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타 코토토메 살해 사건
1950년대에서 1970년대 초반경까지 영험한 점술가로 각종 미디어에서 소개되어 유명세를 탔다. 게다가 기시 노부스케, 후쿠다 다케오, 마쓰시타 고노스케, 오사노 겐지[10] 같은 정재계의 내로라하는 거물들도 후지타의 주요 고객이었으며[11] 이외에도 당시 친왕이었던 아키히토 상황의 결혼과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10.26 사건,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의 사망 등 국내외의 굵직한 사건을 예언하여 적중했다. 유명 야구선수 왕정치가 학생이었을 때 "앞으로 야구로 크게 성공할 것이다"라고 예언한 일화도 유명하다.
이렇듯
정재계 거물들의 신임을 받고 유명세를 떨치던 만큼 그녀는 어마어마한 재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한창 잘 나가던 시기 후지타의
재산은 자그마치 수억 엔에 달했고, 여성이 운전면허를 따는 일이 흔치 않았던 1964년 당시 자동차를 무려 5대나 소유했으며 본인
소유의 소형 비행기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61년에 결혼했던 남편과 불과 3년만에 이혼한 이후로는 점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1968년 3월 자신이 경영하던[12]
사우나에서 화재로 사상자가 다수 발생하는 참사가 터졌고, 이 화재로 인해 1974년 형사재판에서 업무상 실화 및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되었다. 그리고 이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그 동안 후지타를 영험한 점술가로 치켜세우기 급급했던 언론의 태도도 바뀌어서, 그녀의 능력에 대해 의문과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기에 이르렀고 결국 그녀를 지지하던 유력자들도 점차 관계를 끊고 떠나가는 상황에 몰렸다.
결국 후지타는 1970년대에 미국 하와이로 이주하면서 사실상 점술가로서는 은퇴했다.[13] 이후에도 계속 하와이에서 거주, 점술가 시절의 인맥과 경험을 살려 기업 컨설턴트로 전업[14]하여 일본과 하와이를 오가며 생활하다 살해당하게 되었다.
한편 후지타의 집에서 일했던 가사도우미는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후지타가 모친[15]을 하와이로 데려와 살게 했는데, 종종 모친을 만나러 가서 폭력을 휘둘렀다고 증언했다. 단순한 모녀지간의 감정 싸움 정도가 아니라 일본 본국에서는 언론을 의식해서 그간의 한을 풀 길이 없었던 후지타가 언론의 눈길이 닿지 않는 하와이에서 모친을 학대한 것으로 추정되며, 학대를 당한 모친은 오히려 딸에게 구타를 당하면서 마음이 진정된 것 같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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