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오등작의 Duke=공, Marquess=후, Earl=백, Viscount=자, Baron=남은 1869년 후쿠자와 유키치가 〈영국의사원담〉이라는 글에서 영국의 의회제도를 설명하며 영국 작위를 번역할 때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단 메이지 정부의 공식 입장은 중국의 고전 '예기'에서 착안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귀족들의 이름에 Sir나 Lord를 붙인다든가 하다가 민주주의 시대가 되니까, 오늘날의 영어권 어휘 중 타인에게 격식을 갖추어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 Sir이 되었다; 메이지 초기 일본 정치의 중심은 메이지 유신 공신들이었고,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까지 죽고 나서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하원중심, 2.26사태 이후로는 군인 중심; 그러나 제국대 무시험 입학, 의원자격 자동세습, 일정 금액 이상 경제적 후원 등 화족에게 여러 특혜가 주어진 것은 분명하다; 일본에 있는 금수저 입시제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Duke=공, Marquess=후, Earl=백, Viscount=자, Baron=남은 1869년 후쿠자와 유키치가 〈영국의사원담〉이라는 글에서 영국의 의회제도를 설명하며 영국 작위를 번역할 때 처음으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1884년 화족 제도가 확립되며 공식화되었다. 단, 화족 작위를 영어로 옮길 때는 공작=Prince, 후작=Marquess, 백작=Count, 자작=Viscount, 남작=Baron으로 정했다. 일단 메이지 정부의 공식 입장은 중국의 고전 '예기'에서 착안했다는 것이다.
주나라의 오등작과 마찬가지로 유럽 작위들도 딱딱 처음부터 정해진 서열이 아니라, 800년~1,000년인 2세기 동안 지방 호족들이 자칭하고 난립하던 칭호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서열이 정해진 것이다.
유럽 작위 체계의 핵심은 둑스(DUX, 公.공작)-코메스(COMES, 伯.백작)-바론(BARON, 男.남작)의 3계급 체계다. 자작으로 번역되는 viscount부터가 백작의 보좌 직위이며 후작으로 번역되는 마르크그라프 역시 백작의 파생작위인 변경백이 유래다. 러시아 역시 크냐지(Князь. 公.공작)-그라프(Граф. 伯.백작)-바론(Барон. 男.남작)의 3계급 체계였다.
대부분 그 어원이나 기원은 로마 제국 시대에서 유래된 것으로, 로망스어권 국가들 간 작위 명칭이 흡사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게르만어권 국가들도 이들과 대체로 잘 대응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는 중세 법률 용어로써 유럽 전역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던 라틴어 표기를 보면 더욱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번역 | 설명 | |||||||
dux | duca (두카) | duke (듀크) | duc (뒤크) | herzog (헤르초크)[6] | ||||
princeps | 공동체의 두령[8] | principe (프린치페) | prince (프린스) | prince (프랭스) | fürst (퓌르스트)[9] | Князь (크냐지)[10] | ||
marchio | marchese (마르케세) | marquess (마퀴스)[12] | * marquis (마르키)[13] | |||||
comes | 각종 행정관[16] | conte (콘테) | comte (콩트)[18] | Граф (그라프) | boyar (보야르) | |||
vicecomes | visconte (비스콘테) | viscount (바이카운트)[21] | vicomte (비콩트)[22] | Vicomte (비콩트)[23] | ||||
baro | 상류층에 편입된 지방호족[24] | barone (바로네) | baron (배런)[25] | baron (바롱)[26] | Барон (바론) | |||
* 표시는 불 · 독 · 이탈리아뿐만 아닌 유럽 대륙 전반에 걸쳐 쓰이는 칭호이며, 괄호 안은 현행 외래어 표기법을 따른 표기이다. |
또한 이들보다 위계가 낮은 세습적 지위로는 영국에서는 준남작, 대륙에서는 세습기사(프랑스의 쉬발리에, 독일/오스트리아의의 Ritter), 그리고 세습기사보다 위계가 낮은 기타 칭호(독일/오스트리아의 Edler나 이탈리아의 Nobile 등)가 있으나, 이들 칭호는 고위 관료에 대한 경칭 등으로도 전용되었기에 그 소유자가 귀족이 아닌 경우도 많으며, 특히 영국의 경우 그러하다. 다만, 대륙의 경우 이러한 칭호를 지닌 이들도 귀족이 맞을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대륙 전통에서는 당사자의 작위나 영지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조상 중에 귀족이 있는지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작위 보유 당사자만 귀족으로 간주하는 것은 영국만의 독특한 법률이다.
