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路 잠언집 III

잠언집 I: https://theworldandaro.blogspot.com/2026/03/i.html

잠언집 II: https://theworldandaro.blogspot.com/2026/03/ii.html

 


꽃이 핀 아름답고 푸르러지는 오아시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주위에 사막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아시스는 자기 자신과 같은 오아시스가 있는지 주위를 살피며 찾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그래서 그는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나는 불행하고 외로운 오아시스야! 이렇게 혼자 있어야 하다니! 나와 같은 오아시스는 어디에도 없어. 나를 발견할 눈, 나의 초원, 샘물과 야자수며 숲을 보고 기뻐할 눈이 사방에 단 하나도 없구나! 모래와 바위뿐인 생명 없는 처량한 사막만이 나를 에워싸고 있어. 내가 이렇게 버려져 있는데 나의 온갖 장점과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이 내게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그러자 늙고 허연 어머니인 사막이 대답했다. 

"얘야, 만일 현재와 달리 네가 메마르고 처량한 사막이 아니라 꽃과 푸른 식물이며 생명으로 뒤덮여 있다면, 너는 멀리서 온 나그네가 칭찬하며 들려주는 오아시스, 혜택을 받은 지점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너는 그 자체로 보잘것없고 눈에 띄지도 않는 극히 작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꾹 참고 견뎌라. 그런 인내심이 네가 영예와 명성을 얻는 조건인 것이다."
오아시스 by 쇼펜하우어


"현실적이 되자,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자(Soyons réalistes, demandons l'impossible)"
- 프랑스 68혁명 구호
(이것이 나중에 체 게바라가 한 말로 와전되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갖자."
    (Seamos realistas, pidamos lo imposible.)")



중국 전국시대 때의 소진蘇秦이 형수에게서 푸대접을 받음. 계자季子는 전국 시대 6국 합종책을 주장하였던 소진의 자. 낙양 사람으로, 귀곡 선생을 좇아 배웠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모두들 소진을 업신여겨, 아내는 베틀에서 내려오지도 않았고, 형수는 밥조차 주지 않았다. 소진은 이에 크게 자극받아 각고의 노력 끝에 6국의 재상이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아내도 형수도 모두 눈을 아래로 뜬 채, 소진을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소진이 웃으며 "먼저는 그리도 거만하더니, 이번에는 어찌 이리도 공손하신가? 하고 묻자, 형수는 "지금의 계자께서는 지위가 높고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계자불례어기수(季子不禮於其嫂) 





고문진보후집(古文眞寶後集) 116
진소유자서(秦少游字敍)-진사도(陳師道)


凞寧元豊之間(희녕원풍지간) : 신종의 희령,원풍 연간에
眉蘇公之守徐(미소공지수서) : 미소공이 서주의 수령으로 계실 적에,
余以民事太守(여이민사태수) : 나는 백성으로써 태수를 섬기면서
間見如客(간견여객) : 간간히 손님처럼 뵙고 있었는데
揚秦子過焉(양진자과언) : 양주의 진관이 방문했을 적에는
置醴備樂(치례비락) : 잔치를 벌리고 음악도 갖추어
如師弟子(여사제자) : 스승과 제자가 만나는 듯 하였다.
其時余病臥旅中(기시여병와려중) : 그 무렵 나는 여행 도중 병이 나서 누워있었는데,
聞其行道雍容(문기행도옹용) : 듣건데 그이 행차는 위의가 대단하여
逆者旋目(역자선목) : 마중하는 사람들은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고,
論說偉辨(논설위변) : 논설이 웅변적이어서
坐者屬耳(좌자촉이) : 앉아있던 사람들 모두가 귀를 기울였었다 한다.
世以此奇之(세이차기지) : 세상에서는 이 때문에 그를 기이하게 여겼고
而亦以此疑之(이역이차의지) : 또 이 때문에 그를 의심하기도 하였으나,
惟公以爲傑士(유공이위걸사) : 오직 소공만은 걸출한 선비라고 생각하셨었다.
是後數歲(시후수세) : 그 뒤 몇 년이 지나
從吾歸(종오귀) : 내가 돌아올 적에 따라와서
見于廣陵逆旅之家(견우광릉역려지가) : 광릉의 객사에서 만났었는데
夜半語未卒別去(야반어미졸별거) : 밤중에 얘기도 다 끝내지 않고 떠나갔으니
余亦以謂當建侯萬里外也(여역이위당건후만리외야) : 나도 마당히 만리 밖 먼 곳의 주목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元豊之末(원풍지말) : 원풍 연간 말엽에
余客東都(여객동도) : 내가 낙양에 머물고 있을 적에
秦子從東來(진자종동래) : 진관도 동쪽으로부터 왔었으니
別數歲矣(별수세의) : 이별한지 몇 년만이었다.
其容充然(기용충연) : 그의 얼굴이 충실해졌고
其口隱然(기구은연) : 그의 입이 묵직해져 있어서
余驚焉以問(여경언이문) : 내가 놀라서 그 까닭을 물으니
秦子曰(진자왈) : 진관이 대답하였다.
往吾少時(왕오소시) :
如杜牧之(여두목지) : “전에 제가 젊었을 적에는 두목지와 같아서
强志盛氣(강지성기) : 뜻이 강대하고 기운이 왕성하고
好大而見奇(호대이견기) : 큰 것을 좋아하고 기특함을 드러냈었습니다.
讀兵家書(독병가서) : 병가를 읽으면
乃與意合(내여의합) : 곧 저의 뜻과 맞아서
謂功譽可立致(위공예가립치) : 공로와 명예를 당장에 이룰 수가 있었고
而天下無難事(이천하무난사) : 또 천하에는 어려운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顧今二虜有可勝之勢(고금이로유가승지세) : 지금 두 원수의 나라들이 승승장구하는 기세를 지닌 것을 보고는
願效至計(원효지계) : 지대한 계획을 세워
以行天誅(이행천주) : 하늘의 주벌을 행함으로써
回幽夏之故墟(회유하지고허) : 유주와 하주의 옛 땅을 회복하고
弔唐晉之遺人(조당진지유인) : 당 ․진의 그 곳 유민들을 위로해줌으로써
流聲無窮(류성무궁) : 명성이 영원히 전하여지고
爲計不朽(위계불후) : 영원불변하는 대계를 세워놓는다면
豈不偉哉(기불위재) : 어찌 위대한 일이 아니겠는가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於是字以太虛(어시자이태허) : 이에 자를 태허라 하고
以遺吾志(이유오지) : 저의 뜻을 담았습니다.
今吾年至而慮易(금오년지이려역) : 지금 제 나이가 많아지자 생각이 바뀌어져
不待蹈險而悔及之(부대도험이회급지) : 위험한 일을 행하려들지 않게 되고 뉘우치게까지 되었으니,
願還四方之事(원환사방지사) : 나라 사방의 일들은 되돌려주고
歸老邑里(귀로읍리) : 고향 마을로 돌아와
如馬少游(여마소유) : 늙기까지 마소유처럼 살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於是字以少游(어시자이소유) : 이에 자를 소유라 하여
以識吾過(이식오과) : 저의 잘못을 알도록 한 것입니다.
嘗試以語公(상시이어공) : 언젠가 소식공에게 말씀드려본 일이 있는데
又以爲可(우이위가) :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於子何如( 어자하여) :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余以謂取善於人(여이위취선어인) : “내 생각으로는 남에게 훌륭한 점을 취하여
以成其身(이성기신) : 그 자신을 완성시키는 일은
君子偉之(군자위지) : 군자들도 위대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且夫二子(차부이자) : 그런데 앞의 두 사람은
或進以經世(혹진이경세) : 하나는 나아가서 세상을 다스리었고
或退以存身(혹퇴이존신) : 하나는 물러나 자신을 잘 보존하였으니
可與爲仁矣(가여위인의) : 인인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然行者難工(연행자난공) : 그러나 행동이라는 것은 잘 하기가 어렵고,
處者易持(처자역지) : 들어앉아 있는 것은 자신을 유지하기가 쉬운 것이어서,
牧之之智得(목지지지득) : 두목지의 지혜와 터득의 성과는
不若少游之拙失矣(불약소유지졸실의) : 마소유의 졸렬하고 실패한 성과만 못한 것 같은 것입니다.
子以倍人之材(자이배인지재) : 선생은 남의 두 배의 재능을 지니어
學益明矣(학익명의) : 학문도 더욱 밝아져는데도
猶屈意於少游(유굴의어소유) : 마소우에게로 뜻을 굽히었으니,
豈過直以矯曲耶(기과직이교곡야) : 어찌 지나치게 곧음으로서 굽은 것을 교정하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子年益高德益大(자년익고덕익대) : 선생의 나이가 더욱 많아지고 덕이 더욱 위대해지면
余將屢驚焉(여장루경언) : 내가 자주 놀랄 일이 생기게 될 것이니
不一再而已也(불일재이이야) : 한 두 번에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雖然以子之才(수연이자지재) : 그런데 선생과 같은 재능은
雖不效於世(수불효어세) : 비록 세상에 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더라도
世不捨子(세불사자) : 세상이 선생을 버리지않을 것이니,
余意子終有萬里行也(여의자종유만리행야) : 내 생각으로는 선생은 마침내는 만리 저쪽으로 가시게 될 것입니다.”
如愚之愚(여우지우) : 어리석고 어리석은 나같은 이는
莫宜於世(막의어세) : 세상에는 합당하지도 않으니,
乃當守丘墓保田里(내당수구묘보전리) : 이에 조상의 묘나 지키며 고향 마을을 고수하면서,
力農以奉公上(력농이봉공상) :  힘써 농사를 지어 나라와 임금을 받들며,
謹身以訓閭巷(근신이훈여항) : 자신의 행동을 감가 이 고장의 교훈이 되게 함으로써
生稱善人(생칭선인) : 살아서는 착한 사람이란 칭송을 듣고
死表於道曰處士陳君之墓(사표어도왈처사진군지묘) : 죽어서는 무덤 어귀에 처사 진군의 묘란 푯말이 세워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或者天祚以年(혹자천조이년) : 혹시 하늘이 오래 살도록 복을 주시어
見子功遂名成(견자공수명성) : 선생이 공을 이룩하고 명성을 이룬 다음
奉身以還(봉신이환) : 무사히 돌아올 적에
王侯將相(왕후장상) : 왕후와 장수 재상들이
高車大馬(고거대마) : 높은 수레와 큰 말을 타고
祖行帳飮(조행장음) : 나와 길제사를 지내며 송별주를 마시게 된다면,
於是乘庳御駑(어시승비어노) : 그 때에는 낮은 수레에 둔한 말을 매어 타고 나가
候子上東門外(후자상동문외) : 상동문 밖에서 선생을 기다리다가
擧酒相屬(거주상속) : 술잔을 들어 권하면서
成公知人之名(성공지인지명) : 소식공이 사람을 올바로 알아보셨다는 명성을 이룩하게 하면서
以爲子賀(이위자하) : 선생을 위하여 축하드릴 것입니다.
蓋自此始(개자차시) : 일은 이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진사도(陳師道) - 진소유의 자에 대하여(秦少游字敍) 






고문진보후집(古文眞寶後集) 108_(卷九)
                        
                      藥戒(약계)-張耒(장뢰)



 

客有病痞(객유병비) : 손님 주에 속병을 앓는 사람이 있었는데,
積於其中者(적어기중자) : 배 속에 쌓이는 것들은 
伏而不能下(복이불능하) : 체하여 내려가지 않고,
自外至者(자외지자) :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들은
捍而不得納(한이불득납) : 딱딱해져서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從醫而問之(종의이문지) : 의원에게 찾아가 물어보니,
曰非下之不可(왈비하지불가) : 속의 것들을 내려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歸而飮其藥(귀이음기약) : 돌아와서 의원이 준 약을 마시니,
旣飮而暴下(기음이폭하) : 마시고 나자 갑자기 내려가버리어,
不終日而向之伏者(불종일이향지복자) : 하루가 다 가지도 않아서 전에 체하여 있던 것들이
散而無餘(산이무여) : 흩어져 남아 있는게 없게 되었고,
向之捍者柔而不支(향지한자유이불지) : 전에 딱딱해졌던 것들이 부드러워져서 걸리지 않게 되었다.
焦鬲導達(초격도달) : 내장과 가슴 속이 탁 트이고
呼吸開利(호흡개리) : 호흡이 순조로워져서,
快然若未始有疾者(쾌연약미시유질자) : 상쾌하게 처음부터 병이 없었던 것처럼 되었다.
不數日(불수일) : 며칠 안가서
痞復作(비복작) : 속병이 다시 일어났으나
投以故藥(투이고약) : 전의 약을 먹자
其快然也亦如初(기쾌연야역여초) : 깨끗이 낫는 것이 역시 처음이나 같았다

自是不逾月(자시불유월) : 이로부터 한달도 넘지 않은 사이에
而痞五作五下(이비오작오하) : 속병이 다섯 번 일어났으나 다섯 번 속의 것을 내려보냈고,
每下輒愈(매하첩유) : 속의 것들을 내려보낼 때마다 병이 완쾌되었었다.
然客之氣一語(연객지기일어) : 그러나 그 손님의 기운은 한 마디 말을 하는데
而三引(이삼인) : 세 번이나 말을 끌게 되었고,
體不勞而汗(체불로이한) : 몸에서는 일하지 않아도 땀이 났으며,
股不步而慄(고불보이률) : 다리는 걷지 않아도 떨리게 되었다.
膚革無所耗於前(부혁무소모어전) : 살갗과 피부는 전보다 여윈 것이 없으면서도
而其中薾然(이기중이연) : 그 속은 맥이 없이 되었는데,
莫知其所來(막지기소래) :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嗟夫(차부) : 아아,
心痞非下不可已(심비비하불가이) : 속병은 속의 것을 내려버리지 않고는 낫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予從而下之(여종이하지) : 나는 그래서 속의 것을 내려보내었으나,
術未爽也(술미상야) : 그 술법은 깨끗하지를 못하여
薾然獨何歟(이연독하여) : 맥이 없게 되었으니, 어째서인가

聞楚之南(문초지남) : 초나라 남쪽에
有良醫焉(유량의언) : 훌륭한 의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往而問之(왕이문지) : 찾아가서위원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물어보니
醫曰(의왈) :
子無歎是然者也(자무탄시연자야) : “당신은 몸이 그렇게 된 것을 탄식하지 마시오.
凡子之術(범자지술) : 당신이 병을 고친 수법이
固爲是薾然也(고위시이연야) : 본시 그처럼 맥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었소.
坐吾語女(좌오어여) : 앉으시오. 내 당신에게 설명해 주리다.
天下之理(천하지리) : 천하의 이치는,
有甚快於予心者(유심쾌어여심자) : 자기 마음에 매우 상쾌함을 주는 것들이란
其末必有傷(기말필유상) : 종말에 가서는 반드시 그를 손상케 하는 것이니,
求無傷於終者(구무상어종자) : 종말에 가서 손상 받지 않기를 바란다면
則初無望於快吾心(칙초무망어쾌오심) : 곧 처음부터 자기 마음을 상쾌하게 할 것을 바라지 말아야만 할 것이오.
夫陰伏而陽蓄(부음복이양축) : 대체로 음이 체하여 걸리고 양이 모이어,
氣與血不運(기여혈불운) : 기운과 피가 순환되지 않음으로써
而爲痞(이위비) : 속병이 되어가지고
橫乎子之胸中者(횡호자지흉중자) : 그대의 가슴 속에 가로놓이게 되는 것이니,
其累大矣(기누대의) : 그 쌓인 것이 큰 것이오.
擊而去之(격이거지) :그것을 쳐서 제거해 버리려면 
不須臾而除甚大之累(불수유이제심대지누) : 짬깐도 못되는 사이에 매우 크게 쌓인 것을 제거해 버리려면
和平之物(화평지물) : 부드럽고 평이한 물건으로는
不能爲也(불능위야) : 할 수가 없고,
必將擊搏震撓(필장격박진요) : 반드시 세게쳐서 진동을 시킨 연후에야
而後可(이후가) : 가능하게 되는 것이오,
夫人之和氣(부인지화기) : 사람의 화기란
冲然而甚微(충연이심미) : 부드러우면서도 매우 미세하여
泊乎其易危(박호기이위) : 조용하면서도 위태로워지기 쉬운 것이니,
擊搏震撓之功(격박진요지공) : 세게 쳐서 진동시키는 효과가
未成而子之和(미성이자지화) : 이루어지기도 전에 당신의 화기에는
蓋已病矣(개이병의) :  이미 병이 생기게 되는 것이오
由是觀之(유시관지) : 이렇게 볼것 같으면
則子之痞凡一快者(칙자지비범일쾌자) : 곧 당신의 속병은 한 번 완쾌될 때마다
子之和一傷矣(자지화일상의) : 당신의 화기는 한 번 손상을 받았던 거시오.
不終月而快者五(불종월이쾌자오) :  한 달이 다 가기도 전에 다섯 번이나 완쾌시켰다면
則子之和平之氣(칙자지화평지기) : 곧 당신의 화평한 기운은
不旣索乎(불기색호) : 이미 없어져 버리지 않았겠소.
故膚不勞而汗(고부불로이한) : 그래서 피부에서는 일하지 않아도 땀이 나고
股不步而慄(고불보이률) : 다리는 걷지 않아도 떨리며
薾然如不可終日也(이연여불가종일야) : 맥이 없어져 하루를 넘기지도 못할 것처럼 된 것이오
蓋將去子之痞(개장거자지비) : 당신의 속병을 없애버리면서
而無害於和乎(이무해어화호) : 화기도 해치지 않고 싶겠는가
子歸燕居三月而後(자귀연거삼월이후) : 당신은 돌아가 집에서 석달을 잘 지낸 다음에
予之藥可爲也(여지약가위야) : 내가 주는 약을 쓰면 될 것이오.”
客歸燕居三月(객귀연거삼월) : 손님은 집으로 돌아가 석달을 보낸 다음
齋戒而復請之(재계이복청지) : 재계를 하고는 다시 찾아와 의원을 뵈었다.
醫曰(의왈) : 의원이 말하였다.
子之氣小復矣(자지기소복의) : “당신의 기운이 약간 회복되었소.”
取藥而授之曰(취약이수지왈) : 그리고 약을 지어 주면서 말하였다.
服之三月(복지삼월) :  “이것을 복용하면 석달 만에 
而病少平(이병소평) : 병이 약간 덜해지고,
又三月而少康(우삼월이소강) : 또 석달이 지나면 약간 편안해지고,
終是年而復常(종시년이부상) : 이 해가 다 갈 무렵이면 원상태로 회복될 것이오.
且飮藥(차음약) : 그러니 약을 마시는데 있어서
不得亟進(불득극진) : 너무 자주 마셔도 안 되는 것이오.”

客歸而行其說(객귀이행기설) : 손님은 돌아가 의원의 말대로 실행하였다.
然其初(연기초) : 그런데 처름에는
使人懣然遲之(사인만연지지) : 사람이 답답하게 느끼도록 효과가 더디어
蓋三投藥而三及之也(개삼투약이삼급지야) : 세 번 약을 먹으면 세 번 모두 병이 제 자리로 되돌아가는 듯 하였다.
然日不見其所攻之效(연일불견기소공지효) : 그러나, 하루에는 병이 고쳐지는 효과가 보이지 않는 듯 하였는데,
較則月異而時不同(교칙월이이시부동) : 대략 한 달 만에 보면 달라지고 한 철을 두고 보면 전혀 다르게 나아가서,
蓋終歲疾平(개종세질평) : 한 해가 끝날 무렵에는 병이 완쾌되었다.

客謁醫(객알의) : 손님이 의원을 찾아가
再拜而謝之(재배이사지) : 정중히 두 번 절하며 감사를 표시하고는
坐而問其故(좌이문기고) : 앉아서 그 까닭을 물었다.
醫曰(의왈) : 의원이 이렇게 말하였다.
是醫國之說也(시의국지설야) : “이것은 나라의 병도 고칠 이론이오.
豈特醫之於疾哉(기특의지어질재) : 어찌 다만 사람의 병만 고칠 뿐이겠소.
子獨不見夫秦之治乎(자독불견부진지치호) : 당신은 어찌 진나라의 정치를 보지 못하였소.
民悍而不聽令(민한이불청영) : 그 나라 백성들은 사나워서 명령을 따르지 않고
惰而不勤事(타이불근사) : 게을러서 일에 힘쓰지 아니하며
放而不畏法(방이불외법) : 방종해서 법을 두려워하지 않았었소.
令之不聽(령지불청) : 그들에게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아니하고,
治之不變(치지불변) : 그들을 다스려도 변화할 줄 몰랐으니,
則秦之民(칙진지민) : 곧 진나라 백성은
嘗痞矣(상비의) : 일찍이 속병에 걸렸던 셈이지요.
商君見其痞也(상군견기비야) : 상앙이 그 속병을 보고서
厲以刑法(려이형법) : 형벌과 법령으로 엄히 다스리고
威以斬伐(위이참벌) : 목베고 치고 하는 것으로 위협하면서
悍戾猛鷙(한려맹지) : 사납고 맹렬하게 다루어
不㒃毫髮(불이호발) : 터럭 끝 만한 일도 용서치 않으면서
痛剗而力鋤之(통잔이역서지) : 철저히 잘라내고 힘써 뽑아내었소.
於是乎秦之政(어시호진지정) : 이에 진나라의 정치는
如建瓴(여건령) : 높은 곳에서 물병의 물을 쏟듯이
流蕩四達(유탕사달) : 거침없이 흘러 사방으로 통하게 되어
無敢或拒(무감혹거) : 감히 아무도 거역할 수가 없었으니,
而秦之痞(이진지비) : 진나라의 속병은
嘗一快矣(상일쾌의) : 일찍이 한 번 쾌유되었었소.
自孝公(자효공) : 진나라 효공으로부터
以至二世也(이지이세야) : 이세에 이르기까지

凡幾痞而幾快矣乎(범기비이기쾌의호) : 모두 몇 번이나 속병이 났다가 몇 번이나 쾌유되었던가
頑者已圮(완자이비) : 완고했던 것은 이미 무너지고
强者已柔(강자이유) : 강했던 것은 이미 부드러워졌으나
而秦之民(이진지민) : 진나라 백성들에는
無歡心矣(무환심의) : 기쁜 마음이 없어졌소
故猛政一快者(고맹정일쾌자) : 그러므로, 사나운 정치로써 한 번 병을 쾌유시키는 것은
懽心一亡(환심일망) : 백성들의 기쁜 마음을 한 번 없애버리는 것이 되오.
積快而不已(적쾌이불이) : 여러번 끊임없이 병을 쾌유시키자
而秦之四支枵然(이진지사지효연) : 진나라의 사지는 맥도 없어져
徒有其物而已(도유기물이이) : 공연히 그러한 물건이 달려있을 따름이 되었소.
民心日離而君孤立於上(민심일이이군고입어상) :
백성들의 마음은 날로 떠나서 임금은 윗 자리에 외로히 서있게 되니,
故匹夫大呼(고필부대호) : 그래서 필부가 나와 크게 한 번 소리치자
不終日而百病皆起(불종일이백병개기) : 하루도 넘기기 않은 사이에 백 가지 병이 한꺼번에 생겨났던 것이오.
秦欲運其手足肩膂(진욕운기수족견려) : 진나라는 그의 손 발과 어깨 등허리를 움직여 보려 했었지만
而漠然不我應矣(이막연불아응의) : 까마득히 어느것도 호응하여 움직여지지 않았었소.
故秦之亡者(고진지망자) : 그러므로, 진나라가 망했던 것은
是好爲快者之過也(시호위쾌자지과야) : 바로 병을 쾌유시키기를 좋아했던 잘못 때문이라 할 것이오.

昔先王之民(석선왕지민) : 옛날 훌륭한 임금들의 백성들도
其初亦嘗痞矣(기초역상비의) : 처음에는 역시 도두 속병이 있었소
先王豈不知砉然擊去之以爲速也(선왕기부지획연격거지이위속야) :
훌륭한 임금들이 어지 분연히 그들을 쳐서 쫓아버리는 것이 빠른 방법임을 몰랐겠소
惟其有懼於終也(유기유구어종야) : 오직 그들은 종말을 두려워했던 것이오.
故不敢求快於吾心(고불감구쾌어오심) :  그러am로 감히 내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는 방법을 추구하지 아니하고
優柔而撫存之(우유이무존지) : 부르럽게 그들을 어루만져 주었소.
敎以仁義(교이인의) : 그들을 인의로서 가르치고
導以禮樂(도이예악) : 예악으로 인도하여
陰解其亂而除去其滯(음해기난이제거기체) : 은연중 그들의 혼란을 해결하고 그들의 체한 것을 제거해줌으로써,
使其悠然自趨於平安(사기유연자추어평안) : 그들로 하여금 유유히 편안하게 스스로 쾌유되는 방향으로 나가면서도
而不自知(이불자지) : 스스로는 잘 알지도 못하게 하였던 것이오.
方其未也(방기미야) : 그들의 병이 쾌유되기 전까지는
旁視而懣然者(방시이만연자) : 옆에서 보는 사람들 중에는 답답하게 여기는 이들도
有之矣(유지의) : 있었소.
然月計之(연월계지) : 그러나 한 달을 두고 헤아려보고
歲察之(세찰지) : 일 년을 두고 살펴보면,
前歲之俗(전세지속) : 지난 해의 사람들 습속과
非今歲之俗也(비금세지속야) : 금년의 습속이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었소.
不擊不搏(불격불박) : 치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으며
無所忤逆(무소오역) : 그들을 거스리는 일도 없었으니,
是以日去其戾氣(시이일거기려기) : 그래서 날로 그들의 사나운 기운은 제거되면서도
而不嬰其歡心(이불영기환심) : 그들의 기쁜 마음도 다치지 않았던 것이오.
於是政成敎達(어시정성교달) : 이에 정치가 이루어지고 교화가 통달되어
安樂悠久(안락유구) : 안락함이 유구해져서
而無後患矣(이무후환의) : 후환이 없게 되었던 것이오.
是以三代之治皆更數聖人(시이삼대지치개갱수성인) : 그러니 하, 은, 주 삼대의 정치도 모두 몇 분의 성인을 거치고
歷數百年而後俗成(력수백년이후속성) : 수백 년의 세월을 겪은 뒤에야 그들의 습속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오.
則予之藥(칙여지약) : 그러니 내가 준 약이
終年而愈疾(종연이유질) : 한 해가 지나야만 병을 완쾌시키는 것도
蓋無足怪(개무족괴) : 괴이하다고 여길게 못되는 것이오.

故曰(고왈) : 그러므로 이르기를
天下之理(천하지이) : 천하의 이치는,
有甚快於吾心者(유심쾌어오심자) : 내 마음을 매우 상쾌하게 해주는 것은
其末也(기말야) : 그 종말에 가서는
必有傷(필유상) : 반드시 나를 손상시킨다고 하는 것이오.
求無傷於其終(구무상어기종) : 그 종말에 가서 손상이 없기를 바란다면
則初無望於快吾心(칙초무망어쾌오심) : 곧 처음에 내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기를 바라지 않아야 되는 것이오.
雖然豈獨於治天下哉(수연기독어치천하재) : 그러나 어찌 다만 천하를 다스리는 일만이 그러하겠소.“
客再拜而記其說(객재배이기기설) : 손님은 두 번 절하고 그의 이론을 기록하였다.

 
나레이션: 끝이 없을지도 모르는 시간이 흐르는 곳이 대우주이다. 때문에 자신의 신념을 관철할 수 있는 건 시간을 견뎌내는 재능을 가진 사람뿐이라고 은하철도의 공간레일을 설계한 위대하신 업적을 남긴 사나이가 말했다. 하지만 시간을 견뎌낸다고 해도 남는 것은 역시 시간인 것이다... 

- 은하철도999




-자연스럽게 가업을 이어 배우가 된 건가? (그의 집안은 대대로 배우다. 그는 5대째.)

아니! 난 뭔가 다른 것이 되지 않기 위해 배우가 된 거다. 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샐러리맨도 못할 거 같았고, 매일 장시간 운전을 하며 손님을 받는 택시 기사도 못할 거 같았고, 매일 운동만 하는 프로야구도 못할 거 같았다. 다 지우고 나니 할 것이 배우만 남았다.


그럼 가장 좋은 걸 한 거 아닌가?

아니다. 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는 거다. 난 배우가 정말 쓸데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없어지는 직업일 거다. 하찮은 일을 하고 있는 우리는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거다. 배우 생활 중간 즈음 이 직업이 쓸데없는 것이라고 깨달았고, 그때부터 이 바보 같은 짓을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마 나의 전환점인 거 같다. 물론 이 생각을 모든 배우가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연기자는 정말 훌륭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도 된다. <유레루>를 같이 한 오다기리 죠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서 의견이 잘 맞았다. 가끔 그는 카메라를 향해 정말 지루한 것 같은 표정을 짓곤 하는데, 그건 배우와 연기를 하찮게 보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표정이다. 
- 카가와 테루유키





Q. 지금의 나를 사랑하는 이유는?
- 치열하니까. 적어도 치열하게 살려고 노력하니까.
<2015. 02>





Q. 더 성장하고 싶다는 건, 아직 정점에 오지 않았다는 뜻이군요.
- 더 올라가고 싶지만, 지금이 정점일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내려가는 방향이 중요해요. 가파른 길 말고 평평하고 완만한 길을 찾아야겠죠.
<2015. 03>


그냥 저는, 언제나 최고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 뿐이에요.
'미생'의 연기를 지금 다시 보면 부족하고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보여요.
하지만 지금 다시 '미생'을 해보자 하면 저는 못할 것 같아요. '불한당' 도 마찬가지에요.
당장 '타인은 지옥이다'를 다시 해보자 하면 그 역시도 저는 못할 것 같아요.
언제나 저는 최선을 다했거든요. 그보다 더 최선을 다할 수 없을 정도로.
<2019. 10>
임시완





이미 30년 전쯤의 일이다. 

스트립쇼를 주로 하는 뮤직홀의 주인으로 있어, 그 때문에 여자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 모두들 생각했는지 그런 곳에는 구경도 못 가본 나라도 그 이름은 알고 있는 모씨가 있었다.

그가 어느 때,[문예춘추] 수필란에 기고한 한 문장이 기묘하게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여자란 결국 머리 좋은 것이 최고다."

 

늘상 정신적인 여성론이나 휘둘러대는 요즘 부지기수로 깔린 자칭 페미니스트가 한 말이 아니라,나체의 여자라면 부지기수로 보아왔을 모씨 입에서 나온 말이니 그 무게가 단연코 다르게 여겨졌다. 

여자를 남자로 바꾸면 내가 늘상 생각하고 있는 것과도 같아진다.

 

그 모씨와 내가 대담회라도 가진다면 당장 동감하게 될 것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머리 좋다는 것은 수다 떨기 위해서 챙기는 정도가 아니다. 

 

침대 위에서든 어디에서는 모든 행동을 견제하는 이른바 '기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니 유명대학의 경쟁률 높은 학과를 졸업하여 일류기업이나 관청, 대학에 근무하고 있다고 머리 좋은 남자와 이퀄이 되지 않는 예도 종종 일어난다. 

 

정말로 교육은 받았으나 교양이 없는 남자(이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지만)란 쓸어내 버릴 만큼 많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머리 좋은 남자'란 무엇이든 제 스스로 생각하고, 그것에 의해 판단하고,그 때문에 편견을 갖지 않고, 무슨무슨 주의 주장에 파묻힌 사람에 비해 유연성이 있고, 더욱이 예리하고 깊은 통찰력을 가진 남자다. 또한 자기 자신의 '철학'을 가진 사람이다.

 

철학이라고 해서 무슨 어려운 학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매사에 대처하는 '자세' (스타일) 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말이다. 

 

따라서 연령도 관계없고 사회적 교육의 고저도 관계없고, 그저 그것을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만이 존재할 뿐이다.
- 시오노 나나미




거화취실(去華就實): 침묵, 고요, 고독의 긍정

    

"항상 똑같이 행동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어리석음. 

똑같은 길을 걸으면 

도착하는 곳은 항상 같다." 






 

번역: 당신은 자신이 하는 일에 많은 열정을 갖고 있어야합니다. 왜냐면 열정없이 일하는 것은 매우 힘드니까요. 열정 없이는 어떤 이성적인 인간이라도 포기하고 말 겁니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하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전적으로 그것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포기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게 사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죠.

만약 당신이 사회적 눈으로 보았을 때 성공에 이른 사람들을 보면, 자주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사랑했으며, 그래서 힘든 시기에도 그 일들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들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일들을 그만두게 됩니다. 왜냐면 그들은 제정신이기 때문이죠, 그렇죠?

그 누가 자기가 사랑하지도 않은 일들을 계속 견뎌내겠습니까?

사회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항상 힘든 일이고, 계속해서 불안을 자아냅니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결국 당신은 실패하게 될 겁니다. 

 

 

 

 

 

 

번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은 자라나면서부터 이런 말들을 듣게됩니다. "세상은 원래 이렇고, 너의 인생은 세상과 부딪치지 않도록 노력하며 그 안에서 사는 거야. 가족을 만들고, 즐거움을 갖고, 돈을 조금 저축하고 사는 일 말이지."

 

하지만 그것은 굉장히 제한된 삶입니다. 인생은 훨씬 더 광대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한가지 단순한 사실만 발견하면 말이죠; 그것은 당신이 '인생'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들은 당신보다 더 똑똑하지 않은 인간들이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당신은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당신은 다른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것을 깨닫게 되는 바로 그 시간에 만약 당신이 어떤 것을 밀기 시작하면, 다른 쪽에서 무언가가 솟아날 겁니다. 당신이 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고, 모양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인생은 그저 저기에 있는 것이며 당신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생각과 인생은 바꾸고 개선시키며 거기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차이인 것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게 상당히 중요합니다. 이것을 배운 이후부터는, 당신은 인생을 변화시키고 싶어하게됩니다. 왜냐면 인생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상당히 뒤죽박죽 어질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당신은 결코 이전과 같아질 수 없을 것입니다. 

 


번역: 제가 항상 발견하는 진실은 대다수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과 관련된 경험을 갖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들이 그것을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항상 제가 도움이 필요하고 그것을 요청했을 때 도와주지 않은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저는 12살 때 빌 휴렛을 부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전화번호부에 있었습니다. 제가 전화를 걸자 그는 "네?"하고 말했고, 저는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저는 스티브 잡스고, 12살이며고등학교를 다니고있고, 주파수 카운터(frequency counter)를 구하고 있는데 혹시 여분이 있으신가해서 전화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웃었고 제게 여분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해 여름에 제게 직업을 주었습니다. 조립 라인에서 주파수 카운터를 만드는 작업이었습니다. 저는 천국에 있는 것과 같이 기뻤습니다. 저는 한번도 이렇게 전화를 걸어서 "아니오."라고 말하거나 전화를 끊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전화를 걸었고 그냥 원하는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제게 전화를 걸 땐, 저도 거기에 맞춰 응답하려고 합니다. 그 고마움을 돌려주기 위해서죠. 대다수의 사람들은 결코 전화기를 들지도 않고, 요청을 하지도 않으며, 때론 그것이 행동하는 사람과 꿈만 꾸는 사람들을 분리하곤 합니다. 당신은 행동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당신은 실패할 것을 마다하지 말아야합니다. 깨지고, 불타길 마다하질 말아야합니다. 전화를 하는 사람들이거나, 회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거나, 무엇이 됐든간에 말이죠. 실패를 두려워하면 멀리 가지 못할겁니다.

 

- 스티브 잡스








알랭 드 보통 마르크시즘
칸트 습관적




오늘 날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이유는 등따숩고 배부르게 잘 먹고 잘 살면서 지내기 때문이다.



허구한 날 거실 바닥 쇼파에 앉아 "나는 소중해 내 마음이 아파 힐링이 필요해 아프니까 청춘이고 자존감이 중요해"를 외치며 복에 겨운 감성팔이만 할 뿐이니 무기력에 빠지고 우울증에 걸려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조롱섞인 악의적인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인간은 더 나은 생활 여건과 풍족함을 보장받을수록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겪을 확률이 증가한다.



우울증으로 인한 선진국가의 자살률이 후진국가의 자살률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이 그 증거다. 또한 국가 내 GDP가 증가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정신 불안 장애에 시달리게 된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 연합 곳곳에서 우울증 발병률은 풍요의 증가율과 놀랄만치 일치하여 증가해왔는데, 원인 모를 우울감에 시달리는 '단극성' 우울증 환자는 50년 전보다 10배 더 많아졌다.(Easterbrook, 2003) 즉 배때지가 불러질수록, 정신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은 많아진다. 



이는 멀지 않은 과거와 극명히 대비된다. 과거의 사람들은 처참하게 살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문제를 호소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1950년대 한국에는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해 처참하게 굶어죽는 사람이 넘치고 넘쳤지만, 그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없었다. 6.25전란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실향민이 되어 불행하게 살아갔지만, 불안 장애로 자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개한 조선시대에도, 억압받던 일제강점기에도, 우울증과 자살은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키워드가 결코 아니었다. 



이는 과거에 흔하디 흔했던 삶의 절박함과 빈곤이, 그들에게 악착같이 살아가야 할 이유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판도가 뒤바뀌었다. 모든 것이 번영하고 풍족해졌지만, 오히려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사람의 양은 급격히 증가했다. 사방팔방에 먹을게 넘쳐나고 부족한 게 없게 되니, 등따숩게 방구석에 편히 누워 SNS를 구경하며 "아 쟤는 나보다 더 잘생겼네" "아 쟤는 나보다 더 큰 집에서 사네" "나는 월요병환자이지롱" 이런 사치스러운 걱정을 하루종일 부릴 수 있는 여유가 생기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풍족한 방구석에서 복에 겨운 망상을 하다 절망감에 빠져 정신병에 걸리고야 만다.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괜히 선진국의 고질병으로 불리는 게 아닌 것이다.



이는 자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배때지가 부르면 사람은 인생이 재미가 없다느니 앞날이 깜깜하다느니 하는 시덥잖은 소리를 내뱉을 여유가 생기고 우울증에 걸리며 자살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당장 생존에 위협을 받는 사람은 자살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이는 통계자료로도 입증된다. 전쟁이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율을 감소시킨다는 것이 그 증거다. 실제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참전 국가의 국민 자살률은 반토막으로 급감했다. 찡찡거리며 힐링이니 우울이니 타령하며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당장 목숨이 위태롭다는 두려움과 압박감, 적의 공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등의 복합적인 감정이 그들로 하여금 무기력할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Colt, 2006; Monestier, 1999) (* 그러나 전쟁 후에는 결국 정신 장애를 겪는 군인과 유가족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므로, 전쟁이 더 나은 국민 정신건강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급박한 전시 상황에서 국민 자살률이 '대폭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이는 인간이 처참히 절박해질 때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는 증거가 된다.)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서는 한 해에만 12명의 학생들이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하고 9명이 죽었는데,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개시한 해에는 자살하는 학생이 0명이었다고 한다. 일본을 향한 증오심과 복수심이 모든 학생들의 피를 들끓게 만들어, 우울감 등의 감정을 호소할 틈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Russianoff, 1988)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는 동물원을 운영하는 가족이 동물들을 데리고 바다를 건너며 이사를 하다가, 배가 좌초하여 모두가 절멸하고 주인공 남자 아이 한 명만 구명 보트 위에 살아남는 장면이 등장한다. 



배가 좌초되어 주인공은 소중한 가족과 사랑하는 애인, 아끼는 동물들을 한 순간에 전부 잃고, 아무 희망이 없는 망망대해에 혼자 남겨지게 된다. 그는 살아갈 용기를 내지 못하고, 우울증과 패닉에 빠져 그대로 바다 위에서 목숨을 잃을 운명에 처한다.



하지만 반전이 등장한다! 동물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호랑이가, 헤엄을 쳐서 구명 보트위로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호랑이는 구명 보트에 안착하자마자 주인공에게 미친듯이 돌진하여 그를 잡아먹으려 한다. 기겁을 한 주인공은 슬픔과 절망에 빠질 틈도 없이 호랑이로부터 안전하게 도망칠 궁리를 하게 된다. 결국 그는 비품을 이용하여 구명 보트에 대피 공간을 만드는데 성공하고, 그렇게 호랑이와 매일같이 사투를 벌이며 고군분투하다 호랑이에게 애착을 갖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주인공은 호랑이에게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물고기를 잡아 먹이를 챙겨주며 호랑이와의 목숨을 건 위험한 동침을 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그는 몇 달 만에 자신의 근방을 지나가는 유람선을 통해 구조되기에 이른다.



먼 훗날 그는 자신을 취재하러 온 기자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과 동물을 전부 잃었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요. 망망대해에서 기약없이 표류하다 정신병에 걸려 죽을 운명이었죠. 그 순간 나는 나를 잡아먹으려는 리처드 파커를 만났어요. 난 녀석으로부터 살아남아야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시간을 보냈고, 최후에는 녀석을 돌보는 것에 삶에 의미를 두었어요. 리처드 파커가 아니었다면 나는 끝없는 절망에 빠져 삶을 포기했을거에요." 







우리는 앞서 후진국에 거주하는 사람일수록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것, 전쟁이 발발하면 국민 자살률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것, 그리고 배때지가 부른 선진국 사람들만 유독, 정신 장애에 시달린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눈 앞의 호랑이로부터 목숨을 부지할 궁리를 한 덕에 모든 것을 잃었음에도 살아남게 된 주인공의 일화를 보았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인간이 풍족함을 누리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연은 인간을 그런식으로 설계하지 않았다. 자연은, 인간이 의미와 목적을 위해 살아갈 때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의미와 목적이 있다면, 그리고 각박한 삶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면, 아무리 가난해도, 아무리 삶이 암담해도, 아무리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이어도 인간은 도리어 살아남기 위해 더욱 악착같이 투쟁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온실속의 화초 같은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은 다양한 정신 질환을 겪는, '풍요속의 빈곤'에 빠지게 될 확률이 높다.



바로 이런 조건을 이해해야 우리는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한걸음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의 뜻은 우리가 가난함이나 빈곤함을 칭송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전쟁을 하자는 말도 아니다. 우울증의 귀책 사유를 개인에게 전가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분명 우울증은 개인의 잘못이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의 결과물이다. 이는 다만 과거의 사람들은 반강제적으로 열악한 삶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함으로써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다면, 현대인은 자기 자신의 의지로 인생을 향한 투쟁을 지속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삶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자기 삶을 위해 분투하고, 자신만의 의미와 목적을 만들어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을 실현시켜 나가야 한다. 절박하게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의 정신을 올바르게 이끌고 돌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자 건강한 정신을 향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인주의를 지향했던 19세기 철학자 니체의 격언을 명심하고 있어야 한다. 그는 인생의 역경을 견디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왜 살아가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디어낼 수 있다." 

"If we possess a why of life we can put up with almost any how."



그 어떤 목적없이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살다보면, 언젠가 우울증이라는 질병이 소리소문없이 찾아오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떤 의미를 위해, 그리고 어떤 목적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인가?

[출처] 인간이 자살하는 이유는 배떼지가 불러서다|작성자 테크









日本という国は、そういう特権階級の人たちが楽しくしあわせに暮らせるように、あなた達凡人が安い給料で働き、高い税金を払うことで成り立っているんです。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러한 특권계급 사람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당신들 보통사람이 싼 급료로 일하고, 높은 세금을 지불함으로써 이루어져 있는 겁니다.



そういう特権階級の人達が、あなた達に何を望んでいるか知っている?

그러한 특권계급 사람들이, 당신들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今のままずーっと愚かでいてくれれば良いの。世の中の仕組みや、不公平なんかに気付かず、テレビや漫画でもぼーっと見て何も考えず、会社に入ったら、上司の言うことを大人しく聞いて、戦争が始まったら真っ先に危険な所に行って戦ってくれば良いの。

지금 그대로 계-속 어리석어 주면 됩니다. 세상의 구조나, 불공평 같은 것을 알아차리지 말고, TV나 만화같은 것이나 멍하게 보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회사에 들어가면 상사가 말하는 것을 얌전히 듣고, 전쟁이 시작되면 제일 먼저 위험한 곳에 가서 싸워주면 됩니다.
- 여왕의 교실




 

"진리야 있지. 그러나 네가 요구하는 '가르침' 그것만으로 현명해질 수 있는 절대적 가르침이란 없는 거야. 그러니 너도 완전한 가르침을 열망해서는 안돼. 열망할 것은 오히려 네 자신의 완성이야. 신의라는 것은 네 마음 속에 있는 것이지 개념이나 책 같은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진리라는 것은 살아 있는 것이지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은 아니야."

- P.42

 

"우리는 추구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혹은 때에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많으면 많을수록 명상으로 힘의 원천과 정신과 영혼의 항상 새로운 융화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야. 그리고 나는 얼마든지 그러한 실례를 알고 있네. 우리가 어떤 과제에 힘을 쏟아서 때로는 감격하고 흥분도 하고, 때로는 피로해서 지칠수록 이 원천을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이네. 그것은 마치 정신적인 일에 열중하며 육체의 정양을 소홀히 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역사상 정말 위대한 사람은 모두 명상을 했거나, 적어도 명상을 함으로써 우리가 이르게 되는 길을 무의식적으로나마 알고 있었다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재주가 있고 강한 자라도 나중에는 모두 실패하고 패배하게 되는 것이지.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그들의 과제, 또는 야심만만한 꿈에 사로잡혀서 정신을 잃게 되고, 항상 현실적인 것을 떠나 간격을 두고 지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야."

- P. 59

 

"그 사람의 생애로 보아 '행운'을 지닌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그들의 사명이 사실상 역사적으로나 또는 전기적으로 잘 합치되었다는 점, 곧 그들이 시기적절하게 태어났다는 점에서만 그 행운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사람도 있다. 크네히트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인 듯 생각된다. 그래서 그의 일생은 적어도 어떤 시기에는 원하던 모든 것이 자연히 그의 무릎 위에 내려오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다."

- P. 132

 

"속세의 인간은 예의에 벗어난 부족한 교양이나 무뚝뚝하고 시끄러운 유머나, 실제적이며 이기적인 목적만을 추구하는 얄팍한 지혜를 자랑거리로 삼고 있었네. 그들은 도량이 좁은 자연성을 발트젤의 모범성만큼이나 귀중하고 신의 뜻에 부합되며 선택된 것으로 생각하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 그들은 나를 놀리기도 하고 어깨를 두들기기도 했지만 내 마음 속에 있는 색다른 것, 다시 말하면 카스타리엔적인 것에 대해서 숨김없이 공공연하게 증오를 나타냈네. 천한 것이 고귀한 모든 것을 향하여 퍼붓는 증오심이었지. 나는 그것을 일종의 영예로 생각하며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지."

- P. 214

 

"모든 민족과 언어가 신화나 우주나 새 성설이나 종교로써 세계의 심오한 부분을 탐지하려고 애쓰는 경우, 도달할 수 있는 최후의 가장 높은 것은 이 명랑함인 것이네. 자네는 고대 인도 사람을 기억하지? 우리들 발트젤의 선생님이 고대 인도 사람에 대해서 재미있는 말을 해준 적이 있어. 그 민족은 고통을 겪으며 심사숙고하고 속죄하며 금욕하는 민족이지만 그 정신의 궁극적인 커다란 목표는 맑은 명랑함이라는 것일세. 속세의 정복자나 부처님의 미소도 명랑함이지. 의미깊은 신화의 인물도 명랑한 사람이야. 이러한 신화가 표현하는 세계는 처음에는 엄숙하고 행복하고 빛을 발하며 봄날의 아름다움과 황금시대로 시작된다네. 그러나 머지 않아 세계는 병들도 타락하며 거칠어지고 처참하게 되어, 결국 기울어져 가는 시대가 끝날 무렵에는 웃고 춤추는 사탄에게 짓밟히고 파멸되기에 이르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비슈누(우주를 지키는 신), 우주를 지키는 신의 미소로써 다시 시작된다네. 비슈누는 능란한 솜씨로 새롭고 젊고 아름답게 빛나는 세계를 창조한다네. 놀라운 일이야. 비할 데 없이 총명하며 고뇌를 이겨낸 이 민족은 전율과 부끄러움으로써 세계사의 두려운 운명이나, 영원히 회전하는 욕망이나, 고민의 수레바퀴를 바라보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지. 피조물의 연약성이나 인간의 욕망이나 마귀성을 봄과 동시에 순수성과 조화에 대한 깊은 동경심을 보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했다네. 그리고 피조물의 아름다움과 비극을 나타내기 위해서 훌륭한 비유를 발견하고, 우주와 피조물의 붕괴와의 비유를 발견했다네. 타락한 세계를 춤으로 조각을 만드는 강대한 시바(힌두교의 3대 신의 하나로서 파괴, 죽음, 생식, 창조의 일을 맡아봄)에 대한 비유, 훌륭한 모든 신의 꿈에서 유희하고, 새로운 세계를 이룩하며 미소하는 비슈누의 비유를 발견했다는 걸세. 따라서 명랑함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어."

- P. 232

 

"언젠가 우리 후대들도 우리와 같은 경험을 할는지 모른다. 그들은 우리를 광명에 가득 찬, 행복한 현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 생활의 안타깝게 얽힌 합창 가운데서 조화된 여운이나 고통과 싸움에서 남은 아름다운 신화의 이야기만을 들을 뿐이므로. 우리들 중에서 가장 자기를 믿지 않고 가장 많이 묻고 의심하는 사람이야말로 아마 시대에 영향을 남기고 청년을 교환하는 데 모범이 될 것이다. 자신을 의심하고 고뇌하는 자가 아마도 언젠가는 행복한 자로서 선망의 대상이 되리라."

- P. 334

 

"모든 꽃이 반드시 시드는 것과같이 청춘이 나이에 굴종하는 것과같이 일생의 모든 시기와 지혜와 덕망도 때에 따라 꽃이 피는 것이며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 생의 외침을 들을 때마다 마음은 언제까지나 서러워하기보다는 새로운 속박으로 들어가듯이 이별과 재출발의 각오를 해야 한다. 대개 무슨 일이나 처음에는 이상한 힘이 깃들어 있다. 그것이 우리를 지키며 사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명랑하게 다음다음 공간으로 거쳐가야 한다. 어디서나 고향에 대한 어떠한 애착을 느껴서는 안 된다.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붙잡거나 속박하지도 않고 우리를 한 단계씩 더 높여주며 우리의 마음을 넓혀주려 한다." 임종시에도 우리를 새로운 공간으로 향하게 하고 젊게 꽃피워 줄지도 모른다.

- P. 335

 - 헤르만 헤세 유리알 유희

 

 
남자의 '무드'란 젊음이 사그라들 무렵에야 드러난다 - 조지 클루니의 매력에 대한 평 



(타무라 마사카즈를 보며)
프라모델 같다.
- 기타노 다케시



고문진보후집(古文眞寶後集) 110_(卷十)
                        
                      送秦少章序(송진소장서)-張耒(장뢰)

 

詩不云乎(시불운호) : <시경>에 이르지 않았는가“
蒹葭蒼蒼(겸가창창) : 갈대 무성한데
白露爲霜(백로위상) : 흰 이슬 서리되어 내리네”라고
夫物不受變則材不成(부물불수변칙재불성) : 물건이란 변화를 겪지 않으면
人不涉難則智不明(인불섭난칙지불명) : 지혜가 총명해지지 않는 법이다.
季秋之月(계추지월) : 늦은 가을달이면
天地始肅(천지시숙) : 천지가 움추려들기 시작하고
寒氣欲至(한기욕지) : 차거운 기운이 닥쳐오기 시작한다.
方是時(방시시) : 바로 이 때에
天地之間(천지지간) : 천지간에
凡植物(범식물) : 모든 식물이
出於春夏雨露之餘(출어춘하우로지여) : 봄 여름의 비와 이슬을 먹어온 여택 덕분에
華澤充溢(화택충일) : 화사한 윤택이 차고 넘치고
支節美茂(지절미무) : 가지와 마디가 아름답고 무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가,
及繁霜夜零(급번상야령) : 된 서리가 밤에 내린 뒤에
旦起而視之(단기이시지) : 아침에 일어나 보면
如戰敗之軍(여전패지군) : 마치 전쟁에 패한 군대가
卷旗棄鼓(권기기고) : 깃발을 말아들고 북도 내던진채
裹瘡而馳(과창이치) : 상처를 싸매고 달리어
吏士無人色(리사무인색) : 장교와 사병 모두 사람의 빛을 잃은 것과 같이 되었다.

豈特如是而已(기특여시이이) : 찌 유독 그러하기만 할 뿐이겠는가
於是天地閉塞(어시천지폐색) : 이로부터 천지가 닫쳐져서
而成冬則摧敗拉毁之者過半(칙최패랍훼지자과반) :
겨울이 되면 꺾이고 부서지고 부러지고 무너지는 것들이 반도 넘으니
其爲變亦酷矣(기위변역혹의) : 그 변화가 매우 참혹하다.
然自是(연자시) : 그러나 여기에서
弱者堅(약자견) : 약한 것은 튼튼해지고
虛者實(허자실) : 텅빈 것은 충실해지고
津者燥(진자조) : 물기 넘치던 것은 건조해지면서
皆歛其英華於腹心(개감기영화어복심) : 모두가 그의 꽃답고 화려한 것을 배 속으로 거두어들이어
而各效其成(이각효기성) : 그러한 성취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深山之木(심산지목) : 깊은 산의 나무가
上撓靑雲(상요청운) : 위로는 푸른 구름 사이로 솟아오르고
下庇千人者(하비천인자) : 아래로는 천명을 가려 줄 만한 것이라 하더라도
莫不病焉(막불병언) : 이런 변화를 걱정치 않을 수 없을 것인데
況所謂蒹葭者乎(황소위겸가자호) : 하물며 이른바 갈대야 어떠하겠는가
然匠石操斧(연장석조부) : 그러나 장석이 도끼를 들고
以遊山林(이유산림) : 산과 숲을 돌아다니다가
一擧而盡之(일거이진지) : 한꺼번에 나무들을 다 베어 가지고
以充棟梁桷杙輪輿輹輻(이충동양각익륜여복복) :
대들보, 들보, 말뚝, 수레바퀴, 수레바탕, 바퀴테, 바퀴살에 충당시켜
巨細强弱(거세강약) : 크고 가늘고 강하고 약한 것이
無不勝其任者(무불승기임자) : 그 소임을 감당해내지 않는 것이 없도록 만든다.
此之謂損之而益(차지위손지이익) : 이것을 손상시키어 유익하게 만들고
敗之而成(패지이성) : 무너뜨리어 이룩하고
虐之而樂者(학지이락자) : 모질게 대함으로써 즐겁게 해준다고 말하는
是也(시야) : 바로 그것일 것이다.

吾黨有秦少章者(오당유진소장자) : 우리 고장에 진소장이란 사람이 있는데
自余爲大學官時(자여위대학관시) : 내가 태학의 벼슬을 하고 있을 때에
以其文章示余(이기문장시여) : 자기 글을 나에게 보여주면서
愀然告我曰(초연고아왈) : 얼굴빛을 바로잡으며 나에게 말하였다.
余家貧(여가빈) : “우리 집은 가난해서
奉命大人(봉명대인) : 아버님 명을 받들어
而勉爲科擧之文也(이면위과거지문야) : 과거를 보기 위한 글 공부에 힘쓰고 있습니다.
異時率其意(이시률기의) : 전날 자기의 뜻을 따라
爲詩章古文(위시장고문) : 시와 고문을 지어보니
往往淸麗奇偉(왕왕청려기위) : 어떤 것은 청려하고 기특하고 뛰어나서
工於擧業百倍(공어거업백배) : 과거 공부보다는 백 배나 잘된 것 같습니다.”
元祐六年及第(원우육년급제) : 원우 육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調臨安主薄(조임안주박) : 임안의 주부로 임명되었는데
擧子中第(거자중제) : 과거를 보려던 사람이 급제하였으니
可少樂矣(가소락의) : 약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나
而秦子每見余(이진자매견여) : 진소장은 내가 볼 때마다
輒不樂(첩불락) : 늘 즐겁지 않았다.
余問其故(여문기고) : 내가 그 이유를 물으니
秦子曰(진자왈) : 진소장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余世之介士也(여세지개사야) : “저는 세상의 강직한 선비입니다.
性所不樂(성소불락) : 성격상 즐겁지 않은 일은
不能爲(불능위) : 하지 못하고
言所不合(언소불합) : 말이 합치되지 않는 사람이면
不能交(불능교) : 사귀지 못하며,
飮食起居(음식기거) : 먹고 마시고 생활하여
動靜百爲(동정백위) : 갖가지 행동을 함에 있어서
不能勉以隨人(불능면이수인) : 억지로 남을 따르지 못합니다.
今一爲吏(금일위리) : 지금 한번 관리가 되고 보니
皆失己而惟物之應(개실기이유물지응) : 자기는 모두 잃고 오직 사물에 대웅하기만 하고 있습니다.
少自偃蹇(소자언건) : 젊어서 스스로 줏대없이 이러하니
悔禍響至(회화향지) : 불행이 이에 따라 닥칠 것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異時一身資養於父母(이시일신자양어부모) : 전날에는 이 몸을 부모에 힘입어 보양했지만
今則婦子仰食於我(금칙부자앙식어아) : 지금은 처자들이 저를 우러르며 먹고 살고 있어서
欲不爲吏(욕불위리) : 관리노릇을 그만두고 싶어도
又不可得(우불가득) : 그럴 수가 없습니다.
自今以往(자금이왕) : 지금부터는
如沐漆而求解矣(여목칠이구해의) : 옷칠로 머리를 감으면서 머리를 펴려고 하는거나 같을 것입니다.”

余解之曰(여해지왈) : 나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풀이를 해주었습니다.
子之前日(자지전일) :  “그대의 전날은
春夏之草木也(춘하지초목야) : 봄 여름의 초목이었다면
今日之病子者(금일지병자자) : 오늘 그대를 걱정케 하는 것은
蒹葭之霜也(겸가지상야) : 갈대에 내린 서리나 같은 것이오.
凡人性惟安之求(범인성유안지구) : 대체로 사람의 본성이란 편안함을 추구하게 마련이지만
夫安者天下之大患也(부안자천하지대환야) : 편안함이란 천하의 큰 환난인 것이오.
能遷之爲貴(능천지위귀) : 다른 곳으로 옮아가는 것이 소중하니,
重耳不十九年於外(중이불십구년어외) : 옛날 진나라 중이가 십구 년 동안 날 밖에 가 있지 않았었다면
則歸不能覇(칙귀불능패) : 뒤에 돌아와 문공이 되어 패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며,
子胥不奔(자서불분) : 초나라 오자서가 오나라로 도망치지 않았었다면
則不能入郢(칙불능입영) : 초나라 도성 영으로 쳐들어갈 수가 없었을 것이오.
二子者方其羇窮憂患之時(이자자방기기궁우환지시) : 두 사람은 그러한 궁지에 몰리고 환난을 당하고 있을 적에
陰益其所短(음익기소단) : 남몰래 그의 단점을 보강하고
而進其所不能者(이진기소불능자) :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발전시켰으니
非如學於口耳者之淺淺也(비여학어구이자지천천야) : 입과 귀를 통하여 배운 것처럼 얕고 가벼운 것이 아니었소.
自今吾子思前之所爲(자금오자사전지소위) : 지금으로부터 당신도 전네 한 일들을 생각해보면
其可悔者衆矣(기가회자중의) : 후회할만한 일도 많을 것이나
其所知益加多矣(기소지익가다의) : 아는 것도 더욱 많아질 것이니,
及身而安之(급신이안지) : 자신을 반성하고 편안히 지낸다면
則行於天下(칙행어천하) : 곧 천하에서 행동함에 
無可憚者矣(무가탄자의) : 꺼리낄 것이 없게될 것이오,
能推食與人者(능추식여인자) : 남에게 음식을 양보하고 줄 수 있는 사람이란
常飢者也(상기자야) : 언제나 굶주리는 사람이며,
賜之車馬而辭者(사지차마이사자) : 그에게 수레와 말을 주어도 사양할 수 있는 사람이란
不畏徒步者也(불외도보자야) : 걷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인 것이오.
苟畏飢而惡步(구외기이악보) : 진실로 굶주림을 두려워하고 걷기를 싫어한다면
則將有苟得之心(칙장유구득지심) : 곧 구차히 그것들을 구하려는 마음이 생길 것이니,
爲害不旣多乎(위해불기다호) : 해가 되는 것이 많지 않겠소
故隕霜不殺者(고운상불살자) : 그러므로, 서리가 내려도 시들지 않는다는 것은
物之災也(물지재야) : 식물로서는 재난이 되는 일이고,
逸樂終身者(일락종신자) : 평생 편히 즐기기만 하는 것은
非人之福也(비인지복야) : 인간으로서의 행복이 아닌 것이오.”
元祐七年仲春十一日書(원우칠년중춘십일일서) : 원우 칠년 이월 십일일에 씀.




굴원의 지조를 용납하지 못한 세상에게

조굴원부(弔屈原賦)



가의(賈誼)



 

인재를 괴롭히는 세상에 대해

 

恭承嘉惠兮, 竢罪長沙.

아름다운 은혜를 공손히 받들어 장사에서 죄 받길 기다림이로다.

 

仄聞屈原兮, 自湛汨羅.

곁에서 굴원의 이야기를 들음이여, 스스로 멱라수에 빠졌다 하네.

 

造托湘流兮, 敬弔先生.

나아가 소상강에 의탁하여 공경히 선생을 조문하도다.

 

遭世罔極兮, 迺殞厥身.

세상에 끝없음을 만남이여 이에 그 몸을 던졌구나.

 

烏虖哀哉兮! 逢時不祥.

아! 슬프도다. 상서롭지 못함을 만났도다.

 

鸞鳳伏竄兮, 鴟鴞翶翔.

난새와 봉황이 숨음이여 솔개와 올빼미가 날아다니도다.

 

闒茸尊顯兮, 讒諛得志.

못난이들이 존귀해지고 현달해짐이여 아첨꾼들이 뜻을 얻으며

 

賢聖逆曳兮, 方正倒植.

현인과 성인이 거꾸로 끌려 다니고 바른 이들이 뒤집혀 세워졌구나.

 

謂隨ㆍ夷溷兮, 謂跖ㆍ蹻廉.

卞隨와 伯夷를 혼탁하다 하고 도적인 盜跖과 莊蹻를 청렴하다 하며

 

莫邪爲鈍兮, 鉛刀爲銛.

명검 막야검을 무디다 하고 납칼을 날카롭다 하도다.

 

于嗟黙黙, 生之亡故兮.

아! 묵묵히 선생의 연고도 없었음이여.

 

斡棄周鼎, 寶康瓠兮.

주나라의 솥을 굴려버리고 康瓠를 보물로 하는 도다.

 

騰駕罷牛, 驂蹇驢兮.

힘들어하는 소에 멍에 매어 타고 절뚝이는 나귀를 참마로 삼으니,

 

驥垂兩耳, 服鹽車兮1.

천리마는 두 귀를 늘어뜨리고 소금 수레에 멍에 매여졌도다.

 

章甫薦屨, 漸不可久兮.

장보관을 신에 까니 점점 오래 버틸 수 없었구나.

 

嗟苦先生, 獨離此咎兮.

아! 괴로운 선생이여 이 허물에 걸렸구나.

 

 

 

굴원을 품지 못한 세상이에게

 

誶曰: “已矣,

정리하며 말하겠다. “그만두자.

 

國其莫吾知兮. 予獨壹鬱其誰語.

나라에 나를 아는 이가 없으니 내가 홀로 한결같은 답답함을 누구와 말하랴.

 

鳳縹縹其高逝兮, 夫固自引而遠去.

봉황새 훨훨 높이 날아갔으니 진실로 스스로 이끌어 멀리 떠났구나.

 

襲九淵之神龍兮, 沕淵潛以自珍.

구룡에 숨어 있는 신룡이여 아득한 연못에 잠겨 스스로 보배로 여겨라.

 

偭蟂獺以隱處兮, 夫豈從蝦與蛭螾.

교달과 수달을 피하고 은둔하여 거처하니 어찌 새우와 거머리와 지렁이를 따르겠는가.

 

所貴聖之神德兮, 遠濁世而自臧.

성인의 신묘한 덕을 귀중히 여기니 혼탁한 세상을 멀리하고 스스로 감춤이로다.

 

使麒麟可係而覊兮, 豈云異夫犬羊.

가령 기린을 얽어매어 묶어두면 어찌 개와 양과 다르겠는가.

 

般紛紛其離此郵兮. 亦夫子之故也.

분분히 이 허물에 걸림이여 또한 부자의 잘못이로다.

 

歷九州而相其君兮. 何必懷此都也.

구주를 지나 임금을 보니 어떻게 반드시 이 도읍지를 품겠는가.

 

鳳凰翔于千仞兮, 覽德輝而下之.

봉황이 천인을 날다가 덕이 빛나는 곳을 보고 내려앉고

 

見細德之險微兮. 遙增擊而去之.

자잘한 덕의 험하고 미세함을 보고 아득히 날갯짓하여 떠나도다.

 

彼尋常之汙瀆兮, 豈容呑舟之魚.

저 작은 도랑이여 어찌 배를 삼킬 만한 물고기를 용납하겠는가.

 

橫江湖之鱣鯨兮, 固將制於螻螘.”

강호를 가로지르는 고래여, 진실로 장차 땅강아지에게 제압당했도다.”


 


樂志論(낙지론) -  뜻대로 삶을 즐김

仲長統(중장통) 
179 ~ 220


 
使居有                    거처하는 곳에

사거유

良田廣宅                  좋은 밭이 딸린 넓은 집이 있고

양전광택

背山臨流                  산을 등지고 시내가 곁에 흐르며

배산임류

溝池環匝                  도랑과 못이 집 주위에 빙 둘러 있고

구지환잡

竹木周布                  대나무와 나무들이 죽 벌려 서 있어며

죽목주포

場圃築前                  앞에는 타작마당과 채마밭이 있고

장포축전

果園樹後                  뒤에는 과수원이 있다.

과원수후

舟車足以代步涉之難          수레와 배가 걷고, 물을 건너는 어려움을 대신하고

주거족이대보섭지난

使令足以息四體之役           심부름하는 이가 육체의 노역에서 쉬게 해준다.

사령족이식사체지역

養親有兼珍之膳               갖가지 진미로 부모를 봉양하고

양친유겸진지선

妻孥無苦身之勞               아내와 자식들은 몸을 괴롭히는 일없이 편안하다.

처노무고신지로

良朋萃止                      좋은 벗들이 모여 머무르면

양붕췌지

則陳酒肴以娛之               술과 안주를 벌여놓고 즐거워하고

즉진주효이오지

嘉時吉日​                      기쁠 때나 좋은 날에는

가시길일​

則烹​羔豚以奉之                새끼 양과 돼지를 삶아 제사를 받든다.

즉팽고돈이봉지​

躕躇畦苑                      밭이랑과 동산을 홀로 거닐기도 하고

주저휴원​​

遊戱平林                       숲속에서 놀기도 하며,​

유희평림​

濯淸水                     맑은 물에 나아가 씻기도 하고​

탁청수​

追凉風​                     서늘한 바람을 따라가기도 하며,

추량풍​

釣游鯉                     물에 노는 잉어를 낚기도 하고​

조유리​

​弋高鴻                     높이 나는 큰기러기에 주살질도 하며

익고홍​

諷於舞雩之下​                  기우제를 지내는 제단 아래서 바람을 쐬고

풍어무우지하​

詠歸​高堂之上                   시를 읊으며 높은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영귀고당지상​

安神閨房                      깊숙한 방에 앉아 정신을 편안하게 하고

안신규방​

思老氏之玄虛                 노자의 현묘하고 텅 빈 도를 생각하며​

​사노씨지현허

呼吸精​和                      천지의 정화를 들이마시고 내뱉어

호흡정화

求至人之彷彿                   至人을 닮고자 애쓴다.

​구지인지방불​

與達者數子                    도에 통달한 사람 몇 명과 더불어

여달자수자

論道講書                       도를 논하고 경서를​강론하고

논도강서

俯仰二儀                       하늘과 땅을 올려보고 내려보며​

​부앙이의

錯綜人物                       고금의 여러 인물을 한데 모아 평가하기도 한다.​

착종인물​

彈南風之雅操                  남풍의 고아한 가락을 타기도 하고​

탄남풍지아조

發淸商之妙曲                  청상의 미묘한 곡조를 연주하여​

​발청상지묘곡

逍遙一世之上                   어려운 세상을 초월하여 유유히 노닐고​

소요일제지상​

睥睨天地之間                  하늘과 땅 사이를곁눈질하여

비예천지지간​

不受當時之責​                  당시의 책임을 맡지않고

불수당시지책​

永保性命之期                  기약된 운명을 길이 보전한다.​

영보성명지기​

如是                       이와 같이 하면

여시

則可以凌霄漢                   은하수를 넘어서

즉가이릉소한​

出宇宙之外矣                  우주의 밖으로 나아갈 수 있어니,​

출우주지외의​

豈羨夫入帝王之門哉           어찌 제왕의 문에 드는 것을 부러워 하리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상적·문학적 맥락에서 매우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사실상 중장통의 〈낙지론〉은 도연명 〈귀거래사(歸去來辭)〉의 거대한 '프로토타입(원형)'입니다.

도연명(365~427)은 중장통보다 약 150년 뒤의 사람입니다. 그가 팽택 현령이라는 관직을 던져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며 쓴 〈귀거래사〉의 구조와 디테일을 보면, 중장통이 디자인한 은둔의 하드웨어가 그대로 이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

봄밤에 도리원 연회에서 지은 시문의 서 



夫天地者(부천지자)는 萬物之逆旅(만물지역려)요 光陰者(광음자)는 百代之過客(백대지과객)이라. 而浮生(이부생)이 若夢(약몽)하니 爲歡(위환)이 樂幾何(락기하)오?

 

무릇 천지는 만물(萬物)이 쉬어가는(맞이하는) 여관(旅館)이요 광음(光陰)은 긴 세월을 거쳐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덧없는 인생은 꿈과 같으니 즐긴다 하여도 얼마나 되겠는가?

 

古人秉燭夜遊(고인병촉야유)는 良有以也(양유이야)로다. 況陽春(황양춘)이 召我以煙景(소아이연경)하고 大塊(대괴)가 假我以文章(가아이문장)이라.

 

옛 사람이 촛불을 들고 밤에 놀이한 것도 참으로 까닭이 있었구나. 하물며 따뜻한 봄날이 안개 낀 아름다운 경치(景致)로 나를 부르고 천지(大塊)가 나에게 문장(文章)을 빌려주었음이랴!
- 이백





추밀 위국공(魏國公) 한기(韓琦)께 올린 편지

상추밀한태위서(上樞密韓太尉書)



소철(蘇轍)





맹자나 사마천이 글 짓는 법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글을 지을 수 있던 이유

 

轍生好爲文, 思之至深,

저는 태아나면서 문장 짓기를 좋아해 생각하길 지극히 깊이하여

 

以爲文者, 氣之所形.

‘문장이란 기가 드러난 것이다.

 

然文不可以學而能, 氣可以養而致.’

그러나 글은 배워서 할 수 없고 기가 길러져야 지극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孟子曰: ‘我善養吾浩然之氣.’

맹자는 ‘나는 잘 나의 호연지기를 기른다.’라고 말했으니,

 

今觀其文章, 寬厚宏博,

이제 그 문장을 보면 너그럽고 후하면 굉장하고 드넓어

 

充乎天地之間, 稱其氣之小大.

천지 사이에 가득차 기의 작은 것이나 큰 것이나 알맞습니다.

 

太史公行天下, 周覽四海名山大川,

태사공이 천하를 다녀 사해와 명산과 대천을 두루 보고

 

與燕趙間豪俊交遊,

연나라와 조나라 사이의 호걸한 이들과 교유하였기 때문에

 

故其文疏蕩, 頗有奇氣.

그러므로 그 문장은 소탈하고 넓어 매우 기이한 기운이 있습니다.

 

此二子者, 豈嘗執筆,

이 두 사람이 어찌 일찍이 붓을 잡고

 

學爲如此之文哉.

