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路 잠언집 I

 

"이 성도가 내 성도인지 알아보려면

'여기 쓰여진 글들을 빠짐없이 읽어라' 해보고

그대로 하면 내 성도요, 거절하면 똥이다"

- <닥터후(1963)>, <스타트렉(1966)>, <시간을 달리는 소녀(1967)>, <도라에몽(1969)>, <백투더퓨처(1985)>, <기묘한 이야기(1990~)>, <사랑의 블랙홀(1993)>, <열네살(1998)>, <프리퀀시(2000)>, <루트 225(2002)>,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인셉션(2010)>,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2013)> 다중우주 세계의 전강훈 (사탕제일교회 주1목사)

Richard Dadd, Come unto These Yellow Sands, 1842.

"다른 사람들을 미망의 대해를 건너서 진리로 향하게 하고, 야만과 저속함의 새까만 늪에서 광명으로, 교양과 향상을 목표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이상 위대한 인물도 그들 사이에 끼어 살아갈 필요가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그들의 동료가 아니다. 그러니 젊었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현저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있지만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서 이 사실을 점점 더 확실하게 인식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애초부터 조금이라도 일반적인 비속함에서 벗어난 사람이 아니고서는 자기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대책을 강구한다."

"천재적인 인간은 사교적이기 어렵다. 자신의 독백만큼 지적이고 즐거운 대화가 또 어디 있겠는가?"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인문학적 지식이 필요하지만, 철학자가 되려는 사람은 그 지식들의 양쪽 극단까지를 연관시킬 줄 알아야 한다. 일급의 정신은 어떤 분야에만 집중하는 전공학자가 될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인간의 생존 전체를 문제로 삼는다. 그리고 어떤 형식과 방식으로든 인류에게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한다. 사물의 전체와 위대함, 본질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을 자신의 연구 과제로 삼는 사람만이 천재라는 명칭을 얻을 수 있다. 반대로 평생 동안 사물 상호 간의 특수한 관계에만 열중하는 사람은 천재라고 부를 수 없다."

"세상에는 세 부류의 귀족이 있다. 출생과 지위 상의 귀족, 금권 귀족, 그리고 정신 상의 귀족. 이 중 정신 상의 귀족이 가장이 가장 품격 있다.

이 세 종류의 귀족은 모두 그것을 질투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그들은 이 귀족에 속한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은밀한 증오심을 품고 있으며,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상대라고 여겨지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너라고 해서 우리보다 조금도 나을 바 없는 인간이다.'라는 사실을 상대가 깨닫게 하려고 열심히 노력한다.

하지만 이러한 획책은 오히려 그들이 상대의 우월함을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질투 받는 사람이 취해야 할 대책은 이러한 무리들에 속해 있는 인간을 단 한사람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들과의 접촉을 가능한 한 피하여 넓은 고랑으로 그들과의 사이에 간격을 두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그들의 획책에 대해서 극히 평온한 인내를 취해야 한다. 획책하면 할수록 그 원인이 되는 상대의 우월함을 확증하는 결과가 되어 획책이 아무런 효과도 없어져버리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세 종류의 귀족 중 어느 하나에 속한 자는 다른 두 종류의 어딘가에 속해 있는 사람들과도 대체로 서로 질투하는 일 없이 협조하여 잘 지내는 법이다. 그것은 각자가 자신의 우월함을 상대의 우월함에 대항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 그대로의 천성의 등급을 나타내는 표에서 우위에 서게 될수록 그만큼 고독해진다. 그것도 본질적으로 불가피한 고독인 것이다. 그러한 경우 정신의 고독에 따라 신체적으로도 고독하다면(부양할 가족이 없는 경우) 이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상태인 것이다.

사교계에서는 인위적으로 신분과 지위에 차별과 단계를 설정해두어 그것이 자연 그대로의 천성의 등급을 나타내는 표와 완전히 상반되는 경우를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다. 이 배열을 보면 자연 그대로의 천성에서 하위에 놓여 있던 자가 좋은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자연 그대로의 천성에서 높은 위치에 놓여 있던 소수의 사람들이 경시되고 있다.

뛰어난 사람들이 사교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는 원인은, 다른 사람들의 능력이 그들에게 미치지 못하며 그 업적도 그들과 동등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권리의 평등, 즉 요구의 평등이 원칙이 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최고의 지적 능력만이 이러한 강도에 도달하여, 시간과 존재 전체를 주제로 삼고 시나 철학의 관점에서 인생을 관조하며 세상에 대한 고유한 개념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 작품에 몰두하는 것은 그런 사람에게 절실한 필요 사항이다. 고독은 환영받고, 여가는 최고의 선이며, 그 외의 모든 것은 불필요하고 오히려 짐스러울 뿐이다. 이런 유형의 인간만이 무게중심이 온전히 자기 내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왜 이런 사람들(매우 드물지만)이 아무리 성격이 훌륭해도 친구나 가족, 지역 사회에 무제한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는지를 설명해 준다. 그들은 자신만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을 잃어도 위로받지 못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의 성격에 고립성을 부여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결코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강화된다. 그들은 인류 사이를 이방인처럼 움직이는 데 익숙해지며, 인류 일반을 생각할 때 '우리' 대신 '그들'이라고 말한다."

"극히 보기 드문 부류의 인간은 비록 매우 선량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친구, 가족, 사회에 대해서 다른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것과 같은 한없이 절실한 관심은 갖지 않는다. 즉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을 붙들고 있기만 하면 그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남들보다 한층 더 고독한 요소가 잠재되어 있다. 그들은 결국 타인에게서는 결코 완전한 만족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타인을 자신과 완전히 동등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를 보더라도 언제나 자신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있는 곳에 나가서도 자신만은 이질적인 존재로서 행동하며 타인을 머릿속에 떠올릴 때도 일인칭 복수인 '우리'가 아니라 삼인칭 복수인 '그들'로서 머릿속에 떠올리는 습관이 자신도 모르게 배어 있기 때문에 그만큼 고립적인 요소가 강하게 작용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의 사교성은 그 사람의 지성적인 가치에 거의 반비례한다. 따라서 '매우 비교사적이다'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그만큼 '뛰어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는 말이다."

"위대하고 천부적인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은 신경의 활동이 매우 강렬해져 있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이든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하며, 또한 원래 갖추고 있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른 사람과 접하여 얻는 것이 적기 때문에 자신 이외의 인간과는 소원해지게 된다. 세인들이 커다란 만족을 느끼는 수많은 사상도 천박하고 하찮게 여겨진다

정신적으로는 가장 저열한 인간이 결국에는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왔으며 또한 실제로 그렇게 보이기도 한다."

"역작이 고급일수록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소수이기는 하지만 적절한 심판자가 하나둘 나타난다. 적절한 심판자라는 것 자체가 이미 예외에 속할 뿐만 아니라 더욱 예외라고 할 수도 있는 역작을 재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판자들이 차례로 중대한 한 표를 던지며, 이렇게 해서 때로는 몇 세기나 지난 뒤에야 완전히 공정한 판단이 성립된다. 그렇게 되면 이제 그 이후의 시대에서 이 판단이 뒤집어지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제작자 자신이 이 명성을 직접 경험하느냐 못하느냐는 외부의 상황과 우연에 의해 좌우된다.

시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는 자는 오히려 그 시대의 짧은 시간 동안에 관심과 시간의 변덕에 봉사하며, 전적으로 시대에 소속되어 시대와 함께 살아가며, 시대와 함께 죽는 사람이다. 따라서 인간 정신의 최고 수준의 공적은 대부분 냉담하게 받아들여지며 오랜 기간 동안 냉대를 받지만 곧 높은 수준의 정신을 가진 자가 접근하여 이 공적에 공감하고 그 가치를 칭송하게 되면 이렇게 해서 얻은 권위를 바탕으로 그 후에는 예술사, 문학사가 일관되게 가르쳐 이 가치를 기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는가 하면, 근본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자신과 동질적인 사물 이외는 이해하고 평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범한 인간에게는 평범한 것, 저급한 인간에게는 저급한 것, 두뇌가 명민하지 못한 인간에게는 혼란스러운 것, 저능한 자에게는 무의미한 것이 동질적인 것으로, 모두에게 자신의 역작은 자신과 완전히 동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누구나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자신의 역작이다.

아름답고 뛰어난 사상이나 천재의 걸작은 그것을 받아들일 두뇌가 조집하거나, 두부 같거나, 조금 모자란 것들뿐이라면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겸손이란 평범한 능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단순한 '정직'일 뿐이지만, 위대한 재능을 가진 자들에게는 '위선'이다."

"압도적으로 풍부한 정신적 능력을 갖춘 사람은 자기 내부에 이미 최고급 향락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 외부로부터 받는 자극이라고는 대자연의 소산과 인간 세계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 뿐이다. 때로는 모든 시대, 모든 국가를 아울러 특별히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잇던 사람들의 다양한 업적에서 자극을 받기도 한다. 이것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업적은 결국 혼자서 완전히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사람 혼자만을 위해서 이러한 현자나 위인들이 살아있었던 셈이 된다. 결국 그들은 그 한 사람에게만 호소해준 것이다. 그 이외의 사람들은 일부분을 어렴풋이 이해하는 것에 불과한, 지나가는 방관자에 지나지 않는다."

"무척 뛰어나기에 타인들과는 비슷한 곳이 없는 독립적이고 독보적인 개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어서 본질적인 이 고립 때문에 젊었을 때는 압박감을 느꼈지만 나이를 먹게 되면 고립 때문에 몸이 가벼워진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고독한 상황에 있을 때 가련한 인간은 자신의 가련함을 느끼고,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는 자신의 위대함을 느낀다.

요컨대 사람은 자기 본연의 모습을 느끼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자연의 순위에서 상위에 있을수록 고독한 상태에 있다. 게다가 그 것은 본질적이고 불가피한 고독이다. 하지만 신체적인 고독이 정신적인 고독과 일치한다면 그 사람에겐 행운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이질적인 무리가 주위에 잔뜩 모여들어 그에게 방해가 되고, 그의 자아를 앗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Parerga und Paralipomena, 1851)』

"천재적인 인물들은 자신을 불태워 세기(世紀)를 밝히는 유성(流星)이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세인트헬레나의 추억(Mémorial de Sainte-Hélène, 1823 - 사후 출간)』

"인류 역사를 통틀어 거의 모든 인간은, 개인으로서는 그 형성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사회'라는 거대한 무게에 짓눌려 살아왔다. 그들은 아주 좁은 선택의 폭 안에서 자신의 삶을 견뎌내야만 했다. 오직 소수의 재능 있는 자들만이 자신이 속한 시대와 공간의 장벽을 깨부술 기회와 능력을 거머쥘 수 있었다."

- 배링턴 무어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Social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 1966)』

"100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세기난우(世紀難遇)의 기재였다."

- 루젠둥(陸鍵東) 『천인커의 마지막 20년(陳寅恪的最後二十年), 1995』

"젊은이에게 그 어떤 것도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불가능하다는 사실조차 모를 만큼 무모한 열정을 가진 누군가가 나타나 그 일을 해내기를, 신께서는 수세기 동안 기다려 오셨을지도 모릅니다."

- 출처불명의 명언 (보통 역사학자 G. M. Trevelyan이 한말로 인용되나 근거가 약함.)

"한 명의 예술가가 살아가는 수만 시간 중에서도 진정으로 예술적인 시간, 즉 영감에 사로잡힌 시간은 극히 드물다. 이와 마찬가지로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진정으로 역사적인 순간, 즉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은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역사라는 위대한 화가나 시가(詩歌)의 세계에서도 수백만 명의 인간들이 모여 수억 개의 사건을 만들어내지만, 그 대부분은 그저 흘러가 버리는 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씩만 발생하는 이 '별의 순간'(Sternstunde)에는 마치 번개가 치듯 모든 극적인 사건들이 단 하나의 시점, 단 몇 분, 혹은 단 몇 시간 안에 응축된다.

이 찰나의 순간에 내려진 단 한 번의 '예스(Yes)'나 '노(No)',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이루어진 단 한 번의 결정은 수백 세대의 운명을 결정짓고, 개인과 민족, 심지어 전 인류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 우주의 별들이 그러하듯, 이 순간들은 영원히 빛나며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한다."

-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광기와 우연의 역사(원제: Sternstunden der Menschheit, 인류의 별의 순간들, 1927)》

"어떤 사람은 사후에야 태어난다. (Einige werden postum geboren.) ... 나의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사후에야 태어나는 법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Ecce Homo), 1888》, <왜 나는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가> 섹션 1장.

"나의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나의 세기는 오직 20세기 혹은 그 이후에나 올 것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가 인생 유일의 친구였던 프란츠 오버베크(Franz Overbeck)에게 보낸 편지(1888년)

秋風惟苦吟 (추풍유고음)

가을바람에 오직 괴로이 읊조리니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세상길에 나를 알아주는 이 적구나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창밖엔 깊은 밤 비가 내리는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등불 앞의 마음은 만 리 밖(고국)을 떠도네

- 최치원 〈추야우중(秋夜雨中)〉 (880년대 초반 (약 880년~884년 사이))

(* 이 시는 조선 시대 허균이 엮은 비평서 《국조시산(國朝詩刪)》과 《계원필경(桂苑筆耕)》(최치원의 개인 문집)의 부록 등에 수록되어 전해진다.)

"나를 아는 자는 오직 나뿐이요, 나를 알아주는 자는 오직 하늘뿐이다.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知己)가 없으니, 내 어찌 이 고독을 면하겠는가."

- 이진언 《정암집(鼎巖集)》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어찌 네모와 원이 서로 맞물리겠는가, 길이 다른데 누가 어찌 편히 지내겠는가?"

"何方圜之能周兮, 夫孰異道而相安?"

- 굴원 《이소》 (BC 300년~BC 278년경))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중략)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 이상 《날개, 1936》

"나의 이차방정식(二次方程式)은 교묘하게도 허수(虛數)만을 뿌린 채—근(根)을 내리지 못한 채 끝났다.

나는 나의 불행을 수학적으로 정리하려 했으나, 나의 슬픔은 언제나 나머지(剩餘)로 남았다.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언제나 0과 1 사이를 방황하는 소수점 이하의 무한한 반복이다."

- 이상 〈선(線)에 관한 각서(覺書) 1, 1935〉

"인생은 공(空), 파멸(破滅). 재(災)를 권한다. 천재(天才)에게는 존경(尊敬)을, 바보에게는 침(唾液)을."

- 조각가 권진규 유언 (1973년 5월 4일)

(* 1973년 자살 직전 "내 작품을 알아주는 이 없다"며 고려대에 기증했던 작품들이 현재는 한국 조각 사상 최고가 수준으로 거래된다. (예: 2021년 이건희 컬렉션에 그의 핵심 작들이 포함되며 국가적 보물로 공인됨))

"위대한 시인을 갖기 위해선 위대한 수용자(국민)가 있어야 한다."

- 월트 휘트먼 《풀잎(Leaves of Grass)》의 1855년 초판 서문

"철학, 정치, 시, 예술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 모든 인물(천재)은 멜랑콜리(우울질/광기)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 『문제집(Problemata)』 30권 1장, BC 4~3세기경

"지능이 올라가면 행복도는 종종 떨어져요."

"As intelligence goes up, happiness often goes down."

- 《심슨 가족(The Simpsons)》 시즌 12, 에피소드 9인 "HOMR"(2001년 1월 7일 방영)

(* 맥락: 호머 심슨이 뇌에 박혀 있던 크레파스를 제거해 지능 지수(IQ)가 급격히 상승하자, 세상의 모순을 너무 잘 알게 되어 오히려 불행해지는 에피소드

리사 심슨이 똑똑해진 아빠에게 데이터 그래프를 보여주며 건네는 위로 섞인 말.)

"표적을 가진 우리들은, 세상의 눈에는 이상한 사람들, 위험한 광인들로 비칠지도 몰랐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깨어난 사람들, 혹은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노력은 점점 더 완벽한 깨어 있음을 지향했다. 반면 다른 사람들의 노력과 행복 추구는, 그들의 의견, 그들의 이상과 의무들, 그들의 삶과 행복을 점점 더 긴밀하게 패거리에 묶는 것이었다. 그곳에도 노력은 있었다. 그곳에도 힘과 위대함은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 견해로는 우리 표적을 가진 사람들은 새로운 것, 개별화된 것 그리고 미래의 것을 향한 자연의 뜻을 제시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고수의 의지 속에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인류가, 그리고 우리처럼 사랑하는 인류가 무언가 완성된 것, 보존되고 지켜져야만 하는 것이었다. 반면 우리들에게는 인류가 하나의 먼 미래, 우리들 모두가 그것을 향해 가는 도중에 있고, 그 모습은 아무도 모르는, 그 법칙은 그 어디에도 씌어 있지 않은 미래였다."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 헤르만 헤세 『데미안, 1919』

"사실 세상이 옳다면, 다시 말해 카페의 음악이나 대중의 향락이나 값싼 만족 에 길들여진 이런 미국식 인간들이 옳다면, 내가 틀렸고, 내가 미친 것이다. 그 렇다면 나는 정말로 말 그대로 황야의 이리인 것이다. 나야말로 고향도, 공기도, 양식도 찾지 못하는 짐승, 낯설고 알 수 없는 세상에 길을 잘못 들어선 짐승인 것이다."

"세상과 연을 끊어버린 사람들만이 절대의 경지로 나아가고, 놀랍도록 황홀하게 몰락한다. 이들은 비극적인 인물이고 그 수는 얼마되지 않는다. 그러나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 그러니까 시민 사회에 얽매여 있으나 그래도 시민들로부터 재능을 인정받는 사람들에게는 제3의 세계가 열려 있다.

그것은 가상적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세계, 즉 유머의 세계이다. 언제나 지독스레 괴로워하고 평화를 상실한 황야의 이리들은 비극을 감수하고 우주로 뛰어들 힘도 없고, 절대에 대한 소명을 자각하면서도 절대 속에서 살아갈 능력도 없기 때문에, 이때 이들에게 남은 탈출구가 유머이다. 그런데 이 부드러운 탈출은 이들의 정신이 고통 속에서 힘과 탄력을 얻었을 때 가능하다. 유머는 항상 어느 정도는 시민적인 것이다. 물론 진정한 시민은 유머를 이해할 능력이 없지만 말이다.

유머의 가상적인 영토에서 황야의 이리들의 분열되고 뒤틀린 이상이 실현된다. 여기서는 성자와 탕아를 동시에 긍정하고, 이 양극단을 구부려 서로 만나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시민까지도 긍정할 수 있다. 성자에게 있어서는 죄인을 긍정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역으로 죄인이 성자를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지나 성자나 죄인 모두에게 있어서, 그리고 절대적인 것을 추구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시민성이라는 저 미지근한 중용을 긍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위대한 일을 행하라는 소명을 받았으나 이를 저지당한 비극적인 사람들과 뛰어난 재능을 타고났으나 불행한 사람들의 탁월한 발명품인 유머, 오로지 유머만이 이 불가능한 일을 실현할 수 있다.

세상을 부정하면서 세상에 사는 것, 법을 존중하면서도 법을 넘어서는 것, 소유하지 않은 듯이 소유하는 것, 포기하지 않은 듯이 포기하는 것 - 자주 인용되고 즐겨 요구되는 이 모든 고귀한 삶의 지혜들을 실현시켜 주는 건 오직 유머 뿐이다."

"유머만이 최고를 향한 소명에서 좌절된 자들, 비극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고통만큼이나 재능이 풍부한 자들에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며, 인간 존재의 모든 측면을 자신의 프리즘 안으로 끌어들인다."

"이들은 삶을 사랑하긴 하지만 보통 시민들보다는 삶에 덜 집착하는 편이고, 언제나 동화 속 왕자를 만나

그의 성으로 따라 들어갈 용의가 있으면서도 결국에는 힘겹고 슬픈 종말을 늘 예감하고 있었다."

- 헤르만 헤세 『황야의 이리, 1927』

"격언에 가로되, '머슴에겐 영웅이 없다'고 했다. 그 이유는 영웅은 영웅만이 알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머슴도 자기와 동등한 자라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 제2부 '오틸리에의 일기' (1809)

"위대한 사람은 사상을 논하고, 평범한 사람은 사건을 논하며, 속 좁은 사람은 사람에 대해 말한다."

- 엘리너 루스벨트가 했다고 잘못 알려진 명언.

(문구의 원형: "사람은 사상에 대해 말하는 사람, 사건에 대해 말하는 사람, 그리고 사람에 대해 말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 헨리 토마스 버클 『영국 문명사(History of Civilization in England, 1857)』)

"육체노동을 할 만큼 깨어 있는 사람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지적인 작업을 효율적으로 할 만큼 깨어 있는 사람은 백만 명 중 한 명 뿐이고, 시적인 신성한 삶을 살아갈 정도로 깨어 있는 사람은 일억 명 가운데 한 명 밖에 안 된다."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제2장 〈나는 어디서 살았으며,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Where I Lived, and What I Lived For)〉 (1845-1854 집필, 1854 출판)

"나는 너무 깊게, 그러면서도 너무 많이 본다."

- 앙리 바르뷔스 『지옥(L'Enfer, 1908)』

"아웃사이더는 실존주의자고, 실존주의자는 종교적이다."

- 콜린 윌슨 《아웃사이더, 1956》

"저 따지기를 좋아하는 작은 지혜들은 한갖 물건만 볼 뿐 그 이치를 생각 못한다."

- 김굉필 (허균 저 『해동잡록(海東雜錄, 16세기 말-17세기초)』에서 인용)

"가장 큰 사각형은 모서리가 없고,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되며(대기만성), 큰 소리는 들리지 않고, 큰 형상은 형체가 없다. 도는 숨어 있어 이름이 없으나, 오직 도만이 만물을 기르고 완성한다."

- 노자 『도덕경』 41장, BC 6~4세기경

"위에 있는 자는 제례에 쓰는 과실을 담는 그릇 같은 것에는 마음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소소한 일은 그것을 담당하는 소임을 맡은 자가 있다. 별도로 해야 할 큰 일이 있을 것이다."

- 증자(曾子) 『설원(說苑)』 제1권 「군도(君道)」편, BC 5세기(인물) / BC 1세기(편찬)

"장차 큰 것을 다스리려고 하는 사람은 작은 것을 다스리지 않고, 큰 공을 이루려는 사람은 작은 일을 하지 않는다"

- 『열자』 제7편 양주(楊朱)편, BC 4~AD 4세기경

구만 리 상공을 날아 남해로 가는 대붕을 보고, 숲 사이를 겨우 나는 메추라기가 "나는 저기까지만 가도 충분한데 왜 저 고생을 하나?"라며 비웃는다. 이에 장자는 "작은 지혜는 큰 지혜에 미치지 못하고, 짧은 수명은 긴 수명에 미치지 못한다(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고 말한다.

- 《장자(莊子), BC 330~280년 사이》 〈소요유〉

"도랑물은 오래가지만, 큰 바다는 마르지 않는다"

-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14세기경》에 나오는 방통의 대사

(* 이 구절의 배경은 서기 210년경 (방통이 뇌양현령으로 부임한 시기)이다. "도랑물이 오래간다"는 뜻: 도랑물은 졸졸졸 끊임없이 흐르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성실하고 꾸준해 보인다.. 즉, "평범한 관리들이 매일같이 서류를 붙들고 씨름하며 성실한 척하는 모습"을 뜻한다. 하지만 도랑물은 그 양이 적어 조금만 가물어도 바닥을 드러내며, 결코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방통의 의도: "저 평범한 관리들은 매일 도랑물처럼 소소한 일거리를 처리하며 '오래' 일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 같은 큰 바다는 한 번 움직여 천하를 뒤흔드는 큰 일을 해야지, 이런 도랑물 같은 잡무에 에너지를 쏟을 사람이 아니다"라는 강력한 자부심의 표현.)

"주상(유방)께서는 천하를 얻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어찌하여 장사(壯士, 천하를 도울 인재)를 베려 하십니까!"

원문: "上不欲就天下乎? 何爲斬壯士!" (상불욕취천하호? 하위참장사!)

- 사마천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BC 91)

(* BC 206년경, 한신이 항우를 떠나 유방의 진영에 왔을 때, 법을 어겨 동료 13명과 함께 참수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한 말. 앞의 13명이 모두 죽고 자기 차례가 오자, 하늘을 우러러보며 하후영에게 외쳤는데, 이 말을 들은 하후영이 한신의 기개에 놀라 그를 풀어주고 유방에게 추천하게 된다.)

유방: 나는 어느 정도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겠소?

한신: 폐하는 십만 정도입니다

유방: 그대는 어떤가?

한신: 신(臣)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多多益善).

유방: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면서, 어찌하여 나에게 사로잡힌 신세가 되었는가?

한신:

"陛下不能將兵, 而善將將, 此乃信之所以爲陛下禽也."

"폐하께서는 군사를 거느리는 법(將兵)은 잘 모르시나, 장수들을 거느리는 법(將將)에 능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폐하께 사로잡힌 이유입니다."

- 사마천 《사기》 〈회음후열전〉 (BC 91)

예양은 본래 범씨와 중항씨를 섬겼으나 그들은 예양을 평범하게 대접했다. 후에 지백(智伯)을 섬기자 지백은 그를 국사(國士, 나라의 선비)로 대접하며 지극히 아꼈다. 조양자가 지백을 죽이자 예양은 복수를 결심하며 말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고, 여인은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士爲知己者死, 女爲悅己者容)."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이처럼 꾸미고 숯을 삼켜 목소리를 바꾸며 복수를 노렸으나 실패했다. 조양자가 "전에 섬긴 주인들의 복수는 왜 안 했나?" 묻자 예양이 답했다. "그들은 나를 평범한 사람으로 대접했기에 나도 평범하게 갚았으나, 지백은 나를 국사로 대접했기에 나도 국사로서 목숨을 바쳐 갚으려는 것이다."

-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 (BC 91 - 사건 배경은 BC 5세기 전국시대 초)

"너 자신의 내면 이외의 그 어느 곳에도 있지 않을 것이라고 느껴지는 것에만 집착하고, 그리고 초조하게 혹은 참을성을 가지고 너 자신을 존재들 중에서도 결코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 존재로 창조하라."

"남들이 당신만큼 잘 해낼 수 있는 일이라면, 하지 마십시오. 남들이 당신만큼 잘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말하지 마십시오. 남들이 당신만큼 잘 쓸 수 있는 글이라면, 쓰지 마십시오. 오직 당신 안에만 존재하는 것에 충실하십시오. 그리하여 당신을 대체 불가능한 존재로 만드십시오."

-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1897』

"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새로운 무엇, 그 이전에 있은 적이 없던 무엇, 근원적이고 유일무이한 무엇을 의미한다. …(중략)…. 각 사람의 우선적 과제는 자신의 유일무이하고 전례도 없고 반복도 없을 가능성을 실현하는 일이지. 비록 그가 가장 위대한 자였다 하더라도 남이 이미 성취한 것을 되풀이하는 일은 아니다."

- 마르틴 부버 『인간의 길, 1948』

"자기 자신을 고집하라. 결코 모방하지 말라.

자신의 재능은 평생 동안 갈고닦은 힘을 담아 언제든 드러낼 수 있지만,

남의 재능을 빌린 것은 순간적인 반쪽짜리 소유에 불과하다."

- 랄프 왈도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 《Self-Reliance, 1841》

"자기 자신이 되라.

다른 사람을 비열하게 모방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최선의 모습이 되라."

(원문: “Be yourself; no base imitator of another, but your best self.”)

- 랄프 왈도 에머슨 《Address Delivered Before the Senior Class in Divinity College, Cambridge, 1838》

"끊임없이 당신을 다른 무언가로 만들려는 세상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는 것,

그것이 가장 위대한 성취다."

(원문: “To be yourself in a world that is constantly trying to make you something else

is the greatest accomplishment.”)

- 랄프 왈도 에머슨 《Essays: First Series, 1841》

"어떤 ‘것’이 되려 하지 않고 ‘나 자신’이 되기로 하면 삶의 걱정이 크게 줄어든다."

- 코코 샤넬

(* James Beasley Simpson이 1954년 출간한 책에서 샤넬의 말로 인용 됨.)

"If comparable, it is no longer Bugatti."

- 부가티 (BUGATTI)의 홍보 문구

"다른 사람의 업적을 흠모하거나 남의 흉내는 내지 마라. 석가도 공자도, 또 중국 왕조에서 창업을 이룩한 역대 제왕도 모두 선례가 없는 독창적인 길을 걸었다."

"인생이란 50년이 고작이다. 일단 뜻을 품었다면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수단만을 강구하되 허약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세상에 태어난 의미는 큰 일을 하는 데에 있다."

"세계를 죽이고 살리는 것은 자기 자신이라 생각하라."

"녹봉이란 새에게 주는 모이와도 같다. 자연은 사람을 만들었다. 더구나 먹을 것도 만둘어 주었다. 새처럼 새장에 같혀 녹봉이라는 이름의 먹이를 받아먹는 것만이 인간은 아니다. 밥은 어딜 가나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녹봉 따위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낡은 짚신 버리듯이 내던져야 한다."

"대대로 1백석이나 2백석의 후한 녹봉을 받는 자와는 할께 일할 수 없다. 녹봉은 새에게 주는 모이와 같다. 조상 대대로 사육되어 온 새장의 새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사카모토 료마 「누나(오토메)에게 보낸 편지」 및 『가이엔타이(海援隊)』 사칙, 1863~1867년경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노라고, /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노라고."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 로버트 프로스트 《산의 골짜기》(Mountain Interval, 1916)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

"씨올은 스스로 버티는 정신을 품어야 한다. 낮은 것이 아니라 높은 거다. 높은 것도 아니다. 제대로이므로 제자리에 있는 거지. 제자리가 정말 높은 것이다. 소위 높으려 한다는 것은 스스로 이미 높지 못하기 때문에, 자제리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요, 낮은 대로 있는 것은 이미 스스로 높았기에 턱 안심하고 있는 것이다. 비겁하지 않고 높은 데 오를 자도 없고, 도량이 바다 같지 않고 낮은 데 있을 자도 없고, 온전히 어리석어지지 않고 높은지 낮은지를 모를 자도 있지 않다."

- 함석헌 『내 안으로부터의 혁명, 1990』 - 유고집 성격의 선집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서 / 이기고 나가지 않으면 안 돼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더러워진 거리를 비추는 저 달빛이 / 비뚤어진 나의 마음까지 비춰주고 있어

- 오자키 유타카의 노래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서> (僕が僕であるために, 1983)

상황: 리사가 하버드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에 가기 위해 고민하자, 엄마 마지가 위로하며 제안한다.

대사: 마지: "걱정 마라, 얘야. '캐나다의 하버드'인 맥길 대학교에 가면 되잖니."

리사: (냉소적으로) "'어디의 무엇'이라고 불리는 곳은 실제로는 '그 무엇'도 아니에요."

- 《심슨 가족(The Simpsons)》 시즌 22, 에피소드 3 "MoneyBART" (2010년 방영)

친애하는 정복자(Conqueror)에게,

솔직히 말해서, 내가 젊었을 때는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나는 내가 살았던 시대(1960년대)에 온전히 속해 있다는 확고한 소속감을 느꼈거든요. 그래서 아쉽게도 당신과 똑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어떤 기분일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일종의 외계인처럼 바라보고 있군요. 그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다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십시오.

3, 4년 후면 당신은 학교를 졸업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 새로운 인생에 들어설 날을 고대하십시오. 그리고 미래를 위해 스스로를 준비하십시오. 그전까지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이 분명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당신의 결점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미덕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오직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Dear Conqueror,

Honestly, I did not feel that way when I was young. I had a solid feeling that I belonged to the time I lived in (which was the 1960's). So, I cannot SHARE the same feeling with you, I am afraid. I can understand how you feel, though You look at yourself as a kind of alien in the society to which you belong. That is not strange at all. YOU ARE DIFFERENT. That is the fact. Accept it.

In 3,4 year, you will be out of school, and FREE to do anything. Look forward to entering that new life. Prepare yourself for the future. There must be many things you have to do before that. Being DIFFERENT is not your flaw. It could be your virtue. It all depends on you.

-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넷 답변 (2015)

터프해지려면? / 인격은 역할놀이

Q: 터프해지려면?

A: 터프해지려면 일단 터프함을 연기해야합니다. 제대로 최선을다해 연기하는 것. 그런 연기를 오랜기간 제대로 한다면 실제로 터프해집니다. 정말이에요. 해보세요. 인격은 거의 역할놀이인거에요.

-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넷 답변 (2015)

"너는 이제부터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소년이 되어야 해."

"응, 나는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소년이 될 거야."

-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2002》

(*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소년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가상의 존재 '까마귀라고 불리는 소년'과 대화를 나눈다.)

도전과 응전 (應戰)

- 아놀드 토인비 『역사의 연구, 1934~1961』의 핵심주제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vs 동양의 '수파리'

구분

창조적 파괴 (슘페터)

수파리 (동양 사상)

1단계

기존 시장 질서와 기술의 안주

수(守): 스승의 가르침과 법도를 철저히 지킴

2단계

낡은 것을 부수는 혁신의 충격

파(破): 기존의 형식을 깨고 자신의 개성을 더함

3단계

새로운 경제 질서의 탄생

리(離): 모든 형식을 초월하여 독자적인 경지에 오름

"한정이 있는 인생으로 그 한정을 모르고 무궤도하게 살아 나가면 그 산다는 것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게 된다. 다 같은 인생으로 무엇이 다르랴마는 그 다르다는 것이 그 한정이 있는 수한(壽限:타고난 수명)을 가장 유위(有爲)하게 소비시킨 사람이 가장 상등(上等) 인물이요, 가장 무의미하게 소비시킨 사람이 가장 하우(下愚:아주 어리석은 사람)가 되는 것이다. 최상, 최하의 중간에서도 천차만별이 있다. 이것이 인생이다."

- 봉우 권태훈 『백두산족에게 고함, 1989』

"무덤에 가면 잠잘 시간은 충분하니, (살아있는 동안은) 깨어 일하라."

(원문: "There will be sleeping enough in the grave.")

- 벤자민 프랭클린 《가난한 리처드의 달력(Poor Richard's Almanack), 1758》

"탁월한 사람에게 규칙적인 습관이란, 야망의 또다른 표현이다."

- 위스턴 휴 오든 (W. H. Auden) 『시인의 수첩(The Poet’s Tongue), 1948』

"육체가 여전히 견뎌내고 있는데, 정신(영혼)이 먼저 굴복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It is a disgrace for the soul to give up while the body still perseveres."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Meditations)》 제6권 29항 (서기 170년 ~ 180년)

(* 아우렐리우스는 평온한 서재가 아니라, 가장 치열하고 고통스러운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이 글들을 썼다.)

"모든 이가 꿈을 꾸지만 똑같지는 않다. 그러나 그 꿈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밤에 꿈을 꾸는 사람은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나 그 꿈이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다. 반면 낮에 꿈을 꾸는 사람은 몹시 위험하다. 그는 눈을 뜬 채 자신의 꿈을 실행에 옮겨, 그것을 현실로 만들기 때문이다."

("All men dream: but not equally. Those who dream by night... wake in the day to find that it was vanity: but the dreamers of the day are dangerous men, for they may act their dream with open eyes, to make it possible.")

- T.E. 로렌스 《지혜의 일곱 기둥(Seven Pillars of Wisdom), 1926》

"시스템은 인종, 언어, 종교에 상관없이 작동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분열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실용주의자입니다.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그것이 작동합니까? 그럼 해봅시다. 작동하면 계속하고, 안 되면 버리고 다른 걸 해봅시다.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에도 매료되지 않습니다."

- 리콴유 『일류 국가로의 길(The Singapore Story, 2000)』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다." (흑묘백묘(黑猫白猫))

"실력을 감추고 때를 기다려라 (도광양회(韜光養晦))."

- 덩샤오핑

"지조만 높게 가진다면 장사꾼 흉내를 내도 상관없다. 오히려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사상이 아니라 경제다."

"만두는 어떻게 생겨도 상관없다. 양쪽에 혀를 내밀어 만두소만 먹을 수 있으면 된다."

- 사카모토 료마 (시바 료타로 소설 『료마가 간다 (1962-1966)』에서 가공)

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

거거거중지 행행행리각

"가고 가고 가다 보면 알게되고, 행하고 행하고 행하다 보면 깨닫게 된다."

- 봉우 권태훈의 좌우명

"실천이 없으면 증명이 없고, 증명이 없으면 신용이 없으며, 신용이 없으면 존경받을 수 없다."

- 최배달 『실전공수(実戦空手, 1974)』 및 극진회관 훈화집

"나는 '인간'이라 불리는 그 동물을 혐오하고 증오한다. 비록 존, 피터, 토마스 같은 개개인들은 진심으로 사랑할지라도 말이다."

- 조나단 스위프트가 알렉산더 포프에게 보낸 편지 (1725년)

"타인은 지옥이다 (L'enfer, c'est les autres)"

- 장 폴 사르트르 (Jean-Paul Sartre)의 희곡 《닫힌 방 (Huis clos), 1944》

"세계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있는데도, 너를 받아줄 공간은 - 그건 아주 조그만 공간이면 되는데 - 어디에도 없다. 네가 목소리를 구할 때 거기 있는 것은 깊은 침묵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2002》

구존동이(求同存異)

(차이를 인정하고 공통점을 찾음)

- 주은래(Chou En-lai) 반둥 회의(Bandung Conference) 연설문 (1955)

"시드니, 넌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그제야 나는 아버지의 말에 집중하게 되었다.

"그건 어제 얘기였어요."

"그럼 내일은?"

내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잖아. 인생이란 원래 소설 같은 거 아니겠니? 숨 막히는 긴장감으로 가득 차있잖아. 페이지를 넘기기 전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어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요."

"그걸 어떻게 알지? 하루하루가 새로운 페이지인 거야, 시드니. 곳곳에 깜짝 놀랄만한 일이 숨어 있다고. 페이지를 넘기기 전까진 그 누구도 알 수 없어."

- 시드니 셀던 자서전 《내 인생의 또 다른 페이지 (The Other Side of Me), 2005》

(* 1934년경 17세였던 작가 시드니 셀던이 자살하려고 하자 이를 만류하던 아버지와 나눈 대화 재구성. 비슷한 주제의 일본의 자살방지 광고를 떠올리게 한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어떤 걸 집어 들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re gonna get.

- 영화 《포레스트 검프, 1994》

"비스킷통에는 여러 가지 비스킷이 가득 들어있고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걸 자꾸 먹어 버리면 그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거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통이라고."

-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 1987』 마지막 장면

"스무 살 무렵, 나는 정말 우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사귀고 있던 여자와도 이별하고, 무엇을 해도 잘 되지 않으며, 무엇을 하면 좋은 것인지도 모르고, 고독 불안했다. 그 당시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하지만 인생은 그런 시기라고 필요한 거죠. 너무 술술 풀리면 나중에 반드시 반동이 온다. 지금은 반동을 선점하고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좋아요. 힘내."

-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터넷 답변 (2015)

"테이블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절대 돈을 세지 마세요. 게임이 끝나면 돈을 셀 시간은 충분할 테니."

- 케니 로저스의 노래 《The Gambler》 (1978)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바보, 아직 시작도 안 했어."

-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키즈 리턴》 (1996) 마지막 대사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 말고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우리 앞에 놓인 길이 얼마나 멀든, 네가 가치가 있는만큼 온 힘을 다해 달려나가야 한다. 달려!"

"しかし、これから進むこと以外は、他の選択はない。 いくら遠く行くとしても、自分の価値だけある一杯走れ。 走れ!"

"But we have no choice but to keep moving forward. No matter how far, run for all you're worth. Run!"

- 영화감독 후카사쿠 킨지의 유작 《배틀로얄(2000)》의 엔딩 크레딧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그것만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당신을 땅으로 굽히게 하는 저 시간의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으려면, 쉴 새 없이 취해야 한다.

"무엇으로? 술로, 시로, 혹은 덕성으로, 당신 마음대로. 그러나 어쨌든 취하라."

- 샤를 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Le Spleen de Paris), 1869》 중 제33번 <취하라>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

- 카이사르가 젤라 전투(Battle of Zela)에서 폰토스 왕국의 파르나케스 2세를 단 5일 만에 격파한 후, 로마 원로원에 보낸 승전 보고서에 적힌 문구.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서기 100년 ~ 120년경)과 수에토니우스의 《황제전》(서기 121년경)에 이 일화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수에토니우스에 따르면, 이후 카이사르의 폰토스 개선식 행렬에서 이 세 단어가 적힌 판자가 높이 들려 전시되었다고 한다.

"신성로마제국이라고 불렸고 지금도 불리고 있는 이 단체는 어떤 면으로 보나 신성하지도 않았고, 로마인 것도 아니었으며, 제국도 아니었다."

("Ce corps qui s'appelait et qui s'appelle encore le saint empire romain n'était en aucune manière ni saint, ni romain, ni empire.")

- 볼테르 《풍속론(Essai sur les mœurs et l'esprit des nations)》 제70장 (1756)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단지 냉전의 종식이나 전후사의 한 시기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의 종점이다. 즉, 인류의 통치 형태로서 자유민주주의가 보편화되는 인류의 이데올로기적 진화의 종착점이다."

- 프랜시스 후쿠야마 『역사의 종언과 마지막 인간 (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 1992)』

(* 후쿠야마는 헤겔과 코제브의 철학을 '재편집'하여, 공산주의가 무너진 1989년 이후 인류에게 더 이상의 이데올로기적 대안은 없다고 선언했다.

-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이제 인간의 투쟁은 끝났고, 남은 것은 기술적 관리와 경제적 풍요뿐이라는 낙관론이었다.

- 과학과 이성의 맹신: 벨 에포크가 만국박람회와 에펠탑으로 '진보'를 과시했다면, 1992년의 서구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정답을 찾았다고 확신했다.

오만한 종언: 19세기 말 지식인들이 "더 이상의 발명은 없다"고 자만했듯, 후쿠야마는 "더 이상의 이데올로기적 진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결말: 벨 에포크는 제1차 세계대전(1914)이라는 참혹한 현실 앞에 분쇄되었고, 후쿠야마의 낙관론은 9.11 테러(2001)와 신냉전, 그리고 오늘날의 (트럼프발) 신제국주의라는 '역사의 복수' 앞에 무너졌다.)

"여자들은 정신적 승화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넘치는 성욕으로 고통받는다."

"근시의 남녀가 사랑을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남녀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약간 도수높은 안경을 주면 낫는 경우가 있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Parerga und Paralipomena), 1851》

"언제나 나와 함께 있어 주오. 어떤 형상을 빌려도 좋으니, 나를 미치게만 해 주오! 제발 나를 이 심연 속에 홀로 버려두지 마오. 그곳에선 당신을 찾을 수 없으니!"

Be with me always - take any form - drive me mad! only do not leave me in this abyss, where I cannot find you!

-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1847》 (히스클리프의 처절한 집착과 사랑)

일기일회(一期一會)

- 원래 '일기일회'란 말은 중국 진(晉)나라 원언백이 "만년에 단 한번, 천년에 단 한차례뿐인 귀한 만남 '만세일기 천재일회(萬歲一期 千載一會)'에서 유래온 표현이다. (출처: 《진서(晉書)》 〈원언백전〉 (648)) 이 원언백의 문장을 다도(茶道) 철학으로 요약해서 정립한 이이 나오스케(19세기)가 일기일회(一期一會)로 널리 퍼뜨렸다.

"철학자로서,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규명하고자 했고, 역사가로서, 전체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밝히고자 했으며, 시인으로서, 하나의 드라마를 창조하고자 했다고 말할 것이다."

"인류의 비참함을 요약본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괭플랜과 데아였을 것이다.

그들은 같이 한 칸의 무덤에서 태어난 것 같았다.

괭플랜은 공포속에서, 데아는 암흑속에서, 그들의 존재는 어둠의 무시무시한 양면에서 만들어진 다른 종류의 암흑으로 빚어졌다.

이 암흑, 데아는 그녀 안에 지니고 있었고 괭플랜은 그의 얼굴 위에 얹고 있었다.

데아에게는 유령이, 괭플랜에게는 망령이 들어 있었다. 데아는 침울함 속에, 괭플랜은 그보다 더 나쁜 것 속에 있었다.

앞을 보는 괭플랜에게는, 눈이 먼 데아에게는 없는, 가슴을 에는 비통한 하나의 가능성이 있었다. 그것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이었다."

"가끔 괭플랜은 스스로를 나무랐다. 그는 자신의 행복을 양심의 문제로 돌렸다. 그는 자신을 보지 못하는 여인이 자신을 사랑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그녀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그녀의 눈이 떠진다면, 그녀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 그녀에게 매력으로 느껴졌던 것이 혐오감으로 바뀌겠지! 자기의 끔찍한 애인 앞에서 그녀는 뒷걸음질 칠 테지! 얼마나 소리를 지를까!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겠지! 피해 버릴 거야! 쓰디쓴 양심의 가책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괴물은, 사랑할 자격이 없어. 그는 별이 우상으로 여기는 히드라였다. 이 눈 먼 별을 빛나게 해주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하루는, 그가 데아에게 말했다.

"너 내가 무척이나 못생겼다는 거 알지."

"난 네가 숭고하다는 것을 알아." 그녀가 대답했다.

그가 다시 말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들리면, 그건 날 보고 웃는 거야. 내가 너무 추해서."

"사랑해." 데아는 그렇게 말했다.

잠시 침묵 뒤에, 그녀가 덧붙였다.

"나는 죽었었어. 네가나를 다시 살게 했어. 여기 있는 너는, 내 옆에 있는 하늘이야. 손을 이리줘. 나는 신을 만지게 되는 거야!""

"기형이라는 것이 그에게는 하나의 선물이었을 지도 몰랐다.그는 얼마나 그것을 거부했던가! 이 가면을 벗고 자신의 얼굴을 되찾고, 아마도 원래 다른 모습이었을지 몰랐던 잘 생기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 그러나 그는 그것을 원치 않았다! 무엇으로 그는 데아를 먹여 살릴 수 있겠는가? 그를 사랑하는 그 불쌍하고 달콤한 그녀는 이제 어떻게 되겠는가? 그를 개성 있는 광대로 만들어 준 이 이상한 웃음 없니는, 그는 그저 남들과 똑같은 여느 광대, 그냥 한 곡예사, 포석 틈에서 동전이나 주우러 다니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고, 데아는 아마 매일 먹을 빵도 없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 하늘에서 내려온 불구자의 보호자라는, 일종의 감미롭고 심오한 자부심마저 느꼈다. 밤, 고독, 가난, 무능력, 무지, 배고픔과 목마름, 이 일곱 개의 비참함이 주둥이를 벌리고 그녀를 둘러싸 있었고, 그는 이 용과 싸우는 조르주 성인이었다."

"군주는 모든 것을 가지고그 자체로 모든 것인 자다. 군주는 자기 고유의 본성 너머에 존재하는 자다. 군주는, 젊으면서도 늙은이들의 권리를 가지고, 늙으면서도 젊은이들에게 좋을 만한 것을 갖추고, 방탕하면서도 선한 이들의 존경을 받고, 비겁하면서도 용감한 이들의 명령권을 쥐고, 게으르면서도 노동의 산물을 받고, 무지하면서도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의 학위를 얻고, 멍청하면서도 시인들의 찬탄을 받고, 못생겨도 여인들의 미소를 얻고, 테르지테스 같으면서도 아킬레스의 투구를 가지고, 산토끼인 주제에 사자의 가죽을 가진 자다."

