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안국 유치장 체험담들

 

쪽발이도 미개하지만, 조센징은 더 미개하고, 짱개는 더더욱 미개하다. 


https://m.blog.naver.com/1022mandoo/221737195400

중국 주숙등기 안 해서 유치장 간 썰 + 벌금 1000元 냄

사실은 한 두 달은 된 이야기지만 이제 적는 이유는... (수업 듣기 싫어서)

그리고 얼마 전에 파출소에서 전화와서 오랜만에 이때 일이 기억났기에 적는다.

나는 현재 중국에 파견을 나와 있고 한 학기 정도 중국 MBA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오기 전 부터 생각한 게 기숙사는 살기 싫다 였는데, 물론 우리 학교 기숙사는 깨끗한 편이지만...

누가 쓰던 매트리스, 커텐, 화장실, 수 백 명이 같이 쓰는 세탁기가 너무 싫었기 때문에

무조건 외주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다.

집 찾는 건 하루만에 가능했다^~^... 막 지어진 집에 첫 입주자로 들어갔는데 매우매우 순탄했음.

3일 정도는 호텔에 묵었고 9월 4일부터인가 바로 집 계약을 하고 들어갔다.

계약 당시.

"주숙등기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이렇게 물었다. 우리는 외국인이고 주숙등기가 필요한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여기서 잠깐 주숙등기란?

중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24시간 이내에 관할 파출소에서 본인 거주지를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다.

보통 3성급 이상의 호텔은 이를 대행해주기 때문에 일반 관광객은 큰 문제가 없다.

(나는 중국 유치장 경험 이후 호텔 묵으면 습관적으로 주숙등기 해주냐고 물어보긴 함 ㅠ)

또한 기숙사를 사는 친구들도 학교가 대행해주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나처럼 밖에서 자취를 하는 경우는!

본인이 직접 주숙등기를 해야 한다.

주숙 등기에서 필요한 서류는

- 여권(여권 사본과 비자 페이지 사본이 필요한데 어차피 가면 복사 해 줌)

- 집 계약서

- 집주인 연락처, 신분 번호

그리고 집주인이랑 같이 가서 등록하면 끝! 10분이면 끝나는 일이다!


나는 중국에서 주숙등기를 해야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안 하면 벌금을 세게 물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근데 이 놈의 계약자 놈들이...

외국인 주숙등기? 그거 우리 시스템에서 하면 돼! 라고 했다.

몇 번이나 확인하고 물어봤는데 자기네들 시스템이 있다고 함.

이걸 너무 쉽게 믿은 이유가....

내가 계약한 곳은 호텔도 같이 운영하고 있음.

그니깐 건물이 거주지+호텔이 함께 운영되고 있는거임ㅋ...

계약서에는 그 호텔 이름이 적혀 있었고, 지네 시스템이 있다고 하니..

아 호텔에서 주숙등기 해주는건가?

집도 매우 좋고 3성급 이상은 분명하니^^... 아 지네가 알아서 한다는거구나!

(여권 사본이랑 비자 사본 다 복사해가길래~~)

편하네 역시^~^..라고 매우 안심하고 신나게 여행도 다녀왔다.


그리고 여행 일주일 다녀온 이틀 뒤.

파출소 불시 검문에 걸렸다.

계약서는 있는데 내가 주숙등기표가 있을리가?ㅎ

집주인한테 연락하니 얘네는 여전히 태평하다

그거 별 문제 아님^^ 너희 등기했는데? ㅎ

이러고 있고 파출소에서 나온 공안들은 너희 낼 파출소와서 등록해야 해 ㅋ

이러고 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큰 일은 아니었다.

공안들도 그냥 벌금 조금 내면 될거야~ 라고 다들 큰 일 아니라는 듯이 굴었다.


다음 날 아침 바로 파출소로 갔는데^^............

이때부터 큰 실수를 한다.

주숙등기를 늦게 했다면, 무조건 몰랐다고 하세요

억울했음. 벌금 내는 게 너무 억울했음. 나는 주숙등기를 해야 하는 걸 알았고, 중국 법률을 어기려고 한 게 아니라 집주인이 등록해주겠다고 해서 믿었다. 그게 다다. 나는 주숙등기 몰라서 안 한 게 아니다. 알고 있었고 우리가 계약한 곳은 호텔이니깐 된 줄 알았다. 근데 걔네가 안내를 이상하게 한거다.

