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니엘과는 결이 다른 월세 50-400만엔의 일본 맨션 포레스트게이트 -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고급 맨션으로, 방 하나하나가 대량생산이 아닌 독창적인 테마를 가졌다 - 건축에서의 '편집', '에디톨로지'의 활용례; 400여종의 나무가 심어진 것도 독특한 개성; 왜 한국에는 이런 건축물이 없는가?

 https://blog.naver.com/byminah/223544269394

 

 

개인적인 일로도, 회사 일로도 자주 찾게 되는 다이칸야마. 이렇게 자주 가면 무뎌질 법도 한데 늘 그 기억이 좋게 남는 건, 내가 아니라 장소 덕분인 것 같다. 분명히 같은 장소인데도 찾아갈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니까.

그 다채로움에 이미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밤에 찾아간 다이칸야마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이미 어둑해져버린 밤. 슬금슬금 문을 닫기 시작하는 매장 곁에서 사람들이 아직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거리에 얼마 남지도 않은 사람들이랑 같은 방향으로 걷다보니 나온 건 포레스트게이트(Forestgate). 포레스트게이트는 도큐부동산이 2023년 10월 19일 오픈한 복합 시설로 메인동과 테노하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업시설, 쉐어오피스, 임대주택 기능이 한데 합쳐진 시설.

포레스트게이트

Forestgate

포레스트게이트는 메인동 설계를 구마 겐고가 맡아서 오픈 전부터 화제를 모았는데, 메인동 1-2층에는 상업 시설, 3층은 쉐어오피스, 4-10층은 레지던스가 위치해 있다. 뻥 뚫린 구조라 누구나 오갈 수 있는 1층도 예쁘지만 알면 알수록 레지던스가 참 특이하더라고.

임대료가 월 50만엔부터 400만엔 대까지 다양한 포레스트게이트 레지던스는 그 자체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403호는 구마 겐고가 꾸민 공간으로 특히 침실이 독특하다. 벽과 천장을 전부 천으로 덮어놨는데, '자기 자신의 마음과 마주할 수 있는 궁극의 OFF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409호는 푸드 에세이스트가 '음식'을 테마로 레지던스를 꾸며뒀다. 허브를 기를 수 있는 넓은 발코니, 많은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여유있는 식탁처럼. 이런 공간을 꾸민 데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한몫 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온 가족과 다이칸야마로 이사를 오면서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게 그 후의 인생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그래서 만약 나라면 어떤 집에 살고 싶을까 라고 생각했을 땐, 아주 넓은 베란다에서 다양한 허브류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을 꿈꿨다고 한다.

그밖에도 515호는 포레스트게이트의 조경을 담당한 조경가가 마치 조용한 숲 속에 있는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둔 호실이다. 이제 레지던스는 단순히 공간을 빌려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프로듀싱의 영역으로 역할을 확대시키고 있다.

구마 겐고의 인터뷰에 따르면 포레스트게이트의 건축 컨셉은 '동굴'.

애초에 도요코 선 자체가 동굴 같잖아요.

동굴은 뭔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설렘이 있어요.

결계를 통해서 거리에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구마 겐고

그리고 건물 자체를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보이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수목을 400여 종이나 심어둬서일까, 건축 시 나무 소재를 많이 활용해서일까, 세련됨과 공존하는 묘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이 밤에도 1층 벤치에서 조용 조용히 맥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여자분들이 많더라고. 드라마 로케지로 쓰였던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3층에 있는 쉐어라운지.

그런데 포레스트게이트는 이게 다가 아니다. 메인동 말고도 테노하(TENOHA)동이 하나 더 있어서. 테노하동은 도큐부동산의 장기 비전 슬로건인 'WE ARE GREEN'을 구현해 놓은 공간으로, 순환 경제를 지향한다. 2층짜리 건물은 카페, 꽃집, 편집숍, 이벤트 스페이스 등으로 채워져 있는데 모두 '순환'을 테마로 꾸려진 곳들이다.

이건 올해 2월에 막 벚꽃이 피기 시작하던 계절에 찍었던 사진들. CIRCULAR FLOWER라는 이름의 꽃집에서는 지금까지의 기준대로라면 폐기되었을 로스 생화들을 판매한다. 이날 데이트를 나온 남자분이 엄청 고심하면서 벚꽃을 고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고민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더라고.

벌집 모양인 테노하동 안으로 들어서면 규격 외 야채들로 음식을 만드는 카페와 라이브러리가 있다. 사진첩을 보니까 초겨울엔 초겨울대로, 봄엔 또 봄대로 좋았구나.

또, 메인동과 테노하동 사이에는 과일 등등을 파는 키오스크 매장인 'CIRTY BIOSK by totoya'가 있는데,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운영은 교토의 '토토야'가 맡고 있다. 토토야 매장은 지금 회사에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직접 기사를 썼던 곳이라 애착이 있는데, 1년 사이에 본업을 베이스로 도쿄까지 진출했다니. 이 일을 하면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진짜 힘숨찐(!)들은 어디선가 서로 만나게 되어있다. 서로가 서로의 실력을 알아보기 때문이겠지.

https://cityhoppers.co/content/story/totoya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까, 새삼 내가 한 장소의 사계절을 다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도 사계절은 지켜봐야 한다던데- 공간의 사계절을 지켜보는 것도 참 기분 좋은 일이야.

다음 계절을 또 기대하게 됐다.

포레스트게이트 공식 홈페이지 | https://forestgate-daikanyama.jp/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