""아." 괭플랜이 말했다. "날 깨워주시오!"

"그렇습니다." 그가 말했다. "저는 전하를 깨우기 위해서 왔습니다. 전하께서는 지난 25년간 잠들어 계셨습니다. 꿈을 꾸고 계셨지요. 이제는 깨어나실 때입니다. 전하께서는 스스로를 괭플랜으로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전하께서는 클랑샤를리십니다. 스스로를 평범한 평민이라고 생각하시지만 귀족계급에 속하십니다.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한다고 생각하시지만 가장 높은 계급에 속하십니다. 스스로 광대라고 생각하시지만 상원의원이십니다. 스스로 가난하다고 여기지만 부자이십니다. 스스로 하찮다고 여기시지만 아주 중요한 인물이십니다. 부디 깨어나십시오, 전하!""

"괭플랜은 공포 속에서 데아는 암흑 속에서 태어났다.

데아는 암흑을 그녀 안에 지니고 있었고, 괭플랜은 그의 얼굴 위에 얹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에서 멀어져 있었다. 데아도 혼자였고, 괭플랜도 혼자였다.

데아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괭플랜은 모든 것을 보았기에 절망했다. 데아는 빛을 박탈당했고 괭플랜은 삶을 금지당했다.

지옥 같은 삶이었지만 그들은 천국에 있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괭플랜은 데아를 사랑했고, 데아는 괭플랜을 우상으로 여겼다.

"넌 어쩜 이리도 잘 생겼는지!" 그녀는 그에게 말하곤 했다."

"데아에게 있어서 괭플랜은 그녀를 무덤에서 밖으로 건져 올려 데리고 나온 구원해 준 사람이자, 그녀의 삶을 가능하게 해 주는 위안이자. 눈 먼 미로 속에서 그녀의 손을 잡고 그녀를 해방시켜 준 이였다. 괭플랜은 형제요 친구요 안내자요 버팀목이었다. 그는 천상을 닮은 이이자, 빛나는 날개가 달린 어깨였다. 다른 이들은 그 어깨에서 괴물을 보았지만 그녀는 거기서 천사를 보았다. 데아는 눈이 멀었기에 영혼을 알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모든 고독을 위로하듯, 자연은 모든 버려진 것들을 구원하러 왔다.

모든 것이 결핍된 곳에서 자연은 자연 그 자신 전체를 돌려주었다.

자연은 꽃 피었고 폐허의 한 가운데서 초록빛을 키워냈다.

자연은 바위를 위해서는 담쟁이덩굴을, 인간을 위해서는 사랑을 지니고 있었다."

"가난한 자들에게 은혜를! 여러분은 왕좌를 위해세금을 가중시킵니다. 여러분이 공포한 법을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이 짓누른 고통당하는 다수를 조심하십시오. 눈을 내려 여러분의 발밑을 보십시오. 오, 위대한 분들이여, 보잘것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렇습니다!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세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한 자들은 죽어가면서 고귀한 분들을 죽게 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중단입니다. 밤이 오면 누구도 낮의 끝자락을 지키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에고이스트입니까? 타인을 구하십시오. 배의 파멸은 특정한 승객에게만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난파를 당한다는 것은 모두의 일이니까요. 오! 심연은 모두의 것이라는 것을 아십시오." 웃음은 두 배로 커졌으며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모인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위해서는 이야기가 정상을 벗어나기만 하면 되었다. 외면은 코믹하고 내면은 비극적인 것, 그보다 더굴욕적인 것은 없다. 그보다더 화가 나는 것은 없다. 괭플랜은 그의내면에 그런 감정을 느꼈다. 그의 이야기는 어떤 의미속에서작용하기를 원하였고, 그의 얼굴은 또다른 의미 속에서 작용하고 있었다. 끔찍한 상황이다.

히죽거림의 카오스에서 불분명한 탄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르고노스의 얼굴!" "그게 무슨 얘기지?" "의회를 습격하라!" "수치다! 수치야!" "폐회하라!" "안돼! 그가 마치게 해라!" "말해라, 광대여!"

뼈 속 마디마디에, 천길 낭떠러지로 이어진 아가리를 벌린, 추락의 검은 한기를 늰 사람, 그런 사람은 괭플랜이 느꼈던 것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그는 아래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 청중은 절벽과도 같았다. 모든 것을 요약할 수 있는 한 마디를 하는 사람이 언제나 존재한다.

스카스데일 경은 모인 사람들의 인상을 하나의 외침으로 요약했다. "이 괴물이 여기 뭐하러 온 거요?"

괭플랜은 정신을 잃고 분개하였으나 심한 경련 속에서도 몸을 똑바로 세웠다. 그는 그들을 매우 똑바로 쳐다보았다.

"뭐하러 왔느냐고 하였나요? 나는 무섭게 하기 위해 왔어요. 내가 괴물이라고요? 아닙니다. 나는 백성이지요. 내가 예외적인 인물이라고요? 아닙니다. 나는 평범한 인물이에요. 예외는 당신들이지. 당신들은 꿈이고 나는 현실입니다. 나는 남자에요. 나는 무섭게 생긴 웃는 남자입니다. 누구 때문에 웃을까요? 모두 당신들 때문이지. 그의 웃음은 무엇일까요? 당신들의 죄, 그의 고통. 그는 당신들 때문에 그 죄를 던지고, 그 고통을 뱉고 있습니다. 나는 웃어요. 나는 웁니다."

내 얼굴에 있는 웃음, 그것을 새긴 사람은 바로 왕입니다.

이 웃음은 세상의 슬픔을 말하지요. 이 웃음은 증오, 거북한 고요, 심한 고통, 절망을 말하고 싶어하지요.

이 웃음은 강요된 웃음입니다.

자연은 바위를 위해서는 담쟁이덩굴을, 인간을 위해서는 사랑을 지니고 있었다."

- 빅토르 위고 『웃는 남자』(L'Homme qui rit, 1869)

"나의 외형이 다소 기이한 것은 사실이나, 나를 탓하는 것은 곧 신을 탓하는 것이라네. 만약 내가 나를 다시 창조할 수 있었다면, 그대를 기쁘게 하는 데 실패하지 않았으리. 내가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닿을 수 있거나, 한 손으로 대양을 움켜쥘 수 있다 한들, 나는 영혼으로 측정되어야 하리니.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척도라네."

- 아이작 와츠 (Isaac Watts) 《거짓된 위대함 (False Greatness, 1706)》 (시집 Horae Lyricae 수록)

(* 1880년대 후반 당대 기형아로 유명했던 조셉 메릭은 위 와츠의 시 마지막 4행을 자신의 좌우명처럼 사용했다. 메릭은 《엘리펀트 맨》의 실존 모델이 되어 불멸의 이름을 남긴다.)

"외모만 사랑하는 사랑은 동물의 사랑이요,

정신만 사랑하는 사랑은 귀신의 사랑이다."

"사람이란 동물은 고독을 싫어하는 고로 항상 그 ‘동무’를 구하며, 구하여 얻으면 기뻐하고 행복되며, 얻지 못하면 슬퍼하고 불행되느니라. 자연히 그 동무에는 조건이 있으니 즉 ‘정다운 자’, ‘사랑스러운 자’라. 만일 이 조건에 불합하는 자면 비록 백만의 동무가 있어도 오히려 무인광야에 홀로 선 것같이 기쁨과 행복이 없으되 만일 일인이라도 이 조건에 합하는 자 있으면 기쁨과 행복이 마음에 충만하여 전 우주 간에 만물이 하나도 미(美) 아님이 없고, 하나도 애(愛) 아님이 없나니 전자는 인류에 가장 불행하며 가련한 자요, 후자는 가장 복되며 운 좋은 자이니라. 제왕, 부귀 그 무엇인고?"

- 춘원 이광수 『무정, 1917』

"전차 속에서 아름다운 소년소녀를 보고 쾌미(快美)의 감정을 얻는 것으로 유일의 위안을 삼아 일부러 조석 통학시간에는 전차를 탔다. 광호는 다만 아름다운 소년소녀의 얼굴과 몸과 옷을 바라보기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바로 소년소녀가 자기의 곁에 앉아서 그 체온이 자기의 신체에 옮아 올 만하여야 비로소 만족하게 되고 혹 만원인 때에 자기의 손이 여자의 하얗고 따뜻한 손에 스칠 때에야 비로소 만족하게 쾌감을 맞보게 되었다. 그래서 광호는 일부러 차가 휘어 돌아갈 때를 타서 몸을 곁에 섰는 여자에게 기대기도 하고 혹 필요 없이 팔을 들었다 놓았다 하여 여자의 살의 따듯한 맛을 보려 한다.

한번 광호가 전차를 타고 어디를 갈 때에 정전되어 전차가 서고 전등이 꺼졌다. 그러고 조그마한 축전지 전등이 켜졌다. 광호는 곁에 않은 여학생을 보고 그 조그마한 전등을 미워하였다. 이처럼 광호의 심정은 동요하였다. 광호의 머리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잘 때에 꿈에까지 보이는 것이 아름아운 소년과 소녀뿐이었다. 그의 눈앞에는 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아름다운 소년소녀가 무수하게 왔다갔다할 뿐이다. 그는 이 환영에 대하여 무수히 「나는 너를 사랑한다」를 발하고 무수히 입을 맞추고 무수히 포옹을 하였다. 그러므로 광호의 근일의 생활은 몽중의 생활이요 환영중의 생활이라. 그는 공부를 하려 한다. 내년에도 특대생이 되려 한다. 그러나 책을 보아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아니하고 책장 위에는 글자마다 아름다운 소년소녀로 변하여 방긋방긋 웃으며 광호를 대하여 손을 내어민다."

"대저 남에게 사랑을 구하는 데는 세 가지 필요한 자격이 있나니 차삼자(次三者)를 구비한 자는 최상이요, 삼자 중 이자를 구비한 자는 하요, 삼자중 일자만 유한 자는 다수의 경우에는 사랑을 얻을 자격이 무하나이다. 그런데 귀하는 불행하시나마 전자에 속하지 못하고 후자에 속하나이다."

하고 한 줄을 떼어 놓고,

그런데 그 삼자격이라 함은 자금과 용모와 재지(才智)로소이다. 차삼자 중에 귀하는 오직 최후의 일자를 유할 뿐이니 귀하는 마땅히 생존경쟁에 열패할 자격이 충분하여이다. 극히 미안하나마 귀하의 사랑을 사퇴하나이다."

"또 이것이 잘못 생겼어요. 하나님이 이것을 만들 때에는 좀 싫증이 났던지 눈과 코를 되는 대로 만들어서 되는 대로 붙이고...... 글쎄 이렇게 못되게 만들 것이 무엇이요.」

하는 조물주를 맹책(猛責)하는 듯이 분노하는 안색과 어성으로,

글쎄, 이렇게 못되게 추하게 만들 법이 어디 있어요.

하고 주먹으로 두 뺨을 탁탁 때리고 엉엉 울더니 다시 하하 하고 웃으며,

좀 하얗게 닦아 주지야 왜 못하겠소.

하고 고개를 숙인다. 준원은 광호의 검고 좁고 눈은 크고 코는 넓적하고 여드름 많이 돋은 얼굴을 보고, 또 광호의 조물주의 솜씨를 공격하는 말을 들으매 우스움을 참지 못하여 하하 웃었다. 광호도 하하 하고 웃더니 갑자기 시침이를 뚝 떼고, 준원의 팔을 잡아채며,

왜 웃소? 응 왜 웃어요. 내 이 얼굴이 우습소. 이 조물주의 싫증이 나서 되는 대로 만들어 놓은 이 얼굴이 우습소?"

- 춘원 이광수 『윤광호, 1918』

"외모와 형태는 본래 신의 선물, 신의 은총이다."

“Vultus autem, forma, quae naturalis, divina donatio est.”

- 키케로 《De Natura Deorum (신의 본성에 대해, BC 45)》

아이_영원한 게 있다고 믿어요? 예를 들어 금방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는데 그 사람도 날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어 너무 행복할 때 그때는 그런 사랑의 감정이 언제까지 계속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째서 결국 끝나버리는 걸까요?

센세_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잖아. 결혼해서도 헤어지지 않는 부부가 오히려 더 많지.

아이_그건 헤어지는 게 귀찮아서 포기한것 뿐이죠. 애들 문제라던가 혼자되는 게 두려워서라던가...

센세_그건 좀 지나친 표현 아닐까? 사랑이 정으로 변했다고 해야 할까.

아이_그렇게 변해서 다 행복할까요?

센세_안심감은 있지.

아이_가장 사랑할 때도 안심감은 있어요. 태양에 데일 정도로 뜨겁게 사랑할 때도 밤에는 지친 어린애처럼 둘이서 잠을 청할 수 있는 안심감... 선생님이 하는 말은 안심감이 아니라 포기예요. 난 싫어요. 이런 저런 이유로 변해버리는 건 영원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같이 있기만 한다고 영원한 건 아니에요.

센세_너의 연애관은 아주 엄격하구나.

아이_사랑보다는 영원한 것이 더 중요해요. 영원이 있으면 무엇에든 자유로워져요. 서로 헤어져 있어도 변할 건 없어요.

센세_사랑과 영원은 교차되지 않는 거니?

아이_시간표가 다를 거예요. 아마도... 사랑은 모두들이 타는 즐거운 만원버스예요. 노래를 부르거나 손을 맞잡는... 언젠간 내려야만 하는데.

센세_그럼 영원이라는 버스는?

아이_응, 텅텅 비었어요.

센세_왜 모두들 거긴 타지 않는 거지?

아이_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센세_상상하지 않으면?

아이_예, 하지만 일방적인 건 안 되죠. 두 사람 다 보이지 않으면...

센세_너는... 너에게는 그 버스가 보이니?

아이_보이지요. 털털거리는 버스지만요. 정말로 멋져요. 날개도 달려 있어서 하늘을 날 수 있어요.

센세_그렇다면 정말 행복하겠구나.

아이_그래서 말했잖아요. 일방적이면 안 된다고. 그건 그냥 미친 사람이잖아요. UFO나 유령이 보인다는 사람들처럼. 선생님도 보였으면 좋겠어요.

(...)

센세_어떻게 그런 일을...

널 그렇게 작게 보지 않았는데

내가 뭔가 착각을 한거야

아이_역시... 선생님은 버스가 보이지 않는군요

센세_그런 헛소린 이제 지긋지긋해! 그런 게 있을 턱이 있니?

넌... 미쳤어

아이_하지만 이걸로 됐어요

선생님이 너무너무 좋아지니까

그렇게 되면 선생님을 망가트리게 될 테니까...

나도 망가질 테니까...

나레이션:

아픔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받고

언제부턴가 가슴은 다이아몬드처럼 갈려져 있었다

반짝, 반짝, 반짝.... 너의 가슴은 흔들렸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널 데리고 사라진다면

다시는 너를 찾을 수 없겠지

그래 틀림없이 영원히....

- 노지마 신지 극본 드라마 《립스틱, 1999》 8화

미나미: '졸업'이라는 영화 봤어? 신부가 결혼식 당일에 다른 남자와 버스를 타고 도망가 버리는 내용. 그게 말이지. 도망가 버린 쪽은 꽤 드라마틱하지만 버림받은 쪽은 어떻게 되는 거지?

세나: 조연에게는 스포트라이트가 미치지 않잖아요. 조연이란 말이죠. 카메라가 쫓아가지 않는 법이죠. 철칙이죠.

미나미: 영화의?

세나: 인생의...

미나미: 언제가 되어야 비로소 내 차례가 되는 걸까? 나, 뭐하는 거지? 하루 종일 빠칭코나 하고.

세나 : 저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긴, 긴 휴가(Long Vacation)라고. 난 말이죠. 항상 분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왜 있잖아요. 뭘 해도 잘 안 되는 때가요. 그럴 때는 뭐랄까, 말은 좀 이상하지만 신이 주신 긴 휴식이라고 생각해요. 무리하지 않는다. 초조해하지 않는다. 분발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자신을 맡긴다.

미나미: 그렇게 하면?

세나: 좋아지는 거죠.

미나미: 정말?

세나: 아마도.

...

선배는 이런 곳에 있을 사람이 아니에요.

- 료코가 (학원교사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지만 계속 콩쿠르에 실패하는) 세나에게

...

루: 이제 잘생긴 남자는 피곤해서요.

미나미: 루, 무슨 뜻이야?

루: 잘생긴 남자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붕 뜨고 안기면 가슴이 두근거리지만 붕 떴다가 두근거렸다가 붕 떴다가 두근거렸다가 계속 그것만 반복하다가 왠지 속는 기분이 들거든요.

- 기타가와 에리코 극본 드라마 『롱베케이션, 1996』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현실의 압박(실직, 업무 스트레스)에서 도망쳐 바닷가 민박집 '다이아몬드 헤드'에 모인 두 주인공이, 남들이 "이제 여름도 끝이네"라고 말할 때 서로에게 혹은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다. 이는 물리적인 계절이 아니라, 인생의 뜨거운 순간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자신만의 바다를 찾아"

(민박집 주인인 마사루가 청춘들에게 던지는 조언. "여기는 내 바다야. 너희들에게는 너희들만의 바다가 있을 거야. 그걸 찾으러 가라고." 언제까지나 여름휴가 같은 일상에 머물 수는 없음을 일깨워준다. 각자의 삶의 터전(일상)으로 돌아가 그곳을 자신만의 '바다'로 만들어내라는 주체적인 삶에 대한 격려다.)

"무엇을 했느냐보다, 누구와 있었느냐가 중요해"

(카이토(다케노우치 유타카)가 엘리트 가도를 달리던 과거를 뒤로하고 깨달은 바를 말하는 대목이다.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어.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냈느냐가 작년 여름과 올해 여름을 다르게 만든 거야.")

- 오카다 요시카즈 (岡田惠和) 극본의 《비치보이즈, 1997》

(* :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가 한국을 덮친 것이 1997년 11월이다. 일본 역시 1997년 말 야마이치 증권 등 대형 금융기관이 파산하며 암흑기로 접어든다. 《비치보이즈》는 일본 거품 경제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누렸던 '낙관적인 여름의 낭만'을 담고 있다. 그래서 지금 보면 더 아련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그대로의 속도로(そのままのスピードで)

- The Brilliant Green가 발매한 곡 제목 <그대로의 속도로(そのままのスピードで, 1998)>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장관이야. 보잘것없는 풍경조차 멋진 풍경으로 느껴지지. 하지만 자신이 있는 세계를 한눈에 보았을 때에 느끼는 것은 그런 충동이 아니야. 부감(俯瞰)의 시계(視界)에서 얻을 수 있는 충동은 단 하나──」

충동, 이라고 입 밖에 내고서, 토우코씨는 잠깐 동안 말을 끊었다.

충동은 이성이나 지성에서 나오는 감정이 아니다.

충동이란 것은, 감상처럼 자신의 안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덮쳐오는 것이다.

설령 본인이 그것을 거부하려한다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덮쳐오는 폭력 같은 인식. 그것을 우리들은 충동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부감의 시계가 초래하는 폭력이란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멀다', 라는 거야. 너무나 넓은 시계(視界)는 역으로 세상과의 격차를 명확하게 만들어버리지.

인간은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던 것들이 없으면 마음을 놓지 못해. 매우 정교한 지도가 있어서, 자신이 어디어디쯤의 여기에 있다, 라는 사실을 알아도, 그것은 단순한 지식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잖아? 우리들에게, 세계라는 것은 피부로 느껴지는 정도의 주위에만 존재하는 거야. 뇌가 인식하고 있는 지구의, 나라의, 도시의 연결부 같은 것을, 우리들은 실감 할 수 없어. 그 연결부에 가지 않으면 말야. 그리고 실제로, 그 인식방법에 잘못된 점은 없어.

하지만 너무나 넓은 시계(視界)를 가져버리면, 그것에 어긋남이 생겨버려. 자신이 지금 피부로 느끼고 있는 사방 10미터의 공간과 자신이 내려다보고 있는 사방 10킬로미터의 공간. 둘 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지만, 보다 리얼하게 느껴지는 것은 전자라는 거지.

봐, 여기서 또 모순이 생겨나잖아? 원래, 자신이 체감할 수 있는 좁은 세계보다, 자신이 보고 있는 넓은 세계 쪽을 『살고 있는 세계』라고 인식하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작은 세계에 자신이 있다고 하는 실감이 들지 않아.

어째서일까. 그것은 실감이 언제나 본인의 주위에서 얻어지는 정보에 우선되는 것이기 때문이야. 여기에 지식으로서의 이성과 경험으로서의 실감이 서로 마찰하고, 곧 어느 한쪽이 닳아져서, 의식의 혼란이 시작되는 거지.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도시는 어째서 작은 걸까. 저 곳에 내 집이 있다니 상상도 할 수 없어. 저 공원은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던가. 저런 곳에 저런 건물이 있었던 것은 몰랐어. 이것은 마치 모르는 거리 같아. 어쩐지, 아주 먼 곳까지 와버린 것 같다──너무 높은 시점은 그런 실감이 솟아나게 만들어버려. 먼 곳도 무엇도, 지금도 그 본인은 분명, 거리의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는데도」

높은 곳은 먼 곳이다. 그것은 거리로 판단해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토우코씨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정신적인 것이겠지.

- 나스 키노코 (奈須きのこ) 소설 《공의 경계》 제1장 〈부감풍경〉

웹 연재: 1998년 10월 ~ 1999년 5월 (자신의 홈페이지 '죽음의 한 조각'에 연재)

동인판 출판: 2001년 (코믹마켓에서 상·하권 발매)

상업판 출판: 2004년 (코단샤 노벨스판)

(* 소설 《공의 경계》 제1장 〈부감풍경〉은 사고로 인한 2년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료기 시키가 아오자키 토우코의 사무실(가란의 당)에서 대화를 나누는 씬.)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괴로워하기 위해서 태어난게 아닙니다.

무책임한 어른들이 만든 20세기는

모순이나 기만에 가득했지만

우리는 괴로워하기 위해서 태어난게 아닙니다.

때때로 분별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뒤에서부터 한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에 휩싸입니다만

우리는 상처주기 위해서 태어난게 아닙니다.

때때로 매정한 사람을 만난다면

불안정하게 되거나, 숨쉬기 힘들어지지만

우리는 상처받기 위해서 태어난게 아닙니다.

우리는 때때로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은 고통이나 슬픔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본다면 도피일지도 모릅니다.

집안에 틀어박히거나 아니면,

또 다른 장소로 도망가고 싶어집니다.

또 하나의 자신이라는 친구와 이야기 하기 위해...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사람도 고독하게 되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반드시 또 하나의 자신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를 우리는...

나쁜 녀석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겁장이인데다가 잔혹하기도 한 녀석이라고...

하지만, 진실은 달라.

겁장이이고 잔혹하기도 한 것은

친구가 아닌 진정한 자신입니다.

왜냐하면, 친구는...

진정한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멋진 친구와 우리들은 헤어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들은

언제까지나 또 하나의 자신에게 응석만 부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일까요?

...

사랑하는 사람과 만났을 때 입니다.

...

쓸쓸함도, 슬픔도, 괴로움도

또 하나의 자신을 대신해서

사랑하는 사람이 공유해주기 때문입니다.

자!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자!

우리들은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하루의 일을 이야기하고

웃고, 울고, 서로 안고, 키스하고, 사랑한다.

그렇게 용기를 받고, 동시에 준다...

우리는 단지 사랑하기 위해서만 태어났습니다.

단지, 우리들은..."

- 노지마 신지 극본 드라마 『S.O.S, 2001』 최종회 대사

"진정 가난한 사람이란, 모든 사람과 똑같이 가난한 사람을 말한다. 혼자서 고독하게 가난한 사람은 아직 돈을 벌어들이지 않은 부자에 불과하다."

의미 1 (성장 잠재력): 이미 부유한 자는 지키기에 급급하지만, 가난한 자는 잃을 것이 없기에 '압도적인 성공'을 향한 갈망(Hungry spirit)이 가장 크다. 투자의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는 바로 그 '결핍'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의미 2 (시장의 순환): 자본주의 시장은 고여있지 않다. 오늘의 부자가 내일의 빈자가 되고, 오늘의 빈자가 내일의 부자가 되는 '돈의 흐름(Flow)'을 이해하라는 격언이다.

- 드라마 《빅머니! (2002)》 대사

① "바보와 추녀일수록 도쿄대에 가라!"

"사회에는 룰이라는 게 있다. 그 룰 위에서 너희는 살아가야만 해. 하지만 너희가 바보인 채로 있으면, 그 룰을 만든 놈들이 너희를 평생 이용해 먹을 거다. 그 구조에서 탈출하고 싶다면, 스스로 룰을 만드는 쪽으로 가라. 그러기 위해서 가장 빠른 티켓이 바로 도쿄대 합격증이다."

( 의미: 학벌 지상주의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무장을 강조한 대사.)

② "사회의 룰을 만드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느냐?"

"이 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룰이 있다. 그것은 머리 좋은 놈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든 룰이다. 세금, 연금, 보험... 복잡하게 꼬아놓은 시스템은 공부하지 않는 놈들을 합법적으로 속여서 돈을 뺏기 위해 설계된 거다. 속고 싶지 않다면, 이용당하고 싶지 않다면 공부해라! 룰을 만드는 쪽의 인간이 되어라!"

- 하타 타케히코 (秦建日子) 극본의 《드래곤 사쿠라, 2005》 대사

"전후 20년,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일본이 선진국의 반열에 들고자 했던 고도 경제성장의 시대. 제철업은 '철은 국력이다'라고 할 정도로 기간 산업이었다. 일본 진출을 꾀하는 해외 거대자본에 대항하기 위해 대장성은 당시 12곳이었던 도시 은행을 합병시켜 대형화를 꾀하는 구상을 내세우게 되었다. 현재의 3대 메가뱅크에 이르는 금융재편의 첫걸음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철을 만드는 데 목숨을 건 아들과 금융재편의 거센물결 속에서 살아남고자 했던 아버지, 그 두 부자를 둘러싼 만표 일족의 사랑과 증오와 슬픔으로 가득한 장렬한 이야기이다."

-야마사키 토요코 원작 《화려한 일족 (2007)》 1화 오프닝 나레이션

"국가는 국민의 침실에 간섭할 권리가 없다."

(The state has no place in the bedrooms of the nation.)

- 피에르 트뤼도 인터뷰 (1967년 12월 21일)

(* 당시 캐나다의 법무부 장관이었던 피에르 트뤼도가 동성애와 낙태를 비범죄화하는 내용을 담은 '형법 개정안(Criminal Law Amendment Act, 1968–69)'을 하회에 제출하며 기자들에게 남긴 인터뷰 답변)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Interdit d’interdire”)

"상상력에 권력을"

"너희들은 일하지 마라"

"국경을 철거하라"

"혁명을 생각하면 섹스가 떠오른다"

- 1968년 프랑스 68혁명(5월 혁명) 시위의 슬로건

(* 파리 낭테르 대학/소르본 대학 벽보 슬로건)

기자:

“사람들이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않지만, 당신이 동성애적 취향이 있다고 매우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알랭 들롱:

“그래서 그게 뭐가 문제죠? 내가 그랬다 해도, 혹은 사실이었다 해도? 내가 뭔가 잘못한 건가요? 내가 좋아하면 할 겁니다. 프랑스에 매우 훌륭한 배우 미셸 시몽이 한 번 ‘염소가 좋으면 염소와 사랑을 하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사랑입니다.”

- 알랭 들롱 인터뷰 (1969)

"먼저 여러분은 인간의 본성과 그 변화 과정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본래 우리의 본성은 지금과 같지 않았고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인간의 성별에는 지금처럼 남성과 여성 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세 종류가 있었습니다.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외에, 이 둘이 합쳐진 공통의 성질을 가진 세 번째 종류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바로 '안드로기노스(남녀추니)'였습니다.

당시 인간은 몸이 둥글고, 등과 옆구리가 원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팔은 네 개요, 다리도 팔과 숫자가 같았으며, 원통형의 목 위에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있는 똑같이 생긴 두 개의 얼굴이 하나의 머리에 붙어 있었습니다.

...

이들의 힘과 체력은 무시무시했고 기개 또한 높아서 신들을 공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제우스와 다른 신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들을 아주 죽여버리자니 신들에게 바치는 제물과 공경이 사라질 것이고, 그렇다고 무례하게 방치할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제우스는 해결책을 찾아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이들을 둘로 나누겠노라. 그러면 그들은 힘이 약해질 것이고, 숫자는 늘어나 우리에게 더 유익해질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인간이 둘로 나뉘게 되자, 각자는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갈망하며 서로를 찾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팔로 껴안고 하나가 되기를 원하며 떨어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 이처럼 아주 오래전부터 서로에 대해 심어지게 된 사랑(에로스)은, 우리의 본래 모습을 회복시켜 주며 둘을 하나로 만들어 인간의 본성을 치유하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 플라톤 《향연》(Symposion, BC 385~380년경)

라마크리슈나: "어떤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에게 너무 마음이 쏠려 신을 생각할 수 없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그 사랑을 방향만 바꾸면 바로 신에게 이르는 길이 된다.

한 번은 어떤 여인이 내게 와서 고백했다. '성자시여, 저는 제 어린 조카를 너무나 사랑합니다. 그 아이를 생각하느라 신을 명상할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어떡해야 합니까?'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아이를 조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대신 그 아이를 아기 신(Gopala)의 현신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 아이에게 밥을 먹일 때 신에게 공양한다고 생각하고, 그 아이를 씻길 때 신을 목욕시킨다고 생각하십시오. 당신이 그 아이에게 쏟는 모든 사랑을 그 아이의 형상을 빌려 당신 앞에 나타난 신에게 바치십시오.'

그녀는 내 말대로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지독한 집착은 거룩한 황홀경(Samadhi)으로 변했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그가 남편이든 자식이든 친구든, 그 사람의 육체라는 장막 뒤에 숨어 있는 '영원한 자아'를 보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의 눈 속에서 신의 눈동자를 발견할 때, 당신의 사랑은 속박이 아니라 해탈의 열쇠가 됩니다.'"

- 마헨드라나스 굽타(M) 《라마크리슈나의 복음(The Gospel of Sri Ramakrishna)》 - 1882년 ~ 1886년 사이의 대화를 제자 마헨드라나스 굽타(M)가 기록

오랫동안 나는 평화를 찾았노라.

그것을 예기치 않은 곳에서 찾았으니,

한때는 실망하여, 한때는 고통스러워하며,

하지만 끝내 나는 그것을 찾았노라.

인생의 황혼에 이르러서야,

나는 당신을 알았고, 당신과 함께

황홀경과 평화를 모두 얻었노라.

이제 잠들어도 좋으리니,

내가 살아야 했던 이유를 마침내 알았음이라.

- 버트런드 러셀

《The Autobiography of Bertrand Russell: 1944–1967》 (자서전 제3권, 1969) 서문 〈이디스에게(To Edith)〉

"나는 어디를 가나 안식을 찾았지만, 책이 있는 구석(in angulo cum libro) 말고는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

-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1980》 (이탈리아어 초판: Il nome della rosa) 서문

(* 이 문장은 에코가 중세 수도사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의 경구를 인용한 것으로, 지식의 성소 안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절대적인 평온을 상징)

"1984년도 1Q84년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어. 자네가 그 세계를 믿지 않는다면, 또한 그곳에 사랑이. 없다면, 모든 건 가짜에 지나지 않아.”

- 무라카미 하루키 《IQ84(2009-10)》

"사랑을 찾아나서는 사람은 사랑이 부재함을 드러낼 뿐이다.

오직 사랑하는 자만이 사랑을 찾을 수 있다."

- D.H. 로렌스 (D.H. Lawrence)의 1920년대 에세이 또는 서신 중 일부로 추정되며, 네빌 고다드의 1953년 강연 〈재정립 (Revision)〉 등에서 결정적으로 인용되었다.

대체로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을 열심히 찾다가 만나게 되면 '사실은 이 사람이 아니었던' 경우가 많지요. 그러므로 밖에 나가 결혼 상대자를 열심히 찾지 마십시오. 사랑을 찾는 사람들은 결국 사랑이 결핍된 상태를 현실로 불러내게 됩니다. 그 상태로는 사랑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사랑이 있는 상태만이 사랑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사랑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사랑은 빠지는 것이지 찾아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여러분에게 오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끌어당겨 오는 것입니다. 제 바로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 네빌 고다드 《재정립 (Revision), 1953》

"우리가 새로운 경험에 준비되었을 때, 모델링은 즉시 당신을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는 모델링을 통해서 우리의 삶 속으로 함께 사랑을 나눌 사람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왕자와 공주를 찾아 세상을 헤멜 필요가 없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것처럼 '적극적인 짝 찾기'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앉아서 명상하면서 당신이 바라는 이미지를 창조하세요. 당신의 가슴이 원하는 사람을 그리세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사람마다 상대방에게서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가 다릅니다. 그것은 성격일 수도 있고, 머리나 눈의 색깔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세부적인 특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명상 속으로 뛰어들어서 사랑과 기쁨의 상태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자세한 그림을 그립니다. 마치 그 혹은 그녀가 정말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모든 것을 실감 나게 그리세요. 그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세요. 그 눈동자는 어떤 색깔입니까?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머릿결이 어떤지를 느껴보세요. 당신에게 중요한 모든 특징을 반영하세요.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아야 한다." 이런 조겅느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하므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그는 건강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조건이 더 낫지 않을까요? 모든 장면이 당신의 첫 데이트인 것처럼 생생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그 사람과 함께하는 멋진 느낌을 창조해내는 것입니다. 논리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그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을 즐겁게 느끼고, 삶의 맥동과 함께 펄떡이는 심장을 느끼세요.

눈을 감고 시도해보세요. 이 방법으로 많은 연인이 생겨났답니다. 당신도 분명히 성공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적인 사람을 찾아 헤매지는 마세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명상 속에서 그린 특징들은 단지 가상의 조합일 뿐임을 기억하세요. 참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기적을 향해 당신의 삶을 여세요."

- 비탈리 기베르트(Vitaly Gibert)의 《미래 모델링, 2012》 원제: Моделирование будущего (Modelirovanie budushchego)

"어떤 경우든 자신과 먼저 결혼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하고, 자신이 이룬 것들을 믿어 보세요. 그래야 자신과 대등한 사람을 진심으로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

- 다릴 앙카 『다시,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1987』

템페(Tempeh) 좆까

(* 템페는 인도네시아의 전통적인 콩 발효 웰빙 식품)

가부장제 좆까, 이슬람 공포증 좆까, 팬톤(색상) 좆까, 스트레스 좆까, 개학의 광기 좆까. 정신 건강 운동을 이용해 처먹는 자본주의 좆까. 아무 책임도 안 지고 복귀하는 가해자들 좆까. 나를 '이국적'이라고 생각하는 백인들 좆까. 문학 수업 시간에 깊은 분석인 척 무게 잡는 백인 놈 좆까.

인스타그램 좆까, 나약한 남성 자존심 좆까, 네가 잘될 때만 연락하는 인간들 좆까. 쥐 경주(무한 경쟁) 좆까, 상담 대기 시간 좆까, 물 탄 필터 커피랑 악덕 집주인 좆까.

성공 좆까, 링크드인 좆까, 시장 가치 좆까. 가난한 자들의 예산은 깎고 부자들의 세금은 감면해 주는 낙수 효과 경제학 좆까. 레이건 좆까, 대처 좆까, 트뤼도 좆까. 원주민 땅에 파이프라인이나 박으면서 '법치' 운운하는 트뤼도의 셀카 정치 좆까. 마크롱 좆까, 신자유주의 좆까. 똑똑해 보이려고 '신자유주의'라는 단어를 쓰는 것조차 좆까.

자유주의자들 좆까, 페도라 좆까, 퀴어처럼 입고 다니면서 전립선이 뭔지도 모르는 이성애자 놈들 좆까. 자기들끼리 누가 더 퀴어다운지 검열하는 퀴어들 좆까. 인종차별하면서 "그냥 취향이야"라고 말하는 짓 좆까.

잠 못 자는 거 좆까, 학점(GPA) 좆까, 마요네즈 냄새 풍기는 백인 남자 교수들 좆까.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 좆까, 경찰 좆까, 프랑스 놈들 좆까. 아보카도, 두부, 템페 다 좆까.

세대 간의 트라우마 좆까, 잠 좆까, 의미 없는 섹스 좆까, 섹스 후의 우울감 좆까. 자야 할 시간에 이런 '좆까 리스트'나 쓰고 있는 거 좆까. 고기 좆까, 점성술 좆까, 점성술은 안 믿으면서 가부장제는 믿는 남자들 좆까. 제프 베이조스 좆까, 트럼프 좆까.

내 이름은 발음 못 하면서 니체(Nietzsche)는 발음할 줄 아는 인간들 좆까. 우리 집 음식은 좋아하면서 우리 민족은 안 좋아하는 인간들 좆까. 기후 변화를 기업이 아닌 개인 탓으로 돌리는 구조 좆까. 깨어 있는 척하면서 여자친구한테는 제모하라고 강요하는 '워커(Woke)' 보이 좆까.

병든 거 좆까, 정치학 수업의 거만한 얼간이들 좆까. 좆까, 좆까, 좆까, 좆까, 좆까.

- 사라 칼리파(Sarah Khalaf)가 맥길대 학생신문 The McGill Daily에 기고한 글 (2019년 10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원문: 逢佛殺佛 逢祖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 임제 선사 『임제록(臨濟錄), 9세기 중반』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칼)을 주러 왔노라."

- 신약성경 『마태복음』 10장 34절 (서기 80~90년경)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주와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 고린도전서 13장 11절 ~ 12절 (1 Corinthians 13:11-12) (53–55 AD)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

- 장 폴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L'existentialisme est un humanisme), 1945》

"사실은 없다. 오직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There are no facts, only interpretations.)

- 프리드리히 니체 『유고(Nachlass)』 - 미발표 유고 (1886년~1887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

"텍스트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Il n'y a pas de hors-texte)

-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De la grammatologie, 1967)』

(* 우리가 어떤 사실을 인식할 때, 이미 그 시대의 관습, 편견, 언어적 한계라는 '문화적 필터'를 거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순수한 객관적 진실"은 텍스트(문화적 맥락) 밖에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은 해석의 산물이라는 뜻. 권력이 언어를 통해 의미를 고정하려 할 때, 데리다는 그 틈새를 찾아내어 해체(Deconstruction)하고자 했다. 의미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른 기호와의 '차이'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권력이나 주관에 의해 의미가 왜곡되는 수준을 넘어, 애초에 '고정된 정답(본질)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데리다의 핵심. 이를 그는 차연(Différance)이라고 불렀다.)

"시청자들은 지금 나를 보며, '데리다가 친구들과 큰 집에서 샴페인을 마시고 있네' 하고 생각할 것이다."

"철학자의 개인적 삶이 배제된 철학은 공허하다. 그리고 이렇게 인위적으로 연출된 철학사에는 핵심적인 것이 빠져 있는데, 바로 철학자의 성생활(sex life)이다. 사적인 삶에서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나는 헤겔과 하이데거의 성생활이 어땠는지 그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 자크 데리다가 다큐멘터리 『Derrida (2002)』 에서 한 발언들

(* 1977년, 미셸 푸코는 장 폴 사르트르, 자크 데리다 등과 함께 성관계 합의 연령(Age of Consent)을 폐지하자는 탄원서에 서명한 바 있다. 이는 당시 프랑스 지식인 사회 일부에 퍼져 있던 '모든 억압(성적 금기 포함)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극단적 자유주의의 일환이었고, 2021년 기 소르망에 의해 밝혀진 푸코의 페도필리아 성향과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흥미롭다.)

"저는 권위를 믿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가 모두 똑같은 인류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아무리 권위가 있다 해도, 빌어먹을, 내가 아가씨 한 명 붙여주면 다 똑같은 거 아닙니까. 어떤 말은 많은 사람들을 흔들어놓을 수 있겠지만, 제게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합니다."

- 한한 『나의 이상한 나라, 중국, 2013』 (원제: 『청춘(青春)』)

Random Variables (확률변수)

- 빅터 로스차일드가 출판한 자서전 『Random Variables』의 제목 (1984)

(* 그의 심복이었던 CIA의 방첩국장 제임스 엥겔턴이 말한 '거울의 미로'를 상기시킨다. 엥겔턴의 이 표현은 원래 시인 T.S. 엘리엇의 시 「게론티온(Gerontion)」에 나오는 구절("...multiplied variations in a wilderness of mirrors")을 인용한 것)

"어느 시대든 지배계급의 사상이 곧 그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이다."

(Die Gedanken der herrschenden Klasse sind in jeder Epoche die herrschenden Gedanken)

- 카를 마르크스 『독일 이데올로기 (Die deutsche Ideologie)』 (1845년~1846년 작성. 출판은 사후인 1932년에 이루어짐)

"주권자란 예외상태(비상사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Souverän ist, wer über den Ausnahmezustand entscheidet)

- 칼 슈미트 『정치신학 (Politische Theologie), 1922』

"광기(Madness)란 단순히 정신의 질환이 아니라, 사회가 '이성(Reason)'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발명해낸 배제의 수단이다."

-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원제: Folie et Déraison: 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 1961)

(* 푸코는 중세에는 광인들이 사회와 섞여 살았으나, 17세기 '이성(Reason)'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사회가 자신들의 '정상성'을 증명하기 위해 광인들을 병원과 감옥에 격리(배제)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함.)

관련 영화

1)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영화 1975, 소설 1962):

정신병원은 푸코가 말한 '대감금(Great Confinement)'의 현대적 버전. 주인공 맥머피는 '미친(Mad)'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정상성(Sane)'에 저항하는 인물. 래칫 간호사는 푸코가 말한 '권력의 미시물리학'을 상징하며,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적인 신체로 길들이려 한다.

2) 《시계태엽 오렌지》 (영화 1971, 소설 1962):

푸코의 《감시와 처벌》에 등장하는 '신체에 가해지는 규율'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알렉스에게 가해지는 '루도비코 요법'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박탈하고 사회에 무해한 존재로 개조하는 '생체 권력(Bio-power)'의 공포를 보여준다.

3) 《빠삐용》 (영화 1973, 소설 1969):

감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통해 사회가 부적응자를 어떻게 격리하고 소멸시키려 하는지 보여준다. 끝까지 탈출하려는 빠삐용의 의지는 푸코가 말한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명제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행위이다. 비슷한 변주: 알렉산드로스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 할리우드 영화 《쇼생크탈출》 등.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보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저항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영어 원문: "The conclusion would be that the political, ethical, social, philosophical problem of our days is not to try to liberate the individual from the state... but to liberate us both from the state and from the type of individualization which is linked to the state. We have to promote new forms of subjectivity through the refusal of this kind of individuality which has been imposed on us for several centuries."

- 미셸 푸코 에세이 〈주체와 권력 (The Subject and Power), 1982〉 (《Critical Inquiry》지에 게재)

"백인은 흑인을 발명해냈다(The white man invented the nigger)"

-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의 1963년 PBS 인터뷰

"백인이 흑인에게 "나를 증오하는가"라고 묻는 것은 강간범이 강간당한 사람에게, 또는 늑대가 양에게 "나를 증오하는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우리의 선조가 못된 뱀에게 물렸고 나 자신도 사악한 뱀에게 물려서 내 아이에게 뱀에게 물리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데, 바로 그 뱀이란 놈이 나더러 증오를 가르치는 자라고 비난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기독교가 미국에서 이룬 가장 위대한 기적은 흑인들을 전혀 폭력적이 되지 않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2300만의 흑인들이 압제자에 맞서 분연히 궐기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예수가 지금 여기 미국에 있었더라면 백인으로 오지 않았을 겁니다. 백인은 압제자입니다. 그는 탄압받는 자들로 왔을 것입니다. 그는 비천한 자들로 왔을 것입니다. 그는 하찮은 자들로 왔을 것입니다. 무시받고 경멸 받는 자들로 왔을 것입니다. 이른바 미국의 흑인으로 왔을 것입니다!"

"나는 누가 비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면서도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그 비인간적인 대접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하나의 범죄라고 믿고 있다. 만일 기독교 철학이 그렇게 해석되고 간디의 철학이 그것을 가르치고 있는 바라면, 나는 그것들을 범죄의 철학이라고 부르겠다."

"오늘날 엉클 톰은 머리에 터번을 두르지 않았다. 이 현대적인 20세기 엉클 톰은 이제 실크모자를 쓰고 있다. 그는 옷도 잘 입고 교육도 많이 받았다. 세련된 교양의 소유자일 수도 있다. 때때로 예일이나 하버드 악센트로 말을 한다. 교수님, 박사님, 판사님, 목사님이거나 무슨무슨 주교님에 박사님을 더할 수도 있다. 그들은 흑인 몸뚱이에 백인 머리를 달아 놓은 친구들이다."

(흑인에 도움된 백인이 정말 없냐는 질문에) "굳이 말하면 두사람이 있는데, 히틀러와 스탈린이다."

- 말콤 엑스(Malcolm X) 1960년대 초반 여러 대학 강연 및 인터뷰 (대표적으로 1963년 바너드 대학 강연 등에서 변주됨)

"오웰은 서적 금지를 두려워했다. 헉슬리는 책을 금지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무도 책을 읽으려 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웰은 정보를 박탈당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헉슬리는 너무 많은 정보가 주어져서 우리가 수동성과 이기주의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오웰은 진실이 우리에게 은폐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헉슬리는 진실이 무의미한 것들의 바다에 빠져 익사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오웰은 우리의 문화가 감옥이 될 것을 두려워했다. 헉슬리는 우리의 문화가 하찮은 일들로 가득 찬 난장판이 될 것을 두려워했다.

《1984》에서 사람들은 고통을 가함으로써 통제받는다. 《멋진 신세계》에서 사람들은 쾌락을 가함으로써 통제받는다.

-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의 미디어 비평서인 《죽도록 즐기기 (Amusing Ourselves to Death), 1985》

거대한 체스판

-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저술한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 1997)의 책 제목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

"Esse, non Videri"

- 발렌베리 가문 가문의 모토로, 19세기 중반 확립. 1917년, 재단 설립 시 공식화.

"동유럽을 지배하는 자가 하트랜드를 장악하고, 하트랜드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섬을 장악하며, 세계섬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장악한다."

(Who rules East Europe commands the Heartland; who rules the Heartland commands the World-Island; who rules the World-Island commands the world.)

- 핼퍼드 매킨더 (Halford Mackinder)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 (Democratic Ideals and Reality), 1919》

"석유를 장악하는 자는 국가들을 지배하고, 식량을 장악하는 자는 인류를 지배하며, 머니(화폐)를 장악하는 자는 세계를 지배한다."

(Control oil and you control nations; control food and you control the people; control money and you control the world.)

- 헨리 키신저가 1974년경 발언했다고 하나, 출처는 불분명하고 오류일 가능성 높음.

