나 루트에서 주인공이 레이나의 향기를 맡고 처음 만났을 때 기억을 떠올린다.
  • PROUST EFFECT: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에 속한 아이돌 이치노세 시키의 이 곡은 이름 자체로 알 수 있듯이 프루스트 현상을 모티브로 만든 곡이다.
  • "Twenty One Pilots"의 노래 stressed out에도 비슷한 가사가 있다.
     
     
     
     
     
     
     
     
     
     
     
     

    1. 개요[편집]

    좋았던 옛날 편향(the "Good-old-days" bias)은 2009년, 예일 대학교 출신의 사회심리학자로서 워털루 대학교에 재직 중인 리처드 아이바크(R. P. Eibach)와 공저자 리사 리비(L. K. Libby)가 정리하여 발표한 심리학편향의 한 종류이다.

    이 편향은 어째서 고금의 수많은 기성세대들이 오늘날의 세태를 돌아보며 혀를 차고 한탄하는지를 설명한다. 이 편향은 그들이 왜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같은 말을 하는지, 어째서 "옛날에는 어린이들이 맑고 밝은 심성으로 곱게 컸는데 요즘에는 말끝마다 욕을 하고 무서워서 못 견디겠다." 같은 말을 하는지와 같은, 일명 추억 보정 심리가 일어나는 이유를 설명하는 학술적 개념이다. 과거의 기억에 관련된 편향이기는 하지만, 엄밀히는 '기억'이라는 인지적 처리와는 꼭 같다고 보기 어렵다. 정치학, 사회학, 역사학 등에서는 그 전에 '쇠퇴론(declinism)', '장밋빛 회고(rosy retrospection)' 등으로 부르고 있었다.

    2. 해설[편집]

    인간의 모든 이념은 20대에 형성돼 평생 유지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념뿐만 아니라 언어, 문화, 진로 등 대개 20대면 틀이 결정되고 경로의존성이 생기므로 후에 바꾸는 것은 힘들어진다. 대개 어렸을 때 각인된 자국의 언어나 문화가 가장 편하고 친숙하므로 우리 나라가 제일 좋다고 '국뽕'이 생길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자신의 세대가 각인된 사람은 자기네 세대가 제일 좋다는 편향의 심리가 생길 수 있다. 즉, '우리나라 만세' 외치듯이 '우리 세대 만세'를 외치는 것이다. 편향에 빠지면 우리 것은 좋은 점만 보이고 남의 것은 단점이 눈에 띄는 경향이 있기에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도 있다.

    일례로 1990년대 중후반 휴대전화의 등장은 공중전화에 줄 서던 시절에 비하면 획기적인 발전이지만, 편향에 빠지면 그런 장점보다는 "우리 땐 밖에서 놀며 낭만이 있었는데 요즘 애들은 스마트폰만 주구장창 들여다봐서 운동량이 줄어들었다!" 식으로 취급해 '일장일단' 중 단점만 더 눈에 띄니 '옛날이 좋았다'로 귀결된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 이후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과거 문방구 오락기나 오락실에서 코묻은 귀한 용돈 들고 줄 서던 아이들에게 '공짜로' 오락실 수백 개의 게임을 손안에서 즐기는 시대는 '환상'의 미래였다고 할 수 있다.

    2005년 오마이뉴스 기사를 보면, 1995년에 처음 삐삐를 사서 10년째인 남성은 "요즘 휴대전화는 벨이 울리면 발신자 번호표시로 누구 전화인지 바로 알 수 있어 받는 재미나 설레임이 없다"[1]며 "요즘엔 휴대전화 때문에 공중전화 부스가 많이 없어지는 바람에 찾기 힘들어져 설렘이 두배가 됐다"고 여유를 보였다. 삐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삐사모)의 운영자는 "대학 때의 모든 추억들은 삐삐와 함께 있다"고 삐삐를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에 불편조차 적응되어 별다른 불편을 잘 못느끼고 장점을 찾아내기에, 새로운 변화가 더 큰 장점이 있음에도 그것보다는 이전의 작은 장점이 더 와닿게 느껴지는 것이다. 공중전화만 봐도 앞사람 전화 빨리 안끊는다고 싸움이 벌어지거나 뒷사람 눈치 보며 통화도 짧게하는 등 이런 불편을 겪다가 언제 어디서나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는 휴대폰의 등장으로 인해 경로 의존성을 씹어먹고 급격하게 변화한 축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당시 삐삐로 변화의 물결을 저항하던 자들이 존재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설레임이나 낭만 같은 소소한(?) 사유로 휴대폰을 놔두고 삐삐를 택하기엔 소탐대실이므로 결국 삐삐 예찬론자들도 시대의 물결을 거스르지 못하고 많이 자취를 감췄다. 그래도 이들은 여전히 삐삐 쓰던 시절이 더 좋았다고 편향된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사실 추억이 있으니까 그거 하나만으로 옛날이 더 좋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으며, 너무 선을 넘어서서 무조건 다 옛날이 유토피아였다고 주장을 한다면 편향일 것이다.

    사람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는데, 망각은 무의식적 차원에서 일어나지만 뇌의 능동적인 작용에 속한다고 한다. 뉴욕의 신경정신학자인 가야트리 데비 박사는 '뇌는 빛의 속도로 정보를 평가하고 분류하며, 필요 없는 내용은 지워버린다'고 설명했다.# 사람은 알고 싶은 것만 알려는 편향의 심리를 갖고 있으니 이는 생존자 편향으로도 설명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말과도 비슷하다.