라고 했는데...

주숙등기 안 한지 10일 넘음 (벌금 1000) + 주숙등기 알고 있었는데 안 함

으로 조서 쓰러 감............................... 유치장으로..................

거기 파출소에는 한국인이 참 많았다. 주숙등기 늦게 해서 다들 벌금 몇 백원 내고 끝나는 사람들..

나처럼 유치장 간 사람은 없었다. 거기서 나만 조서 쓰러 감.

+ 그리고 태평했던 집 주인^^ 때문에 뒤질뻔 + (이게 제일 큰 원인이다.)

공안이 집주인 오라고 계속 전화했는데 전화를 계속 끊음ㅋ...

전화 받고 끊고, 전화하다가 끊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공안이 개 열받아서 지금 당장 오라고 했는데......

어기적 어기적 오는 놈들.. 공안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

걔네도 탈탈탈 털리고 영업 정지 며칠 받음.^^.....

걔네가 태도 짜증나게 해서 우리도 엮여서 같이 벌 받은 거임^^.........

나는 중국 유치장을 들어간 뒤에 진짜 민주주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나라처럼 어디 앉아서 쓰는 게 아니라 진짜 들어가자마자

내 정보 다 등록하고 소지품 다 뺏기고 몸 검사하고(나중에 마약 검사랑 다 함 ㅠ 앞, 옆 사진 다 찍고 ㅠㅠ 범죄자 처럼)

들어가면 함부로 나올 수 없는 곳에 들어가서 조서를 쓰기 시작했다.

나도 저 의자에 발이 묶여서 묻는 말에 대답해야 했음

뭐 언제 중국 들어왔고, 언제 나왔고, 언제 집 계약했고

나는 주숙등기 알고 있었고, 집주인 때문이다~ 이런 거.

사실 그러고 끝인 줄 알았다. 저게 끝이었으면 글도 안 썼음. 근데 내 정보가 처리되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됨

(진짜 뭐 때문에 그렇게 기다린 줄 모르겠음.)

조서 쓰고 나오면 끝난 줄 알았는데 잠깐 기다리래. 저기 보면 공안이 감시하고 벽보고 서있는 것처럼.

물론 머리에 저건 안 씀. 근데 내 옆에는 전부 저런 범죄자들임. (막 입에 뭐 물고 있는 사람도 많았음 ㅠㅠ)

같은 취급 받고 나도 계속 서 있음.

한 30분 기다리면 되나? 싶었는데 최종적으로는 2시간 반 기다림.

나는 그렇게 큰 범죄가 아니라, 그냥 주숙등기 늦은건데^^...?생각하고 공안 잡고 몇 번 물어봄.

아니 내 일은 언제 처리돼? 내가 심각한 범죄야? 왜 일이 처리가 안 돼?

걔네 대답 : 니가 나한테 물어볼 수 있는 건 화장실 가도 되냐, 그거 뿐이야.

라고 함

여기서 쓰니깐 별 일 아닌 거 같지만...... 나 사실 저기서 울었음.

저기 구조가 햇빛이 거의 안 들어오고 외부랑 완전 단절되어 있음. 들어오고 나가는 문은 카드 안 찍으면 못 나감. (공안이 데리러 와서 나가지 않는 이상 혼자서는 절대 못 나감)

외국에서, 특히 중국 저런 곳에서 감시 받으면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하고 일처리가 되는지 언제 나갈 수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솔직히 겁이 진짜 났음 ㅠㅠ 괜히 진짜 어디 끌려가도 모를 일인데 주변 사람한테 알릴 수도 없음.

소지품은 다 뺏겼지... 시계도 못 보지... 공안들은 다 감시하고 있지...

내 앞에 사람은 유치장에 있다가 진짜로 끌려가는 것도 봤음...

언제 나갈 수 있냐고 물어도 알려주지도 않고, 오히려 욕 먹음^~^... 2시간 반 동안 내가 오늘 안에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아니 어디 딴 데로 잡혀가는 거 아닐까, 같은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다 들었음.

결론적으로 아침에 갔는데 점심 다 돼서 나왔음^^................... 8시 반에 가서^^........

울 만 했따.....

쨌든 지나가지 않을 거 같은 끔찍했던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또 어디 끌려가서 사진 찍음

앞에 사진, 옆에 사진, 혀에 막대기 넣고 마약 검사, 지문 10손가락 +손바닥까지 전부 다 들고 감.