작위 칭호 외에도 귀족들을 경칭하여 부르는 관습도 고려해야한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귀족들의 이름에 Sir나 Lord를 붙인다든가 하는 것. 여기서 유래된 것이 오늘날의 영어권 어휘 중 타인에게 격식을 갖추어 부를 때 사용하는 Sir이다. 오늘날에도 영국에선 기사 계급의 왕국민은 본명 앞에 Sir을 붙인 것이 법적인 정식 이름이다. 예를 들어 페르마의 대정리를 증명한 앤드루 와일스는 기사 작위를 받아 정식 이름이 앤드루 와일스 경(Sir Andrew John Wiles)이 되었다. Lord 역시 백작 이상의 고위귀족에게 경칭으로서 계속 사용된다.
남성 귀족의 배우자(부인, 夫人)와 정식으로 작위를 하사받은 여성 귀족 중에서도 기혼자인 부인(夫人)은 같은 호칭을 공유하는 성향이 있다.
- 공작 부인 - duchess
- 후작 부인 - marchioness
- 백작 부인 - countess (earl은 여성형이 없는 관계로, 영국에서도 그냥 countess를 쓴다.)
- 자작 부인 - viscountess
- 남작 부인 - baroness
남성 귀족의 배우자 외에 여성이 작위를 가지는 경우, 즉 夫人일 때, 한국에서는 오등작 앞에 '여(女)'를 붙여서 번역 내지는 기술하거나 그대로 ~작 부인(夫人)이라 표기한다. 토스카나의 마틸다처럼 여성 제후들에 관해 언급하는 역사책이나 교양 서적, 서양권의 여귀족들이나 서양권 문화를 바탕으로 한 창작물에서 쓰이는데, 역자가 지식이 부족한 경우 종종 작위보유자인데 "부인"이라고 옮기는 오역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는 사전의 용례로도 올라와 있는 것인데, 대부분의 오늘날의 국가들이 그렇지만 과거의 한국 역시 계급사회 기간 동안 여성이 관직을 가지고 전면에서 활동한 경우가 드물어 귀족 자체가 남성성을 강하게 띠는 계층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왕정의 사무직과 귀족이 동일시되었다.
이것은 서양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위 표에도 나와있는 프랑스의 후작 Marquis의 경우 여후작은 Marquise라 하는데, 이는 본래 남성명사인 Marquis가 먼저 만들어지고 거기에 여성명사형 접미사인 "-e"를 붙여 만들어진 단어이다. 다만, 한국어의 "―부인"과는 달리 여성명사가 무조건 기혼자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어서 여성 당사자가 작위보유자든 배우자든 그냥 동일하게 썼다. 양태는 오히려 "여―" 방식에 더 가까운데, 굳이 배우자임을 강조할 때는 "Consort"(배우자)를 붙였으며 이는 남성 쪽이 배우자라도 마찬가지이다.[30]
매우 드문 경우지만 여성이 작위명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2세의 경우 랭커스터 공작이면서 동시에 에든버러 공작 필립 마운트배튼의 배우자로 에든버러 공작부인이라 부르기 때문에, 작위명으로 Duke of Lancaster와 Duchess of Edinburgh를 같이 갖는다. 이는 작위를 받은 여성이 명백히 해당 가문 혹은 집안의 수장 내지는 대표자이며 동시에 소속된 가문/집안에서 주도적으로 의사표명을 하거나 의사결정권자일 경우에 해당한다.