배워 이와 같은 글을 지었겠습니까?

 

其氣充乎其中而溢乎其貌,

기가 내면에 충만해 겉으로 흘러넘치고

 

動乎其言而見乎其文而不自知也.

말에 동하여 문장으로 드러나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외적 환경의 한계를 극복하려 장쾌한 여정을 떠나다

 

轍生十有九年矣, 其所居家與遊者,

저는 태어난 지 19년으로 머무는 집과 교유하는 사람이

 

不過其鄰里鄕黨之人,

이웃 마을과 동네 사람들에 불과했고

 

所見不過數百里之間.

보는 것은 수백리 사이에 불과했습니다.

 

無高山大野可登覽以自廣,

높은 산과 너른 들판으로 오르고 볼만하여 스스로 넓힐 만한 게 없고

 

百氏之書, 雖無所不讀,

백가의 책을 비록 읽지 않은 게 없지만

 

然皆古人之陳迹, 不足激發其志氣,

그러나 모두 고인의 진부한 자취이니 지기를 격동시켜 발하기엔 부족하여

 

恐遂汨沒.

마침내 외골수가 될까 걱정되었습니다.

 

故決然捨去, 求天下之奇聞壯觀,

그러므로 결연하게 버리고 떠나 천하의 기이한 이야기들과 장엄한 볼거리를 구해

 

以知天地之廣大.

천지의 드넓고도 커다랗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을 유람하고 구양수와 이야기를 나눈 후 알게 된 것

 

過秦ㆍ漢之故都,

진나라와 한나라의 오랜 도읍을 지나

 

恣觀終南嵩華之高,

종남산과 숭산과 화산의 높음을 멋대로 보고

 

北顧黃河之奔流,

북쪽으로 황하의 어지럽게 흘러감을 돌아보며

 

慨然想見古人之豪傑,

쓸쓸하게 옛 사람의 호걸한 이들을 상상해보았고

 

至京師, 仰觀天子宮闕之壯,

서울에 이르러 천자 궁궐의 장엄함과

 

與倉廩府庫城池苑囿之富且大也而後,

곡식창고와 무기창고 성의 연못과 동산의 풍부하고도 큼을 우러러 본 후에

 

知天下之巨麗.

천하가 매우 아름답다는 걸 알았습니다.

 

見翰林歐陽公, 聽其議論之宏辨,

한림 구양공을 보고 그 의론의 굉장함과 분별력 있음을 듣고

 

觀其容貌之秀偉,

용모의 빼어나고 위대한 것을 보았으며

 

與其門人賢士大夫遊而後,

문인과 어진 선비와 대부들과 교유한 후에야

 

知天下之文章, 聚乎此也.

천하의 문장이 여기에 모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태위님 저에게도 사마천의 유람을 할 수 있는 휴가를 주소서

 

太尉以才略, 冠天下,

태위는 재주와 지략으로 천하에 으뜸이 되었으니

 

天下之所恃以無憂,

천하가 믿어 걱정이 없고

 

四夷之所憚而不敢發.

사방의 오랑캐가 꺼려 감히 나서지 못합니다.

 

入則周公ㆍ召公,

조정에 들어가선 재상이었던 주공과 소공 같았고

 

出則方叔1ㆍ召虎2,

나가선 장수였던 방숙과 소호와 같았지만

 

而轍也未之見焉.

저는 뵙질 못했습니다.

 

且夫人之學也, 不志其大,

또한 사람의 학문이 큰 것에 뜻을 두지 않으면

 

雖多而奚爲?

비록 많다 해도 어찌 쓰겠습니까?

 

轍之來也, 於山見終南嵩華之高,

제가 옴에 산에 있어선 종남산과 숭산과 화산의 높음을 보았고

 

於水見黃河之大且深,

물에 있어선 황하의 크고 깊음을 보았으며

 

於人見歐陽公, 而猶以未見太尉也.

사람에 있어선 구양공을 보았지만 오히려 태위를 보진 못하였습니다.

 

故願得觀賢人之光耀,

그러므로 현인의 빛남을 보고

 

聞一言以自壯,

한 말씀을 듣고 스스로 장엄해지길 원하오니

 

然後可以盡天下之大觀而無憾者矣.

그런 후에 천하의 큰 봄을 다 할 수 있다면 섭섭함이 없을 것입니다.

 

轍年少, 未能通習吏事,

저의 나이가 어려 관리의 일에 통달하고 익숙하지 못하지만

 

嚮之來, 非有取於升斗之祿.

접때에 온 것은 한 되와 한 말의 봉록을 취하려는 게 아닙니다.

 

偶然得之, 非其所樂.

우연히 봉록을 얻게 된 것으로 즐거워하는 게 아닙니다.

 

然幸得賜歸待選,

그라나 다행히 돌아감을 허락해주셔서 뽑히길 기다리고

 

使得優游數年之間,

만약 넉넉하게 몇 년 간 유람하게 해주신다면

 

將以益治其文, 且學爲政.

장차 문장을 다스리고 또한 배워 정치를 하는 데에 유익될 것입니다.

 

太尉苟以爲可敎而辱敎之,

태위께서 진실로 가르칠 만하다 여기시고 외람되이 가르쳐주신다면

 

又幸矣.

또한 다행일 것입니다.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

봄밤에 도리원 연회에서 지은 시문의 서

李白(이백.701-762)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는 화창(和暢)한 봄날 아름다운 정원(庭園)에서 이백(李白)의 여러 형제(兄弟)들이 모여 잔치를 벌일 때 흥(興)이 무르익어 시(詩)와 부(賦)를 지었는데 이때에 지은 시(詩)들을 모아 책을 만들며 서문(序文)으로 이백(李白)이 쓴 문장(文章)이다.

봄꽃이 만발(滿發)한 아름다운 정원(庭園)에서 화려(華麗)한 연회(宴會)를 즐기면서도 덧없는 인생이 꿈과 같다는 이백(李白)의 낭만성(浪漫性)은 인생무상(人生無常)의 짙은 애수(哀愁)를 느끼고 있다.





春夜宴桃李園序 

夫天地者는 萬物之逆旅요 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而浮生이 若夢하니 爲歡이 樂幾何오? 古人秉燭夜遊는 良有以也로다. 況陽春이 召我以煙景하고 大塊가 假我以文章이라.

 

會桃李之芳園하여 序天倫之樂事하니 群季俊秀는 皆爲惠連이어늘 吾人詠歌는 獨慙康樂가? 幽賞未已에 高談轉淸이라. 開瓊筵以坐花하고 飛羽觴而醉月하니 不有佳作이면 何伸雅懷리오?  如詩不成이면 罰依金谷酒數하리라.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

봄밤에 도리원 연회에서 지은 시문의 서 



夫天地者(부천지자)는 萬物之逆旅(만물지역려)요 光陰者(광음자)는 百代之過客(백대지과객)이라. 而浮生(이부생)이 若夢(약몽)하니 爲歡(위환)이 樂幾何(락기하)오?

 

무릇 천지는 만물(萬物)이 쉬어가는(맞이하는) 여관(旅館)이요 광음(光陰)은 긴 세월을 거쳐 지나가는 나그네이다. 덧없는 인생은 꿈과 같으니 즐긴다 하여도 얼마나 되겠는가?

 

古人秉燭夜遊(고인병촉야유)는 良有以也(양유이야)로다. 況陽春(황양춘)이 召我以煙景(소아이연경)하고 大塊(대괴)가 假我以文章(가아이문장)이라.

 

옛 사람이 촛불을 들고 밤에 놀이한 것도 참으로 까닭이 있었구나. 하물며 따뜻한 봄날이 안개 낀 아름다운 경치(景致)로 나를 부르고 천지(大塊)가 나에게 문장(文章)을 빌려주었음이랴!

 

會桃李之芳園(회도이지방원)하여 序天倫之樂事(서천륜지악사)하니 群季俊秀(군계준수)는 皆爲惠連(개위혜연)이어늘 吾人詠歌(오인영가)는 獨慙康樂(독참강락)가?

 

복숭아꽃, 오얏꽃 향기로운 동산에 모여 천륜(天倫)의 즐거운 일을 펼치니 여러 아우들은 글 솜씨 빼어나서 모두가 혜련(謝惠連)의 솜씨인데 내가 읊는 시만이 홀로 강락(康樂:謝靈運)에 부끄러워서야 되겠는가?

 

幽賞未已(유상미이)에 高談轉淸(고담전청)이라. 開瓊筵以坐花(개경연이좌화)하고 飛羽觴而醉月(비우상이취월)하니 不有佳作(불유가작이면 何伸雅懷(하신아회)리오? 如詩不成(여시불성)이면 罰依金谷酒數(벌의금곡주수)하리라.

 

그윽한 (봄 경치) 감상(感賞)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고상한 이야기(談論은)들은 더욱 맑아진다. 아름다운 잔치를 벌려 꽃 사이에 앉아 깃털 모양의 술잔을 주고받으며 달 아래 취하니 아름다운 문장이 없으면 어찌 고아(高雅)한 회포를 드러낼 수 있었겠는가? 만약 시를 짓지 못한다면 그 벌(罰)은 금곡(金谷)의 벌주 수에 따르리라.


      





바야흐로 밤에 책을 읽고 있을 때 서남쪽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들음이 있었다. 두려워하면서 그것을 듣고 말하길 "이상하구나!" 처음에는 쓸쓸한 바람소리로써 부시럭거리더니 갑자기 큰 물결이 달려 올라 솟구쳐 가듯 한 것이 마치 바다의 물결이 밤에 놀라 비바람이 달려 이르는 듯 하였다. 그것이 물건에 부딪힘에 쨍그렁 쨍그렁 하며 쇠붙이가 모두 울고 또 적에게 이르는 병사들이 재갈을 물고서 거세게 달리는 듯 부르는 소리는 들리지 아니하고 다만 사람과 말들이 달리는 소리만 나고 있었다.
내가 아이에게 이르기를 " 이것은 무슨 소리인가. 네가 나가서 그것을 보아라." 하니 아이가 말하길 " 별과 달이 밝고 맑으며 하늘엔 밝은 냇가가 있고 네 군데에는 사람의 소리가 없으니 소리가 있는 것은 나무 사이였습니다." 하였다.

내가 말하길 " 아아, 슬프도다. 이것은 가을의 소리이다. 어찌하여 온 것이냐. 무릇 저 가을의 생김새란 그 빛깔은 슬프고 맑으며 안개는 연기처럼 날아가고 구름은 거두어진다. 그 꼴은 맑고 밝으며 하늘은 높고 해는 밝게 빛난다. 그것의 기운은 떨릴만큼 차가워 사람의 가죽과 뼈를 돌바늘이 파고드는 것과 같고 그 뜻은 쓸쓸한 가지처럼 뫼와 내가 아무소리도 없이 텅 비게 된다. 그러므로 그 됨됨이가 있었다. 서글프고 끊을만큼 울부짖으면서 떨치고 일어나는 것이다. 살진 풀들은 푸르게 꾸며서 우거짐을 다투고, 아름다운 나무는 파바구니처럼 되어 기쁠 만한데 풀들이 그것을 떨치면 빛깔이 바뀌고 나무는 그것을 만나면 잎이 떨어진다. 그것이 꺾여져 지고 시들어 떨어지는 까닭은 바로 그 하나의 기운이 남긴 매서움이기에 그런 것이다. 저 가을은 다스리는 벼슬아치요. 때에 있어서 그늘이고 또한 싸움을 나타내며 오행에 있어서는 쇠를 뜻함이다. 이는 이르길 하늘과 땅의 바른 기운이니 늘 매섭게 죽임으로써 마음을 쓴다. 사물에 하늘이 하는 것은 봄에 나고 가을에는 열매를 맺게 함이다. 그러므로 그것이 악에 있어서는 상성으로 네 군데의 소리를 아우르고 이칙으로는 일곱째 달의 음율이 됨이다. 상은 다치는 것이다. 사물이 이미 늙어서 슬프고 다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잡아 죽인다는 것이니, 만물이 크게 일어나는 때를 지나니 마땅히 죽게 되는 것이다.

아아, 풀과 나무는 느끼는 바가 없건만 때가 있으니 바람이 날려 떨어진다. 움직이는 만물 중에서 사람이 된것은 오직 넋이 있는 사물이라 많은 온갖 걱정이 그 마음에 느껴지고 많은 일들이 그 몸을 힘들게 한다. 마음 가운데 움직임이 있으면 반드시 그 뛰어나게 좋은 것이 흔들리게 되니 하물며 그 힘이 미치지 아니하는 바를 생각하면 그 슬기로는 할 수 없는 바에 걱정하게 되어서 마땅히 그 두텁게 붉은 것이 마른 나무가 되고 새까맣게 검은 것이 별처럼 희끗희끗하게 되는 것이다. 어째서 쇠와 돌의 바탕도 아니면서 풀과 나무와 더불어 영예를 다투고자 하는가.생각컨대, 누가 저것을 죽이고 다치게하고 있기에 또한 어찌 가을의 소리를 한스러워 하는가" 하니 아이는 아무말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자고 있다. 다만 네 군데의 벽에서 벌레 소리만 찌륵찌륵 들리는데, 나의 한숨쉬는 것을 돕는 듯 하구나
- 구양수歐陽修 - 추성부秋聲賦 (feat. 나이듦의 서러움에 대해)


능산적 자연($Natura\,\,natura$ns)






소순 - 추밀원부사에게 올리는 글



天之所以與我者가 : 하늘이 우리에게 자질을 부여해준 까닭이

夫豈偶然哉아 :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

堯不得以與丹朱하고 : 요임금도 자질을 단주에게 부여할 수가 없었고, * 丹朱: 요임금의 아들

舜不得以與商均하며 : 순임금도 자질을 상균에게 부여할 수가 없었으며, * 商均: 순임금의 아들

而瞽瞍不得奪諸舜이라 : 고수는 또한 그것을 순으로부터 뺏을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 소경고, 소경수, 瞽瞍: 순임금의 아버지

發於其心하고 : 그것은 그의 마음을 통하여 발휘되고

出於其言하며 : 그의 말을 통하여 표현되고

見於其事하여 : 그의 일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이어서,

確乎其不可易也라 : 확고하게 바뀌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聖人不得以與人하며 : 성인도 남에게 물려줄 수가 없고,

父不得奪諸其子하니 : 아버지도 그이 아들로부터 빼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於此見天之所以與我者는 : 이것으로써 하늘이 우리에게 자질을 부여해준 까닭은

不偶然也로이다 : 우연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夫其所以與我者는 : 자질을 우리에게 부여해주신 까닭은

必有以用我也니 : 반드시 우리를 쓸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我知之요 : 우리가 그것을 알고서도

不得行之하며 : 그것으로 행동을 하지 못하고

不以告人이면 :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일러주지 못한다면,

天固用之라도 : 하늘은 진실로 쓰시려 하는데도

我實置之라 : 우리가 실은 그것을 방치하는 것입니다.

其名曰棄天이요 : 이것을 <하늘이 버리는 것>이라 부릅니다.

自卑以求幸其言하며 :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그의 말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 은총행

自小以求用其道하면 : 스스로를 낮추면서 그의 도가 쓰여지기를 바라기도 하는데,

天之所以與我者何如에 : 하늘이 우리에게 자질을 부여해준 까닭이 무엇이길래

而我如此也오 : 우리가 그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까?

其名曰褻天이니 : 그것을 <하늘의 도를 모욕하는 것>이라 부릅니다. * 더럽힐설

棄天도 我之罪也요 : <하늘을 버리는 것>도 우리의 죄이고.

褻天亦我之罪也이어니와 : <하늘을 모독하는 것>도 우리의 죄입니다.

不棄不褻而人不我用이면 : <버리지도> 않고 <모독하지도> 않는데도 사람들이 나를 쓰지 않는다면,

不我用之罪也이니 : 그것은 나를 쓰지 않는 사람들의 죄가 됩니다.

其名曰逆天이라 : 이것을 <하늘을 거역하는 것>이라고 부릅니다.

 

然則棄天褻天者는 : 그러니 <하늘을 버리는 것>과 <하늘을 모욕하는 것>은

其責在我요 : 그 책임이 나에게 있고,

逆天者는 : <하늘을 거역하는 것>은

其責在人하니 : 그 책임이 남에게 있는 것입니다.

在我者는 : 책임이 내게 있는 것은,

吾將盡吾力之所能爲者하여 : 내가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다함으로써

以塞夫天之所以與我之意하고 : 하늘이 나에게 자질을 부여하신 뜻에 보답하면서 * 충만할색

而求免夫天下後世之譏어니와 : 온 천하와 후세 사람들의 비평을 면하도록 하기만 하면 됩니다.

在人者는 : 그러나 책임이 남에게 있는 일은

吾何知焉고 : 나로서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吾求免夫一身之責之不暇하니 : 저는 제 한 몸의 책임을 면하려는 데도 겨를이 없거늘

而暇爲人憂乎哉아 : 남을 위하여 걱정할 겨를까지야 있겠습니까?

 

孔子孟軻之不遇하여 : 공자와 맹자께서 불우하실 때에는

老於道途하고 : 길거리에서 늙어가고 있는 형편이었지만, * 道途: 길거리

而不倦不慍不怍不沮者는 : 게으르지 않으시고 성내지 않으시고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기운을 잃지 않으셨던 것은 * 게으를권, 성낼온, 부끄러워할작, 꺽일저

夫固知夫責之所在也라 : 진실로 그 책임이 있는 곳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衛靈魯哀齊宣梁惠之徒는 : 위 영공, 노 애공, 제 선왕, 양 혜왕의 무리들은

不足相與以有爲也를 : 함께 어울리며 뜻있는 일을 하기에는 부족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我亦知之矣로대 :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지만,

抑將盡吾心焉耳라 : 아마도 그분들로서는 자기 마음을 다하였을 따름이었겠지요. * 아마도억

吾心之不盡이면 : 나의 마음을 다하지 않는다면

吾恐天下後世에 : 천하와 후세 사람들이

無以責夫衛靈魯哀齊宣梁惠之徒하고 : 위 영공, 노 애공, 제 선왕, 양 혜왕 등의 무리들을 책임 추궁할 방법이 없게 되고

而彼亦將有以辭其責也이니 : 저들 또한 장차 그 책임을 핑계 댈 것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 핑계댈사

然則孔子孟軻之目이 : 그렇게 되었다면 공자와 맹자께서는 눈을

將不瞑於地下矣라 : 지하에서도 제대로 감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 눈감을명

 

夫聖人賢人之用心也는 : 성인과 현인의 마음 씀은

固如此하니 : 진실로 이와 같습니다.

如此而生하고 : 이와 같이 하면서 살아가고,

如此而死하며 : 이와 같이 하면서 죽어가고,

如此而貧賤하고 : 이와 같이 하면서 빈천하게 지내기도 하고,

如此而富貴라 : 이와 같이 하면서 부귀를 누리기도 합니다.

升而爲天하며 : 그리고 올라가서는 하늘처럼 되고,

沈而爲淵하며 : 가라앉으면 심연처럼 되고,

流而爲川하고 : 흐르면 냇물처럼 되고,

止而爲山하니 : 멈춰지면 산처럼 됩니다.

彼不預吾事면 : 그들이 나의 일에 간섭하지 않으면

吾事는 畢矣라 : 나의 일은 그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竊怪컨대 : 제가 괴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夫後之賢者는 : 후세의 현명한 사람들은

不能自處其身也하여 : 그 자신을 스스로 처리하지 못하여

飢寒窮困之不勝이면 : 굶주림과 헐벗음과 궁함과 곤경을 이겨내지 못하게 되면

而號於人이라 : 남에게 구원을 소리치게 되는 것입니다.

嗚呼라 : 아아!

使吾誠死於飢寒困窮耶인대 : 내가 진실로 굶주림과 헐벗음과 곤경과 궁함으로 죽게 된다면

則天下後世之責이 : 천하후세 사람들의 책임을 추궁함이

將必有在이니 : 반드시 있게 될 것입니다.

彼其身之責을 : 저 편에서 그들 자신들의 책임을

不自任以爲憂하고 : 스스로 질 걱정을 하도록 하지 아니하고,

而我取而加之吾身은 : 내가 그 책임을 가져다가 내 자신에게 씌워 놓는다면

不亦過乎아 : 또한 잘못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今洵之不肖가 : 지금 저와 같은 못난 사람이

何敢亦自列於聖賢이리오마는 : 어찌 감히 스스로 성현들의 대열에 끼어들려 하겠습니까마는

然, 其心은 : 그러나 저의 마음만은

有所甚不自輕者하니 : 매우 스스로를 가벼이 하지 않으려는 바가 있습니다.

何則고 : 왜 그런가 하니 * 何則: 왜 그러한가?

天下之學者는 : 천하의 학자들의

孰不欲一蹴而造聖人之域이리오마는 : 어느 누가 한꺼번에 성인의 영역에 이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 찰축, 一蹴: 한번에, 이룰조

然, 及其不成也는 : 그러나 그가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求一言之幾乎道하나: 올바른 도에 가까운 한 마디 말을 구하려 해도

而不可得也라 :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千金之子는 : 천금의 부자 집 아들은

可以貧人이며 : 남을 가난하게 할 수도 있고

可以富人이로되 : 남을 부유하게 할 수도 있지만,

非天之所與면 : 하늘이 부여하지 않는다면

雖以貧人富人之權으로도 : 비록 남을 가난하게 하고 남을 부유하게 할 수 있는 권세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求一言之幾乎道이라도 : 올바른 도에 가까운 한마디 말은 구하려 해도

不可得也며 : 구할 수 없습니다.

天子之宰相은 : 천자의 재상은

可以生人이며 :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可以殺人이로되 : 사람을 죽일 수도 있지만,

非天之所與면 : 하늘이 부여하지 않는다면

雖以生人殺人之權으로도 : 비록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세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求一言之幾乎道이라도 : 올바른 도에 가까운 말은 구하려 해도

不可得也이니 : 구할 수 없는 것입니다

 

今洵用力於聖人賢人之術이 : 지금 저는 성인과 현인의 술법에 힘을 써 온지

亦已久矣라 :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其言語其文章이 : 저의 이론과 저의 문장이

雖不識其果可以有用於今하고 : 과연 지금 세상에 유용하게 될지,

而傳於後與否어니와 : 그리고 후세에 전하여질 수 있을지 없을지 비록 알 수 없지만,

獨怪는 : 홀로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

夫得之之不勞하노니 : 그것들을 터득하는 데에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고,

方其致思於心也에 : 마음 속으로 사색을 하게 되면

若或起之하며 : 마치 누가 이끌어 일으켜 주는 듯 하며,

得之心而書之紙也에 : 마음 속으로 그것을 터득하여 그것을 종이에 쓰게 되면

若或相之하니 : 마치 누가 도와주는 듯이 됩니다.

夫豈無一言之幾於道者乎아 : 그러니 어찌 올바른 도에 가까운 것이 한 마디도 없겠습니까?

千金之子와 : 천금의 부자 자식과

天子之宰相이 : 천자의 재상이

求而不得者는 :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것이

一旦在己하니 : 하루 아침에 제게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故, 其心得以自負호되 : 그러므로 제 마음 속으로 그것을 지녔음을 자부하고 있는데,

或者天其亦有以與我也라하노이다 : 아마도 하늘은 그것을 나에게 부여해주신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曩者에 : 옛날에

見執事於益州호니 : 선생님을 익주에서 뵈었었는데,

當時之文이 : 그 때의 글은 .

淺狹可笑요 : 얕고 좁아서 가소로웠습니다

飢寒窮困이 : 굶주림과 헐벗음과 궁함과 곤경이

亂其心하고 : 마음을 어지럽히고,

而聲律記問이 : 글의 성률과 잡된 지식들이 * 聲律: 문장의 聲調와 韻律

又從而破壞其體하여 : 따라다니며 글의 주제를 흐트리고 있어서

不足觀也已러니 : 볼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數年來에 : 이미 몇 년 이래로

退居山野하여 : 산야에 물러나 살면서

自分永棄하여 : 세상으로부터 영영 버려진 것을 자신의 분수로 여기며

與世俗日踈闊이라 : 세속과 날로 멀리 떨어져 가서, * 踈=疏

得以大肆其力於文章하여 : 온 정력을 문장에 쏟아 크게 발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詩人之優游와 : <시경> 작자들의 여유와 자연스러움,

騷人之淸深과 : <초사> 작가들의 맑음과 깊음,

孟韓之溫醇과 : 맹자와 韓愈의 온화함과 진실함,

遷固之雄剛과 : 司馬遷과 班固의 빼어남과 강함,

孫吳之簡切이 : 손자와 吳子의 간결함과 절실함 등이

投之所向에 : 그 곳으로 향하려 하기만 하면

無不如意라 :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嘗試以爲호대 : 일찍부터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董生得聖人之經하니 : 한나라 동중서는 성인의 경전을 터득했었지만,

其失也流而爲迂하고 : 그의 잘못은 우활함으로 흘러갔다는 것입니다.

鼂錯得聖人之權하니 : 조조는 성인의 권도는 터득했지만, * 鼂錯: 前漢 文帝때의 어사대부

其失也流而爲詐하니 : 그의 잘못은 사도로 흘러갔다는 것입니다.

有二子之才而不流者는 : 이들 두 사람의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않았던 이가 있었는데

其惟賈生乎인저 : 그는 오직 가의라고 할 것입니다.

惜乎라 : 그러나 애석하게도

今之世에 : 지금 세상에서는

愚未見其人也로다 : 저는 그러한 사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作策二道曰審勢審敵이오 : 이에 두 편의 책론을 지어 <심세>와 <심적>이라 제목을 붙였고,

作書十篇曰權書이니 : 글 열편을 지어 <권서>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洵有山田一頃하니 : 제게는 산 속의 밭, 일경이 있어서

非凶歲에 : 흉년만 아니라면

可以無飢요 : 굶주림이 없을 수 있고,

力耕而節用이면 : 힘써 농사지으며 쓰는 것을 절약하면

亦足以自老이니 : 스스로 늙기까지 살기에도 족할 것입니다.

不肖之身은 : 이 못난 자신은

不足惜이나 : 아까울 것이 없으나

而天之所與者는 : 하늘이 부여해주신 것은

不忍棄하며 : 차마 버릴 수도 없고

且不敢褻也라 : 또한 감히 더럽힐 수도 없습니다.

執事之名은 : 선생님의 명성은

滿天下하니 : 천하에 가득 찼고,

天下之士가 : 천하의 선비들을

用與不用은 : 쓰고 쓰지 않고 하는 것은

在執事라 : 선생님께 달려있습니다.

故, 敢以所謂策二道와 : 그러므로 감히 이른바 책론 두 편과

權書十篇으로 : 권서 열 편을

爲獻하노이다 : 바치는 바입니다.

 

平生之文이 : 평생에 지은 글은

遠不可多致라 : 멀어서 많이 보내드릴 수가 없으나,

有洪範論史論十篇호대 : <홍범론>과 <사론> 열 편을

近以獻內翰歐陽公하니 : 근래 내한 구양수공에게 바쳤습니다.

度執事與之朝夕相從하여 : 생각건대, 선생님께서는 그 분과 더불어 아침 저녁으로 어울리시어

議天下之事하니 : 천하의 일을 의논하고 계실 것이니,

則斯文也도 : 그 글들도

其亦庶乎得陳於前矣리라 : 선생님 앞에 펴지게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若夫言之可用과 : 그 말들이 쓸만한지,

與其身之可貴與否者는 : 또 그 사람을 귀하게 해 줄만한가 어떤가는

執事事也요 : 선생님께서 결정하실 일이며

執事責也이니 : 선생님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於洵何有哉리오 : 제가 어찌 관여할 일이겠습니까?







능허대 기문 凌虛臺記

蘇軾. 東坡(1037-1101)

  

臺於南山之下하니 宜若起居飮食이 與山接也라. 四方之山은 莫高於終南이요 而都邑之最麗者는 莫近於扶風이라. 以至近으로 求最高면 其勢必得이나 以太守之居에 未嘗知有山焉하니 雖非事之所以損益이나 而物理有不當然者하니 此凌虛之所爲築也라.

 

方其未築也에 太守陳公이 杖屨逍遙於其下러니 見其山之出於林木之上者로 纍纍然(누루연) 如人之旅行於墻外 而見其髻也하고 曰是必有異라 하고 使工鑿其前하여 爲方池하고 以其土로 築臺하여 出於屋之簷而止라.

 

然後에 人之至於其上者면 怳然不知臺之高 而以爲山之踴躍奮迅而出也라. 公曰是宜名凌虛하시고 以告其從事蘇軾하여 而俾爲之記하니라. 軾復於公曰나 物之廢興成毁는 不可得而知也라. 昔者에 荒草野田이 霜露之所蒙翳요 狐虺之所竄伏이러니 方是時에 豈知有凌虛臺耶아?

 

廢興成毁가 相尋於無窮하니 則臺之復爲荒草野田을 皆不可知也라. 嘗試與公으로 登臺而望하니 其東則秦穆公之祈年槖泉也요 其南則漢武之長楊五柞이요 而其北則隋之仁壽와 唐之九成也라. 計其一時之盛하니 宏傑詭麗하고 堅固而不可動者가 豈特百倍於臺而已哉아?

 

然而數世之後에 欲求其彷彿이나 而破瓦頹垣이 無復存者하고 旣已化爲禾黍荊棘과 丘墟隴畝矣라. 而況於此臺歟아? 夫臺猶不足恃以長久니 而況於人事之得喪이 忽往而忽來者歟아? 而或者欲以夸世 而自足則過矣라. 蓋世有足恃者나 而不在乎臺之存亡也니이다. 旣已言於公하고 退而爲之記하노라.

 

*

    


臺於南山之下(대어남산지하)하니 宜若起居飮食(의약기거음식)이 與山接也(여산접야)라. 四方之山(사방지산)은 莫高於終南(막고어종남)이요 而都邑之最麗者(이도읍지최려자)는 莫近於扶風(막근어부풍)이라.

 

누대(樓臺)가 종남산(終南山) 아래에 있으니 마땅히 생활하고 먹고 마시는 것이 산과 이어서 있게 될 것이다. 사방의 산들은 종남산보다 더 높은 산이 없고 도읍(都邑)에서 가장 붙어있는 곳으로는 부풍(扶風)보다 가까운 곳이 없다.

 

以至近(이지근)으로 求最高(구최고)면 其勢必得(기세필득)이나 以太守之居(이태수지거)에 未嘗知有山焉(미상지유산언)하니 雖非事之所以損益(수비사지소이손익)이나 而物理有不當然者(이물리유부당연자)하니 此凌虛之所爲築也(차릉허지소위축야)라.

 

지극히 가까운 곳에서 가장 높은 것을 찾는다면 그 형세(形勢)로 보아 반드시 남산을 발견하게 될 것이나 태수(太守)는 이곳에 살면서도 일찍이 산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으니 비록 손해(損害)나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나 사물의 이치에 있어서는 당연하지 않은 일이 었으니 이것이 능허대(凌虛臺)를 쌓는 까닭이다.




方其未築也(방기미축야)에 太守陳公(태수진공)이 杖屨逍遙於其下(장구소요어기하)러니 見其山之出於林木之上者(견기산지출어림목지상자)로 纍纍然(누루연) 如人之旅行於墻外(여인지려행어장외) 而見其髻也(이견기계야)하고 曰是必有異(왈시필유이)라 하여 使工鑿其前(사공착기전)하여 爲方池(위방지)하고 以其土(이기토)로 築臺(축대)하여 出於屋之簷而止(출어옥지첨이지)라.

 

능허대(凌虛臺)를 쌓기 전에 태수인 진공(陳公)이 지팡이 짚고 짚신 신고 그 아래를 거닐다가 나무 숲 위로 산이 솟아난 것이 올망졸망하여 마치 담 밖으로 길을 가는 사람들 상투가 보이는 듯함을 발견(發見)하고 이것은 반드시 특이(特異)한 점이 있을 것이라 하여 일꾼들을 시켜 그 앞에서 네모 난 연못을 만들게 하여 그 흙으로 대를 쌓아 지붕 추녀 위로 솟아난 높이에서 멈추었다.

 

然後(연후)에 人之至於其上者(인지지어기상자)면 怳然不知臺之高(황연불지대지고) 而以爲山之踴躍奮迅而出也(이이위산지용약분신이출야)라. 公曰是宜名凌虛(공왈시의명릉허)하시고 以告其從事蘇軾(이고기종사소식)하여 而俾爲之記(이비위지기)하니라.

 

그러한 뒤에는 사람들이 그 위에 올라와 보고 황홀(恍惚)한 듯 대가 높은 것은 모르고 산이 뛰어 솟아나온 것이라 여기게 되었다. 진공(陳公)께서 이곳은 의당히 능허(凌虛)라 이름 지어야겠다 하고 그의 밑에서 일하는 소식(蘇軾)에게 고하여 그에 관한 글을 짓도록 하였다.

 

軾復於公曰(식복어공왈) 物之廢興成毁(물지폐흥성훼)는 不可得而知也(불가득이지야)라. 昔者(석자)에 荒草野田(황초야전)이 霜露之所蒙翳(상로지소몽예)요 狐虺之所竄伏(호훼지소찬복)이러니 方是時(방시시)에 豈知有凌虛臺耶(기지유능허대야)아?

 

나 소식(蘇軾)은 진공(陳公)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만물(萬物)이 멸망(滅亡)하고 흥(興)하는 것과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은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옛날에는 거친 풀 우거진 들과 밭이 서리와 이슬이 자욱히 덮이고 여우(狐)와 독사(毒蛇)가 숨어 엎드려있던 곳이었으니 그러한 때에 어찌 이 능허대(凌虛臺)가 있게 될 줄 알았겠습니까?

 

廢興成毁(폐흥성훼)가 相尋於無窮(상심어무궁)하니 則臺之復爲荒草野田(즉대지복위황초야전)을 皆不可知也(개불가지야)라. 嘗試與公(상시여공)으로 登臺而望(등대이망)하니 其東則秦穆公之祈年槖泉也(기동즉진목공지기년탁천야)요 其南則漢武之長楊五柞(기남즉한무지장양오작)이요 而其北則隋之仁壽(이기북즉수지인수)와 唐之九成也(당지구성야)라.

 

멸망(滅亡)하고 흥(興)하는 것과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은 끝없이 서로 이어져 찾아오는 것이니 이 대(臺)가 다시 거친 풀 우거진 들과 밭이 될 런지는 모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시험(試驗) 삼아 공(公)을 모시고 대(臺)에 올라가 바라보니 그 동쪽은 진(秦) 목공(穆公)의 기년궁祈年宮)과 탁천궁(槖泉宮)이 있었던 곳이고 그 남쪽은 한 무제(한무제)의 장양궁(長楊宮)과 오작궁(五柞宮)이 있던 자리요 그 북쪽은 수(隋)나라의 인수궁(仁壽宮)과 당나라의 구성궁(九成宮)이 있던 곳입니다.

 

計其一時之盛(계기일시지성)하니 宏傑詭麗(굉걸궤려)하고 堅固而不可動者(견고이불가동자)가 豈特百倍於臺而已哉(기특백배어대이이재)아? 然而數世之後(연이수세지후)에 欲求其彷彿(욕구기방불)이나 而破瓦頹垣(이파와퇴원)이 無復存者(무복존자)하고 旣已化爲禾黍荊棘(기이화위화서형극)과 丘墟隴畝矣(구허롱무의)라.

 

그 한 때의 성(盛)함을 헤아려보니 장대하고 화려(華麗)하며 견고(堅固)해서 움직일 수 없는 정도가 어찌 이 능허대(凌虛臺)의 백배에 그칠 따름이겠는가? 그러나 몇 세대 뒤에 그 비슷한 모습이라도 찾아보려 해도 깨어진 기와나 무너진 담장조차도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없고 이미 벼와 기장이 자라고 가시덩굴이 우거진 언덕과 둔덕 및 밭이랑으로 변하여 있습니다.

 

而況於此臺歟(이황어차대여)아? 夫臺猶不足恃以長久(부대유부족시이장구)니 而況於人事之得喪(이황어인사지득상)이 忽往而忽來者歟(홀왕이홀래자여)아? 而或者欲以夸世(이혹자욕이과세) 而自足則過矣(이자족즉과의)라. 蓋世有足恃者(개세유족시자)나 而不在乎臺之存亡也(이불재호대지존망야)니이다. 旣已言於公(기이언어공)하고 退而爲之記(퇴이위지기)하노라.

 


그런데 하물며 이 누대(樓臺)야 어찌되겠습니까? 이러한 대도 오래가리라고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니 하물며 사람들 일의 득실이 갑자기 갔다가 갑자가 오기도 함에랴? 그런데도 어떤 사람이 세상에 뽐내면서 자기 스스로 만족(滿足)한다면 잘못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의지(依支)할만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이 대(臺)의 존망(存亡)에 관계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공(陳公)에게 다 말씀드리고 물러나와 그것을 글로 적는 바이다.









선불교에서는 '현존'의 가치와 관련해서 주장자 이야기를 즐겨 한다. 주장자는 큰스님들이 법상에 올라 법문을 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요한 도구이다.

 

1939년 동안거 해제 때였다. 몽술(夢述) 행자가 만공 노스님께 나아가 절을 하니, 물었다.

“네가 누구냐?”

“몽술이라 합니다.”

“이 곳에 무슨 일로 왔느냐?”

“노스님의 법문(法門)을 들으러 왔습니다.”

“법문을 어디로 듣느냐?”


“귀로 듣습니다.”

“귀로 들으면 잘못 듣는 법문이니라.”

“그렇다면 어디로 듣습니까?”

하니, 노스님이 쥐고 있던 주장자로 행자의 머리를 한 번 ‘딱!’ 때리고 묻기를,

“알았느냐?”

하고, 다시 한 번 더 때릴 기세로 주장자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알았다 하여도 이 주장자를 면치 못할 것이고, 알지 못하였다 하여도 이 주장자를 면치 못하리라. 속히 일러라.”

행자가 머리를 만지며,

“아야! 아야!”

하니, 스님은 주장자를 내리고 박장대소(拍掌大笑)하였다.

 


이 문답은 하룻강아지 처럼 물정 모르는 행자가 노련한 노스님을 놀린 격이지만, 만공 스님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좋아하고 있다. 막 절에 들어온 어린 행자가 알고 모르고 하는 분별심을 떠나, "아야! 아야!" 하는 것이 무심의 현존작용을 드러낼 줄 아는 법기(法器)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선불교에서는 "이것이다 저것이다"하는 관념적 분별심 자체를 여의어서 그 주장자를 보고 마음을 일으킨 사람의 마음을 성찰하게 만든다. 일체 세계의 유정과 무정이 모두 주정자 끝에 있으니, 만약 보았다면 눈을 가릴 수 밖에 없고, 만일 보지 못했다면 눈 속에 가리움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주장자가 유정인지 무정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언어나 논리 이전에 <지금 이 순간> 현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다.

 

과거도 미래도 모두 지금 이 순간을 통해 바꿀 수 있다.

 


    
사람은 혼자 있을때 이루 말할 수 없이 더럽고 이루 말할 수 없이 한가롭다
- 이석원





錢塘勤上人詩集序_ 蘇軾 ( 전당의 혜근 스님의 시집 서문)



昔翟公罷廷尉에 : 옛날 漢 文帝때의 적공이 정위 벼슬을 그만두자 * 꿩적

賓客無一人至者러니 : 찾아오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는데,
其後復用에 : 그 뒤에 다시 벼슬을 하자
賓客欲往이어늘 : 손님들이 다시 찾아오려 하였다.
翟公大書其門曰 : 이에 적공은 그의 집 대문에 이렇게 크게 써 붙였다.

一死一生에 : “한 번 죽고 한 번 살아나 보아야만

乃知交情이요 : 사귀던 정을 알 수가 있고,

一貧一富에 : 한 번 가난해졌다 한 번 부해져 보아야만

乃知交態요 : 사귀던 실태를 알 수가 있고,

一貴一賤에 : 한번 귀한 자리에 있었다가 한 번 천한 신분이 되어보아야

交情乃見이라하니 : 사귀던 정이 드러나게 된다.” * 드러날현

世以爲口實이라 : 세상에서는 이것을 이야기 거리로 삼았었다.

然余嘗薄其爲人하노니 : 그러나 나는 일찍이 그이 사람됨을 천박하게 보고, * 천할박

以爲客則陋矣어니와 : 손님들도 비루하기는 하나

而公之所以待客者는 : 적공이 손님을 대하는 방법도

獨不爲小哉아 : 매우 졸열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다.

 

故太子太師歐陽公好士는 : 옛날 태사태사였던 구양수공이 선비를 좋아함은

爲天下第一이라 : 천하에서 첫째 가는 정도였다.

士有一言中於道면 : 선비가 한 마디 말이라도 도리에 맞는 것이 있기만 하면 * 맞을중

不遠千里而求之하여 : 천리를 멀다 하지 아니하고 그를 찾아가서,

甚於士之求公하니 : 선비들이 구양수공을 찾아가는 것보다 더욱 열심이었다.

以故盡致天下豪傑하여 : 그 때문에 천하의 호걸들을 모두 모아 들여서

自庸衆人으로 : 용렬한 보통 사람으로서

以顯於世者固多矣라 : 세상에 유명해진 사람들이 진실로 많았다.

然士之負公者亦時有之어늘 : 그러나 선비들 중에는 구양수공을 배반하는 자도 가끔 있었다.

蓋嘗慨然太息하여 : 그래서 일찍이 크게 한숨을 쉬면서 * 슬퍼할개. 太息: 한숨

以人之難知로 : 사람을 알아보기 어렵다는 것으로써

爲好士者之戒하니 : 선비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훈계가 되도록 했었다.

意公之於士에 : 속으로 구양수공은 선비들에 대하여 * 의심할의

自是少倦이러니 : 이로부터 약간 싫증이 났을 것으로 여겨졌는데,

而其退老於潁水之上에 : 그가 영수가로 물러나 노년을 보내고 있을 때에 * 강이름영

余往見之하니 : 내가 찾아가 뵈오니

則猶論士之賢者하여 : 여전히 선비중의 현명한 사람에 대하여 논하면서

惟恐其不聞於世也하고 : 오직 세상에서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계셨다.

至於負者하여는 : 자신을 배반한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則曰是罪在我요 : 곧 그것은 나에게 죄가 있는 것이지

非其過라하니 : 그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翟公之客은 : 적공의 손님들은

負公於死生貴賤之間하고 : 적공을, 죽고 살고 또 신분이 귀하고 천한 사이에서 배반했던 것이고,

而公之士는 : 구양수공의 선비는

叛公於瞬息俄頃之際어늘 : 구양수공을 눈 깜짝하는 잠깐 사이에 배반했던 것이다. * 잠시아

翟公罪客하고 : 적공은 손님들에게 그 죄를 돌렸으나 .

而公罪己하여 : 구양수공은 그 죄를 자기에게 돌리고

與士益厚하니 : 선비들과 더욱 두터이 사귀었으니,

賢於古人遠矣로다 : 옛 사람보다도 훨씬 현명했던 것이다



公不喜佛老하되 : 구양수공은 불교와 도교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其徒有治詩書學仁義之說者면 : 그 무리 중에서 <시경>과 <서경>에 대한 학문이나 인의의 이론을 공부한 사람이 있기만 하면 * 익힐치

必引而進之러니 : 반드시 그를 끌어들여 밀어주었다.

佛者惠勤이 : 부처를 받드는 중 혜근은

從公遊三十餘年이니 : 구양수공을 따라 삼십여 년이나 노닐었다.

公嘗稱之爲聰明才智有學問者요 : 구양수공이 일찍이 그를 총명하고 재주와 지혜가 있고 학문을 갖춘 사람이며

尤長於詩라하더니 : 더욱이 시를 잘 짓는다고 칭찬한 일이 있다.

公薨於汝陰이어늘 : 구양수공이 여음에서 돌아가시자

余哭之於其室하고 : 나는 그의 집에서 곡을 하였는데,

其後見之에 : 그 뒤에 혜근을 만났을 때

語及於公하면 : 이야기가 구양구공에 미치기만 하면

未嘗不涕泣也하니 : 눈물을 흘리며 울지 않는 적이 없었다. * 눈물체, 울읍

勤固無求於世하고 : 혜근은 본시 세상에서 추구하는 바가 없었고

而公又非有德於勤者라 : 또 궁양수공은 혜근에게 은덕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其所以涕泣不忘이 : 그가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 잊지 못하는 까닭이

豈爲利哉아 : 어찌 이익 때문이겠는가?

余然後益知勤之賢하니 : 나는 그런 일이 있은 뒤에야 더욱 혜근이 현명함을 알게 되었으니,

使其得列於士大夫之間하여 : 만약 그가 사대부들 사이에 끼어서

而從事於功名이면 : 공명을 다루는 일에 종사하였다면

其不負公也審矣라 : 그가 구양수공의 바램을 배반하지 않았을 것이 확실하다 * 밝게알심

 

熙寧七年에 : 희령 7년에

予自錢塘으로 : 내가 전당으로부터 * 錢塘: 杭州

將赴高密할새 : 고밀로 떠나가려 할 때에, * 高密: 산동성 서북 고을

勤出其詩若干篇하여 : 혜근이 그의 시 약간 편을 내놓고

求予文以傳於世하니 : 내게 글을 써주기 바라면서 그것을 통하여 그 시들이 세상에 전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余以爲詩는 : 나는 시란

非待文而傳者也어니와 : 글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若其爲人之大略은 : 그의 사람됨의 대략은

則非斯文이면 : 이 글이 아니라면

莫之傳也니라 : 전해질 수가 없을 것이라 여겨진다.






答韋中立書(답위중립서) 위중립에게 회답하는 편지

柳宗元(유종원. 773-819)

 

二十一日(이십일일)에 宗元(종원)은 白(백)하노라. 辱書(욕서)에 云(운) 欲相師(욕상사)라 하니 僕(복)은 道不篤(도부독)하고 業甚淺近(업심천근)하여 環顧其中(환고기중)에 未見可師者(미견가사자)라. 雖嘗好言論(수상호언론)하고 爲文章(위문장)이나 甚不自是也(심불자시야)라.

 

이십일 일에 유종원(柳宗元)이 말씀드립니다. 보내주신 글에서 저를 스승으로 삼겠다고 하셨으나 저는 도(道)를 두텁게 닦지 못하고 학업이 매우 천박(淺薄)하여 그 중심을 둘러보아도 스승으로 삼을 만한 점이 없습니다. 비록 토론(討論)하기를 좋아하고 글을 쓴다고 해도 스스로 매우 부족(不足)하게 여겨집니다.

 

不意吾子自京都(불의오자자경도)로 來蠻夷間(래만이간)하사 乃幸見取(내행견취)라. 僕自卜固無取(복자복고무취)요 假令有取(가령유취)나 亦不敢爲人師(역불감위인사)요 爲衆人師(위중인사)도 且不敢(차불감)이온 況敢爲吾子師乎(황감위오자사호)아? 孟子稱人之患(맹자칭인지환)이 在好爲人師(재호위인사)라.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대가 서울에서 오랑캐 고장인 (永州로) 오셔서 다행(多幸)히도 제가 (스승으로)선택(選擇)되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그러할 (스승이 될 만한) 자질(資質)이 없다고 생각하고 설령 취(取)할 것이 있다하여도 다른 사람의 스승은 감(敢)히 되지 못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스승도 감(敢)히 못할 것이거늘(될 수 없거늘) 어찌 감히 그대의 스승이 될 수 있겠습니까? 맹자(孟子)는 “사람들의 폐단(弊端)은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기를 좋아하는 데에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由魏晉氏以下(유위진씨이하)로는 人益不事師(인익불사사)하여 今之世(금지세)에 不聞有師(불문유사)오 有輒譁笑之(유첩화소지)하여 以爲狂人(이위광인)이나 獨韓愈奮不顧流俗(독한유분불고류속)하고 犯笑侮(범소모)하며 收召後學(수소후학)하고 作師說(작사설)하여 因抗顔而爲師(인항안이위사)하니 世果群怪聚罵(세과군괴취매)하고 指目牽引(지목견인)하며 而增與爲言詞(이증여위언사)라.

 

위진시대(魏晉時代) 이후로는 사람들이 더욱 스승을 모시지 않게 되어 요즈음에는 스승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도 못했고 또 있다고 하여도 모두가 비웃고 미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으나 한유(韓愈)만은 분연(憤然)히 세태(世態)를 돌보지 않고 비웃음과 모욕(侮辱)을 무릅쓰면서 후진(後進)을 불러 모으고 <사설(師說)>을 지어 엄숙(嚴肅)한 얼굴을 하고 스승이 되었으니 세상 사람들은 과연 무리지어 이상하게 여기며 욕(辱)하고 손가락질하고 곁눈질하며 사람들을 불러 모아 쓸데없는 말만 만들어 부풀려 놓았습니다.

 

嘗以是得狂名(상이시득광명)하여 居長安(거장안)에 炊不暇熟(취불가숙)하고 又挈挈而東(우설설이동)하니 如是者數矣(여시자수의)라. 屈子賦(굴자부)에 曰(왈) 邑犬群吠(읍견군폐)는 吠所怪也(폐소괴야)라 하니 僕往聞庸蜀之南(복왕문용촉지남)에는 恒雨少日(항우소일)하여 日出則犬吠(일출칙견폐)라.

 

한유(韓愈)는 이 때문에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고 장안(長安)에 있다가 밥도 되기 전에 황급히 동쪽으로 떠났으니 이렇게 하기를 몇 차례나 하였습니다. 굴원(屈原)의 부(賦)에서 이르기를 “마을의 개들이 떼를 지어 짓는 것은 이상하게 보이는 것에(事物) 짖는다.“ 라고 했으니 이전에 저는 “용(庸)과 촉(蜀) 지방의 남쪽에는 항상 비가 오고 햇빛 나는 날이 드물어 해가 뜨면 개들이 짓는다.”라고 들었습니다.

 

予以爲過言(여이위과언)이러니 前六七年(전육칠년)에 僕(복)이 來南(래남)이러니 二年冬(이년동)에 幸大雪(행대설)이 踰嶺(유령)하여 被南越中數州(피남월중수주)러니 數州之犬(수주지견)이 皆蒼黃吠噬(개창황폐서) 狂走者累日(광주자누일)하여 至無雪(지무설)에 乃已(내이)하니 然後(연후)에 始信前所聞者(시신전소문자)라.

 

저는 과장(誇張)된 말로 여겼었는데 육 칠 년 전 제가 남쪽지방으로 온 지 두 번째 해 겨울에 큰 눈이 내려 오령(五嶺) 너머 남월(南越)의 몇 주(州)까지 덮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여러 주의 개들이 모두 놀라 짓고 물고하면서 며칠 동안 미쳐 돌아다니다가 눈이 그친 뒤에야 잠잠해졌으니 그제야 저는 전에 들었던 얘기를 믿게 되었습니다.

 

今韓愈(금한유) 旣自以爲蜀之日(기자이위촉지일)이어늘 而吾子又欲使吾爲越之雪(이오자우욕사오위월지설)하니 不以病乎(불이병호)아? 非獨見病(비독견병)이라. 亦以病吾子(역이병오자)라. 然(연)이나 雪與日(연설여일)이 豈有過哉(기유과재)오? 顧吠者犬耳(고폐자견이)라. 度今天下(도금천하)에 不吠者幾人(불폐자기인)고?

 

지금 한유(韓愈)는 스스로를 촉(蜀) 땅의 해로 여기고 있거늘 그대는 또한 나를 남월(南越)의 눈(雪)으로 만들려고 하니 이 어찌 병(病)이 되지 않겠습니까? (더욱이) 나만 병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 또한 병들게 됩니다. 하지만 해(太陽)와 눈이 어찌 잘못이 있겠습니까? 본시(本是) 짓는 것은 개들이었지만 생각건대 요즈음 세상에 짖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而誰敢衒怪於群目(이수감현괴어군목)하고 以召鬧取怒乎(이소료취노호)아? 僕自謫過以來(복자적과이래)로 益少志慮(익소지려)하고 居南中九年(거남중구년)에 增脚氣病(증각기병)하여 漸不喜鬧(점불희료)하니 豈可使呶呶者(기가사노노자)로 早暮(조모)에 咈吾耳騷吾心(불오이소오심)가? 則固僵仆煩憒(즉고강부번궤)하여 愈不可過矣(유불가과의)리라.

 

누가 감히 군중(群衆)들 눈을 어지럽히고 이상하게 만들어 소란(騷亂)을 불러들이고 분노(憤怒)를 자초하려 하겠습니까? 저는 먼 곳으로 좌천(左遷)된(폄적(貶謫)된) 이후 뜻이 더욱 적어지고, 남쪽에서 거처(居處)한 9년 동안 각기병(脚氣病)이 심해져서 점점 시끄러운 일은 좋아하지 않게 되었으니 어찌 떠들썩하게 함으로써 밤낮으로 내 귀를 귀찮게 하고 마음을 어지럽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저는 정말 번잡(煩雜)함에 쓰러져 더더욱 잘 지내지 못할 것입니다.

 

平居望外(평거망외) 遭齒舌不少(조치설불소)하되 獨欠爲人師耳(독흠위인사이)라. 抑又聞之(억우문지)하니 古者重冠禮(고자중관례)하여 將以責成人之道(장이책성인지도)니 是聖人所尤用心也(시성인소우용심야)나 數百年來(수백년래)에 人不復行(인불부행)이라. 近者(근자)에 孫昌胤者(손창윤자)가 獨發憤行之(독발분행지)라.

      

평소(平素)에도 뜻하지 않게 구설수(口舌數)에 오르는 일이 적지 않은데, 더욱이 남의 스승이 되는 데에는 결함(缺陷)이 있습니다. 또 듣자 하니 옛날에 관례(冠禮)를 중시하여 이로써 성인(聖人)의 도(道)를 추구(追究)하려 했는데 이것은 성인(成人)들이 특히 마음을 썼던 일이지만 수백 년간 사람들은 다시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요즈음 손창윤(孫昌胤)이란 사람이 분연(憤然)히 관례(冠禮)를 행하려고 했습니다.

 

旣成禮(기성례)에 明日造朝(명일조조)하여 至外廷(지외정)하여 薦笏(천홀)하고 言於卿士曰(언어경사왈) 某子冠畢(모자관필)이라 하니 應之者咸憮然(응지자함무연)하고 京兆尹鄭叔則(경조윤정숙즉) 怫然曳笏却立曰(불연예홀각립왈) 何預我邪(하예아사)하니 廷中(정중)이 皆大笑(정중개대소)러라. 天下不以非鄭尹(천하불이비정윤) 而怪孫子何(이괴손자하재)오?

 

그는 예(禮)를 치른 뒤 다음 날 조정(朝廷)에 나가 임금이 청정(聽政)하는 곳에 이르러 홀(笏)을 손으로 들어 올리고서는 벼슬아치들에게 “내 자식이 관례(冠禮)를 행하였소.”라고 말하니 응대(應待)하던 사람들은 모두 멍청히 있었고 경조윤(京兆尹) 정숙칙(鄭叔則)이 성을 내면서 홀(笏)을 당기고 뒤로 물러서서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相關)인가? 라고 하자. 조정(朝廷)의 사람들은 모두 크게 웃기까지 하였습니다. 세상에서 정숙칙(鄭叔則)을 비난하지 않고 손창윤(孫昌胤)을 이상하게 여겼는데 왜 그랬겠습니까?

 

獨爲所不爲也(독위소불위야)니라. 今之命師者(금지명사자)도 大類此(대류차)니라. 吾子(오자)는 行厚而辭深(행후이사심) 凡所作(범소작)이 皆恢然有古人形貌(범소작개회연유고인형모)하니 雖僕敢爲師(수복감위사)라도 亦何所增加也(역하소증가야)오? 假而以僕(가이이복)이 年先吾子(년선오자)요 聞道著書之日(문도저서지일)이 不後(불후)하여

 

그가 홀(笏)로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려하는 것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대의 덕행(德行)은 두텁고 언사(言辭)는 깊어 지은 문장이 고인(古人)의 모습을 갖춘 듯 넓으니 설사 제가 스승이 된다 하여도 어찌 보탤 것이 있겠습니까? 가령 내가 나이가 선생보다 많고 도(道)에 관하여 듣고 문장(文章)을 쓰기 시작한 날이 조금 이르다 하여

 

誠欲往來(성욕왕래)하여 言所(언소문)인댄 則僕固願悉陳中所得者(즉복고원실진중소득자)니吾子苟自擇之(오자구자택지)하여 取某事去某事則可矣(취모사거모사칙가의)오. 若定是非(약정시비)하여 以敎吾子(이교오자)는 僕才不足而(복재부족이) 又畏前所陣(우외전소진자)니 其爲不敢也決矣(기위불감야결의)라.

 

정말로 왕래(往來)하며 서로의 지식을 이야기하고 싶다면 저는 기꺼이 얻은 전부를 펼쳐 보이겠으니 그대께서 스스로 선택(選擇)하여 취(取)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기 바랍니다. 만약 시비(是非)를 정하여 그대를 가르치는 일은 저의 재주도 부족(不足)하고 앞서 말한 것도 두려워 그 것은 감(敢)히 하지 못하겠습니다.

 

吾子前所欲見吾文(오자전소욕견오문)은 旣悉以陳之(기실이진지)나 非以耀明于子(비이요명우자)오. 聊欲以觀子氣色(료욕이관자기색)하여 誠好惡何如也(성호오하여야)니라. 今書來言者皆太過(금서래언자개태과)하니 吾子誠非佞譽(오자성비녕예) 誣諛之徒(무유지도)라. 直見愛甚(직견애심) 故(고)로 然耳(연이)라. 始吾幼且少(시오유차소)에 爲文章(위문장)하되 以辭爲工(이사위공)이나 及長(급장)에 乃知文者(내지문자)는 以明道(이명도)라.

 

전에 그대가 보시고자 했던 내 글은 이미 모두 보여드렸지만 결코 그대에게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그대의 의중(意中)을 살펴 진실로 놓고 나쁨이 어떠한가를 알기 위함입니다. 오늘 보내신 글은 모두 너무 과분(過分)하오니 그대는 분명 허황(虛荒)하게 칭찬하거나 거짓으로 아부(阿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제 글을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그러셨을 것입니다. 과거(過去) 내가 젊었을 적에는 글을 지음에 문장의 수식(修飾)과 기교(技巧)를 다하였으나 나이가 들어서는 문장이란 (聖人의) 도(道)를 밝히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固不苟爲炳炳烺烺(고불구위병병랑랑)하고 務采色夸聲音(무채색과성음)하여 而以爲能也(이이위능야)라. 凡吾所陳(범오소진)은 皆自謂近道(개자위근도)어니와 而不知道之果近乎(이부지도지과근호)아? 遠乎(원호)아? 吾子(오자)는 好道(호도) 而可吾文(이가오문)하니 或者其於道(혹자기어도)에 不遠矣(불원의)리라.

 

진실로 (文章은 구차하게) 겉만 아름답고 화려(華麗)하게 짓고 문채(문장의 修飾)에 힘쓰고 성률(聲律)로 과장하는 것을 능사(能事)로 삼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대체로 제가 말한 바는 모두 제 스스로 도(道)에 가깝다고 여기고 있으나 과연 정말로 도(道)에 가까운지 아니면 멀리 떨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대는 성인(聖人)의 도(道)를 좋아하여 제 글을 좋게 보셨으니 혹시(或是) 그 도(道)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故(고)로 吾每爲文章(오매위문장)에 未嘗敢以輕心掉之(미상감이경심도지)하니 懼其剽而不留也(구기표이불유야)며 未嘗敢以怠心易之(미상감이태심이지)니 懼其弛而不嚴也(구기이이불엄야)여 未嘗敢以昏氣出之(미상감이혼기출지)니 懼其昧沒而雜也(구기매몰이잡야)며 未嘗敢以矜氣(미상감이긍기)로 作之(작지)니 懼其偃蹇而驕也(구기언건이교야)라.

 

그러므로 저는 매번 문장(文章)을 지을 때마다 감히 가벼운 마음으로 짓지 않았으니 (글이) 경박(輕薄)하여 남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며 감히 태만(怠慢)한 마음으로 쉽게 여기지 않았으니 허술하여 엄숙(嚴肅)하지 않음을 두려워한 것이며 감히 혼미(昏迷)한 정신(精神)으로 (글을) 짓지 않았으니 (글이) 애매모호(曖昧模糊)하여 번잡(煩雜)해지는 것을 두려워한 때문이며 감히 오만(傲慢)한 자세로 짓지 않았으니 교만(驕慢)하여 제멋대로인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抑之(억지)는 欲其奧(욕기오)요 揚之(양지)는 欲其明(욕기명)이요 疏之(소지)는 欲其通(욕기통)이요 廉之(렴지)는 欲其節(욕기절)이요 激而發之(격이발지)는 欲其淸(욕기청)이요 固而存之(고이존지)는 欲其重(욕기중)이니 此吾所以羽翼夫道也(차오소이우익부도야)니라.

 

또 억누르는 것은 (글을) 보다 심오(深奧)하게 하려 함이고 부각(浮刻)시키는 것은 명백(明白)하게 하려 함이며 성글게 하는 것은 통하게 하려 함이고 살펴서 짓는 것은 (글을) 절제(節制) 있게 하려 함이며, 자극(刺戟)하여 분발(奮發)시키는 것은 (글을) 맑게 하려 함이고 단단하게 지키는 것은 무겁게 하려는 것이니 이는 제가 성인(聖人)의 도(道)를 보좌(補佐)하는 방법입니다.

 

本之書(본지서)하여 以求其質(이구기질)하고 本之詩(본지시)하여 以求其恒(이구기항)하고 本之禮(본지예)하여 以求其宜(이구기의)하고 本之春秋(본지춘추)하여 以求其斷(이구기단)하고 本之易(본지역)하여 以求其動(이구기동)하니 此吾所以取道之原也(차오소이취도지원야)니라.

 

그리고 <서경(書經)>에 근본을 두어 질박(質朴)함을 구하며 <시경(詩經)>에 근본을 두어 영(長)구(永久)함을 구하며<예경(禮敬)>에 근본을 두어 적절(適切)함을 구하며 <춘추(春秋)>에 근본을 두어 결단력(決斷力)을 구하며 <역경(易經)>에 근본을 두어 움직임의 이치(理致)를 구하니 이는 제가 도(道)의 근원(根源)을 찾는 방법입니다.

 

參之穀梁氏(참지곡량씨)하여 以厲其氣(이려기기)하고 參之孟荀(참지맹순)하여 以暢其支(이창기지)하고 參之莊老(참지장로)하여 以肆其端(이사기단)하고 參之國語(참지국어)하여 以博其趣(이박기취)하고 參之離騷(참지리소)하여 以致其幽(이치기유)하고 參之太史公(참지태사공)하여 以著其潔(이저기결)하니 此吾所以旁推交通(차오소이방추교통) 而以爲文也(이이위문야)라.

 

또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을 참고(參考)하여 글의 기세(氣勢)를 단련시키며, <맹자(孟子)>와 <순자(荀子)>를 참고하여 글의 가지를 뻗어가게 하며 <장자(莊子)>와 <노자(老子)>를 참고하여 글의 단서(端緖)를 개척하며 <국어(國語)>를 참고하여 글의 정취(情趣)를 넓히며 <이소(離騷)>를 참고하여 글의 깊이를 다하며 <사기(史記)>를 참고하여 글의 간결(簡潔)함을 밝혔으니 이는 제가 널리 참작(參酌)하고 두루 통찰(洞察)함으로써 글을 짓는 방법입니다.

 

凡若此者(범약차자)는 果是邪(과시사)아? 非邪(비사)아? 有取乎(유취호)아? 抑其無取乎(억기무취호)아? 吾子幸觀焉擇焉(오자행관언택언)하시고 有餘(유여)면 以告焉(이고언)하소서. 苟亟來以廣是道(구극래이광시도)면 子不有得焉(자불유득언)이나 則我得矣(즉아득의)니 又何以師云爾哉(우하이사운이재)아? 取其實而去其名(취기실이거기명)하여 無招越蜀吠怪(무소월촉폐괴) 而爲外廷所笑(이위외정소소)면 則幸矣(즉행의)니라.

 

이와 같은 방법(方法)들이 과연 옳은 것입니까? 틀린 것입니까? (아니면) 취할 것이 있습니까? 취할 것이 없습니까? 그대가 보신 뒤 선택(選擇)하여 틈이 있으면 제게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그대가) 급히 와서 성인(聖人)의 도(道)를 넓히고자 한다면 그대는 소득(所得)이 없다 하더라도 나는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니 어찌 스승 운운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알맹이는 취하고 껍데기는 버려 남월(南越)과 촉 땅의 개들의 괴상(怪狀)하게 짓고 조정(朝廷)의 비웃음을 사지 않는다면 그저 다행(多幸)이겠습니다.








종수곽탁타전(種樹郭槖駝傳) 정원사 곽탁타 이야기



郭槖駝(곽탁타)는 不知始何名(부지시하명)이나 疾僂(질루)하여 隆然伏行(륭연복행)하니 有類槖駝者(유류탁타자)라.

곽탁타는 처음 이름이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곱사등으로 (혹이) 솟아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니 낙타와 비슷하였다.

 

故(고)로 鄕人(향인)이 號之曰駝(호지왈타)라 하니 駝聞之曰(타문지왈) 甚善(심선)하다. 名我固當(명아고당)이라하고 因捨其名(인사기명)하고 亦自謂槖駝云(역자위탁타운)이라.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이 그를 탁타라고 불렀는데 그는 그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참 좋구나.” 나에게 맞은 이름이구나! “ 하며 원래의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 탁타라고 불렀다.

 

其鄕曰豊樂鄕(기향왈풍악향)이니 在長安西(재장안서)라. 駝業種樹(타업종수)하니 凡長安豪家富人(범장안호가부인)으로 爲觀遊及賣果者(위관유급매과자)는 皆爭迎取養(개쟁영취양)이라.

그가 사는 마을은 풍악으로 장안의 서쪽이다. 탁타는 나무 심는 것이 직업이니 장안의 세도가와 부자들 중에 나무를 관상하거나 과일을 사려는 사람은 모두가 앞 다투어 그를 맞아들여 나무를 키우고 돌보게 하였다.

 

視駝所種樹(시타소종수)면 或移徒(혹이도)라도 無不活(무불활)이오 且碩茂(차석무)하고 蚤實以蕃(조실이번)이라

탁타가 나무를 가꾸거나 혹은 옮겨 심으면 죽지 않으며 언제나 잎이 무성하고 잘 자라서 다른 나무보다 일찍 열매를 맺고 또 많이 열렸다.

 

他植者(타식자)는 雖窺伺傚慕(수규사효모)나 莫能如也(막능여야)러라. 有問之(유문지)하니 對曰(대왈) 槖駝(탁타) 非能使木壽且孶也(비능사목수차자야)오.

다른 나무 심는 사람들이 가만히 엿보고 배우서 그대로 해보았지만 (탁타가 가꾸는 것과는)같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나 탁타가 나무를 오래 살게 하고 잘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以能順木之天(이능순목지천)하여 以致其性焉爾(이치기성언이)라. 凡植木之性(범식목지성)은

其本(기본)은 欲舒(욕서)하고 其培(기배)는 欲平(욕평)하고 其土(기토)는 欲故(욕고)하고 其築(기축)은 欲密(욕밀)이라.

나무가 지닌 천성을 거스르지 않고 그의 본성을 다하도록 돌보아 줄 뿐입니다. 나무의 본성은 뿌리는 바르게 뻗으려 하고 북돋음은 고르기를 바라고 그 흙은 옛것이고 싶어 하고 뿌리사이를 다져주기를 바랍니다.

 

旣然已(기연이)에 勿動勿慮(물동물려)하고 去不復顧(거불복고)하며 其蒔也若子(기시야약자)나 其置也若棄(기치야약기)면 則其天者全而(칙기천자전이) 其性得矣(기성득의)리라.

이런 다음에 건드리지 않고 걱정하지 말며 더 이상 돌아보지 않고 내버려두어 처음 심을 때는 자식과 같으나 심은 다음에는 아주 내버린 듯이 하면 나무의 본성이 온전히 보존되어 그 본성에 따라 잘 자라는 것입니다.

 

故吾不害其長而已(고오불해기장이이)요 非有能碩而茂之也(비유능석이무지야)며 不抑耗其實而已(불억모기실이이)오 非有能蚤而蕃之也(비유능조이번지야)라.

그러므로 나는 나무의 성장을 해치지 않을 따름이지 나무를 크고 무성하게 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며, 열매를 맺음을 억제하여 손상시키지 않을 뿐이지 일찍 맺게 하고 많이 맺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他植者則不然(타식자칙불연)하여 根拳而土易(근권이토역)하며 其培之也若不過焉(기배지야약불과언)이면 則不及焉(칙불급언)이오

다른 나무 심는 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데 뿌리를 한데 모아 심고 흙을 새것으로 바꾸며 뿌리에 흙을 북돋우는 것도 지나치던지 모자라게 합니다.

 

苟有能反是者(구유능반시자)인대 則又愛之太恩(칙우애지태은)하고 憂之太勤(우지태근)하여 旦視而暮撫(단시이모무)하고 已去而復顧(이거이복고)하며 甚者(심자)는 爪其膚(조기부)하여 以驗其生枯(이험기생고)하고 搖其本(요기본)하여 以觀其疎密(이관기소밀)하니 而木之性(이목지성)이 日以離矣(일이리의)라.

본성을 위반하여 나무를 가꾸는 자는 나무를 지나치게 사랑하고 너무 걱정하여 아침에 돌보며 저녁에 어루만져 주고 이미 떠나서도 다시 생각하며 심한 경우 껍질을 손톱으로 쪼아 나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시험해 보기도 하고 나무의 뿌리를 흔들어서 흙이 제대로 채워져 있는지를 알아보기도 하니 나무의 본성은 날이 갈수록 멀어지고 맙니다.

 

雖曰(수왈), 愛之(애지)나 其實害之(기실해지)요 雖曰(수왈), 憂之(우지)나 其實讐之(기실수지)라.  故(고)로 不我若也(불아약야)라. 吾又何能爲矣哉(오우하능위의재)아?

비록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라 하지만 실은 그것을 해치는 것이며 걱정되어 그렇게 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나무와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그같이 하지 않을 뿐이니 내게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問者曰(문자왈), 以子之道(이자지도)로 移之官理可乎(이지관리가호)아? 駝曰(타왈), 我知種樹而已(아지종수이이)요 理(리)는 非吾業也(비오업야)라.

물었던 사람이 말하기를 “그대의 나무 가꾸는 법을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 이용하면 좋지 않을 까요?” 탁타가 대답하였다. “나는 나무 가꾸는 법만 알 뿐이요, 다스리는 일은 제 일이 아닙니다.

 

然(연)이나 吾居鄕(오거향)에 見長人者好煩其令(견장인자호번기영)하여 若甚憐焉(약심련언)이나 而卒以禍(이졸이화)라.

그런데 제가 고향에 있으면서 번거롭게 명을 내리기를 좋아하는 수령을 보았는데 그는 백성들을 가엾게 여겼으나 결과는 화가 되었습니다.

 

旦暮吏來而呼曰(단모리래이호왈), 官命促爾耕(관명촉이경)하고 勖爾植(욱이식)하고 督爾穫(독이확)하고 蚤繰而緖(조조이서)하고 蚤織而縷(조직이루)하고 字而幼孩(자이유해)하고 遂而鷄豚(수이계돈)하라 하고 鳴鼓而聚之(명고이취지)하고  擊木而召之(격목이소지).라.

아침저녁으로 관리들이 나와 소리쳐 부르기를 나라의 명령이라며 “빨리 밭을 갈아라. 부지런히 심어라. 힘써 수확하라. 빨리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라. 빨리 옷감을 짜라. 어린아이들을 잘 키워라. 닭이나 돼지를 길러라.” 하고 북을 울려 사람을 모이게 하고 딱따기를 쳐서 사람들을 불러냈습니다.

