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한센병원 원장- 하나이 원장·수호 원장의 대비되는 삶 [일본인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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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한센병원 원장- 하나이 원장·수호 원장  [일본인의 두 얼굴]

 

 

 

소록도는 원장에 따라 섬의 분위기가 달랐다. 일제 시대에 문을 연 탓에 초대부터 5대까지 일본인이 원장을 맡았다. 나름대로 구라사업에 역할을 했으나 2대 원장 하나이(花井善吉:1921∼1929)와 4대 원장 수호(周防正季:1933∼1942))의 극명한 삶이 주민들에게 회자된다.


먼저 하나이 원장. 일본 황실의 천조대신을 숭배토록 한 초대 아리카와 원장과 달리 한국의 풍습과 전통을 존중했다. 자유로운 취사를 허용하고 신앙의 자유를 보장했다. 소학교를 설립해 교육에 힘썼고 오락시설을 확장하는 등 민족을 초월한 사랑으로 원생들의 삶의 질을 높였다.

 

감동한 환자들이 직접 돈을 모아 창덕비를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생전의 하나이 원장이 강력히 만류해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원장이 과로로 순직한 이듬해에 세웠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원생들은 이승만 정권의 일제 청산 과정에서 비석이 훼손당할까봐 땅에 묻었다가 5·16 이후 대일 감정이 좀 풀리자 발굴해 다시 세울만큼 그를 향한 사랑은 극진했다.


그러나 수호 원장은 달랐다. 의사이면서도 건축에 상당한 조예가 있는 그는 소록도를 세계적인 요양소로 만들겠다는 야심이 있었다. 지상낙원에 대한 꿈을 심어줘 환자들의 노동력을 얻어냈고 많은 건물을 지어냈다.

 

도주하는 자를 감시하기 위해 엄동설한에 바위투성이의 낭떠러지에 순찰도로를 개설하기도 했다. 욕심은 끝이 없어 급기야 자신의 동상을 세우는 작업에 착수한다. 환자들은 3개월분의 임금을 건립 기금으로 바쳤다.

 

노동을 못하는 중증 환자들은 배급식량과 의복을 팔아서 돈을 냈다. 동상을 건립한 이후에는 매월 20일을 ‘보은감사일’로 삼아 전 원생들을 참배케했다. 그리로부터 2년 후,수호 원장이 자신의 동상 앞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에게 칼을 꽂은 환자 이춘상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환자에 대해 무리한 짓을 하였으니 이 칼을 받아라!” 동상은 내려졌고 그 자리에 소록도 병원 개원기념탑을 얹었다.

                                                     [손수호기자]

[출처] : 근대문화유산을 찾아서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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