솔직히 진짜로 이렇게 까지 해야 되냐 따지고 싶었는데........ 거기서 따졌다가는 못 나갈까봐

이렇게 일 처리해주는 게 어디야 생각하고 하라는대로 다 함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게 끝이 아니라 다음 날 벌금 1000원도 냄^^........... (저 날 유치장에서 이것저것 다 하다보니 은행 시간 끝나서^^.... 다음 날 파출소 또 가서 또 냄) 걔네가 나보고 짜이찌엔이랬는데 부야오짜이찌엔이라고 하고 나옴^^..............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울면서 보냈음............................ㅜㅜㅜㅜㅜ

우리나라로 치면 이사한 거 등록 안 했다고 이런 취급 받은거임^^....

일처리 끝나자마자 너무 힘들고 지쳐서 두부 대신 하이디라오 먹으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중국 오자마자 2주 정도만에 너무 힘든 경험을 했음.

다시는 보지 말자 구둔파출소.

얼마 전에 전화와서 개 놀랐지만, 그냥 정보 바뀌었나 확인하는거라서 다행이었다.

주숙등기는 무조건 하시고, 만약 늦었다면

"???????????? 에????????????????? 주숙등기 해야 해?!!!

몰랐어!!!!!!!!!11 오마아갓! "이러세요...

저처럼 주숙등기 알고 있었는데 집주인이 호텔에서 처리할 수 있다고 해서 안 한거야^^

라고 하면 끌려갑니다....

* 근데 너무 슬픈 건...

이러고 이틀 뒤에 어금니 깨짐... 피자 먹다가 ㅜㅜ + 귀 부음 ㅠㅠ

그래서 병원 투어함ㅎ 이 소식을 들은 친구가 나보고 브이로그를 찍으라고 했다.

브이로그 제목 : 오늘은 중국 유치장을 다녀왔어요!

다음 날 제목 : 오늘은 어금니가 깨졌네요~

며칠 뒤 : 갑자기 중국에서 치어리더 하기!

그리고 며칠 뒤 : 중국 학식 받자마자 엎은 사람 나야 나~

(제목은 다 어그로가 아니고 실제 일어난 일들...^...^....)

내 인생 왜 이런거죠.



https://ppss.kr/archives/189694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북미 정상회담 취재 과정에서 핑샹 공안국 파출소 유치장에 억류된 경험을 글로 적어 소개하는 글입니다. 굉장히 특수한 경험이라 기록으로 남깁니다.


  • 일시 : 3.1 15:30 ∼ 3.2 19:00
  • 장소 : 중국 광시(廣西) 장족자치구 핑샹(憑祥) 공안 파출소

 

희귀한 경험

살다 살다 별 경험을 다 해 본다지만, 중국 공안국 유치장에 들어가는 경험은 정말 특별(?)했다. 중국에서 취재를 하다 보면 가끔 공안과 마찰을 빚는 때가 있다. 대부분 한국에서 기자로서 편하게 취재를 하다가 강력한 통제 사회인 중국에 와서 양자 간 온도 차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그런데 베이징 같은 경우는 외신 기자가 공개된 장소에서 취재할 권리기 있기 때문에 보통 2~3시간 정도 구류됐다가 풀려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변경지역인 핑샹은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번에 핑샹에서 사달이 난 것은 다 내 판단 미스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매체들 중 가장 핑샹에 빨리 왔기 때문에 현지 분위기를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열심히 세운 취재 계획을 갑자기 변경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원래 계획은 핑샹에서 집중 감시 대상인 나는 난닝에 남고, 영혜 혼자서 핑샹에 잠입하기로 합을 맞췄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내 촉이 자꾸 같이 핑샹에 갔다가 나와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아무래도 영혜 혼자 보내기에는 핑샹 상황이 너무 위험할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난닝에서 핑샹으로 들어가는 변경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마자 공안의 검문을 받게 됐다. 사실 이번 일의 근본적인 원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담배 피우는 모습을 난닝 역에서 촬영한 일본 TBS 때문이다.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 기자가 들고 있는 것이 카메라가 아니라 총이었다면 김정은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었던 엄청난 의전과 경호 실수인 셈이다.

