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캬아마 미호의 죽음처럼, 롤랑 바르트의 자동차 사고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무의식 세계에서 이미 예정된 사건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게이로 태어나 사랑받을 수 없다는 절망감과 어머니를 떠나보낸 그 슬픔 때문에 그는 이 세상을 하직할 생각을 벌써 품고 있었고, 그것이 합병증으로 발전했던 것이다

 

1976년 3월 14일, 푸코의 도움을 받아 바르트는 드디어 콜레주드프랑스 대학의 교수가 된다. 몇몇 심사위원들은 바르트의 대학 경력이 없다는 점을 우려했지만 푸코는 이렇게 설득했다. "대학을 넘어서 현재 우리에게 들리고 있고, 우리가 귀담아 듣고 있는 이 음성들, 이 몇몇 목소리들이 오늘날 우리의 역사에는 속하면서도, 우리의 목소리에는 속하지 않아야 한다고 여러분은 생각합니까?"[6] 푸코는 결정을 밀어붙였고, 이로써 바르트는 가장 영광스러운 지식의 사원에 들어올 수 있었다. 1년 뒤, 1977년 1월 7일 바르트는 물밀듯이 사람들이 밀려드는 강의실에서 취임 강의를 한다. "모든 언어 활동의 성과로서 랑그는 반동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그저 단순히 파시스트적이다. 왜냐하면 파시즘은 말하는 것을 막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을 수 없게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7] 변방에서 길을 개척했던 이 인물이 마침내 이뤄낸 취임식을 보면서 사람들은 즐거워하면서 감동에 빠졌다. "몇몇은 눈물을 흘렸고, 사람들은 무언가 비상한 현장을 목격한다는 매우 강렬한 느낌이 받았다. 그리고 친구들의 감동은 이 인물이 지닌 대단한 자질을 웅변해 주는 듯 보였다. 바르트가 감동적인 연설을 하지 않았건만 사람들은 그와 기쁨을 함께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았다."[8]

그러나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해(1977년) 10월 25일 바르트는 어머니를 잃었다. 바르트는 극도의 상실감에 빠졌다. 어머니에 대한 바르트의 애착은 특별했다. 그녀는 바르트의 진정한 동반자였다. 일찍이 아버지를 잃은 그는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와의 특별한 결속은 바르트가 콜레주드프랑스의 교수로 취임할 때, 맨 앞자리에 어머니를 앉혀 놓고 취임 강연을 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 무렵 『사랑의 단상』[9]의 대중적인 성공으로 얻은 절정의 명성도 그의 공허한 마음을 달래주지 못했다.[10] 이때부터 그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1980년, 훗날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사진에 관한 에세이 『밝은 방』을 출간했지만, 평론가들의 평가는 그닥 좋지 못했다. 그 해 2월 25일 월요일, 바르트는 미래의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되는 자크 랑(Jack Lang)의 초청으로 프랑수아 미테랑이 주최하는 오찬에 참석했다. 그는 식사를 마치고 나온 뒤 길을 건너다가 세탁소 트럭을 미처 보지 못하고 치였고 바로 쓰러졌다. 바르트는 의식을 잃은 상태로 살페트리에르 병원에 옮겨졌다. 다음날 그의 출판사인 쇠이유는 64세의 작가의 상태가 안정적이며 걱정할 이유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바르트는 삶의 의지를 상실한 것 같았다. "그는 대단한 부상을 입은 것이 아니었다. 머리에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그는 병원에서 죽고 말았다."[11] 죽음을 확인한 법의학자의 결론에 따르면, 사고는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었지만 이런 측면에서 오랫동안 쇠약해진 환자에게 폐와 관련된 합병증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의학적 이유인가? 심리적 이유인가?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런 이유들로 인해 구조주의의 서사적 장정에서 가장 사랑받았던 영웅은 1980년 3월 26일, 사고가 난 지 정확히 한 달 만에 죽음을 맞이했다. 바르트라는 인간, 그의 감정, 세계에 대한 그의 시선의 특이함은 80년대 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상실이었다.[12]
 
[11] 프랑수아 도스 『구조주의의 역사Ⅳ』 김웅권 옮김, 동문선, 2003, p.156 (루이 장 칼베, 필자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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