(* 미국 국가안보조찬회 보고서 NSSM 200의 맥락과 석유 파동 시기)

"생산보다 유통이 우위다. 유통을 장악한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 국제유태자본론 김종화 인드라 (네이버 블로그, 2008~)

"영국 왕좌에 어떤 꼭두각시가 앉든 상관없다. 대영제국의 화폐 발행권을 통제하는 자가 제국을 통제하는 것이며, 그 화폐 발행권은 바로 내가 쥐고 있다."

-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했다고 알려진 말이나, 그가 1815년에 이런 말을 했다는 당대의 기록은 전혀 없다. 이 문구는 19세기 말~20세기 초, 중앙은행 시스템과 로스차일드 가문을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반유대주의적 팜플렛이나 음모론 문헌에서 처음 등장하기 시작.

Novus Ordo Seclorum

(노부스 오르도 세클로룸)

"신세계질서"

- 1782년 6월 20일 Great Seal of the United States(미국 국장)에 새겨진 라틴어

Ordo ab Chao

(오르도 압 카오)

“혼돈으로부터 질서가 나온다”

영어: Order out of chaos

- 1801년 Scottish Rite Freemasonry 33도 최고평의회(Supreme Council) 문장에 사용

(* Freemasonry (프리메이슨) 의 상징적 모토)

"거리의 피가 흐를 때 사라."

"Buy when there’s blood on the streets."

-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1815년 워털루 전쟁 때 했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네이선 로스차일드가 죽고 수십 년이 지난 19세기 후반(1870년대 이후) 금융 에세이나 투자 지침서에 등장한 말

"더 위대한 것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적당히 좋은 것들을 포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Don't be afraid to give up the good to go for the great."

- 존 D. 록펠러

(* 이 문구는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의 경영 철학을 상징하는 명언으로 널리 인용된다. 다만, 그가 특정 연설에서 이 말을 했다는 기록보다는, 평소 주변인들에게 강조하거나 그의 경영 방식을 지켜본 이들이 정리한 '록펠러의 원칙'으로 전해진다.)

"경쟁은 죄악이다."

"Competition is a sin."

- 존 D. 록펠러

(프레더릭 게이츠(Frederick T. Gates)나 존 D. 록펠러 2세의 회고록, 그리고 역사학자 론 처노(Ron Chernow)의 평전 《타이쿤(Titan: The Life of John D. Rockefeller, Sr.)》에서 반복적으로 등장된 존 D. 록펠러의 핵심 사상. 오늘날 피터 틸의 핵심 사상이기도 하다.

- 하나의 질서(Order): 독실한 침례교인이었던 록펠러는 우주가 신에 의해 질서 정연하게 돌아가듯, 경제 역시 하나의 거대한 구심력을 가진 존재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에게 경쟁은 '혼돈(Chaos)'이자 '죄악'이었다.

- 효율의 극대화: 그는 수백 개의 작은 회사가 서로 싸우는 것보다,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사회 전체에 이득이라고 주장했다.

록펠러의 아들 존 D. 록펠러 2세는 대학 강연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아름다운 '아메리칸 뷰티' 장미를 피우기 위해서는 주변의 수많은 잔가지(작은 기업들)를 잘라내야 한다." 이것이 록펠러 가문의 '독점 정당화' 논리였다.)

"마오쩌둥의 영도 아래 진행된 중국의 사회적 실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성공적인 것 중 하나이다."

(The social experiment in China under Chairman Mao's leadership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and successful in human history.)

- 데이비드 록펠러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 기고글 "From a China Traveler" (중국 여행자로부터) (1973년 8월 10일)

"우리는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즈, 타임 잡지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우리 회의에 참석해 침묵의 약속을 지켜준 다른 훌륭한 언론사 사장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만약 우리가 그동안 대중의 빛 아래 노출되었다면, 세계를 위한 우리(엘리트)의 계획을 발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 데이비드 록펠러의 1991년 6월,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빌더버그(Bilderberg) 회의에서의 발언

"어떤 이들은 우리가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음모를 꾸미는 비밀 결사체의 일부라고 믿으며, 나 자신과 내 가족을 '국제주의자'라고 규정한다. 또한 우리가 전 세계를 하나의 정치 및 경제적 구조(신세계 질서)로 통합하기 위해 전 세계의 다른 이들과 공모한다고 믿는다. 만약 그것이 혐의라면, 나는 유죄이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If that's the charge, I stand guilty, and I am proud of it.)

- 데이비드 록펠러 《회고록(Memoirs, 2002)

"하나의 세력이 두 대립물을 모두 조종할 때, 그 결과는 사전에 결정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목격하는 '조작된 변증법'의 실체다."

(When the same power controls both opposites, the outcome is predetermined. This is the reality of the managed dialectic.)

"금융 엘리트들에게 이념은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다. 그들은 독점적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한 손으로는 자본주의를, 다른 한 손으로는 공산주의를 육성했다."

(For the financial elite, ideology is a tool, not a goal. They nurtured capitalism with one hand and communism with the other to strengthen monopolistic control.)

- 앤서니 서튼(Antony C. Sutton) 《Wall Street and the Rise of Hitler (1976)》, 《Wall Street and the Bolshevik Revolution (1974)》

"Cui Bono?" (누가 이득을 보았는가?)

- 제임스 코벳 (James Corbett)

(* 대안 언론인이자 조사 전문가인 제임스 코벳은 복잡한 사건이나 음모의 배후를 추적할 때 항상 이 라틴어 경구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의 대표적인 다큐멘터리 시리즈인 《The Corbett Report》에서 수차례 강조되었으며, 특히 9/11 사건의 10주년을 맞아 제작된 〈9/11: A Conspiracy Theory〉 (2011년)와 이후의 〈Cui Bono?〉 관련 팟캐스트 에피소드들에서 핵심 키워드로 사용되었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고 싶다면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누가 이득을 보는가(Cui bono?)'를 물어야 한다는 것. 사건의 결과로 권력을 얻거나 자산을 불린 자가 누구인지 알면, 그 사건의 설계자가 누구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To my children,

and their children,

and their children's children:

j'ai fait mon possible.

(I did my best)

...

"Mighty oaks from little acorns grow"

"거대한 참나무도 작은 도토리로부터 자라난다"

- 제임스 코벳의 《Reportage, 2024 서문

"후흑의 겉에는 반드시 인의와 도덕의 탈을 뒤집어 써야 하고, 후흑을 속으로 하고 인의로 겉으로 한다."

"동양인과 서양인은 그 총명과 재지에서 서로 비슷하다. 다만 연구방법이 다를 뿐이다. 서양인은 총명과 재지를 물리 연구에 쏟았고, 동양인은 인사 연구에 쏟았다. 서양인은 우주자연의 이치를 찾아내 물리학상의 여러 학살을 만들어냈고, 동양인은 우주자연의 이치를 찾아 내 인사상의 여러 학살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물리학상의 여러 학설은 역학법칙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고 인사상의 여러 학설 역시 심리학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남에게 양보하는 것은 나 자신의 생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까지만 하고 남과의 경쟁은 내가 생존할 수 있는 선까지만 한다. 생물은 상호 경쟁을 통해 진화할 수도 있지만 상호 양보를 통화 진화할 수도 있다.”

- 이종오(리쭝우)의 《후흑학(厚黑學), 1911》

"나는 삼중으로 고향이 없다. 오스트리아 안에서는 보헤미아인으로, 독일인 중에서는 오스트리아인으로, 세계 안에서는 유태인으로서. 어디에서도 이방인이고 환영받지 못한다."

- 구스타프 말러. (말러의 부인인 알마 말러(Alma Mahler)가 남긴 회고록 『구스타프 말러: 기억과 편지(Gustav Mahler: Memories and Letters, 1940)』에 기록 됨)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니고 나는 떠다니는 부평초일 뿐이네."

(No soy Coreano, ni soy Japanes, yo soy desarraigado)

- 가네시로 가즈키 <Go, 2000>

빨가벗고 몸 하나로 뭉치자

빨가벗고 몸 하나로 뭉치자

팬티도 브래지어도 필요 없다

겉옷은 더욱더 필요 없다

조상이 누군지도 모르는

제기랄 놈의 성씨(姓氏)

우라질 놈의 가문, 학벌, 직업

벌써 좆 돼버린 너와 나의 과거

다 필요 없다 사랑 하나면

다 필요 없다 섹스 하나면

이 밤, 그대여 빨가벗고 뛰어서 오라

- 마광수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1989』

나도 못생겼지만

못생긴 여자가 여권(女權)운동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여자가 남자에 대해 적개심을 표시할 땐 더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못생긴 남자가 윤리, 도덕 부르짖으며 퇴폐문화 척결운동하는 것을 보면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그 남자가 성(性) 자체에 대해 적개심을 표시할 땐 더 측은한 마음이 생긴다.

못생긴 여자들과 못생긴 남자들을 한데 모아 자기네들끼리 남녀평등하고 도덕재무장하고

고상한 정신적 사랑만 하고 퇴폐문화 없애고 야한 여자 야한 남자에 대해 실컷 성토하게 하면

그것 참 가관일 거야

그것 참 재미있을 거야

그것 참 슬픈 풍경일 거야

- 마광수 시집 『야한 여자가 좋다, 1989』

난정서(蘭亭序)

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 會於會稽山陰之蘭亭 修契事也

영화 구년 계축년 늦은 봄 초승(서기 353년 3월 3일)에 회계산 북쪽 난정에 모였는데 계제사를 지내기 위함이다.

群賢畢至 少長咸集 此地有崇山峻嶺 茂林脩竹

많은 현인들과 젊은이 나이 든 이 등 모두가 모였다.

이곳엔 높은 산과 험준한 봉우리와 무성한 숲 그리고 대숲이 있다.

又有淸流激湍 映帶左右 引以爲流觴曲水 列坐其次

또 맑은 시냇물과 여울이 좌우를 띠처럼 서로 비치며 둘러싸고 있기도 하며,

시냇물을 끌어들여 술잔을 띄울 곡수를 만들고 차례로 줄지어 둘러앉았다.

雖無絲竹管絃之盛 一觴一詠 亦足以暢敍幽情

비록 거문고나 피리같은 음악이 있는 성대한 연회는 아닐지라도 술 한잔 마시고 시 한 수 읊으며 그윽한 감정을 나누기에 충분하도다.

是日也 天朗氣淸 惠風 和暢 仰觀宇宙之大 俯察品類之盛

이날은 하늘은 깨끗하고 공기는 맑았으며 은혜로운 바람은 따스하고 화창했다.

고개들어 우주의 광대함을 우러러보고 고개 숙여 만물의 풍성함을 살펴 본다.

所以遊目騁懷 足以極視聽之娛 信可樂也

자유롭게 눈을 들어 마음 가는 대로 생각을 풀어놓으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즐거움이 참으로 흥에 겨운 일이로다.

夫人之相與俯仰一世 或取諸懷抱 悟言一室之內

무릇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늘을 우러르고 땅을 굽어 보며 한 평생을 살아감에 있어, 어떤이는 회포를 풀며 벗들과 한방에 마주앉아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或因寄所託 放浪形骸之外 雖趣 舍萬殊 靜躁不同

또 어떤 이는 몸은 자신이 처해있는 자리에 매어 있지만, 마음만은 육체 밖에서 마음대로 노닐게 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비록 취향이 만가지로 다르고 고요함과 시끄러움이 서로 같지 않으니...

當其欣於所遇 暫得於己 快然自得

저마다 자신의 취흥이 기쁠 때는 자기 뜻을 주장하며 스스로 득의하여

曾不知老之將至 及其所之旣倦 情隨事遷 感慨 係之矣

장차 노년이 다가오리라는 것 조차 잊고 즐긴다.

그러다 그가 즐기는 일에 권태를 느낄 때도 있고,

감정이 옮겨가면서 변하게 되기도 하느니라.

向之所欣仰之間 以爲陣迹

이전에 즐거웠던 일이 어느 짧은 순간에 낡은 과거사의 자취로 바뀌어버리기도 하는 것이다.

尤不能不以之興懷 況脩短 隨化 終期於盡 특히 그런 것 때문에 감회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허나 목숨이 길 건 짧 건 모두 자연의 조화를 따라 마침내는 모두가 끝에 이르게 되는 것이거늘.

古人 云死生 亦大矣 豈不痛哉 옛 사람이 말하 길 "죽고 사는 것은 매우 큰 일이다"고 하였으니 이 어찌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는가.

每攬昔人興感之由 若合一契

나는 옛사람들이 감회를 일으켰던 까닭을 알게 될 적 마다

마치 두 개의 부절을 하나로 맞춘 듯 내 생각과 똑같은 것을 깨닫는다.

未嘗不臨文嗟悼 不能諭之於懷 固知一死生爲虛誕

그러니 옛 사람들의 문장을 대할 때 마다 탄식하고 슬퍼하지 않을 수가 없어

마음을 달래려고 해도 쉬 달래지지 않는다.

죽고 사는 일이 서로 같은 일이라는 말은 허황된 말이다.

齊彭爲妄作後之視今亦猶今之視昔悲夫

팽조처럼 오래 사는 일과 일찍 죽는 일이 서로 같다고 하는 말 역시

함부로 지어 낸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후세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를 보는 것 또한 오늘의 우리가 옛사람을 보는 듯하리니 슬프도다.

故列敍時人 錄其所述 雖世殊事異 所以興懷 其致一也 後之覽者 亦將有感於斯文

그리하여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이름을 순서 대로 적고 그들의 시들을 여기에 수록하였다. 비록 세상이 달라지고 세태도 변하겠지만 감회를 일으키게 되는 이치는 서로가 같을 것이다. 후세에 이 글을 읽는 사람도 또한 장차 이 문장에 대하여 감회가 있으리라.

- 왕희지 《난정서(蘭亭序)》 (서기 353년 3월 3일 집필 됨. 현재 전해지는 《난정서》는 당나라 때의 명필들(풍승소, 우세남, 저수량 등)이 원본을 정교하게 베껴 쓴 모본(模本)이나 돌에 새긴 뒤 찍어낸 탁본들)

"신주쿠 역은 거대하다. 하루에 총 350만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 역을 지나간다. 기네스북은 JR 신주쿠 여을 '세계에서 가장 승객이 많은 역'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많은 선로가 그 역 구내를 가로지른다. 주요 노선만 해도 주오 선, 소부 선, 사이쿄 선, 쇼난신주쿠 선, 나리타 익스프레스. 레일들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다. 승강장은 전부 열 여섯 개, 거기에다오다큐 선과 게이오 선이라는 두 군데의 민간 철도 노선과 세 군데의 지하철 노선이 옆구리에 플러그처럼 꽂혔다. 그야말로 미궁이다. 통근 러시아워, 그 미궁은 사랑의 바다로 변신한다. 바다는 거품을 피워 올리고 뒤집히고 포효하고, 파도는 입구와 출구를 향하여 거침없이 밀려가고 밀려온다. 환승을 위해 이동하는 사람의 흐름이 여기저기서 마구 얽히면서 위험한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아무리 위대한 예언자라도 그리도 거칠게 뒤집히는 바다를 둘로 가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게 압도적인 사람의 물결이 일주일에 5일, 아침저녁으로 두 번 결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역무원들에 의해 아주 매끄럽게 별 탈 없이 흘러간다니 참으로 믿기 힘들 정도이다.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게 신기하고, 사고로 유혈 참사가 벌어지지 않는 게 신통하다고 쓰쿠루는 언제나 감탄한다."

"아마도 다시는 이 장소에 오지 않을 것이다. 다시 에리를 만날 일도 없을지 모른다. 두 사람은 제각기 정해진 장소에서 각자의 길을 앞으로 걸어 나갈 것이다. 아오가 말했듯이 이제 돌아갈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니 어딘가에서 물처럼 소리도 없이 슬픔이 밀려왔다. 그것은 형태가 없는 투명한 슬픔이었다. 자신의 슬픔이면서 손이 닿지 않는 먼곳에 있는 슬픔이었다. 가슴이 헤집은 듯 아프고 숨이 막혔다."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2013』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니, 나니와(오사카)의 영화도 꿈속의 꿈이로다."

원문: 露と落ち 露と消えにし 我が身かな 浪速のことは 夢のまた夢

-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사세구 (1598)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구약성경의 〈전도서(Ecclesiastes)〉 1장 2절 (BC 3세기~4세기경)

(* 이스라엘의 가장 부유하고 지혜로웠던 왕 솔로몬의 노년기 고백으로 전해진다. 모든 부(Wealth)와 권력(Power)의 정점을 찍어본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승자의 허무'다.)

"이제야 깨달았도다. 생이 이렇게 짧은 줄을!"

I see it now. This world is swiftly passing!

- 인도판 그리스 로마 신화로 불리는 대사서시 『마하바라타(Mahabhrata)』 (BC 4세기 ~ 기원후 4세기)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삶은, 마치 달리는 백마가 틈 사이를 지나감처럼 빠르다."

- 장자 『외편』 「지북유」 (BC 4~3세기경)

삶을 즐거워하는 것이 미혹 아닐까?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어려서 집을 잃고 돌아갈 줄 모름과 같은 것 아닐까? 미녀 여희는 애라는 곳 변경지기 딸이었네. 진나라로 데려갈 때 여희는 너무 울어서 눈물에 옷깃이 흠뻑 젖었지. 그러나 왕의 처소에 이르러 왕과 아름다운 잠자리를 같이하고 맛있는 고기를 먹게 되자, 울던 일을 후회하였다네. 죽은 사람들도 전에 자기들이 삶에 집착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 장자 『제물론』 「여희의 후회」 (BC 4세기 후반 ~ 3세기 초)

부유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가난하면 떠나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것은 시장의 생리와 같으니, 아침에는 시장이 붐비다가 저녁에는 텅 비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富者, 人之所聚也; 貧者, 人之所去也. 夫朝趨市, 暮則空, 非好趨而惡空, 志之所求也.

- 사마천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 (BC 91)

소진이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베틀에서 내려오지도 않고, 형수는 밥도 지어주지 않았다. 후에 소진이 육국의 재상이 되어 금의환향하자, 형수는 뱀처럼 기어서 땅에 엎드려 사죄했다. 소진이 웃으며 물었다. "형수님은 어찌하여 전에는 그리 거만하더니 지금은 이토록 공손하십니까?" 형수가 얼굴을 땅에 대고 대답했다. "계자(소진의 자)께서 지위가 높고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以季子之位尊而多金)" 소진이 탄식하며 말했다. "사람이란 가난하면 부모도 자식 취급을 안 하고, 부유하면 친척들도 두려워하는구나. 하물며 타인은 어떻겠는가!"

- 사마천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 (BC 91)

강태공이 위수에서 낚시하며 때를 기다릴 때, 가난을 견디지 못한 아내 마씨는 떠나버렸다. 후일 태공이 주나라의 제후가 되어 돌아오자 마씨가 길을 막고 재결합을 청했다. 태공은 물그릇을 가져오게 하여 땅에 쏟은 뒤 말했다. "이 물을 다시 그릇에 담아 보시오." 마씨가 진흙만 묻힐 뿐 담지 못하자 태공이 차갑게 말했다. "한 번 헤어진 인연은 다시 합칠 수 없는 법, 마치 엎질러진 물과 같소(覆水不返盆)."

- 《습유기(拾遺記)》 또는 《태공망전(太公望傳)》 (원형은 기원전 11세기 주나라 건국기이나, 문헌 정착은 서기 4세기경 (진나라 왕가))

친구여, 술이나 좀 들려무나.

인정은 물결같이 뒤집히는 것.

흰 머리 되도록 사귄 벗도 칼을 겨누고,

위인도 후배의 전정을 막나니

보라, 비에 젖어 잡풀은 우거져도,

봄바람 차워 꽃은 못 핀다.

뜬구름 같은 세상일 말해 무엇하랴,

누워 배나 쓸며 지냄이 좋으리

- 왕유(王維) 〈작로주(酌酒, 술을 따르며)〉 (750년대 전후 추정)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다른 강물이 계속해서 흘러오기 때문이다."

- 헤라클레이토스 《단편들 (Fragments), BC 500년경》

(* 그의 저서는 소실되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인용구를 통해 전해진다)

"시스템이 분기점(Bifurcation)에 도달했을 때,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요동'이다. 그렇다면 그 요동을 일으킨 주체는 누구인가?"

"오늘날의 생명체처럼 고도로 질서 잡힌 구조와 협응된 기능이 나타나기 위해 분자들이 스스로 모일 확률은 지극히 희박하다. 따라서 현재 형태의 생명이 자연적으로 발생했다는 생각은 생명 탄생 전 진화가 일어난 수십억 년의 시간 척도에서도 거의 불가능하다."

"실재(Reality)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우리가 참여하는 능동적인 구성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드러난다."

"시간의 비가역성은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가져오는 메커니즘이다. 미래는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며, '시간은 구성되는 것'이다."

- 일리야 프리고진 (Ilya Prigogine) 《혼돈으로부터의 질서 (Order Out of Chaos: Man's New Dialogue with Nature, 1984)》, p. 176 (확률 관련), p. 298 (시간의 화살 관련).

"물질 그 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물질은 원자 입자들을 진동시키고, 이 가장 미세한 태양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어떤 힘(Force)에 의해서만 발생하고 존재한다. 우리는 이 힘 배후에 의식적이고 지성적인 정신(Conscious and Intelligent Mind)이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이 정신이 모든 물질의 근원(Matrix)이다."

- 막스 플랑크 《성격으로서의 물질(Das Wesen der Materie)》 (The Nature of Matter, 1944)

"원자 이론의 가르침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존재의 드라마에 있어서 관객이며 연기자로서의 우리 입장을 조화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부처나 노자와 같은 사상가들이 일찍이 부딪쳤던 인식론적 문제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다."

- 닐스 보어 (Niels Bohr) 《원자 물리학과 인간 지식 (Atomic Physics and Human Knowledge), 1958》, p. 20. (원본: 1937년 캐나다 강연 "Unity of Knowledge")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Contraria Sunt Complementa)이다."

- 닐스 보어가 1947년 11월 7일, 덴마크 국왕으로부터 코끼리 훈장(Order of the Elephant)을 수여받으며 정한 가문의 문장(Coat of Arms) 모토.

"지난 전쟁 이후 이론 물리학 분야에 끼친 일본의 지대한 공헌은 극동의 전통 속에 담긴 철학적 이념과 양자 이론의 철학적 본질의 사이의 어떤 관계를 시사한 점일 것이다."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Werner Heisenberg) 《물리학과 철학 (Physics and Philosophy), 1958》, p. 202

부분과 전체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의 자전적 철학서, 《부분과 전체(Der Teil und das Ganze), 1969》

"인지(人智)에 관한 일반적 관념 …… 원자 물리학 분야에서의 여러 가지 발견에 의하여 설명되고 있는 이러한 것은 본질적으로 생소한 것이거나 전대미문의 것이거나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우리의 문화사 속에서도 하나의 맥락을 가지고 찾을 수 있는 것이며, 불교나 힌두 사상 속에서는 더 중요한 중심적 위치를 점했던 것이다. 앞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옛 지혜의 예증이자 그것의 장려이며, 또한 그것을 한층 더 갈고다듬는 일이다."

- 로버트 오펜하이머 (Robert Oppenheimer) 《과학과 일반적 이해 (Science and the Common Understanding), 1954》), pp. 8-9. (1953년 BBC 리스 강연 내용 기반)

"미시의 세계에서 존재란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관측을 했을 때만 그 존재의 모습이 확인되지, 관측을 하지 않았을 때는 파동도 아니고 입자도 아닌 형태로 존재한다. 양자 수준에서 우주는 미래뿐 아니라 과거도 아직 결정되지 않은 하나의 진행 중인 일이다."

- 존 휠러 (John Wheeler) 논문 "Law without Law" (1983), Quantum Theory and Measurement (Princeton University Press) 수록. 지연된 선택(Delayed Choice) 실험 설명 대목.

"새로운 질서, 즉 내장된 질서(Implicate Order)에서는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 속에 접혀 들어가 있다(Enfolded). ... 현실의 감추어진 질서 내에서 우주의 전체성은 각 부분 속에 잠재되어 있으며, 우리가 보는 현상 세계는 그 내장된 질서가 밖으로 펼쳐진(Explicate) 결과일 뿐이다."

- 데이비드 봄 《전체와 내장된 질서》(원제: Wholeness and the Implicate Order, 1980)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눈먼 것이다."

영어 원문: "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

독일어 원문: "Naturwissenschaft ohne Religion ist lahm, Religion ohne Naturwissenschaft ist blind."

- 알버트 아인슈타인 《과학, 철학, 그리고 종교 (Science, Philosophy and Religion, A Symposium)》을 위한 논문에서 발표 (1941), 이후 그의 에세이집인 《나의 만년의 기록 (Out of My Later Years, 1950)》에도 수록

"현대 물리학의 두 지주인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은 우리로 하여금 고대 힌두교도, 불교도 혹은 도교 신봉자들이 가졌던 것과 매우 흡사한 세계관을 갖게 한다."

-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 《물리학과 도(The Tao of Physics, 1975)》

오늘날 생명체의 근원 물질이라고 하는 DNA는 4개의 염기로 이루어진 긴 사슬이다. 4개의 염기는 ATCG로 표현하거니와, 이들은 3중으로 짝을 이루어 하나의 아미노산을 지정한다. 따라서 아미노산 코드는 모두 64개가 된다.

이것은 주역의 괘상과 정확히 일치한다. 주역의 괘상도 천, 지, 인이라는 3중 구조를 가지고 있고, 한 층에는 소양, 노양, 소음, 노음이라는 4개의 요소가 있다. 주역의 64괘 구성은 DNA의 아미노산 지정 코드와 일치하는 것이다.

DNA는 우주의 보편적 생명체 구조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 하필 주역의 괘상과 일치할까? 그것은 주역이 과학적이라는 이야기와 다름 아니다.

- 김승호 《주역원론, 2009》

"우리가 감각하는 1초의 붉은색 빛 뒤에는 400조 번의 진동이 숨어 있다."

- 앙리 베르그송 《물질과 기억 (Matter and Memory), 1896》

(베르그송의 캐치프레이즈 (엘랑 비탈): "L'élan vital" (생의 도약). 베르그송은 물질의 고착된 규칙을 뚫고 솟아오르는 이 '생의 도약'이야말로 진화와 창조의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가시적인 세계는 실재하는 세계의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의 눈은 진리의 그림자만을 보고 있으며, 우리는 그 그림자들이 실제 현실이라고 믿고 있다."

- 플라톤 《국가(The Republic)》 제7권 '동굴의 비유(Allegory of the Cave)' (BC 375년경)

"나는 뇌가 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식을 가두는 필터(Filter)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죽음이라 부르는 것은 의식의 끝이 아니라, 무한한 다차원적 현실로 나아가는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 이븐 알렉산더 《나는 천국을 보았다(Proof of Heaven), 2012》

"나의 연구 데이터가 아무리 압도적일지라도, 주류 과학의 패러다임이 바뀌기 전까지는 이 증거들은 무시될 것이다. 나는 내 생애에 이 진실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보지 못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과학의 진보는 장례식을 치를 때마다 한 걸음씩 나아갈 뿐이다."

- 이안 스티븐슨 《윤회와 생물학: 모반과 선천적 결함의 병인학에 기여(Reincarnation and Biology: A Contribution to the Etiology of Birthmarks and Birth Defects)》의 서문 (1997)

사회자 프리먼이 "당신은 이제 신을 믿습니까?(Do you now believe in God?)"라고 묻자, 융은 잠시 침묵하며 생각에 잠긴 뒤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지금요? ... (잠시 멈춤) 어렵군요. 나는 믿지 않습니다. 나는 '압니다(I know)'. 나는 믿음(Belief)이 필요 없습니다. 나는 '압니다(I know)'.

- 당시 84세였던 노학자 융이 1959년 10월 22일 BBC의 인터뷰 프로그램인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 사회자 존 프리먼과 대담을 나누던 중 나온 이야기

"불려졌든, 불려지지 않았든, 신은 존재할 것이다."

"Vocatus atque non vocatus, Deus aderit."

(Called or not called, God will be present.)

- 융이 에라스무스의 저작에서 발견한 고대 라틴어 경구로, 융은 스위스 퀴스나흐트에 있는 자신의 집 현관 위와 묘비에 이 글귀를 새겼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변주:

소설 《1Q84, 2009-2010》에서 하루키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신은 불러내어지든 불러내어지지 않든, 차가우나 차갑지 않으나 여기에 존재한다."

여기서 '차가우나 차갑지 않으나'라는 표현은 융의 원문에는 없으나, 하루키가 추가한 수식어로, 하루키가 굳이 이 표현을 넣은 이유는 그의 문학적 세계관과 관련이 깊다.

신의 중립성(냉혹함): 하루키 세계관 속의 '신'이나 '시스템(리틀 피플 등)'은 인간의 도덕이나 감정에 개입하지 않는다. 신은 따뜻하게 우리를 구원하는 존재도, 차갑게 우리를 벌주는 존재도 아닌, 그저 현상으로서 존재(Presence)할 뿐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차가움'이라는 감각적 대비를 사용한 것.

시스템의 불가피성: 《1Q84》의 배경이 되는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는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굴러간다. 융이 말한 "신(무의식의 원형적 힘)은 우리가 부르든 말든 작동한다"는 논리를, 하루키는 "그것이 우리에게 우호적이든(따뜻하든) 적대적이든(차갑든) 상관없이 실재한다"는 뜻으로 확장한 것이다.)

"무에서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Ex nihilo nihil fit")

- 파르메니데스 《자연에 관하여(On Nature), BC 475년경》 - 훗날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Metaphysics), BC 350~322》에서 인용

"만약 모든 존재가 사라질 수 있는(무로 돌아갈 수 있는) 존재라면, 과거 어느 시점에는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에서 유는 나올 수 없으므로', 지금 무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반드시 스스로 존재하는 '필연적 존재(신)'가 있음을 의미한다."

-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Summa Theologica, 1265년~1274년 집필)》

The Cosmic Game

-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Stanislav Grof)가 저술한 책 제목: 《코스믹 게임, 1998》

Cosmic Drama

- 앨런 와츠가 했던 TV 프로그램 강의의 제목 (1972)

(* 와츠는 우주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신이 스스로를 잊어버리고 인간이라는 배역을 맡아 벌이는 '우주적 연극(Cosmic Drama/Lila)'이라고 보았다.)

"진동의 원리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 방음 시설이 된 방을 상상해보자. 우리는 이 방 안의 완전한 고요 속에 앉아있다. 이제 파리채를 들고 공기 속에서 휘둘러보자. 파리채가 움직이면 파리채 전방의 공기는 압축되고, 후방의 공기는 희박해진다. 이 행위는 가만히 있던 공기 속에 두 가지의 새로운 상태 - 압축된 공기와 희박해진 공기 - 곧 '이원성' 을 만들어낸다.

압축된 공기와 희박해진 공기는 동심원 파동의 형태로, 그 근원인 파리채로부터 퍼져나가서 방안을 채운다. 공기가 두 상태 사이를 오락가락하면서 고막에 부딪히면 소리가 들린다. 이 매력적인 행위를 멈추면 소리도 멎는다. 공기는 압축된 상태와 희박해진 상태의 중간 상태인 이전의 행복하고 편안한 상태로 돌아가서는 그저 거기에 '있다'. 공기는 그저 '있는'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이원성이 사라진 다음의 합일 상태이다.

허공, 곧 절대계, 혹은 순수의식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누군가가, 혹은 무엇인가가 흔들어 놓으면 그것은 물결친다. 이 물결은 파동처럼 허공을 가로지르며 퍼져나가 전자기장을 형성한다. 이 물결 치는 의식이 우리 눈의 망막에 부딪히면 그것이 빛의 입자, 즉 광자로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광자는 이 진동하는 허공, 즉 전자기장의 한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가, 혹은 무엇인가가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허공을 더욱 빨리 흔들면 우리는 빛보다 더 강력한 방사선인 X선을 얻게 된다. 그리고 허공이 그보다 더욱 빠르게 흔들리면 감마선이 나오고, 그것은 물질의 기본 원소인 원자의 구성 입자, 즉 전자와 양성자로 쪼개질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이 물결 치며 진동하는 의식이 '물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의식을 빠르게 진동시킬 수록 더 다양한 종류의 물질, 혹은 입자들을 얻어낼 수가 있다.

간단히 말해서, 진동 상태의 의식은 우리에게 낯익은 물질로 화현하여 주변의 온갖 형체들을 빚어내는 재료가 된다. 테이블, 꽃, 꽃의 향기, 그리고 우리의 신체는 모두 빠르게 진동하는 의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 이차크 벤토프 (Itzhak Bentov) 《우주의식의 창조놀이(Stalking the Wild Pendulum: On the Mechanics of Consciousness, 1977)》

생명과 동화되면서 나는 자연과 인류에 작용하는 모든 파괴적 힘을 체험하고 탐험했으며, 지구를 더 살기 편하게 만들겠다고 몰아치는 현대 과학기술 속에서 그 힘이 더욱 강화되어 투사되는 광경을 보았다. 나는 현대전 무기의 무수한 희생자 전부였고, 강제수용소 안 가스실에서 죽어간 포로였고, 독성 폐수에 오염된 물고기였고, 제초제로 시든 초목이었고, 살충제를 뒤집어쓴 벌레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웃는 아기, 모래 위에서 노는 귀여운 아기, 갓 태어난 네발짐승, 정성껏 지어진 둥지에서 막 부화된 새, 맑고 투명한 바다 속을 누비는 영리한 돌고래와 고래, 아름다운 목초지와 숲 등의 감동적인 영상들이 중간중간 떠올랐다. 나는 생명에 대한 깊은 연민을 느꼈고, 생태학적 인식이 투철해졌으며, 지구의 생명을 보살피는데 힘을 보태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종교학, 철학 교수였던 크리스토퍼 바흐의 세션 내용 중 일부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타난다.

이때의 '나'는 어떤 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포함하여 아우르는 배후의 일체였다. 인류의 모든 체험을 포함한다는 점에서는 집합적이라 하겠지만, 사실 그것은 분열되지 않은 온전한 하나였다. 나는 하나였다. 나는 살인자이며 그 희생자였다. 나는 그 짓을 나 자신에게 하고 해왔다. 인류 역사의 고통은 곧 나의 고통이었다. 희생자는 따로 없었다. 내가 나 자신에게 벌이는 짓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겪는 모든 것, 지금껏 일어난 모든 일은 내게 책임이 있었다. 나는 내가 창조한 것들을 살펴보았다. 내가 한 짓이다. 내가 하고 있는 짓이다. 내가 이 모든 일을 선택했다. 내가 이 끔찍한 세상 전부를 창조하기로 선택했던 것이다.

이들의 공통적인 증언은 지금까지 자신이 현실로 받아들였던 세계가 사라지고 의식이 하나로 확대되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알고있던 한 사람의 자아에서 벗어나서 완전히 다른 누군가가 되기도 하고, 식충 식물이 되어 파리를 잡아먹기도 하며, 지진과 원자 폭탄의 폭발을 거쳐 준성이나 맥동성에 이르는 무생물계의 온갖 현상들도 체험을 했다는 것이다. 또 선과 악의 경계가 희미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체험들을 단순한 환각 현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마치 좌뇌로만 세상을 보는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베트남의 승려인 탁닛한이 쓴 시 <진정한 이름으로 날 불러주오>에도 절대의식이 여러 존재로 분한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이 시에서 그는 봄 나뭇가지 꽃눈이 되고, 날개 연약한 작은 새가 되며, 꽃봉오리 속 애벌레가 되고, 바위 속에 몸을 숨긴 보석이 된다. 또 고국을 탈출하다 해적에게 강간당하고 바다에 몸 던진 열두 살 소녀, 또한 아직 남의 마음을 헤아리고 사랑하는 가슴을 지니지 못한 해적이기도 하다. 그는 모든 것이자, 모든 것이 아니다.

이런 통찰은 창조 과정 이전의 비존재 상태를 "얼굴은 얼굴을 보지 않았다"라고 표현한 어느 카발라 문헌을 떠올리게 한다. 요컨대 창조의 원인은 "신이 신을 바라보고자 원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페르시아의 위대한 신비가 잘라루딘 루미도 "나는 숨겨진 보물이므로, 알려지기를 원 한다……. 나는 이 우주 전체를 창조했고, 만물이 품은 목적은 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다"라는 글을 남긴 바 있다.

창조주의 장난기, 자기만족, 익살 등도 창조 과정에 대한 묘사에서 종종 강조되곤 한다. 이 우주와 존재 계를 릴라 또는 신의 유희이라고 말한 고대의 힌두 문헌들은 이런 특징들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창조는 하느님(브라흐만)이 스스로 자기 안에서 꾸며낸 무한히 복잡 정교한 우주적 연극이자 게임이다. 그는 이 연극을 생각해낸 극작가이자 제작가이자 감독인 동시에 그 안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다. 이 게임은 무수한 차원과 수준에 걸쳐 상상할 수 없는 규모로 펼쳐지고 있다.

지루함도 창조의 또 다른 중요한 '동기'로서 종종 제시되곤 한다. 인간에게는 신성 체험이 대단히 광대하고 놀라운 일이겠지만, 신성으로서는 언제나 끝없이 이어지는 단조로운 상태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란 변화, 활동, 움직임, 극적임, 놀라움을 향한 초월적 갈망을 충족시키려는 거대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차원과 수준 속에서 무수히 존재하는 현상계는 절대의식의 모험과 신성한 여흥에 무한한 놀이거리를 제공한다. 단적으로 말하면, 창조는 분화되지 않은 절대의식이 우주적 권태, 즉 단조로움을 극복하려고 벌이는 행위다. 중세의 카발라 문헌들도 신이 우주를 창조한 이유들 중 하나가 권태로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물질계라는 환영을 창조하는데 사용된 중요한 책략으로 하찮음과 추함을 들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모두 찬란하고 영묘한 존재라면, 예컨대 태양으로부터 직접 생명에너지를 공급받고 히말라야, 그랜드 캐니언, 자연 그대로의 태평양 섬들과 같은 경치 속에서만 산다면, 우리가 신성계의 일부라는 사실은 너무나 뻔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건물이 알함브라 궁전, 타지마할, 상도 유적, 샤르트르 대성당과 같은 모습이고, 미켈란젤로의 조각상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늘 베토벤과 바흐의 음악이 흐른다면, 세상의 신성한 본질을 인식하는 일이 조금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분비물, 배변물, 결함, 병, 게다가 불쾌한 내용물이 든 위와 장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사실은 신성의 표출을 확실히 방해하고 가려버린다. 구토, 트림, 방귀, 대변, 소변 등의 온갖 생리적 기능과 육체의 최종적 부패는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 마찬가지로 멋없는 자연 풍경, 쓰레기장, 오염된 공장지대, 외설적인 낙서에다 냄새까지 고약한 화장실, 도시의 빈민가, 쓰러져 가는 무수한 가옥들은 우리의 삶이 신성한 유희라고는 도무지 깨닫지 못하게 한다. 추함보다는 아름다움에서 신성을 연상하는 것이 훨씬 쉽다.

하지만 더 넓은 맥락에서 보면, 우주의 청사진 안에 추함을 포함시키는 것은 존재의 폭을 더 풍요롭고 충만하게 하고 창조의 신성한 본질을 숨기는 데도 도움을 준다. 이런 관점에서는 우리의 난해한 본성, 즉 결정론 대 자유 의지라는 문제를 설명해주는 극작가의 입장에 관심이 쏠리게 된다. 우주 속의 모든 경계는 궁극적으로 변덕스럽기 때문에, 우리들 각자는 고정된 정체성 없이 창조자인 동시에 피조물로서 존재한다.

-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Stanislav Grof) 《코스믹 게임, 1998》

"의식활동이 있으려면 필연적으로 나와 나 아닌 것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인간의 의식은 우주적 차원의 생명적 전기와 같아서 마치 자석이 혼자 있으면 그 자석의 끌어당기는 힘(의식)이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대상이 없으면 홀로 빛나는 빛과 같이 근야 각성 그 자체로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생각이나 느낌 등의 대상이 생겨나면 의식은 활발히 활동을 시작하니 이와 같은 의식의 활동이 곧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의식활동이 있는 한 전체와 개체는 반드시 필요한 인식의 전제조건입니다."

- 김연수 《내 안의 신을 보라, 2003》 Pg. 203

"우리는 영적인 경험을 하는 인간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적인 경험을 하는 영적 존재이다."

(원문: "We are not human beings having a spiritual experience. We are spiritual beings having a human experience.")

- 테야르 드 샤르댕 《현상으로서의 인간 (The Phenomenon of Man), 1959》, 《미래로의 전진 (The Future of Man, 1959)》 (집필은 1930~40년대에 이루어짐)

"당신은 바다 속의 한 방울 물이 아니다. 당신은 한 방울의 물 속에 담긴 거대한 바다 전체다."

(시적 허용을 더한 번역:

"그대는 대양의 한 파편이 아니라, 한 방울의 이슬 안에 응축된 대양 그 자체이다.")

- 루미 《마스나비 (Masnavi)》 (1260년대 추정)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무시하며 살고 있는지 보여주기 위해 친숙한 삽화 하나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그림을 보시면, 서로 입을 맞추려는 듯한 두 사람의 옆얼굴이 보일 겁니다. 하지만 그 두 얼굴에서 조금만 눈을 떼어 가운데의 흰 부분을 보면 컵의 형상이 나타나죠. 흥미로운 점은, 당신이 이 그림을 볼 때 컵의 형상이나 마주 보는 두 얼굴 중 어느 한 쪽만을 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모습 사이를 아주 빠르게 번역하며 볼 수는 있지만, 동시에 두 가지를 다 볼 수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흰색이 배경이 되고 검은색이 형상이 되거나, 반대로 검은색이 배경이 되어 흰색 컵이 도드라져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 검은색과 흰색, 즉 '형상'과 '배경'이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평소에는 인식하지 못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 개념에 익숙해질 뿐이죠. 제가 보여드린 그림에서 줄기 달린 컵과 두 얼굴은 동시에 존재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념은 서로 배타적이어서 동시에 둘 다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주변 세계를 경험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는 자(주체)'와 동일시하고, 우리가 '보는 대상'과는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실 보는 대상이 없다면 보는 자의 경험도 존재할 수 없고, 보는 자가 없다면 보이는 대상의 경험 또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검은색과 흰색처럼 둘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함께 가는 성질을 '공(空, Sunyata)'이라고 부릅니다. 흔히 '비어 있음'으로 번역되지만, 이는 사각형의 안쪽이 바깥쪽 없이는 존재할 수 없듯이(비어 있듯이), 대상 없는 주체도, 흰색 없는 검은색도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원리는 중국의 근본적인 상징인 음양(陰陽), 즉 양(긍정)과 음(부정)의 원리로 표현됩니다. 마치 두 마리의 물고기가 삶의 순환 속에서 끊임없이 뱅글뱅글 돌고 있는 모습이죠.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이 두 마리의 물고기는 지금 싸우고 있는 걸까요? 흰 물고기가 검은 물고기를 잡아먹으려 하고, 검은 물고기가 흰 물고기를 먹어 치우려 하는 상황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삶은 근본적으로 처절한 투쟁에 불과할 것입니다. 만약 위쪽이 '선한 놈'이고 아래쪽이 '악한 놈'이라면, 혹은 질서와 혼돈의 싸움이라면 말이죠.

우리의 현대 기술 문명은 인간의 상황을 자연에 대항하는 것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인간(흰 물고기)은 선한 쪽이고 자연(검은 물고기)은 나쁜 쪽이어서, 흰 물고기가 검은 물고기를 잡아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흰 물고기가 검은 물고기를 먹어 치우는 데 성공하면 어떻게 될까요? 흰 물고기 역시 사라지고 맙니다. 흰색은 오직 검은색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두 물고기가 '깨어난다면'—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을 얻는다면—그들은 자신들이 결국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자각이 바로 선(Zen)에서 말하는 사토리(悟, Satori)이자 불교의 보리(Bodhi, 깨달음)입니다. 삶이란 '예'가 '아니오'를 이기게 하거나, 긍정이 부정을 압도하게 만드는 투쟁이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 의식에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것입니다. 양측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나면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 고통스럽고 악해 보이는 것들 이면에는 일종의 필연성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것들은 선과 함께 가며, 선을 위해 필요합니다. 빛나는 형상을 드러내기 위해 검은 배경이 반드시 필요한 것처럼 질서가 나타나기 위해 혼돈이 필요한 것이죠.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깊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삶을 투쟁으로 보는 대신, 하나의 '춤'이자 '놀이(Game)'로 보게 됩니다. 삶에서 물러나거나 사는 것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놀이 속으로 기꺼이 뛰어드는 것이죠. 이제 회전하는 두 물고기는 서로를 잡아먹으려 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누리며 함께 춤을 춥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의 모든 형태와 문양들이 그저 공격과 방어의 수단, 위장을 위한 도구, 혹은 성적 유혹이나 공리적인 목적을 위한 장치일 뿐이라는 생각에만 갇혀 있어야 할까요? 아니면 그 안에서 하나의 춤, 즐거운 우주론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 앨런 와츠 TV강연 <Eastern Wisdom and Modern Life, 1959>

Grist for the Mill

"물방앗간의 곡식(모든 경험은 쓸모가 있다)"

- 람 다스(Ram Dass)의 저서 제목(1976년)이자 서구의 오래된 관용구

il faut souffrir pour être belle

아름다움을 위한 고통

- 19세기 프랑스 속담으로 유래는 명확지 않다

(* 프랑스의 이 오래된 격언은 단순히 "예뻐지려면 성형 수술이나 다이어트의 고통을 참아야 한다"는 표면적 의미를 넘어, '성장을 위한 필수적 대가'와 '악(고통)의 효용성'이라는 철학적 맥락에서 깊이 읽어볼 필요가 있다.

격언의 유래와 고전적 의미:

유래: 19세기 유럽에서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이고 발을 옥죄는 신발을 신던 귀족 사회의 풍습에서 강조되었다. 표면적 의미: 외적인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서는 신체적 불편함이나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

서른개 바퀴살이 한 군데로 모여 바퀴통을 만드는데 그 가운데 아무것도 없음 때문에 수레의 쓸모가 생겨나듯, 무언가를 들어내기 위해서는 그 전에 들어나지 않은 세계가 필요하다.

- 노자 《도덕경》 11장, BC 6~4세기경

是是非非非是非 (시시비비비시비)

옳은 것을 옳다 하고 그른 것을 그르다 함이 (진정한) 시비가 아니요,

是非非是非非是 (시비비시비비시)

그른 것을 옳다 하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함도 (진정한) 시비가 아니로다.

是非非是非是非 (시비비시비시비)

그르고 옳은 것이 (세속의) 시비가 아님이 바로 (진정한) 시비이니,

是非是非是非非 (시비시비시비비)

옳은 것이 그르고 그른 것이 옳은 것, 이것이 바로 시비가 아니겠는가.

