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가 시아파 국가지만 집권세력은 늘 수니파였던 이유
이라크의 사례는 현대 중동 역사에서 가장 아이러니하면서도 비극적인 구조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인구의 약 60% 이상이 시아파임에도 불구하고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이 장기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사적 배경과 철권통치 시스템에 있습니다.
1.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이어진 '소수 지배'의 전통
이라크 지역은 사담 후세인 이전부터 소수의 수니파가 다수의 시아파를 다스리는 구조가 고착되어 있었습니다.
오스만 제국: 당시 지배층이었던 오스만 제국은 같은 수니파인 이라크 내 소수 집단을 관료와 군인으로 중용했습니다.
영국 위임통치기: 1차 대전 이후 이라크를 통치하게 된 영국 역시, 이미 행정 경험이 풍부한 수니파 엘리트들을 그대로 활용해 통치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수니파 = 엘리트/군인/정치인", **"시아파 = 하층민/농민"**이라는 계층 구조가 수백 년간 굳어진 상태에서 사담 후세인이 그 시스템을 물려받은 것입니다.
2. '바트당(Ba'ath Party)'의 세속주의 전략
사담 후세인이 속했던 바트당은 '아랍 민족주의'와 '세속주의'를 내세웠습니다.
후세인은 종교(시아파 vs 수니파)보다 **'아랍인으로서의 단결'**을 강조했습니다.
이를 통해 종교적 색채를 지우고, 자신을 '강력한 아랍의 지도자'로 포장하여 시아파 대중의 종교적 불만을 억눌렀습니다. 특히 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같은 시아파인 이란에 맞서 싸우도록 이라크 시아파 군인들을 독려할 때 이 민족주의 카드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3. 공포 정치와 정보기관 (무카바라트)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압도적인 물리력입니다.
후세인은 군대와 정보기관(무카바라트)의 핵심 보직을 자신의 고향인 티크리트(Tikrit) 출신 수니파 친인척들로 채웠습니다.
조금이라도 저항의 기미가 보이는 시아파 세력은 화학무기 사용이나 대규모 학살을 통해 철저히 탄압했습니다. 다수가 소수에게 지배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소수가 모든 총구와 정보망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라크의 종교 및 권력 구조 이해도]
| 구분 | 인구 비율 | 후세인 집권기 지위 | 특징 |
| 시아파 | 약 60~65% | 피지배층 / 탄압 대상 | 남부 지역 집중, 이란과 종교적 유대 |
| 수니파 | 약 15~20% | 지배 엘리트 | 중부(수니 삼각지대) 집중, 군·관직 장악 |
| 쿠르드족 | 약 15~20% | 자치 요구 / 탄압 대상 | 북부 지역, 별도의 민족 정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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