    그래서 '나빴던/싫었던 옛날 편향'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과거에 끔찍한 일을 당해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은 잘 찾아보면 좋은 당시 기억들도 분명히 있으나 그 끔찍했던 기억 하나가 너무 크게 느껴지기에 그냥 과거 자체를 악몽으로 여기며 지우고 싶어 하므로 과거를 잘 안 언급한다. 과거에 중립적인 사람들 사이에도 악몽을 굳이 일부러 떠올리려는 사람은 드물고, 주로 추억을 회상하며 추억으로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 중에도 안 좋았던 기억은 잊거나 미화하기에, 결국 '생존한' 기억들은 좋은 기억(추억)들이고 과거 자체를 잊으려 해도 좋은 기억만이 문뜩 떠오르기도 하니 편향에 빠지는 것이고, 이런 사람들은 맨날 '옛날이 좋았다'고 푸념하니 유독 눈에 띄는 것이다. 군 전역자들의 '좋았던 군대 편향'도 이러는 식이다. 마치 군대에서 고참에게서 갈굼을 많이 당했어도 고참이 빵을 사주면 갭 모에를 느껴 안 좋았던 기억들이 사라지거나 술자리에서 군 시절 악몽을 얘기하면 분위기가 숙연해지며 갑분싸가 될 수 있으니 '재미있는 썰' 위주로 풀기에 '즐거운 군 시절'처럼 미화될 수 있는 것이고, 반대로 편하게 여기던 친구의 말로부터 상처를 받으면 그 기억만 남아 절교하기도 하듯이 기억은 '선택적'이다.

    신세대가 자신이 태어나기 이전 옛날이 좋았다기도 하는데, 나빴던 옛날이 상술됐듯이 그다지 언급되지 않다 보니 성공한 소수만 알고 실패한 다수는 모르는, 생존자 편향에 빠진 신세대 인물과 구세대 인물 모두 구세대 전부가 좋은 혜택을 누린 꿀 빤 세대라거나 의지드립내뱉듯이 좋았던 옛날 편향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세상이 갈수록 나빠진다고 느끼는 것은 '사회적 쇠퇴(social decline)' 또는 '도덕적 쇠퇴(moral decline)'로 부르는데, 이는 세상이 근본적으로 나쁜 쪽으로, 특히 도덕적인 면에서 나쁜 쪽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느낌을 의미한다. "동서고금의 강대한 국가들을 멸망시킨 것은 모두 도덕적인 타락 때문이며, 이는 큰 나무의 뿌리를 썩이는 것과도 같다.", "우리 시절에는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훈육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었지만, 요즘 성 문화는 정말로 수치스럽다. 점점 많은 가정들이 파괴되고 사람들이 서로 갈라서고 있으며, 현대 삶의 양식에는 어떠한 미덕도 없다."처럼 통탄하는 사람에게 좋았던 옛날 편향이 작동하는 것이다. 미국(과 그 영향을 받은 대한민국)의 개신교 또한 "요즘처럼 기독교적 가치가 극도로 공격된 적이 없는 것 같다." 같은 주장을 하기도 한다. 각종 강력 범죄나 청소년 비행이 갈수록 심각해진다고 착각하는 것 또한 여기에 해당된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방송 매체의 발달로 그러한 소식을 더 빨리 전해듣는 것이 원인 가운데 하나이며(공포 마케팅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과거 상황은 자신과 그 주변 환경을 기준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데이비스처럼 본인 세대 때 문제점이라면 오른쪽과 같은 일은 겪은 적이 없으니 뉴스에서 나올 일이 없는 왼쪽과 같은 일만 기억하고, 요즘에 발생하는 사고들은 본인이 직접 학교생활을 하는 게 아니니 뉴스에서 나오는 극단적인 사건들을 보고 옛날보다 더 심해졌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강력 범죄도 여러 흉악범을 언급하며 요즘 세상이 무서워졌다는 말을 하곤 한다. 1997년 외환 위기, 2008년 대침체, 2020년 코로나 대봉쇄 등으로 이어진 경제 호황기·불황기와는 상관 없는 심리적 경제 불황기가 20년 넘게 이어진 것도 한 몫 한다.
    1940년대 미국 공교육의 문제점 Top 5
    1980년대 미국 공교육의 문제점 Top 5
    • 떠들기
    • 학교에서 껌 씹기
    • 소란
    • 복도에서 뛰기
    • 새치기

    이 목록은 1990년대 초엽에 미국 사회를 강타한 것으로서 이에 충격을 받은 수많은 보수주의자들과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언급하면서 개탄했다. 전 미국 교육부 장관 윌리엄 베넷, 극우 성향의 방송인 러시 림보, 안티페미니즘 운동가 필리스 슐래플리, 팀 러헤이[3] 등이 자신들의 방송이나 저서에서 인용했다.

    이에 경영학과 교수 배리 오닐(Barry O'Neill)은 이 목록의 출처를 찾아내기로 했고, 마침내 그는 이것이 컬런 데이비스(T. C. Davis)가 현대 공교육을 비난하고자 동원한 목록임을 찾아냈다. 오닐 교수가 데이비스에게 1940년대 자료는 어떻게 구했냐고, 혹시 설문조사 자료가 있으면 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데이비스는 "설문조사 같은 건 없어요. 하지만 이봐요, 나는 그 시절에 그곳에 있었소. 내가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생생하게 목격했단 말이오!"라고 대답했다.

    데이비스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면 1933년생 석유 사업가이자 갑부였으며, 의붓딸에 대한 살인 혐의, 이후 (당시 이혼 소송 중이던) 부인, 그리고 소송을 담당한 판사를 청부살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으나 두 건 모두 무죄혐의를 받았다. 1980년대에 재산 대부분을 잃고 결국 파산신청을 했으며 후에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되어 학교에서 성교육, 창조설 교육에 반대하였다. 그는 교육전문가나 사회연구가가 아니었으며 이 리스트를 쓴 당시에도 개인의 의견을 쓴 것이고 자료조사를 하고 쓴 게 아니다.[4] 데이비스의 나이를 생각하면 1940년대는 그가 초등~중학생이던 시절이며, 1980년대는 50대로 그가 경제적 어려움과 재판 등 여러 위기를 겪고 있던 시점이다.

