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를 통해 태평양 전쟁 시대 일본의 올드스쿨 남성을 이상적으로 묘사하여 3.11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유약한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미야자키 하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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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살아야만 해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신 애니메이션 <바람이 분다>의 마지막 대사는 이와 같다. 관동대지진부터 시작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의 참상을 거쳐, 주인공의 '꿈의 비행기'였던 '제로센'이 가미가제 공격에 이용되면서 "단 한 대도 돌아오지 못했다"라는 현실을 깨닫는 순간의 공허함까지. <바람이 분다>의 현실은 참혹하게 너덜너덜하고, 꿈을 꾼다는 것 자체가 불경해보일 만큼 고통이 만연했던 그런 시대였다. 그런데도 여주인공 나호코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환하게 웃으며 거듭 당부한다. "당신은 살아야 해요"라고.

<바람이 분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실존했던 비행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의 생애에 느슨하게 기반하여, 미야자키 하야오의 개인사를 겹쳐놓은 듯한 기이한 형태의 '자서전'이다, 1941년 생인 미야자키 하야오는 1945년 피폭과 패전이라는 비극의 기억을 어렴풋이 체험했다. 그는 그 전쟁의 기억의 정체를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 거듭 추적했으며, "현실 사이에는 틈이 많았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리고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태에서 그 기억은 견딜 수 없는 악몽으로 소환되었다. 3.11 이전부터 <바람이 분다>를 작업하고 있었던 미야자키에게, 그 현실의 무게를 이겨내며 제2차 세계 대전의 이야기를 형상화하는 과정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저는 자유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일상 생활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매일 같은 길을 다닐 것 입니다."

이 말을 남기고, 그는 9월 6일 은퇴를 선언했다. 이제 우리는 <바람이 분다>라는 기이한 영화를 통해, 마치 미야자키가 아버지의 체험을 추적하듯 그의 내면을 추적해나가야 한다.

지난 9월 11일, 서교동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미술 · 디자인 평론가 임근준과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부장이자 영화평론가 유운성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세계와 그를 둘러싼 3.11 이후 일본의 멘털리티에 대해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아래는 그 대화의 전문이다. <편집자>


<▲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부장 ·영화평론가 유운성(왼쪽)과 임근준 미술 ·디자인평론가 임근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를 보고 난 직후에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유운성 : 영화를 보기 전부터 워낙 말들이 많았잖아요. 일본의 군국주의를 미화했다거나, 혹은 적어도 군국주의에 대한 태도가 모호하하다는 보도를 자주 접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현재 일본 우경화에 대한 우려, 또 7월 경에 하야오가 아베 정권 및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을 강하게 비판하고 위안부 문제도 사과해야 한다는 논지의 발언을 했던 것과 맞물려 '그런 말을 했던 사람이 이런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영화를 만들다니!'라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은데요.

하지만 <바람이 분다>를 보고 난 뒤에는, 왜 그런 반응이 나왔는지 이유를 알겠는데, 지금까지의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죽 봤을 때 의외의 영화라는 느낌은 없었어요. 오히려 그간 영화들의 전체적 구조 안에서 보면 너무나 예상 가능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충격을 받거나 배신감을 느끼거나 하지도 않았습니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와 호오를 떠나서, <바람이 분다>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이라 생각한다면 가능한 선택이었다고 봐요 .

임근준 : 글쎄요, <바람이 분다>를 본 뒤, 전작들에 이미 예상 가능한 지점들이 있었노라고 말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11, 즉 2011년의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을 겪지 않았다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들지 않았을 영화라고, 혹은 만들었더라도 같은 주제를 다르게 해석했을 것이라 보는 편이, 더 합당한 해석이라고 봅니다. 패전의 역사 때문에 다룰 수 없었던 부분, 즉 양차 대전 사이에 존재했지만 지금껏 서사적/시각적 재현이나 언급이 금기시되었던, 전쟁 세대 일본인의 어떤 공통된 이상향을 이토록 낭만적으로 조망하는 일이 3.11 이전에 가능했을까요?

역사적인 평가를 차치한다고 해도, 2013년의 시점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양차 대전 사이에 대두했던 어떤 대국적 이상을 엔지니어 일개인의 시점을 빌어 미화했다는 점은, 조선인의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불쾌하고 측은하죠. '어쩌다 일본이 이렇게 되었을까?'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본인은 부정하겠지만, 어쨌든 일본사회를 대표하는 예술인이자 지성인, 황족학교까지 다녔던 귀족적인 인물인 미야자키가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전쟁 반대의 제스처를 포기하고, 제 아버지 세대의 전범적 낭만을 긍정해버린 꼴이죠.

심지어 호리코시 지로가 만든 비행기 '제로센'에 대해서는 객관적 사실마저도 바꿔버렸어요. 밀리터리 마니아들의 얘기에 귀기울여보면, 제로센은 결함이 많은 비행기거든요.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해버린다'는, 일본식의 극단적 해결 방식을 취한 사례라고 합디다. 그런데도, 제로센을 마치 기술적으로 퍽 아름다운 비행기인 양 미화한 부분은, 상당히 의외입니다.

▲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 호리코시 지로와 그의 비행기 '제로센'. ⓒstudio ghibli

프레시안 :
 <책으로 가는 문>(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현암사 펴냄)에 원래 실렸던 글 '나만의 책을 만나다'에서 하야오는 지나가는 말처럼 언급합니다.

"끔찍한 것을 그리려 할 때 우리 시대 사람들에게 결국 최고의 위협은 핵무기 폭발입니다."

그건 2010년의 발언입니다. 그리고 <책으로 가는 문> 마지막에는 2011년 3월 11일 이후의 심경을 토로한 새로운 글 '3월 11일 후에-아이들 옆에서'가 실렸습니다. 여기서 미야자키의 어조는 매우 황량합니다.

"지금 판타지를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 아이들이 즐겁게 보는, 그런 행복한 영화를 당분간은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의 들머리에서는, 행복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해도 어쩐지 거짓말 같은 냄새가 나니까요. 정말 21세기의 막이 올랐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고작입니다."

그리고 이웃에 보육원이 있기 때문에, 아이들을 보면서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라는 응원을 잊지 말아야지, 라고 다짐한다고도 했습니다.

저로서는 그 공포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잘 가지 않습니다. 1945년의 히로시마·나가사키의 공포를 뛰어넘을 만큼 3.11의 상흔이 크고 깊었던 걸까요? 이 공포의 근원은 대체 어디까지 뻗쳐있는 걸까요?

임근준 : 3.11은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핵폭격 이래 최대의 공포, 가장 큰 정치·문화·사회적 충격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국토 일부가 비정상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 - 제한된 정보 공개로 인해 실제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추산할 수 없지만 - 때문에, 앞으로 오래도록 현재의 비정상적 멘탈리티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3.11의 충격이 일본 현대미술계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3.11 이후 작가들이 지엽·말단적으로 뵈기 쉬운 미적 문제를 다루는 작업에 천착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다루는 작업은 꽤 나오고 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런 경향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다름없어요. 콜렉터들도 여차하면 삶의 기반이 송두리째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미술품을 사겠습니까?

어찌 보면 한국인에게 6.25가 남긴 상흔과 유사하게 작동합니다. 제 생각에 한국인들이 건축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소모품 다루듯 하는 건, 한국전쟁에서 집과 마을이 폭격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걸 봤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땅은 영원하다고 생각하니까, 부동산만은 소중히 여기죠.

일본도 별반 다르지 않게 됐어요. 자연재해로 인해 일상이 언제든 파괴될 수 있다고 느끼며, 또 자연재해로 인해 야기된 핵 누출 사태에 일본 사회가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는 점에 좌절감을 느끼는 상태로는, 문화 예술에 투자하고 집중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아요. 게다가 3.11은 SNS로 생중계된 자연재해였습니다. 각종 미디어를 통해 다각적으로 보도되는 가운데, 이는 기존의 시각 예술로는 재현할 수 없는 차원과 규모의 스펙터클이 됐습니다. 3.11을 생각하면 국외자인 저조차 무기력감을 느끼는데, 일본인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프레시안 : 유운성 선생님은 일본 영화작가들과 많이 교류하실 텐데, 3.11 이후 영화계 상황은 어떻습니까?

유운성 : 미술과는 조금 다른 경우입니다. 3.11 직후, 약 1년 정도 지난 다음부터 굉장히 많은 다큐멘터리가 나왔어요. 후쿠시마 현장을 찾아가서 그 삶을 들여다보거나, 인터뷰를 하거나, 살아남은 사람을 찾아가서 공연을 하거나, 그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가 많았어요. 하지만 그 중에서 뚜렷한 성과를 남긴 작품을 보진 못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그 충격이 너무 컸던 것 같고, 충격을 수습하고 그걸 영화적으로 재현한다는 것보단 일단 기록한다는 측면이 강하거든요. 작품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다큐먼트로서 촬영된 쪽이 훨씬 많았죠.