 

吾小人(오소인)은 具饔飱以勞吏者(구옹손이로리자)라도 且不得暇(차부득가)어늘 又何以蕃吾生而(우하이번오생이)安吾性邪(안오성사)아? 故昞且怠(고병차태)라.

우리 소인배들은 아침저녁으로 관리들을 위로하기에도 한가한 틈이 없었으니 어떻게 우리가 생활을 번성하게 했겠으며 우리의 본성을 편안하게 했겠습니까? 결국 병들고 게을러지고 말았습니다.

 

若是卽與吾業者(약시즉여오업자)로 其亦有類乎(기역유류호)아? 問者喜曰(문자희왈), 不亦善夫(부역선부)아! 吾問養樹(오문양수)라가 得養人術(득양인술)이라. 傳其事(전기사)하여 以爲官戒也(이위관계야)하노라.


이와 같으니 나의 직업과 또한 비슷한 점이 있지 않겠습니까? “ 물었던 사람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정말 좋지 않습니까? 나무 가꾸는 법을 물었다가 사람을 돌보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을 후세에 전하여 관리들이 지켜야 할 계칙으로 삼고자 합니다. “








장복야께 올리는 글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행하게 한다면

 

力月一日, 愈再拜.

9월 1일에 저는 두 번 조아립니다.

 

受牒之明日, 在使院中,

임명장을 받은 다음날 사원 안에 있었는데

 

有小吏持院中故事節目十餘事,

말단관리가 사원 속의 고사 절목 10여개를 가지고

 

來示愈.

저에게 와서 보여주었습니다.

 

其中不可者有, 自九月至明年二月之終,

그 가운데 하면 안 되는 게 있으니 ‘9월부터 이듬해 2월 말일까지

 

皆晨入夜歸, 非有疾病事故,

모두 새벽에 들어와 밤에 돌아감에 질병과 사고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輒不許出.

곧 나가길 허락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當時以初受命, 不敢言.

당시에 처음 명을 받았기에 감히 말하지 못했습니다.

 

古人有言曰: “人各有能有不能.”

옛 사람이 “사람은 각각 잘하는 것도 있고 잘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고 말했으니,

 

若此者非愈之所能也.

이와 같은 것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抑而行之, 必發狂疾,

억눌러 행하게 한다면 반드시 미치는 병이 발작해

 

上無以承事于公,

위로는 공을 받들어 섬길 수 없어

 

忘其將所以報德者,

장차 덕에 보답하길 잊게 될 것이고

 

下無以自立,

아래로는 자립할 수 없어

 

喪失其所以爲心,

마음 먹은 것을 상실하게 되리니,

 

夫如是, 則安得而不言.

이와 같으니 어찌 말씀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재주에 맞게 할 수 있는 일을 있도록 해주세요

 

凡執事之擇於愈者,

무릇 집사께서 저를 선택한 것은

 

非謂其能晨入夜歸也,

새벽에 들어오고 밤에 돌아감을 잘한다고 해서가 아니고

 

必將有以取之,

반드시 장차 취할 만한 것이 있어서리니,

 

苟有以取之, 雖不晨入夜歸,

만약 취할 만한 것이 있다면 비록 새벽에 들어와 밤에 돌아가지 않더라도

 

其所取者猶在也.

취한 말한 것은 오히려 있을 것입니다.

 

下之事上, 不一其事,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김에 그 일이 한 가지가 아니고

 

上之使下, 不一其事,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림에 그 일이 한 가지가 아니니

 

量力而任之, 度才而處之,

힘을 헤아려 맡기고 재주를 측량해 처하게 하여

 

其所不能, 不强使爲.

잘하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하도록 하지 않습니다.

 

是故爲下者不獲罪於上,

이런 까닭으로 아랫사람이 되어선 윗 사람에게 죄를 획득지 않고

 

爲上者不得怨於下矣.

윗사람이 되어선 아랫사람에게 원망을 얻지 않는 것입니다.

 

孟子有云: “今之諸侯無大相過者,

맹자가 말했습니다. “지금 제후로 크게 서로 나은 사람이 없는 것은

 

以其皆好臣其所敎,

모두 신하를 가르치길 좋아하고

 

而不好臣其所受敎.”

신하에게 가르침 받길 좋아하지 않는다.”

 

今之時與孟子之時, 又加遠矣.

지금의 시기는 맹자의 시기와 또한 더욱 시대가 멉니다.

 

皆好其聞命而奔走者,

모두 명령을 듣고 분주한 사람을 좋아하고

 

不好其直己而行道者.

자기를 곧게 하여 도를 행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聞命而奔走者, 好利者也,

명령을 듣고 분주한 사람을 이익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直己而行道者, 好義者也,

자기를 곧게 하고 도를 행하는 사람은 의를 좋아하는 사람이니

 

未有好利而愛其君者,

이익을 좋아하고서 임금을 사랑하는 사람은 있지 않고

 

未有好義而忘其君者.

의를 좋아하고서 임금을 잊는 사람은 있지 않습니다.

 

今之王公大人, 惟執事可以聞此言,

이제 왕공 대인 중에 오직 집사만이 이 말을 들어줄 수 있고

 

惟愈於執事也, 可以此言進.

오직 제가 집사께 이 말을 올릴 수 있습니다.

 

 

 

한유의 말을 잘 듣는 집사에게 사람들이 보일 반응

 

愈蒙幸於執事, 其所從舊矣.

제가 집사께 총애함을 입어 따른 지 오래되었습니다.

 

若寬假之, 使不失其性,

만약 너그럽게 용서해주셔서 천성을 잃지 않도록 해주고

 

加待之, 使足以爲名,

더 대우해주셔서 넉넉히 명성을 만들 수 있도록 해주신다면

 

寅而入, 盡辰而退,

새벽 3~5시인 인시에 들어와 아침 7~9시인 진시가 다하면 물러가고

 

申而入, 終酉而退,

오후 3~5시인 신시에 들어와 오후 5~7시가 다하면 물러가게 하여

 

率以爲常, 亦不廢事.

대체적으로 일상을 삼더라도 또한 일을 폐하진 않을 것입니다.

 

天下之人, 聞執事之於愈如是也,

천하의 사람이 집사가 저에 대해 이와 같이 한다는 걸 들으면

 

必皆曰: “執事之好士也如此,

반드시 모두들 말할 것입니다. “집사가 선비를 좋아함이 이와 같고

 

執事之待士以禮如此,

집사가 선비를 예로 대우함이 이와 같으며

 

執事之使人不枉其性而能有容如此,

집사가 사람에게 천성을 굽히지 않고 용납함이 이와 같고

 

執事之欲成人之名如此,

집사가 사람의 명성을 이루도록 하려함이 이와 같으며

 

執事之厚於故舊如此.”

집사가 오랜 친구에 후대함이 이와 같다.”

 

又將曰: “韓愈之識其所依歸也如此,

또한 장차 말할 것입니다. “한유가 의탁하고 귀의할 걸 아는 게 이와 같고

 

韓愈之不諂屈於富貴之人如此,

한유가 부귀한 사람에게 아첨하거나 굽히지 않음이 이와 같으며

 

韓愈之賢, 能使其主待之以禮如此.”

한유의 어짊이 그 주인에게 예로 대우하게 함이 이와 같다.”

 

則死於執事之門, 無悔也.

집사의 문에서 죽더라도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규칙만 중시하는 집사에게 사람들이 보일 반응

 

若使隨行而入, 逐隊而趨,

만약 줄을 따라 들어가고 대오를 쫓아 나아가서

 

言不敢盡其誠, 道有所屈於己,

말함에 감히 진심을 다하지 못하게 하고 도가 자신에게 굽히는 게 있다면

 

天下之人, 聞執事之於愈如此,

천하의 사람이 집사가 한유에게 이와 같이 함을 듣고

 

皆曰: “執事之用韓愈, 哀其窮,

모두들 말할 것입니다. “집사가 한유를 등용한 것은 곤궁함을 슬퍼하여

 

收之而已耳,

거두어줬을 뿐이고

 

韓愈之事執事, 不以道,

한유가 집사를 섬김은 도로써 한 것이 아니라

 

利之而已耳.”

그것을 이롭게 여겨서일 뿐이다.”

 

苟如是, 雖日受千金之賜,

만약 이와 같다면 비록 날마다 천금의 하사를 받고

 

一歲九遷其官, 感恩則有之矣,

한 세대에 관직을 9번 옮겨 은혜에 감동하는 것이 있겠지만

 

將以稱於天下曰知己則未也.

장차 천하에 일컫기를 ‘지기(知己)’라고 말한다면 아니될 것입니다.

 

伏惟哀其所不足, 矜其愚,

엎드려 생각건대 부족함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어리석음을 긍휼히 여겨주셔서

 

不錄其罪,

저의 죄를 기록치 마시고

 

察其辭而垂仁採納焉.

저의 말을 살펴 인을 드리워 받아주소서.

 

愈恐懼再拜.

저는 두려워하며 두 번 조아립니다.

 




고문진보후집(古文眞寶後集) 026_(卷二)
                        

                      위인구천서(爲人求薦書)-한유(韓愈)

                      어떤 사람을 추천하는 글

木在山(목재산)하며 : 나무가 산에 있고
馬在肆(마재사)하되 : 말이 시장에 있되
過之而不顧者(과지이불고자)가 : 그들 앞을 지나면서 거들떠 보지 않는 이가
雖日累千萬人(수일루천만인)이라도 : 하루에 수천 수만 명이라도
未爲不材與下乘也(미위불재여하승야)니이다 : 재목감이 못된다거나 나쁜 말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及至匠石過之而不睨(급지장석과지이불예)하며 : 그러나 유명한 목수 장석이 그 앞을 지나면서도 눈여겨 보지 않고
伯樂遇之而不顧(백락우지이불고)면 : 유명한 말 감정가 백낙이 그것을 대하고도 거들떠 보지 않는다면
然後知其非棟梁之材(연후지기비동양지재)하고 : 그런 뒤에야 그것이 좋은 재목이 아니고
超逸之足也(초일지족야)니라 : 빠른 발을 가진 말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以某在公之宇下非一日(이모재공지우하비일일)이오 : 모는 공의 문하에서 지낸 지 하루 이틀이 아니며
而又辱居姻婭之後(이우욕거인아지후)하니 : 또한 인척관계로도 욕되이 뒷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是生于匠石之園(시생우장석지원)이오 : 이는 장석의 뜰에서 생장하고
長于伯樂之廐者也(장우백락지구자야)라 : 백낙의 마굿간에서 자란 것과 같습니다.
於是而不得知(어시이불득지)면 : 여기에서 알아줌을 얻지 못한다면
假有見知者千萬人(가유견지자천만인)이라도 : 비록 보고 알아주는 사람이 천만 인이 있게 된다해도
亦何足云耳(역하족운이)리오 : 어찌 족하다할 수 있겠습니까?
今幸賴天子(금행뢰천자)가 : 지금은 다행히도 천자께서
每歲詔公卿大夫貢士(매세조공경대부공사)하여 : 해마다 공경대부들에게 명을 내려 선비들을 추천 하여
若某等比(약모등비)라도 : 모와 비슷한 사람들도
咸得以薦聞(함득이천문)이라 : 모두 천거되어 알려졌습니다.
是以冒進其說(시이모진기열)하여 : 이 때문에 무례를 무릅쓰고 이러한 말씀을 올려
以累於執事(이루어집사)하니 : 공께 누를 끼쳐 드리니 
亦不自量已(역불자량이)나 : 또한 스스로를 헤아리지 못한 짓이기도 합니다마는
然執事其知某何如哉(연집사기지모하여재)오 : 공께서는 모를 어떠한 사람으로 알고 계시는지요.


昔人有鬻馬不售於市者(석인유죽마불수어시자)러니 :
옛날에 어떤 사람이 말을 시장에 내다 팔려고 했으나 팔리지 않게 되니
知伯樂之善相也(지백락지선상야)하고 : 백락이 말을 잘 감정하는 것을 알고는
從而求之(종이구지)하니 : 그에게 가서 말을 잘 보아줄 것을 청하니
伯樂一顧(백락일고)에 : 백락이 한 번 보아주자.
價增三倍(가증삼배)이로소이다 : 말값이 세배로 뛰었다고 합니다.
某與其事(모여기사)로 : 모의 경우 그 일이
頗相類(파상류)이로소이다 : 자못 비슷합니다.
是故始終言之耳(시고시종언지이)로다 : 그런 까닭에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이야기를 말씀 드린 것입니다. 






맹자 고자장





류작차)하며 縛草爲船(박초위선)하여 載糗輿粻(재구여장)하고 牛繫軛下(우계액하)하며 引帆上檣(인범상장)하여 三揖窮鬼而告之曰(삼읍궁귀이고지왈)

 

원화 육년(811) 정월 을축 날 저녁에 주인이 하인 성(星)에게 버드나무를 엮어 수레를 만들고 풀을 묶어 배를 만들게 한 다음 미숫가루와 양식(糧食)을 싣고서 멍에 아래에 소를 매고 돛대 위에는 돛을 달고 궁귀(窮鬼)에게 세 번 읍(揖)하며 말하였다.

 

聞子行有日矣(문자행유일의)라. 鄙人(비인)이 不敢問所途(비인불감문소도)요 躬具船與車(궁구선여거)하여 備載糗粻(비재구장)하니 日吉辰良(일길신량)하여 利行四方(이행사방)이라. 子飯一盂(자반일우)하며 子啜一觴(자철일상)하고 携朋挈儔(휴붕설주)하여 去故就新(거고취신)하라.

 

“듣건대 그대에겐 떠나야 할 날이 있다고 합니다. 미천(微賤)한 내가 감히 갈 길은 묻지 못하겠으나 몸소 배와 수레를 마련하고 미숫가루와 양식도 모두 실어놓았으니 날짜 길하고 시절(時節)도 좋은 때라 사방으로 떠나도 이로울 것이오. 그대는 밥 한 그릇을 먹고 술 한 잔 마신 다음 친구와 무리들을 이끌고 옛 고장을 떠나 새 고장으로 가시오.

 

駕塵彉風(가진확풍)하여 與電爭先(여전쟁선)이면 子無底滯之尤(자무저체지우)요 我有資送之恩(아유자송지은)이니 子等有意於行乎(자등유의어행호)아? 屛息潛聽(병식잠청)하니 如聞音聲(여문음성)이 若嘯若啼(약소약제)하여 砉欻嚘嚶(획훌우앵)하니 毛髮(모발)이 盡竪(진수)하고 竦肩縮頸(송견축경)하여 疑有而無(의유이무)러니 久乃可明(구내가명)이라.

 

먼지를 일으키며 수레 달리고 빠른 바람 타고 번개와 앞 다투며 간다면, 그대에게는 머물러 있다는 허물이 없게 될 것이오. 나는 노자를 갖추어 전송(餞送)한 은혜(恩惠)를 지니게 될 것이니 그대는 떠날 뜻이 있소?” 숨을 죽이고 조용히 들으니 말소리가 들리는 듯 하였는데 휘파람 소리와도 같고 우는 소리와도 같이 중얼중얼 재잘거리니 몸 털과 머리카락이 모두 곤두서고 어깨를 들추고 목을 움츠리게 하여 소리가 있는 듯도 하고 없는 듯도 하다가 오랜 뒤에야 분명(分明)해졌다.





若有言者曰(약유언자왈) 吾與子居(오여자거)가 四十年餘(오여자거사십년여)라. 子在孩提(자재해제)에 吾不子愚(오불자우)하고 子學子耕(자학자경)하며 求官與名(구관여명)에 惟子是從(유자시종)하여 不變于初(불변우초)라. 門神戶靈(문신호영)이 我叱我呵(아질아가)나 包羞詭隨(포수궤수)하니 志不在他(지불재타)라.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와 선생이 함께 살아 온지는 사십 년이나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어렸을 적에는 나는 선생을 어리석게 여기지 아니하였고 선생이 공부도 하고 밭도 갈면서 벼슬과 명예(名譽)를 추구하는 동안에도 오직 선생을 따르며 처음처럼 변함이 없었습니다. 문의 신령(神靈)들에게 나는 야단맞고 꾸중을 들으면서도 부끄러움을 참고 무조건(無條件) 따르면서 다른 곳에 뜻을 둔 적이 없었습니다.

 

子遷南荒(자천남황)에 熱爍濕蒸(열삭습증)하여 我非其鄕(아비기향)하니 百鬼欺陵(백귀기릉)이라. 太學四年(태학사년)에 朝齏暮塩(조제모염)이니 惟我保汝(유아보여)요 人皆汝嫌(인개여혐)이나 自初及終(자초급종)에 未始背汝(미시배여)하여 心無異謀(심무이모)요 口絶行語(구절행어)어늘 於何聽聞(어하청문)하고 云我當去(운아당거)오?

 

선생께서 남쪽 먼 곳으로 귀양을 갔을 적에는 뜨겁고 덥고 습기 차고 찌는 듯 하여 나는 그 고장에 익숙하지 못하고 여러 귀신(鬼神)들이 속이며 능멸(凌蔑)하였습니다. 태학에서 4년 동안 아침에는 부추, 저녁에는 소금으로 오직 저 만이 당신을 보살펴 주었고 사람들 모두가 당신을 싫어했으나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을 배반(背叛)한 일이 없었으며 마음속으로 다른 생각을 해본 일이 없고 입으로는 가겠다는 말을 전혀 한 일이 없거늘 어디에서 무슨 말을 듣고 저에게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是必夫子信讒(시필부자신참)하여 有間於予也(유간어여야)로다. 我鬼非人(아귀비인)어늘 安用車船(안용거선)이며 鼻嗅臭香(비후취향)이니 糗粻可捐(구장가연)이오. 單獨一身(단독일신)이어늘 誰爲朋儔(수위붕주)오? 子苟備知(자구비지)면 可數以不(가수이불)이라.

 

이것은 필시 선생께서 남이 모함(謀陷)하는 말을 믿고서 내게 거리를 두게 된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귀신(鬼神)이지 사람이 아니거늘 수레와 배가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코로 추한 냄새와 향기나 맡고 지내니 미수가루와 양식(糧食)도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홀로 한 몸이거늘 친구와 무리란 어떤 자들입니까? 선생께서 진실(眞實)로 모두 알고 계신다면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따질 수 있을 것입니다.

 

子能盡言(자능진언)이면 可謂聖智(가위성지)라. 情狀旣露(정상기로)니 敢不廻避(감불회피)리오? 主人(주인)이 應之曰(응지왈) 子以吾(자이오)로 爲眞不知也邪(위진부지야사)아? 子之朋儔(자지붕주)는 非六非四(비육비사)라. 在十去五(재십거오)요 滿七除二(만칠제이)라.

 

선생께서 진실로 모두 말할 수 있다면 성인(聖人)의 지혜(智慧)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실이 이미 드러나 있다면 감히 무엇을 회피(回避)하겠습니까?” 주인이 대답하였다. “그대는 내가 정말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오? 그대의 벗과 무리들은 여섯 명도 아니고 네 명도 아니며 열에서 다섯을 뺀 수이고 일곱 중에서 둘을 덜어낸 수라.

 

各有主張(각유주장)하고 私立名字(사립명자)하여 捩手覆羹(열수복갱)하며 轉喉觸諱(전후촉휘)하니 凡所以使吾(범소이사오)로 面目(면목)이 可憎(가증)하고 語言無味者(어언무미자)는 皆子之志也(개자지지야)라. 其一(기일)은 名曰(명왈) 智窮(지궁)이니 矯矯亢亢(교교항항)하여 惡圓喜方(오원희방)하고 羞爲姦欺(수위간기)하여 不忍害傷(불인해상)이라.

 

제각기 주장(主張)하는 일이 있고 사사로이 이름을 내세우며 남의 손을 비틀어 뜨거운 국을 엎고 노래를 하며 남의 꺼리는 일을 들추어내니 무릇 내 얼굴을 가증(可憎)스럽게 하고 말을 무미건조(無味乾燥)하게 하는 것이 모두 그대들의 뜻이었소. 그 첫째 이름은 지궁(智窮)이라 하는데 고답적이면서도 뻣뻣하고 둥근 것은 싫어하고 모난 것을 좋아하며 간사(奸詐)하고 속이는 것을 부끄러워하는데 남을 해치고 상(傷)하게 하는 짓은 차마 하지 못하오.

 

其次(기차)는 名曰(명왈) 學窮(학궁)이니 傲數與名(오수여명)하여 摘抉杳微(적결묘미)하고 高挹群言(고읍군언)하여 執神之機(집신지기)라. 又其次曰(우기차왈) 文窮(문궁)이니 不專一能(부전일능)하여 怪怪奇奇(괴괴기기)요 不可時施(불가시시)하고 秖以自嬉(지이자희)라.

 

그 다음은 이름을 학궁(學窮)이라 하는데 법도와 명성(名聲)에 대하여는 오만(傲慢)하고 심원(深遠)하고 미묘한 것을 잡아내며 여러 가지 이론(理論)들을 높이 들추어내어 신의 기밀(機密)을 파악하지요, 또 다음은 문궁(文窮)이라 하는데 한 가지 능력(能力)만을 오로지 추구하지 않고 기괴(奇怪)한 표현을 일삼아 시국(時局)에 응용할 수가 없고 오직 스스로 즐길 따름이오.

 

又其次曰(우기차왈) 命窮(명궁)이니 影與形殊(영여형수)하여 面醜心姸(면추심연)하니 利居衆後(리거중후)하며 責在人先(책재인선)이라. 又其次曰(우기차왈) 交窮(교궁)이니 磨肌戞骨(마기알골)하며 吐出心肝(토출심간)하여 吐出心肝(토출심간)하여 企足以待(기족이대)라도 寘我讐寃(치아수원)이라.

 

또 그 다음은 명궁(命窮)이라 하는데 그림자와 형체(形體)가 달라서 얼굴은 추(醜)하나 마음은 곱고 이로운 일에는 다른 사람들 뒷전에 서고 책임질 일은 남들보다 앞장서지요. 또 다음은 교궁(交窮)이라 하는데 살갗을 부비며 남과 가까이 지내고 마음속을 다 토로하고 발 돋음하고 기다리며 남을 대우(待遇)하고도 나를 원수자리에 놓이게 하는 것이오.

 

凡此五鬼(범차오귀)가 爲吾五患(위오오환)하여 飢我寒我(기아한아)하고 興訛造訕(흥와조산)하여 能使我迷(능사아미)하되 人莫能間(인막능간)이라. 朝悔其行(조회기행)하다가 暮已復然(모이복연)하고 蠅營狗苟(승영구구)하여 驅去復還(구거복환)이로다.

 

이 다섯 귀신(鬼神)들은 나의 다섯 가지 환난(患難)을 마련해주어 나를 굶주리게 하고 헐벗게 하며 내게 소동(騷動)을 일으키고 비난(非難)을 받게 하여 나를 미혹(迷惑)하게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이에 간섭(干涉)하지 못하오. 아침에 그러한 행동을 후회(後悔)하지만 저녁이면 또 다시 그러하니, 파리 떼가 붕붕거리고 개가 구차히 지내듯 쫓아버려도 다시 돌아오지요.”

 

言未畢(언미필)에 五鬼(오귀)가 相與張眼吐舌(상여장안토설)하여 跳踉偃仆(도량언부)하며 抵掌頓脚(저장돈각)하고 失笑相顧(실소상고)하며 徐謂主人曰(서위주인왈) 子知我名(자지아명)과 凡我所爲(범아소위)하여 驅我令去(구아령거)하니 小黠大癡(소힐대치)로다.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다섯 귀신(鬼神)들이 모두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내밀고 펄쩍 펄쩍 뛰다가 이리저리 나자빠지며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실소(失笑)하면서 서로 돌아다보고 천천히 주인에게 말하였다. “선생께서 우리 이름과 모든 우리 행위(行爲)를 알고 우리를 내쫓아 떠나라고 하는데 작게는 약지만 크게는 바보스런 짓입니다.

 

人生一世(인생일세)에 其久幾何(기구기하)오? 吾立子名(오립자명)하여 百世不磨(백세불마)라.小人君子(소인군자)가 其心不同(기심부동)하니 惟乖於時(유괴어시)라야 乃與天通(내여천통)이라. 携持琬琰(휴지완염)하여 易一羊皮(역일양피)하고 飫於肥甘(어어비감)하여 慕彼糠糜(모피강미)아?

    

사람이 나서 한 평생 얼마나 오래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선생의 명성(名聲)을 세워 백세 뒤에도 지워지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소인(小人)과 군자(君子)는 그들 마음이 같지 않은 것이니 오직 시국(時局)에 어긋나야만 비로소 하늘과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옥홀(玉笏)을 가지고 한 장의 양 가죽과 바꾸고, 기름지고 단 것에 배가 불러 겨와 싸라기를 흠모(欽慕)하는 것인가요?





天下知子(천하지자)가 誰過於予(수과어여)리오? 雖遭斥逐(수조척축)이나 不忍子疏(불인자소)하노니 謂予不信(위여불신)어든 請質詩書(청질시서)하라. 主人(주인)이 於是(어시)에 垂頭喪氣(수두상기)하고 上手稱謝(상수칭사)하며 燒車與船(소차여선)하여 延之上座(연지상좌)하니라.

 

천하에서 선생을 아는데 있어서 누가 우리보다 더 낫겠습니까? 비록 배척(排斥)받아 쫓겨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차마 선생님을 멀리하지 못하겠사오니 나를 믿지 못하겠다면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놓고 따져 보도록 하십시오. 그러자 주인(主人)은 머리를 떨어뜨리고 기가 죽어 두 손을 들어 사과(謝過)한 다음 수레와 배를 불사르고 그들을 마중하여 상좌(上座)에 앉혔다.

한유의 〈송궁문(送窮文)〉은 자신의 인생을 지독하게 따라다니는 '가난(궁핍)'이라는 귀신들을 내쫓으려다가, "너희들이 나를 지금까지 있게 한 진짜 실체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항복해버리는 아주 아이러니하고 철학적인 자아성찰의 글입니다.

군더더기 없이 핵심 코드를 해체해 드립니다.

🚀 한눈에 보는 핵심 요약 (Scannable Summary)
상황: 지긋지긋한 가난과 실패의 굴레를 견디다 못한 한유가, 하인을 시켜 '가난의 귀신(궁귀)'들을 실어 보낼 배와 수레를 준비함.

귀신들의 반격: "우리가 40년 동안 당신 곁을 지키며 당신을 단련시켰는데, 이제 와서 배신하느냐?"며 자신들이 5가지 존재(지궁, 학궁, 문궁, 명궁, 교궁)임을 밝힘.

귀신들의 논리: "당신이 세상에서 뻣뻣하게 굴고, 기괴한 글을 쓰고, 손해만 보는 인생을 산 건 다 우리 때문이며, 그 덕분에 당신의 명성이 백세토록 남게 된 것이다."

결론: 한유는 가난이 곧 자신의 정체성이자 성공의 동력임을 인정하고, 배와 수레를 불태운 뒤 '가난 귀신'들을 상좌(최고 귀빈석)에 모심.

📑 섹션별 마스터 코드 해체
1. 5가지 형태의 '가난 귀신' (나를 만든 버그들)
한유는 자신의 인생을 망친 줄 알았던 5가지 요소가 사실은 자신의 자아를 형성한 핵심 프로토콜임을 고백합니다.

지궁(智窮): 융통성 없이 뻣뻣하고 남을 해치지 못하는 고지식함.

학궁(學窮): 미묘한 이론만 파고들어 신의 영역까지 탐내는 오만함.

문궁(文窮): 기괴한 문장에 집착해 시국에 맞지 않는 글을 쓰는 고집.

명궁(命窮): 실속은 남에게 주고 책임만 앞장서 챙기는 미련함.

교궁(交窮): 진심을 다해 남을 대하지만 결국 이용만 당하는 인간관계의 서툼.

2. 가난의 역설: "실패가 곧 명성이다"
귀신들은 한유에게 뼈를 때리는 팩폭을 날립니다. "소인과 군자의 마음은 다르고, 시대와 불화해야 하늘과 통한다."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많지만, 백세에 이름을 남길 사람은 결국 이렇게 '불편한 짓'만 골라 하는 한유 같은 사람뿐이라는 것이죠. 가난과 불행이 사실은 한유를 '완성'시키고 있었다는 고백입니다.

3. '송(送)'에서 '영(迎)'으로: "고난을 내 편으로 만들기"
글의 제목은 '가난을 보내는 글(送窮文)'인데, 결말은 '가난을 극진히 대접하는 글'이 됩니다. 자신의 결함과 고통을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상좌'에 모시는 순간, 한유는 고통으로부터 초연해지는 경지에 이릅니다.

💡 0.001% 관점의 최종 밸류에이션
이 글은 실패한 인생의 한탄이 아니라, '고통과 실패를 자신의 브랜딩으로 치환하는 타짜의 완벽한 멘탈 관리법'입니다.

앞서 보았던 한유의 인생(25세~49세의 처절한 고난)이 왜 그렇게 화려한 결과(50세 이후의 성공)로 이어졌는지 이 글이 대답해 줍니다. 그는 40년 동안 자신을 괴롭힌 '가난 귀신'들이 사실은 자신을 강하게 단련하고 독창적인 글을 쓰게 만든 가장 지독한 스승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귀하의 인생에서도 '나를 괴롭히는 결점'이나 '지독한 불운'이 있다면, 그것을 쫓아내려 애쓰지 마십시오. 그 귀신들이야말로 귀하를 남들과는 다른 '독보적인 존재'로 빚어내고 있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한유처럼 그것들을 상좌에 모시고 함께 가십시오. 그게 진짜 고수의 인생 운영 방식입니다.

백세에 이름을 남길 사람이 시대와 불화해야 하는 이유는?

한유가 "오직 시국(時局)에 어긋나야만 비로소 하늘과 통한다"고 말한 것은 단순히 반항심 때문이 아닙니다. 여기서 '시대와 불화한다'는 것은 시스템의 버그를 방치하고 대세에 순응하는 대신, 본질(도, 道)을 지키기 위해 기득권의 관성(인습)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 '시대와의 불화'가 백세의 이름을 남기는 필수 조건인지, 그 3가지 논리적 메커니즘을 해체해 드립니다.

1. 대중의 뇌는 '당대의 편향'에 최적화되어 있다 (에코 체임버 현상)
대부분의 당대 사람들은 그 시대가 정해놓은 '최적화된 알고리즘' 안에서 삽니다.

당대의 권력, 인기, 관습, 그리고 그 시대의 '상식'이 바로 그 알고리즘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 시대와 화합한다면, 당신은 그 시대의 평균치와 똑같은 출력을 내놓는 'NPC'가 될 뿐입니다.

불화의 이유: 시대와 불화한다는 것은, 대중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당대의 가짜 정답'을 거부하고,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진리(상수)'를 고집한다는 뜻입니다. 대중은 당장 당신을 미워하겠지만, 세월이 흘러 시대가 바뀌면 그제야 당신이 지켰던 '상수'가 유일한 정답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2. '하늘의 도'는 시대의 흐름보다 긴 타임라인을 가진다
한유가 말한 '하늘(天)'은 시대의 권력이 아니라 '역사라는 더 긴 타임라인'을 의미합니다.

권력은 짧고, 유행은 더 짧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본질이나 도리는 훨씬 긴 수명을 가집니다.

시대가 타락했다면, 그 시대와 화합하는 것은 그 타락에 동조하는 것입니다.

불화의 이유: 시대의 타락과 불화함으로써 당신은 '현재의 인기'를 희생하는 대신, '역사의 검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시대가 당신을 배척하는 그 순간이, 당신의 이름이 시대를 넘어설 준비를 마쳤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3. 고통과 결핍은 독창성의 소스코드다
앞서 살펴본 〈송궁문〉에서 보았듯, 가난과 실패(궁, 窮)는 당신을 세상과 불화하게 만드는 최고의 동력입니다.

세상이 '예(Yes)'라고 할 때 '아니오(No)'를 말하려면, 남들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깊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시스템으로부터 소외되었을 때, 인간은 비로소 '나만의 고유한 논리'를 정립할 시간을 얻습니다.

불화의 이유: 시대와 화합하면 당신의 자아는 시스템 속에 녹아 사라지지만, 시대와 불화하면 당신의 자아는 시스템과 분리되어 압도적으로 선명해집니다. 백세에 남는 이름은 '그 시대의 대변인'이 아니라 '그 시대가 감당하지 못한 거대한 자아'입니다.

💡 타짜의 관점: '불화'는 리스크가 아니라 투자다
한유의 말은 "시대와 불화하여 욕을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것은 당신이 시대를 넘어서는 가치를 생산하고 있다는 증거다"라는 격려입니다.

화합하는 삶: 지금 당장의 안락함(이익)을 얻지만, 당신의 이름은 시대와 함께 휘발됩니다.

불화하는 삶: 지금 당장의 박해(고난)를 겪지만, 당신의 이름은 그 시대를 뚫고 다음 시대로 전달됩니다.

결국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그 시대의 알고리즘에 나를 100% 최적화하지 않겠다'는 지독한 고집에서 시작됩니다. 남들이 짖어대는 소리에 귀를 닫고, 당신이 믿는 본질을 끝까지 밀어붙이십시오. 시대는 언제나 사후적으로 그 불편했던 자들을 '위인'이라 부르며 상좌에 모셨으니까요.







세상에 백락(伯樂)이 있은 후에야 천리마(千里馬)가 있게 된다. 천리마는 항상 있는 것이지만 백락은 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비록 명마가 있다고 할지라도, 다만 노예의 손에 의해서 모욕을 당하고, 마구간에서 보통 말들과 나란히 죽게 되어 천리마로 불리지 못한다. 천리마라고 하는 것은 한 끼에 간혹 한 섬의 곡식을 먹어 치우는 일도 있다. 말을 기르는 자는 그 말이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지도 모르고 먹인다. 이 말이 천 리를 달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먹는 것을 배부르지 않게 하면 힘이 부족하여 재능의 훌륭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되고, 또 보통 말과 같아지려 해도 될 수 없으니, 어찌 그 말이 천 리를 달릴 수 있기를 바라겠는가? 채찍질하면서 도리로 하지 않고 먹여주지만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게 하며, 울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채찍을 들고 다가서서 말하기를, "천하에는 좋은 말이 없다"고 하니, 아! 참으로 좋은 말이 없는 것이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말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
雜說(잡설)/雜說四首(잡설4수)

韓愈(한유)







전중소감마군묘명(殿中少監馬君墓銘)

전중소감 마군의 묘지 



- 한유(韓愈)


君諱繼祖(군휘계조) : 마군의 이름은 계조인데,
司徒贈太師北平莊武王之孫(사도증태사북평장무왕지손) : 사도로서 태북평장무왕이 추증되었던 마수의 손자이고,
少府監贈太子少傳諱暢之子(소부감증태자소전휘창지자) : 소부감으로서 태자소부가 추증되었던 마창의 아들이다.
生四歲以門功(생사세이문공) : 출생후 네 살 때에 집안의 공로로
拜太子舍人(배태자사인) : 태자사인 벼슬이 내려졌고,
積三十四年(적삼십사년) : 삼십사 년 동안
五轉而至殿中少監(오전이지전중소감) : 다섯 번 벼슬이 승진되어 전중소감에 이르렀다.
年三十七以卒(년삼십칠이졸) : 나이 삼십칠 세로 죽었는데,
有男八人女二人(유남팔인여이인) : 아들 여덟 명과 딸 두 명을 두었다.

始余初冠(시여초관) : 처음 내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應進士貢在京師(응진사공재경사) : 장안으로 과거를 보러왔었는데,
窮不能自存(궁불능자존) : 궁하여 살아갈 수가 없을 형편이었다.
以故人稚弟(이고인치제) : 작고한 형이 잘 아는 사이여서 그의 어린 동생이라 하고
拜北平王於馬前(배북평왕어마전) : 북평왕 마수를 말 머리에서 뵈었었는데,
王問而憐之(왕문이련지) : 북평왕은 몇 마디 물어보고는 나를 동정하여
因得見於安邑里第(인득견어안읍리제) : 다시 안읍리의 그 분 댁으로 가서 뵙게 되었다.
王軫其寒飢(왕진기한기) : 북평왕께서는 내가 헐벗고 굶주리는 것을 가슴아파 하면서
賜食與衣(사식여의) : 음시과 옷을 내려주셨고,
召二子(소이자) : 두 아드님을 불러
使爲之主(사위지주) : 주인노릇을 하도록 하셨는데,
其季遇我特厚(기계우아특후) : 그 중 작은 아드님이 특별히 나를 후하게 대접하였으며,
少府監贈太子少傳者也(소부감증태자소전자야) : 바로 그 이가 소부감으로 태자소부에 추증되신 분이다.
姆抱幼子立側(모포유자립측) : 그 때 유모가 어린 아들을 안고 옆에 서 있었는데,
眉眼如畵(미안여화) : 눈썹과 눈이 그림같고
髮漆黑(발칠흑) : 머리털은 새까맣고,
肌肉玉雪可念(기육옥설가념) : 살갗은 옥이나 눈같았던 생각이 나는데,
殿中君也(전중군야) : 그가 바로 전중소감 마군이었다.

當是時(당시시) : 그 때에
見王於北亭(견왕어북정) : 북정에서 북평왕을 뵈니,
猶高山深林(유고산심림) : 마치 높은 산이나 깊은 숲 또는 그대한 계곡과도 같아서
龍虎變化不測(용호변화불측) : 용이나 호랑이같은 변화를 헤아릴 수가 없는
傑魁人也(걸괴인야) : 영걸같았다.
退見少傅(퇴견소부) : 물러나와 태자소부를 뵈니
翠竹碧梧(취죽벽오) : 푸른 대나무나 벽오동과도 같고
鸞鵠停峙(난곡정치) : 난새나 고니가 산마루에 머물러 있는 것과도 같아서,
能守其業者也(능수기업자야) : 그의 가업을 잘 지키실 분 같았다.
幼子娟好靜秀(유자연호정수) : 어린 아들은 예쁘고 잘 생긴 위에 얌전하고 빼어났으며,
瑤環瑜珥(요환유이) : 좋은 옥과도 같고
蘭茁其芽(난줄기아) : 난초 싹이 솟아난 것과도 샅아서
稱其家兒也(칭기가아야) : 그 집안 아이들로서는 잘 어울리고 있었다.

後四五年(후사오년) : 그 뒤 사오 년만에
吾成進士(오성진사) : 나는 진사가 되어
去而東游(거이동유) : 장안을 떠나 동으로 여행 중이었는데,
哭北平王於客舍(곡북평왕어객사) : 북평왕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객사에서 듣고 곡하였다.
後十五六年(후십오육년) : 다시 그 뒤 십오륙 년 되는 해에
吾爲尙書都官郞(오위상서도관랑) : 나는 상서도관량이 되어
分司東都(분사동도) : 동도 낙양의 일을 나누어 맡고 있었는데,
而少傅卒(이소부졸) : 태자소부께서 돌아가시어
哭之(곡지) : 곡을 했다.
又十餘年至今(우십여년지금) : 다시 십여 년 지나 지금은
哭少監焉(곡소감언) : 소감 마군의 죽음을 곡하게 된 것이다.
鳴呼(명호) : 아아,
吾未老耄(오미노모) : 나는 아직 팔십대 늙은이도 못되었고,
自始至今(자시지금) : 처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未四十年(미사십년) : 사십 년도 못되었는데,
而哭其祖子孫三世(이곡기조자손삼세) : 그들 할아버지․아들․손자 삼대의 죽음을 곡하였으니,
于人世何如也(우인세하여야) : 인간 세상에 있어 어떤 경험이라 하겠는가?
人欲久不死而觀居此世者何也(인욕구불사이관거차세자하야) :
사람들이 오래도록 죽지 않고 이 세상을 구경하며 살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장녀 케이코가 "무엇을 불 태우고있다?"라고 묻자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런 것은 무덤까지 가져가는 것...







나를 위해 감히 '우리'가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이 좋다.
- 조성용




치마를 걷고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치마 걷고 진수라도 건너가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남자가 그대뿐이랴.

바보 같은 사나이 멍청이 같은 사나이.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치마 걷고 유수라도 건너가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내가 그대뿐이랴.

바보 같은 사나이 멍청이 같은 사나이.

<시경>에 나오는 정나라 사람의 시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         와우각상쟁하사(蝸牛角上爭何事)  
​부싯돌 불꽃처럼 짧은 순간 살거늘         석화광중기차신(石火光中寄此身)  
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자     수부수빈차환락(隨富隨貧且歡樂)  
허허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              불개구소시치인(不開口笑是癡人)

술을 대하다 by 백거이






"Things base and vile, holding no quantity,

Love can transpose to form and dignity:
Love looks not with the eyes, but with the mind."

"아무리 쓸모없고 비천한 것이라 해도 사랑은
그것들을 가치 있고 귀한 것으로 바꿔놓을 수 있어.
사랑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보니까"

- 윌리엄 셰익스피어 <한 여름 밤의 꿈> 1막 1장



파자마를 입고 죽은 남자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

 

   인터넷 신문에 파자마를 입고 숨진 채 발견된 한 남자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2004년 6월 10일 도쿄에서 일어난 일이다. 거기까지라면 특별할 게 없다. 파자마를 입고 죽은 사람들이라면 대개 감사하게도 자다가 숨을 거두었거나. 가족과 함께 혹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브라질 시인 마누엘 반데이라의 표현처럼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 대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있었다는 얘기이다.

   이어지는 기사에 의하면, 남자는 자신의 침실에서 사망했다. 병원에서 죽었다는 가정은 일단 제외된다. 이것으로 우리는 기사 속 인물이 다음날 아침의 빛을 보지 못하리라는 걸 예상치 못하고 잠든 사이에 고통 없이 죽었으리라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물론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었을 가능성도 남는다. 하지만 도쿄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 거대한 도시가 세상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는 사실도 알 것이다. 언젠가 내 책을 펴낸 도쿄 출판사 대표와 함께 일본 국내 여행을 앞두고 식사를 하러 갔을 때 일이다. 자동차 뒷좌석에 나란히 세워둔 트렁크가 환히 들여다보여 위험해 보였다. 누가 우리 트렁크를 들고 달아나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는 나에게 출판사 대표는 미소지으며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저녁밥을 먹는 내내 신경이 쓰였지만 역시 우리 트렁크는 무사했다.

   다시 파자마를 입고 죽은 남자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시체에는 싸움이나 외상의 흔적이 없었다. 한 경찰 고위관리가 제출한 사건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사내는 심장마비로 숨졌을 확률이 대단히 높았다. 그러니 살해 가능성도 접을 수 있었다. 시체는 철거 예정이던 주택가 이층에서, 건설회사 직원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모든 정황이 우리를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이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고 생활비가 비싼 도시에 살 형편이 안 되던 남자가 집세 걱정이 없는 건물에 무단 거주하다 죽었으리라는.

   그러나 이야기의 비극적 면모는 지금부터이다. 고인은 파자마만 걸친 해골이었다. 그의 옆에는 1984년 2월 20일자 신문이 펼쳐져 있었고, 그 옆 탁자에는 같은 날짜의 달력이 놓여 있었다. 그는 이십년 동안 그곳에 누워 있었던 것이다. 이십년 동안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는 그 건물을 지은 건축회사의 직원으로 밝혀졌다. 1980년 대 초에 이혼한 직후부터 그는 그 집에서 살았다. 그리고 신문을 읽다 갑자기 세상을 떠난 그날, 남자의 나이는 겨우 오십대 초반이었다.

   전처는 한 번도 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가 일했던 건축회사를 찾아간 기자는 당시 회사가 집을 한 채도 팔지 못해 완공 직후 부도가 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때문에 그가 출근하지 않은 것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기자가 찾아낸 그의 친구들은 그가 그들에게 돈을 빌려간 후에 갚지 못해 잠적한 게 아닌가 추측했다.

   기사는 전처가 그의 유해를 인수했다는 내용으로 끝났다. 나는 그 마지막 문장을 곱씹어 보았다. 전처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십 년 동안이나 전 남편의 안부조차 묻지 않았다. 그녀는 이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남편의 애정이 식어 자기를 버린 거라고? 남편에게 여자가 생겨 자취를 감추었다고? 법적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끝난 이상 연락을 주고받을 필요가 없다고? 인생이 그런 거라고? 오랜 세월을 나눈 남편의 운명을 알고 난 후 그녀는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시 파자마를 입고 죽은 남자를 떠올렸다. 찾는 사람도 없이, 이십 년 동안이나 종적이 없었던, 그 완벽하고 철저한 고립에 대해, 배고픔이나 갈증, 실업이나 실연의 상처나 절망보다 더 끔직한 것은, 어느 누구도 세상의 단 한 사람도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느낌이리라.

그를 위해 조용히 기도 올리자. 그리고 친구의 소중함을 돌이켜 볼 기회를 준 그에게 감사하자.




“죽음이라는 게 거창한 것 같지. 아니야. 내가 신나게 글 쓰고 있는데, 신나게 애들이랑 놀고 있는데 불쑥 부르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

이쪽으로, 엄마의 세계로 건너오라는 명령이지. 어릴 때 엄마는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잖아.… 그렇게 보면 또 하나의 생명이지. 어머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이니까.”
- 이어령




 “전생 기억은 대부분 사라지죠. 일부 성인이 되면서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해요. <예스터데이 칠드런>(Yesterday’s Children)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인데, 1953년생 여자 주인공이 어릴 때 가본 적 없는 아일랜드 거리하고 교회, 가족을 그렸어요. 다 잊었다가 아들이 고등학생이 될 무렵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대요. 친정어머니의 권유로 아일랜드에 가서 성당 세례자 명단도 들여다보고, 천신만고 끝에 자기가 1932년에 애들 다섯을 두고 세상을 떠난 메리 서턴이었다는 걸 알게 돼요. 21년 만에 다시 태어난 거죠. 놀랍게도 그사이 노인이 된 자녀 다섯을 만나요. 인터넷에 사진 다 나옵니다. 재회 장면도 나오고.”

“어떤 사람이 옆구리가 너무 아픈데 병원에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해서 최면으로 전생을 봤더니 1차대전 때 창에 찔려 죽은 프랑스 병사였다거나, 두통 때문에 병원에서 엠아르아이(MRI), 시티(CT) 찍어도 아무것도 안 나오는데 전생에서 1800년대 호텔에서 권총 자살을 했던 미국 검사라거나 하는 사례가 있어요. 그걸 아는 순간 통증이 해결된다는 거죠.”

 

“2014년 2월에 300명 넘는 과학자들이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 모여 18개 조항을 선언했어요. 과학은 어떤 도그마가 아니고 관찰되는 현상을 포용하고 새 이론을 만드는 거니까 물질 집착에서 벗어나자는 거죠. 1년 반 뒤 같은 장소에서 의식의 비국지성, 의식은 뇌라는 특정한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육체가 죽은 후에도 존속된다고 발표했어요. 우리가 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말기 환자가 임종을 평화롭게 맞는 데 적용하자는 획기적인 목적이었죠. 인상 깊었던 건 ‘영원불멸의 의식’이나 ‘사랑하는 가족이 죽음 뒤에 가게 될 여행’이라는 말이었어요. 의학은 근거 중심 분야이고, ‘영원불멸’이나 ‘여행’은 과학에선 안 쓰는 말이거든요.”

 

 “스콧 펙이라는 미국 정신과 의사에게 청중이 물었어요. 우리에게 무슨 은총이 있을까? 그의 대답은, 죽을 수 있다는 게 은총이다. 이런 쓰레기 같은 세상을 3, 400년 살아야 한다면 있는 돈 다 털어 죽는 쪽에 투자하겠다. 놀이터에서 실컷 놀았으면 저녁 해 기울기 전에 나가야지, 계속 죽치고 있으면 다음 사람이 못 들어와요. 후손들이 못 태어나는 것과 같죠. 보통 공수래공수거라고 하지만 반밖에 안 맞는 게, 아이가 태어날 땐 빈손이 아니라 전생에서 쌓았던 것들을 이번 생에 갖고 와요. 갈 때도, 살면서 행한 타인에 대한 배려나 사랑, 쌓았던 수양, 다 갖고 가죠.”

 

“우리는 무제한 여권을 가진 시간여행자.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과 즐거움이 함께했던 인생 수업을 마치고 본향으로 복귀합니다.”

 - 정현채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Proverbs 25:19 KJV
[19] Confidence in an unfaithful man in time of trouble Is like a broken tooth, and a foot out of joint.

성경 구절 해석 (Proverbs 25:19 KJV)

    원문: "Confidence in an unfaithful man in time of trouble Is like a broken tooth, and a foot out of joint."

    직역: "환난의 때에 신실하지 못한 사람을 신뢰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어긋난 발과 같다."

 

 

절박한 곳에서는
절박한 사랑이 탄생한다.
사랑이 불가능한 곳에서는
더욱 거대한 사랑이 탄생한다.
- 어딘가에서 본 글귀




목표는 이런 주문과 같은 것이네. 무엇을 원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종업원도 곤란해지네 . 

확실하게 무엇을 하겠다고 말해야 하네 . 

어떤 일이 좋을까..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를 하나하나 확실하게 정해두게.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주문하면 종업원이 그 음식의 값을 말해줄 것이네.

...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그리는 이상적인 상태를 형상화하지 않는 것이라네. 

자네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이미지로 그려보는 것이네 .

...

“자네는 틀림 없이 장래에 부자가 될 것이네. 그것은 자네가 이미 천만 달러를 갖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네.

 다만 시간 차가 있을 뿐이지 . 이렇게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걸세 . 천만 달러를 지금 갖고 있지만 20년 만기 정기 예금에 넣었네. 

이자가 높기 때문이지. 그런데 금리가 높은 대신에 만기까지는 돈을 찾을 수 없다는 조건이 붙은 정기예금이네. 

그래도 자네 재산은 변하지 않을 것이네. 

그 예금을 미래에 전액 찾으려면 여러 가지 지식을 얻고 실제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 같은 일이 필요할 뿐이라네.

- 혼다켄 유태인 대부호의 가르침





밥 프록터:
청소부였을 시절 기절할정도로 열심히 일했으나 큰 돈을 벌 수는 없었다.
열심히 일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가 중요했던 것이다.



성공의 속도는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우한폐렴 기간 동안 미국은 6조 5000억 달러(한화 7800조)의 돈을 인쇄했고 미국에서 인쇄된 모든 돈의 40%는 지난 12개월 동안 인쇄된 것; 나는 지난 9개월동안 평생 번 돈보다 많은 돈을 벌었다 by Patrick Bet-David




그는 "어려운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미학을 가지고 있어 곤란한 일이 일어나면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라고 생각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해 버릇하면 실제로 기적이 일어난다고 한다. 곤란한 일을 보고 "재미있다!"고 말하는 시점에서, 세상도 하나님도 "이런 일로 곤란하지 않아요"라는 승리 선언이 되어, 이 한마디로 자신의 승리를 결정짓게 된다는 것이다.
- 사이토 히토리


"사자와 여우처럼 되어야 한다. 여우는 덫을 알아챌 만큼 똑똑하고, 사자는 늑대 무리를 쫓아낼 정도로 강하다. 사자와 여우처럼 되어라. 그러면 아무도 널 이길 수 없을 것이다."
"You have to be like a lion and a fox. The fox is smart enough to recognize traps, and the lion is strong enough to scare away the wolves. Be like a lion and a fox, and no one will ever beat you."
- 1950~70년대 미국 마피아 세계를 지배했던 카를로 감비노




지난 달에는 무슨 걱정을 했었지? 작년에는? 그것봐라, 기억조차 못하고 있잖니?!

그러니까 오늘 네가 걱정하고 있는 것들도 별로 걱정할 일은 아닌거야. 

잊어버려, 내일을 향해 가는거야~ 

- 전 크라이슬러 의장, 전 포드 부사장 리 아이아코카의 자서전 中 -






『금강경』에서 수갑 푸는 법을 설했습니다. “상(相)이 상(相)이 아닐 때 여래를 보리라.



덕산 선사

“대답을 해도 30방, 대답을 못해도 30방이다. 자아, 어떻게 할 건가?”  

수월과 만공 
“여보게, 만공. 이것을 숭늉 그릇이라고도 하지 말고, 숭늉 그릇이 아니라고도 하지 말고, 한 마디로 똑바로 일러보소!”
 



I do not think there is any other quality so essential to success of any kind as the quality of perseverance. It overcomes almost everything, even nature.
- 존 D. 록펠러


Music is the harmonious voice of creation; an echo of the invisible world.
- Giuseppe Mazzini


사람들은 자신들의 논리가 빈약하다고 느낄 때 목소리를 높인다.
- 새무얼 존슨
 

그릿 (Grit)

 

"나는 스피노자의 신을 믿는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인간은 저마다 고유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현상들이 단 한 번뿐인 방식으로, 아주 특별하게, 두 번 다시 없을 형태로 서로 교차하는 중심점이다."
- 헤르만 헤세



쇼펜하우어 마흔살 넘어야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다
더 추상적인 것이 쎄다.
- 최진석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놀이하는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대상과 나의 일치 = 천일합일(天人合一),  물아일체(物我一體)

...

니 춤을 춰라.

니 춤을 추면 위대해질 것이다

다른 사람의 춤을 추면 스텝이 

꼬일 것이다.

좋은 춤을 배우러 떠나지 말고

니 춤을 춰라. 

- 장자 추수편에 대한 최진석의 해석


① 스피노자: "샘솟는 물을 막을 수 없듯이" (무한한 생산력)

스피노자에게 신(자연)은 그 자체로 무한한 생산 에너지를 가진 거대한 용광로입니다. 이를 능산적 자연(Naturanaturans)이라고 합니다.

    이유: 삼각형의 본질에서 '세 내각의 합은 180
    ∘
    '라는 성질이 필연적으로 흘러나오듯, 신이라는 완벽하고 무한한 실체 안에서는 무한히 많은 형태(인간, 동물, 별, 리스크 등)가 수학적 필연성에 의해 끊임없이 흘러넘쳐 나와야만 합니다.

    신이 세상을 '선택해서 육화'한 게 아닙니다. 신의 본질 자체가 끊임없이 가동되는 OS이기 때문에, 그 결과물로 세상(소산적 자연, Naturanaturata)이 렌더링되고 있는 상태일 뿐입니다.

② 라이프니츠: "자신의 완벽함을 다채롭게 감상하기 위해" (풍요성의 원리)

라이프니츠의 신은 최고의 프로그래머입니다. 신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데, 이 완벽함을 가장 극대화하는 방법은 '가장 단순한 법칙으로, 가장 다양한 존재들(모나드)을 창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유: 만약 신이 자신 혼자만 존재한다면 우주는 너무 단순하고 지루할 것입니다. 신은 자신의 전지전능함을 무한히 다양한 각도에서 비추는 '거울들(모나드)'을 만들어냄으로써, 우주의 다채로움과 선(善)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린 것입니다. 이것이 라이프니츠가 말한 '풍요성의 원리(Principle of Plenitude)'입니다.


 

야곱 뵈메(Jakob Böhme)의 철학에서 웅그룬트(Ungrund)는 매우 심오하고 난해한 개념입니다. 직역하면 '바닥이 없음', '기초가 없음', '심연(Abyss)'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 존재의 밑바닥에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절대적인 자유와 심연이 놓여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유사한 사상
노자
위디오니시우스
나고르주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서양 철학자들이 대단한 것을 발견한 척 온갖 궤변을 늘어놓지만, 사실 그들의 사상은 인도 불교와 우파니샤드가 수천 년 전에 이미 완성해 놓은 진리의 유치한 변주에 불과하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 이상이다
- 헤르만 헤세


 

"성행위(Coitus)와 그것에 사용되는 장기들은 너무나 추해서, 만약 사람들의 얼굴이 아름답지 않고, 참여자들의 감정이 없다면, 인간이라는 종족은 진작에 멸종했을 것이다."
-다빈치


"면피는 성벽처럼 두껍고(면후, 面厚), 마음은 숯덩이처럼 검어야(심흑, 心黑) 천하를 쥘 수 있다"
- 이종오



獨樂園記(독락원기)-사마광(司馬光)


迂叟平日讀書(우수평일독서) : 나 우수는 평소 독서함에

上師聖人(상사성인) : 위로는 성인을 스승삼고

下友群賢(하우군현) : 아래로는 여러 어진 이을 벗하며

窺仁義之原(규인의지원) : 인과 의의 근원을 살피고

探禮樂之緖(탐례악지서) : 예와 악의 실마리를 탐색한다

自未始有形之前(자미시유형지전) : 만물의 형체가 형성되지 않았을 때부터

曁四達無窮之外(기사달무궁지외) : 사방에 이르는 끝없는 외부 세계까지

事物之理(사물지리) : 사물의 이치가

擧集目前(거집목전) : 온통 눈 앞에 모이게 된다

可者學之未至(가자학지미지) : 가능한 것도 다 배우지 못하는데

夫可何求於人(부가하구어인) : 어찌 남에게 배우기를 구하겠으며

何待於外哉(하대어외재) : 어찌 밖에서 배우기를 기대하겠는가

志倦體疲則投竿取魚(지권체피칙투간취어) : 마음이 권태롭고 몸이 피곤하면 낚시대를 던져 고기를 낚으며

執衽采藥(집임채약) : 옷자락을 걷어 쥐고 약초를 캐거나

決渠灌花(결거관화) : 아니면 도랑을 내어 꽃나무에 물을 주거나

操斧剖竹(조부부죽) : 도끼를 잡고 대나무를 쪼개거나

濯熱盥水(탁열관수) : 한 대야의 물로 더위를 씻어버리거나

臨高縱目(림고종목) : 높은 곳에 올라 눈 가는 대로 경치를 바라보고

逍遙徜徉(소요상양) : 이리저리 거닐며

惟意所適(유의소적) : 오직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하노라

明月時至(명월시지) : 밝은 달이 때 맞추어 떠오르고

淸風自來(청풍자래) : 맑은 바람이 저절로 불어오면

行無所索(행무소색) : 이끄는 것이 없이 이끌려 가고

止無所柅(지무소니) : 붙잡는 것이 없이 멈추게 된다

耳目肺腸(이목폐장) : 귀도 눈도 폐도 장도

卷爲己有(권위기유) : 모두 거두어 내 소유로 하게 되니

踽踽焉洋洋焉(우우언양양언) : 홀로 마대로 걸어 거칠 것 없이 넓도다

不知天壤之間(불지천양지간) : 모르겠으니, 하늘과 땅 사이에

復有何樂(복유하락) : 다시 어떤 즐거움이 있어

可以代此也(가이대차야) : 가이 이것과 바꿀 수 있겠는지를

因合而命之曰獨樂(인합이명지왈독락) : 그런 까닭으로 이를 <독락>이라 명명한다




與韓荊州書(여한형주서) 형주 한 자사께 올리는 글

李白(이백 701-762)

 

시선(詩仙)으로 추앙(推仰)받는 이백(李白)은 재능(才能)과 큰 경륜(經綸)을 펼치지 못한 채 마땅한 추천자(推薦者)가 없어 서른이 넘도록 벼슬에 나가지 못했는데 형주(荊州)를 여행(旅行)하던 중 당시 형주자사(荊州刺史)로 있던 한조종(韓朝宗)이 후진(後進)을 많이 추천(推薦)하여 명망(名望)이 높음을 알아 그에게 자신(自身)을 도와주기를 바라는 편지(便紙)인 자천서(自薦書)를 썼다. 이 자천서가 <與韓荊州書(여한형주서)>이다.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에서 이백(李白)은 “저는 천하(天下)의 선비들이 입을 모아 만호후(萬戶侯:넓은 영토의 제후)에 봉(封)해지기를 바라기보다는 한형주(韓荊州)에게 한 번 인정(認定)받기를 원한다고 들었습니다.(聞天下談士 相聚而言曰 生不用封萬戶侯 但願一識韓荊州)” 라고 천하의 선비들의 말을 빌려 자신을 도와주기를 청원(請願)하며 자신의 문학적(文學的)인 자질(資質)을 시험(試驗)해 보고 세상에 추천(推薦)해 주기를 원했다. 한형주(韓荊州)란 한조종(韓朝宗)이 형주자사(荊州刺史)를 지냈기 때문에 일컬은 말이다

 

한조종(韓朝宗)은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사람으로, 이부시랑(吏部侍郞) 한사복(韓思復)의 아들로 좌습유(左拾遺)로부터 거듭 영전(榮轉)하여 형주자사(荊州刺史)에 이르렀다.   한조종(韓朝宗)은 인물(人物)에 대하여 예리(銳利)한 감식안(鑑識眼)이 있어 후진(後進) 추천(推薦)을 많이 하여 시어사(侍御使)를 지낸 최종지(崔宗之)와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낸 엄무(嚴武) 등 그의 추천(推薦)을 받아 고위관직(高位官職)에 올랐으며 당시 선비들은 그를 존경(尊敬)하여 인정(認定)을 받기를 원(願)했다.

 



  

與韓荊州書

李白(701-762)




白이 聞天下談士가 相聚而言曰 生不用封萬戶侯오. 但願一識韓荊州라 하니 何令人之景慕가 一至於此오? 豈不以周公之風으로 躬吐握之事하여 使海內豪俊으로 奔走而歸之아? 一登龍門이면 則聲價十倍니 所以龍蟠鳳逸之士가 皆欲收名定價於君侯라. 君侯不以富貴而驕之하고 寒賤而忽之면 則三千之中에 有毛遂하리니 使白得穎脫而出이면 卽其人焉이라.

 

白은 隴西布衣라. 流落楚漢하여 十五에 好劒術하여 徧干諸侯하고 三十에 成文章하여 歷抵卿相하고 雖長不滿七尺이나 而心雄萬夫라. 皆王公大人이 許與氣義하니 此疇曩心跡이라. 安敢不盡於君侯哉아? 君侯制作이 侔神明하고 德行動天地하고 筆參造化하고 學究天人하니 幸願開張心顔하여 不以長揖見拒하고 必若接之以高晏하며 縱之以淸談이면 請日試萬言을 倚馬可待리라.

 


今天下以君侯로 爲文章之司命과 人物之權衡하여 一經品題면 便作佳士어늘 而今君侯 何惜階前盈尺之地하여 不使白으로 揚眉吐氣하여 激昂靑雲耶아? 昔王子師爲豫州하여 未下車에 卽辟荀慈明하며 旣下車에 又辟孔文擧하고 山濤는 作冀州하여 甄拔三十餘人하여 或爲侍中尙書하니 先代所美라.

 

而君侯亦 一薦嚴恊律하니 入爲秘書郞하고 中間崔宗之房習祖 黎昕許瑩之徒는 或以才名見知하고 或以淸白見賞하니 白이 每觀其銜恩撫躬하여 忠義奮發이라. 白이 以此感激하고 知君侯推赤心於諸賢腹中하니 所以不歸他人하고 而願委身國士하여 儻急難有用이면 敢效微軀리라. 且人非堯舜이니 誰能盡善이리오?

 


白이 謨猷籌畵을 安能自矜이리오만 至於制作하여는 積成卷軸하니 則欲塵穢視聽이나 恐雕蟲小伎가 不合大人이로다. 若賜觀芻蕘)인대 請給紙筆하고 兼之書人이면 然後退掃閑軒하여 繕寫呈上하리라. 庶靑萍結綠이 長價於薛卞之門이오. 幸推下流하여 大開獎飾이니 惟君侯圖之하라.


 

    

 

白(백)이 聞天下談士(문천하담사)가 相聚而言曰(상취이언왈) 生不用封萬戶侯(생불용봉만호후)오. 但願一識韓荊州(단원일식한형주)라 하니 何令人之景慕(하령인지경모)가 一至於此(일지어차)오? 豈不以周公之風(기불이주공지풍)으로 躬吐握之事(궁토악지사)하여 使海內豪俊(사해내호준)으로 奔走而歸之(분주이귀지)아?

 

저 백(白)이 듣건대 시세(時世)를 논하는 천하의 선비들이 서로 모여 말하기를 “태어나서 만 호의 제후(諸侯)에 봉해질 필요는 없어도 다만 한자사(韓刺史)께 한 번 알아주시기를 소원한다.”고 하니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러 사모(思慕)하는 것이 어찌 이에 이르렀습니까? 어찌 이것이 주공의 풍도를 본받아 몸소 뱉어내고 감아쥐는 일을 하여 천하의 호걸(豪傑)들과 준걸(俊傑)들이 바쁘게 달려와 귀의(歸依)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一登龍門(일등용문)이면 則聲價十倍(즉성가십배)니 所以龍蟠鳳逸之士(소이용반봉일지사)가 皆欲收名定價於君侯(개욕수명정가어군후)라. 君侯不以富貴而驕之(군후불이부귀이교지)하고 寒賤而忽之(한천이홀지)면 則三千之中(즉삼천지중)에 有毛遂(유모수)하리니 使白得穎脫而出(사백득영탈이출)이면 卽其人焉(즉기인언)이라.

 

한 번 용문(龍門)에 오르면 명성(名聲)이 열 배에 이르니 그러므로 웅크린 용(龍)과 빼어난 봉황(鳳凰) 같은 선비들이 모두들 공으로부터 가치를 인정(認定)받아 명성을 얻고자 합니다. 공께서 부귀하다하여 교만(驕慢)하지 않으며 상대방이 미천(微賤)하다하여 소홀히 하지 않으면 삼 천 명의 식객(食客) 중에 모수 같은 사람이 있으리니 저 백으로 하여금 재능을 나타내 보이게 해주신다면, 바로 그 사람(毛遂)과 같을 것입니다.

 

白(백)은 隴西布衣(롱서포의)라. 流落楚漢(류락초한)하여 十五(십오)에 好劒術(호검술)하여 徧干諸侯(편간제후)하고 三十(삼십)에 成文章(성문장)하여 歷抵卿相(력저경상)하고 雖長不滿七尺(수장불만칠척)이나 而心雄萬夫(이심웅만부)라. 皆王公大人(개왕공대인)이 許與氣義(허여기의)하니 此疇曩心跡(차주낭심적)이라. 安敢不盡於君侯哉(안감불진어군후재)아?

 

저는 농서(隴西)지방의 평민으로 초한(楚漢) 지역을 떠돌아다니며 열다섯에는 검술(劍術)을 좋아하여 두루 제후(諸侯)들을 찾아다니며 벼슬을 구했고 삼십이 되어서 문장을 지어 공경(公卿)과 재상을 두루 찾았고 키는 비록 7척이 못되건만 마음은 만 명의 장부들보다 웅대(雄大)합니다. 왕이나 공경대부(公卿大夫)들이 저의 기개와 도의를 인정했으니 이것이 지난날의 저의 마음과 행적(行跡)입니다. 어찌 감히 공께 다 아뢰지 않겠습니까?

 

君侯制作(군후제작)이 侔神明(모신명)하고 德行動天地(덕행동천지)하고 筆參造化(필참조화)하고 學究天人(학구천인)하니 幸願開張心顔(행원개장심안)하여 不以長揖見拒(불이장읍견거)하고 必若接之以高晏(필약접지이고안)하며 縱之以淸談(종지이청담)이면 請日試萬言(청일시만언)을 倚馬可待(의마가대)리라.

 

공의 문장은 천지신명(天地神明)의 솜씨와 같고 덕행은 천지를 감동시키며 필치(筆致)는 천지의 조화에 참여하고 학문은 하늘과 인간의 원리(原理)를 다 연구했으니 바라옵건대 마음을 여시고 안색(顔色)을 펴서 오래 읍하고 있는 저를 거절하지 말고 만일 성대한 연회로써 저를 접대하여 제가 마음껏 담론을 하게 한다면 매일같이 만언(萬言)의 글을 청하여도 말에 기대어 기다려도 될 것입니다.

 

今天下以君侯(금천하이군후)로 爲文章之司命(위문장지사명)과人物之權衡(인물지권형)하여 一經品題(일경품제)면 便作佳士(편작가사)어늘 而今君侯(이금군후) 何惜階前盈尺之地(하석계전영척지지)하여 不使白(불사백)으로 揚眉吐氣(양미토기)하여 激昂靑雲耶(격앙청운야)아?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공을 문장의 사활(死活)을 주재(主宰)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인물을 재어보는 저울로 알고 있어 한 번 공의 평을 받고 나면 곧 훌륭한 선비가 되거늘 지금 공께선 어찌 계단(階段) 앞 일척 남짓의 땅을 아끼어 저로 하여금 눈썹을 치켜 올리고 기상을 토하여 청운(靑雲)의 뜻을 높이 펴내게 하지 않는 것입니까?

 

昔王子師爲豫州(석왕자사위예주)하여 未下車(미하거)에 卽辟荀慈明(즉벽순자명)하며 旣下車(기하거)에 旣下車(기하거)에 又辟孔文擧(우벽공문거)하고 山濤(산도)는 作冀州(작기주)하여 甄拔三十餘人(견발삼십여인)하여 或爲侍中尙書(혹위시중상서)하니 先代所美(선대소미)라.

 

옛날 왕자사(王子師)는 예주자사가 되었는데 수레에서 내리기도 전에 순자명(荀慈明)을 불렀으며 수레에서 내려서는 공문거(孔文擧)를 불렀고 산도(山濤)는 기주자사(冀州刺史)를 지냈는데 삼십 여 명의 인재를 발탁(拔擢)하여 혹 시중과 상서가 되니 선대의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而君侯亦(이군후역) 一薦嚴恊律(일천엄협율)하니 入爲秘書郞(입위비서랑)하고 中間崔宗之房習祖(중간최종지방습조) 黎昕許瑩之徒(여흔허영지도)는 或以才名見知(혹이재명견지)하고 或以淸白見賞(혹이청백견상)하니 白(백)이 每觀其銜恩撫躬(백매관기함은무궁)하여 忠義奮發(충의분발)이라.

 

그런데 공께서도 또한 한번 엄협률(嚴協律)을 천거(薦擧)하시니 조정에 들어가 비서랑(秘書郞)이 되었고 그 중 최종지(崔宗之) 방습조(房習祖) 여흔(黎昕) 허영(許瑩) 등의 무리는 어떤 이는 뛰어난 재주로 알려져 있고 어떤 이는 청렴결백(淸廉潔白)으로 상을 받게 되니 저 백은 매번 은혜를 잊지 않고 몸을 닦으며 충성과 의리로써 분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白(백)이 以此感激(이차감격)하고 知君侯推赤心於諸賢腹中(지군후추적심어제현복중)하니 所以不歸他人(소이불귀타인)하고 而願委身國士(이원위신국사)하여 儻急難有用(당급난유용)이면 敢效微軀(감효미구)리라. 且人非堯舜(차인비요순)이니 誰能盡善(수능진선)이리오?

 

저는 이에 감격(感激)하였고 공께서 어진 사람의 뱃속에 진심(眞心)을 심어주는 것을 알았으니 다른 사람에게 귀의(歸依)하지 않고 국가의 명사(名士)에게 몸을 맡기고자하는 것이며 만일 급할 때에 쓰일 일이 있다면 미천(微賤)한 몸이나마 감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사람은 요순(堯舜)과 같은 성인이 아니니 누가 완전히 잘할 수 있겠습니까?

 

白(백)이 謨猷籌畵(모유주획)을 安能自矜(안능자긍)이리오만 至於制作(지어제작)하여는 積成卷軸(적성권축)하니 則欲塵穢視聽(즉욕진예시청)이나 恐雕蟲小伎(공조충소기)가 不合大人(불합대인)이로다. 若賜觀芻蕘(약사관추요)인대 請給紙筆(청급지필)하고 兼之書人(겸지서인)이면 然後退掃閑軒(연후퇴소한헌)하여 繕寫呈上(선사정상)하리라.

 

제가 도모(圖謀)하고 계획하는 것을 어찌 자부 하리오 만 문장을 짓는 일에 있어서는 싸여 권(卷)과 축(軸)을 이루었으니 눈과 귀를 더럽혀 드리고자 하오나 벌레를 조각(彫刻)해 놓은 듯 한 작은 재주여서 어르신에게 맞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만약 보잘 것 없는 문장이나마 보아주신다면 청컨대 종이와 붓을 내려주시고 글씨 쓸 사람을 함께 보내주시면 그런 연후에 조용한 방으로 물러나 깨끗이 치우고 다듬어 베끼도록 해 바치겠습니다.

