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의 무극태극론: 태극이 음양 밖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태극이 곧 음양이고, 음양이 곧 태극이다

 

김시습의 무극태극론

태극이란 무극()이다. 태극은 본래 무극이기 때문이다. 태극은 음양이고 음양은 태극이다. 태극에 따로 극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극이 아니다. 태극의 극은 지극()의 의미가 있다. 이치가 지극하여 더 이상 덧보탤 수 없다는 뜻이다. 태()란 포용의 의미이다. 도는 지극히 커서 그것에 필적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음양 바깥에 따로 태극이 있다면 음양은 음양일 수 없고, 태극 안에 따로 음양이 있다면 태극은 태극이라고 할 수 없다.

음이 되었다가 양이 되고 양이 되었다가 음이 되며 운동하다가 정지하고 정지하다가 운동하는 그 이치는 한이 없기[] 때문에 태극인 것이다. 그 기()는 운동과 정지에 따라 열리고 닫혀서 음과 양이 되고, 그 성()은 원형()과 이정()이고, 그 정()은 음은 울적하고 양은 활발하다. 그 작용의 경우 천지는 그것에 의해 둥글거나 모가 나게 되고 원기()는 그것에 의해 발육하고 만물은 그것에 의해 본성을 이루는데 각각의 본성이 바르게 되는 것은 태극이 곧 음양으로 되기 때문이다.


[⋯] 거짓 없이 진실한 것이 참됨()이고 참됨은 잠시도 쉼이 없다. 잠시도 쉬지 않기 때문에 둘이 아니고 둘이 아니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다. 해가 지면 달이 뜨는데 해와 달이 교대로 비추어서 낮과 밤이 형성된다.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는데 추위와 더위가 서로 교대하면서 한 해의 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사계절을 운행하고 만물을 생성하는 것은 오직 태극일 뿐이다.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노는 따위의 모든 이치는 부부에서 발단되거니와 사람의 도리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모든 사물 안에 내재해 있고 모든 때에 주관하고 있는 것은 일관()일 뿐이다. 따라서 태극의 도는 음양일 따름이고 일관의 도는 충서()일 따름이다. (「」, 『』, 권20, 22ㄴ~23ㄴ)


김시습이 쓴 「태극설」()의 한 부분으로 당시의 성리학이해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시습은 태극은 음양이요 음양은 태극이라 하여 태극과 음양, 나아가 이와 기를 일원적으로 해석했다. 즉 만물의 생성을 태극의 작용()으로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태극의 도는 음양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 세계의 근원적 실재를 태극이라고 하더라도 태극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음양이면서 동시에 만물이라는 일원론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네이버 지식백과] 김시습의 무극태극론 (조선 전기 이기론, 2004., 허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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