- 김삿갓 《해동시선(海東詩選)》과 이후에 발간된 《김립시집(金笠詩集)》 (1830년대 후반 ~ 1850년대 사이로 추정)

Coincidentia Oppositorum

대립물의 일치 (The Coincidence of Opposites)

- 니콜라우스 쿠자누스(Nicolaus Cusanus) 《학식 있는 무지(De Docta Ignorantia), 1440》

(* 의미: 유한한 인간의 이성으로는 '선과 악', '무한과 유한', '직선과 곡선'이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신의 관점(영원의 관점, sub specie aeternitatis) 또는 절대적 차원에서는 이 모든 대립이 하나로 녹아든다.)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다(ni de droite ni de gauche)"

- 에마뉘엘 마크롱의 프랑스 대선 운동 당시 《En Marche!》 선언문 (2016)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Die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

- 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명제 번호 5.6 (전자의 문구) 및 머리말 (후자의 문구)

년도: 1921년 (독일어판 초판 발행) / 1922년 (영문판 초판 발행)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ss man schweigen.)

- 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제7조 (마지막 문장)

년도: 1921년 (독일어판 초판) / 1922년 (영문판 초판)

"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원문: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 노자 《도덕경(道德經)》 제1장 (BC 4세기경)

"만물의 원인이신 그분은 ... 지성도 아니고, 영혼도 아니며, 상상이나 의견이나 언어나 이해도 아니다. 그분은 숫자도 아니고 질서도 아니며, 크기도 아니고 작음도 아니다. 그분은 암흑도 아니고 빛도 아니며, 오류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다. 그분은 그 어떤 존재도 아니며, 우리가 아는 존재도 아니다."

- 위(僞) 디오니시우스 《신비신학 (De Mystica Theologia)》 제5장 (서기 5세기 말 ~ 6세기 초)

(* 이러한 논리는 부정신학 (Apophatic Theology)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인들은 모든 생명 있는 것 속에 생래적으로 내재하는 모순성과 양극성을 인지하는 데 실패한 적이 없다. 반대처럼 보이는 것은 언제나 다른 편에 대한 균형을 뜻하는 것으로서 이는 고급문화의 징표이다. 일면성(one-sidedness)은 비록 그것이 모멘텀(momentum)으로 유도하기는 하지만 야만성의 표지이다."

- 칼 융 《황금꽃의 비밀(The Secret of the Golden Flower)》의 유럽판 서문(Commentary) (1929)

(* 융의 친구이자 저명한 신학자/선교사였던 리하르트 빌헬름(Richard Wilhelm)이 중국의 도교 연금술 서적인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를 번역하여 융에게 보냈고, 융은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심층심리학적 발견(특히 '아니마/아니무스'와 '자기')이 양의 지혜와 완벽하게 일치함에 경탄하며 이 해설서를 썼다.)

모순

물은 어떠한 불도 다 꺼 버리고

불은 어떠한 물도 다 말려 버린다

절대적 이 상극의 틈새에서

절대적인 이 상극으로 말미암아

생명들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절묘한 질서인가

초나라 무기상이 말하기를

나의 창은 어떠한 방패도 뚫는다

다시 말하기를

나의 방패는 어떠한 창도 막는다

한 사람이 묻기를

당신의 창이 당신의 방패를 찌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무기상의 대답은 없었다고 했다

세상에는 결론이 없다

우주 그 어디에서도 결론은 없다

결론은 삼라만상의 끝을 의미하고

만물은 상극의 긴장 속에서 존재한다

어리석은 지식인들이

곧잘 논쟁에 끌고 나오는 모순

방어와 공격을 겸한 용어이지만

그 자신이 모순적 존재인 것을

알지 못한다

- 박경리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2008』

"생명은 '노우!'다. '아니'함이다. 수전노의 심부름꾼 같은 벼슬아치와 그의 추김꾼이 되는 보수주의 철학자가 뭐라거나, 사나운 임금의 첩같은 도덕 신자와 그의 왕초가 되는 직업 종교가가 뭐라거나 생명은 맞댐이다. 들이댐이다. 역사에서 반항, 항의, 항쟁, 투쟁, 혁명의 글귀가 없어질 날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만일 없어진다면 우주는 영원한 어둠의 멎음일 것이다."

- 함석헌 『내 안으로부터의 혁명, 1990』 - 유고집 성격의 선집

"하느님이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천만에. 이 세상은 악마가 만들었어."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가 18세 때 (1806년경) 일기장에 썼다고 알려진 글

"하느님? 은총이라구?

만약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왜 곤궁한 때에 날 버리는 거야.

난 정말로 다시 혼자야."

- 길버트 설리번의 노래 <Alone Again, 1972>

"신은 악을 극복하고 싶어하는데 그에게 그럴 능력이 없다고 하면, 신이 약하다는 뜻이 되는데 이것은 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다.

신이 능력은 있는데 악을 극복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하면, 신이 악의적이라는 뜻인데 이것도 신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신이 악을 극복하길 원하지도 않고 할 능력도 없다고 하면, 그렇다면 신은 약할 뿐더러 악의적이기까지 하다, 따라서 신이 아니다.

신에게 합당한대로 그가 악을 극복하고 싶어하며 할 수도 있다고 하면, 그렇다면 어디에서 악이 오는 것이며 왜 신은 그것을 없애지 않을까?"

- 락탄티우스(Lactantius) 《신의 분노에 대하여(De Ira Dei)》 제13장 (313)

영적 스승인 스리 라마크리슈나에게 한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왜 악이 세상에 존재합니까?" 라마크리슈나는 잠깐 뜸을 들인 후에, 짧게 답했다.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지."

- 마헨드라나스 굽타(M) 《라마크리슈나의 복음(The Gospel of Sri Ramakrishna)》 - 1882년 ~ 1886년 사이의 대화를 제자 마헨드라나스 굽타(M)가 기록

"우리가 생물학적 유기체에서 목격하는 '고통'과 '위기'는 시스템을 고차원적인 균형으로 이끄는 촉매제이다. 예를 들어, 당뇨병 환자에게 투여되는 인슐린이나 질병을 치료하는 강력한 약물들을 생각해보라. 이 물질들은 그 자체로는 유기체에게 거대한 충격과 스트레스(일종의 악)를 주지만, 그 자극이 없다면 유기체는 더 큰 파멸을 피하거나 새로운 항상성에 도달할 수 없다."

"우주적 드라마에서 악의 역할은 마치 영화의 서스펜스나 음악의 불협화음과 같다. 모든 음이 협화음으로만 이루어진 음악은 지루함(Entropic Boredom)에 빠져 생명력을 잃는다. 악은 우주라는 거대한 유기체가 자기 인식을 확장하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며, 극적인 해소(Catharsis)를 경험하게 하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우주적 인슐린'과 같다."

-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Stanislav Grof) 《코스믹 게임, 1998》

"시간이 흐른 뒤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은 참으로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믿을 수 없이 갑작스러운 우연과 예측 불가능한 굴곡진 전개가 넘쳐난다. 하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부분 아무리 주의깊게 둘러보아도 불가해한 요소가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우리 눈에는 쉼없이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지극히 당연한 일이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2017》

"쇼펜하우어는 지적하였다. 당신이 나이가 들어 인생을 돌이켜 본다면, 마치 어떤 작가가 쓴 소설같이 한 일관된 질서와 계획이 있었던 것처럼 보일 것이다. 우연히 아무런 계기도 없이 일어난 듯한 사건들도 한 일관된 구성을 형성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누가 이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 쇼펜하우어는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즉 당신의 꿈들이 당신의 의식이 깨닫지 못하는 당신의 다른 한면에 의해 이루어지듯이, 마찬가지로 당신의 전생애는 당신 속에 있는 의지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당신이 우연하게 만난 사람들이 당신의 일생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 된 것과 같이 당신도 다른 이들의 생애에 중요한 의미를 주는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하고 있다. 모든 것들이 마치 하나의 커다란 교향악과 같이 꽉 짜여 있어서 무의식적으로 각각 다른 것을 관계지워 주고 구성한다. 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도 꿈꾸는, 꿈꾸는 사람의 일장 대몽이어라. 모든 것들은 다른 모든 것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당신은 다른 이들을 그 어떤 이유로 탓할 수 없다. 이것이 마치, 항상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비록 우리들 중의 아무도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또는 우리들 중에 아무도 그가 처음에 하려던 대로 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의 배후에 한 유일한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 신화학자 조셉 캠벨 《신화와 인생(Thou Art That / Pathways to Bliss), 2004》 - 사후출간

"인간 세계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어요.

이야기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이용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면 안 됩니다.

당신은 이런 이야기들이 쓰여있는 페이지 가운데 하나를 본 거예요."

"참가자들은 우연이 비오듯 쏟아지는 봉인된 경기장에서 경기를 벌인다.

하지만 경기가 녹화되고 나면 모든 사소한 동작마다 이미 존재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한다.

모든 것이 담긴 테이프가 당신 손에 있다. 우연은 있을 수 없다.

인간의 모든 결정과 임의로 떨어지는 공의 방향은 이미 운명지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삶을 지배하는 것은 우연인가 아니면 운명인가?

음, 그 답은 시간과 마찬가지로 상대적이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면 삶을 지배하는 것은 우연이다.

하지만 당신이 읽고 있는 책처럼 외부 관점에서 보자면 삶을 지배하는 것은 늘 운명이다."

- 데이비드 미첼 《유령이 쓴 책(Ghostwritten, 1999)》

최선의 세계(The best of all possible worlds)

라틴어: "Optimum" (최선의 것)

프랑스어: "Le meilleur des mondes possibles"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선의 것)

원문: "신은 전능하고 전지하며 선하기 때문에, 신이 창조하기로 선택한 이 세계는 반드시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의 세계여야만 한다."

-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변신론(Théodicée), 1710》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저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제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 스티브 잡스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축사 (2005)

"권총이 등장한다면 반드시 발사되어야 한다"

-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극작 원칙인 '체호프의 총(Chekhov's Gun)' (1889년경)

"이 세상은 모두가 하나의 무대요,

남자든 여자든 모두 배우에 불과하지.

그들은 무대에 들락날락하며 살아있는 동안 여러 역을 하게 되지."

-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좋으실 대로, 1599》 2막 7장

"연극이 끝났으니 박수를 쳐라"

- 수에토니우스 《황제전(De Vita Caesarum), 121》 99장에 인용된 아우구스투스의 유언

오라클 : 화병은 신경쓰지마.

네오 : 무슨 화분... (화분을 찾으러 주위를 둘러보다 화분이 깨진다.)

네오 : 죄송합니다.

오라클: 신경쓰지 말라고 했잖아. 그보다 궁금한 것은 내가 화병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화병이 깨어졌겠냐는 것이겠지.

- 영화 《매트릭스, 1999》

진인사대천명(盡人事而待天命)

-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 (14~15세기(명나라 초기))》에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의 형태로 등장한 말

(* '수인사'가 '진인사'로 굳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중국 청나라 시대의 수신서(修身書)와 민간의 잠언들이 결합되는 과정에서 발생)

트라시마코스: 요컨대, 내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지 분명하고도 간단히 말해 보게!

필라레테스: 모든 것이 되기도 하고 무無가 되기도 하지.

트라시마코스: 뻔한 말이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는 모순이야! 그런 계략은 낡은 거야.

(* 우리에게 죽음은 어디까지나 소극적인 것, 즉 생명의 종료다. 하지만 죽음에는 적극적인 면도 있는 게 틀림없겠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은폐되어 있다. 우리의 지성이 그런 측면을 도저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에 의해 잃어버리는 것은 잘 인식하지만, 죽음에 의해 얻는 것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의지는 죽음에 의해 지성의 상실이라는 손해를 입는다. 의지는 여기서 소멸하는 현상의 핵심이며, 물자체로서 소멸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성의 상실은 바로 이러한 개체적 의지의 망각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지성이 없어도 의지는 이미 스스로가 그 핵심이었던 많은 현상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죽으면 자신의 개성을 마치 헌옷처럼 내던져 버리고, 지금 얻은 가르침에 따라 새롭고 더 좋은 개성을 얻게 된 것을 기뻐해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개체들이 잠시 존속하게 한 후 소멸시킨다고 세계정신을 비난한다면, 세계정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개체를 보라! 그것의 결점, 가소로움, 비열함, 흉측함을 보라! 그런 것을 영원히 존속시켜야 하겠는가?"

내가 조물주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치자. "어중간한 기적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대신, 그리고 이미 살아 있는 자들을 소멸시키는 대신 현존하는 이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끝맺고 이들을 왜 영원히 존속하게 하지 않는가?"

그러면 그는 필경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들 자신이 언제나 새로운 인간을 만들려고 한다. 그러니 나는 장소를 마련해 줘야 해. 물론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면 좋겠지만! 우리끼리 하는 이야기지만, 이 세상에 저렇게 존재한다는 목적 말고 다른 목적은 없어. 항상 저렇게 계속 살아가면서 항상 저런 짓을 하는 종족은 객관적으로는 우스깡스럽게 주관적으로는 지루하게 살아가고 있어. 그건 자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지. 머릿속에서 그런 광경을 좀 그려 보지 그래!"

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요, 그들은 각기 나름대로 무언가 해낼 수 있을텐데요.")

필라레테스: 초월적인 질문을 내재적 인식을 위해 창조된 언어로 대답하면 물론 모순에 이를 수밖에 없지.

트라시마코스: 초월적 인식이니 내재적 인식이니 하는 것은 무슨 뜻이지? 그런 표현은 나도 교수에게서 들어 알고 있어. 하지만 신의 술어로서지. 당연한 일이지만 교수의 철학은 오로지 신만 문제 삼았어. 다시 말해 신이 세계 속에 있을 때는 내재적이지만, 어딘가 바깥에 있을 때는 초월적이라는 거야. 어때, 이젠 분명히 이해할 수 있겠지! 이만하면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 하지만 자네의 칸트적 구식 전문어는 더 이상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 현대의 시대 의식은 독일 학문의 중심지에서 나와….

필라레테스: (혼자 나지막이) 독일 철학의 허풍에서 나왔다는 거지.

트라시마코스: 연이어 등장한 위대한 인물들 때문이지. 특히 위대한 슐라이어마허와 거인적 정신 헤겔을 거치면서, 이 모든 인물을 앞질렀다거나 오히려 앞으로 계속 나아갔기에 칸트 철학 같은 것은 과거의 일이 되었어. 오늘날엔 더 이상 그에 대해 알지 못해. 그런 것을 가지고 무얼 하자는 말인가?

필라레테스: 선험적 인식이란 경험의 모든 것을 넘어서서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의 본질을 규정하려고 애쓰는 인식이지. 반면에 내재적 인식이란 경험의 가능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으므로, 현상에 관해서만 말할 수 있는 인식이야. 개체로서의 너는 죽음과 함께 끝나는 거지. 하지만 개체란 너의 진정한 궁극적 본질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단순한 발현에 지나지 않아. 다시 말해 개체란 물자체가 아니라, 시간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그에 따라 시작과 끝이 있는 물자체의 현상일 뿐이지. 반면에 자네의 본질 그 자체는 시간도, 시작이며 끝도 주어진 개성의 한계도 알지 못해. 그 때문에 그것은 어떠한 개성으로부터도 배제되지 않고 각각의 모든 것 속에 들어 있지. 그러므로 전자의 의미에서 자네는 죽음에 의해 무가 되는 거지. 후자의 의미에서 자네는 모든 것이고 모든 것으로 남아 있어. 그 때문에 나는 자네가 죽음 이후에 모든 것이 되기도 하고 무가 되기도 한다고 말한 거야. 자네의 질문에 이보다 간결하게 이보다 더 올바른 답변을 하기는 어려워. 하지만 물론 거기에 모순이 담겨 있기는 하지. 사실 자네의 인생은 시간 속에 존재하지만, 자네의 불멸성은 영원 속에 있거든. 그 때문에 이러한 불멸성은 또한 존속이 없는 불멸성이라 불릴 수도 있지. 그런데 그러면 또다시 모순에 부딪히게 돼.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은 초월성을 내재적 인식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 하기 때문이야. 다시 말해 내재적 인식을 함부로 써서 격에 맞지 않게 남용하기 때문이야.

트라시마코스: 이봐, 나의 개성이 존속하지 않는다면 자네가 말하는 불멸성 전체를 위해서 한 푼도 내놓지 않을 꺼야.

필라레테스: 그렇지 않아, 아직은 나와 흥정할 여지가 있을 거야. 내가 자네 개성의 존속을 보증해 주겠어. 그렇지만 조건이 있어. 자네의 개성이 다시 깨어나기 전에 세 달간 완전히 의식이 없는 죽음의 잠으로 들어가게 하는 거야.

트라시마코스: 그런 조건이라면 받아들이도록 하지.

필라레테스: 그런데 완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니 우리에겐 시간을 재는 척도가 없어. 그러므로 죽음의 잠에 빠져 있는 동안 의식이 있는 세계에서 세 달이 지나든 만 년이 지나든 우리에게는 매한가지야. 세 달이든 만년이든, 우리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말하는 대로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그러니 자네의 개성이 세달 후에 또는 만 년 후에 원래대로 주어져도 아무 상관 없을 거야.

트라시마코스: 그야 기본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말이라고 할 수 있지.

필라레테스: 그런데 만 년이 흐른 후에 자네를 깨우는 것을 깜빡 잊는다 해도 크게 불행하지는 않을 것 같아. 아주 짧게 생존한 후에 그토록 오랫동안 비생존 상태로 있는 것에 이미 습관이 들어 버렸기 때문이지. 자네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리란 점은 확실해. 그리고 지금 자네의 현상을 움직이게 하는 그 비밀스러운 장치가 예의 만 년 동안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같은 종류의 다른 현상을 출현시키고 움직이게 했다는 것을 안다면, 자네는 이 사태에 전적으로 위안을 느낄 거야.

트라시마코스: 어라, 그런 식으로 은근슬쩍 나의 개성을 빼앗아 갈 생각이야? 그런 식으로 나한테 사기 치지 마. 아까내놓은 조건은 내 개성의 존속을 보증한다는 것이었어.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떤 내적 동기도 현상도 나를 위로할 수 없어. 나의 주된 관심사는 개성의 존속이야.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어.

필라레테스: 그러니까 자넨 자네의 개성을 무척 편안하고 우수하며, 완전하고 탁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더 뛰어난 개성은 없다는 식으로 말이야. 그러니까 어떤 다른 개성 속에서 더 안락하고 더 수월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하는데도, 다른 개성과는 바꾸고 싶지 않다는 거지?

트라시마코스: 이봐, 현재의 모습이 어떻든 지금 그대로의 내 개성, 그것이 나란 말이야.

이 세상에 나 이상의 것은 없다.

신은 신이고, 나는 나니까 말이다.

괴테, <사티로스>

나, 나, 나는 이 세상에 있고 싶단 말이야! 중요한 것은 그 점이야. 쓸데없는 말로 그것이 나의 존재라고 설득받아야 하는 존재 같은 것은 필요 없어.

필라레테스: 주위를 좀 둘러봐! 자네는 "나, 나, 나는 이 세상에 있고 싶다"라고 외치는데, 자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의식이 있는 것은 모두 그런단 말이야. 따라서 자네 속에 있는 이러한 소망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차별 없이 만인에게 공통되는 거야. 다시 말해 그 소망은 개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존재 일반이 외치는 것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에 본질적이야. 아니, 그것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바로 그것이야. 따라서 이 소망은 결코 개인적 존재를 지향하지 않으므로, 배타적으로 어떤 특정한 개인적 존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소망에 관련되는 존재 일반에 의해 충족되는 거야. 이 소망은 다름 아닌 개인적 존재 속에서 의식에 도달할 수 있고, 매번 이러한 존재에만 관련되는 것 같기 때문에, 그때마다 존재가 그런 겉모습을 띠지. 편견에 사로잡힌 개체는 그런 겉모습에 매달리지만, 반성은 그런 겉모습을 파괴해서 그것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어. 다시 말해 그토록 격렬하게 이 세상에 있기를 요구하는 것이 개체이긴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간접적일 뿐이야. 사실 직접적으로 그렇게 요구하는 것은 삶에의 의지 일반이야. 그것은 모두의 내부에서 똑같이 일어나는 현상이야. 그런데 존재 자체가 의지의 임의의 작품이고, 아니 그것의 단순한 반사광에 불과하므로, 개체는 이 의지에서 벗어날 수 없어. 하지만 의지는 존재 일반에 의해 일시적으로 충족될 수 있어. 다시 말해 의지, 즉 영원히 충족되지 않는 그 의지가 충족될 수 있는 만큼만 말이야. 의지와 개성은 매한가지야. 의지는 의지의 소리를 직접 듣는 개체에 대해서는 개성을 문제 삼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 그로 인해 의지는 의지 자신의 현상인 존재를 어디서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방식으로 주도면밀하게 감시해 종속의 보존을 확실히 하는 거야. 그 결과 개성은 완전성이 아니라 제한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 제한에서 벗어나는 일은 상실이 아니라 오히려 획득이지. 그러니 걱정은 하지 말아 줘. 그런 걱정은 참으로 유치하고 매우 가소로운 것이라고 생각될 거야. 자네가 자신의 본질을 완전하고도 철저히 인식하기만 하면, 다시 말해 자네의 현재 모습 그대로 삶의 보편적 의지로서 인식하기만 하면 말이야.

트라시마코스: 유치하고 매우 가소로운 것은 자네 자신과 모든 철학자야. 나처럼 분별 있는 사람이 자네 같은 바보에게 15분이나 시간을 내준 것은 심심풀이에 불과해. 난 더 중요한 일이 있으니 이제 가봐야겠어. 잘 있게!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소품과 부록(Parerga und Paralipomena, 1851)』

"죽음으로 의식은 소멸하지만 그 때까지 그 의식을 만들어낸 것은 소멸하지 않는다."

"출산과 죽음을 통해... 그 밑바닥에 있는 형이상학적 요소는 이질적인 본체여서 출산이나 죽음에 끄떡하지 않으니 우리는 안심해도 좋다."

"만약 어떤 아시아인이 나에게 '유럽이란 어떤 곳인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럽이란, 인간의 탄생이 절대적인 시작이며 인간이 무(無)로부터 생겨났다는 믿기 힘든 망상에 사로잡힌 세계의 한 부분이다'라고 말이다."

-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2권, 제41장 <죽음 및 죽음과 우리 본질의 불멸성과의 관계> (1844)

"죽음은 삶의 사건이 아니다. 우리는 죽음을 체험하지 않는다."

(Tod ist kein Ereignis des Lebens. Den Tod erlebt man nicht.)

- 루트비히 비트켄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6.4311 (1921년)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나는 태어나기 전 영겁에 걸친 세월을 죽은 채로 있었고 그 사실은 내게 일말의 고통도 준 적이 없다."

-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Mark Twain)》 (1924년 사후 출간 (해당 내용은 1906년경 기록))

안녕

잊을 수 없는 올해 5월 18일.

무사시노 적십자 병원, 순환기과 의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선고를 받았다.

- 췌장암 말기. 뼈 여러부분에 전이. 여명 길어야 반년 -

아내와 둘이서 들었다.

둘만의 힘으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청천벽력에 억울한 운명이었다.

평소부터 생각하고는 있었다.

'언제 죽는대도 할 수 없지'

... 라고는 해도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분명 징후는 보였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2, 3개월 전부터 등 여기저기와 서혜부 등에 강한 통증을 느꼈고, 오른쪽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되면서 걷기도 힘들게 되어 뜸을 뜨거나 카이로프랙틱 등을 다녀봤지만 차도가 없던 차, MRI나 PET-CT 등의 정밀기기로 진단한 결과 느닷없는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이었다.

눈치챘을 땐 죽음이 바로 등 뒤에 서있던 것 같은 상황으로, 나로써는 도저히 어찌해 볼 길이 없었던 것이다.

선고 후,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아내와 함께 모색했다.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믿음직한 친구나 더할나위 없이 강력한 분의 지원도 얻어 왔다.

항암제는 거부하고, 일반적인 세상의 상식과는 다소 다른 세계관을 믿으며 살아보려 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부분이 나다워서 좋은 것 같았다.

어차피 언제나 다수파에는 몸둘 곳이 없었던 듯이 생각된다.

의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현대의료의 주류파 뒤에 어떤 시스템이 있는지도 이것저것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신이 선택한 세계관으로 살아남아 주겠어!'

그러나.

기력만으로는 맘먹은대로 안 되는 것은 작품 제작과 마찬가지.

증세는 하루하루 확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 나 역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보편적인 세상 상식의 절반 정도는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꼬박꼬박 세금도 내고 있으니.

'훌륭'하곤 거리가 멀지만 나 역시 버젓한 일본사회의 멤버 중 하나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한 <사적 세계관>의 준비와는 별도로, <깔끔하게 죽을 채비>에도 손을 썼다고 생각한다.

전혀 깔끔하게 못했지만.

그중 하나가, 믿을 수 있는 친구 두 명의 협력을 얻어 덧없지만 곤 사토시가 가진 저작권 등의 관리를 맡길 회사를 만드는 것.

또 하나는 많지는 않지만 재산이 원활하게 처에게 양도되도록 유언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유산 다툼 같은 게 터질 리야 없지만, 이 세상에 홀로 남을 아내를 위해 불안요소는 하나라도 없애주고 싶었고, 그것이 쬐금 저편으로 여행을 떠날 나 자신을 안심시키는 것으로 이어지니.

절차에 따라붙는, 나나 아내가 익숙치 못한 사무처리나 예비 조사 등은 멋진 친구에 의해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후일, 폐렴으로 위독한 가운데서 비몽사몽 간에 유언장에 마지막 사인을 했을 때에는 일단 이걸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휴우... 겨우 죽을 수 있게 됐어...'

어찌됐든, 그 이틀 전에 구급차로 무사시노 적십자 병원으로 옮겨지고, 하루 걸러 또 구급차로 같은 병원에 실려 갔다.

과연 이쯤 되니 입원해서 상세 검사에 들어가게 됐다.

결과는 폐렴의 병발.

가슴에 물도 상당히 찼다.

의사에게 딱잘라 물었더니, 매우 사무적인 태도여서 어떤 의미로는 고마웠다.

"잘 버티면 하루 이틀...고비를 넘긴다 해도 이 달 안이겠지요."

그 말을 들으며, '일기예보 같구먼...'하고 생각했지만, 사태는 절박했다.

그게 7월 7일에 있었던 일.

꽤나 가혹한 칠석이었다.

...이상으로 마음은 굳었다.

나는 내 집에서 죽고 싶다.

주변 사람에게 있어 마지막 대형 민폐를 끼치게 될 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해서든 집으로 탈출할 방법을 찾아 줄 것을 부탁했다.

아내의 노력과 병원측의 '포기한 듯 하면서도 실은 매우 도움이 되었던' 협력, 외부 의원의 막대한 지원, 그리고 수많은, 하늘의 도움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우연들.

그렇게 우연과 필연이 빈틈없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토쿄 갓 파더>도 아니고 말이지.

아내가 탈출분비로 분주한 한편에서, 나는 의사에게, "한나절이라도, 하루라도 집에 있을 수 있다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라고 호소한 후, 어두침침한 병실에서 혼자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쓸쓸하진 않았지만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것.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특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을 지도 모르지만, 기분은 자신도 놀랄 정도로 평온했다.

단지, 단 하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여기서 죽는 건 싫은데..."

하며 봤더니, 벽에 걸린 달력에서 뭔가가 움직여 실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이런... 달력에서 행렬이라니... 내 환각은 개성이 쥐뿔도 없구만..."

이런 때조차 직업의식이 발동하는 걸 흐뭇하게 느꼈지만, 사실은 이때가 가장 저승에 접근했었을 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죽음을 가까이에 느꼈다.

죽음의 세계와 시트에 둘둘말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힘입어, 기적적으로 무사시노 적십자 병원을 탈출해 자택에 도착했다.

죽는 것도 괴롭구만.

혹시나 해서 말해 두지만, 특히 무사시노 적십자에 비판이나 혐오는 없으니 오해마시길.

단지, 나는 자신의 집에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그 집으로.

조금 놀랐던 것은, 자택의 거실에 옮겨질 때 임사체험 등으로 잘 알려진, - 높은 곳에서 자신이 방 안으로 옮겨지는 것을 본다 - 라는 덤이 붙은 것이었다.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풍경을, 지상 수 미터의 정도의 높이였을까, 와이드스러운 렌즈를 통해 진부감(眞俯瞰)으로 보고 있었다.

방 중앙에 있는 침대의 사각이 묘하게 크고 인상적이고, 시트에 감긴 자신이 그 사각 위에 내려졌다.

그리 정중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불평은 할 수 없지.

자, 남은 것은 자택에서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을 터였다.

그런데.

폐렴의 고비를 어렵지 않게 넘겨버린 듯 하다.

얼레?

어느 의미론 이렇게 생각했다.

'못 죽었네(...훗)'

그 후, 죽음만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은 분명히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한다.

몽롱한 의식의 깊은 곳에서 [reborn]이라는 단어가 몇 번인가 흔들거렸다.

신기한 것이, 그 다음 날 기력이 다시 재기동했다.

아내를 비롯, 문병을 와서 기력을 나누어 주신 여러분, 응원해준 친구들, 의사나 간호사, 간병인 등 관계자 모두의 덕분이라 생각한다.

정말로, 솔직하게 마음으로부터.

살아갈 기력이 재기동했으니, 멍하게 있을 여유는 없다.

덤으로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명이라고 마음에 되새기며, 소중하게 쓰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현세에 남긴,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나라도 줄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은 암에 관해 극히 가까이 있는 사람 외에는 알리지 않았었다.

부모님께조차 알리지 않았을 정도다.

특히 일과 관련해선 여러가지로 얽힌 것이 많아 말할래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인터넷 상에 암 선언을 하고, 남은 인생을 하루하루 보고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콘 사토시의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은 작다고는 해도 여러가지 영향이 염려되기도 했고, 그때문에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

정말 면목없다.

죽기 전에 하다못해 한번이라도 만나, 한마디라도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잔뜩 있다.

가족이나 친척, 거슬러 올라가면 초, 중학교부터 고교 동창,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 만화의 세계에서 만나 수많은 자극을 서로 교환했던 사람들,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책상을 나란히 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같은 작품 안에서 실력을 서로 자극하며 고락을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동료들, 감독이라는 입장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각지에서 팬이라고 해주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웹을 통해 만난 친구도 있다.

할 수만 있다면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은 잔뜩 있었으나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만나면 '이 사람과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는구나...'라는 마음만이 쌓일 듯 해 죽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게 돼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회복했다고는 해도 내게 남은 기력은 한 줌 뿐.

만나는 데는 크나큰 각오가 필요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일수록 만나는 것이 괴롭다.

아이러니컬한 얘기다.

게다가 뼈에 암이 전이된 영향으로 하반신 불수가 되어, 거의 누워 지내는 상태라서 비쩍 말라버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많은 지인들 속엔 건강했던 무렵의 콘 사토시로 남아 있고 싶었다.

병세를 알릴 수 없었던 친척들, 온갖 친구들, 모든 지인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도리를 다 못함을 사죄드립니다.

하지만, 콘 사토시의 방자함도 이해해 주시면 합니다.

뭐랄까, <그런 녀석>이었잖아요? 콘 사토시라는 사람은.

얼굴을 생각해 내면, 좋은 추억과 웃는 얼굴이 떠오릅니다.

모두들, 정말로 좋은 추억을 잔뜩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신이 살았던 세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내 인생에서 만난 적지 않은 사람들은, 긍정적, 부정적 어느 쪽이 됐든 역시 콘 사토시라는 인간의 형성에는 어딘가에서 필요했을 터이고, 모든 만남에 감사하고 있다.

그 결과가 사십 대 중반 도중하차라고 하더라도, 이건 이것대로 다름 아닌 내 운명이라 받아들인다.

짭짤한 맛도 제법 봤고 말이지.

지금,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이런 것.

"유감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네."

정말로.

그러나, 수많은 결례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더라도, 내가 도저히 마음에 걸려 견딜 수 없는 일이 있다.

부모님과 매드하우스 마루야마씨다.

콘 사토시의 생부모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의 아버지.

늦었다고는 해도, 있는대로 몽땅 사실을 고할 수 밖에 없다.

용서를 구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문병을 와준 마루야마씨를 본 순간, 흘러 나오는 눈물과 비참한 기분이 멈추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이런 모습이 돼버렸어요..."

마루야마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양손을 붙잡아 주었다.

감사의 기분으로 가슴이 벅찼다.

노도와 같이, 이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환희가 밀려 왔다.

호들갑스러운 표현으로 들릴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내 맘대로일진 몰라도, 단번에 용서받은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미련은 영화, [꿈꾸는 기계]이다.

영화 그 자체는 물론, 참가해 준 스탭에 대해서도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칫하면 지금까지 피땀을 흘려 그려온 컷들이 그 누구의 눈도 닿지 않고 묻힐 가능성이 넘치도록 있으니까.

어찌됐든 콘 사토시가 원작, 각본, 캐릭터와 세계관 설정, 콘티, 음악 이미지...온갖 이미지 소스를 끌어 안고 있는 것이다.

몰론 작화감독, 미술감독을 비롯해서 많은 스탭들과 공유하고 있는 부분도 잔뜩 있지만, 기본적으로 <콘 사토시>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만들 수 없는 것 투성이의 내용이다.

그렇게 만든 것은 네 책임이다, 라고 하신다면 그만이지만, 나 나름대로는 세계관을 공유하기 위해 적지않은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 버리고 나니 내가 덕이 부족했던 부분만이 뼈에 사무친다.

스탭 모두에게 참으로 죄송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은 이해도 해주길 바란다.

콘 사토시가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다소라도 다른 것과는 틀린, 묘한 것을 응축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으니.

상당히 오만한 말투로 들릴 지는 모르지만, 암이니까 좀 봐줘.

나도 어영부영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콘 사토시 사후에도 어떻게든 작품들이 존속할 수 있도록 모자란 머리를 쥐어 짜 왔다.

그렇나 그것도 잔꾀.

마루야마씨한테 꿈꾸는 기계에 대한 염려를 얘기했더니,

"괜찮아. 어떻게든 해볼테니 걱정 말게."

라고 하셨다.

울었다.

완전 오열.

지금까지 영화제작에 있어서도 예산에 있어서도 결례만을 쌓아왔지만, 결국 언제나 마루야마씨가 어떻게 해주셨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난 발전이 없어.

마루야마씨와는 충분히 이야기 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콘 사토시의 재능이나 기술이 현재의 업계에 있어 상당히 귀중하다는 걸 약간 실감했다.

재능이 아깝다. 어떻게든 두고 갔으면 좋겠다.

뭐니뭐니 해도 더 매드하우스 마루야마씨가 말씀하시는 것이니 자신감을 다소 기념품으로 가지고 명부로 향할 수 있다는 거다.

분명,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이상한 발상이나 자잘한 묘사의 기술이 이대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생각해도 아깝지만, 별 수 없지.

그것들을 세상에 낼 기회를 주신 마루야마씨에게는 마음으로부터 감사하고 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콘 사토시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도 행복했습니다.

부모님께 고하는 것은 진짜로 괴로웠다.

원래대로라면 아직 몸이 말을 들을 때 삿포로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 뵙고 암에 대해 고할 셈이었으나, 병의 진행이 원통할 정도로 빨라서 결국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던 병실에서 전화로 갑작스런 비보를 전하게 되었다.

"저, 췌장암 말기라서 곧 죽게 됐어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정말 기뻤습니다. 고맙습니다."

느닷없는 소식을 듣는 쪽은 견딜 수 없었겠지만, 그때는 이미 죽음의 예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집에 돌아가, 폐렴의 고비를 어찌저찌 넘겼던 무렵.

일대결심을하고 부모님을 만나기로 했다.

부모님 역시 만나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만나면 괴롭고, 만날 기력도 없었지만, 어떻게든 한번 뵙고 싶었다.

이 세상에 낳아주신 은혜에 감사의 말을 직접 전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로 행복했다.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서둘러 가는 것은 처에게도 부모님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제멋대로인 나에게 부모님께서 곧 대응해 주셔서, 다음 날 바로 삿포로에서 집까지 오셨다.

병석에 누운 나를 보시자마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미안해! 튼튼하게 낳아주지 못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모님과는 짧은 시간 밖에 함께할 수 없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얼굴을 보면 그걸로 모든 게 통할 듯이 생각했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고마워요,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의 자식으로 이 땅 위에 삶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추억과 감사로 가슴이 벅찹니다.

행복 그 자체도 소중하지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신 것, 아무리 감사를 드려도 다 못 드립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부모보다 먼저 가는 크나큰 불효자이지만, 이 십수 년 간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솜씨를 부리고, 목표를 달성하며, 평가도 나름대로 얻었다.

별로 안 팔렸던 것은 쬐금 유감이지만, 분수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십수 년, 다른 사람 몇 배의 밀도로

살았던 기분이고, 부모님도 내 마음 속을 알아 주셨겠지.

부모님, 마루야마씨와 직접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으로 한 짐 던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누구보다도 마음에 걸리고, 하지만 최후까지 의지가 되었던 아내에게.

그 사형선고 후 둘이서 몇 번이고 눈물에 젖었었다.

서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혹한 매일이었다.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그런 괴로우면서도 애달픈 나날을 끝까지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선고 후 바로 말해줬던 강인한 한마디 덕택이었다.

"나, 끝까지 함께 달릴테니까."

그 말대로, 나의 걱정따위는 따돌리듯이 여기저기서 밀려오는 요구나 청구를 교통정리하고, 남편의 간병을 어깨너머로 바로 터득하여 척척 해나가는 모습에 나는 감동을 느꼈다.

"내 마누라는 대단하다구."

새삼스럽게 말하지 말라구?

아니아니, 지금까지 생각했던 이상이구나...라고 실감했습니다요.

내가 죽은 후에도, 분명 능숙하게 콘 사토시를 배웅해 주겠지.

떠올리면, 결혼 이후 늘상 일, 일에 치여 사는 매일을 보내다, 집에서 느긋하게 지낼 시간이 생겼나 했더니 암, 이란 것은 너무한 얘기다.

하지만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것, 거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바로 옆에서 잘 이해해 줬었지. 나는 행복했어, 진짜.

삶에 대해서도, 죽음을 맞이함에 있어서도, 아무리 감사를 해도 다할 수 없어.

고마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물론 아직 잔뜩 남았지만, 일일히 세다 보면 끝이 없다.

매사에는 끝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요즘은 그리 받아주는 곳이 없는 자택에서의 터미널 케어를 수락해 주신 주치의 H선생님, 그리고 그 부인이시며 간호사이신 K씨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자택이라는, 의료에 있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 속에서, 암으로 인한 진통을 갖은 방법으로 끈기있게 제거하여, 죽음이라는 골에 다다를 때까지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주셔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그냥도 귀찮게 덩치 크고 거만한 환자를 단순한 일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 무엇보다도 인간적으로 대하여 주셨던 것에 우리 부부가 얼마나 위안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선생님 부처의 인품에 격려받은 일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이 됩니다만 5월 중순에 암 선고를 받은 직후부터 공사에 걸쳐 엄청난 협력과 노력,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두 명의 친구.

주식회사 KON’STONE의 멤버이자 고교시절부터의 친구 T와 프로듀서 H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보냅니다.

정말 고마웠어.

내 빈약한 어휘로는 적절한 감사의 말을 찾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부부가 함께 신세를 졌네.

두 사람이 없었으면 죽음은 더욱 괴로운 형태로 나와 내 옆에서 간병하는 아내를 집어 삼켰겠지.

하나에서 열까지 정말로 신세가 많았네.

그래서 말인데, 신세만 져서 미안하네만, 나 죽고 나서 배웅하는 것까지 아내에게 협력해줄 수 없겠는가.

그래 준다면 나도 안심하고 여행길에 오를 수 있어.

마음으로부터 부탁하네.

자... 여기까지 긴 문장을 함께하여 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펜을 놓겠습니다.

자, 그럼 먼저 갑니다.

- 곤 사토시 감독의 유연장 (2010년 8월 25일)

누가 봐도 기묘한 죽음이었다. 김기영 감독 부부는 1998년 2월 5일 새벽, 명륜동 집 화재사건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까지 미공개 작품이었던 그의 영화 <죽어도 좋은 경험>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 부부가 화재로 죽는 것이었다. ‘그로테스크’, ‘괴짜’. 1960년대 신문에 실린 영화 인상평부터 김 감독을 따라다니던 말이었다. 그가 전에 기거하던 주자동 양옥집은 귀신이 나오는 흉가라서 싸게 구입해 들어갔다는 소문이 있었다. 아들 동원씨는 “처음에 살던 젊은이가 철조망에 목이 걸려 죽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앞서 인용한 <전설의 낙인>에 따르면 대학로의 집은 이미 두 차례나 노부부가 죽었는데, 대들보가 무너지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한날 한시에 죽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새벽 2시에 달려갔다. 잿더미가 내 키보다 높게 쌓였다.” 아들 동원씨는 집이 화재로 전소된 후 ‘기이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잿더미 속에서 비닐에 싸인 문서가 발견되었다. ‘동원아 보거라’로 시작되는 아버지의 유서였다. “너무 놀랐다. 유서 첫 마디는 ‘내가 이 한옥을 사지 말자고 했는데 네 엄마가 우겨서 샀다’는 책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그 다음이 이것이다. ‘내가 공중에 떠서 우리집 마당을 내려다 보는데 아마도 내가 죽은 모양이다. 네(동원씨)가 마당에 삼발이를 치고 땅을 파고 있는 것이 보인다.’” 김 감독이 묘사하고 있는 모습이 마당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았던 것이다.

- 김기영 감독의 아들인 김동원의 증언이 실린 《경향신문》기사 (2013)

"나는 기로에 서 있었다. 죽어가는 환자들과 더는 일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날 나는 병원과 시카고대를 떠나고 말겠다는 통보서를 제출하리라 굳게 결심해놓고 있었다. 물론 나는 환자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죽음에 대한 마지막 세미나를 마치고 승강기로 걸어갈 때였다. 한 여성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마치 내 모든 생각을 훤히 읽고 있기나 하다는 듯 얼굴에 함박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박사님, 제가 딱 2분만 시간을 빼앗을게요. 사무실까지 함께 걸어가도 될까요?"

내 평생 가장 긴 시간이었다. 내 마음 한편에서는 그녀가 1년 전쯤 세상을 떠난 슈와츠 부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과학자였다. 유령 같은 걸 믿을 리가 있는가!

난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는 어찌 보면 마치 밀랍처럼 투명하게 보이기도 해서 슬쩍 만져보려 했다. 그녀의 몸을 꿰뚫고 가구가 보인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실제 사람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그녀를 만져보았고, 그녀에게 촉감도 느껴졌다는 걸 알고 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그녀가 문을 열었다. 안으로 들어선 뒤 그녀가 말했다.

"두 가지 이유로 돌아왔어요. 첫째는 저를 위해 해주신 일에 대해 박사님과 스미스 신부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해서죠. 더 진짜 이유는, 죽어가는 환자를 돌보는 일을 아직도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 돌아왔습니다."

나는 그녀가 정말 슈와츠 부인이라는 사실을 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해봤자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은 내가 헷가닥했다고 생각할 것이었다.

과학자는 증거를 필요로 한다. 내가 말했다.

"그래요. 그런데 스미스 신부님한테 쪽지를 하나 써주시면 좋아하지 않으실까요?"

나는 그녀가 종이쪽지에 자필로 아무 말이라도 끼적거려주기를 바랬다. 물론 친필 싸인까지 곁들이면 더욱 좋고.

그녀는 내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 내가 스미스 신부에게 쪽지를 건네주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종이쪽지에 글을 남기더니 이름과 성을 다쓰고 친필 싸인까지 했다. 그리고는 사랑과 연민과 이해심을 두루 담은 가장 큰 미소를 띠며 "이젠 됐나요?"하고 말했다. 그녀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죽음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지 마세요. 아직은요. 지금은 때가 아니에요. 우리가 도와줄게요. 때가 되면 아실 거예요. 약속하실 거죠?"

내가 그녀에게 한 마지막 말은 "약속하지요"였다.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사라졌다. 문이 닫히자마자 나는 이게 생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문을 열었다. 하지만 긴 복도엔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것 아닌가!

-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Ross) 《사후생(On Life After Death), 1991》

"나의 아들 크리스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살해당했다. 1979년 11월 17일 일요일 오후 8시경,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일이다. 그는 선禪 수련원의 학생이었는데, 그날 그 시간에 헤이트 가에서 한 구획 떨어진 곳에 있던 친구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선 수련원을 나왔다.

... (중략) ...

되묻고 다시 되묻는 일은 결국 "그가 어디로 간 것일까?"를 묻기 전에 "가버린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의 물음이 먼저 제기되어야 한다는 깨달음과 함께 중단되었다. 인간을 일차적으로 무언가 물질적인 것으로, 피와 살을 지닌 존재로 생각하려는 오래된 문화적 습관이 존재한다. 이 같은 생각을 유지하는 한, 해결책은 있을 수 없다. 크리스의 피와 살을 이루던 물질은 물론 산화된 다음 화장장의 굴뚝을 따라 올라가 허공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것이 크리스는 아니다.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면, 내가 그처럼 몹시도 그리워하는 크리스는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패턴이라는 점, 비록 그 패턴 안에는 크리스의 피와 살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것이 패턴에 포함되어야 할 전부는 아니라는 점이다. 그 패턴은 크리스와 나 자신보다 거대한 것이고, 우리 누구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또한 우리 누구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연결하고 있다.

이제 크리스의 몸은, 그와 같은 거대한 패턴의 일부였던 크리스의 몸은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거대한 패턴은 남아 있다. 그 패턴의 한 가운데에 엄청난 구멍이 뚫린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처럼 몹시도 가슴이 아픈 것이다. 그 패턴은 결합할 대상을 찾고 있지만, 어디에서도 그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중략) ...

아무튼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 내 아내가 임신을 했다. 그것도 예기치 않게. 조심스럽게 논의를 한 끝에 우리는 아기를 갖는 것이 현명치 못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내 나이가 50대다. 나는 아이를 키우는 일을 더 이상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까지 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론에 이른 다음 필요한 의료조처를 위해 병원에 예약을 했다.

이윽고 대단히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나는 이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우리의 결정 전체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세심하게 검토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분리 현상과도 같은 것이 일어났다.

... (중략) ...

"잠깐 그만둡시다. 뭔가가 잘못된 것 같소." 그것이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너무도 강렬하고 소름끼치는 것이어서 나는 상황을 계속 그런 상태로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의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는 후에 가서 차차 선명해졌다. 그것은 거대한 크리스의 패턴이었으며, 그것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우리는 앞서 내린 결정을 뒤집기로 했다. 우리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면 파국이 몰아닥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이제 우리는 깨닫고 있다.

... (중략) ...

이번에 그는 넬이라는 이름의 자그마한 여자아이로 태어났고, 우리의 삶은 다시 균형을 잡게 되었다.

... (중략) ...

넬은 전에는 결코 이해될 수 없었던 부모 노릇 하기의 측면을 나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만일 넬이 울거나 어지럽히거나 내 뜻에 거슬리기로 마음을 먹어도(그런데 이런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 문제될 것이 없다. 이에 상응하는 크리스의 침묵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이제 한결 더 선명하게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비록 이름이 계속 바뀌고 몸이 계속 바뀌더라도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거대한 패턴은 계속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현상적인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현상을 있게 한 '가치적인 것'이다.

가치가 모든 것의 본질이다."