아직까진 3.11 이후에 대해 모색 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혹은, 매우 우회적인 방식으로만 언급합니다. 직접적으로 3.11에 대한 픽션을 찍는다는 건 상당한 심적 부담을 견뎌야 하거든요. 그래서 3.11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상황들을 영화 안에 집어넣거나, 지진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삽입된 형태 정도에 그치고 있습니다.

3.11 이후의 일본 영화들을 다 살펴봤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영화들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아직까진 그 사태에 접근하기 위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할지를 아직 감을 못 잡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 미술평론가 임근준. ⓒ프레시안(최형락)

임근준 : 현대미술계에도 지역의 조사·연구를 통한 작업, 즉 후쿠시마 지역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 다큐멘테이션 작업들을 꽤 나오고 있어요. 아마 박찬경 감독이 기획하는 제8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 미디어시티 서울 2014에서 그런 부류의 작품들을 대거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어떤 면에선, 일본의 3.11은 미국의 9.11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자체가 인간 감각의 수용 한계를 뛰어넘는 스펙터클이었기 때문에, 그걸 재료로 삼아 새로운 이차 부산물, 즉 메타-텍스트를 만든다는 게 부질없게만 느껴지는 상황인 거죠.

유운성 : 3.11을 직접 감지한다기보다 3.11의 여파가 어떤 식으로 드러났는지를 보고 짚어내는 게 오히려 유의미한 작업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 지식인들도 수세적으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하위문화에 대해 독특하고 발랄한 시각을 견지했다고 일컬어졌던 아즈마 히로키 같은 경우, <일반의지 2.0>을 보면 이런 식으로 극도로 보수적인 논지의 글을 쓸 수도 있구나 싶더라고요. 3.11이라는 재난 이후에 비판적 각성이 싹틀 거라는 예상은 오히려 낭만적 환상이었던 거죠. 그 재난이 너무 크기 때문에 오히려 수세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경계심이 커지는 게 아닐까, 최근 일본의 작품이나 이론적 작업들을 보면서 그런 점을 느꼈어요.

임근준 : 그런데 전쟁, 원폭, 자연재난 등 인간 감수성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급변 사태가 발생하면, 그걸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해버리는 멘털리티가 사회 전체에 만연한다는 게 일본 사회의 괴이한 특성이라는 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런 사태가 전개될 때마다, 일본인들은 해묵은 정치적 부채나 역사적 문제를 망각하고 리셋(reset)하려는 몹쓸 경향을 보였다는 겁니다.

프레시안 : 이를테면 쇼와 시대(1926~1989)가 끝났고 지금은 헤이세이 시대(1989~현재)니까, 우린 책임 없다는 태도일까요?

임근준 : 예, 천황이 바뀔 때 일본 사회 내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죠. 가라타니 고진이 예전에 각 천황 시대를 비교·분석한 흥미로운 도표를 제시한 적이 있는데요, 거기서 각 시대마다 일본 사회가 반복하는 경향을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3.11이 또 다시 하나의 기폭제가 됐고, 현재 우리가 보는 어떤 퇴행적 욕망, 즉 과거사 반성 없이 일본 사회를 리셋하려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돌이켜보면 1995년도 그런 해였습니다. 보수적 일본인들이 취소해버리길 바라마지 않는 무라야마 담화("전후 50주년의 종전기념일을 맞아")는, 헤이세이 7년인 1995년 8월 15일에 발표됐는데, 보면 시기가 좋지 않았죠. 그해 1월 한신·아와지 대지진(고베 대지진)이 발생했고, 3월 20일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터졌습니다. 새로운 천황 아래서 맞은 탈냉전의 7년, 패전에 대한 심리적 책임감/압박감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와 장기 불황으로 인한 세대적 불만이 꿈틀대던 해였습니다. 그런데, 대지진에 사린가스에 이어 이른바 '사죄 외교'까지.

이때 일본인들의 어떤 심리적 저항선이 무너졌습니다. 최근 일본사회에 팽배한 어떤 역사 리셋의 욕망, 즉 역사적 부채감을 벗어던지고 앞으로 튀어나가려 하는 집단적 욕망은, 일찌감치 일본 사회에 잠복했던 문제점들이 다시금 전면에 등장한 것에 불과합니다.

근년의 일본을 보면, 의외로 취약하기 짝이 없는 민주주의를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일본 민주주의는 다이쇼 민주주의를 이어받은 게 아니라, 미군정에 의해 강제된 체제에 불과하죠. 인민의 투쟁으로 획득한 민주주의가 아닌 터라, 의회 민주주의 체제가 시민사회와 연동하는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는 모습입니다. 특히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도 불구하고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일본 의회나, 또 그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 하나 제대로 조직해내지 못하는 일본의 시민 사회의 모습에,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런 개탄스런 상황에 가장 발 빠르게 비평적으로 대응한 것은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였습니다. 아즈마가 제 저서 <일반의지 2.0>(안천 옮김, 현실문화 펴냄)에서 주장한 내용은, 숙의(熟議) 없는 민주주의 시스템에 관한 황당한 망상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돈이 많이 들고, 엄청나게 시끄럽고 복잡하고, 또 골치 아픈 과정이기 마련인데, 의회 민주주의가 정상 작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일본의 시민 사회가 숙의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숙의 과정을 아예 포기해버리고 일반 국민의 의견 혹은 정치적 무의식을 수렴하는 모니터링 시스템을 만들자는 거였죠. 그런 발상은,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바로 파시즘이 됩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지난 5월 13일 아즈마는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의 망언을 옹호하는 트윗을 올렸고, 이어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설전을 벌였습니다. 그러자 현대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는, 다시 그 내용을 열심히 리트윗하는, 다소 저의가 의문스런 모습을 모여 빈축을 샀죠.

유운성 : 좀 놀라운 발상이었어요.(웃음) 민주주의 시스템을 논할 때 빅 데이터 처리 방식의 힘을 빌려 보수반동적인 정치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임근준 : <도주론>(문아영 옮김, 민음사 펴냄)의 아사다 아키라까지만 해도 일본의 옛 민주화 투쟁에 영향을 받은 세대입니다. 하지만 1971년생인 아즈마 히로키는 그렇지 않죠. 그에게 민주화 투쟁은 역사 속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버블 경제 이후 장기 불황에 빠진 일본 사회에서 팔자 좋게 오타쿠 하위문화나 분석하며 탈역사적 세계관의 도래를 운운하던 그로서도, 3.11 이후엔 변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민주화 투쟁의 유산이 사라진 일본의 상황에서, 되살아나는 역사 관념은 퇴행적인 모습이기 십상입니다.

적잖은 일본인들이 전전(戰前)의 일본 사회는 건강했다고 착각합니다. 대놓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상적인 일본적 공동체와 가치관이 전쟁과 미군정으로 인한 자본주의화에 의해 파괴됐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재밌는 건 바로 그런 멘털리티가 지브리의 동화 세계에서 그대로 시각적으로 재현되고 반복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잘못된 믿음이죠. 일본이라고 지목은 되지 않지만, 어떤 아름다운 공동체가 있었는데 부득이하게 산업화 세력에 의해 전쟁에 끌려들어갔고, 바람이 불었고(웃음), 원자 폭탄이 터졌고, 고통을 겪었고, 그 이후의 모순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세력과 그에 반대되는 악의 세력이 있다는 식. 모든 문제가 외래적인 힘으로부터 비롯됐다고 믿는 몹쓸 경향이 있어요.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뿐 아니라 다카하시 루미코의 <이누야사>(학산문화사 펴냄) 같은 작품을 봐도, 유사한 경향을 찾을 수 있어요. 보면, 외래문화인 불교나 도교는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일본의 무속만큼은 긍정적으로 묘사됩니다. 그건 미즈키 시게루의 <게게게의 기타로>(AK COMICS 펴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의 토착문화는 현실의 모든 모순을 해결하고 치유하고 정화할 수 있는 힘 자체로 제시돼요.

전 어떤 면에서 일본 사회는 현대화되지 않았다고 느낍니다요. 첨단화됐지만, 현대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 일본에 필요한 건,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 대신 일본 사회의 정신적 지주인 천황을 비판할 제2의 살만 루슈디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양차대전 사이의 '좋았던 시절' vs. 비행이 금지된 세계

프레시안 : 두분께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전작들에서 <바람이 분다>로 이어져 오는 필연성을 느끼셨나요?

임근준 : <미래 소년 코난>이 가장 먼저 떠오르던데요. 불가항력적으로 누구의 책임인지 모를 큰 전쟁이 일어났고, 기술 문명을 나쁘게 활용하는 무리와 과거 공동체의 가치를 되살려 인간의 본성을 지키고자 하는 무리 사이에 갈등과 투쟁이 벌어지는 얘기잖아요. 일본으로 적시되진 않지만, 무대도 섬이고 말이죠.