단, 예시로 들은 엘리자베스 2세의 랭커스터 공작 작위의 경우 랭커스터 공작 가문은 영국 왕실을 상징하는 가문이기에 근현대의 영국왕들은 랭커스터 공작 가문의 일원은 아니지만, 항상 랭커스터 공작이라는 칭호가 따라왔다. 장미전쟁은 튜더 가문이 끝맺어 왕들을 배출해내기 시작했고, 이 튜더 왕조는 랭커스터 가문의 방계였다. 덧붙여 영국왕의 자리는 튜더 왕조로 쭉 이어진 것이 아니라 이후 스튜어트 왕조, 하노버 왕조 등 여러 차례 바뀌었다.
따라서 엘리자베스 2세 같은 영국의 여왕을 duchess of Lancaster라 하지 않는 건 엘리자베스 2세가 랭커스터 공작 가문의 가장 높은 이(사람)이기도 하지만 랭커스터 공작 가문의 夫人으로 오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느 가문의 미망인이 그 가문의 가주이거나 대표자로 활동한다고 해도 여성형 명사로 불리고, 남성형 명사로 부르는 경우는 굉장히 적다. 이 경우 만약 처녀적 가문의 대표자라면 가능하다. 희귀한 경우지만 가문의 멸문 혹은 멸족 후 재건을 하였을 때, 그 주체가 여성이어도 초대 ~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결혼 후 배우자의 가문 소속이 된 이후 법적으로 배우자 가문의 일원이라 하더라도 발언권을 낮게 본다.
귀족원이 딱히 일본정치를 좌지우지 했던건 아니지 않나
메이지
초기 일본 정치의 중심은 메이지 유신 공신들이었고,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까지 죽고 나서는 다이쇼 데모크라시로
하원중심, 2.26사태 이후로는 군인 중심. 귀족원은 말그대로 영국 귀족원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던 걸로 아는데
당시 화족혜택으로 귀족원 의원 되기, 제국대학 결원생기면 무시험 입학, 가쿠슈인, 가범제정 등등 있긴 한데, 그냥 신분으로서의 가치가 있을뿐이지 혜택이 그자체로 매우 좋거나 한 건 아닌듯
일명 일본의 에스컬레이터식 교육
중고일관교 시스템이 있음
뭐냐면 대학 부속의 같은 초, 중, 고를 나오면
대학에 입시를 안보고 입학이 가능함
간단하게 게이오 부속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따로 입시를 안보고
게이오 부속 중학교
게이오 부속 고등학교
게이오대 까지 다이렉트로 진학이 가능함
이런 학생들을 내부생이라고 부름
아베 신조가
세이케이 소학교 - 세이케이 중학교 - 세이케이 고등학교 - 세이케이 대학교
고이즈미 신지로가
칸토가쿠인 소학교 - 칸토가쿠인 중학교 - 칸토가쿠인 고등학교 - 칸토가쿠인 대학교
아소다로가
가쿠슈인 초등학교-가쿠슈인 중학교-가쿠슈인 고등학교-가쿠슈인 대학교
를 나왔음
일본 대부분의 명문 사립은 중고일관교임
물론 당연히 서민은 못들어가지만 간혹 무리해서 들어가는 겅우가 있는데
학비는 어찌저찌 감당 한다고 해도 들어가서 집안 차이 나서 못 따라감
툭하면 애들 미국 어학 연수 나간다고 학비 이상의 돈이 깨지고
방학마다 미국 못 갔다오면 일단 서민으로 분류시켜버리고
내부생이라고 껴주지도 않음
학부모 모임 때 끌고 오는 차, 명품 가방, 사는 집 등등 전부 공개 됨.
외고·국제고·자율고 폐지하며 평등외치는 한국이었으면
전국민 들고 일어나서 난리치고 발광했을 제도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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