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음모론자 제임스 코벳이 이야기하는 (아론 루소 폭로로 유명해진) 가짜 록펠러 Nicholas Rockefeller의 실체; 흥미로운 것은 록펠러 가문이 그의 행보를 오랫동안 묵인해왔다는 것; 그는 랜드 센터 아시아 태평양 정책 자문 위원, 외교협회(CFR) 회원으로 알려졌으며, 중국에서도 미국 스파이로 활동했을 가능성이 있다; 고려대가 심형래 가짜 학력을, 이화여대가 윤석화 가짜 학력을 묵인해온 것과 비슷하나?
nicholasrockefeller.org
Who Was Nicholas Rockefeller? ANSWERED!!!
이 자료는 40년간 '니콜라스 록펠러'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정교한 사기꾼의 놀라운 실체를 파헤칩니다. 그가 어떻게 엘리트 사회에 침투하고 유명 인사들과 교류하며 거대한 거짓말을 이어갈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추적합니다. 단순한 사기극을 넘어, 이름의 힘과 사회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드는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선사할 것입니다.
40년간 '니콜라스 록펠러'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정교한 사기꾼의 실체가 밝혀지며, 그의 정체와 사기 행각, 그리고 이것이 가진 의미를 탐구한다.
아론 루소의 증언: 다큐멘터리 감독 아론 루소는 2000년경 '니콜라스 록펠러'를 만나 9/11 테러, 아프가니스탄 및 이라크 침공, 마이크로칩을 통한 감시 사회 구축, 페미니즘 운동의 배후 등 충격적인 내용을 전해 들었다. [20]
니콜라스 록펠러의 제안: 그는 루소에게 자신들의 편에 합류하여 기존의 활동을 중단할 것을 제안하며, 합류 시 'KMA(Kiss My Ass)'라고 적힌 칩이 달린 ID 카드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2]
루소의 거절: 루소는 이 제안을 거절했으며, 니콜라스 록펠러는 이에 대해 분노하지 않았다. [8]
록펠러 가문과의 관계: 아론 루소가 인터뷰에서 니콜라스 록펠러를 록펠러 가문의 일원으로 언급했으나, 영상 제작자는 록펠러 가문의 계보를 조사한 결과 그를 찾을 수 없었다. [46]
존 D. 록펠러 가문 계보 및 윌리엄 록펠러 가문 계보 어디에서도 '니콜라스'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없었다. [49]
다른 지파에 속해 있을 가능성도 있으나, 명확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59]
온라인 정보 및 의혹: 니콜라스 록펠러는 웹사이트(nicholasrockefeller.org)를 운영했으며, 변호사이자 랜드 센터 아시아 태평양 정책 자문 위원, 외교협회(CFR) 회원으로 알려졌다. [65]
1999년 뉴욕 타임스 기사에서는 그가 록펠러 가문과 연관되어 있다고 언급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 [71]
그의 사업체인 'Rockvest Development Group'은 록펠러 재단 등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72]
사기꾼일 가능성: 영상 제작자는 니콜라스 록펠러가 록펠러 가문의 극히 일부 지파에 속해 있거나, 혹은 단순히 '록펠러'라는 이름을 이용하는 사기꾼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74]
그에 대한 정보가 매우 적고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사기극의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81]
제이콥 노딩가드의 폭로: 제이콥 노딩가드는 자신의 서브스택 게시물 "니콜라스 록펠러,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기꾼"을 통해 니콜라스 록펠러가 40년간 활동한 정교한 사기꾼이며, 그의 본명은 스피로 파블로비치 3세(Spiro Pavlovich III)라고 밝혔다. [87]
조나단 알터의 기사: 노딩가드는 저널리스트 조나단 알터가 쓴 40년간의 사기극에 대한 기사를 소개했다. [98]
알터는 1976년 하버드 대학 재학 시절, 스피로 파블로비치 3세가 하버드 로스쿨에 두 차례나 허위 서류로 입학하고, 그의 아내 역시 사기 행각에 연루된 사건을 보도한 바 있다. [100]
스피로 파블로비치 3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기 행각을 벌였으며, 아레사 프랭클린을 사칭한 콘서트를 기획하기도 했다. [109]
하버드 로스쿨에서 퇴학당한 후에도 다른 신분으로 다시 입학하는 등 수법이 대담했다. [118]
니콜라스 록펠러로서의 삶: 2024년 10월 31일 사망한 니콜라스 록펠러는 1987년 예일 로스쿨을 졸업하고 9항소법원 재판관의 최우수 서기로 일했으며, 퍼킨스 코이 로펌의 파트너가 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130]
그는 '록펠러 아시아 어드바이저리 그룹', '록페스트 개발', '록펠러 퍼시픽 벤처스' 등 다수의 록펠러 명의 회사를 설립했다. [132]
조지 부시 부부와 교류하고, 존 케리, 게리 하트, 스티브 포브스, 웨슬리 클라크 등 유명 인사들과 행사를 주최했으며, 클라우스 슈바프와 함께 다보스 포럼에 참여하기도 했다. [133]
랜드 연구소 아시아 태평양 정책 자문 위원회, 태평양 국제 정책 위원회, 세계 정책 위원회 등에도 소속되어 있었다. [135]
중국과의 사업을 통해 시진핑 당시 떠오르는 정치인과도 접촉했으며, 우한시의 국제 자문 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136]
