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설신어에서 말하는 위진남북조시대의 토론 문화/ 유교문화를 거부하고 선악을 쉽게 판단하지 않았던 당대의 지식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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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 2004-12-12의 백업본입니다.)

세설신어 / 유의경 지음 ; 김장환 옮김 ; 살림출판사, 2000년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송宋나라의 유의경(劉義慶:403∼444)이 편집한 후한後漢 말부터 동진東晉까지의 일화집입니다. 처음에는 [수신기]나 [요재지이] 같은 소설집(여기서 소설은 현대의 소설과 달리, 일화집 같은 의미입니다)인 줄 알았습니다만, 흥미로 몇 장 뒤적거려보니 소설은 소설이되 지인志人소설이더군요. 인간이 아는 것들의 일화를 엮은 지괴志怪(괴이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라는 정도입니다)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라는 거지요.

사실 진냥은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해 그다지 흥미가 없었습니다. 우선 위나라.... 고백하자면 저, 나관중의 세뇌에 당해 촉한정통론의 똘마니였다구요?ㅜㅜ 삼국지에서 관공을 제일 좋아하기도 하고 말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위나라는 주적. 그리고 뒤를 이은 진나라 역시 찬탈에 의해 정권을 잡은데다 사마의의 손자가 건국한 것이기 때문에 호감도 낮음. 또한 고등학교 세계사에 있어서 위진남북조 시대란 ① 혼란기 ② 청담사상 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으면 장땡이었지요. 네에, 진냥의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한 지식은 고등학교 레벨에서 성장하지 못했던 겁니다...ㅜㅜ

그런 상태에서 흥미 본위로 읽게 된 [세설신어]였습니다만... 글쎄 이게 의외로 재미있는 겁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지식인들이란 난세에 시달려 무력해진 패거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지독하다), 뭐...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지만, 사람이란 어떤 난리 중에서도 어떻게든 꾸려나가는 법 아니겠습니까. 그 혼란기 청담을 토론하는데 열을 올리고 산 속에 들어가는 것을 무슨 로망처럼 여기며 교묘한 말로 모욕과 칭찬을 주고받는 이야기들. 어떻게 봐도 술꾼에 난봉꾼으로밖에 안 보이는 이들이 존경받는 명사였고, 친애하는 벗의 장례식장에서 나귀 울음소리를 흉내내고, 아내와 거침없는 조롱을 주고받고. 제대로 된 유학자가 보면 기겁을 할 이야기들입니다만, 의외로 싫지 않았어요. 파격이라는 것이 아무런 신념도 생각도 없이 마구잡이로 자행되는 것이라면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되기 십상이겠지만-

언젠가 유홍준 교수가 저희 학교에 와서 특강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주제는 [완당 평전]. 추사 김정희 선생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추사체를 온고지신에 견주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옛 서체에 통달하였기에 추사체 같은 파격적인 기법을 창조해낼 수 있었다고...

또한 인상깊었던 것은 역자의 평이었습니다. '유가사상의 속박을 받던 지식인들이 마음껏 개성을 표출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청담사상은 난세에 대한 도피이고, 지식인들은 무력할 뿐이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참으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아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고 말이지요.

....덕분에 전혀 관심없던 위진남북조 시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관련서적을 뒤지고 있습니다. 이래도 되나.... 논문 주제도 못 정했는데.....

가장 감탄했던 구절입니다.

진의 문왕은 완사종이 지극히 신중하다고 칭찬했다. 매번 그와 더불어 담론할 때마다 그 말은 모두 현묘하고 심원했으며, 한 번도 인물의 선악을 비평한 적이 없었다.

[세설신어] 1편 15조

이 구절을 읽은 순간 저는 감탄했습니다. 우와 대단해! 하고요.

옳고 그름을 말한다는 것- 요즘 세상에서는, 특히 인터넷에서는 범람하고 있는 화제이니까요. 비평이라는 것은 중요한 것이고, 그게 없는 사회란 썩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은 하고 있습니다마는...

그래도 선악이라는 것은 참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니까요.

내일은 이야기가 달라질지 모릅니다. 모레는 그 의미가 어떻게 바뀔지도 모르지요. 또 언젠가, 밝혀지지 않았던 사실이 밝혀지고-

무엇보다도 정의감이라는 것이 어떤 치창거리처럼 되어버린 지금에 견주어 볼 때, 선악을 입에 담지 않고도 자신의 덕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감탄하고 말았어요, 정말로...

[출처] [세설신어]|작성자 진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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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 2004-12-13의 백업본입니다.)

허연이 젊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왕구자와 비교하자, 허연은 크게 불만스러웠다. 그때 여러 명사들과 지법사가 함께 회계의 서사에서 불경을 강론했는데 왕구자도 그곳에 있었다. 허연은 마음 속으로 몹시 분이 나서 곧장 서사로 가서 왕구자와 변론을 벌여 우열을 결정하고자 했다. 격렬하게 서로 논쟁한 끝에 마침내 왕구자가 크게 패했다. 이번에는 반대로 허연이 왕구자의 논리를 사용하고 왕구자가 허연의 논리를 사용하여 다시 서로 변론을 벌였지만 왕구자가 또 패했다. 허연이 지법사에게 말하길 "제자(허연 자신)의 방금 전 의론이 어떠합니까?"라고 하자, 지법사가 조용히 말하길 "그대의 의론은 훌륭하긴 하지만 어찌 그리 심하게 하는가? 이것을 어찌 진리의 중정(中正)함을 구하는 담론이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세설신어] 4편 38조

어제의 포스트에 넣었어야 하지만, 베껴써두기엔 조금 긴 문장이라 도서관에서 타자쳐서 올리는 이야기입니다.

이 에피소드는 위진남북조 시대의 토론 문화에 대해 알게 해주는 내용이지요. 위진남북조 시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노장과 불교의 사상, 교리를 토론하는 것이 성행했습니다. 물론 실생활에 도움 안되고, 귀족들의 지식 유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대단하지 않습니까?^^;

예컨대, 우리나라의 모종의 법률 폐지론자와 찬성론자가 토론할 때, 서로 논리를 바꾸어서 토론하는 모습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웃음)

하긴 현실에 무관한 현학과, 실리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모종의 법안을 견주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습니다만... 여하튼요 태도 문제예요 태도 문제.

더군다나 지도림 법사의 말도 매우 감명깊었습니다. 아무리 올바르고 고매한 주장을 가지고 토론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삿대질하고 고함치면서 하는 것이라면 싸움판의 우격다짐과 크게 다를 것 없겠지요.

또한, 천하에 극악한 범죄자를 지탄하는 올바른 일이라 해도, 마구잡이로 그 가족과 친지까지 싸잡아 끔찍한 일을 당하게 해야 한다고 소리치는 일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가지로 교훈이 많은 책이네요, 세설신어... 재미있는 것도 많지만.

보병교위 자리가 비었는데, (그 곳 관청의)주방에 수백 곡의 술이 저장되어 있자, 완적은 곧바로 보병 교위가 되겠다고 청했다.

[세설신어] 23편 5조

...이 완적이 죽림칠현 중의 한 사람입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도 나오지요. 나아가, 그의 자는 사종.. 즉 완사종... 바로 아래 포스트에서 인용한, 진의 문왕이 칭찬한 인물입니다......(정체가 뭐냐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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