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스쿨 사토 에이사쿠의 후계자는 다나카 가쿠에이 / 나카소네 야스히로의 후계자는 자민당 최대 파벌을 이끌게 되는 다케시타파

오랜 기간 집권하였고 더욱이 집권 이래의 목표였던 오키나와 반환 완수라는 업적을 남기고 영광스러운 퇴진을 하였지만 그 이면에는 후계자를 정할 때 상당히 골머리를 앓았는데, 사토는 원래 후계자로 후쿠다 다케오를 점찍어두고 있었다. 그러나 정치 실세로 급성장한 다나카 가쿠에이를 막지 못했고 각복전쟁이 일어나는 걸 무력하게 지켜보았다. 어느새 커버린 계파원 다나카 가쿠에이의 힘을 보고 질려버린 사토는 총리 자리를 내던지듯이 사임하였다.

다만 형인 기시가 대놓고 다나카 혐오를 보인 탓에 겉으로만 다나카를 견제했을 뿐, 뒤로는 다나카를 은근히 지원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실제로 사토는 다나카가 10회 참의원 선거의 패배[21]와 정치자금 문제로 후쿠다 다케오와 미키 다케오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을때 다나카에게 힘을 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자민당 원로회의에서 다나카를 씹어대는 형 기시와 말싸움까지 벌일 정도였다고. 이 무렵 다나카는 사토를 방문한 자리에서 눈물까지 흘렸다고 하며, 사토는 퇴임 후 가진 인터뷰에서 "후쿠다는 형 기시의 직계라고 보는게 정확하고, 나의 직계는 다나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사실 사토가 총리, 총재가 되고 대파벌의 장으로 성공한 데는 다나카 가쿠에이라는 부하의 존재도 컸다. 사토는 다나카를 부려서 당내의 정보를 철저히 긁어모았고, 그것을 토대로 정치활동을 했다. 1950년대에 사토에게 붙은 별명인 "귀 밝은 사토"는 다나카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붙여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사토는 중의원에서 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한 답변 도중에 "다나카는 나의 오른팔"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할 정도였다.[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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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쇼와 62년) 가을에는 나카소네의 후계자의 자리를 아베·다케시타와 싸웠지만, 나카소네의 재정에 의해 다케시타가 총재에 취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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