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동성애: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알렉산더 대왕과 헤파이스티온, 카이사르와 니코메데스, 하드리아누스와 안티노오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살라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데이비드 핀센트
알렉산더 대왕 (Alexander the Great)
성향: 고대 그리스 관점에서는 '동성애'라는 범주 자체가 없었지만, 남성과의 깊은 유대관계를 즐겼습니다.
연인: 헤파이스티온(Hephaestion). 알렉산더의 평생 동반자이자 오른팔이었습니다. 헤파이스티온이 죽었을 때 알렉산더는 식음을 전폐하고 바빌론 성벽을 허물 정도로 오열했습니다.
역사적 기록은 현대의 포르노그래피처럼 상세하진 않지만, 정황 증거는 매우 명확합니다.
알렉산더와 헤파이스티온: * 당대 그리스인들은 둘의 관계를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에 비유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정을 넘어선 성적 관계를 포함한 연인 관계를 의미합니다.
알렉산더가 원정을 나갈 때 두 사람은 나란히 트로이아에 가서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에 헌화했습니다. 이는 "우리도 그들처럼 사랑하는 사이"라는 공개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육체적 관계는 고대 그리스 귀족 사회의 관습(파이데라스티아) 안에서 당연시되었습니다.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서구 문학의 영원한 연인
이들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들입니다.
아킬레우스: 그리스 군 최고의 전사이자 '불사신'에 가까운 반인반신.
파트로클로스: 아킬레우스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무기 운반원.
관계의 본질: *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자, 파트로클로스는 그의 갑옷을 입고 대신 나갔다가 헥토르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본 아킬레우스는 미친 듯한 분노와 슬픔에 빠져 다시 전쟁터로 뛰어들어 복수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들의 관계를 단순한 우정이 아닌 **'사랑(Eros)'**으로 해석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헤파이스티온과의 관계를 이들에게 투영한 것은 유명한 사실입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연인?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니오,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양자이자 조카 손자였습니다."
오해의 소지: 당대 정적들이 옥타비아누스를 비방하기 위해 "그가 카이사르에게 몸을 허락하고 후계자 자리를 따냈다"는 음해성 루머를 퍼뜨린 적은 있습니다.
실제 관계: 카이사르는 옥타비아누스의 명석함과 대담함을 보고 후계자로 점찍었습니다. 둘 사이에는 군사적, 정치적 사제 관계이자 부자 관계에 가까운 유대가 있었을 뿐, 성적인 연인 관계였다는 신뢰할 만한 증거는 없습니다.
카이사르의 진짜 연인: 카이사르는 여성(클레오파트라 등)에게도 인기가 많았지만, 젊은 시절 비티니아의 왕 니코메데스와 동성 연인 관계였다는 소문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행군할 때 **"카이사르는 모든 여자의 남편이자, 모든 남자의 아내"**라고 놀리는 노래를 불렀을 정도니까요.
💡 오늘의 인사이트
하드리아누스의 안티노오스에 대한 사랑은 '광기'에 가까웠지만, 그 광기가 제국의 예술 수준을 비약적으로 높였습니다.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는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이 현대 철학의 뜨거운 불꽃(니체)을 피워냈죠.
하드리아누스가 사랑한 소년: 안티노오스 (Antinous)
누구였나: 그리스 출신의 미소년으로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가장 총애한 연인이었습니다.
비극적 결말: 나일강 여행 중 의문의 익사 사고를 당했습니다. 슬픔에 미쳐버린 황제는 그를 '신'으로 격상시키고, 제국 전역에 수천 개의 안티노오스 조각상을 세웠으며 그의 이름을 딴 도시(안티노폴리스)까지 건설했습니다.
훌륭한 왕이었나?: "예, 5현제(다섯 명의 어진 황제)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정복 전쟁을 멈추고 제국의 국경(하드리아누스 성벽 등)을 확립했으며, 법전을 정비하고 건축(판테온 재건)에 힘쓴 내치(內治)의 달인이었습니다. 비록 개인적으로는 안티노오스에 집착한 괴팍한 예술가 기질이 있었지만, 황제로서는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Leonardo da Vinci)
성향: 평생 독신이었으며, 남성 모델들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는 기록과 증언이 많습니다. 젊은 시절 남색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습니다.
연인: 가장 유명한 인물은 **살라이(Salai)**입니다. 다빈치의 제자이자 모델이었으며, 다빈치는 그의 곱슬머리와 외모를 무척 아꼈습니다. 말년에는 귀족 출신의 프란체스코 멜지가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다빈치와 살라이:
다빈치는 살라이를 **'작은 악마'**라고 부르면서도, 그가 돈을 훔치고 사고를 쳐도 25년 동안 곁에 두며 비단옷을 사주고 뒤치다꺼리를 다 했습니다.
다빈치의 누드 드로잉 모델이 대개 살라이였다는 점, 그리고 다빈치가 소돔죄(남색)로 고발당했던 과거를 고려할 때, 학계에서는 두 사람이 깊은 육체적 관계를 맺었을 것으로 봅니다. 다빈치의 걸작 '세례 요한'의 모델도 살라이인데, 그 그림은 매우 관능적이고 양성적인 매력을 풍깁니다.
모나리자 실제모델, 다빈치 동성연인 살라이? 충격 비밀
https://www.newsen.com/news_view.php?uid=201410261058571110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
성향: 확실한 동성애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적 지향 때문에 평생 엄청난 도덕적 고뇌와 결벽증적인 고통을 겪었습니다.
연인: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 만난 **데이비드 핀센트(David Pinsent)**가 가장 중요한 연인이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걸작 『논리철학 논고』를 그에게 헌정했습니다. 말년에는 벤 리처즈라는 제자와도 깊은 관계였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차가운 논리로 철학의 시대를 끝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전혀 차갑지 않았습니다.
지독한 윤리적 결벽: 그는 자신이 위선적으로 사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습니다. 억만장자 가문의 유산을 모두 포기하고 시골 초등학교 교사나 정원사로 일하며 스스로를 학대하듯 살았습니다.
사랑과 죄책감: 그는 동성애적 욕망을 가졌으나, 당시의 엄격한 가치관과 본인의 결벽증 때문에 이를 '죄'로 여겨 괴로워했습니다. 연인 데이비드 핀센트가 1차 대전 중 비행기 사고로 죽자, 비트겐슈타인은 평생 그 상실감을 안고 살았습니다.
고뇌의 실체: 그의 철학은 단순히 똑똑함을 뽐내는 게임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간이 거짓 없이 진실하게 살 수 있는가"**라는 뜨거운 실존적 갈등을 '언어'라는 도구로 해결하려 했던 처절한 몸부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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