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록펠러가 靑보다 먼저 찾은 '100년 가게'…"박물관 짓는 게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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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로 100주년 맞은 인사동 '통인가게' 대 이어 운영하는 주인 김완규 씨

반세기 넘게 고미술·현대미술 다뤄…고(故) 박서보 화백도 전시

"우리 문화 제대로 알리기 위해 최선…변화 두려워해서는 안 돼"

100주년 맞이한 통인가게, 인터뷰하는 김완규 주인
100주년 맞이한 통인가게, 인터뷰하는 김완규 주인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100주년을 맞이한 '통인가게'의 김완규 주인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4.9.3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고등학생이라 한참 학업에 열중해야 하는 시기였는데 아버지께서 '오늘부터는 네가 가서 고사를 지내라' 하시더라고요."

서울 종로구 인사동 통인가게의 '주인' 김완규(78) 대표는 1965년 가을을 잊지 못한다.

아버지인 고(故) 김정환 씨의 가게에서 지내던 고사가 그의 '일'이 되는 순간이었다. 1924년 창업한 이래 장사가 잘될 때도, 안 될 때도 늘 한결같이 지내온 일이었다.

집안의 막내였던 그는 아버지가 시킨 대로 이른 새벽 떡집에 가서 가장 좋은 떡을 산 뒤, 감나무 앞에 막걸리와 떡을 두고 마음속으로 '물건이 많이 팔리게 해주세요'라고 빌었다.

그로부터 8년 뒤, 그는 아버지를 이어서 가게를 맡게 된다. 가구점으로 시작해 고미술, 현대미술을 아우르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이 오롯이 담긴 공간이다.

포즈 취하는 김완규 통인가게 주인
포즈 취하는 김완규 통인가게 주인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100주년을 맞이한 '통인가게'의 김완규 주인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9.3 ryousanta@yna.co.kr

인사동에서 가장 오래된 고미술품 가게, 통인가게가 이번 달 5일로 100주년을 맞았다. 대를 이어 완성한 한 세기 여정이다.

지난 2일 통인가게에서 만난 김 대표는 "우리 문화를 제대로 지키고 세계에 알리고 싶었다"며 "가치를 보존하고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해온 세월"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통인가게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드나드는 '사랑방'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70년대 인사동에서 우뚝 솟은 고층 빌딩이었던 이곳에는 각계각층의 손님이 오갔고, '단색화 거장' 고(故) 박서보 화백도 1976년 이곳에서 전시를 열었다.

1980년대 통인가게를 찾은 록펠러 총재(오른쪽) 모습
1980년대 통인가게를 찾은 록펠러 총재(오른쪽) 모습

[통인가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주, 무형유산 보존에 헌신한 언론인 예용해, 조선의 청화백자를 지키고 수집한 의사 박병래 등이 단골손님이었다.

김 대표는 "많은 사람이 우리 문화유산이나 미술품을 보면 '아름답다', '멋지다'고 말한다. 그런 문화를 지키고 널리 알리고 싶다고 생각하며 가게를 운영해왔다"고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이 누구냐 묻자 그는 데이비드 록펠러를 꼽았다.

당시 미국 최대 은행이었던 체이스 맨해튼의 총재였던 록펠러는 한국에 올 때마다 통인가게를 찾았다고 한다. 때로는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도 김 대표를 찾았다.

김 대표는 "당시 외자 확보를 위해 박정희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들이 청와대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킴(Kim), 널 먼저 만나러 왔다'고 말하며 웃었다"고 떠올렸다.

포즈 취하는 김완규 통인가게 주인
포즈 취하는 김완규 통인가게 주인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100주년을 맞이한 '통인가게'의 김완규 주인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9.3 ryousanta@yna.co.kr

경대(鏡臺·거울을 세우고 그 아래에 화장품 등을 넣는 서랍을 갖춘 가구)에 '데이비드 록펠러, 환영합니다'고 새긴 금판을 붙여 선물하자 특히 좋아했다고 김 대표는 전했다.

운송을 전문으로 다루는 계열사인 통인인터내셔날은 특히 록펠러의 영향이 컸다.

김 대표는 "록펠러가 우리 물건을 보면서 '넘버 원'인데 포장은 엉망'이라고 말한 적 있었다. 당시 신문지와 노끈을 포장하는 게 당연하던 시절인데 '아차' 싶었다"고 떠올렸다.

미군 기지에 가면 포장용 종이가 널려 있을 거라는 말에 그는 바로 미8군 기지로 달려갔고, 그때부터 고미술품과 공예품을 포장·선적하는 사업도 함께 했다고 한다.

포즈 취하는 김완규 통인가게 주인
포즈 취하는 김완규 통인가게 주인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100주년을 맞이한 '통인가게'의 김완규 주인이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통인가게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9.3 ryousanta@yna.co.kr

"돌아보면 주변에 늘 좋은 사람, 좋은 스승이 많았습니다. 남들보다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고, 기업가로서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죠."

김 대표는 "상인에게 돈이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그 나라, 그 시대 국민이 필요한 것을 만들고 쓸 수 있도록 하는 게 도리이자 지켜야 할 가치"라고 힘줘 말했다.

물건 하나하나에 애정을 쏟는 건 '골동품 가게' 주인다운 면모다.

건물 지하 1층과 5층의 통인화랑, 1층의 현대 공예품 상점, 4층의 고미술 갤러리에는 다양한 작품으로 가득하다. 계단 벽면 곳곳에도 그가 엄선한 작품이 걸려있다.

김 대표는 "반세기 넘게 파는 일보다는 사는 일을 더 많이 했다"며 "동남아시아에서 사 온 가면부터 현대 예술작품까지 하나하나 내 손길이 닿지 않은 게 없다"고 말했다.

어느새 백발이 성성해진 나이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통인가게 7층으로 출근한다.

통인가게 내부
통인가게 내부

[통인가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무실의 여러 물건 가운데 김 대표가 요즘 가장 많이 보는 건 종이 한 장이다.

책상 위 시선이 닿는 곳에 붙여둔 종이에는 '통인 베이커리', '통인 한의약뮤지엄', '통인 갤러리 재팬' 등이 적혀 있다. 그가 이루고 싶은 꿈을 적어둔 것이라 한다.

"제 꿈이 강화도에 박물관 10개를 짓는 것입니다. 고미술에, 현대미술까지 다양하게 모으다 보니 자식들이 '아버지, 창고 그만 좀 쓰세요'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100년 가게의 다음 종착지는 어디일까. 김 대표는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며 "지난 100년간 (가게가 성장하는) 큰일을 해왔다면 앞으로의 100년은 뮤지엄을 지어 교육하고 인력을 키우는 쪽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통을 지키고 문화를 수호하는 일에는 정해진 범위도, 규정도 없습니다. 문화는 살아있기 마련이고 늘 변화합니다. 그저 물을 터준다면 변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100주년 맞은 통인가게
100주년 맞은 통인가게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서울 인사동에서 가장 오래된 고미술품 전문 갤러리로 평가받는 통인가게 모습. 사진은 지난 2일 촬영한 것. 202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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