 

庶靑萍結綠(서청평결록)이 長價於薛卞之門(장가어설변지문)이오. 幸推下流(행추하류)하여 大開獎飾(대개장식)이니 惟君侯圖之(유군후도지)하라.

 


바라옵건대 청평(靑萍)과 결록(結綠)이 설촉 변화의 문하에서 좋은 값을 받았듯이 부디 미천(微賤)한 저를 밀어주셔서 크게 한 번 칭찬(稱讚)하고 장식해 주시기 바라오니 오직 공(公)의 헤아림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인생 살아보면 만회할 기회 참 많더라,

내 친구들은 다 벌써 뭔가를 정해서

앞으로 달리는 것 같은데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길도 안열리고 그럴 때,

걱정하지 말라고,

내가 어느 순간에 

악착 같이 해서 찾으면

그냥 고속도로가 열린다,

그 때부터는 그냥 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냥 무조건 성공한다,

그런 이야기를 제가 많이 하고 다녀요.

저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어요.

찾으라고,

악착같이 찾으라고.

한번 사는 인생인데…"

- 최재천
https://www.youtube.com/watch?v=hLo-uyiMMwc


...

월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몸이 가볍고, 오늘 할 일에 대한 기분좋은 떨림이 있고, 신바람이 난다면, 그 사람은 성공한다 by 현승원
- 현승원 2022년



"무섭고 잔인한 폭군은 그가 패위시킨 예전의 세계 군주나 그를 제거할 영리한 영웅뿐 아니라 아버지까지도 표상한다. 영웅이 변화를 가져오듯이, 무섭고 잔인한 폭군은 한 가지 편견에 고착된 인간을 표상한다. 영웅의 임무는, 아버지(용, 시험자, 무섭고 잔인한 왕)의 부정적인 측면을 살해하고, 우주의 자양이 될 생명의 에너지를 그 굴레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과업은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 성취될 수 있고, 그 의지를 거스르고도 성취될 수 있다.​"
- 조셉 캠벨








눈을 통해 사랑이 가슴에 다다르니

눈은 가슴의 정찰병이라

가슴이 기꺼이 간직하고자 할 것을

찾아다닌다.

그리하여 셋이 모두 하나의 뜻으로

확고하게 일치할 때

비로소 눈이 가슴속으로

인도한 것에서 완벽한 사랑이 태어난다.

사랑은 오로지 이렇게 해서만 태어나고 시작될 수 있으니

달리 태어나고 시작될 수는 없다.
기로 드보르네유Gulraut de Borneil 




누군가가 그림 한 장을 그리고, 

누군가는 하나의 극본이나 책을 쓴다.

그가 지구의 반대편에 잠들어 있는 사이에

다른 이들은 그것을 본다.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작가의 책장을 넘길 때

작가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삶을 어찌 알 수 있을까?

그의 사상들이 불러일으키고 있는 생각들을 그가 어찌 알며,

그의 삶이 주고 있는 생명을,

누군가는 그에 대해 트집 잡고 누군가는 칭찬하고 있는

그에 관한 분쟁을 그가 어찌 알까?

그러나 무엇이 가장 살아있는 것인가?

잠들어 있는 그인가,

아니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다른이들로부터 모습을 감추고 잠들어 있는,

어떤 다른 장소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그의 정신,

즉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그의 작품인가?

무엇이 '그'인가?

잠들어 있는 '그'인가, 아니면

자신의 '그'는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는 '그'인가?
- 사무엘 버틀러 '무엇이 그인가'




“당신이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교류의 시간보다 차라리 사물을 가까이 하세요. 사물의 세계는 당신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밤은 계속됩니다. 나무 사이로, 여러 땅을 거쳐 부는 바람도 당신 곁에 남을 것입니다.”
- 릴케



그는 자신의 사상과 말을 가지고 보다 열의 있는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남다른 번뇌에 시달리고 자신의 주위 전체를 멸시하였다. 그는 낡은 기둥이나 벽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감정이 풍부할 뿐 아니라 남에게 구속받기를 꺼렸다. 활동적이고 자유롭고 1년 동안 할 농담을 매일같이 지껄여대고 있었다. 동시에 그는 우울했다. 자신의 슬픔을 낯설고 이상하고 귀중한 사실처럼 즐기고 있었다.

iamjieunpark
...

'그렇게 나는 우울한 일상과 정면으로 싸워 나갔다.'
nonepapa
블로그 제목



"그 날, 그 시간, 그 장소에서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들은 언제까지나 알지 못할 뿐."
- 오다 카즈마사 〈러브 스토리는 갑자기〉(ラブ・ストーリーは突然に, 1991) (드라마 <도쿄 러브스토리> 주제가) 가사


"지구 위에 꽂혀 있는 바늘 위에 밀씨 하나가 떨어져 그 바늘 위에 꽂힐 확률…. 이게 바로 우리가 만날 인연이야."
-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2001》 대사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김춘수 <꽃, 1952> 中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 박정희, 유신 정권 말기(1970년대 후반) 청와대 출입 기자들이나 측근들과의 사적인 대화, 혹은 술자리 등에서 자주 내뱉었던 발언
(박정희 명언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를 공론화시킨 것은 조갑제; 표현의 원조는 프랑스로, 1946년 프랑스 작가 보리스 비앙이 쓴 하드보일드 소설의 제목이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J'irai cracher sur vos tombes)〉였다)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음녀 언젠가 사람들이 길이라고 부르겠지.
길 철수 2000

우공이산


나는 등 뒤가 허전할 때
여기 온다
나는 피가 모자랄 때 
여기 온다

여기 와
저 빙하기를 넘어온
오세아니아 카우리 4만8천6백년의 삶에
나의 삶을 잇는듯

안녕 나의 책이여

4만8천6백년 뒤의 오늘
이제야 나는 누가 두고 간 긴 시간 속으로 간듯

2015년 겨울 고은
교보문고 헌정시



"사람이 살면서 몇 번의 고비를 만나듯이

여행에도 빙점이 있다.


여행 초기의 뜨거웠던 피는 식고 마침내 그것이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얼어붙는다.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인간을 일생일대의 인연으로 여기고

소중히 대하기로 했다.


변두리 유곽의 창녀에서

심산에 틀어박힌 스님까지

그 어떤 인간이든 

철저히 사귀기로 했다.


여행의 중반, 갑자기 나는 회생했다.


또다시 인간이 한없이 재미있어졌다.


얼어붙은 여행이 녹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되찾았다.


누구에게나 '빙점'은 있다.

반드시 찾아온다.


인간의 빙점을 녹이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체온이다."
- 동양방랑


가는 것은 반드시

박찬선

가는 것은 반드시 돌아올 떄가 있나니
아주 간다고 생각지 말자
해질녘 곱게 물드는 노을 속에
그림자 지우며 나는 새들 돌아와
아침이면 다시 떠나는 것을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주 가는 것이 아니라
먼 저편에서도 기원의 손 모으고 있나니
한 송이 조화가 없어도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이 꽃인 것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광경인 것을
아주 간다고 생각지 말라
강 건너 저 언덕에도
들꽃은 바람에 흔들리나니
진 잎은 새 잎으로 다시 피어나느니


비브로쉬카

연락처 줘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디라.
우리 중에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는 까닭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
자신이 애ㅗ 인물 될 공부를 아니하는가
도산 안창호


난정서 


찰나 인생
아침에 아리가
어느덧 저녁
노을
그대는 무엇을 했는가
- 자전거


해운대
최치원

    


"셋은 좋은 숫자이다.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 이 어리석은 은유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다. 당연히 비극이 예정되어 있다. 둘이라는 숫자는 불안하다. 일단 둘 중 하나를 선택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결국은 첫 선택에 대한 체념을 강요당하거나 기껏 잘해봤자 덜 나쁜 것을 선택한 정도가 되어버린다. 셋 정도면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일이 잘 안 될 때를 대비할 수가 있다.

가능성이 셋이면 그 일의 무게도 셋으로 나누어 가지게 된다. 진지한 환상에서도 벗어나게 되며, 산에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체중을 양다리에 나눠 싣고 아랫배로도 좀 덜어왔으므로 몸가짐이 가뿐하고 균형 잡기가 쉽다. 혹 넘어지더라도 덜 다칠 게 틀림없다.

실제로도 내게는 언제나 3번째 선택이란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사랑에 대한 냉소를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 은희경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中





"그래도 남자한테는 여자가 서너명은 항상 있어야지. 한명은 가정용, 또 한명은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뺑뺑이용, 그리고 또 한명은 인생과 예술을 논하는 오솔길용. 이 정도는 있어야 되는 거 아니야"

- 노무현






그런 사람들이 있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보다 능숙하게 삶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내면과 주변을 말끔히
정돈하고
모든 사안에 대해
해결책과 모범 답안을 알고 있는
사람들

누가 누구와 연관되어 있고,
누가 누구와 한편인지,
목적은 무엇이고,
어디로 향하는지
단번에 파악한다

오로지 진실에만 인증 도장을 찍고
불필요한 사실들은
문서세단기 속으로 던져버린다
그리고 낯선 사람들은
지정된 서류철에 넣어
별도로 보관한다

단 1초의 낭비도 없이
딱 필요한 만큼만 생각에 잠긴다
왜냐하면
그 불필요한 1초 뒤에
의혹이 스며든다는 걸 알기에

존재의 의무에서 해방되는 순간,
그들은 지정된 출구를 통해
자신의 터전에서 퇴장한다

나는 이따금 그들을 질투한다
다행히, 순간적인 감정이긴 하지만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ㅡ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ㅡ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 두번은 없다(Nic dwa razy) 







이제 절대로 알 수 없으리라.

Nigdy już się nie dowiem,

나에 대해 A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co myślał o mnie A.

B는 결국 나를 용서했는지.

Czy B. do końca mi nie wybaczyła.

어찌하여 C는 괸찮은 척, 잘 지내는 척했는지.

Dlaczego C. udawał, że wszystko w porządku.

D의 침목에 E가 어떤 방식으로 관여했는지.

Jaki był udział D. w milczeniu E. 

F가 기대했던 건 무엇이었는지. (혹시나 기대를 했었다면)

Czego F. oczekiwał, jeśli oczekiwał.

모든 걸 알면서도 G는 왜 모른 척했는지.

Czemu G. udawała, choć dobrze wiedziała.

H는 무엇을 숨기고 있었는지.

Co H. miał do ukrycia.

I가 덧붙이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는지.

Co I. chciała dodać.

내가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

Czy fakt, że byłam obok

그 어떤 의미라도 남겼는지.

miał jakiekolwiek znaczenie

J와 K, 그리고 나머지 알파벳에게.

dla J., dla K. i reszty alfabetu.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Wislawa Szymborska)의 "ABC"




한 발 정도로는 무스(Moose)를 죽일 수 없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



무소의 뿔처럼 혼자가라.



이것 역시 곧 지나가리라



아람어 기원설: 가장 유력한 학설은 아람어 문구인 "아브라 카다브라(Avra Kehdabra)"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나는 말한 대로 창조하리라(I will create as I speak)"



  아이러니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성이 의식의 높은 차원으로 가는 문이 될 가능성을 엿보아 왔다. 사람들은 성행위 중에 절정을 맛보게 되는데, 그 순간 모든 분리감이 무너져내리는 것을 느낀다. 또 성적인 갈망에는 보다 고귀한 목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느끼기도 한다. 게오르그 포이에르스타인은 자신의 저서 『신성한 성 Sacred Sexuali- ty』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성적인 사랑은, 보통사람들이 일상의 경험 영역을 초월하는 합일에 이르는 가장 강렬하고 직접적인 길이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섹스는 영적인 실재를 향한 감추어진 창문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성스러운 섹스’라고 하는 것은 공허한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 실례(實例)를 찾아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뜻밖에 아주 야비하고 어이없는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거나 짜증내지 마라. 그냥 지식이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라. 인간의 성격을 공부해가던 중에 고려해야 할 요소가 새로 하나 나타난 것 뿐이다. 우연히 아주 특이한 광물 표본을 손에 넣은 광물학자와 같은 태도를 취하라.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명나라 말기의 화가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은 그의 명저인 <화안(畵眼)>에서 ‘만권의 독서를 하고 만리를 여행해봐야 가슴에 쌓여 있는 탁기와 먼지를 털어버릴 수 있다’고 써놨다. 필자도 축령산 글방에다가 이 문구를 붓글씨로 써서 대련(對聯)으로 만들어놨다. 우도의 좌우명이다. ‘독서만권시통신, 여행만리종분별(讀書萬卷始通神, 旅行萬里終分別)’이다. ‘독서를 만권 하니까 신명계(신령들이 존재하는 세계)와 통하기 시작하고, 여행을 만리 하니까 분별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사이키델릭 분야의 권위자 알렉산더 슐긴: 메스칼린을 흡입한 뒤, 전(全)우주가 사실은 자신의 내면(영혼) 안에 들어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서 경험할 수 있고, 그 존재를 부정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우리 내면에 있다; 화학 물질들은 그 경험을 가능케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정진규

별들의 바탕은 어둠이 마땅하다
대낮에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별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에게만
별들이 보인다
지금 어둠인 사람들만
별들을 낳을 수 있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




정희성

숲에 가 보니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더군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이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존 도네



그렇게 이별이 오듯이



기분이 저기압일 땐
반드시 고기앞으로 가라




밤하늘의 달이 너무 아름다워
잠시 세상의 온갖 시름 잊고 넋을 잃고 
바라보았네
100년 전, 300년 전, 500년 전, 1500년 전 
사람들도 달과 별을 보며 외로움을 달랬겠지
둥글게 만갷나 보름달 속에
지나간 모든 과거가 
하나로 중첩되어 보인다
영롱하게 빛나는 달빛과 
영원 속에 하나가 된다

저 달 속에 
만추의 한도, 청운의 꿈도,
잊혀지는 아스라지 옛사랑도
다함께 들어있네

지나간 시간이 덧없다 말하지 말고,
저 달과 같이 세세만세 빛날 영원의 속의
청춘이 되야지
2016년경


급훈:
스스로 깨면 병아리,
남이 깨면 후라이



천국의 계단


alone again



"이 시시하고 고리타분한 걸레조각을 지금 당장 벗어버리겠습니다."
- 오리아나 팔라치, 1979년 콤에서의 인터뷰 중, 호메이니 면전에서 차도르를 찢어서 호메이니 발치에 집어던지면서 한 말.


호스티스 happiness



Most of the important things in the world have been accomplished by people who have kept on trying when there seemed to be no hope at all.
- 데일 카네기


You must keep your mind on the objective, not on the obstacle.
-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자기 마음에 있는 장벽은 누구도 깨뜨리지 못한다. 어떤 일을 할 수 없다면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가장 무서운 적은 마음에 있는 셈이다. 마음 속에서 패한 사람은 현실에서도 여지없이 패한다.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꿈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스스로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일은 헛된 꿈이 되어 버린다. 장벽은 바로 마음에 있다.

- 헨리 포드



i'possible


If you want to become a billioniare, help a billion people.
What is the challenge you desire to solve? What is the impact you want to create?
I belive that each of us should be takng on what i call the Impact Pledge... to stand up and say, During my lifetime, this is the problem that I want to solve. This is what I stand for."

壬申年六月十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乱世 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未年 七月卄二日 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나란히 맹세하였기에 기록한다.
하늘 앞에 맹세한다. 지금부터 3년 이후에는 충의 도를 잡아 지속하여 잘못과 실수가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 일이 실패하면 하늘의 큰 화를 받으리라 맹세한다.
만약, (그 안에) 나라가 불안해지고 크게 어지러운 세상이 오면 (나라를 위해 중단도) 받아들일 수 있는 행위로 맹세한 것이다.
또한, 따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였다.
즉, 시·상서·예기·전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세하되 3년으로써 하였다.

임신서기석 







춘일
佳期竟不歸(아름다운 기약 끝내 그대는 돌아오지 않고)
春物坐芳菲(봄날 부질없이 향기만 진동하오)
拂匣看離扇(궤짝 먼지 털어 손 떠난 부채 바라보고) 

開箱見別衣(상자 여니 이별할 때 입었던 옷이 보이네)




#증정인
春風忽駘蕩(봄바람 문득 부는)
明月又黃昏(보름달 황혼 무렵)
亦知終不至(결국 안 오실 걸 알면서도) 

猶自惜關門(못내 문 닫기 서운해라)




추야
別寵增脩夜(그대와 이별하니 긴 밤은 더욱 길고)
遠征悲獨宿(먼 길 떠나 홀로 잠들기 그저 슬프오)
愁縈翠羽眉(그리움은 물총새 깃털 같은 눈썹에 얽히고) 

淚滿橫波目(눈물이 차올라 앞을 가르네)



#견인직
夢啼漬花枕(꿈속 울음에 꽃베개 잠기고)
覺淚濕羅巾(잠깨어 흘린 눈물 비단수건 적시오)
獨眠眞自難(홀로 잠드는 것 정말 견디기 어려워)
重衾猶覺寒(겹겹 이불에도 오히려 추위를 느끼네)



#주필희서
舞席秋來卷(춤추던 자리 가을 되자 말아버렸고)
歌筵無數塵(노래하던 곳엔 무수한 먼지만)
曾經新代故(일찍이 새것이 옛것을 대신한다곤 했지만)
那惡故迎新(어찌 옛사람 미워하고 새사람 맞는지)




하늘
美人在雲端(아름다운 임은 구름 저 끝에 있는데)
天路隔無期(하늘로 가는 길은 막혀 기약도 없소)
夜光照玄陰(달빛이 어둔 밤 비출 때)
長歎戀所思(장탄식하며 그대 생각하오)



#강변
朝登江梁上(아침부터 강변 다리 위에 올라)
褰褲望所思(바지 걷고 그리운 이 기다리는데)
安得抱柱信(어찌하면 미생과 같은 굳건한 믿음 만나)
皎日以爲期(하얀 해 두고 사랑 맹세할 수 있을까)



#학수고대
出戶獨彷徨(문 나서 혼자 서성임에)
愁思當告誰(수심에 찬 그리움 누구에게 하소연하랴)
引領還入房(목 빼고 기다리다 방으로 돌아오면)
淚下霑裳衣(눈물이 흘러내려 옷을 적시오)



#수레
思君令人老(당신을 그리다 이 몸 늙는데)
軒車來何遲(수레는 왜 이다지도 더디 오는지)
傷彼蕙蘭花(애닯다 저 혜초며 난초의 꽃)
含英揚光輝(꽃봉오리 머금고 빛만 발하네)



#인생
人生無幾時(인생이란 얼마 안 되는 시간)
顚沛在其間(그 사이에도 엎어지고 자빠지게 마련)
念子棄我去(그대 생각뿐인데도 날 버리고 떠난다면)
新心有所歡(나도 금세 좋아하는 사람 생길 것)



#둥지
蕩滌放情志(번민을 쓸어버리고 마음껏 즐길 것이지)
何爲自結束(무엇 때문에 스스로 얽매이는가)
思爲雙飛燕(생각은 한 쌍의 나는 제비가 되어)
銜泥巢汝室(진흙 물고서 그대 집에 둥지를 트는 것)



#만여리
相去萬餘里(서로 떨어지길 만여 리)
各在天一涯(각기 하늘 한 모퉁이에 있네)
道路險且長(길은 험하고도 멀어)
會面安可知(만날 날을 어찌 알리오)



#한술
相逝日已遠(서로 헤어져 날로 더욱 멀어지니)
衣帶月已緩(옷끈은 달로 더욱 느슨해지네)
棄捐勿復道(아서라 말아라 다시는 말하지 말며)
努力加餐飯(애써 밥이나 더 먹어야지)

은 조선 시대의 기녀(妓女)들이 쓴 한시들입니다.

이 시들은 《매화잡영》, 《해동가요》 등의 고전 시가 모음집이나, 18~19세기 편찬된 한시 문집들 속에 흩어져 있던 '기녀의 연정(戀情)'을 다룬 한시들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1. 저자 및 성격
저자: 특정 작가 한 사람이 쓴 것이 아니라, 조선 시대 기녀들이 쓴 '연정가(戀情歌)'들입니다.




존 위컴(John A. Wickham) 전 주한미군사령관의 발언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직후, 위컴 사령관이 미국 언론과 가진 인터뷰 내용입니다.

발언 내용 (요약): 1980년 6월 미 일간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LA Times)〉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한국인의 민주화 열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습니다.

"한국인들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레밍(lemming, 나그네쥐)'**과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은 지도자가 누구냐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당시, 알렉산더 버시바우(Alexander Vershbow) 주한미국대사가 했던 발언입니다.

발언 내용: 2008년 5월 22일, 버시바우 대사는 외신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광우병 우려로 촛불집회가 확산되는 상황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한국인들은 쇠고기 문제와 관련해 '과학적인 사실(scientific facts)'을 잘 모르고 있다."
"한국인들이 공포를 느끼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이는 감정적인 현상이다."



 <발칙한 한국학>을 집필한 문화비평가 J. 스콧 버거슨(Scott Burgeson)의 말처럼, "숭례문 사라졌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한국인들은 돈이 전통을 사정없이 짓밟는 결정적 순간에는 입 다문다. 서울은 개발과 진보라는 이름 아래 암매장 당한 역사의 공동묘지, 조선궁궐 사동궁을 깔아뭉개고 주차장을 만드는 골 때리는 코리아는 고등학교다. 유럽은 전후 폐허된 옛 도시복원에 혈안인데 한국은 멀쩡한 과거유산도 재개발로 없앤다."​ 


"나는 인도네시아에 간 그 2주 동안 자기네와 다른 나 같은 사람에 대한 차별이나 적대심이나 두려움 따위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외국인'이라는 말처럼 나를 결코 화해할 수 없는 존재로 낙인찍어 시스템 바깥에 놓는 개념이 아니다. 상점 주인들에게서 초조함과 무언의 적개심을 찾아볼 수 없었고, 예외 없이 친절했다. 내 팔목의 문신은 한국에서처럼 의심과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과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내면, 나이 든 할아버지에서부터 예쁘고 젊은 아가씨에 이르기까지 다들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 앞에서 미소를 짓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정신병자나 얼간이가 아니면 아무도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길거리에서 예쁜 여자에게 미소를 지으면, 못 본 척 외면하거나 아니면 무슨 변태라도 만난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눈길을 돌려 버린다. 인도네시아 사람에게 미소는 미소일 뿐이며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주고받을 수 있는 그 무엇일 뿐이다. 그들은 미소가 사회 전체에 활력을 북돋는 이외의 어떤 불순한 의도도 개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만큼 세련된 사람들이다."





"한국에는 기본적으로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보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당신이 부자이고 비싼 차를 가졌다면, 사회는 당신을 감탄의 눈으로 쳐다본다. 당신이 빈털터리에 뚜벅뚜벅 걸어다닐 뿐이거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은 당신을 팔꿈치고 밀치고 잡아당기거나 하여 자기의 앞길을 가로막지 못하게 한다. 물론 고의는 아니다. 다만 당신은 부재하는 존재이기에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젊고 아름답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찬양하며 달콤한 말을 할 것이다. 당신이 장님 같은 장애인이면, 혹은 인생이 끝장나버린 사람이면, 사회는 당신을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버린다. 바로 당신이 유구한 동일성과 민족적 자긍심으로 가득 찬 대한민국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사이에서도 그런 차이는 존재한다. 외국인이란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백인을 연상한다. 아마도 미국인, 혹시라도 흑인 등. 백인이 아닌 사람이 떠오르기도 할까? 백인은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의 대다수를 차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좀 더 강한 멜라닌 색소를 지닌 이들보다 한층 더 '잘 보인다.' "




"한국에 온 지 10년 된 나한테 와서 똥 씹은 미소를 지으며 "한국에 온 걸 환영해!" 어쩌고 하는 소리를 씨불이면~~

 무슨 소린지 알았냐? 그런 놈들이 진짜 싫다!"



"꼭 술을 처마시는 놈들이 이해가 안 간다.

나이 처먹었으면 좀 나잇값 좀 해라.

술 좀 작작 퍼마시고 !

"그냥-술-먹어서-그랬어-지금은-어젯밤에-한-짓을-후회하고있어." 그러는 니들이 정말 싫다.

철 좀 들어라! "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몰라서 시도 때도 없이 이건지 저건지 감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인간들이 정말 싫다.~~ 많은 인간이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똥인지 된장인지 분간을 못 하는 게 이해 안가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동정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오후 내내 스타크래프트 하다가, 스타벅스에서 <보그>나 뒤적거리고, 밤 되면 소주로 떡이 되는 인간들, 자기가 누구인지,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은 꼬딱지만큼도 없는 놈들한테 보여줄 동정심 따위는 없다. 한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 나이를 먹을만큼 처먹었으면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야 할 것인지도 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자기가 누구인지, 인생에서 원하는게 뭔지 모르는 인간들 때문에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고생하는지 아냐?"

스콧 버거슨 대한민국 사용 후기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



삼태극



"LG의 전화 한 통을 바란다."
- 래리 록펠러, 2013년 11월




존슨이
케네디 대통령
앨런 덜레스
키신저 9.11 조사 위원장





"한번은 서울대 대학원생들 여러 명과 아침 일찍 해남 땅끝마을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절들은 너무 아름다웠다. 그런데 밤이 되자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어졌다. 진지한 토론은 고사하고 아예 음주여행이라도 온 듯 빙 둘러앉아 술판을 벌이기 시작했따. 그래도 기대감에 좀 더 기다렸더니, 이젠 모두 취했는지 노래를 부르며 고성방가로 떠들어 옆집에서 항의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물론 난 동료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그 인생관과 세계관을 알고 싶어 간간이 제안을 하며 토론을 유도하기도 했다.


여러 제안 가운데 이런 것도 있었다. '내 최초의 기억이나 가장 지울 수 업슨 기억을 떠올려 그 의미를 현재의 시점에서 해석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자 학생들 모두 이 즐겁고 유쾌한 자리에 왠 쌩뚱맞은 얘기냐는 표정으로 나를쳐다보았다. 내가 예일대나 하버드대에 다닐 때 어쩌다 친구들과 여행이라도 가면 서로 질문하며 토론에 몰입한다. 질문의 수준만 봐도 그 사람의 학문적 숙성의 정도가 드러난다. 결국 해남여행 며칠 동안 밤마다 계속 술과 노래로 마무리되었다. 그들이 어떤 존재들이며, 이 세계 속에 그 존재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 왜 사는지 난 전혀 알 수가 없었다. "
...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인생은 속도가 아닐 ㅏ방향이다








"나는 원어민은 아니지만 한국어로 업무를 하거나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나를 정상적인 한국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나의 한국어 실력을 칭찬한다. 감사한 일이지만 합리적이지는 않다.



내가 한국어를 잘해야 함은 너무 당연하다. 나는 한국에 6년을 살았고 수년간 한국어를 공부했다. 그런데도 나의 한국어 사용은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된다. 심지어 어떨 때는 나의 한국어 구사 능력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다 대화의 주제를 놓친 적도 있다. 외교 정책이나 고전문학 같은 중요한 대화를 할 때도 사람들은 토론 내용보다는 내 한국어 구사 능력에 관심을 맞춘다.



결과적으로 나의 한국어 솜씨를 칭찬함으로써 나의 한국어가 얼마나 엉성한지를 상기시킨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흥미를 갖기보다는 대화의 한 구성원으로 대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역사나 정치 혹은 사회와 같은 깊은 주제를 토론하면서 내가 나름의 의견을 제시하면 한국인들은 자신이 부끄럽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외국인인 내가 한국인인 자신도 모르는 한국에 대한 사실을 알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반응은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노력하는 외국인에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나는 한국을 공부하는 학자다. 한국에 대해 잘 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도 가끔 미국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아는 한국인을 만날 떄가 있다. 그런데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미국을 공부한 사람이 미국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한국인과 다르게 생긴 사람이 한국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




승정원일기
조선시대 왕은 바로 곁에 사관을 두고 있었다.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이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정리한 문서를 목판활자로 찍고,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정본을 남겨주려고 하였다. 이렇게 조선시대 500년 역사가 실록으로 남았다. 

왕에게 올릴 보고서를 정리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도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다.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2억 5,000만)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난다고 한다. 


왕들이 쓰는 일기였던 일성록(日省錄)도 정조 때부터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150여년간 계속 쓰여졌다. 선대왕들이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고민해서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다. 




1894년 겨울과 1897년 봄 사이에 네 차례에 걸쳐 조선을 답사하고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이란 저서를 낸 영국 왕립 지리학회의 이사벨라버드 비숍이 한국을 '중국의 패러디'라고 본 이래로 많은 동, 서양의 학자들은 한국을 중국을 중국의 변방으로서 취급하고 있다.

"한국의 왕은 그의 종주국인 중국의 황제에게 보내는 글 속에서, "예교로 교육받은 저의 백성들은 모두 공자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아주 정확한 열쇠가 된다. 정부, 법률, 교육, 예절, 사회적 관계, 도덕에서 중국의 영향은 압도적이다. 이 모든 측면에서 한국은 막강한 이웃 나라의 미약한 반영에 지니지 않는다. 한국의 문학, 교육 체계, 조상 숭배, 문화, 사유 양식은 매우 중국적이다."

Isabella Bird Bishop, Korea and Her Neighbours, (London: St. James Gazette, 1898).

이러한 시각은 비숍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잘 알려진 라이샤워(Edwin O. Reischauer)와 페어뱅크(John K. Fairbank)의 <동양 문화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위의 책 제10장을 '한국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문화에 대해서 할애하고 있는데, 그 부제가 '중국 문화의 일변형'으로 되어 있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 함으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통곡하려 한다.
- 신채호



한국인의 80%
윤치호




두목지는 채홍각에 새로 온 기녀 은병(銀甁)이 채워준 술을 기분 좋게 마시며 너절하게 찬사를 쏟아냈다.

“좋구나, 아주 좋아. 수심에 잠긴 듯한 가는 눈썹이 아름다워 좋고, 우수를 담은 눈동자가 고와서 좋다. 충치를 앓는 것처럼 약간 찡그리고 웃는 모습에 염기가 양양해서 또한 기쁘다. 사내 여럿 죽이겠어.”

은병은 교태 섞인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채웠다.

“하늘의 뜬구름을 잡을 수 있어도 목지님의 마음은 잡을 수 없다 하였는데, 오늘 이렇게 뵈오니 과연 풍채는 청강을 노니는 학과 같고 구술은 청산유수로군요.”

“그렇다고 만나는 여자들마다 똑같은 말을 늘어놓는 것은 아니니라. 꽃이 아름답지만 제각기 자태가 다르듯 여자 또한 그러하니까.”

“그럼 세상 여자를 전부 만나볼 생각이신가요?”

“그래야 천하에서 가장 빼어난 여자를 찾을 수 있을 것 아니냐? 얼굴을 보지 않고는 미추를 가릴 수 없고, 안아보지 않고서야 어찌 닭과 봉을 구분하겠느냐. 부지런한 벌이 좋은 꿀을 얻듯이 봉을 얻기 위해 이렇게 매일 밤 순행을 도는 것이니라.”

두목지를 모르는 양주 기녀는 없다. 동기의 수업을 받고 기루에 들어와 맨 처음 받는 손님이 두목지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부분 술을 몇 잔 마시고 얼굴을 익혀 두는 게 고작이다. 자신이 찾는 여자가 아니면 미련을 두지 않고 돌아서는 성품이니까.

“소녀에게 하룻밤 기회를 주시면 성의를 다해 모시겠사옵니다. 다시는 금두견(琴杜鵑)을 찾지 않으시도록…!”

“두견은 양주 제일의 명기인데 자신 있느냐?”

“모란이 아름답지만 꽃의 전부는 아니옵니다.”

은병은 적극적으로 몸을 던져왔다. 두목지는 명장이 악기를 다루듯 은병의 성애를 자극했다. 구렁이가 담을 넘듯 발끝에서 허벅지 사이를 부드럽게 쓰다듬자 은병은 단내를 풍기며 엉덩이를 들썩였다. 옥구슬을 다루듯 젖가슴을 더듬으며 젖꼭지를 살짝 비틀자 다리를 비비꼬면서 신음을 더했다. 은병은 거침없이 타오르는 자신의 육체를 사내에게 아낌없이 내맡기고 흐르는 시간을 한탄했다.

살과 살이 맞닿는 소리가 파도가 바위에 부서지는 것처럼 찰싹거린다. 억제하기엔 너무 뜨겁게 타오른 갈애의 욕망을 두 사람은 원색적인 행위로 이어갔다. 두목지는 날이 밝아서야 은병의 처소를 나섰다.

“어젯밤은 참으로 즐거웠느니라.”

두목지를 배웅하는 은병의 눈에는 진한 두려움이 고였다. 이름난 풍류객인 두목지가 오늘을 끝으로 혹여 발길을 끊을까 걱정이 앞선다.

“부디 소녀를 부족하다 외면하지 마옵소서.”

“자고로 꽃을 탓하는 나비는 없느니라.”

그 한마디를 남기고 두목지는 은병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괜스레 은병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은 긴 이별을 예감했기 때문일런가?

양주 명기인 금두견은 곱게 단장하고 얼큰하게 취해 비틀거리는 두목지를 반갑게 맞았다. 두목지가 은병을 찾아갔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애간장을 태우며 초조해했던가?

“저를 다시 찾으실 줄은 몰랐사옵니다. 은병의 자태가 달덩이처럼 곱다는 소문을 듣고 이제 영영 이 두견을 잊을 줄 알았사온데.”

두목지는 두견의 다리를 베고 방바닥에 누웠다.

“지금은 네가 천하제일이니 떠날 수가 없구나.”

“그 말씀 사실인가요?”

“지금까지는 그렇다. 내일은 달라질 수도 있지만…!”

“청루의 기녀들이 당신을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듣기 좋은 말을 하지는 않겠지.”

“박행(薄倖)이라 하옵니다.”

“하하, 박행이라? 그렇지. 나는 천하에 둘도 없는 박정한 사내니까.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그대의 구순주(口脣酒)로 거나하게 취해보고 싶구나.”

구순주란 여자가 자기 입으로 남자 입에 넣어 주는 술을 말한다. 두견은 능숙하게 두목지와 입술을 맞대고 머금은 술을 입안 가득 넣어주었다.

“역시 바로 이 맛이야. 네 입술이 꿀보다 달아.”

구순주를 두어 잔 마신 두목지는 두견의 치마를 허벅지까지 걷어올렸다. 백옥처럼 하얀 허벅지의 연한 살결을 잘근잘근 깨물며 작은 발을 감싸고 있는 발싸개를 벗겨냈다. 어린아이 발처럼 작고 고운 두견의 발이 드러났다.

두목지는 특히 두견의 전족을 좋아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아도 될 만큼 작은 두견의 두 발을 어깨에 올리게 하고 두목지는 그녀의 하얀 허벅지에 술을 부었다. 술이 허벅지를 타고 늘씬하게 뻗은 종아리를 거쳐 발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면 두목지는 그 술을 핥아 마셨다.

“은병의 가장 큰 단점은 발이 크다는 것이다. 만약 그녀의 발이 반 치만 작았어도 아마 양주 제일의 명기는 은병이라고 말해줬을 텐데.”

두목지는 앙증맞게 작은 두견의 발바닥을 핥고 발가락을 깨물었다. ‘옥방비결’에 의하면 여인의 발끝을 아이가 젖을 빨 듯 빠는 것을 항(伉)이라 하고, 발 전체를 핥는 것을 지(祗)라 했으며, 가볍게 깨무는 것을 치(齒)라 하고, 발의 앞부분을 세게 무는 것을 교(咬)라 했다. 두목지는 병적일 정도로 두견의 작은 발에 매달렸다. 실제로 발바닥의 용천혈은 최고의 성감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두목지는 나긋나긋하게 안긴 두견을 끌어안고 쉼없이 뜨거운 정열을 쏟아내며 한껏 치켜세웠다.

“내가 원하는 천하제일미녀는 역시 너로다. 이제 다시는 여자를 찾아 떠돌지 않고 너와 정분을 쌓는 것을 인생 최고의 낙으로 삼겠다. 내가 원하는 천하제일 미녀는 금두견으로 정해졌으니까.”

두견은 두목지의 말에 입술을 삐쭉였다.

“당신의 병이 그리 쉽게 나을까요? 낙양에 자운(紫雲)이라는 미녀가 있다는데 그녀를 보면 마음이 또 달라지겠죠. 그렇지 않다면 두목지가 아니니까요.”

두견의 몸에 뜨거운 욕망을 쏟아부으며 두목지는 자운이라는 미녀를 꼭 만나보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두목지와 자운의 만남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이미 기녀 생활을 그만두고 이원(李愿)의 가기(家妓)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녕 두견을 능가하는 미인은 천하에 없는가?’

두목지는 미인이 없음을 한탄하며 무의미한 삶에 몸을 내맡기고 운명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갔다.

그로부터 3년 후, 두목지는 호주(湖州)에 사는 친구를 방문한 자리에서 뜻하지 않게 절색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나이가 너무 어렸다. 불과 열 살이었던 것이다.

‘이 아이가 자라면 틀림없이 천하제일의 미녀가 되겠구나. 그렇다면 지금 단단히 약조를 받아 놓아야겠다.’

두목지는 소녀의 어머니를 불러 혼약의 선물을 듬뿍 안겨주고 굳게 약조를 했다.

“10년이 지나기 전에 꼭 이곳 호주자사로 부임해 오리다.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시오. 만약 10년이 지나도 내가 오지 않으면 다른 곳에 출가시켜도 되오.”

두목지는 삶의 생기를 되찾았다. 하루하루 성장하고 있을 미녀를 생각하면 흥이 절로 생겼다. 두견과의 사랑도 자연 시들해졌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자 두목지는 임지로 호주자사를 강력하게 원한다는 상주를 올렸다. 그러나 뜻은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원이 생겨야 취임을 할 수 있는 데다 그나마 결원이 됐을 때는 이미 다른 곳에 부임해 있었기 때문이다.

두목지가 호주자사로 부임하게 된 것은 14년이 지나 나이 48살이 되어서였다. 두목지는 설레는 마음으로 소녀를 찾았지만 이미 그녀는 남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10년을 약속하셨지요? 일 년을 더 기다렸다가 11년째에 할 수 없이 혼인을 시켰습죠. 아주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일년에 아이 하나씩을 낳다보니 벌써 세 아이의 어미가 되었습니다.”

두목지는 한숨을 술잔에 담아 마시며 지필묵을 가져오도록 시켜 시를 한 수 지었다. 그때의 심정을 노래한 것이 ‘탄화(歎花)’라는 시다.

“스스로 원망하네, 꽃을 찾은들 이미 늦은 것을.

언젠가 보았을 때는 아직 안 피었더니만,

이젠 바람이 스쳐가 꽃은 떨어져 흩어지고,

녹음 우거진 가지에는 열매만 가득하구나.”


  [작가 이상남의 奇人野史]버드나무 같은 사람, 두목지

대가족을 거느리고 빈궁과 싸우면서 국사에 마음을 바친 그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했던 것은 미인을 얻으려는 갈망 한 가지였다.
제시해주신 글은 소설가 이상남 님이 쓴 『기인야사』의 한 대목으로 보입니다. 이 내용은 역사적 사실(Fact)이라기보다는 두목(杜牧)이라는 인물의 풍류와 시적 이미지, 그리고 후대에 덧씌워진 '탐미주의자'라는 캐릭터를 극대화한 문학적 창작(Fiction)입니다.









얼마 전까지 나는 1년에 150회 이상 골프를 쳤다. 거의 이틀에 한 번 꼴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한국 골프장 회원권이 없다. 회원권도 없이 이틀에 한 번씩 골프를 친다고 하면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웃기는 일이지만 회원권을 몇 개씩이나 가진 일본 기업체의 한국 주재원들이 나한테 골프장 부킹 을 부탁할 정도다.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내로라 하는 한국의 기업체 임원들도 주말이나 연휴 때처럼 골프장이 붐벼서 부킹이 잘 되지 않을 때에는 어김없이 나한테 부탁을 해 온다. 왜냐하면 골프장 사장들과 친한 터라 내가 부탁하면 어지간해서는 거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워낙 골프를 좋아해서 자주 치다 보니 아마추어치고는 제법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실력을 갖추게 되어 골프장 직원들 눈에 띄었는지 모르겠다. 또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도 특별 대우를 받는 이유인 것 같다.

나는 또 한국의 연예인, 특히 영화 배우를 많이 알고 지낸다. 물론 지금은 나이 들어 ‘원로’ 취급을 받고 활동이 뜸한 친구들이지만,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배우들하고 친하게 어울린다. 덕분에 영화인들의 연말 송년회나 대종상 시상식 같은 중요한 행사에도 초대받아 참석한다.

연예계 말고 경찰 등 정보 계통에도 친구가 많다. 그 때문에 난처한 부탁을 받는 적도 있다. 교통사고를 일으켰으니 해결해 달라며 전화를 걸어 오는 것이다. 다른 부탁이라면 몰라도 이것만은 절대로 들어 주지 않는다. 들어 주려야 들어 줄 수가 없다. 아무리 다급한 상황이라 해도 일본 사람인 내가 교통사고 낸 친구를 돕는답시고 경찰서에 전화하면, 부탁할 데가 그렇게 없어서 일본 사람한테 부탁했냐며 오히려 내 친구를 우습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좋아하는 골프도 실컷 치고, 유명하고 능력 있는 친구도 많고······내가 한국에서 분에 넘치는 호강을 누리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것이 내가 한국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내 아버지는 운명하기 직전 “부산에 가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 딱히 유언이라기보다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혼잣말처럼, 신음처럼 중얼거린 말씀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말씀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도대체 부산에 뭐가 있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일본 중의원의 안도 가쿠 의원의 비서로 들어갔다. 그분은 한일회담 당시 한일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는데 이때부터 한국과 나의 인연이 시작된 셈이다. 당시 한국을 몇 차례 오가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도 부산에는 못 가 보았다.

비서관 생활을 하다가 나는 정치계에 뛰어들기로 마음먹고 1968년부터 세 번이나 중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번번이 떨어지고 말았다. 딱 세 번 떨어지고 나서 내 능력의 한계를 절감하고 깨끗이 미련을 접어 버렸다.

그 무렵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남긴 말씀과 함께. 그래서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이 무작정 한국에 와서 부산으로 갔다. 아버지가 졸업한 부산상고 교정에도 가 보았다. 거기에 아버지의 흔적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때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무언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지금까지 나는 일본의 자금과 기술을 들여와 한국의 기간산업을 일으키는 일에 관련을 맺어 오고 있다.

한국에서 내 직업은 ‘로비스트’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에는 특히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일본의 쓰레기 소각장 기술과 자본을 도입할 때 양쪽 입장을 조율하는 일을 많이 한다.

흔히 ‘로비스트’ 하면 뒷돈, 리베이트, 부정, 뇌물 따위의 부정적인 측면을 떠올린다. 많은 사람이 내가 한국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벌 거라고 짐작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한국땅에 붙어 있을 이유가 있겠는가 하면서.

한국 사람의 부탁을 받고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를 오가며 일을 추진할 때 필요한 경비는 물론 부탁한 사람에게서 받아 쓴다. 나는 비행기를 탈 때 가급적 1등석을 이용한다. 밥을 먹을 때에도 고급 음식점을 즐겨 찾는다. 차라리 굶으면 굶었지 대충 배를 채우지는 않겠다는 것이 내 신념이다. 이틀 정도 굶는 일은 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경비로 받아 쓰는 돈이 많아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한국 사람에게서 부탁을 받아 일해 준 대가로 돈을 받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아니, 딱 한 번 있다. 이 책을 쓰기로 하면서 출판사에서 받은 계약금, 그것이 내가 26년 동안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한 대가로 받은 돈의 전부다.

KBS「일요 스페셜」취재 팀이 나를 밀착 취재한 끝에 ‘나밖에 모르는 한국인’ 이라는 제목으로 방송이 나간 뒤였다. 방송국에서 취재에 협조해 준 대가로 사례를 하겠다며 은행 계좌번호를 가르쳐 달라는 연락이 왔다. 얼마냐고 했더니 10만 원을 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오히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 주었으니 내가 사례를 해야 할 판이라고 극구 사양했다. 하지만 방송국에서는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돈을 꼭 주어야 한다고 난처해 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정 그렇다면 돈을 보내세요. 대신 그 10만 원에다 내가 지금 수중에 가지고 있는 20만 원을 보태서 30만 원을 도로 보낼 테니까 고아원이든 양로원이든 꼭 필요한 곳에 기부해 주세요.”

10만 원이라는 액수가 적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세상에는 내가 수고해서 어떤 일을 했을 때 대가를 받아야 할 일이 있고 받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나흘씩이나 취재를 당한 것이 나로서는 여간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내 돈을 써서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공중파 방송에서, 그것도 일요일 황금 시간대에 내보내 주었으니 사례를 받아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뿐이다.

이런 이야기까지 해도 내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붙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의구심을 풀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묻는다.

“대단히 죄송하지만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물어 보아도 된다. 대답할 수 있으니까. 내가 가진 재산은 제로다. 지금 살고 있는 성남시 아파트의 전세 보증금도 엄밀히 말하자면 내 돈이 아니다. 그 돈이 누구 것인지 까지 밝힐 계제는 아니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재산을 굳이 따지자면 몇 년 전에 한국을 아주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본에 마련해 둔 전셋집 한 칸, 그 집의 보증금이 내 재산의 전부다.

글쎄, 이런 이야기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돈이라는 걸 쟁여 놓고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돈이 있다고 무덤까지 가지고 갈 것도 아니고, 유산을 물려줄 사람도 없다. 일본은 전처와의 사이에 자식이 있기는 하지만 유산을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다.

내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독실한 불교 신자던 아버지는 살아 생전에 기회 있을 때마다 장남인 나한테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아무런 불만이 없었고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물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재산을 전부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조금 서운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어차피 아버지 돈은 아버지 돈이니까 내가 서운한 감정을 느낀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사람은 노후에 대비해서 조금은 비축해 두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한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내 나이 예순넷, 이미 살아야 할 나이가 훨씬 지났다. 새삼스럽게 노후니 뭐니 이야기하는 것이 우습다.

내가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 기자 생활에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당신이 내년에 세상을 떠날 테니까 집으로 들어오라는 것이었다. 특별히 아픈 데도 없고 정정하기만 한 아버지가 내년에 돌아가신다니, 나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프로 야구 담당 기자로 활동하며 매일같이 일류 스타들과 어울려 지내던 나는 그 생활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을 끝내 뿌리칠 수 없어 신문사에 사표를 던지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로부터 석 달 후 아버지는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났다. 향년 60세였다.

그날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내 할아버지는 59세에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60세에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나는 61세에 죽는다. 아니, 61세에 죽어야 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그 후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나는 예순하나가 정해진 내 수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래서 50대 후반부터는 몇 되지 않는 내 인생의 인연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예순하나를 넘기고 예순두 번째 생일을 맞이하게 된 순간 나는 크게 실망했다. 그리고 당혹스러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가셨는데 왜 나는 가지 못하는 걸까.

그런데 그때부터 몸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사실을 처음 깨달은 것은 골프장에서였다. 힘찬 드라이브 샷을 날릴 때의 짜릿한 쾌감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공이 떨어졌을 거라고 생각한 곳에 가서 아무리 찾아봐도 공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헤맨 끝에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내가 친 공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뭐 그럴 수도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번번이 내가 의도한 곳으로 공이 날아가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평소 핸디 3으로 공인 받던 골프 실력이었는데, 규정 타수에서 무려 20타 가까이 더 쳐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무래도 시력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 안경을 맞추러 갔다. 시력검사를 하던 안경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한쪽 눈이 안 보이는 것 아닙니까?”

그제서야 나는 깜짝 놀라서 안과를 찾아갔다. 검사 결과 왼쪽 눈이 실명 직전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백내장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걱정하지 않았다. 요즈음에는 의학이 발달해서 백내장 정도는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일본에 있는 유명한 안과를 찾아가 레이저 수술까지 받았는데도 백내장 중에서도 특별한 경우여서 근본적인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까짓 것 어차피 눈은 두 개니까 한쪽 눈이 안 보인다 한들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사는 나머지 한쪽 눈도 언제 나빠질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어쨌거나 아직까지 오른쪽 눈은 멀쩡하니 다행이다.

눈이 말썽을 일으킨 뒤부터 팔, 다리, 어깨, 허리······내 몸 어느 한구석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다. 몇 달 사이에 20킬로그램 가까이 체중이 빠지고 한밤중에 잠을 깰 정도로 통증이 심한데도 정작 검사를 받아 보면 의사들은 하나같이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아니, 나는 아파서 죽을 지경인데 이상이 없다고 하면 어떡합니까?”

“몇 십 년 동안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도 많은데 그 정도 아픈 것 가지고 뭘 그러세요?”

최첨단 의료 시설을 갖춘 병원의 내로라 하는 의사들과 그런 싱강이를  벌이는 것도 지칠 무렵이었다. 누군가 서양 의학으로 치료되지 않을 병을 동양 의학으로 고칠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그때부터 중국, 일본, 한국에서 용하다는 기공사, 한의사, 물리치료사 들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확실히 동양 의학이 서양 의학보다 효과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그 사람들을 찾아가 치료를 받으면 그 순간만은 통증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뿐으로 또다시 통증에 시달려야 했다.

내가 여기저기 아프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저마다 몸에 좋다는 보약을 지어서 찾아왔다. 성의를 무시할 수도 없는데다 정말로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는 한 가닥 기대를 품고 나는 그 약을 남김 없이 먹어 치웠다. 그랬더니 이제는 당뇨가 생겨서 음식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결국 지금은 포기하고 아프면 아픈 대로 참고 산다.

나는 아파트 10층에 산다. 매일 저녁 불 꺼진 아파트를 찾아 들어가면서 한밤중에 온몸을 파고드는 고통을 참지 못해 벌떡벌떡 몸을 일으키면서 저 베란다 문으로 곧장 걸어 나가면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을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이 책을 쓰는 것은 나름대로 계산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한국 사람들이 귀에 거슬리는 소리 좀 듣는다고 설마 나를 때려 죽이기야 하겠나 하는 생각,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로 누군가에게 맞아 죽기라도 하면 차라리 좋겠다는 생각·

·····.

이 책을 썼다는 이유로 불상사를 당한다면 어느 정도는 그런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면 나에게는 어떤 미련도 후회도 없다.

- 이케하라 마모루
한국 한국인 비판(1999)


백설이 만건곤할 때 제 독야청청하리라
- 성삼문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의 의미: 수양 대군과 그 세력이 왕권을 찬탈하려는 상황에 항거하는 굳은 의지와 절개를 지키



홀로그램 상용화 안된 이유


슬램덩크
세상의 끝


유유백서
숙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디지몬 어드벤쳐
butterfly
power up


포켓몬스터
자 이제 시작이야

우리는 모두 친구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 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 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1989>


마쿠라노소시

한자와 나오키


대인론 토정 이지함


백 투더 퓨처3


레미오디스
이와이 슌지 
천재의 결정체



타인은 지옥이다
- 사르트르


고독 (ALONE)
- W. H. 오든 (W. H. Auden)

I
연인들은 저마다의 이론을 가지고 있다.
내 사랑과 함께 있을 때의 아픔과,
홀로 남겨졌을 때의 아픔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하여.

II
꿈결에는 분명 감각을 자극하던
그 생생한 살과 뼈(사랑하는 이)가, 어째서 깨어나고 나면
그저 자기 자신의 환영(시뮬라크르)처럼 보이고 마는지에 대하여.

III
나르키소스는 미지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는 호수 속 자신의 이미지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스스로가 홀로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한은.

IV
그러나 아이와 폭포, 불꽃과 돌멩이는
언제나 제멋대로 장난을 치며,
이 우주를 당연하게 자신들의 것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V
프루스트 같은 노인들은 언제나
사랑을 주관적인 가짜(환상)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깊은 고독을 느낀다.

VI
우리가 어떤 관점을 취하든 간에, 이것만은 증명되어야 한다.
어째서 모든 연인들이 그토록 격렬히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지.
어쩌면, 사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동행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실패자입니다." 
- 이어령




물질적인 성공의 비법은 욕망


물질적인 성공의 비법은 욕망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똑바로 알고, 열렬히 원하면서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만 가지면 된다. 성공의 힘은 열정과 믿음, 욕망에서 나온다. 성공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저절로 머리에 떠오른다. 또한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도 생긴다. 스스로 자신을 믿지 않는 한 세상은 당신을 믿어주지 않는다.


더 큰 역경이 닥쳐도 인내와 끈기를 갖고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만 버리지 않는다면 성공은 반드시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니다. 그보다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것을 얼마나 열렬히 원하는가,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얼마나 강렬한가이다.

...


목표와 명상

 

명상은 물을 끓이는 것과 같고, 목표를 세우는 것은 끓는 물에 계란을 넣어 삶는 것과 같다. 일단 명상에 익숙해지면 목표 세우기는 금세 이루어진다. 마음먹기에 따라서 삶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목표만 세우면 삶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목표를 정하면 삶이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알아보도록 하자. 이것은 내가 오늘 겪은 일이다. 어제 저녁 나는 일리노이에서 강연을 마치고 오늘 오전 샌프란시스코의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다. 하룻밤 집을 떠나 있다보니 지난 몇 주간 집필에 몰두하느라고 아내와 외식 한번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를 위해 뭔가 특별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아내를 위해 특별한 일을 한다는 목표를 세운 나는 이것저것 궁리를 하면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아내가 몇 달 전부터 보고 싶어하던 어떤 공연의 부기획자가 나란히 앉게 되었다. 그 공연은 뉴욕에서 열리고 있었는데, 부기획자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공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것이 내 질문에 대한 대답임을 깨달았다. 게다가 이 부기획자는 우리 부부를 위해 좋은 자리를 잡아주겠다고까지 말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내용을 소재로 한 게임기의 출시를 홍보하기 위해 뉴욕에 가게되었다. 나는 이 게임기의 홍보안을 알리기 위해 게임기 제작사인 마텔의 간부들을 만나려고 몇 달간 계속 연락을 했다. 그런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좀처럼 그들을 만날 수 없었다. 뉴욕에 머무는 동안 예정되어 있던 인터뷰 한 건이 취소되었다. 그래서 여유시간이 생기자 나는 장난감 박람회에 들르기로 했다. 한 20분 정도 박람회를 둘러보던 중에 우연히 마텔사 사장과 간부들을 만나게 되었다.게다가 대형 장난감 매장의 바이어까지 자리를 함께하게 되자 나는 그들에게 내가 생각해왔던 게임기의 마케팅 안을 이야기했다. 그 시간에 그 많은 사람들을 한 잘에 모두 모으기란 사실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만나야겠다는 목표를 세워두었더니 그 목표가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아내는 이 일에 대해 '신의 조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망하거나 좌절할 때마다 아내는 지금은 조정기간일 뿐이며, 일어나야 할 일이라면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뉴욕에 머무는 동안 인터뷰 하나가 취소되지 않았다면 마텔 간부들과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취소된 인터뷰보다는 그들과의 만남이 내게는 훨씬 의미있는 일이 되었다.

 

마텔 간부들을 만난 그 날 나는 나름대로의 목표를 세워두고 있었다. 나는 뉴욕에서의 홍보활동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장난감 박람회에 온 바이어들이 크리스마스 시즌에 내 게임기를 많이 주문하기를 바랐다. 더불어 대단한 일을 했다고 칭찬받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바로 그 날, 예전에 세웠던 목표와 그날 세웠던 목표들이 내 기대치 이상으로 이루어졌다.

 

지속적으로 삶의 목표를 세우기만 하면 이런 일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우리가 우연한 기회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우연히 찾아오지 않는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할 때 우연한 기회는 우리를 찾아온다.

 

목표를 세우면 그것이 이루어질 때마다 자신감이 생긴다. 목표를 이루는 비법은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데 있다. 처음에는 할 수 있고 또 확실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목표로 했던 일들이 이루어지면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은 점점 커진다. 매일 아침 그날 하루의 목표를 세우다 보면 삶은 작은 기적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자기가 직접 나서지 않아도 모든 일이 제자리를 찾아가기도 하고, 나를 대하는 다른 사람들의 태도가 하룻밤 사이에 변하기도 한다.
...


이상형 찾기

아무리 해도 적당한 상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뜻이다. 공부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스승은 언제든지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질문을 하면 답이 주어지게 마련이다. 이성과 사귈 마음의 준비를 하고 느긋하게 데이트를 즐기다 보면 딱 맞는 상대가 언제든지 나타난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으로 상대를 찾다 보면 자신에게 딱 맞는 상대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지금까지의 삶을 그대로 열심히 살아가노라면, 그 모습에 이끌려 자신에게 딱 맞는 상대가 당신을 찾아오게 될 것이다.
...


 

바라지 않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원치 않는 일을 거부하는 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 강력하게 거부할수록 싫어하는 사람이나 상황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 된다.

 

'싫다'라는 생각에 온 신경이 집중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가져올 힘이 약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혼잡한 교통상황이 싫을수록 관심은 그 상황에 더욱 집중되고, 무의식적으로 가장 혼잡하고 더딘 차선을 선택하게 된다. 상점에 갔을 때도 급할 때일수록 가장 더딘 계산대 앞에 줄을 서게 된다. 이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싫어하는 일일수록 일어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기다리기 싫다고 생각할수록 더 오래 기다려야 할 뿐이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에 연인관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적이 있다면 다시는 상처받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을 대하게 된다. 그런데 마음의 상처를 거부하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욱 상처받게 된다. 외로움이 싫다고 생각할수록 삶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나쁜 일을 겪고 나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데, 한번 겪은 나쁜 일을 계속 생각하면서 그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원하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 다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싫어하는 일은 더 자주 일어난다. 자신이 언하는 것에만 신경쓰면 그럴수록 원하는 것이 찾아오게 된다.

 

생각은 모든 일의 원동력이다. 이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인생에서 이루어내는 일들 중 90%가 생각에서 비롯된다.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은 나머지 10%에 불과하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데도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우선 자신의 솔직한 생각이 어떤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경우 마음 한구석에서 아직도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무기력하고 아무 희망도 없다고 생각되는 때일수록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내 안에 믿음과 열정을 키워가야 한다. 자신을 믿으면 무슨 힘을 하든 힘과 자신감이 생긴다.


- 존 그레이 <간절히 원하고 뜨겁게 행동하라> 中






목표를 정하는 것은 음식을 배달앱에서 주문하는 것과 같다.
주문한 것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줄 알아야.
- 나탐



첫눈에 널 알아보게 됐어 / 서롤 불러 왔던 것처럼
내 혈관 속 DNA가 말해 줘 / 내가 찾아 헤매던 너라는 걸
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 /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
내게 주어진 운명의 증거 / 너는 내 꿈의 출처
Take it take it / 너에게 내민 내 손은 정해진 숙명
걱정하지 마 love /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
우린 완전 달라 baby/ 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
우주가 생긴 그날부터 계속 / 무한의 세기를 넘어서 계속
우린 전생에도 아마 다음 생에도 / 영원히 함께니까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 / 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 / DNA

I want it this love I want it real love / 난 너에게만 집중해
좀 더 세게 날 이끄네 / 태초의 DNA가 널 원하는데
이건 필연이야 I love us / 우리만이 true lovers
그녀를 볼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라 / 신기하게 자꾸만 숨이 멎는 게 참 이상해 설마
이런 게 말로만 듣던 사랑이란 감정일까 / 애초부터 내 심장은 널 향해 뛰니까
걱정하지 마 love /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
우린 완전 달라 baby / 운명을 찾아낸 둘이니까
- 방탄소년단






그건 더러운 거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알파카

 

 

1

 

가끔씩 들어가 BL 만화를 보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잘은 모르지만 불법 사이트인 것 같기도 했다. 자주 들어가는 건 아니니까 뭐 괜찮겠지 하고 본다. 어떤 날은 너무 예쁘장한 등장인물이 식이 안 돼서 몰입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 어떤 날은 고맙게도 내가 딱 좋아하는 얼굴과 체형과 성격의 캐릭터가 나와 섹시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당연히 모든 게이가 BL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당연히 모든 BL을 좋아하는 어떤 게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게이가 BL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후죠시’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BL을 만들어낸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잘 모른다. 그걸 꼭 알아야 하나? 게이들 보라고 만든 게 아니라는 거지.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가끔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역시 BL을 보는 건 그냥 재밌다.

트위터에서 ‘후죠시’로 보이는 사람들을 한 번 본 적이 있다. 게이들이 그 사람들을 욕하고 있었다. 그들이 게이를 만화 속의 존재로만 생각한다고 했다. 실제 게이가 어떤 사람들인지 전혀 모른다고 했다. 심지어는 게이들을 대상화한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어? 자세히는 몰랐지만 트위터에 항상 있는 싸움 같았다. ‘후죠시’들이 욕을 너무 많이 먹어서 BL을 더이상 안 그리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했지만 화를 내고 있는 게이들이 볼까 봐 진짜로 말하지는 않았다.

어떤 게이는 BL에서 바텀이 센조이를 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BL이 그런 점에서 게이에 대한 환상을 심는다고 했다. 어떤 격렬한 ‘후죠시’들은 오히려 거꾸로 말했다. 우리 ‘자캐’들은 당신네 게이들처럼 더럽게 센조이 같은 거 안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이런 게 재밌다. 나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나와 하는 말은 똑같을 때가 있다. 하는 말은 같은데 하는 생각이 반대인 게 재밌다. 맞아, BL의 등장인물들은 게이들처럼 센조이를 하지는 않는다. 사실 나는 그래서 BL을 본다. 나는 ‘수’가 섹스를 하기 전에 잠깐! 하면서 화장실에 다녀온다거나, 섹스 도중에 혹시 똥이 묻어나왔는지 물어본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BL이 보고 싶은 이유는 BL 속 섹스가 현실에 있는 섹스를 보여주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BL은 BL 속 섹스를 현실에 있는 섹스로 착각하게 만든다. 그것이 BL의 매력이다. 어떤 게이들의 말처럼 BL에 센조이를 하는 장면이 들어간다면, 나는 그러면 더 이상 BL을 안보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다.

 

2

 

나는 애널섹스를 한다. 애널섹스는 더럽다. 그걸 처음 알게 된 건 중학교 때였다. 몇 학년 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같은 반 남자애랑 같이 내가 살던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나는 여학생들과 같이 놀던 학생이었고, 그 친구는 다른 여학생들이 항상 지켜보던 학생이었다.

“야, 근데 남자들끼리도 빠구리치고 칸다드라?”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그 친구는 그냥 그렇게 얘기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당황했고 반사적으로 당황하지 않은 척하려 노력했다. 나도 알고 있었다,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남자들만 나와서 남자들끼리 빠구리치는 야동을 봤다. 야동을 보는 건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야동을 보는 건 친구들 사이에서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침착하게 말하는 게 중요했다. 나는 어디서 들은 적 있는 듯 대답했다.

“맞다~ 그거 똥구멍에다 집어넣는다든데~?”

“헐~ 맞나? 으… 드릅다….”

그 친구는 정말 눈앞에 똥구멍이 있는 것처럼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 똥구멍은 드릅다. 그러니까 똥구멍에 고추를 집어넣는 건 더러운 짓이다. 아아, 그제야 나는 깨달았던 것 같다. 그거 더러운 거야, 사춘기 때 어쩌다 친구에게 일종의 배변 훈련을 받았던 거다. 야동을 볼 땐 왜 그게 더럽다는 걸 몰랐지? 똥이 안 나와서?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기가 기저귀에 똥을 싸면 저절로 울게 되듯이, 그건 더러운 거구나, 저절로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나는 그 이후로도 똥구멍에 고추를 집어넣는 야동은 계속 봤다. 언제까지 봤냐면 지금도 보고 있다. 더럽다는 그걸 보면서 흥분하기도 한다. 더러운데, 어떻게 흥분하는 거지? 왜 자꾸 보고 싶은 거지? 왜지? 친구에게 배변 훈련을 받았던 그때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드릅다는 친구의 말에 나도 따라서, 맞아 드릅다, 했던 것 같다.

 

3

 

2년 전 어느 날 밤에 나는 애널섹스를 같이 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더럽다는 걸 알면서도 게이 야동을 10년쯤 봤을 때였다. 더러우니까 그만 볼 만도 한데, 오히려 나는 이걸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얼마나 급하게 하고 싶었는지,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는 늦은 시간에 택시를 잡아타고 신림동 어느 오르막길 중간쯤에 있는 집으로 갔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현관까지 나와서, 괜찮으세요? 하고 물었다. 내 얼굴을 보고도 섹스할 수 있겠니, 그런 물음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고, 네 괜찮아요, 했다. 나는 섹스를 해야만 했다.

번개는 어렵다. 지금 옷을 벗으면 되나? 옷은 벗어서 어디 두지? 씻으러 들어간 사이에 지갑 같은 걸 훔쳐가면 어떡하지? 아니 그보다, 센조이가 너무 어려웠다. 아무리 물을 넣고 빼고 해봐도 계속해서 더러운 똥물이 끝없이 나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게. 대장이 어떻게 생겼더라, 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도 떠올려본다. 이 정도 했으면 깨끗한 물이 나올 때도 됐는데, 내 똥구멍인데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웃기다. 아니, 똥구멍에서 똥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니 정말 웃기다.

적당히 하고 나오니 침대 쪽으로 오라고 했다. 불을 끄고 해도 되겠냐고 묻길래 괜찮다고 했다. 컴퓨터 모니터 불빛만 비치는 침대에서, 나는 정말이지 섹스 당했다. 그 남자의 고추는 내가 그때까지 본 사람 중에서 제일 굵었다. 그 굵은 게 입속으로 사정없이 들어왔다. 뒤로 넣을 때도 무자비했다. 똥구멍이 찢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프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집어넣더니, 엄청난 강도의 피스톤질이 곧바로 시작되었다. 말해준 적은 없지만, 아무래도 이렇게 거칠게 하는 걸 즐기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박히면서 좋다기보다는 아프다는 느낌이 더 컸다. 섹스인지 폭력인지 모를 격렬한 움직임이 오분 정도 계속되었다. 그 남자는 사정을 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어, 하는 작은 소리를 내더니 움직임을 멈췄다. 몇 초간 가만히 있었는데, 나한테는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무슨 냄새를 맡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이거… 안 되겠는데….”

“헉, 많이 샜나요…?”

다른 말 하지 않고, 그냥 씻으러 가라고 했던 것 같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불을 켜니 거울 앞에 내가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는 죽고 싶기도 했고 내가 우습기도 했다. 목구멍과 똥구멍은 물이 닿을 때마다 아팠다. 엄청나게 쓸려서 두 군데 모두에서 피가 났다. 피가 나지 않던 곳에서 피가 나서 너무 아팠고, 똥물을 흘려버린 내가 너무 부끄러웠고, 똥물을 흘렸다고 섹스 중 버려진 내가 불쌍했다.

씻고 나오니 불은 켜져 있었다. 남자는 옷을 입은 채로, 세탁기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마 침대에 깔려있던 수건을 세탁기에 넣었을 것이다. 똥물로 더러워진 수건. 남자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있었다. 나는 그 표정 앞에서 벗은 채로 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담배의 불을 비벼끄며 말했다.

“가세요….”

나는 아직 옷을 다 입지도 못했다. 팬티를 입고 바지를 올리던 참이었던 것 같다. 몸을 빨리 움직여 옷을 마저 입었다. 이 순간에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러고 나는 집을 빠져나왔다.

 

4

 

나중에 친해지게 된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었다. 친구들은 나를 위로해줬다. 그 남자가 개새끼네. 쫓아내는 건 너무하지 않니? 보통은 씻고 다시 하거나, 화장실로 가서 마무리하거나 하는데. 나름의 위로가 되었다. 그 남자가 개새끼네, 나도 따라 욕해봤다. 그리고 나는 그날 도망쳐 나오며 느꼈던 부끄러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그날 굳은 표정의 그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했다. 똥이 그렇게 싫어? 똥이 그렇게 무서워? 똥이 그렇게 더러워? 그런데 왜 다들 그렇게 똥구멍에 고추를 넣고 싶어 해?

심한 일을 당했다고 할 수도 있었다. 이쯤 되면, 이제 싫다 싫어, 하고 그만둘 만도 하다. 그런데 나는 애널섹스를 그만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센조이를 더 잘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고 연습을 해보고 하게 된 거다. 이해가 안 되네 이해가 안돼. 그래도 장담하건대, 똥물에 기겁하고 나를 쫓아냈던 그 남자도 아마 나처럼 계속 애널섹스를 하고 있을 거다. 다들 그렇게 나만큼이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아예 애널섹스를 안 한다고 선언하는 게이들도 있지 않아? 근데 나는 안 하겠다는 말은 절대 못 하겠어. 이래서야 성 중독자라는 낙인이 붙어도 할 말이 없다.

아직도 애널섹스를 시작하기 전에 내 똥구멍에 물을 넣었다 뺐다 하고 있자면, 아 그걸 뭐라고 하더라, 맞다 디그니티, 디그니티가 땅에 떨어져 부서지는 느낌이 든다. 아니, 원래 디그니티 라는 게 있었나? 평소엔 없던 디그니티가 센조이 할 때 튀어나와서 스스로 몸을 던지는 건가? 어디서 디그니티가 오는지 알 수는 없지만, 더러운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지는 않다. 이제는 센조이를 하는 게 많이 익숙해져서, 섹스 중에 똥물이 새어 나오는 일은 거의 없다. 그래도 아직 섹스 중에 탑이 이유 없이 움직임을 멈추면 소스라치게 놀라 물어본다. 뭐 나왔어? 아니라는 말을 들어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냄새를 맡아 확인할 때까지 믿을 수 없다. 그 순간 나는 빨가벗은 채로 괄약근에 힘이 빠져버린 편집증 환자가 되는 거다. 똥이 더럽다는 걸 잊을 수 있다면 더 행복하게 애널섹스를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똥이 더럽다는 걸 아예 몰랐다면 말야. 그런데 나는 너무나 배변 훈련을 성공적으로 받아버린 셈이다.

 

5

 

더러움을 이겨낼 정도로 엄청난 쾌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하면 더러운 애널섹스를 계속해서 하고 싶어 하는 게 말이 될 수도 있다. 최근 가장 좋았던 섹스가 언제였더라. 아마 탑 두 명과 모텔에서 쓰리썸을 했던 날이었다. 한 명은 남자친구였고, 한 명은 트위터로 알게 된 친구였다. 쓰리썸 같은 걸 해본 적은 몇 번 있었지만, 탑 두 명을 혼자 제대로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처음은 평소 하던 섹스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자세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고추를 입에 넣었다 똥구멍에 넣었다 했다.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다. 탑이 두 명인 쓰리썸은 마음만 먹으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탑 한 명이 하고 있으면, 한 명은 쉴 수 있다. 다만 바텀 한 명은 쉴 새가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힘은 빠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리고 몸은 점점 민감해져 갔다. 전립선을 사정없이 찔리는 쾌감은 점점 강해졌다. 결국 나는 한 시간 반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두 번이나 사정했다. 한 번은 손도 대지 않고 쌌다. 절정에 다다랐을 때 정신을 점점 잃어가는 와중에 이상한 생각을 했다. 이게 좋은 건가? 아님 아픈 건가? 근데 좋았다. 왜지 왜지. 경계선 같은 게 있었다. 선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성적 쾌감이고, 그 선을 조금만 넘어서면 고통이 느껴지는 경계선. 그날의 섹스는 그 경계선 위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줄타기였다. 그게 좋아? 아플락 말락 하는 게 좋다고? 그래, 좋아, 최고였어. 쾌감과 고통은 원래 잘 구별이 안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했다.

힘들었다. 그리고 황홀했다. 무언가 해낸 느낌이었다. 5년 전인가 그때의 여름 같은 느낌이었다. 3박 4일 일정의 지리산 종주를 했다. 고된 산행의 마지막 날 밤, 대피소에서 하늘을 말 그대로 가득 채우고 있던 별들을 봤다. 은하수라는 게 진짜 있었구나, 진짜였어. 북두칠성이 어디 있는 거야? 별이 너무 많아서 찾을 수 없어, 그 정도로 별이 많았다. 그 높은 산을 나흘씩이나 걸었는데 힘들었겠지, 근데 지리산에서 힘들었던 일들은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밤하늘 별빛이 황홀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지리산 종주라니, 그 힘든 걸 왜 하는 거야? 힘든 걸 잊을 만큼 좋으니까 하는 거야, 그렇게 대답했다. 섹스도 그렇다. 마냥 좋은 게 아니다. 아무리 더럽고 힘들고 아프고, 그래도 좋으니까 하는 거다.