    구약성경출애굽기, 민수기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뒤 광야 생활에서 어려움을 만났을 때마다 끊임없이 지도자 모세와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그리워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민수기 13, 14장에 등장하는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 사건은 그 불만의 절정에 달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서 가나안 땅을 살펴보라고 한 사람씩 정탐병을 보냈는데, 10명의 정탐병들은 가나안 땅의 거인들과 높은 성벽을 보고 무서워서 '우린 안될 거야 아마'로 일관한 반면,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은 하느님을 믿고 나가면 두려울 게 없다고 하고 되려 돌에 맞아 죽을 뻔한 등의 사태가 발생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차라리 이집트 땅에서 죽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우두머리를 세워,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항변했다. 결국 하느님은 이스라엘 민족에 자신을 안 믿으니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아보라는 저주를 내럈고, 하느님을 믿지 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1세대) 백성들이 전부 죽었을 때까지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 뺑뺑이가 이어졌다.

    4. 현실[편집]

    물론 이 인식이 '편향'의 한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는 만큼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적 쇠퇴의 심각성은 대부분 과장되어 있거나 사실과 다르다. 사회과학자들은 실제로 측정된 국가 수준의 데이터와 개인이 느끼는 감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해 왔다. 종합사회조사를 통하여, 최근 10년간 범죄율이 증가한다고 생각하는지, 아동들이 방치되고 제대로 부모와 못 교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청소년 임신이 점점 많아진다고 생각하는지, 고결한 문화와 퇴폐 문화가 점점 격심하게 전쟁을 벌인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물어보았을 때, 과반수의 미국인들은 전부 그런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에 실제로 연구자들이 확보한 데이터에 따르면, 현실은 정반대였고, 세상은 점점 살기에 좋아져 왔다.[5] 각종 청소년 범죄, 가출 문제는 과거에 훨씬 나빴다. 예시로, 훨씬 예전에는 실종 미성년자 납치, 입양, 앵벌이 문제들이 많이 났고, 현재도 대한민국의 최악의 연속살인범으로 여겨지는 우범곤, 지존파, 김대한 등이 저지른 살인행각은 2000년대 이전에 났다. 서태지와 아이들Come Back Home을 부르고 지존파 사형 집행 전에 발표해 수많은 가출 청소년들을 집으로 보낸 적도 있다.

    그들이 보는 타락이나 쇠퇴도 진짜일 가능성도 있지만, 시대가 달라지면서 사상이 달라져서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를 여자들이나 믿는 종교로 모욕하고 기독교도들을 탄압하던 고대 유럽인들이 기독교가 뿌리를 내린 중세 유럽을 보면 충격을 먹을 것이다. 실제로 로마가 점차 이민족들에게 밀리자 더 과거의 사상을 계승한 사람들은 로마 몰락의 원인을 기독교로 몰아갔다. 대표적으로 5세기 역사학자인 조시무스[6]는 로마 제국의 타락과 쇠퇴는 그들이 전통적으로 섬겨오던 신들을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해서라고 주장했다.

    사회심리학자로서 아이바크는 이와 같은 인식의 오류가 기본적으로 두 시점의 (자신이 어린 때 vs. 현재) 사회를 비교할 때 자신의 관점의 변화는 잘 반영되기 어렵다는 이유로 착오가 발생함을 발견했다. 즉, 세상이 변화한다고 느낄 때 그 일부는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시각, 처지의 변화가 포함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자신이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완전히 똑같다고 잘못 판단한다. 아이바크에 따르면 이런 잘못된 생각은 다음 원인으로 발생한다.
    • 사람들은 부모가 되기 전과 되고 난 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바뀐다. 보통 자녀를 얻고 나면 세상을 좀 더 경계하고 조심스러워하게 된다.
    • 사람들은 직업을 얻기 전과 얻고 난 후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크게 바뀐다. 직업을 얻는 것은 곧 책임을 얻는 것이며, 젊은 시절은 자유분방하고 패기 있게 도전하던 사람들도 사회적으로 안정된 직업을 갖게 되면 그만큼 함부로 처신하기 어려워진다.
    • 사람들은 노화를 겪으면서 자신의 신체의 능력이 약해짐을 잘 모른다. 반사신경이 조금씩 떨어지는 장년~노년의 운전자들은 그만큼 요즘 젊은이들이 차를 험하게 모는 경향이 있다고 오해할 가능성이 높다.[7]

    이러한 시각은 (자유의지주의는 논외로 하는 한) 보수주의와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8] 사회가 갈수록 도덕적으로 타락해간다고 믿거나 그 느낌을 주는 징후를 볼 경우, 사람들은 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이는 보수주의적 메시지에 심정적으로 의지하게 되며, 그런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위험한 사회적 실험'을 하려는 진보주의자들을 경계하게 된다.[9] 이는 종합사회조사 및 보수주의 사회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건의 면접법 연구들로도 확인되었다.[10]

    또한 대니얼 카너먼에 따르면, 사람들은 틀 효과(frame effect)에 따라 획득 프레임(gain frame)보다는 손실 프레임(loss frame)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곤 한다.[11] 특히 그 손실이 가치나 도덕성에 관련된 것이면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몹시 극단적이고, 어찌보면 평소는 믿던 원칙에서 더욱 어긋나는 행동까지도 기꺼이 하도록 끌어들일 수 있다. 아래에 이미 인용한 바 있는, 올림픽 공원 폭탄 테러범 루돌프는 낙태동성애가 사회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믿었고, 이를 막기 위해서 그 어떠한 극단적인 수단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믿고 직접 폭탄 테러를 일으켜 감옥에 들어갔다.