▲ 미야자키 하야오의 <미래소년 코난>. ⓒstudio ghibli

제2차 세계 대전을 해석하는 일본인의 멘털리티가 바로 그것 아닐까요? 전쟁도 누군가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라, 자연재해처럼 불가항력적으로 벌어졌던 어떤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래서 패전일을 종전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겠구요. 천황 이하 사회 지도층에게 책임이 있을 뿐, 일반 국민이 전범국가의 일원이나 후예로서 부채 의식을 느낄 이유가 전혀 없다는 식이죠. '원폭으로 우리는 역사에 유래가 없는 피해를 봤다'는 식의 피해자 의식도 분명히 그에 한 몫을 합니다.

<미래소년 코난>에서 묘사되는 기술 문명도 미묘합니다. 양차대전 사이에 존재했던 실험적 비행기 형태를 애니메이션 속에서 유토피아적 렌더링으로 재해석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이탈리아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가 상당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일본과 이탈리아 사이에 모종의 공통된 멘털리티가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적어도 패전 때문에 시각적으로 소환해낼 수 없었던 과거의 어떤 유토피아적 망상을, 변형된 형태로나마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보고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수상한 대리만족의 커넥션이었다고 할까요?

한국은 탈식민 국가이기 때문에, 한국인은 양차 대전 사이에 존재했던 유토피아적 망상을 해석하는 데 있어 다소 일면적인 경향에 빠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일본의 제국주의자,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혹은 독일의 나치가 꿈꿨던 이상으로서의 모던한 미래, 통일된 유럽이나, 통일된 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망상을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패전국의 당사자들, 특히 양차 대전 시대에 유년기를 보낸 뒤 전후에 성인이 된 구세대라면, 자연 재현이 금지된 그 망상에 관해 향수를 느끼기 쉽겠죠.

과거 한반도가 아무리 일제의 통치를 받았다 하더라도, 여태껏 이런 문제적 역사관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별다른 비평 없이 열심히 감정이입해온 게, 저로서는 꽤 기이하다고 느껴집니다. 지나치게 둔감했거나, 지나치게 너그러웠다고 봐야 할까요?

유운성 : 임근준 선생님이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역사적 근원에 대해 짚어주셨으니 저는 좀 다른 각도에서 말씀드릴게요. 제 의문은 이런 식의 유토피아적 사회, 기술적인 재현들이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할 때 왜 그 공간은 일본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 그 의문을 한번 정리해봤어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1941년생이죠. 군수공장을 운영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그 공장에서 만든 비행기 부품에 매혹되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비행기가 갖는 역사적인 부담 혹은 죄책감을 감지했을 때…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행하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결심했을 때 남는 선택은 무엇일까요. 다이쇼 시대(1912~1926)에서 쇼와 시대로 이어지는 30년 간의 시기로 돌아가는 겁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등 초기작들에도 비행의 로망은 존재합니다. 비행기건 빗자루건, 인물들에게 날기 위한 수단은 다 존재해요. 이중에서 <이웃집 토토로>를 제외하면 죄다 무국적적인 작품들입니다. 정확한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데 1992년에 <붉은 돼지>를 만들고 난 뒤 대단히 일본적인 무대로 향하는 두 편의 작품이 등장합니다. 1997년의 <모노노케 히메>와 2001년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여기선 인물들이 나는 게 아니라 달리거나 걸어요. 마치 일본으로 돌아간 순간 비행이 금지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studio ghibli

어떻게 보면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일본은, 난다는 행위가 금기시된 공간이거나 혹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장소인 겁니다. 그 부분에 대해 임근준 선생님이 앞서 맥락을 말씀해주셨고요. 일본의 시골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은 반 요괴인 토토로의 힘을 빌지 않으면, 스스로는 날 수가 없어요. '일본에서' 날아서는 안 된다는 금기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영화라고 생각해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들고 난 뒤 다시 날기 위해선, 2004년 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처럼 다시 무국적적인 공간으로 돌아가야 했던 겁니다. 하울은 마법사이자 새(鳥) 인간이죠. 2008년 <벼랑 위의 포뇨>에 이르면, 물고기인 포뇨는 물살을 타고 날 듯이 달리지요. 그러니까 과도하게 날 듯이 달리는 존재도 역시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어야 가능합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에서 비행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게 규칙처럼 존재한다는 겁니다.

이같은 부담이 <바람이 분다>에 고스란히 녹아 있어요.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는 비행기 설계자인데 본인 스스로는 비행기를 몰 수 없는 심한 근시입니다. 또한 전쟁이라는 배경, 비행이 금시기될 수밖에 없던 역사적인 배경이 아예 전면적으로 드러나고요. 사실 호리코시 지로가 제로센의 설계자이자, 제로센이 가미가제 공격에 활용됐다는 역사적 사실은 제약 혹은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오히려 미야자키 애니메이션 세계 내 체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문제시되는 작품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이런 점에서 72세 감독이 만든 <바람이 분다>는 이중구속의 영화라고 여겨집니다. 한편으론 역사적 구속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만들어온 영화적 시스템이라는 구조적 구속이 있어요.

이런 구속을 고스란히 껴안고 작업하면 가끔 놀라운 걸작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랬다면 <바람이 분다>는 거의 실험작이 되었겠지요. 하지만 아쉽게도, <바람이 분다>는 영화에서 가장 편리한 장치인 꿈을 끌어 들이죠. 그 꿈 속에서 비로소 무국적적인 공간이 등장하고, 일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이탈리아인 비행기 설계자 카프로니가 등장하고, 꿈이라는 특성을 빌어 기어이 마음껏 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요.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중구속을 어떻게든 견디면서 끌어안고 돌파했다면 대단히 흥미로운 작품이 되었을 텐데, <바람이 분다>에서는 꿈 말고도 너무 많은 우회로와 편리한 장치가 등장합니다. 이 정도 노년의 감독에겐 약간 비겁할 수도 있는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문지문화원 유운성. ⓒ프레시안(최형락)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태도

임근준 : 내면으로 침잠해서 개인적인 작업에 집중했다면 훨씬 좋은 작품이 나왔을 것 같은데, 3.11 이후 젊은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한다는 계몽주의적 자세가 성찰을 압도해버렸죠. 당분간 이런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미결의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쨌든 일본인들이 당대의 일본을 뭔가 문제 있는 땅, 잘못된 지점, 오염된 문화라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태도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세계 안에서도 반복되는데….

유운성 : 최근에 봤던 책 중에 <일본.현대.미술>(사와라기 노이 지음, 김정복 옮김, 김용철 감수, 두성북스 펴냄)에서 '배드 플레이스(bad place)'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더군요.

임근준 : 네. 나쁜 땅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의 각 예술 분야에서 계속 등장하는데, 미야자키의 영화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듯합니다. 어쨌든 <바람이 분다>는, 다이쇼 모던의 낭만을, 다이쇼 이후 쇼와에서는 이어지지 않은 사회 분위기지만, 억지로 전쟁 시기까지 끌고 가려 애썼다는 점에서도 꽤 흥미로운 텍스트가 됩니다. 확실히 미야자키를 비롯한 일본의 올드 스쿨 지식인들이, 일본 사회 전반에 현대적 아름다움과 미래 긍정의 기운이 충만했던 다이쇼 시기를 후대로 이어질 수 있던 어떤 가능성의 시대로 긍정하고 싶어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또한, 전후 독일 지식인들이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를 미화하거나 과대평가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들어, 비판하거나 꾸짖을 수도 있습니다.

유운성 : 다이쇼에서 쇼와로 이어지는 그 시기에 대한 비판과 역사적 스탠스 등을 다 알고 있었을 텐데, 왜 <바람이 분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런 태도를 취했는지가 오히려 궁금해요.

임근준 : 미야자키 하야오의 성장 배경을 보면 짐작 가능하지 않을까요. 전쟁의 고난을 직접 경험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1941년생인 그는, 아버지가 군수공장을 운영했던 자본가였고, 아름다운 비행기와 낭만적인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으며 자랐다고 하죠. 스튜디오 지브리의 회의에서도 뭘 열심히 적기에 보면, 전투 장면이나 탱크를 낙서로 그린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까, 전쟁 장면의 작화에 특별한 애착을 지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아무튼, <바람이 분다>의 경우, 양차 대전 사이의 일본을 긍정할 수는 없지만 그 시대를 산 일본인만은 긍정적으로 묘사해내겠다는 노인의 과욕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미야자키 본인이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말했다죠. 자신의 아버지는 전쟁 때 힘들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이 제일 좋았노라 회고했다고, 그래서 그 좋았던 게 뭐였는지 한번 다뤄보고 싶었다고요. 일본 사회에서 지금까지 시각적으로 재현할 수 없었던 것, "좋았던 과거"를 다루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미학적으로 상당한 추동력 혹은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 주제죠.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볼 때, 미야자키 하야오는 <바람이 분다>를 좀 치사하고 안전하게 만들었어요. 자기가 도망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으로만 과거를 재현한 거죠. 차라리 더 솔직하게 만들었으면 어땠을까요?

