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기 자체였다”... ‘인간어뢰’였던 일본 100세 노인의 회고: "나는 무기인데 적은 병사 한 명도 살리려 한다" / 우리는 무기 자체인데, 적은 병사 한 명도 구하려고 한다. 그런 나라를 우리가 이길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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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어뢰 가이텐' 특공대원 회고
어뢰를 사람이 조종해 적함 공격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의 '광기'
“이것은 너희들의 관이다.”
1944년 말 일본 야마구치현 히카리시에 있는 해군기지 정비공장에 모인 젊은이 30명에게 상급자인 일본군 대위는 이렇게 말했다. 공장에는 길이 15m, 폭 1m 정도인 길쭉한 철제 통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상단 해치를 여니 한 사람만 앉을 수 있는 좁은 조종석에 복잡한 계기판이 붙어 있었다. 뒤쪽엔 프로펠러가 달려 있었다. 바닷속에서 사람이 타고 조종하며 적 함정에 돌격하는 무기인 ‘인간어뢰 가이텐(回天)’ 실물이었다.
당시 21세였던 세가와 기요시는 대위의 말에 충격을 받아 몸을 떨었다. 마이니치신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78주년을 사흘 앞둔 지난 12일, 올해로 100세를 맞은 전 특공대원 세가와의 증언을 게재했다. 특공이란 ‘가미가제’나 ‘가이텐’처럼 사람이 무기에 탄 채로 적기나 적함에 돌격하는 자폭 공격을 말한다. 태평양전쟁 말기 많은 병력을 잃고 열세에 몰리자 광기에 휩싸인 일본군 지도부는 이런 비인도적 공격을 생각해 냈다. ‘하늘을 돌린다’는 뜻인 가이텐이란 명칭은 당시의 불리했던 전황을 되돌릴 수 있는 획기적인 병기라는 뜻이다.
탈출 장치 없었다... 출격은 곧 사망
세가와는 게이오대를 다니다 학도병으로 징집됐다. 특공대원이 된 것도 자원한 게 아니었다. 상급자는 “특수무기가 생겼다. 어차피 너희들은 모두 자원할 테니 내가 여기서 뽑겠다”며 일방적으로 선발했다.
가이텐은 일본군이 ‘93식3형어뢰’를 개조해 특공 무기로 만든 것이다. 사람이 직접 조종하면 일반 어뢰보다 목표물을 타격할 때 정확성이 높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돌격 전에 수면 밑에서 잠망경을 올려 적함 위치와 속도, 진행 방향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발사각과 시간 등을 계산한 뒤, 잠망경을 내리고 계기판만 보며 계산대로 조종해 나가는 방식이다. 탈출 장치도 없기 때문에 출격은 곧 사망을 뜻했다.
좁은 조종석에 들어가면 무섭고 조종도 어려웠다. 훈련할 때부터 사고로 사망한 대원이 나왔다. 세가와는 화장실에서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나는 무기인데 적은 병사 한 명도 살리려 한다"
어느 날 그는 미군 비행기가 바다에 추락하는 것을 보았다. 튕겨 나온 조종사 위로 다른 미군 비행기가 선회하고 있었다. 세가와는 “우리는 무기 자체인데, 적은 병사 한 명도 구하려고 한다. 그런 나라를 우리가 이길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당시 일본군은 특공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므로 영예로 생각해야 한다고 세뇌했지만, 당사자 생각은 달랐다.
그의 판단대로 전쟁은 일본의 패배로 끝났다. 그때까지 출격 명령을 받지 않았던 세가와는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 상관으로부터는 특공 경험을 ‘완전히 잊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가 후대를 위해 자신의 경험을 세상에 털어놓은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가이텐 훈련을 받은 사람은 히카리 기지 등 총 4개 기지에 있던 1,375명이었다. 이 중 153명이 서태평양 팔라우제도 등에 출격했다. 훈련 중 사고사 등을 포함하면 106명이 목숨을 잃었다. 현재 일본에 남아 있는 가이텐 실물은 도쿄 야스쿠니신사에 전시돼 있는 것이 유일하다. 전사자의 유서와 사진 등을 함께 전시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추모해야 한다’는 취지만 드러냈을 뿐, 젊은이들을 자폭 공격으로 내몬 국가의 책임은 전혀 묻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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