    요샌 다들 1~2명만 낳아 왕자와 공주처럼 키우고, "왜 우리 애 기를 죽이고 그래요?"란 말이 밈이 된 것처럼 아이를 떠받들어 키우는 사례가 많아졌는데, 금쪽이 강연에서도 이렇게 키우면 아이가 문제아가 될 수 있다며 혼내야 할 땐 따끔하게 혼내야 한다고 지적할 정도다. 교사들 역시 '주호민 특수교사 고소 사건' 때 집단으로 맞섰듯이 과거에 비해 부쩍 늘어난 부모의 갑질로 고통을 호소하는데, 이를 다 "옛날 아이들이 가르치기 좋았다는 것은 편향!"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물론 그렇다고 '사회는 흑화되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데, 학생 인권 조례가 왜 생겨났는지를 떠올려 보면 쉽다. 2010년대 초 이전엔 교사들의 갑질이 많은 문제가 되곤 했다.

    따라서 정리해 보면 전반적인 면에서 대체적으로 발전한 것이 사실이지만, 빠른 발전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이 발생한 문제들도 있는데 그것을 침소봉대하여 사회는 흑화됐다고 결론을 내린대도 편향일 것이다. 대한민국/사회/문제점, 세대 갈등/문제점 같은 문서들에도 후자의 논조로 글이 써져 있기도 하며 나무위키의 수많은 문제점, 비판, 논란 문서들 또한 좋았던 옛날 편향,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도 있다.[12] 스티븐 핑커 같은 논객들이 세상이 점점 흉흉해지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시간이 갈수록 전쟁은 감소하고 평화가 확산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잘 믿기지 않는 것과도 유사하다.

    사회에서 모난 사람들은 성공하기 어렵고 도태되므로 진화심리학적으로 볼 때는 점점 착한 사람들만 남는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착한 사람들이 생존하는 것이 아니고 '체제에 적합한 사람들'이 생존하는 것이다.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진화'도 본래 그냥 환경에 맞는 자들만 임의로 살아남아 최적화된다는 의미일 뿐이며 딱히 좋은 진화, 나쁜 진화가 가치판단되어 구별돼서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13] 작가 이문열이 2010년도 인터뷰에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성장 소설"이라고 코멘트한 바가 있듯이 교양 소설, 성장 소설 또한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하는 인간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저출산 시대에 대표적인 사이코패스 살인마인 유영철과 강호순 모두 자녀가 셋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에서는 40대 여성과 10대 후반 딸이 막 서로 출산 경쟁이라도 하려는 듯이 비슷한 시기에 출산하여 여아가 누구 딸인지 엄청난 논란이 벌어졌을 정도로 이들은 저출산 시대와 동떨어진 모습을 보여줬다. 유영철과 강호순처럼 성욕이 강한 사람은 다른 것에도 강한 집착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이타심'과는 거리가 있는 사례도 많다. 또한 우월의식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보니 결혼정보 회사의 '등급표'처럼 재산과 학력으로 등급이 나누어지기에 착하든 나쁘든 재산과 학력이 없으면 결혼 시장에서 도태되며, 한국에서도 나쁜 남자 열풍이 불었을 정도로 금수저 꽃미남은 성격이 다소 모나도 매력으로 받아들여져 여성들이 달려들지만, 그냥 착하기만 한 남성은 매력없는 찐따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하며, 그렇게 묘사하는 작품도 있다. 오히려 김수환 추기경처럼 착한 사람들은 이타적인지라 여성에게도 관심을 안 보여 다 양보하고 좋은 일만 하다가 홀로 떠나가서 DNA가 물려지지도 않았다. 조직 생활에서도 착한 것, 나쁜 것과 무관하게 교수 자녀들의 스펙 품앗이처럼 '우리가 남이가'라며 상부상조하며, 교수 사회에선 스펙 품앗이를 거부하거나 내부 고발 하는 자는 '배신자' 취급 받고 배척당하지만, 사회에서의 평가는 반대일 수가 있다.

    발전한 민주국가들도 국민들이 시위 등으로써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하며 발전시킨 것이며 아무런 노력도 안 했는데 나라가 저절로 발전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북한,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간처럼 뿌리(체제)가 잘못 내리면 국민들이 고난의 행군처럼 엄청 고생해도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하는 사례도 흔하다. 이란과 남베트남도 1960년대에 더 개방적인 사회였다. 21세기에는 아프간에서 미군이 철수하자 미군에 협력하거나 자유와 인권을 외치던 자들은 모조리 죽여버리고 탈레반에 순응한 자들만 남겨 탈레반 체제는 점점 공고하게 발전하는데, 이처럼 '좋았던 옛날'이 편향이 아닌 사례들도 있으므로 민주국가의 국민들은 국가가 엇나가서 옛날이 더 좋았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정부 감시·견제를 게을리하면 안 될 것이다.

    5. 대처 방법[편집]

    이 편향이 개인에게 좀 심각할 정도로 어려움을 주고 있으면, 즉 나날이 혼란에 빠져 가는 작금의 세태에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으면 편향을 감소시키는 것이 그 사람의 웰빙에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바크는 개인이 자신의 삶을 자서전적으로 돌이켜 보면서 자신이 그동안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거쳐 왔는지 생각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의외로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이바크의 방법이 안 되다시피 하면 엘렌 랭어의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이 도움을 줄 수도 있다(#1, #2). 치매 환자가 기억은 잃어도 느낌은 남는다고 의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런 걸로 그 과거와 비교하기가 수월해질 수도 있다. 일례로 군 시절을 그리워하는 전역자가 막상 군 입대를 앞둔 시점으로 시계를 되돌려 보면 당시에 막막했던 심정이 느껴지며 별로 좋지 않았던 기억들이 떠오를 수도 있는데, 그때도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음을 깨달아 편향이 줄어들 수도 있다. 비슷하게 옛날 사진을 보면서 회상하는 것이 치매 예방 두뇌 훈련법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외국 속담도 있다.

    전문가들은 뭔가 간단한 목표를 세워서나마 마음을 붙이라고 조언한다. 책을 언제까지 다 읽겠다든지 운동 목표든지 현실의 낙을 찾으라는 조언이다.

