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세계 최고 국가가 된 역사 2: 초기 미국은 하나의 정부가 아닌 13개의 독립된 나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 제퍼슨은 버지니아, 애덤스는 매사추세츠를 자신의 국가로 여겼고 나머지 주들에 대한 애착심은 약했다; 베어링계로 연방주의자/공업화주의자 (영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럽의 우수한 기술자들 - 특히 면직물 - 영입)/국채발행주의자였던 알렉산더 해밀턴 vs 반연방주의자/농업지상주의자였던 토머스 제퍼슨 / 조지 워싱턴이 키운 알렉산더 해밀턴 - 워싱턴 사후, 위치가 흔들렸다 / 철도와 2차 산업혁명 공업화에 몰입했던 링컨 정부
미국이 세계 최고 국가가 된 역사 2: 초기 미국은 하나의 정부가 아닌 13개의 독립된 나라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 제퍼슨은 버지니아, 애덤스는 매사추세츠를 자신의 국가로 여겼고 나머지 주들에 대한 애착심은 약했다; 베어링계로 연방주의자/공업화주의자 (영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럽의 우수한 기술자들 - 특히 면직물 - 영입)/국채발행주의자였던 알렉산더 해밀턴 vs 반연방주의자/농업지상주의자였던 토머스 제퍼슨 / 조지 워싱턴이 키운 알렉산더 해밀턴 - 워싱턴 사후, 위치가 흔들렸다 / 철도와 2차 산업혁명 공업화에 몰입했던 링컨 정부
https://m.youtube.com/watch?v=R9Dgoz_zrZ8&pp=0gcJCUABo7VqN5tD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은 미국 금융 시스템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자, 말씀하신 대로 **'전략적 국채발행주의자'**의 시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빚을 많이 지자는 주의가 아니라, **"국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국가의 품격과 국력을 결정한다"**는 철저한 계산하에 움직인 인물입니다. 그의 생각을 세 가지 핵심 포인트로 정리해 드립니다.
1. "국채는 축복이 될 수 있다" (A National Blessing)
해밀턴은 1781년 로버트 모리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국채가 지나치지 않고 제대로 관리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국가적인 축복이 될 것입니다."
당시 미국은 독립전쟁 직후라 막대한 빚이 있었고, 많은 정치인(제퍼슨 등)은 이 빚을 수치로 여겨 빨리 갚아 없애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해밀턴은 이 빚을 **'국가를 하나로 묶는 접착제'**로 보았습니다.
2. 해밀턴의 국채 전략: '신용'의 탄생
해밀턴이 국채 발행을 옹호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신용(Credit) 구축: 빚을 꼬박꼬박 잘 갚는 모습을 보여주면, 나중에 정말 위급할 때 전 세계에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올 수 있는 '신용'이 생깁니다.
부유층을 정부에 묶어두기: 부유한 자본가들이 국채를 사게 되면, 그들은 자신의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라도 미국 정부가 망하지 않도록 지지하게 됩니다. 즉, 엘리트 계층의 이해관계를 신생 정부의 생존과 일치시킨 것입니다.
통화량 증대: 당시 미국은 화폐가 부족했습니다. 해밀턴은 유통 가능한 국채가 사실상 화폐처럼 쓰이면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3. 연방 정부의 부채 인수 (Assumption)
해밀턴의 가장 파격적인 정책은 **"각 주(State)가 가진 빚을 연방 정부가 대신 갚아주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이는 연방 정부의 권한을 강력하게 만들고, 각 주가 연방에 경제적으로 종속되게 만드는 고도의 정치적 장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부 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미국의 수도를 뉴욕에서 지금의 **워싱턴 D.C.**로 옮기는 대타협을 하기도 했습니다.
Gemini said
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부동산 거래로 불리는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 사건입니다. 1803년 당시 미국은 원래 뉴올리언스 항구만 사고 싶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거대한 땅 덩어리 전체를 통째로 사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매입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투자였습니다.
1. 매입 과정: "뉴올리언스만 주실래요?" → "다 가져가세요"
당시 미국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미시시피강 출구를 확보하기 위해 뉴올리언스를 1,000만 달러 정도에 사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예상 밖의 제안을 합니다.
나폴레옹의 사정: 당시 나폴레옹은 영국과의 전쟁 자금이 급했고, 아이티 혁명 실패로 북미 식민지 관리가 어려워진 상태였습니다.
파격 제안: 프랑스는 "뉴올리언스뿐만 아니라 루이지애나 전체(미국 영토의 약 2배 크기)를 1,500만 달러에 가져가라"고 제안합니다.
거래 성사: 미국 사절단은 본국의 허락을 기다릴 시간도 없이 이 파격적인 제안을 즉석에서 승인해 버립니다.
2. 왜 성공적인 매입이었나?
영토의 확장: 단돈 1,500만 달러(현재 가치로 따져도 매우 헐값)로 미국 영토가 하루아침에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현재의 아칸소, 미주리, 아이오와, 오클라호마 등 15개 주의 전부 혹은 일부가 이때 포함되었습니다.
전략적 요충지 확보: 미시시피강 전체와 뉴올리언스 항구를 완전히 통제하게 되면서, 미국 내륙의 농산물을 전 세계로 수출할 수 있는 경제적 고속도로를 확보했습니다.
평화적 정복: 전쟁 한 번 치르지 않고 강대국인 프랑스를 북미 대륙에서 완전히 몰아내며 안보 리스크를 제거했습니다.
