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피 할아버지 그리고 Cream-White room by wriggle2121
6월 말 인도 북부의 맥로드 간즈를 여행하고 있을 때였다.
아주 독특한 사람을 만났었다.
내 숙소 바로 윗 건물에서 머물고 있던 할아버지로
머리와 수염을 치렁치렁 늘어뜨리고 그야말로 히피 스타일 옷을 입고 있으며,
낡은 가방 안에 향을 가지고 다니면서 파는 극히 독특한 사람이었다.
뭐 인도에서 독특하지 않은 사람 찾는 것이 힘들긴 하지만서도.
이 분한테는 히피 스타일 이라고 하는건 어폐고 그냥 히피다.
이 분을 처음 만난 것은 어떤 한국 남자애랑 박수폭포에서 빨래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계단에서 처음 보고 '안녕하세요' 라고 말을 건네는 모습이 마치,
닳고 닳은 인도인들이 한국 인사말 배워서 여자 꼬시거나 물건 팔려고 하는 모습과 겹쳐졌었다.
한국사람 많이 만났나 보네.
향 팔려고 그러나?
그래서 건성으로 얘기하고 무심코 지나쳤었다.
그런데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계속 마주치다 보니
'오늘은 많이 팔았어요?' 이런 말도 하다가 밥 한끼를 같이 먹게 되었다.
이 분은 유고슬라비아(얼마나 옛 이름인가) 출신으로 1990년대 발칸반도에 전쟁이 나자,
강제로 참전해야 되는 상황이어서 인도로 왔다.
그의 신분은 Tourist 관광객이 아닌 Refugee 망명객.
그는 16년간 인도를 여행하고 있었다.
기묘했다.
티벳인들이 중국의 한족 동화정책의 핍박을 못이겨 민족의 정체성을 찾고자
달라이 라마를 필두로 험하디 험한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와서 정착하게 된 곳이 맥로드 간즈.
티벳인들의 신분은 망명객.
그리고 이 할아버지의 신분도 망명객, 그러나 유고슬라비아 망명객.
나는 당시 책을 읽고 있었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 이라는 미국 소설로 9.11과 2차 세계대전을 넘나드는 한 세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할머니의 곁을 떠난 할아버지의 심정과 할머니의 심정을 읽으면서
떠난 자와 남은 자의 기묘한 슬픔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히피 할아버지와 얘기하는 동안 이 할머니의 상황과 그가 겹쳐져서
알 수 없이 답답한 심정이 피어올랐다.
히피를 동경했었다.
자유롭게 방랑하는 집시가 되고 싶었었다.
대륙을 횡단하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바람처럼 머물다 떠나고 싶었다.
어딘가 중동에서 찬란한 역사를 가늠하고, 사막의 밤에서 우주의 신비를 읽는 사람이고 싶었다.
나는 걷고 고로 나는 존재하고 싶었다.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세상엔 빛만 있는 게 아니라 어둠도 존재하고,
사람이 절대 선일수도 악일 수도 없다는 것을 어느정도 깨닫고 난 이후부터,
멋져 보이던 히피의 이면엔 한없는 고독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유는 무한한 가능성과 벅차오르는 감동인 동시에,
몇 억년간 침묵으로 일관해온 별과 우주의 한없는 고독이라는 것을.
그 때 태국의 꼬 팡안의 밤 해변을 누군가와 걸으면서 한 얘기가 떠올랐다.
-히피 3대 해변이 어딘줄 알아?
-어디?
-스페인의 이비자, 인도의 고아, 그리고 여기.
저 멀리서 트랜스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는 클럽들의 불야성을 보면서 그 누군가가 나에게 물었다.
-사람들이 왜 클럽을 만든걸까?
-즐기려고.
-그보다 근원적으로 생각해봐.
-글쎄.. 춤추고 노래하면서 인생의 고단함을 잊으려고?
-.................
-................
-외로워서.
-................
-인간이 문명을 만든 건, 외로워서야.
