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머니즘과 타종교의 융합과 갈등
샤머니즘과 타종교의 융합과 갈등 / 샤머니즘사상연구회 엮음 ; 민속원 2017
주기적으로 민속원 책이 읽고 싶은 병이 도져서 도서관 사이트에서 검색하여 관심도서로 지정해두었습니다. 빌리고 보니 '2018 세종도서 학술부문 수상작'이더라고요. 이거 무조건 재미있죠...!!!
발간사에서 가로되 우리나라 샤머니즘 연구는 의례를 관찰하는 데에 집중되어 있어 샤머니즘 사상 자체를 목표를 한다고 합니다.
여러 종교와 샤머니즘의 접촉을 다루는 가운데 첫 주제는 몽골. 몽골 샤머니즘은 못 참습니다 저는...!!!
[몽골비사]에는 불교 언급이 일절 없으나 쿠빌라이칸 때부터 티베트 불교가 받아들여져 알탄 칸 이래 몽골 고원에서 가장 강력한 신앙이 됩니다. 이에 샤머니즘은 신상인 옹고드를 파괴하거나 희생제의가 금지당하고 샤먼이 말을 세금으로 내야하는 등 일종의 탄압을 받게 되지요.
그러면서 일종의 습합이 이루어져, 기존의 텡그리 신들이 부처와 등치되고 무가巫歌에 '라마승의 허락'같은 같은 문구가 들어가며 옹고드가 불상으로 대체되기도 합니다. [게세르 칸]에서 게세르의 아버지이자 최고 천신이 제석천의 습합신인 코르모스타 텡그리.. 또는 호르모스타 텡그리임은 우연이 아니겠지요.
최초의 흑무당(몽골의 전통 샤먼. 티베트불교와 습합된 무당은 황무당이라 부릅니다)에서는 이라 일컬어지는 다양 데르흐의 전설은 초기에는 달라이라마와 사람 구하기 내기(...) 끝에 승리하여 몽골에 왔다는 설정?이었으나 티베트 불교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불자로 계를 받는 내용으로 변모합니다. 티베트 불교의 제의를 수용함은 물론이요 부리야트 족의 성무의례(샤먼이 되는 의례)인 차나르에서는 샤먼으로서 하는 맹세 중 "무속신앙과 라마교를 이간질하지 않는다" 라는 구절이 있다 하니 몽골에서는 나름 사이좋게 공존하게 된 걸까요?
유교 의례와 무속 의례의 친연성을 기제사와 굿에서 찾는 논고도 재미있었네요. 유교의 기제사와 무속의 조상거리는 대단히 흡사한데, 기존의 연구에 따르면 기제사는 남성 중심이고 조상의 덕을 기리는지라 조상이 긍정적인 존재로 묘사되지만 굿에서는 여성의 관점이어서 시집 와서 특별한 혜탹도 없는 남편의 친척에 대한 의무만을 강요당하는지라 조상이란 '짐'이라나요. 정말 그런 느낌인지 시가의 제사를 지내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았지만 딱히 수긍하는 반응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제사는 질색이고 시아버지 돌아가시면 즉각 그만둔다고-☆
샤머니즘과 크리스트교와의 관계에 대한 논고도 둘이나 있습니다.
하나는 샤머니즘에 대한 개항기 선교사들의 인식을 다룬 글로, 베네딕트 수도회와 파리 외방선교회 등 가톨릭 시각으로 쓴 것인지라... 민간신앙에 관해 가능한한 정확히 서술하고 그 안에 담긴 사상이나 정신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며, 가급적 크리스트교 세계관과 유사한 점을 찾아내려는 시도도 엿보입니다. 제주도의 삼성혈을 노아의 홍수와 비교한다던가.... 그들의 시각에는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에 대한 일말의 안타까움과 문화 민족인 조선에 대한 존경심이 엿보인다나요. 에 정말루?.... 대저 세계사에서는 선교사가 제국주의의 첨병이라 서술하고 있는데도.... 뭐 시대의 흐름과 개개인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는 것이겠지요.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사상적인 면에서 보면 크리스트교와 한국 샤머니즘의 별에 대한 인식을 다룬 글도 재미있었습니다. 유일신을 추앙하는 크리스트교에서도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러 방문한 동방박사 세 사람이 점성술사였다고요. 그리고 또한...