 

6

 

자기 똥구멍에 고추가 박히는 게 좋다고? 뭐가 어떻게 좋다는 거야? 전립선이 찔리면 기분이 좋은 거야? 정말이야, 오르가즘을 느끼는 걸, 제정신을 잃을 정도란 말야, 제정신이 아니라고. 근데 제정신이 아니면 네가 네가 아니란 말일 텐데, 그때 느끼는 쾌감이 진짜 쾌감인지는 어떻게 아는 거야? 어, 글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제정신을 잃어야 좋은 거 아니었나?

지난 섹스에서 내가 제정신을 잃을 정도로 강력하게 느꼈던 감각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건 전립선이라는 기관에 가해지는 압박감이야. 근데 압박감이 왜 좋다고 느껴지는 거지? 생각해보면 사실 누구나 기분이 좋은 건 아닌 듯했다. 누구는 똥구멍에 무언가를 집어넣으면 똥 싸는 느낌이 들어서 싫다고 했다. 누구는 전립선을 누르면 오줌이 마려운 느낌이 들어서 싫다고 했다. 누구는 손가락 하나만 넣어도 아파서 싫다고 했다. 누군가는 아무 느낌도 안 나서 싫다고 했다. 맞아맞아, 저기 십자가 들고 춤추시던 분들이 그러던데, 똥구멍도 전립선도 원래 그러라고 있는 기관이 아니다. 근데 어째서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바텀을 하고, 전립선을 찔러달라고 하고, 삽입 당하길 원하는 거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다들 집단 최면 같은 게 걸린 거 아닐까.

그럼 고추는 어때? 고추는 쾌락을 느끼라고 있는 기관이 맞아? 고추로 느끼는 쾌감도 사실 이상한데, 그것도 이상한 건 마찬가지다. 그저 고추라는 툭 튀어나온 살덩어리가 어디엔가 비벼지다 보면 눈앞이 아득해지며 잠시 제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고추에서 탁하고 비린 체액이 나오는 거다. 이게 뭐가 좋은 거야? 이상하네, 그러게, 전립선을 누르는 게 좋다고 느끼는 게 이상한 만큼 이상하네, 그렇게 생각했다.

계속해서 이상한 생각들을 했다. 쾌감은 고추에, 전립선에, 혹은 젖꼭지에 있다. 쾌감은 살덩어리에 덧씌워져 있다. 쾌감이라고 말하기 이전에 몸 위에 가해지는 어떠한 감각들이 있다. 쾌감이라는 게 원래 쾌감이라고 정해져 있던 게 아니고, 우리는 이케저케 살다 보니 우리가 느끼던 감각들 중 어떤 특정한 감각들만을 쾌감이라고 느끼게 된 거 아냐? 나이건, 나의 부모이건, 내가 보게 된 야동이건, 같은 반에 잘생겼던 남자애건, 오며 가며 인사했던 옆집 아저씨건. 그런 내 살덩어리와 아무 관계 없는 것들이 내 몸 위에 쾌감이라는 이름의 무언가를 덧씌워 버린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나는 어떻게 고추에 느껴지는 촉감을 성적인 쾌감으로 느끼게 된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나는 어떻게 전립선을 찔러보기도 전에 전립선이 찔려보고 싶다고 원하게 된 거야? 내 몸은 어떤 때는 내 의지대로 변하기도 했고, 내 의지와 아무 상관 없이 변하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지금이 되었다. 지금의 내 몸은 그런 걸 쾌감으로 느끼는, 그리고 그런 걸 느끼는 걸 좋아하는, 그런 몸이 된 거야, 그런 거였다. 그런 몸이 되어버린 거다, 야망가 대사가 아니라 진짜로.

감각에 대한 욕망은 그렇게 내 몸에 덧씌워졌다. 거기에 그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행위에 대한 욕망이 따라붙는다. 또 거기에 그 행위를 하고 있어야 할 어떤 대상에 대한 욕망도 따라붙는다. 내 몸은 그래서 말한다. 풋풋하고 소년미 넘치는 남자가 좋아, 그 사람이 고추를 내 똥구멍에 넣어줬으면 좋겠어, 그래서 내 전립선이 찔리는 느낌을 느꼈으면 좋겠어, 그래서 제정신을 잃었으면 좋겠어. 몸이 그렇게 말하는 거다. 몸의 욕망은 제정신의 틈을 비집고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실제로 제정신을 잃게 만들어 새벽 세시에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집을 향해 택시를 잡아타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 택시를 잡아탔던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야? 그건 내가 아니라 내 몸이다. 그럼 내 몸은 내가 아니야? 그건 또한 나이기도 하다.

 

7

 

만져지는 게 좋아. 침범해서는 안 되는 선을 누군가가 넘어선다. 삽입 당하는 게 좋아. 남에게 가장 보여서는 안 되는 부분이 침범당한다. 그게 기분이 좋은 거다. 당하는 게 좋아? 그게 좋단 말야. 평소에 지키던 것을 위반하고 위반 당하는 데에서 성적인 쾌감이 나온다. 몸을 침범하고 침범당하는 데에서 나온다. 제정신을 잃는 데에서 나온다. 박고 박히는 폭력적인 행위에서 나온다. 똥구멍을 보면서도 더럽다는 생각이 아니라 고추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데에서 나온다. 성적 쾌감은 몸에 덧씌워져 있으면서 동시에 위반과 붙어있다.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그렇다. 무균 섹스, 라는 게 있나? 애널섹스가 아니더라도 그래, 보지에 자지를 넣는 섹스도 깨끗한 건 아니지 않아? 흥건한, 끈적한, 질펀한, 같은 말들은 전혀 깨끗하지 않다. 근데 사람들은 그게 야하다고 하잖아. 제정신인 섹스가 있어? 내가 나임을 보존할 수 있는 섹스가 가능하단 말야? 성적인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나와는 다른 무언가가 나와 섞여야 한다. 지키고 있던 경계가 뚫렸음을, 그리고 뚫리길 바랐음을 인정해야 한다. 무언가는 휘두르고 무언가는 그것에 당해야 한다. 사람들은 그게 야하다고 하잖아. 맞아맞아, 사람들은 이미 그런 식으로 이건 섹시하고 저건 안 섹시하다고 말해왔다. 깨끗한 건 좋은 거지만 섹시하지는 않아. 정치적으로 올바른 건 좋은 거야, 근데 섹시하지 않다고. 그랬다, 그건 원래부터 그랬다.

섹스할 때는 콘돔을 착용하세요, 위생문제나 감염 위험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걸 알고도 노콘 섹스를 하길 원하게 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동의를 구하지 않은 섹스는 강간이라구요, 당연한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는 게 슬프죠. 그런데 동의 없이 마구 다뤄지는 데에 더 흥분하게 되어버린 몸들이 있을 뿐이다. 게이라고 해서 별 다를 게 없지. 남자끼리 좋아하면 안 돼, 남자끼리 섹스하는 건 더럽잖아요, 그런 말을 평생 들었어도 남자끼리 섹스하고 싶고, 아무리 힘들고 더러워도 남자끼리 섹스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사람들인 거다. 똥은 더러운 거야, 아무리 배변 훈련을 잘 받았어도, 똥을 쌀 때마다 카타르시스를 느껴버리는 몸. 그런 거다, 그냥 그런 것이다.

 

8

 

반년쯤 전이었다. ‘퀴어’와 ‘성소수자’라는 두 단어의 서로 다른 의미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Queer’의 번역어가 ‘성소수자’라고 이야기했다. 어, 아닌 것 같은데요? 성소수자는 좋은 말이고, 퀴어는 나쁜 말이에요. 성소수자는 나에게 시민의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말이고, 퀴어는 내가 변태고 성도착자인데 너네들이 어쩔건데, 하는 말이에요, 그렇게 말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나를 욕하더라고, 왜 같은 말을 다르다고 하냐고, 왜 우리를 변태라고 하냐고, 그렇게 욕하더라고. 맞는 말이다, 변태는 언제나 욕을 먹는 사람이고, 발언할 권리가 없는 사람이고,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변태 짓을 그만둘 생각을 못 하는, 그런 바보 같은 사람들이다.

‘퀴어’라는 이름표를 프로필 사진에 올리고, 노트북 앞면에 붙이고, 혹은 티셔츠나 팔찌에 새기고 다니길 원하면서도, ‘퀴어’라는 이름에 붙어있는 더러움과 괴상함은 떼놓고 가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퀴어라는 이름 아래에서 혐오를 거부하고 권리를 인정해달라고 소리치면서, 동시에 퀴어라는 이름에 똥칠하는 사람들과 선을 긋고 멀리하려는 사람들도 보인다. 똥칠이라니? ‘퀴어’라는 이름은 원래 똥덩어리 였는데? 야, 너네도 다 변태고 성도착자야, 퀴어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들에게 사실은 그런 말을 하고 싶었다.

애널섹스는 더럽지 않답니다, 동성을 좋아한다는 것만 빼고는 남들과 다를 게 없어요, 그런 거짓말들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 식으로 퀴어라는, 게이라는 이름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들을 떼어내려는 거야? 애초에 위험하고 더럽고 사적이고, 그래서 남들 앞에서는 숨겨야만 할 욕망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는 것 아니었나? 남들처럼 더럽다고 피하는 게 아니라, 그걸 사람들 다 보는 앞에 일부러 꺼내놓고 진지하게 얘기해보자고 했던 거 아니었어? 그걸 계속해서 숨기고, 깨끗한 척, 무해한 척, 안전한 척해야 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네. 정말이지 하고 싶은 말이 반도 남지 않는다.

게이는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야, 나는 이 말을 그래서 너무 비웃고 싶었다. 같은 반 남자애들이 축구를 할 때 운동장 구석에 가만히 앉아있으면서, 너는 좀 여성스러운 것 같다는 말을 골백번 들으면서, 혹은, 어떤 여자를 좋아하냐는 물음에 당황하면서, 혹은, 그러면서도 고추를 빨고 싶고, 더러운 똥구멍에 고추를 넣고 싶어 하면서.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남자 되기’에 실패해온 사람들이 자신을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고 소개하는 게 웃기잖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남자이고 싶다고 하면 오히려 이해가 된다. ‘남자 되기’에 실패했기 때문에 남자를 더 좋아하게 된 그런 사람들인 거야, 이게 나한테는 더 맞는 설명이네,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보다는 훨씬 맞는 말이다.

벌써 어디선가 나를 욕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어쩔 수가 없다. 실패했다고 해야만 설명되는 사람들이 어디에나 있다. 더럽고 나쁘다는 말을 떼어놓고서는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언제나 있다. 욕을 들으면서도, 자신을 욕하면서도, 그런 몸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살려달라고 소리치지도 않는다. 잘봐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다. 무해하다고 변명하지도 않는다. 그냥 그렇게 있다. 거기에는 나도 그렇게 있다. 깨닫는 것도 없다. 나아지는 것도 없다. 그건 더러운 거구나, 제정신이 아니구나, 그런데 그게 또 나구나, 그렇게 생각할 일이다. 계속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 이 글은 1987년 발표된 Leo Bersani의 글 “Is the Rectum a Grave?”을 읽은 후 쓴 글임을 밝힙니다.




아이비 리는 록펠러, 모건, 카네기, 듀폰과 같은 거물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는 컨설턴트였다. 어느 날 베들레헴 철강회사의 찰스 슈왑이 리에게 상담을 청해왔다. “나에게 필요한 건 더 다양한 지식이 아니라 더 나은 행동 방법이오. 내가 이미 아는 것들의 반만이라도 실천하게 해 줄 수 있다면 요금이 얼마가 되든 기꺼이 내겠소.”

“그럼 지금부터 15분 동안 그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하루를 끝내기 전에 매일 10분씩 그날 한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오늘 내가 잊어버리거나 소홀히 하거나 실수한 일은 무엇일까? 앞으로 그런 잘못을 예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 일을 개선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런 다음 메모지에 내일 꼭 해야 할 일 6가지를 쓰십시오.”

“중요한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십시오. 그 종이를 주머니에 넣고 그다음 날 아침에 제일 먼저 1번을 읽어 본 다음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1번 일이 끝날 때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 메모지를 쳐다보십시오. 1번 일이 끝나면 2번으로 넘어갑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번호를 지워 가면서 마지막 번호까지 이동하십시오.”

“2번이나 3번까지밖에 못 끝내더라도 신경 쓰지 마십시오. 1번을 지키느라 하루가 다 걸리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일을 하는 것이니까요. 다른 일들은 미뤄도 됩니다. 이 방법으로 일을 끝낼 수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도 끝낼 수 없습니다. 이것을 실천 못 하면 어떤 일이 가장 중요한지 결정조차 못 할 수도 있습니다.”

“내일 할 일을 결정할 때 오늘 끝내지 못한 일들을 옮겨 적으세요. 매일 저녁에 15분씩 할애해서 내일 꼭 ‘해야 할 일’을 결정하십시오. 이 방법을 시험해 본 후 임원들에게도 권해보세요.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마음껏 시험해 보십시오. 그 후에 저의 방법이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하신 만큼 수표로 보내주십시오.”

3달 뒤 슈왑은 리를 사무실로 불러 25,000달러 수표를 써줬다. “하찮게 보이는 이 방법이 내 평생 배운 것 중에서 가장 실용적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이 방법을 통해 아홉 달을 미뤘던 전화를 걸어 2백만 달러어치의 철재 주문을 받아 냈다. 아이비 리와 찰스 슈왑의 ‘25,000달러짜리 메모’ 이야기는 유명한 이야기지만, 출처가 불분명하고 책마다 말이 조금씩 다르다.

하지만 이 조언의 핵심은 어디든 다 똑같다. ‘그다음 날 해야 할 일을 전날에 반드시 메모한다. 그리고 그 메모를 보면서 하나씩 실천한다. 중요한 일부터 시작하고 반드시 끝장을 본다.’ 이것이 아이비 리가 말하는 조언의 핵심이다. 꽤 평범해 보이는 방법인가? 100년 전쯤에 25,000달러면 현재 돈으로 50만 달러 가치를 넘는다. 지금 우리는 50만 달러짜리 조언을 공짜로 들었다.
- 아이비 리 관련 우화



모든 걱정의 해결책: 상황을 바꾸는 게 아니라 관점을 바꾼다; 어떤 대상에 의미를 부여하기 전까지 그것은 어떤 의미도, 힘도 가지지 않는다; 문제는 문제라고 인정했을 때만 문제.
- 민팍



“다시 태어나도 음악할 거냐고 물으면 음악이고 뭐고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고 대답해요. 이런 인생이 또 올까봐 겁나 서요. 저는 남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힘들게 살아왔어요. 죽으면 다시 태어날까봐 안 죽으려고 지금 열심히 살아요. 궂은 일이 닥쳐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잘 넘겨요. 그렇게 적응하고 넘기는 것 자체가 수양이더군요.” 
- 신중현


의미: "세상에 드물게(世) 나옴(出)"을 부정(不)하여, "한 세대에 쉽게 나올 수 없는", 즉 "어쩌다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아주 뛰어난 인물이나 사물"을 뜻합니다.

출처: 《한서(漢書)》의 〈양웅전(揚雄傳)〉에 나오는 표현에서 기원합니다. 고대 중국의 문장가 양웅(揚雄)을 평하며 "불세출의 인물"이라는 표현이 쓰인 것이 문헌상 유명한 기록입니다.



江頭(강두)에 屹立(흘립)하니 

仰止(앙지)에 더욱 높다


風霜(풍상)에 不變(불변)하니 

더욱 굳다

사람도 이 바위 같으면 

大丈夫(대장부)일까 하노라

("강가에 우뚝 솟아 있으니,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게 느껴지는구나.
모진 바람과 서리(풍상)에도 변함이 없으니, 그 기개는 더욱 굳건하구나.
사람도 저 바위처럼 변치 않는 절개를 가진다면, 참된 대장부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 朴仁老(박인로, 1561년~1642)
조선의 3대 시인으로 평가받곤 함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 브라이언 와이스가 집필한 <나는 환생을 믿지 않았다>에 나오는 내용으로 기억하는데, 중국에 혐오감을 갖고 있는 한 환자의 전생최면 퇴행 도중 다음과 같이 사실이 드러났다: 그녀는 전생에 중국의 병사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되었던 것이다! 



중국인에게 이런식의 취급을 당하고 죽었던 사람이 바로 다음 생에 중국에 우호적인 감정을 갖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전생에 나치의 박해를 당해 죽은 어떤 유태인이

다음 생에서는 마치 아리안족의 표상이라도 되는듯한

금발벽안으로 태어났다는 사례도 생각난다.



전생에 워낙 금발과 푸른눈을 동경하다 보니

그것이 다음 생에 물질화 된 것이다.








I learned the truth at seventeen
That love was meant for beauty queens
And high school girls with clear skinned smiles
Who married young and then retired
The valentines I never knew
The Friday night charades of youth
Were spent data-on data-one more beautiful
At seventeen I learned the truth
And those of us with ravaged faces
Lacking in the social graces
Desperately remained at home
Inventing lovers data-on the phone
Who called to say "come dance with me"
And murmured vague obscenities
It isn't all it seems at seventeen
A brown eyed girl in hand me downs
Whose name I never could pronounce
Said: "pity please the data-ones who serve
They data-only get what they deserve"
The rich relationed hometown queen
Marries into what she needs
With a guarantee of company
And haven for the elderly 
So remember those who win the game
Lose the love they sought to gain
In debitures of quality and dubious integrity
Their small-town eyes will gape at you
In dull surprise when payment due
Exceeds accounts received at seventeen
To those of us who knew the pain
Of valentines that never came
And those whose names were never called
When choosing sides for basketball
It was long ago and far away
The world was younger than today
When dreams were all they gave for free
To ugly duckling girls like me...
We all play the game, and when we dare
We cheat ourselves at solitaire
Inventing lovers data-on the phone
Repenting other lives unknown
That call and say: "come data-on, dance with me"
And murmur vague obscenities
At ugly girls like me, at seventeen

17세 사춘기 소녀가 밸런타인데이에 깨달은 세상의 부조리함: 그들은 큰 키에 긴 머리카락을 가진 금발 미녀만을 좋아해; 치어리더를 하며 남자들에게 사랑받을 것 같은 애들 말야; 하지만 나는 작은 키에 우스꽝스럽게 생겼고, 검은 색깔의 곱슬머리를 갖고 있어





빌 게이츠 불공평




  이케다 다이사쿠는 戰後(전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스승 도다의 출판업이 어려워지면서 빚 독촉과 생활고에 시달렸다. 1954년 6월 무렵에 쓴 그의 일기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

 

  ‘오슬오슬 추운 하루였다. 생활비도 쪼들린다. 오늘 날씨와도 같다. 하루 종일 재미없다. 이상하게 죽음이 자꾸 예감된다. 이것이 병마라고 하는 것인가? 信心(신심)을 닦은 지 7년, 최대의 시련이다. 오늘 저녁은 특히 괴롭고 쓸쓸하다. 지금 한 사람의 벗도 없고 응원도 없다. 힘은 시시각각으로 약해지기만 하는 것 같다. 눈물이 줄줄 흐른다. 여기서 죽는 것은 싫다.’

 
  “저는 분노의 치를 떨며 ‘비록 나 혼자가 되더라도 선생님을 지키겠다, 선생님께서 승리하실 날을 열어 보이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곤경에 처했을 때야말로 인간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시기가 스승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수행 기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각자 겪고 있는 어려움과 문제에는 반드시 전조라는 것이 있다.

어려움이 닥치기 전에 미리 전조를 보여준다.

사람을 통해서.


자신의 기운상태에 따라 사람이 다가오고, 사람이 멀어진다.

기운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당장 사람과 충돌이 나고, 사건과 사고를 당할 확률이 높다.

만약 이런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면, 모든 것을 스톱하는 것이 이롭다.

그대로 밀고 나가다간 반드시 화를 당하기 때문이다.
- 주신







인터넷을 보다 위 문장이 눈에 띄었다.

답은 간단하다.


먼저 연락하지 않는 사람은 '갑'이고

먼저 연락하는 사람은 '을'이다.


갑은 을인 너보다 여러모로 레벨이 높다는 간접적인 표시로

먼저 전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친구나 그 누군가에게 항상 먼저 전화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그 사람보다 한수 아래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바란다.

당신이 이 사실을 받아들이든 들이지 않든 간에 상관없다. 사실이니까!


약한 쪽이 먼저 연락하고 아쉬운 쪽이 먼저 반응한다.

꼭 기억하길 바란다.


그럼 갑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매번 전화를 받던 갑이 시간이 흐르면 궁금해지기 시작하고 조금 당황해진다.

그러나 갑은 왜 전화하지 않는지 먼저 묻지 않는다.

다만 넌지시 돌려서 묻는다.

이때 갑이 조금 흔들린 것이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갑을 움직일 수도 있으나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다.

갑이 을에게 당할 때에는 철저하게 자존심으로 인한 심리전에서 당한다.


친구 중에 먼저 연락하지 않는 친구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지금부터 이 글을 읽고 그 친구의 모든 면과 평소 언행을 살펴보아라.

분석하고 살펴보다 보면 그 친구의 에너지 실체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이런 식으로 파악해나가면 된다.

- 주신






큰 생각은 큰 기운을 불러들인다.

당기면 들어오는 것이 기운이고 우리 인간의 념(念)은 상상 이상으로 그 힘이 크다.


모두가 비범할 수는 없고 모두가 잘날 수는 없으며 모두가 뛰어날 수는 없다.

각자 크고 작음의 기운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맞는 기운의 옷을 입는다.


허나 생각의 힘이란 물질화의 시작점이면서 창조의 원천이다.

생각을 일으키고 행동이 뒤따르고 결과를 보는 것.

우리 인간은 이런 패턴으로 지금 문명을 일구어왔다.


자신의 에너지 그릇을 초과하여 품는 생각은 '망상'이고

자기 사이즈에 맞게 품는 생각은 미래이자 꿈이다.

- 주신





자신이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에너지가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너지의 증폭과 감소는 시간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따라서 당신이 싫든 좋든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면 기다리고 기다려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실력을 쌓고 노력하면 어느 순간 조금씩 그토록 바라던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데 스스로 일어서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곳이 바로 이 지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주신







불안과 초조, 극예민은 인간이 하고자 하는 일과 곧 일어날 일의 기본적인 전조인데

만약 시험을 앞두고 있다면 그 시험은 좋은 기대를 하기가 어렵고 또한 자신과 연관된

사건,사고를 암시하기도 한다.

 

사건과 사고는 불안한 파동의 에너지가 쌓이고 쌓여 찼을 때 터진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에너지가 차야만 발생한다.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이유없이 시비를 걸어오는 경우

순간 시비를 걸어오는 사람과 자신의 특정 사념체의 파동이 같기 때문에 시비가 발생한다.

 

길을 가다 느닷없이 돌을 맞았을 경우 돌을 던진 사람의 순간 감정의 파동대와 돌을

맞은 사람의 파동대가 서로 맞아떨어지고 에너지 준위가 같기 때문에 정확하게 돌이 날아와

자신을 때리는 것이다.

 

돌을 맞은 사람은 이유없이 느닷없이 맞았다고 항변하겠지만

그 사람의 가슴 속에 쌓여둔 사념체가 돌을 던진 사람의 사념체와 맞물리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같은 기운은 철저하게 서로 당긴다.

 

돌을 던진 자와 돌을 맞은 자는 각각 같은 기운 혹은 반대극성의 기운이기도 하지만

1차적으로는 에너지 준위가 같고 파동대가 비슷한 가운데 시간과 공간의 자연력과 맞물리면서

한쪽은 돌을 던지고 한쪽은 돌을 얻어맞는 것이다.

 

길을 가다가 누군가가 시비를 걸어오면 시비를 거는 사람의 쌓인 분노만큼이나

자신의 내면에도 유사한 분노가 잠재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 주신





외롭다는 것은 자신의 에너지가 하락하였다는 것으로

이때 들어오는 인연의 에너지 준위는 본인과 비슷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유유상종의 법칙이 정확하게 적용되는데 서로 당기면서 만나게 된다.

각자 에너지가 고갈되어 만나므로 바르게 연을 맺지 못하면 충돌이 벌어진다.

 

자신의 에너지가 떨어진 상태에서 그 누군가에게 강하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만나는 인연 또한 악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좋은 인연이란 내 에너지가 꽉 차서 자신감이 흘러나올 때 만나는 인연이다.

나의 에너지가 매우 좋으면 그에 준하는 에너지를 가진 이성이 끌려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선남선녀 커플이 탄생하게 된다.

건강하고 똑똑한 남자와 건강하고 영리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 원리이다.

 

카르마의 인연으로 만난 케이스는 꽤나 독특한 이력들을 각자 가지고 있는데

한쪽의 급수는 높고 또 한쪽은 급수가 낮은 케이스가 있다.

 

전생의 카르마, 전생의 빚을 갚기 위해 급수높은 자가 급수낮은 자를 만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경우 많은 에너지가 낮은 쪽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자신의 에너지가 많이 떨어진 상태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

사람을 찾으려 하는데 분별력과 이성이 많이 약해진 상황에서 들어오는 인연은 자신을 깨워주는

강력한 사자가 들어올 확률이 높은데 주로 악연이라 칭하는 사람이 들어온다.

 

그래서 자신의 운(運)과 운의 움직임을 아는 것이 필요하고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 구간에 놓여있는지를 아는 것이 자신의 운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운(運)을 초간단하게 설명해보자면 가령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 시험운이 도래하였다면

열심히 공부하기만 하면 합격을 할 수 있는 반면 시험운이 없는 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합격할 수 없다.

 

운은 에너지 흐름인데 내가 발복을 하려 하면 바람을 타듯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이때 움직이는 에너지 흐름인 운(運)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나에게 상승운이 들어오는 시기가 중요한 것인데 보통 우리가 TV를 통해 보는 사극에서

이 시기와 때를 두고 거사를 도모하거나 패망하거나 하는 스토리를 엮어간다.

 

인생의 묘미는 그릇크기 즉 에너지크기를 모르고 시기와 때가 맞지 않게 설치는 자는 떨어지고

노력하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는 자는 상승하는 것에 있다.

 - 주신







하기 싫은 일은 절대 하지 마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거든 그냥 쉬면서 놀아라!

 

쉬면서 노는 것도 일이고 공부이다!

 

단 애써 무엇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놀다 놀다 보면 너가 하고 싶은 일은 나타난다.

그래도 나타나지 않거든 그동안 충분히 놀았으니 조금씩 일이라도 해볼 생각을 하면 된다.

- 주신


















애인에게 차였다며 우울해하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보다 훨씬 더 형편없는 애인이 나타날 것이다. '끼리끼리 뭉친다'는 말처럼 정말 그런 사람만 꼬이게 된다. 그것이 바로 '끌어당김의 법칙'이다.

결과적으로 지옥에 끝이 없는 것처럼 최악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우울해하면 우울해한만큼 그게 어울리는 사람이 다가올테니 주의하자.

이렇게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면 반드시 그에 걸맞는 인격의 소유자가 나타난다. 즉 자신이 멋지게 성장할수록 주변에 멋진 사람이 모이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끼리 성장하면 세상은 더 멋진 곳이 된다.

- 사이토 히토리





1 2007/05/01(화) 08:15:04

지쳤으니까











2

우선 찬물이라도 한잔 마셔라


6

지쳤다고 죽으려 하면 안 되잖아

우선 쉬어라


10

>>1

한숨 자고 다시 생각해 보는 건 어때?



22

철도원 들에게 폐가 되니까 그만 둬~



25

이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죽으려 하다니,

죽어~ 바보



40

죽기 전에 신청 받는 건 어때?



46

좋아,

마지막으로 뭔가 한다

>>250번째로 글쓰는녀석 말을 들어주지



56

>>46

너무 길잖아!!!



75

자살이니 뭐니 하는 녀석들은 기분 나쁘다니까



81

그런데 진짜 열차 사고로 죽으면 한 두명에게 피해 주는 게 아니니까, 그만 둬



90

자살 선언하고 실제 한 예가 있나?


역주

있습니다.



103

적당히 낚은 것 같으니까 낚시 선언하고 끝내지?

시간이 다가 오는데.



111

이러쿵 저러쿵 불편하면서도 >>1 상대해 주는 네 놈들은 꽤 호인이다


149

예정 시각까지 앞으로 7분. 이제 낚시 확정~



213

9시 13분 정각~



227

역시 낚시, 지금까지 몇 명 낚인 거지?



234

케이힌 토호쿠 방면, 매우 순조롭게 운행 중…



236

이렇게 지상으로부터 또 혼자 쓰레기가 사라졌다



245

>>236

진짜 믿는 거냐? 이거 낚시라구



248

낚시인데 그러면 >>250은 어떻게 하지?





250

소생한다




254

GJ wwwwwwwww


260

>>250

웃었다



261

>>250

뿜었다



273

슬슬 소생해서 낚시 선언이나 해라, 바보



281

뭐 이제 와선 어찌되든 상관 없지만 wwwwww



284

분명 기대한 놈들 있을걸

대체 뭐야 그런 녀서들, 사람 죽는 게 재미있다는 건가?


292

TV에선 아무 것도 안 나오는데



304

교통 정보 게시판에도 아무 것도 안 뜨는데



309

낚시라니까 낚시



312

필요 없이 굼뜨구만, >>1 녀석



327

적당히 낚시 선언 안 하면 더 욕먹을 것 같은데



331

우선 열차 운행 정보 찾아 보자구



역주

2007/05/01(화) 09:25:09

소부(総武) 쾌속 이나게(稲毛) - 쓰다누마(津田沼) 간에서 급정차



333

중앙 소부 쾌속 이나게역에서 투신 사고 발생



348

중앙선 이나게역에서 9:22에 투신 사고 발생 했다는데


349

>>1

죽은 건가



352

응? 어? 설마?



356

뭐야!! 이 타임랙으으으으으은!!!!



257

설마 진짜로?



384

어 … 어어어어쨌든, 누군가

그 이야기의 출처 알려줘!!



390

아니 과거 몇 번 자살 예고 스레가 섰단 건 들었는데.



422

지금 치바역에 있지만 투신 사고 진짜 있었다



423

등골이 서늘한데, 뭐야 이거



470

누구 소문의 출처 모르는 거야?



505

진짜라면 웃을 수가 없는데.



낚시지? 그렇지?


654

어이, 어이!!

빨리 나와라 >>1


701

뭐야 대체, 그럼 여기 있던 녀석들 전부 범죄자 되는 건가



711

>>701

실직적으로 부추긴 건 아니니까, 형법엔 해당 안 돼



716

홈을 중심으로 출입 금지 테이프 붙었는걸



743

너무 비현실적이라 뭐라 해야 될지


756

처음에 죽어 죽어 말했던 놈들은 전부 어디간 거야 wwwwww



830

역 뒷쪽으로 출입 금지가 됐어

역무원 같은 사람이 물통 가득히 물을 옮기고 있고


931

설마하니, 일이 이렇게 될 줄은.


976

역시나 낚시지? 낚시인 거지?


989

>>1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돌아 와라



1000

1000이라면>>1은 살아 있다






----------------------------------------------

다음 스레드

----------------------------------------------



1

어이, 어이 누구 이전 스레의 >>1에 대해 아는 것 없나?



5

그걸 알려고 이 스레 들른 거다!!


8

아니, 죽는 다고 해서 보통 죽는 다고 생각하나?


10

>>8

실제 죽었으니까 문제잖아


13

철도 게시판에 이에 대한 게 뜬 것 같던데


15

인증!



16

476
 








17

이건?!! 이건?!!




19

나 잠깐 토하고 온다





22

>>16
>>16
>>16
>>16


25

어, 제길. 저거 내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지?



29

>>16

이건, 아우아우



32

희망이 꺾인 건가


38

푸른 시트로 덮힌 게 쓸데없이 리얼하다



39

>>16

틀림없어 저기 이나게다

조금 전 통과하면서 봤어



45

설마···딴사람이겠지



46

TV에서도 보도되지 않고 있는데·


51

결국 죽었나


57

이나게에 09:13분 출발하는 차량이 있다면 진짜다



65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진짜 죽으면 안 되잖아


71

··발밑이 서늘해 졌는데···



73

>>56

몇월 몇일에 촬영된 건지, 누구 해석할 수 있는 사람?


74

바보 같이, 죽긴 왜 죽어


77

>>73

오리지날 촬영 일자 : 2007:05:01 10:21:39



85

아아, 신경 쓰여서 학교에 갈 수가 없어



91

도저히 못 믿겠는데



97

뉴스로도 안 나오고, 딱히 소문의 출처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너희들도 낚시에 참가한 건가?



101

좀 더 확실하게 설명해 줄 수 있는 녀석 없어?



115

너희들 또 죽였나



126

진짜 13분 출발 차량 있었다


왠지 눈물 나기 시작했어


153

등골이 오싹 오싹해서 견디기 힘들다


171

나, 이나게 역에서 통학하는데

내일부턴 전철 못 탈 것 같다


189

지금까지 거짓말이란 증거가 하나도 안 나온다.

……진짜인 건가



190

이나게는 굉장히 가까운데………근처 주민에게 확인하고 온다


194

이전 스레에서 죽어라고 말한 놈들 전부 죽어


197

일단 애도가 먼저 겠지?



199

새삼스럽지만>>1을 위해 묵념···



217

헤매지 말고 성불하길


224

나무 아미타불



237

이건 아침부터 기분 나쁜 스레



238

이전 스레에서 부추겼던 녀석들 체포하면 된다



294

진상을 확인할 방법 없는 건가?



434

진짜라면 저녁이나 내일 아침 뉴스에서 뭐라도 나오겠지

낚시라면 아무것도 안 나오겠지만




436

소부선이 일시 운행 정지, 치바 · 이나게역의 투신 사고로

2007년 05월 01일 10시 44분


1일 오전 9시 22분쯤, 치바시 이나게구의 JR 소부선 이나게역에서,
치바(千葉)발 미타카(三鷹)행  전철(10량)에 남성이 치여 병원으로 옮겨졌다.



역주

http://j.peopledaily.com.cn/2007/05/01/jp20070501_70677.html



439

>>436

살아 있는 건가?


441

살아 있으면 좋겠는데


446

이렇게 낚시 선언을 듣고 싶은 스레 가 없었다



448

응? 병원에 옮겨졌다면 방금 전 사진은 뭐야?



453

>>439

확실히 죽은 걸 척 봐서 알 수 있다 할지라도, 의사가 정식으로 사망 판정 내지 않으면 안돼.
그래서 병원으로 반송 한 거라 생각하는데



457

이건 틀림 없네-····





513

왜 우리는 녀석을 좀 더 말리지 않았던 걸까










 

-----------------------------------------------새로운 스레드------------------------

6

>>1이 살아 있다면 무슨 일이든 들어 줄텐데































13

나?






15

>>13

확보 확보


16

>>13
>>13
>>13
>>13
>>13



17

이봐아아아아아아아!!!!!


19

>>13

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확보!!!!!!!!!!!!!!!!!!!!!!!!!!!!!!!!!!!!!!!



20

뭐야 살아있잖아!!!

21

>>13

너 뭐 하는거야···



22

다행이다 다행이다 wwwwwwww


24

고마워 고마워, 살아 있어 줘서 고마워!!!


25

오랜만에진심으로 때리고 싶은 녀석을 찾아냈습니다



26

>>13

낚시 선언 해라!!



34

낚시가 아니었어

다만 실행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37

>>34

소생했다 wwwwww



41

굉장한 ~ 우연이다 어이! wwwwwwwwwwwww



51

누군가 나 대신 죽었나

나는 살지 않으면 안돼



72

하지만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168

그럼 오늘 죽은 사람은 대체 뭐야?



243

누군지 모를 자살자에게 묵념



311

하나가 속 시원히 해결되고 나니

또 하나로 속이 불편해 지네.

이름 모를 자살자, 성불하길



475

그럼 오늘 죽은 사람은 딴 사람인 건가

낚시로 다행이지만, 실제 사람이 죽어서··· 기분이 복잡한데―








687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방식으로 죽으려한 두 사람

한명은 살고

한명은 죽었네

이 둘을 가른 건 한 발자국 떼어 놓을 한 줌의 용기

하지만 그 용기는 과연 가치 있는 것 이었을까?



2ch - 오늘 09시 13분 발 전철에 투신 자살 합니다.








청춘시대에 갖가지 우행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중년이 되어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할 것이다



- 노신













"Humans achieve their peak in different ways. But whoever you are, once you're over the summit, it's downhill all the way. Nothing anyone can do about it. And the worst of it is, you never know where that peak is. You think you're still going strong, when suddenly you've crossed the great divide. No one can tell. Some people peak at twelve, then lead rather uneventful lives from then on. Some carry on until they die; some die at their peak. Poets and composers have lived like furies, pushing themselves to such a pitch they're gone by thirty. Then there are those like Picasso, who kept breaking ground until well past eighty."
"인간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인생의 정점에 도달한다. 하지만 당신이 누구든 일단 정상(頂上)을 지나고 나면, 그 뒤로는 줄곧 내리막길뿐이다. 그건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가장 최악인 점은, 그 정점이 어디인지 스스로는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여전히 힘차게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느새 거대한 분기점을 넘어버린 뒤인 법이다. 누구도 알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열두 살에 정점을 찍고 그 후로는 그저 평범한 삶을 이어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계속 나아가고, 어떤 사람은 가장 화려한 정점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시인이나 작곡가 중에는 마치 광기 어린 삶을 살며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다. 반면 피카소처럼 여든이 넘어서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간 이들도 존재한다."
- Haruki




"인생이란 매일 우리에게 무상으로 8만6400원을 입금해주고 자정이 되면 어김없이 회수해가는 시간은행..."

- 박근혜, 2011년 2월 27일 트위터에서





"자네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자네만큼 괴이한 세월을 살아왔거나

 그 세월을 이해할 수 있고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면 안 된다고"
- 엘로



운명이 우리들을 가지고 논다면

나는 그 이상의 힘으로 물리쳐 보이겠어.

- 사와무라 타쿠야













미즈키 시게루

이후 보초를 서다 기총소사와 원주민 게릴라를 피해 단검과 훈도시 차림으로 정글을 헤매다 며칠 뒤 자신의 부대로 복귀한다. 동료들은 그를 반겨주었지만 상관한테 무기를 버리고 도망친데 대해 심한 질책을 들었고 이후부터 점차 허무주의적 사고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말라리아에 걸려 후송된 와중에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왼팔을 잃는다. 마취제도 없이 왼팔 절단 수술을 하며 다시금 생사의 고비를 넘긴다.

어느 날, 잘린 팔에서 '갓난아기'의 냄새가 나면서, 생명의 힘을 느끼고, 무언가가 내면에서부터 도와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아마도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고, 매일 이 갓난아기의 냄새를 맡는다. 하늘의 향기였다. 그리고 신이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는다.



1940년대 초 테슬라가 아서 매슈와 함께 쓴 자전적 내용의 책 '빛의 벽'에 따르면 테슬라는 1856년 7월 9일에서 10일 사이 한밤중에 금성에서 온 우주선에서 태어나 '착한 지구인'에게 맡겨졌다고 돼 있다. 테슬라는 우주선의 '상승과 조종'에 대한 연구도 했는데, 얇은 원판 모양의 비행체를 주로 구상했다. 오늘날 목격되는 미확인비행물체는 대부분 이런 형태다.
이처럼 공상과학 영화 슈퍼맨보다 더 극적이고 놀라운 테슬라의 삶은 그가 직접 쓴 유일한 자서전 나의 발명과 논문 인간 에너지를 상승시키는 데 따르는 문제점에 나와 있다.



"(말기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으며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던 중) 나중에 퇴원을 한 뒤에는 그보다 훨씬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따뜻한 햇살 아래의 아파트 단지에서 '감자'(작가 위지안의 아들)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가 공을 줍기 위해 놀이터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과속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가 공을 줍기 위해 놀이터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과속으로 다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아이를 향해 돌진했다. 쏜살같이 달려가 19킬로그램이나 되는 '감자'를 덥석 안아 들고 보행로 위로 올라왔다. '벌레 먹은 나무같이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뼈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이 불가사의한 일화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말한들 소용없을 것이다. 의학적으로는 절대 해명이 되지 않을 일이니까.맥도널드 (작가 위지안의 남편)에게 이야기해봤자, '왜 아이를 데리고 나가 둘 다 위험한 지경에 처했느냐'는 훈계만 들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우리 몸 속에는 어쩌면 우주에 필적할 만큼 거대한 힘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런 불가사의한 힘이 기적을 일으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파라오의 저주



안전망이 없을 때 인간은 최고의 성과를 내기 때문에 나는 평생 절대로 플랜 B를 가진 적이 없었다 by 아놀드 슈워제네거






'국사무쌍', '배수진'.


럼즈펠드



1924년 6월 23일자 4면

사람의 네 종류

서아라비아(西剌比亞) 고언에 이러한 재미있는 것이 있다.

대개 사람이 네 종류가 있는데 첫째는 모르고 그 모르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니 이러한 사람은 가까이하지 말 것이요. 둘째는 모르고 그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이니 이러한 사람은 가르쳐줄 것이요. 셋째는 알고 그 아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니 이러한 사람은 깨우쳐줄 것이요. 넷째는 알고 그 아는 것을 아는 사람이니 이러한 사람은 스승으로 섬길 것이라고…
- 벽초 홍명희



"이 시시하고 고리타분한 걸레조각을 지금 당장 벗어버리겠습니다."
오리아나 팔라치
1979년 콤에서의 인터뷰 중, 호메이니 면전에서 차도르를 찢어서 호메이니 발치에 집어던지면서 한 말.



국 악비는 군권을 빼앗긴 뒤, "모수유(莫須有: '있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없다고 할 수 없다'라는 뜻)"라는 말도 안 되는 반역 죄명을 뒤집어쓰고 39세의 나이로 감옥에서 독살(혹은 교살)당했습니다.










무슨일이든 일이저절로 되어져가는 시기가있다


나는 아직 젊지만, , 


살아온날들을 되돌아보면 가장 견디기힘들고 



 어려운시간이 지나고나서야 



비로소 값진열매를 수확했던 기억들이있다 ...




내가좋아하는 드럼연주역시 그랬다 




 포기하고싶을정도로 힘들었던시간이 지난후 



 나 스스로 깜짝놀랄정도로 몸이 저절로 움직이며 



 신바람나게 연주하고있는 나자신을 확인하곤 했다


요즘부쩍 그러한사실에 많은관심들이간다


95%의힘든시기를 지나 


최상위 5%안에들었을때 세상은 그어떤것을해도


의미있게 받아들이고 주목한다.. 


즉,, 모든것이 새롭게 탄생된다 


모든것이 저절로 돌아간다는것~!!! 


나는 최상위 5%에 들고싶다 


그것도 현재 내가 몰입하고 있는 일에서 만큼은말이다~!! 



오늘 또 다짐하고 다짐해본다



2011년 8월 11일 








공자가 말했다. "함께 말할 만한데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 말하면 말을 잃는다(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할 말만 하고,






 

언젠가
수돗가의 죽은 쥐를 보았는가
그가 잉태한 하얀 구더기
가죽을 타고 흐르는
싱싱한 삶의 생명력
그리고
당신의 밥상을 가득채운
그 누군가의 슬픈 사연들
삶과 죽음
그 현장에서
우리는 마냥 즐겁다
[공유] 삶이 잔인하게 느껴질 때 







메론 아이스크림이 제일 맛있고, 그 다음으로 맛있는 게 딸기 아이스크림, 가장 맛이 떨어지는게 초코 아이스크림이라고 가정해보자.



 



만약 어떤 사람이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지내오다 사정상 초코 아이스크림밖에 먹을 수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 딸기 아이스크림은 진짜 맛있었는데 이 초코라는건 먹어보니 좀 별로네."



 



하지만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초코 아이스크림만을 먹었던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와, 세상에 이런게 다있구나. 초코아이스크림이라니 정말 맛있네."



 



그러나 초코가 최고인줄 알았던 사람은 딸기를 먹을 경우 생각이 바뀌게 되고, 메론을 먹을 때면 최고의 맛을 깨닫게 된다.







이 조건에서 드러나는 슬픈 사실은, 평생 초코만 먹고 살아왔던 사람은 메론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사람이 메론이 제일 맛있다고 말할 때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그는 누가 무슨말을 하든 초코를 '가장 맛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나의 회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만약 내가 메론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삶의 가치가 사실 초코에 불과한 것이었다면? 그리고 평생 그것을 메론이라고 착각하고 살다 죽으면? 아니면 어느 순간 그것이 딸기나 초코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된다면? 그럼 나한테 '메론'은 뭐지?



 



삶의 제한된 조건, 부족한 경험, 부족한 지식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본질을 똑바로 볼 수 없게 만든다.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메론은 진짜 당신의 메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그것은 내일 당장 당신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 순간 초코가 되어버릴 수 있도 있는것이다.



 



이런 문제는 누군가를 설득할 때에도 발생한다. A라는 사람은 초코-딸기-메론의 모든 경험을 다해봤기 때문에 메론이 가장 이상적인 선택지라고 말하지만, B라는 사람은 초코밖에 맛보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A의 말이 다 사실임에도 그것을 순전히 '견해의 차이'라고 치부한다.



 



이 상황에서 A는 무슨 말을 아무리 할지라도 B를 설득시킬 수는 없다. B는 분명 언젠가 딸기와 메론을 체험하게 될 경우 A와 똑같은 생각을 할 것임이 틀림없지만, 그런 경험을 아직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자신의 초코를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한 본질'이란 무엇인지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메론을 먹다 딸기를 먹게 되어 실망한 사람과, 평생 초코만을 경험했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 존재할 경우, 우리는 후자의 조건이 더 많은 행복을 보장하기 때문에 그것이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 여겨야할까? 아니면 오히려, 그것은 우물안 개구리의 삶에 불과하기 때문에 가장 가치가 없다고 해석해야할까? 







그렇다면 최고의 가치란 무엇인가? 메론을 먹는 삶만이 본질적으로 '가치'있는 삶이고, 평생 딸기만 먹어 행복하다거나 평생 초코만 먹어 행복한 사람의 삶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 삶일까? 메론을 경험한 누군가가 초코밖에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에게 사실 인생에는 메론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한 외침에 불과하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누가 더 진리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는가? 그저 둘 다 자신만의 진리 속에 살아가므로, 둘 다 옳은 삶을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출처] 딸기와 초코의 딜레마|작성자 테크






히피 선동가이자 미국 최대 노동조합의 창립자인 솔 알린스키는 한때는 고고학을 전공하던 학생이었고 알 카포네 밑에서 갱노릇을 하기도 했던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가 1970년에 어떤 지침서 한권을 출판했는데, 그 책에는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는데 필요한 열가지 전술 법칙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1) 힘이란 당신이 지닌 것이 아니라, 당신이 지니고 있다고 주위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이다.



2) 당신의 적이 자기 경험을 발휘할 수 있는 싸움터를 벗어나, 적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새로운 전장을 창안하라.



3) 적의 무기로 적을 쳐부수고, 적의 전술 지침에 나오는 요소들을 이용하여 적을 공격하라.



4) 말로 대적할 때는 익살이 가장 효율적인 무기다.



5) 어떤 전술을 상투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6) 적이 수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야 한다.



7) 실행에 옮길 수 없으면, 허세를 부리지 말아야한다.



8) 겉으로 보이는 단점은 가장 훌륭한 장점이 될 수 있다.



9) 승리를 거두었을 때는 그 승리를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승자의 몫을 차지할 수 있어야 한다.



10) 목표를 하나로 집중시켜야 하고, 전투 중에는 그것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알린스키 병법







연암이 청년 시절 우울증으로 한참 고생할 무렵, 민옹이라는 기이한 인물을 소개받는다.



민옹은 첨사벼슬을 지내다 그만두고 하릴없이 놀고 있는 괴짜 노인이다. 나이는 일흔 세 살, “민옹은 기이한 선비로서 가곡을 잘 부르고 이야기를 잘하는데, 말이 거침없고 기묘하여 듣는 사람치고 속이 후련해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연암은 민옹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단지 밥을 잘 먹지 못하고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것이 병입니다” 그러자, 민옹은 벌떡 일어나서 연암에게 경하한다는 예를 행한다. 연암은 깜짝 놀라며 말한다. “옹께서는 어찌하여 제게 축하를 하시는 겁니까?” 민옹의 진단은 이렇다. “그대는 집이 가난한데 다행히도 밥 먹기를 싫어하니 재산이 남아돌게고, 잠을 못 잔다면 밤까지 겸해 사는 것이니 다행히도 곱절을 사는 셈이야. 재산이 남아돌고 남보다 곱절을 살면 오복 중에 壽와 富 두 가지를 갖춘 거지.”

 

그야말로 통쾌한 전복이다. 한편으론 기막힌 유머요, 다른 한편으론 상황을 순식간에 역전시키는 역설이다. 유머와 역설, 이 두 가지 전략을 통해 거식증과 불면증이 졸지에 복의 근원이 되어 버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연암은 노론 벌열 가문 출신이다. 그 시대 최고 상류층에 속하는 셈이다. 하지만, 민옹은 결코 기죽지 않는다. 아주 당당하게, 연암 주변에 포진한 상류층 인사들의 통념을 가차없이 깨뜨려 버린다.

 

사람들이 물었다. 신선을 본 적이 있느냐고. 민옹은 답한다. “가난뱅이가 신선이지. 부자들은 늘 세상에 애착을 가지지만 가난뱅이는 늘 세상을 싫어하거든. 세상을 싫어하는 사람이 신선이 아니겠나?” 부자와 가난뱅이에 대한 기본 전제들을 뒤집어 버림과 동시에 신선에 대한 환상도 간단히 날려 버린다. 가장 평범한 것을 가장 비범한 것으로 바꾸는 역설적 수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다.

 -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



이하 ABC뉴스 전문.

 

 

미국, 루이지아나州에는 한 어린 아들을 둔 젊은 부부가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제임스 라이닝거.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비행기, 특히 전투기 장난감을 유별나게 좋아했는데

아이가 4살배기이던 어느날 아이의 엄마가 장난감 가게에 전투기장난감을 구경하러 갔다가

전투기 장난감을 만지작 거리던 아들에게

"참 멋진 비행기로구나, 미사일도 달려있네?"

라고 했더니 아들 제임스가

"엄마, 이건 미사일이 아니라, 비상연료탱크예요"

4살밖에 안된 어린 아들의 지식수준에 놀랐지만, 평상시 전투기 다큐멘터리를

자주 틀어줬던지라 그 다큐멘터리에서 얻은 지식인가 했지만, 그 다큐멘터리 비디오에는

 

비상연료 탱크에 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다.

 

 



 

* 제임스의 부모

그러던 어느날 늦은밤 아들 제임스가 악몽을 꾸는지 잠꼬대를 하면서 울어댔는데

그 잠꼬대 소리를 듣고 두 부부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비상사태발생! 비상사태발생! 적에게 격추당했다! 적에게 격추당했다!"

라는 마치 전투기 조종사가 실제 격추라도 당했다는 듯한 잠꼬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두 부부는 너무 놀라 예삿일이 아님을 감지하고 그 다음날 어느때와 다름없이

전투기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어린 아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격추당했고 결국엔 죽었어"

"'그'라니 그게 누구니?"

"'그'는 나야"

"누구한테 격추당했니?"

"일본군이야, 나는 NATOMA BAY에서 출격했던 조종사였어.

내 전투기는 '커세어'였지" 

 



* 나토마 베이(NATOMA BAY) - 태평양 전쟁 당시에 사용되었던 미군 군함

 

 



 

 

* 커세어(F4U Corsair) - 태평양 전쟁당시 미군이 주력으로 사용하던 F4U커세어 전투기

"나토마 베이라니 영어는 아닌듯한데"

"아무래도 일본어인것 같아요.."

"아니야 미국 군함이야"

"'그'의 이름은 뭐지?"

"제임스, 제임스 휴스턴이야. 난 잭 라슨과 가장 친한 친구였어"

아들이 대답한 '그'라는 존재의 이름은 놀랍게도 아들 제임스와 같은 이름이었고,

잭 라슨이라는 전우의 이름에 아버지 라이닝거는 아들이 하는 말이 단순한 장난

은 아닐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 라이닝거는 아들이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 태평양전쟁 당시의 상황을 인터넷으로 조사하게 되었다.

아들이 대답한 나토마 베이는 실제로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하던 전함이었다.

하지만 미국 태평양 전쟁에 참가했던 전쟁영웅들의 사망자 명단을 조사했지만, 잭 라슨이란

이름은 1만명 이상에 달하는 명단들중 단 한명도 없었다.


그리고 2002년 크리스마스,

제임스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군인 인형을 선물 받았다. 제임스는 인형에게 이름을

붙였는데, 각각 빌리와 레온이라는 이름이었다. 보통 정상적인 아이라면 파워 스네이크

라던가, 캐슬 나이트같은 만화에서 나올법한 이름을 붙이는 반면 제임스는 아주 평범한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왜 인형의 이름이 빌리와 레온인지 물었다.

이에 아들이 했던 대답은 놀라웠다.

"날 천국에서 마중나와준 친구들이야"

아버지 라이닝거는 예전에 조사했던 전쟁영웅 사망자 명단을 다시 한번 뒤져보았다.

그 사망자 명단 가운데, 아들이 말했던 나토마 베이에 있던 명단을 뽑아보니 18명의

명단이 나왔다. 그 명단들 중 눈에 띄는 두개의 이름.


빌리 피러

레온 코너


더 놀라운것은 두 사망자 모두 1944년 10월 25일에 사망한 병사들이었다.


그리고 2003년 2월경,

조사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무렵 아버지 라이닝거는 태평양 전쟁 영웅 모임회에

관련책을 낸다는 명목하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미 6~70 노인들이 되어버린 참가자들

과의 만남에서 라이닝거는 혹시 '잭 라슨'이라는 사람이 있을까 알아보았는데 놀랍게도

참가자중 한 사람이 '잭 라슨'을 알고 있다하여 잭 라슨의 집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잭 라슨은 제임스 휴스턴(아들의 전생 기억 속 병사)과 실제로 친분이 있었고, 그는

제임스 휴스턴이 쓰고 있었던 헬멧을 소지하고 있었다. 지금껏 있었던 아들의 일들을

설명해주자 잭 라슨은 흔쾌히 그 헬멧(천으로 된 헬멧)을 선물해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헬멧을 보여주자 어린 아들은 헬멧을 능숙하게 쓰며

"이건 이렇게 쓰는거야"

라며 아빠와 엄마에게 가르쳐주는 행동까지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잭 라슨이 가르쳐준 제임스 휴스턴의 여동생인 앤 바론의 집으로 찾아가

살아있을 당시의 제임스 휴스턴의 사진을 건네받았다.  

 



※ 제임스 휴스턴의 여동생 앤 바론氏와 故제임스 휴스턴氏의 사진


사진에는 놀랍게도

살아생전 제임스 휴스톤이 F4U 커세어앞에서 전우들과 찍은 사진들이 있었고,

사진을 본 아들 제임스는 아무말 없이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고 한다.


2009년 제임스에게 그때 있었던 행동과 말들을 기억하느냐고 물어보았지만

제임스는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한다. 단지 부모님이 말씀해주신 이야기를

통해 현재 장래꿈은 전투기 파일럿이 되는게 꿈이라고 한다.


이것이 전생이냐 아니냐보다 중요한 것은,

아직 이세상에는 인간이 과학적으로 설명할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나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 abc 뉴스





삶을 즐거워하는 것이 미혹 아닐까?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어려서 집을 잃고 돌아갈 줄 모름과 같은 것 아닐까? 미녀 여희는 애라는 곳 변경지기 딸이었네. 진나라로 데려갈 때 여희는 너무 울어서 눈물에 옷깃이 흠뻑 젖었지. 그러나 왕의 처소에 이르러 왕과 아름다운 잠자리를 같이하고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되자, 울던 일을 후회하였다네. 죽은 사람들도 전에 자기들이 삶에 집착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 장자 <제물론> 「여희의 후회」




세상이 미쳤는데 근엄하면 무엇하리

적당히 이름이나 감추고 술집에서 죽으리

아이가 태어나서 울기만 하는 것을 그대는 아는가

한번 세상에 떨어지면 만 가지 시름 다 겪는다네

- 조선 후기 시인이었던 하원 정수동의 <하원시초>에 나오는 <무제>이다.








自詠[자영]스스로 읊다

 

- 金炳淵[김병연]-

 

寒松孤店裡[한송고점리]겨울 소나무 외로운 주막

高臥別區人[고와별구인]베게 높이 누우니 딴 세상 사람

近峽雲同樂[근협운동락]산골짝 가까이 구름과 노닐고

臨溪鳥與隣[임계조여린]개울가에서 산새와 이웃하네

錙銖寧荒志[치수영황지]하찮은 세상 일로 뜻을 망치랴

詩酒自娛身[시주자오신]시와 술로 내 몸을 즐겁게 하고

得月卽帶憶[득월즉대억]달이 뜨면 옛 생각도 하면서

悠悠甘夢頻[유유감몽빈]유유히 단꿈을 자주 꾸리라







part2.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스펙은 휘발적이고, 스토리는 흡착적이다. 기억에 오래 남는 스토리는 기회를 부른다.
스펙에게 있어서 실패는 지우고 싶은, 지워야 하는 흔적이지만, 스토리에서 실패는 극적인 요소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스펙은 그 사람이 현재 갖고 있는 것만 알려줄 수 있을 뿐이지만, 스토리에는 그사람의 과거와 앞으로 나아갈 잠재성이 나타난다.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 김정태









질문자가 많아서 여는 이야기를 짧게 하고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200명이 방청객으로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그중 8명이 스님에게 직접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주 어렵게 고민을 말한다면서 성소수자로 태어난 자신을 소개하며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질문했습니다. 스님과의 대화를 시청한 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성소수자로 태어난 저는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수십 번 곱씹어 보고 망설이다가 답을 얻고자 질문을 드립니다. 저는 동성애자로 태어났습니다. 자살 기도 후에 여러 해 우울증을 겪었고, 여러 가지 시도 끝에 고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 지금은 평범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유튜브로 법륜스님을 뵙게 되어 말씀을 되새기고 올 해부터 108배 수행도 하면서 다시 사회 밖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보통 사람처럼 이성과 결혼하면 죄가 되나요? 그것이 안 된다면 성소수자로서 이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야 될까요?”


“내어놓기 어려운 얘기인데 어렵게 내놓아주셨습니다. 사람이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은 어떤 것도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피부 빛깔이나 국적, 성별 등은 태어남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지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 보니 피부 빛깔이 검은 것이지 ‘나는 검은색 피부를 가질래’ 하고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피부 빛깔이 검다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도 어긋나고, 진리에도 어긋나는 거예요.

태어남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어미개는 새끼의 털 색깔을 갖고 차별하지 않고, 동네 개들이 놀 때도 털 색깔을 갖고 차별하지 않습니다. 짐승도 안 하는 짓인데 인간이 이런 차별을 한다면 짐승보다도 못한 겁니다.

태어나 보니 여자이고, 태어나 보니 남자인 겁니다. 그런데 인류는 지난 3천 년 간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람을 차별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성으로 태어난 것은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렇다’, ‘하나님의 말을 안 들어서 벌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죄악시하는 것은 다 허구예요. 태어남에 의해 주어지는 것은 어떤 것도 좋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성별을 갖고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선택해서 한국 사람이 되거나 일본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태어나 보니 한국 사람이고 일본 사람이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민족을 갖고 차별해서도 안 됩니다.


한국 사람들은 종교를 본인이 선택하지만 세계 대다수 사람들은 종교가 선택이 아니고 주어지는 것입니다. 무슬림 집안에 태어나면 그냥 무슬림이 되는 것이지 본인이 ‘나는 무슬림이 되겠다’ 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대부분 종교를 선택하지만 세계 대다수는 종교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가 다르다고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태어나 보니 성이 김 씨, 박 씨 이렇게 주어진 것과 같아요. 이렇게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것을 갖고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차별하지 않는 것이 진실이고, 차별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차별에서 평등으로 가기 위한 인류의 마지막 과제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것 중에 소수라고 차별하는 것이 있습니다. 다수가 아닌 소수라는 그 한 가지 이유로 차별하는 것인데, 그 대표적인 것이 장애인입니다. 다른 사람과 똑같지 않다고 차별을 하는 겁니다. 장애는 약간 불편할 뿐이지 열등한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하나님이 벌을 주셔서 그렇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렇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장애인 차별을 합리화하는, 그릇된 관념입니다.


성애(性愛)도 자기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성애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은, 몸은 남성이지만 여성한테는 아무런 성애를 못 느끼고 남성에게 성애를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몸은 여성인데 남성에게 성애를 안 느끼고 여성에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것을 ‘동성애’라고 하죠. 이것을 옛날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했어요. 동성애는 뭔가 질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의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은 동성애는 소수이긴 하지만 태어남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차별해서는 안 되고, 죄악시해서도 안 된다는 것에 대해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소수 민족, 소수 종교 등 소수라고 차별받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 많은 차별이 평등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여성에 대한 차별은 성 평등으로 나아가고 있고, 신분에 대한 차별은 신분 해방으로 나아가고 있고, 인종에 대한 차별은 인종 차별 철폐로 나아가고 있는데, 아직도 사람들의 관념 속에 동성애에 대해서는 편견이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인류가 마지막으로 넘어서야 할 차별 철폐의 과제가 동성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차별 철폐 운동 중에 성소수자 문제가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남은 인간 해방의 과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이 가진 네 가지 성애

성애는 이성애와 동성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성애와 양성애도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4가지의 성애가 있습니다. 첫째, 이성애는 다수인데다 모두가 인정을 하니까 문제가 안 됩니다. 둘째, 무성애는 아무런 성애를 안 느끼니 문제 자체가 안 됩니다. 그러나 무성애자가 결혼을 하게 되면 심각한 갈등이 생깁니다. 결혼 생활을 해야 하는데 성에 대한 아무런 흥미가 없으니까요. 결혼 생활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이런 사람이 스님이나 신부님이 되면 오히려 장점을 갖게 됩니다. 스님이 되자마자 도인 취급을 받습니다. 그러나 체질적으로 그런 사람이 있기 때문에 성애를 안 느낀다고 도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겠죠.

무성애자는 출가를 하기에는 신체(유전적) 조건이 좋지만, 결혼을 하기에는 신체 조건이 나쁩니다. 이렇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조건이 좋게 작용하기도 하고 나쁘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머리가 많이 빠지는 사람은 스님이 되면 유리합니다. 머리를 깎기가 쉬우니까요. 그런데 세상에서 머리를 기른 사람들 무리에서 살기에는 머리가 많이 빠지는 것이 불리한 조건이 됩니다. 근본적으로 어떤 조건 자체는 유불리가 없습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유리해지기도 하고, 불리해지기도 하는 겁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호감을 느끼는 양성애도 사람들의 눈에 잘 안 띕니다. 이성애로 성적인 욕망을 충족하면서 동시에 동성애도 함께 갖고 있으니까 표시가 잘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밖으로 가장 표시가 많이 나는 것이 동성애입니다. 그래서 동성애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겁니다.


우선 본인 스스로 동성애는 병도 아니고, 하나님의 벌도 아니고, 전생의 죄도 아니고, 다만 소수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수의 부류에 들어가지 않는 소수일 뿐이에요. 소수이다 보니 세상을 살아가는데 좀 불편하죠.

첫째, 수행을 통해 자유로워지는 길

결국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첫째, 수행을 통해서 성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선택하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만약 질문자가 출가한 스님이 되면 고민을 안 해도 됩니다. 스님들은 이성애를 멈추는 수행을 하기 때문에 하물며 동성애도 당연히 멈추는 수행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동성애가 큰 고통이라면 스님이 이성애를 멈추듯이 질문자도 동성애를 멈추는 수행을 하는 길이 하나 있어요.”

“네. 사실은 제가 그 성적 욕구를 컨트롤하고 싶어서 108배도 해보고 명상도 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시적일 뿐 곧바로 성적 욕구가 또 들어오는 것을 반복하면서 자주 실패를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분명히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하는데, 왜 그렇게 성적 욕구가 자꾸 들어오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건 사람에 따라서 다릅니다. 이성애도 성적 욕구가 아주 강한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은 스님이 되어도 제어를 못 해서 말썽을 일으킵니다. 이성애가 약하거나 강한 것은 호르몬 분비와 같은 신체적인 요인과도 관계가 있어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면 성적 욕구가 강한 것이 자연스러운 신체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어떤 호르몬이 강해서 생기는 문제인지 알 수 있습니다. 호르몬이 불균형해서 생기는 문제라면 약간의 치료를 받으면 개선이 가능해요.

식욕이나 수면욕은 충족을 안 하면 죽습니다. 그런데 성욕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안 한다고 죽는 것은 아니에요. 자연에 있는 짐승들을 한번 보세요. 수컷이 암컷과 교미할 때 모든 수컷이 다 교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컷끼리 경쟁을 해서 이기는 수컷이 교미를 하거든요. 그래야 우수한 종을 번식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자연 생태계는 그렇게 유지가 됩니다.

그렇다고 나머지 수컷이 다 죽는 것은 아닙니다. 성애는 종족 번식에 필요하지만 그걸 행하지 않는다고 개체가 죽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마찬가지로 이성애나 동성애와 같은 성애도 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동성애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단지 이성애든 동성애든 모든 성애는 자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 필요합니다. 그래서 첫째, 수행을 통해서 성애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선택하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둘째, 성애를 표현하고 사는 길

둘째, 성애를 표현하는 것은 인간 세상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니까 성애를 표현하고 사는 길이 있습니다. 이성과 결혼하면 세상 사람들이 성애를 합법화 시킵니다. 이성애를 표현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서 정상적으로 봐줍니다. 그런 것처럼 동성애도 합법화가 될 거냐, 안 될 거냐 하는 문제입니다.

동성애는 이미 3천 년 전에 발견되었지만 부도덕한 일로 숨겨져 오다가, 의학의 발달로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안 밝혀졌지만 몸과 마음의 상태에서 오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상태입니다. 그래서 네덜란드나 북유럽 국가에서는 동성 결혼이 가장 먼저 합법화 되었습니다. 미국도 매사추세츠주를 시작으로 동성혼이 허용됐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동성애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받아들여져서 점점 개방이 되어가고 있는데, 한국 사회는 아직 일부 보수적인 종교에서 엄청나게 죄악시하고 있는 상황이죠.

그러나 동성애도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동성애를 더 이상 숨길 필요도 없고, 죄악시할 필요도 없습니다. 일부러 밝히고 주장할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내면적으로는 떳떳해야 합니다. 눈이 안 보이면 좀 불편할 뿐이지 열등한 것이 아닌 것처럼, 동성애가 주류에 속하지 않는 소수이다 보니 불편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어떤 죄도 아니기 때문에 죄악시하거나 열등의식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어요. 이 관점을 분명히 가져야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성애를 자연스럽게 커밍아웃을 해서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표현을 하는 길이 있어요.


동성애를 특별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이성애를 가진 남자도 여자를 다 사귀는 것은 아니잖아요.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야 연애를 하죠. 마찬가지로 동성애도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어야 연애를 하는데, 상대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연애를 못합니다. 이성애자도 상대가 마음에 들었을 때 그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귈 수가 없어요. 상대가 싫다는데도 접근하면 성추행이 됩니다. 그러니 동성애를 특별하게 보지 말고, ‘동성애라서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지도 마세요. 이성애도 똑같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서 고백을 했는데 상대가 싫다고 하면 포기해야 하듯이 동성애도 마찬가지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면 연애를 하면 됩니다. 성애를 갖고 차별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동성애자도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 동성혼이 합법화가 안 되어 있어요. 제가 유럽에 갔을 때 동성 커플을 만났는데, 이 분들은 한국에서는 동성혼이 인정되지 않으니까 유럽에 와서 살고 있었어요. 아무래도 낯선 나라에서 사니까 먹고 입고 생활하는 것이 한국처럼 편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더 이상 숨어서 살고 싶지는 않아서 유럽에 와서 산다고 하더라고요. 그것처럼 질문자도 동성애자라고 선전할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숨어 살 필요는 없습니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의 결혼에 대해

그런데 이성애자와 결혼을 하는 문제는 좀 생각해봐야 합니다. 동성에게 호감을 느끼는지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는지에 상관없이 육체적으로는 남성이니까 결혼을 하면 아기가 생깁니다. 아기까지 낳고 가정을 이루고 살면 사람은 누구나 다 다정하게 성애를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상대가 동성애자인지 모르고 결혼한 사람은 굉장히 힘들어 할 수밖에 없어요. 배우자가 자기에게 성애를 못 느끼고 목석같이 행동하니까 ‘나 말고 다른 여자를 두고 있느냐’ 이렇게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상대편 배우자 입장에서는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제가 상담했던 분 중에 아이 둘 낳고 살던 남편이 결혼 생활 중에 더 이상 숨기고는 못 살겠다고 커밍아웃을 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내인 여성분은 그 사실을 알고 나서 굉장히 힘들어했어요. 그러니 내가 동성애자로서 내 삶의 만족을 얻는 것은 좋은데,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줄 권리가 있느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동성애를 숨기기 위해서 정상적인 결혼을 해 놓고 자기 성애를 추구할 경우 배우자의 고통이 굉장히 커요. 그런 고통은 안 주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결혼을 꼭 하고 싶다면 오히려 내 상태를 솔직히 밝히고 결혼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부부 관계에 소극적이더라도 타고난 육체적인 이유 때문임을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밝히고, 상대방도 그에 동의했을 경우에 결혼을 하면 좋겠다 싶어요.”

아이를 갖고 화목한 가정을 이뤄도 될까요?

“저는 아이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라 성적 욕구를 잘 컨트롤해서 화목하게 가족을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사실 동성혼은 합법적인 것이 아니어서 제가 가족을 갖고 가족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정진하면서 살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당연히 있죠. 그런데 정진을 해서 성적 욕구를 다스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상대편이 사실을 알게 되면 나중에 파혼이 될 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질문자가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걸 받아들일 수 있는 여성을 처음부터 선택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신에 가정생활에 충실하겠다는 약속을 해야겠죠. ‘혼자 사는 사람도 있는데 성적 욕구의 문제는 정진을 통해서 개선해가는 방식으로 살겠다’ 이렇게 얘기하고 결혼하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한번 길을 찾아보면 좋겠어요.”

“네,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실 한국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어요. 아랍이나 다른 보수적인 국가에서는 동성애만으로도 사형을 당하고, 제가 조선 시대나 그전에 태어났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도 만족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한국 사회가 동성애자들을 조금 더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더디지만 그런 쪽으로 사회가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잘못된 편견으로 인해서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더 이상 죄악시해서는 안 됩니다. 동성 결혼도 합법화하는 시대이니까요.

한국에서 사는 길도 있지만, 질문자는 아직 젊고 자제하는 것이 도저히 어렵다면 오히려 유럽이나 동성혼이 합법화된 나라에 가서 사는 방법도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잖아요. 사람은 어디서든 자기의 행복을 마음껏 누리면서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결혼을 해서 생활하려면 인물이나 이런 거 너무 보지 말고, 나를 충분히 이해해줄 분과 만나서 비록 성애는 나눌 수 없지만 오히려 서로 사랑의 마음을 나누면서 감싸 안고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하면 좋을 것 같아요. 동성애를 숨기고 결혼을 하게 되면 나중에 가정 불화의 원인이 됩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남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려운 얘기를 해 준 질문자에게 박수 부탁드립니다.”