유운성 : <바람이 분다>에 대해 한국 평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게, 영화 앞부분 관동대지진 묘사에서 한국인이 그 이후 겪은 참상은 하나도 등장하지 않고, 오히려 로맨스의 배경으로만 활용된다는 걸 비판해요. 그런데 질문이 딱 거기서 멈추고 말아요. 전 관동대지진이 로맨스의 배경이 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거부감을 보이는 비판은 납득이 안 되었어요. 그런 비판에 의해서라면 상당히 많은 영화사 걸작들의 목을 쳐야 해요.(웃음) 무수한 작품들이 살아남을 도리가 없어요. 정말 물어야 할 것은, 로맨스의 배경으로 쓰인 관동대지진이 아니라, 그런 배경에서 출발한 로맨스가 지진이 사라진 이후에 어디로 가느냐가 아닐까요.

미야자키 같은 경우 분명히 그 시기로부터 비판적 위치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시간적·역사적 거리를 획득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 위치에 자리하기를 망설이는가, 혹은 왜 기꺼이 그 위치로 가질 않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합니다. 관동대지진에서 시작된 로맨스가 <바람이 분다>에서 어떻게 진행되느냐를 묻는다면 이야기가 좀 진전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 나온 전쟁 배경 걸작들은 비판 의식의 부재라는 약점이 있지만, 당시 그걸 들여다보고 조망할 수 있는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진 못한 거잖아요. 하지만 미야자키는 그렇지 않습니다.

▲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 ⓒstudio ghibli

임근준 : 동의합니다. 다만 한국인 입장에선, 관동대지진 부분에서 불쾌한 것만은 사실이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흑인 노예가 멍청하게 구는 장면이 나올 때, 흑인 관객 입장에서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말해도 이상하겠죠. 저는 조선사람 입장에서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 조선인 출연자를 보기는 했습니다. 명시가 안 됐을 뿐이지, 분명 배경 인물로 등장해 잡역부로 막일을 하거나 집안일을 하던 사람 가운데 조선인이 있었겠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인한 70만 명의 사상자 가운데 조선인이 7만 명 이상이었다고 하잖아요? <바람이 분다>에서도 배경 인물로 등장한 군중 가운데 10% 정도는 조선인이었겠죠. (웃음)

프레시안 : 로맨스에 덧붙여 생각해보고 싶은 지점이 여주인공 나호코입니다. 사실 <바람이 분다>에서 제일 이상한 존재가 나호코예요. 호리코시 지로와 나호코의 로맨스가 <바람이 분다>에서 대체 왜 필요했을까를 생각하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들을 읽다보니,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미야자키 하야오는 <출발점><반환점><책으로 가는 문> 곳곳에서 아버지 얘기를 되풀이 언급합니다. 관동대지진, 전쟁의 참혹한 공습을 모두 겪은 아버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어땠냐"라고 물어봤을 때 "글쎄, 재미있었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 어른이 된 다음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 <청춘의 꿈 지금 어디에>(1932)를 본 다음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고백합니다. 그 영화에 나오는 쇼와 초창기의 반항적인 모던 보이의 모습이 아버지 같았다는 거지요.

"결국 어떤 시대든지 틈새는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고, 혹은 알고 있어도 모르는 척을 하며 살고 있으면 세상에 틈새는 얼마든지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식으로 살았느냐 하면, 역시 관동대지진 체험으로 정말 죽어버리면 끝이라는 것을 철학적이 아니라 실감으로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정말 그날 하루살이로 데카당스이지만 생애를 살아가는 법은 무너지지 않았지요."

혹은, 미야자키의 세계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중요한 열쇳말로 아버지와 더불어 작가 생택쥐페리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미야자키는 비행사 생택쥐페리와 그의 작품 <인간의 대지>에 대한 깊은 애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생택쥐페리의 동료들은 모두 30대에 죽었지만, 생택쥐페리 자신은 44세까지 살았다면서 미야자키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저 죽을 만했기에 죽었다. 그런 삶을, 나는 인정하고 싶습니다. 뭐 어때요, 좌절하면. 정신없이 취해서 죽으면, 비행기에서 죽으면. (…) 모두 앞만 보며 긍정적으로 건강하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건강하지 못한 한계에서 살 권리를, 특히 시인은 갖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생택쥐페리에 대한 미야자키의 회고를 읽다보면, 정말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나호코를 굳이 끌어들인 건 아닐까 싶어지던데요.

유운성 : 저는 <바람이 분다>를 보면서 그 반대편에서 하워드 혹스의 영화들을 떠올렸는데요. 하워드 혹스의 모험 영화들을 보면 개인, 개인성, 개인이 속한 아주 작은 커뮤니티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있는데, 그게 아주 투명하고 순진한 믿음이 아니에요. 믿음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기 때문에, 믿음 자체가 내 존재를 거는 행위라는 불안도 존재하거든요.

그런데 <바람이 분다>에는 그런 불안이 전무해요. 하워드 혹스 영화에서는 불안을 안으로 감싸 안는 것이 개인이 속한 커뮤니티인데, <바람이 분다>는 제2차 세계 대전과 군국주의 같은 불안이 커뮤니티를 감싸 안은 형국입니다. 그러니까 <바람이 분다>의 불안은, 당대 일본의 군국주의라는 외적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서만 존재해요. 이런 점에서 <미래 소년 코난><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변한 게 없다고 할 수 있겠죠.

임근준 : 내면적으로 크게 변한 건 없겠죠. 다만 가면을 내렸죠. 좀 많이, 기대 이상으로.(웃음)

▲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studio ghibli

유운성 : 군국주의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는 진술이 이해가 안 가는 게 그 때문입니다. 전혀 모호하지 않아요. 오히려 반응적이고 수동적입니다. 가장 소시민적인 너무나 투명한 태도입니다.

임근준 : 일본 보수층의 태도인 거죠. '우리 책임은 아니었고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난 최선을 다했다, 아름다운 시절이었다'는 식의.

프레시안 : 일본 사회를 지켜보면 한편에서는 '윗사람들'이 저지른 일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죄가 없다는 태도가 있고, 또 한편에서는 우리 모두가 공범자라고 외치면서 죄 자체는 어느 순간 아주 작아지면서 희미해지는 상반된 상황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유운성 : 우리 모두가 공범자라는 게, 죄를 가장 많이 진 사람들이 죄를 경감하는 최고의 논리지요.

임근준 : 일본 평화주의자들의 논리이기도 해요. 1999년엔 심지어 이렇게 떠드는 공익 광고도 있었어요. "'전범'을 찾아내는데 시간을 낭비하는 건 이제 그만 둡시다. 안돼, 안돼라는 대합창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일본의 대표 기업 60개사가 공동으로 돈을 댄 대대적 기획이었죠.

프레시안 : 다시 아까 질문으로 돌아오자면, <바람이 분다>의 로맨스의 이상한 위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임근준 : 그 문제는 간단해요. 미야자키가 보기에, 지금 일본 남자들이 너무 유약하고 바보 같은 겁니다. 일본의 남성성을 부활시키고 싶은데, 사실 일본 같은 패전국에서 남성성을 긍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해외로 뛰쳐나가는 투쟁적 남성성은 전범과 겹쳐지는 불길한 이미지잖아요. 결국엔 과묵하고 세태에 휘둘리지 않고 줏대 있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조직에서 현명하게 리더십을 발휘하는 타입, 또한 죽어가는 여자에게 헌신하면서, 짧게 끝날 꿈이지만 아낌없이 사랑하는 타입, 그게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려낸 호리코시 지로에요. 일본적 남자다움을 미화하기 위한 장치죠. 이 영화는 여성성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요.

유운성 : <바람이 분다>에서 의외의 지점이 나호코인 건 맞는데, 제가 궁금한 지점은 좀 다릅니다. 미야자키의 전작들에서 여성 캐릭터는 굉장히 건강하게 묘사됐어요. 오히려 남자 주인공들이 다소 보수적이고 약했죠. 그런데 여기서 처음으로 병든 여자, 죽어가는 여자가 나와요. 그렇다고 해서 호리코시 지로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모노노케 히메>의 여성 주인공들이 담지했던 멋있는 건강함을 되찾아왔을까? 그건 아니거든요.

임근준 : 여기에서 남성성은 보다 실제적인 것, 즉 다이쇼-쇼와 시대를 겪은/견뎌낸 일본 남자의 힘 그 자체라고 생각해요. 전작들에서 나타난 여성 캐릭터들의 힘은 이상화된 환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것이고요. 그 둘은 차원이 다릅니다. 여태까지의 작품에서 일본 사회에 그나마 희망을 안겨주는 남자 캐릭터는 죄다 소년이었는데, 이번엔 실존 인물을 내세움으로써 올드 스쿨 일본 남성의 멋을 긍정적으로 묘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어떤 강박을 느꼈겠죠.