- 로버트 M. 피어시그 (Robert M. Pirsig)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 1974)》

"유추가 아니라 제1원칙에 입각해서 추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우리는 삶을 살아갈 때 유추를 통해 추론하곤 하죠. 하지만 제1원칙 사고법은 사물을 가장 근본적인 진리로 끓여 내려가 '우리가 확신하는 사실은 무엇인가?'를 묻고, 그 바탕 위에서 다시 추론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 일론 머스크의 케빈 로즈와의 인터뷰 (2012) - 이후 여러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언급

"모든 지식과 체계적인 학습은 이미 존재하는 지식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 출발점이 되는 제1원리는 다른 것으로부터 증명될 수 없으며, 그 자체로 알려져야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Metaphysics), BC 350~322》

"<왜>가 사라진 조직은 서서히 죽어가고 <왜>가 설명이 안 되는 회사는 지속 성장할 수 없다.

조직 내에 <왜>에 대한 신념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에 따라 그 성장이 결정된다.

(* 디지털과 인문학, 디자인의 조화를 철학으로 내세웠던 스티브 잡스나 300년 디지털 정보혁명에 대해 이야기했던 손정의가 가장 좋은 예이다.)

우리는 여전히 감정에 좌우되는 인간이다.

우리는 숫자가 아니라 늘 어떤 서사와 연결되고 싶어 한다.

우리는 방정식 때문에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감정을 자극하는 리더들의 뒤를 따른다."

- 사이먼 시넥 〈위대한 리더들이 행동을 이끌어내는 법 (How great leaders inspire action)〉 (TED 강연, 2009)

"사명 선언문은 쓰레기통에 버려라. 대신 당신의 회사가 왜 존재하는지 3~4단어의 만트라로 정의하라."

- 가이 가와사키(Guy Kawasaki) 〈The Art of Innovation〉 (TEDxBerkeley, 2011년)

(*가이 가와사키는 수많은 강연(TEDx 등)에서 기업의 '사명 선언문(Mission Statement)'은 너무 길고 진부하다며, 이를 3~4단어로 된 '만트라(Mantra)'로 요약하라고 강조.

예)

나이키: "Authentic athletic performance" (진정한 운동 성과)

디즈니: "Fun family entertainment" (즐거운 가족 엔터테인먼트))

"무엇이든 데드라인을 적극 수용하고 활용하는 것이 좋다. 만약 당신이 어느 프로젝트를 끝내거나 사업체를 하나 차리는 데 스스로에게 1년을 준다면 대체로 1년이나 그 이상이 걸릴 것이다. 자신에게 석 달을 준다면 그만큼 더 빨리 끝낼 것이고, 그 과정에서 집중된 에너지가 당신의 기술 수준을 높이고 결정도 훨씬 더 좋게 만들어줄 것이다.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빡빡한 데드라인을 만들어서 당신의 목적의식을 심화하라.

토머스 에디슨은 발명품을 하나 만드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만든 것이 얼마나 훌륭한 작품이 될지 기자들에게 이야기하며 본인의 아이디어를 과장하는 습관을 키웠다. 그렇게 널리 알리고 나면 반드시 그것도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그 일을 성공시키지 않으면 웃음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위치에 놓이고 나면 이제는 수완을 적극 발휘할 수밖에 없고, 거의 매번 그는 실제로 그렇게 해냈다.

18세기 일본의 고승 하쿠인 에카쿠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하쿠인의 스승은 그에게 화두를 몇 가지 던졌는데 이게 그를 크게 조절시켰다. 발전이 없자 하쿠인은 절박해졌고 아주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일주일 안에 이 화두 중에 하나를 마스터하지 못한다면 자살하겠어." 이것은 효과가 있었고 이후에도 쭉 효과를 발휘해 결국 그는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렀다.

- 로버트 그린 (Robert Greene) 《인간 본성의 법칙, 2018》

"만일 당신이 무엇인가에 도달하는 데 10년이 걸리는 계획을 갖고 있다면,

당신은 다음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

'아니, 왜 이걸 6개월 안에는 해낼 수 없는 거지?'

이 질문은 종종 이렇게 확장되기도 한다.

"10년 걸릴 목표를 6개월 안에 달성하기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렇게 요구하며 누군가가 당신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있다면?"

- 피터 틸 (Peter Thiel) 《제로 투 원, 2014》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은 상대적 세계와는 아무런 실질적인 관계가 없다고 하는 신에 대한 고전적인 진술을 내놓은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순수한 완벽의 신이다. 그러한 신이 상대적 세계에 자신의 손을 더럽힌다는 것은, 즉 상대적이며 유한한 세계에 관여한다는 것은 분명 충만함의 결여, 완전성의 결여, 따라서 일체 완비된 완벽함의 결여를 나타내는 것이었을 것이다. 신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신은 분명 상대적인 세계를 창조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신이 실제로 상대적 세계를 창조했다면, 그것은 신이 자신의 존재에 뭔가 결여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것일 텐데 이런 일은 명백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은 최종적인 원인으로서만 상대적 세계 ‘속’에 존재하며, 모든 상대적 피조물이 도달하려고 애쓰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고의 선이라는 것이다. 플라톤의 저술 중 어떤 측면들은 일체 완비된 신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세계는 감각과 혼란된 의견이라는 상대적 세계를 전적으로 초월해 있는 실재 세계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플라톤 사상의 반쪽일 뿐이다. 나머지 (덜 주목받는) 절반은 상대적 세계 전체가 지선의 창조물이자 자신의 드러남이며 또한 충만의 징표라는 점을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서구 우주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술이라 할 수 있는 <타마에우스(Timaeus)>에서는, 세계를 창조할 수 없는 절대ㅡ는 창조할 수 있는 절대에 비해 명백히 열등하다고 기술되어 있다. 신은 완벽하므로 전적으로 일체 완비된 독립적 존재임에 틀림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결론과는 달리, 타마에우스의 결론은 창조할 수 없는 신은 전혀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창조할 수 없는 신은 창조 가능한 신을 시샘하고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절대의 창조적 흘러넘침을 통해서 모든 현시된 영역이 전면에 드러난다는 것이며, 그리하여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신 자신의 충만함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바로 이 세계를 ‘볼 수 있고, 감지할 수 있는 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서양의 가장 해결할 수 없는 이원론, 절대 대 상대, 그리고 정확히 이들 간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하는 설명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입장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이원론의 문제를 그저 방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들이 그러한 신에 도달하려는 자신의 욕망에 의해 내몰리지만 어느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이 논리적으로는 아무리 ‘명쾌’해 보일지라도 온 우주(kosmos)의 심장부에 폭력적으로 박아 놓은 분열적인 쐐기를 남겨놓게 된다. 저 너머의 신, 이곳에 사는 우리 그리고 이들 둘은 영속적으로 아무 보답 없는 짝사랑에 의해서만 만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신은 이 세계에 충만함으로 존재한다는 또 다른 해결책 역시 (적어도 통상 그 해결책이 설교되었던 것만큼) 그 자체의 심각한 어려움을 갖고 있다. 즉, 절대가 진정 상대적 세계를 창조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악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만일 신이 이 세계 속에 그의 손을 담그고 있다면, 신은 아우슈비츠 때문에 비난받아야 하지 않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 신은 얼마나 기괴한 괴물이란 말인가?

절대와 상대 간의 이러한 이원론과 그들 간의 관계에 대한 주장은 서양철학의 전 전통을 서로 투쟁하면서 전혀 화해할 수 없는 두 진영, 즉 신을 강력하게(혹은 전적으로)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사람들과, 신을 강력하게(혹은 전적으로) 이 세계 밖에 존재한다고 보는 사람들로 분열시켜 놓았다. 각자 취향에 따라 이 세상 대 저 세상, 하강자 대 상승자, 내재주의자 대 초월주의자, 경험주의자 대 관념론자로 분열되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에서는, 신은 상대적 세계의 소동으로부터 그저 물러나 있는 존재였으며, 자신의 손을 더럽히는 신을 갖기를 거부했다. 신은 일체 완비되고 통일된 완벽함이며, 따라서 신은 이 세계나 또는 그 어떤 것도 창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완벽한 분이 완벽함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고 어떻게 더 이상 무엇을 창조할 수 있단 말인가? 창조한다는 것은 지금 뭔가가 결여되어 있음을 의미하는데, 신은 아무것도 결여된 것이 없기 때문에 신은 창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한 분이 불완전한 피조물에 관여되어 있다는 또 다른 지적인 입장도 그다지 더 매력적이지는 않다. 만일 완벽한 분이 완벽하지 못한 악 속으로 발을 내딛는다면, 뭔가 어딘가에서 지독하게 잘못되었을 때 그런 잘못에 대한 비난은 오직 그 한분에게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학자들은 대체로 신의 의지가 이 세계를 창조한 것이고, 신은 자유가 이 세계의 좋은 성분이므로 허용한 것일 뿐 악은 창조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할 것이다. 영지주의자들(Gnostics)은 세계 전체는 진정한 절대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라, 조물주(Demiurge), 악마 또는 적어도 열등한 영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 세계는 명백히 사악한 것이라는 쪽으로 머리를 돌린다(‘도대체 어떤 신이 이 모양인가?’라는 유명한 영지적 문장처럼). 신을 세계 밖에 모셔 놓으려는 이 얼마나 교활한 시도인가! 우리가 신을 세계 속에 놓을 경우 뭔가 끔찍하게, 비참하게 잘못된 것을 설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리라. 사실상 서양철학은 상대와 절대 간의 지리멸렬한 대립의 역사와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해결 불가능한 이원론이야말로 서구 전통 속에 남아 있는 핵심적인 이원론이며, 본질과 현상, 마음과 육체, 자유의지와 결정론, 도덕과 본성, 초월과 내재, 상승과 하강 사이의 이원론이라는 수많은 모습으로 변장한 채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사실은 서양의 가장 골치 아픈 철학적 문제들, 즉 절대/상대로부터 심/신의 딜레마에 이르기까지 이들 견고한 이원론에 대한 근본적이면서 강력한 해결책이 동양 전통에 묻혀 존재해왔다는 사실이다."

"전의식(Pre-rational)과 초의식(Trans-rational)은 모두 '비논리적(Non-rational)'이라는 점에서 유사해 보이지만, 하나는 합리성 이전의 단계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성을 초월한 단계이다. 이 둘을 혼동하는 것은 아기의 단순함을 성자의 무심(無心)과 착각하는 것과 같다."

"만약 당신이 어떤 영적 진리가 존재하는지 묻는다면, 나는 당신에게 명상이라는 '훈련(Injunction)'을 권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그 훈련을 마친 후 얻은 데이터를, 이미 그 길을 간 수천 명의 다른 수행자들의 데이터와 대조해 보라. 이 간주관적 일치가 바로 영적 실재를 증명하는 '과학적' 방법이다."

- 켄 윌버 (Ken Wilber) 《아이 투 아이 (Eye to Eye), 1983》

"자연과학의 목적은 일반적인 법칙을 정립하는 것이지만, 역사(정신과학)의 목적은 과거에 단 한 번 있었던 사건을 그 고유한 형상 속에서 확정하는 것이다."

(독문: Die Naturwissenschaften suchen Gesetze, die Geschichte Gestalten.)

"우리는 불변하는 법칙에 대한 지식을 '법칙 정립적(Nomothetisch)'이라 부르고, 개별적인 상태를 그 자체로 기술하는 것을 '개별 기술적(Ideographisch)'이라 부를 수 있다."

(독문: So dürfen wir sagen: die Erfahrungswissenschaften suchen in der Erkenntnis des Wirklichen entweder das Allgemeine in der Form des Naturgesetzes oder das Einzelne in der historisch bestimmten Gestalt... das eine sind Gesetzeswissenschaften, das andere Ereigniswissenschaften; wir haben es dort mit dem nomothetischen, hier mit dem ideographischen Denken zu tun.)

- 빌헬름 빈델반트 (Wilhelm Windelband) 《역사와 자연과학 (Geschichte und Naturwissenschaft), 1894》

(*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정신과학)의 방법론을 엄격히 구분하는 개념은 신칸트학파 중에서도 바덴 학파(Baden School), 특히 빌헬름 빈델반트(Wilhelm Windelband)에 의해 정립되었다.)

Sub specie aeternitatis

영원의 관점에서

- 바뤼흐 스피노자 《에티카, 1677》

신과 마주하는 단독자(den Enkelte)

- 키에르케고르 《죽음에 이르는 병, 1849》 (대중 속에 매몰되지 않고 신 앞에 홀로 선 주체적 인간)

Error circumflexus, locus implicitus gyris.

아무리 찾아봐도 돌고 돌 뿐인 미로여.

- 미로를 묘사하는 라틴어 시구로, 중세 신비주의나 연금술 문헌에서 주로 인용 됨.

Tat Tvam Asi (तत् त्वम् असि): "네가 바로 그것이다"

어원: 산스크리트어로 Tat(그것 - 우주의 근원인 브라만), Tvam(너 - 개별적 자아인 아트만), Asi(이다)의 합성어

범아일여(梵我一如)

- 《찬도기야 우파니샤드(Chandogya Upanishad)》 제6장 (BC 7세기 ~ 6세기경 - 고대 우파니샤드 중 하나)

일즉다일(一卽多一)

원문: 一卽多 多卽一 一微塵中含十方 (하나가 곧 많음이고 많음이 곧 하나이며, 한 티끌 속에 온 우주가 담겨 있다.)

- 의상대사가 668년 당나라 유학 중 『화엄경(華嚴経)』의 사상을 압축해 표현

"진리는 하나이나, 현자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언표한다."

- 《리그베다(Rig Veda)》 제1권 164장 46절 (BC 1500년 ~ 1200년경)

대도무문 (大道無門)

"큰 도에 이르는 문은 따로 없다. (모든 곳이 문이다.)"

- 송나라 때의 선종(禪宗) 공안집인 《무문관(無門關), 1228》

처음의 우주는 인간의 형상을 한 자아Self였다. 그는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아무것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내가 바로 그다(I am he)>하고 소리쳤다. 여기에서 <나>라는 이름이 생겼다. 오늘날에도 누가 말을 건네오면 <응, 나>라는 말로 서두로 삼은 연후에야 자기가 만난 다란 사람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두려웠다. 사람이 혼자 있으면 두려워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내가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 이외엔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자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는 불행했다. 사람이 혼자 있을 때,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로 인함이다. 그는 짝이 있었으면 했다. 그래서 그는 남녀가 부둥켜 안고 있는 형상만큼 커졌다. 그는 바로 자기 자신인 이 형상을 둘로 나누었다. 형상은 남편과 아내로 나뉘었다… 그래서 이 인간의 몸은(아내를 얻기 전에는) 쪼개진 강남콩의 반쪽 같았다. 그는 아내와 교합했고 여기에서 인간이 태어났다.

아내는 이런 생각을 했다. "저이는 자신의 형상에서 나를 만들었는데 어떻게 나와 교합할 수 있을까보냐, 내 스스로 숨어버리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래서 아내는 암소로 변했다. 그러나 그는 수소로 둔갑하여 암소와 교합했다. 여기에서 가축이 태어났다. 아내가 암말이 되자 남편은 종마가 되었고, 아내가 암 당나귀가 되자 남편은 수당나귀가 되어 아내와 교합하니 여기에 발굽이 한 덩어리로 된 동물이 태어났다. 아내가 암염소가 되자 그는 숫염소가 되었고 아내가 암양이 되자 그는 숫양이 되어 교합하니 여기에서 각각 염소와 양이 태어났다. 이렇게 해서 그는 저 개미에 이르기까지 짝으로 존재하는 모든 생물을 잉태하게 했다.

드디어 그는 깨달음을 얻고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만물을 지었으니, 내가 곧 창조로다." 이로 부터 그는 <창조>라고 불리게 되었다.

- 《브리하드 아라냐카 우파니샤드》 (Brihadaranyaka Upanishad) (BC 9세기 ~ 7세기경 - 우파니샤드 중 가장 오래된 '고(古) 우파니샤드'에 속함)

바벨의 도서관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바벨의 도서관, 1941》의 배경

(* 바벨의 도서관의 책에는 410쪽의 페이지, 각 페이지에는 40행의 글씨가, 각 행에는 검은 글자 80개가 적혀 있다. 도서관의 책들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문자 조합을 이용해 정렬되어 있다.이 때문에 대부분은 말도 안 되는 단어뿐인 쓰레기이지만 그 와중에 분명 제대로 된 명서가 있을 것이며 미래에 대한 예언서, 인물의 열전 등 가능한 모든 정보가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판화가 에셔의 기하학적 건물이 떠오른다.)

How great thou art

- 칼 보버그(Carl Boberg)의 찬송가 시 《O Store Gud, 1885》

"나는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것은 그 어떤 것도 남의 일로 보지 않는다."

- 테렌티우스의 희곡 《자신을 벌하는 자, BC 163년》

"이름만 바꾸면 이 이야기들은 또 당신에 관한 것(Mutato nomine de te fabula narratur)"이다.

- 호라티우스 《Carmina (시가집)》 제1권, 1번째 시 (Epode 1), "Nunc est bibendum" (이제 술을 마시자) 69행 (BC 23년경)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원문: 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만약 어떤 사람이 삼세의 모든 부처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하라.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다.)

- 『화엄경』(서기 1세기~4세기)

(* 원효대사가 인용하여 유명해졌는데, 그의 깨달음 일화는 661년의 사건으로 기록 됨)

우주즉아(宇宙卽我)

원문: "우주가 곧 나의 마음이고, 나의 마음이 곧 우주다." (宇宙便是吾心, 吾心便是宇宙)

- 육구연(陸九淵) (12세기 후반 송나라)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100척(尺)이나 되는 장대 끝에 서 있더라도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시방세계와 내가 한 몸이 되어 현하리라."

- 송나라 시대 사찰의 기록인 《경덕전등록, 1004》

(* 의미: 100척이나 되는 높은 장대 끝에 서 있는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그 한계마저 초월하여 한 걸음 더 내딛는다는 뜻.

철학적 의미: 더 이상 갈 곳 없는 낭떠러지 끝에서 뛰어내리는 용기를 낼 때, 비로소 '나와 세계가 하나가 되는(현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다는 선(禪)적 역설)

"예로부터 마음의 중요성

해는 밤을 비출수 없고

거울은 그 자신의 뒤를 비출수 없네

그러나 이 마음은 이 누리 두루두루 안비추는 곳이 없네."

- 백운 경한 《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 1370년대 초반》

"호랑에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 조선시대의 구비전승(口碑傳承)

일념통천(一念通天)

- 13-14세기 원나라 때의 사자성어

(* 동양에는 옛부터 인간과 하늘이 교감할 수 있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있었는데, 기원전 134년경, 동중서(董仲舒)가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통해 최초로 이론화를 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런 관념은 동중서 이전부터 있었으나, 이를 체계적인 논리와 정치 철학으로 완성한 것은 동중서가 최초라고 평가받는다.)

"올라야 할 산을 정해라. 인생의 반이 끝난다."

- 손정의, 소프트뱅크 설립 30주년을 기념해 열린 '소프트뱅크 신(新) 30년 비전 발표회' 강연 중 나온 발언 (2010년 6월 25일)

"자신의 희열(Bliss)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이전에는 문이 없던 곳에서 문이 열릴 것입니다."

"우파니샤드는 말합니다. 당신이 지는 해를 보고 잠시 멈춰 서서 '아!' 하고 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당신이 신성을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잊고 우주의 라사(Rasa)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요."

(* 우파니샤드 원문: 그분(우주의 근원, 브라만)은 참으로 '라사(맛/정수)'이시다. 인간은 이 '라사'를 얻음으로써 비로소 기쁨(Ananda, 지복)에 넘치게 된다.

- 《타이티리야 우파니샤드(Taittiriya Upanishad)》 제2장 7절)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각자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가 그것을 삶에 부여하는 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정답인데 문제를 묻고 있는 것은 낭비일 뿐입니다."

"지금도 각자를 위한 길이 저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일단 그 길에 들어서기만 하면, 이전까지는 열리지 않았던, 그리고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열리지 않을 문들이 열리게 될 것이다."

"우리 각자의 희열을 따르는 것은 방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력이 넘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다 지나도록 거기 머물러만 있으면 썩어 버리게 된다."

"나는 우리가 신들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기만 하면 신들은 우리를 향해 열 걸음을 다가서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생각만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다. 한계, 결정, 선택이 바뀜으로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결코 돈을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나는 이제껏 돈에 관해 완전히 무심한 삶을 살아왔다. 대신 나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제법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렇게 하면 결국은 돈이 따라오게 된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삶에 사하는 것과 삶이 여러분에게 보답하는 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 때문이다."

"그 분야에 평생을 바친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서, 나는 매우 흥미로우면서도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른바 훌륭한 부자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 조셉 캠벨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 1988)』,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1949)》, 《신화와 인생(Thou Art That / Pathways to Bliss), 2004》 - 사후출간

"나는 모든 사소한 사물 속에서 상징적인 의미와 에피파니(직관적 깨달음)를 본다."

- 제임스 조이스 1900년대 초 편지 및 저서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

"삶이란 얼마나 많은 숨을 쉬었는가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숨을 멎을 만한 순간이 인생에서 얼마나 많았는가로 평가할 수 있다."

(Life is not measured by the number of breaths we take, but by the moments that take our breath away.)

- 조지 칼린 《Paradox of Our Time, 2008》(사후 출판) (원문은 1990년대)

나는 내 심장이 뛰는 방향을 따랐다.

(의역: "당신의 생명력이 가장 뜨겁게 피어오르는 곳으로 가라.", "당신을 가장 전율하게 만드는 곳에 머물러라.")

"I went the way my blood beat."

- 제임스 볼드윈 (James Baldwin) 《아무도 내 이름을 모른다 (Nobody Knows My Name), 1961》 서문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 공자 『논어(論語)』 제6편 「옹야(雍也)」 장, BC 5~3세기경

"재미있을 것도 없는 세상을 재미있게"

- 다카스기 신사쿠의 사세구 (1867년)

"나는 환자를 고치고 병원을 키우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남자가 싱거워 보였다. 일이 주는 희열에 비하면 남녀 간의 사랑은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결혼할 생각을 아예 잊고 살았다."

- 이길여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 이길여 편 인터뷰 및 가천대학교 공식 유튜브 인터뷰 (2023)

"노는 만큼 성공한다."

"재밌는 삶만 오래 할 수 있는 거에요. '지속가능한 경쟁력'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는데, 지속가능한 삶이 중요한 거에요. 재밌는 사람이 오래 붙이는거야. 참고 버티는 사람은 오래 못가요."

- 김정운 《노는 만큼 성공한다, 2005》

(*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은 '휴테크(Rest-tech)', '놀이', '편집(Edit)'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국 사회의 경직된 성공 서사를 뒤집는 통찰을 제시해왔다. 그의 저서들은 대체로 "잘 놀아야 성공하고, 창조는 편집이다"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놀듯 일하고 일하듯 놀아야 한다; 나는 결코 독자나 시대에 맞추지 않고 나만의 감각으로 읽고 싶은 책을 만든다."

"논리에서 벗어나 형식을 파괴한 자에게 돈도, 사람도 모인다; 극단적일 정도로 어느 한 개인을 위해 만든 것이 대중에게 퍼져 나간다."

- 미노와 고스케 《미치지 않고서야, 2018》(일본어 원제: 死ぬこと以外かすり傷, 죽는 것 외에는 다 찰과상이다)

"택시 운전사나 저널리스트, 라디오 진행자들은 어떻게 그처럼 돈을 잘 버는지 비결을 묻곤 한다. 사실 그들이 정말로 알고 싶은 것은 '자신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다. 누구나 백만장자가 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의 대답은 늘 똑같다. 내겐 비결 같은 것은 없다. 사업을 할 때 꼭 지키는 규칙도 없다. 단지 열심히 일하고, 뭔가를 할 때에는 항상 할 수 있다고 믿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즐기려고 노력한다. 일과 재미는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때야 비로소 "즐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일도 안 하고 걱정도 안 하고 스트레스도 안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왜 깨어 있는 모든 시간을 일하느라 소진하는지, 심지어 때로는 완전히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을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재미는 원기를 회복시켜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활기와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삶이란 웃고, 서로 사랑하고, 감사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아니던가? 나는 가슴이 이끄는 대로 살고, 새로운 것이 도전하며, 상상한 것을 실현한다." 내 꿈과 열정에 솔직한 것, 그것이 내 삶이고 경영이다."

"무슨 일이든 잘하고 싶으면 빈틈없이 계획을 짜서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조건 하라. 두려움을 떨치고 날아가지 못한다면 목표가 무엇이든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 리처드 브랜슨 《내가 상상하면 현실이 된다, 2006》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즐겁지 않으면 그들의 게임을 재미있어 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 미야모토 시게루, 수십 년간 진행해온 여러 인터뷰와 닌텐도의 전 사장 이와타 사토루가 진행했던 〈이와타가 묻는다(Iwata Asks)〉 시리즈, 그리고 각종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 강연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해온 그의 핵심 철학

나카무라 슈지(1954~)는 201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다. 그는 노벨상을 수상했던 여느 엘리트들과 달랐다. 먼저 그는 학문적 발견이 아닌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샐러리맨 출신의 연구자이다. 그가 1993년 LED를 개발한 덕에 조그만 화학업체에 불과했던 니치아 (日亞) 화학공업은 단숨에 연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보상은 과장 승진과 특별 수당 2만엔 뿐이었다. 그는 발끈해 퇴사하곤 미국으로 건너간 뒤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도쿄지법에서 "나카무라의 발명 대가는 604억엔(약 6000억원)"이란 판결을 얻어냈다.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좋아하는 일만 해라(2004·사회평론)>를 발간했고, 말 그대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그러다보니 성공은 자연스럽게 따라 온다는 것이다.

- 나카무라 슈지 《좋아하는 일만 해라, 2004》 내용요약

"제 꿈은 거창하지 않았어요. 이 길을 걷는 것도 그랬고요, 어떤 동기 같은게 특별하게 찾아 오지 않아요. 사람들은 많은 돈과 높은 명예를 원해요. 그런데 이런 거는 자기 분야에서 정상에 서면 자동적으로 따라오게 되요. 사람들은 그래요. 누구나 할법한 이야기 말고 성공한 사람들의 비밀이 궁금하다고. 그런데 정말로 비밀 같은 건 없어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그걸 정말 잘할 수 있는지부터 판단하면 되요. 사람들은 보면 꿈이 어느정도 공통적으로 비슷해요. 바로 그 사회에서 알아주는 분야들을 자신의 적성, 꿈으로 삼으면 돼요. 그런데 남이 먼저 닦아논 길을 걷는다는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길에 진입하려 하기에 경쟁이 치열하죠. 그 길 끝에는 이미 오래 전에 도착한 사람들이 많은 열매를 먹고 난 뒤라 자신이 먹을 게 별로 없어요. 소수분야다, 비주류다, 마이너다, 이런 생각을 버리세요. 어느 분야던 그 열매는 다 맛있어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두려워 하지 마세요. 그 길 끝에는 최초로 발견한 당신과 아무도 손대지 못한 열매가 기다릴지 아무도 모르는 거에요."

- 데니스 홍 『로봇 정신, 2013』 및 『데니스 홍: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법, 2013』

양방언(1960~)은 일본, 중국, 한국의 문화를 접목해 아시아적인 음악을 만드는 세계적인 음악가이다. 그는 원래 일본에서 의사로 개업했는데,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에 의사를 그만두었다. 의사를 그만둘 때의 소지금은 50만 원이 전부였다고 한다. 심한 생활고를 겪었지만 마음만은 의사와 음악 사이의 고민에서 해방돼 자유로웠고, 그것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고, 잘한 선택이었다고 회고했다.

- 양방언(Yang Bang-Ean) 자서전 『프런티어, 상상력을 연주하다, 2011』 요약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일을 성취한 뒤에 느낌은 날아갈 듯 해. 존재감을 온통 맛보지. 이기는 것은 항상 지는 것보다 좋은 일이야."

"내게는 오직 이기는 것이 목적이었어. 이기면 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지."

"당신의 타고난 직감을 따르세요."

"직감에 따라 결정하세요. 비관론자나 당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의 말에 휘둘리면 안 됩니다."

- 섬너 레드스톤 《승리의 열정(A Passion to Win, 2001)》

(* 그는 <승리의 열정>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내기도 했던 만큼, 평생 승리에 대한 열정을 원동력 삼아 살아 왔다. 그는 이기지 않고는 못사는 성격으로, 이기는 것이 모든 것의 해답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하버드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 로스쿨를 졸업하는 등 엘리트 코스만을 거쳐온 그는 20대 초반에 변호사로 활동했다. 또 미디어 산업에 들어간 뒤로는 닥치는 대로 회사의 몸집을 불려나갔다. 1979년 보스턴호텔 화재 사건 때 1시간을 난간에 매달려 있으면서 얼마 안되는 생존자 중 한명에 포함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자매사의 방송만 편애해 틀어주는 케이블 채널들과 소송해 이겼는데, 그 후로도 크고 작은 소송들이 이어졌다. 레드스톤은 거의 모든 소송에서 이겼다.

그는 90대에도 현역으로 활동했으며, 2인자를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후임자의 두각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그 즉시 해고해버린다. 심지어 자식들과도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그는 승계 계획에 대한 이야기 자체를 불쾌해 할 정도로 자신의 일을 사랑했다.

그렇지만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다른 많은 성공한 인물들처럼 그는 일을 하는데 돈 자체가 동기 부여가 된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30년 넘도록 바이어컴으로부터 월급을 한 푼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

<살아 있다면 저질러라>의 저자 정보경(1989~)은 아이돌 지망생에서 고졸 학력으로 대한민국 최연소 법무사가 되었다. 그녀는 청춘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정답이다. 심사숙고 따위 하지 않는다. 일단 저지르고 본다." 그녀는 가수 신화를 쫓아 서울 전역을 헤집고 다니던 열정을 바탕으로 오디션에 수차례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가수가 자신의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후 고졸이라는 무시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며 신림동 고시촌에서 법무사를 목표로 4년을 버텼고, 끝내 자신의 꿈을 이뤄냈다.

- 정보경 『살아 있다면 저질러라, 2012』 내용요약

"모든 길은 같다. 아무 데도 이어지지 않는다. ... 이 길에 '심장'이 있는가? 있다면 그 길은 좋은 것이고, 없다면 쓸모없는 것이다. 두 길 모두 어디로도 이어지지 않지만, 하나는 심장이 있고 다른 하나는 없다. 하나는 즐거운 여정을 만들어주며 그 길을 따르는 동안 당신은 그것과 하나가 된다. 다른 하나는 당신이 삶을 저주하게 만들 것이다. 하나는 당신을 강하게 만들고, 다른 하나는 당신을 약하게 만든다."

- 카를로스 카스타네다 『돈 후안의 가르침 (The Teachings of Don Juan: A Yaqui Way of Knowledge, 1968)』

"트랜서핑 모델을 따르자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자기만의 목표를 이룬다면 행복이 오지 않을까?

또 틀렸다. 행복은 당신의 문을 통해서 당신의 목표를 향해 가는 동안에 온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인생트랙 위에, 자신만의 길 위에 있을 때, 목표는 저만치 놓여 있더라도 그는 이미 행복하다. 이것이 삶이 소풍이, 잔치가 되는 때다.

목표를 이루어가는 것 자체가 이미 하루하루를 잔치로 바꿔놓는다.

타인의 목표를 향해 간다면 잔치는 어디까지나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것으로 남을 것이다.

당신의 목표란 당신에게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그것은 일시적 만족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기쁨을 가져다 주는 무엇이다.

당신의 길에서 당신은 열망과 열의를 느껴야 한다.

그 길에서는 모든 일이 쉽기만 하리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향해 가는 것이 당신을 황폐화시키지 않고 오히려 늘 신명 넘치게 한다는 것이다.

당신의 문을 지나 목표를 향해 가면 장애물은 쉽게 극복되고 어떤 노력도 당신에게는 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늘 신경이 곤두서 있고 일에 신명이 나지 않고 목표를 향해 가는 일이 피곤하기만 하다면 그것은 당신이 다른 누군가의 목표를 좇고 있거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문을 통해 억지로 가려고 애쓰는 것이다.

타인의 목표 - 그것은 언제나 당신을 압박하여 일을 하게 만든다. 그것은 의무다.

당신의 목표에서 조금이라도 강요된 의무를 발견한다면 그것을 미련없이 던져 버려라.

목표가 당신의 것이라면 자신을 설득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기쁨을 가져다 준다."

"목표를 생각할 때 그것이 얼마나 성취하기 힘들고 칭송받을 만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지 말라. 그것을 성취할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지 말라. 다만 영혼의 편안한 기분 상태에만 주의를 기울여라. 당신이 마침내 목표에 도달했다고 상상해보라. 기분이 좋은가, 나쁜가? 당신의 그 기쁨 속에 두려운 느낌이나 무거운 기분이 섞여 있다면 당신은 영혼의 불편한 기분을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목표에 당신이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 당신의 목표는 훨씬 더 매력적이고 그 어떤 불편한 기분도 없이 더 큰 즐거움을 줄 것이다."

"당신이 현재 세상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불만스럽거나, 불운한 일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면 그것은 언제부턴가 당신이 파괴적 펜듈렴의 힘에 지배받아 다른 누군가의 문을 통해 다른 누군가의 목표를 향해 가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타인의 목표는 많은 에너지와 노력을 요한다. 반면에 당신의 목표는 마치 저절로 이루어지듯이 이루어진다. 타인의 목표와 문은 언제나 당신을 고난의 문으로 몰아간다. 당신의 목표와 문을 찾아라. 그러면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뭘 원하는지를 모른다면 그것을 어떻게 찾지요? 그러면 이렇게 반문하겠다.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 봤는가? 희한한 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펜듈럼에게 충성을 바치느라 바빠서, 말 그대로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처럼 바빠서 자신과 자신의 영혼을 위한 시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삶에서 진정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는 의문은 삶을 짓누르는 그 모든 문제의 무게 밑에서,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건성건성 급하게 지나쳐가 버린다.

그저 잠시라도 혼자 있을 장소를 찾아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새벽별의 속삼임에 귀를 기울이라. 그런데 만일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은 당신의 잠재 에너지가 극도로 낮은 수준임을 말해준다. 무관심과 좌절 상태는 그저 존재를 간신히 유지할 정도의 에너지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다. 그렇다면 당신의 에너지 보유량을 늘여야만 한다. 영혼이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단지 당신에게 영혼의 목소리를 들을 기운이 없는 것일 뿐이다."

"당신 자신 밖에는 그 누구도 당신의 목표를 정할 수는 없다. 당신의 목표를 찾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중요성을 버리고 펜듈럼을 등지고 당신의 영혼을 대면하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라. 그런 연후에만 당신은 목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저지르는 또 다른 실수는, 목표를 이루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를 당장 따져보고 수단과 방법을 앞질러 계산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태도로는 자신이 목표로 하는 인생트랙에다 주파수를 결코 동조시킬 수 없다. 목표를 이룰 방법을 놓고 고민한다면 오히려 그는 실패의 트랙에 주파수를 동조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는 실패를 가져다 줄 모든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돌리고 있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 힘겨운 목표는 평범한 세계관의 틀 속에서는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이치다. 왜냐하면 의심하는 사람의 매개변수는 그가 목표로 하는 인생트랙과는 무슨 수로도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일상적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나와, 목표를 이룰 방법이 아니라 목표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할 때만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것들이 더 이상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마치 우연처럼, 목표를 이루어질 너무나 실질적인 방법들이 당신 앞에 불현듯 나타날 것이다. 일상적 세계관으로 보면 그것은 기적적인 우연처럼 보일 거이다. 그럴 때 마음은 그저 어리둥정할 것이다.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트랜서핑의 관점에서 보면 기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저 당신이 목표로 하는 인생트랙의 주파수에 동조했다. 당신은 가지기로 결정했고 외부의도가 당신을 그 인생트랙으로 데려다준 것이다. 그리고 그 인생트랙 위에서는 이전의 인생트랙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기회가 나타나고 문들이 열어젖혀진다."

- 바딤 젤란드 『리얼리티 트랜서핑(Reality Transurfing, 2004)』

"가슴 설레는 일을 할 때 창조력이 발휘되고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

"삶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이 물리적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결정됩니다."

"우선 자신 안에 하이어 마인드가 존재한다는 사실, 즉 상위자아의 측면이 있다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그리고 그 고차원의 의식과 현재의식을 균형 있게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기 위해서는 몸을 편안히 하고, 상상력과 영감이라는 상위자아의 언어에 귀를 귀울여야 한다."

"어떤 사람이 '내 인생은 온통 가시밭길이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가장 설레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장 가슴 설레는 일을 할 때,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것이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아니면 만들어집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뭔가에 가슴 설렌다면, 설레는 데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가장 설레는 일은 바로 '이것이 진정한 당신이다'라고 알려주는 것이지요."

"창조주인 자신이 활홀감에 가득 차도록 느끼게 해 주는 파동이 바로 설레는 마음입니다. 당신이 그러한 파동으로 진동할 때, 우주가 당신을 지지하지 않으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주는 것이 당신이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조'의 유일한 법칙입니다. 어느 차원에서나,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법칙은 그것 하나뿐입니다. (중략) 따라서 당신이 설레는 파동으로 진동하면서 가장 설레는 방향으로 행동할 때, 당신은 가슴 설레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다릴 앙카 『다시,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1987』

"나는 매일매일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낸다. 그리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 짜증나는 사람과는 일을 하지 않는다. 1년에 몇 번 기분 나쁜 일이 생기는데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해고해야할 때다. 그 외에는 출근길에 춤을 출 정도로 신난다. 사무실에 가면, 천장에 누워서 그림이라도 그려야 하나 싶을 정도로 즐겁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낀다. 성공은 원하는 걸 얻는 거고, 행복은 얻은 걸 원하는 거라고들 말한다. 확실한 건, 나는 이거 말고 다른건 안 하고 싶다는 것이다."

- 워런 버핏, 포춘(Fortune)지 인터뷰 및 네브래스카 대학교 강연 등 다수

년도: 1990년대 후반~2000년대 (버핏의 전형적인 행복론으로 널리 알려짐)

"내가 평생 동안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것은 그날 할 일이 즐거워서 기대와 흥분으로 마음이 설레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 기분은 소학교 때 소풍가는 날 아침, 가슴이 설레는 것과 똑같다. 또 밤에는 항상 숙면할 준비를 갖추고 잠자리에 든다. 날이 밝을 때 일을 즐겁고 힘차게 해치워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을 아름답고 밝게, 희망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 정주영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1998》

"스승님, 어떻게 그토록 많은 음정을 생각해내실 수 있습니까?"라는 제자의 질문에 바흐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그건 전혀 힘든 일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새로운 음정에 맞춰 덩실덩실 춤추지 않도록 참는 것이 훨씬 더 힘들지.

- 에스터 메이넬 (Esther Meynell) 《바흐: 음악으로 쓴 자서전 (The Little Chronicle of Magdalena Bach), 1925》

"여러분이 하는 일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해서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스티브 잡스 스탠퍼드 대학교 졸업 축사 (2005)

"네, 사람들은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곤 하죠. 그건 전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 이유는 이 일이 너무나 힘들어서, 열정이 없다면 제정신인(rational)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포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정말 힘들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그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정말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국 포기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사회의 관점에서 결국 성공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했기에 정말 힘든 순간에도 끈기 있게 버텨낼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반면,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그만두었습니다. 왜냐고요? 그들은 제정신(sane)이니까요, 그렇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누가 이런 고생을 참아내고 싶겠습니까?

따라서 이 일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고 끊임없이 걱정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실패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그 일을 사랑해야 합니다. 열정을 가져야만 합니다."

“Yeah, people say you have a lot of passion for what you’re doing, and it’s totally true and the reason is because it’s so hard that if you don’t any rational person would give up.

It’s really hard and you have to do it over a sustained period of time. So if you don’t love it, if you’re not having fun doing it, if you don’t really love it, you’re going to give up.

And that’s what happens to most people, actually.

If you really look at the ones that ended up being successful in the eyes of society, and the ones who didn’t, often times it’s the ones that are successful love what they did so they could persevere, you know, when it got really tough.

And the ones that didn’t love it, quit. Because they’re sane, right? Who would want to put up with this stuff if you don’t love it?

So it’s a lot of hard work and it’s a lot of worrying constantly and, if you don’t love it, you’re gonna fail.

So, you gotta love it, you gotta have passion.”

- 스티브 잡스, 스미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ion) 구술 이력 인터뷰 (인터뷰어: 다니엘 모로우)

년도: 1995년 4월 20일

시작은 아주 어릴 때 제1성향의 신호를 찾아보는 것이다. 이때가 제1성향이 가장 분명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초기 성향을 쉽게 기억해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자기 성찰과 탐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특정한 주제나 대상 혹은 놀이나 활동 등에 이례적으로 사로잡혔던 순간을 찾아봐야 한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위대한 과학자 마리 퀴리는 네 살 때 아버지의 서재에 들어갔다가 반짝이는 유리 상자 뒤에 놓여 있는 다양한 화학실험용 관이며 계측 장치에 순간적으로 사로잡혔던 기억을 뚜렷이 갖고 있었다. 안톤 체호프의 경우는 그가 살던 작은 마을의 극장에서 처음으로 연극을 보았던 순간이 그랬다. 무대 위가 현실처럼 느껴지는 그 분위기는 체호프를 전율하게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의 경우 어릴 적 전자제품 상점을 지나면서 쇼윈도에 비친 경이로운 물건들의 디자인과 복잡함에 감탄했었다. 타이거 우즈는 두 살 때 차고에서 아버지가 골프공을 쳐서 그물에 넣는 것을 지켜보며 아버지를 따라하고 싶은 욕망과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작가 장 폴 사르트르는 어릴 적 종이에 인쇄된 글자에 매료되어 각각의 글자가 어떤 마법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상상했다.

본능적으로 끌림을 느꼈던 이런 순간들은 부모나 친구들이 재촉하지 않아도 갑자기 나타났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개인적 통제를 넘어서는 무언가의 신호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했던 사람은 영화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이었다. 그녀는 아주 어릴 적 아버지의 캠코더 앞에서 연기를 할 때 느꼈던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제가 연기를 선택한 게 아니에요. 연기가 저를 선택한 거죠."

나중에 일본의 영화감독이 된 구로사와 아키라는 젊은 시절 유독 목표가 없다고 느꼈다. 그는 그림을 시도했다가 다음에는 영화를 배우기 위해 조감독으로 일했는데 그 일을 아주 싫어했다. 언제라도 그만두려던 찰나 1936년 그는 야마모토 가지로 감독 밑에서 일하게 된다. 이 거장 감독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갑자기 영화의 마법같은 가능성에 눈을 뜨며 자신의 소명을 깨달았다. 나중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마치 산 위에서 바람이 한줄기 얼굴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고통스럽도록 힘겹게 산을 오른 뒤 느끼는 그 경이롭도록 신선한 바람 말이다. 그 바람 한줄기가 이제 다 왔다고 말해주면, 길 위에 서서 저 아래에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내려다본다. 카메라 옆의 감독 의자에 앉아 있는 야마모토 감독 뒤에 섰을 때 나는 바로 그런 감정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드디어 내가 해냈구나.'"

또 다른 신호로 당신 인생에서 특정한 과제나 활동이 마치 물살을 타면서 수영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쉽게 느껴졌던 때를 떠올려보라. 그런 활동을 할 때는 반복의 지루함도 훨씬 잘 참을 수 있다. 남들이 비판을 해도 쉽게 낙담하지 않는다. 배우고 싶기 때문이다. 너무 지루하고 도무지 성취감을 느낄 수 없었던 다른 주제나 과제와 비교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 2018년』 (원제: The Laws of Human Nature)

"노잉의 관점에서 목표는 세우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다.

미래는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자신의 정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 안도 미후유(安藤美冬) 《노잉(Knowing): 마음의 소리에 답하는 기술, 2021》

"스물다섯 살 때! 나는 내가 뭐가 될지 예상할 수 있었어. 그때 이미 세계가 내 밑에서 전개되는 것을 보았어. 마치 내가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것처럼."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세인트헬레나의 추억(Mémorial de Sainte-Hélène, 1823 - 사후 출간)』

(* 맥락: 1795년 포도탄 사격으로 파리 폭동을 진압하고 총사령관으로 급부상하던 시기를 회상한 것. 이미 젊은 나이에 잡스가 말한 '직관'을 통해 자신의 거대한 미래를 예견했음을 보여준다.)

"인생의 길이 안 열려도 걱정마라! 내가 어느 순간에 악착 같이 해서 찾으면 그냥 고속도로가 열린다. 그 때부터는 그냥 뛰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냥 무조건 성공한다."

- 유튜버 알멘토 최재천 인터뷰 (2023)

"포정이 칼을 놓고 대답했다. '제가 중시하는 것은 도(道)입니다. 이는 기술을 넘어선 것입니다.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만 보였습니다. 3년이 지나자 소의 전체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마음(spirit)으로 대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과 지각은 멈추고 마음이 가고 싶은 대로 갑니다. 하늘의 이치를 따라 큰 틈새를 치고 큰 구멍에 칼을 밀어 넣으며, 소의 본래 구조를 따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인대나 건드리지 않으며, 큰 뼈마디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 『장자(莊子)』 내편(內篇) 제3편 「양생주(養生主)」, BC 4~3세기경

몰아일체 (物我一體)

-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 (BC 4~3세기)

(* 장자는 '나를 잊음(吾喪我)'을 통해 사물과 내가 구별되지 않는 상태를 강조했다. 그 유명한 '호접지몽(胡蝶之夢)' 우화가 몰아일체의 정수를 보여주는 일화다.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깨고 나니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 모르겠다"는 대목에서 주체(我)와 객체(物)의 경계가 무너지는 상태를 설명한다.)

혼연일체 (渾然一體)

- 《이정유서(二程遺書)》 중 〈정성서(定性書)〉 혹은 〈식인편(識仁篇)〉 (11세기 (북송 시대))

(* 정호(程顥)는 만물이 나와 한 몸이라는 '만물일체(萬物一體)' 사상을 제시했다. 여기서 '혼연(渾然)'은 흐릿하거나 섞인 것이 아니라, '티 없이 온전하게 하나가 된 상태'를 뜻한다. 도덕적 수양을 통해 우주의 이치(理)와 내 마음이 하나가 된 경지를 말한다.)

몰입 (the Flow)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Flow: The Psychology of Optimal Experience》 《Flow: The Psychology of Optimal Experience, 1990》

(* 칙센트미하이는 암벽 등반가, 체스 선수, 예술가들이 활동 중에 느끼는 '물 흐르는 듯한 상태(Flow)'를 연구했다. 그는 '과제의 난이도'와 '개인의 실력'이 모두 높을 때 이 몰입의 상태에 진입한다고 분석했다.)

모노즈쿠리 (ものづくり)

유래: '물건(Mono)'과 '만들기(Zukuri)'의 합성어로,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과 제조 철학을 의미.

발전: 고대부터 존재한 개념이나, 도쿄대 후지모토 다카히로(藤本隆宏) 교수에 의해 현대 경영학적 용어로 정립.

또한, 1999년경 일본 정부가 제정한 〈모노즈쿠리 기성 진흥 기본법〉을 통해 국가적 이념으로 공식화되었다.