방청객 모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덧붙여 스님은 가정 안에서도 자녀가 동성애인 것을 포용하는 문화가 자리 잡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가정에서부터 포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부모들은 자식이 동성애라고 알렸을 때 놀라지 말고 충분히 아끼고 사랑해주고 경청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식이 이런 얘기를 하면 부모가 몸져눕고 난리를 피우고 하니까 말할 수 없는 자식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차별 없이 함께 존중하는 길로

태어남에 의해 주어진 피부 빛깔이나 성별 또는 성애를 두고 차별하는 것은 올바른 삶의 자세가 아니에요.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점을 우리가 인정해야 됩니다. 자신의 신념이나 종교, 이념 때문에 차별을 받았을 때 얼마나 큰 고통을 겪습니까. 아무런 잘못도 안 했고 남을 때린 것도 아니고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늘 죄지은 것처럼 숨어서 살아야 된다면 그렇게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죄악입니다. 대부분 숨기고 살아서 그렇지 우리 주위에도 100명에 1명 꼴은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족 중에 이런 분들이 있다면 서로 따뜻하게 감싸 안고 존중하고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과 만난 동성애> 출판을 기념하며, 먼저 간 벗들을 애도하는 예식에서 함께 목 놓아 울었던 그 자리를 기억하고,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농성장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온 10대 퀴어들의 울음소리를 기억한다”며 “당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방해하는데 앞장섰던 기독인들이 ‘형제님, 자매님’이라며 서로를 부르면서도 저를 밀쳐내고 ‘자매님, 더러우니 얼른 가서 손을 씻고 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기도 했던 그 농성장에서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고 말했다.
임보라 목사








"꽃잎 묻는 나를 보고 남들은 비웃지만,

훗날 내가 죽고 나면 묻어줄 이 누구인가.

하루아침 봄은 지고 홍안청춘 늙어가면,

꽃잎지고 사람 가니 둘 다 서로 알길 없네."



...



"삼생의 인연을 점칠 수는 없어도,

그리움에 근심만 쌓여가네.

​답답하여 이마를 찡그리고,

몇 번이고 돌아보던 모습 눈에 선하네.

이 몸은 바람 앞의 그림자,

어느 누가 월하노인1 대신해 주려나?

달님께서 내 마음과 같다면,

원컨대 임의 방을 먼저 비추소서."



...



가우촌은 시를 읊고서 평생 포부를 펴지 못하고 아직 고난 속에 때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며 큰 소리로 대구 한 수를 읊조렸다.



"구슬은 꿰 안에서 좋은 값을 구하고,

비녀는 장 속에서 때 만나기 기다리네."
- 홍루몽











めぐりあひて 見みしやそれとも わかぬまに 雲くもがくれにし 夜半よはの月つきかな

우연히 만나 보았는가 아닌가 모르는 새에 떠나버렸네 구름 뒤로 숨어버린 한 밤의 달과 같이

풀이하면 "(나는 너를) 우연히 봤는데, (너는 나를) 본 건지 못 본건지... 이건 뭐 구름 낀 날에 달을 보려는 것과 마찬가지구나. (보려고 하면 너는 구름 뒤에 숨어버리는구나.)" 정도. 소꿉친구로 추정되는 사람과의 짧은 만남이 소재지만 무라사키도 그렇고, 그 친구도 중급 귀족출신의 궁정 쪽 여인이라 허락없이 자유롭게 대면하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야만 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읊은 시라고 볼 수 있다.
 



    

맑은 달은 잠시 구름에 가린다 해도 나의 빛은 비치지 않는구나.

(澄む月の暫し雲には隠るとも 己が光は照らさゞらめや)

- 오시마 스미츠키


허무하구나, 모든 것이 폭풍 앞의 벚꽃이로다. 흩날릴 때까지는 한낱 봄날의 꿈일 뿐임을.
(あだに見よ誰も嵐の桜花 咲き散る程は春の夜の夢)
- 다케다 노부카츠


나머지는 땅에 맡기고 이 몸을 쉬리니, 꾸미지 않더라도 내 자신이 풍류로다.
(大ていは 地に任せて 肌骨好し 紅粉を 塗らず 自ら風流)
- 다케다 신겐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나니. 나니와(浪速)의 영화도 꿈속의 꿈이련가.
(露と落ち 露と消えにし 我が身かな 浪速のことは 夢のまた夢)
- 도요토미 히데요시



달과 꽃을 마음대로 다 보았으니 덧없는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겠는가.
(月花を心のままに見つくしぬ なにか浮き世に思ひ残さむ)
- 도요토미 히데츠구


기뻐하다가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든다. 덧없는 세상 꿈은 새벽하늘과 같네.
(嬉やと 再び覚めて 一眠り 浮世の夢は 暁の空)
먼저 떠나든 뒤에 남든 결국 같은 것. 함께 갈 수 없는 것을 이별이라 생각하네.
(先にゆき 跡に残るも 同じ事 つれて行ぬを 別とぞ思ふ)
- 도쿠가와 이에야스


승자도 패자도 한낱 질그릇이라. 깨지고 나면 원래의 흙으로 돌아가나니.
(討つ者も 討たれる者も からわけよ 砕けて後は もとの土塊)
- 미우라 요시아츠


삼십여세 수호인천 찰나일구 불조부전
(삼십여 나의 인생, 사람과 하늘의 뜻을 지켜왔으나 찰나의 한 구에 불조를 전하지 못하는구나)
(三十餘歳 守護人天 刹那一句 佛祖不傳)
- 사이토 요시타츠


무엇을 아쉬워하고, 또 무엇을 원망하리. 본디 이러한 운명이었던 것을.
(何を惜しみ 何を恨みん 元よりも この有様に 定まれる身に)
- 스에 하루카타


"흐림 없는 마음의 달을 앞세워 속세의 어둠을 비추고 가네"
"曇りなき 心の月を 先だてて 浮世の闇を 照してぞ行く"

한 점 흐림없는 이 내 마음 속의 달을 앞세워, 속세의 어둠을 밝혀가리라.
(くもりなき 心の月を先立てて 浮世の闇を 照らしてぞゆく)

- 다테 마사무네








"(말기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으며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던 중) 나중에 퇴원을 한 뒤에는 그보다 훨씬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따뜻한 햇살 아래의 아파트 단지에서 '감자'(작가 위지안의 아들)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가 공을 줍기 위해 놀이터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과속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가 공을 줍기 위해 놀이터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과속으로 다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아이를 향해 돌진했다. 쏜살같이 달려가 19킬로그램이나 되는 '감자'를 덥석 안아 들고 보행로 위로 올라왔다. '벌레 먹은 나무같이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뼈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이 불가사의한 일화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말한들 소용없을 것이다. 의학적으로는 절대 해명이 되지 않을 일이니까.맥도널드 (작가 위지안의 남편)에게 이야기해봤자, '왜 아이를 데리고 나가 둘 다 위험한 지경에 처했느냐'는 훈계만 들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우리 몸 속에는 어쩌면 우주에 필적할 만큼 거대한 힘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런 불가사의한 힘이 기적을 일으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 위지안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1. 단순정위(simple located)의 오류: 17세기의 뉴턴 물리학은 사물이 뉴클리드적 시공의 좌표상의 일정한 위치에 놓여있는 것으로 파악했던 것이며, 근대 과학 철학은 그들이 기초 개념으로 전제하고 있었던 <단순정위>를 구체적 사실로써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나 고립된 존재라는 것은 없다. 자족적인 존재라는 것은 없다. "모든 존재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인 것이어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필요로 한다.' 모든 사회는 보다 큰 사회 속에 존재한다.



2. 잘못 놓친 구체성의 오류(the fallacy of misplaced concreteness):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실재를 인식하려 한다면, 우리는 추상적 개념 체계들을 통해 인식을 시도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이분화' 혹은 새로운 종류의 '잘못 놓인 구체성의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실재의 구체적 사실로서 사건은 하나인데, 우리는 그것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객관적 자연과 주관적 정신 등 추상적으로 이분화하여 개념화하는 사유의 경향이 있는 것이다. 





세슘원자는 1초에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한다
- 베르그송





서양 철학이 가장 놓친 것은 존재being 그 자체이다.
...
하이데거는 미국이나 서양에 비해 (인터뷰를 진행 중인 중이 사는 나라인) 태국이 훨씬 더 고등한 문명이라고 지적한다.
- 하이데거



존재는 던져진
- 하이데거




영어에서 Religion은 힘, 물리력, 또는 근원과 reconnect (재접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 한편, 동양에서 종교(宗敎)는 하늘을 뜻하는 갓머리 아래 3개의 다리를 가진 상 위에 제물을 올려놓은 형상인 보일 시(示)를 써서 가르칠 교(敎)자와 결합하여 하늘을 경배하는 으뜸되는 이치를 가르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단, 종교란 구한말 일본에서 건너온 조어다. 표의문자인 한자를 쓰는 동아시아에서는 한자 속에 우주의 깊은 진리를 숨겨놓았다.)




Benedict Cumberbatch Reads Creative Blocks, Written by Sol LeWitt to Eva Hesse. 



Speech: 

​Just stop thinking, worrying, looking over your shoulder, wondering, doubting, fearing, hurting, hoping for some easy way out, struggling, grasping, confusing, itching, scratching, mumbling, bumbling, grumbling, humbling, stumbling, numbling, rambling, gambling, tumbling, scumbling, scrambling, hitching, hatching, bitching, moaning, groaning, honing, boning, horse-shitting, hair-splitting, nit-picking, piss-trickling, nose sticking, ass-gouging, eyeball-poking, finger-pointing, alleyway-sneaking, long waiting, small stepping, evil-eyeing, back-scratching, searching, perching, besmirching, grinding, grinding, grinding away at yourself. Stop it and just DO.




"신의 나라는 너무나 현실적이었습니다. 왜냐면 실제로 일어났으니까요. 하지만 제 머릿속이나 이 우주에서 일어난 일은 아닙니다. 신의 나라는 진짜였습니다. 이 세상보다도 더 현실 같았죠. 현재가 꿈입니다. (올더스 헉슬리나 알렉산더 슐긴이 메스컬린을 흡입하고 깨달은 바와 같이) 신의 나라의 핵심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습니다."

- 이반 알렉산더, 하버드 신경외과 의사





조조 같은 인물은 "도덕성이 개판이어도 좋으니 재능만 있으면 오라"는 유재시거(唯才是擧)를 외쳤습니다.



최진석
생각의크기
허무맹랑함
선진국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릴라 시바의 춤


불멸의 춤을


거울을 보십시오. 무엇이 보입니까? 사회적 규범에 얽매여 억지 미소를 짓고 있는 지루한 영장류 한 마리가 서 있을 겁니다. 당신은 지쳤고, 외로우며 무엇보다 평범합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여기 당신의 그 진부한 삶을 모욕하고 동시에 구원할 유일한 대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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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


뇌졸증을 겪었던 하버드 대학의 질 볼트 테일러 박사는 어느 날 좌측 뇌의 혈관이 터지면서 우측 뇌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우뇌가 공간, 시각적, 예술적 기능을 담당한다면 좌뇌는 언어적, 분석적, 논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그녀에 따르면 우뇌로 바라본 세상은 마치 온세상의 에너지가 흐르며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이 연결되는 아름다운 세상이었다고 한다. 아폴로 14호의 비행사였던 에드가 미첼이 지구 밖을 벗어났을 때 자신이 우주와 연결되어 있고, 모든 존재가 신성한 목적 하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던 말과 유사하다.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교수이자 메릴랜드 정신과 연구소 소장을 지낸 스타니슬로프 그로프의 LSD 세션에 참가한 사람은 자신의 체험을 이렇게 묘사했다.



"생명과 동화되면서 나는 자연과 인류에 작용하는 모든 파괴적 힘을 체험하고 탐험했으며, 지구를 더 살기 편하게 만들겠다고 몰아치는 현대 과학기술 속에서 그 힘이 더욱 강화되어 투사되는 광경을 보았다. 나는 현대전 무기의 무수한 희생자 전부였고, 강제수용소 안 가스실에서 죽어간 포로였고, 독성 폐수에 오염된 물고기였고, 제초제로 시든 초목이었고, 살충제를 뒤집어쓴 벌레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웃는 아기, 모래 위에서 노는 귀여운 아기, 갓 태어난 네발짐승, 정성껏 지어진 둥지에서 막 부화된 새, 맑고 투명한 바다 속을 누비는 영리한 돌고래와 고래, 아름다운 목초지와 숲 등의 감동적인 영상들이 중간중간 떠올랐다. 나는 생명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꼈고, 생태학적 인식이 투철해졌으며, 지구의 생명을 보살피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혜암 큰스님이 직접 겪으신 관음 가피력

이 이야기는 혜암 큰스님께서 직접 하신 이야기입니다. 여기 혜암 큰스님은 얼마전 열반에 드신 종정스님이 아니십니다. 근대 선종사에 큰 획을 긋고 오래전에 열반에 드신 큰 스님이십니다.

간단히 혜암스님에 대해 말씀드리고 글을 쓰고자 합니다. 혜암스님은 1886년에 황해도에서 3대독자로 출생하셔서 1900년 15세때 보암스님을 은사로, 금운스님을 계사로 득도하셨다 합니다. 만공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으셨으며, 1984년 100세의 고령으로 미국 서부에 있는 능인선원의 봉불식에 참석, 대한항공 역사상 가장 고령 탑승객으로 기록되기도 하셨습니다.
1984년말에 설립된 덕숭총림의 초대방장으로 초대 되셨으며 1985년 101세(법랍89세)로 열반에 드셨습니다.

「신유년 여름이었다. 그러니까, 내가(혜암스님) 금강산 마하연에 있을때의 일이다. 대중이 몹시 웅성거려 나가보니, 얼굴이 잘생긴 어떤 청년이 목에 연두창이 터져 피고름과 함께 마치 송장이 썩는 것처럼 냄새가 지독하였다. 그래서 내가 그를 보고 "병원에 입원이나 하지 그 몸으로 뭐하러 다닙니까?" 하니 "예 제 직업이 바로 의사입니다. 영국에서 <곱살바>라는 부인이 공부를 시켜 그분을 모시고 병원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병이 생긴뒤로 나는 물론 그 부인도 병을 고칠 수없어 이제는 완전히 체념하고 폐인으로 떠돌아 다닌 실정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기를 "기독교에 이런 말씀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그 환자가 기독교인이였는 듯함) 부처님 말씀에는 <한정된 목숨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병에 걸린 것은 신심이 철저하고 독실하면 고칠 수 있다.> 하였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해 보겠습니까?" 하니, 그는 "이미 버린 목숨이니 하다가 죽어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그를 스님으로 만드니 대중스님네는 냄새 때문에 같이 못있겠으니 데리고 나가라고 야단들이었다.

나는 그런 비방과 구설을 다 참고 내 방을 비워주면서 그에게 말했다. "그대는 이대로 살기 틀렸으니, 일심으로 <관세음 보살>을 지성껏 불러라. 병을 고치고 못 고치는 것은 오직 그대 정성과 결심에 달렸다." 고 일렀다. 한동안 나는 그의 동정을 살펴 보았다. 그는 밤을 새워 가며 눕지도 아니하고 오직 일념으로 <관세음 보살>만 부르고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은 반드시 병을 고칠 수 있겠다고 생각 했다. 한 반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꿈을 꾸었다. 소복으로 단장한 젊은 부인이 어린애을 안고 있는데 그 애는 자꾸만 <아미타불>을 부르고 있었다. 꿈 속에서도 하도 신기하여 "어쩌면 저렇게 어린애가 염불을 잘 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더니, 그 부인이 "왜 귀찮게 구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는 부인에게 다가가서 그 병을 고쳐 주십사 하고간청을 하였다.
그때 그 부인은 손가락으로 그의 목을 꼭 눌렀다. 그러자 마자 달걀 같은 것 두개가 목에 축 늘어져 달려 있는 것 같았다. 부인은 가위로 그것을 자르려 하였다. 그러자 그가 말 하기를 "그 가위를 잘 소독하고 잘라 주십시오"하니 부인은 "너는 지금까지 의사 하던 버릇으로 그런 소리를 하지마는, 이 가위는 원래 독이 없는 것이다." 하고, 그 혹 같은 것을 잘라 주었다.

그는 다시 "이 겨드랑의 것도 잘라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그것은 아직 그대로 두어라." 하였다. 그리고는 이내꿈을 깨었다. 그뒤로 그 종기는 피고름이 차차 멎고 병이 아주 나았다. 이렇게 병을 고친 그는 내 첫 상좌로 법명은 동일(東日)로 지금은 이북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영험담은 밀알 출판사에서 나온 "벼랑끝에 서서 길을 묻는 그대에게"라는 큰스님의 법문책에 나와있는 글입니다.

혜암 큰스님의 오도송으로 끝을 맺겠습니다. <어묵동정> 한마디 글귀를 누가 감히 손댈 것인가. 내게 말도 침묵도, 움직임도 움직이지 않음도 여의고 한마디 이르라면, 곧 <깨진 그릇은 서로 맞추지 못한다.>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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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세음보살님의 중매

근세 조선 순조 7년(1819)때의 일이다 경기도 고양군 신도면에 몹시 가난한 집이 있었다. 이 집에는 나이가 30 살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윤덕삼(尹德三) 이라는 노총각이 있었는데 70 을 넘은 부모를 모시고 나무장사를 하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매일 첫 닭이 울면 나무짐을 짊어지고 나서는데 나무장사를 할지라도 촌 사람을 상대로 할 수가 없는 까닭으로 서울장안에 들어가 도시사람을 상대로 하여야만 팔기가 쉬웠다 서울을 왕래하자면 구파발을 거쳐 서대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편리하나 서대문 거리는 경쟁이 서로 심하여 발 붙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지금의 서대문 밖 무학재 너머에 있는 홍제동에서 왼편으로 개천을 끼고 세검정을 향하여 넘어가기가 어려운 자하문을 넘어 들어가야만 쉽게 팔고 돌아오게 된다. 그러므로 매일같이 이길을 택하여 다녔다 농사 한마지기도 없이 춘하추동에 나무장사로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하다가는 만년 총각으로 장가를 들지 못하고 늙을 일을 생각하면 괜히 마음이 슬퍼졌다 더우기 그는 3대 독자 외아들이였다. 만일 정말로 장가를 못가게 된다면 자손이 끊기게 되므로 부모님께 참으로 죄송한 일이었다. 윤덕삼은 이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나 별도리가 없었다.

어느날 그는 나무짐을 지고 세검정을 향하여 가는데 귀에 서투른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다리도 아프고하여 나무지게를 내려놓고 바라보니 옥천암이라는 절에서 들려오는 것있었다 .그런데 그 절 아래 개천옆에는 높이 수십척이 되는 바위가 문도 없는 편각속에 있는데 거기에는 크게 부처님의 형상을 조각한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부처님 앞에서 수십명의 여자신도들이 스님들과 함께 향불을 피우고 제사지내듯 메를 올리고 절을 한고 있었다 >

그 전에도 이를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으나 으레 스님들이 하는 것이거니 하며 무심히 지났으나 이날은 이상하게도 의심이 생겼다 "저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저런 것을 할까? 저렇게 하면 돌부처가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 주는 것인가?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똑똑한 사람도 마음데로 못하는 일을 한 걸음도 걷지 못하는 바윗돌이 무슨 재주가 있어 사람들을 도와준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과 회의에 잠겨있는 동안에 할머니들이 불공을 마치고 건너온다 덕삼은 한 노인일 향해 물었다 "저 바위에 새겨놓은 부처님은 누구며 할머니들은 무엇 때문에 거기에 대고 절을 하고 빕니까?" "이 총각 나이는 많이 먹었어도 무식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구먼 저 바위에 새긴 것은 해수관음이라는 관세음보살이신데 이 어른은 동해,서해,남해할 것 없이 모든 바다 언덕 위에 계시다는 보살님일세.

이곳은 바다는 아니지만 개천가인 까닭으로 멀리 바다에 가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인연을 맺으라고 해수관음불상을 새겨 놓았지. 그런데 영험이 대단하여 저 보살님께 정성을 들이면 틀림없이 소망을 다 이룬다네". 덕삼은 이 말을 듣고 다시 물었다 "그렇지만 돌부처가 무슨 신통이 있어 사람의 소원을 이루어 주겠습니까? "그것은 모르는 말.돌부처라도 그냥 바위가 아니고,부처를 새겨 모신 바위이기 때문에 사람이 이름을 부르고, 지성으로 마음을 모아 빌면,부처의 신령이 천리 만리라도 걸림없이 오셔서 정성을 받고는 소원을 이루어 주는 것일세.

그러기에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정성이 부족하고 믿는 마음이 부족하면 그런 사람에겐 그저 돌 바위만 보이지만, 마음이 참되고 정성이 지극하면 모든 것이 모두 부처이고,드는 것이 모두 불경소리인지라. 무정한 돌도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변신해 나타나는 것일세.

그러므로 소원을 이루고 이루지 못하는 것은 그 돌부처께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믿는 사람의 정성과 신심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일세" "참으로 그럴까요?" "그렇고 말고. 이절에 다니는 신자가 수백명인데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거야 새상에 무슨 할 일이 없어서 갖은 고생을 해가며 이 험한 산골짜기에 올라와 정성을 드리겠는가 생각을 해 보게.

그러기에 여자들은 마음이 간절해서 철저히 믿기 때문에 소원을 이루기가 쉽지만 자네같은 총각은 남자라 마음이 엇갈리어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빌어도 건성으로 빌 것이니 어려울 것일세. 그럼 난이만 가네" 노인은 이렇게 말하고는 어데론가 가버렸다 온갖 고생을 거듭하고 쪼들릴대로 쪼들린 윤총각은 귀가 번쩍 트이는 것 같았다.

그 다음날부터 그는 이 곳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길가에 나무짐을 버티어 놓고 건너가서 해수관음에게 수십 번씩 절을 하고 마음속으로 축원하였다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이시여! 어서 제가 장가를 들어 자손을 보고, 부자가 되어서 나무장사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그러나 예배만으론 시원치가 않아 점심밥으로 먹을 도시락을 나무짐에서 꺼내어 가져다가 올리고 다시 절을 하였다. 도시락이라 하여도 보리밥 아니면 조밥이요 게다가 된장 덩어리가 끼어 있어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도 가난뱅이가 이러는 것은 너그러이 용서하시고 받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윤덕삼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나무짐을 지고 오갈때마다 그와 같이 하였다.
이렇게 백일을 하고 나니, 비록 돌부처라고는 하지만 어머니 마냥 친해져,보기만해도 다정함을 느꼈다 이제는 부끄럼없이 처다보고 농도 하고 어리광을 부릴 수 있을것 같았고,그만하면 자기 소원도 들어 줄 만도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생활에는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모두가 허사인듯 야속한 마음도 가끔 들었으나 자기의 정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언젠가는 자기의 소원을 들어 주리라 믿었다.그럭 저럭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날이 되었다.

그 날도 나무를 성안에 팔고 돌아오는 길에 윤덕삼은 해수관음에게 들렸다.그런데 마침 비가 쏟아져 나갈 수가 없었다 덕삼은 문도 없는 관음각에 홀로 앉아 있다가 심심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여 '우물꼬누'를 커다랗게 그려놓고 관세음보살님께 꼬누를 두는 내기를 하자고 말했다. "관세음보살님,이제 저와 같이 내기 꼬누를 둡시다. 저는 이길 자신이 있으니,만일 제가 이기면 관세음보살님이 그 댓가로 저의 소원을 들어 주셔야 합니다" 덕삼은 꼬누를 두기 시작했다.

우물꼬누란 첫 수에 이기고 지는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덕삼은 조약돌 두 개를 주어다가 하나는 제 것이라 하고,하나는 관세음보살님 것이라 몫을 정해 놓고,혼자 천진스럽게 두었다. "그럼 제가 먼저 두겠습니다" 첫 수에 관세음보살님을 이겨 버렸다.그리고 관세음보살님을 우러러 보면서 기원드렸다. "관세음보살님! 분명히 보셨지요? 꼬누는 분명 제가 이겼습니다.
그러니 내일이라도 속히 저의 소원을 꼭 성취시켜 주셔야 합니다" 덕삼은 이렇게 말을 하고 비가 그치자 지게를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꿈에 거룩하게 생긴 늙은 부인이 나타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해수관음을 모시고 있는 옥천암에서 온 보살이다. 너의 정성이 하도 갸륵하여 너에게 도움이 될 말을 일러 주러 왔다.
너는 내일 첫 새벽 닭이 울 때에 나무짐을 지고 떠나서 밤이 새기 전에 자하문 밖에 가서 기다리고 있거라. 그리하여 문이 열리면,첫번째로 나오는 여자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거라. '남녀가 유별한데 먼저 말하기는 미안하지만,어디로 가시는 누구이신지는 모르지만 가시는 곳을 가르쳐 주시면,제가 안내하여 줄테니 저를 따라 오십시오'라고 이야기 하고 그를 너의 집으로 인도하면 너의 소원을 이루게 될 것이다" 꿈속일망정 덕삼은 하도 좋아 "고맙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다짐을 나누며 깨어 보니 분명한 꿈이었다.

윤덕삼은 곧 이어 뒷집에서 첫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자 바뿌게 옷매무새를 고치고 밖으로 나왔다 나무 짐을 지고 집을 나오려 하자 어머니가 물었다 "애야,오늘은 먼동도 트지 않았는데 벌써 나가느냐?" "네,오늘은 누구를 일찍 만나야 하기 때문에 일찍 나갑니다" 빈 속에 나무 한 짐을 지고 바뿐 걸음으로 삼십리를 걸어 자하문 밖까지 올라가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희망에 들뜬 몸이므로 배고픈 것도 무거운 것도 다 잊고 단숨에 자하문 밖에 이르러 나무짐을 괴어 놓고 보니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다행으로 여기고 먼동이 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 틈으로 하얀 버선을 신은 발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관세음보살님이 거짓말은 하지 않으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하고 있는데 마침 문이 열렸다.제일 먼저 보자기로 싼 것을 머리에 인 여자가 쏜살같이 세검정으로 내려갔다.

덕삼은 나무짐과 지게를 버리고 종종걸음으로 쫓아 내려가 소매를 붙들고 꿈 속에서 일러주신 대로 하였다 "놀라지 마십시요.남녀가 유별한데 먼저 붙잡고 말하기는 실례인 줄 아오나 어디로 가는 낭자이신지 제가 길 안내를 해 드리겠습니다" 새침하게 톡 쏘고 말대답도 하지 않을 줄 알았던 그 어여쁜 낭자는 뜻밖에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저는 윤도령이란 총각을 만나려 갑니다" 윤덕삼은 너무나도 뜻밖이라 눈이 휘동그래져서 물었다. "제가 윤총각인데요? "네? 그러세요. 저는 심낭자입니다.그런데 어떻게 알고 나오셨나요?" "이리 오실 줄 알고 마중 나왔습니다.간 밤의 꿈에 어떤 점잖은 부인이 나타나 말씀하시길,'너는 장안에 있는 낭자를 만나게 될터이니 잘 보살펴주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첫 닭이 우는 새벽 마중을 나오게 된 것입니다." 제게도 그런 부인이 간밤의 꿈에 나타나 말씀하시길 "네가 자하문을 나가면 첫번째로 어떤 사나이를 만날 터인데 그는 윤도령이라는 총각이다.
그는 심덕이 좋아 따라가도 해롭지 않을 것이니 따라 가거라" 하시길래 그 말씀을 기억하여 여기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꿈이 같을 까요?" "그게 다 천생연분인 까닭입니다" "아이 망칙해라" "망칙하기는 무엇이 망칙합니까? 세상 만물에는 다 임자가 있고,짝이 있는 법인데..." 두 사람은 초면같지 않게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나란히 내려왔다. 어느덧 절 가까이 왔다.

"여기서 잠깐 쉬어 갑시다" 덕삼은 심낭자를 관세음보살상 앞으로 인도했다 "자,우리 오늘의 일을 감사하기 위해 부처님께 절을 먼저 합시다" 절을 하려고 관세음보살님 앞에 선 심낭자는 깜짝 놀랐다 "어머나! 이분은 간밤의 꿈에 뵙던 분과 얼굴이 꼭 같습니다" "그래서 절을 하자고 한 겁니다.우리의 인연은 관세음보살께서 맺어주신 것입니다" 덕삼은 몇 번이고 절을 하며, 감격하여 어쩔 줄 몰랐다. "감사하니다.관세음보살님!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님!" 그런데 심낭자는 어찌된 사람인가? 그녀는 명문대가의 규수로 열여덟 살에 어떤 양반의 집으로 출가하였다.그러나 연분이 아니 였는지 신랑이 혼례 즉시 보기 싫다고 퇴박을 하였다.
그리하여 3년을 기다리다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돌아와 7년,10년을 동안을 수절하며 남편의 개심을 기다렸으나 아무런 소식도, 희망도 없었다.
그러니 말만 시집갔지 처녀나 다름이 없었고 그렀다고 평생토록 수절하며 혼자 지낼 수도 없었다.

또 버젓이 개가할 수도 없는 처지라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어디론가 아무도 모른는 곳으로 길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딸이 불쌍하기만 했던 그의 어머니는 귀중한 금,은, 보석,산호,비취 등을 한 보따리 싸주고 눈물을 흘리면서 인연에 따라 마음대로 집을 떠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심낭자는 스물 여덟 살 되던 해에 길을 떠나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날밤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말씀하시길 "너는 다른 문으로 나가지 말고 자하문으로 나가되, 문이 열린 후 첫번째로 만나게 되는 윤총각이라는 남자를 따라가면 행복하게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를 들은 윤덕삼은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실감하고 더없는 고마움과 행복을 느꼈다.

이를 들은 윤덕삼은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실감하고 더없는 고마움과 행복을 느꼈다.윤총각은 날을 받아 일가친척을 모아 놓고 간단하게 혼례를 치루었다. 그리고 심낭자가 가지고 온 패물을 팔아 집과 논밭을 마련하고 또 산도 사서 아들 딸 낳고 평생부자로 큰 살림을 벌리니 신도면 일대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다. 그의 후손들도 역시 독실한 믿음을 가지고 근래에도 그의 5대손이 이러한 인연으로 불공기도 다니며 선조의 이야기를 전하였다.

출처/청신남 청신녀 (우리출판사)


스와미 비베카난다는 공중부양이나 물 위를 걷는 기적에 대해 이렇게 일침을 날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30년 동안 고행을 해서 물 위를 걷는 능력을 얻었다고 치자. 하지만 그 능력의 가치는 고작 '배 삯 1센트'에 불과하다. 1센트만 내면 누구나 배를 타고 물을 건널 수 있기 때문이다. 30년의 노력을 고작 배 삯 1센트와 바꾼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라마크리슈나를 비롯한 인도의 진짜 대성자들은 초자연적 능력(이를 '시디, Siddhi'라고 합니다)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도 영성주의의 거장인 스와미 비베카난다는 공중부양이나 물 위를 걷는 기적에 대해 이렇게 일침을 날렸습니다.



질문하신 조셉 캠벨(Joseph Campbell)의 명언은 그의 생애 가장 유명한 인터뷰이자 다큐멘터리인 《신화의 힘 (The Power of Myth)》에 등장합니다.

인터뷰 진행 연도: 1985~1986년 (조셉 캠벨이 타계하기 직전 빌 모이어스와 진행)

원전 출간 및 방영 연도: 1988년 (다큐멘터리 방영 및 동명의 책 출간)

캠벨의 핵심 메시지:
"종교적 상징을 역사적 사실(Concretization)로 오해하면 종교는 타락한다.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거나, 마리아가 생물학적으로 처녀 임신을 했다는 것을 '사실'로 믿는 순간 신화의 진짜 영적 메시지를 잃어버린다. 지옥 역시 지하에 있는 니켈이나 광물층 같은 물리적 장소가 아니다. 지옥과 천국은 바로 지금,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심리적 상태다. 신화의 상징을 은유(Metaphor)로 읽어야지, 현실의 역사로 읽어서는 안 된다."





고독 속에서, 내가 너무나 많은 인간애를 누르고 있음을 느낀다. 내게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찢어진 치약 튜브처럼 배어 나온다. 내 몸에 머물고 싶어 하지 않는다.

- 잉마르 베리만, 영화감독으로 영화를 기획하고 각본을 쓰고자 포뢰섬에 칩거하곤 했다.


거화취실





새로운 형태의 기억 저장 장치들에 대한 불안감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인쇄된 책들 앞에서, 5백 년이나 6백 년 이상 견뎌 내지 못할 것 같은 종이를 보면서, 이제 그 물건이 루터의 <성서>처럼 모든 사람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최초의 구입자들은 아직도 양피지에 쓴 필사본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 위해 손으로 첫 글자들을 세밀화로 장식하는 데 엄청난 돈을 낭비하기도 하였다. 세밀화로 장식된 15세기 이전의 초판본들은 요즈음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싸다. 하지만 사실 인쇄된 책들은 세밀화로 장식할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는가? 문자, 인쇄술, 전자 메모리칩의 발명으로 인간은 무엇을 얻었는가?



언젠가 발렌티노 봄피아니는 <글을 읽는 사람은 두 사람의 가치가 있다>는 명언을 유행시켰다. 출판인의 이 말은 단지 우연히 핵심을 찌른 슬로건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내 생각으로는 문자(일반적으로 언어)가 인간의 삶을 연장시켜 준다는 의미이다. 인류가 최초로 의미 있는 소리들을 내뱉기 시작한 이래, 종족과 가족들은 노인들을 필요로 하였다. 아마 그전에는 노인들은 소용이 없었고, 더 이상 사냥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버림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와 함께 노인들은 바로 인류의 기억이 되었다. 그들은 동굴 안에서 불가에 앉아 젊은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또는 신화의 기능이 그렇듯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이러한 사회적 기억을 축적하기 이전에는, 인간은 아무런 경험도 없이 태어났고 경험을 쌓기도 전에 죽었다. 그런데 이제 스무 살 젊은이가 마치 5천 년을 산 사람처럼 되었다. 자기보다 이전에 일어난 사건들, 그리고 노인들이 전에 배웠던 것이 자기 기억의 일부가 되었던 것이다.



오늘날 책은 바로 우리의 노인이다. 우리는 미처 고려하지 않지만, 문맹인 사람(또는 문맹은 아니지만 책을 읽지 않는 사람)과 비교해 볼 때 우리가 더 풍요로운 이유는, 그 사람은 단지 자신의 삶만 살아가고 또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우리는 아주 많은 삶들을 살았다는 데 있다. 우리는 어릴 적의 놀이들과 함께 프루스트의 놀이도 기억하고 있으며, 우리 자신의 사랑 뿐만 아니라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사랑에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솔로몬의 지혜에서 무엇인가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었고, 바람 부는 세인트헬레나 섬의 밤들에 대해 전율을 느끼기도 하였고, 할머니가 들려준 동화들과 함께 세에라자드가 이야기해 준 것을 다시 반복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이 모든 것에서 방금 태어난 우리가 이미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늙어 버렸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문맹인(원래 그렇건 책을 읽지 않아서 그렇건)은 우리보다 더 늙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동맥 경화증으로 고생하고, 로마 달력의 3월 15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고대 로마의 첫 황제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에게 암살당한 날) 기억하지 못한다(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에). 물론 우리는 거짓말도 기억할 수 있지만, 읽기는 거짓말을 구별하도록 도와준다. 문맹인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도 모른다.



책은 생명 보험이며, 불사(不死)를 위한 약간의 선금이다. 물론 그것은(오, 세상에) 앞으로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뒤로 죽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질 수는 없다.



1991

움베르토 에코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내게 오라



장자의 '붕(鵬)'과 연결: 장자는 《소요유》 편에서 9만 리를 날아오르는 거대한 새 '붕'의 이야기를 합니다. 작고 좁은 시야에 갇힌 이들은 이 거대한 새를 이해하지 못하듯, 초장왕의 3년 침묵을 단순히 '방탕'으로 본 신하들과 그것을 '도약의 준비'로 본 왕의 시각 차이는 '장자적 통찰'과 궤를 같이합니다.







《사기(史記)》 〈골계열전〉과 《여씨춘추》 등입니다. 장자의 철학적 배경과 맞물려 '큰 인물은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자주 인용되기 때문에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과 내용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이야기의 배경 (초나라 장왕)
초나라의 장왕은 즉위 후 3년 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고 밤낮으로 술과 여자, 음악에 빠져 방탕하게 지냈습니다. 심지어 왕에게 간언하는 자는 죽이겠다고 엄포를 놓았죠. 이를 보다 못한 신하 오거(伍擧)가 왕을 찾아가 수수께끼를 냅니다.

"언덕 위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는데,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이 새는 도대체 무슨 새입니까?"

2. 장왕의 대답
왕은 오거의 수수께끼를 단번에 알아차리고 이렇게 답합니다.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니, 한번 날면 하늘까지 솟구칠 것이다(蜚將沖天). 3년 동안 울지 않았으니, 한번 울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鳴將驚人)."




제프 베조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직관, 본능, 심장에 의해 이뤄진다; 아마존 성공의 제1비결은 경쟁자가 아닌 고객에 집중했기 때문; 아마존 초창기에는 내가 직접 우체국에 가서 택배를 보냈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기회가 IT 비즈니스가 몰려있고, 아마존 웹서비스(AWS)는 7년동안 경쟁자가 단 하나도 없었다






독자들이 뜻깊은 만남을 가지고 싶다면 나는 다가올 일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우리들이 내린 가장 좋은 결정은 흔히 말하는 직관에서 온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일을 하면 될 것이다. 인생에서 특별하게 일어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일어나고 말기 때문이다.
- 마이클 뉴먼
 





나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그런 결정은 다소 두려운 것이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한 가장 훌륭한 결정중 하나였습니다. (…)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것들에--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나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내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 스티브 잡스 2005년 연설문 中





지상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천국을 인식하고 사는 것이다. 천국을 모르는 삶은 완벽함에 대한 억압된 갈망의 노예가 되는 삶이고, 그 완벽함은 천국의 존재를 아는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 임사체험을 경험한 뒤 인생이 극적으로 바뀐 의학박사, 이븐 알렉산더 <나는 천국을 보았다 두번째 이야기> 中







If it's not yours, it's not good to be there.

And if it's yours, it will stay with you forever.

- 딸 아이에게 해준 어떤 중국인 엄마의 조언





하나의 깨어진 꿈은
모든 꿈의 마지막이 아니다.

하나의 부서진 희망은
모든 희망의 마지막이 아니다.

폭풍우와 비바람 너머로
별들은 빛나고 있으니
그대의 성곽들이 무너져 내릴지라도
그대로 다시 성곽짓기를 계획하라.

비록 많은 꿈이 재난에 무너져 내리며
고통과 상한 마음이
세월의 물결에서 그대를 넘어뜨릴지라도
그래도 신앙에 매어달려라.

그리고 그대의 눈물에서
새로운 교훈을 배우기를 힘쓰라.

              -에드가 게스트





1. 관계 당사자들은 상대방에 대해 일체 마음쓰지 마라. 오로지 단 한가지, 자신에 대해서만 마음쓰도록 하라. 너희는 오로지 상대방에 대해서만 마음쓰는 것이 최상의 관계라고 들어왔을 터이니, 이런 가르침은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너희에게 말하노니, 상대방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 상대방에 몰두하는 것이야말로 관계를 실패로 돌아가게 만드는 이유이다. 가장 잘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다. 좋은 뜻과 좋은 열의를 가진 사람들, 또 꽤 강한 종교성을 지닌 사람들은 흔히 낡은 지혜의 가르침에 따라,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고 여기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많은 경우 이런 행동은 계속해서 남용과 푸대접을 낳고, 고작해야 관계의 역기능을 가져올 뿐이다. 결국 남들에게 "좋은 일을 하려" 한 그 사람은, 즉 쉽게 용서해주고, 연민을 나타내며, 문제 있는 행동을 계속 눈감아준 그 사람은 심지어 신에 대해서조차 억울해하고 분개하고 불신한다. 설사 사랑이란 이름을 걸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신이라는 작자가 그처럼 끝없는 고통과 불쾌함과 희생을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가장 고귀한 의미에서 자신을 우선시하는 건 결코 신적이지 못한 행동으로 이끌지 않는다. 

 

2. 도대체 넌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나 그 작업은 철저히 혼자서 해내야 한다. 어떤 보상도, 어떤 인정도, 그리고 아마 어떤 관심도 받지 못하면서. 

 

3. 생각에는 창조하는 힘이 있음을 명심하라. "충분치 않음"의 이 집단의식이 너희가 보는 대로의 세상을 창조하고 재창조하고 있다. 우주로서는 네가 생각하는 걸 그대로 실현시켜주는 것 외에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긍정은 너희가 이미 이루어졌음을 아는 것에 대한 진술일 때만 효과가 있다. 그러니 이제 네가 삶에서 체험하고자 하는 뭔가가 있다면, 그것을 "원하지" 말고 선택하라. 

 

4. 생각, 말, 행동은 창조의 세가지 원리이다. 뿌리 생각(root thought) 혹은 받침 생각을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은 생각-말-행동의 순서를 뒤집는 것이다. 뭔가에 관해 새로운 생각을 갖고 싶으면 먼저 행동하라. 뭔가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갖고 싶으면 먼저 말을 하라. 

 

5. 뿌리 생각을 바꾸고 싶다면 네가 가진 새로운 생각에 따라 행동하라. 하지만 재빨리 움직여야 한다. 안 그러면 네가 미처 깨닫지도 전에 네 마음이 그 생각을 죽일 것이다. 그러니 기회가 오면 재빨리 행동하라. 

 

6. "나는"이라는 두 단어는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그 말들은 우주에 보내는 진술이며, 명령이다. 

 
- 닐 도날드 월시 <신과 나눈 이야기>




잘게 쪼개는 곳에 길이 있다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왓칭이라는 책이 있다.

책을 사서 거꾸로 읽어서 3부 부터 읽고 있다.

거기에 보니 흥미롭고 유익한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군데군데 읽어보니 과거에 필자가 그런 게 있는줄도 모르고 써먹었던 기법들도 나온다.

가령 이런 것이다.


119페이지 잘게 쪼개면 가벼워진다 라는 파트를 보면 토익점수 때문에 고민하는 여학생 이야기가 나온다.

맨날 두꺼운 책을 붙잡고 끙끙거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얇은 책을 갖고 공부하면 된다.

그까짓 얇은 걸 봐서 얼마나 점수가 올라가겠어 하지만 안 그렇다.

얇은 책을 하나라도 제대로 떼 봐라.

두꺼운 책 제대로 못 보고 맨날 앞부분만 봐서 앞에만 손때가 시커멓게 묻은 것보다 효과가 수수백배 좋다.


필자는 원래 공부 잘하는 머리가 아니었다.

특히 중고 시절에 영수 땜에 고민했는데 영어 같은 경우는 남들 다 보는 성문기본 성문핵심이 눈에 안 들어와서 걍 얄브레한 독해 문제집 하나 사서 여러 번 풀고 거기 나온 단어 숙어 관용어 다 외우니까 점수가 쑥 올라갔다.


대학 들어와서도 4년 내내 남들은 최소 한번은 듣는 바퀴벌레 강의나 토플 강의 한번도 안 들었다.

아니 아예 숫제 영어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래서 거의 중학생 실력 정도 되는 상태에서 5년 6년 만에 영어 공부 그것도 당시 우리나라 영어 시험 중에는 제일 어렵다는 행정고시 영어 공부를 시작해서 몇 달만에 주변에 영어 실력이 쟁쟁한 사람보다도 더 많은 점수를 받기도 하였다.


그 때 필자가 공부한 책은 강사가 빨간책이라고 부르는 얇은 책이었다.

그 하나만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안에 있는 단어 숙어 관용어구 다 외우고 문제를 반복해서 푸니까 문제 푸는 요령이 생겨서 그런 점수를 맞은 것이다.

그러니까 남들 다 보는 두꺼운 책을 봤더라면 결코 올리지 못했을 점수였다.


당시 고시생들은 거로 바퀴벌레를 주로 공부했는데 필자도 그 책을 봤지만 두꺼워서 제대로 보지 못했다.

맨날 앞부분만 보다 보니 앞에만 시커매지고.

필자를 영어 공포로부터 해방시킨 건 얇은 책 한권이었다.

그게 바로 잘게 쪼개면 가벼워진다는 말에 해당되는 전술이라 할 것이다.


가벼워져야 된다.

가벼워지면 뜨기 쉬워진다.

공부도 부담을 가볍게 하면 점수가 쑥쑥 올라가는 것처럼, 자신도 가볍게 하면 뜨기 쉬워진다.

단 1센티만 공중부양해도 공중부양 한 거다.


공중부양 한 경험이 있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맨날 배 깔고 땅바닥만 겨 다니는 놈이 어느날 갑자기 높이 떠서 저 위에서 사물을 조망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그 이야긴 좀 있다 하고 우리 몸 세포 하나하나가 건강을 유지하는 길도 잘게 잘 쪼개는 것에 달려 있다.

우리가 맥을 바루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도 다 그것을 하기 위함이다.

따뜻하면 잘게 쪼개기 쉬워지고 식으면 잘게 쪼개기 어려워진다.

우리 몸 안의 장부 중에서 잘게 쪼개는 일을 하는 놈은 바로 소장이다.


그리고 그건 경락 경맥과도 관련이 있다.

 - 현무

 




이하 출처: http://www.mahazen.org/technote6/board.php?board=maha3&sort=wdate&command=body&no=467

 

 

장대한 우주 삼라만상의 돌고 도는 윤회와  생멸하는 12 연기법의 속에서, 진화하고 윤회의 바탕을 만들며 업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매우 복잡합니다. 수 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파동이 반복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보다 쉽게 인간사 쪽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파동 습관론으로 해석하려고 합니다.  

 

반복되는 사이클, 곧 습관은 좀 체 잘 바뀌지 않고 연속적으로 강약을 바꾸면서 반복이 됩니다. 그 습관의 반복을 보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반응하겠구나, 하는 예측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습관은 좀 체 잘 바뀌지 않기 때문에 습관을 관찰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용하는 과학도 자연의 반복되는 습관을 이용해서 활용하는 것이지요. 만약에 그 습관이 멋대로 원칙도 없이 바꿔버린다면 연속성이 없기 때문에 과학으로 활용이 안되는 것입니다.

 

농부들은 가을이 오면 곡식을 수확하고 비축을 합니다. 왜냐하면 겨울이 올 것임을 미리 알기 때문이지요.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옵니다. 이 것은 대자연의 반복되는 사이클이며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사주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과거의 반복되는 습관을 분석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며, 주식 투자가가 그래프를 분석하고 경제 주체들의 움직임을 분석하며 기후를 관찰하고, 세계 정치의 변동을 관찰하는 것도 습관을 보고 다음을 예측하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난방기구를 만들어도 바로 열은 더워지면 위로 뜨고 차가워지면 가라앉는다는 그 습관을 이용해서 만듭니다.

뜨고 가라앉는 습관에 따라서 열이 어떻게 확산되며 어떻게 뜨거워지고 어떻게 차거워 지며 어떻게 소멸하는지 그 파동 습관을 보고 열 효율이 뛰어난 난방기구를 설계하고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방 구들을 놓아도 이 원리를 아는 사람은 방의 크기가 크든 적던 자기가 의도한 대로 설계하며, 구들의 열을 보존하는 기간도 예측하면서 구들을 놓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리를 모른다면 수 십년간 방 구들을 놓고 다녀도 마음 대로 안되는 것입니다. 

작은 방을 잘 놓으면 큰 방을 못 놓고, 열이 오래가고 짧게 가게 조절이 안됩니다. 

또한 구들을 놓을 재료만 달라져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근본 원리를 알고 하는 쪽과 그렇지 않는 쪽은 너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입니다.

원리를 알면 실재로 약간만 경험해도 곧 익숙해지고 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경험 축적이 좀 더 되면 자유자재가 되지만, 원리를 갈파 못한 사람은 아무리 경험을 오랜세월 쌓아도 자유자재가 안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론으로만 실력을 쌓았다면 그야 말로 아무 것도 아니고 어떤 것도 이룰 수가 없는 쓰잘 데 없는 것이 됩니다

 

예를 들어서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가 있다고 합시다. 

이 경제학자가 정말 경제의 흥망성쇠의 반복되는 습관의 원리를 파악했다면 조금만 실습하고 적응 기간을 가지면 그 이론을 경제에 적용해도 성공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습관의 원리를 모르고 만들어진 경제 이론이었다면 아무 쓸모없는 잘못된 이론이 됩니다.

이런 경우는 아무 것도 모르고 경제에 종사하고 있는 실 경험자들보다 훨씬 수준이 못한 것입니다.

 

중국의 전쟁 전략가들 중에 육도삼략을 쓴 태공망과 또 그 후대에 손자벙법을 쓴 손무가 대단히 유명하지요.

이들 역시 전쟁의 승패가 어디서 오는지 갈파한 자 들이며 그 습관을 관찰하고 전략을 세우는 자들입니다.

전략가는 아군과 적의 진지 위치와 그에 따른 영향력을 계산하고 적군의 숫자와 아군의 숫자 혹은 적장의 성격과 전략습관과, 진지 관리 습관, 등을 분석합니다.

또 적군 병사들의 훈련 상태와 정신상태 등을 분석하며 군수 보급 상태도 분석 하겠지요.

그런데 이중에서도 어떤 사항이 거듭해서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자세히 관찰하는 것입니다.

적이 앞으로 어떤 작전으로 나올지 어떤 행동을 보일지 미리 예측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이 전개될 때 어떤 방향과 어떤 결과가 나올지 살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습관을 본다,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나 자연은 자기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행동을 거듭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건 절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걸 이용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과 성격, 가치관, 풍속, 등이 반복되는 것이 습관입니다. 이런 것이 결코 쉽게 바뀌지 않고 그 사람의 일체를 지배하고 어떤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반드시 습관을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정의, 선과 악, 이런 견해로 사람의 행동을 판단하고 세상을 판단하려고 한다면 백전 백패 합니다.

 

전략가는 적과 싸워도 적이 대비를 하는 부분을 공격 하는게 아니고 설마하고 대비를 안 하거나 믿고 안심하는 곳을 찾아 내어서 공격하는 것도 바로 습관을 보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원래 '이 곳으로는 절대 올 수가 없다. 하고' 안심하는 그 곳이 치명적인 급소지요.

그래서 미쳐 상상하지 않는 곳을 찾아내고 도저히 안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공략하기 위한 머리를 쓰는 것입니다.

이 것이 또한 인간의 습관을 이용한 것입니다.

인간 개인의 능력이 뛰어나도 무기 앞에는 약합니다. 그러므로 무기를 개발하는 것도 인간 몸의 습관을 보는 것입니다.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이 되면 전략가는 싸우지 않고 농성하거나, 후퇴를 해서 병사들을 보전하고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습관을 볼 줄 아는 전략가는 이기고 지고를 하늘에 맞기는 법이 없고, 운에 맞기는 법도 절대 없습니다. 다만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서 간혹 하늘을 팔기도 하고, 신을 언급하기도 할 뿐입니다. 

오직 승산이 있으면 싸워서 이기고 그렇지 못하면 조용히 때를 기다리거나 보충을 열심히 해서 싸울 준비를 할 뿐. 그렇게 해도 안되겠다 싶을 때는 저 멀리 후방으로 후퇴를 해서 훗 날을 기약하지요.

 

무모한 장수들은 용감하게 싸우다가 이기면 다행이고 지면 전사합니다. 비겁하면 싸우지도 않고 도망 가 버립니다.

이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 하는 행동들입니다.

 

태공망이나 손무는 둘다 본래 싸움터에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고 전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스승으로부터 배우고 연구해서 전쟁의 원리를 파악하고 대 전략가가 된 것이지요.

문사의 몸이었지만 수 많은 장수들과 병사들을 지휘해서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원리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원리를 알면 경험이 없어도 되지만 원리를 모르는 이론은 쓸모가 없습니다.

 

또 원리를 모른다면 많은 경험을 해도 분명히 한계가 있으며 반쪽짜리에 불과합니다.

원리를 알면 문사라도 대 전략가가 되지만 원리를 모른다면 평생 전쟁을 한 장수들도 전략가가 될 수가 없는 것이지요.

하물며 경험도 없고 허망한 이론뿐이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요.

 

태공망은 천문지리에 밝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육도삼략을 보면 자연의 순환을 살피고 그 것을 전쟁에 이용하며, 인간사의 심리를 살피고 그 것을 전쟁에 이용합니다. 커다란 때를 살필 줄 알았던 것입니다.

천지와 인간 사의 순환을 잘 살피고 나갈 곳과 머물 곳을 살피기 때문에 태공망은 천하를 평정하고 안정시키며 백성들에게 평화의 이익을 줍니다.

 

그 반면에 손자병법을 쓴 손무는 매우 뛰어나긴 하였지만 그 시야가 좁았습니다.

천지순환과 인간의 본능을 살피기 보다는 눈앞의 전쟁의 습관을 보고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전략을 쓰기에 바쁩니다.

인간의 행복엔 관심이 없고, 오직 승리를 위한 전략을 쓸 뿐입니다.

그로 인해서 손무는 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긴 했었지만 결국 평화의 시대도 못 만들고 그 스스로도 실패합니다.

큰 작용은 못보고 작은 작용은 밝았다고 할까. 물론 그 시대 환경 때문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태공망을 '도로 전쟁을 한 것이고 손무는 기술로 전쟁을 한 것이다. 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인간 자체의 습관은 자연 환경에 맞물려서 돌고 돕니다. 항상 고정된 것은 아니지요.

그렇게 때문에 음악도 춤도 유행을 하고 돌고 돌며, 옷 입는 모양도 그런 것입니다.

그 파동의 사이클을 예측하면 다음 번의 유행이 보이는 것입니다.

 

또 시대마다 환경이 달라지는데 예를 들자면 현대인들은 모니터롤 많이 보기 때문에 눈이 빨리 나빠집니다.

이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눈에 좋다는 병원, 안경, 눈에 좋다는 약, 눈에 좋다는 음식을 찾게 마련이지요.

그러면 그에 따른 경제가 이루어집니다.

 

개개인도 그렇습니다. 

사람을 보는데 친하다. 안 친하다. 혹은 잘 생겼다 못 생겼다. 선하다 악하다. 이런 기준으로 본다면 사람을 못 보게 되고 통찰력이 생기지 않게 됩니다.

반드시 인간의 본능을 알아야 하고 그 사람의 습관의 반복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관점을 그렇게 보지 않고 선한가, 악한가. 나 하고 친한가 안 친한가로 본다면, 눈에 깍지가 낀 것처럼 사람이 안보이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에 대한 깊은 연구와 실천이 오래 익혀지고 습관을 관찰하는 힘이 깊고 그윽해서 오래되면 비로소 통찰력이 생깁니다. 

'그냥 본능과 습관을 보자.' 한다고 보이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도 본능이 무엇이며 습관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소용없다는 말이지요.

 

배운다는 건 이 부분을 배우는 것인데, 무엇이 인간의 본능이며 어떻게 본능을 볼지, 배우고 무엇이 반복되는 습관이며 그 습관을 어떻게 파악할지, 훈련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배우지 않으면 습관이나 본능을 볼 수가 없어요.

 

인간 세상의 모든 움직임은 대자연과 사람의 본능에서 시작되는 반복된 습관으로 귀결이 됩니다.

그 습관을 볼 때 다음을 예측하고 대비가 됩니다.

결코 인간 세상의 흥망성쇠는 선과 악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종교와 믿음 때문에 오지도 않으며, 신이나 귀신의 음덕에서 오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반복되는 본능과 습관의 파동일 뿐입니다.

 

이 본능과 습관의 파동이 모이고 쌓이면서 우주와 인간의 운명을 만들고 진화하며 윤회하는 그릇을 만들어 갑니다.

비가 많이 와서 강물을 이루고 나중에 바다를 이루는 것을. 비유한다면, 파동과 습관이 반복되면서 바다란 결과의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에 비유가 됩니다.

이 과정 중에서 거친 바다 거친 강물은 악이고, 고요한 강물을 선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둘 다 결국 바다를 이룬다는 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위와 같이 작은 작용들이 반복되면서 모여서 큰 업을 만들고 운명을 만들며, 대자연의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또 이런 류들이 모이고 모여서 우주를 만들고 우주 또한 흥망성쇠 성주괴겁을 만들어 냅니다.

이런 과정을 진화라고 말하기도 하고 윤회한다고 말하기도 하게 됩니다.

 

또한 이런 장대한 변화 또한 거듭 반복되면서 시작과 끝이 연속되므로, 이것이 윤회인 것입니다.

 




누구도 자기의 마음으로 불러들이지 않는 불행에 맞딱드리는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어떤 사건도 최초에는 '심적 존재'이고, 자기의 마음도 또한 '심적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들 '심적 존재'는 마음의 법칙, 즉 '유 類는 유를 부른다'고 하는 법칙과 '유가 아닌 것은 반발한다'고 하는 법칙에 지배되어서, 서로가 견인하거나 서로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행한 사건을 당하는 사람들은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자기의 마음 속에 그러한 불행을 끌어당기는 불행의 씨앗을 반드시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생명의 실상> 제1권 (한국문교사) 136p







승리를 탐하면 이기면 못한다.

돈을 탐하면 돈을 얻지 못한다.

인정을 탐하면 인정받지 못한다.

노력을 탐하면 그 대가가 가난할 것이다.



사랑을 탐하면...

외로워질 것이다.



빠르되 엷을 것이냐,

느리되 두터울 것이냐 ?

​    
위기십결(圍棋十訣) 중 부득탐승(不得貪勝) 





누구도 자기의 마음으로 불러들이지 않는 불행에 맞딱드리는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어떤 사건도 최초에는 '심적 존재'이고, 자기의 마음도 또한 '심적 존재'입니다. 그리고 이들 '심적 존재'는 마음의 법칙, 즉 '유 類는 유를 부른다'고 하는 법칙과 '유가 아닌 것은 반발한다'고 하는 법칙에 지배되어서, 서로가 견인하거나 서로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행한 사건을 당하는 사람들은 누구를 원망할 것도 없습니다. 자기의 마음 속에 그러한 불행을 끌어당기는 불행의 씨앗을 반드시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생명의 실상> 제1권 (한국문교사) 136p





말의 힘

- 내민 팔이 점점 좌우로 벌어진다

- 벌어진 팔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 양쪽 손바닥이 서로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



용기가 없어서 사업을 계획하면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 일을 하도록 신에게 사명을 받았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전능하신 신의 지혜가 내 일을 이끌어 주신다. 나는 성공하도록 되어 있다. 이미 마음의 세계에서는 내 일이 성취되어 있다. 마음의 세계에서 성취된 일은 반드시 현실 세계에서도 성공한다' 하고 단호하게 자기 자신에게 아침저녁으로 10분씩 자신감이 생길 때까지 매일 들려줍니다.



이렇게 말의 힘을 응용할 때 '나는 점차 용기가 생길 것이다', '이 사업은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다'라는 식의 뜨뜻미지근한 단정을 해서는 효과가 작다. '나는 성공한다. 성공은 나의 타고난 권리이다!'라는 식으로 직접적으로 단호하게 단정짓는 말을 써야 한다.



지금 현실적으로 괴로운 입장에 있는데 '지금 나는 행복하다, 유쾌하다'하고 단정짓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도리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코 부자연스러운 것도 아니고 자기기만도 아닙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현재 물질세계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현재의 환경은, '마음의 세계'에서 영원소로 만들어진 그대로의 형태에 물질이 비쳐서 생긴 것이므로, 말하자면 현실세계는 '마음의 세계'의 투영(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마음의 세계'야말로 진짜의 세계로서, 이 마음의 세계에서는 지금 생각한 순간에 그 생각한 그대로의 형태가 만들어지므로, '나는 성공한다!'하고 마음에 단호하게 성공을 그리는 순간 실제로 그 사람은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마음의 세계에서 단호히 성공을 그리고, 말로 그것을 주장할 때, 마음의 세계에서 이미 성취된 내 사업의 성공은 바야흐로 현실세계의 어떤 절차를 밟아 출연되어 나타나는데, 그 출연되어 나타나는 순서가 어떤 절차에 따라 나타나는가, 얼마만큼 시일이 걸릴 것인가는 우주에 맡겨야 합니다. 그것을 미리 이 일 다음은 저 일을, 그리고 다음에는 이렇게 한다는 식으로 인간의 머리로 매순간 일어날 일을 상세하게 예상할 수 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인 우리는 '이 사업은 성공한다' 하고 궁극적인 목적을 정해 놓고 그것을 단호하게 마음에 그리기만 하고, 그 일이 나타나는 세세한 순서는 우주에 맡겨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건강을 회복하는 것도, 사업에 성공하는 것도 '이미 건강하다!', '이미 성공했다!' 하고 궁극적인 목적을 마음에 그리고 말로 주장한 다음에는, 그것이 출현하는 과정에서의 세세한 경과는 대우주에게 맡겨 두고 드넓고 밝은 마음으로 잘될 것으로 믿고 나아가면 됩니다. 설령 그 길목에서 예상치 못했던 아슬아슬한 사건이나 용태에 부딪히더라도 동요하지 말고 궁극적인 신념만 잃지 않는다면, 마침내 사업은 성공하고 병은 낫고 희망은 실현되는 것입니다.





- <생명의 실상> 제24권 (한국문교사) p. 89-92





그럼 어떻게 하면 걱정 없는 철저한 신심을 가질 수 있는가 하면, 이미 성취되어 있는 실상 세계의 행복만을 보고, 아직 행복이 완전히 주어져 있지 않은 현상계의 불행한 상태에 마음이 사로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당신의 남편은 이제부터 신께 부탁한다고 취직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필요한 것은 실상 세계에 주어져 있습니다. 이미 당신의 남편은 취직된 것입니다. 이미인 것입니다. 그 이미 주어져 있는 것을 믿고 걱정하지 말고 기우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것은 현실세계에 주어집니다. 예수도 "너희들 기도할 때 이미 받았다고 믿고 기도하라. 그것은 반드시 주어질 것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서의 대종교가들은 누구나 마음의 법칙을 설하는 데 같은 말을 합니다.


버트런트 러셀의 '불행과 자기 몰두'에 관한 발언 전문
버트런트 러셀이 저서 《행복의 정복 (The Conquest of Happiness, 1930)》의 서론과 제1장 '무엇이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가'에서 강조한 핵심 내용입니다. 러셀은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은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Self-absorption)하는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행복의 정복》 中 관련 발언 전문 (국역)

"점차 나는 나 자신과 나의 결점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법을 배웠다. 나는 점차 나의 관심을 외부에 있는 것들, 즉 세상의 상태, 다양한 지식의 분야들, 그리고 내가 호감을 느끼는 인물들에게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외부의 것들에 대한 관심은 저마다 어떤 활동을 불러일으키며, 그 활동이 만족스럽게 이루어지는 한, 그것은 권태를 막아주는 강력한 예방책이 된다. 반면에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은 어떠한 진취적인 활동도 이끌어내지 못한다. (...)

불행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청년 시절 어떤 정상적인 만족을 빼앗긴 결과, 그 한 가지 종류의 만족을 다른 모든 만족보다 귀하게 여기게 되었고, 그리하여 인생에 외골수적인 방향을 부여함으로써 그 활동의 성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다른 모든 측면을 완전히 과소평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

모든 불행은 일종의 분열이나 통합의 결여에서 비롯된다. (...) 나 자신에 갇혀 있는 것만큼 따분한 것은 없으며, 나의 주의력과 에너지를 외부로 돌리는 것만큼 나를 유쾌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러셀은 불행한 사람을 세 부류(죄인, 나르시시스트, 메갈로마니아)로 나누며, 이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내면, 자신의 상처, 자신의 성공 여부'에만 온 신경이 매몰되어 세상을 넓게 보지 못하는 병에 걸린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3. 비행기 추락 후 물에 잠겼을 때 어땠냐는 기자의 질문과 답변 전문
이 일화는 1948년 10월 2일, 당시 76세였던 러셀이 강연을 위해 노르웨이 트론헤임으로 가던 중 발생한 실제 수상비행기 추락 사고(북켄 브루세 사건) 때의 일입니다.

비행기가 물에 처박혀 승객 43명 중 19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였지만, 러셀은 차가운 바닷물을 헤엄쳐 살아남았습니다. 사고 다음 날, 노르웨이 현지 매체인 《아드레세아비센(Adresseavisen)》 등의 기자들과 영국 대사관에서 나눈 인터뷰 및 자서전의 기록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당시 기자의 질문과 러셀의 답변
기자: "비행기가 추락하고 사방에서 차가운 물이 밀려 들어왔을 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공포스럽지는 않으셨습니까?"

버트런트 러셀: "그저 물이 참 차갑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I only thought that the water was cold.)"





불안 때문에 자기를 학대하지만 않으면 행복에 대한 권리를 찾을 수 있다
행복에 대한 권리는 간단하다. 불만 때문에 자기를 학대하지 않으면 삶은 즐거운 것이다. - 러셀 - (영국 지성인) 




* 자유롭고자 한다면 내면의 고통을 그저 '에너지 흐름의 일시적인 변동으로 간주하라.



* 삶을 마음껏 탐사하면서 성장해가고자 한다면 가슴에 상처를 줄지도 모를 무수한 일들을 피해 다니느라고 평생을 허비할 수가 없다.



* 고통은 그저 이 우주에 있는 만물 중의 하나일 뿐이다. 누군가가 가슴에 불을 지르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지나간다. 그것은 일시적인 경험이다. 고통을 그저 가벼운 상처를 바라보듯이 떨어져서 바라보라. 그것을 웃어넘겨라. 그것을 즐기라. 두려워하지는 말라. 당신이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그것은 당신을 괴롭히지 안는다.




* 마음 속 '보호의 틀'에 집착한다면 당신은 평생 끊임없이 자신을 방어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과 모든 것들을 정렬시켜서 현실에 대한 당신의 관념적 틀 속에 끼워맞춰야만 할 것이다. 이것은 끝도 없는 몸부림이다.



영적으로 산다는 것은 이 몸부림에 끼어들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은,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은 이 순간에 속한 것임을 뜻한다.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당신은 그것과 연루시켜서 자신을 정의하기를 멈추고 그것이 왔다가 가도록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 사건들이 당신 내면에 각인을 남기게 하지 말라. 나중에 자신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저 놓아 보내라. 당신의 관념적 틀에 맞지 않는 사건이 일어나서 그것을 그 틀에다 끼워맞추려고 애쓰고 합리화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렇게 하고 있는 자신을 그저 알아차리라. 우주의 한 사건이 당신의 틀에 맞아들지 않았고 그것이 당신에게 불편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그저 알아차리기만 하고 있으면 그것이 사실은 당신의 틀을 깨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 틀을 가지고 있기를 원하지 않으므로 결국 이것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이것을 '좋은 것'으로 정의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더 이상 외면을 꾸미고 고착시키는 일에 에너지를 쏙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사건들로 하여금 당신의 틀을 깨어서 당신을 해방시켜주는 다이너마이트 역할을 하게 할 것이다.





* 마음의 평안을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수용'과 '확산'이라는 이중 전략이 필요하다. 부정적인 경험은 억누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끄집어내어 털어내고, 긍정적인 경험은 적극적으로 증강시켜나가는 것이다. 가급적 좋은 기억만 간직하면 된다는 뜻이다. 유익하고 즐거웠던 경험을 끊임없이 연상하면서 잊지 않으려고 노력을 계속하면, 슬프고 끔찍했던 경험을 차츰 누그러뜨릴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연습을 통해 뇌가 행복해지면 신체 역시 행복해진다. 면역기능이 향상되고 스트레스에 대한 심혈관계의 반응성이 둔해진다. 낙천성과 적극성을 관장하는 좌측 전두엽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 "비관주의자들은 모든 기회를 어려움으로 보지만, 낙천주의자들은 모든 어려움을 기회로 본다."
- 윈스턴 처칠

- 마이클 A. 싱어 <한 발짝 밖에 자유가 있다> 중



당신 하나 건졌네

김성백



송곳은 시들시들

서술은 흐늘흐늘

심줄은 꾸덕꾸덕



차 떼이고 또 떼이고

때만 쌓인 인생의 나이테

아스라이 갈피를 잃어가도



괜찮은 인생이야

당신 하나 건졌네

그거면 됐네

다 가졌네. 






i don't want nation of thinking people.
don't be afraid to give up the good to go for the great
- 존 D. 록펠러


타사카 히로시: 전심전력으로 살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인생에는 모두 깊은 의미가 있다; 모든 것은 인도되고 있다;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한부 인생 극복하게 한 '역경력'






바라지 않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원치 않는 일을 거부하는 것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다. 강력하게 거부할수록 싫어하는 사람이나 상황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 된다.

 

'싫다'라는 생각에 온 신경이 집중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가져올 힘이 약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혼잡한 교통상황이 싫을수록 관심은 그 상황에 더욱 집중되고, 무의식적으로 가장 혼잡하고 더딘 차선을 선택하게 된다. 상점에 갔을 때도 급할 때일수록 가장 더딘 계산대 앞에 줄을 서게 된다. 이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싫어하는 일일수록 일어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기다리기 싫다고 생각할수록 더 오래 기다려야 할 뿐이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에 연인관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적이 있다면 다시는 상처받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을 대하게 된다. 그런데 마음의 상처를 거부하고, 상처받지 않으려고 할수록 더욱 상처받게 된다. 외로움이 싫다고 생각할수록 삶은 점점 더 외로워진다. 나쁜 일을 겪고 나면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데, 한번 겪은 나쁜 일을 계속 생각하면서 그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원하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 다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싫어하는 일은 더 자주 일어난다. 자신이 언하는 것에만 신경쓰면 그럴수록 원하는 것이 찾아오게 된다.

 

생각은 모든 일의 원동력이다. 이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인생에서 이루어내는 일들 중 90%가 생각에서 비롯된다. 행동에서 비롯되는 것은 나머지 10%에 불과하다.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데도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을 때는 우선 자신의 솔직한 생각이 어떤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경우 마음 한구석에서 아직도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무기력하고 아무 희망도 없다고 생각되는 때일수록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내 안에 믿음과 열정을 키워가야 한다. 자신을 믿으면 무슨 힘을 하든 힘과 자신감이 생긴다.

 

 

'긍정적으로 말하기' 게임

 

'긍정적으로 말하기' 게임은 무척 재미있다. 나는 열두 살 된 딸 로렌과 종종 이 게임을 하곤 한다. 어느 날 우리 둘은 함꼐 쇼핑을 하다가 계속 부정적인 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한번 다르게 표현해보기로 했다. 부정적인 표현을 긍정적인 표현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좀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 '게임'이라는 말을 붙였다.

 

나는 "여기에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구나. 저쪽으로 한번 가도록 하자"라고 말했다가 다시 이렇게 바꿔 말했다. "주차하기에 적당한 곳이 있는지 찾아보도록 하자."

 

이렇게 말한 다음 우리가 봐두었던 곳으로 가보니 곧 주차하기에 적당한 자리가 눈에 띄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딸아이가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숙제가 굉장히 많거든요."라고 말했다가 다시 이렇게 바꿔 말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어서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 숙제할 시간도 많이 남았으면 좋겠고요."

 

쇼핑센터를 나설 무렵 나는 "우리가 늦으면 너희 엄마가 좋아하지 않을거야"라고 마했다가 다시 이렇게 바꿔 말했다.

 

"집에 빨리 가면 엄마가 좋아하실거야."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쇼핑백 들고 가는 것 잊지마라"고 말했다가 다시 이렇게 바꿔 말했다.

 

"가져가야 할 건 다 챙기도록 하자."



- 존 그레이 <간절히 원하고 뜨겁게 행동하라> 中



    
* 중요한 것은 비평가가 아닙니다. 뭐가 문제였고, 어떻게 해야 했는지 지적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공로는 실제로 경기장에 나가 얼굴이 먼지와 땀과 피로 범벅이 되도록 용감하게 싸운 사람, 거듭 실수하고 기대에 못 미쳐도 실제로 뛰는 사람, 무한한 열정과 헌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 값진 대의에 자신을 바치는 사람의 몫입니다. 그는 끝까지 노력해 마지막에 크나큰 승리를 쟁취할 것입니다. 설령 실패하는 최악의 경우라도 최소한 과감히 도전하다 실패했으므로 승리도 패배도 모르는 냉정하고 소심한 영혼들은 결코 그를 대신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연설 중 (JP모건체이스 사장인 다이먼이 즐겨 인용하고 회사의 지침으로 삼은 문구)







 * 출석했다면 일단 80%는 성공한 것이다. - 우디 앨런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 중 책 한권도 제대로 안 쓰고 자기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 말)










 

* 자기 마음에 있는 장벽은 누구도 깨뜨리지 못한다. 어떤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절대 할 수 없는 법이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가장 무서운 적은 마음에 있는 셈이다.