유운성 : 아까 미야자키 영화 속에서의 비행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사실 남녀 역할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어요. 완전 판타지의 공간에선 여성적인 것, 탈 역사적인 것이 강조되는데, 일본의 현실적인 시공간으로 돌아오는 순간엔 강한 여성이 사라져요. <이웃집 토토로>에서도 아이들의 부모를 생각해봅시다. 엄마는 자리에 누워있는 병약한 캐릭터였어요. <바람이 분다>에서 늘 누워있는 나호코가 바로 겹쳐져요. 하지만 이게 곧바로 멋진 남성성의 강조로 이어지는지는 확신이 안 가는데요.

임근준 : 저는 처음부터 이 영화를 일본적 남성성에 관한 텍스트라고 읽었어요. 초지일관 일본의 구식 남성성을 미화하고 긍정하는데 엄청나게 애를 쓰잖아요? 다소 무뚝뚝하지만 속 깊고 정의로우며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성취도 또한 높은, 그런 남자상이요. 한류와 함께 한국의 대중 문화는 남성성을 다채롭게 재현해내는 데 성공했지만, 오히려 패전국인 일본의 대중문화가 다루는 남성성엔 제약이 많죠. 아무튼, 이런 작품에서 여성 캐릭터는 '받침대'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웃음)

프레시안 : <바람이 분다>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외국인의 존재입니다. 지로의 꿈에 나오는 카프로니 백작이나, 혹은 <마의 산>에 나오는 것 같은 호텔 휴양지에서 지로가 마주치는 외국인이 있지요. 영화에선 명시되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매우 유명한 독일계 소련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가 모델이라는 설이 있더라고요. <바람이 분다>에서 이 두 외국인은 지로의 가장 아름다운 꿈과 함께 가장 불길한 예감을 끄집어내는 존재지요. '이건 지옥입니다' '일본은 망합니다'라는 얘기가 왜 꼭 외국인의 입을 빌려서만 가능한 걸까요?

▲ <바람이 분다>. 이탈리아인 비행설계자 카프로니와 꼬마 지로의 만남. ⓒstudio ghibli

임근준 : 스파이 캐릭터는 일본 사회의 고질병을 드러낸 게 아닐까 싶은데요. '전지적 백인 시점'을 체현하는 캐릭터라고 할까요.(웃음) 일본의 패망을 일본인 화자의 입을 통해 발설할 순 없으니, 일본을 잘 아는 백인이라는 설정이 필요했겠죠. 산장 또한 작위적인 판단 유예의 공간, 정상적인 일본의 일상이 아닌 어떤 무대 장치가 필요했기 때문에 꾸며낸 공간이라고 봤어요. 일본의 도덕관념으론 비정상적으로 비춰질 주인공 남녀의 운명적 재회와 로맨스를 긍정해줄 시선도 필요했겠구요.

유운성 : <바람이 분다>는 어떤 식으로든 미야자키가 물러날 곳이 필요한 영화거든요. 하나는 꿈이었고, 또 하나 호텔에서 만난 스파이 같은 경우는 대신 말해주는 존재에요. 독일은 망한다, 일본도 망한다. 호리코시 지로는 그 입장에 동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일을 묵묵히 했다, 는 자기변명이 가능해질 수 있는 거죠. 눈에 너무 빤히 보이는 거슬리는 설정이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외침, "살아라!"

프레시안 : 미야자키 하야오가 9월 6일 갑작스럽게 은퇴 선언을 했죠. 사실 이번이 세 번째 은퇴선언이지만, 어쨌든 <바람이 분다>를 '당분간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봐야 할 텐데요.

임근준 : 제 생각엔 반드시 돌아올 겁니다. 일본이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을 유치했잖아요.(웃음) 1964년 도쿄올림픽을 청년기에 직접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 좋았던 시절을 다시 한 번 누리고 싶다는 욕망을 외면할 수 없을 거예요. 2020년 도쿄하계올림픽 유치와 함께 일본을 부흥시킬 기회가 나타난 셈이니, 그 과정에 동참하고 이바지하고 싶다는 욕망도 무시할 수 없을 겝니다. <바람이 분다> 자체가 3.11 이후 좌절에 빠진 일본의 젊은 세대에게 꿈과 희망을 주려는 목적의 영화인데, 더 큰 기회가 나타났으니….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도 2020년을 전후로 해 컴백하리라 믿습니다.

유운성 : 전 좀 다른 지점에서 미야자키의 장편 애니메이션은 정말 마지막이 아닐까 싶어요. 지브리의 제작 환경과 일본 내 현 상황을 연결지어 생각해본다면, 지금까지 지브리가 내놓았던 형식의 대작 장편 애니메이션을 감당하긴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최근 지브리 애니메이션 몇몇을 보더라도, <모노노케 히메>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비주얼은 이제 감당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조심스럽게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분다>처럼 현실적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해야만 상대적으로 자본과 인력의 소모가 덜 한 게 아닌가…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스타일에도 어쩔 수 없는 변화가 생겨날 것이고, 그렇다면 과연 미야자키가 그렇게 변한 형태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만족하거나 적응할 수 있을까요?

▲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 ⓒstudio ghibli

임근준 : 네, 그 말씀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사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화 방식이나 장면 세팅을 유심히 보고 있으면, 확실히 서구적 원근법 체계를 초극하려는 야심이 느껴집니다. 일본은 서양의 원근법 체계를 수입했지만 회화에서 그걸 넘어설 순 없었어요. 결과론적 이야기지만, 그래서 무라카미 다카시의 경우 결국, 슈퍼 플랫의 세계, 납작한 장식의 변형된 전통 회화의 세계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구미 풍경화의 원근법적 시점을 일본식으로 절충하는 문제(和洋折衷)와 내내 싸웁니다. 그의 '레이아웃'에선 아키타 난화(秋田蘭画)와 에도 양풍화(洋風畵)의 특징이 발견됩니다. 즉, 원근법적 특징이 두드러지는 공간을 먼저 설정하고, 근경에 세밀하게 표현한 일본적 기물이나 인물을 배치해 공간감을 극대화하는 특징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죠.

이런 부분이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의 차이점입니다. 디즈니의 공간은 스토리 전개나 주인공의 움직임을 위해서만 존재해요.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서는, 초창기 일본 회화가 표출하고자 했던, 즉 원근법적 체계 자체가 주인공인 세계의 흔적과 욕망을 찾아볼 수 있어요.

그런데 스튜디오 지브리에서도 그런 욕망을 강하게 드러내는 사람은 미야자키 하야오 한 사람뿐입니다. 지브리에서 다른 사람이 만든 애니메이션이나 레이아웃 원화에선 그런 욕망이 안 보여요. 지금 열리고 있는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 전시회'에서 원화들을 보면서 그 점을 절감했습니다. 중요한 장면에서 아키타 난화나 에도 양풍화의 구도를 연상케하는 넓은 공간을 원근법적으로 확 펼쳐 보여주면서, 주인공을 둘러싼 배경이 파노라믹하게 움직여 뵈는, 동적 공간 창출의 집요한 욕망은, 다른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원화들에선 잘 드러나지 않았어요. 그런 화양절충(和洋折衷, 서양의 기술은 받아들이되 일본의 정신은 유지한다)의 욕망이 미야자키의 작품에서 내용으로나 형식으로나 아주 중요한 테마라고 봅니다.

유운성 : 그게 미야자키 하야오만의 욕망일까요?

임근준 : 일본 올드 스쿨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공통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브리 안에서 그걸 가장 잘 구현해낸 건 미야자키 하야오고요. 아드님(미야자키 고로)의 경우엔, 그걸 정말 잘 못 다루죠. 기술 유전은 가능하지만, 역사적 욕망이나 시각적 상상력의 유전은 어려운 게죠.

프레시안 : 에드워드 사이드의 용어를 감히 빌려온다면, <바람이 분다>를 '말년의 양식'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미야자키 하야오의 풀리지 않은 난국과 타협하지 못한 고민들이 총체적으로 드러난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특히 이 작품 마지막, 지로의 꿈에 "바람이 분다, 살아야 한다"라는 맹세가 거듭 되풀이됩니다. 이건 <모노노케 히메>에서 미야자키가 "살아라!"라고 외쳤을 때 느낀 감정과 사뭇 달랐어요. <바람이 분다>를 보노라면 '대체 이런 상황에서 왜 살라고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터져 나왔거든요. 미야자키의 마지막 교훈이 다시 한번 '살아라!'였던 이유에 대해, 선생님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임근준 : 도를 넘은 농담을 하나 하자면, "안됐다, 너희들의 미래는 참으로 어두워, 우리가 알던 일본은 이미 망했어"라고 대놓고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떤 의미에선 전 <바람이 분다>가 3.11 이후의 히스테리라고 느낍니다.