    외로움도 이 편향의 간접 원인일 수 있는데, 범죄의 빈도는 줄어도 그 범죄 자체가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되지는 않듯이 마음 속에 계속 맺혀 있는데[14] 노인의 죽음,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말미암아 인간관계가 줄고 이것을 TV 뉴스 등으로 대체하다 보니 평화를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이들의 원한 등을 무시하면서 점점 살기에 좋아져 왔다는 상술된 데이터를 들이대는 것은 사탕발림일 뿐이며, 온도로 따지면 체감온도를, 공수로 따지면 공격력(범죄율)이 줄었지만 수비력이 그보다 더 줄었음(원한 등이 더 늘었음)을 간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론에도 적혀 있듯이 기성세대의 '주변 환경'에서 평화롭게 어울리는 것을 그 세대인에게 노출하는 등으로 그들의 감정을 누그러트리는 것도 편향을 줄이는 방법일 수 있는데, 그러려면 생활 환경 개선이 우선일 것이나,[15] '양극화' 문서의 '위화감과 적대감 심화' 문단 내용처럼 정작 그런 걸 실천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각자도생' 문서도 참고할 만하다.

    (복고, 향수, 마음의 상처 등등 관련 글 1, 2.)

    6. 유의점[편집]

    참 옛날에는 꿈과희망을 주는 곡이많았지... 요즘은 뭐만하면 사랑사랑..

    god의 〈촛불하나〉 유튜브 영상의 댓글 중 #
    개인의 취향과 관련된 문화 분야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옛날 음악에는 감성이 실려 있는데, 요즘 음악은 그냥 시끄럽기만 한 전자음 투성이야."라는 등의 글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옛날 음악은 가사도 정말 뛰어난데 요즘 음악은 사랑 얘기 밖에 없어."라는 식으로 비난하거나, 요즘 아이돌들의 가창력을 기성 가수와 비교해서 무분별하게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일종의 확증 편향으로, 옛날에도 단순하고 유치한 가사나 구성의 음악들이 시대를 석권하거나 표절 작품이 나온 경우가 흔한 데다가 립싱크가 만연했으며, 오늘날에도 시적이고 심오한 가사의 음악들이나 가창력이 좋은 가수들도 충분히 많고, 가사에는 시대를 불문하고 사랑, 개인적인 경험 등 다양한 주제가 존재한다. 이는 사람들이 옛 음악 중 작품성이 높았던 것 위주로 기억을 하거나, 사람이 적응의 동물이다 보니 오늘날의 음악 중 숨겨진 보석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을 뿐이며, 점차 해외를 겨냥한 음악이 많아지면서 10대 위주로 흘러간 것도 있다.

    다른 국가들은 원래 선진국이었거나 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처럼 실제로 못살게 된 나라들이 적지 않아 "옛날이 좋았어~."는 한탄이 정말인지 편향인지 애매할 때가 있으나 한국은 한강의 기적으로 객관적으로 눈부시게 발전한 국가임에도(경제와 인권, 자유,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옛날이 좋았어~."는 넋두리를 하는 노인들이 많다. 심지어 과거 강남 개발 시절에 얼떨결에 땅을 가지고 있어 조물주 위의 갓물주가 된 노인들도 심지어 과거 가난하던 청년 시절을 추억하는 일이 많다. '좋았던 옛날'이라면서 상술된 사회 분야, 도덕 관련 얘기가 아닌 다른 얘기를 할 수도 있으며 옛날보다 평화로운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리워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편향으로 몰아가도 안 된다(#). 결국 '좋았던'을 어느 관점에 두느냐에 따라 편향인지 아닌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꼭 자신보다 늦게 태어난 세대를 비난하거나 폄하하기 위해 일부러 그리워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으며,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있고, 급격한 변화는 과거에 대한 향수를 일으켜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경로의존성' 문서에 적혀 있듯이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 태미 에릭슨은 오늘날 급속한 사회 변화로 말미암아 세대 갈등이 커진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럴 때는 상술된 시계 거꾸로 돌리기 같은 환경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유튜브에서 1990년대 K-POP 영상에도 저때가 좋았다는 댓글들이 적지 않은데, 젊을 때야 클럽 가서 놀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사고쳐도 '어리다'며 용인해주기도 하지만, 나이들수록 제약이 많아지고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특성상 '잃어버린 젊음'을 그리워하는 것은 보편적인 감정이므로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며 좋았다는 정도로는 편향이라고 보기 힘들다.[16]

    대중매체에서의 사회 비판은 1997년 외환 위기와 2002년 신용카드 대란을 연달아 맞은 당시 조부모 및 부자 세대가 자기 삶에서 경험한 사회적 가난의 울분을 풀지 못하여 생긴 일이기에, 스마트폰의 수혜를 받았다고 과거 세대에게서 MZ세대로 여겨지는 어린 세대의 입장에서는 반면교사이자 납득이 가지 않을 수 있다.

    7. 어록[편집]

    크로노스가 다스리던 시대에 살던 황금의 종족은 아무런 걱정도 고통도 몰랐으며 삶은 축제의 연속이었다. 이 종족은 늙지도 않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올림푸스의 신들이 지배하기 시작한 시대. 은의 종족은 황금의 종족에 비하면 매우 열등했고 결국 제우스의 분노를 사서 멸망했다.
    그 후에 살던 청동의 종족은 곡식은 먹지 않으며 강하고 억센 마음을 지녔고 커다란 덩치에 엄청난 힘을 지닌 무적의 팔들을 갖고 있었다. 결국 자기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다가 멸망했다.
    그 후에는 신(神)의 피를 가진 인간이자 청동의 종족보다 선량한 영웅의 종족이 활약했다. 하지만 그들도 모두 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현재는 철의 종족의 시대이다. 세상에 정의란 없다. 모든 신들은 인간을 포기했고, 정의의 여신 아스트라이아마저도 지상을 떠나고 말았다.