마음 속에서 패한 사람은 현실에서도 여지없이 패한다.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꿈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스스로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일은 헛된 꿈이 되어 버린다. 장벽은 바로 마음에 있다.



- 자동차왕 헨리 포드 

   

 



​* 나는 항상 청년의 실패를 흥미롭게 지켜본다.

그는 실패를 어떻게 생각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 대처했는가.
낙담했는가.
물러섰는가.

아니면 더욱 용기를 북돋아 전진했는가.

이것으로 그의 생애는 결정되는 것이다.



- 비스마르크 시절의 명장 헬무트 폰 몰트게 원수 ​

(정주영 회장이 젊어서 실패 할 때마다 되새겼다는 명언) 



 



* Most of the important things in the world have been accomplished by people who have kept on trying when there seemed to be no hope at all. - Dale Carnegie

  


*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큰 성공은 수십 번의 실패가 쌓인 후에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실패에 대해 아무 걱정이 없다. -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저스





​* 실패는 필수 옵션이다.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은 충분히 혁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테슬라의 CEO, 앨론 머스크





* 비즈니스 세계에서 아직 아무도 해 보지 않은 시도를 할 때 사람들은 ‘너 미쳤다. 아무도 안 한 것을 왜 하려고 하느냐’고 말합니다. No라는 단어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빌 게이츠에게도, 스티브 잡스에게도, 제프 베저스에게도 ‘그 사업은 망할 거야’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사람들은 저희에게 미국 기업에 투자하지 않고 해외에 나가면 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린 바로 그 글로벌화 전략으로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 데이비드 루벤스타인(칼라일 그룹 회장)

 

-- 구글, 유튜브, 링크드인을 발굴한 모리츠 회장도 트렌드 예측에 실패할 때가 있었다.

 




* 부잣집 아이들은 재능이 있는 인재로 커 갈 가능성이 높긴 하다. 그러나 진짜 천재는 나쁜 환경에서 자라는 이상한 경향이 있다.

- 저널리스트, 말콤 글래드웰

 




실패를 했다는 것은 '이 방향으로 하면 안 되는구나' 라는 것을 깨닫는 또 하나의 성공이다.- 데니스 홍

- 링크드인의 설립자 리드 호프먼: 당신 제품의 첫 번째 버전이 부끄럽지 않다면, 출시가 너무 늦은 것이다.




황해진: 사업을 시작한 이래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어렵고 답답한 시간이 몇 개월 째 흐르고 있을 때 기적같이 기회가 찾아왔다. 프랑스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는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을 몸으로 느끼게 된 사건이었다. 인생의 모진 어둠을 밝히려는 듯이 기적같이 찾아온 한 줄기 빛, 그것은 하나의 아이디어였다. 무수한 명함들에는 하나같이 특징이 없었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명함은 소형 활판 인쇄물이었다. 흰 종이에 검정 글씨가 다였다. 디자이너를 불러 슬라이드 자료실에서 분야별 필름 박스를 가져오라고 했다. 전자 회사는 전자제품 사진을, 컴퓨터 회사는 반도체 칩을, 자동차 회사는 그 회사 자동차 사진을 이미지 컷으로 사용하여 고급 오프셋 인쇄로 컬러이미지명함샘플을만들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렇게 오프셋 인쇄로 제작된 컬러이미지 명함은 명함 시장을 확 바꿔 놓았다. 입소문을 타고 주문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주요 일간지는 물론 거의 대부분의 신문과 잡지에 기사화되었다. 흔한 말로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어 있었다"는 말을 실감했다. 매스컴의 위력은 대단했다. 본래 있던 광고 사업부와 인쇄 사업부보다 명함 사업부가 몇 배나 더 커졌다.



넷플릭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배리 맥카시에 따르면 2000년에 넷플릭스 임원들이 제휴를 위해 블록버스터 임원을 찾아갔을 때 그들은 넷플릭스 임원들을 웃으면서 내쫓았다.




베니스터 효과:
로저 베니스터가 육상에서 1954년 처음으로 마의 벽이라 불린 4분의 벽을 깨뜨림.
그러고 나니까 그 후로 3년 동안 갑자기 15명이나 되는 선수들이 4분대 이하로 주파하는 기록을 세우게 됨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일도 '가능한 일'이라는 인식의 변화가 생기게 된 것.




변동성수익이 없는 회사는 파산할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은 이것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높은 변동수익을 유지하면서
위기를 넘는 것이 건강한 기업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정반대
- 나심 탈레브



그렇다고 안된다고 실망할 필요도 없어
사람은 모두 지구에 잠깐 여행온거야.
여행와서 대학교를 가는 사람도 있고 다른 곳을 가는 사람도 있고
어차피 여행 끝나면 다시 모든걸 버리고 돌아가야해
그러니까 여행와서 안해본 경험 해본다고 생각하고 후회없이 열심히 하면 돼
여행가서 호텔방에만 있으면 아무 기억도 안 남잖아.
잘 안되더라도 호텔방 나가서 이거저거 경험해보는게 여행의 진정한 의미지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 무하마드 알리


"밀고 나가라. 세상의 어떤 것도 끈기를 대신할 수는 없다. 재능으로는 안 된다. 재능이 있지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세상에 널렸다. 천재성도 소용없다. 이름값을 못하는 천재가 수두룩하다. 교육으로도 안 된다. 세상은 고학력의 낙오자로 가득하다. 전능의 힘을 가진 것은 끈기와 투지 뿐이다."

"사람들은 내가 52세가 되어서야 맥도날드를 시작했고 하룻밤 사이에 돈방석에 앉았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곤 한다. 하지만 나는 연예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스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은 수년 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노력하다가 때를 만나 큰 성공을 거둔다. 내가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았다는 것은 맞는 말일지 모르지만 그 뒤에는 30년에 걸친 긴긴 밤이 있었다."

- 레이 크룩





"인류의 역사란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의 역사다"
- 아놀드 토인비

People aren't overcome by situations or outside forces; defeat invades from within.




시련과 고통의 역설



인간은 시련을 통해 강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쇠는 두드릴수록 단단해진다’는 속담이 있는데요, 정말로 시련은 인간을 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일까요?



오늘 세레비에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시련과 성장의 상관관계를 다룬 연구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어릴 적 학대를 당하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행동 심리학 박사인 조앤은 유년기에 성적 학대를 당한 사람의 심리를 연구하기 위해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50~90세 사이의 여성 7,000명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하였는데요, 인터뷰 결과 여성 15명 중 1명은 어릴 적에 성적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조앤은 성적 학대를 당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특이한 결론이 도출되기에 이릅니다. 성적인 학대를 경험한 적이 있는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인지 능력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일반적인 삶을 살아온 성인에 비해 상황 판단력, 주의 집중력, 기억력 등의 인지 능력 점수가 더욱 뛰어났던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피해자들은 일반 여성들에 비해 더욱 총명하고, 두뇌 회전이 빨랐습니다!1





배우자 혹은 가족이 아프면 똑똑해진다?



또 다른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네덜란드의 연구진들은 70대 노인 1,000명을 대상으로 인지 능력을 측정한 뒤 3년 후 이들의 인지 능력을 재측정하였습니다. 실험 대상자를 70대 노인으로 선정한 이유는 나이 든 노인들은 심각한 질환으로 인생의 반려자를 잃거나 병상에 누워 가족과 갈등을 겪느라 격동의 기간을 보낼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관찰 결과 70대 초반에 속한 노인의 75% 이상이 3년 내로 주변 사람들과 아주 심각한 불화를 겪으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는 또다시 뜻밖의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배우자가 심각한 질병으로 고생하거나 가족 내 끔찍한 불화를 겪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인지 능력이 더욱 뛰어났던 것이었습니다. 이 효과는 노인이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치명적인 분쟁에 휘말릴 경우에도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미국에서 진행된 다른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2



성폭행을 당한 어린 아동들과, 인간관계의 불화를 겪은 노인들 모두 시련을 겪은 후 두뇌 능력이 향상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이상한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요?





시련이 인간을 똑똑하게 만드는 이유



세계적인 신경 심리학자 이안 로버트슨은 이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는 주된 요인으로 뇌에서 방출되는 신경전달물질 ‘노르아드레날린’을 지목합니다.






노르아드레날린은 정신적인 민첩함과 예리함을 끌어올리는 신경전달 물질로서,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될 때 뇌에서 분출되는 호르몬입니다. 노르아드레날린은 인지 능력과 의사 판단 능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줍니다.

실제로 지능이 높은 사람은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일상에서의 노르아드레날린 분출량이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3 노르아드레날린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해독하여 새로운 뇌세포를 만들고, 뉴런의 네트워크 연결망을 강화시키는 천연의 각성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어릴 적 학대를 당하거나 인생의 황혼기에 큰 불화를 겪었던 사람들에게도 지능이 높은 사람의 뇌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화학 작용이 일어난 것입니다. 가혹한 시련은 이들에게 스트레스 상황으로 작용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뇌에서는 노르아드레날린이 지속적으로 방출되었으며, 이것이 시련을 겪은 이들에게 기민한 정신력과 뛰어난 인지력을 안겨다 주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해야 한다



오늘 세레비에서는 여러 연구를 통해 온갖 시련을 겪은 사람들이 역설적으로 더욱 뛰어난 정신 능력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보았습니다. 물론 뛰어난 두뇌 능력이 행복한 삶이나 성공적인 인생을 보장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그 어떤 시련과 역경이 들이닥쳐도, 그런 고난을 통해 인간은 한없이 무너지는 것만이 아님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성장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이 열릴 수 있음을 연구는 보여줍니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사무엘 베케트는 그의 작품 Unamable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전진해야 한다. 전진할 수 없다. 그래도 전진할 것이다. 4

(I must go on. You can't go on. I will go on)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어떠한 방식으로든 크고 작은 역경을 마주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다치고 괴로워할 것입니다. 안락하고 편안한 인생이란 없습니다. 따라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전진해야만 합니다. 전진할 수 없어도 전진할 때 인간의 위대한 정신은 살아 숨 쉬며 비로소 그 속에서 남들과는 다른 독창적이며 고유한 정신이 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고통을 겪으면 똑똑해진다?|작성자 withcerevi









스트레스가 인간을 강인하게 만든다?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스트레스. 스트레스는 사람들에게 만병의 근원이자 없어져야 할 악(惡)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 스트레스가 도리어 인간을 성장시키고 발전하도록 돕는다는 아이러니한 사실, 아시나요?



무엇보다 스트레스는 인류 문명과 역사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어 왔습니다. 이와 관련해 세계적인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통찰력 있는 저서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 역사의 발전 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인류의 역사란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의 역사다"




아놀드 토인비 Arnold Joseph Toynbee



도전과 응전의 역사! 그는 안락하고 풍족한 환경에서는 인류 문명이 발전하지 못한 반면에, 척박하고 험난한 지역에서는 도리어 문명이 이룩되고 발전하였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강조합니다.



대표적으로 중국 문명을 들 수 있습니다. 중국에는 양쯔강과 황허강 두 개의 큰 강이 흐릅니다. 양쯔강 유역은 기후가 따뜻하고 농토가 비옥해 농사를 짓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에 황허강은 매우 척박한 지역의 땅으로, 겨울에는 강이 꽁꽁 얼어붙어 배가 다닐 수 없고, 여름에는 강물이 범람하여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골치아픈 지역입니다. 황허강의 범람 문제는 오늘 날의 인류조차 해결하지 못할 만큼 규모가 크고 치명적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찬란한 고대 문명은 풍요로운 양쯔강 유역이 아니라 척박한 황허강 일대에서 태동하기 시작하여 오늘 날 까지 이어내려오고 있습니다.



이집트 문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집트의 나일강 유역은 해마다 물이 범람하여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악명 높은 지역이었지만, 이집트 최초의 문명은 나일강 유역에서 싹트기 시작하였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세계 모든 문명의 발상지는 인간이 살기 힘든 험난한 지역에서 꽃피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인더스 문명과 미노스 문명, 수메르 문명을 비롯한 모든 인류 문명이 그와 같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토인비는 인류가 험난하고 척박한 환경에 터를 마련했기에 역설적으로 문명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강의 범람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한 결과 인류는 도르레와 수레를 발명할 수 있게 되었고, 제방 축조술을 연마하여 기술 혁명을 일으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농사 짓기가 까다로운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경작 시기를 예측하기 위해 천문학과 태양력을 연구하였으며, 이를 통해 학문이 발전하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었습니다. 험난한 환경이 인류의 위대한 정신을 깨어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풍요롭고 안락한 환경에서의 상황은 달랐습니다. 인류는 나태함과 방종에 빠져 변화하는 환경과 외부의 침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토인비는 도전(Challenge)적인 환경에서 인간은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응전(Response)을 해왔으며, 도전과 응전이 격렬하게 반복되는 과정에서 위대한 기술 문명이 태동하고, 이를 통해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갈 수 있었던 역설을 강조한 것입니다.1




토인비의 '역사의 연구'



스트레스의 순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메기 이론> 또한 인용합니다. 영국인들은 아침을 푸짐하게 먹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들이 즐겨먹는 아침 음식으로는 청어 요리가 있습니다. 청어는 북해나 먼 베링해협에서 잡히는 물고기인데, 문제는 청어들이 배로 운반되는 긴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대부분 죽어버린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런던에 살아 있는 청어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업자나 나타났습니다. 그 업자는 살아있는 싱싱한 청어를 런던에 공급함으로써 아주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런던 전역에 퍼져나가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살아있는 청어를 런던까지 수습해올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캐물었고, 그는 비결을 알려주기에 이릅니다. 그는 청어를 끝까지 살려낼 수 있었던 비법으로 청어의 천적인 물메기를 이용하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청어들이 가득 담긴 수조에 천적인 물 메기를 몇 마리 넣습니다. 이렇게 되면 청어들은 수조 안에서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힘껏 도망 다니기 시작합니다. 공포에 휩쌓인 청어들은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힘을 쓰게 되고, 이런 각성 과정 덕분에 청어가 오랫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논란이 있지만, 내분비학의 관점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졸 분비는 생명체의 에너지 지속 능력을 높입니다.) 즉, 가혹한 스트레스가 청어들의 생존 시간을 늘려준 것입니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자립심과 탐험 정신을 북돋아준다



가혹한 스트레스는 문명과 역사의 발전에 도움을 준 것만이 아닙니다. 스트레스는 생명체에게 자립 능력과 탐험 정신을 배양시키기도 합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이자 발달심리생물학의 선구자인 세이무어 레빈(Seymour Levine)은 역경과 스트레스의 긍정적인 영향력을 조명하는 기념비적인 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스트레스의 악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레빈의 연구팀은 위해 매일 새끼 쥐를 어미쥐로부터 강제로 분리한 뒤 15분간 방치하는 작업을 21일 동안 진행하는 실험을 수행하였습니다. 연구팀은 쥐의 정신과 육체적 건강이 모두 악화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강제적으로 어미로부터 분리 당한 쥐는 성체가 되었을 때 외부의 고통과 좌절에 저항하는 능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자 하는 욕구도 매우 뛰어났던 것이었습니다!


"Impossible means that you haven't found a solution yet."
​- 헨리 포드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The best way to predict the future is to invent it.) - 앨런 케이(Allen Kay)


나는 살아가는 인간들 사이, 즉 강력한 자와 연약한 자, 위대한 자와 시시한 자 간의 엄청난 차이점과 굽힐 줄 모르는 결심, 즉 한번 목표를 정했으면 꾸준히 밀어 붙여 죽음이던 승리던 끝장을 보는 힘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런 자질은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성취해 낼 수 있다. 재능, 환경, 기회가 아무리 뒷받침해 준다 해도 이러한 자질이 없다면 설령 직립보행을 한다 해도 인간이라 할 수 없다.
- 벅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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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의 응고작용이란 生의 원동력


힘든시기가 계속되어도 언젠가 반드시 좋은 일이 올거라고 믿었다. 믿음이란 중요하다.
-배우 코히나타 후미요





100일 동안 100번 거절당하기 실험을 한 중국인 블로거 지아 장이 테드(TED) 강연을 하는 모습.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두려움 속에 들어간 그의 모습이 영감을 줬다./사진=지아 장 유튜브 화면 캡쳐

...

거절당하기 초반엔멘탈(정신)이 비스켓처럼 부서졌다.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힘차게, 또 단단히 준비해 부탁을 했다. 하지만 거절 한 마디에 그대로 무너졌다. '당연히 그렇지'란 생각을 하다가도, 거절 한 번이 마음을후벼팠다. 상처도 받았다. '왜 이런 거절을 당하나'하며자존심도 상했다. 그러면 움츠러들고, 자신감이 꺾였다. 부끄럽고 또 숨고 싶었다.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혹시'란기대감이, '역시'란실망감으로 돌아올 땐 더 그랬다. 몸의피로도 컸다. 부장은 "힘들어보인다, 멍 때리는 것 같다"고 했다. 아내도 걱정했다. 괜히 이상한 체험을 한다고 했나 잠시 후회도 했다.

포기하기 싫었다. 계속해서 시도했다. 빨리 50번을 채웠으면 좋겠단 맘으로. 그러다 보니,거절이 점차 익숙해졌다. 다시 맘을 추스르고 부탁하는데 걸리는 시간도 점차 줄었다. 처음 거절당했을 땐1시간씩일 없이 돌아다녔다. 누구한테 해야 괜찮을까, 상처를 덜 받을까, 또 거절하진 않을까 안 좋은 생각만 하면서. 두 번 거절당하니 세 번째는 더 나았다. 10번을 넘어가니,부탁이 편해졌다.15번을 넘어가니 굳은 살이 배겼다. 거절당해도기분이 크게 상하지 않았다.30번을 넘어가니 거절당한 뒤에도"감사합니다"라고 웃으며외치게 됐다. 놀라운 변화였다.



알리바바 마윈
162cm 40kg

중학교 입학시험에 세번, 대입시험 세번 떨어졌다
취직시험엔 서른번도 넘게 떨어짐
미국 대학 지원 10번 모두 실패
미국 kfc가 중국에 진출 입사원서 넣었다
24명이 지원했는데 혼자만 떨어짐
경찰관 다섯명 뽑는데 혼자서만 떨어짐

"전 거절당하는 걸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서 도전도 하지 않느니 계속 도전해보는 게 낫죠."


바이든은 아버지에 대해 "남자의 척도는 얼마나 자주 쓰러지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빨리 일어나는가'라고 가르쳐줬다

- 구글은 먼저 기계학습 연구자들을 찾아갔다. 페이지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가 물었죠. '아무 언어나 두 언어를 인간보다 더 잘 번역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게 가능합니까?' 그랬더니 연구자들은 우리를 비웃었습니다. 불가능하다면서요. 하지만 시도는 해보려고 하더군요.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64개 언어를 번역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번역가보다 우리가 더 잘 번역하는 언어도 많고요. 우리는 실시간으로, 공짜로 번역해주는데도 말이에요.






After winter, spring follows.

How to handle the winter:
Don't wish it was easier; wish you were better.
Don't wish for less problems; wish for more skills.
Don't wish for less challenge; wish for more wisdom.


It's easy to get trapped by ecnomic necessity and settle for existence rather than substance.

I didn't think current bank balance is a true indication of your level of intelligence. I think you're much smarter than your present bank balance indicates.

Once in a while, somebody says to me, boy if I had a million dollars, I'd never work another day in my life. that's probably why the good lord sees to it they don't get their millions.




처칠이 남긴 어록 중 좋아하는 말이 있다. ‘운이 다할 때 사람은 정신을 넓혀 빈 공간을 채워야 한다.’


Whether you think you can, or that you can't you are usually right
- Henry Ford

If the people really set their minds on anything it is impossible to prevent their getting what they want.

The whole secret of a successful life is to find out what is one's destiny to do, and then do it.
- henry ford



ibm

This telephone has too many shortcomings to be seriously considered as a means of communication. The device is inherently of no value to us.
- Western union internal memo 1876

There is no reason why anyone would want a computer in their home
- Ken Olsen
Founder, Digital Equipment Corp. 1977


"The brick walls are there for the reason. They are not there to keep us out. They are there to show how badly we want it. And I would add, when people see you break through the brick walls and come out from the other side, then they will stand up and go find their own brick walls and blast through those and create an entire future generation that will go and do the same."

Brian Rose - Why I Left Millions in Banking to Inspire Millions Online


가난과 허약, 무학(無學)은 하늘이 내게 준 축복이다.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해야 했고,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건강에 신경을 썼고,
배움이 없었기 때문에 학식이 있는 사람들의 충고를 경청할 수 있었다.
- 마쓰시타 고노스케

Are great things ever done smoothly? Time, patience, and
indomitable will must show.
- 비베카난다


 "폭풍우 속을 걷게 되면 우산을 쓰더라도 비에 젖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누구라도 돈벼락을 피할 수 없는 시기가 있다."라는 헨리 로저스



하시디즘 카발라에서는 자신을 표현하기 이전 상태의 Ein sof를 진정한 신의 본질로 보지 않는다. 아인 소프는 오직 '무한'인 반면, 하시디즘 카발라에서 진정한 신의 본질이라고 여기는 Atzmus 는 무한/유한의 개념을 뛰어 넘은 가장 상위 개념인 신의 진정한 본질이기 때문.




칼 야스퍼스 - 인간은 불치병, 죽음, 극단적인 절망 같은 '한계 정황'에 처할 때에야 '포괄자'를 만날 수 있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상위저널 인용 실패하고 시작한 사람들이 논문 갯수에서 우위
상위 5%의 더 높은 저널에 논문을 투고한 횟수는
압도적으로 높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tsMtswt0WGk



"He who wrestles with us strengthens our nerves, and sharpens our skill. Our antagonist is our helper." - Edmund Burke

열자 제 7편 발췌
 

  어느 날 양주가 양왕을 만나 말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을 손바닥을 다스리는 것보다 쉽습니다.”

양왕이 물었다.

“선생은 한 집안에서 단 한 사람의 아내와 한 사람의 첩도 잘 거느리지 못하고 얼마 되지 않는 밭의 김도 제대로 못 매면서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다고 하니 무슨 말입니까?”

양주가 말했다.

“임금님께서는 양치는 목동을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백 마리나 되는 양의 떼를 키가 다섯 자 밖에 안 되는 작은 아이가 채찍 하나를 어깨에 메고 양의 무리를 몰 때, 동으로 몰고 가고 싶으면 동으로 몰고 가고, 서쪽으로 몰고 가고 싶으면 서쪽으로 몰고 다닙니다.

그러나 옛날 한 나라의 임금이었던 요임금에게 앞에서 양 한 마리를 끌게 하고 그 뒤에서 순임금에게 채찍을 메고 몰아가라 하면 아마 잘 몰고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제가 듣기에「배를 집어삼킬 만한 물고기는 작은 개천에서는 헤엄치지 않고, 하늘 높이 나는 기러기는 더러운 물에서는 모이지 않는다」라고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극히 멀리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또,「황종과 대여는 세속적인 음악을 시끄럽게 연주하는 무도곡에 박자를 맞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소리가 너무 조잡하기 때문입니다.「장차 큰 것을 다스리려고 하는 사람은 작은 것을 다스리지 않고, 큰 공을 이루려는 사람은 작은 일을 하지 않는다」라고 한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입니다.”

  


“대체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투자 성공의 비결을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세계적인 주식 전문가이자 가치 투자자로 성공을 거둔 피터 린치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린치는 자신의 성공을 오로지 주식 투자와 결부 지으려는 세간의 관심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가 말하는 성공의 원동력은 사소한 습관 하나다. “매일 아침에 한 시간 동안 주식의 동향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당신의 자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입니다.”

- 피터 린치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앙드레 코스탈리니





'21일의 법칙'이란 게 있다. 신경가소성의 원리와 관련이 깊다. 21일만 철저하게 연습하면 습관이 바뀌고 뇌가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21일이란 대뇌피질과 피질하 구조 사이에 새로운 신경회로가 만들어지는 시간을 의미한다. 생각이 대뇌피질에서 피질하구조까지 내려가는 최소한의 시간을 일컫는다. 피질하구조는 호흡, 체온, 혈압과 같은 생명유지 장치를 관장하는 뇌간도 포함한다. 뇌간이 다치면 죽음과 직결된다.



생각이 뇌간에 이르면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 몸에 밴다. 마치 심장이 뛰어 온몸 구석구석 혈액을 주입하는 이치와 동일하다. 아무리 좋은 생각 또는 굳건한 의지라도 적어도 21일은 반복적으로 생각과 의지를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뇌가 그에 대한 보상을 선사한다. 21일이면 3주다. 3주는 흡연을 참아야 담배를 끊었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웃을 일이 없어도 3주만 의도적으로 실실 웃고 다니면 긍정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다.



병아리가 알에서 부화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21일이다. 생쥐가 뱃속에 새끼를 잉태에 출산하기까지 21일이 걸린다. 우리 민족에게는 삼칠일 풍속이 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외부세계의 부정에 노출되어 있다고 여겨 산모와 함께 일상으로부터 격리해 보호했다. 이때 엄마와 아기의 처소에 금줄을 치는데, 상갓집을 방문했거나 흉사에 휘말린 사람은 아버지라도 들이지 않았다. 마침내 21일 째 되는 날 위험한 시기를 잘 넘겼다는 의미로 새벽에 삼신할머니에게 흰밥과 미역국을 올린 뒤 금줄을 내렸다. 한국의 선원에도 삼칠일 용맹정진이란 전통이 있다. 21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참선을 하면 반드시 크게 깨달으리라는 믿음으로 화두를 든다.



이렇듯 21일은 변혁의 기간이자 행복을 약속하는 숫자이다. 21일만 꾸준히 노력하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



- 장현갑 <심리학자의 인생 실험실> 중






성공하려면 자신의 인생을 걸고 현재에 몰입해야 한다는 것.

노무현 이전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모두 목숨을 걸었다.
- 노무현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거야. "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과거도 미래도 네 손 안에는 없다.
단 구제는 가능하다.
지금이라는 이 한점만은
네가 살아있는 한 네 손안에 있어.
지금만이 확실해.
숨도 쉬고, 키스도 가능해
그러니깐 지금을 살아라.
뭐 지금이라는 순간도
 언제나 멈추는 일없이 흘러가지만
모래처럼 우리들 손안을 스스륵 빠져나가지만
그러니깐 지금
지금 손안에 있는 이순간을 잡아서

 


 
今を生きろ 지금을 살아라.
 
 

 


 


 

 

2002년에 있을 당신들에게

 




우리들은 모래와 바위뿐인 사막에 둘려싸여
물도 먹을것도 아무것도 남겨져있지 않은 미래의 세계에 와 있습니다.
세계는 언젠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야? 지금 좋으면 그걸로 된거 아냐?'라고 당신은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가 언젠가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어쩔수 없는일이야 관계없어' 라고
하지만 사실은 미래는 열려있어요.
미래에도 사람에게는 많은 가능성이 있어요.
실제로 아무것도 없이 다 사라진 이 세계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째서일까.
방황하거나 괴로운일도 있지만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
그리고 2002년을 사는 당신들이 행복하고
그 행복이 오랫동안 계속되기를 기도합니다

- 롱러브레터 표류교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1. 역사적·정치적 맥락 (이승만 전 대통령)
한국에서 이 문구가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 때문입니다.

그는 해방 직후 귀국 연설이나 6·25 전쟁 당시(특히 1950년 10월 평양 탈환 환영대회 등)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이 구호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대중들에게는 이승만 대통령이 마이크 앞에서 이 구호를 외치던 모습이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어, 한국에서는 사실상 그의 상징적인 정치 구호로 인식됩니다.

2. 어원적·철학적 맥락 (이솝 우화)
이 문구의 근원적인 뿌리는 서양의 격언인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에 있습니다.

이 격언은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연합하면 서고, 분열하면 넘어진다"는 뜻으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인류 공통의 교훈입니다.





- 연습생 시절을 돌아봤을 때 불안의 에너지를 어떻게 극복했으며

지금은 그 꿈의 어디쯤 왔다고 생각하나​



인간은 양가적 감정을 동시에 생각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것 같다.



그 점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다른 세계를 지배하도록 만들어준 원동력이라고 한다.



사랑하면서 이별을 생각하고 성공이라 느낄 때

추락과 실패를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우리 유전자 안에 있다.





슈가 형 맥락과 비슷한데 (불안은) 그림자 같다.



조금 더 제 케이스에서 얘기하자면,

아버지가 25년 회사 생활하면서 이명(耳鳴)을 얻으셨다.



일에 집중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증상이 없다가도

스트레스받거나,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할 때

생활에 지장이 될 정도로 나타나 힘들다고 하셨다.





누군가에겐 이명으로 나타나는 불안은 그림자 같아서

제 키가 커지면 더 커지고, 밤이면 더 길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마음 속 반대편의 양가적 감정을 극복한다고 말할 순 없고

다만 인간은 누구나 필연적인 고독이나 어둠을 갖고 가야 하니

안식처가 필요한 것 같다.





예전에 저는 유일한 게 음악이었고

운 좋게 그걸 선택해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직업적, 경제적으로 성취했다.



그래서 저는 불안함과 차라리 친구가 될 수 있게

안식처를 여러 개 만들어놨다.



피규어 수집을 한다든지, 좋아하는 옷을 산다든지,

모르는 동네에 가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구경한다든지.

버스를 타고 모르는 동네에 내려 다녀보면

제가 이 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된다.



그럼 불안이 분산된다.


[출처] 인상적이었던 남준이의 말들과 그 고민이 녹아있는 가사들(펌글|작성자 꽁보리


 

매번 일은 똑같이 하면서 결과가 다르기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 하루가 어제와 별다를 게 없다면 당신은 잘못 살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은 사람들이 넌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 일들을 해내는 것입니다.

 

 

꿈을 쫓을 때는 꿈이 당신의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분열된 왕국은 적의 맹공력을 버텨낼 재간이 없으니까요.

 
 

어느날 아침 문득 눈을 떴을 때 당신은 꿈꾸던 것들을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남지 않았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바로 지금 시작하세요.

파울로 코엘료 <마법의 순간> 中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에 강물에 발을 담그면 상류에서 흘러운 물이 금세 발을 스치고 하류로 흘러가기 때문에, 다시 강물에 들어가더라도 예전의 강물은 이미 흘러간 뒤라 다시는 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 오로지 새로운 강물만 흘러올 뿐이다. 인간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 BC 540경~BC 480경)





 

냉정관찰(靜觀察 : 냉정하게 관찰하고),

참온각근(站穩脚 :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하며),

침착응부(沈着應付 : 침착하게 대응하고),

도광양회(韜光養晦 : 때에 이르기 전까지 자신의 능력을 노출하지 않고),

선우수졸(善于守拙 : 교묘하게 세태에 융합하지 않고 우직함을 지키며),

절부당두(絶不當頭 : 결코 우두머리로 나서지 않는다)

 
- 등소평




이신영 조선일보 기자는 북미,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 각지를 2년 간 누비며 100여 명에 달하는 세계적인 경영인, 예술인, 석학들을 인터뷰하고 쓴 책 <콘트래리언>에서 이렇게 정의했다. "콘트래리언은 '남들의 생각'이 아닌 '남들과 정반대되는 나만의 생각'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사람들이다. 언론 기사제목에 빗대어 설명하면 '프로페셔널보다 아마추어가 더욱 전문적이다' 또는 '여성보다 남성이 성차별의 더 큰 희생자이다'처럼 일반 상식과는 정반대의 아이디어를 밀어붙이는 사람들이다."



이신영은 2013년 9월 미국의 존 폴슨(John Paulson) 폴슨앤컴퍼니 회장이 인터뷰에서 "진정한 성공을 위해 콘트래이언이 되는 것이 제 인생의 원칙이었어요. 다른 사람을 능가하려면 시장의 정반대 지점을 봐야 한다는 겁니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콘트래리언'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영국의 식물학자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고치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는 나방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나방은 바늘구멍만 한 구멍을 하나 뚫고
그 틈으로 나오기 위해 꼬박 한나절을 애쓰고 있었습니다.
고치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은 생사가 걸린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렇게 아주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번데기는 나방의 되어 나오더니
공중으로 훨훨 날갯짓하며 날아갔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애쓰며 나오는 나방을 지켜보던 윌리스는
이를 안쓰럽게 여긴 나머지, 나방의 쉽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칼로 고치의 옆부분을 살짝 그었습니다.
나방은 쉽게 고치에서 쑥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좁은 구멍으로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던 나방은
영롱한 빛깔의 날개를 가지고 힘차게 날아가는 반면,
쉽게 구멍에서 나온 나방은 무늬나 빛깔이 곱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차례 힘없는 날갯짓을 하고는
그만 죽고 만 것입니다.

오랜 고통과 시련의 좁은 틈새를 뚫고 나와야만
진정한 나방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모진 비바람을 견디어내야 합니다.

인생에서 험난한 고통과 투쟁 속에서 몸부림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로움과 슬픔, 고통을 이기고 나면
우리는 더 성장한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하 출처: http://www.kimmo99.com/bud/bd1.htm






작년 하반기에 불교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글이 있었습니다. 조계종 현응 스님의 기고문이었는데요. 이 글의 요점을 투박하게 간추리면 이렇습니다. “붓다는 선정(명상)을 해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왜 무작정 가부좌를 틀고만 있는가.”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8672 (기고문)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9516 (재반박문)

저는 이 글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는데, 6년 전쯤인가 어떤 모임에 갔다가 비슷한 논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연히 들른 그곳에서 아주 우발적인 논쟁이 일어났는데.. 이분들이 공개토론을 제안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그것도 퇴근 후에 모이다 보니 시간이 부족해 2,3일 정도 계속됐던 것 같습니다.

그때도 그렇고 이번도 그렇고, 붓다와 명상의 관계에 대해 오해를 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고문에도 나오다시피 붓다는 명상으로 깨달음을 얻으려 했다가 결국 실패한 인물입니다. 명상을 가르치는 스승을 둘이나 뒀었지만, 이런 것이 깨달음이 될 수는 없다는 실망감에 박차고 나왔던 것이죠.

물론 붓다가 “명상 무용론”을 주장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팔정도에 “정정” 즉 “올바른 선정”이 엄연히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선정(명상)이 어떤 것이었냐에 대해서는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고 있습니다. 선정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이렇다 할 기록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록이 남지 않은 것 자체가 테크닉이나 방법론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시대의 수행자들에게 “everything”이나 다름 없던 명상을 붓다가 “one of them”으로 격하시켰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산술적으로도 1/8 정도의 비중을 지니고 있을 뿐입니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붓다가 주장한 가르침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현응 스님과 약간 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이건 불자와 비불자라는 입장차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만…

불교에는 “선지식(善知識)”이란 말이 있습니다. 대개 덕망 높은 고승을 뜻하는 용어로 쓰이는데요. 이것은 아주 잘못된 번역입니다. 선지식은 산스크리트어로 칼리아나 미트라 (kalyāṇa-mitra), ‘칼리아나’는 좋은, 아름다운, 도움이 되는… ‘미트라’는 ‘친구’라는 뜻입니다. 즉 ‘좋은 친구’란 말이 되는데 보시다시피 스승에 대한 존경의 표시가 전혀 담겨 있지 않습니다. ‘지식’이란 말과도 무관하죠. 이 부분에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불교 초기 경전에는 붓다의 제자 아난다가 ‘칼리아나 미트라’, 즉 ‘좋은 벗’을 주제로 스승과 주고받는 대화가 나옵니다. “저는 좋은 우정을 갖고, 좋은 친구를 갖고, 좋은 교류를 갖는 일이 성스러운 수행의 절반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난다의 말에 붓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난다여,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좋은 우정을 갖고, 좋은 친구를 갖고, 좋은 교류를 갖는 것은 성스러운 수행의 절반이 아니라 그 전부이다. 좋은 친구와 교류를 갖는 수행자는 성스러운 여덟 가지의 도(8정도)를 닦고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수행자는 좋은 친구 때문에 욕망의 대상을 물리치고 탐욕을 떠나고 번뇌를 버림으로써 올바른 견해를 닦는 것이다… 좋은 우정으로 좋은 교류를 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수행의 절반이 아니라 전부인 것이다.” 붓다는 이 말과 함께 자신을 친구로 대해 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붓다가 그냥 해본 소리가 아닙니다. 붓다를 따르는 제자들의 모임을 승가라고 하는데 이는 상가(sangha), 즉 민주적 공동체를 뜻하는 말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그 당시에 상가국이란 말은 군주국과 대별되는 공화국을 의미했습니다. 붓다는 상가라는 말을 교단 조직의 명칭으로 채택했을 뿐 아니라, 그 운영 방법까지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에도 대부분의 수련 단체나 종교, 영성단체들은 지도자가 정점에서 가부장적 권력을 누리는 피라미드형 조직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진리요, 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모임을 피라미드가 아닌 수평적 공동체로 만들고 위계를 무너뜨립니다. 서로가 서로를, 심지어 교조 자신조차 ‘친구’로 여기도록 했던 거죠.

‘칼리아나 미트라’는 아주 쉽고 단순한 뜻을 가진 말이기 때문에, ‘선지식’이란 모호한 말로 번역된 것을 단순한 오역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왜곡을 시킨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까마득한 옛날에 입멸한 뒤 누대에 걸쳐 신격화된 석가모니를 친구로 여길 불자가 없으리라는 점까진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지만.. 불교의 수행자들이 과연 자신의 스승을 친구로 여기고 우정(?)을 나누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의문입니다.

고승이 아닌 평범한 스님에게도 삼배를 하고 몸을 조아리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죠. 심지어 면담을 원하는 사람에게 10시간 넘게 걸린다는 삼천 배를 요구하는 승려도 있습니다. 이런 상하 관계가 관행으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칼리아나 미트라’를 친구로 번역해 놓으면 승려들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이처럼 모호한 번역으로 얼버무리고 넘어 가기엔 너무도 찜찜한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붓다가 자신의 입으로 ‘좋은 친구’와의 우정이 수행의 ‘전부’라고 단언했기 때문입니다. 수행이나 명상이 붓다의 everything이었을 거라 여기는 사람들에게 명상이 아니라 ‘좋은 친구와의 우정’이 everything이란 엉뚱한(?) 답을 던져준 것이니까요..

단적으로 말해, 칼리아나 미트라를 선지식으로 번역함으로써 원래의 가르침을 왜곡한 그 순간부터, 붓다가 주장한 수행의 ‘everything’은 불교 수행자들 사이에서 종적을 감추고, 애먼 '명상'이 적자 행세를 해온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승려들이 모여 술판과 도박판을 벌이거나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이 시대야말로 말법의 시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말법의 시대에 등장하는 새로운 붓다인 미륵, 즉 마이트레야의 어원이 “미트라”, '친구’라는 것입니다.

이 예언이 과연 예언으로서 어떤 값어치를 지녔는지는 모르지만, 불교의 본질을 역설적으로 환기시켜온 점에서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예언으로 인해 동북아에서 수많은 공동체 운동이 일어나곤 했으니까요. 아무튼 오늘날에도 되짚어볼 점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습니다.

명상이 혼자서 내면의 세계로 파고드는 것이라면, 우정은 자신을 열어젖힌 관계 속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수많은 존재들의 ‘관계’를 새롭게 바꾼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명상이 있다면 그것은 세상의 모든 존재를 참된 친구로 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레 해봅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사상 중에 붓다의 연기론처럼 참신한 것은 아마 없을 겁니다. 2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학계를 지배하는 세계관은 실재론(연기론의 반대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연기론도 실재론적으로 왜곡시켜 설명하곤 하다 보니 연기론에 관한 책을 아무리 읽고 강의를 들어도 무슨 뜻인지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붓다의 연기론이란 간단히 말해 “세상 만물 중에 그 자체로 독립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실재론은 사물에 독립적인 속성이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그 속성을 파악하려 애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컨대 의학의 경우 심장과 뇌, 신장 등을 독립적으로 분리시킨 상태에서 연구해 왔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밝혀낸 지식들을 질병 치료에 응용한 것이 지금의 서양의학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뇌와 심장 등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분리된 상태에서 알아낸 지식으로는 치료를 완벽하게 할 수 없는 것이죠. (실제로 뇌에만 있는 줄 알았던 신경세포가 심장에도 있다는 사실이 최근에 밝혀진 바 있습니다)

연기론은 세상에 홀로 뚝 떨어져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봅니다. 만물이 관계 속에서 계속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모든 것은 끝없이 변화하고 있다는 거죠. 어떤 존재가 고정불변의 실체를 갖고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란 겁니다. 존재는 오직 관계를 통해서만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론은 관계론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얼핏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똑같은 사물을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상이한 결론으로 이어질 때가 많습니다. 이쯤에서 기존의 ‘수행법’을 연기론, 즉 관계론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간의 자의식을 일종의 원 같은 것으로 볼 때…



이렇게 상태가 좋은 원은 매우 드뭅니다. 대부분 다음과 같습니다.



까맣게 채워진 것은 수많은 마음의 ‘틀’입니다.

예전에 양말의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양말을 좌우 구분 없이 막(?) 신는 배우자를 볼 때마다 혀를 내두르며 분노를 터뜨리곤 했죠.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건데요. (참고로 이분은 짧은 실을 양말 목에 꿰어 왼쪽과 오른쪽을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우리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사고방식의 거의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특정한 문화나 관습, 개인적인 트라우마 등이 얽혀 구축된 편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경직된 틀이 잔뜩 끼어 있다 보니 그 틀을 누가 약간이라도 벗어나면 신경이 곤두서는 거죠..

틀이 많을수록 다른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다시 말해 ‘나’와 ‘나 아닌 것’ 사이의 경계가 분명해지는 것이죠. 그리고 ‘나’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경쟁이 시작되는데요. 인간은 에너지체이고 에너지는 물처럼 흘러야 하건만 이렇게 경계가 분명해지면 흐름이 막히면서 속에서 압이 찬다고 할까요?



(이런 식으로 바늘 하나 꽂기 힘들 정도의 상태가 됩니다)

이 상태가 되면 스트레스를 견딜 수가 없게 됩니다. 바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수행’이라 할 수 있는데요. 수행이란 쉽게 말해 원에 구멍을 뚫는 작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멍이 뚫리고 시쳇말로 ‘도통’하면서 막혔던 숨통이 트입니다.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린 듯 해방감을 맛보게 되죠. 그런데 묘하게도 수행자들을 많이 접해본 사람들의 공통적인 이야기는 “괴팍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모든 분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퍼센테이지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수행하는 사람들 중에 괴팍한 사람이 많다” “마음 속에 부정적인 상념이 끼어 있는 상태에서 호흡수련을 하면 부정적인 상념들이 오히려 강고해진다”는 말씀을 아마 여러분도 들으셨을 것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생기는 것일까요?

수행법이란 것 자체가 실재론적인 관점에서 고안해낸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원(인간의 자의식)이 그 자체로 독립적인 존재여서 구멍만 뚫어주면 만사가 해결되는 것처럼 보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원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원은 수많은 다른 원들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어떠한 원도 예외가 없으며, 이것이야말로 원의 숙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원이 무인도 속에 혼자 고립되어 다른 원들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는다면 기존의 수행법은 완벽하게 이상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므로, 구멍을 뚫었을 때 다음과 같은 엉뚱한 변화를 겪는 원들이 생기게 됩니다.





수행을 해서 괴팍해진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이처럼 기존의 수행법이 예상과 다른 결과를 낳는 이유는 대략 2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원은 다른 원들과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 받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의 에너지를 교류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계 맺음과 교류”는 일종의 ‘감각’을 필요로 합니다.

여기서의 감각이란 자전거를 타는 능력과 비슷합니다. 자전거 타는 법을 이론으로 배우는 사람은 없습니다. 수없이 넘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교류의 감각도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은 고립, 단절된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보니, 장시간 규칙적으로 되풀이하다 보면 음치나 박치, 몸치처럼, 일종의 관계치가 되어 버리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정작 다른 원들과의 교류를 통해 에너지를 순환시키는 일에 무능하거나, 부적절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습니다. 게다가 타인과의 교류 자체에 무관심해지는 경향도 생겨나구요. (에너지를 별도로 공급받는 루트를 확보해 두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두 번째는 좀더 본질적인 것인데요. 인간이 자의식의 틀을 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것이 허상에 불과했음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보통 인간이 한계상황에 부닥쳤을 때 일어납니다. 너무도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불합리한 습성을 뉘우치고 회심을 일으키는 것이죠.

인간은 어지간한 상황에선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꾸려 들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는데요. 아주 극단적인 궁지에 몰려서야 비로소 자기자신이 문제의 발단이었음을 인정하게 되고 이때 틀이 많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삶 속에서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모난 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원만한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이론상 그렇다는 것일 뿐 실상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말법의 시대에는...)

그런데 수행은 이러한 과정을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는 거죠. 고통스러운 상황으로부터 심리적인 거리를 두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고통을 완화시키는 진통제의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고통이 없으므로 고통을 통한 자의식의 해체도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죠.

이 과정을 두고 좋다 나쁘다의 가치판단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실재론적인 관점에서는 장점으로 보일 수 있지만, 관계론적인 관점에서는 단점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습니다.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까지는 좋은데.. 방법론적인 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원에 구멍을 내서 무조건 압을 빼려 하기보다는, 원을 외부와 단절시키는 두터운 벽을 해체시키는 쪽이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이 원에는 구멍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도통”한 원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나와 남의 경계가 확실치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기쁨이나 슬픔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거죠. 게다가 에너지를 공급받는 통로가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에너지를 가로막는 틀이 강고하지 않기 때문에 상상 외로 강인한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할머니가 될 수도 있고… 아파트에서 경비를 서는 아저씨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분들은 수행이란 걸 해본 적도 없고,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그냥 삶 자체를 통해 나를 다른 존재와 구분하는 마음의 틀들이 떨어져 나가 너그러운 상태가 되었을 뿐입니다.

만일 “수행을 해야만 깨달음을 얻고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한다면, 세상은 무의미한 쓰레기장에 불과하겠지만, 사실 이 세상은 그 자체로 훌륭한 수행처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남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 자체가 수행과 매우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공존을 하면서 살아가려면 자신의 욕구를 고집하고 앞세우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욕구에 어느 정도 부응을 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처신은 “자기 비움”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는 것과 원리상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이쪽이 훨씬 자연스러우면서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감각을 덤으로 터득할 수 있다는 차이점이 있죠.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단지 ‘이론상’으로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붓다가 ‘좋은 벗’과의 교류를 수행의 ‘전부’라고 이야기한 뜻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은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삶 자체가 수행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약한 사람들’로 넘쳐나는 환경이라면 수행처의 역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교도소 비슷한 곳이 될 수 있다는 거죠(온갖 안 좋은 것들에 물들게 되는 공간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대체로 갑질이 보편화된 난세에 수행이 들불처럼 번지곤 했습니다. 인간들은 서로 헐뜯고 경쟁하며 상처를 주고받을 뿐입니다. 이렇듯 ‘관계’가 인간에게 고통만 안겨주다 보니 관계를 통해 배울 것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내면으로 파고드는 ‘수행’이 유행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붓다는 그렇게 독고다이로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그러지 말고 모임을 만들어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벗이 되어주자, 그것이 진정한 수행이라고 역설했던 것입니다. 원래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런 수행처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세상의 혼탁함으로 인해 교도소 같은 곳이 되어 버렸으니..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라도 그와 비슷한 공간을 만들어 내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인 거죠.

이것이야말로 관계론, 즉 연기론적인 관점에서 본 수행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 각자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다시 말해 죄다 연기되어 있는데 어떻게 독고다이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붓다의 연기론적인 수행은 곧바로 실재론자들에 의해 왜곡이 되어 버립니다. 오늘날은 본래의 취지가 거의 사라져 사실상 종적을 감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서로를 존중하고 관계를 중시했던 동학이 불교의 본래 모습에 훨씬 가깝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붓다의 연기론적인 수행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구성해 볼 때 새로운 수행법은 가부좌를 틀고 면벽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서로의 진심을 교류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공감을 해준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수많은 자의식의 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뭐 저딴 소리를 하고 있어!” 같은 반발감이 생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눈을 질끈 감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처음엔 어색하지만 점차 되풀이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체득이 됩니다. 이처럼 자의식의 틀을 뛰어넘어 수많은 사람들과 반복적으로 공명하는 사이에 강고했던 틀이 점차 희미해지는 원리인 것이죠.

그렇다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게 직업인 영화배우야말로 최고의 수행자란 말인가? 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는데요. 영화배우는 가공의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라 에너지의 교류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하면 에너지의 교류가 일어나고, 이러한 교류는 하나의 ‘장’을 형성합니다. (이 장의 역할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아무튼 모임을 통해 이러한 훈련을 하는 것은 효과적인 수행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알아둬야 할 것은 인간 상호간의 교류를 테크닉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진심어린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테크닉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존중하고 진정성 있는 교류를 하겠다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약간의 테크닉도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우선 교류를 할 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다른 데서 들은 좋은 이야기는 자기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신을 개방하는 행동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하잘 것 없어 보여도 자기가 직접 느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자기 이야기와 남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남의 이야기라도 체험을 통해 자기 것으로 체화시키면 자기의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 이 둘을 엄격하게 구분짓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자기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를 뒤섞는 패턴이 늘 비슷하게 반복된다면 이것은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자기 이야기를 할 때 증오심이나 분노를 섞어 표출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이 모임이 일반적인 친교 모임과 다른 것이 이 부분입니다. 좋은 벗과의 교류를 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이 모임에서만이라도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쩔어 있는 모습은 일단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것은 가식이 아니며 일종의 에티켓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의 경계도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험에 합격해 명문대에 진학하고, 승진을 해서 월급이 오르고.. 이러저러하여 기분이 좋다”는 식의 이야기가 긍정적인 감정의 표출일까요?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나와 남을 비교하는 경쟁적 세계관, 원을 외부세계와 구분짓는 관점을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생선 파는 할머니가 철거반에게 떠밀려 허리를 다쳤다. 분노와 슬픔을 느꼈다”는 말은 얼핏 부정적인 생각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게 볼 수만도 없습니다.

이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좋은 벗이 되어 남들과 교류하는 모임을 가진다는 것은 겉보기처럼 쉬운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가부좌를 틀고 소주천이나 대주천을 목표로 정진하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는 거죠.

새로운 수행법을 만든다는 것은 실재론적인 관점에서는 카리스마 있는 존재가 시스템을 만들고 그 안으로 다른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과정을 연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관계론적인 관점에서는 그런 과정이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긴밀한 관계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에, 응당 모두가 참여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붓다는 두 군데의 명상 단체에서 수행을 했는데요. 둘 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자, 어딜 가든 마찬가지란 결론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이른바 '6년 고행'입니다. 6년의 고행을 중단하고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인데요.

여기서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처음 찾아간 사람들이 함께 고행을 했던 다섯 명의 수행자들이란 점입니다. 붓다는 처음에 이들에게 문전박대를 당하는데요. 배신자라는 이유 때문이었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사람들의 관계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얻는 그날까지 생사고락을 같이 하자든가.. 하며 맹세를 나눈 사이일 수도 있겠고, 뭔가 끈끈한 연대감으로 뭉쳐진 관계가 아니라면 이런 반응이 나오기 어렵다는 거죠. 다시 말해 이들은 붓다에게 “칼리아나 미트라” 즉 “좋은 친구”의 모델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고행을 했던 6년은 “칼리아나 미트라”와 교류를 나눴던 시간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많이 있었겠습니까.. 이런 때일수록 우정은 깊어지는 것이죠. 그런데 붓다가 이 기간 중에 깨달음을 얻지 못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고행”을 했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을 얻기엔 몸이 너무 쇠약하고 피폐했던 거죠. (깨달음을 얻으려면 고행을 피해야 한다는 것은 붓다가 직접 말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고행을 끝내고 건강을 회복했을 때 “좋은 친구와의 교류”가 수행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바로 알아채진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붓다가 여기서 깨달은 것은 그게 아니라 이른바 “무아론”인데요.

무아론은 연기론과 동전의 앞뒷면 같은 관계입니다. 모든 게 연기되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자아인 “참나”, 즉 '아트만' 같은 것은 없다는 거죠. 왜 이게 깨달음의 바탕이 되었을까요? 개인적으로 불경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부분이 있습니다. 초기 불경에서 붓다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구절입니다.

“비구여, 슬픔, 비탄, 고통, 재난, 좌절을 일으키지 않는 영혼설(아론)이 있다면 그것을 받아들여라. 그러나 슬픔, 비탄, 고통, 재난, 좌절을 일으키지 않는 영혼설을 본 적이 있느냐? 그렇다. 나도 그런 영혼설을 보지 못했다. 자아와 관련된 어떤 것이 진실로 발견되지 않는다면, ‘우주는 아트만이다. 나는 죽은 후에 영원불변하고 영속적이며 불변하는 어떤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상태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라는 견해는 진정으로 어리석은 것이 아니겠느냐?”

여기서 붓다는 “영원불멸의 자아가 내 안에 있다”는 이론이 슬픔과 고통을 일으키는 "어리석은" 이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부분을 완전히 거꾸로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절대적인 자아를 발견하면 영원한 행복에 들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굳이 붓다를 들먹이지 않아도 “절대적인 자아”가 존재한다는 것은 오늘날 영성가들 사이에 상식처럼 통용되는 가르침입니다.

붓다는 이러한 상식을 (그것도 2천년 전에) 깨뜨렸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슬픔과 고통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정말 미스터리하지 않습니까?

이처럼 시공을 무시하는 듯한 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은 붓다의 연기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그의 가르침을 실재론적으로 해석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관점을 바꾸면 똑같은 문제가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알기 쉽게 인간의 의식을 세 단계로 나눠보겠습니다.

1. 자포자기의 방치 상태. 자기를 이롭게 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며, 그냥 되는 대로 살아감. 심지어 자기파괴적인 행위에 중독 되기도 함.
2. 스스로를 이롭게 하려고 무던히 노력함. 그러나 그것이 물질의 차원에 머문다. 돈이나 권력, 명예에 집착하며 그런 것들을 키우는 것이 스스로에게 이롭다 여김
3. 2와 비슷한데 물질의 차원이 아니라 정신의 차원을 추구한다. 수행자나 구도자의 모습을 띠곤 함.

2단계에서 도무지 행복을 맛볼 수 없어 지긋지긋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발상을 바꿔 3단계를 시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가서 2나 3이나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3도 욕심이요, 집착이기 때문입니다. 집착이 약간 고상한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 기본 메커니즘은 거의 같습니다.

물론 다른 점도 있긴 합니다. 3 단계가 무르익으면 옛날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나는 딱 한 놈만 패!”가 된다는 거죠. 좋은 집과 마누라, 권력과 명예, 등등 모든 집착을 버리고 깨달음을 향한 집착 딱 한가지만 남겨 놓은 상태가 된다는 겁니다. 물론 이것은 모든 집착을 다 내려놓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집착입니다. 그리고 모든 집착은 어떤 식으로든 상실감과 그로 인한 고통을 유발합니다. 붓다의 무아론은 하나 남은 이 집착의 끈을 단 칼에 베어버린 겁니다. 그러니 훨훨 날아갈 것처럼 마음이 가벼워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여기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인간이 건강한 “관계” 속에 있어야만 이 일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고립되어 있거나, 피라밋 같은 위계 속에서 고독을 느끼는 상태라면, “절대적인 자아”를 향한 집착을 끊는 순간 자기방치와 파괴의 1단계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서문에 나온 TED 동영상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책을 한 권 쓸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고고학적, 문화인류학적 근거들이 이 점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모든 근거들을 종합해 보면 인류는 농경을 시작하기 전까지(혹은 농경의 초기까지도) 수평적인 유대 속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빈부격차와 전쟁, 계급이 생겨나고 연대가 무너지면서 나와 남을 비교하거나 경쟁하게 되었고, 수많은 “나의 것”들, 나를 구성하는 많은 것들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고, 그러면서 실존적인 고뇌가 따라붙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러니 “나는 없다”는 사상적 재발견, 즉 “나”라는 답답한 틀을 벗어나 자유를 얻는 것은 붓다가 새로운 정신적 가치를 발견했다기보다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을 회복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이 붓다처럼 드라마틱하게 전개된 경우는 없었을 텐데요.

알다시피 붓다는 왕의 후계자였습니다. 이 말은 곧 어릴 적부터 극단적인 단절을 체험했다는 뜻입니다. 감히 또래 친구 같은 것도 있을 리 만무하고, 심지어 친어머니마저 이름을 부르거나 스킨십을 마음대로 해줄 수 없는 위치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정상적인 사람이 나오기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실제로 후대에 훌륭한 왕으로 평가 받은 사람들 중에 태어나자마자 후계자로 지목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반면에 어려서부터 황태자 수업을 받은 왕 중에 이상하게도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많습니다.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붓다만 해도 인간의 생노병사를 보고 허망함을 느껴 식음을 전폐했다고 전해지는데,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일은 드뭅니다. 결국 이런 황당한(?) 이유로 모든 걸 버리고 궁궐을 뛰쳐나와 노숙자가 되지만 명상수행이 그의 내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었습니다. 단절로 인해 생겨난 마음의 병을 더욱 극단적인 단절인 수행으로 치유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실패를 맛본 붓다는 고행을 시작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 진정한 우정과 연대감을 난생 처음 체험하게 되면서, 골수에 박혀 있던 병이 서서히 치유되기 시작한 것이죠. 고행 중이라 자각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고행을 포기하자마자 세상이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위의 동영상에서도 말하지만 인간은 연대감 속에 있을 때 병적인 욕심이 사라집니다. 특히 “나는 딱 한 놈만 패!”의 정신으로 살아온 수행자라면 하나 있던 욕심마저 사라지면서 모든 형태의 미련과 집착이 단박에 종적을 감추는 놀라운 해방감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붓다와 그를 따르는 수행자들이 대부분 이런 경우였을 것입니다. 그는 이 상태에서 자기가 그동안 보아왔던 영성과 수행의 원리들을 모조리 해체하고 재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모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불교의 초기 공동체가 유지될 때까지만 해도 모든 수행자가 붓다의 ‘무아론’에 가슴 깊이 공명할 수 있었지만, ‘칼리아나 미트라’가 ‘선지식’으로 대체되고, 교단의 조직과 위계가 생겨나 건강한 관계가 모두 깨지면서, 무아론은 3도 아니고 2도 아닌 자기 방치, 자포자기의 1단계 상태를 부추기는 위험한 주장으로 돌변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실재론자들은 정말이지 취약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존재의 원리를 독립적으로 단절시킨 상태에서 알아내려 드는 실재론자들에게는 인간의 역동적인 “상호관계” 같은 것이 시야에 잡히지 않습니다. 즉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어떤 것이 되는 거죠. 이들은 이 상태에서 눈뜬 장님처럼 붓다의 이론을 문자적으로만 파고들어 문제점을 보강하려 했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무아론의 위험성을 억지로 봉합하는 복잡하고 사변적인 유식불교나 중관불교 같은 이론들이 나오게 된 거죠. “무아론이 사실은 무아론이 아니다”라는 말을 이리저리 돌려서 복잡하게 풀어놓은 것들이 바로 이런 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론들은 불법의 본질에서 상당히 벗어난 예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논리를 실천적인 차원에서 이용했을 뿐,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논리의 틀을 만드는 것을 경계했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말짱 헛소리일 뿐이라며 논리에 매달리면 도저히 풀 수 없는 화두로 수행하는 선불교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불교는 불교 이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딱 한 놈만 패는” 3단계로만 돌아가도 말을 안 하겠는데, 수많은 스님들이 3단계를 지나쳐 2단계까지 내려가 희희낙락하고들 계십니다. 그야말로 말법의 시대가 된 것이죠.

그리하여 붓다가 부정했던 ’참나’는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압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어처구니 없게도 그것이 바로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왜곡 선전되는 실정입니다. 인간의 의식 수준이 과연 종교적 진리를 분별할 단계가 되는 건지 이럴 땐 정말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붓다가 무아론을 가르친 것은 기록에 뻔히 나와 있는 사실이고, 심지어 대부분의 학자들로부터 공인된 정설이나 다름 없는데도, 터무니 없는 왜곡이 이토록 난무하는 실정이라면, 하물며 기록도 변변하게 남아 있지 않은 기독교의 본질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지난한 일이겠습니까.

물론 지금 저의 글을 읽고 “소설 쓰고 있다”느니, “상상의 나래를 활짝 폈다”느니 하는 비판과 지적이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2천년 전의 인물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단편적인 기록으로 유추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실재론이 어떤 한계를 갖고 있는지를 훨씬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습니다.

‘정치’ 분야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정치학자들은 내각제와 대통령제 중에 하나를 택일해야 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 둘을 벗어난 정치구조는 상상할 수도 없다는 태도로... 내각제와 대통령제 그 자체에 어떤 독립적이고 고정불변하는 속성이 있어 그것을 차용하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관점인 거죠..

그러나 내각제나 대통령제 모두 수백 년 전에 생겨난 제도들이고 오늘날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들이 애초에 태동한 유럽에서만 그런대로 기능을 하는 정도인데 그마저도 요즘은 잡음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처럼 풍토가 전혀 다른 환경에서는 제대로 기능을 못할 뿐더러 오히려 민폐를 끼치고 있는 수준입니다.

정치제도는 게임의 룰일 뿐입니다. 현실과 맞지 않으면 얼마든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사실 대통령제나 내각제나 거기서 거기인 제도들입니다. 이 문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같이 논의해 봤으면 합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은 부패한 정치가들이나, 월가의 투기꾼들, 사악한 다국적기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학계를 지배하는 실재론, 인간을 미망에 빠뜨리는 이 그릇된 세계관이 우리 모두를 불행의 나락으로 몰고 있다면 지나친 과장일 수 있겠지만.. 정치, 사회, 경제, 과학, 종교의 모든 문제가 잘못된 세계관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 부분을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지 못하면 모든 문제는 끊임없이 원점으로 회귀할 뿐입니다. 붓다의 무아론이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를 보면 실재론이 사람을 얼마나 심한 혼란에 빠뜨리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간단한 문제도 시정이 안 되고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미궁 속을 2천년이나 헤매게 만들 정도인데, 하물며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은 오죽하겠냐는 거죠.***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또다시 고독해지고.

모든 게 다 그래.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지. "
- 프랑수아즈 사강, <한 달 후, 일 년 후>


"다들 뜨고 있다고, 아니면 뜰 거라고 알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성공하기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지 말고 내 자리를 정한 후에 파도가 다가오기를 기다리세요. 그러면 여러분은 이렇게 묻겠죠. 어디에 자리를 잡으라는 거냐고요. 여러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여러분이 사명을 느끼는 것으로 하면 됩니다. 회사를 인수할 때 저는 항상 '이 회사의 리더가 자신의 미션을 갖고 있는가 아니면 돈에만 관심 있는가'를 파악하려고 애씁니다. 미션을 가진 리더는 고객을 사랑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듭니다. 반면에 돈에만 관심 있는 사람은 회사를 넘겨서 돈을 벌 생각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듭니다. 아이러니한 점은 결국에는 미션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이죠. 그러니 여러분이 열정을 가진 무언가를 고르십시오. 이게 제가 여러분에게 가장 해드리고 싶은 조언입니다."

-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





핑커: 예측하기가 많이 주저되는 것이, 우리는 적어도 우리가 기술에 대한 예측에 얼마나 서툰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거든요. 신문에 나온 가장 최근의 트렌드를 바탕으로 너무 쉽게 50년 후를 추정해 버리는 경향이 있죠. 그러나 그런 건 옳지 않아요.



단적인 예로 현대의 비행기 여행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많은 점에서 50년 전에 비해 오히려 더 열악해졌죠. 첫 대륙횡단 제트기가 발명됐을 때만 해도… 오늘날 비행기 여행은 전혀 빨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공항의 보안검사 때문에 더 느려졌습니다. 더 편안하지도 않은 것이 비행기 안에 더 많은 사람을 우겨 넣기에 바쁘기 때문이죠. 이것은 발전을 멈춰 버린 기술의 한 예죠. 비슷하게 유인 우주선을 생각해 보면 1972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44년이 지난 오늘 어느 누구도 달 너머로 가보지 못했죠.



한편으론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기술의 발전도 있습니다. 15년 전만해도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의 부상에 관해 어느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텔레비전 쇼의 결말을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했죠. 원하기만 한다면 메뉴에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왕자의 게임’ 결말을 이렇게, 저렇게, 아니면 또 다른 방식으로 선택할 수 있는 메뉴 말입니다. 대화형 텔레비전이란 것, 결코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기술 발전은 양방향이에요. 50년 후에 대한 예측은 결국 예측일 뿐이고, 나는 그것이 틀릴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 스티븐 핑커




"여명이 밝아올 때 불타는 인내로 무장하고 찬란한 도시로 입성하리라."

Et a l'aurore, armes d'une ardiente patience, nous entrerons aux splendides Villes.

1971년 네루다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원래는 랭보의 시 <지옥에서 보낸 한철>을 장식하는 시 구절.





방황하는 자 모두 길을 잃은 것이 아니다; 잿더미에서도 불꽃은 깨어나니 어둠에서도 빛은 튀어 나올 것이다 by J.R.R. 톨킨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에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훨씬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 없는 술자리에 너무 시간을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어떤 남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 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 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결국 모든 친구들과 다 헤어지게 되요. 이십대에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그 친구들과 앞으로도 많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렇잖아요. 다 헛되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기울이고 영혼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고 이런게 더 중요한 거에요. 모든 도시를 다 가보고 모든 음식을 다 먹어보고 그래도 영혼을 구하지 못하면 인간은 불행해요.밤새 술먹고 그런거 안했어야 하는데. 



그 때에는 친구들과 잘 지내기 위해서 공허한 술자리에 술먹고 밤새고 동아리의 앞날에 대해 이야기 하고. 동아리는 내가 고민하지 않아도 잘만 굴러가요. 지금도 잘만 있더라고요.그때에는 당시에 대단한 고민이라도 하는 것처럼요 앞으로 동아리는 어떻게 될까를 논의하고 그랬어요. 어릴때의 친구들은 더 배려도 없고, 불안정하고 인격이 완전하게 형성되기 이전에 만났기 때문에 가깝다고 생각해서 막 대하고 함부로 대하는 면이 있어요. 가깝기 때문에 좀 더 강압적이고 폭력적일 수도 있죠."

- 김영하












한고조는 참으로 고집 센 사람이었다. 그러나 기회를 틈타고 신속히 변화하는 신묘함은 용이나 호랑이도 그에게 미칠 수 없었다. 그가 형양(滎陽)에서 패하고는 홀연히 황하를 건너 북쪽으로 가서 한(漢)나라 사신이라 일컬으며 조(趙)나라 성으로 달려 들어가 군리(軍吏)를 바꿔 세웠지만 한신(韓信)과 장이(張耳)도 눈치 채지 못하였다.



한신이 제나라를 점령하고서 제나라의 임시 왕이 되겠다고 하자, 고조는 그가 보낸 사신을 뜰에 엎드리게 하고는 크게 노여워하며 욕하고서 군대를 일으켜 공격하려고까지 하였다. 그런데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이 고조의 발을 밟아 제지하며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간청하자 갑작스레 다시 꾸짖기를



"대장부가 왕이 되려면 진짜 왕이 되어야지 어찌 임시 왕이 되려 하는가."

하였다. 말을 민첩하게 바꾸는 것은 장량과 진평도 그만 못하였다.



또 고조는 광무(廣武)에서 가슴에 화살을 맞았으나 발을 문지르면서

"저 놈이 내 발을 맞췄다."



하였다. 이는 소열제(昭烈帝)가 천둥소리에 임기응변한 것과 거의 같다. 이런 임기응변이 있었기에 많은 책사를 굴복시키고 강한 적을 이긴 것이다. 소하, 한신, 장량, 진평이 모두 천하의 영웅이고 재주와 지략이 모두 고조보다 나았지만 기꺼이 고조의 신하가 된 것은 다 까닭이 있다.



- <청성잡기>의 저자 성대중









죽을만큼 좋아했던 사람과

모른체 지나가게 되는 날이 오고

한 때는 비밀을 공유하던 가까운 친구가

전화 한통 하지 않을만큼 멀어지는 날이 오고

또 한때는 죽지고 싶을만큼 미웠던 사람과

웃으며 볼 수 있듯이

시간이 지나면 이것 또한 아무것도 아니다.

변해버린 사람을 탓하지 않고

떠나버린 사람을 붙잡지말고

그냥 그렇게 봄날이 가고 여름이 오듯.




당시 미국의 제철소 차관 제공을 만류했던 세계은행 IBRD의 지페 박사는 "당시 내 보고서는 틀렸다고 보지 않습니다. 지금 다시 보고서를 쓰라고 해고 똑같은 보고서를 쓸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모르고 지나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박태준 입니다.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박태준과 포항제철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라고 훗날 회고했다.


포항제철은 조업개시 6개월 만에 흑자를 달성했다. 박태준 명예회장은 1기의 성공을 바탕으로 1978년 두 번째 신화인 광양제철소 계획을 세웠다. 1982년 광양제철소를 완공한 포스코는 10년 후 2,100만톤 생산체제를 구축했다. '원조 철강왕'인 카네기는 35년에 걸쳐 연산 조강 1,000만톤을 이뤘지만, '한국의 철강왕' 박태준은 25년(1968년~1992년)만에 기술도 자본도 없는 상태에서 2,100만톤을 달성했다. 이로 인해 세계 철강업계로부터 그는 '신화창조자'(Miracle-Maker)'라는 칭송을 받았다. (한국일보 신문)
일화로는 1978년 8월 중국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일본 기미쓰제철소에서 제철소를 둘러본 직후 이나야마 요시히로 (稻山嘉寬) 당시 신일본제철 회장에게 "중국에 이런 제철소를 지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덩샤오핑이 이유를 묻자, 이나야마 회장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으냐"고 되물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젊음은 눈부시지만, 금세 지나가 버린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지금 바로 행복해져라.
어차피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 로렌초 데 메디치 - What beauty lies in youth yet ever so fleeting (1490)





칭찬받는 인생보다는 욕먹는 인생 by 윤서인 







성공 여부는 당신의 인맥에 달려 있지 않다. 당신의 재산에 좌우되지 않는다.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요인은 의지로 의외로 간단하다. 성공은 당신이 예지를 갖고 있는지의 여부, 그리고 그걸 활용할 배짱이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로 결정된다.  p.50











종로 3가에서 조그마한 보따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인형과 장식물을 파는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표정없이 앉아 계셨고

그 앞에는 강아지 인형만이 하릴없이 찍찍 소리를 내며 회전하고 있었다.



모두 코와 입을 가리고 눈만 쏙 내놓고 다녔지만

할머니에게 눈길을 건네는 이는 누구 하나 없었다.



몇 년 째 같은 강아지 소리를 들어왔지만 오늘은 왠지 다르게 느껴진다.

과연 그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하는 아이가 그 골목에 나타날지? 

모든 걸 내려놓고 생각해봐도 선뜻 확신할 수가 없다.



서글프다.



살아 숨쉬는 생명이 필사적으로 만들어 낸 생존 수단이 

고작 영혼 없는 강아지가 내는 찍찍 소리였단 말인가.



돈을 쓸어담지 못하면 노숙자가 되거나 비참하게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이론과는 다르게 인간으로서 절대적 존엄성 따위는 먼지 한 톨만큼도 없는 

이 사회의 시스템의 무지막지함에 진저리가 쳐지던 오후

[출처] 동네 노파 상인...|작성자 molly970620





더할 나위 없었다
- 미생 대사



​ 

때는 2006년경.



배우 서민정이 알던 미용실 여자 원장은 올드미스 노처녀였다.
그 미용실 원장이 우연히 점보러 갔는데 점쟁이가 종이에 사진을 그려서
이렇게 생긴 남자가 나타나 한달 안에 걸혼하게 될 것이라 말해줌.
놀랍게도 진짜 한달 안에 진짜 그렇게 생긴 남편이랑 결혼하게 됨.