유운성 : 전 그 "살아라"라는 말에서 무게감을 느끼질 못했어요. 어떤 면에선 농담 같기도 했어요. 특히 지브리 스튜디오의 이름, 지브리(ghibli)는 카프로니 백작이 만든 비행기 '기블리'에서 따온 이름이거든요. 호리코시 지로 앞에 바로 그 그 카프로니 백작을 세워둔 채 굳이 그렇게 수차례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 이유가 뭘까. 역사적 무게라기보다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앞으로 우리 스튜디오가 잘 되어야 한다"는 다짐이 아니었을까 싶었어요.(웃음)

이 영화의 결말은 매우 공허한데, 놀라운 건 일본의 몇몇 지식인이나 평자들이 <바람이 분다>에 무척 감동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바람이 분다>에는 허술한 부분, 결여된 부분이 많아서, 그 빈 부분에 자기 감정을 싸안고 들어가지 않으면 그 정도로 감동하고 감정이입할 수가 없는데 말이죠.

프레시안 : 이제 대담을 마무리해야 하는 시간인데요, 마지막으로 개인적 결론을 한 마디씩 해주신다면요.

유운성 : <바람이 분다>는 미야자키가 어쨌든 한번쯤은 만들고 싶어했을 영화일 것 같은데, 왜 하필 딱 이 시기에 만들었는지를 내내 생각해 보는 중입니다. 일본 내에서, 이 영화의 빈 구멍에 자신의 감정들로 채워넣어주기위해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기에 말이죠. 영화 속에선 한없이 순진을 가장하지만, 사실 되게 무서운 사람인 것 같아요.

영화 자체적으로만 본다면, 감독들의 필생의 프로젝트는 반드시 실패한다는 믿음을 확인시켜줬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군요.(웃음)

임근준 : 2001년 9.11 이후 미국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한동안 잘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를 보면서, 좀 기이하다고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3.11 이전의 일본과 이후의 일본이 확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 한국 사회가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고요. 3.11 이후 적잖은 일본인들이 약자/피해자 멘털리티에 사로잡혀서 '과거 승자 입장에서 취득했던 모든 이득과 우리는 연관이 없다, 다 끊어졌다, 청산됐다'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인이 아니라, 이해요.

<바람이 분다>는 분열적인 텍스트입니다.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자고 격려하는 동시에 과거를 긍정하다 보면, 파열 지점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바람이 분다>를 우익적 욕망을 드러낸 텍스트로 해독해 비판하는 건, 그리 실효가 없을 겁니다. 다만 한국인의 입장에선, <바람이 분다>를 놓고, 3.11 이후 일본인들의 멘털리티가 어떤 상태에 놓였는지, 그 문제의 뿌리엔 무엇이 있는지를 이해하고 논의하는 채널로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자, 이렇게 불안한 시대에도 우린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았으니 너희도 힘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미야자키 하야오 세대의 입장이 뭔지 이해한다면, 앞으로 한일관계에 대한 이해도 또한 높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프레시안 : 긴 시간 동안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책'
글 : 안은별 기자


▲ <미야자키 하야오 : 출발점 1979~1996>(황의웅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대원씨아이
올 여름에만 <출발점>과 <반환점>(황의웅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책으로 가는 문> (송태욱 옮김, 현암사 펴냄)등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저작이 세 권이나 나왔다. <출발점>과 <반환점>은 지금까지 발표한 글이나 연설문, 인터뷰·대담을 엮은 책이기에 저작이라 부르기 애매한 감이 있지만, 책으로 묶일 줄 몰랐던 순간의 발언이나 기록도 포함되어 있어 오히려 이 감독의 여러 가지 얼굴을 볼 수 있다. 즉, 체계를 가지고 써내려간 자서전이나 평전이 아니기 때문에 속내와 가장이 교차하는 듯한 경험을 할 수 있고 그 사이에서도 일관된 태도로 보이는 것을 건져 올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어디까지나 개별 독자의 착각일지라도 말이다.

딱히 미야자키 하야오의 팬이 아니라 하더라도, 엉켜 있는 듯한 편집이 거슬린다 하더라도, 이 책은 6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산업사로 읽을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에 이쪽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이 외에도 두 권의 책을 읽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프레시안 books'는 서평 매체인 만큼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영향을 준 서적들에 관한 언급을 소개하려 한다.

<출발점> <반환점> 두 권을 읽고 처음 가진 감상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얼마나 튼튼한 지적 방어 체계를 세워왔는가 하는 놀라움이었다. 모든 분야에 박식했다는 뜻이 아니라, 문외한인 분야의 원리마저도 나름의 방식으로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세계에 대한 입장을 갖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지식인이라 부르면 도리질을 치지만, 지금까지 많은 비평가들이 "막과자의 시간"을 표방하는 미야자키의 영화에서 심오한 사상을 읽어내려 했던 것처럼 글이나 인터뷰도 일종의 해석 본능을 자극한다는 데서는 다름이 없는 듯하다.

천상의 '일'에 매료되다

그의 생각에 힘을 주고 나아가 작품 세계에 반영도 되었을 법한 책 몇 권을 이야기해 보자. <출발점> 제4장 '책'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독서 경험에 대한 다양한 술회를 엮은 장인데, 가운데서도 중요한 열쇳말은 전쟁 기록물과 로알드 달, 조엽수립 문화론과 나카오 사스케, 그리고 홋타 요시에&시바 료타로일 것이다.

잘 알려졌듯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전쟁 기록물을 좋아하여 탐독해 왔다. 대학 때 강의에서 전쟁경제의 파괴성을 듣고 "모으고 있던 무기 관련 책이나 모형들이 쓸데없이 여겨져 전부 버려 버렸다"고 한 최근의 발언( 2013년 8월 8일자)에서 보듯, 이러한 성향은 일종의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이기도 했다. 그러나 절실한 동기와 복잡한 갈등이 맞물리는 전쟁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나 그처럼 '움직임(움직이는 그림)'을 다루는 사람으로서는,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뛰어난 동력 장치들이 위용을 겨루는 시공간에서 눈을 떼기가 더욱 어려웠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1988년 7~8월에 <아사히저널>에 쓴 독서기 원고를 묶은 'Books'라는 꼭지를 보면(<출발점> 233~237쪽), 요셉 케셀의 <하늘의 영웅 메르모즈>, 바바라 터크만의 <8월의 포성>, 야마카와 키쿠에의 <우리들이 사는 마을>, "독일 전차병에 관한 책", 질 페이턴 월시의 <여름의 끝자락에서>, 비고-루시옹의 <나폴레옹 전선종군기> 등 거의 전부가 전쟁 기록물임을 알 수 있다. 툭툭 끊기는 짧은 감상 속에서 그가 전쟁 이야기에 매료된 지점들을 약간씩 읽을 수 있다.

"(<나폴레옹 전선종군기>의) 이집트 원정 대목이 굉장하다. 살육과 약탈, 열광과 원차, 기아와 역병, 용기와 우둔, 모든 것이 있다. (…) 15년 전쟁의 일본군 역시 마찬가지다." (237쪽)

"(가미코 기요시의 <우리 레이테에서 죽지 않으리>는) 패배가 결정된 후 무의미한 죽음의 강요를 거절하고 탈주해 보르네오로 건너가려 했던 병사들의 기록이다. 탈출행은 기아로 실패했지만 병사들 반수는 살아남는다. 적전도망의 비난을 훨씬 뛰어넘은 당당한 삶이었다." (234쪽)

"쇠약한 기체, 변덕스러운 발동기, 유치한 항법, 사막, 해원, 안데스 산들, 그 모든 것이 메르모즈와 그의 동료 일상을 빛나게 한다. 그가 남대서양 위에서 소식을 끊은 직후에 쓰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강한 존경과 애착이 필자의 지상 위 일상생활을 향한 경멸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233쪽)


즉 개인에게 퇴로가 없어 보이는 척박한 전쟁 상황 그 자체, 그 어려움 속에서 빛나는 '살아라!'라는 의지, 이 충돌이 주는 감동과 그에 따른 일종의 자기비하가 전쟁물 독서에 매달린 쾌감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자기비하란,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의 빛나는 일상에 비해 지루하고 평범한 지상 위 일상에 대한 것일 터다. 로알드 달에 관한 글('비행사로서의 로알드 달', 247~250쪽)에서도, 공군 파일럿이었던 달이 하늘에서 보인 활기와 땅에서 보인 '건강하지 않은 모습'을 대비시키는 대목이 나온다.

"달은 아동문학도 썼는데, 나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별로입니다. 조금 기분 나쁜 느낌이 들어요. 그의 책 뒤편에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 실려 있잖아요. 거기에 비친 달을 보면 비행기로 불시착해 크게 다친 탓인지도 모르지만, 조금 건강하지 못한 느낌이 듭니다. (…) 아무튼 비행사로서의 달이 최고라고 생각해요. (…) 게다가 이 남자는 역시 천재적인 사격의 명수였다고 생각해요. 공중전에서, 떨어질 파일럿은 처음부터 떨어집니다. (…)" (248~249쪽)

미야자키는 달이 그리스에서 겪은 심한 패전 속에서도 전혀 자포자기 않는 모습을 보고 정말로 감탄했다며 "달은 자신이 그 장소에 있을 때에 자신의 행동을 일단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인간 ―처한 운명조차 스스로 받아들인 이상, 자신의 행동을 중도에 포기하지도 니힐리즘에 빠지지도 않는 인간"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동경해 온 이상의 인간상이며, 그 상을 실존 인물로 구현해낸 <바람이 분다> 속 호리코시 지로에 대한 언급에서 매우 유사한 대목을 찾을 수 있다.