정체 발각: 2024년 10월 31일 사망 후, 그의 예일 로스쿨 동창인 헬렌 킴이 장례 절차를 준비하던 중 록펠러 글로벌 패밀리 오피스에 연락했으나, 록펠러 가문 구성원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138]
킴은 그의 사무실을 조사하던 중 위조 신분증, 여권, 출생 증명서 등 충격적인 증거들을 발견했다. [142]
하버드 로스쿨 입학 및 퇴학: 스피로 파블로비치 3세는 1968년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하여 2년 반 동안 성실하게 공부했으나, 여름 인턴십 과정에서 자신이 러시아 차르 니콜라스 3세의 증손자라고 주장하며 거짓말을 했다. [112]
스쿠버 다이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다가 해당 분야 전문가인 로펌 파트너에게 들통났다. [114]
이로 인해 하버드 로스쿨에서 퇴학당했으나, 이후 다른 신분('제이슨 스콧 코드')으로 뉴올리언스 대학교를 거쳐 다시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했다. [119]
두 번째 입학에서도 신분을 위조하여 몇 년간 재학하다가 다시 퇴학당했다. [121]
FBI 조사 및 재판: FBI는 그의 사기 행각에 대해 조사했으며, 재판이 예정되었으나 그는 정신 질환을 이유로 재판을 면했다. [176]
루이지애나에서의 생활: 재판을 면한 후 그는 루이지애나에서 9년간 지내다가 '니콜라스 록펠러'라는 새로운 신분을 만들었다. [181]
사기극의 성공 요인: 니콜라스 록펠러는 40년간 록펠러 가문의 일원으로 행세하며 엘리트 사회에 깊숙이 침투했으나, 그의 사기극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148]
이름의 힘: '록펠러'라는 이름 자체가 가진 권위와 영향력을 이용했다. [188]
과도한 과시 자제: 록펠러 가문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고, 은근히 암시하는 방식으로 신뢰를 얻었다. [244]
외모와 태도: 화려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겉모습으로 사람들을 현혹했다. [245]
주변 사람들의 안일함: 록펠러라는 이름의 힘을 믿고 의심 없이 받아들이거나, 혹은 그와 가까워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 때문에 진실을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 [248]
록펠러 가문의 침묵: 니콜라스 록펠러가 40년간 록펠러 가문의 이름을 도용하고 사업체를 운영했음에도 불구하고, 록펠러 가문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은 점은 의문으로 남는다. [183]
그가 외교협회(CFR) 등 록펠러 가문과 연관된 기관에 소속되어 있었음에도 침묵을 지켰다. [186]
영상 제작자는 록펠러 가문 역시 사기꾼, 거물급 사기꾼이었던 조상 '빌 로큰펠러'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자신들의 과거를 드러내는 것을 꺼릴 수 있다고 추측했다. [191]
아론 루소 인터뷰 정보의 신뢰성: 니콜라스 록펠러가 아론 루소에게 전달한 정보의 진위 여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199]
그의 신분이 사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달한 정보 자체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200]
그가 정보기관에 소속되어 있었거나, 엘리트들과의 교류를 통해 사전에 정보를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201]
하지만 그의 신분이 사기였기 때문에, 그가 전달한 정보가 의도적으로 왜곡되거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4]
정보기관 연루 가능성: 니콜라스 록펠러가 정보기관 요원이었을 가능성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었다. [216]
그의 과거 행적에서 '스파이', '첩보원'과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이야기들이 다수 발견된다. [219]
NATO와의 연관성, 공산주의 러시아에서의 비밀 임무 수행 등은 그의 정보기관 연루설을 뒷받침한다. [225]
그의 중국 고위 관리들과의 광범위한 접촉 역시 정보기관 활동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231]
사기극의 궁극적인 목적: 니콜라스 록펠러의 40년간의 사기극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237]
그는 사망 당시 큰 부자가 아니었으며,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는 등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33]
영상 제작자는 그의 사기극이 단순히 개인적인 이득을 넘어, 특정 목적을 위한 '사이옵(Sci-Op, 심리전 작전)'의 일환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241]
결론: 니콜라스 록펠러는 록펠러 가문의 이름을 이용한 성공적인 사기꾼이었으며, 그의 존재와 행적은 이름의 힘, 사회 시스템의 허점, 그리고 정보의 왜곡 가능성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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