당연히 난닝과 핑샹 등 지역 공안들에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보통 간단하게 신분증 확인을 하고 방문 목적을 물을 때 “관광”이라고 답하면 보내주던 공안들이 조사를 상당히 디테일하게 했다. 게다가 잠시 뒤에는 사복을 입은 한 간부급 인사가 와서 추가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알게 됐지만, 이 사람은 중앙에서 내려온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간부였다. 중국 국가안전부는 한국의 국정원과 비슷한 조직으로 국가의 안보나 기밀과 관련된 위반행위를 단속한다.

처음에 이 온화한 인상의 간부는 나에게 공안과 비슷한 질문을 했고, 나는 으레 대답하는 “관광”이라고 했다. 그 인사는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가방 안 카메라는 무엇인가?”라고 물었고, 영혜와 나를 분리해 따로 심문하기 시작했다.

 

시시비비

영혜를 분리하자마자 내 머리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영혜가 나와 같은 사고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제대로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출장 출발 전에 비상상황이 나면 무조건 내 통역 겸 가이드라고 말하라고 했는데 그걸 기억할까? 온갖 생각을 하다가 여기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시시비비를 따져봤다.

‘내가 여기 온 것이 법규를 위반한 것인가’부터 생각을 시작했다. 사실 중국 정부는 국가급 지도자가 방중 할 경우 별도의 취재허가를 받아야만 현장 취재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곳은 내 주 활동무대인 베이징이 아닌 중국과 베트남의 접경지대다. 접경지대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매우 엄격히 법을 집행한다.

결론은 ‘내가 잘못했다’였다. 이때부터 나는 그냥 초지일관 반성 모드로 들어갔다. 솔직하게 김정은을 취재하러 왔고, 사진을 찍으려거나 위해를 가하려고 한 게 아니라 그가 진짜로 이동하는지 또 현지 분위기가 뭔지를 보러 왔다고 답했다. 영혜도 이미 영혜의 이전 방문 기록과 호텔 투숙 기록을 공안이 들이밀자 영리하게 나의 통역으로 따라왔고, 전에도 한번 왔었다고 진술을 한 상태였다.

내가 순순히 ‘죄’를 인정하자 그들의 태도도 한껏 유순해졌다. 그리고 핑샹 시내로 가서 간단한 조사만 받으면 바로 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시간이 오후 6시 30분 께였다. 나에게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었고, 또 영혜를 보호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공안국에 갇히다

핑샹 검문소에서 처로 10분가량 달려 공안국에 도착한 뒤 우릴 내려놓은 국가안전부 사람은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공안들은 우리를 조사하지도, 또 뭔가를 묻지도 않고, 그저 소지품을 압수한 뒤 유지장 내에 우리를 앉혀뒀다.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났을까? 젊은 공안들이 영혜와 나를 분리해 조사를 시작했다. 영혜가 먼저 조사를 받았는데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왜 두 번이나 이곳에 왔는지와 방문 목적이 김정은 취재라고 하는데 영혜의 역할은 무엇인지 이런 류의 질문이었던 듯했다.

조사는 개인당 한 시간 남짓이었고, 조서도 빠르게 작성됐다. 이제 시간은 오후 10시가 다 돼 갔고, “나는 간단한 조사만 받고 풀려 날 것이다”라고 말한 그 인사에 대해 약간의 배신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를 감시하는 공안에게 그를 불러달라고 했다. 하지만 우리가 조서에 인장을 다 찍을 때까지도 그는 보이지 않았다. 거의 오후 11시가 다 돼서야 그는 우리 앞에 우리가 쓴 조서를 들고 나타났다.

나는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졌고, 그는 “지금 상부에서 검토 중”이라는 말과 함께 우리의 휴대전화를 소지품 수거함에서 꺼내 비밀번호를 물어 가져 갔다. 영장도 없이 저런 짓을 잘도 하는구나 생각이 들면서도 정당성의 우위가 있는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부의 결정은 생각보다 늦어졌다. 우리는 서늘한 유치장에 놓인 나무의자에 앉아 고된 벌을 서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를 이곳에 데려온 이들 중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영혜는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이미 멘탈이 나간 상태였고, 나는 그런 영혜를 보며 내 판단 미스가 이런 일을 초래했다며 속으로 자책했다. 다만 겉으로는 미소를 잃지 않고, 영혜에게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솔직히 국가안전부 조사는 나도 처음 받아 보는 데다가 기존과 달리 구류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차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영혜의 상태 악화

이번 경험에서 내가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영혜의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새벽 비행기를 타고 난닝 공항에 도착해 바로 김정은 위원장이 지날 난닝 역 주변에 숙소를 정해 두고 바로 핑샹에 온 터였다.