    (낙태 시술 병원과 동성애자 바를 대상으로 폭탄 테러를 한 이유를 묻자) ...나는 서구 문명이 도덕적으로 무너져 가는 것을 여러 해 동안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를 막는 데에 과격한 방법밖에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에릭 루돌프(E.Rudolph), 근본주의 개신교 계열의 우익 정치극단주의자이자 1996년 올림픽 공원 폭탄 테러범

    동서고금의 기성세대
    The illusion that times that were are better than those that are, has probably pervaded all ages.
    일찍이 존재한 시대 쪽이 현존하는 시대보다도 좋다는 환상이야말로 모든 시대에 보편적으로 흐르고 있는 환상이다.

    호러스 그릴리 (미국의 저널리스트)
    이런 말을 하지 마라. "지나간 세월이 지금보다 좋았지요?" 지혜로운 사람은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전도서 7:10 (공동번역 성경)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 속에는 언제나 현재는 과거만 못하다는 회고 조의 소극적인 역사의식이 나타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명관, 인간에 관한 단장>>의 한 구절
    무거운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피곤한 눈으로 등교하면
    수업은 왜 그렇게 많이 있는지
    든든한 아침을 먹고 온 지
    몇시간 지나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뱃속이 허전해 지는 걸까
    가끔은 무거운 눈을 참기가 힘들어
    나도 몰래 꿈속으로 가
    무서운 선생님의 꾸중으로
    힘든 하루 보냈지
    그래 그때는 몰랐었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추억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학창시절을
    나는 사랑할꺼야

    이현석의 학창시절 가사 1절
    신영균: 젠장... 독립이 되면은 다 잘될 줄 알았는데, 이게 뭐야. 차라리 왜정 때가 더 좋았어, 우리끼리 박터지게 싸웠어도 그 때가 더 좋았다고!
    문영철: 야 인마, 헛소리 좀 그만해. 일본놈들 밑에서 개처럼 사는 게, 어떻게 지금보다 좋냐.
    신영균: 왜놈들보다 공산당이 더 무섭다, 그 말이야! 일정 때에는 왜놈들이 공산당을 무서워하길래 그 공산당이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신영균이 개코의 장례를 치른 후 술자리에서 한탄하며.
    세상은 점점 나빠지는 걸까? 옛날에는 하늘이라든가 사람들이 참 좋았거든.

    근데 요즘에는 사람들이 자기밖에 모르는 것 같고, 사회는 점점 썩어 가는 것 같애.

    그래도 말이야. '옛날이 좋았다', '옛날이 좋았다' 쉽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는 게 아닐까?

    옛날을 안 살아 본 사람들한텐 너무 무책임한 이야기잖아.

    그러니까, 나에게 지나간 시간이 소중했던 것처럼, 지금 또한 누군가에게 좋은 시절이었으면, 좋겠어.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봉현철 부장
    2024년,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지금.
    경찰은 칼부림 현장에서 피해자를 두고 도망치는가 하면,
    16개월 영아가 아동학대로 사망에 이르도록 방관한다.
    하찮은 스토커에게 공격당하는 사람조차도 구하지 못한다.
    이런 경찰의 무능과 비리, 조작·은폐·부실 수사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아니, 과거에는 더했다.

    (중략)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물론, 악한 인간은 여전히 세상에 널리고 깔렸다.
    그러나 2024년 현재의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안다.

    (중략)

    이 작품을 통해 공권력이 존재의 이유를 되찾고 국민을 온전히 지킬 수 있기를,
    그리하여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정한 정의가 실현되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기를 희망해본다.


    [1] 발신자 번호 표시는 2000년대 들어 도입됐는데, 당시에도 짝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만 듣고 끊는 낭만이 없어진다든지 내 번호가 노출되는 것이 싫다라든지, 이젠 "여보세요"라고 할 수도 없겠다든지 반발 심리가 존재했다. 물론 현대에도 발신자 제한으로 전화를 걸 수도 있지만 이런 번호는 안받는 사람들도 많으며, 어차피 모르는 번호를 받을 때는 여전히 "여보세요"라고 한다.[주의] 아래 두 목록은 공신력이 있는 조사연구가 아닌, 후술되어 있듯 그저 한 미국인 아저씨의 뇌피셜이었을 뿐이니 주의하길 바란다.[3] 미국의 목사, 소설가.[4] 약물 문제는 전반적으로 점점 심해지긴 했지만, 흡연률은 1940년대에 훨씬 높았다.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흡연률은 오히려 1940년대에 피크를 찍고 1980년대까지 꾸준히 감소했는데, 이는 1940년대 당시엔 아이들을 모델로 한 담배광고가 나왔을 정도로 미성년 흡연에 대한 경각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https://tobaccocontrol.bmj.com/content/4/Suppl_1/S2 포인트는 시대에 따라 심각한 문제가 달랐지, 어느 한 시대가 일방적으로 좋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5] Sniderman, Brady, & Tetlock, 1999; Davis, Smith, & Marsden, 2004; Sayer, Bianchi, & Robinson, 2004; National Campaign to Prevent Teen Pregnancy, 2003; Baker, 2004; DiMaggio, 2003; Mouw & Sobel, 2001.[6] 가톨릭 성인 조시모와 동명이인이다.[7] Eibach et al., 2008.[8] 다만 구 동구권의 경우는 노년 세대가 사회주의 독재정권 치하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낸지라 이 지역에선 반대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9] Duckitt & Fisher, 2003.[10] Davis, Smith, & Marsden, 2000; Klatch, 1987; Rieder, 1985; Murphy, 2005; Smith, 1998.[11] Kahneman & Tversky, 1984; Snow, Cress, Downey, & Jones, 1998.[12] 또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비판' 문서에 적힌 내용과 같이 보면 사람들이 오프라인에서 죄를 안 짓고 SNS에서 만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13] 흔히 인간과 원숭이가 공통조상에게서 갈라져 진화했다고 하면 "원숭이는 언제 인간으로 진화하는지?"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목적을 정해놓고 진화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든 원숭이든 출발점은 같아도 어떠한 사유로 각자 갈라져 각자의 방식으로 진화해왔기에, 이미 너무 멀리 와서 원숭이가 인간이 될 수도, 인간이 원숭이가 될 수도 없다. 원숭이 역시 인간과 똑같은 수단으로 진화한 것이며 인간이 보기에 안 좋아 보인다고 '퇴화'라고 할 수는 없다.[14] 2021년자 유 퀴즈 온 더 블럭/123회최현준유재석이 시간이 지난다고 그냥 없어지지 않고 부메랑이 돼서 돌아온다고 했는데, 이런 범죄 관련 일들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또한, 어떤 이가 의로운 일을 이루다가 설령 목숨을 잃게 되었어도 그 가족이 평생 받는 어마어마한 고통에는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으며 대부분의 대중 또한 금세 뇌리에서 지워버리거나 무시하기 일쑤라는 내용도 있다.[15] #1-1, #1-2, #1-3, #2, #3, #4, #5, #6[16] 다만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부터 1996년까지 10여 년 동안은 경제성장도 어느 정도로 이루어졌고, 여가시간도 조금 늘었으며 나름대로 풍족해진 경제력을 바탕으로 문화도 올라오던 시기라 타시기와 달리 근거있는 좋았던 시절, 속되게 낭만이 있던 시절이다. 그리고 IMF 외환 위기를 맞이하며 그것이 내실있는 기반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고, 각자도생돈이 완전히 지배하는 무한경쟁시대로 이어져 버렸으니 그 시절을 그리워할 만하다.
     