밤 하늘의 저 달과 별들을 봐. 같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
하지만 저네들은 다 홀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야.
사람들은 저 거대한 고독의 블랙홀에 잠식되지 않기 위해 문명을 만든거야.
-혼자가 아니라는 환상이구나..
히피는 그렇게 진화해 온 문명과 반대되는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다.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이다.
한없는 고독과 무한한 자유의 선상 어딘가에 서 있는 그들.
그리고 그들의 그림자에는 방랑하는 그들로 인해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말을 할 수 없게 된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다른 여자.
그들은 결혼하지만, 남편은 습관적으로 가던 공항에서 진짜로 여행가방을 들고 떠나버리고
여자는 평생을 홀로 살아온다.
그리고 그 아픔..
자유.
단어 자체로 가슴 벅차오르는 상징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 자유의 그늘에는 희생당하는 사람이 있다.
자유, 방종.
그 미묘한 백지 한 장의 차이. 무한한 자유를 동경했지만
결국 그 끝에 남는 건 뭘까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결국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누군가 의미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그와 얘기하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두려워하고 비판했던 '일반 사람들'의 시선으로 물었다.
-인도 여행하기 전 직업은 뭐였어요?
-히피.
나는 그 대답이 '그 어떤 것도 성취해 본 적이 없었다' 라고 들렸다.
히피도 영적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고, 어떤 것을 연구하며 큰 업적을 이뤄낼 수도 있고,
위대한 사진을 남길 수도 있고, 생명을 구할 수도 어느 누군가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텐데
난 왜 그랬을까?
그는 자신이 운이 좋았고, 고마운 사람들 덕에 적은 돈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고 했다.
유고슬라비아에 있을 때도 전역을 여행했다고 했다.
인도에서는 전역에서 만난 유고 여행자들이 본인을 후원해 줬다고 했다.
그리고 인도 사람들에게 향을 팔고 있으면 외국인인 자신이 신기해서라도 향을 산다고 했다.
그들에게 좋은 메세지가 담긴 카드를 선물한다고 했다.
그는 16년간 여행하면서 인도 신문에 실린 자신의 모습과 기사를 스크랩한 파일을 내게 보여주었다.
1990년대, 인도 내 유고슬라비아 망명객 6명.
2009년, 인도 내 유고슬라비아 망명객 1명.
그들은 전부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 모든 것을 말하면서 그는 은근슬쩍 팔을 내 팔에 갖다댔다.
나는 본능적으로 내 팔을 치웠고, 그는 계속에서 한국에 대해 묻고 자신에 대해 설명했다.
서글픈 감정이 피어올랐고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16년간 인도를 여행한 당신은 결국 외롭지 않느냐. 그래서 누군가의 체온이 그립지 않느냐.
이제 그만 당신을 그리워 하는 가족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
그의 히피 정신을 이해하고 또 이해했다.
하지만 발칸 반도의 전쟁을 끝났고 그는 더이상 망명객이 아니다.
이 곳, 맥로드 간즈의 티벳 망명객들이 간절히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과 묘하게 대비되는 것은 나의 착각이고 짧은 생각이었을까..
인도는 망명객에게 관대한 나라.
망명객들이 원하는 나라.
그러나 그 망명객들조차 흡수해 버렸고, 또 흡수해 버릴 나라.
히피 할아버지,
당신을 만나 놀라웠고 흥미로웠고 복잡했고 슬펐어요.
무언가에서 도망치는 거라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히피 생활로 인해 슬퍼하는 사람들이 만약 있다면,
그리고 당신 자신도 외롭다면,
그럼 이제 당신의 Origin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떨까요.......
히피를 오랫동안 동경해오다,
고독한 히피의 미묘한 슬픔을 마주하다.
떠난 자의 희열과 고독 뿐 아니라 남는 자의 슬픔을 이해한 나이 즈음에..
내겐 히피의 상징의 음악이 된 Cream-white room
이 음악과 함께 이번 인도를 여행했다.
[출처] 히피 할아버지 그리고 Cream-White room|작성자 녹색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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