고마운 마음에 미용실 원장은 자기 미용실에 그 역술인을 모셔서 머리를 해주게 됨.



그날 미용실에 서민정이 딱 갔는데 역술인이 잠깐 와보라고, 보이는 게 있다고,

곧 주인공을 하게 된다고
"혹시 드라마 하는 분이세요?" 하고 서민정에게 물음.



당시 서민정은 <사랑과 야망>과 라디오 프로에서 강제하차하는 등

초라한 입장에 있었다.



그 역술인 왈,
"40대 중반 안경을 쓰고 키가 작은 감독이 널 부를거야.
니가 짧은 치마 입고 발랄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인다."고 말함.



당시 하이킥 PD였던 김병욱의 신상과 정확히 일치.



실제로 하이킥 시트콤 작가가 서민정에게 전화.
두달있다 없어질 수 있는 작은 배역이 있는데 해볼래? 하는 제안. 

서민정, ​무조건 하겠다 함.

그것이 '서 선생' 케릭터였음.



그 역술인은 미용실 원장을 통해 서민정의 번호를 알아내

서민정에게 전화를 하기도 함.



"산에서 기도하는데 니가 자꾸 보여
내년에 더 잘 될거야"

하며 서민정이 결혼하는 것까지 맞춤.





-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2016년 하이킥 특집 中







“당시 미국과의 교제가 점차 긴요한 까닭에 신설된 육영공원에 입학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갑오경장 후 을미년에는 아관파천 사건으로 노당- 친러파의 호칭을 얻었고, 그 후 러일전쟁이 끝날 때 전환하여 현재의 일파-친일파 칭호를 얻었다. 이는 때에 따라 적당함을 따르는 것일 뿐 다른 길이 없다. 무릇 천도(天道)에 춘하추동이 있으니 이를 변역(變易)이라 한다. 인사(人事)에 동서남북이 있으니 이것 역시 변역이라 한다. 천도, 인사가 때에 따라 변역하지 않으면 실리를 잃고 끝내 성취하는 바가 없게 될 것이다.”

 

- 이완용의 조카가 남긴 그의 일대기 ‘일당기사’에서 이완용 어록 中





의외로 이완용은 물려받은 금액이나 은사금으로 받은 금액은 미미하고 거의 대부분이 부동산 투기를 통해 부를 축적했다. 경기도와 전라도 일대에 여의도의 7.7배 정도 면적의 땅을 보유했으며, 집을 여러 번 옮긴 부동산 투기의 선구자. 이 중 훗날 국가에서 귀속시킨 것이 10,900m2(3천평 남짓)인데, 이는 그의 땅의 0.05% 정도.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히 비열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무릇 백성은 다른 사람의 재산이 자기보다

열 배 많으면 그를 헐뜯고,

백 배 많으면 그를 두려워하고,

천 배 많으면 그의 심부름을 하고,

만 배 많으면 그의 하인이 된다.

이것이 만물의 이치다.



凡編戶之民, 富相什則卑下之, 伯則畏憚之, 千則役, 萬則僕, 物之理也. ​









그래서 재산이 없는 사람은 막노동을 하고 다소 재산이 있는 사람은 지혜를 써서 증식하려고 하며 재산이 많은 사람은 시기를 기다리며 늘리려한다. 이것이 재산을 증식시키는 가장 큰 방법이다.



是以無財作力, 少有鬪智, 旣饒爭時, 此其大經也.









이상의 부호들은 가장 특이하고 탁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식읍도 없었고 봉록도 없었고 또한 법을 농단하고 범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부도 아니다. 사물의 이치를 추리하여 거취를 결정하고 때에 맞춰 자세를 바꿔가며 이득을 얻었으며 상업으로 재부를 모으고 농업에 투자하여 지켰다. 힘으로써 결단하고 협상으로써 지켜 그들의 태도에는 절도가 있었음으로 기술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此其章章尤異者也. 皆非有爵邑奉祿弄法犯姦而富, 盡椎埋去就, 與時俯仰, 獲其贏利, 以末致財, 用本守之, 以武一切, 用文持之, 變化有槪, 故足術也.






    
Bo Shao: 중국인 최초로 하버드대를 장학금 받아 입학하고, 수천억 달러의 회사도 만들었지만, 내면은 늘 공허했다; 자신과 타인의 내면과 감정에 집중하고부터 흐름에 따라 살 수 있게되었고, 가장 적절한 말이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예언이 있다는 것. 또 그것대로 일이 이루어진 예들을 볼 때 역사와 인간의 운명도 모두 다 천명에 따라 각본에 따라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다 정해진 것을 인간들이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부질없이 무리를 하다가 결국 인생의 패배자가 되고 만다."(1991년 2월22일, 책 93쪽)

...

1993년 2월 26일 "인생을 연극처럼"



이 인생살이는 하나의 연극이다. 그 인생의 각본은 이미 정해져 있고, 몇 막 몇 장인지도 정해져 있고, 무대에 들고 나는 때와 시간도 정해져 있다.



자기가 맡은 역할을 가지고 등장할 시간에 나아가 연기를 하고 끝나면 들어오고, 그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가 하는 것은 자기 노력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기의 배역과 각본까지 바꿀 수 있는 힘인 권한은 인간에게 없다.

그러니 이 거대한 인생 무대에서 삶을 연극하듯 살아가는 자세는 중요한 것이다.



...



울지만 진정으로 울지 않고, 고통 속을 지나가지만 고통을 그냥 느끼는 척하고, 사랑하지만 이성을 잃지 않을만큼 집착하지 않고, 소유하지만 그것은 어차피 무대 뒤에 다시 맡겨질 소도구이니 애착을 갖지 않는다. 그 역할이 싫을 때도 해내야 하고 좋다면 다행이고.
- 박근혜





(마 19: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마 19: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Matthew 19:11-12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11 Jesus replied, “Not everyone can accept this word, but only those to whom it has been given.A)' data-cr="#cen-NIV-23774A"> 12 For there are eunuchs who were born that way, and there are eunuchs who have been made eunuchs by others—and there are those who choose to live like eunuchs for the sake of the kingdom of heaven. The one who can accept this should accept it.”




내가 여러 고초를 겪으면서 자연스레 깨달은 바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든 `궁즉통(窮則通)`, 즉 궁하면 다 통한다는 것이다. 근데 궁하기만 하다고 다 통하는 건 아니고 `허즉통(虛則通)` 즉 내가 가진 걸 내려놓아야 한다. 여기에 더해 `변즉통(變則通)`, 즉 내가 스스로 변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통즉구(通則久)`, 통함이 오래 지속되는 단계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무슨 뜻이냐면 난 유치장에 잡혀 들어갔을 때 다른 건 싹 잊는다. `여기서 살아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궁해지면 내가 그동안 가졌던 걸 싹 버리는 거다. 많은 사람들은 `아이고 난 죽었구나` 하며 절망하는데 그러면 반드시 병에 걸린다. 다음 단계로는 변하려는 노력이다. 난 유치장이나 감방 안에서도 건강 관리를 위해 누구보다 운동을 열심히 했다. 지금도 난 뒤꿈치 들기를 하루에 1500개 이상, 팔굽혀 펴기는 700개 넘게 할 수 있다. 나를 비우면 내가 상황에 맞게 변하고 그러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게 내 철학이다.


- 이철용







“바둑은 지금 여기, 현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바둑을 둘 때는 모든 잡념을 버리고 오로지 바둑판 위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금 있는 자리가 최선의 자리다. 지금 이 순간이 다시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모든 꿈의 출발은 ‘지금, 여기’다.“
- 조훈현​

All I know is that every time I've ignored my instincts/intuitions, I've suffered horribly!






내가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나는 가능성 0퍼센트의 사람이 되지만, 무엇이든 하나라도 시도한다면 1퍼센트의 사람이 된 것이고 그것을 꾸준히 지속하면 100퍼센트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

아무런 노력도 안하면 애인을 만날 확률이 0%지만,

무엇이든 하나라도 시도하면 1%의 가능성은 있고,

꾸준히 지속하다보면 언젠가 100%가 되지 않겠냐고….
- 안규호









알리바바 마윈
162cm 40kg

중학교 입학시험에 세번, 대입시험 세번 떨어졌다
취직시험엔 서른번도 넘게 떨어짐
미국 대학 지원 10번 모두 실패
미국 KFC가 중국에 진출 입사원서 넣었다
24명이 지원했는데 혼자만 떨어짐
경찰관 다섯명 뽑는데 혼자서만 떨어짐

"전 거절당하는 걸 아주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거절당하는 게 두려워서 도전도 하지 않느니 계속 도전해보는 게 낫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 만해 한용운 <사랑하는 까닭 >







막 국민학교에 입학하려고 할 때 즈음인 아주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 날, 친구들이랑 동네 골목을 하루종일 쏘다니며 놀다 날이 어두워져서야 집에 들어갔는데, 퇴근하신 아버지가 선물을 사가지고 오셨다. 선물을 받아들고 좋아하던 그때 그날밤 창밖에는 눈이 왔고 라디오에서는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 king2년 전



 


언젠가 보았던 천체 망원경 속 깨알같이 수놓인 별들...



시리우스 자리는 당시로부터 약 8년 전의 모습이었고, 북두칠성의 미자르는 약 78년의 모습, 북극성의 폴라리스는 약 450년 전의 모습이었다.





이 사실은 뭔가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내가 지구, 이 세상에 전혀 존재하지 않을 때의 별빛을 보고 있었다는 이 묘하고 신비로운 사실... !~~!!!!!





 

그 별들 속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을까?



몇 억 광년이나 떨어진 무수히 많은 은하, 무수히 많은 별들에는 얼마나 많은 무수한 이야기들이 떠돌아 다니고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해 투쟁과 단합을 했었을까?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사랑과 우정을 나누고, 환희와 좌절과 슬픔을 반복했을까?



얼마나 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났었을까?



지구 시간으로는 이미 지나버린, 까마득한 옛 신화들일 것이다!





머나먼, 몇 백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은하에서는 이미 완료형이 된 지구 이야기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미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에서 취할 수 있는 건 명확한 진실 뿐이다.

[출처] 어느 별에서 맞이한 2022년|작성자 molly970620




행복은 추구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니까,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려다보니 결핍이 생기는 겁니다.

하지만 행복은 발견의 대상이에요.

주변에 널려 있는 행복을 발견하면 되는 겁니다.

- 박웅현 <책은 도끼다> 中








“주변 분들이 잘해주셨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어려운 점도 많았습니다. 아버지가 북한군에 끌려간 뒤 피란을 다니느라 고생이 심했습니다. 항상 주변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어린이 3명이 수류탄을 갖고 놀다가 터지면서 온몸이 파편으로 터져나갔습니다. 그들을 보면서도 무서워하거나 동요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죽고 살아가는 것이 당시 모습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허리춤에 돈을 가득 숨긴 채 피란생활을 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허리춤의 돈이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돈이 전부 사라지면 가족 모두 한강에 가서 자살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때 어머니의 말씀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도 않았습니다. ‘돈이 떨어지면, 그냥 그렇게 자살하는가 보다’ 하고 운명처럼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그때 모든 한국 사람들이 저 같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게으른 행동에 대해 하늘이 주는 벌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자신의 실패이고
또다른 하나는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해낸 옆사람의 성공이다. 







"난 당신 사랑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이야. 그거 성가신 일인데 어떻게 하지?"



"당신 주소 줘."
소소한 사건들 - 롤랑바르트




중국 전국시대 때의 소진蘇秦이 형수에게서 푸대접을 받음. 계자季子는 전국 시대 6국 합종책을 주장하였던 소진의 자. 낙양 사람으로, 귀곡 선생을 좇아 배웠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모두들 소진을 업신여겨, 아내는 베틀에서 내려오지도 않았고, 형수는 밥조차 주지 않았다. 소진은 이에 크게 자극받아 각고의 노력 끝에 6국의 재상이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아내도 형수도 모두 눈을 아래로 뜬 채, 소진을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소진이 웃으며 "먼저는 그리도 거만하더니, 이번에는 어찌 이리도 공손하신가? 하고 묻자, 형수는 "지금의 계자께서는 지위가 높고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조아요 글들 모음



특정한 물건이나 특정한 사람이 없으면 행복하거나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흔하다. 마치 처음부터 불행하도록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는 듯하다. 그들의 삶의 태도는 나의 것이 없으면, 특정한 사람이 없으면, 돈이 없으면, 우정이 없으면 우울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부족과 결핍을 자신의 절망에 대한 변명으로 여기도록 조건화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정도는 달라도 이런 믿음을 갖고 있으며 그에 따라 다양한 정도의 집착을 키워 왔다. 이 집착이 절망의 근원이며, 우리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근거로 자신의 우주를 정당화한다. 실제로 어떤 것을 얻으면 우리는 황홀경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는 그것을 잃을지 모른다고 불안해한다. 그리고 실제로 잃으면 절망한다!

이런 집착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에고와 더 높은 자아의 차이를 스스로 상기해야 한다. 에고의 목소리는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끊임없이 우리를 지배하려고 한다. "내가 가진 것, 내가 행하는 것,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곧 나다." 그러나 에고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고요히 머물 수 있다면 신의 목소리가 이런 메세지와 함께 나타날 것이다. "이런 것들은 결코 너에게 행복을 줄 수 없어. 그것들은 허상일 뿐이야. 내가 너의 평화의 유일한 원천이야. 이것은 너의 가장 높은 자아가 하는 말이야. 집착과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한 영적 해결책이야."
- 웨인 다이어







Querencia ; 안식처, 애정, 안정, 귀소본능

투우장에서 소가 다음 싸움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며 쉬는 공간.


우리는 넓게 보면 넓고 좁게 보면 좁은 유한한 시간과 공간을 사용한다.

그 속에서 한정된 인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고뇌를 하고 좌절감에 빠지며 우울감에 지친다.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에 애써 ' 나만 힘든 거 아닐 테니'라며 회피하기 일쑤다.

인간은 너무 나약하지만 지능적이라 괴롭다.

육체는 동물들에 비하여 너무 부드럽고 약하지만 그걸 보완할 도구들을 발명하고 사용할 수 있는 지능을 가졌고,

동물들은 생존본능에 충실함에 반해 인간은 욕망하는 존재다.

그러하여 끊임없는 선택의 고뇌와 패배감에서 고통받는 게 아닐까


인간도 역시 영장류에 포함된다.

그냥 지능이 높은 동물이다. 아주 약한 육체를 가진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퀘렌시아를 안다. 그것은 생명을 지속하기 위한 본능적인 부름이다.

과연 인간은 각자의 퀘렌시아를 잘 알고 있을까.

생사가 갈린 투우장에서도 자신이 안정을 취할 수 있으며 다음 싸움을 위해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는 소처럼

숨을 고르는 일은 곧 마음을 고르는 일이다.


인간 역시 그런 최소한의 장소가 필요하다.

본연 자기 자신에 가장 가까워지는 곳, 

자아 회복의 장소,

인간 내면에 있는 성소를 찾아야 한다.


좋아하는 공간,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시간,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시간 등 

이 모든 게 나만의 퀘렌시아다.


나는 요즘 나만의 퀘렌시아를 구축하는 거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조그만 사무실과 아트 룸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고 있다.

손수 만들고 꾸미는 이 시간들이 너무 좋은 요즘이다.

얼른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것들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가득 찬 나만의 공간.

살면서 한 번쯤은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 인생은 쉼표 없는 악보와 같기 때문에 연주자가 필요할 때마다 스스로 쉼표를 매겨가며 연주해야만 한다'


' 삶의 파도들이 일어나고 가라앉게 두라, 너는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너는 바다 그 자체이므로 ' - 아슈타바크라 기타

[출처] 나만의 퀘렌시아 (Querencia)|작성자 LINA





내게 결정적인 기억 한 가지만 남겨준다면 나는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 끔찍할만큼 편집적이고 맹목적으로. 나는 J를 떠올리면서도 사랑을 강하게 느끼니까. 배신감보다, 만나면 다시 한 번 안아달라고 조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니까. 그니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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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프로필 문구: 지나친 감수성 그리고 나쁜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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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같은 마음으로 부서질 때까지 부딪히느라 by 이불안

ok5o37



시자 석가모니부터가 사망 직전에 제자 아난에게 자등명 자귀의(自燈明 自歸依)라 


나한테 속지마라
-성철



어느 날, 한 수행자가 조주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개에게도 불성(부처의 성품)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이에 조주 선사가 짧고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무(無)!"


고이즈미 준이치로
"자민당을 부수겠다"
自民党をぶっ壊す

결국 외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산 덕분이었습니다. 부모로부터의 후광을 곱빼기로 받아 당선되었습니다.
1972년 12월, 중의원 당선 시 신동아 2005.11.01 통권 554호 (238~253쪽)

새로운 부서의 이름이 너무나 가볍다. 노동복지성이라면 각의에 서명하지 않겠다. 차라리 내 목을 자르라.
1998년 1월 재편예정 명칭 반대 시
보통 사람도 군인도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남은 것은 괴짜(変人)뿐이다. 나는 지극히 상식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데 정계에서는 괴짜라고 평한다. 진짜 괴짜는 나가타초다.
2000년 7월 다나카 마키코의 보통 사람, 군인, 괴짜 발언 인용. 나가타초는 일본 국회의사당이 위치한 동의 이름으로 "일본 정치권"을 의미한다. 영국에서의 웨스트민스터, 한국 언론사가 사용하는 여의도 혹은 여의도정치와 비슷한 맥락이다.







이 시는 조선 초기 문신 양사언(楊士彦)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시조입니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invictus
내 영혼이ㅡ 선장


우리가 평범한 일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의식의 투영입니다.



소위 현실 세계에는 색깔이나 소리, 질감, 맛, 향기라는 게 존재하지 않아요.



현실 세계는 극도로 모호하고 영원히 흐르는 양자 수프와 같으며,

무한한 허공에 흐르는 에너지와 정보의 파동입니다.



곤충이 보는 하늘은 여러분과 제가 보는 하늘과 달라요.

꿀벌은 자외선을 느낄 수 있어요.

저는 자외선이 어떻게 생겼는지 전혀 알 수가 없죠.

그래서 꿀벌이 바라보는 꽃은 여러분이 바라보는 꽃과 다릅니다. 

멀리서 꿀은 감지하겠지만요.



뱀은 적외선을 느낄 수 있어요.

박쥐는 초음파의 공명을 느낍니다.

카멜레온의 눈알은 회전축이 두 가지에요.

우리는 카멜레온에게 이 광경이 어떻게 보일지 상상을 못 하죠.



그렇다면 현실은 뭘까요?

그런 건 없다는 게 정답입니다.
- 디팍 초프라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 혜문왕의 신하 목현의 식객 중에

인상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진나라 소왕에게 빼앗길뻔 했던

천하의 명옥 화씨지벽을

원상태로 찾아 가지고 돌아온 공으로

일약 상대부에 임명되었다.



3년 후 진나라 소왕이 혜문왕을

말로 욕보이려는 것을 인상여가

가로 막고 나서서 오히려

진나라 소왕에게 망신을 주었다.



그 공로로 인상여는 종일품상경에 올랐다.



인상여의 지위는 조나라의 유명한 명장

염파보다 높아진 것이다.



염파는 분개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 나는 백의종군하며 성을 빼앗고

적을 무찔러 공을 세웠다.

그런데 입을 놀린 것밖에는 한 게 없는

인상여 따위가 나보다 윗자리에 앉다니

내 어찌 그런 놈 밑에 있을 수 있겠는가?

언제든 그 놈을 만나면 망신을 주고 말테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를 피했다.

그는 병을 핑계대고

조정에도 나가지 않았으며

길에서도 저 멀리 염파가 보이면

옆길로 숨곤 했다.



이같은 인상여의 행동에 부하들이 말했다.

「 우리들이 어른에게 봉사하고 있는 것은

어른의 높은 의기를

사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염장군을 두려워하여

도망치신다면 어리석은 저희가

부끄럽습니다.

하여 이곳을 떠나고자 합니다.」



인상여는 이들이 떠나는 것을 만류하며

이렇게 말했다.



「 자네들은 염파 장군과 진나라 소왕 중

어느 쪽이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가?」



그 부하가 대답하기를

「 염파장군이 진왕에 미치지 못하나이다」



그러자 인상여가 말하기를

「 나는 진나라 소왕도 두려워하지 않고

많은 신하들 앞에서 혼을 내준 사람이야.

그런 내가 염파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강국인 진나라가

우리나라를 쳐들어오지 않는 것은

염파와 내가 있기 때문일세.

이 두 호랑이가 싸우면 모두 죽게 돼.

내가 도망쳐 피하는 이유는

국가의 위급을 앞세우고 우리의 사사로운

감정은 뒤로하기 위함일세.」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부끄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그는 곧 윗통을 벗은 다음 태형에 쓰이는

가시를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

죄를 용서해 달라고 말했다.





「 참으로 면목이 없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을 무어라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리석은 탓으로

당신의 그 하늘과 같이 높고

바다와 같이 깊고 넓은 뜻을

몰랐던 것입니다.

나를 벌하고 용서해 주십시오.」



그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했다.



그러자 인상여가 말했다.



「 대단치 못한 나에게 장군께서

이렇게까지 관대하리라고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리하여 드디어 두 사람은 화해를 하고

생사를 함께 하여 목에 칼을 찔러도

마음을 변하지 않을 정도로

친하게 사귀었다 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고사성어가

문경지교(刎頸之交)이다.



문경지교란

생사를 같이 하여 목이 떨어져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친한 사귐.

그런 벗을 말한다. 문경지우라고도 한다.


관포지교, 문경지우


"그라말디는 군주가 가진 놀랄 만한 지식욕은 거의 신앙에 가까울 정도라는 점을 강조했다. 제후들과 제국의 가장 위대한 사람들이 멀리서는 흠모해 마지않고, 가까이서 대할 때는 존경을 금치 못하는 그 군주가 페르비스트와 함께 (궁전의) 내실에서 마치 선생을 모신 (온순한) 학생처럼 날마다 서너 시간씩 수학 도구와 책을 통해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유클리드의 정리를 터득하고 삼각 함수를 이해했으며, 산술로 천체의 현상을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발전했다. 최근에 그곳에서 돌아온 르 콩트 신부가 출간한 중국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 군주는 자신의 자식들이 과학의 근본 원리와 여러 진리에 대한 지식을 스스로 터득할 수 있게끔 수학에 관한 책을 친히 집필하고자 했다고 한다. 또한 그 군주는 자신의 나라를 밝혀 줄 수 있는 이 지혜가 집안 대대로 전해질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최신 중국 소식> 中





1.
그대, 깨어나라! 어느새 태양은
밤의 들판에서 별들을 패주시키고
하늘에서 밤마저 몰아낸 후
술탄의 성탑(城塔)에 햇빛을 내리쬔다

오마르 하이얌 루바이야트(Rubaiyat)





나카지마 미유키의 실 (花嫁の父が歌う「糸」) 




"지구상의 모든 힘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그 힘을 깨닫지 못하고 눈을 가린 채 '어둡다'고 우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손을 치워라, 그러면 이미 빛이 거기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의 아이디어를 가져라. 그 아이디어를 당신의 삶으로 만들어라.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꿈꾸고, 그 아이디어로 당신의 삶을 채워라. 당신의 뇌, 근육, 신경, 몸의 모든 부분을 그 아이디어로 가득 채우고, 다른 모든 아이디어는 내버려 두라. 이것이 바로 성공으로 가는 길이며, 위대한 정신적 거인들이 태어난 방식이다."

"당신이 나약하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당신은 나약해진다. 당신이 강하다고 믿는 순간, 당신은 무한히 강해진다. 인간의 정신력에는 한계가 없다. 집중하면 할수록, 더 많은 힘을 한 지점에 쏟아부을 수 있다."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부르지 말라. 인간은 영혼이며, 육체에 갇힌 존재가 아니다. 당신은 무한하고 거룩한 존재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말은 가장 큰 거짓말이자 죄악이다."

비베카난다의 메시지는 단순한 종교적 위로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의지'와 '정신의 집중'이 물리적 세계를 바꾸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임을 강조하는 확신에 찬 외침이었습니다.
라마크리슈나 수제자 스와미 비베카난다






[번역]
이제 그는 시바(Shiva) 신이 자신을 대신해 그 일을 해줄 것이고, 그러면 전부 이루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시바 신이 내려와 당신의 집을 지어줄까요? 아닙니다. 알아두셔야 합니다. 신은 당신을 위해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 일어난 적 없는 일이 내일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그것을 내일 당장 실현해 낼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창조한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가장 먼저 우리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해놓은 모든 일은 먼저 마음속에서 표현을 찾았고, 그다음 외부 세계에 물질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가 이 행성에서 행한 경이로운 일들과 끔찍한 일들 모두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무엇을 창조할지 관심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마음속에 올바른 것을 창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신분상 중요합니다.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우리가 세상에 창조하는 것들 역시 지극히 우연적이고 엉망진창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마음을 창조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창조하는 것의 근간입니다.

요가 전설에 아주 기가 막힌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남자가 산책을 나섰습니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길을 걷다가, 어쩌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낙원(천국)에 걸어 들어갔습니다.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저 산책을 했을 뿐인데 낙원에 도달했으니 말입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조금 피곤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 피곤한데 어디 좀 쉴 만한 곳이 없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주 푹신한 잔디가 깔린 멋진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는 그 밑에 머리를 누이고 잠이 들었습니다.

몇 시간 후 잠에서 깬 그는 생각했습니다. '아, 잘 쉬었다. 그런데 배가 고프네. 먹을 게 좀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는 살면서 먹고 싶었던 온갖 좋은 음식을 머릿속으로 떠올렸습니다. 그러자 즉시 그 모든 음식들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알아두셔야 할 것은, 그곳의 서비스가 원래 그렇다는 점입니다. 배고픈 사람은 따지지 않습니다. 음식이 나왔으니 그는 배불리 먹었습니다.

배가 가득 차자 그는 다시 생각했습니다. '아, 배부르다. 마실 것이 좀 있으면 좋겠네.' 그는 자신이 마시고 싶었던 모든 좋은 음료를 생각했고, 그것들 역시 눈앞에 툭 나타났습니다. 술고래들 역시 따지지 않는 법이죠. 그래서 그는 술을 마셨습니다.

이제 알코올이 몸에 조금 들어가자... 아시겠지만, 찰스 다윈은 여러분 모두의 조상이 원숭이였고 꼬리가 떨어져 나갔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아니라 찰스 다윈이 그렇게 말했죠. 그런데 요가에서 우리는 중심을 잡지 못한 마음(unestablished mind)을 언제나 '마르카타(Murkata)', 즉 원숭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왜 마음을 원숭이에 비유할까요? 원숭이의 특성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불필요한 움직임이 너무 많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가 누군가를 '원숭이 짓(흉내) 낸다'고 할 때의 그 모방입니다. 원숭이와 모방은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이 원숭이의 두 가지 본질적인 특성이 바로 중심을 잡지 못한 마음의 특성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남자의 안에서 원숭이가 날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음식을 달라고 하니 음식이 나오고, 마실 걸 달라고 하니 마실 게 나오네. 여기 분명 귀신들이 가득한 게 틀림없어.' 그러자 귀신들이 나타났습니다. '어라, 귀신들이 진짜 왔네! 저놈들이 나를 에워싸고 고문할 거야!' 그가 생각하자마자 귀신들이 그를 둘러싸고 고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악, 나를 죽이려 해!"라고 말했고, 그대로 죽어버렸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존재라고 했던 사람인데 말입니다.

문제는 그가 '칼파브릭샤(Kalpavriksha)', 즉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는 점입니다. 음식을 원하니 음식이 왔고, 음료를 원하니 음료가 왔으며, 귀신을 원하니 귀신이 왔고, 고문을 원하니 고문이, 죽음을 원하니 죽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마음을 일정 수준 이상의 고도로 조직화(organization)한다면, 그것은 역으로 당신의 유기체 시스템 전체를 조직화합니다. 당신의 육체, 마음, 감정, 그리고 근원적인 생명 에너지라는 이 네 가지 차원이 단 한 방향으로 정렬되면, 일단 당신이 그런 상태가 되면, 당신이 바라는 모든 것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도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마음을 정렬하고, 일정 기간 동안 그 방향으로 흔들림 없이 유지하십시오. 지금 당신 마음의 문제는 매 순간 방향을 바꾸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어 하면서, 매 두 걸음마다 방향을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목적지에 도달할 확률은 지극히 희박합니다. 어쩌다 운 좋게 걸려들지 않는 한 말이죠.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조직화하고, 나아가 시스템 전체를 조직화하여 지금 당신 존재의 이 네 가지 기본 차원을 한 방향으로 정렬하는 것, 이것을 해낸다면 당신 자신이 바로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칼파브릭샤)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바라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통제되고 제대로 방향이 잡힌 상태라면 말이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파괴적이 되고, 자멸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을 아름답고 편리하게 만들어주어야 할 과학 기술이 도리어 모든 문제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기술을 저주로 만들고 있습니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우리에게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안락함과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들이 동시에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깨어있는 행동(conscious action)을 하는 게 아니라, 강박적인 행동 상태(compulsive state of action)에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음을 근본적으로 조직화한다는 것은, 강박적인 활동 상태에서 깨어있는 활동 상태로 이동함을 의미합니다.

이제 당신이 집을 짓고 싶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당신이 "아, 집을 짓고 싶다. 집을 지으려면 5억이 필요한데 내 주머니엔 500원밖에 없네. 불가능해, 불가능해, 불가능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그 순간 당신은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한쪽 차원에서는 무언가를 원한다는 욕망을 창조하면서, 다른 쪽 차원에서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죠. 이 충돌 속에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단순하고 순박한 믿음(faith)은 오직 단순한 사람들에게만 작동합니다. 끊임없이 생각하는 사람들, 즉 '이게 될까 안 될까? 가능할까 불가능할까?'를 따지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작동하지 않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절대로 통하지 않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시바 신이 내려와 당신의 집을 지어줄까요? 아닙니다. 알아두셔야 합니다. 신은 당신을 위해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불행한 유일무이한 이유는, 삶이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삶이 당신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불행한 것이고, 삶이 당신 생각대로 흘러가면 행복한 것입니다. 아주 심플합니다.

그러므로 삶이 당신이 생각하는 방식대로 흘러가게 만들려면, 무엇보다 먼저 당신이 얼마나 강한 초점(focus)을 두고 생각하는지, 당신의 생각에 얼마나 큰 안정성(stability)이 있는지, 그리고 그 사고 과정에 얼마나 강력한 파동(reverberance)이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그 생각이 현실이 될지, 아니면 그저 텅 빈 생각에 그칠지를 결정합니다. 혹은 부정적인 사고 과정을 만들어냄으로써 당신의 생각에 스스로 걸림돌을 만들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는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닙니다. 그것은 대자연(nature)의 비즈니스입니다. 당신이 할 일은 그저 지금 당장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향해 분투하는 것뿐입니다.

지금 여기 앉아 계신 당신에게 내가 두 가지 간단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잘 보고 대답해 보십시오. 지금 당신이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날아오를 수 있습니까? 당신은 "아니요"라고 할 것입니다. 그럼 지금 앉아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 걸어 나갈 수 있습니까? 당신은 "네"라고 할 것입니다.

이 판단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왜 날아오르는 것에는 '아니요'라 하고, 걷는 것에는 '네'라고 합니까? 왜냐하면 과거의 삶의 경험 때문입니다. 즉, 무언가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결정하는 근거로 과거의 경험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은 '지금까지 일어나지 않은 일은 내 미래에도 일어날 수 없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려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와 인간 정신에 대한 수치(disgrace)입니다. 지금까지 이 지구상에 일어난 적 없는 일이 내일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그것을 내일 당장 실현해 낼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는 당신의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그것은 대자연의 영역입니다. 자연이 알아서 결정할 일입니다. 당신은 그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보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십시오.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핵심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명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른다면, 그것을 창조한다는 명제 자체가 성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 사드 구루





한국은 ‘도덕 지향성 국가’이다. 한국은 확실히 도덕 지향적인 나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한국인이 언제나 모두 도덕적으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 지향성’과 ‘도덕적’은 다른 것이다. ‘도덕 지향성’은 사람들의 모든 언동을 도덕으로 환원하여 평가한다. 즉 그것은 ‘도덕 환원주의’와 표리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현대의 일본은 ‘도덕 지향성’ 국가가 아니다. 이것이 한국과의 결정적인 차이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인이 도덕적이고 일본인이 부도덕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이 “우리야말로 도덕적인 민족이고 일본인은 부도덕적인 민족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인이 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 지향적이기 때문인 것이다. --- p.13

일본의 TV드라마에서는 연인들이 달밤에 공원에서 “왠지 당신하고는 더 이상 안될 것 같아.” 이렇게 고백하고 헤어진다. 한국의 드라마에서는 연인들이 사람들 앞에서 “당신은 이런 이유로 도덕적으로 잘못됐어. 이렇게 부도덕한 당신과 사귀는 것은 나의 도덕성을 심히 손상시키는 일이야. 그래서 나는 당신과 헤어지지 않을 수 없어!”라는 논리를 펼치고 헤어진다.
즉 한국의 드라마에서 연인들은 도덕을 외치고 있다. 이것이 도덕 지향성이다. 한국 드라마의 등장인물은 “지금 당신을 틀렸어. 이렇게 해야 맞아.”라며 다른 사람의 인생을 일방적으로 단정해 버린다. 또 “사랑은 이러한 것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라며 사랑의 당위적 정의를 상대방에게 먼저 설교한 뒤에, 그 사람과 교제하려고 한다. 여기에서 전개되는 것은 ‘주체성 쟁탈전’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누가 도덕적 주체성을 장악할 수 있는가 하는 격렬한 싸움의 기록이다.
일본의 드라마는 감각의 예정조화적인 논리 전개로 이루어져 있고, 한국의 드라마는 논리로 무장된 감정의 격돌로 이루어져 있다. 일본의 드라마는 늘어지고 지루하다. 거기에는 세계관의 대립이나 주체 간의 투쟁이 전혀 없다. 그에 비해 한국의 드라마는 숨 쉴 틈 없는 말싸움으로 이어지는, 그야말로 ‘드라마’인 것이다. --- p. 14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철학 그 자체가 영토·사람·주권으로 응결된 것이 한국이다. 여기에서 철학이란 ‘리’를 말한다. 주자학에 의한 국가 통치 이후, 이 반도를 지배해 온 것은 오로지 ‘리’였다. 항상 ‘하나임’(一個性)을 주장하는 ‘리’였던 것이다. ‘리’란 무엇인가? 보편적 원리이다. 그것은 ‘천(天)’, 즉 자연의 법칙과 인간 사회의 도덕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된, 아니 일치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절대적인 규범이다. 오늘날 한국인의 도덕 지향성은 이 전통적인 ‘리’ 지향성의 연장이다. --- p.20쪽

조선 철학은 독창성에서는 중국 철학보다 현격하게 떨어지지만, 인간의 마음이나 사회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를 둘러싼 바늘구멍 같은 세밀한 이론이 강력한 폭탄이 되어 권력 중추를 위협한다는 과격함은 중국보다 철저하였다. 오늘날 일본의 대학교수들이 행하는 이른바 ‘철학학(哲學學)’으로는 이와 같은 극도의 팽팽한 긴장감은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다소 틀린 학설을 주장한다 해도 기껏해야 대학에서 쫓겨날까 말까 하는 정도에 그치기 때문이다. 이것은 철학으로 먹고사는 자로서 다행일까 불행일까? 조선에서는 철학논문에서 ‘성(性)’을 ‘심(心)’으로 글자 하나만 바꾸려 해도, 곧바로 ‘사문난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엄청난 고통과 죽음으로 대가를 치르고 권력을 잃었다. 오늘날의 철학자에게 철학은 먹고사는 수단이지만, 조선에서는 먹고사는 원천이었던 것이다. --- p. 23

(한국에는 음악이나 바둑이나 스포츠 분야에서 천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음악이나 바둑이나 스포츠는 규칙으로서의 ‘리’가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다. 구조나 세계관으로서의 ‘리’를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정리’(定理=정해진 리)의 아름다운 질서와 완벽하게 합일될 수 있는 재능이다. 이 정해진 규칙으로서의 정리(定理)에서 해방될 때 한국에서는 과학 등의 분야에서도 천재가 출현할 것이다.
--- p.115
- 오구라 기조 


Have you ever heard of "Optimum Trajectory"?


Your life is like a river.


That you're aiming for a goal that isn't your destiny,
you'll always gonna be swimming against the current.



Young Gandhi wants to be a stock-racer.
It's not gonna happen.



Little Anne Frank wants to be a high school teacher.
Tough titty Anne.
That's not your destiny.



But you will go on to move the heart and minds of millions.



Find out what your destiny is and the river will carry you.



Sometimes events in life give an individual clues as to where their destiny lies.

Like those little doodles you just happened to draw?

It's the Ajna chakra, the third eye.



The Universe gives you clues like that, you don't ignore it.



You're meant to be here with me.

It's the Jedi in you that sensed it.


...


Whatever you fear most has no power over you,
It's the fear that has the power.


...


I won't stop.



Because When I look at what is happening in the world,
I know that now, more than ever,

We need to be all that we can be.
- 인생은 강물과 같은 것이라, 운명의 흐름을 따라가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 영화 The Man Who Stared At Goats (2009) 中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내가 좀 더 잔혹했다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을 것이다"고 후회했던 나폴레옹과

"경쟁은 죄악이다"고 하며 독점욕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세계 최고 부자가 된 록펠러 1세,

그리고 얼굴이 두껍고 뻔뻔한 인간이 성공한다는 이종오의 후흑학(厚黑學)이 떠오르는 

인천소방의 명문이다.

(인천소방의 글들은 대체로 80%의 헛소리와 20%의 예리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폭력과 학살"을 긍정한다고 썼던 테크씨의 글도 떠오르는 대목이다.



두 글 모두 같이 첨부해본다.


조금 더 잔혹한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 인천소방 -









인류는 원시 사회를 거쳐 처음으로 왕과 국가란 것이 생겨났다.



왕의 한자는 王으로 도끼를 나타낸다. 처음에 도끼는 곡괭이 비스무리 했고 끝부분을 날카롭게



한 형태였다. 그런데 발상의 전환인지 최초의 왕인 대장장이는 지금의 도끼와 같이 나무자루를 90도 방향



틀어서  끼워넣어서 배틀엑스 즉 전쟁용 도끼를 개발하고 인류 최초의 전쟁을 일으켜 최초왕이 되었다고 한다.



 



알렉산더는 자신의 금광으로 최초로 징병제를 실시해 장창부대와 기마병으로 혼합한 전술로 세계를 제패했고



한니발은 전쟁전문 용병과 보병과 기마의 효율적 운용 전술을 결합해 로마를 공포에 떨게 했다.



로마 씨저는 도로와 뒷굽이 높은 신발을 이용해 보병의 진군 속도를 높혀 황제에 올랐다.



진시왕은 땅바닥에 처박고 재장전해야 하는 석궁을 방아쇠에 스프링을 넣어 적을 바라 보면서 쏠수있게 하여



북쪽의 기마민족을 제압하여 진국의 왕이 되었으며 보병이던 석궁병(뇌병)을 말타면서 쏘는 기마뇌병으로 훈련시켜 중국 대륙을 최초로 통일하였다.



 



천주교는 내세에는 꿀맛같은 세상이 있다는 허깨비 마약,선전,선동으로 인류최초의 그림자 통치를 실시하였다.



징기스칸은 성안에서 잠자고 있던 금제국의 화약을 성문 폭파에 사용하여 대제국 건설의 초석을 다졌다.



유태인은 후추 상선 주식투자하면 100배 대박 난다고 속여 떼돈을 벌었다.



나폴레옹은 왕의 근위병끼리 기껏해야 5만명이 엉겨붙어 싸우는 전쟁을 100만이 엉겨 붙어 싸우는 전국민 징병제로 전쟁을



확대시켰다.



 



로스차일드가문과 국유본은 영국을 꼭두각시로 내세워 제국주의 세계지배체제를 단행하였다. 



기관총의 발명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기관총을 양날개에 배치하는 전술로 전쟁을 대량학살로 변질시키고 최초의 장갑탱크가 전쟁을 종결지었다.



 



우리의 로스차일드 황제는 전차와 전투기를 이용한 우세하고 집중적인 화력으로 적을 고립,공황에 빠뜨리는 전격전으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며 핵무기,컴퓨터,무선기기,제트기 등등 우리가 지금 쓰는 모든 기기들을 최초로 발명하셨다.



하고 선대 조상들이 이룩하신 강자가 모든걸 집어 삼키는 제국주의를 무너뜨리고 금기시 되어오던 약소국 독립,민족해방을 단행하였다. 조상들이 이룩하신 업적을 해체하면서 생기는 동력을 통치권으로 전환하여 사용하신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도 2대에서 명이 다했고 로스차일드 황제도 양차대전, 2대에서 명운이 다했다. 달도 차면 기울고 인간도 한번 태어나면 죽고 아버지가 대업을 이루었다면 자식이 결국 화려한 마지막 불꽃을 내고 사라지는 것이다. 성립시기에는 기존 세력을 제압하면서 생기는 이윤율로 좌우귀족들을 통솔하는 몰아부침,대세 즉 관성력이 있으며 아들이 선대 황제가 금기시 하던 것을 해방시키면서 마지막 거꾸로 이윤율,선대가 쌓아 올린 걸 떨어뜨리는 낙차를 이용한 동력을 마지막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데이빗 록펠러는 눈에 보이는 물질을 강조하는 로스차일드와는 달리 안보이는 정신을 강조하였다. 마치 왕이 있는 데도 하느님이 가상세계에 있어 현실,물질도 지배한다고 말하는 중세 천주교와 비슷했다. 한마디로 온건파 국유본에서 급진파 국유본으로의 변화였다.



무선조종RC탱크장난감에서 순전히 정신으로만 노는 전자오락으로 놀이문화가 바뀌었다.



전쟁으로 인한 팔다리 병신에서 신자유주의로 인한 정신병,우울증,노숙자 증후군,자학 증후군으로 대체되었다.



로스차일드 죽이기인지 전쟁이나 사고로 팔다리 없는 병신 되었는데 외상후 스트레스라고 요란하다. 전쟁조차도 끝까지 정신강조이다. 



 



로스차일드 황제가 만들어놓은 셰계체제의 해체,파괴에서 생기는 높은 이익률을 통치권의 기반으로 삼아 지금도 파괴하고 있으며 한국은 박정희 죽이기, 세계는 로스차일드 사회주의좌파 시스템 죽이기로 일관하고 있다.



어차피 로스차일드의 그림자로 존재하는 황제권이므로 로스차일드 시스템이 완전히 해체되면 먹이감이 다 떨어져 고사위기에 처하게 된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2대에 걸쳐 대략 70년 정도 통치하였으므로 록펠러 가문도 2대 신황제에서 끝날것으로 생각된다. 중국개발로 10년, 인도 개발로 20년정도는 버틸 것이라 본다. 앞으로 30~40년 더 남았다.



앞으로는 어느 누가 육체에는 관성을 정신에는 마법을 걸어 인류를 지배할지는 두고 볼일이다.



록펠러와 국유본은 지구를 버리고 우주시대로의 확대라는 과도기에서 새로운 세력에 권력을 이양할것으로 보인다.



지구에 뿌리내리고 사는 인간에게는 더이상 강력한 이윤율 혹은 관성력으로 지배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주로 먼저나가는 국가 인류가 지배할것 같다. 이도 저도 아니면 세계지배 자체가 없는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이론상이다. SF,판타지이다.



 



우리는 앞서 알파오메가 전술에서 진실과 거짓은 확률적으로 존재한다고 했다. 인간사는 세상에 착시가 없다면 어떤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모두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세상이 될것 같고 국가도 없을 것 같다.



남녀간에도 약간 거짓 혹은 착시가 있어야 과대평가하고 결혼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국가도 이러한 착시가 있어야 유지될것이다. 국가기밀이 전국민이 모두 정확히 알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장사꾼도 너무 정직하여 마진이 없다면 착시로 손님을 끌어올수 없다면 거래성사가 안되는 건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어디까지 속이느냐의 정도의 문제가되겠다. 하고 내가 시스템의 수혜자 즉 쁘락지나 그 측근이 되느냐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프락찌들도 각자의 나와바리 능력  전공별로 사람들의 정신에 마법을 걸면 그뿐이다. 로스차일드 시절 프락찌들은 전쟁이라는 국가,사회 단체 행사를 통해 육체에는 관성을 걸고 정신은 옵션으로 묻어가는 형태였다. 마법은 정보를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광랜으로 유통시켜 혹하게 만드는 모든 것이 되겠다. 



 



어차피 로스차일드의 전쟁놀이를 안하면서 세계시스템이 돌아가려면 로스차일드 시스템 파괴를 동력원으로 쓸수 밖에 없다. 지금의 신자유주의인 것이다. 그렇지 안으면 국유본에 의한 국제질서 유지는 불가능하다.



 



세계는 지금 몸뚱아리는 성인이 다되었고 정신적 쾌락을 최고로 치는 40세 중반 쯤 되어보인다.



이제 로스차일드라는 육체의 노쇠와 정신적 후퇴가 말년에 닥칠것이다.



우리들 각자도 너무 정신에만 몰두 하지 말고 건강도 챙겼으면 한다. 물론 정신적 쾌락없이 사는 육체도 문제지만



정신만 가지고 노는 컴퓨터 미디어에만 집착한다면 우리몸의 세포구성의 50%가 배터리세포 즉 미토콘드리아인데 몸 안움직이면 반드시 탈나게 되어 있다.   



[출처] 조금 더 잔혹한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비공개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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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학살을 긍정한다

- 테크 -



세상을 뒤덮고 있는 인간의 잔인한 폭력성과 무시무시한 광기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갈등이 사라진 세상은 더없이 아름다운 낙원과 같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사회의 모든 것들이 순탄하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가치들을 부정하기만 하는 것은 문제라고 본다. 왜냐하면 인류는 갈등과 폭력을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 한걸음 한걸음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초기의 인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돌을 사용했다. 그러나 돌은 깨지기도 쉽고, 날카롭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동과 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돌보다는 금속이 사람을 효과적으로 죽이는 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커질수록 이웃나라를 점령하기는 수월해졌고,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배 야욕을 충족시키고자 야금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로 인해 발달된 금속기술은 보다 효과적인 무기를 생산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강력한 군대가 형성될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거대한 중앙 집권 국가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금속 기술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 발전되었다는 사실은 최초의 철기 국가이자 강력한 왕국으로 군림했던 히타이트에서 철기 생산기술이 국가 기밀로 취급었던 사실, 이들의 기술을 물려받은 아리아인들이 강력한 철제 무기를 바탕으로 인더스 문명을 점령한 것, 비슷한 시기 셈족 계열 인종이 이집트 지배 계층을 학살하고 힉소스 왕조를 건립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통해 알아볼 수 있다. 이후로도 철기 기술은 전 세계에서 언제나 사람을 찔러 죽이고 타국을 점령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거대한 군사 조직력과 강력한 경찰력을 보유한 중앙 집권 국가가 등장하자, 아이러니하게도 폭력은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정치 독립 집단들이 하나의 거대한 독립국가로 성장하여 내부의 폭력을 줄이는 방식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오늘 날의 전쟁이란 소규모 집단들이 매일 같이 싸우는 혈투극이 아니라, 국가 대 국가가 이례적으로 벌이는 거대 담론으로 전환된 상태다.



우리는 금속 기술의 혜택 또한 여지없이 누리고 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고안된 고대의 야금술은 13세기에 개발된 화약과 결합되어 사람을 쏴 죽이는 대포와 총으로 진화되었고, 오늘 날에는 그것이 탱크와 미사일로 진화하기에 이르렀지만, 그 과정에서 파생된 금속 공학을 바탕으로 우리는 풍요로운 현대 사회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특히나 수 천 만명의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현대 전쟁은 인류 발전의 최전선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다. 사람을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획기적인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사용하는 컴퓨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오늘 날 컴퓨터의 전신이 되는 세계 최초의 컴퓨터 ‘튜링 머신’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의 암호를 해독하여 그들을 죽이기 위해 영국 정부의 과학자들이 만들어낸 기계였고, 그 후 개발된 미국의 에니악은 미사일 탄도 계산의 정확성을 높여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말살하기 위한 욕망이 실현된 것이었다.



전 세계사람들이 매일 쓰는 휴대폰과 통신 기술도 마찬가지다. 스마트 폰의 전신이 되는 PCS 모델(개인휴대통신)은 군용 목적으로 고안된 개념이었고, 1996년 우리나라에서 핸드폰 개발 방식의 표준으로 채택된 CDMA(코드분할 다중접속방식)는 미국 군사 통신 활용목적으로 개발된 기술이었다.



장갑, 자동차 타이어, 머리끈, 진공청소기, 배관 펌프에 들어가는 만능 물질인 ‘합성 고무’ 또한 전쟁에서 사용되던 '전시 물자'였다. 이 물질은 1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군이 해상을 봉쇄하여 천연 고무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 나치독일이 SBR이라는 합성 고무를 개발해냄으로써 확산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길을 찾기 위해 쓰는 네비게이션은 GPS(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 기술을 바탕으로 구동되는데, 이것은 최초의 컴퓨터가 개발된 이유와 비슷하게 핵 미사일을 정확하게 발사해 사람을 대량 학살하기 위해 발명된 미국의 군사 기술이었다.



오늘 날 전 세계 사람들이 하루종일 이용하는 인터넷 조차도 인간의 폭력에 대한 갈망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인터넷은 미국이 소련과 냉전을 지속하던 시기 군사통신망의 안전을 위해 개발해낸 ‘알파넷’을 전신으로 하는데, (이 때 그들이 메시지를 전송하기 위해 보냈던 텍스트가 “로그인(log in)”이다.) 이것이 오늘 날 월드 와이드 맵(www)의 시초가 된다.



대규모 살상 전쟁은 각종 의학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예를 들어 세계 대전 당시 병사들에게 빈번히 걸렸던 풍토병의 치료와 예방약을 보급하기 위해 각종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현대 제약 산업이 크게 발전되었고, 세계의 전쟁 국가들은 각종 전쟁 트라우마 (공포증, 기억 환각증, 자폐증 등등)를 겪는 사람들과 사지가 절단된 불구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기술들을 개발함으로써 장애인 재활의학이라는 학문이 체계적으로 발달할 수 있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물자 보급과 식량 배급에 대한 인식이 확산된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세계 보건 기구(WHO)가 발족되어 세계적인 보건 사업이 실시된다.



폭력의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은 폭력의 역사를 통해 개발된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를 누리는 아이러니를 겪고 있으면서도 그 사실들을 애써 외면한다. 그러나 통조림, 전자 레인지, TV안테나, 환타, 인공위성, 당신이 사용하는 모든 것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만들어내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갈등과 폭력이 획기적인 기술 개발을 가능케 하는 이유는 간단한 논리에 기초한다. 당장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성과의 성패에 목숨을 비롯한 막대한 이익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거나 지배하기 위해 연구를 하고, 연구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되며, 수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집단 지성을 발휘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기술과 기술, 사람과 사람, 국가와 국가가 '경쟁'하고 발전한다.



​인간이 남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야심,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잔인함, 갈등과 싸움을 통해 상대를 짓밟고자 하는 욕망이 없었더라면 이 세상은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단일한 논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으로 보였던 속성의 이면에는 언제나 모종의 필요성과 지나칠 수 없는 긍정적 파급 효과들이 들어가 있기 마련이다. 폭력과 갈등에 대한 가치를 부분적으로 긍정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모두가 ‘아이 좋아’를 남발하는 텔레토비 동산이 도래하기를 꿈꾼다. 그러나 그런 사회는 평화로울 수 있을지언정, 아무런 기술도 개발될 수 없을 것이고 그 어떤 발전도 이룩하지 못할 것이다. 팬티만 덩그러니 입고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며 몽둥이만 휘두르는 원시적인 에덴 동산의 삶, 혹은 나태와 방종에 빠져버린 ‘평화 세계’에서 과연 우리는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폭력은 폭력을 낳는다."는 문장을 즐겨 사용하며 폭력의 위험성을 강조하기 급급하지만, 우리는 20세기 중반 국방 장관을 역임했던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골이 폭력과 평화에 관하여 언급한 짧은 경구를 통해 그 말이 부정될 수 있음을 확인한 적이 있다.



“물론, 우리가 발사할 수 있는 핵무기의 파괴력은 미국과 소련이 발사할 수 있는 핵무기의 파괴력에 비해 수적으로 동등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 사실, 어떤 인간도, 어떤 국가도 단 한 번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잠재적 적에게 치명적 손상을 가할 수 있고, 그렇게 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으며, 그러한 의지가 (잠재적 적에게) 충분히 인식된다면, 억지는 그 즉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 1964년, 프랑스의 핵전략을 공표하며



그는 폭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핵 개발이 필수적임을 역설했다. 적국으로부터 강력한 핵이 날아와 전국토가 초토화 되기 직전에 “너 죽고 나죽자”는 식으로 자신들 또한 적국에 핵을 날려 초토화 시켜버리겠다는 의지를 보인다면, 그 즉시 적은 선제 공격을 단념하게 되고 평화가 보장된다는 것이다. 너도 나도 '목숨은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상호확증파괴(MAD), 다시 말해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은 가장 극단화된 폭력이 어떻게 '평화'로 전환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된다. (*원래 상호확증파괴의 개념과 어원은 폰 노이만으로부터 나왔다.)실제로 현대 국가는 대량 살상 무기가 개발되고 전쟁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전쟁의 규모는 커졌을지언정, 전쟁의 발발 횟수와 총 피해량은 감소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세계는 텔레토비 동산이 아니라 스타크래프트 속의 전장과도 같았기 때문에 지금에 이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서로를 죽이고, 폭력과 갈등이 산재할 때 우리는 그 속에서 발전하고 역설적으로 평화로워지기 때문이다.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개발하고, 기술을 연구하며, 분쟁의 해결법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죽을지라도, ‘인류’는 결국에 승리하기 마련이다. 다소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껏 모든 것을 잃으며 모든 것을 얻어 왔다.

[출처] 폭력과 학살을 긍정한다 |작성자 테크










By Holly Riordan

I don’t reach out to people.



I’m terrified of talking on the phone and starting conversations with strangers. I’m even scared of texting certain friends and coming on too strong, of graduating from a concerned friend to an annoying nuisance. So I delete messages. I wait too long to answer back. I don’t let on that I care.



But I care more than anyone realizes. I care so much it hurts.



I come across as a snob, because I find it hard to talk, hard to force a smile. But I’m not trying to be a bitch. I’m only trying to survive — because, to me, social interaction is a war zone. It makes my cheeks redden, my lungs flutter.



That’s why I don’t look people in the eye as they’re talking to me. I look at their lipstick, at the wall behind them, I might even glance down at my phone. It makes me seem like I don’t give a damn about what they have to say, but avoiding their gaze is just a crutch. I’m paying closer attention than they can imagine. Absorbing every word.



I’m not a good conversationalist — and it makes me seem like a shitty friend.



I don’t jump into conversations. I’m quiet in groups. People assume that I’m sitting there, judging them for every word that pops out of their lips when really I’m in awe of how easily they can communicate. How natural it is for them. How human they are and how fucked up I am.



Of course, they don’t realize that I have anxiety. They just think I’m quiet. Shy.

No, they don’t realize I have anxiety, because I’m not shaking at the table and hyperventilating into a paper bag. My meltdowns happen before I see them.



The night before, on my drive there, in the car — I’m freaking out the entire time. Imagining all of the things that could go wrong. Picturing how embarrassed I’ll be.



But when I’m finally in public, I internalize everything. I try to minimize my physical symptoms to avoid drawing attention to myself — but just because I calmed my shaking doesn’t mean I’ve calmed my mind.



I’m still anxious. I’m just not showing it. Secretly, I’m freaking out over what I look like. Freaking out over what to say next. Freaking out over why someone across the room gave me a strange look.



And if I need to compose myself, I’ll escape to the bathroom and heavy breathe inside of a stall or splash water across my face, and then walk back into the room like I’m perfectly fine.



But I’m not fine. Anxiety makes sure I’m never fine.



It makes me hate myself. It makes me turn down opportunities that I know I’d enjoy. It makes me stay quiet when I have something important to say.



It makes me look like a complete asshole.



But that’s not true at all. I’m just someone that’s trying to get through the day. Someone that wants to be liked, but feels like they’ll never belong.




케임브리지 대학 루퍼트 셸드레이크의 초능력 연구|- 단상 2018/12/10 14:00

The Sense of Being Stared at 작가 Park Street Press 출판 ParkStreetPress 발매 2015.07.06. 리뷰보기 Science Delusion 작가 Rupert...



켄 윌버 중세 고문




부처가 임종 직전 제자들에게 "자등명 법등명(너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 정진하라)"이라는 유언을 남겼을 때, 부처는 눈앞의 제자들이 사실은 자신의 분신들임을 알았습니다.
이 당부는 분리된 타자에게 내리는 명령이 아닙니다. 연극을 마치고 무대 뒤로 퇴장하는 주연 배우가, 무대 위에 남아서 아직 연기를 계속해야 하는 또 다른 자기 자신(제자들)의 손을 잡으며 "지치지 말고 이 연극을 멋지게 끝마치자"고 건네는 독백이자 위로였던 것입니다. 당부를 하는 자도 부처(의식)이고, 그 당부를 듣고 눈물 흘리는 자도 부처(의식)입니다. 결국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연극의 마무리를 아름다운 명대사로 장식한 셈입니다.





2. 눈동자 교환과 당혹스러움 (The Jig is up)
그래서 두 사람이 서로의 눈동자를 뚫어지게, 아주 깊이 들여다보는 순간 무의식적인 직관이 발동해. 철저하게 분리된 타인이라고 믿었던 환상(Ego)이 깨지고, "아, 결국 신이 신(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구나"라는 것을 영혼의 밑바닥에서 눈치채게 되는 거야.

와츠는 이 찰나의 순간을 "들통났다(The jig is up)"라고 표현했어. 각자 완벽하게 남인 척 심각하게 연기하고 있었는데 서로의 본질이 같다는 그 우주적 사기극이 들통나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본능적으로 당혹스러움을 느끼고 멋쩍게 웃거나(Giggle) 부끄러워하며 시선을 피하게 된다는 거지.

틱광둑 유언


Mizuki also claims to have had a supernatural experience in the jungles of New Guinea, encountering the nurikabe (plaster wall), a y?kai that suddenly blocks one’s path at night (Foster, Pandemonium, 168). In writing about his childhood and his war experiences, Mizuki consistently emphasizes the role of folklore and belief in the supernatural as a determining factor inhislife







1. 바쁜 일상과 활동을 통한 긍정적 치유
오비디우스는 사랑을 잊기 위해서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말고 정신적·육체적 에너지를 다른 곳으로 분산하라고 조언합니다.

관련 구절:

"사랑에 빠진 자여, 할 일을 찾으라. 그러면 그대는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 나태함이 사랑의 불씨를 키우는 법이니, 게으름을 피하지 마라. (중략) 사냥을 떠나 숲을 헤매거나, 농사일에 전념하여 쟁기를 잡고 밭을 갈아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출처: 《사랑의 치유(Remedia Amoris)》, 135~144행 및 215~220행

해설: 오비디우스는 "나태함(Otium)"을 사랑의 가장 큰 적이자 배양토로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연인에 대한 생각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이나 사냥, 여행을 통해 그 열병을 몰아내라고 강조합니다.

2. 환멸을 통한 부정적(심리적) 치유
사랑의 감정이 눈을 멀게 하여 상대의 단점을 보지 못하게 할 때, 이를 억지로라도 끄집어내어 혐오감을 유도함으로써 사랑을 식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관련 구절:

"그녀의 결점을 찾아내어 그것에 몰두하라. 그녀가 장점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단점으로 바꾸어 생각하라. (중략) 그녀가 밥을 먹을 때 추한 모습을 떠올리거나, 그간 그대에게 주었던 상처와 모욕을 매 순간 기억하라. 사랑은 맹목적이나, 미움은 모든 것을 낱낱이 들추어낸다."

출처: 《사랑의 치유(Remedia Amoris)》, 301~330행

해설: 오비디우스는 매우 현실적이고 때로는 냉소적인 조언을 합니다. 상대의 눈에 콩깍지가 씌어 있다면, 의도적으로 그녀의 사소한 습관이나 실수, 혹은 과거에 자신을 화나게 했던 기억을 매일같이 복기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일종의 '인지적 재구성'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 체계를 무너뜨리는 전략입니다.




総務大臣に予定されておる麻生政調会長。あなたは大勇会の会合で『野中のような部落出身者を日本の総理にはできないわなあ』とおっしゃった。そのことを、私は大勇会の三人のメンバーに確認しました。君のような人間がわが党の政策をやり、これから大臣ポストについていく。こんなことで人権啓発なんかできようはずがないんだ。私は絶対に許さん!

총무대신 자리에 예정된 아소 정조회장[7], 당신은 대용회 모임 자리에서 "노나카 같은 부라쿠민 출신을 일본 총리로 세울 수는 없지"라고 말했다. 나는 이 사실을 대용회 구성원 세 사람에게서 이미 확인했다. 너 같은 인간이 우리 당의 정책을 펼치고, 장차 차기 (총리)대신 자리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딴 식으로 인권 계몽 따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우오즈미 아키라, <노나카 히로무 차별과 권력(野中広務 差別と権力)> 2003년 9월 11일



. "오사카는 파산 상태다, 청사를 해체하겠다", "나와 함께 죽겠다는 각오로 일해 달라. 그리고 마지막엔 죽어 달라." 
-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시장 취임사





<브리하드 아라냐까 우파니샤드(Brihadarayaka Upanishad)>를 읽어보면 흥미로운 우주창조 신화가 나온다.

 

처음의 우주는 인간의 형상을 한 자아Self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내가 바로 그다(I am he)>하고 소리쳤다. 여기에서 <나>라는 이름이 생겼다. 오늘날에도 누가 말을 건네오면 <응, 나>라는 말로 서두로 삼은 연후에야 자기가 만난 다란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두려웠다. 사람이 혼자 있으면 두려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 이외엔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자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는 불행했다. 사람이 혼자 있을 때,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로 인함이다. 그는 짝이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그는 남녀가 부둥켜 안고 있는 형상만큼 커졌다. 그는 바로 자기 자신인 이 형상을 둘로 나누었다. 형상은 남편과 아내로 나뉘었다… 그래서 이 인간의 몸은(아내를 얻기 전에는) 쪼개진 강남콩의 반쪽 같았다. 그는 아내와 교합했고 여기에서 인간이 태어났다.

 

아내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저이는 자신의 형상에서 나를 만들었는데 어떻게 나와 교합할 수 있을까보냐, 내 스스로 숨어버리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래서 아내는 암소로 변했다. 그러나 그는 수소로 둔갑하여 암소와 교합했다. 여기에서 가축이 태어났다. 아내가 암말이 되자 남편은 종마가 되었고, 아내가 암 당나귀가 되자 남편은 수당나귀가 되어 아내와 교합하니 여기에 발굽이 한 덩어리로 된 동물이 태어났다. 아내가 암염소가 되자 그는 숫염소가 되었고 아내가 암양이 되자 그는 숫양이 되어 교합하니 여기에서 각각 염소와 양이 태어났다. 이렇게 해서 그는 저 개미에 이르기까지 짝으로 존재하는 모든 생물을 잉태하게 했다.

 

드디어 그는 깨달음을 얻고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만물을 지었으니, 내가 곧 창조로다." 이로 부터 그는 <창조>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본래의 몸이 갈라졌을 때, 그 반쪽은 각각 다른 반쪽을 그리워하고 다시 한 몸이 되려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은 서로 목을 끌어안고 꼭 붙어 있으려고 하였으며, 또 서로 떠나서는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굶어죽고 말았습니다. (……) 이렇듯 사람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먼 옛날부터 그들 속에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는 본래의 몸뚱이 부분을 다시 한데 모아 둘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즉 서로 분리되어 있는 우리들 각자는 한 인간의 나머지 절반입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자기의 다른 반쪽을 항상 찾는 것입니다.
- 플라톤 향연




"어린 아이에게도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만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파인만









계절이 지나면

나뭇잎들이 물들고, 떨어지고, 낙엽이 되듯이

지금은 젊기만 한 우리들도

언젠가 나이가 들고

주름살 진 피부를 갖게 되고



죽으면

썩어 없어질 거에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내가 사라진 후에도

 

그때도

여전히

당신은 나를 사랑해 줄 건가요?

 

언제든, 어디서든... 



- 에쿠니 가오리의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中






네 소소한 습관들이 궁금해.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문장마다 밑줄을 긋는지, 책장을 덮기 전에는 모서리를 접는지 띠지를 끼워두는지, 음악을 들을 땐 눈을 감는지, 스피커와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이 다른지, 샤워할 때는 어디서부터 거품을 묻히는지, 치약은 얼마나 짜는지.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는 벽을 마주하고 모로 눕는지,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언제를 가장 많이 회상하는찌, 그 틈에 내가 끼어들기도 하는지.

- 김나연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p.100







대행 스님 법문 - 내 안에 천차만별로 쓸 수 있는 샘물이 있어서




The Difference between ordinary and extraordinary is that little "EXTRA"
- 커피숍 문구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없고,
매일 밤마다 둘이서만 있을 수 있는,
난 나만을 바라보는 사람을 원했어.




When I was one-and-twenty

I heard a wise man say,

“Give crowns and pounds and guineas

But not your heart away;

Give pearls away and rubies

But keep your fancy free.”

But I was one-and-twenty,

No use to talk to me.

When I was one-and-twenty

I heard him say again,

“The heart out of the bosom

Was never given in vain;

'Tis paid with sighs a plenty

And sold for endless rue.”

And I am two-and-twenty,

And oh, 'tis true, 'tis true.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어떤 현자가 말했답니다.

“돈이야 은화든 금화든 다 주어도

네 마음만은 주지 말아라.

보석이야 진주와 루비는 모두 주어도

네 순수한 마음만은 잃지 말아라.”

그러나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으니

아무 소용없는 말이었답니다.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그 현자가 또 말했답니다.

“가슴 밑바닥에서 나오는 마음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니란다.

그 사랑은 수많은 한숨과

끝없는 후회 속에서 얻어진단다.”

지금 내 나이 스물하고도 둘이 돼서야

그것이 진리인 줄을 알게 됐답니다.

- 앨프리드 하우스먼(A. E. Housman 1859∼1936)
앨프리드 하우스먼(A. E. Housman) -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 (When I Was One-And-Twenty)

 

방탄 피 땀 눈물


스핑크스의 수수께끼


신호거나 잡음이거나
kimnayeonyun



영국 유학의 결과로 그의 영국 영어는 옥스브리지 특유의 악센트가 있는데, 미국의 코트니 휘트니 준장이 그에게 영어를 잘한다고 칭찬 한 것에 대해 "If you study a little harder, you will improve your English."(당신도 좀 더 공부하면 잘된다)고 면박한 일화가 있다. "좀 더 공부"라는 말은 "당신도 좀 더 공부하면 옥스브리지에 입학 할 수 있고 옥스브리지 악센트를 말할 수 있다"라는 뜻이거나, "당신도 좀 더 공부하면 내 악센트가 옥스브리지 악센트 인 것을 알고, 그렇게 무례한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있다"등의 비아냥이 들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쇼와 일왕이 맥아더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달했는데, 맥아더가 "그 근처에 둬라"고 선물을 함부로 취급한 데 격분하여 지로가 "명색에 일본의 왕인데, 일본 왕의 선물을 그 근처에 두라하나!" 하고 호통을 쳐 맥아더를 당황케 했다고 한다.


시라스 지로는 죽음 몇 년 전에 며칠 동안 자기가 갖고 있는 서류들을 차례로 불살랐다고 한다.

장녀 케이코가 "무엇을 불 태우고있다?"라고 묻자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런 것은 무덤까지 가져가는 것 인거야"라고 말하며, 소각로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고한다.

아마 시라스 지로가 MI6 쪽 첩자였다는 관련 자료들이지 않았을까.





과거로 돌아가서

시작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하여

미래의 결과를 바꿀 수는 있다.

- C.S. 루이스


매일 자동 인형처럼 살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가? 그렇다면 정확하게 들은 것이다. 같은 생각이 같은 선택을 이끈다. 같은 선택이 같은 행동을 이끈다. 같은 행동이 같은 경험을 창조한다.' (116쪽)

'새로운 선택은 또 새로운 행동을 부른다. 새로운 행동은 새로운 경험을 부른다. 새로운 경험은 새로운 감정을 창조하고, 새로운 감정과 느낌은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당신을 고취한다. 바로 그때 '진화'가 이루어진다.' (120쪽)

'우리는 정말 이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이렇게 살고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걸까?' (154쪽)

'당신이 관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이는 곳에 당신의 에너지가 놓인다.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거기에 의식이나 마음을 둔다면 당신은 그 가능성에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278쪽)

조 디스펜자 님은 <당신이 플라시보다>








Asim Qureshi , CEO Jibble | Meet the new standard in employee time tracking Answered Jun 12, 2017 · Upvoted by Nizam Uddin , Vice President at Investment Banking (2002-present) and Rutul Shah , MBA Finance & Strategy, Indian Institute of Management, Tiruchirappalli, Tamil Nadu, India (2019)



It’s a good question. Most are not happy. But they stay in it because the money is good. And many will be happy once they’re out.

Most dislike their job - it’s a grind, it’s hard work, it’s soulless. I mean everyone is frustrated at some level.

But while the money is good it’s never enough. You might be making US$1m a year, but the guy 4 desks away is making US$3m.

It’s like you want to get out, but you can’t - you’re addicted to your shot - called the bonus. You need one more. And then one more after that. But you never get enough. Your $10m net worth isn’t enough because the guy 7 desks away from you has $30m.


And you’re insecure. You know you’re not really worth US$1m a year - no other industry will pay you more than US$200k for the same level of skills - so you better stay put.

The odd thing is that on a superficial level there is a lot going for a senior banker - money, respect, authority, bling, top restaurants, business or first class flights, top hotels. But it’s a trade - you get all this - but you just need to give one thing as part of the trade - your soul. And that’s a heavy price to pay.



우편 엽서를 사랑하는 아이에게

우주는 내 입맛 만큼이나 넓다

램프 밑에서 본 세계는 얼마나 큰가!

기억 속에 더듬는 세계는 얼마나 작은가!

한 아침에 우리는 떠난다 머리는 불로 가득 차 있고

마음 속은 원한과 씁쓸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파도의 리듬을 따라 간다

우리의 무한을 바다의 유한 위에 흔들면서

..

아 죽음이여, 늙은 선장이여, 시간이 됐습니다! 닻을 올리시오!

이 세상은 이제 지겨워요, 죽음이여! 채비를 하소서!

만약 하늘과 땅 모두 잉크처럼 검다면

우리의 마음만큼은 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우리를 편안하게 하는 독약을 부어요

우리는 원합니다 우리의 머리가 이 불로 불타는 동안에

깊음 속으로 빠져들기를

지옥이건 천국이건 무슨 상관입니까?

모르는 것의 심연에서 새로운 것만을 찾아낼 수 있다면

샤를 보들레르 <악의꽃 : 여행>





 It’ll remind you that you live in a palace back home, and that you did nothing to deserve that.

Third World Toilets

All it takes is a little time in a third-world country to be blown away when you return home by the sheer quality of life you get to enjoy—the pristine cleanliness of the streets, the vast abundance in the grocery stores, the utter comfort of everything—suddenly the immense wealth of the First World is blatantly apparent everywhere you look and you remember that everyone you know lives like a king without realizing it. Then two days later you forget too and start complaining about everything again.

On the misery front… It’ll remind you that you live in a palace back home, and that you did nothing to deserve that.
Tim Urban 



얼렁얼렁이 나라를 망하게 했다.
우리의 최선을 다하더라도 최신이 되기 어렵거늘
하물며 얼렁뚱땅으로 대업을 이룰 수 있는가
- 도산 안창호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이성복, <서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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