     
     
     
     
     
     
     
     
     
     
     
     
     
     

    3. 해석[편집]

    작중 등장인물의 행동이나 사물에 내포되어 있는 숨은 의미들을 찾아가면서 다회차 감상을 이어나가는 것도 본작의 또 다른 묘미이다. 히로시의 발냄새의 의미라든가 악역 켄의 행동의 숨겨진 의미 등이 있다.

    히로시를 현실로 되돌아오게 하는 발냄새와 추억에 머물게 하는 월석은 서로 실체하지 않는 것과 실체하는 것이라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이는 지금의 우리를 만든 것은 실체가 없는 경험과 인연, 살아온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고, 실재하는 기념품들은 사실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어 잘라낸 조각의 일부로 그때 그 시간으로 잠시 돌아갈 수는 있는 아름다운 도구이지만, 결국에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집착의 대상이 되어버리는 도구임을 보여주며 진정 가치있는 것은 형태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물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인 모습[14] 보여준다.

    명장면으로 불리는 히로시의 회상 장면 직전에, 어려진 히로시[15]에게 신노스케가 찾아온다. 후에 뒷장면을 보면 알겠지만 실제로 히로시가 어려진 것이 아니라 이것은 자신의 어린시절 추억에 집착하는 히로시의 상상이다.[16] 즉 히로시의 2인칭 시점. 이때 신노스케는 히로시에게 "아빠, 저에요. 제가 모시러 왔어요."라며 히로시를 현실로 데려오려고 한다.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히로시는 자신의 부모를 애타게 부르지만, 이때 히로시의 부모는 웃음을 머금으면서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돌아볼 뿐 히로시를 도와주지 않고 가버린다. 히로시 부모의 이러한 행동은 아들이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로서의 본모습을 되찾길 바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안락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자신들의 품에서 벗어나 아들과 함께 현실로 돌아가 어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라는 뜻인 것이다. 이후 히로시는 자신의 발냄새(21세기의 냄새)를 맡고 현실로 돌아온다.[17]

    또한 탑의 꼭대기를 향해 상처투성이로 질주하는 신노스케의 모습은 온갖 시련을 맞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향해 질주해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있는데, 공식 해석은 아니지만 상당히 일리가 있다. 거기다가 가만히 서서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가는 켄과 차코의 모습을 통해 추억을 회상하는 건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 만큼이나 쉬운 일이라는 것을 보여주며 현재를 달리며 미래를 향하는 길의 험난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또한 꼭대기로 질주하는 장면에서 신노스케가 넘어져도 카메라 앵글은 멈추지 않고 계속 위로 이동하는데,[18] 이는 시간은 우리를 절대로 기다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신노스케의 질주 장면 마지막에는 신노스케가 결국 카메라를 추월하는데, 이는 아이인 신노스케 역시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미래를 되찾기 위해 질주하는 신노스케를 위해 히로시와 미사에는 예스터데이 원스 모어의 대원들을 저지하며 신노스케가 추격대와 거리를 벌릴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준다. 특히 미사에가 뒤로 몸을 날려 대원들을 저지했을 때 신노스케가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미사에는 단호하게 "멈추지 말고 가!"라고 말한다. 영화 전반부에서는 빌런 부하 측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자식들 신노스케와 히마와리, 반려견 시로도 철저히 외면하며, 20세기 박물관에 가지 않은 자기 부모들마저 내버려두고 예스터데이 원스 트럭에 탑승해서 20세기 박물관으로 도피한 행동도 모자라, 이기적이고 현재와 미래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싫어하는 동시에 근시안적인 현실도피성을 어둠의 성격 특성과 함께 추하기 짝이 없는 단락적으로 과시하던 히로시와 미사에였지만, 후반부에서는 발냄새 덕분에 기억과 인격을 회복하는데 성공해서 신노스케가 미래를 되찾을 수 있도록 온 힘을 사용하며 방해 요소들을 제거한다.

