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에 그 뿌리를 둔 메이지 시대의 지사문화 (feat. 홍사익, 지청천, 이응준, 김석원, 아베 신조 암살)

 

3.1 운동으로 일본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동포들의 움직임을 보고, 아직 일본군에 남아 있던 김광서(1년 선배), 지청천(동기), 이종혁(1년 후배) 등이 잇달아 탈영하여 독립군에 합류한다. 하지만 홍사익은 여전히 일본군에 남아 있었는데, 훗날 홍사익 본인이 육사 후배인 이형석[22]에게 한 말에 따르면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것이 걸려서 군인을 그만두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다. 동료들과 함께 하지 못한 것이 걸렸는지, 대신 조선인 출신 장교들의 친목모임을 통해 일본군을 탈영한 동료 조선인 장교들이 두고 간 가족들의 생활을 돌보아 주었다는 이야기는 있다. 홍사익은 수 년간 이 모임에서 간사(총무)를 맡았다.

일본군 내 조선인의 입지가 약화된다고 해서 탈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있는 모양인데, 이는 후술할 태평양전쟁 시기에 한 말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1919년경에 일본군에 속한 조선인은 황족인 영친왕 이은을 제외하면 대한제국 말기에 유학한 사관생도 출신 장교 30여 명에 지나지 않아 입지가 약화되고 자시고 할 규모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시기 일본군에서는 조국을 위해 행동하는 조선인 장교들을 일종의 지사로 보는 분위기가 있어서 몇몇 장교들이 탈영했다고 나머지 잔류파인 조선인 장교들을 탄압하지도 않았다. 지청천이 탈영했을 때 동기인 홍사익이나 이응준은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고 1기수 아래 김석원은 예편 후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가 잡혀 형을 살고, 심지어 늑막염으로 산송장이 되어 돌아온 자신의 동기 이종혁을 자주 찾아보고 돈까지 구해주며 적극적으로 건네주기까지 했는데도 연대장이 "그러다 앞길 막힐 수도 있다"고 가볍게 타이르는 게 전부였다. 대한제국군 출신으로 일본군에 편입되었다가 일본군을 그만두고 독립투쟁에 나선 이갑이 아직 일본군에 있던 사위 이응준에게 권총을 구해달라고 연락해 이응준이 자신의 권총을 보내주었다가 들켰는데, 이때는 상부에서 단순 도난으로 무마시켜 주었다. 일본군에서 권총은 군에서 지급하는 게 아니라 필요하면 사비로 사서 쓰는 개인 재산이었기 때문에 들킬 경우 도난으로 무마시키기에 용이했다. 고급 장교들이야 권총 사는 게 큰 무리가 아니었지만 월급이 박봉인 하급 장교들은 권총 값도 부담이라 싼 모델은 결함투성이인 줄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들고 다녀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막 임관한 소위들의 권총을 보면 집안 사정을 대강 알 수 있었다고...

이에 대해 큰 뜻을 품은 지사들을 보면 일단 한 수 접고 존중해 주던 메이지 시대의 풍습이 당시 일본 사회에 아직 뿌리박혀 있었기 때문에 일본인 상급자들이 조선인 장교들의 이런 소소한 군기 문란 행위를 알고도 덮어주지 않았겠냐는 시각도 있다. 메이지 정부의 수립 과정에서 이런저런 사정으로 중앙 정계에 안착하지 못한 유신지사들은[23] 몰락한 구 막부 사족들과 함께 민간으로 파고들어가 좌익과 극우를 막론하고 근대 일본 비주류 정치세력의 시조가 되었는데, 비록 사회주의, 파시즘 같은 근대 사상의 대두와 함께 방향은 갈라졌지만 메이지 시절만 하더라도 극우 사상가가 정치범으로 쫒기는 좌익 운동가의 가족을 돌보아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이념을 초월하는 지사 문화의 영향력이 남아 있었고, 지사 문화라는 것도 근본은 동아시아권 모두가 공유하는 성리학에서 나온 것이다 보니 일본 군인들이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을 보았을 때도 어느 정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여담으로 한국에도 해방 직후 미군정 시기나 제1공화국 시대까지는 이런 분위기가 남아있었다. 우익으로 분류되는 장택상이 좌파정치인 조봉암의 유가족을 돌봐주었던 일처럼 당대 유명인들 사이에는 이념을 넘어서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에 대한 경애심, 존중 같은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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