구로사와 아키라, 미야자키 하야오, 오시이 마모루 등 애니메이터들의 장인정신을 연상시키는 단어다.

"무서운 아이...!" (오소로시이 코...!)

- 일본드라마 《유리가면 (유리노카멘, 1997/1998)》 명대사

((스승 츠키카게 치구사가 마야의 천재적인 연기 재능을 보며 내뱉는 독백이다. 이 드라마에서 B'z의 주제곡 <Calling, 1998>이 가진 "부름(소명)"이라는 의미와 기타지마 마야의 '몰아일체'적 연기 투혼은 훌륭하게 매칭이 된다.)

"당신은 당신만의 방식으로 삶으로써 삶 자체를 매순간 예술로 만들 수도 있다."

- 엑스재팬의 요시키 《동아일보》 인터뷰 (2021)

"모든 사람이 각자의 삶을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But couldn't everyone's life become a work of art? Why should the lamp or the house be an art object, but not our life?"

- 미셸 푸코, 학술지 《지식(Savoir)》 인터뷰 (인터뷰어: Hubert Dreyfus & Paul Rabinow)

년도: 1983년 4월 (푸코가 사망하기 약 1년 전 인터뷰)

"자연이 미완성으로 남겨둔 것을, 예술(기술)이 완성한다."

What nature leaves imperfect, the art perfects.

-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Physica)》 제2권 8장 (BC 350년경)

사회 조각(Social Sculpture, 社会彫刻)

- 요셉 보이스, 1960년대 후반 ~ 1970년대 초반

(* 요셉 보이스는 1960년대부터 이 개념을 발전시켰으나,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계기는 1972년 독일 카셀에서 열린 제5회 도큐멘타(Documenta 5) 전시였다.

일본의 저술가 야마구치 슈는 자신의 저서(특히 《세계의 비즈니스 엘리트는 왜 미의식을 단련하는가》나 강연 등)에서 이를 자주 인용하며 현대인의 삶과 비즈니스에 연결해 설명한다.

야마구치 슈는 현대 사회에서 '정답'을 찾는 논리적 사고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 '사회 조각' 개념을 빌려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 수동적 부품이 아닌 창조자: 시스템이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는 '기능공'이 아니라, 자기만의 미적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더 아름답게 혹은 더 가치 있게 빚어내는 '아티스트'로서 일을 대하라는 것이다.

- 비즈니스의 예술화: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기업 활동 자체가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인간은 예술가다"

(Jeder Mensch ist ein Künstler)

- 요셉 보이스, 1967년경 선언

총합예술 (Gesamtkunstwerk)

-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의 에세이 〈예술과 혁명(Die Kunst und die Revolution), 1849〉 및 〈미래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der Zukunft), 1849〉에 등장한 개념으로, 음악, 연극, 시, 무용, 건축 등 모든 예술 매체를 하나로 통합하여 완벽한 미적 경험을 창출하려는 시도이다.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는 그 예술의 자유를"

원어: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분리파 전시관(Secession Building)' 입구 정면 상단에 새겨진 문구 (1898)

대저 직업이란 반드시 무슨 일을 하는 것인데, 일을 한다 하면, 혹은 신경을, 혹은 근육을 동작하는 것이요, 또 그리하면 반드시 무슨 결과가 생기는 것이니, 신경이나 근육의 적당한 동작이 일종의 쾌락의 감정의 원인도 되고 결과도 됨은 우리가 기쁠 때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노래 춤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욱 농후하여짐을 보아도 알 것이외다. 또 일한 끝에 생기는 결과도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는 것이니 우리의 일은 시작할 때에 의사실현의 기쁨이 있고, 진행할 때에 근육동작과 결과에 가까워가는 기쁨이 있고, 일이 결과되매 성공의 기쁨이 있는 것이니, 이렇게 보면 직업이란 본질상 쾌락의 감정을 반伴할 것이요 고통도 반할 것이 아니외다. 저 아이들이 꽤 추운 날 온몸이 꽁꽁 어는 줄도 모르고 종일 밖에 나가서 흙과 돌로 집을 짓고 성을 쌓을 때에 그네는 거기 미쳐 추운 줄도 배고픈 줄도 모르고, 무론 피곤하는 줄도 모릅니다. 그뿐더러 저 근면하는 학자나, 학생이나, 공장이나, 농부를 보건대 억지로 하는 빛이 아니 보이고, 기뻐서 하는 양이 나타납니다. 다만 여기서 하나 볼 것은 그 노역의 기쁨의 중요한 요건이 자유인 듯합니다. 곧 자기가 하고 싶은 자기의 직업을 함인 듯합니다. 기쁨은 노예적 노역의 산물이 아니요, 자유인의 노역의 산물인 듯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점이니, 사회조직의 합리 불합리의 표준이 여기서 나올 것이외다. 곧 각인으로 하여금 자유인으로 자유의 직업을 취하게 하는 것이 이상적 사회조직의 근본 원리가 될 것이외다.

그렇지마는 심적 태도 여하로 아무러한 직업이라도,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여 그 노역에 쾌락을 얻을 수 있음은 또한 사실이니, 적더라도 그 고통의 정도를 강하게 하는 효력이 있을 가령 광갱의 광부로 그날에 할 일을 자기의 일로 알아 땅을 파고 돌을 때리는 데서 쾌락을 얻고 예정한 일일의 업이 공을 성할 때에 쾌락을 얻는다 하면 그는 그와 다른 심적 태도를 가진 자보다 얼마나 행복되겠습니까.

네 직업을 네 예술로 알아라. 저 조각가가 끌을 들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할 때에 석괴 중에서 귀가 나오고 눈이 나오고, 건장한 골격이 나오고 우미한 근육이 나옴을 볼 때에 이상실현과 창조의 기쁨에 취하는 모양으로 너도 나날이 노역에, 일생의 노역에 이상실현과 창조의 기쁨을 맛보아라, 이것을 너를 행복되게 하는 길이니라.

직업의 예술화, 크로포트킨의 말을 빌면 노동의 예술화는 인생을 행복되게 하는 최대한 길이외다. 그런데 이리하는 가장 중요한 길은 개인의 심적 태도의 적응 여하에 있습니다. 오래 옥중에 있던 어떤 수양 있는 이의 말을 들으면 옥중에서 부자유한 것은 하나도 없더라 하고 그뿐더러 일일의 복역 생활에 일종의 흥미가 있더라 하니 이것은 진실로 그의 맘 가지기, 즉 심적 태도에 달린 것이외다. 옥중 생활은 누구나 더할 수 없는 부자유와 고통으로 생각할 것이로되 그 속에서도 심적 태도 여하로는 자유와 행복을 넉넉히 찾을 수 있다 하면 하물며 세간 일반의 직업이리오. 무릇 무슨 일이나 그것을 하는 것을 일종의 예술적 창작으로 알면 그 속에 무한한 자유와 기쁨을 얻을 것이외다. 정치가가 자기의 소신대로 무슨 신제도를 세우리라 하여 동지를 모으고, 의견을 선전하여 많은 적과 장애를 이기고 마침내 그 목적을 달하는 경과나, 도기장이가 자기의 머리 속에 생각나는 모양의 그릇을 만들 양으로 흙을 파고 이기고 뭉치고 광선과 열을 이용하여 그것을 구워 마침내 생각하던 바와 같은 그릇을 일러내는 경과나 다 같이 창조적 기쁨과 자유의 기쁨을 얻는 데는 예술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기쁨의 최대한 원인이 자유인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마는, 그러나 그 자유란 결코 무제한한 것이 아니외다. 첫째, 우리의 생활은 자연계의 모든 법칙에 지배되는 것이니 누가 그 법칙의 일 점 일 확인들 어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럼으로 사람이 비록 국가의 법률을 떠나고 모든 사회의 규약과 도덕률을 떠나 무인절도에 혼자 있다 하더라도 무제한한 자유는 누릴 수 없는 것이외다. 하물며 사람이란 이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동물이 아니요 사회를 일러서야 살게 된 동물인즉 그는 가족의 법, 교우의 법, 산업의 법, 국가의 법, 인류에 대한 도덕, 이러한 극히 복잡하고 다양한 법망의 속박을 받는 것이니, 만일 비관자류의 생각대로 하면 사람의 일생은 한 땀의 자유도 없는 노예의 생활이라 할 만하지마는 그러한 속에서 우리는 무한한 창조의 자유를 향락할 수 있는 것이니, 사람의 진정한 자유란 이러한 것이외다.

그럼으로 우리는 우리의 심적 태도의 여하로 우리의 직업으로 하여금 예술적 자유와 기쁨의 표현이 되게 할 수가 있는 것이외다.

그렇지만은 오늘날 우리가 취할 직업 중에 다수가 노예적이어서 충분한 예술적 성질을 포함치 못한 것이 많음은 사실이외다. 그중에 제일 중요한 점은 고용제도와, 생활비의 확보가 없음, 의 두 가지외다.

고용제도는 고래로 있는 것이지마는 산업혁명 이래로 자본주의의 발달됨을 따라 거의 모든 직업의 경영이 소수 자본가의 수중에 들어가고 이에 종사하는 개인은 지식계급이나 노동자를 물론하고 피용자의 위치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피용자는 소수 자본주의 계급의 의사에 복종하는, 처지에 서게 되었나니, 아마 오늘날처럼 노예 많은 시대는 없을 것이외다. 이럼으로 다수의 피용자의 노역은 그 일에 대한 흥미보다도 그 일로써 나오는 봉급에 대한 욕망으로 좌우되게 되었습니다. 매삭 얼마의 봉급을 얻기 위하여 억지로 억지로 모종의 직업에 종사하는 처지임으로 그의 직업은 노예적 노역으로 화하여 활동의 본연적 성질인 예술적 자유와 쾌락을 맛보지 못하게 됩니다. 더욱이 '우리는 노예다' 하는 자각이 날 때에는 이 고통이 격심하게 되는 것이니 노동자가 임금의 증가를 절규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사업의 직접 경영권을 요구하게 됨이 실로 이 심리에서 나온 것이외다. 그럼으로 노동자의 요구를 '우리에게 충족한 생활비를 달라'는 것만으로 안다 하면 이는 피상적일 뿐더러 심한 오해니, 그의 근본적 요구, 직업의 예술적 자유와 기쁨이외다. 만일 그에게 이것이 있다 하면, 그는 현재에 가진 이하의 생활비를 가지고도, 만족할는지 모릅니다. 물질적 결핍이 심할 때에 사람은 물질적 풍족이 행복의 전체이니 하지만은 물질적 만족을 얻을 때에 사람은 정신적 만족이 근본적인 줄을 깨닫는 것이외다. 사람이란 도저히 정신적인 자유와 창조의 기쁨을 생명으로 여기는 동물이니 이것이 사람의 본성이요 진가외다.

그렇지마는 의식의 자資를 얻기만 목적으로 하는 직업은 일면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동시에 일면 사람의 천성 중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몰각해버립니다. 그래서 그는 돈만 귀한 줄 알고 직업적 노역의 예술적 가치를 모르게 됩니다. 게다가 종일 노역한 물질적 보수가 그날의 의식과 오락의 자資에 부족할 시에는 더구나 고통과 불평이 생겨 인성은 더욱 더 타락되는 것이니 이것이 오늘날 경제조직의 상태외다. 저 사람들의 그 중에도 노동자들의 심히 고민되고 불평스러운 얼굴을 보시오. 그네는 노역의 예술적 기쁨과, 그 당연한 보수일 생활의 물질적 풍족을 잃음으로 하여 저렇게 된 것이외다. 농촌에서 양우작농하는 농부의 만족하고 평화로운 얼굴에 비겨 저 도회 노동자의 얼굴이 얼마나 추악하고 비참합니까. 비록 노역은 같은 노역이라도 농부에게는 창조적 쾌락, 즉 예술적 기쁨이 있는 것이외다. 이것이 농부와 도회 노동자와의 얼굴의 미추의 차이외다. 도회 노동자는 농부가 제 일을 하는 데서 얻는 예술적인 기쁨을 얻지 못하고 오직 '돈'을 위하여 노예적 노역에만 종사함을 그는 기쁨의 기갈을 가집니다. 그래서 술에 취함으로 적으나마 기쁨을 얻는 것이니 농부에게는 별로 술에 취하자는 요구가 없는 것이외다. 그러다가 그 자포자기의 표정은 분노의 표정으로 변하나니 여기서 개인적으로는 살인, 강도 같은 죄악이 생기고, 단체적으로는 동맹파공과 기타의 혁명적 파괴적 폭동이 일어나는 것이외다.

그럼으로 인생을 예술화하려면, 경제조직을 중심으로 한 사회조직을 개조하여, 각인이 자유로운 직업을 위하여 예술적 창조의 노역을 있을 사회가 되게 하여야 할 것이외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개조하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는 데 대하여서는 여기서 말하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한 가지 무슨 형식으로 사회를 개조하는지를 물론하고, 그 개조의 근본 원칙이 될 것만 말하려 합니다. 그것은 무엇이냐, 같은,

'네가 너부터 개조하여라.'

함이외다. 어떤 종류의 신사회든지 무릇 신사회는 신인新人으로야만, 그렇지, 오직 신인으로야만 조직할 수 있는 것이니, 신인이 생기기 전에는 영원히 신사회는 현출치 아니할 것이외다. 새로 건설하려는 사회에 합당한 인물이 상당한 수에 달하여야 신사회가 현출될 것이외다. 그럼으로 '너부터 먼저 신인이 되어라', 그리함이 신사회라는 큰 집의 기초에 한 짐 흙을 부음이니 이것이 신사회를 짓는 유일한 근본적 방침이외다. 그러면, 너부터 개조하는 법이 무엇이냐.

네가 우주와 인생을 예술품으로 보는 맘의 습관과 총명을 기르고, 네가 네 직업을 예술적 창조의 태도로 하는 습관을 기르되 너는 인류사회의 일원인 것을 알아 사랑의 도덕으로써 아름다운 사회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복락을 증진하도록 하는 습관 - 더 좋은 말을 쓰면, 덕을 기르도록 노력하라. 너를 조성함이 아마 모든 것 중에 최대한 예술적 기쁨일 것이 되리라.

동포들이여, 우리 저마다 신인이 되지 아니하려는가. 그리하여 지구를 천국으로 화하는 업에 참여하지 아니하려는가. 그 실현하는 날이 먼 듯하되 먼 것이 아니라, 그대 자신의 개조가 완성되는 날이 천국이 임하는 날이외다.

우리를 신세계로 인도해줄 자는 종교와 철학과 과학과 예술이외다. 정치나 경제는 이런 것을 응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니 정치, 경제적 해결은 개조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지마는 순서로는 후後외다. 종교라 함은 지금 있는 대로의 종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만인의 영 속에 있는 순일한 종교를 이름이니 이 의미에서 종교는 예술과 일치하는 것이외다. 본연한 인성을 도덕적 견지에서 볼 때에 그것이 종교가 되고, 우리 생활의 기쁨의 견지에서 볼 때에 그것이 예술이 되는 것이외다. 철학은 우리의 생활에 통일과 설명과 가치와 따라서 안정을 주는 것이요 과학은 우리의 생활의 자료를 공급하는 것이외다. 우리의 생활을 예술적으로 한다는 의미에서 예술은 최고지마는 우리가 창작하는 예술은 종교나 철학이나 과학이나 정치나 다 같은 평면 위에 선 쌍태의 형제외다.

예술이란 말에 양양의 의미가 있는 것을 주의하여야 합니다. 하나는 우주와 인생을 예술품으로 보아라. 우리의 생활을 예술화하라 하는 등의 예술이니 이는 인생의 한 원리로의 예술, 즉 생활의 주의로의 예술이요, 하나는 시가, 음악, 미술 등을 가르침이니 이는 인생의 사업의 일부문인 예술이외다. 전자의 의미로 보면 인생의 무슨 종류의 활동이든지, 그 활동자의 심적 태도 여하에 인하여 다 예술이라 할 수 있으니 정치도, 과학도, 부기장에 숫자를 기입하는 것이나 시장에서 물품을 매매하는 것이나 다 예술이 되지마는 후자의 의미로 보면 일정한 형식과 일정한 약속하에 특별히 지어놓은 예술품만 지칭하게 됩니다. 이것이 예술이란 말의 본래의 의미외다.

이상에 나는 예술적 생활을 말하였거니와 그중에 은연히 예술이란 무엇이며 예술과 인생과의 관계가 무엇인가도 말하여졌다고 믿습니다. 마는 이제부터 우리의 손으로 만드는 예술품과 인생과의 관계와 밑 조선 민중과 예술에 대한 관계를 말하려 합니다.

위에도 말하였거니와 인생 생활은 정치적 생활, 경제적 생활 등 여러 부문으로 되었다 하더라도 그 목적은 안락하게 생을 향락하는 것, 곧 예술적 생활을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정치제도는 왜 개량합니까. 각 개인으로 행복된 생활을 하게 하려고. 산업은 왜 발전시킵니까. 또한 각 개인으로 하여금 행복된 생활을 하게 하려 함이외다. 저 일생에 각고면려하여 상당한 재산이 생기면 그는 곧 맘에 드는 가옥을 건축하고, 정원을 만들고, 서화를 사들이고, 서적을 장만합니다. 이에 그에게는 예술의 요구가 생기는 것이외다. 개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 민족도 그러하니, 지력과 부력이 증진함을 따라 예술의 요구가 생깁니다. 그런데 우리 조선은 근대에 경제적 생활이 파산의 경에 빈하여, 또 악정의 압박하에 인민이 사상과 창조의 자유와 용기를 잃어 거의 예술을 안 가졌다 할 만한 땅이 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생활에는 웃음이 없고, 눈물이 없습니다. 진실로 조선의 생활은 순연히 영영급급한 노역이나 낮잠 자는 나타의 생활이요, 정신생활이 없습니다. 진실로 조선생활은 광야외다. 빙세계외다. 그럼으로 냉랭하고 삭막하고 음침합니다. 사死의 왕국이외다. 조선인의 영은 말랐습니다.

조선인에게 예술을 주어라. 예술은 그네에게 쾌락을 주고, 활기를 주고, 향상을 주고, 그 모든 것보다도 창조와 표현의 새 힘을 주리라. 조선이라는 사막을 변하여 예술의 화원을 지어라.

그러나 예술은 생을 위한 예술이니 생을 해하는 예술이어서는 안 됩니다. 인생에게 기쁨을 주고, 활기를 주고, 향상을 주고, 사회 생활의 훈련을 주는 예술은 생의 예술이로되, 고통과, 낙담과, 타락과, 갈등을 주는 예술은 사死의 예술이외다. 우리는 신선한 일광과 공기와 음식을 요구하는 모양으로 건전한 예술을 요구합니다. 사람을 신경쇠약과, 주색에 침륜함과, 또는 불평과 나타로 인도하는 예술은 불건전한 예술이요 멸망의 예술이외다. 나는 오늘날 조선 기생이 대표하는 민족 예술이라 할만한 모든 가곡을 절증합니다. 또 <갓쥬샤>, <표박가>, <심순애가> 같은 데 드러난 정서와 같은 예술을 절증합니다. 오늘날과 같이 신흥의 기상을 가져야 할 우리에게는 군악적, 종교악적인 정서를 일으키는 예술을 가지고 싶습니다. 델리케이트한 것보다는 순박한 것, 우미한 것보다도 장엄한 것, 비조를 띤 것보다도 상쾌한 것이 원입니다. 내 생각을 천박하다 하시오, 심천의 표준은 무엇입니까. 천박도 좋으니 원컨대 조선인에게 쾌활한 웃음과 발랄한 활기와 자유로운 창조력을 주는 예술을 주고 싶습니다.

그러고 이 예술은 양반적, 신사적이어서는 못씁니다. 자본주의적이어서도 못쓰고, 도회적이어서도 못씁니다. 그것은 우리 민중 전체의 향락할만한 성질의 것이라야 합니다. 진정한 민중 예술은 천하 모든 민중이 요구하는 것이겠지마는 특히 우리 조선 민중이 요구하는 것이외다. '무식하고, 빈궁한 조선 민중'이 골고루 향락할 예술이야말로, 오늘날 조선이 갈망하는 예술이외다. 조선의 예술로 하여금 조선 민중의 정신과 함께 자라게 하고 싶지, 병아에게 억지로 약을 먹이는 모양으로 서양이나 일본 직수입의 질이 너무 다르고, 너무 신사적이요 자본주의적인 고가한 예술을 억지로 먹이고 싶지 아니합니다. 이에 고가라 함은 예술에 대한 특별한 장세월의 소양과, 가격이 고등한 예술품을 이름이외다.

이러한 요건에 적하려면, 그 예술은 가장 널리 감상할 수 있음, 가장 적은 금전으로 감상할 수 있음, 가장 적은 소양으로 감상할 수 있음 등의 자격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표준으로 보면 오늘날 조선에는 시가, 극, 음악, 무도, 건축, 회화, 장식 미술, 조각의 차서로 됩니다. 시가는 일개인이 작품의 인쇄를 통하여 근소한 대갈 일반 민중의 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외다. 소설도 그러합니다. 극도 일개인의 작품이 수인, 내지 십수인의 배우를 통하여 근소한 대가로 일반 민중의 눈에 도달할 수 있고 음악과 무도도 그러합니다. 그뿐더러 시가, 극, 음악, 무도 같은 것은 건축, 회화, 조각 등에 비겨 가장 감상하기 쉬운 성질을 가진 것이외다.

그렇지만 형식보다도 내용이니 아무리 시가, 극, 음악같이 맛보기 쉬운 형식의 것이라도, 그 내용 여하로 가장 맛보기 어려운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이니 그중에도 시가는 더욱 그러합니다. 근래에 조선에 꽤 유행하는 모양인 상징파의 문예 같은 것은 무슨 맛인지 알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니 아마 이것은 민중에게 준다고 해야 울지도 웃지도 아니할 것이라 일부 호기인사의 예술에 불과할 것이외다. 극이나 음악이나 기타 무슨 예술이 그러합니다. 무릇 예술은 자기의 생활을 그려냄이 아니면 감흥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니 조선 민중의 예술은 조선 민중의 생활을 그리는 것이 필요한 조건입니다. 시가나 극과 같이 생활을 설명하는 의미를 포함한 예술은 물론이거니와, 음악이나 무도와 같이 순전한 음악과 동작으로 된 예술도 그 민중의 전통적 이상에 접촉치 아니하고는 그 민중의 기호에 합하기 어려울 것이외다. 그럼으로 서양의 명곡이라도 우리에게는 도리어 졸음 오는 것이 있습니다.

총명한 조선의 예술가는 조선 민중의 생활에 기한 신예술을 창작하는 자외다.

그렇다고 민중에 아첨하거나 항복하여 자기의 예술적 이상을 불고不顧하고 '통속通俗'이란 어語의 좋지 못한 반면의 의미로 대표하는 예술을 지으려 함이 아니니 여기 예술가의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이 어려운 점을 이기는 법은 첫째 예술가가 고원高遠하고 건전한 예술적 이상을 확립하고 둘째 그의 예술의 감상자인 조선 민중의 생활을 철저하게 이해함이외다. 이상 없는 예술은 예술이 아니요, 민중의 심현에 향명하지 않는 예술도 예술이 아니외다.

우리 민중의 감정은 아직 복잡, 섬세한 것을 감동할 만하지 못합니다. 그네의 즐겨 하는 바는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외다. 비겨 말하면 굵은 선으로 굴곡이 분명하게 그린 것이외다. 색채로 말하면 모든 간색보다도 농후한 순색이요, 시가나 극이나 기타의 문예도 심리의 섬세한 묘사보다도 동작이 굵은 선적인 것을 좋아할 시대외다. 이러한 예술이 반드시 저급의 예술이 아니외다. 이러한 단순하고 소박한 예술 중에서 참으로 건전한 민중 예술이 생장할 것이외다. 부질없이 외국 예술을 모방하여 저도 잘 알지 못하는 고원하고 섬세한 것을 소박한 민중에게 강잉하는 것은 극히 해로운 일이외다.

우리는 이러한 예술을 우리 민중에게 줌으로 우리 민중의 정신적 생활을 부활시키고 아울러 그네에게 한없는 기쁨과 창조력을 줄 것이외다. 우리는 그네의 일상에 부를 노래를 주고 읊조릴 시를 주고 보고 들을 극과 음악과 무도를 주고 또, 그네 자신으로 하여금 짓게 하여야 합니다.

나는 인생의 행복의 요건으로 인생의 예술화를 말하고 다시 예술과 인생과의 관계와, 조선 민중의 요구하는 예술이 어떠한 것일 것을 말하였습니다. 현재 우리의 나아갈 길은 우리 자신을 각각 예술화하는 것과, 또 우리 민중을 예술화하는 것이외다. 우리는 아직 세계를 돌아볼 새가 없으니 우리가 세계를 돌아보는 길은 오직 우리 민족을 돌아봄에 있을 뿐이외다. 그럼으로 우리 민중에게 그네 예술이라 할 만한 예술을 주는 것은 진실로 중대한 사업이외다. 나는 정치, 경제, 과학, 교육, 이런 것을 경이히 여기는 것이 아니거니와 민중에게 예술을 주어 그 생활을 예술화함은 우리 민족의 운명에 중대한 관계가 있는 것임을 확신합니다.

인생의 최고 이상이 무엇이냐, 인생의 생활 자신을 전부 예술함이외다. 그의 생각도, 행동도, 의식주도, 사회도, 촌락도, 도회도, 전부 예술화함이외다. 우리의 이 원시적이요, 몰취미한 주택을 예술화하고, 우리의 실내의 장식과 기구를 예술화하고, 우리의 단조한 의복을 예술화하고, 우리의 식탁과 마당과 학교와 시가를 예술화하라. 그래서 조선 전체를 예술화하고 차차는 전 인류 세계를 예술화하자. 우리의 선인은 예술적 천분이 넉넉하셨다. 그 천분은 삼국적 능묘의 벽화에만 드러날 것이랴, 세계를 천국으로 화하는 설계나 벽화에는 못 드러날 것이랴. 불행히 과거 5천 년의 우리 민족의 생활은 세계의 문화에 그리 대단한 공헌이 없었지마는 이제부터가 우리의 천분을 발휘할 차례가 아닐까. 지금 세계는 혼돈상태에 있다. 그네는 새로운 사상을 갈앙한다. 새로운 메시아의 구제를 갈앙한다. 국제연맹, 태평양 회의, 과격파 운동, 모두 이러한 것이 다 이 새로운 메시아를 부르는 절규가 아니냐. 생각건대 우리 비단 같은 조선의 강산이 도덕화되고, 예술화된 신세계의 모퉁이돌이 아닐까. 아아, 진실로 우리가 세곌르 정복할 무기 무력도 아니요, 부력도 아니요, 신생활의 모범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할 때에 우리 흉胸 중에는 끝없는 희망과 기쁨과 확신이 떠오름을 깨닳습니다.

공중에서 최후 심판의 나입 소리가 울렸습니다. 이제야 별이 떨어지고 땅이 흔들립니다. 구세계가 가고 신세계의 서광이 비추입니다. 애와 미의 세계! 종교와 예술의 세계! 이야말로 창세 전부터 약속된 세계외다. '사람아 너를 개조하라' 하는 외침은 '거듭나라' 하는 외침과 같은 외침이외다.

'사람아 애와 미로 너를 개조하라!'

신유辛酉 12월 12일 석夕

- 춘원 이광수가 31세 때 《개벽》 제19호 (1922, 1, 10)에 실은 <예술과 인생>

""춤을 추는 거야" 라고 양 사나이는 말했다. "음악이 울리는 동안은 어쨌든 계속 춤을 추는거야. 내가 하는 말 알아듣겠어? 춤을 추는거야. 게속 춤을 추는거야. 왜 춤추느냐 하는 건 생각해선 안돼. 의미 같은 건 생각해선 안돼. 의미 같은 건 애당초 없는 거야. 그런 걸 생각하기 시작하면 발이 멈춰버려. 한 번 발이 멈추면 이미 나로선 어떻게도 도와주지 못하게 되고 말아. 그러면 자네의 연결고리는 모두 없어지고 말아. 영원히 없어지고 마는거야."

- 무라카미 하루키 《댄스 댄스 댄스(1988)》

"흐름이 생기는 것을 기다리는 건 힘들지. 하지만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려야 하지. 그동안은 죽은 셈치고 있으면 돼."

-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1994-1995)》

"영웅의 행동이 그 사회가 예비하고 있는 것과 일치될 때, 그는 흡사 역사적 변화의 리듬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 조셉 캠벨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 1988)』

"전 누구나 인생에서 그렇게 대담한 전환이 필요한 시기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포인트가 찾아오면 재빨리 그 꼬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단단히 틀어쥐고, 절대 놓쳐서는 안돼요. 세상에는 그 포인트를 붙들 수 있는 사람과 붙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2017》

"인간의 삶에는 조수(潮水)와 같은 흐름이 있어, 물이 차올랐을 때 올라타면 행운으로 이어지나, 그 기회를 놓치면 인생이라는 항해 전체가 얕은 여울과 불행에 갇히고 마오. 지금 우리는 그런 만조의 바다 위에 떠 있소. 흐름이 우리 편일 때 그 기세를 타야만 하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거사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줄리어스 시저》 제 4막 3장 (1599)

"군대의 침략은 저항할 수 있으나, 자기 시대가 찾아온 사상의 침략에는 저항할 수 없다."

- 빅토르 위고 《죄와 벌 (Histoire d'un crime)》 (1852년 저술, 1877년 출판)

"태풍을 만나면 돼지도 날 수 있다."

- 레이쥔(Lei Jun)의 샤오미(Xiaomi) 연례 연설 및 인터뷰 (2010)

"새로운 흐름과 싸우고 있는가? 그렇다면 미래와 싸우는 것과 다름없다.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여라. 그 흐름이 순풍이 되어 당신을 앞으로 이끌어줄 테니까."

- 제프 베조스 아마존 주주 서한 (2017)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Float like a butterfly, sting like a bee."

- 무하마드 알리, 1964년

(* 상황: 1964년 2월 25일, 당시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본명을 쓰던 무하마드 알리가 당대 최강의 챔피언 소니 리스턴(Sonny Liston)과 첫 타이틀전을 치르기 직전, 경기 전 인터뷰와 훈련장에서 이 구호를 외치며 전 세계에 알려졌다.)

무릇 백성은 다른 사람의 재산이 자기보다

열 배 많으면 그를 헐뜯고,

백 배 많으면 그를 두려워하고,

천 배 많으면 그의 심부름을 하고,

만 배 많으면 그의 하인이 된다.

이것이 만물의 이치다.

凡編戶之民, 富相什則卑下之, 伯則畏憚之, 千則役, 萬則僕, 物之理也.

그래서 재산이 없는 사람은 막노동을 하고 다소 재산이 있는 사람은 지혜를 써서 증식하려고 하며 재산이 많은 사람은 시기를 기다리며 늘리려한다. 이것이 재산을 증식시키는 가장 큰 방법이다.

是以無財作力, 少有鬪智, 旣饒爭時, 此其大經也.

이상의 부호들은 가장 특이하고 탁월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식읍도 없었고 봉록도 없었고 또한 법을 농단하고 범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한 재부도 아니다. 사물의 이치를 추리하여 거취를 결정하고 때에 맞춰 자세를 바꿔가며 이득을 얻었으며 상업으로 재부를 모으고 농업에 투자하여 지켰다. 힘으로써 결단하고 협상으로써 지켜 그들의 태도에는 절도가 있었음으로 기술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此其章章尤異者也. 皆非有爵邑奉祿弄法犯姦而富, 盡椎埋去就, 與時俯仰, 獲其贏利, 以末致財, 用本守之, 以武一切, 用文持之, 變化有槪, 故足術也.

- 사마천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 (BC 91)

"펜으로 예언을 말하는 작가와 논자들이여, 눈을 크게 뜨라. 변화의 순간은 다시 오지 않으니. 수레바퀴는 아직 돌고 있으니 섣불리 논하지 말고, 갓 싹튼 변화를 성급히 규정하지 말지어다. 지금의 패자들이 훗날 승자가 되리니,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 밥 딜런 (Bob Dylan) - 《The Times They Are A-Changin', 1964》

"지금 딥러닝, 신경망 등을 배우는 사람은 ‘질 것이다(you lose)’. 모든 것은 자동화될 수 있고, 자동화조차 자동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라면 프로그래밍이나 회계자 자격증을 따는데 들일 시간에 철학을 배울 것이다. 세계적인 시각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평가하고, 비판적인 사고하는 방식을 기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 마크 큐반의 2017년 2월 미국 <비즈니스 인사이더> 인터뷰

"사람들은 정보에 빠져 질식할 지경이지만, 정작 지혜에는 늘 굶주린 상태다. 따라서 이제 세계를 휘두르는 이들은 무엇이든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적절한 타이밍에 제대로 된 정보를 묶어낼 줄 아는 이들이어야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정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혜롭게 판단할 것이다."

- E. O. 윌슨《통섭: 지식의 대통합》 (원제: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1998)

"제일 중요한 게 인터페이스예요. 아날로그의 입자와 디지털의 파동을 연결해주는 인터페이스. 앞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자는 그 ‘사이’를 고민하는 자입니다. 머리(디지털)와 가슴(아날로그)을 연결하는 목. 우리는 생명을 목숨이라고 해요. 서양은 목 neck에 걸리면 나쁜 거잖아. 우리는 목을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길목, 손목, 나들목… 어른들이 ‘사이 좋게 놀아라’ 하듯이 현실과 가상, 로봇과 인간의 인터페이스를 ‘사이좋게’ 만드는 게 관건이에요."

- 이어령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기자와의 대담집, 2021년 출간)

"그해 여름, 지구 곳곳에서 기상이변이 일어났다. 동남아시아에는 계속되는 가뭄으로 논밭이 말랐고, 중동에는 집중호우로 홍수가 발생했으며, 미국에서는 기록적인 강추위가 찾아았다.

한편 여름캠프에 온 7명의 아이들은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이제 곧 아무도 가본적이 없는 세계로의 모험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 《디지몬 어드벤처》 1999년 3월 7일 ~ 2000년 3월 26일 (총 54화) 한국판 (KBS) 도입부

"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As above, so below)"

- 헤르메스교의 경전인 『녹옥판』 구절, AD 2~3세기경 (추정)

"나는 신과 같고 신은 나와 같네. 나는 신만큼 크고 신은 나만큼 작다네. 그가 내 위에 있을 수 없듯, 나 또한 그 아래 있을 수 없네."

- 앙겔루스 실레지우스 《방랑하는 케루빔(Der Cherubinische Wandersmann, 1657)》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진리는 인간의 내면에 거합니다." (Non foras ire, in interiore homine habitat veritas.)

"내 인생에서 외부적인 사건들은 빈약하고 보잘것 없었다. ... 나에게는 오직 내면의 사건들만이 서술할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대화도 나에게는 무의미한 것들이 많았다. 직관적으로 나와 관련이 있고 운명적인 의미를 지닌 인물이나 사건만이 내 기억 속에 살아남아 의미를 갖게 된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실현(Self-realization of the unconscious)의 역사다."

"어느날 밤 그는 꿈 속에서, 자신이 높은 산꼭대기 공중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가 그 꿈 이야기를 할 때 그 즉시 위험을 알아차리고, 그것이 경고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 꿈은, 그가 등반사고로 죽을 것을 예언하고 있었다."

"그녀는 일상생활에서는 고상하고 정숙했다. 그러나 그녀가 꾼 꿈들은 온갖 쾌락적인 것들을 연상시키는 쇼킹한 것이었다. 내가 그것을 노골적으로 해명하자, 그녀는 내 해석을 완강히 부인하면서 분개했다. 이는 점차 강박적으로 것으로 되어가자, 그녀는 정열적인 공상에 심취되어 홀로 숲속을 거니는 버릇까지 생길 정도가 되었다. 나는 위험을 직감했지만, 그녀는 나의 엄중한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머지않아 그는 숲속에서 만난 부랑배에게 잔혹한 폭행을 당했다.

(...)

이 같은 예측은 마술이 아니다. 이 부인의 꿈이 내게 알려준 것은, 그녀가 그 같은 모험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예의 등산가가 어려운 코스를 벗어나 완전한 길을 찾아내는 만족을 무의식적으로 탐색하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확실히 그들 중 어느 경우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의외의 대가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부인은 여러 군데 골절상을 입었고 그 등산가는 자신의 생명이라는 대가를 지불한 것이다.

이와 같이 꿈은 어떤 사태가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그 장면을 예시할 수도 있다. 이것은 반드시 기적이나 예언의 한 형태라고 할 필요는 없다. 인생에서의 수많은 위험은 오랜 무의식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위험이 산적되어 가는 것도 모르고 그것을 향해 한 발 한 발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건은 종종 무의식에 의해 감지된다. 무의식은 그 정보를 꿈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꿈은 이 같은 방법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경고를 보내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생각된다. 때문에 자비심 많은 손이, 사전에 우리를 억제한다는 전설은 의심스러운 것으로 보인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 자비심 많은 손이라는 것은 작용할 때도 있지만, 작용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이다. 신비적인 손이 지시하는 쪽이 떄로는 파멸의 방향인 경우조차 있는 것 같다. 꿈은 때로는 함정이라도 판명되는 일도 있고, 또 그렇게 생각되는 경우도 있다."

"지식도 없고 자격도 없는 사람의 꿈 분석에 경고하고 싶다. 정신상태가 전혀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사람에 의한 꿈의 해석은 매우 위험하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그 의식은 그에 대응하여 비합리적으로 된 '광적인' 무의식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이 양자는 특별한 배려 없이는 하나로 되지 않는다.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참고서를 한 권 사서 각 상징을 찾아보는 식으로 꿈 해석 사례의 해설서를 신용하는 것은 완전히 어리석은 짓이다. 꿈의 상징은 꿈을 꾼 당사자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어떤 꿈에 대해서도 확정된 단순한 해석은 있을 수 없다. 의식을 보상하는 방법은 각 개인마다 판이하게 다르다."

"어떤 남성이,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는 꿈이나, 무거운 몽둥이를 휘두르고, 문짝을 해머로 때려 부수는 꿈을 꾸었다고 하자. 그 어느 것이든 성적인 비유라고 간주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무의식이 그들 특정 이미지 중의 하나 - 요컨대 열쇠나 몽둥이나 망치 - 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진짜 알아내야 할 일은 몽둥이보다도 열쇠가, 혹은 망치보다도 몽둥이가 왜 선택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 이는 꿈이 나타내려는 것이 성적인 행위가 아니라, 전혀 다른 심리적 문제임을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교육받은 힌두교도가 여러분에게 린감(lingam) 신화에서 시바 신을 나타내는 남근상상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여러분은 보통의 서양인으로서는 전혀 페니스를 연상하지 않을 다른 것으로 듣게 될 것이다.

린감은 확실히 음란스러운 암시가 아니고, 십자가는 단순히 죽음의 표시가 아니라 이러한 것들의 대부분이 이러한 이미지를 이루어내는 꿈을 꾸는 사람의 성숙도에 의존하는 것이다.

꿈이나 상징의 해석은 지성을 필요로 한다."

"상징은 모든 종류의 마음의 표현에서 생겨난다. 상징적인 사고나 감정, 상징적인 행동이나 장면이 존재한다. 때로는 상징적인 양식을 설정함에 있어서, 무생물조차도 무의식과 협력하는 것처럼 생각된다.

시계가 그 소유자의 죽음과 동시에 멈췄다는 식의 일화는 허다한 사례에서 확증되어왔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산스 시 궁전에 있는 전자시계

그 시계는 대왕이 사망한 시각에 멈추고 말았다.

그밖의 예는 사망이 일어난 시각에 거울이 깨진다든가, 그림이 떨어진다든가 혹은 누군가가 정서적인 위기에 처했을 때."

- 칼 융 『기억, 꿈, 사상(Memories, Dreams, Reflections, 1962 - 사후 출간)』

“무의식을 의식으로 만들 때까지 무의식이 당신의 인생을 좌우하고,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른다.”

- 칼 융의 전집(Collected Works) 중 제9권 1부 《의식과 무의식의 원형 (The Archetypes and the Collective Unconscious, 1959)》

"박쥐에게 처음에 적절한 종류의 날개가 돋아난 것은, 날고자 하는 갈망이 무의식에 도달할 만큼 충분히 유기적(Organic)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날고자 하는 욕망이 의식적이었다면, 박쥐는 우리 인간들이 기계적인 장치를 발명해서 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을 것이다.

인간의 무의식적 마음은 모든 영감의 근원이다. 의식적인 마음은 이 목적에 있어서 무용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진실로 갈망하는 것과 우리 자신 사이의 단절을 강화할 뿐이다.

정신이 특정 충동, 욕망, 공포를 억압한다면, 이것들은 매우 효과적으로 변하여 한 개인의 의식적 인격 전체를 가장 미세한 부분까지 결정하거나 형성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이는 억압('잊음')을 통해 많은 욕망이, 의식에 살아있는 동안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현실을 창조하는 능력'을 갖게 됨을 의미한다. 특정한 조건 하에서, 억압된 것은 의식 속에 붙들려 있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해질 수 있다."

- 오스틴 오스만 스페어 (Austin Osman Spare) 《쾌락의 서 (The Book of Pleasure, 1913)》

"저녁식사 내내 반쯤 좀비처럼 굴던 나는 상금으로 받은 이만오천 달러짜리 수표를 잃어버렸다. 재킷 주머니에 수표를 넣어 두었었는데 멍하니 손으로 가슴팍을 쓰다듬다가 수표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그 돈을 잃어버리려고 '의도'했던 것일까? 최근 들어 나는 그 상을 탈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생각에 자주 시달렸다. 나는 잠재의식이 영향을 끼친 어떤 사건들이 현실로 재현된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이처럼 멍청하게 수표를 잃어버린 것은 사실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자기 혐오(우울증의 으뜸가는 증상)로 인해 수표를 거부한 것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 상을 수상할만한 가치가 없다는 심적 주장에 설득당해 수표를 잃어버린 셈이었다. 과거 몇 년간의 어떤 공로를 보아도, 상을 받거나 인정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는 자기 모욕을 받아들이면서, 수표의 분실은 그날 저녁 내내 일어났던 다른 불운한 상황들과 딱 들어맞는 한쌍이 되었다."

- 퓰리처상 수상자, 윌리엄 스타이런 《보이는 어둠, 1990》

"모든 것은 일어난다.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인간은 기계이며, 그의 모든 행동, 걸음, 말, 생각, 감정, 신념, 의견, 습관은 외부의 영향과 인상의 결과물일 뿐이다."

"인간은 잠들어 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모든 일은 그에게 '일어날' 뿐이다. 깨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 P.D. 오스펜스키 (구르지예프의 강의 내용을 기록) 《기적을 찾아서 (In Search of the Miraculous), 1949》

(말기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으며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던 중) 나중에 퇴원을 한 뒤에는 그보다 훨씬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따뜻한 햇살 아래의 아파트 단지에서 '감자'(작가 위지안의 아들)가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가 공을 줍기 위해 놀이터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과속으로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이가 공을 줍기 위해 놀이터 밖으로 벗어나는 순간, 멀리서 자동차 한 대가 과속으로 다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아이를 향해 돌진했다. 쏜살같이 달려가 19킬로그램이나 되는 '감자'를 덥석 안아 들고 보행로 위로 올라왔다. '벌레 먹은 나무같이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뼈의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이 불가사의한 일화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말한들 소용없을 것이다. 의학적으로는 절대 해명이 되지 않을 일이니까.맥도널드 (작가 위지안의 남편)에게 이야기해봤자, '왜 아이를 데리고 나가 둘 다 위험한 지경에 처했느냐'는 훈계만 들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우리 몸 속에는 어쩌면 우주에 필적할 만큼 거대한 힘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런 불가사의한 힘이 기적을 일으키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 위지안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2011》 (원제: 《此生未完成》(차생미완성))

1727년부터 1732년에 걸쳐, 파리의 성 메다르라는 작은 교회에서는 일련의 불가사의한 일이 일어났다. 현대의 독자들은 그 사건을 공상에 불과하다고 웃어넘길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공산만은 아닌 것 같다. 그것이 진실이었다고 증명하는 여러가지의 고문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의사, 재판관 등 사회적인 신뢰도가 높은 인물들의 이야기도 포함되므로 기적이 일어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다만 의학자나 철학자나 과학자나 현 단계에서는 아직 그 기적의 해명을 시도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기적은 파리의 부신부 프랑수아 드 파리의 매장에서 비롯되는데 1727년의 일이다. 프랑수아 부신부는 당시 37세의 젊은 나이였으나 병을 치유하는 힘을 가진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그는 코넬리우스 얀센 사제(1585~1638, 화란의 가톨릭 신학자)의 신봉자였다. 그는 인간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구제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었다. 프랑수아 부신부는 자기에게 구비된 병의 치유력이 신에게서 주어졌음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관은 성 메다르의 높은 제단 뒤의 무덤 속에 안치되었다. 참석자들은 차례대로 꽃을 바쳤다. 그 가운데 불구의 어린이가 하나 있었다. 그 아이는 관 위로 넘어질 뻔했다. 당황한 아버지가 손으로 부축하는 순간 아이는 몸을 뒤틀며 발작을 일으켰다. 몇 사람이 교회 경내의 조용한 구석으로 아이를 끌고갔다. 그러자 갑자기 경련이 멈추었다. 아이는 눈을 뜨고 놀란 듯이 두리번거리고는 천천히 일어섰다.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장례식의 참석자들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아이는 근육이 전혀없는 오른발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에 그 오른발이 건전한 왼볼과 같은 상태로 치유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절름발이, 문둥병, 곱사등이, 장님 등이 교회로 몰려들었다. '상류계급'의 사람 중에는 이 기적의 치유를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프랑수와 부신부의 신자들은 대부분 가난뱅이였다. 부자는 그 정신상의 문제를 가톨릭의 예수회에 맡기고 있었는데 훨씬 학문적이며 세속적인 지혜도 통달한 교파이다. 그러나 무지나 인간의 허약함을 이용하는 것만으로는, 이 경이로운 일들을 설명할 수 없음을 점차 알게 되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예수회는 기적이란 것은 '사기'거나 악마의 소행이라고 퍼뜨렸다. 그 결과 파리의 상류계급들은 성 메다르 교회의 경내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수의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찾아왔다가 충격을 받고 돌아가는 일이 허다했다. 그중에는 인쇄물을 통해서 증거를 남기는 사람도 있었다. 가령 필립은 인과관계로 이 현상의 설명을 시도했다.

