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 연재 심령만화 웹툰 - 언제쯤 만들어질까?
1. 단다단에 영감을 받아
2. 미신(풍수, 사주, 신점)으로 기업, 나라 망친 사례들: 수문제, 한보그룹, 라스푸틴, 명성황후와 고종 / 사주쟁이, 관상가 도움을 받은 사례들: 삼성 이병철, 대만 장제스 등 / 한편, 현대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신비한 신비들: 대만 용산사, 중국 베이징 라마불교 사찰 용허궁, 일본 도쿄 치요다구 타이라노 마사카도 무덤에 훼손을 가하려고 해도 어떤 불가사의한 힘 때문에 빈번히 저지된 현상, 박정희 광화문 현판 교체 후 벌어진 액운들, 1917년 파티마의 기적, 프리드리히 대왕이 죽자 시계가 멈춘 현상 (칼 융도 놀라움을 표함), 영화감독 김기영 감독이 화재로 자신이 죽을 것을 알고 아들에게 쓴 기묘한 유언장, 고우영이 사망한 날에 후배 이정문의 집에 걸어둔 고우영의 액자 그림이 떨어진 현상, 민영환의 자결 1년 후 그의 자결했던 방에 대나무가 돋아난 현상, 아로가 곤 사토시 죽음 몇일 전에 그의 죽음을 암시하는 꿈을 꾼 것, 하이킥 배우 서민정의 미래를 모두 정확히 맞춘 무속인 등
미신과 비과학(환관, 명리, 무당 등)으로 망조가 든 삼국 역사
3. 이에야스
역사적·종교적 맥락에서 보면 "이에야스는 실제로 일본을 지키는 '신'이 되었고, 그의 시스템이 수백 년 뒤 일본의 버블경제(번영)를 낳은 토대가 되었다"고 아주 진지하게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역사적 인과관계를 세 가지 포인트로 짚어드리겠습니다.
1. 진짜 '신(神)'이 된 이에야스: 동조대권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사후에 조정으로부터 '동조대권현(東照大權現, 도쇼다이고엔)'이라는 정식 신호(신으로서의 이름)를 받았습니다. '동쪽에서 비추는 위대한 신의 화신'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의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에서는 위대한 인간이 죽으면 신(우지가미)이 된다고 믿습니다. 이에야스는 단순한 무덤에 묻힌 게 아니라 닛코 동조궁이라는 거대한 신사에 '동쪽의 수호신'으로 좌정한 것입니다.
실제로 에도 시대의 쇼군들과 전국의 다이묘들은 매년 닛코를 참배하며 "신이 되신 이에야스 공이 지켜주셔서 일본에 전쟁이 없고 평화롭다"고 믿었습니다. 역사적으로 그는 분명히 '신'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2. 250년의 평화(Pax Tokugawa)가 만든 '대박의 기초'
이에야스가 만든 에도 막부 시스템은 일본 역사상 유례없는 250년간의 대평화(팍스 토쿠가와)를 가져왔습니다. 이 평화가 수백 년 뒤 일본 경제가 폭발하는 기초 체력을 만들었습니다.
참근교대제와 전국 도로망: 이에야스의 후손들이 정립한 참근교대제(다이묘들이 정기적으로 에도를 오가야 하는 제도) 덕분에 전국에 도로망, 숙박업, 물류가 엄청나게 발달했습니다.
상업 문화의 폭발: 전쟁이 사라지자 무사(사무라이) 대신 상인(초닌)들이 경제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오사카는 '천하의 부엌'이 되었고, 에도(도쿄)는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당대 세계 최대의 대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즉, 자본주의가 싹틀 수 있는 완벽한 토양을 이에야스가 깔아준 셈입니다.
3. 에도(도쿄)의 저력과 버블경제의 연결고리
1980년대 일본의 버블경제는 "도쿄 땅을 다 팔면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도쿄의 부동산과 금융이 중심이었습니다.
이 '도쿄'라는 도시의 가치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이에야스입니다. 그가 1590년 처음 에도에 들어왔을 때, 그곳은 끝없는 갯벌과 갈대밭뿐인 시골이었습니다. 이에야스는 대규모 간척 공사를 하고 물길을 돌려 에도를 최고의 명당이자 대도시로 재창조했습니다.
결국 이에야스가 닛코에서 정북쪽(북극성 자리)을 바라보며 지키고자 했던 도시 에도가 오늘날의 '도쿄'가 되었고, 그 도쿄가 축적한 수백 년의 부와 인프라가 폭발한 정점이 바로 1980년대의 버블경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에야스가 진짜 도술을 부려 버블경제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가 닛코산에 신으로 누워 도쿄를 정조준해 준 덕분에 일본이 수백 년간 부를 축적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과 버블)까지 갈 수 있었던 역사적 스노우볼이 굴러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야스의 유언대로 그는 정말 도쿄를 지키는 신 노릇을 톡톡히 한 셈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도쿄) 선택과 개척은 ‘풍수지리적 치밀함’과 ‘철저한 냉전적 생존 전략’이 결합한 역사상 최고의 도시 계획이었습니다.