3. 역설적인 지점 (해밀턴과 제퍼슨)
재미있는 사실은 이 매입을 주도한 사람이 토머스 제퍼슨이었다는 점입니다.
제퍼슨의 모순: 제퍼슨은 원래 "정부는 헌법에 명시된 권한만 써야 한다"고 주장하던 엄격한 헌법 해석론자였습니다. 하지만 헌법에는 '대통령이 땅을 살 권한'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죠. 그는 자신의 철학을 굽히고 실리를 택했습니다.
해밀턴의 승리: 이 거액의 매입 대금을 지불할 수 있었던 기반은 바로 알렉산더 해밀턴이 구축해 놓은 국채 시스템과 금융 신용 덕분이었습니다. 제퍼슨은 해밀턴의 방식을 혐오했지만, 정작 해밀턴이 만든 돈으로 미국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농업 국가를 넘어 **'제조업 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은 기술력이 턱없이 부족했죠.
해밀턴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늘날의 **'산업 스파이 작전'**과 **'파격적인 인센티브 전략'**을 결합한 매우 현대적인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1. 국가 주도의 기술 유출 및 스카우트
당시 기술 강국이었던 영국은 숙련된 기술자의 이민과 설계도 반출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해밀턴은 이를 정면으로 돌파했습니다.
비밀 요원 파견: 해밀턴은 유럽에 비밀 요원들을 보내 영국의 최신 방적기 기술자들을 포섭했습니다. 그들에게 "미국에 오면 부와 명예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하며 밀항을 도왔습니다.
불법 이민 장려: 영국 법을 어기고 탈출하는 기술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새뮤얼 슬레이터(Samuel Slater)**입니다. 그는 영국의 방적기 설계도를 머릿속에 통째로 외워서 미국으로 건너왔고, 해밀턴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미국 최초의 수력 방적 공장을 세웠습니다.
2. S.U.M. (유용한 제조업 확립을 위한 협회) 설립
해밀턴은 단순히 기술자 한두 명을 데려오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의 시조격인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산업 단지 조성: 뉴저지주의 패터슨(Paterson) 지역에 **S.U.M.**이라는 민관 합동 기업을 세웠습니다.
혜택 제공: 유치된 기술자들에게 토지 제공, 세금 감면, 독점적 사업권 등을 부여했습니다. 국가가 특정 산업 단지에 인프라를 깔아주고 기술자를 몰아준 최초의 사례 중 하나입니다.
3.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 (Report on Manufactures)
1791년 해밀턴은 의회에 제출한 이 보고서를 통해 기술 유치를 위한 법적·경제적 보상 체계를 제안했습니다.
보조금(Bounties): 우수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나 발명가에게 정부가 직접 현금 보상(Bounties)을 해주는 시스템을 제안했습니다.
특허권 강화: 기술자들이 자신의 지적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도록 강력한 특허 시스템을 구축하여, 유럽의 발명가들이 미국으로 오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 리버럴 아츠적 통찰: "모방에서 창조로"
해밀턴의 전략은 훗날 한국이나 중국이 경제 성장을 위해 썼던 방식과 매우 흡사합니다.
니체가 말한 '권력에의 의지'가 국가 단위에서 발현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밀턴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는 '기술 도둑질'조차 국가의 생존과 독립이라는 거대한 목적을 위해 정당화했습니다.
영국 입장에서는 해밀턴이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도둑'이었겠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경제적 독립을 가져다준 건국의 아버지였습니다.
해밀턴이 이렇게 데려온 기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관세 정책'이 어떻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시대를 열었는지 더 알아볼까요?
네, 정확합니다. **뉴올리언스(New Orleans)는 루이지애나 매입 당시 그 거대한 영토의 핵심적인 '항구 도시'**였으며, 현재는 미국 **루이지애나주(State of Louisiana)**의 최대 도시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루이지애나'라는 단어의 의미가 시대에 따라 크게 달라졌기 때문에 이를 구분해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 1803년 당시의 '루이지애나' (Territory)
당시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루이지애나'는 지금의 주(State) 개념이 아니라, 북미 대륙의 거대한 중서부 전체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범위: 미시시피강 서쪽 유역 전체로, 현재 미국 영토의 약 23%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이었습니다.
뉴올리언스의 위치: 이 거대한 영토의 맨 아래쪽, 미시시피강이 멕시코만과 만나는 입구에 뉴올리언스가 있었습니다.
가치: 당시 미국이 탐냈던 것은 사실상 **'뉴올리언스라는 점(Point)'**이었습니다. 이 항구를 가져야 내륙의 농산물을 바다로 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가 "뉴올리언스 살 거면 뒤에 붙은 거대한 땅도 다 가져가라"고 해서 얼떨결에 다 사게 된 것이죠.
2. 현재의 '루이지애나' (State)
시간이 흐르면서 그 거대한 영토는 여러 개의 주로 쪼개졌고, 그중 가장 남쪽의 핵심 지역이 현재의 루이지애나주가 되었습니다.
뉴올리언스: 루이지애나주의 주도는 아니지만(주도는 배턴루지), 경제·문화적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독특한 문화: 프랑스와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드물게 **'카운티(County)' 대신 '패리시(Parish)'**라는 행정 단위를 쓰는 등 독특한 가톨릭 문화와 프랑스 풍의 전통이 남아 있습니다.
음악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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