당연히 식사는 기내식 한 끼가 전부였고, 영혜는 여성들만이 겪는다는 고통까지 겹친 상태였다. 나는 속으로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으려 꽤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혜의 상태는 계속 심해져만 갔다.

결국에는 초기 조사에 이어 두 번째 조사가 끝나자마자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공안들도 놀랐는지 어디선가 죽을 구해와 영혜에게 먹였다. 죽을 먹으면서도 감시는 계속됐고, 영혜에 대한 추가 조사도 이뤄졌다. 추가 조사를 마친 영혜는 이미 얼굴이 백지장같이 하얘져 있었다.

나는 우리가 대기하던 유치실 바깥쪽에 있지 말고, 유치실 안에 놓인 콘크리트로 된 침상에라도 누워 있으라고 영혜를 타일렀다. 처음에는 거부하던 영혜도 도저히 앉아 있지 못하겠는지 습기가 가득한 유치장 이불을 콘크리트 침상에 깔고는 누워서 잠이 들었다. 이때 시간은 이미 새벽 2시를 넘어섰다.

 

단식

영혜가 죽을 먹을 때 공안들은 나에게도 도시락을 건넸다. 하지만, 여기서 밥을 먹으면 뭔가 숙이고 들어가는 것 같아 밥을 거부했다. 그리고 혹시나 밥을 먹는 동안 영혜가 어디론가 이송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치실 앞을 지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사실 배가 고프지도 않았고, 뭘 먹으면 오히려 속이 더부룩할까 봐 도시락을 먹지 않았다. 게다가 거기에 무엇을 넣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당시 내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TBS 사건으로 바짝 독이 오른 공안이 우리에게 어떤 죄를 뒤집어 씌울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시간이 새벽을 넘어 아침으로 향해가자 우리도 지쳤지만, 우리를 감시하는 공안도 지치기 시작했다. 한숨 잠을 잔 영혜는 다행히 기력을 찾았고,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상황을 영혜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내 카메라, 내 컴퓨터, 영혜 비디오카메라에 있는 영상을 지워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 카메라는 마음씨 좋은 공안이 감시를 할 때 내가 옷을 꺼내는 척하면서 카메라를 켜서 카드를 포맷시켰다. 그리고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던 지난 2년간 취재했던 사진도 드라마를 좀 보고 싶다며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컴퓨터를 켠 뒤 눈물을 머금고 삭제했다.

여기까진 성공했으나 비디오카메라는 CCTV 두 대와 감지자 2명이 있는 상황에서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운에 맡기기로 하고 영혜와 나는 다시 면벽 수행과도 같은 유치장 대기를 재개했다. 이때 ‘선을 넘어 생각하다’는 시간을 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4평 남짓 공간이 주는 두려움

영혜와 내가 갇힌 유치장은 진짜 범인을 가두는 유치실을 제외하면 화장실 하나와 책상 하나 죄수를 결박하는 의자 하나 나무 의자 4개 정도로 4~5평 정도 된다. 유치실 두 개가 오른편에 병렬로 마련돼 있고, 이를 지키는 공간이 우리가 대기하던 장소다.

유치실 안쪽에는 오픈된 화장실이 별도로 있고, 콘크리트 침상과 이불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현재 핑샹은 우기기 때문에 바닥에도 습기가 가득할 정도로 습했는데 새벽에는 한기가 올라와 뼈가 시렸다.

또 왼편에는 취조실이 별도로 마련돼 있지만 우리가 접근할 수는 없었다. 그곳에는 컴퓨터와 녹음 장비, 그리고 안에서 밖이 안 보이는 유리와 그 건너에 별실이 있었다. 이 취조실은 평소에는 변호사 접견실로도 사용되는 것 같았다.

사실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좁은 4평 남짓한 간수 공간에서 책을 보다가 유치실 안에 있는 콘크리트 침상에 가서 눕는 것 외에는 없었다. 유치실에는 이불이 있었지만, 너무 습기가 많아 곰팡내가 풀풀 풍길 정도여서 나는 도저히 누울 수가 없었다.

또 심리적으로도 정기적으로 영혜와 나를 조사실로 데려가 조사를 하는 것 외에는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통에 그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사람을 위축시켜 그곳에 누우면 꼭 내가 혐의를 인정하는 것 같아 싫었다.