"한 명의 기술자가 역사 전체를 책임질 필요는 없다. (…) 영화 속에서도 말했지만, 비행기는 '아름다우면서도 저주받은 꿈'이다. 만들고 싶었던 것을 만들고 저주받고, 상처를 입는다. (…) 그렇게 그 시대를 있는 힘껏 살아가는 편이 낫다." ( 오타 히로유키와의 인터뷰 중)

나카오 사스케와 <재배식물과 농경의 기원>

▲ <재배식물과 농경의 기원>(나카오 사스케 지음, 이와나미쇼텐 펴냄). ⓒ이와나미쇼텐
<세카이> 1988년 6월 임시증간호에 실린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글(230~232쪽)에서는 재미있는 표현이 나온다. 그는 1941년생인 자신이 '신서(新書) 세대'라 불렸다 얘기하는데, "분량도 적고 내용도 어렵지 않아 읽기 쉬운 신서에 빗대어, 당시 젊은 세대가 가볍고 깊이가 없었음을 돌려 얘기하는 듯하다"라는 역자 주가 달려 있다. 1938년 이와나미쇼텐에서 발간하기 시작한 신서엔 '이와나미 문고' 시리즈에 고전이 실린 것과 달리 "현대 교양을 목적"으로 한 신작이 주로 담겼다.

이 신서 가운데 그가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한 권이 나카오 사스케의 <재배식물과 농경의 기원>이다. 식물학자인 나카오 사스케(1916~1993)는 고고학자 후지모리 에이이치(1911~1973)와 함께 미야자키의 "독서 경향을 규정해버린" 정도의 저자였다. 대학 시절부터 조선 북부, 몽골, 네팔, 부탄, 인도 북동부, 미크로네시아, 사할린 등을 탐험했고 히말라야 산록에서 중국 서남부를 거쳐 서일본에 이르는 조엽수림 지대의 문화적 공통성에 주목한 '조엽수림 문화론'을 제창했다. 이 책 <재배식물과 농경의 기원>은 벼를 비롯하여 밀, 고구마, 잡곡, 콩 차 등 현대 인간 생활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재배식물의 기원을 아시아의 오지와 히말라야 지역, 남태평양 전역을 탐사하여 추적한 책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 책에 '꽂힌' 이유는 '일본인이란 어디에서 왔는가'란 물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본인 대부분이 패전으로 자신감을 잃고 민주주의로 전향하는 시기에 세상 물정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일본인과 일본국, 일본 역사를 싫어하는 청년으로 자라났다고 고백한다. "외국에서 일장기를 보면 혐오감이" 일었고, "애니메이션 일에 종사해도 외국을 무대로 하는 작품을 좋아했다." 그런데 우연히 쥔 이 신서 한 권이 그의 눈을 "아득히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일본이 자랑하는 자동차나 가전제품이 결코 주지 못했던 '자신감'을 회복시켜주었다는 것이다.

"국가의 틀도, 민족의 벽도, 역사의 답답함도 발끝 아래로 멀어져서 조엽수림의 생명의 입김이 떡이나 낫토의 끈적끈적함을 좋아하는 내게 흘러들어온다.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던 메이지 신궁의 숲과, 조몬 중기 때 신슈(信州)에는 농경이 있었다는 가설을 제창하던 후지모리 에이이치를 향한 존경과, 말하는 소질이 있던 모친이 반복해 들려주던 야마나시 산촌의 일상들이 모두 하나로 엮여 내가 무엇의 후예인지를 알려주었다." (232쪽)

즉 그는 일본인이면서도 발붙일 곳을 찾기 어려웠던 민족 정체성을 조엽수림 문화권역으로서의 조몬 시대 일본에서 발견한 셈이다. 그는 일본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이 가장 온화하게 살았던 때가 조몬 시대였을 거라고 말한다. "정부도 없고 국가도 없이, 그 정도로 풍부한 석기 중에 무기 등이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전쟁도 없"이, 또 "두려운 주술 같은 종교도" 없이 평화롭고 행복했을 거라고 말이다. 무기 마니아이자 반전주의자라는 그의 모순의 한 축인 '반전주의'가 아나키즘에 가깝다는 여러 해석과 결부된다.

조엽수림 문화론의 핵심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이상향 속에서 숲과 나무가 신적인 존재로 인간 세계를 변화시켜왔다고 보는' 것으로, 미야자키의 눈에는 늘 무사, 영주, 농민만 등장하는 보통의 일본사에 비해 훨씬 더 웅장하고 풍요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는 '일본인'의 아득한 과거에서 '일본사'의 긍정할 구석을 찾은 것일까, 아니면 스스로의 표현처럼 "국가로서의 일본과 풍토로서의 일본을 나눠 생각하"게 된 것일까? '일본의 숲' 하면 금방 떠오르는 것은 <이웃의 토토로>와 <모노노케 히메>이지만, 그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마저 나카오 사스케의 사상이 원천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작품 속 어떤 것이 '일본적'이고 어떤 것이 '일본적이지 않다'라는 평가에는 무대가 된 장소 외에도 추가적인 것을 고려한 논증이 필요할 듯하다.

홋타 요시에, 시바 료타로와의 3인 좌담집 <시대의 풍음>

▲ <시대의 풍음>(홋타 요시에, 시바 료타로,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아사히신문출판). ⓒ아사히신문출판
"서양 중심과는 다른, 국제적인 시야를 가진 문학가"로 평가받는 홋타 요시에(1918~1998)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본의 국사'로 불리는 시바 료타로(1923~1996)는 <출발점>·<반환점>에서 자주 거론되기로 손꼽힌다. 미야자키는 이들 저작의 팬이었으며, 두 사람의 말년에 해당하는 1990년대에 깊게 교류하여 1992년 3인 좌담집인 <시대의 풍음>을 간행하기도 했다. 20세기는 어떤 시대였는지와 '지구인'으로서 21세기를 살아가는 방법, 역사의 흐름 속에서의 국가나 종교에 관해 논한 책이다.

<시대의 풍음>(다른 말로 두 노인과의 교류 경험)은 여러 가지 면에서 1997년작 <모노노케 히메>에 영향을 끼쳤다. 먼저 이 영화의 중요한 소재인 '다다라 제철'은 명백히 시바의 관심을 이어받은 것이다. 시바 료타로는 수많은 저작을 통해 철과 문명이라는 테마에 천착해 왔고 <시대의 풍음> 한 장(章)을 통해서도 열띠게 이야기했다. 그는 철이 인간의 욕망은 물론 일본의 역사까지 바꾸어놓았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에보시 고젠과 그 휘하의 활력 넘치는 노동인 다다라 제철은 지금까지 다른 영화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기에 특히 더 눈에 띄는 '소재'이기도 하지만, '숲의 나무를 대량으로 베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숙명을 안고 있기에 영화의 핵심주제 그 자체이기도 하다. 즉 미야자키 하야오가 사랑하는 숲과 대결을 펼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영위'를 함축하는 것이 제철이다.

그런데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종의 생태주의적 텍스트로 읽힐 우려가 있는 이 영화를, 결코 자연의 승리와 인간의 깨달음이라는 선악 구도로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모노노케 히메>의 자연은 아름답지만 너무나 흉폭하며 인간은 '살기 위해' 거기에 맞서 싸울 운명에 처해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뛰어난 시각적 표현으로도 드문 성취를 이루었지만, 무엇보다 "모순을 모순인 채로 해결하지 않은 채 내던져 버린" 일종의 비타협성이 그의 필모그래피 내에서도 분기점을 만들어 냈다고 평가 받는다.