한편 베네딕트회의 수도사 베르나르 루이 드 라 타스트와 같이 기적을 행하는 사람을 신학적인 근거로 탄핵하고자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타스트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나 기적의 대상자에게서도 사기행위 또는 엉터리라는 증거를 적발해내지는 못했다. 이렇게 해서 많은 증언이 쌓여 갔다. 이 시대의 위대한 철학자의 한 사람인 데이비드 흄(1711~1776)은 그의 저서 <인간의 이해에 관한 탐구(1758)>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한 인물에게서 그렇게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더욱 놀라운 일은 이 지식의 시대에 그 인격 및 지식을 믿을 수 있는 다수 인사의 눈앞에서 많은 기적들이 증명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게도 많은 상황이 단일한 사실을 확증한 것을 우리는 역사상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이 사건을 조사한 사람 중에 루이 아드리앵 드 페주라는 법률가가 있었다. 그는 자기가 눈으로 본 것을 친구인 판사 루이 바실 카레 드 몽제롱에게 말하지만 판사는 가볍게 물리친다. 마술사에게 속았거나 축제 때 흔히 볼 수 있는 마술사의 경우를 '기억'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그는 페주와 동행하여 교회를 구경하러 갔다. 법률가라는 인텔리가 어쩌다가 속았는지를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이리하여 1731년 9월 7일 아침에 출발한다. 그러나 교회를 출발할 때 몽제롱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후에 그는 목격한 것을 부정하기는커녕 투옥조차 감수하게 된 것이다.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뒤 판사가 최초로 목격한 것은 땅 위에서 엎치락 뒤치락하고 있는 한 무리의 여자들이었다. 믿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때로는 등을 뒤로 젖히고 뒷머리가 발뒤꿈치에까지 이르도록 몸을 굽히도록 했다. 여자들은 모두 긴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발목에서 묶여 있었다. 폐주의 설명에 따르면 부신부의 신비의 축복을 받는 여성은 이것이 지금까지 의무로 되어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여자들이 거꾸로 서거나 몸을 흔들거나 하면, 호기심이 많은 남자들이 구경하러 교회로 몰려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의식에 남자가 참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몽제롱은 여성이나 소녀가 참혹하게 구타당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들에게는 적어도 처음에는 그렇게 비쳤다. 사나이들은 몽둥이나 철봉으로 여자를 구타했다. 땅바닥에 엎드려 있는 여자도 있었는데 그들은 분명히 거대한 무게의 바위같은 것에 짓눌린 몰골이었다.

이 여성들은 모두가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여자들이 더 때려달라고 애원했다. 이런 난폭한 처치에 의해서 여자들은 병이나 불구의 몸을 치유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내의 다른 장소에는 19세 정도의 장밋빛 얼굴의 예쁜 소녀가 있었다. 그녀는 탁자 앞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먹는다. 그녀에게 접근하여 접시에 담긴 것을 본 몽제롱은 질겁을 했다. 겉모양과 그 냄새로 보아 인간의 오물임에 틀림없었던 것이다. 구역질 나오는 오물을 입에 넣으면서 그녀는 때때로 노란 액체를 마신다. 그것은 오줌이었다. 소녀는 노이로제의 치료를 위해서 왔다고 했다. 하루에 몇 백 번 손을 씻지 않으면 안 되고 남이 손을 댄 음식물은 절대로 입에 넣지 않았다.

부신부의 기적은 이 소녀도 치료하기에 이른다. 이런 종류의 상황은 정신병원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하고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또 기다린다. 그녀는 이 음식(?)을 먹은 후 기분이 나쁘다는 듯 입을 벌렸는데 그 입에서는 하얀 액체가 흘러나왔다. 페주는 그것을 잔으로 받았다. 그것은 마치 우유 같았다.

인간의 배설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 소녀를 본 몽제롱은 소름이 끼쳤지만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했다. 더욱 처절한 광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교회 내의 또 다른 장소에서는 화농의 상처나 종기를 말게 하기 위해서 몇몇의 여자들이 자신의 의지로 지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상처를 입으로 빠는 일이었다. 한 사람이 어린 소녀의 다리에서 붕대를 벗기나 심한 냄새가 풍겼다. 몽제롱은 역겨움을 참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다리의 곳곳이 화농되어 있었고 뼈까지 보이는 곳도 있었다.

치유를 자원한 여자는 컨벌션(Convulsion, 그리스도교의 일파, 18세기 초 프랑스에서의 열광적인 얀센주의 단체. 컨벌션은 '경련'의 뜻)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기적의 치유를 받고 육체에 대한 비뚤어짐이나 경련으로 개종한 신자로 하여금 지금 신에게 선택되어 인간이 그 본래의 혐오감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는 하늘을 쳐다보며 잠시 묵도했다. 그리고 소녀의 썩은 다리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기 시작했다. 몽제롱의 눈에 꺠끗해진 다리가 보였다. 이 처치가 완료될 무렵 소녀의 상처는 완전히 치유될 것이라고 페주는 그에게 말했다.

그러나 몽제롱은 다음과 같은 것을 보고 나서 일체의 저항을 버렸다. 심오한 무엇인가를 목격한 그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가브리엘 모러라는 16세의 소녀가 들어왔다. 그녀의 출현으로 주위가 시끄러워졌다. 상식을 초월한 이 기적의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녀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그녀는 망토를 벗고 땅에 누웠는데 스커트는 발목까지의 길이였다. 끝이 날카로운 창을 손에 들고 네 명의 사나이가 다리를 벌린 채 그녀 위에 섰다. 그녀가 미소를 짓는 것을 신호로 사나이들은 창으로 그녀의 복부를 찌른다. 몽제롱은 말리려다 제지를 당했다. 그는 숨을 몰아쉰다. 그러나 피는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잠을 자고 있었고 평화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음에는 쇠몽둥이가 그녀의 턱 아래를 누른다. 목을 관통할 정도였다. 그러나 쇠몽둥이를 들어올렸을 때 피부의 어디에도 상처가 없었다. 그 다음에 사나이들은 끝이 예리한 삽을 그녀의 가슴에다 대고 힘껏 눌렀다. 그래도 소녀는 평온하게 미소를 짓는다. 가슴에는 4개의 삽자국이 있어야 했는데 짓눌린 자취가 없었다. 이윽고 삽의 날을 목에 대고 사나이들은 힘을 다하여 짓눌렀다. 목이 잘릴 정도였으나 역시 그 자국도 보이지 않았다.

소녀가 절구공 모양의 큰 쇠몽둥이로 구타당했을 때 몽제롱은 어지러워서 쓰러졌다. 이번에는 25킬로그램 묵의 큰 돌이 약 1.5미터의 높이에서 그녀의 몸에 되풀이하여 떨어졌다. 마지막에그녀는 활활 타는 불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불 속에 넣었다. 조금 떨어져 있는 몽제롱에게도 열이 전해왔지만 소녀의 머리나 눈썹은 타지 않았다. 다시 그녀는 불이 붙은 석탄을 먹기 시작했다. 이 단계에서 몽제롱은 더 견딜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그는 가끔 그 교회를 방문하여 자료를 모아 책으로 엮고 루이 15세에게 보고한다. 왕은 그 내용에 충격을 받았으나 노한 끝에 그를 투옥시킨다. 그러나 몽제롱은 '증인'의 입장을 고집했고 출옥 후 기적에 관한 정확한 학문적인 증거가 포함된 책을 다시 2권 내게 된다. 몽제롱이 투옥된 이듬해인 1732년, 파리의 치안당국은 이 '스캔들'을 방치할 수 없다고 생각해 성 메다르 교회의 폐쇄를 명령한다. 그러나 컨벌션파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어디에서나 기적을 행할 수 있었다. 그후에도 오랜 세월에 걸쳐서 기적을 행한다. 완고한 회의론자로 알려진 과학자 라 콩다민(1701~1774, 프랑스의 박물학자)도, 1759년에 몽제롱과 같은 흥분을 경험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목격한 것이다.

시스터 프랑수아즈라는 소녀가 나무십자가에 못박혔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힌 채 몇 시간동안 그대로 방치되었다. 옆구리에는 창이 꽂혔다. 이것으로 그는 소녀가 치명상을 입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못을 뺄 떄는 분명히 피가 흘렀다. 그러나 보통 인간같으면 죽었을 이 고문에도 그 소녀는 전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상의 기적을 20세기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일부 연구가들은 이것을 자기 최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배설물을 먹는 소녀와 남의 상처를 입으로 빨아내는 여자는 설명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가브리엘 모러의 이상한 인내의 힘은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이 장면은 오히려 수도자의 고행에 가깝다.

가령 J. G. 베네트는 그의 자서전 <증언>에서 수도자의 의식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다. "면도날과 같이 예리한 검이 벌거벗은 사나이의 배 위에 올려졌고 덩치가 큰 사나이가 그 위에서 뛰었다. 그러나 누워 있는 사나이의 몸에는 아무 상처도 없었던 것이다." 이 경우에 작용하고 있는 것은 '생각의 힘'과 같은 것이다. 단순한 최면보다도 깊은 것이었다. 아직 해명되지 않았으나 분명히 주목할 만한, 인간이 가진 이상한 힘의 하나이다.

성 메다르에서 발생한 기적의 과학적 해명을 단순히 방기하는 것은 학문 그 자체를 중지함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는 이른바 '회의론자'의 입장에서 수박 겉핥기식의 설명으로 납득시키려는 태도를 삼가는 것이다.

- 콜린 윌슨 《불가사의, 1978》 (원제: Mysteries: An Investigation into the Occult, the Paranormal and the Supernatural)

1890년 5월 15일 토머스 재이 허드슨이라는 미국의 한 신문편집자는 자기가 계속 약 500명의 사람들을 치료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지 두 경우에 실패했는데, 이 환자들은 이상하게도 그가 치료를 해주겠다고 미리 알린 사람들이었다. 이 사실은 허드슨이 믿기에 주관적 정신의 또 다른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주관적 정신의 힘은 자의식 없이 자연발생적으로 작용을 했어야 했다. 그것에 자의식이 가해지면, 마치 선생이 어깨 너머로 글을 쓰는 것을 볼 때의 어린 학생들의 손처럼, 당장 얼어붙는다. 이것은 또한 회의론자들에게 시험을 받을 때 '영매들'이 힘을 바휘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은 마치 군중이 운집한 광장에서 성행위를 하는 것과 같다.

우리에게 두가지 정신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힘은 서로의 방해를 받는 경향이 있다. 1870년대에 칼 핸슨이라는 무대 최면술사는 극적인 트릭을 보여주기를 좋아했다. 그는 최면에 걸린 사람에게 판자처럼 딱딱해질 것이라 말했다. 그 사람은 머리는 한쪽의자, 발목은 다른 의자에 두고 누웠다. 그런데 몇사람이 그의 배 위에 앚거나 서 있어도 몸의 중앙이 조금도 굽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객관적 정신은 잠이 들어, 최면술사가 '객관적 정신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보통 '당신'이라는 당신의 몸에게 일어서거나 앉도록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당신'이라는 사람은 흔히 소극적이거나 피로하거라 자신이 없기 때문에, 당신의 명령이 망설이는 목소리로 내려진다. 이럴 때 우리는 자기회의에 의해 허약해진다. 최면술사는 특무상사와 같은 명령을 내리는데, 여기에는 주관적 정신의 힘을 얻어주는 효과가 담겨있다. 분명히 이것은 만약 당신이 똑같은 자신을 가지고 명령을 내릴 수 있다면, 당신도 또한 기적적인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경우 어찌하여 자신 있는 사람들이 기적을 이룰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그들이 주관적 정신보다 현실에 대처하는 의식적인 자신, 즉 객관적인 정신을 보다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천재 ㅡ 그리고 기적은 거의 두 정신의 중간접점에 위치한다.

... 중략 ...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은, 실존주의 창시자 중 한명인 사르트르의 인간존재에 대한 전체적인 철학은 '구역질'이 인간의 실재 ㅡ 머리를 손질한 아름다운 여인의 근본적인 진리라는 잘못된 생각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철학은 어니스트 허밍웨이에서부터 알베르트 카뮈, 그레이엄 그린, 그리고 새뮤엘 베커트에 이르는 현대문학의 가장 훌륭한 작가들에 의해 공감을 받고 있다. 그것은 현대철학과 현대문명을 지배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오해임을 알 수 있다. 구역질은 현실의 모습이 아니며, 두통처럼 하찮은 것이고 또 그것다 이상하게도 비슷하다. 만약 사르트르가 오른쪽과 왼쪽의 뇌(* 역주: 언어와 논리영역인좌뇌와 이미지와 감성영역인 우뇌를 지칭)에 대해 알았더라면, 그는 구역질의 중요성을 너무나 과장하고 있었음을 인정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어디까지나 왼쪽 뇌의 의식 속에 있는 '소외감'이 인간 조건의 현실적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납득할 수가 있다면, 즉갖거으로 엄청나게 증대된 낙천주의와 생명력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에서 또 다른 중요한 추론을 할 수 있다. 최면은 우리가 보아왔듯이, 근본적으로 암시이다. 최면술사의 암시(눈꺼풀이 무거워진다...)는 왼쪽 뇌의 의식 속에 사로잡히게 하는 효력을 지니고 있다. 권태와 비관주의는 이와 같은 효력의 결과이다. 그러나 사르트르처럼 인생은 무의미하고 '인간은 쓸모없는 열정'이라 믿는다면, 영원히 부정적인 자기 암시 상태에 있게 되며, 왼쪽 뇌의 인식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이 정상적인 인식방식이 될 것이다. 따라서 '구역질'은 일종의 자기 성취의 예언이 된다. 왼쪽 뇌의 의식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매우 나쁜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규범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열 배나 더 나쁜 것이 된다. 반면에 모든 뇌의 의식이 규범이라는 것을 인식한다면, 왼쪽 뇌의 의식에 사로잡힌 상태는 우발적인 두통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퓌세기르가 발견한 최면에 대한 참다운 중요성이 있다. 그것은 인간 정신에 관한 문제점을 야기시킨 이상한 예외적인 사실에 대한 인식이었다. 19세기에 있어서의 최면에 대한 전적인 무시는 이런 문제를 직면하기에는 너무나 불안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문제를 무시하고, 인간의 인식에 대한 낡은 상식적 견해에 집착하는 편이 보다 편안했다. 이제 우리는 최면의 실체는 인정하고(아직도 최면을 속임수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의 관련성을 파악하지 못한 재미있는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런 것들이 모든 고등학교 학생에 의해 마침내 파악되고 당연한 것으로 인정될 때, 오늘날 무의식적 정신이나 어린시절의 에로티시즘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듯이, 인간은 규명하지 못한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코자 하는 항해를 시작할 준비가 갖추어질 것이다.

- 콜린 윌슨 《불가사의, 1978》 (원제: Mysteries: An Investigation into the Occult, the Paranormal and the Supernatural)

"저는 그날 아침, 제 왼쪽 뇌의 분석적인 신경 회로가 완전히 침묵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더 이상 제 몸의 경계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제가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제 팔의 원자들은 벽의 원자들과 섞여버렸고, 제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오직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Flow of Energy)뿐이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제 마음은 고요해졌고, 과거의 고통이나 미래의 걱정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거대한 하나(The Great One)'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제가 우주의 모든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평화였습니다.

우리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왼쪽 뇌는 "나는 누구다(I am)"라고 말하며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킵니다. 그것은 숫자를 계산하고, 이름을 붙이고, 과거와 미래를 걱정합니다. 하지만 오른쪽 뇌는 바로 지금, 이 순간(Right here, right now)만을 즐깁니다. 우뇌에게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이며, 온 우주와 연결된 거대한 에너지의 존재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세상에, 내가 어떻게 이 거대한 에너지 속에 다시 내 작은 자아를 집어넣을 수 있을까?' 하지만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요.

우리는 언제든지 오른쪽 뇌의 회로로 넘어가서 이 평화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에 상관없이, 우리는 우리 안의 이 거대한 평화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 평화로운 우뇌의 회로를 더 많이 사용한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더 평화로워질지 상상하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겪은 뇌졸중이 저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 즉 '통찰(Insight)'이었습니다."

- 질 볼트 테일러 TED 강연<My Stroke of Insight> (나의 뇌졸중 통찰, 2008)

(* 실제 뇌졸중을 겪은 날은 1996년 12월 10일)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 그것도 벌써 20년전 일이니 기억조차 안개같이 몽롱하다.

조선 천지에 큰 바람과 큰 비가 지나가고 일본이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하던 그 이듬해이니 아마 1919년 가을인가 보다.

몹시 덥던 더위도 사라지고 온 우주에는 가을 기운이 새로울 때였다. 금풍(金風)은 나뭇잎을 흔들고 벌레는 창밑에 울어 멀리 있는 정인의 생각이 간절한 때였다.

이 때 나는 대삿갓을 쓰고 바람을 지고 짧은 지량이 하나를 벗을 삼아 표연히 만주길을 떠났었다.

조선에 시세가 변한 이후로조선 사람이 사랑하는 조국에서 살기를 즐기지 않고 무슨 뜻을 품고 오라는 이도 없고 오기를 바라는 사람도 없는 만주를 향하여 남부여대(南負女戴)로 막막한 만주벌판으로 건너가는 사람이 많았다.

그 중에는 고국에서 먹고 살 수 없어 가는 사람도 있었고, 또 뜻을 품고·간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때에 불교도 이었으니까 한 승려의 행색으로 우리 동포가 사는 만주를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동포들을 만나 보고 서러운 사정도 서로 이야기, 저런 이야기로 이역(異域)생활을 묻기도 하고 고국 사정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곳 동지와 협력하여 목자(牧者)를 잃은 양(羊)떼같이 동서로 표박하는 동포의 지접할 기관, 보호할 방침도 상의하였다.

근일에는 그곳을 가보지 못하였나, 그때에 그곳은 무슨 이상한 불안과 감격과 희망 속에 싸여 있었다. 낮에는 장산에 올라 풀뿌리를 캐고 조를 뿌리어 가을에 길이 넘는 조를 베어 들여 산 밑에 있는 게딱지같은 오막살이에 거두어들여서 조밥을 배불리 먹고 관솔불 켜고 천하대사를 통론하며 한편으로 화승총(火繩銃)을 가지고 조련을 하던 때였다.

그리고 조선 내지에서 들어온 사람을 처음에는 불안으로, 그 다음에는 의심으로, 필경에 의심이 심하면 생명을 빼앗는 일까지 종종 있던 예였다.

내가 죽다가 살아난 일도 이러한 주위 사정 때문에 당한 듯하다.

그 때는 물론 어찌하면 그런 일을 당하였는지 모르고 지금까지 의문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내가 조선에서 온 이상한 정탐꾼이라는 혐의를 받아서 그리 된 듯하다.

어느 가을날이었다.

만주에서도 깊은 두메인 어떤 산촌에서 자고 오는데 나를 전송한다고 2·3인의 청년이 따라나섰다.

그들은 모두 연기 20세 내외의 장년인 조선청년들 이었으며, 모습이나 기타 성명은 모두 잊었다.

길이 차차 산골로 들어 「굴라재」라는 고개를 넘는데 나무는 하늘을 찌를 듯이 들어서 있고 백주에도 하늘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길이라고는 풀 사이라 나뭇꾼들이 다니던 길같이 보일락 말락하였다.

이러자 해는 흐리고 수풀 속은 별안간 황혼 때가 된 곳 같이 캄캄하였다.

이 때였다. 뒤에서 따라오던 청년 한명이별안간 총을 쏘았다.

아니 그때 나는 총을 쏘았는지 무엇을 하였는지 몰랐다.

다만,「땅」소리가 귓가가 선뜻하였다.

두 번째 「땅」소리가 나며 또 총을 맞으매 그제야 아픈 생각이 났다.

뒤 미처 총 한 방을 또 쓰는데 이 때 나는 그들을 돌아보며 그들의 잘못을 호령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말로 목청껏 소리 질러 꾸짖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성대가 끊어졌는지 혀가 굳었는지 내마음으로는 할 말을 모두 하였는데, 하나도말은 되지 아니하였다.

아니, 모기소리 같은 말소리도 내지 못하였다.

피는 댓줄기 같인 뻗쳤다 그제서야 몹시 아픈 것을 느끼었다. 몹시 아프다.

몸 반쪽을 떼어 가는 것같이 아프다.

아, 그러나 이 몹시 아픈 것이 별안간 사라진다. 그리고 지극히 편안해진다.

생(生)에서 사(死)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다만, 온몸이 지극히 편안한 것 같더니 그 편안한 것까지 감각을 못하게 되니 나는 이때에 죽었던 것이다.

아니 정말 죽은 것이 아니고 죽은 것과 꼭 같은 기절을 하였던 것이다.

평생에 있던 신앙이 이 때에 환체(幻體)를 나타난다. 관세음보살이 나타났다.

아름답다, 기쁘다. 눈앞이 눈부시게 환하여지며 절세의 미인, 이 세상에서는 얻어 볼 수 없는 어여쁜 여자, 섬섬옥수에 꽃을 쥐고 드러누운 나에게 미소를 던진다.

극히 정답고 달콤한 미소였다.

그러나 나는 이 때 생각에, 총을 맞고 누운 사람에게 미소를 던지는 것이 분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감상에 설레었다.

그는 문득 꽃을 내게 던진다. 그러면서

「네 생명이 경각에 있는데 어찌 이대로 가만히 있느냐? 」

하였다.

나는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려 눈을 딱 떠보니 사면은 여전히 어둡고 눈은 내둘리며 피는 도랑이 되어 흐르고 총을 쏜 청년들은 나의 짐을 조사하고 한 명은 큰 돌을 움직이고 있으니 그 돌로 아직 숨이 붙어있는 듯한 나에게 던지려는 것인 듯하다.

나는 새 정신을 차리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대로 오던 길로 되짚어 가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이 나의 피흘린 자국을 보고 따라 올 때에 내가 쫓기는 길로 간 흔적이 있으면 그들이 더 힘써 따라올 것이요, 다시 뒤로 물러간 것을 보면 안심하고 빨리 쫓지를 아니 하겠기에 그들을 안심시키고 빠져가자는 계책이었다.

한참 도로 가다가 다시 돌아서서 어떻게 넘었는지 그 산을 넘어서니 그 아래는 청인(淸人)의 마을이 있었다.

그리고 조선으로 치면 이장(里長)의 집에서 계(契)를 하느라고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피흘리고 들어오는 나를 보고 부대 조각으로 싸매 주었다.

이 때 나에게 총을 쏜 청년들은 그대로 나를 쫓아왔었다. 나는 그들을 보고

「총을 쏠테면 쏘아라.」

하고 대들었으나, 그들은 어쩐 일인지 총을 쓰지 않고 그대로 달아나 버렸다.

- 만해 한용운이 잡지 《삼천리(三千里)》 제8권 제2호에 기고한 글 (1936년 2월호) - 〈죽음〉 또는 '죽다가 살아난 이야기'라는 부제로 알려짐

(* 실제 만해의 행보와 대조해 볼 때, 3·1 운동 이후 만주에서 독립운동 기지를 시찰하던 시기의 실화.)

우리는 내가 죽을 거라는 사실과 결국에는 영원한 시간이 나를 집어삼킬 것임을 안다. 우리는 '나'라는 개인보다 더 큰 무언가를 느끼고 나를 초월한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기분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값싸게 목적을 만들어내고 초월감을 느끼려고 한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가장 쉽고 편한 방법으로 목적과 초월감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가짜 목적'에 자신을 넘겨준다.

이 임무는 나를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어주는 나의 개성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내가 왜 만들어졌는지 이유를 찾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과업, 나의 소명을 발견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걸 발견하고 나면 온 힘을 다해 내 모든 능력을 쏟아부어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이 인생의 과업을 내면에서 나에게 말을 거는 무언가, 즉 하나의 목소리라고 생각하라. 당신이 불필요한 일에 휘말리고 있거나 성격에 맞지 않는 커리어를 가려고 하면 불편한 기분의 형태로 이 목소리가 경고를 보내줄 것이다. 당신의 천성과 잘 어울리는 활동이나 목표가 있는 쪽을 알려줄 것이다. 그것은 뭔가 종교적인 것, 또는 개인적인 것, 아니면 둘 모두로 보일 수도 있다.

MIA 회장직을 사임하고 성직자로 안락하게 살 것을 고려

자신의 종교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고, 자신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없다는 절망이 닥쳐왔다

다급한 심정으로 커피컵 위로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올림

"하느님, 제가 지금 약해졌음을 고백합니다. 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용기를 잃고 있습니다. 이런 제 모습을 사람들이 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약하고 용기를 잃은 제 모습을 본다면 그들도 약해질 테니까요."

그 순간 너무도 또렷하게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한 목소리

"마틴 루터, 옳은 일을 위해 일어나라. 정의를 위해 일어나라. 진실을 위해 일어나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세상 끝까지라도 함께할 것이다."

킹이 주님의 목소리라고 느낀 그 목소리는 그를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고, 필요하면 언제든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 그 순간 킹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다.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의심과 불안이 모두 날아간 기분이었다. 그는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킹이 MIA 회의에 참석 중일 때 그의 집이 폭파됐다. 순전히 운으로 그의 가족은 무사.

이제는 그 무엇도 그를 흔들어 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킹은 몽고메리의 버스에 탑승해 앉고 싶은 자리 아무 곳이나 앉은 첫 번째 승객이 되었다.

- 로버트 그린 『인간 본성의 법칙, 2018년』 (원제: The Laws of Human Nature)

"인간은 자연 속에서 가장 연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un roseau pensant)이다.

그를 파멸시키기 위해 온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줄기 증기, 한 방울의 물만으로도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파멸시킨다 할지라도, 인간은 자신을 죽이는 자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자신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존엄성은 '사유(思惟)'에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높여야 하는 것은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이나 시간이 아니라, 바로 이 사유를 통해서다. 그러므로 올바르게 생각하기 위해 힘쓰자. 이것이 바로 도덕의 원리이다."

-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팡세(Pensées)》 제347편 (1670년 출간)

(* 파스칼 사후 그의 메모와 미완성 원고를 정리하여 출간된 유고집)

"인류가 이제껏 했던 발견 중 단연 최고는 생각이 창조의 힘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입니다. 우리는 법칙이 우리를 위해 움직이게 하기 위해 억지로 그것을 강제할 필요가 없고 단지 그것을 이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 어니스트 홈즈 《마음의 과학 (The Science of Mind), 1926》

"생각은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다. 레이저광선마저 보잘 것 없게 만든다. 이 생각에서 시작해 개념과 사물로 옮겨 가야 한다. 밖에서 안으로 움직이지 않고 안에서 밖으로 움직여야 한다.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고 그 효과는 신통했다. 법칙과 조화를 이루며 일할 때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린다.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일은 순조롭게 풀리지 않고 고된 여정이 된다."

- 에드가 미셸 『탐구자의 길(The Way of the Explorer, 1996)』

외적 우주로의 내적 도달

-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쓴 『외적 우주로의 내적 도달』 (The Inner Reaches of Outer Space: Metaphor as Myth and as Religion, 1986)

(* 캠벨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 각자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쓴 책.)

"우리는 우리의 선택(prohairesis)이다."

- 에픽테토스 《담화록》 (서기 1~2세기경)

"우리가 열등한 위치에 있는 잘못은 저 별의 위치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는 거요."

-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 (Julius Caesar)》 1막 2장

년도: 1599년경 집필 (1623년 초판본 수록)

"자신의 위대한 부분을 따르는 사람은 대인이고, 모자른 부분을 따르는 사람은 소인이다."

"從其大體爲大人, 從其小體爲小人." (종기대체위대인, 종기소체위소인)

- 《맹자(孟子)》 〈고자(告子)〉 상편 (BC 4세기경)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된다."

"상상력을 제대로 사용할 때, 그것은 우리의 가장 훌륭한 친구가 된다. 이는 터무니없지만 우리를 어디든 데려다 주는 유일한 빛이다."

- 스와미 비베카난다 《비베카난다 전집(The Complete Works of Swami Vivekananda)》 제7권 (1890년대 발언, 출판은 1900년대 초반)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장미빛 뺨, 붉은 입술, 유연한 무릎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열정을 말한다."

(It is not a matter of rosy cheeks, red lips and supple knees; it is a matter of the will, a quality of the imagination, a vigor of the emotions.)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과 비관의 얼음에 덮일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노인이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타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라도 청춘이다."

-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의 시 《80년의 흔적》(From the Summit of Years, Eighty, 1918) 〈청춘(Youth)>

집필 시기: 1910년대 후반 (그의 나이 78세 - 당시로서는 '산 송장'과 다름없던 80세에 출판)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함대 사령관이었던 더글러스 맥아더가 자신의 집무실 벽에 이 시를 걸어두고 매일 낭송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4차 십자군 전쟁(1202~1204) 원정 당시 90대 중반이었던 엔리코 단돌로 (Enrico Dandolo)나 65세에 전 재산을 잃고 사회보장기금 105달러로 사업을 다시 시작한 KFC 창업자 커넬 샌더스, 그리고 73세에 총리에 취임하여 87세까지 14년간 집권하며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낸 콘라트 아데나워를 생각하면 이 시의 진실성은 확실히 증명가능하다. 또, 90대 죽는 날까지 활발하게 저술활동을 했던 세계 경제와 외교 안보의 막전후를 지배했던 존 D. 록펠러, 데이비드 록펠러, 헨리 키신저, 폴 볼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가 각각 97세, 101세, 100세, 89세, 92세까지 살고 죽는 날까지 활발히 활동했던 것을 생각해봐도 그렇다.)

제임스 에스데일은 에딘버러 대학 출신으로, 1843년부터 인도 캘커타에서 사지 절단 수술, 종양과 암의 제거 수술, 눈과 이비인후 수술 등 약 345건의 대수술을 실시했다. 약 30%의 환자들은 수술 도중 통증을 일체 느끼지 않았으며, 도중에 죽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수술 수 사망률도 극히 낮았다. 당시에는 수술 후 감염이 살균하지 않은 병균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음에도 말이다. 이 의사가 인도인 조수들을 동원해 최면 상태에 있는 환자들에게 감염과 부패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암시를 주었을 때, 환자들의 잠재의식은 그의 암시에 따라 반응했다. 그들의 잠재의식은 생명을 위협하는 감염 위험을 물리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을 작동시켰던 것이다.

에스데일의 최면은 당시 뱅골 총독이 파견한 조사위원회 리포트에 의해 그 신뢰성이 인정받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기독교의 영향으로 최면술에 좀 더 부정적이었기 때문인지, 서구인들은 인도인들보다 최면을 통해 치료 효과가 더 낮았다고 한다.

- 제임스 에스데일 《Mesmerism in India, and its Practical Application in Surgery and Medicine》 (인도에서의 메스머리즘, 그리고 외과 및 의학에서의 실제적 응용, 1846) 요약

(* 에스데일은 벵골 지방의 호글리(Hooghly) 병원에서 약 300건 이상의 대수술을 통증 없이 수행했다. 당시 영국 일반 병원의 수술 사망률은 약 40~50%에 달했으나, 에스데일의 '최면 마취' 수술 사망률은 5%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는 환자의 잠재의식에 "감염과 부패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강력한 암시를 주었으며, 이는 1846년 벵골 총독이 임명한 '위원회 보고서(The Report of the Committee)'를 통해 공식적으로 그 효력이 인정되었다.)

"날마다 모든 면에서 나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Tous les jours à tous points de vue, je vais de mieux en mieux)

- 사이러스 해리 브룩스 (C. Harry Brooks) 《The Practice of Autosuggestion by the Method of Emile Coué, 1922》

(* 최면가 에밀 쿠에의 사례와 성공률에 대한 가장 신뢰도 높은 자료는 그의 전기 작가 사이러스 해리 브룩스의 저서다. 쿠에는 매일 낸시(Nancy)에 있는 자신의 병원에서 수백 명의 환자를 돌보았다. 브룩스의 기록에 따르면, 쿠에의 치료법은 약 93%의 성공률을 보였으며, 나머지 7%의 실패는 환자가 암시를 거부하거나 강한 회의론적 태도(부정적 자기암시)를 가졌기 때문으로 분석되었다.)

오늘날 현대의학에서는 최면과 플라시보 효과를 광범위하게 인정하며, 다양한 학자들이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일례로,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앨랜 랭거(Ellen Langer) 교수는 호텔 청소부들을 유심히 관찰하자, 운동부족으로 인한 온갖 증세를 보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는 호텔 청소부 84명 중 42명에게는 하루에 15개의 방을 치우는 것은 2시간반의 운동량과 같다고 설명한 후 그들의 신체 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살펴보고자 했다. 한 달 후 이 설명을 들은 청소부들은 배가 쑥 들어가고 삼중턱도 없어지고 혈압도 떨어졌다. 청소할 때마다 살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살이 빠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나머지 42명에게는 오히려 피로독소만 쌓였다.)

"끝에서 시작하라." (Think from the end.)

"느낌이 비밀이다. 느낌의 변화는 운명의 변화다."

"내게 주어진 유일한 과업은 나의 관념을 위대함으로 채우는 것 뿐이다."

- 네빌 고다드 『느낌이 비밀이다(Feeling is the Secret, 1944)』 외 복수의 강연

"자네는 지금 바베이도스에 있네! ... 만약 자네가 이미 바베이도스에 있다면, '어떻게'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할 수가 없네. 자네는 이미 그곳에 있으니까! 이제 저 문을 걸어 나갈 때, 자네는 더 이상 뉴욕에 있는 것이 아니네. 자네는 바베이도스의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이고, 바베이도스의 짠 바다 내음을 맡고 있는 것이네."

- 네빌 고다드 〈Lessons in Scripture, 1948〉

(* 네빌 고다드에게 심상화의 원리를 이야기하는 압둘라의 말로, 실제 사건이 일어난 해는 1933년)

"'나'의 느낌을 변화시킨다면 세상에 대한 반응은 그에 따라서 변하게 됩니다. 그 변화된 반응은 세상에 변화를 또 불러옵니다. 지금 여러분의 세상이 마음에 들고 흡족하게 느낀다면 신비의 여정으로 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커다란 지복은 만족해하지 않는 자에게 드러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축복받느니라.""

- 네빌 고다드 《부활 (Resurrection), 1953》

"대체로 사람들은 내면의 대화를 완전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환경의 창조자가 아닌 피해자로 봅니다."

- 네빌 고다드 《상상의 힘(The Power of Imagination), 1954》

(원제는 《깨어있는 상상력(Awakened Imagination)》)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영화를 보듯

영화가 끝날 즈음에야 영화관에 들어갔다면

행복한 결말 밖에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 그 영화 전체를 보기 위해 자리에 계속 앉아

영화가 다시 상영되기를 기다린다.

용두사미의 결말이지만 주인공은 거짓된 증거에

비난받고 에워 쌓이면서 관객들의 눈물을 짜내려 한다.

하지만 그 결말을 알기에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는 그대는

지금 영화가 전개되는 모습과는 상관없이 확실한 결말에 대한 앎을 지닌 채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대가 구하고자 하는 것의 결말로 가라.

그곳에서 소망하던 모습, 혹은 갖고 싶던 것을 얻은

그대의 모습을 의식 속에서 느껴라.

그렇게 한다면 결말에 대한 앎에서 태어난

확신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 앎으로 인해,

삶의 영화가 전개되는 시간 동안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다른 이의 도움을 구하지 말고

그대 자신이 소망하던 모습이 되었다고,

의식 안에서 주장해, 이렇게 외치라.

“이루어졌다”

- 네빌 고다드의 《믿음으로 걸어라 (Walk by Faith), 1967》

"운이 다할 때 사람은 정신을 넓혀 빈 공간을 채워야 한다."

- 윈스턴 처칠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 1948》

Aus der Asche fliegt ein Phonix auf (잿더미에서 불사조가 날아오른다)

- 서구의 오랜 격언

(* 잿더미 속 불사조: 서구의 고전적 비유이나, 괴테, 헤세, 혹은 독일 낭만주의 문헌에서 자주 사용됨)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

처염상정(處染常淨)

원문: 출어음이지불염(出淤泥而不染): 진흙탕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않는다

- 《묘법연화경(법화경), BC1~AD1세기경》

(* 가장 널리 읽히는 구마라습(Kumārajīva)의 한역본은 서기 406년에 나왔다.)

Blessing in Disguise (불행의 탈을 쓴 축복)

- 영국의 시인 윌리엄 쿠퍼(William Cowper)의 찬송가 시 〈빛이 어둠 속에서 빛나도다 (Light Shining out of Darkness, 1774)〉에서 유래해 서구권의 관용어로 자리잡았다.

원래의 맥락: "하나님은 엄한 얼굴 뒤에 축복을 숨기고 계신다(Hides a smiling face)"는 구절에서 유래

새옹지마(塞翁之馬)

- 중국 한나라의 종실인 유안(劉安)과 그가 모은 학자들이 공동 집필한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 편 (BC 139년경)

"여러분이 혹시 잘못된 하느님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걱정한다면 더 더욱 여러분을 극한의 시험으로 몰아보십시오.

빈곤한 상황은 그들을 '충분한 수입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구한 상태'로 바라볼 수 있는 저의 능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상상력을 사용하는 법을 연습해서 강렬한 상상을 통해 그것이 실제처럼 느껴지는 단계까지 오르게 된다면 그 힘은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매년 우리들 대부분은 우리의 생각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전쟁들을 신경쓰느라 우리의 힘을 다 써버립니다."

- 네빌 고다드 《The Law and the Promise (법칙과 약속), 1961》

오히려 더욱 더 실패하세요.

지금 실패하고 있다는 것은

그럴만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실패가 크면 클수록

당신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당신의 내면에 저항이 극에 달해

마침내 그 마음이 꺾여질 때 맞이하게 되는 변곡점에서

당신은 온전히 변해

다시는 예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가 옵니다.

반드시 오게 되어 있고

이미 준비되어 오고 있습니다.

지금 실패하는 것은 그럴만하기 때문이며

결과에 이르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렇게 당신이 깨어지고 깨어져서

당신의 소망이 예언한 그날

이미 준비되어 있던 결과의 재림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때 당신은 변하게 됩니다.

당신의 소망은 이루어지게 됩니다.

조급해 하지 마세요.

오히려 지금은 조급해야만 했던 떄라는 것만 아세요.

당신을 조급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상황들은

당신의 마음이 완전히 굴복해

더 이상 조급하거나 부안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들은

결국 당신의 변형을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느님의 날은

한밤 중에 도둑처럼 소리 없이 올 것이다.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등불을 켜고 기다리는 신부는 복되다.

당신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그 날과 그 시간에 대해

조바심내지 마세요.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은

마치 한밤중의 도둑처럼

소리없이 올 것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날을

확신이라는 등불을 켜고 기다리는

당신의 마음은 복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가장 주고 싶으신 것을

진심으로 원하게 만드십니다.

당신이 소망하는 그것은

이미 준비된 선물입니다.

- 네빌 고다드의 1950년대~1960년대 강연

(* 성경(데살로니가전서 5:2, 마태복음 25장)에 대한 형이상학적 해석.)

치앙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이미 도착했음을 앎으로써 시작하지 않으면 안 돼."

이 비결은, 그의 진정한 본성이 쓰여지지 않은 수(數)처럼 완벽하게 시공을 동시에 가로질러 어디에나 살아 있음을 아는 것이었다.

"날을 것이라는 믿음은 필요 없고, 날음을 이해해야 해. 거기엔 변함이 없어."

- 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 1970》

"명상이 끝날 때 당신은 처음과 똑같은 사람으로 일어나면 안 된다. 마치 인생 최고의 여름을 보낸 직후의 상태인 것처럼 세포가 느끼게 하라"

- 조 디스펜자 《당신도 초자연적이 될 수 있다(Becoming Supernatural), 2017》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야. 나는 홍천녀(아카네텐뇨)야."

- 일본 드라마 《유리가면 (유리노카멘, 1997/1998)》 명대사

"명확하게 과정을 시각화하라. 관련된 도구들, 관련된 물건들, 관련된 힘들. 그러한 준비를 통해, 아마도 우리는 '우연한 발생'과 '의도적 행동 사이의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행동들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면, 만약 실수가 발생한다면, 만약 '집요한 백일몽'이 자각을 뺏어간다면: 멈춰라! STOP! 모든 행동을 멈춰라. 그리고 처음 시작했던 곳으로 돌아가라. 그 '의도'를 재정비하라. 다시 시작하라."

- 로버트 S. 드 로프 《마스터 게임 (The Master Game: Pathways to Higher Consciousness Beyond the Drug Experience), 1968》

(* 로버트 드 로프는 영국의 생화학자이자 작가였다. 그는 록펠러 재단 등에서 약리학 연구를 수행한 정통 과학자였으나, 동시에 인간 의식의 확장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서 펜듈럼은 당신을 궤도에서 이탈시키기 위해 온갖 술수를 동원해서 애를 쓸 것이다.

모든 실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라.

어떤 일도 백퍼센트 순조롭게 진행될 수가 없다.

실패 때문에 흥분한다면 현재의 계단이 무너지고, 당신은 계단을 굴러 떨어질 것이다.

그것은 당신을 화나게 하고 자신에게 불만을 느끼게 만들 것이다.

마음의 계획이 엉망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실망하면 당신은 행복과 성공이 기다리고 있는 인생트랙으로 결코 옮겨가지 못한다.

사실로 말하자면 성공하여 잘 살 때조차 당신은 자신이 어디 만족스럽기나 한가?

당신이 방사하는 에너지의 매개변수가 자신을 불만족스러워하는 상태에 동조되어 있다면 과연 어떻게 성공의 인생트랙으로 옮겨갈 수 있겠는가?

당신의 마음은 단지 자신의 시나리오의 일부가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능태 흐름 속의 예기치 않은 변화를 실패로 간주해 버린다는 점을 명심하라.

왜 이런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 실패를 성공으로 바라볼 수가 없는가?

실패로 보이는 모든 것을 실망 대신 즐거운 놀라움으로써 맞이하라.

그것은 신비로운 방식으로 목표를 향해 당신을 데려간다.

다른 사람들이 성공을 향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 뒤처지지 않겠다고 발버둥치지 말라.

군중심리에 빠져 들지 말라.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운명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다져진 길을 따라간다.

오직 소수만이 진정한 성공을 이뤄낸다.

내가 하는 대로 따라 하라는 규칙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간 사람들만이."

- 바딤 젤란드 『리얼리티 트랜서핑(Reality Transurfing, 2004)』

"잔가지가 다 자랄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쓸모 없는 가지를 발견한 순간 그 자리에서 쳐내어 버리십시오. 원하지 않는 상상을 발견한 순간 바로 멈추십시오. 습관의 노예가 되지 마십시오. 내 마음대로 생각을 꺼버리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입니다. 상상력으로 이어지는 생각은 온전히 내 것이기에 그저 생각을 꺼버리면 간단하게 해결됩니다. 자, 만약 여러분이 여러분의 소중한 시간 동안 - 5초 정도밖에 안 될 것입니다 - 원하지 않는 상상이 펼쳐지는 것을 내버려 두는 습관을 발견했다면 발견 즉시 그 상상을 멈추십시오. 상상을 멈추고 새로운 방향으로 돌리십시오. 그렇게 했다면 여러분은 성공적으로 가지치기를 한 것입니다."

- 네빌 고다드의 1954년 라디오 강연 시리즈 〈가지치기 가위 (The Pruning Shears of Revision), 1954〉

이후 그의 저서 《상상의 힘 (Awakened Imagination), 1954》 제4장에 수록

"성공한 미래에 대한 당연함이 있으면 성공할 수밖에 없다. 확신은 만드는 것이 아니며, 만드는 것은 거짓말이다. 믿으려고 하면 오히려 불신이 생긴다. 확신은 알게 되면 이미 믿게 되는 것이다. 앎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서 설명할 수 없는 당연함이 생긴다."

- 이하영 《더 플로(The Flow), 2023》 및 유튜브 강연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닿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큰 업적이자 축복이다."

-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 링컨은 성경의 구절(히브리서 11장 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을 자신만의 통찰로 재해석하여 표현하곤 했다.)

"당신은 어차피 나중에 나를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미리 좋아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시간 낭비할 필요 없지 않습니까."

- 이외수 에세이 《하악하악, 2008》 및 여러 방송 인터뷰 (KBS '승승장구' 등)

(* 발언 시점: 1970년대 중반 이외수가 아내를 처음 만난 무렵. 당시 이외수는 춘천에서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가난한 무명 작가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미래(대작가가 될 것임)를 이미 '결정된 사실'로 믿고 있었기에, 상대방에게도 그 '확정된 미래'를 지금 수용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한 것.)

"어리석은 자가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계속 고집한다면, 결국 현명하게 될 것이다."

- 윌리엄 블레이크 『천국과 지옥의 결혼(The Marriage of Heaven and Hell, 1790)』

우공이산(愚公移山)

-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 (BC 400》

(* 현재 전해지는 판본은 위진남북조 시대인 AD 4세기경 장잠(張湛)이 주석을 달아 정리한 것)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추지만, 비이성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고집을 피운다. 따라서 모든 진보는 이 '비이성적인 사람'의 고집에 달려 있다."

- 조지 버나드 쇼 『인간과 초인(Man and Superman, 1903)』

"나는 한때 베아트리스 웹에게 젊은 시절 수줍음을 느낀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전혀요'라고 답했죠. '사람들이 가득한 방에 들어갈 때 소심해질 것 같으면 속으로 이렇게 말했어요. "너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나라의, 가장 똑똑한 계층의, 가장 똑똑한 가문 중에서도 가장 똑똑한 사람이야. 그런데 왜 겁을 먹니?""

- 버트런트 러셀 『버트런트 러셀 자서전(The Autobiography of Bertrand Russell)』 제1권 (1967)

한때 친구이자 혁명동지였던 마르토프는 10월 혁명 후 레닌이 어떻게 정권을 잡을 수 있었냐는 질문에 "온종일 혁명만 생각하고, 혁명에 대한 글만 쓰고, 혁명에 관한 글만 읽는 사람이 어찌 집권할 수 없었겠소."라고 되물었다.

- 율리 마르토프(Yuly Martov)의 회고 (1917년 10월 혁명 직후~1920년대 초반) 및 관련 역사 저술 (예: 루이 피셔의 《레닌의 생애》 등)

(* 레닌은 한때 혁명 동지였으나 노선 차이로 갈라진 멘셰비키 인사들에 대해 매우 관대했으며, 옛 동지 마르토프도 해외 망명을 허가해줬다. 마르토프는 정적이었음에도 레닌의 '단일한 집중력(Singularity of focus)'을 인정했다. "온종일 한 가지만 생각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현대의 몰입(Flow) 이론과 닿아 있다.)

"최고의 복수는 압도적인 성공이다."

- 프랭크 시나트라 (비서였던 토니 콘실리오(Tony Consiglio)의 구전 기록 - 1950년대 중반~1960년대 초반 사이 추정)

(* 1950년~1952년 사이, 시나트라는 인생 최악의 바닥을 쳤다.

1. 성대 결절: 공연 중 피를 토하며 목소리를 잃을 뻔했다.

2. 스캔들: 에바 가드너와의 불륜설로 대중의 비난을 받았다.

3. 계약 해지: 레코드사(Columbia)와 소속사(MCA)에서 퇴출당했다. 당시 언론은 "시나트라는 끝났다"며 그의 부고 기사를 준비할 정도였다.

화려한 재기: 1953년 〈지상에서 영원으로〉

시나트라는 1953년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From Here to Eternity)〉에서 조연 '마지오' 역을 따내기 위해 제작자에게 매달렸고, 결국 이 역할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거머쥐며 기적적으로 부활한다. 이후 캐피톨 레코드(Capitol Records)와 계약하며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들을 쏟아냈다.