더 걱정인 것은 나야 경찰청을 출입하면서 수도 없이 유치실을 다녀서 익숙하지만 영혜는 정말 크게 겁을 먹고 있다는 것이었다. 몸 상태까지 안 좋은 데다가 혹시나 국가보안법 같은 법률을 위반했다고 혐의를 씌우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도 태연한 척 잠을 청해 보기도 하고 의자에 발을 올리기도 하고, 별짓을 다 했지만,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고, 4면의 벽이 점점 옥죄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만약에 무슨 일이 생기면 록수가 여기까지 면회 오다가 짜증을 엄청 내겠지? 애들은 멀어서 오지도 못할 텐데 라는 쓸데없는 잡생각까지 하게 됐다.

원문: 돼지터리언의 브런치

 

 

4시 반 그가 왔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모든 조사가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그가 나타났다. 핑샹 공안국의 가장 높은 사람인 ‘주 경관’이었다. 부하들은 그를 주 경관이라 불렀고, 해병대 전우회같이 생긴 단단한 인상의 그는 눈빛부터가 후덜덜했다. 그는 우리를 보더니 나를 먼저 지목해 조사실로 데려갔다.

조사실을 보니 비디오카메라가 설치돼 있었고, 사진을 찍는 중간 간부 한 명도 있었다. 또 참관인으로 우리를 감시하던 중간 간부도 내 옆자리에 자리를 마련하고 앉아 있었다. 조사는 이전 조사와 달리 굉장히 위압적으로 진행됐다. 내가 영혜와 입을 맞추기 쉽게 통역으로 영혜를 불러 달라고 했으나 그냥 알아들을 수 있도록 진행할 테니 괜찮다는 답만 돌아왔다.

조사 내용은 이전과 같았고, 주로 내가 뭔가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하려 했는지를 자백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누가 당신 여기에 보냈냐?’ ‘서울 본부에서 가라고 한 것인가?’ ‘왜 두 번이나 이곳에 왔나?’, ‘취재 법규를 위반한 사실을 아는가?’ 등등 교묘하게 나를 함정에 빠뜨릴 질문들이 많았다. 밤새 조사를 받은 데다가 약간 졸리기까지 했던 나는 냉수를 달라고 한 뒤 정신을 좀 차리고 요리조리 함정을 피해 조사를 받았다.

주 경관은 나에게 “당신은 매우 중대한 기밀을 취재하려 했다”면서 “당신은 이 점을 이해했는가?”라고 물었다. 그의 질문에 “나는 단지 김정은이 진짜 가는지 또 현지 분위기가 어떤지 보러 왔을 뿐이다”라고 또박또박 대답을 반복했다.

그는 마지막에 “이 일을 복잡하게 끌고 가서 문제 삼을 수 있지만, 당신이 김정은이 간 뒤 여기서 나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나는 이 일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딜을 해 왔다. 나도 이 정도면 받아들일만하다고 판단해 취재를 포기하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조사가 끝나자 이 주 경관이라는 인사는 나에게 A4 용지로 프린트된 ‘외신기자 취재 법령’을 한 부 건넸다. 물론 이 장면은 다른 공안이 열심히 사진을 찍으며 기록하고 있었다. 우리 둘이 악수하는 장면도 찍었고, 옆에서 조서를 작성하던 경관, 참관인까지 내 주위에 서서 방긋 웃는 표정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나는 무슨 동물원에 갇힌 코끼리 같았지만 정당성의 우위와 영혜의 안위를 결정할 그들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조사가 다 끝난 뒤에도 주 경관은 자신이 관용을 베푼 것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고, 나에게 훈계조로 취재 주의사항을 읊어댔다. 내가 인상을 쓰면 그는 전가의 보도처럼 “이곳은 변경지역이다. 작은 일도 큰일이 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놔 내 표정을 방긋 웃게 돌려놓았다. 나에 대한 조사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 영혜에 대한 조사는 매우 간단하게 끝이 났다.

 

여유로운 감방생활

모든 조사가 끝나자 이제 처분대로 기다려야 하는 인내의 시간이 다가왔다. 주 경관은 우리가 필요한 것은 뭐든지 가져다주라는 말을 남기고, 공안국을 떠났다. 나는 주 경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영혜가 누울 새 간이침대와 새 이불을 달라고 했다. 그들은 이곳의 나폴레옹과 같은 주 경관의 어명이 있어선지 이전과 달리 빠릿빠릿하게 나무로 짠 간이침대와 새 이불을 구해왔다.