미야자키의 비유를 가져오자면, 숲은 울창하고 물은 맑았으며 일본의 인구는 겨우 500만 명이던 가마쿠라 시대에도 인간은 불행했고 그 속에서 열심히 살아 나갔다. 그래서 미래에 세계 인구가 폭발해 100억이 되고 자연은 고갈되어 온갖 문제가 발생한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살아갈 것이다." '살아라(生きろ)'라는 이 영화의 메인 카피와 주인공들의 대사("아시타카는 좋아해. 하지만 인간을 용서할 순 없어" "그래도 좋아. 나와 함께 살아줘")는 그렇게 탄생했다. '자연을 지키자'가 아니라, 불행한 시대의 도래는 필연적이지만 어떻게든 살아가 달라는 당부였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시대를 바라봄에 있어 시바 료타로, 홋타 요시에에게서 배운 자세를 '투명한 니힐리즘'이라고 표현한다. "자리의 중앙이 아니라 끄트머리 구석 쪽에 앉아, 화장실 냄새를 맡으며 "그래도 통풍이 좋다"고 말하는" 그런 자세다. 그가 두 노인과의 대화 중에 가장 잊기 어려웠다던 장면은 "인간은 구제할 길이 없다."라는 시바 료타로의 말에 홋타 요시에가 자리를 고쳐 앉으며 "그래요. 인간은 구제할 길이 없죠."라 답했다는 대목이다. 거기서 '인간은 어쩔 도리가 없다'던 어머니의 말버릇과 전시 군수산업에 가담하면서도 태평했던 아버지의 니힐리즘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 일화들 속에는 시대를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실감에 대한 존중, 선악 판단에 한 발 물러 선 듯한 태도가 들어 있다.

그 전까지, 세계의 이념 대결이 격했던 시기에 미야자키 하야오는 뜨거운 청년이었다. 다카하타 이사오와 함께 노동조합 활동에 청춘을 불태우고 베트남전의 영향을 받아 <태양의 왕자 홀스의 대모험>(1968)을 만든 일화는 차치하고서라도, 그는 <시대의 풍음> 후기에서 이야기하듯 "심정적 좌익"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1992년 이 시점 "경제 번영과 사회주의국의 몰락에 자동으로 전향"했다며 두 어른에게 길을 묻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이 말엔 어디로 전향했는지가 빠져 있다. 다만 그것은 한 사회주의자가 자유주의의 승리를 역사의 준엄한 판결로 받아들이고 투표 정당과 생활양식을 바꾸는, 말하자면 전향자의 대열에 사회학적 샘플로 참여하는 그런 종류는 아닐 것이다. 그는 이미 오래 전 장편용으로 개봉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의 원작인 동명의 만화를 1994년까지 12년에 걸쳐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이야기로 완성했는데, 이 작품을 그리며 겪었다는 입장 변화가 힌트를 준다.

"세상엔 올바른지 올바르지 않은지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냐 좋은 사람이 아니냐, 친구가 되고 싶은지 되고 싶지 않은지, 그런 인간밖에 없다. 이제 계급적으로 뭔가를 보는 건 그만두자. 노동자라서 올바르다는 건 거짓말이다 …"

80년대 말~90년대 초는 천안문 사태, 동유럽 유혈혁명, 베를린 장벽과 소련 해체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였다. 냉전이라는 국제 질서가 작동을 멈춤에 따라 그에 종속되어 있던 평화, 민주주의, 고도성장으로 형용되는 일본의 '전후 번영'도 작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버블이 마지막 관성으로 출렁이고 있을 때 마치 예언처럼 쇼와 천황이 사망하면서 일본인들은 다른 역사 감각으로 진입하였다.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1991년 <붉은 돼지>의 제작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때 "지금까지는 계속 그 시대를 붙들고 이해를 하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제일 몰랐다"는 말로 변화 속에 있던 불투명한 실감을 풀어낸 바 있다. "지금 시대는 전환점에 와 있다"면서도 그 변화가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영화가 '모라토리엄의 작품'이 될 거라고 말했다. <시대의 풍음>은 그 불확실한 시점,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찾아온 새로운 좌표였던 듯하다.

<책으로 가는 문>과 3.11

▲ <책으로 가는 문>(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현암사 펴냄). ⓒ현암사
마지막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가장 잘 알려진 모습, '이야기 할아버지'로서의 면모를 충실히 반영하는 <책으로 가는 문>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은 정보량은 적을 수 있지만 <출발점><반환점>에 비하면 실시간으로 번역되었고 편집된 수준이 높으며 소장하고 싶도록 예쁘게 만들어졌다는 장점이 있다.

제1부 '이와나미 소년문고 50권'에서 그는 <일본영이기> 같은 일본의 옛날이야기부터 <하이디>처럼 본인이 널리 알린 서양 동화, <어스시의 마법사> 등 고전 판타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친절히 소개하고 있다. 그냥 책 추천 목록으로만 봐서도 훌륭하고, 미야자키의 작품 세계와 연관 지어 볼 수도 있으며, 패전 직후 '일본의 재건'이 이루어지던 시기 어린이 교양을 위해 주로 어떤 작품들이 출판되었나를 보는 재미도 있다. 전후 진보 지식계를 상징하는 이와나미 아닌가.

2부 '소중한 책 한 권만 있으면 된다'는 '(1)나만의 책을 만나다-소년문고를 말하다'와 '(2)3월 11일 후에-아이들 옆에서'로 이루어져 있다. (1)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린 시절 독서에 얽힌 추억, 전후 일본의 '교양 형성'에 관한 구술, 1부에서 고른 책이나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코멘트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

미야자키의 세대에게 책이란 무엇이었을까? 앞서 신서와 관련한 이야기를 했지만, 책 품귀 현상이 일반적이었던 패전 직후~점령기부터 그가 대학에 다닌 60년대 초반까지는 교양에 대한 강박이 엄청났던 시기다. "우리 시대에는, 교양으로서 이 정도 책은 읽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다소 남아 있었습니다. "너, 그런 것도 안 읽었어?" 하는 말을 들었거든요." (<책으로 가는 문> 81쪽) 더구나 그가 속한 학교·학과는 가쿠슈인대학 정치경제학부였다. <자본>은 물론이고 칸트나 헤겔은 '기본'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역시 그답다. "제 머리로는 힘들었습니다."

그는 이 <책으로 가는 문>을 위한 억지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어린이문학 쪽이 훨씬 더 기질에 맞았던" 듯하다. 왜냐하면 어린이문학은 세상은 끔찍하지만 그래도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즉 "다시 해볼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가 되지 못하고 "유행과는 관계없는 구석진 곳에 있"다는 특질 또한 그의 마음을 끌었다.

그는 이 책에서 내세우는 얼굴처럼, 자신의 청자로서 주인공으로서 동반자로서 늘 어린이를 강조해 왔다. "내 영화는 어린이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고집했으며, 그걸 보고 뭔가를 학습하기보다 "조금은 안심하기를", '일단 3일 정도는' 기운 내주기를 바랐다.

어린이에 대한 환상 혹은 기만 아니냐고 몰아붙인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아이들'을 어린 시절이라는 시간의 차원에서 접근한 대목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미래는 유감스럽게도 시시한 어른"이라는 것, 그래서 아이들에겐 그 순간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그렇게 자라날 거라면 약간의 시간 정도는 순진하게 행복해도 괜찮지 않을까?

본인이 연출하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에 있어서는 '어린이를 위해 만든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던 그가 <붉은 돼지>에 이어 두 번째로 원칙을 깼다. <바람이 분다>의 원안이 된 동명의 연재물(2009~2010년 <모델 그래픽스>에 연재)을 새로운 장편용 소재로 하자는 스즈키 도시오(지브리의 프로듀서)의 제안에, 그는 처음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결국 스즈키의 구구절절한 설득으로 영화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그게 아니었더라도 미야자키는 호리코시 지로라는 인물에 닿았을 것이다. 비행기의 야누스적 매력, 아버지가 낭만으로 생각했던 시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예술가-장인' 등 하야오에게 있어 호리코시는 로망의 모든 단면에 조응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적어도 겉으로는 누군가 부추겨서 이끌린 듯 <바람이 분다>에 착수했던 그였지만, 이 책 <책으로 가는 문>에 사족처럼 붙은 '3월 11일 후에'에서 '당분간 아이들이 즐겁게 보는, 그런 행복한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의 들머리에서는, 행복한 애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해도 어쩐지 거짓말 같은 냄새가 나니까요. 정말 21세기의 막이 올랐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고작입니다." (151쪽)

그러나 정말로 '거기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려고 애썼는지'는 갸웃한 구석이 있다. 살아가는 데 높은 각오를 요구하는 '바람이 불기 시작한 시대'에 하필이면 전전(戰前) 일본이란 구체적 시대, 장소로 돌아간 것은 일견 각오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시대를 있는 힘껏 살아가는" 인간형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쟁 때문에 개인의 선택지가 별로 없었다'고 설정해 놓은 그 시대는 등장인물에게는 퇴로가 막혀 있을지 모르겠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관객의 비판적 접근을 봉쇄하며 감독은 '함부로' 혹은 '거만하게'라는 부사로 시대를 판단할 수 있느냐고 되물을 권리를 갖게 된다. 이 전략 자체는 만든 사람에겐 완전히 자유롭고 안전한 퇴로가 아닐까.

논란이 많았던 이번 작품을 끝으로 그는 은퇴를 발표했다. 지금까지 번복해 온 전적과 팬들의 간절한 바람은 이번 발표 역시 '절반의 진실'로 받아들여지게 하고 있다. 나도 물론, 돌아왔으면 하는 쪽이다. <시대의 풍음> 같은 책들도 번역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덧붙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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