한국의 샤먼들 역시 별을 노래해왔다.
삼태성 등 무가와 의례에서 나타나는 3이라는 숫자, 별의 의미를 탐구합니다.
칠성신앙과 삼신신앙의 관계, 성황당에서의 의례... 용어와 절차에 관해서는 늘 메모해버리고 만단 말이죠. 써먹을 날이 있으려나~
한국과 대만, 오스트리아에서의 무덤의 형태와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도 흥미로웠네요. 우리나라의 무덤은 산, 대만의 무덤은 집, 오스트리아의 무덤은 교회의 형태를 띄고 있다나요. 과연 보편화시킬 수 있을 만한 논의인지 직접 알아보심이!(야)
그리고 최고로 흥미로운 주제는......
'일제강점기 신궁대마의 배포'!!!!!!!!!!!!!
신궁대마란 이세신궁에서 전국에 배포하는 신찰입니다. 본래 이세신궁은 천황가문의 씨족신 아마테라스를 모시는 곳으로 정기적으로 황족 여성을 보내어 재궁으로 삼을 정도로 중시되는 곳이었지요. 그러나 무가 정권이 성립되고 천황의 힘이 약해지면서 이세 신궁도 빈궁하게 되어, 에도 시대에는 서민들의 참배를 부추기고 수입을 늘리기 위해서 신궁대마를 배포했다고 합니다. 와-아 정말로 신성하구나★
그러나 메이지 유신 후 국가 신토가 강요되면서 이세 신궁의 위상은 급상승하지요. 나아가 1930년대 이래 일본 제국은 황국 신민화 정책의 일환으로 이 신궁대마를 조선, 대만, 삿포로, 남양, 만주 등지까지 배포합니다. 또한 종교 식민화를 노려 대한제국의 국가 제사며 지방 관아의 관행제, 마을굿까지 모두 강제로 폐지하고 처벌하기까지 하면서 국가 신도의 제전과 신도의 마쓰리로 변형시키고자 애썼습니다. 와-아 정말 멋진 근대 국가구나★
나아가 가미다나를 보급하는데 가미다나란 대저 일본 신도에서 가정에 비치하는 작은 신단으로 황국신도의 3대 명절(천손강림을 기리는 원시절(1월 1일), 신무 천황의 즉위일인 기원절(2월 11일), 현 천황의 생일인 천장절)+메이지 천황의 생일인 명치절(이 날 광주 학생들이 빡쳐서 들고 일어난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기에 한국에서는 학생의 날이죠-☆)마다 가미다나에 신궁대마를 봉제하면서 천황을 존숭하고 대동아공영권을 완수하길 맹세했다지요. 와-아...
조선신궁에서는 1924년부터 봉제를 독려하기 위해 신궁대마를 배포하였으며, 1938년에는 배포 실무가 각 도의 행정관청에까지 맡겨지고 대마봉수식에 경찰이며 읍면장까지 참석했다고 합니다. 이 막대한 양의 신궁대마를 만드는 데에는 어린 학생들까지 동원되어 1944년까지 시행되었다고 하니... 총력전 중 군수물자를 만드는 일손도 부족할 판에 종이 찌끄레기나 만든 겁니다. 정말 멋진 근대 국가★(2번 말함)
물론 이 신궁대마 봉제에 대해 식민지 조선인들은 무관심 그잡채. 기존의 부군당이나 성주, 제석, 터주, 업등을 모시는 제단만 중시하고 가미다나는 방치하거나 소홀히 다뤘다지요. 물론 그 사실이 발각된다면 폭행당하거나 경찰에 기소되기도 했다니 경찰력이 정말 낭비되었다고밖엔.
이러한 신궁대마와 가미다나의 운명은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는... 활활 잘 탔을까 궁금해지네요-☆
일본의 내선일체 정책이 얼마나 쓴웃음지어지는 농담이었는지 새삼 실감이 됩니다....
마지막 주제는 대만의 동계입니다. 강신과 자해를 하는 전통 무당인 동계 그 자체는 상당히 흥미로웠지만 타종교와의 교류를 고찰하고 있다고는 여길 수 없어서 왜 수록된거야? 라고 의문을 가졌습니다.
역시... 민속원은 재미있어!
([데스노트]의 류크 풍으로)
[출처] [샤머니즘과 타종교의 융합과 갈등]|작성자 진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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