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신론적 성향 강했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를 엄밀한 의미의 철학적 **범재신론자(Panentheist)**나 **범신론자(Pantheist)**로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 논리는 범신론적 직관에 강력하게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보르헤스는 특정 종교의 교리를 믿는 신앙인이라기보다, **"우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지성이거나 하나의 책"**이라는 아이디어를 예술적으로 즐긴 '형이상학적 유희가'에 가까웠습니다. 그와 범재신론(혹은 범신론)의 관계를 세 가지 포인트로 정리해 드립니다.


1. "모든 인간은 한 사람이다" (범신론적 자아)

보르헤스의 작품에서 가장 반복되는 테마 중 하나는 **'개별 자아의 부정'**입니다.

  • 그는 "한 사람이 셰익스피어의 시를 읽을 때, 그 순간만큼은 그 사람이 바로 셰익스피어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 그의 단편 **<불사조의 파당>**이나 **<신학자들>**에서는 두 대립하는 인물이 결국 신의 관점에서는 동일한 존재였음을 깨닫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는 만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고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범신론적 사고와 닿아 있습니다.

2. 스피노자에 대한 경외

보르헤스는 범신론의 대표 주자인 바뤼흐 스피노자를 무척 존경했습니다.

  • 그는 스피노자를 위해 시를 쓰기도 했으며, "신, 즉 자연(Deus sive Natura)"이라는 스피노자의 명제를 문학적으로 변주했습니다.

  • 보르헤스에게 우주는 신이 만든 피조물이 아니라, 신 그 자체이거나 신의 꿈이었습니다. 우주라는 거대한 도서관 자체가 신의 현현이라고 본 것이죠.

3. 범재신론(Panentheism)과의 접점: "신의 글자"

범재신론은 "세계가 신 안에 있지만, 신은 세계보다 크다"는 입장입니다. 보르헤스의 단편 **<신의 글자(La escritura del Dios)>**는 이런 관점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 감옥에 갇힌 마술사가 표범의 점무늬에서 우주 전체를 요약하는 단 한 글자의 '신의 문장'을 발견합니다.

  • 그 문장을 깨닫는 순간, 마술사는 개인의 고통과 자아를 잊고 우주 그 자체가 됩니다. 세계 안에 신의 질서가 암호화되어 있다는 이 설정은 범재신론적 세계관과 매우 흡사합니다.


📚 소강절과의 평행이론 (다시보기)

흥미롭게도 소강절의 '관물(觀物)' 철학과 보르헤스의 관점은 여기서 만납니다.

  • 소강절: "나의 눈으로 사물을 보지 말고, 사물의 눈으로 사물을 보라." (자아를 지우고 우주의 수리에 합일됨)

  • 보르헤스: "내가 거울을 볼 때, 거울 속의 나는 내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반영이다." (개별성을 지우고 보편적 지성에 합일됨)

결론: 그는 '불가지론적 범신론자'

보르헤스는 스스로를 **불가지론자(Agnostic)**라고 지칭하곤 했습니다. 신이 있는지 없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만약 신이 있다면 그는 **'우주라는 미로 그 자체'**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보르헤스는 **"범신론을 철학으로 믿은 것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문학적 환상으로 채택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 같습니다.




보르헤스의 단편 <원형폐허 Las ruinas circulares>에서는 '불에 타죽을 수 없는 인간'이 등장한다.

보르헤스의 주인공이 불에 타죽지 않는 이유는 그가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르헤스는 동양 철학의 영향을 받아 인간은 꿈속의 등장인물처럼 실체가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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