교토나 오사카 같은 천하의 명당을 두고, 당시로서는 버려진 땅이었던 에도를 선택해 대도시로 재창조한 비화를 풍수지리와 역사적 배경으로 나누어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1. 에도 개척에 풍수지리(음양오행)의 영향이 있었을까?
"네,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에야스는 에도를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풍수지리적 무적의 요새'로 설계했습니다."
이에야스는 당대 최고의 천재 승려이자 풍수지리·음양도의 대가였던 천해(텐카이) 대승정을 전면에 내세워 에도 성과 도시 전체를 풍수학적으로 뜯어고쳤습니다.
① 사신상응(四神相應)의 완벽한 매칭
풍수지리에서 가장 이상적인 도읍의 조건은 동서남북을 네 가지 신수(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지켜주는 땅입니다. 에도는 자연 지형이 이 조건에 절묘하게 맞았습니다.
북(현무): 든든한 등받이가 되어주는 후지산과 고주 산지
남(주작): 넓게 열려 물류와 재물이 모이는 에스(에도) 만 (지금의 도쿄만)
동(청룡): 흐르는 물줄기인 스미다강과 에도강
서(백호): 큰 도로망이 뻗어 나가는 도카이도 평야 지대
② 귀문(鬼門)을 막는 종교적 방어막
풍수에서 북동쪽은 귀신과 재앙이 들어오는 불길한 방향인 ‘귀문(鬼門)’이라 부릅니다. 이에야스와 텐카이는 에도 성의 북동쪽에 거대한 사찰인 칸에이지(寛永寺)를 짓고, 우에노 언덕을 조성해 귀문을 철저히 봉쇄했습니다. (이는 교토의 귀문을 막기 위해 북동쪽에 히에이산 엔랴쿠지를 둔 것과 똑같은 벤치마킹이었습니다.)
그리고 앞선 답변에서 말씀드렸듯, 사후에 자신은 에도의 정북쪽(북극성 자리)인 닛코에 묻힘으로써 영혼까지 풍수적 방어벽으로 활용했습니다.
2. 왜 교토, 오사카, 나라가 아닌 '도쿄'였을까?
사실 1590년 처음 에도로 갈 당시, 이에야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그의 라이벌이자 당시 천하인 투톱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강제 명령(국토 개역) 때문이었습니다.
① 히데요시의 덫: "황무지로 가라"
당시 이에야스는 오늘날의 나고야·시즈오카 일대(고단한 꿀땅)를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에야스의 세력이 너무 커지자 부담을 느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0년, 조정을 압박해 이에야스의 영지를 강제로 몰수하고, 대신 방금 막 평정된 동쪽 변방의 간토 평야(에도)로 이사를 가라고 명령합니다. 말이 좋아 영지 교환이지, 실제로는 "오래된 문화 중심지인 간사이(교토·오사카)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 갯벌 구석으로 가서 평생 땅이나 파고 조용히 살아라"는 고도의 유배이자 숙청이었습니다.
② 이에야스의 역발상: 간사이(교토·오사카)의 치명적 약점
하지만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해 천하를 쥔 후에도, 이에야스는 굳이 교토나 오사카로 근거지를 옮기지 않고 자신이 개척한 '에도'를 끝까지 고집했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냉철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교토(京都)를 거부한 이유 (천황과의 거리두기): 교토는 천황과 오래된 공가(귀족) 세력, 그리고 수백 년간 썩은 기득권의 중심지였습니다. 교토에 막부를 세우면 천황의 간섭을 받거나 조정의 정치 공작에 휘말릴 위험이 컸습니다. 이에야스는 정치와 종교·상징(교토의 천황)을 철저히 분리하고, 실질적인 군사·경제 권력은 멀리 떨어진 에도에서 독점하고자 했습니다.
오사카(大阪)를 거부한 이유 (도요토미의 잔재): 오사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세운 난공불락의 오사카 성이 있었고, 상인들과 민심이 여전히 도요토미 가문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굳이 적의 본거지에 들어가 리스크를 감수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나라(奈良)를 거부한 이유 (과거의 유물): 나라는 이미 오래전에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잃은 거대한 사찰 중심의 고도시였기에, 새로운 시대를 열 군사 막부의 기지로서는 부적합했습니다.
③ 에도가 가진 숨겨진 사기적 포텐셜: '간토 평야'
히데요시는 에도를 갯벌 시골이라며 무시했지만, 이에야스는 그 뒤에 펼쳐진 일본 최대 크기의 평야인 '간토 평야'의 잠재력을 보았습니다. 교토와 오사카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도시가 확장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에도는 대규모 치수 공사(도네강의 물길을 동쪽으로 돌리는 '도네강 동천 사업')와 간척을 성공시키자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농경지와 대도시 부지가 확보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망하게 하려고 에도라는 늪지대로 보냈지만, 이에야스는 풍수지리적 비보(치유)와 천재적인 토목 공사를 통해 그곳을 일본에서 가장 안전하고 거대한 대지형으로 뒤바꿔 놓았습니다. 천황의 간섭을 피할 수 있는 완벽한 거리, 그리고 일본 최대의 평야라는 배후지를 가진 에도는 이에야스의 혜안 덕분에 오늘날 세계 최대의 메가시티인 **'도쿄'**로 재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조조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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