"최고의 복수는 압도적인 성공이다"라는 말은 바로 이 '죽었다 살아난' 1950년대 중반 이후, 자신을 비웃던 언론과 업계 사람들을 비웃듯 보란 듯이 정점에 섰을 때 나온 발언이다.

시나트라는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을 직접 공격하기보다, 실력으로 그들을 압살하는 것이 가장 고상하고 잔인한 복수임을 깨달았다.

1. 감정적 대응 금지: 화를 내거나 비난하는 대신, 자기 일에 몰두함.

2. 결과로 증명: 적들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만큼 높은 위치(압도적 성공)에 올라감으로써 그들의 비판을 무의미하게 만듦.)

"현실왜곡장(reality-distortion field)은 카리스마 넘치는 수사적 스타일, 굴하지 않는 의지, 그리고 당면한 목적에 맞게 어떤 사실이라도 굴절시키려는 열망이 뒤섞인 당혹스러운 혼합물이었다. 하나의 논리로 설득되지 않으면 그는 능숙하게 다른 논리로 갈아탔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인정도 없이 갑자기 당신의 입장을 자신의 것처럼 채택하여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2011), 제11장 '현실왜곡장'

"거의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 확신을 가지십시오. 자기 확신은 엄청나게 강력합니다. 제가 아는 가장 성공한 사람들은 거의 망상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 자신을 믿습니다. 이 마음가짐을 초기에 배양하십시오. 당신의 판단이 옳다는 데이터 포인트가 쌓이고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게 될수록, 당신 자신을 더 많이 신뢰하십시오."

"여기서 핵심 단어는 '거의'입니다. 자기 확신이 현실을 압도하여 선을 넘는 사람들도 일부 있지만, 그것은 위험한 길입니다. 핵심은 계속 나아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신을 믿되, 낭떠러지로 떨어질 정도로 과하지는 않게 유지하는 것입니다."

"복리 효과가 있는 커리어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커리어는 선형적으로만 진행됩니다."

"세상의 큰 비밀 중 하나는, 당신이 원한다면 놀라울 정도로 세상을 당신의 의지대로 굴절시킬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그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인간은 일을 성사시키는 엄청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의심, 너무 이른 포기, 충분히 밀어붙이지 않는 태도가 결합되어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요구하십시오. 대개는 얻지 못할 것이고 거절의 고통은 아프겠지만, 이것이 작동할 때는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거의 언제나,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계속할 것이고 어떤 어려움이 있든 다 찾아내겠다'라고 말하고 진심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결국 성공합니다. 그들은 운이 자신에게 올 기회를 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래 버텨냅니다."

- 샘 알트만 블로그 글, "How To Be Successful" (2019)

"내 인생 최고의 조언은 샘 알트만이 한 말이었다. 그 말은, 지금 위치에 올 수 있었던 주변 사람들의 말을 거의 듣지 않았기 때문이고, 세상 모든 사람은 틀리고 당신만이 옳다는 것이다. 옳은 사람은 너 하나 뿐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네가 진짜라고 믿는걸 기준으로 인생을 살면 인생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당신만큼 당신의 삶을 아는 사람은 없다, 당신은 생각보다 더 좋은 결정을 내리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보다 덜 똑똑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서로 비슷비슷하다면 중요한건 맥락 뿐이다. 당신의 삶에 대한 맥락을 가장 많이 가진 건 당신이다. 오직 자신만을 믿어라. 오직, 오직, 오직 자신만을 믿어라."

- 알렉산더 왕 인터뷰 (2023년경)

(* 알렉산더 왕은 2023년경 AI 산업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샘 알트만과의 친분과 그로부터 받은 영감을 자주 공유했다. 특히 "타인의 조언보다 자신의 판단을 믿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대목들을 강조했는데, 샘 알트만 블로그 글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한 것 같다.)

"내가 조단위 부자에게 배운 것들은 그들이 '신앙심 수준'의 자기믿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 유튜버 크리스월드

(* 10여년 전, 위암 4기 복막전이로 인해 시한부 판정을 받은 박지형(크리스)은 의지의 힘으로 이를 기적적으로 극복해낸다. 그는 네빌 고다드의 가르침처럼 외부의 증거(의사의 진단)를 자신의 진실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

또한 크리스월드가 이야기한 조단위 부자들의 강한 자기믿음은 청담동의 어떤 부자 인터뷰 (유튜브 영상)와도 일맥상통한다.

청담동의 사업가가 한 말: "남들 다 말릴 때 (노동소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진즉에 깨닫고) 창업했고, 자동차 어떤 것 탈지 집은 어떤 곳에서 살지 상상했던 것이 전부 다 현실화되었다. 젊을 때는 실패해도 좋다. 용기는 크면 클수록 좋다. 왕관의 무게를 쓰려자는 그 무게를 감당해야한다."

"나의 성공은 오직 하나의 좌우명에 달려 있었다. '남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 또한 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이론에 밝은 자들이든 그 누구든, 내게는 적수가 되지 않는다."

- 네이선 로스차일드 (니얼 퍼거슨의 저서 『로스차일드(The House of Rothschild, 1998)』에서 인용)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당신이 믿는 대로 될 것이다."

"성공적인 삶의 유일한 비결은 자신이 하도록 운명 지어진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그것을 하는 것입니다."

- 헨리 포드 『나의 산업 철학(My Philosophy of Industry, 1929)』

"뜻을 높게!" (志高く)

"제가 평생을 걸고 정말 열심히 하면 상대가 히사미쓰제약이든 브리지스톤이든, 혹은 도요타든 마쓰시타든 반드시 앞지를 수 있다는 전혀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만은 있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지금의 현실을 보지만, 개척자들은 미래의 현실을 본다."

"눈앞을 보기 때문에 멀미를 느끼게 된다. 몇 백 km 앞을 보면 바다는 언제나 평온하다."

- 손 마사요시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 된다."

- 아산 정주영, 1971~1976년 (* 비슷한 취지의 라틴어 격언: "Aut inveniam viam aut faciam" (길을 찾거나, 아니면 만들 것이다) - 이는 고대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BC 3~2세기)이 알프스를 넘을 때 했던 말로 유명)

"길이 있는 곳을 따라가지 말고

길이 없는 곳으로 가서

새로운 길을 남겨라."

(원문: “Do not go where the path may lead,

go instead where there is no path and leave a trail.”)

- 랄프 왈도 에머슨 《A Fable, 1867》

"해보기나 했어?"

- 정주영이 1970년대 초 (약 1971~1972년경), 울산 조선소 건설 당시 차관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실무자들과 관료들을 질책하며 던진 말

"각하, 중동은 이 세상에서 건설하기에 가장 좋은 곳입니다. 비가 오지 않으니 1년 365일 내내 공사를 할 수 있고, 낮에는 더우니 낮잠 자고 밤에 횃불을 켜고 공사하면 됩니다. 건설에 꼭 필요한 모래와 자갈이 지천에 깔려 있고, 유조선으로 갈 때는 물을 싣고 가서 건설 용수로 쓰고 올 때는 기름을 싣고 오면 운송비도 절감됩니다."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김학렬 씨는 내가 조선소를 짓겠다고 하니까, '정주영이가 조선소를 지으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나중에 조선소가 완공되고 배가 진수되었을 때, 그는 나를 만나서도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그저 허허 웃으며 '정 회장이 정말 대단하다'고 인정했을 뿐이다. 사실 그가 그렇게 말했던 것은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국가 경제의 리스크를 걱정하는 완고한 경제 논리 때문이었음을 나도 알고 있었다."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든 90%의 확신과 10%의 자신감으로 정한다.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은 단 1%도 하지 않는다."

- 정주영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 나의 살아온 이야기, 1998》

"당시 미국의 제철소 차관 제공을 만류했던 세계은행 IBRD의 지페 박사는 "당시 내 보고서는 틀렸다고 보지 않습니다. 지금 다시 보고서를 쓰라고 해고 똑같은 보고서를 쓸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모르고 지나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박태준 입니다.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이 아닙니다. 박태준과 포항제철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라고 훗날 회고했다."

"일화로는 1978년 8월 중국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일본 기미쓰제철소에서 제철소를 둘러본 직후 이나야마 요시히로 (稻山嘉寬) 당시 신일본제철 회장에게 "중국에 이런 제철소를 지어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불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래서 덩샤오핑이 이유를 묻자, 이나야마 회장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으냐"고 되물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 이대환 작가의 평전 『박태준, 2004』

“자원은 유한, 창조는 무한"

- 포스코 본사 정문에 걸린 슬로건

(* 영어권의 오랜 관용어에서 가져옴 - “Resources are limited; Creativity is unlimited”)

한강의 기적 관련

"If we can understand how South Korea did it, then we will know how to develop the world." (만약 우리가 한국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전 세계를 어떻게 발전시킬지도 알게 될 것이다.)

- 로버트 루카스 (Robert Lucas, UC Davis 교수)

원전: 〈Making a Miracle〉, Econometrica Vol. 61, No. 2.

년도: 1993년 3월

"한국은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산업 국가가 될 기초가 전혀 없었던 나라였다. 사람들은 한국이 가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해냈다. 오늘날 한국의 경제적 성취와 문화적 폭발은 인적 잠재력을 해방시킨 놀라운 창의성의 결과다."

- 제임스 로빈슨 (James A. Robinson, 2024 노벨상 수상자)

출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Why Nations Fail)》 및 2024년 노벨상 수상 인터뷰

년도: 2012년(저서), 2024년(수상)

"한국은 서구가 말하는 시장 원리를 무시하고 국가가 의도적으로 가격을 왜곡(Getting prices wrong)하며 산업화를 이룬 독창적이고 유일한 '후발 산업화(Late Industrialization)' 모델이다.

"한국이 다른 국가와 달리 국가 주도산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까닭은 기업에게 정부가 여러 가지 도움을 주면서도 정부가 요구하는 일정 수준의 업적을 내지 못하는 기업에게는 도움을 끊는 징계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 앨리스 암스덴 (Alice Amsden, MIT 교수)

원전: 《Asia's Next Giant: South Korea and Late Industrialization》 (Oxford University Press)

년도: 1989년 6월 22일

"한국은 사다리를 걷어차려는 선진국들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만의 산업 정책을 고수해 성공한 유일한 개발도상국이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 서구 학계의 주류 시각 반영)

원전: 사다리 걷어차기 《Kicking Away the Ladder: Development Strategy in Historical Perspective》

년도: 2002년 6월 1일

"거시지표로 보면 평균 성장률 8.5%의 고도성장시대였다. 하지만 경제 성장만 놓고 보더라도 폭과 깊이가 널뛰기했던 불확실하고 아슬아슬한 시기였다. 13%를 성장한 시기가 있지만 저성장에 이어 마이너스 성장으로 추락한 시기도 있었다. 외환보유액이 언제든지 바닥날 수 있는 불안한 나라였다. 8.5% 성장률 속엔 수많은 고민과 긴장과 갈등이 있다. (박정희는) 엄청난 리스크 테이크를 하는 모험가였다. 그는 보통사람이라면 택하지 않을, 또 택하지 못할 리스크를 계속 선택해 나갔다.

박정희의 전략은 3H로 설명할 수 있다. 고위험, 고성장, 고비용(High risk, High payoff, High cost)이다. 민간부문과 기업을 확장시켰지만 시장방식이 아니었다. 1965년엔 정기예금 금리를 하룻밤 새 연 15%에서 연 30%로 올려 은행으로 돈을 끌어 모았지만 대출 이자율은 그보다 낮춰 투자 위축을 막았다. 역금리제다. 또 사채시장을 혼수상태에 몰아 넣은 1972년의 8·3 사채 동결조치도 마찬가지다. 재정으로 기업을 지원하고 채무를 완화시켰다. 그런데 그런 돈이 기업 투자로 이어질 것이라고 누가 확신할 수 있었겠나. 대박 가능성이 높지 않았는데 대박 나게 만들었고, 그러기 위해 많은 비용과 희생이 따랐다.

박정희는 그런 길을 갔다. 규모가 중간 정도의 국가라면 60년대가 스스로의 힘으로 선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케네디 라운드로 선진국의 관세 철폐가 대대적으로 이뤄져 수출 진흥을 통한 산업화의 창이 열렸다. 선진국이 된 일본은 해외에서 투자처를 찾기 시작했다. 한국의 산업화는 수요가 확대되면서 생산 쪽에선 기술이전이 가능한 시기에 일어났다.

절묘한 타이밍이다. 향후 세계무역은 그런 방식의 산업화가 어렵도록 체제가 바뀌었다. 한국은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로 갈 수 있는 막차를 탔다. 그러나 막차인지 여부는 박정희도 몰랐을 것이다. 다만 잘살아 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두 자릿수 초고속 성장으로 달려나간 중국을 생각해 보자. 그때 기회를 놓쳤다면 한국의 산업화는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명예교수), 김병국 공저 《박정희 시대 (The Park Chung Hee Era)》

년도: 2011년 (저서 출간 시기)

한국 경제성장의 비밀 첫번째는 중화학 육성공업, 두번째는 적자 수출, 세번째는 최저가 입찰제와 '빨리 빨리' 문화.

남미는 망했는데 한국엔 기적 일어난 이유 = 수출주도산업화와 기술혁신의 유무.

한국 같은 후발산업국은 정경유착, 특혜금융, 노동착취로 단시간에 발전했다.

영국, 미국 같은 선진국들은 모두 기술 발전을 한 뒤, 보호무역과 각종 규제 같은 편법, 반칙들을 써서 성장했다.

후발산업국이 혼합경제 체제(계획경제+자유경쟁)를 채택할 때 성장률이 가장 가파르게 오른다.

-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 유튜브 채널 <언더스탠딩> 강의 (2025)

서른 살이 되었다. 나는 충격에 휩싸여 아침을 맞았다. 그리고 마침내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아무런 직업도, 적금도, 재산도 없었다. 낡은 전자피아노 한 대가 내가 가진 전부였으며,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 변두리 작은 원룸의 월세를 내기 위해 전전긍긍했다. 내 삶에 불어 닥친 위기였다.

그런데 바로 그날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새로운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적용하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전에는 그저 이따끔씩 떠올랐다 사라졌던 생각과 덧없고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가능성들이 하나의 모습을 갖춘 아이디어가 된 것이다.

...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지금 이 순간이 위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로 조급해서는 안 된다. '인생은 길다'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천천히 당신이 그리는 이상적인 상황을 종이 위에 적어라. 앞으로 5년 안에 당신이 이루고 싶은 꿈들을 글로 옮겨라. 그리고 그것을 가슴 깊이 새겨라.

...

그리고 나는 서슴지 않고 한 가지를 덧붙였다. 무엇보다 시간적으로 무척 여유롭다고 생각했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을 그리고 있었으므로 그 모든 것들이 가능했다. 마르지 않는 창의력, 성공적인 사업, 친구와 가족,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한 넉넉한 시간. 바로 이것이 서른 살의 내가 그렸던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었다.

...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적어 내려가는 지극히 단순한 과정을 통해 절대 변함없는 삶의 법칙을 발견하라.

...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다음 단계는 각각의 중요목표에 대한 한 페이지 분량의 계획을 적는 것이다.

...

위기를 극복하고 벗어나기 위한, 그리고 그것을 기회로 삼기 위한 마지막 단계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계획을 세우면 목적이 확고해진다. 행동으로 옮기면 그 무엇도 당신을 막을 수 없다.

...

서른살 때, 나는 빈털터리였다. 어쩌면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망으로 가득 찼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6년 뒤, 나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오랜 세월동안 흔적조차 찾을 길 없던 성공의 비밀이 간단명료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 덕분이었다.

...

위대한 성공이란 명확하게 정의된 목표를 향한 작은 걸음이 무수히 모여 만들어진 결과다. 이 것이 바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비밀이다.

...

무엇이든 이루기 위해서는 청사진이 필요하다. 비밀은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

확신으로 가득찬 문장의 목록을 늘 지니고 다녀라. 언제나 눈앞에 둬라. 그리고 잠재의식 속에 새겨지도록 반복하고 또 반복하라.

그러고 나서 그저 편안하게 쉬면서 기적이 펼쳐지는 광경을 지켜보라. 당신은 성공의 비밀을 발견했다. 당신 안에, 당신의 놀랍도록 창조적인 상상력 속에 비밀이 간직되어 있다.

...

우리는 매우 창조적인 존재다.

우리가 꿈이나 목적에 정신을 집중할 때 무한한 잠재의식이 꺠어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보여 준다.

...

얻고자 하는 것을 또렷하게 그려낼 힘이 우리 안에 있다. 꿈과 목적에 대한 강력한 생각에 집중하면 할수록 이러한 꿈들을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된다. 우리가 내딛어야 할 걸음이 명확해지고 가야할 길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

이 과정에서 무조건 믿어야 할 것이 없다 해도 우리가 가진 믿음의 실체와 그 믿음이 삶에서 작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하면 꿈을 깨닫도록 도와줄 보다 강력하고 든든한 믿음 하나를 마음속 깊은 곳에 품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 대해 모든 단계를 뛰어넘는 전폭적인 신뢰를 보낼 필요는 없다.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져야 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우리 안의 믿음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윌 삶의 모든 순간에 얼마만큼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적어도 이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변화시켜 훨씬 더 강하고 긍정적인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돈 버는 재주가 없으며 도무지 구제불능이라고 믿었다. 현실 속에서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20대였을 때 내가 번 돈은 모두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30대 였을 때 내가 경영하던 회사는 파산 직전이었다. 또한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빚에 허덕이며 매달 카드 대금의 최저 상환액도 해결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믿음을 키우는 방법>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내게 효과적이었던 다른 방법들처럼 그 과정 또한 지극히 단순했다.

...

자네가 일을 결정하면 이루어지고 자네의 길에 광명이 비칠 것이네.

...

실패를 두려워 마라. 이번 일이 수포로 돌아간다 해도 언젠가 또 다른 어떤 것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 시도하라. 그러면 결국 효과적인 대안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의 계획에 집중하라.

그리고 버텨라.

이것이 바로 성공의 비밀이다.

당신은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밟으며 자신의 목적을 증명해 왔고 잠재의식은 목적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잠재의식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당신에게 정확히 보여 주기 시작한다.

...

우리는 몇 번이고 꿈과 계획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만 항로에서 벗어났을 때 자신의 길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를 계속 반복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

성공은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느냐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명확하게 목표를 향해 열려 있느냐에 달려 있다.

- 마크 알렌(Marc Allen) 《위기극복형 인간(원제: Visionary Business: An Entrepreneur's Guide to Success, 1995)》

(* 마크 알렌의 실제 삶은 그가 책에서 주장하는 '긴장을 늦춘 성공(Relaxed Success)' 그 자체였다.

- 초기의 실패와 빈곤: 30세가 될 때까지 그는 변변한 직업 없이 가난한 음악가이자 작가로 살았다.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고, 스스로를 "낙오자"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 전환점 (30세 생일):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기 시작했다. "나는 1년 안에 세계적인 출판사의 사장이 된다"는 터무니없는 목표를 세우고 무의식에 각인시켰다.

- 뉴 월드 라이브러리(New World Library) 설립: 1977년, 그는 단돈 65달러로 친구와 함께 출판사를 차렸다. 이것이 바로 에크하르트 톨레의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샤티 가웨인의 《창조적 시각화》 등을 펴내며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뉴 월드 라이브러리'의 시작이다.

- 철학적 특징: 그는 열심히 일하는 것(Hard work)보다 '올바른 마음가짐'과 '무의식의 평온함'을 강조한다. 하루에 몇 시간만 일하고도 거대한 부를 일궈내어 스스로를 "게으른 혁명가"라 부르기도 했다.)

"알리바바를 창업하고 첫 5년 동안 나는 단 1달러의 월급도 받지 않았다."

- 마윈의 2014년 알리바바의 뉴욕 증시 상장(IPO) 전후 인터뷰 및 2015년 다보스 포럼(World Economic Forum) 등에서 과거 회상 형식으로 언급된 내용

"숫자상의 돈이 줄어든 것뿐이다. 나의 비전과 열정은 변하지 않았다. 돈은 게임의 점수판에 불과하며, 나는 세상을 바꾸는 게임을 계속할 뿐이다."

- 손정의 (2000년 닷컴 버블 붕괴로 개인 자산이 700억 달러(약 90배 하락) 증발했을 때의 발언)

"돈은 편의를 위한 도구일 뿐이다. 나는 0(제로)에서 시작해서 1조 원을 만들었으니, 다시 0이 되어도 1을 만드는 법을 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무언가에 몰입하는 즐거움'이다."

- 호리에 다카후미 (라이브도어 전 사장) 《제로(0) -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 법, 2013》

(* 2006년 구속 및 자산 몰수 위기 당시와 이후의 발언. 그는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돈을 벌었다"고 말하며, 수감 생활 중에도 "공짜로 다이어트하고 책 읽을 시간이 생겨서 좋다"는 식의 극단적인 긍정(네빌 고다드의 가지치기)을 보여주었다.)

"은행 빚이 7억 원까지 불어났을 때도, 단 한 번도 서비스가 실패할 것이라거나 망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서비스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확신이 90% 이상이었기에 불안함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완벽하게 만들지만 고민했습니다."

- 박종환이 자신의 사업체를 카카오에 매각 발표한 시점 및 이후 인터뷰 (2015년 5월)

"빚이 쌓여가고 있었지만 이미 부자인 듯 느끼고 길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줬다. 최상의 기분을 만들기 위해 좋은 음악을 들었다."

- 론다 번 《더 시크릿(The Secret), 2006》

"나는 부자가 되기 전에 이미 부자의 상태를 관리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했다."

- 황정의 핀둬둬 창업 전후의 개인 블로그 글 및 인터뷰 (2016~2017년경)

"0과 1의 차이를 아세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저의 가능성은 0퍼센트이지만 제가 여자들에게 쪽지를 하나라도 보내면 저의 가능성은 1퍼센트가 되는 거에요."

- 안규호 《나는 인생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영업에서 배웠다, 2017》

"나는 내가 원하는 역할을 시각화합니다. 운동선수 역할을 시각화하지 않았다면 영화 <메이저 리그>는 없었을 것이고, 대통령 역할을 시각화하지 않았다면 <24>의 데이비드 파머도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감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주는 그저 당신에게 아무것이나 던져줄 뿐입니다."

- 배우 데니스 헤이스버트의 다수의 매체 인터뷰 (2003~2005년경)

45년 전 오늘, 저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당시 저는 죽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있었죠. 설교하려는 건 아닌데, 저는 계시를 받았어요. "죽을래, 살래?" 하고 물었고, 저는 살고 싶었습니다. 그 순간 평온을 느꼈고 제 삶은 놀라워졌습니다.

간혹 작은 의심이 들 때도 있겠지만, 그냥 버티세요. '오늘'이 어제 여러분이 그토록 걱정했던 '내일'입니다. 젊은이여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인내하고 맞서세요. 담대하세요. 전능한 힘이 여러분을 도울 것입니다. 그 힘이 제 삶도 지탱해줬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봤나,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였나... 기억이 잘 안 나요. 주술사에 관한 이야기였죠. 가뭄이 들어서 소와 사람들이 사막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주술사가 명령했어요. 배수로를 만들어라. 비가 내리니 배수로를 파라. 하지만 비는 내리고 있지 않았죠. 배수로를 파라, 그러면 비가 올 것이다. 믿지 않는 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겠죠.

그래요,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하지만 그것은 '이성'이에요. 이런 순간에 '이성'은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제 역할을 하는 것은 '잠재의식'이죠.

어린 소년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지금의 제 모습을 꿈꿨습니다. 상상은 할 수 있었지만, 그다지 희망이 있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저에게 일어났죠.

저는 시간을 압축해서 자신에게 끌어당길 수 있다고 믿습니다. '내년에 할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생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일'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1시간 뒤'도 존재하지 않죠. 모두 잠재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 안으로 시간을 현재로 끌어당길 수는 있죠. 그러니 배수로를 파세요. 무엇을 하고 싶던, 그것을 믿으세요. 믿기지 않아도 믿으세요. '믿음'이라는 게임을 하세요. 믿는 것처럼 행동하세요. 그것이 힘입니다. 그것이 순수한 힘입니다. 믿으면 실현될 것입니다.

저처럼 어리석은 자에게도 실현됐으니 여러분 삶에도 실현될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믿으세요. 믿으세요. 믿으세요.

- 앤소니 홉킨스(Anthony Hopkins) 2020년

"저는 끌어당김을 믿습니다. 하지만 여기 핵심(Key)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미래'의 무언가를 끌어당기려고 애씁니다. 그들은 '언젠가 행복해질 거야' 혹은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죠.

'지금(Now)'은 현현(끌어당김)이 실제로 일어나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만약 당신이 미래에서 그것을 찾고 있다면, 당신은 우주에게 '나는 지금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면 우주는 그것을 계속 미래에 머물게 합니다.

당신은 '지금' 그것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승리감을 느껴야 합니다. 당신이 '지금, 여기(Here and Now)'에 너무나 완벽하게 존재해서, 우주가 당신의 현재 상태를 거울처럼 비춰줄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 짐 캐리

"나는 미국에 건너와 이불 가게를 하고, 식품점을 하고, 끊임없이 실패하던 그 시절에도 이미 내가 수천억 자산가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단순히 돈이 많은 상태를 꿈꾼 것이 아니다. 나는 이불을 개면서도 내가 수만 명의 청중 앞에 서서 강연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이 내 말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고, 내 지혜를 경청하며, 강연이 끝난 후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는 그 현장의 공기와 소리까지 생생하게 느꼈다. 나는 아직 그 자리에 가보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수천 번도 더 그 강연장에 서 있었다."

"미래의 어느 지점에 내가 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그 장면을 현재로 끌어와서 지금 당장 살고 있는 것이다. 내가 100번 쓰기를 하고 시각화를 한 이유는 뇌가 그것을 '상상'이 아닌 '이미 일어난 현실'로 착각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 김승호 《생각의 비밀, 2015》

"생각은 물리적인 힘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을 100번씩 100일 동안 쓰면, 그것은 내 잠재의식에 뿌리를 내리고 현실로 나타난다."

- 김승호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2017》

"Mens Agitat Molem" (정신은 만물을 움직이느니라)

-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에네이드(Aeneid), BC 19년』 제6권 727행

"당신이 현실을 지배하지 않으면, 현실이 당신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 바딤 젤란드 『리얼리티 트랜서핑(Reality Transurfing, 2004)』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일들은 일어날 수 있는 현실이다."

- 쥘 베른 《지구 속 여행(Voyage au centre de la Terre), 1864》 서문 격언

"풍요로움은 퍼가도 퍼가도 남아 있다."

- 『우파니샤드』, BC 8~5세기경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 『요한복음』 2:4, AD 1세기 말

"사람은 무언가를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그것을 성취할 수 있다. 어떤 특수한 채널을 통해 현실이 비현실이 될 수 있다. 혹은 비현실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만약 간절히 염원한다면,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 자유롭다는 사실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증명하는 건 오히려 그 반대의 사실일지도 모른다."

-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2017》

"나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내가 믿는 것은 오직 상상력의 힘, 그리고 현실이 단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뿐입니다.

현실 세계와 또 다른 비현실의 세계는 동시에 존재하며, 서로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때로는 그 둘이 겹쳐지기도 하고 하나로 뒤섞이기도 하죠. 내가 원할 때, 그리고 아주 깊이 집중할 때, 나는 그 경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곳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 그것이 바로 내 책들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것이 핵심이죠.

나의 이야기들은 이쪽 세계에서 시작해 저쪽 세계로 이어지곤 하는데, 이제 나조차도 그 둘의 차이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가 《디 차이트(Die Zeit)》와 진행한 인터뷰 (2017)

"세상은 이중 거울이다. 거울의 한쪽 면에는 물질적인 현상이 있고, 다른 쪽 면에는 형이상학적인 가능성의 공간이 펼쳐져 있다. ... 당신의 생각(태도)이 거울에 비춰질 때, 세상은 그 이미지에 맞춰 서서히 현실을 변화시킨다."

- 바딤 젤란드 『리얼리티 트랜서핑(Reality Transurfing, 2004)』

"당신이 찾고 있는 황금 같은 기회는 바로 당신 자신 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환경에 있는 것도 아니고, 운이나 요행, 혹은 타인의 도움에 달린 것도 아닙니다. 오직 당신 자신 안에만 존재합니다."

"The golden opportunity you are seeking is in yourself. It is not in your environment; it is not in luck or chance, or the help of others; it is in yourself alone."

- 오리슨 스웨트 마든 (Orison Swett Marden) 《Pushing to the Front, 1894》

"미래는 우리들의 손안에! (未来は僕らの手の中!)"

- '더 블루 하츠(THE BLUE HEARTS)'의 데뷔 앨범 1번 트랙 제목이자 가사 (1987)이며, 《역경무뢰 카이지》 TV 애니메이션 1기(Ultimate Survivor)의 오프닝 곡 (2007년 10월 2일 ~ 2008년 4월 1일)

"운명이 우리들을 가지고 논다면

나는 그 이상의 힘으로 물리쳐 보이겠어."

- 일본드라마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 (もう誰も愛さない, 1991)의 주인공 사와무라 타쿠야의 대사

"스토리의 변경을 요구하겠어. 여기부터는 전부 다 내 반격이라고!"

- 아니메 《유유백서, 1992-1995》 주인공 우라메시 유스케의 대사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항상 메시아적 환상을 품고 있었으며, 그것을 통제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렇지 않으면 곤경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원문: "I have always carried about me a messianic fantasy from my childhood, which I felt I had to control, otherwise it might get me into trouble."

"나는 항상 메시아적 환상을 품어왔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현실 세계에서 작동시킬 수 있는 한, 그것은 망상이 아니다."

원문: "I have always harbored a messianic fantasy... but as long as I can make it work in the real world, it is not a delusion."

- 조지 소로스 《소로스가 말하는 소로스 (Soros on Soros), 1995》

"조지 소로스는 메시아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세상의 오류로부터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자신뿐이라고 믿었다."

원문: "He had a messianic complex... believing that he was the only one who could save the world from its own errors."

- 마이클 코프먼(Michael T. Kaufman) 《Soros: The Life and Times of a Messianic Billionaire, 2002》

"소로스는 자신이 역사를 바꿀 권능을 가진 메시아라고 믿으며, 그 믿음이 실제로 시장을 움직인다."

원문: "George Soros believes he is a messianic figure... He has an incredible capacity to act on his convictions, making them self-fulfilling."

- 바이런 빈 (Byron Wien) 《The Alchemy of Finance, 1994》

(* 바이런 빈은 모건 스탠리 전략가이자 소로스의 절친한 동료)

"관찰자가 자신의 '깊은 생각의 불타는 전차'에 올라타

그의 상상 안에서 이미지들 속으로 다가가 하나가 된다면

만약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친구를 만들고, 이런 경이로운 이미지들 중 하나와 동료를 만든다.

그러면 그것은 항상 그에게 유한한 것들을 떠나보내게 하고,

그 때 그는 자신의 무덤으로부터 일어날 것이고,

그 때 그는 하늘 안에서 주를 만나게 될 것이고,

그 때 그는 행복하게 될 것이다."

- 윌리엄 블레이크 『최후의 심판에 대한 묘사(A Vision of the Last Judgment, 1810)』

"간절히 바라면 반드시 이루어진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렇게 되고 싶다'고 간절하게 바라면 그 생각이 반드시 그 사람의 행동으로 나타나고, 행동은 생각을 더욱 간절하게 한다. 하지만 그 간절함은 분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막연한 간절함이 아닌 '반드시 이렇게 하고 싶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의지와 다짐이 분명한 간절함, 그런 꿈이 아니면 안 된다.

먹고 자는 것을 잊을 정도로 간절하게 바라며, 하루 종일 그것을 마음 속 깊이 새기면 그 생각은 잠재의식에까지 침투해 들어간다. 잠재의식이란 의식이 접근할 수 없는 정신영역, 또는 스스로가 알지 못한 채 활동하고 있는 정신세계로, 인간의 의식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의식을 말한다. 잠재의식은 평소에는 의식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지만 생각하지도 못한 어느 순간 불현듯 자기도 모르게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과거의 반복적인 체험과 현재의 강렬한 경험 등이 한데뭉쳐 있는 잠재의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창의적이며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이 잠재의식은 자고 있을 때조차도 활동하며, 간절함이 강할수록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길로 나를 인도해준다."

-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왜 일하는가 (働き方), 2009》

"눈앞에 보일만큼 강렬하게 상상하라.

이는 비단 일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할 때도 항상 이상형을 머릿 속에 그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이상형이 눈에 뚜렷하게 보일 때까지 강렬하게 생각하고 간절히 원해야 한다.

일부러라도 목표를 높게 잡고, 생각과 현실이 완전히 일치될 때까지 파고들다 보면

만족스럽고 훌륭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하나 재미있는 점은

사전에 명확히 본 것일수록

손에 베일듯한 이상형으로 실현된다는 점이다.

반대로 사전에 이미지가 잘 떠오르지 않는 것은

어찌어찌 완성한다 해도

손에 베일듯한 수준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이것도 내가 인생을 살아오며 부딪친 갖가지 상황을

경험하며 체득한 사실이다.

내가 창업한 다이니덴덴(현KDDI)이

휴대전화 사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앞으로는 휴대전화의 시대가 도래할 시대할 것입니다."

내가 이 말을 하자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휴대 가능한 전화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에게나 전화번호가 주어지는

시대가 머지 않은 미래에 찾아온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임원들은 그런 일은 있을수 없다며 실소를 터뜨릴 뿐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보였던 것이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휴대전화라는 제품이

얼마나 빨리 보급될지

그 이미지가 내게는 선명하게 보였다.

당시 교세라가 반도체 부분 사업을 추진하는 동안 나는

반도체 기술이 얼마나 빠르게 혁신되고 그 규모와

비용이 얼마나 급격히 커지는지를

경험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그 덕택에 휴대전화라는 새로운 상품, 시장의 확대를

상당히 정확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기본요금은 얼마나 될 것이고,

통화료는 어떻게 책정될 것인지 등

미래의 요금체계까지 예측해냈다.

당시 사업본부장은 내가 예상한 요금체계를

수첩에 그대로 메모해놓았는데 실제로

휴대사업이 시작되었을때 그는 다시 메모를 펼쳐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 책정된 요금체계와 내가 예상한 그것이

거의 똑같았던 것이다.

그는 귀신이 씌이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혀를 내둘렀다.

이런 것이 바로 보이는 것이다

휴대전화 뿐만 아니라

모든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균형,

투자액의 회수 등을 고려해

복잡하고 정밀한 원가 계산을 거쳐야

비로소 산출된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내게는 서비스 요금까지도 명확하게 보였다.

이렇게 아주 작은 상황까지도 명료하게 이미지로 떠올릴 수 있다면

그 일은 틀림없이 성취할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 보이는 것은 이루어지고, 보이지 않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일을 이루고 싶다면 더없이 강력한 마음을 품고

성공한 이미지가 눈앞에 뚜렷히 보일 때까지 간절하게 염원하라.

이렇게 되고 싶다고 원하는 것 자체가

그 소망을 현실로 만들 힘이 당신에게 있다는 증거다.

인간이란 원래 소질과 능력이 없는 일에는 그다지 열의가 들지 않는 법이다.

그럼으로 자신이 성공한 모습을 생각하고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은

성공할 확률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눈을 감고 성공한 모습을 상상해보았을 때 그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면

그 일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

-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働き方, 2004)』, 『카르마 경영(生き方, 2009)』

"생각하는 것을 명확하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만든다.

이미지에 개성을 담아 스토리와 세계관을 만든다.

이미지에 의미를 담아 세상에 탄생시킨다.

그리고 공감하는 사람을 늘려간다.

지금 여기 없는 미래를 상상하고, 선명하게 마음 속으로 구체화하고, 실현하기 위한 단계를 떠올리고, 최종적인 아웃풋까지 만들어내는 것."

- 야마구치 슈 《뉴타입의 시대 (New Type), 2019》, 《비즈니스의 미래, 2020》

"비즈니스란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영감을 놓치지 않고 포착하여 이를 구체적인 현실로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그것은 마치 예술가가 영감을 얻어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 조중훈 《내가 걸어온 길: 수송(輸送)은 예술이다, 1996》

"내 방법은 다릅니다. 나는 서둘러 실무적인 작업에 착수하지 않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시 내 상상 속에서 그것을 구성하기 시작합니다. 머릿속에서 설계를 변경하고, 개선을 시도하며, 장치를 가동해 봅니다.

나에게 있어 그 장치를 머릿속에서 돌려보는 것이나 내 실험실에서 테스트하는 것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심지어 그 장치가 균형이 맞지 않는지까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중략) 이런 방식으로 나는 어떤 도면이나 도표, 모델 없이도 아이디어를 완벽하게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실제 장치가 내 마음속에 있는 것과 정확히 똑같이 만들어지도록 지시하기만 하면 됩니다. 지난 20년 동안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항상 그렇게 되었습니다."

- 니콜라 테슬라 《나의 발명들 (My Inventions), 1919》

"2주 동안 나는 내가 나중에 '푹스 함수'라고 부르게 된 것과 유사한 함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썼다. 당시 나는 매우 무지했다. 매일 책상에 앉아 한두 시간을 보냈고, 수많은 조합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했다. 어느 날 저녁, 평소 습관과 달리 블랙커피를 마셨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아이디어들이 구름처럼 떼 지어 솟아올랐고, 그것들이 서로 충돌하다 마침내 두 개가 서로 갈고리처럼 연결되어 안정된 조합을 이루는 것을 느꼈다. 아침이 되자 나는 푹스 함수 군의 존재를 확립했다... 나는 그저 몇 시간 동안 그 결과들을 써 내려가기만 하면 됐다."

- 앙리 푸앵카레 『과학과 방법(Science et Méthode, 1908)』

유레카 (Eureka) !

"찾았다(I have found it)"라는 뜻의 그리스어 완료형 동사

- 비트루비우스(Vitruvius) 《건축 십서(De Architectura)》 제9권 서문 (BC 1세기경)

(*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Archimedes)가 목욕탕에서 부력의 원리를 깨닫고 알몸으로 거리로 뛰쳐나오며 외친 말로 알려져 있다.

약 BC 212년경 사건으로 추정된다.)

"메디컬매니저가 어떤 장대한 계시를 통해 한 번에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영감은 이 프로그램이 가야 할 길을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나는 그저 컴퓨터에 앉아 코드의 형태로 터져 나오는 영감의 흐름을 받아 적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거의 두렵게 느껴질 정도의 열정과 열의에 휩싸인 채 코드를 짜고 또 짰다. 처음에는 환자기록을, 다음에는 요금청구에 필요한 의료적 절차들을.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내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했다. 두 고객만을 위해서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우주에 선물로 바친다는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쏟아지는 영감의 흐름이 어찌나 거센지, 단 하나도 허투루 넘어갈 수가 없었다. 세세한 것까지 꼼꼼히 따지던 이 태도가 결국 메디컬매니저를 다른 의료비청구 시스템과 차별되게 만든 요소였다. 간단히 말해서 나는 그것이 얼마나 오래 걸리건, 사업가의 눈으로 볼 때 얼마나 말이 안 되건 상관없이 그저 이 프로그램이 최고로 완벽하기만을 바랐다."

- 마이클 싱어 《될 일은 된다, 2015》 (원제: The Surrender Experiment: My Journey into Life's Perfection)

(* 마이클 싱어는 '흐름에 맡기면 최상의 인생이 펼쳐진다'는 주장으로 유명하다.

라하니쉬의 표현대로라면 자기탐구를 통한 내 안의 신성과의 합일.

힌두식 표현으로는 bhakti, 즉 '신에 대한 무한한 찬양'과 일맥상통한다.

에크하르트 툴레의 표현대로라면 내맡김.

기독교식 표현으로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마태복음 26:36-46)

이츠키 히로유키의 표현대로라면 '타력'.

도가의 표현으로는 무위의 실천.

역학의 방식으로는 주역과 사주를 통해 파악한 운명에 대한 순응 및 진인사대천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작곡은 신이 내 몸속에 들어왔다고 여길 만큼 이상적인 작업방식 속에서 이루어졌다. 단 매번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뇌리에서 번뜩이거나 발상의 실로 묶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직감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직감을 연마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가장 좋은 방법은 최대한 수용능력을 넓히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직감을 느끼는 센서가 예민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감도를 높여야 한다. 즉 느끼는 힘을 업그레이드 시켜야하는 것이다."

"창조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보고, 얼마나 많이 듣고,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 하는 것이다."

- 히사이시 조 (Hisaishi Joe) 感動をつくれますか (감동을 만들 수 있습니까, 2006)

"나는 음악을 쓰기 전에 풍경을 먼저 본다. 그 풍경 속에 사람을 앉혀두고, 그 사람이 느끼는 공기의 온도나 냄새를 음악으로 바꾸는 작업을 한다."

- 이영훈의 월간 <객석> 인터뷰 (2001) 및 그의 유고 에세이 《사랑이 지나가면, 2008》

(* <광화문 연가>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같은 곡들이 유독 공간적 배경이 뚜렷한 이유가 바로 이 '이미지 스케치' 작업 때문)

"소설을 쓸 때, 나는 항상 어떤 강렬한 이미지(Strong Image)를 먼저 갖게 된다. 그 이미지는 매우 구체적이고 강력해서, 나는 그 이미지가 어디서 왔는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 글을 써 내려간다. 이야기는 그 이미지를 설명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職業としての小説家), 2015》

"나는 플롯을 세세하게 짜지 않는다. 캐릭터를 설정하고 나면, 그들이 내 머릿속에서 멋대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나는 그저 그 소리들을 순식간에 종이 위로 옮겨 적을 뿐이다. (쓰기 시작하면) 한 회 분량의 대본을 쓰는 데 반나절(4~5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 노지마 신지 1994년 잡지 <가도카와(角川)> 인터뷰 및 2000년대 초반 후지 TV 드라마 제작 비화 등에서 반복적으로 언급

"이야기를 질질 끌다보면 질리므로, 빠른속도로 전개시키고 완성하는 스타일이다."

"케릭터 스스로 이야기를 전개하도록 내버려두면 마지막에 가서 이야기 전체가 연결된다."

"한창 성공가도를 달리던 90년대에는 마치 트랜스 상태에서 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몸에 들어와서 글을 써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시계의 숫자를 보면 똑같은 숫자가 동시에 떴다. 이를테면 1시 11분, 5시 55분 등. 한번쯤 실패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때 자신의 작품들이 점점 난해해졌고, 결국 <세기말의 시>로 최초의 실패를 맛보게 되었는데, 이것이 예상외로 충격이 컸다."

- 노지마 신지의 한국방송작가협회와 SBS문화재단 주최 ' 방송작가 마스터클래스' 강연 내용 (2013)

"창의성이란 그저 사물들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 일을 해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약간 죄책감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실제로 그것을 한 게 아니라, 단지 무언가를 보았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들에게는 그것이 당연해 보였을 뿐입니다."

- 스티브 잡스 <Wired> Magazine 인터뷰 ("The Next Insanely Great Thing", 1996)

"그것은 나의 만트라(기도문) 중 하나였습니다. 바로 집중과 단순함입니다.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생각을 명료하게 만들어 단순하게 하려면 정말 열심히 노력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럴 가치가 있습니다. 일단 그 단계에 도달하면, 당신은 산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That’s been one of my mantras — focus and simplicity. Simple can be harder than complex: You have to work hard to get your thinking clean to make it simple. But it’s worth it in the end because once you get there, you can move mountains."

- 스티브 잡스 《비즈니스위크(BusinessWeek)》와의 인터뷰 (1998)

(* 1998년 자신이 쫓겨났던 애플에 복귀하여 아이맥(iMac)을 성공시킨 직후 한 말)

"창조는 편집이다."

"창조적 인간이 되라, 그런 이야기를 해요. 그럼 창의성이라는게 뭐냐? 창의성이란 다 있는 것, 익숙해서 있는 줄도 모르는 것을 새롭게 느끼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한다. '낯설게하기(verfremdung)'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 김정운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 2014》

Simple is the Best

-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가 자신의 건축 철학을 설명하며 (less is more) 대중화시킨 개념으로, 현대 디자인 비평과 광고(특히 바우하우스와 애플)에서 고착화되었다.

오늘날 예술계의 미니멀리즘 사조와도 관련이 깊다.

"다스칼로스에 따르면, 사람이 방사하는 모든 느낌이나 생각은 염체(念體, Elementals)가 되어 외부에 방사된다.만들어진 염체가 일단 외부로 방사되면, 그것은 결국 그것을 만든 주인의 잠재의식 속으로 되돌아온다. 염체가 그 근원으로 되돌아오는 이 성질이 바로 '카르마의 법칙'이다.

염체는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서 좀더 영구적인 기반을 확보하게 될 때까지 이런 순환을 되풀이하는데, 이것이 바로 흡연, 도박, 음주와 같은 중독이나 강박관념, 정서불안, 나아가서는 심령적 악영향의 습성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다. 자기 자신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만들어 내었던 모든 염체들은 조만간 마주하게 된다.

다스칼로스에 따르면, 강한 욕망의 염체는 그 주인이 그런 욕망을 전혀 느끼지 않고 있을 때를 틈타 느닷없이 다시 튀어나올 수 있다. 일례로, 다스칼로스는 전생에 르네상스 시대의 이태리인이었을 때, 인쇄기를 발명해야 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만들어낸 염체들의 결과 그는 이번 생에 행정부의 인쇄국에서 식자공으로 일하게 되었다.

결국 다스칼로스가 말했듯이 "우리의 현재 인격과 처한 환경은, 우리가 3차원의 세계로 내려와 환생의 쳇바퀴 속에서 맴돌기 시작하면서 부터 만들어진 '모든 염체의 총화'이다."

이것이 우리가 자신의 운명에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이며, <마태복음>에 나오는 말처럼 "뿌린 대로 거두리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이다."

- 키리아코스 마르키데스 (Kyriacos Markides) 《불타는 가슴 (The Mountain of Silence), 2001》

"의지력을 강력하게 집중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우리가 원치 않는 것들은 잠시 제껴두고, 오직 우리가 원하는 소망만 취하라. 선택된 소망을 난폭한 환상들과 비교하여 둘의 차이를 느낀 후, 신중한 사고를 통하여 조화로운 이미지들을 생성해내라."

"사념체를 좋은 방법으로 사용한다면 우리에게 매우 유익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떤 소원을 품고 그 소원에 마음을 모아 집중하면, 그에 따른 사념체가 생성되고 성장하게 된다. 그렇게 하여 발산된 사념체는 심령이지공간을 떠다니며 우리가 품은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심령이지환경을 조성한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사념체는 우리에게 돌아와서 에너지를 충전한 후 다시 한번 발산된다. 우리가 소원에 마음을 집중할수록 해당사념체는 더욱 강력해진다. 이 사념체의 존재목적은 주인이 품은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며, 이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사념체는 성장을 계속하며 심령이지환경을 조성하는 작업을 무한히 반복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극한 소원은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지게 된다. 세상 모든 일이 우리가 생각하고 믿는 대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는 말이 진실인 것이다."

- 스틸리아노스 아테쉴리스 『에소테릭 티칭, 1992』

"역사상 가장 거대한 창조의 제국(Imperium Creationist)을 건설하는 일 ㅡ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의지에 달려있다."

- 我路,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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