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해석조차 객관적 진리가 아닌 진리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다고 역설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과 파울 파이어아벤트 (feat. 오스트리아 학파)


예술에 대한 접근도 그렇고 (오스트리아 빈 학파 왈, "각각의 시대는 그에 맞는 예술을, 예술은 그에 맞는 자유를"),

경제에 대한 접근도 그렇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처럼,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를 거의 극단적인 시장방임주의의 형태로 끌어올린 것이 오스트리아 학파였다),

또 수학과 과학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적 접근도 그렇고 (과학이나 해석은 객관적 진리가 아닌, 하나의 접근 방식에 불과),

표현의 자유, 시장의 자유, 해석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사랑하는 오스트리아 학파의 본고장 오스트리아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가?

그 자유와 예술의 정신은 오스트리아가 근대 유럽 음악의 본고장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하고 아로는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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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


빈 학파와의 접촉이 계기가 되어 1928년 3월, 직관주의 수학자 브라우어를 만나게 되고, 브라우어는 러셀을 비판하면서 수학이 논리학에 기반을 둘 수 없고, 일관성이 수학에 본질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자가 탐험가가 아니라 발명가라는 것, 사실들의 체계가 아니라 인간 정신이 구현해 낸 것이 수학이라는 것에 동의했고 「논고」 비판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비록 그의 주장에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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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부터 1933년, 순수수학의 지위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돈키호테적 공격이 시작되다. 이 시기 수학자 고드프리 하디가 수학을 일컬어 우리 마음의 창조물이 아니고 우리의 인식과 독립적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격노하면서 "수학자들의 말은 그들이 수학을 할 때 엉뚱한 말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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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2월 11일, 1월에 미국을 방문하기 위해 케임브리지를 떠나야 했던 무어를 대신해 철학 교수로 선출되다. 비트겐슈타인은 강의에서 본격적으로 수학의 순수성을 공격한다.

"수학이기 때문에…… 그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그 때문에 더 매력적이 됩니다. 만일 우리가 그 표현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을 설명한다면, 그것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 방식으로 표현된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잃게 될 것이며 확실히 내게는 매력적이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나는 이 천국[60]으로부터 어느 누구를 몰아내려는 꿈도 꾸지 않겠습니다. ……나는 아주 다른 일을 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천국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 시도하겠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떠날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당신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저 당신 주위를 보라.'" (평전, 598, 599)

비트겐슈타인에게 수학의 순수성이라는 '신화'와 과학의 우상숭배는 우리 문화가 부패했다는 가장 중요한 증상이며, 또한 그 부패 중 가장 유력한 원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던 것이었다. 이때의 강의에 참석한 유명한 인물로는 앨런 튜링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지속적으로 '수학적 발견'이란 말은 온당치 않으며, 수학의 비경험성은 그것의 문법에 있지 확실한 지식에 의거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튜링은 고전적인 견해를 방어했다. 나중에 결정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이 모순율을 공격하기에 이르렀을 때 튜링은 모순이 수학적 체계의 치명적 결함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그들 사이에 공통된 기반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강의에 참석하지 않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튜링의 지식이 아니라 동기를 공격했고, 이는 튜링에게 있어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예시)
백분율은 1가지 수치의 비율 수치를 다른 것과 비교할 대 더 파악하기 힘들다. 2개의 백분율 사이에 존재하는 수치적 차이를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백분율 수치 사이의 차이를 반영하는 새로운 백분율을 만들 수도 있다. 전문 과학자들조차 가끔 퍼센트와 퍼센트 포인트의 차이라는 미묘한 문제를 놓고 혼동을 일으킨다. 이 둘의 차이를 설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다. 1월 1일에 판매세가 구매 가격의 4퍼센트에서 6퍼센트로 인상된다고 가정해 보자. 6퍼센트-4퍼센트=2퍼센트니까 이는 2퍼센트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하지만 50퍼센트 증가한 것도 맞다. 내가 지금 달러로 지불하는 6센트는 이전에 지불했던 4센트보다 50퍼센트 더 많은 액수다.
따라서 동일한 변화를 매우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실질적으로 다른 인상을 줄 수 있다.
-칼 벅스트롬, 제빈 웨스트, <헛소리 까발리기 CALLING BULLSHIT> 중에서-

 

이경우 여기서 수식은 동일한 수학 이라는 문법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은 같지만, 그러한 수식이 어떠한 맥락속에서 사용되는지를 알아야 혼란을 이해할 수 있다.

