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신비학의 역사 / 생각보다 아프리카 종교들은 이집트의 흔적들을 꾀나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프리카 종교에서 행해지는 의식들이라 전례들이 한편으로는 이집트가 큰 틀과 뿌리를 줬다는 설도 꾀 신빙성 있는 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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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신비학의 계보는 공식적으로 기원후 450년, 로마의 칙령에 따라 이시스 신전이 폐쇄되고 상형문자의 사용이 금지되면서 단절되었습니다.
이후에도 그 전통을 잇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었으나, 대부분은 그리스-로마의 사상과 뒤섞인, 헬레니즘화된 이집트 신앙의 형태로 남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 후 1799년 로제타 스톤이 발견되기 전까지, 이집트 상형문자는 누구도 해독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잊혀졌지만, 이집트의 신비학적 전통은 다른 철학들과 뒤섞이며 변형된 형태로 전승되었습니다.
이집트 신비학은 신플라톤주의와 융합되면서 '헤르메스 철학'을 낳았고, 그 핵심은 연금술로 이어졌습니다.
헤르메스 철학은 서양 오컬트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그 사상적 계승의 중심에는 연금술이 자리했습니다. 이후 연금술은 로즈크루시안적 사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 사상은 당시 연금술과 개신교, 특히 루터파 신학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습니다.
그래서 로즈크루시안 문서에는 연금술적 상징들이 자주 등장하며, 교회의 외적인 권위가 아닌 개인의 내면적 성화 과정이 신성과의 진정한 만남을 이끈다고 강조합니다. 지금의 개신교와 달리, 초기 개신교는 교회의 권위에 대항하는 평신도의 운동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장미십자회의 사상과 정신을 실제로 구현해낸 단체가 바로 프리메이슨입니다. 그들은 형제애를 중시하며, 계급과 계층을 초월해 모임 내에서는 모두가 평등했습니다. 동시에 위계의 질서를 존중하면서도 사상의 자유를 보장받은 채 연구하고 토론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프리메이슨의 일부 인물들이 신지학회와 접촉하면서 그 계보가 신지학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로제타 스톤이 복원되고 완전히 번역된 1888년, 황금새벽회(Golden Dawn) 가 창립됩니다.(속칭 골드던)
흥미로운 점은, 로제타 스톤의 해독이 완성된 바로 그 해에 골든 던이 창립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골든 던은 이집트 신화의 언어와 의식, 상징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며, 이집트 신비학을 복원하거나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본격적으로 펼쳤습니다.
물론 19세기 초의 이집트학은 부정확한 부분이 많았기에 그 해석이 엉성한 경우도 있었지만, 현대 이집트 신비학 체계의 근간을 마련한 것은 분명 골든 던이었습니다.
골드던 이후에는 수많은 단체로 분파가 되면서 다양하게 퍼지고 나아갑니다. 그리고 이것은 또 오컬트와 다른 뉴에이지 이집트쪽에서도 많은 영향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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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아프리카 종교들은 이집트의 흔적들을 꾀나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프리카 종교에서 행해지는 의식들이라 전례들이 한편으로는 이집트가 큰 틀과 뿌리를 줬다는 설도 꾀 신빙성 있는 설이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콥트교와 마찬가지로 아프리카에 있는 크리스천인 에티오피아 정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오늘날 잘 쓰이지 않는 이집트의 전통적인 의식도구이자 악기인 시스트럼을 아직까지 쓰기도 합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이것을 사나셀(Tsanatsel)이라고 불리우고 찬양의식에 많이 애용하는 도구입니다.
한편으로는 고대 이집트의 제례가 또 기독교화가 되어서 보존되고 살아있는 흔적이기도 합니다.
이러다 보니 이집트가 서양 신비학의 기원이라고 이야기가 많이 되는 이유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주는게 뚜렷하게 저렇게 있기에 그런 부분들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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