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들 대부분이 현실을 모르는 부르주아 출신인 걸 잘 생각해봐야 (feat. 블라디미르 레닌)

    레닌은 프롤레타리아 혁명계 본좌이지만 사실 그 자신은 아버지가 심비르스크 시 총 장학관인 쁘띠 부르주아로 아버지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부유하게 살았으며, 이때 뿐만이 아니라 그는 평생 육체노동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특히나 노동자와 자신을 분명히 다른 계층으로 보고 있었으며 집에도 하녀를 두고 있었다. 본래 공산주의의 시조인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도 노동자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았고, 그 외에도 유명한 사회주의 운동가 중에는 오히려 출신 신분 자체가 프롤레타리아 계층과 거리가 있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출신 성분의 차이라는 아이러니함은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연구에서 한 부분을 차지한다. 우선 레닌을 시작으로 중국의 마오쩌둥도 젊은 나이에 학교를 설립할 정도로 부자였고,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와 라울 카스트로도 아버지가 농장 소유주였고 체 게바라도 아버지가 귀족 출신에 병원 원장이었다. 레프 트로츠키는 8살 때 당시 우크라이나에선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던 열대 관엽식물이 잔뜩 놓인 사진관에서 입학 기념 사진을 찍을 만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폴 포트는 왕의 외척가문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왕족들과 교류했고 쑤파누웡은 왕자였다. 반대로 가난한 집안 출신들로는 이오시프 스탈린, 저우언라이, 요시프 브로즈 티토,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호찌민을 들 수 있는데, 이 와중 저우언라이랑 호찌민은 경제적으로 가난하지만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자체는 확고한 몰락 유학자 선비 집안, 스탈린도 비슷하게 주머니는 텅텅 비어도 글은 배우는 신학교를 나오는 등 고등교육에 대한 인식과 기회 자체는 있는 배경 출신이 많았다. 문제는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하려면 고대 철학에서부터 헤겔을 비롯한 고등교육을 받아야만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련 시절에 나온 레닌에 관련된 책에서는 그가 아버지 사후 기지를 발휘해 가족들을 부양했다는 내용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레닌은 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도 어머니 밑에서 값비싼 여러가지 부대비용을 요구하는 벅찬 존재였다. 위에서도 썼지만 그는 육체노동을 해 본 적이 없다. 단지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거나 도서관에서 아예 안 오거나 했을 뿐이다. 이 덕에 레닌의 어머니는 영지를 팔기도 하고, 레닌의 요구에 따라 이사를 다니며 집에 세를 내거나 하는 등 각종 수단을 동원하여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 주었다. 또한 레닌의 어머니는 러시아 제국의 국채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이 국채에서 나오는 이자가 레닌의 망명비용으로 들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그나마 사치와는 거리가 먼 성격이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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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레닌의 생부는 그의 아들이 장차 경멸하게 될 전형적인 자유주의 신사였다. 레닌의 귀족적인 출생 배경은 레닌의 소련 전기 작가에게는 곤란한 요소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군림하려드는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힌트를 준다. 그것은 하급자로부터의 비판을 참지 못하는 성격이나, 대중을 그저 그의 혁명적 계획을 위해 필요한 인간 재료로 보는 그의 성향에서도 엿보인다.[9] 1917년 막심 고리키가 썼듯이, "레닌은 지도자인 동시에 러시아 귀족이었다. 그에게는 이 멸종된 계급의 어떤 심리적 특성이 남아 있었다. 따라서 그는 러시아 국민에게 이미 실패할 운명이 예정되어 있는 하나의 잔인한 실험을 실행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정당하다고 생각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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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러니하게도 공화혁명의 시발점이자 공산주의의 발상지인 프랑스를 싫어하고 자본주의의 상징국이자 세계 최대의 제국인 영국을 좋아했다. 레닌은 프랑스 망명시기 프랑스를 두고 더럽고 규칙도 없는 제일 추악한 곳이라며 욕을 퍼부었을 정도. 당시 그가 살았던 아파트의 맞은 편에 살던 푸줏간 주인이 매일같이 소시지를 만들어대는 통에 풍기는 돼지 창자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레닌은 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열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앞집 사람은 독일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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