 

[59] 재밌는 점은 일본 영화 「박사가 사랑한 수식」(감독 코이즈미 타카시)에서 한 학생이 "수학도 인간이 만든 것 아닌가요?"라고 묻자 작중 화자로 등장하는 선생이 "아닙니다. 수학은 인간이 있기 전부터 있었습니다."라고 하디와 비슷하게 말한다는 점이다.[60] 수학자인 힐베르트가 "아무도 우리를 칸토어가 창조했던 천국으로부터 쫓아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말을 두고 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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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철학에 이르러 비트겐슈타인은 수학이 철학에 기초(토대)를 부여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렸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 어떤 수학적 발견도 철학을 전진시킬 수가 없으며, 모순을 수학적·논리수학적인 발견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철학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이승종. (문학과지성사, 2002) 비트겐슈타인이 살아 있다면 - 논리철학적 탐구, 329.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은 철학이 수학에 근거를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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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 자신이 과학과 친밀한 공학도 출신이고, 게다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상당히 훌륭한 의학 연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진보에 대해 환멸을 느끼고 심지어 역겨워까지 했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그의 비관주의는 너무 신랄해 일면 유머러스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세계가 뉴턴 역학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그 세계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것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이 세계가 실제로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기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논리-철학 논고 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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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 파이어아벤트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과학철학과 방법론에 관련해서, 과학에는 일반적인 방법론이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접근법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파이어아벤트는 자신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주의 사상을 따라가고 있다고 한다. 밀은 특정한 사상만이 진리라는 독단을 배격하고, 회의주의적 인식론에 입각하여 진리는 결코 확언할 수 없으며 강요할 수도 없기 때문에 언론과 사상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파이어아벤트의 과학철학은 이러한 밀의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다.

파이어아벤트에 따르면, 과학사를 통해 보면, 모든 상황에 다 적용되는 구체적인 과학적 방법은 존재하지 않으며, 만일 그런 모든 상황에 다 적용되는 과학적 방법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뭐든 된다(Anything goes). 심지어 파이어아벤트는 "과학은, 신화나 미신, 점성술과 비교해서 결코 우월한 지식일 수 없다"고 까지 주장한다. 과학에도 권위가 있으며 그 권위로 인해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그 과학의 권위를 깨부술 수 있으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것. 따라서 '과학적 방법론'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다.

파이어아벤트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갈릴레오는 기존에 잘 성립된 이론(아리스토텔레스 역학)과도, 관측결과(연주시차가 측정되지 않는 것)와도, 전혀 안 맞는 가설을 제시하였고, 논리 실증주의나 반증주의적인 과학적 방법론적 입장에서 갈릴레오는 "비합리적"이었다. 갈릴레오와 같은, "비합리적"인 학자가 있었기에, 그리고, 이러한 "비합리성"이 이른바 "과학적 합리성"을 누르고 승리하였기 때문에, 근대 과학이 "진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논리 실증주의든, 칼 포퍼식 반증주의든, 특정한 과학적 방법론에서 제기되는 "합리성"이라는 권위에 의지하여, 학자들을 특정한 방법론에 가둬놓는 것은 과학의 "진보"에 해를 끼치게 한다는 것이다. 학문의 자유를 누리게 하는 것이 방법론보다 더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여러면에서 상대주의적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는 자신이 상대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서적들을 살펴보면 일관성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말하지도 않았던 것"을 옹호했다고 스스로 밝혔는데, 그건 단지 비평가들의 말을 반대하기 위해서 옹호한 것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상대주의자라는 비판을 그는 결코 피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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