    어려서는 그저 부모님을 포함한 기성세대 인간들의 그늘 아래서 철 없이 자란 아이들이 성장하여 부모/성인이 되고 나서는 자식들의 인생에 닥쳐오는 여러 가지 풍파를 막아주며 때로는 인생이라는 길에서 멈춰서는 자기 자식들을 다시 뛰게 만드는 역할인 부모로서 성장한 모습과, 부모가 되는 것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부분.

    히로시와 미사에, 히마와리와 시로의 활약으로 시간은 벌 수 있었지만 신노스케는 결국 혼자 남아 달리게 되는데, 가족들과 함께할 때는 멀쩡했던 신노스케가 혼자 달리게 되면서 넘어지고 여기저기 상처투성이가 되는 부분은 결국 언젠가는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 험난한 인간 세상으로 나가게 될 신노스케, 혹은 이 세상의 모든 자식 세대들의 운명을 암시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20세기로 돌아가려는 켄과 차코는 시대 발전의 산물인 엘리베이터로 편하게 움직이지만, 21세기를 지키려는 신노스케는 인류가 복층 건물을 만들었을 때부터 사용되던 계단을 질주한다.[19] 과거에만 연연하는 것은 과거의 노고로 만들어진 현대의 편안함을 누리면서 과거에 있던 고난과 노고들을 잊어버리고 좋은 점만을 뽑아내 미화하는 것일 뿐이며, 현재와 미래를 개척해야할 아이들은 과거의 노고를 다시 한번 되풀이해 끝내 켄으로부터 승리를 거머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달린다'는 의미에서 켄의 행동을 해석해 보면, 켄이 홍차를 마신 후 '최근 뛰어본 적이 없군' 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가족들이 정상까지 뛰어서 켄의 계획을 막아냈음을 생각하면 뛰지 않는 자신은 결국 미래를 얻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요소로 해석될 수 있다.

    첫 장면과 히로시의 기억이 되돌아오는 오사카 만국박람회의 배경은 1970년이며, 저녁놀 마을 또한 여러 소품으로 비추어 볼 때 1970년대 일본 도시를 배경으로 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 1970년대는 세계 2차 대전 패전의 아픔을 완전히 털어낸뒤 고도 성장을 이룩하고 있던 때였으며, 1964 도쿄 올림픽1970 오사카 엑스포의 연속 개최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던 시기라 대부분의 일본인들에게는 1980년대 못지 않게 아직도 리즈 시절로 남아 있는 기간이다. 이 작품이 일본의 버블경제 이후 잃어버린 10년의 말기였던 2001년에 개봉했다. 그러면 이 이야기는 가장 힘든 시절, 즉 작품 속 켄의 말대로 과거 희망에 부풀어 상상하던 21세기와는 너무 다르게 추해져 버린 21세기에 살고 있으면서 1970-80년대의 아름다웠던 시절 속에 기억이 묶여 있는, 자녀와 함께 극장을 찾은 쇼와 시대 출신의 일본인들을 겨냥한 것이 된다. 또한 이 작품에서 아이들의 행보는 그들의 자녀인 유년층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데, 노하라 일가의 부모님과 극장을 찾은 가족 관람객의 부모가 태어난 시대와 카스카베 방위대와 어린이 관람객이 태어난 시대인 헤이세이 시대 출생이 겹치는 것에서 공감이 가능하다.또한 오사카 엑스포가 잃어버린 10년이 시작하기 전 일본이 마지막으로 개최한 대규모 국제 행사였다는 것[20]을 생각해 보면 초반에 나온 오사카 엑스포 장면은 고도성장의 끝을 말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세 가지의 주제를 전한다. "현재와 미래가 희망차지 않다면, 행복했던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더 좋은가?"라는 다소 철학적인 주제에 도달한다고 볼 수 있으며 이는 최종 보스인 켄의 사상과 일치한다. 또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편안함에 머물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그 해답을 전한다. 이는 영화 종반부에 드러나는데, 두려움과 추함 사이 선택의 기로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해 정체되어 있는 차코의 결심에 신노스케가 해답을 알려준다.

    두 번째로 작품이 21세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2001년에 개봉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풍요롭고 아름다웠던 과거만을 쫓고 있는, 20세기의 추억이 있는 21세기를 맞이한 일본인들에게 "아름답던 추억에 머무르기보다는, 힘들더라도 미래로 나아가 더 행복한 삶을 향해 노력해야 한다"라며 노하라 일가가 직접 말과 행동으로 비판을 가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미래는 두렵고 추한 것이 아닌 "소중한 추억들을 쌓아나아가는 과정"임을 전달한다. 신노스케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직 스스로의 힘만으로 코피까지 흘리며 필사적으로 달려 마침내 탑 꼭대기에 다다라 사건을 해결했듯, 우리도 스스로의 힘만으로도 두렵고 추한 미래가 아닌 소중한 추억들이 쌓인 즐겁고 행복한 미래에 다다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겼다. 그 미래 또한 다음 세대 아이들의 관점에서는 과거가 되며, 동시에 현재 세대 아이들의 관점에서는 그들이 어른이 된 후의 좋은 추억거리가 되는 것이다. 히로시의 회상, 극중 시간에 대한 언급으로 보아 시간의 흐름을 통해 가족과의 소중한 추억과 미래를 향한 발걸음으로 현재의 시간이 흘러가기에 과거가 아름다운 것임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미래란 자라나는 아이들의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20세기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어른들이 만든 곳인 저녁노을 마을에는 단 한 명의 아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를 추억하는 행위란 본질적으로 어른의 것이기 때문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저녁놀 마을이 부정하는 미래란 바로 어린 아이들이며, 아이들이란 시대의 변화를 상징하는 존재다. 신노스케를 비롯한 어린아이들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며 미래에 되돌아볼 추억을 쌓아야하는 것이다. 결말부에서 추악한 21세기에 대체 왜 돌아가고 싶어하냐는 챠코의 말에 신노스케가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서라고 답하는 장면은 이 작품이 말하는 미래가 어떤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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