긴장이 좀 풀렸는지 허기가 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죽을 좀 가져다 달라고 했다. 물론 해삼이 들어 있는 죽을 좀 달라고 했다. 그들은 군말 없이 내 부탁을 들어줬다. 죽을 먹은 우리는 새벽 6시 30분이 돼서야 간이침대에 몸을 뉘었다. 새 침대는 콘크리트 침상에 비하면 매우 과학적으로 만든 에이스 침대 같았다.

잠을 자고 일어난 시각은 다음 날 오전 10시께 아침을 먹겠느냐고 한 경관이 우리에게 물었다. 그때 주 경관이 우리를 찾아왔다. 그는 밤새 불편한 점이 없는지 필요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아침으로 죽 말고 요우탸오와 떠우장이 먹고 싶다고 말했고, 주 경관은 곧바로 부하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잠시 뒤 한 경관은 요우탸오와 떠우장에 만두까지 챙겨서 아침을 가져왔다.

약간 재밌기도 하고, 아마도 내가 이들에게 큰 실적이 될 거 같기도 해서 나는 어디까지 해주나 시험을 해봤다. 아침을 먹은 뒤 우리를 감시하던 한 여경에게 혹시 여기에 과자가 있냐고 물었다. 그 여경은 공안국 앞에 마트가 있다고 답했고, 그럼 좀 사다 줄 수 있겠느냐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여경은 자기 부하를 시켜 과자를 좀 사 왔다.

휴대전화를 조금씩 쓸 수 있는 것도 이때부터였다. 나는 일단 회사와 록수에게 내 상황을 알렸고, 대략 오후 3, 4시께 풀려날 것이라고 메시지를 넣었다. 그리고 나자 정신이 좀 온전해졌고 머릿속도 맑아졌다. 그제야 이곳이 어딘지 궁금해졌다.

우리를 감시하는 경관은 2~3시간 텀으로 바뀌었는데 그중 인상이 좋은 한 경관에게 출장 때 가져간 휴대용 혈압계를 보여주며 혈압을 재주겠다고 접근해 이곳의 위치가 철도와 가깝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 뒤 다시 점심시간이 찾아왔고, 나는 “이 지역 특산 요리를 먹고 싶다”고 요구했다. 공안들은 그렇다면 거위로 만든 차슈인 차샤오어(叉??)를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영혜와 나는 새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를 했다. 그러면서 한쪽 귀는 철도 쪽으로 안테나를 세워뒀다.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열차가 지나갈 때는 상하행선 모두 열차가 통제되며, 기차 소리가 나면 틀림없이 북한 특별열차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점퍼 주머니에 숨기고 이불을 말아 덮은 뒤 감시 공안의 반대 방향으로 돌아누웠다. 그리고 2시 30분께 기차 소리를 들었다. 곧바로 베이징의 선배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이 내용은 바로 속보 기사로 처리가 됐다. 그가 갔다는 것과 출장 와서 뭐라도 일을 했다는 사실에 나는 마음의 평안을 다시 찾았다.

 

또다시 위기를 맞은 영혜

환경개선으로 잘 버텨오던 영혜가 오후 4시가 넘자 다시 무척 힘들어했다. 낯선 환경에 몸까지 안 좋으니 컨디션이 확 떨어졌던 모양이다. 영혜는 나한테 “지금 정신이 무너질 거 같아요”라는 이상스러운 말을 하고 고개를 책상에 박고 잠을 청했다. 답답한 공간에 너무 오래 있어 생기는 급성 공황장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영혜는 불안해했다. 이미 김정은 특별열차도 지나갔겠다 나는 승부수를 띄웠다. 우리를 감시하던 여경에게,

“영혜가 너무 걱정돼 더는 못 기다리겠다. 열차가 지난 지 2시간이 넘었는데 우릴 안 보내주는 것은 약속 위반이다. 그리고 외신기자를 증거 없이 하루 이상 구금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다. 대사관 통해 문제를 제기하겠다”

라고 하자 그는 상사에게 이 내용을 그대로 보고했다. 잠시 뒤 넘버 2인 여경이 우리를 찾아왔고 우리는 진피 보이차와 동남아 과일이 한상 차려진 다과상에 초대를 받았다. 넓은 공간에서 차와 과일을 마시고 먹으면서 영혜는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여유를 찾은 것은 공안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우리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특별만찬을 준비했다. 식탁에는 양광(兩廣·광둥과 광시) 음식이 한상 떡하니 차려져 있었다. 여경은 식사를 마치면 난닝 역까지 가는 차를 공수해 주겠다고 친절까지 베풀었다. 음식은 정말 맛있었다. 영혜도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표정이 밝게 돌아왔다.

