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연구들: 비행기에서 우는 아이 연구 / 털의 사회학 by sovidence; 켄지 요시노의 '커버링'이 떠오른다; 한국에서 2011년에 진보교육감이 두발규제를 폐지한건 한국의 근대화가 비로소 2011년에 시작되었다는 뜻; 자유민주주의 얘기들 많이 하는데, '자유'는 신체의 자유가 출발점이다. 내 몸의 소유주는 나 자신이라는게 자유의 시작점, 근대의 출발이다

독특한 연구일세. 

 

Small & Harris (2014) Annals of Tourism Research

 

이런 것도 연구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찾아보니 역시나 논문이 있다. Annals of Tourism Research는 주변에서 아무도 안읽고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 저널이다. 그런데 가끔 사회학 저널 랭킹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있어서 의아했는데, 처음으로 이 저널의 논문을 살펴보게 되었다.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에서도 비행기에서 우는 아이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고, 좀 더 포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좀 더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다. 논문은 discourse를 분석한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이 번에 난리를 친 40대 남성처럼,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가 아니라 부모에 대해서 불만을 가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뭔가 특권을 가진 것처럼 행동한다고 느낀다고. 

 

Sydney Morning Herald에 따르면 많은 서베이에서 우는 아이가 비행에서 가장 참기 어려운 불편으로 꼽았다. 실제로 아이의 울음소리는 소음 중에서 가장 참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란다. 사람은 아이울음에 집중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에. 

 

말레이지아 항공은 1등석과 upper deck 이코노미석을 노키즈 존으로 만들었고. 호주의 한 서베이에 따르면 54%의 응답자가 아이가 있는 가족 여행객은 비행기에서 별도의 섹션에 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응답. 

 

비행에서 이륙과 착륙 때 아이가 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 귀에 압력을 느끼고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아이들은 우는 것 뿐이다. 

 

남성의 행동은 절대 용납할 수 없지만, 이런 일이 한국 특정 그룹의 특성이라고 비약하는 것도 그다지. 

 

 

Ps. 비행기 안에서의 행동에 대한 가장 유명한 논문은 아마도 1등석이 있어서 불평등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비행기에서 기내소란이나 난동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요 연구가 아닐지. 몇 년 전에 꽤 화제가 되었던 논문. 

출처: https://sovidence.tistory.com/1207 [SOVIDENCE:티스토리]

 

 

 

제가 지어낸 말 아니고 실제 사회학 학술 논문에 쓰인 용어. 1987년 BJS에 실린 학술 논문의 제목이 "Shame and Glory: A Sociology of Hair"다. 

 

안산 선수의 숏컷들 두고 성차별주의자들이 황당한 공격을 자행했는데, 이 기회에 털의 사회학을 간단히 소개하는 것도 좋을 듯.

 

영어로 hair가 머리카락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털을 의미. 머리카락은 그냥 hair, 수염과 온갖 얼굴에 난 털은 facial hair, 몸에 난 털은 body hair.  

 

털의 사회학은 저같이 노동시장 불평등 문제 연구하는 사람이 하는게 아니고 권력의 상징 문제, 몸의 지배 문제 같은걸 연구하는 분들이 주로 하는 분야다. 사회학보다는 인류학자들이 더 많이 알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털과 관련된 규범과 권력은 주로 여성의 문제였다. 헤밍웨이는 "그녀의 머리카락 없이 소녀는 더 이상 소녀가 아니다"라고도 하였다. 그런데 아시아계 미국인 남성에 대해서 연구하다 보면 아주 가끔 털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소체, 소추 문제 뿐만 아니라 소털도 아시아계 남성의 남성성을 낮게 보는 이유 중 하나다. 털은 개인적이며 사회적이며, 털의 형태는 또한 권력적이다. 

 

BJS 논문을 쓴 Anthony Synnott는 털의 사회학을 3가지 차원의 대비로 분석했다. 특이하게 털은 장단이 항상 대비를 이룬다. 

 

(1) 남성 vs 여성: 여성의 털이 긴 곳은 남성은 짧고 (머리털), 여성의 털이 짧은 곳은 남성이 길다 (가슴털, 다리털). 

(2) 머리 vs 다른 몸: 남성과 여성의 대비에서 설명했듯, 머리가 길면 몸의 털은 짧고, 머리가 짧으면 몸의 털은 길다.

(3) 주류 vs 비주류: 주류의 털이 길면 비주류는 짧고, 비주류의 털이 길면 주류는 짧다. 남성이라도 헤비 메탈은 머리가 길고, 스킨헤드족은 극단적으로 머리가 짧다. 깔끔하게 머리 단정하게 깎은 히피가 있던가. 적당한 털길이에서 벗어나면 비주류나 이단이 된다. 

 

주류 백인 남성은, 길지 않은 머리, 말끔하게 면도한 얼굴, 길고 덟수룩한 가슴털이 norm이다. 요즘은 분야에 따라 면도한 얼굴이 아니라 멋있는 수염이 남성성의 상징이다. 아시아계 남성은 머리털은 따라할 수 있지만, 수염과 가슴털이 없어서 주류 남성성이 아니라 여성성에 가깝게 분류된다. 

 

그렇다고 가슴털이 항상 남성성의 상징인 것도 아니다. 보디빌딩, 휘트니스 같은 분야에서는 남성도 털 하나 없이 매끈한 몸을 가져야 한다. 근육 덩어리 자체를 드러낼 때는 털은 없어야 한다. 가장 남성성을 드러내는 대회에서, 남성도 왁싱을 한다. 

 

역사적으로 털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는 항상 그 사회 주류의 norm이 있었다. 한국사회 개화의 상징 중 하나가 단발령이 아니던가. 남성의 긴머리가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손으로 효지시야였던 시대가 가고, 사회 비주류의 상징이 되었다. 긴 털이 규범일 때는 짧은 털로 저항하고, 짧은 털이 규범일 때는 긴 털로 저항하는 형태가 역사적으로 여러 사회에 걸쳐서 발견된다. 

 

비주류의 털은 사회적으로 통제의 대상이 된다. 흑인 여성들이 자연스러운 머리가 아니라 백인처럼 곧게 핀 머리카락을 인위적으로 가지는게 요즘 가장 대표적으로 얘기되는 문화 권력에 의한 털의 지배다. 여성이 어떤 머리카락을 가져야 하는지는 항상 사회적 통제의 대상이었다. 

 

이 번 사태 역시 반사회적 성차별주의적 남성들이 자신의 이념대로 사회적 통제를 하려고 했던 시도 중 하나다. 

 

자유민주주의 얘기들 많이 하는데, "자유"는 신체의 자유가 출발점이다. 내 몸의 소유주는 나 자신이라는게 자유의 시작점, 근대의 출발이다. 

출처: https://sovidence.tistory.com/1163 [SOVIDENCE: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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