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레닌의 명과 암
실제 레닌의 경우 중앙아시아 등지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을 폐지했고, 소련은 러시아계만을 위한 국가가 아니라며 러시아어를 법적 공용어로 지정하는 데 반대했다. 그 외에도 실질적 측면에서 인종 차별과 평등 문제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고, 정책적 성과 역시 상당했다. 이는 실제 레닌 집권 시기 소련을 방문했던 미국의 흑인 시인 랭스턴 휴즈가 직접 목격하고, 인증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을 바탕으로 한 여성 해방론을 필두로 성차별 타파와 제도적 성평등에도 관심을 많이 기울였는데, 1919~1921년 편지와 연설문 등지에서 가족, 노동, 정치적 영역에서의 법적 평등권, 가사와 양육의 사회화를 기반으로 한 여성의 노동자화, 그리고 남성의 봉건적 의식 변화와 매춘 폐지 및 매춘부의 노동자화 등을 역설했다. 이에 10월 혁명 이후로는 낙태와 동성애가 비범죄화되었으며 가사노동의 공공화가 추진되었고 사생아에게도 친자와 동일한 권리가 주어졌다. 이러한 성적 자유화에 힘입어 성소수자 인권도 담론화되었는데, 1918년 외무인민위원으로 임명된 게오르기 치체린은 커밍아웃한 게이였으며, 1923년 모스크바 사회보건원 원장인 그리고리 밧키스 박사는 "특정 개인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는 한 성생활 문제에 대해 국가와 사회는 절대 개입하지 않는다. 유럽 국가들의 법은 동성애 등 다양한 성적 만족의 형태들을 공공도덕에 대한 범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소련의 법은 이것들을 소위 자연스러운 성교와 동등하게 취급한다."라고 언급했다. 이러한 다양성에 대한 소련의 사회적 여유는 스탈린 시대에 급격하게 냉각되었고, 그래서 반스탈린, 반러적이면서도 레닌은 괜찮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훗날의 러시아 중심적인 경직되고 폐쇄적인 소련은 전부 스탈린 때문이라고 깐다.[6] 반면 서방 세계에서 레닌은 원조 빨갱이, 빨갱이 교주로 불리며 악명을 떨쳤다. 아무래도 소련의 수립에 가장 커다란 역할을 했던 사람인 만큼 냉전기 프로파간다로 가루가 되게 까이는 사람이다. 그 혁명이라는 것을 이룩하기 위해 니콜라이 2세 황제 일가의 몰살 및 체카의 수립, 반대파 숙청과 숱한 인민재판 등 도덕적인 면에 있어 끔찍한 패악이 벌어지곤 했으나, 공산정권을 수립하고 볼셰비키가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으로 벌인 악행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정권교체 과정에서 이전 왕조가 잔혹하게 근절되는 것은 조선의 왕씨 몰살과 같이 전근대 왕조 교체에서는 자주 나타났던 현상으로, 이전 세력의 구성원은 항상 새로운 집권에 반대하는 세력의 구심점 및 명분으로써 작용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러시아는 제정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유구한 체카 오흐라나의 전통이 있었으며, 레닌은 내전기 및 그 이후 시기에 벌어진 수많은 반혁명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러한 정보전 및 비밀경찰을 제대로 활용했다. 도덕적인 관점에서는 용서할 수는 없는 행위이나, 적어도 혁명의 수립 및 그 수호를 목적으로 움직이는 혁명가로서 황족의 영향력을 근절시키거나 비밀경찰을 활용하는 등의 행위는 현실과의 타협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는 것. 한편 레닌은 이러한 억압 도구를 새롭게 수립된 노동자 권력을 안정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한시적 필요에 의한 조치로 생각했고 권위주의적 통치기구의 활용 역시 극도로 유의하여 활용해야 한다고 여긴 반면, 스탈린의 경우는 그러한 통치기구를 오남용하여 통제와 폭력 자체가 일상화되고, 평범한 노동인민들까지도 감시하고 통제하는 체제로 만들어 버린 것이 주요한 차이점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레닌의 언행이나 정책의 측면에서, 자신에 내세웠던 사회주의적,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의 이상을 공공연히 배신한 혐의는 보이지 않는다.[7] 내전이 발생하기 전까지 볼셰비키의 사회정책은 노동자-농민의 권익의 향상 및 일반적인 복지, 여성의 권리보장, 사회의 신분적, 계급적 관계의 철폐 등등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한 것들이 많이 있다. 어디까지나 20세기 초의 열악한 세계환경 기준이지만. 예컨대 선거권이라든가. 문제는 1918년 내전과 함께 전시공산주의라는 비상상황이 벌어지면서 그 모든 것이 틀어져버린 것. 이를 계기로 정부와 농민의 관계는 극한으로 꼬이기 시작했으며, 입안된 수많은 정책들은 비상사태의 선포와 함께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내전이 종식된 상황에서 혁명은 고립되어 레닌이 죽고 트로츠키는 쫓겨나는 상황에서 권위주의적 통치기구가 스탈린 관료집단의 수중에 넘어간 결과 스탈린주의가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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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레닌, 당의 사유화
트로츠키, 레닌에 충성하는 노동자 군대
레닌,노동자 의회 등 노동자 기관 해체
전체주의 우익 파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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