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과거에는 없던 '왕따(이지메)'가 일본, 한국에 각각 80, 90년대 등장했나? 신자유주의에 의한 시스템화?

 https://blog.naver.com/fnnewscom/223720617842

 

 

1. 왜 과거에는 없던 '왕따(이지메)'가 현대의 병폐가 되었나?

선생님 말씀대로 근대 이전 혹은 근대 초기까지만 해도 여러 명이 한 명을 공격하는 것은 **'비열한 짓(Cowardice)'**이라는 정서가 강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일본, 1990년대 한국에서 이것이 사회 현상이 된 데에는 **'공동체의 붕괴와 시스템화'**라는 배경이 있습니다.

  • 동질성 압박의 심화: 산업화가 정점에 달하며 학교와 직장은 '균일한 부품'을 찍어내는 공장이 되었습니다. 개성(요동)은 시스템의 효율을 방해하는 '불량'으로 간주되었고, 집단은 생존을 위해 '다른 것'을 배제하는 잔인한 자정 작용을 시작했습니다.

  • 서양의 사례 (Mobbing): 서양에서는 이를 '모빙(Mobbing)' 또는 **'불링(Bullying)'**이라 부릅니다.

    • 사회현상화 시점: 스웨덴의 심리학자 **하인츠 레이만(Heinz Leymann)**이 1980년대 초반, 직장 내 집단 괴롭힘을 연구하며 '모빙'이라는 단어를 학술적으로 정립했습니다.

    • 원인: 서양 역시 60~70년대 개인주의 확산 이후, 역설적으로 기업 권력이 비대해지면서 조직 내 순응을 강요하는 과정에서 이 현상이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그 질문의 핵심은 **'성장의 한계'**와 **'내부로 향한 공격성'**에 있습니다. 1950~70년대에도 시스템화와 기업화는 존재했지만, 그때는 **'팽창하는 우주'**였고 80·90년대는 **'수축하는 우주'**였기 때문입니다.

왜 하필 그때였는지, 세 가지 결정적인 이유를 분석해 드립니다.


1. '파이의 확장'이 멈춘 시점 (제로섬 게임의 시작)

50~70년대는 고도 성장기였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 일자리가 넘쳐났고, 기업은 매년 덩치를 불렸습니다.

  • 과거(팽창기): 옆 동료나 친구가 조금 '달라도' 상관없었습니다. 어차피 다 같이 잘 먹고 잘사는 중이었으니까요. 외부로 향한 에너지(수출, 건설, 성장)가 너무 강해서 내부의 사소한 갈등은 묻혔습니다.

  • 전환기(수축기): * 일본(80년대): 버블 경제가 정점에 달하며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했습니다.

    • 한국(90년대):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며 무한 경쟁 체제가 교실까지 침투했습니다.

  • 결과: 파이가 더 이상 커지지 않자, 사람들은 **'누구를 떨어뜨려야 내가 살아남나'**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동질성'에서 벗어난 개인(요동)은 제거해야 할 경쟁자로 찍혀 '왕따'라는 제물로 바쳐진 것입니다.

2. '가족·지역 공동체'의 완전한 해체와 '익명적 집단'의 탄생

70년대까지만 해도 농경 사회의 '정(情)'이나 대가족 제도의 잔재가 남아 있었습니다. 누군가 괴롭힘을 당하면 동네 어른이나 형제들이 개입할 '도덕적 완충 지대'가 존재했습니다.

  • 단절의 시대: 80·90년대에 이르러 한일 양국은 완벽한 도시형 핵가족 사회가 되었습니다.

  • 감시받지 않는 폭력: 학교와 직장은 거대한 '익명적 수용소'가 되었습니다. 부모나 교사는 성적(시스템의 성과)에만 몰두했고, 아이들은 폐쇄된 교실 안에서 자신들만의 잔인한 권력 서열을 만들었습니다. 김정란 시인이 말한 '王따' 메커니즘, 즉 집단이 한 명을 왕처럼 모시다가(주목하다가) 한순간에 바닥으로 내팽개치는 유희적 폭력이 가능해진 환경입니다.

3. 미디어의 발달과 '관음적 폭력'의 확산

80년대 일본의 **'이지메(苛め)'**라는 단어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90년대 한국에서 **'왕따'**라는 신조어가 유행한 것은 미디어가 이 현상을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고착시켰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닐 포스트먼이 말한 **'죽도록 즐기기'**가 이때 극에 달합니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을 TV 뉴스나 잡지 속의 '자극적인 콘텐츠'로 소비하기 시작했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