 

복기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유치장에 누워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공을 들여 세운 취재 계획을 내 즉흥적인 판단이 망쳤다는 것이 이번에 제일 아쉬운 부분이었다. 다만, 이미 공안이 철저한 검문검색을 한 것과 영혜가 지난번 왔을 때 호텔 복도에서 일본 매체와 접촉한 정황까지 알고 있었던 것, 또 지난번 방문 때 우리가 숙소를 3곳이나 돌았던 것도 그들이 이미 파악한 점 등으로 미뤄 영혜가 혼자 핑샹에 왔어도 붙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게다가 나 없이 영혜 혼자 붙잡혔다고 생각하면 상상만으로 끔찍하다. 영혜는 틀림없이 이성을 잃고 무너졌을 것이다. 거기에 우리가 풀려나기 한두 시간 전에는 주요 기차역에 숨어 있던 외신 기자들이 공안에 발각돼 붙잡혔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왔다.

결론적으로 내가 난닝에 남았어도 나는 나대로 난닝에서 조사를 받고, 영혜는 영혜대로 핑샹에서 조사를 받아 더 상황이 악화했을 것으로 보인다. 영혜는 이번에 체력도 부족한 상태에서 큰일을 겪어 정말 힘들어했다. 내가 좀만 더 영혜를 믿고 혼자 보내거나 나와 따로 차를 타고 핑샹에 진입했다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었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가정이니 확신할 수는 없다.

처음엔 원망스러웠던 핑샹의 공안들에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들도 김정은의 출현이 주는 충격과 근무 부담이 꽤 컸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우리가 필요한 것을 공수해줬던 것은 감사하다. 다만 과격한 업무 집행과 밤샘 조사는 다시 생각해도 조금 과한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은 ‘운이 좋았다’라는 생각이 든다. 결과야 어찌 됐든 이번 사건은 국가안보와 관련된 위반 사항이 포함됐다. 지난해 일본의 한 광산 회사 연구원이 산둥의 광산 개발 합자를 위해 지질 환경 조사를 나왔다가 중국의 군사시설을 촬영한 것으로 의심이 된다는 혐의를 받아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었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그들의 면을 세워주고 탈출한 것은 잘한 선택 같았다.

여담으로 김정은의 담배 피우는 장면을 찍은 TBS의 카메라 스트링어는 베이징 공안국의 조사를 받느라 3월 1일 하루 종일 연락이 두절됐다. 2일 사무실에 출근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회사는 중국 전역에 배치한 특파원들을 철수시켰다. 그 과정에서 창사에 가있던 선양 특파원 후배도 공안에 붙들려 강제로 호텔을 옮겨야 했다. 당분간 타지 취재는 주의를 더 기울이고 영혜와는 동행보다는 영혜를 믿고 별도로 움직여야 할 듯하다.

핑샹 공안국 앞에서 택시를 타고 떠나오면서 우리를 마중하는 공안국 사람들과 악수를 나눴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우리는 우리의 일을 했을 뿐이니 억하심정 같은 것은 남지 않았다. 그리고 3.1절에 이런 고초를 겪어선지 정말로 그 엄정한 일제 치하에 더 엄혹한 환경에서 이런 일을 겪었을 순국선열을 생각하니 다시 한번 그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가 아무리 이성적인 척 일본을 무작정 미워하지 말자고 외쳐봐야 그 당시 피눈물을 흘렸을 독립투사에게는 욕지거리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그분들 덕분 아니겠나. 물론 나는 일본 문화를 사랑하고, 그들의 꼼꼼함과 정갈함을 좋아한다. 다만, 일본이 진정으로 사과를 하지 않는 이상, 최소한 독일만큼이라도 성의를 보이지 않는 이상 이 분야에서만큼은 그들을 향한 미움을 거두긴 힘들 것 같다.

원문: 돼지터리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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